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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 Will Never Die. 

록을 말할 때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문구다. 천재하드록기타리스트 마이클 쉥커(Michael Schenker) 주축으로 결성된 마이클쉥커그룹(MSG)의 대표곡 중 하나인 'Rock Will Never Die'는 1986년 그룹 부활의 1집 음반 제목이기도 했다. 록을 한다는 사람치고, 록을 들어본 사람치고, 이 문구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라고. 로커들의 전매특허 발언이기도 하니까. 로커들을 툭~하고 건드려 보라. 이 말이 대번에 튀어나올 것이다. 


<청춘밴드>의 주인공 록밴드 '블루 스프링(BLUE SPRING)' 연습실에도 이 문구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그들이 무엇을 추구하는 그룹인지 단박에 보여주는 기표다. <청춘밴드>는 그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뮤지컬(을 표방하는 연극)인데, 결국 청춘의 이야기다. 포스터에 적힌 카피 'Rock은 청춘을 포기하지 않는다'가 이것을 대변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 <청춘밴드>, 이야기는 심심하고 지나치게 전형적인데다, 전반적인 연기와 연주, 연출은 여물지 않았다. 잠깐씩 반짝이는 순간이 있긴 하나, 그것이 모든 결점을 덮을 만큼 강력하지도 않다. 그들의 작업실이라고 보여지는 무대는, 록밴드에 대한 어떤 선입견이 작용해서인지 모르겠으나, 밴드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보다 뭔가 반듯하게 만들어져 그들이 말하는 '록 스피릿'과 동떨어진 인상이다. 무대라는 공간을 통해 블루 스프링의 정체성을 드러내는데 실패했다는 얘기다.



드라마투르기(극적 구성)는 정말 심각했다. 록밴드가 거대 기획사와 싸우는 과정에서 멤버들끼리 갈등을 빚다가 결국 이를 이겨내고 다시 록을 부른다는 줄거리인데, 이렇게 대거 줄여서 말해도 모든 이야기가 그려질 정도다. 뭐 그만큼 이해가 쉬운 이야기 구조를 택하기 위함이었다면 더 이상 말할 필요는 없겠지만, 모든 것이 너무 쉽게 쉽게만 봉합되고 넘어가니, 성의가 부족하다는 인상만 받았다. 


기획사 대표가 이간질한 멤버들의 갈등은 우스울 정도로 쉽게 풀리고, 이야기 전개는 그저 일사천리다.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이라는 트라우마를 품은 록밴 리더이자 보컬 최강인은 그 아픔과 슬픔을 담아내기엔 역부족이다. 연기력이 부족했다고 해야할지, 어설펐다고 해야할지, 연기보다는 음악을 할 줄 아는 사람을 내세운 것 같았다. 다른 멤버라고 다르진 않은데, 약방의 감초격인 설사준 외에는 전반적으로 캐릭터 모두가 연기력에서는 좋은 점수를 주기가 어렵다. 관객을 캐릭터 자체에 몰입시키지도 못했고, 그들 각자도 캐릭터와 동화되지 못하는 인상이었다. 특히, 3000만원짜리 바이올린을 부수고 밴드에 합류했다는 드러머 박태림의 특유의 하이톤 발성은 귀에 거슬렸고, 연기는 과했다. 



<청춘밴드>는 음악(연주)할 때만 그나마 즐겁고 흥겨운 기운이 퍼질 뿐, 그것도 잠시다, 전반적으로 함량 미달의 뮤지컬이다. 당연히 록밴드라고 전형성만을 띨 필요는 없겠다. 흔히 록밴드라고 했을 때 떠올릴 수 있는 그런 모습이거나 진흙속의 진주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밋밋한 캐릭터로 구성된 밋밋한 이야기로 청춘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은 무성의해 뵌다. 좀 더 농축된 캐릭터와 이야기 구조를 만들면 좋겠다. 듣기에는 리뉴얼하여 시즌4라는데, 어떻게 이렇게 밋밋하게 리뉴얼했을까, 의문스럽다.


록과 청춘을 결부하려는 움직임은 상투적이면서도 매력적이다. 그러나 록에 대한, 청춘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와 사유로 이야기트루기를 해야하지 않겠나. 단순히 음악을 즐기기 위해서라면 록페나 콘서트를 가면 된다. 뮤지컬에서 관객이 원하는 바는 그것들과 다르다. 알면서도 이렇게 만들었다면, 너무 무성의한 것이고. Rock은 윌 네버 다이하겠지만, <청춘밴드>가 시즌을 계속 이어나가려면 지금과 같은 모습이면 곤란하겠다. <청춘밴드> Will Die, Soon이 될 테니. 아쉬운 관람이었다. 


