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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아니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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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처음 만난 한강은, 손을 강하게 힘을 주면 '쨍'하고 깨질 것 같은 컵 같다고 생각했다. 혹은 발에 무게를 실으면 쩍 갈라지는 강에 낀 얼음. 《희랍어 시간》이 그랬다. 위태로운 듯 섬세하고, 여린 듯 강했다. 아울러, 뭔가 진한 여운을 남겼다. 이전 작품, 《바람이 분다, 가라》, 《채식주의자》 등에 대한 언급이나, 영화로 만들어진 <채식주의자>의 평을 본 적은 있으나 첫 만남은 이번 《희랍어 시간》이 됐다.

두 세계의 만남은 안개 낀 산책길을 걷는 느낌이다. 한치앞을 보기 힘드나, 걸어가다 보면 호수의 냄새에 천천히 젖고, 호수와 길이 맞물리는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는 경험. 그리고 좀 더 호수를 둘러싼 세계의 본질에 더듬이를 세울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 두 세계는 촘촘하지 않다. 그래서 독자는 그 세계를 채우는 수고를 해야 한다. 세계의 확장이다. 

사랑은 안다고 떠벌리는 건, 오만이다. 사랑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을 감추고자 그런 말을 하는 것이리라. 《희랍어 시간》은 사랑의 아주 작은 부분이다. 한강 작가는 이 소설을 쓰면서 투명하고 연한 부분을 발견했다고 한다. 사랑의 투명하고 연한 부분, 무엇이 그럴까 생각했다. 사랑은 여전히 호기심 천국이다.

지난달 1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과 맞물렸던 그날,
한강이라는 세계를 처음으로 만났던 기록.



“소설을 쓰고 사랑의 투명하고 연한 부분을 발견했다”
『희랍어 시간』 한강


한 세계가 으스러졌다. 그 세계, 견고했고, 철옹성에 가까웠다. 베일에 가린 세계였다. 어떤 세계에 그 세계는 주적이었다. 건강을 잃어가고 있던 남자, 김정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난달 19일이었다.

한 세계가 접힌 그날. 『희랍어 시간』이었다. 말을 잃어가는 여자와 눈을 잃어가는 남자가 만났던 시간. 한 교실 안에 있었지만, 완전히 다른 세계에 속해있던 그들이었다. 극히 보기 드문 희랍어가 등장했고, 이탤릭체가 중간중간 나왔다. 그 시간은 두 사람을 오갔다. 편지가 나오는가 하면 3인칭으로 전개되기도 한다.

한강 작가의 신작, 『희랍어 시간』이 서울 서교동 산울림소극장에서 독자들과 만났다. 한강 작가의 낭독으로 문이 열린다. 남자와 여자가 관계를 맺는 희랍어 수업의 공간을 묘사한 부분이다. 

“여자는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은다. 이마를 찡그리며 흑판을 올려다본다. 자, 읽어봐요, 알이 두꺼운 은테안경을 낀 남자가 미소를 머금고 말한다. 여자는 입술을 달싹인다. 혀끝으로 아랫입술을 축인다. (…) 짧은 희랍어 문장을 빠르게 흑판에 쓴다. 악센트들을 채 찍기 전에 백묵이 두동강나며 떨어진다.”(pp.9~11)

낭독이 잦아든 뒤, 출판사 관계자의 사회로 한강 작가와 이야기를 나눴다. 근황부터 시작한 이야기는 희랍어, 소설, 사랑, 세계 등을 종횡무진하며 전개됐다. 

한강, 『희랍어 시간』을 말하다

근황은 어떤가?

책이 나온 지 40여일이다. 책 표지가 예쁘게 나와서, 상상보다 훨씬 더 예쁘게 나와서 기뻐하고 있었다. 책과 관련해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자리가 계속 있었고, 오늘 이 자리가 『희랍어 시간』과 관련한 마지막 자리가 될 것 같다.

희랍어 공부는 좀 했나?

공부를 하려고 마음먹었었다. 소설에 나온 것 같은 시민아카데미의 강좌가 있어서, 실제 알아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시점에선 교실 분위기나 전체적인 느낌을 가진 상태여서, 그것과 같을 순 없어서 굳이 가지 않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교재만 3개 사놓고 희랍어 공부를 하고 있다고 상상하면서 계속 들여다봤다. 막힐 때는 동영상 강의도 보고. 결과적으론 익히지 못했다.

