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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8 14:39 메종드 쭌/무비일락
지난 12일 폐막한 12회 부산국제영화제(PIFF).
9편의 시네마 혹은 세계와 조우했고,
행복한 시네마 유람이었다.

그리고 PIFF리뷰에 올린, 어설프게 갈겨쓴 세편의 감상문.

좀더 많은 에드워드 양 감독님의 유작들을 보지 못한 아쉬움도 있지만,
<마작>(Mahjong)이라도 봐서 다행. 10여년 전의 장첸도 나오더군.

도시와 청춘에 건네는 편지


그래, 그땐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어디에도 끼일 틈이 없어 부유했고, 도시는 그런 부유하는 나를 음흉한 미소로 부추겼다. 그래서 도시와 청춘은 때론 함께 부유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지 않은가도 싶다. 너희들을 보면서도 그랬다. 도시는 정글과 같았고, 그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청춘은 도시를 이용하지 않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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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작>의 한 장면. 출처 : www.piff.org


너희들을 마주하면서 그랬다. ‘그래, 타이베이라고 다르지 않겠지.’ 96년 작품이라지만, 나는 어떤 지금과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고 실토해야겠다. 도시는 여전히 욕망을 머금고 있고, 그의 산물인 너희 청춘들도 그 욕망에 사로잡힌 포로.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인정투쟁’은 자연스러운 욕구다. 그래서 너희들의 투정에 나는 마음이 갔다. 너희들을 한때 키워주던 가족이나 기성세대는 더 이상 너희들을 보호하지도 못하고, 존경받을만한 사람들도 아니었잖아. 마음 붙일 곳을 상실한 청춘이 도시에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겠니. 그저 그것을 비웃고 외면하는 수밖에.

그렇다고 너희들이 그것을 제대로 조롱하고 뛰어넘을 수 있는 단단한 무언가를 갖추지도 못했잖아. 너희들의 사기, 구라, 사업(?)은 결국 낙오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싶다. 누구도 너희들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알 수 있게끔 알려주지도 않고, 기성세대는 그런 책임에 무심했잖아. 역할모델이 다 뭐야.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전고투할 수밖에 없는 비정한 도시의 얼굴. 비극이지, 비극. 신흥도시였던, 타이베이 역시 그렇게 제대로 된 근대화를 겪지 못한 채 숨가쁘게 달려가기만 했으니까.

그래, 너희들에게서 그런 공통분모와 연민을 느낀 건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였을거야. 이 곳 역시 이른바 ‘아시아의 4룡’으로서 한때 맹위를 떨쳤지. 너희 나라와 같은 테두리에서 비슷한 궤적을 그렸더랬지.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경제성장’이라는 화두에 탐닉해서 속도만 낼 줄 알았지, 브레이크가 고장된 것은 알지 못했던. 국제화된, 메트로폴리탄이 되고픈 도시는 결국 외국인들의 도마에 오른 먹잇감이었던 거겠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뒤틀린 욕망게임.

도시고, 청춘이고, 영혼은 따라가지 못하는데, 몸만 멀찌감치 앞서 나가고 비대해지다 보니, 결국 파열음이 나기 마련이지. 물론 그 속도에 잘 편승한 사람이야 다르겠지. 하지만 그 사이에 끼인 엉거주춤한 청춘은 어디에도 마음 둘 곳 찾지 못한 채, 살아남기 위해 악다귀 같은 전투를 벌여야 하잖아. 상실의 시대를 관통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뭐? 그래, 부유하는 것이지. 진짜 내가 원하는 욕망을 알지 못하는 자들의 유일한 선택.

