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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성장과 무한 이윤에 목매단 지금-여기의 회사들. 치사하게 밥줄 갖고 장난치는 밥통정국의 무법자들이다. 그 무법자들에게 할퀴고 뜯기고 뽑아 먹히는 가장 보통의 사람들에게 ‘다른’ 회사가 있음을, ‘다른’ 회사도 가능함을 알려주는 책. 혼자 잘 사는 것이 재미가 아니라, 함께 잘 사는 것이 재미임을 알려주는 책. 분명 다른 회사는 가능하다.

- 준수 100자평 -

[내 좋은 친구들, ‘F4’와 인사하실래요?] ⑤ 너에게 작업실을 권한다
[내 좋은 친구들, ‘F4’와 인사하실래요?] ④ 교양을 만나다
[내 좋은 친구들, ‘F4’와 인사하실래요?] ③ 넌 이렇게 좋은 친구 있니?
[내 좋은 친구들, ‘F4’와 인사하실래요?] ② 불순함을 옹호하고 개인을 우위에 놓다
[내 좋은 친구들, ‘F4’와 인사하실래요?] ① 인트로

  
덧붙여, 세상에는 없을 줄 알았던 이 회사, 《가슴 뛰는 회사》

안타깝게 F4엔 포함이 안 됐지만, F5로 정원을 늘리면 아싸~하면서 손뼉을 마주칠 수 있는 친구가 있어. 《가슴 뛰는 회사》(존 에이브램스, 샨티, 2009). 저기 미쿡에 있는 자그마한 건설회사인 사우스 마운틴의 이야기야. 개정판을 내면서 이름을 바꿨는데, 앞서는 《사우스 마운틴 이야기》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지.

여기서 잠깐. ‘건설’이라는 말을 들으니까, 어때? 이 땅의 건설 회사가 갖고 있는 이미지, 뻐언~하잖아. 이 토건국가에서 건설회사가 지닌 지위와 로비(력), 엄청나지. 자기들 어렵다고 깨방정 부려서 국가적인 삽질 붐을 불러일으키는 품새를 보라지. 이놈들‘거침없는 (삽질) 하이킥’은 지붕까지 뚫고 나갈 지경이지.

지금 여기의 집은 주거 공간 혹은 삶을 가꾸고 영위하는 공간이 아녀. 투기 수단이자 남에게 보여서 우월함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 전락했지. 수많은 거대 건설 회사(라 쓰고, 조폭이라 읽지)들과 국가의 협잡이랄까. 같은 말의 다른 판본. ‘내 집 마련’이라는 환상을 심고, 소유욕을 살살 긁어 사람들의 거짓 욕망을 부추기는 패악적 집단. 꽐라~

솔직히 대부업체나 건설업체나 무엇이 그리 달라? 안 그래? 잠깐 몇 년 전 에피소드 하나 말하자면, 톱스타의 아파트 광고 등장이 미치는 해악 때문에 숱한 지식인들과 활동가들이 연예인에게 아파트 광고에 응하지 말 것을 강력 권유하는 편지를 보냈지.

대부분 연예인이 콧방귀만 끼고, ‘뉘들이 뭔 참견?’하고 썩소를 날릴 때, 여신 송혜교는 이런 답변을 건넸대. “이미 언론 보도를 통해 집값의 문제점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편지 내용에 공감했다. 편지를 받은 뒤 아파트 광고 재계약 기간이 돌아왔지만 재계약을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아파트 광고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송혜교 짱. 아, 미안 말이 샜는데, 내 친구 얘기로 다시 돌아갈게. 여튼 사우스 마운틴은 우리가 아는 건설회사의 이미지와는 딴판이야. 아직도 개발과 성장의 환상에 사로잡힌 여느 건설회사, 아니 다른 모든 회사들과 다른 이 회사는 막 이래.

