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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8 15:59 메종드 쭌/무비일락

인류를 구원하고자 고군분투하던 네오(<매트릭스>)의 임무는 끝났다. 한동안 달콤한 로맨스도 즐기고 형사와 퇴마사를 거치더니, 몸이 근질거렸나보다. 키아누 리브스가 이번에는 지구를 파괴하려는 외계인으로 분했다. 인간과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것을 없애기 위해 파견된 파괴청부업자로. 인류에 대한 회의와 환멸로 네오가 정반대로 돌아선 건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이 영화는 리메이크작이다. 1951년 작 로버트 와이즈의 SF영화인 <지구가 정지된 날>이 오리지널이다. 원작은 우아하고 지적이었다. 외계의 침공은 명백히 은유였다. 전쟁에 중독된 양 타인을 향한 공격을 일삼고 자기보호를 명분으로 핵무기를 만드는 인류의 어리석음을 경고하기 위한. 그러나 리메이크는 좀더 볼거리에 치중했다. 현 시대의 상황과 고민을 재창조해서 구겨 넣느니, 그저 스펙터클만 키웠다. 그래, 시대가 변한 거다. 지금은, 스펙터클의 현시에 더 치중하는 시대다.



슈퍼히어로의 창궐에 식상하신가. 그렇다면 여기 ‘슈퍼도그(Superdog)’는 어떤가. 이름 하여, ‘볼트’. 화이트 저먼 셰퍼드 종이다. 생각만 해도 귀여워~ 그렇지? 온순하고 맑은 눈과 기다란 귀에 눈처럼 하얀 털로 덮인 완소견. 그러나 실사는 아니다. 3D 애니메이션이다.

볼트는 막강 TV스타다. 입을 열고 한번 짖으면 사방이 들썩거린다. 악의 무리와 거침없이 싸우면서 정의를 지키는 슈퍼도그다.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슈퍼스타인 볼트가 어쩌다가 할리우드의 촬영장을 떠나 도달한 곳이 뉴욕!. ‘품 안의 개’에서 벗어나다보니, 모험은 불가피하다. 주인 ‘페니’에게 돌아가기 위한 완전 귀여운 개쉐이의 좌충우돌이 시작된다. 힌트가 하나 있다면, 견공판 <트루먼쇼>다. 혹시 아이가 있는데, <벼랑 위의 포뇨>를 놓쳤다면, <볼트>를 보여줘라. 아이에게 욕 들어먹기 전에. 또 한 가지 Tip. 보고 나서 아이가 볼트 사달라고 조를 수도 있다. 그건 나도 모른다. 알아서 하시라.



샤를리즈 테론과 페넬로페 크루즈의 만남이다. 우, 뭔가 찌릿하지 않나. 그 이름만으로 도저한 관능미가 철철 흘러넘치는 것 같다. 멜로드라마에 전쟁까지 곁들였다. 구도는 예의 익숙한 구도다. 남자 1명에 여자 2명. 뭔가, 삼각의 냄새가 풍기지? 한번 빠지면 한 축이 무너지지 않는 한,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 이 구도인데, 이건 좀 기묘한 삼각구도다.

처음은 단순히 게임이었다. 캠브리지대학의 모범생 가이(스튜어트 타운센드)의 기숙사에 어느 날 길다(샤를리즈 테론)가 황급히 숨어들게 되고 사랑은 시작된다. 그러나 어김없이 두 사람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생기고, 3년 뒤에나 해후하게 된 두 사람. 가이는 길다를 놓치 않으려 하나, 길다 옆에는 미아(페넬로페 크루즈)가 있다. 기묘하게 동거를 하게 된 세 사람. 행복했으나, 이번에는 전쟁이 터진다. 서로 너무도 다른 그들은 삐걱대기 시작하고, 운명은 자꾸 그들을 시험에 들게 만든다.

