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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7.07.02 영원한 대부, '말론 브란도' 3주기
덧 없이 스러지곤 하는 인생길. 하나의 생명이 나고 자란 길목에는 무엇이든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그것이 티끌만치 소소하건, 밤하늘의 별처럼 밝게 빛나건. 그건 상관없다. 그리고 그 흔적은 인생길목 곳곳에서 파생품을 남긴다. 의도하건, 그렇지 않건. 한 생명과 아무 연관이 없어도 그만이다. 그 길목엔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흔적이 남고, 우연이 어떤 재밌는 그림을 그려내기도 한다.

이런 글 역시 그런 파생품이다. 나와는 실상 무관할 것 같지만, 그럼에도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세계 속에서 생을 영위하던, 어쩌면 몇개의 고리를 연결하면 끈이 닿았을 지도 모를 사람들에 대한 추모 혹은 소회. 근데 내가 끊임없이 기억의 회로를 돌려대는 이유는 뭘까. 나 자신도 뚜렷하게 그 이유를 댈 수가 없다. 그냥 인위적으로 분절된 시간의 흐름에서 특정 시간에만 작동하는 무언가가 나의 뇌 회로 속에 있는건가?

어쨌든 캄보디아 여객기 추락사고가 날을 축축하게 만들 즈음이다. 예기치 못한 사고에서 비롯된 오열과 슬픔은 누군가에겐 분명 일상의 분열을 일으키고 있을 것이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는 2년 전 여름 찾아갔던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누군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은 그들과 어떤 일면식이나 인연이 없음에도 묘한 연결고리가 채워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유가족이나 친구들에 비할 바는 완전 아니겠으나 슬픔은 좀더 구체적이 되고 감정도 좀더 애틋해진다. 희한한 일이다. 내가 밟았던 땅을 2년 후에 밟은 사람들이 맞닥뜨린 사고. 공간에 대한 구체적인 연상이 가능해져서일까.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는 것이 현재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그리고, 오늘 알게 된 에드워드 양 감독님의 부고 소식에 밀렸지만, 어제(7월1일)는 말론 브란도의 3주기였다. 7월 전후엔 또 하나의 역사들이 자리잡게 됐다. 에드워드 감독님은 미국 현지시각으로 6월29일 돌아가셨다니, 뒤늦게 알려진 셈이다. 그리고 어제는 위대한 배우이자, 영원한 '대부'로 자리매김한 말론 브란도가 떠난지 3년이 되는 날. 생긴 것 하나는 끝내줬던 배우.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서 엉덩이가 그토록 육감적이던 배우. 눈빛만으로도 카리스마 짱이던 배우.

지난해 개봉한 <슈퍼맨 리턴즈>에서 CG의 힘을 빌어 스크린에 등장하기도 했지. 78년 <수퍼맨>에서 주인공 수퍼맨의  아버지로 출연했던 인연 때문이었다지. 78년작의 영상샘플을 가져와 3D 그래픽으로 스크린에 등장하면서 죽음 이후에도 존재감을 과시했던 배우.

에드워드 양 감독님도 말론 브란도도 저 하늘의 저편에서 편안하시길. 그러고보니 두 사람. 살아생전 인연은 없었겠지만 구름의 저편에서 만나 영화 한편 찍어보시는 건 어떠실지. 나도 언젠가 구름의 저편으로 가는 날, 두 사람이 찍은 영화를 보게 되길. 3년 전, 그의 부고 소식을 들은 뒤 긁적였던 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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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만으로 스크린 상에서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배우들이 있다. ‘말론 브란도’가 그렇다. 어떤 역할이건 탁월한 연기력과 공력으로 스크린을 장악하는 배우를 보기란 그리 쉽지 않다. 영화는 그 배우들로 인해 더욱 빛이 나거나 생명력을 획득하기도 한다. 말론 브란도는 그런 면에서 ‘대배우’나 ‘명배우’란 타이틀이 아깝지 않다.  

