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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만난 오지은. 지난 7월의 작은 공연.

역시나 므흣함.



오지은, 친구의 친구에게 들려주는 사소한 이야기들

[인디신 팬미팅] ‘지은 : Hidden Track’ 오지은 팬미팅&팬사인회


올해 한국 문화예술계 열쇳말 중의 하나, ‘인디’. 물론 이전에 없던 것이 툭 튀어나온 것은 아니지만, 인디라는 레떼르를 단 작품 혹은 인사의 존재감이 부쩍 커졌다. 영화계에서 <워낭소리> <똥파리> 등 인디영화의 약진이 눈부시고, 음악계라면 장기하, 오지은 등 인디뮤지션의 활약이 대단하다. 


사실 인디라는 이유가 간택의 필수조건은 아니다. 좋은 작품과 활동이기에 우리의 오감이 즐겁고 즐길 뿐. 그런 한편으로 거대자본이나 상업적인 천박함과 타협하지 않는 활약이 주는 청량감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더불어, 내가 그들을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 야망과 탐욕이 미덕인 시대, “야망 따윈 필요없어!”라며 자신의 페이스로 ‘더 많은 것’이 아닌, ‘더 즐겁거나 더 나은 것’을 추구하는 그들의 태도. 때로는 불온하기에 더 매력적인 인디의 존재. 또 인디는 문화예술의 다양성, 혹은 삶의 다양성을 증명하고 만끽할 수 있는 기제다.


그런 다양한 이유로 인디가 호명되고 있지만, 무엇보다 인디는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무엇이 아니다. 중국의 인디영화감독 웨이아팅(<해바라기 씨> <햇살의 맛> <너와 나>)의 이 말. “독립(인디)영화의 독립이라는 단어는 제작이나 투자의 독립, 감독의 생각, 사상의 독립을 말하는 거지 관객으로부터의 독립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리하여, 관객 혹은 청자들로부터 독립하거나 외떨어지지 않은 한 뮤지션과 마주했다. 지난 4월 새 앨범 ‘지은’을 낸 오지은. 그와 함께 지난 20일 홍대부근의 카페 ‘타’에서 ‘열린 음악회’ 아니 ‘열린 토크쇼’가 펼쳐졌다. ‘YES24와 함께 하는 인디씬 팬미팅 2탄’으로 열린 오지은 팬미팅 & 팬사인회. 작은 무대와 작은 객석이 어우러진 이날 행사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동네 언니를 필두로 옹기종기 모여 얘길 나누는 인디 반상회랄까.

   

신고선수(인터뷰 <평범함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상냥한 사람의 음악, 들어보실래요?> 참조)에서 이젠 올스타로 뽑힌 ‘홍대여왕’(뮤지션 유희열의 표현) 오지은의 단독진행으로 전개된 수다의 기록. 궁금했던 당신에게만 살짝 들려주는 이날의 스케치. 우리 지은 언니가 반갑다면, 스크롤의 압박 따위는 잊으시라.


꾸밈없이 뻔뻔한 홍대여왕의 등장


“우와~” “예쁘다~” “오~”하는 함성이, 감탄이 발사된다. 그야말로 홍대여왕의 등장에 어울리는 감탄사? 그리고선, 여왕의 짧은 인사말. “이런 행사, 좋긴 한데 당혹스러워요. 사실 팬미팅 추첨을 통해 서로 안고, 생뚱맞게 ‘텔미’를 부르고, 자동차 키를 받는 그런 것은 우리에게 먼 얘기고, (웃음) 오지은을 아는 사람들이랑 이야기하는 그런 자리라고 생각해주세요. YES24에게 감사해요. 이번 자리 히든 트랙이라고 했는데, 왜. 그동안 이야기하지 않은, 말로 표현해보지 않은 거를 해볼까 해요. 인터뷰는 인터뷰적으로 하니까, 제 걸 꺼내려고 해도 잘 안 되기도 하고. 오늘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뭐랄까, 캐주얼하게, 뽀대 안 나게 진행해 볼게요. (웃음)”


꾸밈없는 자리로 하겠다는 말이렷다. 사실 오지은이 그렇다. 18시간을 자도 자학하지 않고 행복해 할 뿐인 그다. 새벽 3시에 라면을 먹어도 그저 맛있기만 하고, 어깨가 뻐근해질 때까지 게임을 해도 다만 뿌듯해할 뿐인 그가 아니던가. 웬만해선 길티를 안 느끼는 뻔뻔한 뇨자가 바로 오지은 아니던가. 그의 유일한 길티플레저라면, 공포의 7시간 웹서핑 정도? 그런 그이기에, 우리가 이렇게 모인 것 아니겠어. 