시네마유람객 ‘토토의 천국’(procope.org)

영화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무비일락’은 그래서, 나온 얘기다. 그리고 영원히 영화와 놀고 싶은 소박한 꿈도 갖고 있다. “음식은 1분 만에, 음악은 3분 만에, 영화는 2시간 만에 새로운 세계를 맛볼 수 있다”는 말도 믿고 있다. 영화를 통해 사유하는 세계를 좋아한다. 그래서 내겐, 가슴 뛰는 영화를 만난다는 건, 생의 숨 막히는 순간을 만나다는 것 혹은 생을 감식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몰링' 기고]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시월의 마지막 날.
그 날이 주는 감상과 함께 찾아오는 한 사람. '리버 피닉스'.

어제밤 이삿짐 정리를 하면서, '아이다호' DVD를 틀었다. 정리를 하면서 힐깃거렷다.
어차피 시월의 마지막 날, 어떻게든 떠오르는 그 사람의 흔적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눈물이 났다. 아름다워서. 더 이상 볼 수 없어서.

1993년10월31일. 14년이 지났다.
나는 14년을 고스란히 흡수했지만, 그는 이미 박제된 청춘.
9월의 마지막 날은 제임스 딘, 10월의 마지막 날은 리버피닉스.
가을 시즌은 요절한 청춘들의 이야기가 널리 퍼진다.

'아이다호'를 다시 떠올리다. 3년 전 국정브리핑에 긁적인 글.
=============================================================================================

아, 나는 이제 인생에 아무런 미련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나의 삶 자체가 매우 피곤한 것이었고,
또 그렇게 사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었습니다.
요즘은 하루하루가 피곤의 연속이며 기후 또한 참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우스꽝스러우리만치
격렬한 슬픔에 빠진다 할지라도 스스로 생명을 단축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도 평생을 살아가면서 몇 년쯤의
참된 규칙을 가져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이 단 한 번으로 끝난다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사실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하라르에서 쓴 ‘랭보’의 편지 중에서 -

◆ 또 다른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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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다호> 포스터

어쩔 수가 없다. 그 10월 31일이 오면. '또!'냐는 소리가 나와도, 어쩌란 말이냐. 가슴 속에서 서걱거리는 바람소리를 듣자면, 가을 낙엽의 방랑에 눈길을 주자면, 희뿌연 거리의 표정을 보자면, 관념은 하염없이 부유한다. Fly Fly~ 그리고 꽂힌다. Feel Feel~ 두 사람. 이 즈음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두 사람. 바람구두를 신은 그 사람들 말이다.

얼마 전 10월 20일 탄생 150주년을 맞았던 아르튀르 랭보의 방랑은, 37년의 삶을 지옥에서의 한철처럼 살다가, 지난 11월 10일에 종결됐었다. 바람구두를 신고 훌쩍 생을 마감했던 그처럼 또 하나의 바람구두는 리버 피닉스의 몫이었다. ‘아~ 피곤해’하며 길바닥에 철퍽 드러눕고선 일어나지 않은 바람구두.

역시나 아이다호로 가는 길은 너무 멀고 피곤했다. 10월 31일은 어쩌면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어쩌면 그리 랭보의 삶과 죽음 사이에 끼인 날을 택할 수 있는가 말이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 마음의 고향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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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1일, 그 날 리버를 떠올리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자연스럽다. 

‘열일곱에 방탕할 것을 권고’했던 랭보의 말을 뒤늦게 섭렵했기 때문일까. <아이다호>의 마이크(리버 피닉스)는 길 위에서 ‘오만방탕’하게도 흐느적거린다. 초점 없는 눈빛과 휘청대는 발걸음. 안식처를 잃은 마이크는 바람구두를 신고 거리에서 부랑한다. 부랑부랑방탕방탕. 마음의 안식처를 찾지 못한 이들의 필연적인 행보다. 또한 집시의 피를 물려받은 자에겐 숙명과도 같은 궤적이다.   

선택은 결국 하나다. 마음 깊은 곳의 ‘어머니’를 찾아 떠나는 아이다호행. 포틀랜드의 사창가에서 몸을 팔아 고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건 더 할 짓이 못된다. 그런데 유일한 이정표라곤 사막 한 가운데 자리한 아담한 집과 끝없이 뻗은 아스팔트뿐이다. 긴장하면 갑자기 혼수상태로 빠져드는 기면발작증 환자인 주제에 기어코 길을 나서는 그 똥고집은 어떻고.