홍어(콩센탕)가 늘 ‘No problem’을 입에 달고 사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었어. 그런 어디로도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을 위로하기 위한, 무의식적인 자기 위안의 말. ‘No problem’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어디에도 없었지만. 결국 스스로를 기만할 수밖에 없었기에 그는 비극을 맞닥뜨리게 된 거겠지? 어디에도 구원이 없었으니까. 아버지의 자살 또한 기댈 언덕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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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작>의 한 장면. 출처 : www.piff.org


그 와중에, 제국주의적 성향을 지닌 서양인들이 너희 도시를 장악함으로써, 너희들을 더욱 발붙일 곳 없게끔 만들지 않았을까도 싶다. 홍어가 마르타(비르지니 르도엥)에게 보였던 가식적인 친절은 그래서 나온 것이지. 10년 뒤면 타이베이가 세계의 중심이 될 거라며, 19세기에 이어 21세기에도 제국주의가 영화를 누릴 것이라며, 그래서 여기에 있는 것이라던 데이빗의 말은 너희들이 발붙이고 있는 땅이 어떻게 되고 있단 걸 보여주잖아. 도시는 비열했고, 어떻게든 이익을 건사하려는 서양에서 온 자본 혹은 이익집단의 욕망이 들끓더라. ‘문명’과 ‘근대화’에 대한 우월의식 때문인지, 뒤틀린 생존욕망을 그대로 전이시키고 있는 그들의 흉포함도.

물론 데이빗을 찾아 대만까지 온 마르타가 이말 직후에, 자신을 진심으로 보호해 준 뤤뤤(고웨린)을 다시 찾아가 나누는 키스는 일말의 희망을 안겨다 준 것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어. 마냥 흑색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에드워드 양 감독님의 메시지였을까.

홍콩(장첸), 너의 울음도 어떤 새로운 징조인 것 같았다. 갑작스럽고 뜬금없어서 어이없이 웃긴 했지만, 울음으로 대신하면서 끝끝내 그 이유를 말하지 않은 것에 어쩐지 마음이 가더라. 연상녀들의 육체와 음식 파상공세에 울음을 떠뜨리면서 자신의 욕망을 대한 자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고.

나는 그렇게 너희들을 통해 우리네가 살았던, 살고 있는 한 풍경들을 엿봤다. 사실적인 근거에 바탕을 두고 도시와 청춘, 그리고 사람살이를 관찰하는 에드워드 양 감독님의 현미경을 통해. 여전히 나는 그래서, 에드워드 양 감독님이 그립네. 그래, 이만 안녕.

2007/07/02 - [메종드 쭌/시네피아] - "저도 늙어간다고 말하고 싶어요..."... 에드워드 양 감독의 유작 <하나 그리고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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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작>의 촬영장면. 에드워드 양 감독님과 장첸을 볼 수 있다. 출처 : www.piff.org


2007/10/21 - [메종드 쭌/시네피아] - 특별할 것 없지만, 특별한 마을을 찾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
2007/10/19 - [메종드 쭌/시네피아] - 너는 상상하고, 나는 즐겁고… <엑소더스>(Exodus)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9월30일. 9월의 끝머리엔 결국 '제임스 딘(James Dean)'이 다가온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지만, 내 방에도 지미(제임스 딘의 애칭)형의 브로마이드가 장식하고 있었지. 그의 어떤 영화도 제대로 본 적이 없고, 어떤 상징적 의미를 갖는지 알지도 못하던 소년의 방으로까지 파고들었던 그 청춘. 나는 그저 반항끼 줄줄 흐르던 그의 간지와 눈빛에 매료됐었던 것 같다. 더구나 포르쉐(!)를 몰다가 스물 넷에 장렬하게 산화했다는 이야기에 혹하지 않을 재간이 없던 나이 아니었겠는가.

스물 넷은 그런 나이일까. "아직도 내 자신의 몇 분의 일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산다는 것에 설렘을 느낀다"던 지미 형이었지만, 죽음 또한 그보다 적지 않은 설렘을 안겨주었던 것은 아닐까. 스스로 산화를 택했는지는 여전히 모를 문제지만,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차사고는 왠지 모르게 청춘의 작렬처럼 느껴진다. "빨리 살고, 일찍 죽는다.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남긴다 (It lives quickly, it dies early. It leaves a like that most beautiful love...)"고 말했다던 그의 어록에 기댄다면 말이다.

이렇게도 말했다고 하더라.
"사람이 진정으로 위대해지는 것은 한 가지 경우뿐이다.
만일 사람이 삶과 죽음 사이의 간극을 넘을 수 있다면,
죽은 뒤에도 살 수 있다면 그 사람을 위대한 사람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어쨌거나 빠른 속도로 살아야 한다."