(사진출처 : 청춘밴드 공식홈페이지 http://www.oorachacha.com )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2013.05.30 03:02 메종드 쭌


봄비가 사흘 내리 주룩주룩 내렸습니다. 

봄비 소리를 선율로 삼아 삶이라는 건반을 독수리 타법으로 건드려봤습니다.


문득 생각이 나더군요. 

아, 이것은 이제 봄날의 끝을 알리는 전주로구나! 작별을 예고하는 비로구나! 

여드름이 화산처럼 농익은 봄의 다른 이름인 여름으로 가려고 목욕 재개를 하는구나. 

등의 때라도 밀어주고 싶었습니다. ^.~


듣보잡놈의 시급하고 느닷 없는 요청에 응해주시고, 참여 결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급작스레 일정이 잡히면서 좀 애를 먹었는데요. 

협조와 협동해주신 덕에 마침내! 오늘(5월30일) 첫 테이프 끊게 됐습니다. 

서울시 홈페이지(http://economy.seoul.go.kr/archives/22980)에 공지 뜬 것도 보셨죠? ^^  



위즈돔에서 신청을 받았는데, 1회 참석을 해주기로 하신 시민들이 100명을 훌쩍 넘었습니다.^^ http://www.wisdo.me/2232 그만큼 협동조합에 대한 시민들 관심이 높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 아닌가 싶고요. 앞으로도 쭈욱~ 위즈돔을 통해 시민들의 참여를 받고요. 


그렇다고 너무 부담감 갖지 마세요!!!!!  

이제 스타트를 끊은 협동조합, 고민도 많고 아직 미비한 점 많은 것도 당연합니다.

그러니 그런 고민 혼자 하는 게 아님을 보여주는 것도 충분히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제임스 스토킹어는 말합니다. 


"우리 모두는 타인의 손길에 의해, 또 타인의 손길을 통해 살아가고 있다. 

타인의 손길에 의해 우리는 자궁으로부터 태어난다. 

타인의 손길이 기른 음식을 먹고

타인의 손길이 만든 옷을 입으며

타인의 손길이 지은 집에서 살아간다.

결국 우리를 이 대지위에 우뚝 서게 하는 것이 바로 타인의 손길인 것이다."


이 협동조합 콘서트를 기획하고 세팅하면서 그런 타인의 손길을 생각했습니다. 

많은 분들의 손길 덕에 협동을 통해 협동조합 콘서트는 탄생한 것이지요. 


그러니 고맙다는 말씀, 드리지 않을 수 없지요.^.~

모쪼록 협콘이 호모 사피엔스(생각하는 인간)로서 호모 레시프로쿠스(협동하고 상호 의존하는 인간) 혹은 호모 심비우스(더불어 사는 인간)를 사유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10월까지, 그러니까 계절이 두 번의 곡예를 넘을 때까지, 협동조합 콘서트는 여러분이 함께 일군 '협동'으로 지어진 행사임을 기억하겠습니다. 


아마 협콘이 세 계절을 관통하는 동안, 제가 계속 몇 차례 더 들들 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소 미숙하고 서툰 점 있어도 너그러이 양해해 주세요. (미리 선빵 날리는 거죠ㅋㅋㅎ) 그래도 계속 그 손길과 협동, 부탁드리고요. 굽신굽신. 


삶이란 치명적인 질환이 늘 그러하듯, 저 역시 유희와 환멸이라는 온탕과 냉탕을 오갈 겁니다. 룰루랄라 콧노래도 부르다가 속 썩어서 쉬파 쉬파 혼잣말도 지껄이고. 그 냉온탕을 심장이 감당할 수 있어야 이 세계에 머물 자격도 생기는 법이라고 스스로 주술을 겁니다.ㅎㅎ   


그리고 오늘밤 협콘 1회가 끝난 뒤, 작별 인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내 생애 유일한 봄, 그러니까 2013년의 봄에게 굿바이 인사를 고하기로.  


너무 짧은 2013년 봄과의 인연, 다시는 만나지 못할 이 봄,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로 마음을 달랠 수밖에요. http://www.youtube.com/watch?v=vf6TWmxJZxY


1회 협동조합 콘서트가 어떻게 끝나든, 나의 아름다운 봄밤 역시 끝난 주말, 제 작은 골방에 박혀 <봄날은 간다>(이영애, 유지태 주연) DVD를 틀려고 마음 먹고 있습니다. 신선한 케냐AA에 제 마음까지 함께 흘러내린 커피 한 잔을 뽑아들고서, 옆에는 티슈를 준비하고 말이죠. 봄과의 작별 의식, 이 정도면 봄이 섭섭해하진 않겠죠? 하하. 



