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블로그 이미지
사랑이 아니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야
낭만_커피

Notice

Recent Comment

Archive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692,359total
  • 16today
  • 18yesterday
2011.04.16 23:51 러브레터 for U
우선, 이 노래부터.


무려 8년 만이다. 사랑에 빠졌다. 주말 사랑.
사랑은 하는 게 아니라, 빠지는 거라는 말, 실감한다.

8년 전, 남들 별로 보지 않던 <죽도록 사랑해>를,
죽도록 사랑하면서 본방 사수했었다.
내 주말 사랑이었다.

  사내들의 순정에 대한 보고서(1) … <죽도록 사랑해>
  사내들의 순정에 대한 보고서(2) … <죽도록 사랑해>

허나, 이후 어떤 주말 드라마도(미드를 빼고는),
나를 잡지 못했다! 사랑에 빠질만한 깜냥이 없었다.

그런 나를, 8년 만에 풍덩!
<반짝반짝 빛나는>. 8년 만에 주말 드라마를 챙겨보고 있는 나!@.@

반반빛, 완전 반짝반짝 빛이 난다, 빛이 나!!!

정원(김현주)과 송편(김석훈)의 로맨스가,
오늘 드뎌 오글오글로 본격 시작됨을 알렸도다~
왜 내가 눈물이 글썽글썽하냐!!! (송편에 미친 듯 감정이입?ㅋㅋ)

이름하야,
슬금슬금 어색어색 풋풋상큼 수줍수줍 알콩달콩 두근두근 로맨스~


김현주, 완전 예쁘고, 이리도 예쁜 여자인줄 미처 몰라 미안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이 여자때문에 주말이 기다려지고 설레.
한정원을 연기하는 김현주 같은 여자, 찾습니다!

김석훈, 잘 생기기만 했던 이 남자,
이 드라마에선 쑥쓰러운 무뚝뚝함과 강직함이 매력인디,
 뻥 좀 치자면 나도 무뚝뚝한 것 빼고는, 송편 같은 남자다~
아, 물론 외모는 빼고, 저 얼굴의 반만 닮았어도!!! 캬아, 여자들 다 쓰러졌쓰~

오늘 반반빛, 배시시 혹은 헤벌쭉하면서 본 노총각의 다짐 혹은 감상.

1. 턴 테이블, 마련해야겠다. (자취집에 꼭!)
2. 냇 킹 콜 음악, 마스터해야지. (우쿨렐레로?)
3. 마음 쏙 드는 여자 앞, 부러 커피 엎질러볼까? (흠흠;)

뭔 소린지는, 오늘 반반빛 19회를 보면 알 터이고,
커피 만드는 노총각이 점점 더 미쳐간다고?
혼자서도 잘 노니, 얼마나 좋아.ㅋㅋ

반짝반짝 빛나는.
따지자면, 에쿠니 가오리 때문이었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가운데 마이 훼이버릿!

제목 때문에 호기심이 생겼고, 그만 풍덩 빠져버렸다.
주말이 기다려지고 설레는 이유, 반반빛.

커피가 키스로 이어지는 과정을 알려준 반반빛.
"그래도 손님인데 커피라도 달라"는 여자를 찾습니다.
Soul 36.6에 오시라. 혹시 아나, 달콤한 입맞춤까지 덤으로 받을지.ㅋ

Fly me to the moon~
나도, 당신도 달에 갈 수 있는 방법!

정원아(김현주)~ 넌 어쩜 그리 반짝반짝 빛나니이!
이토록 사랑스러운 정원아~
노떼(자이언츠)로 슬픈 가슴 달래주는 우리 정원이...


아, 부끄부끄...

또 얘기하자. 반반빛은 계속 반짝반짝 빛나고 있을 테니.^.~
 
부록. Nat King Cole 'When I fall in love'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1993)의 OST로 기억하는 사람도 많다.
냇 킹 콜이 이에 앞서 불렀다. 반반빛에도 이 노랜, 반짝 빛난다. ^^
냇 킹 콜은 <Let's Fall in Love>에 출연, 이 노랠 부르기도 한다.