그래, 빠른 속도로 시간은 세월을 집어삼켰고, 벌써 52주기. 1955년 9월30일 오후 5시 59분, 미국의 하이웨이 46과 41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24살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사망. 그가 타고 있던 차는 컨버터블인 '포르쉐356'. 이번주 나의 영화주간엔 어쩔 수 없다. 지미 형.
☞ 제임스딘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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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이르는 병, '사랑'

'제임스 딘의 순정'(리버룸) 이라는 블로깅을 보자니,
멋대로 추측하자면, 지미 형을 영원한 청춘의 초상으로 만든 결정적 계기 중의 하나는 결국 '사랑'이 아닌가 싶다. 덴마크의 사상가, 키르케고르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죽음에 이르는 병'은 절망이며, 절망은 자기상실이라고 했다. 연인이었던 '피어 안젤리(Pier Angeli)'를 타의에 의해 떠나보낸 뒤 상실감과 절망은 커져가고 있을 터. 더구나 그들을 떼어놓은 중요한 이유가 종교라니.-.-;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연인을 떠나보내야 했던 그로선 감당하기 힘든 노릇이 아니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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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지미 형에게 사랑은 '절망'의 다른 이름이 아니었을까. 절망을 이겨내기 위해 청춘은 과도한 속력을 냈고,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억측.^^; 그의 애마, 포르쉐는 그런 마음을 알고 있었을까. 삐끗하면 와장창 부서질 것을 알면서도, 공기를 가르는 강한 바람이 아니고서는 그 절망감을 씻을 수 없었을지도 모를 일. 나는 한편으로 안타깝다. 종교적인 이유로 헤어짐을 강요받고,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그 사랑을 폐기처분해야 한다는 비극때문에.

지미 형의 산화는 단순히 한 사람의 죽음으로 끝날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모를 일이지만, 피어 안젤리는 그의 죽음으로 얼마나 많은 죄책감에 시달렸을까. 결국 지미 형 대신 선택한 사람과 이혼하고 39세의 나이로 생을 스스로 마감했단다. 피어는 죽기 전에 "진정 사랑했던 사람은 지미, 한 사람밖에 없었다"고, 살아 생전에도 "나는 남편을 바라보며 늘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가 지미였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했다고도 한다.

에휴. 대체 그 '사랑'때문에 몇 사람이 다친거여. 사랑했던 두 사람도 그렇지만, 결혼했다가 이혼한 피어의 전 남편은 또 어쨌을꼬. 두 사람의 사랑이야 세기의 사랑이니 뭐니하면서 이렇게 여러 사람에게 회자되겠지. 그러나 거기서 엉뚱하게 파편이 튄, 그들의 사랑의 신화를 공고하게 만들어준 들러리로 전락한, 그 사람의 마음에도 괜한 신경이 쓰인다. 그도 피어를 사랑했겠지. 그렇다고 피어의 마음을 모르지도 않았을테지. 상처 입은 그 마음. 누가 알아줄꺼나. 휘유~~~

어쨌든 사랑은 어떻게든 답이 안 나오는 문제다. "우리 사랑하게 해 주세요~ 네에"라고 외친다고 될 문제도 아니고. 복잡해 복잡해.

배우, 그 이상의 배우

사실 지미 형은 필모그래피만 놓고 보자면, 이렇게까지 추앙될 배우는 아니야. 생전 알려진 영화래야 고작 3편. <에덴의 동쪽> <이유없는 반항> <자이언트>. 그 중 두편의 영화도 사후에 개봉했었지. 그리고 TV 1편과 단역 2편 합쳐봐야 그가 출연한 필모는 많아야 6편.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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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형은 배우 이상이라고 봐야지. 사람들은 배우보다는 '제임스 딘' 그 자체로 바라보고 좋아하고 사랑한다.
그래서 '좋은사람'님은 이런 말을 건넨다.
흔한 말이지만 사실 '청춘의 심볼'이란 표현은 그에게 적절하다. 소년들은 그 에게서 자기가 꿈꾸는 모습을, 소녀들은 자신이 꿈꾸는 연인을 발견하고, 중년의 남성들은 그에게서 자신이 잃어버린 모습을, 중년의 여성들은 그리운 첫사랑의 모습을 만나는 것이다. 그가 바로 제임스 딘이다.