처음 그 영화를 만났던, 2001년의 가을밤을 기억합니다. 처음 본 그 순간부터,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며 철딱서니 허세순수 작렬하던 상우(유지태)보다 농익을 대로 농익은, 라면으로 남자를 흔들 줄도 알며, 때론 감정이 사랑을 이기는 것도 체화하고 있고, 이별은 근거 없이 비논리적인데다 심각한 비약을 품고 있음도 묵묵히 받아들이는, 뭔가 쫌 아는 여자 은수(이영애)에게 끌렸습니다. 십 수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저는 상우보다 은수 편이고, 은수를 더 좋아합니다.  


부디, 저 혼자 꼴리는 대로 정해놓은 마지막 봄날 5월30일. 그 봄밤, 협동조합 콘서트는 시작됩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협동과 덕이었음에 감사드리는 감정 과잉의 메일입니다. 사흘 간 봄비에 너무 촉촉하게 젖어버린 탓이죠.ㅋㅋㅋ 아, 라면 먹고 싶다!ㅋㅋㅋ   


이 봄에게 잊지 말고, 꼭 작별 인사를!  

굿바이, 나의 봄. 다시는 만나지 못할 이 봄이여. 그렇게 안녕. ㅠㅠ (물론 다가올 여름에게도 반가이 인사를! ^.^)


언제든 문의나 궁금한 점 있으시면 연락주세요! 저는 들들 볶으셔도 됩니다. 근데, 저는 하기 싫으면 안 합니다.ㅋㅋㅋㅋㅋㅋ  


협동한다면 이렇게!


여러분의 협동조합, 응원합니다! :)

만국의 노동자여, 협동하라!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난 스타가 되지 않겠다. 

전설이 될 것이다. 

로큰롤의 '루돌프 누레예프'가 되겠다!" 


- 그룹 퀸, 프레디 머큐리


이것은, 그저 넋두리입니다. 

어떤 의미도 부여할 필요, 없고요. 그저 커피 한 잔에 담긴 단상이라고만 해두죠. 특히, 여기 등장하는 남자 셋, 어떤 관련 없이 나열한 것에 불과해요. 커피를 만들다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른 생각의 가지들. 


어제, 한 남자가 다시 '양보'를 했습니다. 

그것, 깊이 파고들자면 양보라는 단어로 단순화할 수 없는 무엇이겠지만, 어쨌든 그는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습니다. '단일화'라는 말이 저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보다 더 좋은 말이 선뜻 떠오르진 않지만, 그는 자신이 걸어왔던 길에서 일단 '멈춤'을 합니다. 한 남자, 안철수입니다.



안철수라는 이름. 

저는 단 한 번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안철수'가 세상을 바꿀 이름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었습니다. 세상의 흐름에 자신만의 인장을 새기며, 그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어떤 초석이 될 순 있으리란 기대 정도는 했었죠. '혹시 어쩌면…'하고 살짜쿵 가슴이 뛰기도 했으니까. 진짜 이뤄야 할 무엇을 향한 과정으로서의 안철수. 그래서 그 이름, 개인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열망과 또 어떤 바람이 섞이고 뭉쳐 '안철수'라는 단어로 표현이 된 것이겠죠.  


그의 눈에 눈물이 맺히고 살짝 울먹입니다.  

개별의 인간에게 새겨진 구체적인 존엄 같은 게 있었어요. 그 눈물과 그 발언의 실체는 내가 알 수 없는 심연이겠지만, 그렁그렁한 눈망울에 맺힌 구체적 존엄 앞에 나는 겸손해야 했어요. 그의 발표는 내게 꼭 어떤 '고백'처럼 느껴졌습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맞아요. 그는 내 스타일, 내 타입, 아니죠.

그럼에도 덩달아 슬펐습니다. 슬픔이 찰랑거렸습니다. 이상하게도. 살짝 아프기까지. 이상하게도. 아마, 안철수라는 개인때문이 아니라, 안철수라는 이름에 묻은 어떤 마음들 때문이었겠지만. 실토하자면, 안철수라는 이름 아래 3040자문단의 일원으로 살짝 참여했습니다. 어쩌다 그런 것이었지만, 그에게 조금씩 마음을 주고 있었나 봅니다. 슬프고 아픈 걸 보니. 그는 일단 멈추고 물러섰겠다고 고백했지만, 안철수라는 이름에 담긴 어떤 열망과 마음, 그것은 끝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안철수라는 이름의 약속이 계속 지켜졌으면 하는 바람, 아마 그럴 것이라는 기대, 갖고 있습니다.     


그 고백이 있고, 다음날입니다. 

한 남자의 소식에 덩달아 그 남자를 떠올렸습니다. 아니, 그 남자는 며칠 전부터 계속 맴돌던 이름이죠. 더 정확하게는 노래. 그의 노래들, 며칠 전부터 듣고 있었거든요. 그는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태어났습니다. 인도에서 자랐고, 런던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는 뮤지션입니다. 영원히 빛날 이름을 가진 멋쟁이입니다. 그 남자, 프레디 머큐리입니다. 



