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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장호'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7.03.07 무간지옥에 빠지지 않기 위한 '착한' 정부의 조건 (2)
2007.03.07 01:29 할말있 수다~

결국 터지지 말아야 할 것이 터졌다. 혹은 터질 것이 터졌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비극은 늘 사후에야 폭발한다. 애초 비극을 잉태하고 있었음에도.

윤장호. 그는 비극의 실체가 됐다. 어제 얼핏 영결식을 보면서 감정이 울컥 눈물이 왈칵했다. 그리고 구역질이 났다. 왜 그의 죽음을 봐야하는지, 부모 형제 친구의 오열을 봐야하는지, 나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 누가 그를 '파병'이란 배에 띄워보냈는가 말이다. 착한 척 하느라 온갖 똥품을 다 잡더니 결국 이럴거였니? 왜 그러니?  윤 하사의 부재가 불러올 'before'와 'after'의 간극. 나는 그 간극이 무섭다. 그걸 주변 사람들만이 감당해야할 몫으로 돌리는 건 그를 머나먼 곳으로 보낸 자들이 할 짓이 아니다.

윤 하사의 죽음을 둘러싸고 미디어 혹은 사람들의 시선은 갈리고 있다지만,(고 윤장호 하사와 '조기 철군') 나는 여기서 대한민국(정부)의 착각과 집착을 본다. 앞선 고 김선일씨에게서도 교훈을 얻지 못한. '착한' 일 하러간다고 떠벌렸다. 이라크 파병 때도 그랬듯, 아프간 파병도 마찬가지였다. 인도적 차원의 구호, 진료활동, 평화재건을 지원하는 국제적 연대에 동참해 세계 평화에 기여한다고 목청 높였었다. 곧 죽어도 "착한 일 하는 거야"라고 외치는 격이다.

영결식 소식을 들으며 다시 이 영화가 오버랩된 건 우연의 일치일까. <무간도3>. 조폭 출신으로 경찰에 잠입한 스파이, 유건명(유덕화)의 외침이 그랬다. "착한 인간으로 살려고 했어"라고, "나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라던. 자아분열증. 착하지 않음, 좋은 사람이 아니란 열등감으로 더욱 몸부림 치는 유건명. 결국은 더이상 제어할 수 없는 울렁증으로 자신을 파멸로 몰아넣고야 말던.

나는 파병을 극력 주장한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에서 유건명이 연상된다. 그리고 애도를 표한 그의 발언("국가는 도덕적 의무를 위해 국민 목숨도 요구" )에서 유건명의 자아분열을 본다. 마지막 궁지에 몰린 유건명의 발악. "왜 기회를 안줘? 착한 인간으로 살려고 했어, 착한인간으로. 왜 기회를 안줘?" 유건명의 운명은 그렇게 영원히 고통에 짓이겨 살아가야하는 무간지옥이다.

나는 무간지옥이 두렵다. 노 대통령은, 파병을 찬성하는 이들은 그렇지 않은 걸까. 착하게, 좋은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명분만으로 유건명의 죄는 씻길까. 그래서 결국 착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무간도3>를 다시 본다.

그리고 '고추장'과 '김열공'이 입을 연다. "왜 그러니?" "왜 그렇게 못됐니?" 
노 대통령과 찬성론자들은 '이강남'처럼 입을 열까. "어쩌란 거니?" 

아울러 강 건너 불구경하듯 이라크와 아프간, 그리고 중동을 다루고 보는 우리들의 속좁음에 대하여. 편견을 거두고 새롭고 넓은 세계로 발 디딜 수 있는 기회를 수수방관만 하고 있는 우리들의 미욱함에 대하여.
이라크·아프간 문제가 왜 '외신'이어야 하나

* 2004년 7월에 긁적인 이 글이 아직도 유효해야 함 또한 비극이다. 고 윤장호 하사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빈다.


“착한 정부와 살고 싶다”
(* 사건의 전말을 눈치 챌 수 있는 스포일러 있음. 그래서 잘못하면 무간지옥에 빠질 수 있음...^^;;;;;;;;;;;;;;;;;)

파병하지 말라... 구해 달라... 살고 싶다... 한국에 가고 싶다던 한 청년의 바램은 끝내 좌절됐다. 그토록 밟고 싶어했던 고국의 땅은 주검이 돼서야 돌아올 수 있었다. 아버지 칠순잔치에는 꼭 돌아오겠다던 약속은 영원히 ‘지키지 못한 약속’으로 봉인됐다.

