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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1.31 효재, 본받는 집에서 생각하는 백석과 자야의 사랑
2013.01.31 16:23 러브레터 for U

책 읽는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는 살림술사 효재의 울림

효재, 아름다운 나라에서 천천히이효재

 

 

세상엔 그런 사람이 있다. 이름 하나만으로 자신만의 브랜드를 구축한 사람. 획일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개성적인 삶을 추구한 사람에게 주어진 무엇이다. ‘효재’라는 이름도 그렇다. 이효재 선생이다. 한복디자이너 출신의 이 선생은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로 효재를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만들었다. 자연주의 살림도 빠지지 않았다. 그것은 ‘효재’라는 살림술사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 각인시켰다. 그런 그녀가 이번에는 ‘자연에 기대어 나누고 사색하는 여행’을 주제로 『효재, 아름다운 나라에서 천천히』를 내놨다.

 

그래서 지난 1월8일, 서울 성북동 ‘효재’를 찾았다. 『효재, 아름다운 나라에서 천천히』 출간기념 효재와의 만남 때문이다. 효재로 가는 길은 쉽지 않지만, 걸어야 한다. 성북동 주택가를 걸으며 만나는 다양한 집들과 골목 때문이다. 그 집들을 보며 사색을 할 수 있다. 집을 살피며 걷고 또 걷다보니 길상사가 나온다. 법정 스님이 떠오르지만, 그보다 앞서 백석과 김영한을 떠올린다. 이승에서 못다 한 그들의 사랑. 눈이 쌓여서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효재에서 바라본 길상사

길상사. ‘대원각’이라는 이름의 대형 요정이었다. 김영한은 이곳의 주인장이었고 백석의 연인이었다. 백석은 그녀에게 ‘자야’라는 호를 지어줬다. 그녀는 이곳을 법정스님에게 조건 없이 시주했고, 길상사가 만들어졌다. 사람들, 그녀에게 물었다. 7천여 평 1천억 원의 부지, 그렇게 기부하면 아깝지 않아? 그녀의 짧은 답, 마음을 아리게 한다. 1천억도 그 사람의 詩 한 줄만도 못해. 백석의 詩를 일컬음이다.  

김영한(자야)과 백석

두 사람이 만났을 당시, 백석은 스물여섯의 영어교사였고, 김영한은 몰락한 가문출신의 스물 둘 기생이었다. 그들, 뜨겁게 사랑했다. 그러나 백석 집안의 반대가 심했다. 집안의 반대가 잠잠해지면 다시 합칠 요량으로 백석은 러시아로 떠났다. 그것으로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 영영 이별. 해방과 전쟁을 거치며 백석은 북한으로 갔고, 김영한은 서울에서 평생 혼자 살면서 요정을 운영했다.

 

“한낱 기생에 지나지 않는 저에게 남편으로서의 사랑을 베풀어주신 그대. 그때 저는 평생그대를 사랑하며 살아갈 운명임을 깨달았습니다. 어떠한 상황일지라도 그대를 평생 사랑하리라 굳게 결심했습니다. 그대를 사랑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이십대에 만난 한 사람만 평생 사랑했던 김영한은 여든 셋에 세상을 떠났다. 효재로 오르는 계단, 길상사가 보인다. 효재에 살포시 쌓인 눈 때문일까. 그녀를 위해 백석이 지었다는 詩(「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흰눈 때문에 더욱 빛난다. 효재, ‘본받는 집’에서 떠올리는 이 사랑.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냐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눈과 나타샤를 떠올리는데, 효재 선생이 화사하게 반긴다. ‘효재의 여행과 나눔에 관한 이야기’가 술술 흘러나온다. 효재 선생, 책에 대한 이야기부터 꺼낸다. 그녀가 지구 물질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이 돌과 책이란다. 그녀의 신조, 뚜렷하다. 책 읽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 지독히 책을 안 읽는 시대,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책부터 읽을 것을 권한다.

 

“나는 글을 사랑한다. 맏딸로 크면서 책을 통해 성장했다. 글은 밤하늘 별 같아서, 사라지지 않는다. 외롭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효재처럼』 1권이 천 일 동안 쓴 일기다. 이 책이 10만부 팔리면서 <인간극장>에 나가고, 팬들이 생겼다. 나는 TV강의를 하지 않는다. 에너지 소모가 심한데다 남편에게 욕 먹이면 안 되니까. (웃음) 나는 인생을 노동자로 살겠다고 신에게 맹세하고 어떤 여행도 안 갔다. 그래서 TV에 나오는 건 일하러 가는 거다. (웃음)” 


참고로, 효재 선생의 남편은 음악가(풍류피아니스트) 임동창 선생이다.