프레디 머큐리라는 이름.  

그룹 퀸의 보컬리스트입니다. 지루하고 따분한 삶을 사는 것이 싫었고, 1971년 퀸을 만듭니다. 전설이 되겠다는 호언장담, 허세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전설이 됐습니다. 그가 음악을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대요. 음악을 듣는 사람들 심장박동을 더 빨리 뛰게 하기 위함. 그는, 퀸은 음악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건 존 레논이 하면 될 일이지, 자신들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 거죠. 음악을 듣는 그 순간만이라도 심장박동이 뛰고 즐겁고 신나면 되는 것.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의 죽음이 세상을 조금 바꿔놓았습니다.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누그러뜨리기 시작한 것!


그는 한 마디로 잘났습니다. 

비아냥이 아니라, 진짜 그랬어요. 직접 음악을 만든 싱어송라이터였고, 공연을 기획하고 폭풍 무대를 만들었습니다. 무대에서의 끝내주는 퍼포먼스와 카리스마는 어떻고요. 뮤직비디오를 만들 때는 직접 아이디어를 내는 기획까지. 음악으로 사람들 심장박동을 뛰게 하겠다는 그의 장담은 허세가 아니었던 거죠. 20년 내내 노래를 했고, 무대에 설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겠죠. 


그의 이런 바람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난 온세상이 내 노래를 들었으면 좋겠고, 내가 무대에 섰을 때는 모든 이들이 내 노래를 듣고 날 바라봐 주길 바란다. 어떤 형태로든 내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는 사실이 좋다. 다만 30분이라도 사람들이 나로인해 운이 좋다고 느끼거나 기분이 좋아진다면, 찌푸린 얼굴을 펴고 잠시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에게 가치있는 일이다."


그는 약속을 지킬 줄 아는 의리남이었습니다. 

잘난 그였기에, '퀸=프레디 머큐리'라는 등식을 떠올리기에 충분했기에, 주변에선 퀸을 탈퇴하고 솔로활동을 하라는 유혹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팀을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죽는 날까지 밴드를 떠나지 않은 '의리자(者)'. 퀸의 성공에 기여한 자신의 몫은 1/4이라고 말했다죠. 물론 퀸의 리더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도 가장 중요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은 해봤다지만. 


프레디가 세상을 떠난 1991년 11월 24일. 

지금으로부터 21년 전. 나는, 그해 그를 처음 알았어요. 그가 세상을 떠난 직후. 당시, 더벅머릴 길러서 완전 어설픈 반항아 록스타 같던 시절, 한 무리의 또래들 중에 나름 가장 예뻤던 여학생으로부터 다양한 노래를 녹음한 테이프를 선물 받았었죠. A면 첫 곡이 'Love of My Life'(B면 첫 곡은 광석 형의 '사랑했지만'). 퀸의 노래를 처음 들었습니다. 프레디 머큐리라는 뮤지션도 처음. "오래 사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너무 지루할것 같다"면서도 "난 제발 에이즈만 걸리지 않게 해달라고 늘 기도한다"던 그는, 결국 에이즈로 세상을 떠납니다. 고백한 다음날, 에이즈로 그 좋아하던 음악을 멈춥니다. 프레디 머큐리의 폭풍 보이스도 이젠 안녕. 


물론, 오해하지 마세요. 

한 남자와 그 남자의 고백은 완전 다를 뿐더러, 퍼포먼스가 끝났다고 끝난 것 아닙니다. 안철수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계속 걸어갈 터이고, 프레디 머큐리의 노래는 21년이 지난 오늘도,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내가 그를 기억하고, 세상이 그의 음악을 영원한 전설로 인정합니다. "로큰롤의 '루돌프 누레예프'가 되겠다!"는 그의 말에 완전 수긍. '루돌프 누레예프'는 죽을 때까지 춤을 춘 전설의 발레리노입니다.  


두 사람, 위풍당당했습니다. 

한 남자, 국민을 사랑하고,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자유주의자 면모를 보이면서 약속을 지킨다며 일단 멈춰섰습니다. 그 남자, 여자와 남자를 사랑하고, 물고기와 고양이를 사랑하며, 자신의 호언장담을 죽는 그날까지 지켰습니다. 두 사람 모두, 누군가의 심장을 뛰게 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 남자, 준수는 그렇게 두 남자를 기억합니다. 

오늘, 내 좋은 커피 동료들과 찾은 커피하우스. 안타깝게, 탄자니아가 없습니다. 프레디 고향에서 날아온 향미로 한 남자와 그 남자의 향을 음미할까 했는데 말이죠. 아쉬워서 같은 네 글자짜리 온두라스 커피를 마셨습니다. 물론, 탄자니아와 온두라스, 서로 대륙은 다르지만 말이죠. 하하.  