들어 봐. 회사의 점핑(성장)에 큰 분기점이 될 만한 일감이 들어왔는데도, 자연을 훼손할 것이 뻔한 일감을 과감히 뿌리쳤다지. 물론 CEO 혼자가 아닌 모든 구성원들의 가치 결합된 결론이었어! 무한 성장이라는 신화(로 포장된 패악)를 거부하고, 암세포의 성장 속도와 절연하며, 달팽이의 속도로 가면서 자신들의 가치를 지킬 것을 천명하는 이 친구. 끝없는 자기 팽창과 자기 증식을 꾀하는 자본에 대한 저항하는 회사. 아, 이런 건설 회사도 있네!


“회사란 무릇 돈을 벌고 바쁘게 일하며 거래를 하고 서비스를 주고받는 곳, 그리고 결국은 빠져나오는 곳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회사는 회사인 동시에 공동체이다. (중략) 우리는 세대를 거쳐 지속되는 기업 공동체가 가능할 것인지 고민하며 회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현재 그렇게 하고 있다고 믿는다.” (p.15)  

가슴이 뭉클뭉클. 이 친구, 날 생각하게 만들더라. 사회 안에서 영업활동을 영위하는 기업은 어떠해야 하는가. 나는 어떤 회사에 일하고 싶은가. 기업의 부는 온전히 자신만의 것인가. 그 부는 저 잘나서 얻은 것인가. 내가 그 이윤추구에 쌍심지를 켠, 무한 성장한답시고 직원의 마음을 할퀴기만 하는 기업을 나온 것에는 아마 이 친구의 영향도 있어.

그리고 나는 꿈을 꾸게 됐지. 가치관이 비슷하고 그에 부합하게 삶으로 아무도 부자가 되지 못했지만 일을 즐기며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회사. 사우스 마운틴의 공동창업자, 존 에이브램스는 이리 말했어. “‘어느 누구’도 부자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적절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아, 나도 그런 구조 속에서 있고 싶어. 어느 누구도 부자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가 적절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불편하고 억압적인 자본의 구속으로부터 탈피하는 구조. 월요일 출근이 부담스럽지 않고, 사람이 좋고, 더불어 일하는 게 즐거운 그런 회사. 아, 이런 회사, 이런 친구가 있다니. 좋다! 우리, 함께 꿈꾸면서 길을 걸어가지 않겠니?


아, 하하. 내 얘기가 괜히 길지 않았니? 좋아, 마무리할게. F4, 그리고 한 명 더한 이 다섯 친구들, 공통점이 하나 있단다. 뭐 공통점이 별달리 없을 것 같지만 딱 하나. 감 오지? 맞아, 다른 삶도 있다! 하나의 획일화된 삶이 아닌 다른 삶을 꿈꿀 수 있으며, 충분히 다른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다른 삶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그렇게 길을 걸어가는 것. 그것이 이 엄혹하고 횡포한 이 지옥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 내게 다른 삶을 알려준 이 고마운 친구들, 고마워. 꾸벅.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내집 마련’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권한다. 중요한 것은 내집이 아니라, 내 작업실이다! 김갑수의 희희낙락 작업실 예찬은 ‘먹고사니즘’에 사로잡힌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내가 왜 이러고 살지?’ 책은 대놓고 다르게 살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읽다보면 안다. 지금 지배세력이 주입한 가치가 얼마나 허구에 가까운 것인지. 책을 덮고는 나지막하게 읊조릴 것이다. ‘아, 나도 작업실 하나 갖고 싶다.’