그는 이벤트 페이지를 통해 올라 간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시작하겠단다. 170여 개나 되는 질문에 답하겠다는 야심찬(!), 전무후무한 얘기를 꺼냈다만. 글쎄, 일단 지켜보자. 손발이 오그라드니까, 질문에 포함된 상찬은 일단 발설하지 않고, 그는 질문과 답을 잇는다. 참, 그는 세상에 살짝 삐진 상태라고 했다. 그것도 감안해서 봐 주시라. 참, 그리고 비슷한 맥락의 질문과 답변은 함께 묶었다. 


노래하는 지은



- 노래 부를 때, 어떤 생각을 하나요?

“아무 생각 안 해요. 텅 빈 상태로. 텅 빈 그릇을 채우는 것처럼, 가사에만 집중해요.”


- 즐겨 듣는 음악이 있다면? 가장 감동받은 책은?

“매일 다른데, 지금은 피치카토 파이브(주. 코니시 야스하루와 마키 노미야로 구성된, 60~70년대 복고사운드를 중심으로 시부야 케이라는 장르를 탄생시킨 일본의 밴드. 2001년 해체됐음.)를 즐겨들어요. 아무래도 지금 세상에 살짝 삐져서 그런 것 같아요. (웃음) 또 일본의 여자 아이돌그룹인 퍼퓸의 ‘스위트 도너츠’도 좋아요. 평소에 다른 뮤지션의 음악을 안 듣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마구마구 들었는데, 작업할 때 내 얘기를 해야 할 때, 누구의 뭔가를 빌려오는 것은 맞지 않아서요. 그래도 요즘은 흡수의 시기가 온 것 같아요. 음악을 들어야 하는.


책은 앨범 만들 때부터 잘 안보고 있는데, 이틀 뒤 2주 여행을 가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포켓본을 사서, 여행 중에 읽을까 생각 중이에요. ‘가장’이라는 말이 참 어려운데, 요즘 『쿠루네코』(주. 고양이 4마리와 동거 중인 30대의 여성 프리랜서 디자이너 쿠루네코 야마토가 키우던 고양이들을 다른 가정에 입양시키기 위해 블로그에 만화 연재를 시작했고, 단행본으로도 나왔다.)라는 만화를 즐겨봐요. 참, 『토성맨션』(주. 오지은이 번역한 만화) 2권도 나왔어요. (웃음)”


- 영향을 준 뮤지션이 있다면.

“정말 많아서 이걸로 밤 샐 수도 있어요. (웃음) 어릴 때 클래식 영향도 있었고. 비틀즈. 카펜터스, 음악 하는 자세는 너바나. 마이클 잭슨이 죽었을 때, 커트 코베인(주. 너바나의 리더)이 죽었을 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어요. 몇 억 명을 즐겁게 해주고 위로해 줬는데, 자신은 너무 괴로워하고. 그런데 난 그러고 싶진 않아요. (웃음) 어릴 땐, 비틀즈를 자주 들었는데, 폴 매카트니가 부른 ‘실리 러브 송(Silly Love Song)’을 좋아해요. 거대 담론이 아닌 작은 사랑을 다뤘는데. 그렇잖아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얼마나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지.”


- 어떻게 노래를 만들어요?

“나도 신기해요. 어떻게 노래를 만드는지. 다시 만들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고요. 최근에 가장 많이 생각하거나 조금씩 생각하는 것을 쓰거나, 그것을 갖고 있다가 어느 날 멜로디를 붙여야겠다고 생각하고 붙여요. 일관성이 없다는 얘기도 듣는데, 그런 얘기를 들어도 괜찮아요.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에 일관성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우습고. 그냥 노래가 되는 신기한 순간을 즐기는 것 같아요.”