 

“처음 ‘굿모닝 대한민국’의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아, 집에서 일만 하는 나에게 신께서 보너스로 여행을 보내주시나 보다. 오케이!’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하고 시작한 여행이 나를 바꿔주었다. 내 조국, 우리나라가 어찌나 구석구석 예쁜지.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노래를 하다가 그렇게 또 조금씩 변하고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지구. 좀 느리게 느리게, 푸르게 푸르게 지켜갈 수 있다면, 그동안 사람들이 모르고 있었던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모습을 나와 함께 발견하고 아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p.6)

 

『효재, 아름다운 나라에서 천천히』는 그렇게 나왔다. 이번 책, 인세 전액이 환경재단에 기부돼 네팔 어린이와 네팔의 오지 마을을 돕는데 사용된다.

 

일본 팬과의 만남, 눈물겹다! 

 

빈대떡과 고구마가 간식으로 준비됐다. 녹차도 마련됐다. 효재 선생이 마련한 간식을 함께 먹는다는 것, 눈 쌓인 겨울날의 오후가 주는 즐거움이다. 

 

“우리 집 음식이란 게 그렇다. 사람도 자연이라 음식도 ‘자연에서 난 것이 제일’이라 여기기에, 특별히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음식 맛 그대로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든다.”(p.196)   

효재 선생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3년 전 이야기. 밤 12시, 한 기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욘사마 일본 팬들이 한국에 왔고 ‘효재 선생, 효재 선생’하면서 찾는데, 알려줘도 되냐는 것이었다. 그것은 배우 배용준(욘사마) 덕분이었다. 배용준이 낸 책 『한국의 아름다운 여행』에 효재가 소개됐다. 덕분에 일본 관광객들에게 ‘효재’ 방문은 필수 코스처럼 됐다. 이튿날, 일본 여인들이 효재를 찾아왔다. 집으로 들였다. 간식을 먹였다. 너무 많은 사람이 왔고, 이들을 접대하느라 효재 선생, 지쳤다.

 

“너무 힘들어서 앉았는데, 한 여자가 설거지를 하더라. 키도 크고 미스코리아 머리를 하고. 배우 이태란처럼 예쁘더라. 난 예쁜 여자면 다 좋아해. (웃음) 예쁜 여자가 슬프면 아름다워. 통역이 마침 도착해서 왜 안 가고 설거지를 하는지 물어봤다. 43세인데, 암 걸려서 죽는대. 죽기 전, 욘사마를 보려고 왔고, 주변에서 효재 선생 효재 선생하기에 효재가 하는 걸 보고 싶어 왔다더라.”  

 

그리고 그 여자는 일본에 돌아갔다. 그렇게 바쁘게 지내다가 지난 7월 전화가 왔다. 암에 걸렸던 여성, 아사다가 투병 중인데, 효재 선생을 만난 게 가장 자랑스럽다는 유언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효재 선생 일본에 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비행기 표가 없었다. 아사다는 효재 선생이 온다는 생각에 안 죽고 버틴 터였다. 효재 선생, 스케줄도 빡빡했지만 죽어도 가야했다. 8월10일, 간신히 표를 구해서 갔다. 

 

찾아갔더니 이 아름다운 여인, 해골처럼 된 모습으로 누워있었다. 이외수 선생이 효재 선생을 위해 쓴 詩(이외수, 「효재처럼」)에 남편이 곡을 붙인 노래를 일본어로 불렀다.

여자로 태어나
사는 일 버겁거든
풀꽃처럼 구름처럼
효재처럼 살 일이네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8월29일, 일본인 여행객들이 다녀갔다. 궁금해서 일본에 전화했다. 아사다가 별일 없냐고 물었다. 별일 없다며 끊었다. 이튿날, 경주에 전통음식 강연을 가는 중 KTX에서 전화를 받았다. 울고 있었다. 아사다가 죽었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어제 왜 전화했었냐며 효재 선생이 무섭다며 울고 있었다. 3시54분, 아사다는 효재 선생 사진을 보면서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아사다 남편의 연락이었다. 마침 아사다가 숨을 거둔 8월29일, 욘사마의 생일이었다.  

 

“이 여자, 욘사마 얼굴을 보고 죽으려고 했는데, 욘사마 생일에 죽었다. 아사다라는 詩를 썼다. 이번 달 말에 『시가 있는 효재 밥상』이라는 책이 나오는데, 거기에 詩 가 있다. 세상 모든 일은 벼락 맞듯 다가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모든 것이 쌓여서 일어난다.” 

 

네팔 어린이, 동자승과의 만남 

효재 선생, 네팔에 다녀온 이야기를 잇는다. 네팔 어린이에게 태양광전지를 달아주러 가자는 제안을 받았다. 카트만두에 갔다. 그곳에 가니, 어린 시절에 갔던 소풍 때의 풍경이 펼쳐졌다. 소똥이 있고, 비포장도가 있었다. 아침에 출발,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를 타고 3시간을 갔다. 벼랑 같은 꼬불꼬불한 길을 타고 올라갔다. 1900미터의 고산지대에 마침내 도착했다. 해가 저물었다. 마을사람들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손님이 왔다며 나팔을 불고 축하를 해줬다. 눈물이 펑펑 흘렀다. 무사히 도착한 안도감에 울고, 그들의 환대가 고마워서 울었다. 