희랍어뿐 아니라 그리스철학 이야기도 많다. 남자주인공은 혹시 모델이 있지 않았나?

모델은 없다. 플라톤철학 강의는 대학원에서 들었다. 공부는 나름 했는데, 공부 한 것을 다 쓰진 않고, 쓰고 나선 잊어버리려고 노력했다.


한 작가의 낭독. 남자가 하는 말(글)과 여자에 대한 이야기.

“그 목소리. 겨울밤 창문 틈을 할퀴며 들어오는 바람소리. 실톱이 쇠 위에서 소리치고 유리창이 갈라지는 소리. 당신의 목소리. (…) 당신의 심장은 규칙적으로 뛰고, 타오르며 글썽이던 두 눈은 눈꺼풀 아래에서 흔들리겠지요. 완전한 어둠 속으로 내가 걸어들어갈 때, 이 끈질긴 고통 없이 당신을 기억해도 괜찮겠습니까?”(pp.48~49)

“보고 싶은 란아. 고집불통, 기차화통 란아. 내가, 눈이 완전히 먼다 해도 지혜를 얻지 못할 사람이라는 걸 너는 알지. 마음의 눈 따위가 결코 떠지지 않을 사람이라는 걸. (…) 안경을 닦아 쓰고, 두 눈을 부릅뜨고 그 짧은 파란 빛에 얼굴을 담글 테니까. 믿을 수 있겠니. 그 생각만으로 나는 가슴이 떨려.”(pp.83~84)

“넌 나에게 말했지. 병실의 벤젠 냄새 속에서 성장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아름다움은 오직 강렬한 것, 생생한 힘이어야 한다고. 삶이란 게, 결코 견디는 일이 되어선 안 된다고. (…) 네 몸은 가끔 나를 기억했니. 내 몸은 지금 이 순간 네 몸을 기억해. 그 짧고 고통스러웠던 포옹을. 떨리던 네 손과 따스한 얼굴을. 눈에 고인 눈물을.”(pp.122~125)

“오랫동안 말을 잃은 상태를 그녀의 육체는 예민하게 드러낸다. 그녀의 몸은 실제보다 단단하거나 무거워 보인다. (…) 침묵의 얼음 속에서 그녀가 온 힘을 다해 건져내 들여다보는 것은 이주에 하룻밤 함께 지내는 것이 허락된 아이의 얼굴과, 연필을 쥐고 꾹꾹 눌러쓰는 죽은 희랍단어들 뿐이다.”(pp.58~59)

아무 것도 판단하지 않는다.
감정을 부여하지 않는다.
(…)
곁에 누운 아이는 없다. 싸늘한 침대 가장자리에 꼼짝 않고 누워, 수차례 꿈을 일으켜 그녀는 아이의 따뜻한 눈꺼풀에 입맞춘다.”(pp.102~103)

소설에 대해 구상하고 착상한 계기가 있다면?

표지의 손글씨를 써주신, 희랍철학을 공부한 선생님이 계신다. 작가의 말에도 밝혔는데, 문학과지성사 주간이 되셨을 때, 지나는 길에 들러서 인사드렸다. 철학 공부를 했다고 하시기에 고대 희랍어를 공부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꼭 배우라고 하시더라. 고대 희랍어가 뭔지 물어봤다. 희랍어는 정교하고 복잡하고 함축적인 문법 체계를 가지고 있었던 언어다. 매우 어렵고, 몇 가지 예를 들어 용법을 말해주셨다. 8년 정도 전인데, 그때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모든 것이 다 외우는 거라서 포기했다. 독일어는 격이 어렵고, 프랑스어는 시제가 어렵다는데, 그 두 개를 합한 것보다 어렵다. (웃음) 언젠가 언어에 대한 소설은 아니라도, 언어에 대한 글을 쓸 때 이런 매력적인 언어에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규칙이 까다로운 언어를 그녀는 접해보지 못했다. 동사들은 주어의 격과 성과 수에 따라, 여러 단계를 가진 시제에 따라, 세 가지 태에 따라 일일이 형태를 바꾼다.… 얼음 기둥처럼 차갑고 단단한 언어. 다른 어떤 언어와도 결합되어 구사되기를 기다리지 않는, 극도로 자족적인 언어. 돌이킬 수 없이 인과와 태도를 결정한 뒤에야 마침내 입술을 뗄 수 있는 언어.”(pp.20~21)