- 기타 잘 치죠? 기타를 배우고 싶은데 쉬워요?

“외국어랑 비슷해요. 앞에는 조금 어렵고 뒤는 조금씩 쉬워져요. 제가 사실 기타를 못 치는 사람인데, 3개월 정도는 지루해요. 그 시간을 견디면 오지은만큼 깔 수 있어요. (웃음)”


- 언제 공연을 처음 했어요?

“유치원에서 김완선 노래를 불렀어요. 500원을 준다고 해서. (웃음) 노래는 말할 수 있을 때부터 불렀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클래식을 좋아하셨는데, 그걸 듣고 다음날이면 따라 부르기도 하고.”


- 일본에 공연한 적은? 길거리 공연을 한 적은 있나요?

“있어요. 삿뽀로에 22살(만 20살)에 음악을 더 이상 안 하겠다고 생각하고 간 적이 있어요. 중학교 때부터 음악을 했는데, 즐겁지도 않고 왜 하나 싶어서 갔었죠. 그렇게 삿뽀로에 갔는데, 음악을 더 달게 들었던 시절이에요. 돌아와 다시 음악을 하면서 삿뽀로는 못가겠더라고요. 그렇게 못 가다가 2집을 내기 직전에, 이제는 음악하는 사람이라고 정체성을 인정해 줬을 때, 삿뽀로에 다시 가서 포크음악 클럽에 갔어요. 무작정, 주인을 찾아가 공연을 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하라고 했어요. 그렇게 공연을 하면서, 2집을 만들면서 이런저런 딜레마가 있을 때인데, 그곳의 사람들한테 위로를 받았어요. 그렇잖아요.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맘에 있는 깊은 이야기를 하는 때가. 그때가 그런 순간이었어요. 길거리 공연은 안 해봤어요. 100%로 공연하고 싶어서요. 길거리 공연을 하면 음향도 열악하고, 잡생각도 많이 들 것 같아서요. 물론 길거리에서 하면 낭만도 있고, 어울리는 장르가 있지만, 길에선 아직 안 해봤어요.”



- 자신이 아닌 다른 소재로 가사를 쓴다면.

“최근에 만든 노래가 있어요. 아는 동생의 짝사랑을 다뤘는데, 제목은 ‘아저씨 미워요.’ (웃음) 동생이 나이 많은 아저씨와 연애를 하는데, 그 아저씨가 꼭 여우같아요. 노래는 발랄한데, 어떻게 할까 생각 중이에요. 제 얘기가 아닌데, 일어날 법하고 일어날 것 같은 노래도 하고 싶어요. 전혀 감정이 들어가지 않은 노래를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 목 관리는 어떻게 해요?

“안 하는 것에 가깝긴 한데요. 안 좋다 싶으면 오미자차를 마시고, 공연을 해야 하면 창법을 바꿔요. 목이란 악기는 살아있어서 감정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삑살이 나거나 음악이 떨어지면 안 되지만, 그걸 초월할 수도 있어요. 노래 연습은 중2~중3 때 하루 2시간씩 열심히 했는데, 그때 한 걸로 지금 벌어먹고 사는 거예요. (웃음)”


- 이 사람과 듀엣하고 싶다는 가수가 있어요?

“음, 무척 많은데... 한 명 꼽으라면 이 분은 모를 텐데, 이승열. 꼭 같이 해보고 싶어요. 혼자서 용 쓰는 걸 그만하고 싶기도 하고. (웃음)”


- 오지은에게 ‘노래’, ‘음악’이란.

“안 하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고 했잖아요. 묘한 불편함이랄까. 첫 시련이 24살 때였는데, 나모 모르게 곡을 쓰고 있었어요. 극한 순간이나 어려움이 닥칠 때, 누군가는 소주나 수다, 잠 등 다양한 것이 있을 텐데, 저는 노래를 만들고 있더라고요. 또 나를 위해 한 행동이 누군가에게 감정적으로 위로가 되는 그런 것이 신기하고. 계속 그러고 싶어요. 음악은 곡 쓰고 다듬고 레코딩하고 노래하는 공정인데, 굳이 꿈이란 말을 부여하고 싶진 않아요.”


살아가는 지은


- 현재 삶의 낙은?