11월 23일, 안철수가 대선후보로서의 행보를 멈췄습니다. 

(정치인으로서 그는 계속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약속 때문에라도!!)  

11월 24일, 프레디 머큐리가 뮤지션으로서의 노래를 멈췄습니다. 

(전설로서 그는 영원히 살아 있을 것입니다! 호언장담 때문에라도!!)

그리고, 준수의 2012년은 이것으로 끝났습니다. 달력에 남은 날짜는 그냥 덤. 

(커피 만드는 남자로서 그는 계속 이야기를 만들 것입니다! 삶 때문에라도!!)  


오늘 밤9시의 커피는 탄자니아 킬리만자로를 준비했습니다. 그에 어울리는 노래는, 

Don't stop me now. 지금, 날 막지 마.

그래, 모두 멈추지 마. 프레디도, 안철수도, 나도, 커피도. 

나도 그들처럼, 관료주의에 잠식 당한 내 다른 일을 그만두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그것,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상업영화 시스템으로 들어간 내 몸을 빼고, 독립영화를 다시 찍기로 합니다. 나는 그것이 어울리는 사람이니까요. 그것은 곧 다시 시작이며, 영원한 향기를 뿜어내는 일이기도 해요. 좋은 것만 누리기에도 인생은 너무 짧습니다. 즐겁고 재미있게. 오늘 봰 윤광준 선생님도 내게 힘을 실어주셨어요!  


윤 선생님, 내게 이런 말을 남겨주셨습니다. 

"커피의 향이 곧 좋은 삶입니다." 



암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잘 찍은 사진 한 장' 같은 '잘 뽑은 커피 한 잔', 그것이 커피를 처음 할 때처럼, 내 삶의 영원한 목표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잘 뽑은 커피 한 잔'!  :-)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 커피 한 잔에 담긴 한 세계의 모든 것. 커피 한 잔을 통해 사유하는 한 줌의 삶.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나의 커피.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 


아울러, 철수 형과 프레디 형에게도 커피 한 잔씩 건네고 싶은 내 마음 한 자락. 

내가 준비한 오늘의 커피 메뉴는, Don't stop me now.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2012.11.17 00:51 메종드 쭌/무비일락

(스포일러 있음! 알아도, 영화관람에 크게 지장은 없으리라 여겨지지만.) 


다음에 꺼내는 이 말, 우스개지만, 백퍼 진실을 담은 뼈대 있는 우스개. 

답을 보기 전, 한 번 유추해보는 것도 좋겠다. 


여자가 50대가 넘어설 때, 필요한 다섯 가지는? 


친구, 딸, 집, 돈, 건강.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렇다면 남자 50대는? 


아내, 부인, 와이프, 마누라, 집사람.


역시 고개를 끄덕이는 당신의 모습, 그려진다. 우리나라 남자를 놓고 한 뼈대 있는 우스개지만, 아이슬란드의 이 남자에게도 다르지 않아 뵌다. 



화장실에서 우는 남자


그 남자가 화장실에 앉아 울고 있다. <볼케이노 : 삶의 전환점에 선 남자>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 


그것은, 온 슬픔을 담은 몸짓이다. 삶의 회한이 묻은 울먹임. 그 소리가 심상치 않다. 무뚝뚝하며, 퉁명스럽고, 가족들에게 심술 궂은 말만 내뱉는데다, 가시 돋힌 행동만 일삼던 남자. 중요한 것은 그 남자, 하네스(테오도로 줄리어슨)는 아버지였다. 우리네 아버지의 전형적인 모습과 다르지 않은 그 남자, 울고 있다. 왜? 


그것은 단순히 오십 넘은 남자에게 닥친, 아내의 뇌졸중 때문만은 아니다. 아내가 쓰러진 것이 결정적인 계기였겠지만, 그것은 스스로 바다에 뜨지 못한 배였기 때문이었다. 그 눈물은 결국 스스로를 채우지 못한 삶의 공허함과 홀로 서는 법을 배우지 못한 자의 두려움 때문이리라. 


하네스에겐 그랬던 것 같다. 그는 (아마도 피치 못할 사정으로) 섬을 떠났고, 어부의 이름을 포기했다. 나중에 실토하지만, 그는 섬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어부 역시 그의 진짜 꿈이었다. 꾹꾹 아니라고 눌렀으나, 결코 그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은. 학교 수위로 37년을 근무하다가 은퇴한 그에게 닥친 것은 공허함이요, 무상함. 평생 일밖에 모르고 살아온 자에게 은퇴가 주는 충격이란 그런 것이다. 죽을 것도 생각했으나, 결국 그것도 당장 그의 몫, 아니었다. 