- 준수 100자평 -

[내 좋은 친구들, ‘F4’와 인사하실래요?] ④ 교양을 만나다
[내 좋은 친구들, ‘F4’와 인사하실래요?] ③ 넌 이렇게 좋은 친구 있니?
[내 좋은 친구들, ‘F4’와 인사하실래요?] ② 불순함을 옹호하고 개인을 우위에 놓다
[내 좋은 친구들, ‘F4’와 인사하실래요?] ① 인트로

  
너에게 작업실을 권한다, 《지구 위의 작업실》

어쩌다보니 한 십여 년, 남의 똥꼬 열심히 핥고 빨았지. 뭐, 모르고 한 짓은 아니지만, 그게 그래. 과장하자면, 똥꼬에서 튀어나오곤 하는 시커먼 물질에 길들여진 거지. 월급이라는 이름의 마약에 나는 차츰 널브러졌어. 과감한 포기가 진짜 더 큰 행운을 준다고 믿고 싶으면서도, 노예의 편안에 그냥 젖어버려.

그렇게 젖어서 살다보면, 다른 철학이 있을 수가 없지. ‘먹고살아야지’하는 핑계에 갈수록 더 익숙해져. 악행의 자서전에 한 줄 한 줄  더 보태게 되지만, 스스로 면죄부를 부여해버리고 말더라고. 꿈은 저 어디 하수구에 처박힌 채,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더 이상 고민하길 멈추게 됐더라고. 오 마이 갓~


그런 때, 나는 가까스로 뛰쳐나왔어. 온전히 나를 위한 가시밭길을 거닐던 즈음, ‘줄라이홀’을 만났어. 그래, 바로 이 친구, 《지구 위의 작업실》. 십여 년 축적된 싸구려 관성 때문에 불안이 남아있었지만, 이 친구는 그런 내게 ‘선빵’을 날려. 훅~


“무언가가 될 수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어떤 위치로 올라가거나 무엇을 획득할 수 있었다면 그 역시 그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음악을 들어야 했다. 음악에 포개어진 삶은 무엇이 되거나 무엇을 획득하거나 무엇에 올라서는 것을 언제나 가로막았다. 팔자려니 해야 했다. 그러나 깨달았다. 하루하루 음악을 듣는 일이 삶이 되면 되는 거잖아! 먹고사는 일이며 모든 관계를 도구나 방편으로 삼으면 되잖아! 그 무엇의 잣대를 ‘이쪽’이 아니라 ‘저쪽’ 세계의 것으로 바꾸면 되는 것을. 나는 아무 것도 못된 것이 아니었다. 못 획득한 것도 아니었고, 못 올라선 것도 아니었다. 나는 음악을 듣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조건들을 많이 가졌다. 뒤늦은 깨달음이다.”
(p.196)

빙고! 말하자면, 이거지. ‘지구촌 불안동지들처럼 남의 똥꼬 빨아대지 않아도 저렇게 살아도 되겠구나.’ 삶에는 다양한 길과 방식이 있다는 것 아니겠어? 누가 길이 하나래? 그건 위정자들의 술수지. 불안과 공포를 주입해 통치를 쉽게 하려는 후진 방식에 끌려 다닐 필욘 없잖아? 꽐라~


난 그렇게 나만의 작업실을 꿈꿔. 헛발질이 될지도 모르지만,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날을 만들고 있어. 그러면서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누군가가 생계 걱정 없이 먹고 살 수 있는 그런 꿈을 꾸고 있지. 아마 어떤 지구촌 불안동지는 그런 날 몽상가라고 치부해 버릴지 몰라도, 아 그럼 어때. 프랑수아즈 사강도 그랬잖아.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나는 커피를 택한 내가 자랑스러워. 커피스토리텔러. 멋지잖아? 나도 아무 것도 못된 것이 아냐. 나는 커피를 만드는 사람이고 커피를 음미할 줄 아는 사람이 된 거야. 커피는 멋으로 맛을 만드는 일이고말고, 암. ‘잘 비워낸 한 생애가 천천히 식어가는 동안’ 나도 줄라이홀을 꿈꾸련다. 그것이 자기파괴적 욕망이라 할지라도. 간절하게, 두려움 없이.