“이틀 뒤 가는 홋카이도 여행 스케줄을 분초단위로 짜는 것. 철도노선을 보면 정말 좋아요. 일본에는 철도덕후(철덕후)가 있다는 데, 세상에서 제일 가는 진상덕후라죠? (웃음) 저는 철덕후라는 생각은 없고, 그저 철도를 탈 뿐! 주변에서는 본격 철도덕후 인증여행이냐고 하기도 해요. (웃음)”



- 어떻게 하면 ‘대인배’가 될 수 있을까요?

“음, 대인배는 호방한 것 보다는 눈에 안 띄게 다른 사람들 입장을 읽어서 처신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어요. 1집 때 ‘사운드 니에바’(주. 오지은이 대표를 맡고 있는 인디레이블)할 때는 간단했는데, 2집(주. 2집은 음반기획사인 해피로봇과 계약을 맺고 발매했다)을 내고 날 둘러싼 세계가 너무 커져버리더라고요. 방송은 물론, 공연도 커지고. 생각해야 할 것이 100배나 커졌어요. 비유하자면, 졸업앨범을 찍을 때, 주변을 챙겨주기 그런 힘든 느낌이랄까.”


- 어디서 영감을 얻어요?

“각종 실연이죠. 요즘은 평화로워서 창작활동이 잠잠해요. (웃음) 3집에는 어떤 음악이 담길 지 모르겠는데, 경험이 음악을 만든다는 명제에 휘둘리고 싶지 않아요. 그걸로 브랜드화하고 싶지도 않고요.”


- 음악이 너무 솔직해서 아프기도 했는데, 그런 아픈 사랑을 했나요? 일본어는 어떻게?

“일단은 경험이고요. 일본어는 무라카미 류의 『교코』를 일본어로 읽으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시작했어요. 막상 일본어로 읽으니 꼰대 같았아요. (웃음) 일본에 간 건, 쓰리고를 맞아 제적돼서 갔어요. 그 김에 고생하면 정신 차리지 않을까 했는데, 고생하고 정신 차렸어요. (웃음)”


- 왜 세상에 삐졌어요?

“일기장(지은닷컴, www.ji-eun.com)에 과한 것도 쓰고, 가장 친한 친구에게 보여주는 느낌이었는데, 누가 그걸 보고 좋지 않은 얘길 했어요. 마음을 봤으면 좋겠는데, 다른 걸 보고 멋 내기 위해 그런 말을 썼냐는 식도 있고. 저는 약간 실험하는 마음이었어요. 쇼 비즈니스와 뮤직 비즈니스 사이의 실험. 1집에서 용기와 확신을 얻고 노력은 했는데. 솔직한 사람보다는 솔직한 듯한, 털털한 듯한, 사람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서 세상에 삐졌어요. 그래도 뭐, 이번 홋카이도 바람에 날리고 오려고요. (웃음)”


- 가족이나 친구들은 뭐라고 불러요?

“친오빠는 저를 금치산자라고 불러요. (웃음) 친구들은 내 귀여운 강아지라고도 부르고.”


- 음악 이외의 특별한 것이 있다면?

“일상이 특별하지 않아요? 오래 봐서 지겨운 남친이나 업데이트 안 되는 쇼핑몰처럼. (웃음) 참, ‘요즘 애들 싸가지 없지 않다’는 말을 경험한 적이 있어요. 같은 수업을 듣는 나이 어린 친구에게 시험 범위를 알려달라고 했는데, 알려주던데, 옆에 있던 한 친구가 ‘너, 진짜 착하다’고 그러더라고요. 마초 폭발이죠. (웃음) 제가 마초에 꼰대에요. 00학번인데, 캠퍼스는 09학번이 주인이잖아요. 그래서 ‘그림자처럼 다녀야한다’ ‘저들의 맑은 공기를 해치면 안 돼’라고 주문을 외우고 있어요.”   


- 연애스타일은 어때요?