한때 가장이었으나 이제는 '뒷방 늙은이(꼰대)'로 전락한 남자가 할 수 있는 건 뻔하다. 심술과 심통. 오랜 세월, 뒷바라지만 해 온 아내 안나(마그렛 헬가 요한스토디어)에게 줄 수 있는 건 면박과 트집뿐. 다른 가족들에게도 그는 외계인에 불과하다. 아버지의 존재는 곧잘 무시당하며, 가장의 권위는 안드로메다에 있는 무엇이다. 물론 그것이 그의 은퇴때문에 불거진 것은 아니다. 그는 이전부터 가부장적인 아버지였고, 가족에겐 '불통'의 대명사였다. 


물론, 안 됐다. 불쌍하게 보인다. 애초롭다. 아무리 자초한 것이지만, 뒷방 늙은이도 자신의 삶을 부정하고 싶진 않다. 하네스의 '버럭'은 그런 심리에 기초하리라. 자신을 알아달라는, 내 무력감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절절한 호소다. 몸부림이다. 



그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볼케이노'는 그럴 때 갑작스레 터진다. 오십 넘은 남자에게 꼭 필요한 존재, 아내가 쓰러졌다! 뇌졸중. 그것도 전날, 아내에게 쭈뼛쭈뼛 할 말이 있다며 힘겹게 다가가 모처럼 애정을 나눈 그들이었다. 못난 지아비는 아내에게 수줍은 사과를 건넸고, 아내는 지아비의 어린아이 같은 투정을 온몸으로 받아줬다. 오래된 부부의 진한 교감이 이어졌던 다음날, 터진 볼케이노. 아내가 좋아하는 넙치수프를 준비한 하네스 앞에서 아내가 쓰러졌다. 


그의 외로움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명은 여기서도 등장한다. 쓰러진 안나를 보기 위해 병원에 달려온 딸과 아들은 하네스와 뚝 떨어져 앉아 자기들끼리 위로한다. 그 장면을 멀리서 풀숏으로 찍은 장면은 그들이 감정적으로 얼마나 멀리 떨어진 존재인지 보여준다. 아버지, 외롭다. 슬프다. 


볼케이노의 폭발, 그 이후...


             

그런데 이 남자, 변한다. 아니, 이제야 본래 모습이 나오는 것일까. 남자가 철 드는 것도 그럴 때이다. 아내를 잃을지 모른다는 위기의 상황. 아내의 소중함을 뒤늦게야 깨닫는다. 아니, 알았는데, 쑥쓰러웠는지도 모르겠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내, 그녀만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쏟는다. 병원에 두지 않고 자신이 온종일 옆에 두고 병간호를 한다. 아들의 반대를 평생을 함께 한 남편으로서의 권한을 내세워. 


잘할 수 있을까? 스크린을 응시하는 나의 염려는 곧 그의 염려였다. 하네스 자신도 그것이 궁금했고 불안했다. 아내의 기저귀를 갈아주며, 몸 곳곳을 닦아주고, 수프를 떠먹이면서, 말 못하는 아내에게 계속 말 걸어주고 책 읽어주기. 그의 삶의 중심은 이제 아내다. 평생 구박만 했던 아내에게 그는 속죄를 하고 있는 것일까? 


여기서, 나는 속단을 했다. 그런 그의 정성에 감복해 아내가 깨어나리라는 흔한 결말을 떠올렸다. 아내를 병간호 하는 외에 그가 오로지 매달린 배의 수리. 증조할아버지부터 대물림하여 내려온 그 배, 그것의 재탄생과 함께. 치유된 아내와 그가 배를 타고 멀리 나갈 것으로 쉽게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틀렸다. 

설마했지만, 나는 살짝 경악했다. 아니, 그가 행한 행동을 수긍할 수 있었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것이 서로를 위한 길이리라. 배는 완성됐다. 손자와 함께 수리한 배는 어쩌면 그가 또 다른 삶의 전환점에 섰음을 보여주는 징표. 배의 존재는 곧 그였다. 배의 난파와 수리, 그것이 그의 삶이었다. 



다시 섬을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또 다른 오해를 했다. 기성 영화와는 다른 길을 걸은 영화임을 간과하고, 익숙한 관성에 의해 사유한 셈이다. 죄책감에 사로잡힌 그가 아내와 함께 할 것이라는 신파를 떠올렸다. 


아내 덕분에 다시 섬으로 돌아온 하네스가 바다를 바라보는 모습, 잊지 못할 얼굴이었다. 그토록 많은 것을 담고, 또 많은 것을 비우는 얼굴이라니. 그 얼굴,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저 얼굴만한 스펙터클은 없었다. 지 아무리 가파른 해안절벽과 드넓은 바다도 그의 표정에 비길 바는 아니었다. 나즈막이 읊조리고 말 나의 감상은 이랬다.   