그나마 스콧(키아누 리브스)의 동행이, 이 젊은 날의 고독과 아픔을 견디게 해주는 유일한 탈출구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 부서지는 청춘의 자화상

여느 청춘이라고 다르겠느냐마는 마이크는 유난하다. 고아나 다름없는 신세, 남창에, 부랑자에, 기면발작증에, 동성애까지. 어느 하나 건조하고 동정 없는 이 세상으로부터 냉대 받지 않을 요인이라곤 없다. 과연 길이라고 그를 환대해줄까? 하지만 마음의 고향을 찾아가기 위해서라도, 빼앗긴 젊음과 고독한 삶을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그 길은 필요하다. 그건 마이크의 길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뭐, 스콧이 있다고? 정말 녀석을 믿었나보지? 포틀랜드 시장 아들로 뭐하나 부러울 것 없이 자란 녀석의 응석을. 스콧의 스트리트 라이프는 그저 아버지에 대한 반항이다. 녀석에겐 물려받을 ‘유산’과 세습될 ‘계급’이 있다. 그건 어떤 상황에서도 그를 지탱할 배경이자 뚜렷한 한계다. 결국 녀석은 냉정하게 내치면서 배신하지 않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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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와 스콧은 포틀랜드 사창가에서 만나 친구가 된다.


그나마 스콧 아버지와 부랑자의 대부인 밥이 공교롭게 같은 날 장례식을 치루는 날, 두 사람의 눈빛은 ‘서로의 길이 다름’을 깨닫게 해준다. 두 사람의 교차하는 눈빛. 마이크는 슬프도록 서글펐고, 스콧은 차갑고 냉정했다. 청춘은 그렇게도 부서진다, 부서진다, 부서진다...

◆ 해브 어 나이스 데이

“Have a nice day” 그런 날을 기다리는 마이크. <아이다호>는 마이크의 삶을, 길과 중첩시켜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 그런 나날을 형상화한다. 툭하면 쓰러지는 마이크의 모습은 영화의 끝까지 등장하고 그의 신발, 그의 육체가 각기 다른 차에 실려 또 어딘가로 나선다. “Have a nice day”는 또 그렇게 마이크의 알 수 없는 여정에 대한 의례적인 인사처럼 들러붙는다. 멈추기 위해 그렇게 쉴 새 없이 길을 떠나고, 감식하는 그 남자의 아이러니.

묻고 싶었다.

기면발작증을 일으켜 픽픽 쓰러지는 마이크의 모습이 결국 리버가 아스팔트 위에서 맞이한 차가운 죽음과 오버랩될 수밖에 없지만, 그건 정말 어쩔 수 없지만, 아스팔트가 차갑지도 않더냐, 그렇게 잠이 오더냐,고 말이다. 이제 제대로 길을 찾았냐고 말이다. 추워, 추워, 추워...

◆ 보고 싶다... 듣고 싶다...

<아이다호>는 천상 한 여인도 떠올린다. 라디오 방송에서 리버 피닉스의 죽음을 이야기하다가 애처로이 울먹이던 그 여인, “리버 피닉스의 <아이다호>, 정말 좋지 않으세요”라며 느.닷.없.는. 질문을 던지던 그 여인, 소외받은 영혼들에게 끊임없는 애정을 보여주고, 영화와 세상의 연결고리에 자신만의 색깔을 입혀 넌지시 건네던 그 여인. 고 정은임 아나운서.

그로 인해 <아이다호>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일종의 컬트로 소수에 의해 회자되던 이 영화를 작은 목소리, 큰 울림으로 알려주었다. 갑작스런 사고로 이승과의 인연을 끊었던 그도 우연찮게도 ‘길’을 그 배경으로 했다. 어쩌면 그렇게 좋아했던 리버와 <아이다호>와의 인연 때문이었을까. 하늘은 이제 그녀에게 더 이상 경계가 되지 않았고, 리버와의 만남은 성사됐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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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다호로 가기 위해 마이크는 끝없이 나 있는 길 위를 걷고 또 걷는다.


