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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아니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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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일. 오늘, 오랜만에 형을 만났네요. 무척 반가웠어요. 사실, 오늘은 만우절보다 형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날이에요. 벌써 5년. 형의 소식을 접한 그날의 영상도 뚜렷하네요.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그날, 비가 추적추적 나리던 날. TV를 통해 형의 소식을 들었었는데... 믿기지 않을 법 했죠. 하필 만우절이었으니까. 거짓말 같은 죽음이라고 하더군요. 맞아요. 나도, 긴가 민가 했으니까.

더구나, 오늘은 더 특별했어요. 왜냐구요? 형을 스크린을 통해 만났잖아요.^^ '5주기' 딱지를 붙이니, 사람들도 더 애틋했나봐요. 형이 나온 <아비정전>(1990)과 <해피투게더>(1998)가 형의 기일에 맞춰 재개봉 했거든요. 저라고 빠질 순 없잖아요. 그래서 오늘 <아비정전>이 재개봉한 첫날 첫타임, 형을 만나기 위해 냉큼 준비를 했죠. 두 편이 각각 형의 20여년, 10여년 전 모습을 담고 있으니, 형도 감개무량하죠? 이렇게 오랜 세월을 버티면서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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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기다렸던 건, <아비정전>을 마침내 스크린을 통해 보게 된다는 것 때문이었어요. 수차례 보고 또 봤지만, 개봉 당시에 전 스크린을 통해 보질 못했거든요. 당시 전 고딩이었고, 특히나 영화가 환불 소동까지 빚으면서 문전박대를 당한 터라, 일찌감치 내려간 탓이었어요.

어쨌든, 설레는 맘을 품고 찾아간 스폰지하우스 광화문. 첫타임인데도, 사람들이 꽤 있더라구요. 특히 40대 아주머니 군단(?)이 형을 보기 위해 몰려와 있더라구요. 와, 놀랐어요. 재개봉에 맞춰, 아주머니들이 저렇게 단체로 오실 줄이야. 형이 한창 날리던 시절에, 청춘을 함께 관통한 팬들이었겠죠? ^^ 기분이 더 업된 건, 포스터도 하나 받았다는 거에요. <해피투게더> 포스터는 갖고 있지만, <아비정전>도 하나 꼭 품고 싶었거든요. 재개봉에 맞춰 새로이 제작된 포스터여서, 더욱 감회어렸달까. 여튼 극장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형의 살아생전 모습을 보기 위해 스크린을 주목하고 있었고, 저 역시 그 대열에 동참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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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디어 스크린이 열리는 순간, 형이 걸어나오더라구요. 아, 아비의 그 발걸음을 보는 순간, 뭉클뭉클했어요. 콜라 한병을 툭 까면서, 수리진(장만옥)에게 첫 수작을 걸던 그때. "오늘밤 우리는 꿈에서 만나게 될 거요"라는 멘트로 여운을 남기고, 다음날엔, 수리진과 1분 동안 시계를 함께 보더니, “1960년 4월 16일 오후 3시 우리는 함께 했어. 우리 두 사람이 함께 했던 1분을 잊지 않을 거야. 우리 둘만의 소중했던 1분은 이제 지울 수 없는 1분이 됐어. 이미 과거가 됐으니까. 내일 다시 올게.”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그 뻔하디 뻔한 작업성 멘트를 극장에서 다시 듣자니, 뭐랄까요. 그냥 찌리릿하더라구요. 천하에 둘도 없을 그 1분 멘트의 감흥. 1분, 고작 60초의 시간에 불과할지 몰라도, 누군가에겐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박제되겠죠. 그 무엇으로도 표백할 수도 없는. 수리진도 결국 그렇게 읊조리잖아요. "그는 1분을 쉽게 잊겠지만 난 영원히 그를 잊을 수 없었다." 난 생각해요. 형의 그 멘트는 우리에게 거는 주술과도 같은 거라고. 수리진의 독백은 그 멘트를 함께 받은 우리의 심정이고.

맞아요. 상영시간 내내, 나는 주술에 걸린 듯, 스크린만 멍하니 응시했지요. 아비. 돈 좀 가진 룸펜이자 양아치에 너무 많은 여자를 만나서, 누구를 사랑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바람둥이.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고, 다른 사람의 마음 따위 안중에도 없는 나쁜 남자. 그럼에도, 여자들은 하나같이 아비를 잊지 못해 눈물을 짜내고.