딸(나탈리 콜)이 아버지의 원곡에 자신의 음성을 입힌 'When I fall in love'도 있다.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이어서)

그는 사실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다. '이 미친 놈의 순정'이라고 불러도 좋을만큼의.
그 이상한 순정에 빠졌던 기억. 순정의 주인공은 재섭(이훈).  
약 4년 전이네. '시청률'도 높지 않고 제목도 촌스럽게 '죽도록 사랑해'란다.
평소 주말 드라마는 잘 챙겨보지 않았으나 이 드라마는 왠지 나를 끌어당겼다.
이유는 딱히 꼬집을 수는 없었다.
그냥 복작복작하게 살아가는 그네들의 이야기가 깊이 박혔다.
그리고 아직까지 가끔 난 이 드라마를 그리고 노래를 흥얼거린다.

한 여자만 죽도록 사랑하는 바보같은 남자, 재섭
언제나 화려한 변신을 꿈꾸는 여자, 설희
그리고... 그 남자 주변의 땀내나는 이야기
"70년대 우리의 자화상, 죽도록 사랑해"

이것은 이 드라마의 카피다.

* 이 드라마. 그닥 알려져 있지 않다. 한마디로 시청률이 죽을 쒔다. 그렇지만 아는 사람은 또 안다.
이 드라마, 알게 모르게 좋아하는 양반들이 있다. 나도 거기에 속한다.
2003.3.1~2003.8.17까지 6개월여 방영됐다.
당시 마지막회를 보고 써내려갔던, 그 이상한 순정에 대한 기록.

==================================================================

이해? 당최 그런 말은 쓸 수가 없었다. 오히려 수수께끼였고 불가사의라고 여기는 편이 나았다. 불편하기도 했다. "왜 그러냐? 제발 정신 차려라!!!"(버럭) 내가 그 녀석 친구라도 그렇게 쏘아붙였을 것 같다. 아니, 두들겨패서라도 말려야겠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이건 대개의 사람들 생각과 행동거지로선 외계의 것이다. 더군다나 내가 살고 있는 시대는 속도전이 횡행하고 감정의 깔끔한 처리, 쿨함을 경배하는 디지털월드, 즉 21세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죽도록 사랑한다!"고 말하면 이 시대는 과연 얼마나 이를 믿어줄까. 그 당시에야 솔깃하고 좋아서 몸둘 바를 몰라해도 사람들은 조만간 현실을 얘기할 것이다. 그게 언제적 얘기였는가 싶게 말이다.

이 사내, 재섭(이훈)이 이 여우, 설희(장신영)를 만났다. 그리고 이 사내의 순정이 시작됐다. 그 순애보는 '죽도록 사랑해'를 전제로 한다. 그런데 이 사내, 도통 말을 꺼내지 않았다. 눈치는 까고 있었지만 이 바위같은 사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포커판의 히든카드였다.

다른 년놈들 있는 것 없는 것 다 홀라당 까뒤집어놓을 동안 그는 묵묵히 포커판의 동향만 보고 있었다. 답답했다. 멀쩡히 다 보이는데 혼자 품은 것처럼 숨기다니. 그런 녀석이었다. 보는 내가 "얼레리 꼴레리~ 재섭이는요, 설희를 사랑한대요, 사랑한대요~"하고 내지르고 팠다. 차라리 온 동네 화장실벽에다 써놓을까 보다. 콱!

그런데 이 사내,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을 내지르며 설희에게 내뱉었다. "사랑한다! 과거에도 그랬고 나중에도 그럴 것이며, 지금도 그렇다"는 말과 함께. 물컹 눈물이 또그르르르 떨어졌다. 제길, 머리에서는 이해는커녕 화가 나는데 눈물은 왜 눈치없이 떨어지누.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랬다. 세상에 없을 것 같은, 더 이상 현실에서는 자취를 감춘 (얘기라고 여기고 있는) 순정남이 가슴 속에 콱 박혔다. 도저히 머리 속에는 강제 주입이 불가능한 이야기. 일편단심 민들레는 열광이나 폐인을 불러내지는 못하지만 가슴을 움직일 수는 있다. 앞선 시대의 촌스런, 일명 클래식한 사내를 나는 알았고 앞으로 그를, 그의 순정을 기억할 것이다.(물론 내가 그 순정을 따르겠다는 얼토당토않은 얘기는 아니다. 다만 현실에 없을 것 같은 그 순정을 내 기억의 박물관에 박제해 놓겠다는 뜻이다)