삶은 그렇게 지속된다. 

모든 게 조금씩 빛이 바래도, 삶은 짧은 계절만큼이나 전환에 전환을 거쳐 흘러간다.   


(* <볼케이노>라는 영화 제목 때문에 흔하디 흔한 재난영화를 떠올린다면 오산이다. 삶에 닥친 '재난'을 다룬 것은 맞지만, 흔하디 흔한 할리우드식 재난영화와는 사유의 지점이 다르다.) 

 



저는 건강한 리뷰문화를 만들기 위한 그린리뷰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2012.08.18 15:52 메종드 쭌/무비일락


민족은 허구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강력한 현실이고,

이 허구와 현실을 이어주는 것은 날조와 왜곡을 통해 만들어진 집단적 기억이며, 이 기억이 만드는 집단적 정체감이 개인을 개인으로 정립시킨다.

현실적 실체가 된 상상의 공동체가 억압과 폐쇄의 위험을 벗어버리려면 ‘열린 공동체’로 진화해야 한다.

그 공동체의 핵심은 민족적․문화적 소수파(이방인)의 존재다.


- 고자카이 도시아키의 <민족은 없다> 중에서 -


뜨겁다. 계절도 그렇지만, 올림픽 때문이다. 공식적인 국가대항전. 자본이 숨은 주인공이지만, 어쨌든 나라를 걸고 싸운다. 이기거나 지거나 상관 없이 출전만으로도 영광이라는 올림픽 공식 멘트는 그저 흘려들어도 좋을 만큼의 농담이다. 이긴 자만이 모든 것을 가진다. 져도, "괜찮아"라고 위로해주지만, 기억은 거기까지. 이긴 자만 기억하는 세상은 여전하고, 꼭 이겨야만 하는 그런 나라, 있다! 


후끈하다. 한국과 일본. 식민과 피식민의 기억은 영원할 마당. 쥐새끼는 느닷없이 바다를 건너 독도에 발을 디뎠다. 그야말로 뜬금포. 평소와는 어울리지 않는 행보로, 한일 양국 시끌시끌하다. 축구는 그런 상황에서 어떤 정점이었다. 동메달을 놓고 벌어진 3·4위전. 한국이 이겼다. 그것도 2대0. 잘 했고, 이겼다. 


나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임을 확인했다. 누가 이기든 상관없다는 '공식적' 멘트도 막상 경기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고스란히 나는 태극전사였다. 한국팀의 몸짓 하나하나에 내 마음이 쏠렸다. 울트라 닛뽄은 그냥 들러리였다. 이겨서 약간 미안하긴 했지만, 그것도 승리의 기쁨 앞에선 그저 거품에 불과했다는 것!


살짝 궁금했다. 내가 일본에서 태어난 일본인이었다면 달랐겠지? 울화통이 터져서 죽었겠지? 독도에서 찍찍 거리는 쥐새끼, 당장 쥐어패고 싶었겠지? 일본에서 태어나서 조용한 외교라는 명분아래 일본에 슬쩍 마음을 두던 평소와 달리, 뭔 뻘짓을 한 거야? 


흠, 그건 그렇고 재일교포라면 어떤 심정일까? 재일교포도 물론 살아온 환경이나 여건에 따라 그 층위가 다르겠지만. 스기하라에게 묻고 싶었다. 

스기하라? 뉴규? <고(Go)>의 주인공이다. 



아참, 

이 글은 나(스기하라)의 나레이션으로 전개된다.


<GO>, 이건 나의 연애이야기다


나? 태어날 때 선택 따윈 못했다. 당연하다. ‘수십억분의 1’의 경쟁률을 힘겹게 뚫고 세상에 나온 것만으로 감지덕지할 처지잖아. 어쭈구리, 그러다보니 여기저기 족쇄가 나를 묶고 있었다. 가족의 일원, 국가의 구성원, 민족의 자손. 오호, 이건 내가 원하던 바가 아닌데, 그렇게 주어졌다. 


어쨌거나, 난 일본에서 태어났다. 이른바 코리안저패니즈. 일본에서 태어나서 일본에서만 살았어. 일본인과 하등 다를 바가 없지. 그런데 남들은 나를 “재일한국인”이라고 불러. 이런, 이건 누가 붙인 이름이야? 이봐, 사자는 자신을 사자라고 안 불러. 너희가 멋대로 붙인 이름이잖아. 난 나라구! 왜 날 너희 맘대로 만든 틀에 묶어 놓구 평가하나? 그렇게 이름을 붙여 차별하지 않으면 불안하지? 차이를 차별로 내모는 또라이들.


아차, 좀 오바했군. 이건 나의 연애 이야기였지. 잊어버려...^^;


나 좀 묶어 두지 말고 내버려 둘래? 