 

“세 살짜리 애들이 맨발로 어디를 올라가고 뭘 만들 때 우리만 쳐다보는 거야. 거기선 열다섯이면 시집을 보내는데, 키가 안 커. 그리고 인도에 팔려가기도 하고. 우리는 거기에선 거인이야. 그런데 거기선 가슴이 안 아파. 더 놀라운 건, 태양판 전구를 달아달라며 자신들의 마을에서 4일을 내려와서 우리에게 온 거였던 거야. 일주일을 그렇게 보내다가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네팔에서 받은 충격 때문에 네팔 귀신이 붙어서 뭐만 하면 눈물이 나오는 거야.” 

 

아사다 그리고 네팔과의 만남. 그녀,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사람, 힘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그러한 때 아침방송이 일정이 잡혔다. 1월1일. 괴산 무심사에 고아 동자승을 만나고 오는 것이었다. 어묵 국물을 우리고 빵을 들고 산타할머니처럼 동자승을 만나러 갔다. 

 

“네팔, 아사다를 넘어서 충격이더라.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이 있었다. 네팔은 가난해도 부모가 있는데, 부모가 삶을 위해 버린 아이들이 28명이나 있는 거야. 펑펑 울었다. 아이들이 잘 먹어도 울고, 못 먹어도 울고. 너무 가슴이 아파. 네팔의 아이들을 보곤 가슴이 아팠는데, 이건 슬퍼. 이 아이들 보니 너무 슬퍼. 한 해 동안 강타를 세 번 맞은 거야. 7월부터 해서.” 

 

좋은 일에 쓰이길 바라는 마음 

효재 선생은 소녀 같다. 오십대라는 생물학적 나이와는 상관없다. 집을 보면 사람이 보이는데, 효재는 효재 선생의 모든 것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효재 선생 그 자체라고 봐도 되겠다. 예쁜 것을 유독 좋아하는 효재라는 소녀가 효재 안에 있다. 행주에도 예쁜 꽃수를 놓는 이 여자의 마음은 건너편 길상사에 묻은 자야 김영한의 마음과도 통한다. 사랑 없이 살지 못할 두 여자의 마음이 동네를 감싸고 있다. 마당에 살포시 쌓인 눈이 시리도록 하얗다.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세상을 따뜻하게 감싼다. 좋은 일에 내가 쓰였으면 좋겠다는 그 마음. 오십 넘어서 세상에 드러난 효재 선생의 굳은 다짐이다. 소녀 같은 효재 선생의 삶이 앞으로도 크게 바뀔 리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녀는 네팔에 다녀온 이야기를 이 책의 2부로 쓸 생각이다. 

 

“두 번째 책도 사회에 기증하고 이런 모습으로 살다가 가려고. 막 살면 족 팔리잖아. (웃음) 우리, 덕담하는 문화를 만들자. 우리말엔 부정적인 게 너무 많다. 옥의 티 같은 거. 티가 옥이 되었다, 이런 말을 책에 박아 놓았다. 마당 있는 집엔 꽃 사오지 말고, ‘책 선물하기 운동’을 하자. 돈 만원에 대화가 바뀌고 품위 있게 선물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세상 누구보다 나를 믿어라. 자기 이름 앞에 ‘훌륭한’이라는 수사를 붙여라. 그러면 훌륭하게 산다.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책을 읽음으로써.” 

그녀에게 책을 읽는다는 것, 보검 하나를 마음에 지니게 되는 것이다. 그녀, 책 읽는 사람들은 신중해진다는 것을 안다. 하물며 꽃 하나를 배치할 때도 수고로움이 있는데, 주말여행을 생각한다면 이 책 아무 페이지나 펴서 여행을 간다면 좋겠다고 권한다. 가족끼리 가고 싶은 곳을 골라서 가는 재미를 느껴보라고 한다. 

 

“미국엔 마사 스튜어트, 일본의 하루미, 한국의 효재라고 한다. 나는 스티브 잡스가 밉다. (스마트폰에 빠져서) 독서를 안 하게 만들었거든. 서점에 가서 책을 그득히 사면 스스로 멋있어진다. 옷을 예쁘게 입고 다니면 다른 사람과 상대적으로 비교가 된다. 그런데 나는 아예 기워 입으니까 비교 대상이 없어. (웃음) 지금 입고 있는 옷도 30년 된 쪼가리를 모아 만든 거다. 더 이상 비교한들, 내가 만족스러울까? 내가 기운 이 옷은 곧 나를 디자인한 것이다. 오늘 이후 선물 목록을 책으로 바꿔라. 남의 집에 갈 때 책을 선물해라.”