“음 지은양은 1기랑 2기로 나눌 수 있는데. 1기 때는 마지노선이 없었어요. 만나서 헤어지고 나면, 혼자 살림을 벌써 차렸어요. (웃음) 사귀면, 너와 나랑 결혼하면 어쩌고저쩌고. 지금은 2기인데, 있는 듯 없는 듯해요. 쓰나미 말고 바다에 발바닥이 닿을 듯 말 듯한 그런 연애를 하고 있어요. 이런 것에 생각이 많은 게 의무인 것 같아요. 그래서 노래까지 나오고. (웃음)”


- 연애를 많이 한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해요?

“연애를 한다는 건, 여자남자 공통된 건데, 못해본 사람들은 엉뚱한 사람을 좋아해요. 나한테 나쁜 남자, 나쁜 여자 같은. 회사 같은 부서의 별 볼일 없어 보이는 남자가 진국일 수 있어요. 주변 자원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어요. (웃음) 더 나은 내가 되는,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 그런 사람과 연애해야 돼요.”


- 청순, 애교, 섹시 중 자신 없는 것이 있다면?

“잡지촬영하면 부족장 포스가 나와요. 사진 나오면 ‘얘, 누구야?’ 싶기도 하고. (웃음) 애교는 자신 없고. 섹시는 앨범 자켓 속지에 누워서 있는. 청순은 1집에 있고. (웃음)”


     

- 무엇 때문에 인디에 빠져 있나요?

“인디에 빠져 있진 않아요. 한국의 ‘인디’는 신기한 것도 있는데 좀 복잡해요. ‘홍대신’이라는 것이 생긴 거 같아요. 제가 대형기획사를 싫어하는 게, 그들은 프린세스 메이킹을 하고 싶어해요. 옛날에 (대형기획사에) 몸 담은 적이 있는데, 그때 제 몸무게가 45kg이었는데, 43kg까지 빼라는 거예요. 막 싸우고. 미친 거 아냐? 또 아는 언니 연예인이 스캔들이 터졌는데, 내쳐지는 걸 봤어요. 그래서 모든 걸 자기가 진행하지 않으면 토사구팽 당하지 않을까, 모든 걸 내가 공정하지 않으면 남 좋은 일 시킬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을 것 같은데...

“전 라디오스타가 정말 좋아요. 이상한 얘긴데, 진실에 가까운 것 같아요. 유일하게 나가고 싶은 방송 프로그램이에요. 날 어떻게 깔지 궁금해요.”


- 부러운 사람 있어요?

“일본 배우인 아사노 타다노부의 부인인데 뮤지션인 ‘차라(Chara)’요. 정말 부러워요. 엄청 사랑 받으면서 애 셋을 키우고, 귀엽고 주름도 없어요. 신이에요. (웃음)”


- 20대 지나오면서, 20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음, 제가 한국 나이로 스물아홉인데, 물론 내년에 또 만으로 스물여덟이 되겠지만 (웃음), 모든 충고는 같잖지만, 지금 20대에게 조금은 할 수 있는 말이 생겼어요. ‘이것이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것인가’하는 질문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한국은 그게 차단돼 있는 것 같아요.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아버지가 라인을 잘 못 타셔서 좌천당하는 걸 보고,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굳이 출세가 아니더라도, 아파트 평수가 작아도 기운차고 행복한 아버지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그건 사치스러운 질문이 아니에요. 뭘 해야 내가 좋고, 내가 좀더 잘 할 수 있고, 덜 스트레스를 받는지, 그런 것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너무 빨리 요령 안 부렸으면 싶고, 쉴 때 쉬면서 좀더 자신을 위한 시간과 고민을...”


오늘은 하늘에 별이 참 많다...


역시나, 170여 개의 투구(질문)는 무리다. 그의 매니저들이 뒤에서 알게 모르게 사인을 보내면서 오지은의 투구 수를 측정하고 있던 터. 가끔 그들의 사인을 훔쳐보면서, 곧 9회말 경기가 끝나겠거니 했다. 오지은은 아직 150km를 넘나드는 광속구를 던지고, 더 던질 힘이 남아 있어 보였으나, 투수의 어깨를 염려한 감독의 지시를 무시할 수는 없을 터. 관중은 아쉬워도, 충분히 경기를 즐겼으므로, 오케이.