그가 세상을 등질 그 나이무렵, 지미 형의 초상이 담긴 우표를 샀던 나는 아직도 지갑 속에 그것을 간직하고 있어. 시대도, 문화도, 전통도 싸그리 다른 나라의 한 찌질한 청년이 아.직.도. 그를 그리고 있다는 사실. 이건 놀라운 일이 아니냐? 1931년 2월8일(내 생일과도 비슷한 시기다!) 태어나,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그것도 스물 넷이라는 나이에 장렬하게 요절한 그 사람을 이렇게 추모하고 있단 것이! 그의 얼굴이나 작살간지가 담긴 포스터, 티셔츠, 엽서, 우표 등은 전세계에서도 엄청 팔려나가지.

확실히 지미 형은 뭔가가 있던 양반이었던 것 같아. 본인이 의도하건 그렇지 않건. 사고 소식이 전파되자, 팬들은 큰 충격을 먹었지. 한 10대 소녀는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했다지. 셀리브리티(유명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동조현상이 일어나는 일명 '베르테르효과(Werther Effect)'인데, 스스로 산화한 것인지, 불의의 사고였는지,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그런 일도 있었던 거야. 이태리에서는 대학생들이 집단 가출해 거리의 여자가 되었다는 설도 있던데, 글쎄 사실여부는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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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애나주 페어몬트에 자리한 지미 형의 무덤에는 매년 6천 명 이상이 방문한다더군. 오늘은 평소보다 더 많은 사람이 오가겠지. 2년 전에는 비록 적자로 끝나긴 했지만, 고향인 인디애나주 마리온시에서는 50주년 추모제도 열렸고 어제 홍대 부근에선 그를 그리는 팬들의 추모 행사도 있었다. 못가서 아쉬웠지만.

그렇게 시간은 부지런히 사람들을 갈아치웠지만, 지미 형은 시간을 삼킨 채 사람들 사이에서 머물고 있어. 영원히 지지 않는 청춘. 죽어서 신화가, 전설이 된 청춘의 대변자이고 만신전. 그렇지 않아? 반항과 청춘의 아이콘이면서도 작은 충격에도 부서질 듯 애틋한 마음을 지녔던 한 사내. 그 불안감이 더욱 청춘들을 끌어당긴 건 아니었을까. 우리를 대변할 존재가 나타났다는 그런 마음.

그 사내, 아직도 달리고 있을까

지미 형의 별명은 'Dirty Shirts(더러운 셔츠)'였다. 제2차 세계대전의 후유증과 기성세대의 경직성과 획일성이 지배하던 시기, 젊은이들은 숨이 막혔고 자유스러움과 다양함에 대한 욕구가 거칠게 꿈틀거렸다. 구기고 오물을 투척해야 했다. 앞선 세대의 질서와 체제에. 셔츠가 더러워질 정도로. 그렇게 젊은이들이 반항의 깃발을 꼽고 바리케이트를 쳐대고 싶었을 즈음, 그의 등장이 젊은이들의 숨통을 틔워줬다. 젊은이들의 욕구를 대변했다는 <이유 없는 반항>을 보자규. "10년 뒤엔 알게 될 거다"라는 아버지의 말에 아들 역의 지미는 들이대잖아. "당장 대답이 필요해요"라고. 그렇게 기성세대에 대한 젊은이들의 반항심을 대변하는 존재였다. 그는.

나는 생각해. "빨리 살고 일찍 죽는다..."는 지미 형의 말이 1950년대 나타난 비트족(beat generation)의 슬로건이 된 것은 당연하다고. 기성세대에 상처 받고 반항하고픈 이들의 마음을 대변했기에. (그가 산화한 뒤인 1956년 앨런 긴즈버그(Allen Ginsberg)의 장시 《울부짖음 Howl》, 1957년 잭 케루악(Jack Kerouac)의 장편소설 《노상(路上)》 발표 후 '비트족'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됐으니 아마도 그의 영향이 미쳤지 않나 싶다.)