그리고 『바람이 분다, 가라』를 쓸 때, 1년 정도 슬럼프가 있었다. 언어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뭔가 어려운 일이 있거나 고민이 되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질문이 있을 때마다 그걸 뚫고 나가게 해 준 건 글쓰기였다. 글을 써보자 해서 오래전 생각했던 희랍어, 말을 잃은 사람, 시력을 잃은 남자, 안 보이는 곳에서 또렷해지는 목소리, 언어 등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는 보이는 세계를 계속 잃어가는 존재라서 그렇게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슬럼프 기간에 150매 정도를 썼다. 그게 너무 짧았다. 지금 분량은 600매 가량인데, 그때는 많은 조각으로 이뤄지지 않았고, 몇 개 중요한 조각만 있었다. 연재하면서 분량이 늘어 620~630매였는데, 책으로 출간하면서 좀 줄였다.

소설은 언제 어디서 쓰나?

학교에선 학생들 작품만 읽고, 책 읽는 정도만 한다. 보통은 집에서 쓴다. 밤과 새벽에 쓴다. 나도 인터넷 귀신을 피해서, 지난 3월에 작업실을 구했는데, 잘못 구했다. 위에 태권도 학원이 있다. (웃음)

작업실을 얻은 시점은 오전이었는데, 시끄러워봤자 애들이 기합 넣는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애들이 다 이단옆차기를 하더라. 형광등이 파르르 떨고. (웃음) 그래서 오전에만 가서 쓰고, 밤과 새벽에는 집에서 쓴다. 감정 기복도 심하고 잘 써질 때는 몰아서 쓰는 성격이라,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못한다. 어쩔 땐 밤도 새고.

『바람이 분다, 가라』가 격렬하고 휘몰아치는 소설이라면, 이번 소설은 정적이고 평온하고 차분한 느낌이다. 편지형식으로 쓴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 

여자는 말을 못하니, 1인칭이 될 수 없는 존재고. 남자는 시력을 잃어 가는데, 말을 걸고 싶어 한다. 그 대상이 만날 수 없는 사람이거나, 말은 걸 수 있지만 깊은 이야길 할 수 없는 여동생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절절한 속마음을 절제해서 말하려는 것이 남자의 상황이다.

일기도 중간에 들어가는데, 이 남자의 이야기는 조각조각으로 편지로 가고 싶었다. 여자는 반대로 차가운 3인칭으로 가다가 마지막에 말을 되찾는 순간, 1인칭으로 딱 한 번 나온다. 처음부터 그리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소설을 쓰다보면 생각도 있지만, 직관도 중요한 요소도 차지한다. 처음 쓸 때는 처음 낭독한 부분을 쓰고 나서 여자에게 쓴 남자의 편지를 썼다. 그때 지금 소설의 윤곽을 잡았다. 그러니 왜 그랬다고 얘기하긴 어렵다. (웃음)

여인도 목공일을 하고 남자가 나무토막으로 맞는다. 여인이 분노를 터트리고. 두 사람 사이의 사건 등에 대해 말해 달라.

이 남자는 계속 후회하는 사람이다. 시력을 잃어가는 마흔 살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자신이 알게 모르게 저지른 잘못을 참회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이 남자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처음으로 사랑했던 여자다. 그 여자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상처를 주려한 것이 아니다. 정말 사랑해서 맹목적인 어리석음으로 실수한 건데, 그걸 돌이킬 수 없게 상처를 줘서 용서를 빌고 싶은 거다.

요아힘에게 보낸 편지에 대해서도 말해준다면?