“친구의 친구를 만난 느낌”으로 “화장도 안 하고 멘트도 안 짜고” 이뤄진, 이날의 행사. 자주 팡 터지고, 때론 멍 때리면서, “만사를 연애로 해석하는” 오지은의 직구와 변화구에 맞춰 호흡한 경기였다. 대부분의 진지를 솔직함과 유쾌함으로 버무린 오지은의 투구는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연말엔 아마 ‘골든 글러브’를 노려도 되지 않을까. 요즘 잘 부르지 않았지만 참 좋아하는 노래라는 ‘두려워’에 이어진 마지막 노래, ‘오늘은 하늘에 별이 참 많다’를 끝으로 경기는 마무리됐다. 누구 하나가 아닌, 우리 모두가 승리투수가 됐던 이날의 기록도 이것으로 거의 끝이다. 그러나, 경기 끝난다고, 다시보기를 멈추지 않는다. 진정한 야구팬은 집에 돌아가 다시보기를 돌려보면서, 그날의 경기를 복기하면서 짜릿해 하는 법.


그리하여,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뮤지션 레니 크라비츠가 그랬고,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야구선수인 요기베라가 그랬듯이. “It Ain't Over 'Till It's Over.” 말인 즉슨, 나머지 질문은 지은닷컴(www.ji-eun.com)의 ‘간혹에세이’에 올리겠다고 오지은이 공언했다. 물론 언제 올라올지는 몰라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끝날 때까지, 우리의 반상회는 끝난 것이 아니다. 답을 기다리는 동안, 그의 노래를 들으며 마음산책을 해도 좋겠다. 폴 오스터나 알랭드 보통처럼 문장력과 재치가 앞서는 것보다 애니 프루처럼 뭔가 뭉근한 정서를 좋아하는 그의 음악을. 그나저나, 오늘은 하늘에 별이 참 많다. 언제나 그랬듯, 별은 내 가슴에.^.^



P.S. ‘라디오스타’(MBC)와 ‘LG트윈스’ 야구단에 고하자면, 지금 세상에 삐져있는 오지은에게, 라디오스타 출연과 시구를 허하라. 그리하여, 그 삐짐을 조금이라도 풀어주시라. 혹시 아나. 오지은이 야구장에서 시구한 이후, 승승장구를 거듭하여, LG트윈스가 가을야구를 할 수 있게 될 지. 물론, 난 장담 못한다. 난 그저 롯데 자이언츠의 가을야구를 바라는 자이언츠 빠돌이일 뿐이니까.^^; 아울러, 오지은의 출연은 고품격 방송 라디오스타의 품격을 더 높여줄...까. 역시 나는 장담 못하지만, 김구라와 오지연의 구라빨 배틀을 한번쯤은 보고 싶다규! 아, 그리고 나도 정말 좋아하는 이승열. 부디 두 사람의 듀엣이 이뤄지는 그날이 오길.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앨범이든 콘서트든, 이 몸은 달려가리다. 필청!


[예스24 기고 원문]

평범함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상냥한 사람의 음악, 들어보실래요?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지난 5월의 즐거웠던 인터뷰.


무엇보다 오지은이 내가 참 좋아하는 책, 《커피 한 잔 더》의 번역자여서,

그 번역 당사자를 직접 만난 기쁨도 무척이나 컸던 자리.


다만, 함께 왔던 기획사 매니저의 실수였는지,

차과 빵 값을 계산하지 않고 가서 가난한 프리랜서가 당황했던 기억. ㅜ.ㅜ

(장소는 홍대 부근의 VELOSO)




평범함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상냥한 사람의 음악, 들어보실래요?

[인터뷰]  2집 앨범 <지은> 낸 뮤지션 오지은



음악은, 클래식이건 뽕작이건 상관없이, 참으로 사적인 경험이다. 이건 내 음악이야, 내 노래야, 했던 경험들, 누구에게나 있는 그런 것. 사람들은 음악을 통해, 노래를 통해, 숨을 쉬고, 공감하며, 나와 같은 누군가가 있음에 안도한다. 물론 아니라도 좋다. 음악은 그저 친구다. 함께 있으면 좋은 친구. 누구나 일상을 살기에, 사람 사는 것, 그닥 다르진 않다. 우리는 어쩌면, 버티고 견딜 뿐이다. 그 와중에 음악이 있다.