[다음에 계속]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김규항은 직설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인식하고, 글 또한 그에 입각한다. 모든 것은 좌파적 일관성에서 비롯된다. 한국 사회가 지닌 레드 콤플렉스는 좌파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오도하기 일쑤다. 이 책은, 한 마디로 상식이자 교양이다. 얼마나 이 사회가 몰상식했는지, 몰염치했는지 보여주는 리트머스다. 이 책을 읽고 자신의 교양을 성찰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유죄!

- 준수 100자평 -
교양을 만나다, 《B급 좌파》

여기 또 하나의 불온. <씨네21>에 연재했던 김규항의 칼럼은 이랬어. 세상의 똥꼬 깊숙한 곳에 똥침을 날리는 글빨에 시원통쾌한 청량감을 느꼈고, 무엇보다 내 민무늬 정신에 통찰과 사유를 자극했었지.

직장생활을 하던 그때. 나는 하루살이였어. 뭐 제대로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하루하루 일에 쫓기고 마감하는 틈 사이로는 술에 쩔어 지내는 여느 직장인이었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증발시킨 채, 나는 그저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긴 아메바와 같았다고. 이봐, 여기 한 잔 더, 꽐라~


그렇게 지내다가 그 칼럼을 묶은 《B급 좌파》를 만났어. 오오, 이 책, 놀라워라. 거기엔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 교양이 있었어. 당시는 알다시피, IMF를 관통하며, 더욱 강화된 돈지랄과 무교양이 판을 치던 때였지. ‘대박’이 일상어가 되고, “부자 되세요”라는 천박한 인사말이 미덕처럼 퍼진 시대.

그런 시대에 김규항은 혹독하고 삐딱하게 세상의 무교양을 꼬집고 있었지. 아, 나는 이 친구를 만나고서야 그때야 다시 반성을 하게 됐어. 나도 모르게 교양 없음에 편입돼 있었구나, 싶은 깨달음.


그 친구는, 말하고 있었어.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혹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회·문화적 인물․현상들에 대해 우리가 자체 증발시켰던 교양을. 지극히 상식적이고 어릴 때 교과서를 통해, 어른들을 통해 들었던 이야기였어! 시대가 그걸 박제시켰을 뿐. ‘틀린’ 구석이라곤 없는 지극히 상식적인 교양.

근대화를 스스로의 힘으로 겪지 않고, 남의 손에 이끌려 질질 끌려온 원죄 때문이었을까. 분별없는 열정이 만들어놓은 세상에, 내 친구는 교양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었지. 뇌에 주름을 새기게 만든, 그래서 너에게 《B급 좌파》를 권한다.

“아마도 교양이란 ‘사회적인 분별력’일 것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그 뜻과 관계를 파악하는 능력(반드시 자기 힘으로가 아니어도), 그게 교양이다. 그걸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교양 있는 사람’이다. 교양은 근대적인 사회에 주어지는 축복이면서 더욱 근대적인 사회를 지향한다. 말하자면 교양은 그지없는 진보다.” (pp.62~63)

물론, 나는 아직 ‘교양’을 쌓기 위해 김규항을 읽고, 만나. 그것을 ‘좌파’라는 말로 굳이 연결할 필요는 없어. 다시 말하지만, 그건 상식이고, 교양이니까. 한편으로 그의 정체성인 좌파가 얼마나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인지, 김규항을 통해 절감하고 있어. 오랫동안 우경화 혹은 우파 일색이다 보니, 이곳은 너무 침침해졌어. 교양도 없어지고 상식도 증발하고 원칙마저 휘발된 이상한 나라. 그런 의미에서, 김규항은 교양의 회복! 《B급 좌파》의 형제 격인 《나는 왜 불온한가》(김규항, 돌베개, 2005)를 만나도 좋겠지. 이것 역시 직설이야.