그런데 그런데 말이에요. 형은 왜 그렇게 아름다운지. 그냥 아름다움 그 자체였어요. 카메라가 형의 얼굴을 향할 때마다 묻어나는 형의 아름다움은 진짜 영원히 박제하고픈 욕망을 불러일으키더라구요. 웃음 한번 제대로 웃지 않는 형의 모습. 아름다움과 함께 전시된 그 고독함. 빗으로 머리를 쓸어올리는 형의 그 모습에선, 형이 고독을 쓸어버리고자 하는 것 같았어요. 제 기억으론 3차례 그렇게 빗을 쓸어올리더군요.

사람들은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며, 죽음 따윈 대수롭지 않은 것인양, 말하는 형의 모습에선, 글쎄요. 형이 혹시 구름의 저편으로 가는 날에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싶더라구요. 아비가 떠나는 모습에선, 5년 전 오늘이 떠올랐구요. 여전히 믿기질 않았어요. 형도 그냥 영화에서처럼 눈을 감은 것이 아닐까하고.

스크린을 통해 본 <아비정전>. 형을 본 것도 좋았지만, (장)만옥 누나, (유)가령 누나, (장)학우 형, (유)덕화 형, (양)조위 형까지, 거의 종합선물세트였어요. 20여년 전의 그들을 다시 스크린을 통해 보는 이런 호사.

와, 그러고보니, 형이 살아있다면, 한국 나이론 벌써 53살이에요. 설운도 아저씨보다 2살이나 많다면서요? 그런데 형은 아저씨라고 부르기가 싫어요. 왜일까요. 하하. 그리곤 결심했어요. 저도 그 어느해, 4월16일 3시에 홍콩무역체육관을 찾기로. 그 1분 멘트를 찾아서. 음, 아마 난 오늘 밤에 거울을 보면서 형의 맘보춤을 따라해 볼거에요. 물론 형의 그 자태는 나오질 않겠지만. 제 맘보춤이 어떤지 그곳에서도 한번 봐주세요. 그냥, 오늘 하루만은 그렇게 해보려구요. 하하.

형, 형, 국영이 형, 잘 있는거죠? 그냥 보고 싶어요. 그게 다에요... 이만 줄여요. 내년에 또 봐요...

P.S.. 아, 참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마지막에 조위 형이 나와서 그 좁은 다락방 같은 곳에서 담배도 꼬나물고, 뭔가 준비를 하잖아요. 그리고 형의 그 빗질을 따라하는데. 그거 아마 <아비정전> 2탄이 나오려고 그랬던 건가요? 다른, 그러나 같은 '아비'를 조위 형이 연기하는? 제 추측이 맞나요?



2008/03/29 - [메종드 쭌/기억의 저편] - '아비'와 함께 우리 모두 '해피투게더'~
2007/04/01 - [메종드 쭌/기억의 저편] - 국영이형, 황사바람에 잘 계시우?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장국영. '4월1일'의 이름.
'만우절'을 밀어내고, 그날을 추모의 날로 만든 그의 위력.
벌써 5주기다. 발 없는 새를 떠나보낸 지 5년.
지천명이 채 되기 전에 떠난 그는, 여전히 아름답다. 박제된 모습 밖에 볼 수 없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가슴 속에선 여전히 살아 있는 장국영.

그럼, 4월1일에 필요한 건 뭐?
그렇다. (장)국영 행님을 만나는 일.
국내 개봉 당시 환불소동까지 빚었던 저주받은 걸작, <아비정전>과,
동성애를 이유로 개봉 불가 판정을 받는 등 수난을 겪은 수작 <해피투게더>.
문득, 생각난다. 그렇게 보고 싶어하던 <해피투게더>.
학교의 어떤 조직에서 그것을 구해 학내에서 야외상영을 했고,
그닥 좋지 않은 화질로 보게 됐지만, 감격하고 감동 먹었던 그때.
☞ 장국영 떠난 4월1일 수난작 해피투게더-아비정전 재개봉

5주기여서일까. '장국영 SPACE'까지 생겼다. 장국영의 삶과 흔적.
☞ '장국영 SPACE', 장국영을 추모하며 전시회 개최

이제야 본디 모습을 찾은 포스터의 모습이, 어찌 반갑다 아니하리오.
☞ '아비정전', 18년만에 바뀐 재개봉 포스터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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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국영 행님을 그리워하는 물결. 우리 모두, 그를 'miss'하고 있다는 사실.
☞ 4월1일 홍콩서 장국영 추모콘서트

우리 (유)덕화 행님도 한 마디. "영원히 잊지 말아달라"
☞ 방한 류더화 "친구 장궈룽, 영원히 잊지 않았으면…"

덩달아, 신난(?) (왕)가위 감독. 국영 행님 추모작이 모두 가위 감독 작품이다. 최근에 신작,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와 재개봉한 <중경삼림>까지 감안하면, 가위 풍년.
☞ 왕가위, 4월의 감독


또 하나,
재개봉 하는 두 작품 모두, 우리의 (양)조위 행님께서도 함께 출연한다는 것.
조위 행님이 10년, 20년 전 뽀송뽀송하던 시절의 그 영화들.