도와달라고 절규를 내뱉은 김선일씨는 누구로부터도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대답없는’ 너였다. 한국 정부는 “국가가 당신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지를 생각하라”던 케네디의 일성을 신앙처럼 간직하고 있었나보다. 또 초슈퍼울트라 막무가내 미국의 대통령도, 혼자 협상을 벌이며 일을 키운 김천호 사장도, 어디에도 구원은 없었다. 다들 그렇게 ‘쌩’ 까버리다니.

‘일개 목숨’이었던 것이겠지. 여느 개인의 목숨보다 귀중한 ‘국익’탓이었던 게지. 높으신 어르신들은 국익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나 설명 따위도 없다. 파병하지 않으면 어떤 불이익이 우리의 일상을 덮칠지 당최 계산이 안 된다. 그들만의 성마른 조바심이 아닌지 생각도 해본다.

좋은 정부, 착한 정부는 언감생심이다.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던 대한민국의 헌법은 사문화됐고 졸지에 전범국의 국민으로 전락하고 있는 우리는 어떤가. ‘국익’을 내걸고 행하는 국가의 살인에 희생당한 국민은 어떻게 존재감을 획득해야만 하는 것일까.


진실은 저 너머에…

이런 과정에서 <무간도3>이 겹쳐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전혀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개봉이 연기됐음을 감안하면) <무간도3>는 현 상황의 미묘한 메타포(은유)같다. 이미 악행을 저지른 뒤 착하게 살고자 몸부림치는 유건명(유덕화)의 모습 속에서 무언가가 오버랩된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며 흔들리는 정체성을 안고 고뇌와 갈등 속에서 허우적대던 그의 모습이, 못내 어느 한 국가의 미래상과 겹친다. 유건명은 대한민국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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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극무간”이란 부제에서 보듯 <무간도3>은 제목인 ‘무간지옥’의 결정판이다. 영화의 이야기와 제목 사이의 관계나 연관성은 비로소 3편에서 완결된다. <무간도> 1편에서 설명되는 무간도의 의미를 되새김질할 필요가 있다. “열반경 제19권에 따르면 가장 심한 지옥이 ‘무간’이며 끊임없이 고통을 받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디 짭새임에도 갱단에 잠입해 위악을 행했지만 이미 1편에서 죽어버린 진영인(양조위)은 더 이상 어찌할 수가 없다. 따라서 <무간도3>는 본시 갱단임에도 경찰에 잠입해 전도유망하게 잘 나가던 유건명이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진영인의 죽음과 연관된 과거의 숨겨진 사실들도 드러나지만 ‘무간지옥’의 진정한 몫은 <무간도3>에서 분명해진다. 꼬이고 꼬인 실타래는 양금영(여명)과 심등(진도명), 닥터리(진혜림)의 등장으로 매듭을 풀어가면서 긴장감을 놓지 않게끔 만든다.

다만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평행선처럼 교차되면서 관객의 머리회전을 극도로 자극하는 기법은 어지럼증(!)을 동반할 가능성도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수많은 복선과 사소한 단서 하나하나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어떻게 스토리가 이어지는지, 긴장을 풀어선 알 수 없다는 얘기다.

엇갈린 신분과 정체성의 혼란이 주는 비극은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다. 유건명은 상처를 봉합하지도 못한 채 “좋은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열망에 점점 침잠한다. 죄책감과 불안은 점점 그의 영혼을 잠식한다. 그런 와중에 수상한 행동을 보이며 자신과 같은 조직의 첩자로 의심되는 양반장은 그를 옥죈다. ‘진실’은 하나라는데 누가 진실인지는 불확실하다.

무간지옥에 빠진 자의 비극은 ‘진실’의 공개여부와도 연관을 맺는다. 자신을 둘러싼 진실들은 감추려고 애를 쓰지만 진실로 “좋은 사람”을 원했던 아이러니. 결국 그 봉합될 수 없는 충돌은 비극을 잉태하는 법이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은 것 또한 감당하기 힘들다. 착한 누군가를 죽게 만들었다는 죄의식 속에 자신을 그와 동일시하는 이중의 자아. 혼돈은 개인이나 국가를 파멸로 이끌 수도 있다.