이 친구가 좋아한다는 루쉰(노신)의 말은, “지금 우리에게 희망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할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지. 네가, 당신이, 그대가 함께 길을 그렇게 걸어갔으면 좋겠어.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아, 묻고 싶은 게 있어. 넌 교양을 어떻게 만나고 있니?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시인·문화평론가 조병준이 인도 콜카타의 마더하우스에 자원봉사를 하러 갔다. 그곳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사랑과 우정, 나눔을 마음 한 가득 담은 그 친구들, 예사롭지 않다. 그들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자신과 타인의 삶을 응시하고 성찰하며 마음을 나누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 : 오후 4시의 평화,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 : 나는 천사를 믿지 않지만》  두 권으로 나뉜 책이었으나, 2005년  두 권의 합본으로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 : 오후 4시의 천사들개정판이 나왔다.)

[내 좋은 친구들, ‘F4’와 인사하실래요?] ② 불순함을 옹호하고 개인을 우위에 놓다
[내 좋은 친구들, ‘F4’와 인사하실래요?] ① 인트로


넌 이렇게 좋은 친구 있니?,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

친구. 사실 이 말, ‘사랑’처럼 참 두려운 말이야. 지금 세상에선 너무 오염돼 있어서. 불순함과는 또 다른. 간혹 고민될 때가 있어. 누군가를 들먹일 때, 친구라고 할지, 그저 아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그런데, 여기 조병준이 소개하는 친구들 만나고선, 나는 한 없이 부러웠어.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상관없어. 져도 노 쁘라블럼. 내게도 이런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불어 넣어준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

난 그랬어. 그냥 함께 교실에서 수업 듣고, 술이나 함께 마시면 친구겠거니. 뭐, 딱히 다른 생각도 없었어. 세계관이나 가치관이 달라도 물론 친구가 될 수 있기도 하지만, 딱히 친구가 어떠해야 한다는 생각은 않았지. 뭐 친구 대신 죽을 수 있냐는 따위의 어이없는 질문은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그런 질문, 우웩~ 둘 사이의 우정을 강조한답시고 하는 말이 고작 그런 것이라면, 나는 사양하겠어. 꽐라~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 이 친구는 말이지. 인도의 콜카타(캘거타)에 자리한, 마더 테레사가 주축이 돼 만들었다는 ‘죽어가는 빈자들을 위한 집’에서 만난 친구들을 소개하고 있어. 수많은 환자가 있고 그곳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수많은 천사들의 이야기야. 갑자기 천사라니까, 손발이 오그라들어? 하하. 음, 아마 너도 이 친구가 마치 옆에서 듣는 것처럼 조곤조곤, 아기자기하게 자신의 친구들에 대해 속살거리는 것을 듣는다면, 아마 그들을 천사라고 부르고 싶어질걸? 모하메드 할아버지, 로르, 안또니오 등 현지에서 만난 친구들과 그들의 생활을 소개한 글은 정말 그래. 사랑스러워~

아마, 그것은 우연이면서 또한 운명일거야. 그런 소중한 인연을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면, 그것 또한 죄악이 될 터. 이런 좋은 친구들이, 천사 같은 이들이 있어서 이 세상은 덜 슬플 수 있다는 안도감 같은 것도 들어. 그것이 우리가 아직 이 엄혹한 세상을 버티고 견뎌야 하는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어. 무엇보다 한껏 기분이 부풀어 오르는 건, 친구를 소개하는 사람의 감정이 행간을 통해 콕콕 들어박히기 때문이야.