나는 내심 마지막을 향해 치달을 때까지 그가 다른 여자(모시던 사장의 딸, 재섭과 선을 보기도 했던)에게 눈길을 돌리길 바라고 바랬다. 설희가 더 이상 망가질 수 없을 때까지 간 뒤 종적을 감췄을 때, 1년 후라는 시간을 건너뛰었을 때, 나는 내심 다른 여자와 함께 선 그를 기대했다. 바로 순정파의 변심을...ᄒᄒᄒ 호쾌하게 "그럼 그렇지"하고 무릎을 치고 싶었다.

그러나 작가는 내 기대를 산산조각 냈다. 이 사내는 추호의 흔들림이 없었던 것이다. 재섭을 연기한 이훈은 너무나 리얼했고 내 가슴을 징하게 만들었다. 결국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그 사내의 순정은 순백의 결정체였다. 설희에 대해서라면 한오라기 티끌도 허용하지 않을 듯한...

'바위같이 견고한 사랑'은 재섭을 두고 하는 말이다. '첫사랑에 영혼을 빼앗긴 한 남자의 일편단심' 김운경 작가의 의도는 충분히 전달됐다(고 생각한다). 마지막까지 베팅을 하려던 나는 '오링'을 불렀다. 그 순정, 그 사랑에는 누구도 삿대질하거나 돌을 던질 권리가 없다. 재섭은 자신의 선택을 했고 마음의 소리에 충실했다. 어머니의 울음에도, 형의 권유에도, 주변 사람들의 눈치에도 그의 순정은 자리를 굳건하게 지켰다. '촛불은 바람에 흔들리지만 영혼의 촛불은 태풍에도 끄덕이 없더라'는 그런 말이다.

개발독재가 세상을 지배하던 1970년대. 고단한 사람살이의 풍경은 예나 지금에나 다를 바 없다손 치더라도 그 시대는 좀 더 끈적끈적했다. 정면돌파도 있었고 맞장을 뜨면 합을 겨루던 낭만도 있었다. 속전속결보다는 지구전이 미덕으로 여겨지던 시절. 정말 그 시절엔 저런 사랑의 풍경이 있었을까하는 궁금해 하는 건 고고학적(?)인 관심인가?

저리도록 아프다는 둥, 핏빛보다 아름답다는 식의 어설픈 관용어구는 사실 낯뜨겁다. 어쩌면 단순하다. 한 여자가 있었고 그녀를 바라보는 남자가 있었다. 노래 가사마냥 "그 아픔까지 사랑"하거나 "그 아픈 굴절까지 죽도록 사랑"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말 재섭이 보고 싶어질 것이다. 드라마의 쫑이 정말 아쉽다. 나는 하릴없이 극중 삽입된 노래들을 듣고 있다. 재섭의 애창곡인 '그집 앞' 그리고 이동건의 음색이 감미롭고 너무도 재섭's story와 딱 어울리는 'My Lady'. "그 수줍은 미소의 그녀가 내게로 다가왔죠/ 아무말 할 수가 없었죠/ 꿈처럼 사라질까봐.../ 처음 본 그 순간 내 마음 흔들어놓은 너의 미소/ 그대를 사랑해..." 아무말 할 수 없었던 이유. 맞다. 꿈이 될까봐 그랬다. 마지막에야 털어놓은 그의 "사랑해"란 말과 딱 매칭되는 가사의 조각들.

따지고 보면 현실적이고 혹은 속물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설희는 재섭의 순정을 더욱 빛나게 해주기 위한 장치다. 극의 구조나 이야기의 인과관계는 하나같이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설희가 더욱 나쁘게 악랄하게 나올수록 재섭의 순정은 때깔나고 지지를 받을 것임은 뻔하지 않은가. 사랑이 거추장스러운 사치일 뿐인 설희(요즘 시쳇말로 쿨하다)에 반해 재섭은 우리에게 일정부분 덧씌워져 있는 사랑의 신성함과 숭고함을 강화해주는 인물이다.