김선일씨 피살과 관련된 여러 의혹에 대해 “철저히 진실을 규명하라”는 정부의 외침이 공허한 것도 마찬가지다. 정작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에 대해서는 감추고 함구하면서 그들은 국민들의 의혹을 밝혀줄 진실을 알리고자 진상 조사를 한다. 과연 그 간극은 누가 메워줄 수 있을까. 이미 불귀의 객이 돼 버린 김선일씨가? 김천호씨가? 그렇지 않으면 AP가? 진실은 저 너머에 있을 뿐이다.

질곡의 길, 슬픔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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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건명과 양금영

<무간도3>에서 유건명과 양금영은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미행한다. 물고 물리면서도 진실을 향해 한발자국씩 전진한다. 운명은 거기서도 뒤죽박죽 씨줄과 날줄의 교차를 탄다. 그들이 어떻게 만나게 됐고, 그 숙명의 골이 얼마나 깊었는지도. 그것은 슬픈 운명이자 현실이다.

<무간도3>의 장점은 그것이다. <무간도> 시리즈는 과거 과도한 비장미로 인한 감정의 과잉을 잉태했던 홍콩 영화의 기름기가 없다. 그들이 처한 상황의 비극성은 충분히 매력적이고 흔들리는 사람살이의 의미를 되새김질하게 만든다.

또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과도 접점을 느끼게 한다. 끊임없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착하게 살고 싶다”고 웅얼대며 자아의 파괴를 경험하는 유건명의 외줄타기가 그렇다. 그는 진심이었던 듯싶지만 현실은 그의 모순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 함정은 결국 유건명 스스로가 판 것이니까.

죽어서 명예를 복구하고 죽어서 진실이 밝혀지는 비극성은 결코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공식이 아닌듯하다. 이미 나쁜 놈을 도와(그 이면은 굴복의 기운이 도사리고 있지만) 공범이 된 마당에, 한국 정부는 재건과 회생이라고 부르짖지만 과연 그런가. 그건 거짓이며 허위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치국만 마시고 있는 꼴이다. 정작 재건과 복구가 목적이라면 이라크인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이라크인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쁜 놈이 아니다. 우린 당신을 돕기 위해 왔다. 우린 착하다”고 외치고 있지만 정말 그런가. 유건명은 그래서 혼란을 겪은 것인가.

과연 무엇을 위한 파병인 것일까. 초지일관 파병결정을 밀고 나가겠다는 ‘아집’은 대한민국을 전범국으로 낙인찍히게끔 만들고 있다. 나는 졸지에 전범국의 국민으로 낙인이 찍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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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이 ‘국익’이 되는 세력과 파병이 ‘죽음’을 의미하는 세력 사이의 간극은 화해할 수 없는 유건명과 진영인의 관계와도 같다. 협상을 원하는 유건명에게 진영인은 말한다. “나는 경찰이야” 유건명은 이 말 앞에 어떤 반박도 할 수 없고 무기력하다. 이래저래 발버둥도 쳐보고 발악을 해도 그는 “좋은 경찰” “좋은 사람”이 아니니까.

지 아무리 발버둥쳐도 대한민국은 이미 늪에 발을 빠뜨리고 있다. 질곡이다. 헤어 나올 수 없는 곳으로 차츰 발걸음을 떼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유건명이 갔던 길. 나는 그것이 두렵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진태(장동건)은 ‘가족애와 사랑’이라는 명분에 맹목적으로 함몰돼 괴물이 되어간다. 자신을 파괴하고 타인을 개무시한다. 그래도 그의 명분은 “사랑하니까”다. 사랑한다는 말이면 다 용서되고 올바른 줄 안다. 반면 진석(원빈)은 전쟁이 두렵다. 그 와중에서 동료를 배려하고 적이라 불리는 자들에 관용을 보인다. 그래서 진석은 ‘사랑’ 때문에 타인에게 총부리를 들이대고 괴물이 된 진태에게 외친다. “누가 그렇게 해달라고 했어?”

한국 정부도 제발 이라크를 위해, 우리 후손을 위해 그렇게 했다는 항변은 하지말자. 이라크인들도, 우리 후손들이 그것을 인정해 주리라 속단하지 말란 얘기다. 누구 때문에 이라크 침략전쟁의 일원으로, 전범국의 국민으로 낙인이 찍혔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지랄 옆차기 하는 개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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