요아힘에 대한 회한은 사랑하지 못했던 나를 사랑했지만, 사랑으로 보답할 수 없었던 사람에 대한 죄의식이다. 사실은 사랑의 종류가 달랐지만 사랑하기도 했던 거고.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그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자신의 행위로 상대방에서 상처를 입힌 거라 돌아보면서 참회하고 있는 거다. 남자가 계속 발견하게 되는 것은 인간의 나약함과 어리석음이다. 신을 믿지 않는 남자지만, 신과 인간의 삶이 가진 수많은 구멍을 보고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결국 사랑의 문제다. 씻을 수 없는 과오와 상처를 주고받고, 그게 인간의 나약함이건 어리석음이건, 인간의 수많은 구멍을 가장 잘, 혹은 아픈 방식으로 드러내는 것이 사랑이 아닌가 싶다. 사랑은 무엇인가? 사랑이 뭐길래?

나, 잘 모른다. (웃음) 소설을 쓰면서도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많이 했다. 사랑이 뭘까? 처음 쓸 때는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만날지 몰랐다. 쓰면서 언제 만나고 서로 이해하게 될까를 생각했다. 이 소설은 내가 쓴 다른 소설과 달리 한치 앞을 모르면서 쓴 소설이다.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소통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는지 보면서 썼다.

나 자신도 그런 질문을 했다. 사랑이 뭐고, 어떤 사람이고, 이런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떤 종류의 소통과 교감이 가능할까, 질문하면서 썼다. 나도 사랑을 아직 잘 모르고 인간을 모르기 때문에 소설을 쓴다. 소설을 다 쓰고 나서 발견한 것은, 사랑의 투명하고 연한 부분이다.

손톱 끝으로 글씨를 써서 이야길 하잖나. 남자가 어두운 방에서 이야기할 때, 여자가 약간씩 움직여서 기척을 내는 순간들, 그런 것들을 사랑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인간 안에 있는, 가장 연해서 따뜻한 것인지조차 분별하기 어려운 상태를 소설을 쓰면서 발견했다. 굳이 답을 내놓는다면, 내가 발견한 그 부분이라고 얘기해야 할 것 같다.

소설을 쓰면서,
추구하고 탐구하고 싶은 게 있었다면?


세계를 잃어간다는 점에서 남자의 이야기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삶과 죽음의 문제를 생각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생명과 소멸. 소멸에 집착하는 이야기도 나오고. 생명을 가진 우리는 헛되게 저항하면서 삶을 이루어나가다가 안타깝게도 다 죽잖나. 그런 존재들,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것이 언어와 침묵으로 이어지는 이야기고, 그 속에서 말이 태어났고, 생명이 소멸과 동전의 앞뒤처럼 가면서 언어와 침묵도 서로 함께 가면서 싸운다.

여자는 언어가 특히 중요했던 사람인데, 언어를 잃어버린 건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즉, 언어를 되찾는 건 삶을 되찾는 거다. 소멸에 저항하겠다는 것이기도 하고. 또 한 가지는, 어둠속에서 우리들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리는 것처럼, 언어에 집중하게 된다. 어두운 곳에서 사람의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언어 자체가 이렇게 또렷한 것인가, 처음 느꼈다.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가 분리되지 않는 가치관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남자가 시력을 잃는 건, 운명과 같은 것이라면 여자가 말을 잃는 것은 의지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박탈당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말과 자신 사이에 칼을 놓은 것 같았다. 말이나 언어에 대한 회의를 보면 자발적으로 말을 잃은 것 같다. 작가의 고뇌가 담기지 않았나 싶다.

여자에겐, 언어가 너덜너덜해진 상태다. 지금은 침묵해야 하는 때인 거다. 세계와 여자는 불화하고 있고, 언어가 너덜너덜해졌고, 세계는 받아들이기 어렵고, 자신도 온전하지가 않은 상태에서, 언어를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 거다. 쥐고 있던 도구가 떨어져 발등을 찍듯이 못쓰게 된 거다. 나는 이 여자처럼 말을 잃은 적은 없다. 『바람이 분다, 가라』를 쓰고 1년 정도 슬럼프를 겪을 때, 내가 쓰는 말이 싫어진 경험은 있었다.

그때 생각했던 것은 언어의 상투성이 싫다는 그런 관념적 고민이 아니었다. 내가 하는 단어의 배열과 사용하는 단어가 너덜너덜하다는 감각적인 느낌이었다. 이 소설도 그래서 감각적으로 출발했다. 내 고민이 녹아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말을 잃은 여자가 첫 음절을 찾는 이야기랄 수도 있는데, 그 사이 일어난 일이 중요하다. 두 무너져가는 세계가 한 순간 만나고, 필담을 하는 상황에서, 희망과 같은 게 있다면?