더군다나 재섭은 친구에게 의리있고, 가족에게 기댈 언덕이 된다. 또한 정의를 위해서만 주먹도 쓰고 부패척결에 앞장선다. 자고로 그 시대가 요구해왔던 '건강한 육체'와 '건전한 정신'을 갖춘 모범생이다. 그의 어깨는 늘 듬직하다. 주변 남자들이 신체나 정신적으로 비루하거나 문제를 겪는데 대비되어 말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하찮은 문제를 떠나 나는 재섭의 결정을, 그 순정의 선택을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설희가 처한 설정을 무시하려해도 도저히 그럴 수 없다. 그 아름다운 청년, 재섭을 아끼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말리고 싶을 것이다. 구구절절 말로 다 할 수 없겠지만 드라마를 본 사람은 알리라.

재섭은 어쨌든 말했다. "아무리 미운 짓을 해도 그렇게 보이지 않아"라고. 사람살이가 어찌보면 또 그렇다. 내가 했던, 다른 누군가 그리했던,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어떤 선택을 할 때가 있다. 재섭이 그랬다. 그가 설희에 대해 모르는게 뭐가 있나.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럼에도 그는 다른 것을 선택할 수 없다. 이미 설희는 재섭의 모든 것이 돼 버린 후이기 때문이다.

재섭은 선택을 했다. 그의 마음이 원하는 것이다. "병신"이라고 놀려도 그가 귀담아 들을 리도 없다. 욕하거나 설득하는 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얘기다. 그는 어쩌면 행복한 사람이다. 더 오랜 시간 끌지 않아도 됐다. 그의 청춘을 그냥 흘러보냈다고 생각지 않는다. 순정은 그렇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지 않았던가. 그 여우같기만 하던 설희가 그의 순정을 마침내 받아주지 않았던가 말이다.

누군가에겐 그 순정을 받아줄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도 축복이다. 나는 그런 재섭이가 문득 부러웠다. 누군가의 영혼은 아직도 순정의 대상을 잃고 부유하고 있을 지도 모르지. 남들은 미망이라 얘기하는 그 무엇 때문에...

사용자 삽입 이미지

* P.S... 내 휴대폰의 컬러링이 바로 이 드라마에 나온 노래다. 아는 사람, 거의 없다.
그 컬러링은 드라마 주제가인 'My Lady'이며 드라마에 출연한 이동건이 불렀다.
내 첫 컬러링이자, 이를 삽입한 이후 한번도 바뀌지 않고 있다. 질긴 생명력의 컬러링.
내게도 이런 순정(!)이 있다!! 컬러링을 향한. ^.^;;

그 수줍은 미소의 그녀가
내게로 다가 왔죠
아무말 할수가 없었죠
꿈처럼 사라질까봐
단 한번도 표현을 못했죠
멀어질까봐
먼 발치에서 바라만 보고
돌아선 내게
I Love My Lady
처음 본 그 순간
내마음 흔들어 놓은
너의 미소
그대를 사랑해
이젠 내게 더 바라는게 없죠
세상 그 무엇도 그대를 내게서
데려갈순 없죠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얼마전 읽은 글이었다. 거기엔 한 줌의 진실이 있었다. 연인에 대한, 사랑에 대한. 내가 알고 있는 한!
플로베르의 말이라는데, 아마 <<마담 보바리>>의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일 것이다.
"두 연인은 동시에 똑같이 서로를 사랑할 수 없다"

"마음은 팔 수도 살 수도 없는 것이지만 줄 수 있는 보물"이라고도 했던 플로베르임을 감안하면,
보물을 주더라도 똑같은 크기나 가치의 마음을 받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란 말이렸다.
그건 어쩔 수 없이 진실(!)이다.

사랑에 있어선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더 많이 사랑하면 행복하고 기쁘다, 는 말. 니기미 뽕이다. 그건 그저 교과서에 박제된 유물일 뿐.
사실은 그렇지 않다, 라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안다. 그렇지 않은 사람 있으면 반박해도 좋수.
더 많이 사랑하고 사랑을 주는 사람이 고통도 더 받고 내상도 심하게 입는다. 주화입마!
그렇다고 Give&Take의 정량교환이 가능한 것이 사랑도 아니다.
 