국영이형과 다시 만나는 시간. 우리 모두 인사를...
극장에서 우리 스쳐 지나가면 살짝 눈인사를...
그리고, We Miss U...


2007/04/01 - [메종드 쭌/기억의 저편] - 국영이형, 황사바람에 잘 계시우?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실연극복'에 대해, 나는 이렇게 지껄인 적이 있다.
실연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는, 실연을 현실 그 자체로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대를 만나고, 그대와 마주보며 숨을 쉬고, 그대를 안고서 힘이 들면 눈물을 흘릴 수 있었던 시절은 갔다. 실연은 그 모든 것을 추억으로 품게끔 강요한다. 그 강요로 인해 나는 갈증에 시달리고, 길을 걷다 눈물에 젖고, 골방에 쳐박힌다. 세상 모든 슬픈 노래는 나의 몫이다. 그럼에도 나는 실연을 온전히 나의 몫으로 감당한다. 실연으로 인해 나를 둘러싼 세계의 변화는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실연 이후의 나의 모든 행동과 의식 모두가 그 강요의 극복을 위한 것이다. 실연을 실연 그 자체로 받아들일 때 진정한 극복은 이뤄질 수 있다. 믿지 못할, 아니 믿기 싫은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 그것이 내가 실연에 대처하는 자세.

한편으로 실연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왜 극복해야 하는가. 실연은 실연 그 자체로 소중한 경험이다. 실연이 없었다면, 미처 경험하지 못할 행동과 감정이 지배할 것이다. 그래서 실연은 우리 생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 실연을 소중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실연 이전의 사랑을 생각하라. 사랑에 고마워해라. 나의 세계가 넓어졌음에. 또한 실연으로 나의 세계가 더 넓어졌음에.

사실, 이건 허접한 관념의 너울이다. 아마, 실연으로부터 멀찍하게 떨어진 시점이라 가능했던 머리놀림이었을 거다. 사랑이 그러하듯, 실연 또한 교훈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실존적으로 하는 거다. '실연'을 경험케 한 그 작자(?)가 다시 누군가와 행복하기를 빌어줄 수 있는 건, 아마, 일백이십칠만년의 시간이 지난 후다. 실연의 고통엔, 크기가 없다. 세상 무엇도 그 무게감을 이겨낼 수 있는 건, 장담컨대 없다. 애초에, 시작한 것부터가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그러나, 세상 모든 연애가 그렇지 않더냐. 변할 것을 빤히 알면서도, 세월의 풍화작용이 모든 감정의 결을 깎아낼 것을 알면서도, 무모하게 감정을 배팅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겪었고, 겪을 연애가 아니더냐.

실연은, 맞다. 폭탄이다. '트루먼 카포티'는 자신의 소설에서 이런 구절을 읊어댔다지. "세상의 모든 일 가운데 가장 슬픈 것은 개인에 관계없이 세상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연인과 헤어진다면 세계는 그를 위해 멈춰야 한다" 나는, 킹왕짱 오나전 동의한다. 그래서 실연의 아픔은, 사랑, 그 연애의 시작이 언젠가는 스러질 운명과 함께 한다는 단순한 섭리를 받아들여야 하는 고통에서 비롯된다. 실연 당한 사람의 잘못도 엄연히 있다. 그 섭리를 알고 있으면서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 실연은, 알면서도 준비할 수 없는 벼락 같은 것. 비 올 것을 알았으면서도, 우산을 준비하지 않은 것.

후루룩쩝쩝, 블루베리 파이

왕가위 감독의 새로운 시식품.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이런저런 평들이 나부끼고 호불호가 갈렸지만, 상대적으로 이전작들에 비해, 왕가위의 할리우드판 레시피, '블루베리 파이'는 껄쩍지근한 편이었나보다. 자기복제에 대한 토악질을 해놓은 분도 있더만.