하지만, 박제된 것이 아닌 그녀의 생생한 목소리가 너무도 듣고 싶고, 단 한순간, 짧은 찰나가 될지라도 길 위의 감식자였던 리버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 그것이, 길 위에 여전히 남아 단 한번의 삶을 꾸려나가는 자의 이루지 못할 소망이다.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2007.08.22 15:13 메종드 쭌/무비일락
장마 뒤 간간히 흩날리는 소낙비와 함께 폭염이 한창이다. 최근 한국에서 쓰이는 가장 흔한 말이 '덥다' 아닐까. 탈출하고 싶고, 피서하고프다. 대구시에서는 오죽하면 "더우면 은행으로 대피하라"고 하겠나. '폭염 발생 시 시민행동 요령'이라나. 거참, 전쟁이 발발한 것도 아닐진데, 그만큼 폭염이 무섭긴 무서운가보다. 진짜 그렇긴 하지.

(폭염을 피해) 이 땅에서 탈출하면 좋겠다,
라는 생각도 잠깐. 지구 여기저기가 이상고온 즉,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온통 불볕더위란다.
그나마 남반구로 가면 낫겠지.

아직 휴가를 가지 못했다. 언젠가(조만간!) 휴가를 떠나겠지만,
이 폭염을 아직은 견뎌야 한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뭐?
엑~스피드는 아니고.
가슴과 머리가 뻥 뚤릴만한 씨~원한 영화.

그래서~
<폭풍 속으로>!
무엇보다 거부할 수 없는 파도의 유혹.
저 높디높은 파도를 보자면 그저 온몸을 투항하고 싶을 정도니까.
직접 가진 못하더라도, 그저 브라운관 속의 파도일지라도, 내 마음이 시원해지길 바라면서.
공상이라도, 망상이라도 좋다.
나도 혹시 서퍼가 된다고 나설지 누가 아는가.
삶이 때론 그러하듯, 병적인 유머센스가 혹 발휘된다면.

그래, 끌(꼴)리면 질러야 하는데, 지르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을 향한... 된장!!!

몇년 전 긁적인 <폭풍 속으로> 관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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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l all be planing out a route
We're gonna take real soon
We're waxin' down our surf boards,
We can't wait for June
We'll all be gone for the summer,
We're on safari to stay
Tell the teacher we're sufin
'Surfin' U.S.A...

- Beach Boys의 노래, < surfing U.S.A. >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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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명 : 폭풍 속으로 (Point break, 1991)
감   독 : 캐서린 비글로우
주   연 : 키아누 리브스, 패트릭 스웨이지

◐_ 북치고 박치고, 그리고 파도치고

여름, 가슴 속까지 시원해지고 싶다. 무엇이 있을까. 공포와 오싹함만이 더위를 ‘물렀거라~’ 하지 않는다. 저 끝없이 펼쳐진 파아란 바다는 어떤가. 세상을 집어삼킬 듯 밀려드는 거대한 파도. 그 집채만 한 파도에 온 몸을 맡기는 서퍼들. 하얗게 부서지고 산산조각 나면서 튀기는 파도. 이만하면 일상에 찌든 회색빛 거대도시의 찌꺼기는 한방에 ‘아웃’이다.

그래, 바다가 있다. <그랑블루>에 심연의 도저한 매력과 아름다움이 있다면, <폭풍 속으로>는 거친 바다 표면의 변화무쌍함을 다룬다. 굴곡 많고 당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는.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파도타기의 매력. 그 유혹은 거부 불가능이다. 무섭게 덮치는 파도의 위협 앞에서 ‘파도를 탄다’는 사실은 모든 것을 덮는다. 파도는 열차마냥 서퍼들을 태우고 마구 치달린다. 아드레날린이 분출하기 시작한다. 황홀감,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짜릿함. 북치고 박만 칠 것이 아니라 파도를 치자. 그게 정 안 되면 <폭풍 속으로> 빨려 들어가 보는 거다. “끌리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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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사나이 대 사나이, 연애하다