당시 비트족은 어떤 정치적 운동보다 기성질서에 대해 급진적인 도전에 나섰어. 그것은 지미 형을 에워싼 아우라와 다르지 않았던 게지. 직업, 가족(특히 아버지), 안전, 유보된 형태의 모든 만족을 우둔하고 체제순응적인 것으로 간주한 비트족은 즉각적인 쾌락을 추구했고 술, 마약, 범죄, 동양철학 등에 탐닉해 더 높은 진실을 찾아 나서는 것을 모토로 삼았다. 그래서 10년 뒤엔 알게 될 것이란 아버지의 말에 당장 대답이 필요하다고 반항한 것처럼, 아버지와 절연하면서 연고 없이 생존하려 했었다. 그가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던 고백마냥. 또 비트족이 히피, 펑크 등으로 이어졌음을 감안하면, 그는 후대의 청춘들에게 분명 선지자였음에 분명하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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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 말하지만, 지미 형은 단순하게 배우로만, 스타로만 그친 사람이 아니었던 듯 싶어. 본인의 의사로 그리 된 것은 아니겠지만, 그에겐 당시의 시대와 사회상이 투영돼 있음을 부인할 수 없잖아. 그래서 시대와 청춘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것일테고. 물론 지금이야 어디 그렇나. 자본이라는 거대한 손은 이제 청춘의 반항심마저도 상품화하는데 주판알을 거침없이 튕구고, 청춘은 그런 자본에 포획되고 있잖아. 사실 오늘날 지미 형은 삐뚜룸하고 반항적인 표정으로 박제된 채, 끝없이 복제되고 소비되는 일종의 '상품'이 돼 버렸잖아. 당대의 문화적 아이콘이 지녔던 아우라나 표식은 거세된 채.

지미 형이 더 오래 살았다면, 그도 할리우드의 자장에 포획당했을까, 아니면 다시 그곳으로부터도 뛰쳐나갔을까, 나는 그것이 궁금해. 흠 어쩌면 소비적인 이미지에 반역을 꾀하고, 포획당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서, 자신이 알아서 일찍(!) 산화한 것은 아니었을까. 역시 나의 억측! ^^; 그는 저 구름의 저편에서는 얼마나 속력을 내면서 달리고 있을까. 오빠~ 달려~~~

지미 형이 생전에 기자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라는데,
Being a good actor isn't easy,(훌륭한 배우가 되는 것은 쉽지 않지)
Being a man is even harder,(사람이 되는 것은 더욱 어렵지)
I want to be both before I'm done.(나는 죽기 전에 둘 다 이루고 싶어)
글쎄,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너무 일찍 생을 마감해서 아쉬워하고 있을까.
그가 남긴 말처럼 죽은 뒤에도 살아 있으니 '위대한 사람'이라고 불러도 되려나.
나는 모르겠고,
다만 확실한 것은,
피어 누나를 포르쉐 옆좌석에 태우고 더 이상 '절망' 없는 사랑을 하고 있을테지.

형아, 그 청춘이 다시 보고 싶소이다.
누군가 그러더이다.
형이 갑작스레 그렇게 산화하면서, 모든 스타는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대신 구름의 저편에만 스타가 존재한다고. 어떠우? 만족하시우?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후딱 가버린 건 알겠으나,
괜찮다면 우리 청춘의 길 좀 다시 알려주시오. 이정표만 덩그러니 세워놓지 말고.
아, 이렇게 9월이 가는구료.
전혀 뜬금 없는 얘기지만,
형아도 버마의 민주화 시위를 함께 지지해 주심이 어떨런지...
이왕 달리고 있다면 버마의 구름이 있는 쪽으로 속력을 내주시겠소? 군부를 확 치어버려두 좋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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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2007.06.04 11:27 메종드 쭌/무비일락
2002년 여름, 전국이 월드컵으로 들끓던 시기에 외따로 만난 영화. 그래서 내겐 6월의 영화. <후아유>!