그러나, 나는 한입 베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었다. 바람결에 부대끼는 혹평, 왕가위의 나르시시즘과 매너리즘에 대한 비판은 그저 뒤로 돌리고. 늘 마지막으로 남는다는, '블루베리 파이'를 남겨둘 수 없었다. 손님의 간택을 받지 못해, 지독한 외로움 때문에 자기 이름도 잊어먹을지도 모를 그 파이를. 블루베리 파이 사이사이 흐르내리는 우유를 온몸으로 핥고 싶은 기분이 들 정도로.

나는 모든 감각을 열었다. 신경을 늘어뜨렸다. 최대한 느슨하고 흐리멍텅하게. 흐트러질대로 흐트러져도 된다. 왕가위의 (장편)전작주의자로서, 그의 영화를 보는 나름의 방법을 터득한 터. 전작들이 투사되면 되는대로, 나는 그저 블루베리 파이를 부유하는 우유처럼 흐른다. 그것이 내가 왕가위를 대하는 방식. 그 남자, 왕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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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있는 사람들

똑같다. 현란한 카메라워킹과 화려한 색감의 향연 속에서도 그의 페르소나들은 여전하다. 사랑하고 이별하고, 기쁘다가도 아파하고, 고독하고 외롭고 쓸쓸하다. 부박한 삶은 또한 니힐하다. 주룩주룩 흘러 내린다. 기쁨, 슬픔, 웃음, 울음, 관심, 무관심, 쾌활, 우울, 안정, 불안, 온순, 분노, 연민, 감탄, 암담, 황홀, 고뇌, 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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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자, 엘리자베스(노라 존스). 세상 모든 실연의 아픔은, 혼자 떠안았다. 그녀에겐 더 이상 열쇠가 없다. 언제든 문을 따고 들어갔던 그곳엔, 이젠 다른 여자가 차지했다. 사랑을 잃고 징징거리는 캐릭터는 여타 전작들에선 대부분 남자들이 맡았던 캐릭터. 카페의 마지막 성찬, 그러나 간택받지 못한 블루베리 파이만이 그녀를 위로한다. 물론 그 파이는 바로 제레미(주드 로)의 페르소나. 거부하고 싶은 실연을 안고 떠나는 그녀는, 그저 차를 갖고 싶다. 어디로 몰 것인가는 자신의 의지. 사랑은 어디에도 있고, 이별도 어디에도 있더라. 누구에게나, 스토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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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제레미는 누군가의 절실한 부름을 받고 싶어한 남자가 아니었을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하고, 다른 이의 이야기가 담긴 열쇠를 모아두던, 자신의 이야기엔 인색하던 그 남자. 그의 사연을 추정할 수 있는 에피소드가 있지만, 그는 그저 기다릴 뿐이다. 마지막 남은 블루베리 파이처럼. 엘리자베스가 주소 없는 편지를 통해 자신을 객관화하는 동안에도 그는 그저,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언제 돌아올지 모를 그녀의 예약석을 만들어놓고. 블루베리 파이 또한 주인을 기다렸겠지. 그를 간택할 수 있는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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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바랜 사랑의 집착에서 벗어나고픈, 그리고 고통 받은 이 여자. 왠지 가장 끌렸다. 수린(레이첼 바이스). 이유는 모르겠다. 아마도, 너무도 스타일리쉬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녀가 지닌 아픔에 비하자면, 이상할 것 같지만, 묘하게 그것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애초 고독한 사람이었다. 남편을 만나게 된 계기도 그렇고, 그 남편의 집착에 못이겨 떠난 것도 그렇다. 온몸에 고독을 덕지덕지 바르고 있던. 결국은, 죽은 남편의 외상값까지 갚고, 당분간 그 계산서를 벽에서 떼지 말아줄 것을 부탁하고야 말던 이 여자. 마을 사람들이 그 사람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함이라던. 나는 그 말을 하는 순간이 가슴에 박혔다. 어찌할 수 없이 고독을 아는 여자. 롱테이크 한 순간으로 나를 사로잡아 버린 여자. 참고로, <아비정전>에서 장만옥이 맡은 역할의 이름이 '수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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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버거워서, 미워서, 카지노를 전전하던 이 여자, 레슬리(나탈리 포트만). 거침 없고, 쿨한 것 같지만, 가슴 속엔 결국 상처가 있다. 아버지의 존재를 잊고 싶지만, 결국엔 아버지의 사랑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게다. 포커판에서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고 큰 소리 치지만, 자신의 마음은 알지 못하는 바보 같은 사람. 나탈리 포트만은 하루하루 커지는 배우 같다. 더구나, 몸매까지 저렇게 착해주시니,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군. 스칼렛 요한슨과의 <천일의 스캔들> 왕 기대!