난 그랬어. 이 이야기를 통해 친구,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되돌아보게 됐지. 무엇보다 나 자신은 어떤 사람이었나, 어떤 친구였나,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도 됐어. 음, 나만 이 좋은 이야기를 품고 살기에는 아쉬워서 너에게 이렇게 얘기하는 거고. 우리는 여전히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고 있지만, 가끔은 붕대가 필요하잖아. 아마, 이 글은 내게 그랬듯, 네게도 붕대가 되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상처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짐승투성이 세상이니까요. 그 상처를 달래달라고, 아니면 달래주겠다고 손 내밀었다가 더 큰 상처를 입는 일이 흔한 인생입니다. 인간은 천사가 되지 못합니다. 잘해야 인간이고 못하면 짐승이지요. 그런데 짐승이면서 인간이고, 어쩐 일인지 동시에 천사의 얼굴까지 보여주는 사람들이 가끔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세상은 살 만 한 것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아마 내가 이 친구를 만났을 때는, 주변의 누군가를 잃고 헤맸을 때였어. 상실감에 외줄타기 하듯, 흔들리던 그때. 나는 조병준을 통해, 조병준의 친구를 통해 나는 조금씩 살아날 수 있었어. 이 친구 덕분에 난 인도 땅을 밟기도 했으니까. 물론 콜카타를 가진 못했지만, 나는 인도에서 큰 위안을 얻었고, 또 다른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지.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고, 다른 것을 인정해줄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었던 게지. 친구야, 너에게도 그래서 이 이야기를 권하고 싶은 거란다. 어때? 넌 이런 친구들이 있니?

“헤이, 준 그건 아주 간단해. 이 일을 하면 우선 내가 행복하거든. 그리고 내가 조금 도움을 주는 저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도 아마 조금은 행복할거야. 그러면, 저 위에서 세상을 보고 계시는 그분께서도 행복해 하시지 않겠어?”


(부록. 그리고, 내가 만났던 '조병준' 이야기)
올해의 인물, '조병준'... 고맙습니다
조병준 그리고 임종진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단일민족의 허구 혹은 신화가 깨진 것은 최근이었다. 그전까지는 순수(결)함은 자랑이요, 대세였다. 파리에 체류했던 저널리스트 고종석이 일찌감치 그 허구의 위험성과 관용의 필요함을 간파하고, 그 불온함을 전파한 책. 논리 정연한 글은 편지글 형식을 띠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다만 한 가지, 궁금하다. 과연 파리가 아니었다면, 그 생각, 그 논리, 가능했을까.
- 준수 100자평 -


[내 좋은 친구들, ‘F4’와 인사하실래요?] ① 인트로

불순함을 옹호하고 개인을 우위에 놓다, 《고종석의 유럽통신》

그건 구원이었어. 군대라는, 인분을 떠먹게 만드는 만행을 저질렀던 것은 아니지만, 폭압과 계급질서가 일상화된 감옥에서 만난. 으, 지옥에서 보낸 한철. 좀 과장하자면, ‘유럽통신’이라는 제목이 아녔다면, 군 간부들이 고종석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었다면, 불온서적으로 주홍글씨를 새기고, 날 영창으로 넣지 않았을까 싶은 이 친구, 《고종석의 유럽통신》.

어쨌든 그 엿 같았던 ‘짬밥’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효되면서 책을 읽는데도 약간의 숨통이 트이자, 구원처럼 다가왔던 것이 고종석! 당시 격월간 무료잡지로 발간되던 <지성과 패기>의 한 꼭지로 연재되던 ‘고종석의 유럽통신’. 그 감옥 같은 곳에서 나는, 그 글을 통해 유체이탈을 꾀했지. 막막한 군 생활에 숨통을 틔워준 산소호흡기 같았다고나 할까.

당시 프리랜스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파리에 체류하면서 여러 지인들에게 띄운 편지글을, 내게 보낸 글이 아닐까 착각(!)하면서, 내가 몰랐던 어떤 세상을 읽고 흡수했지. 그러니까, 그 친구를 통해 세상을 보고 읽었고, 배운 게지. 유럽을 배회하면서 건넨 비판적 세상읽기가 송두리째 날 흔들었어. 당시만 해도, 순수는 무조건 좋은 것! 개인보다 조직을 늘 우선! 이라는 것이 나를 감싼 가치관이었으니까. 제도권 교육의 폐해, 맞지? 꽐라~

그러나 내 친구는, 고종석은 말했지. 천만에. 순수는 광기, 조직의 논리는 폭력. 물론 그것이 다는 아녔지만, 당시 군대에 갇혀있던 나로선 정신의 탈주를 꾀할 수 있었어. 숨통이 트인 게지. 나는 조직의 구성원이 아닌, 독립적인 개체로서 인류의 한 구성원이라는 것. 개인주의라면 치를 떨만한 군대에서 만난 청량감. “세계시민주의로서의 개인주의는 불순함에 대한 사랑이고, 관용에 대한 경배입니다.”