 

효재 선생이 보기에, 인간은 누구나 천재다. 긍정과 부정, 그것을 바꾸는 것에도 천재다. 인간이 부정(긍정)을 가지면 한없는 부정(긍정)을 가진다. 긍정과 부정, 그것은 한 끗발 차이다. 한 끗발만 옮겨도 긍정이 되고, 부정이 된다. 따라서 이 만남도 쉽지 않은 만남임을 새기게 된다. 60억분의 1로 태어났고, 우린 만났고, 거룩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훌륭하고 거룩한 존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있다. 내가 쓰는 언어는 거의 오답이다. 내가 쓰는 말에 대해 정리를 해보라. 너무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한다. 말은 사라지지 않아서, 나는 말을 교정하면서 산다. 지나가는 말이라고 함부로 쓰면 안 된다. 글과 말이 사는데 힘을 실어준다. 언어를 작게 바꾸면서 삶을 바꿀 수 있다. 언어도 디자인하는 것이다. 각자 생활의 디자이너가 돼 보라. 기계를 믿지 말고. 말을 해야 한다. 말을 하면 내 스스로 그렇게 만든다. 자기 모습이 마음에 드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단점을 가리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면서 삶이 바뀐다. 지구의 에너지는 이제 기쁨이다.”

 

그녀는 지금 동화책을 10권 쓰고 있다. 아이들뿐 아니라 외국인에게 한국 문화를 알리기 위함이다. ‘살림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기증하려고 책도 모으고 있다. 그녀는 모든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살림술사’다. 효재 선생은 이날, 보자기로 할 수 있는 많은 것을 보여준다. 한 인간이 평균 200그루의 나무를 사용하는 통계가 있는데, 우리는 더 이상 산림에 누를 끼치지 말자며 보자기의 다양한 이용법을 보여준다. 누군가에겐 패션이 되고, 누군가에겐 쇼핑백이 되며, 누군가는 배낭처럼 사용되는 보자기. 좋은 에너지의 발산이다. 좋은 사람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와 소통을 하기 위해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 그것이 내 남편에게는 음악이며 글이고, 나에게는 음식이자 보자기이다.”(p.196)

이날 엄마를 따라 이 자리에 온 아이는 좋은 에너지를 받았을 것이다. 이 두 시간여의 짧은 시간이 그 아이가 자라는데 있어서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임에 분명하다. 그 아이는 네팔 어린이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될 것이고, 어느 자리에서 네팔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면 이때를 떠올릴 것이다. 또래와 다를 것이다. 지구의 좋은 에너지를 받았다. 

 

효재. 본받는 집. 이날의 만남, 이름값을 한다. 우리는 본받고 간다. 길상사에서도 효재에서도 모든 것에서 본받는다. 2013년 1월이 준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효재 선생의 마무리 멘트를 되새겨본다.

 

“내게 일어나는 작은 기적을 적어본다. 그러니 매일이 기적이더라. 어릴 때 아버지가 나가지도 못하게 해서, 나는 매일 가출을 꿈꾸고, 다방 레지가 되게 해달라고, 우리 집이 망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나이가 드니까 아버지 사랑이 느껴지더라. 일상이 별 다른 게 없는 것 같은데, 여기까지 와서 좋은 것 얻어갔으면 좋겠다. 자신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인생은 큰 것으로 바뀌지 않는다. 사소한 것을 통해 바뀐다. 책을 통해 세상을 밝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사실 남편과 나의 삶이 언론에 제법 조명되어 이제 꽤나 유명인이 되었고, 또 평범하지 않은 삶으로 비춰지곤 한다. 그렇지만 우리 부부의 사는 방법이란 건 그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p.195)

 

인생을 멋있게 살고 싶다는 욕망, 누구나 있다. 그렇다고 이 글, 효재처럼 살라는 것이 아니다. 멋있게 산다는 것,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사는 것 이대로가 멋있는 일이지 않을까. ‘효재’에서 나눈 이야기는 그것을 알려준다. 지금 여기에서 즐겁게 살 수 있다면 그것이 멋있는 인생이라는 것. 백석이 사랑한 자야는 멋있는 인생을 살았다. 살면서 사랑했고, 사랑하면서 살았으니까. 효재에서 바라본 길상사가 아름답다. 길상사에서 바라본 효재도 그렇다. 삶은 천천히 살수록 아름답다. ‘천천히’를 통해 타인과 똑같지 않은 자신만의 맛과 향기를 갖게 된다. 효재가 그것을 알려준다. 나는 효재를 감탄한다.

 

아름답다.

 

 [예스24(채널예스) 기고원문, 사진제공 : 김윤정]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