국정브리핑에도 올렸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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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아름답다”는 식의 청춘예찬은 결코 식상해질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어떤 낯두껍을 하고 있어도 청춘은 한없이 투명에 가깝다. 누가 청춘을 비하해도 그건 진심이 아니다. 청춘은 그 이름만으로 가슴을 설레게 한다, 머리끝까지 피를 역류시키게 만든다, 식은 심장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건 청춘이기 때문이다,라는 이유밖에 없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통해 숱한 경구로 장식된 ‘청춘’의 이름은 시대와 사회상을 반영하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어느 순간부터 일정 시기의 청춘을 특정한 말로 규정하고픈 욕망이 꿈틀거렸다. X세대, N세대, W세대, P세대 등등 청춘은 시시각각 다른 닉네임을 얻기도 했다. 무한한 가능성과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각종 문구는 카멜레온처럼 수시로 바뀌는 청춘의 빛깔을 대변한다.

그런데 그것들을 어떤 식으로든 규정짓거나 정의하는 것과 별개로 ‘정체성’은 청춘의 한 페이지에 빼곡하게 들어찬 화두다. 끊임없이 자신과 주변을 되묻는 과정은 통과의례이며 위태로운 외줄타기 또한 타당한 수순이다.

<후아유>는 그런 청춘의 한 단면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팔딱대는 청춘의 감성을 길어내 스크린 상에 펼쳐놓는 감각은 예사롭지 않다. 아바타, 채팅, 게임 등 네트워크 세대의 아이콘을 소재로 활용해 사이버와 현실의 간극 속에서 ‘정체성’을 되묻는 작업까지. 아날로그적 정서와 디지털 감각의 융합이 돋보인다. 복합적인 청춘의 정서를 ‘딱히 이것이다’라고 정의 내릴 순 없지만 말이다.

그런 한편으로 청춘의 한켠에 자리한 흔들림도 함께 포착된다. “불안하다. 내 미래가, 내 인격이, 내 사랑이... 다 불안하다”는 대사는 청춘이 맞닥뜨린 현실과 불안감 등을 집약한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변덕스런 청춘의 자화상, 맑음과 흐름이 수시로 교차하는 청춘의 날씨는 머나먼 항해를 떠나는 선박이 만나는 바다의 표정과도 같은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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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상에서 아바타를 만들어 ‘또 다른 나’를 만드는 ‘젊은 세대’의 감성은 디지털과 어떤 동고동락을 이룰까? 인주(이나영)와 사이버 분신(ID 별이), 형태(조승우)와 사이버분신(ID 멜로) 사이를 오가는 사각관계의 영상은 신선한 감각의 멜로영화를 표방하는 상징이다.

‘1인칭과 2인칭의 3각관계 4랑법’이란 독특한 카피를 통해 <후아유>가 되묻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과 답변. 네 가지 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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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1. 준비하시고 쏘세요. - 파트너 선택, 자기소개하기

◎ 디지털로 대변되는 21세기, 네트워크의 확산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만남을 어떻게 형성하고 자신을 어떻게 드러내게 되는 거지?

★ 별이 : 글쎄,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코드는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을 늘려놓은 것 같아.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나를 대신하고 아바타로 ‘또 하나의 나’를 상징하게끔 하는 거지. 나를 표현하는 다양한 기호들 속에 숨거나 갇혀버릴 수도 있고 자아가 확장되거나 혹은 변질되는 경험도 가능하게 된 거지. 일상에서의 나와 사이버에서의 나를 분리하느냐 동일시하느냐의 문제도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

어쨌든 사람과 사람사이의 만남이 대면접촉을 통하지 않고서라도 가능한 기회는 늘어난 셈인데... 만남의 진실성은 보장받지 못한다는 단점도 있는 것 같아. 사람과 사람사이에 다리가 더 놓여졌지만 어느 다리가 튼튼하고 건너기가 좋은 지는 쉽게 단정할 수 없는 것 아니겠어? 멜로는 어쨌든 사이버상이지만 내 힘든 과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고 날 이해해줬다는 생각이 들어.

♥ 멜로 : 별이와의 만남은 우연이야. 별이가 베타테스터로서 ‘후아유’게임을 비방하는 글을 적었는데, 이런! 같은 빌딩에서 근무하네. 한 건물에서도 모르고 사는 게 대개의 사람살이일 뿐인데 괜히 호기심이 가더라구. 결국 사이버상에서 발견된 그런 작은 요인들이 서로에게 다가설 수 있는 작은 요인이 된 셈이지.