사랑은 늘 한사람이 약자일 때 생성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 먼저 사랑하고 더 많이 사랑할 때, 그때에야 비로소 두 사람은 연인이 되고 사랑은 시작된다.
사랑의 전제조건!

프랑스의 작가이자 평론가인 롤랑 바르트도 그래서 이런 말을 하지 않았던가.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받지 못한다" 이것 역시 진실.

바르트는 에세이집 <사랑의 단상>에서 이렇게 읊조리기도 했다.

나는 사랑하고 있는걸까?
그래.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 사람, 그 사람은 결코 기다리지 않는다.
때로 나는 기다리지 않는 그 사람의 역할을 해보고 싶어.
다른 일 때문에 바빠 늦게 도착하려고 애써본다.
그러나 이 내기에서 나는 평생 패자이다.
무슨 일을 하던 간에 나는 항상 시간이 있으며, 정확하며, 일찍 도착하기조차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숙명적인 정체는 기다리는 사람, 바로 그것이다.
기다리게 하는 것. 그것은 모든 권력의 변함없는 특권이요, 인류의 오래된 소일거리다.

그래. 사랑해서 좋다지만, 연애의 진실은 따지고들면 아프다. 많이 아프다.
똑같이 사랑할 수 없음.
하지만 그 고민이야말로 연애의 유일한 가능성임을 감안하면,
그것은 감내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가 아는 두 사내가 있다. 더 많이 사랑했던 약자들.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받지 못했던 패자들.
두 사내는 이른바 '순정남'!
좋아서였겠지만, 그 고통과 상처야 말해 무엇하리.
뭐 좋게 말해 순정남이지. 나쁘게 말하자면 미친 게지. 사랑에, 연인에.
그래도 '사랑에 미치다'는 말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나도 그땐 그랬지 않았던가!  

그 중 맑은 눈을 지닌 청년이었던 한 사내.
나는 한때 그 사내의 연애와 순정을 한동안 지켜봤다.
그러나 그 사내는 결과적으로 버림받았다.  
이유야 있겠지만, 나는 그 사내가 더 많이 사랑함을 눈치챘고 그는 참으로 오랜시간 아파했다.
그 트라우마는 아직 그 사내의 일상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러던 그 사내는 최근 몇 년 전 다른 사랑을 시도했다. 이번엔 거의 일방적이다시피 했다.
사내는 몇 년을 쏟아부었다. 거의 매일 같이 이메일을 보내고,
자그마한 피드백에도 그 사내는 한껏 부풀어오르곤 했다.
그러나 그 사내는 얼마전 그 사랑의 어려움을 내게 토로했더랬다.
눈 맑던 청년은 사랑에 지쳐갔다.
다른 이유와 겹쳐 그의 맑은 눈은 어느덧 세상에 대한 증오가 끓었고, 탁함을 내뿜고 있었다.
순정을 쏟아부었던 마음은 탁류에 휩싸여 가고 있다.
안타깝지만, 나는 그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그닥 없다. 그저 그의 푸념을 들어주고 다시 사랑으로 예전의 그의 눈을 되찾길 바라는 것뿐.

사실 나는 순정을 좋아하지 않는다. 순정이 밥먹여주지 않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세상엔,
'XY염색체의 순정'을 원하는 일부 XX염색체의 환상도 있고,
'XX염색체의 순정'을 강요하는 많은 XY염색체의 택도 없는 욕심도 있지만,
사실 나는 그 환상을 믿지 않는다.
때론 한번 짓밟힌 순정은 엉뚱한 증오로 발산되곤 하더라.  
열번을 찍는다고? 맙소사. 그건 내겐 행여 그 대상이 거의 종교에 가까울 경우에만 가능한 일이다.
고로 나는 종교가 없다.

다시한번 되새김질 해보자. 순정, 남자의 순정.
국어사전에만 남아 있고 현실 세계에선 거의 멸종됐다고 학계에 보고된 희귀동물.
폐광 깊숙이 묻힌 채 탐사발굴팀이 연장을 들고 나서지 않는 이상 눈으로 확인키 어려운 존재인 것이다.

또 다른 한 남자의 순정!

(2편에서 계속...)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