그런 ‘말론 브란도’가 현지시간 지난 1일, 향년 80세의 나이로 세상에 작별을 고했다. 캘리포니아대학(UCLA) 의료센터 대변인은 폐질환으로 사망했으나 고인이 더 이상은 알리길 원치 않아 더 이상 밝힐 수 없다고 전했다.

어쨌든 명확한 것은 그가 더 이상 영화를 위해 어떤 배역도 맡을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이다. 스크린 속의 그는 영원히 박제된 채 남아 있겠지만 그가 어떤 영화에든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과연 누가 영화 속에서 ‘말론 브란도’를 대체할 수 있겠는가. 그는 오직 하나였고 그 삶에 마침표를 찍음으로써 ‘하나’가 지닌 모든 것은 세상에서 생명력을 상실했다. 그는 더 이상 영화를 위해, 관객을 위해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다.


파리에서의 그 탱고는 마지막이었다

태평양을 건너온 그의 죽음 앞에 떠오른 건, <대부>에서의 그 강건하고 근엄한 표정이 아니었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서 보여준 도시의 무감과 삶의 비루함을 담은 그 얼굴.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그에게서만 뿜어져 나오는 향취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 아닌 다른 사람의 얼굴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표현하지 못하는 그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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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자살한 아내를 둔 중년의 폴(말론 브란도)이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잔느(마리아 슈나이더)와 나누는 밑도 끝도 없는 정사. 폴은 세상에 지쳤으며 모든 것을 잊고 싶을 뿐이다. 아노미 상태에 빠진 그에게 이름과 과거는 거부의 대상이다. 그래서 신상에 대해 묻는 잔느에게 소리친다. “너의 이름을 알고 싶지 않아! 너는 이름도 없고 나도 이름이 없어. 우리는 모든 것을 잊는거야.” 그건 절규였다. 정상이라 일컬어지는 것들의 무의미함에 대한. 다수에 의해 타협된 ‘정상’이라 일컬어지는 것은 개개인의 본질을 꿰뚫지 못함을 폴과 잔느는 온 몸으로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가 불러온 논란만큼이나 말론 브란도의 표정은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 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그 표정은 한결 같았다. 그의 얼굴은 혁명의 시대가 지나친 자리에 남은 공허함과 목표를 잃은 도시의 욕망이 교차했다.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여성과의 섹스도 탈출구가 되지 못했다. 파멸은 친구였고 녹슨 해방구만이 남아있었다. 처연한 고독과 적나라한 쓸쓸함만이 나부꼈다.

내가 처음 파리에 가고 싶다고 느낀 건, 사실 그 영화 때문이었다. 파리지앵들의 우아한 발자취나 흔적보다, 68혁명을 느끼고 싶다는 욕구보다, 수많은 사상들이 잉태했던 카페에서 맡을 수 있는 사상가들의 향취보다, 파리로 오라고 유혹한 건 말론 브란도의 표정이었다. 어떻게 그런 표정이 나올 수 있는지, 그래서 파리가 궁금했다. 파리에 가면 그렇게 되나 싶어서. 물론 그건 말론 브란도였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것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말론 브란도의 몫이었다. 앞으로 누구도 그 모습을 대체할 수도 없을 테고 표정은 더욱 난감하다. 내게 있어 파리는 이제 더 이상 탱고를 출 수 없는 도시다. 이미 그건 말론 브란도의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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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과 잔느는 서로 아무 것도 묻지 않고 대답하지 않는다.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에서 영원한 ‘대부’로


그는 사실 ‘부러진 코’를 지녔다. 무명 시절, 돈을 벌기 위해 로데오경기에 참여했다가 코가 부러지면서 인상 깊은 매부리코를 얻었다. 그래서 그는 깔끔하고 정갈한 꽃미남의 이미지보다는 터프하고 강인한 인상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는 날 때부터 탁월한 연기자의 운명을 타고 태어났다. 세일즈맨이었던 아버지보다 배우였던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은 말론 브란도는 미네소타의 연극 아카데미에 들어갔다가 퇴교당한 뒤, 뉴욕으로 가 ‘스텔라 애들러’를 스승으로 본격적인 배우의 길에 접어들었다. 당시 그는 스승으로부터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천부적인 배우” “브란도가 연기하지 못할 인간은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전해진다.