그런데 그 캐릭터가 승부욕에 불타고 있더구만. 매일 30층을 뛰어오른다는 조직의 일원이라는 별이가 궁금해졌어. 다른 건 없어. 우연한 네트워크상의 만남으로 서로를 알게 되는 과정을 겪었고 감정의 변화를 겪었을 뿐이야. 오프라인상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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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2. 꽂히셨나요? 데이트를 시작하세요 - 커플게임 선택하기


◎ 그럼 현실과의 차이는 어때? 서로간 정보가 불평등하게 형성됐는데 사이버에선 둘도 없고 현실에선 싸우고 엇갈리고... 그건 서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거 아냐?

★ 인주 : 현실과의 차이는 별로 고려하지 않았어. 세상 모든 것과 헤어진 3년 전 그 날부터 자폐소녀였던 내가 멜로를 만나면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과거를 열었어. 목표가 생기면 씩씩해지지만 난 청각장애라는 것 때문에 누군가의 동정을 받고 싶진 않아. 사이버에서 난 청각장애가 아냐. 그래서 현실과는 약간 달라.

누군가에게 일부러 과거를 알려줄 필요는 없지만 투명인간 친구를 가지고 싶었어. 만나는 것도, 전화도 안돼, 그러나 사이버에선 곁에 있을 수 있는. 굳이 현실과 사이버에서 똑같아지려고 애 쓰진 않아. 전적으로 한 쪽에 기울어진 사람은 없으니까. 그런 면에서 멜로는 훌륭한 투명인간 친구였어. 샅샅이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날 잘 알고 내 힘든 고백을 처음으로 들어줬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거지.

♥ 형태 :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사이버와 현실 양쪽에서 그녀를 동시에 알아가는 게 불평등한 건 분명하지. 어쩌면 현실에서 그녀를 알지 못했고 그렇게 이쁜 여자가 아니었다면 접근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지. 과거 역시 한 몫 했을 테고. 솔직히 얘기하면 우리가 커플이 된 건 정보의 비대칭성에서 빚어진 나의 작업의 결과였을 지도 몰라.

인주에게 사이버에선 선택됐지만 현실에선 돈만 아는 속물로 받아들여지는 웃긴 관계야. 사이버상의 멜로를 현실의 내가 질투한 거야. 현실과 사이버를 오가며 겪은 삼각사랑! 웃긴 일이야. 나는 하나인 데 상대방에겐 난 두 존재야. 정체성의 혼란을 느낄 만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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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3. 둘만의 공간을 원하시죠? - 아지트 만들기

◎ 사랑하는 사람들, 아니 사람들은 주변에 되묻지. “날 잘 알아?” 그리고 그렇게도 요구하지. “널 알고 싶어”라고.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다른 사람을 알아간다는 건 어떤 거지?

♥ 형태 : 글쎄, 다른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것만큼 나를 아는 일도 만만치 않아. 누군가에겐 곤혹스럽기도 하고 당연히 스스로에게 해야 할 질문이기도 하지. ‘나와 너’는 도대체 누구이지? 그리고 우린 자신을, 서로를 얼마나 아는 걸까? 혼란스럽긴 매 한가지야.

하지만 이건 확실해. 내 정체성을 형성하는 부분 중에 ‘사랑하는 너’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너의 정체성에도 ‘사랑하는 나’가 있었으면 한다는 것. 내가 보지 못하는 뒤통수를 넌 볼 수 있듯이, 너의 뒷모습에서 나만이 알 수 있는 그런 느낌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어.

★ 인주 : 멜로는 그랬어. ‘투명하게 다가서고 싶은 날, 하고 싶은 말이 터져 나오는 날, 나를 불러’라고. 친구가 생겼다는 것이 기뻤어. 어떤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인지, 알지 못할 수도 있어. 현실 속에 있는 내가 진짜라고 믿고 싶지만, 넷상의 나를 ‘저건 내가 아니야’하고 단적으로 거부할 수도 없어. 어차피 난 단 하나의 단어나 문구로 명확하게 설명되는 존재가 아니야. ‘난 이중인격자가 아닐까’하는 자괴심이 들 수도 있지만 전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사람은 없다는 걸 알아.