마초들에게 ‘싸나이’란 단어는 주술과도 같다. 논리나 근거를 갖고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이다. ‘싸나이들의 세계’라는 말로 울타리를 쳐놓고 함부로 침입을 허용치 않는다. <폭풍 속으로>의 마초들도 그렇다. 전도유망한 풋볼선수였다가 부상 때문에 FBI수사관이 된 죠니 유타(키아누 리브스)와 은행을 터는 서퍼들의 두목, 보디(패트릭 스웨이지)가 그렇다.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각자의 처지지만 그들은 ‘통(通)’한다. ‘파도타기’와 ‘스카이다이빙’이라는 매개를 통해.

그래서 <폭풍 속으로>는 사내들의 ‘연애’이야기다. 서로에게 끌리고 반하는데 뭐 특별한거 없다. 서로 총구를 들이댈 수밖에 없는 ‘숙명’이라도 ‘끌리면 가는’ 거지. 그들은 서로를 알아본다. 반항적이고 극단적인 삶을 사는 죠니의 이면을, 세상에 대항하고 비판적인 보디의 그늘을. 그들은 파도 앞에 겁대가리없이 덤벼드는 'Fucking Crazy Men'이며 파도로 맺어진 숙명이다. “다음 생애에서 보자”는 보디의 말은 솔직한 자기 고백이다. “끌리면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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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 일생을 확 바꿔놓은 서핑

죠니의 실수라면 “(서핑이) 일생을 확 바꿔놓을 지도 모른다’는 서핑가게 점원의 얘기를 귀담아듣지 않은 것이다. 하긴 그걸 누가 알겠어. 서핑이 죠니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줄. 사랑, 우정과 같은 연애사의 등장도 그렇지만 죠니는 미련없다는 듯 FBI신분증을 훌러덩 버리기까지 한다. 결국 죠니가 보디를 파도 속으로 보낼 수밖에 없는 이유도 다른 무엇으로도 설명 불가능. 거기엔 서핑이 있을 뿐이다. 통하는 사람이 ‘좋아라~’하는 것을 해주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다. 

대략 난감해지는 한이 있어도 인생은 때론 병적인 유머센스가 발현된다. 일생에 한번 오는 유일한 기회란 게 있다. “평생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는 말을 가능케 하는 것. 그것은 한편으로 두렵지만 100% 순수한 아드레날린이다. 고장만 나지 않는 비행기에서 떨어지는 기분, 그 짜릿함과 대면하고 싶지 않은가. 넙죽 입을 벌린 파도 앞에 ‘난 죽을 거야’라고 말하면서도 손을 힘차게 내젓는 무모함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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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헤이~ 락앤롤

<폭풍 속으로>는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미친 듯 몸을 맡겨도 좋으리라. 거기 삶이 있다면. 파도가 됐건, 하늘이 됐건, 빌딩 숲이 됐건...” 삶의 궁극은 그런 거다. 추구할수록 마땅한 댓가를 받고 치루기도 하는 것.

그런데 그 댓가는 사후적이다. 모르니까, 모르니까 무작정 뛰어드는 거지. 알고 하는 짓은 심심하다. 인생은 한치 앞을 몰라서 좋다는 말. 때론 진실이다. 그래서 미쳐보란 얘기도 나오는 거지. 삶의 포인트는 ‘끌리면 하라’에 있다. 아니면 ‘꼴리는 하라’다...^^;;;

헤이~ 락앤롤(Rock & Roll), 파티 시작이야!  (2004. 7 오픈아이)


P.S... 이 영화를 통해 초절정슈퍼울트라꽃미남 키아누 리브스의 앳띤, 솜털 뽀송뽀송한 시절을 볼 수 있다는 건 덤이다. 그리고 감독인 캐서린 비글로우는 <터미네티어> <타이타닉>의 감독, 제임스 카메론의 전 부인이었다는 사실. 요즘은 뭐 하시나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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