건강의 3대 필수 요소. 맑은 공기, 깨끗한 물, 나머지 하나가 노래 부르기란다.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은 글쎄, 도시에서는 아무래도 쉽지는 않다. 물론 돈 많은 이들이야 이런 것들도 화폐와의 거래를 통해 쉽게 얻을 터이지만. 그렇다면 가능한 것은 노래 부르기. 누군가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 흥얼거리기.


노래를 한다. 나는 그것이 참 개인적이면서도,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사회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그래서 부럽다. 앨범을 내고, 그것으로 사람들과 만나고 교감하고. 자기 목소리로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 많이 부럽다. 어디 글에선가, 노래는 예술가가 성취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란다. 물론 철저한 상업적 기획에 의해 공산품처럼 생산된 노래는 뭔가 영혼이 빠진 듯해서 왠지 시시하지만.


노래를 듣자면, 그 사람이 보이기도 한다. ‘에브리씽’이 아니라도, ‘어 리틀 빗’이라도 좋다. 특히나 나와 어떤 공감, 특정 교감이 이뤄질 때, 그 노래는 ‘베스트’다.


지은, 신고선수가 되다


여기 누군가에겐 ‘베스트’로 꼽히는 가수가 있다. 약간 과장하자면, 그런 가수 또 없다고 말해도 돌 날아올 확률이 높지 않은. 유희열의 표현을 빌자면, 홍대 인디신의 여왕, 오지은이다. 한 친구는, 그의 1집을 놓고 이렇게 말했다. “머리가 띵해지면서 아득해지는 소리를 만난다. 정신과 육체가 잘 아울려 있다고나 할까.”


그래, 먼저 1집 <지은>부터 얘기하고 가야겠다. 이 음반은 음악(성)부터 유통방식까지 독특했다. 야구로 말하자면, 그는 ‘신고선수’랄까. 어디에서도 불러주지 않아 직접 구단을 찾아가 테스트를 받은 경우. 혹은 자력갱생이라는 말이 어울릴까.



오지은은 음반을 내고 싶었다. 그러나 음반 제작에 필요한 돈이 없었다. 누구 하나 그를 위해 음반을 제작해줄 사람도 없었다. 무턱대고 저질렀다. 인터넷을 통해 ‘선주문․선입금’을 받았다. 말하자면, ‘내 음악 살 사람, 손들고, 돈을 내.’ 그렇게 모인 돈이 186만원하고 6달러. 참, 6달러는 뭐였냐고.


“해외에 살고 있는 한 학생이 자필편지를 보냈다. 6달러를 동봉해서. 맨 처음 가격이 7000원이였다. EP(Extended Play, 싱글 음반과 정규 음반의 중간에 위치하는, 일종의 비정규음반)를 생각해서 책정했는데, 결국 정규음반이 됐다. 돈을 더 내라고 하기도 뭣하고, 미국에 돈을 더 들여서 음반을 보냈다. 하지만 나는 그 돈보다 더 큰 마음을 받아서 정말 기뻤다.”


그런 음반이 나오자, 입소문을 탔다. 5000여장이 나갔다. 자립형 인디 DIY음반의 깜놀(깜짝 놀랄만한) 성과였다. 야구로 말하자면, 솔로 홈런. 영화로 말하자면, 인디영화관에 걸릴까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와이드릴리즈된. 독특한 음색도 그렇지만, 그의 노랫말과 감수성은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특히 20대 여성들은 ‘내 얘기야’라면서 환호했다. 노래와 삶이 일치하는 듯한 느낌. 혹자들의 표현을 빌자면, 그는 ‘신개념탑재 싱어송라이터’ 혹은 ‘자아충만보컬’.


스스로도 놀랐다. “듣는 사람에 대한 고려 없이 한 일종의 실험이잖나. 100% 심하게 내 얘기를 했는데, 반응을 보고선 되게 놀랐다. 세상에 허락받은 느낌이랄까. 아싸, 이렇게도 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아마 이런 선례도 없을 거다. 그래도 되게 힘들다. 그런 걸로 화제가 되는 것도 원치 않았다. 필요에 의해 하면 모를까. 다시 돈이 없으면 이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다시 하는 것은...(웃음) 뮤지션은 돈이나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 음악을 하는 것이 제일 좋다.” DIY가 좋은 점도 많았지만, 기적이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는 것.  