♥ 멜로 : 인정해. 내가 비록 형태의 사이버 ‘분신’이자 ‘아바타’라고 하지만 형태와 별개로 생각할 순 없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천만에! 다만 형태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야. 어느 쪽이든, 그것은 다 한 사람이 가진 분신이자 아바타인 것을 인정하면 되는 거지.

한 사람을 단 한마디로 단정 짓는다는 건 웃기고 건조해. 상대적인 데다 사람을 규정하는 것은 각자의 해석일 뿐이고 겪어보지 않고 다른 사람을 평가한다거나 선입견을 가지는 건 우스운거야. ‘걘 이래’라고 말해서 그렇게 규정된 상태에서 ‘이렇지 않은 것’을 했을 때 용납하기 어렵게 돼 버리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잖아.

★ 별이 : 정말 착한 것이 어떤 것이고 좋은 사람이란 생각이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구분을 해야 해. 단순히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잘해준다고 해서 ‘착해’라고 규정하는 것보다는 평소 다른 사람에게 하는 행동이나 말도 살피면서 다른 사람의 평가도 들어보는 것. 그것이 다른 사람을 알게 되는 방법이고 나의 정체성을 살피는 한 방법이 아닐까도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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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4. 진짜 사랑을 시작하세요 - 밤새 채팅하기

◎ 불안한 청춘들의 행로가 위태로워도 자리를 찾아가는 건 이상이나 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 꿈을 다른 사람이 왈가왈부할 수는 없고 사랑이 늘 감미롭고 달콤한 것만은 아니란 것도 젊은 날의 통과의례지. 어정쩡한 3각관계 4랑법을 관통하는 기분은 어때?

★ 인주 : 세상에서 가장 높은 호수인 ‘티티카카’에서 수영하고 싶다던 내 얘기... 거기서 수영하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수영하는 셈이잖아. 그건 이상을 가지고픈 젊음이 품은 이야기야. 이루기 힘들기 때문에 매력을 가질 수밖에 없는 젊은 날의 한 자화상 같은 거.

내가 청각장애인인 건 사회적으로 ‘장애’를 얘기하자는 의도는 아냐. 어쩌면 혼란스런 청춘의 시기에 앞선 세대가 만들어놓은 세상과 단절될 수 있는 현실 속에 위태롭게 서 있는 모습을 상징한 거지. 하지만 마냥 그러진 않아. 형태와 내가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모습에선 현실과의 연결고리를 찾는 젊음을 드러낸 것이 아닐까.

♠ 형태 : 돈 냄새를 맡아보고 싶었어. 하지만 이른바 대기업이란 안정된 생활을 떠나 벤처에 뛰어든 건,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 도전하고 싶었어. 미래가 불안하지만 내겐 꿈이 있고 도전하고 싶은 가치가 있으며 그 안에서 자아를 찾고 싶은... 완전한 건 없잖아. 그냥 자아는 죽을 때까지 형성되고 만들어가는 거지.

사랑도 마찬가지. 노래방에서 “사랑하고 싶어 이젠, 사랑하고 싶어라”며 불러 제낀 것도 사랑이 주는 달콤함을 그리는 한편 현실은 마냥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알기 때문이야. ‘여자들은 절대 떠나는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는 내 경험도 이미 생채기가 된 채 마음 깊은 곳에 둥지를 튼 아픔이지. 잊은 듯 지내지만 불쑥 불거져서 마음을 태풍처럼 긁고 지나가는 그런 사랑의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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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청춘의 시기에도 꿈, 이상은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다. 팍팍한 일상의 굴레가 수시로 젊음을 몰아세우는 한이 있어도 스스로 선택한 꿈의 색깔 앞에 꼬꾸라질 이유는 없어야 할 터이니.


‘내’가 ‘나’라는 사실조차 낯설었던 소년(소녀)시절을 지나 청춘의 그림을 그리는 시기는 누구에게나 닥친다. 한 가지 바램이 있다면 내가 내 꿈을 꾸는 것이 비난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 청춘은 여러 빛깔의 홍역을 치르면서도 질긴 생명력을 보유한 채 여러 굴레를 넘나든다. 그럴 때 이런 한마디씩은 어떨까.


“Good Luck to You”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