여자가 말을 찾게 된 데는 남자하고의 일도 있지만, 그 전에 여자가 굉장히 노력한다. 희랍어도 배우고 모국어를 쓰려고 한다. 모국어가 고통을 주는 것이라서 거리를 걸으면서 얻고자 하는 것은 한 마디 말이다.

그래서 꼭꼭 묻어놓은 부분인데, 여자가 어릴 때 좋아했던 단어가 숲이다. 그래서 숲 같은 도시의 밤거리를 헤매고, 남자의 연한 부분을 발견하고 고통을 느끼기도 하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여자의 단단한 상태에 균열이 생겼고, 말이 다시 가능하게 된 거다. 남자 앞에서 한 마디 말을 할 때, 의지하지 않고 각오하면서 내적인 힘을 가지고 여자가 살아갈 것을 암시하고 싶었다.

독자들과 나눈 Q & A

근래 작품들을 보면, 세련되게 사는 사람보다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이 주로 나온다. 『채식주의자』부터 그렇게 된 것 같은데, 등장인물로부터 귀기 어린 느낌을 받는다. 의도적인가, 아니면 본인도 모르게 변한 건가?

『그대의 차가운 손』까지와 그 다음 소설 사이에 선이 그어진다는 얘긴데, 나도 그렇게 느낀다. 내 삶에도 선이 그어져 있는 것 같다. 전과 후가 많이 다르다. 개인적인 고백을 하자면, 그 즈음 몸이 안 좋았는데, 처음으로 돌아가서 생각하게 됐다. 인생이라는 것을 더 또렷하게 보고 싶다는 결심 아닌 결심을 했던 시기가 『그대의 차가운 손』을 쓰고 난 직후다. 그런 생각이 영향을 미쳐서 그 후의 소설이 달라지고, 나도 달라진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남자를 형상화할 때, 보르헤스를 생각하면서 했나?

보르헤스. 남들보다 나중에 읽은 작가인데, 각별한 애정을 갖게 됐다. 이 소설을 쓸 때 생각을 많이 했다. 이 남자와 보르헤스가 겹치는 부분도 있고, 남자의 꿈에도 나온다. 보르헤스가 불교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들, 내가 불교에 대해 갖고 있는 고민이 있다. 나는 종교가 없는데, 처음 세상에 대해 사유의 형태로 다가온 것이 불교라, 고민했던 시절이 있다. 어쨌든 보르헤스가 내겐 각별한 작가라, 이 소설을 쓰면서 생각을 많이 했다.

시는 안 쓰나?

시로 먼저 등단을 했다. 시와 소설을 같이 쓰다가 시로 먼저 등단했다. 평균을 내보면 1년 2~3편의 시를 쓰고 있어서, 어쩌면 조만간 시집을 묶을지도 모르겠다.


『희랍어 시간』에 대해 독자들과 마지막으로 만나는 시간. 한강 작가는 독자들에게 작별의 말을 하는 것이 소설과 작별 인사를 하는 것처럼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이날 추웠고, 큰 사건도 있었는데, 독자들이 함께 하면서 따뜻한 기운을 준데 대해 고마움을 표했다. 열심히 쓰겠다고 했고, 다음 책으로 만나자고 했다. 마지막 낭독이 울려 퍼졌다.

“…‥내 말이 들리나요? 그녀는 그의 말을 똑똑히 뜨고 있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는 모른다. (…) 나는 숨을 멈췄어요. 당신은 계속 숨을 쉬고 있었어요. 계속 당신의 숨소리가 들렸어요. 그때부터 우리는 서서히 떠올랐지요. 먼저 수면의 빛에 어렴풋이 닿고, 그 다음부터는 뭍으로 거세게 쓸려갔어요. (…) 마침내 첫 음절을 발음하는 순간, 힘주어 눈을 감았다 뜬다. 눈을 뜨면 모든 것이 사라져 있을 것을 각오하듯이.”


[예스24 기고원문]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