연기력만큼이나 그의 외모는 특출했다. 특히나 젊은 시절, 그는 제임스 딘과 비교되곤 했다. 성난 눈빛은 당대의 젊은 카리스마로 인정받으며 반항아로서 그의 입지를 단단하게 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직후 방황하는 청춘들의 아이콘으로서, 승전국이 된 미국의 전형적인 ‘아메리칸 마초’로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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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카리스마는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1951)에서 거칠고 황량한 스탠리 코왈스키 역이나 <와일드 원>(1953)에서도 갱두목 역을 통해 명실상부하게 인정받았다. <워터 프론트>(1954)에서 외로운 복서 역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타기도 했다.   

그러나 제임스 딘이 죽어서 신화가 됐으나 말론 브란도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순간적인 임팩트가 강한 사람이었고 배우로서의 캐리어를 쌓아갈 뿐 신화가 된 제임스 딘을 잡을 수는 없었다.

그는 한때 식탐과 여탐에 파묻혀 있기도 했다. 1950년대의 활발한 연기 활동 뒤 60년대 들어 그는 뜸하게 활동했다. 대신 그는 이혼과 재혼을 반복했으며 인디언들을 위한 인권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언제나 넘치는 에너지를 곳곳에 발산했다.

그러다 다시 돌아와 중년의 카리스마를 뽐낸 것이 <대부>(1972)였다. ‘말론 브란도’하면 떠오르는 대명사가 바로 ‘대부’이듯, 그에게서 이 작품을 빼놓을 수 없다. 어눌한 말투의 시실리 출신의 뉴욕 마피아는 말론 브란도의 모든 것을 드러냈다. ‘대부’인 ‘돈 콜레오네’에서 시작되는 마피아 가문의 대서사시 첫 장을 장식한 이 작품에서 말론 브란도의 역은 의당 ‘대부’였다.

캐스팅 과정에서 감독인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외에 제작진이나 회사는 말론 브란도를 반대했다. 40대 중반인 말론 브란도가 60대로 키가 작고 뚱뚱하며 회색머리를 가진 돈 콜레오네를 맡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코폴라 감독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은 채 가진 스크린 테스트의 돈 콜레오네 역이 극찬을 받았는데 그 분장을 한 이가 바로 말론 브란도였다. 늙은 얼굴과 염색, 입안에 솜뭉치까지 넣어 어눌한 말투로 완벽히 변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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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자가 됐으나 ‘할리우드의 인디언에 대한 부당한 대우’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수상을 거부했다. 반항 기질은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했고 연기에 대한 열정만은 변함없었다. 영화계의 ‘대부’마냥 그는 영화를 통해 생의 끝 날까지 자신을 확인했다. 말론 브란도는 지난해 6월에 애니메이션 <빅 벅 맨>에서 목소리 연기를 맡았고 자신의 생애를 담을 예정이던 <브란도 앤 브란도>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말론 브란도의 반세기를 넘은 연기 일생의 마무리를 통해 분명 한 시대가 접혔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말론 브란도는 그러나 연기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했다. 따분하고 지루하고 유치한 것이 연기라는 소회를 내뱉고 영화배우라는 직업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불평했다. 그럼에도 그는 천상 ‘배우’였고 영원히 그렇게 기억될 것이다. 신화는 되지 못했지만 ‘대배우’로 자리매김한 그는 영원히 박제된 ‘대부’로서 그를 좋아했던 영화 팬들의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다.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