“민족, 조국, 국가, 단일, 애국, 통일, 동포, 친선

지배, 억압, 예속, 침략, 편견, 차별 … 제기랄

배타, 배척, 선민, 혈족, 순수, 혈통, 단결 … 지.겨.워.”



아빠는 이런 족쇄에서 나를 풀어주려고 국적을 바꿨다. 엄마와 하와이를 간다는 핑계로 대고. 하지만 나는 안다. 아빠는 내게 구시대를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거다. 재일교포니, 일본인이니, 엿이나 먹을 짓이다. 이 넓은 세상. 국경선 따위가 나의 행로를 제어할 게 무어냐고. 


그래서 닭들이나 할 짓인 ‘슈퍼그레이트치킨레이스’는 그런 나를 해방시킨다. 나는 원 밖의 강한 적들과 싸우면 된다. 나를 둘러싼 이 허구의 세상과도 마찬가지. 다른 건 없다. 어느 쪽에도 소속되지 않는다. 소속되지 않은 자유로움, 나는 즐긴다. 


사쿠라이(나의 여자친구지)! 그런데 넌 왜 그래? 내 피에 대한 진실한 고백을 그렇게 뭉개버리다니.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몸이 안 따라온다고? 한국인이나 중국인의 피는 더럽다고? 이런, 장미꽃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아름다운 향기는 그대론데 나는 ‘재일한국인’이 되는 순간, 왜 피가 더러워지는 거지? 웃기는군. 너처럼 자유분방해 뵈는 애가. 그것도 아빠 얘기라며 그걸 쉽게 믿어버리는 것도 우스워.


아, 이건 나의 연애이야기였지. 너와 직접 연관된 이야기인데 너를 이렇게 묘사하면 안되지...^^; 어쨌든, 넌 예뻐서 좋아. 팬티가 보여도 쪽 팔리는지 모르는 네가 좋아. 내가 어느 국적의 사람이건, 어느 민족이건, 정말 상관 않는 거지? 그냥 나라는 인간 자체를 좋아하는 거지? ‘그냥’ 친구가 ‘진짜’ 친구라잖아, 하하.


살아 있다, 사랑한다



일본에 있는 재일교포 이야기, 너무 무겁게 보인다고? 걱정마. 이건 발랄하고 경쾌한 사랑이야기니까. 그냥 내 연애이야기야. 살아있어서 사랑하고, 사랑해서 즐겁고. 그래, 사랑 그놈, 부질없는 짓인줄 알지만, 그래도 어떡해. 내겐 사랑이 우선이고 최고야. 친구 정일의 죽음도 사쿠라이, 널 향한 마음을 멈추게 할 순 없어. 민족, 국가, 그런 건 거추장스러울 뿐이야.


물론 국경이 있고, 핏줄에 대한 집착이 있는 한 국가나 민족의 구분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 잘 알아. 그렇지만 나 호들갑 같은 거 떨지 않아. 한국 국적이라고, 단일민족 한핏줄이라는 두루뭉술한 말로, 내 나라 내 동포 내 민족이라고 감싸 안을 생각은 전혀 없어. 


그렇지 않아? 5·16 군사쿠데타를 불가피한 일이라고 빡빡 우기고, 공천을 현금으로 장사하는 족속들과 내가 한 동포라는 테두리에 들어갈 이유? 없잖아! 독재자의 딸이자 독재자 DNA를 그대로 물려 받은 자를 향해 거짓 충성을 맹세하는 권력 불나방들과 같은 민족으로 취급 받는 것도 기분 나빠. 완전 나빠! 


아, 또 깜빡했군. 이건 내 연애이야기일 뿐이야. 넘어가지...ㅋㅋ 정치적 발언? 그런 건 없는 걸로~ 내가 뭔 정치이야기 같은 걸 하겠어, 킁킁. 


그래, 불만 있냐?


뭐, 하나가 돼야만 직성이 풀리고 단결만이 살 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배알 꼴리겠지만, 별 수 있나? 난 일본에 사는 재일한국인이야. 당신들에게 동질감이나 민족 감정을 느껴야할 이유 따윈 없어! 


‘애국’의 이름으로 하나될 것도 없고 ‘민족’을 기치로 연대해야 할 의무도 없지. 그 광란의 한-일전. 난 어느 편도 아니야. 내가 응원하고 싶은 쪽을 응원할 뿐이야. 어느 편인가 묻는 당신에게, 조까라 마이싱~! 


아, 내 연애이야기는 이걸로 끝. 난 사랑에 빠졌고 너무 아프다. 그런데 계속 아프고 싶어. 내가 지껄인 말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래. 불만있는 자, 나에게 돌을 던져라. 난 당신들에 의해 내 삶의 선택과 주체성을 휘둘리고 싶진 않다! 다 맞아주마. 다 뎀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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