나는 새로운 시선과 세상을 만났지. 어쩌면 지금의 나를 일정부분 형성하게 만든 이야기. “종교적인 것이든 정치적인 것이든 모든 교조주의, 근본주의의 심리적 뿌리는 순수(결)성에 대한 욕망입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순수(결)함이냐 불순함이냐의 문제가 될 수도 있겠는데, 저는 말할 나위 없이 불순함의 편입니다. 순수함에 대한 열정, 순결함에 대한 광기는 결국 불순함에 대한 증오, 요컨대 타인에 대한 증오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역사상 그 순수함에 대한 집착이 가져온 가공할 재해를 수없이 목격했습니다.”

그 불온함이 열어준 세상 덕분에, 나는 기존의 주류 가치가 심어놓은 감옥에서 탈피할 수 있었어. 알다시피, 불온함이란 그런 거잖아. 지배세력과 기성세대가 해석 불가능한, 자신들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것들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가리키는 것.

21세기에도 여전히 야만이 지배한다는 건, 이미 증명된 사실이지. (방송가에서) 퇴출시키고, (이 땅에서) 강제출국 시키고,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면서 갈 곳을 묻는 당신에게 국가가 폭력으로 대답하는 세상’이잖아. 결국 순수(결)에 대한, 조직의 논리를 우선시하는 욕망이 만들어놓은 지옥도.

그러니까, 이 후지고, 비겁한 세상에서 나는 아직도 내 친구가 알려준 가치를 마음 깊이 품고 있어. 이미 속물이 돼 버렸지만, 그것이 자연스럽지만, 그래도 세상의 주류가치에 미욱하나마 저항하고자 하는 내 불온함의 원천 중 하나. 책을 구하기 힘들다고? 그렇다면 그저 ‘고종석’을 읽어도 좋겠다. 그 불온함은 《자유의 무늬》《서얼단상》 등에서도 묻어나거든. 어때? 내 친구, 괜찮지?

[다음 시간에 계속]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어쩌다, 운 좋게도, 공저자로 '꼽사리'를 꼈던 《100인의 책마을》.
책은 지난해 가을경 태어났으나, 그 속에 담긴 나는, 2년 전의 나이다.

물론, 지금의 나는 그때와 또 다르다.
 편협하고 옹졸한 것은 여전하지만, 나는 달라졌다.
옳고 그름이나, 좋고 싫음(혹은 나쁨)과는 상관 없이.

책에 텍스트로 찍히기 전의 판본이다.
그러니, 정제되지 않은, 인터넷에서 좀 더 자유로이 쓸 수 있는 말도 있다.

올해, 나는 어떻게 달라지고, 변할 것인가. 그것이 궁금하다.
다만 그때나 지금 달라지지 않은 건, 이 엄한 세상, 버티고 견뎌야 한다는 것.
지키기로 마음 먹은 것을 큰 어긋남 없이 지켜나가고 싶은 마음.
그 마음 지키기가 가능하길.



[저자 소개] 준수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만든 커피 한 잔에 미소 짓고,

공공성과 편협한 취향들이 공존하는 커피하우스의 일부가 될 날을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고,

커피라는 콘텐츠로 이야기 만들기를 좋아하고,

아름답고 섹시한 여성의 고혹적인 자태를 좋아하고,

야구장에서 미친놈처럼 자이언츠 응원하는 것을 좋아하고,

몇 점의 구름이 그려진 청명한 하늘과 마주하는 것을 좋아하고,

비 오는 날,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마음까지 함께 두드리면 좋아하고,

식물이 우거진 길을 거닐면 좋아하고,

편협하고 편파적인 취향을 가진 사람과 글을 좋아하고,

좋은 재료로 만든 정성이 깃든 요리를 좋아하고,

존경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다만, 사람을 믿지 않는다기보다 사람의 가변성을 믿으며,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상냥하길 원하지 않는 사람.