왕가위가 내린다

굳이 스토리를 따라가지 않았다. 나는 그저 우유처럼 흘러내리는, 감정의 찌꺼기들을 눈으로 핥고 음미했다. 엘리자베스의 실연 여행도, 그리고 제레미와의 재회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어떤 기억을 품은 스크린에 들러붙어서 서식하고 있었을 뿐. 노라 존스의 끈적끈적한 음색과 기름진 영상이 나는 나쁘지 않았다. 그저 몸을 맡기고 의식을 내동댕이 쳤으니까. 나는 그들과 함께, 블루베리 파이를 함께 나누고 있는 기분. 당신에겐 모르겠지만, 내겐 맛있는, 블루베리 파이!

실연은 어떤 식으로든, 해석될 수 없더라. 영화도 그랬고, 나에게도 그랬다. 그저 몸을 맡기고, 실연과 함께 하는 것. 왕가위의 영화가 그러했듯. 비가 내리면, 우산을 펼 때도 있고, 그냥 비를 맞을 때도 있다. 그런데 왕가위가 내리면, 우산보다는 그냥 맞고 지나는 것이 훨씬 낫더라. 나는 그렇더라.  
 
2008/03/05 - [메종드 쭌/그 사람 인 시네마] - 지독한 갈증과 슬픔, 그리고 왕.가.위...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하루종일 내린 빗방울 수 만큼의 기다림이나, 우주를 수놓은 별들의 수만큼의 그리움,
은 당연 아니다. 이런 기다림과 그리움은, 아주 지독한 사랑을 할 때나 가능한 일이고.

그럼에도, 그 이름이 호명될 때면,
나는, 가뭄 끝에 내리길 바라는 짧은 비만큼의, 어떤 기다림을 품는다.

그 이름, 왕가위.
신작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부터, 기다리고 있다.
마침내, 그런 왕가위가 내린다. 비처럼.

이름하여,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언제나처럼, 그 속엔, 어떤 '사랑'과 '이별'의 풍경화가 펼쳐지리라. 기억과 상처 역시 품은.
(왕)가위 감독이 미국 할리우드에서 찍은 첫 장편영화라는 타이틀이 붙은 이 작품.
주드 로, 노라 존스, 나탈리 포트만...
양조위, 장만옥, 장국영 등이 아닌, 새로운 조합이 만들어놓을 가위's World는 어떨까.
블루베리 파이와 함께, 어떤 밤들을 지새우면 '블루베리 나이츠'로 명명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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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인 평이 그닥 좋은 것 같진 않다만, ( ☞ 의아할 정도로 가볍고 퇴행적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
이같은 평 또한, '왕가위'라는 이름값에 붙은 기대값 때문에 그러하지 않겠는가.
사실 중요한 건, '왕가위'를 만난다는 사실.
지난 <2046>때처럼, 다시 4년을 기다린 끝의 만남.
나는, 그저 '블루베리'를 냉큼 베어먹을 준비가 돼 있다.
설혹, 그것을 먹고 배탈이 난다 하더라도, 어쩔 수 있나.
'블루베리'를 선택한 건, 결국 나인걸.

이번엔 어떤 사랑과 기억이, 스크린을 지배할까. 궁금하다.
그런 면에서, 내게 가위 감독의 최고작은, <동사서독>이다.
그 황량한 사막에서 펼쳐진 서사시의 운율을, 상처에 할퀸 외로운 군상들의 사랑에 대한 기억과 슬픔을,
나는 환상처럼 품고 있다. 어쩌면, 실제보다 기억 속에서 더 부풀려졌을 영화의 감흥.
간절하고, 또 간절하면서도,
누르고 묻을 수밖에 없었던 어떤 사랑과 기억 한자락.
마시면, 지난 기억을, 지난 일을 모두 잊게 해준다는 술, 취생몽사(醉生夢死 : 본뜻은, 술에 취하여 자는 동안에 꾸는 꿈 속에 살고 죽는다는 뜻으로, 한평생을 아무 하는 일 없이 흐리멍덩하게 살아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그리고 그들만의 농담. 잊으려 하면 할수록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이 기억임을 아는 두 사람만의 어떤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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