소원 중의 하나는, 나이테처럼 멋진 주름을 가진 노장이 되는 것.

사랑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랑지상주의자에 가까운 사람.


내 좋은 친구들, ‘F4’와 인사하실래요? 

자, 책에 얽힌 내 이야기 한 번 들어볼래? 여기, 한 청년의 민무늬 정신에 주름을 보탠 ‘F4’가 있어. 청춘 시절이 대개 그렇잖아. 방향을 몰라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는 것. 아니 방향 자체를 상정하지 않았는지도 모르지. 그렇게 헐떡거리다가 우연히 맞닥뜨린, 어떤 한 순간에서 그 이후가 비롯되고야 마는. 모든 만남이 우연이듯, 책도 마찬가지야. 우연이 켜켜이 쌓여 인연이 되고, 그 인연으로 삶이 송두리째 바뀌고... 꽐라!~

아, 잡설 닥치라고. 좋아. 바로 그 F4를 알려주지. 《고종석의 유럽통신》(고종석 지음/문학동네 펴냄, 1995)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 : 오후 4시의 평화》(조병준 지음/그린비 펴냄, 1998) 《B급 좌파》(김규항 지음/야간비행 펴냄, 2002) 《지구 위의 작업실》(김갑수 지음/푸른숲 펴냄, 2009). 그건, 곧 고종석이고, 조병준이며, 김규항인 한편 김갑수인. 책(글)과 사람이 다를 수도 있다고? 아,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내겐 그들이 지금 여기까지 내 인생의 F4라는 건 달라지지 않아.

F4가 꺼내놓은 지도. 그건 아직 청춘을 관통하는 내게, 방황과 방랑이 추적추적 대는 내 삶에 어떤 이정표를 제시해줬어. 군대 시절에 읽었던 《고종석의 유럽통신》, 사회로 본격 나가기 전에 만난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 : 오후 4시의 평화》, 직장 생활 중 접했던 《B급 좌파》, 직장을 탈출하고 새 삶을 꾸릴 때 읽었던 《지구 위의 작업실》.

삶의 어떤 변곡점에서 만났던 F4, 그러니까 그들은 내 좋은 친구들. 그들은 내 젊음의 한때를 함께 했고, 위태하던 내 민무늬 정신에 위안과 방향을 제시해줬어. 어쩌면 나는 이들에 의지한 것이 아니었을까도 싶어. 살아온 날보다 많이 남은 살아갈 날에도, 믿고 기댈 수 있는 친구이기도 하고.

사실 내 생각과 행동, 사고체계와 인식이 어디까지 고유한 내 것이고, 어디부터 주입되고 흉내 낸 것인지 구분할 수가 없어. 너도 마찬가지겠지? 그래도 일정 부분, 구획 지을 순 없지만, 이 친구들의 영향이 지대했을 것은 분명해. 지분이 얼마나 되냐고? 흥, 지분 따위 따지는 건, 경영권 다툼을 하거나 경제적 가치만을 최우선으로 치는 곳에서 하는 거라고! 꽐라~

물론, 지금 다시 보면, 그때와 다른 울림을 안겨다주기도 하지. 세월이 마냥 그때와 똑같은 시야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니까. 나도 다른 무게의 세월을 관통하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그들이 안겨다 준 주름, 청춘의 변곡점을 기억해. 그것은 살아가는 동안, 평생 따라붙을 지도니까. 그들을 통해 나는 다시 새로운 지도를 그리고, 발걸음을 옮기지 않을까. 그래. 내 친구들 좀 더 자세히 소개해 줄게. 자~자, 인사해. 안녕, 준수의 친구들.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