지은, 적시타를 날리다


2집은 그래서 레이블과 계약을 통해 음반을 냈다. 물론 일체의 간섭 없이. 누가 감히 버럭. 계약하기 전에 작업한 음악들로 1집과 마찬가지로 멋대로 만들었다. 그는 무엇보다 이런 계기를 만들어 준 리스너(listener)들에게 무한 감사를 표한다. “사람들이 CD를 사지 않아서 음반계가 안 된다는 말을 싫어한다. 그건 곧 리스너를 폄하하는 말이잖나. 리스너들 덕분에 음반을 내고 생계를 잇고, 가능성을 봤다. 2집을 낼 수 있었던 원동력도 바로 그들이다.” 정식으로 그라운드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실력을 인정한 관중들의 열띤 응원 덕분. 신고선수의 적시타, 그리고 신화(?)의 시작.


무엇보다 그 응원은 정곡을 찌름이 있기에 가능했다. 너와 내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구나. 우린 그렇게 서로 교감하고 있구나. “그날그날 있었던 일을 적는다. 심할 정도로 내 얘기가 많다. 생각나는 것들을 휴대폰 메모에도 적고, 수첩에 적기도 하고. 영수증 뒤에도 적는다. (웃음) 기록을 위한 기록이 되는 것은 싫다. 조금씩 그렇게 기록했다가 작업을 할 때, 그때의 감정을 떠올리면서 덧붙이곤 한다. 1집 타이틀곡은 자려고 누웠다가 가사랑 곡을 바로 쓴 경우다.”


그의 앨범이 일기장 같은 노래들로 채워진 이유다. 2년이 흐른 뒤, 지난 2월에 발매된 2집 음반도 마찬가지다. 어쿠스틱 기타와 건반을 중심으로 한 1집에 비해, 사운드가 확연히 강화됐지만, ‘지은스러움’은 여전하다. 음반 타이틀도 <지은>으로 똑같다. 여지없이 자신의 이야기면서, 또래의 여성들 혹은 청춘이 품음직한 감정들로 충만하다. 


1집이 품은 날 것 그대로에 비해 못내 아쉬움을 품은 사람도 있겠지만, 2집의 진화에 더욱 반가움을 표하는 사람도 있다. 더구나 타인과 세상과 교감하는 세계가 구축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곡들도 있다. 「 인생론」「 작은 자유」와 같은 곡을 듣다보면 그렇다. 그렇다면 그의 인생론은 어떤 색깔을 지니고 있을까.


“살다보니 알게 됐다. 인생은 어떻게든 꼬이기 마련이더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친구끼리도 꼬이는데, 다른 사람과 오죽하겠나. 그래서 사람들에게 상냥하게, 뚱하게 있지 않고, 함께 있는 사람들과 즐겁고 싶다. 그들로부터 위로를 받은 만큼 주고 싶고. 20대가 끝나가면서 다짐한 것이, 사람에게 상냥하게 대하자다.(웃음) 「 인생론」은 주변 사람들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시기에 ‘나는 왜 이럴까’하면서 쓰게 됐다.”


그러니까, “어차피 완벽히는 할 수 없으니 요만큼만 뻥튀기는 하지말자 그냥 나의 몸집대로 아는 만큼만 말하고 모르는 건 배우면 되지(2집 「 인생론」 중에서)”. 특히나 그가 궁핍한 시절을 거쳐 깨달은 그것. ‘헛된 욕구를 가지지 말자.’


20대 초반, 그는 사고 싶은 물건을 사지 못하면 잠을 못 잘 정도였단다. 응? 그러니까 된장녀였다, 이거? 그랬던 그가, 경제적인 곤궁함에 시달리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됐고, 기름기를 쫙 뺐다. “일본에 유학 갔다가, 빚을 지게 되면서 된통 뒤집어쓰는 통에 고생을 많이 했다.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40분~1시간 걷는 것은 예사였고, 사치품 구입은 2~3년 동안 제로였다. 소비습관이나 인생관이 바뀌게 된 계기였다. 좋은 인생경험이었던 셈이다.”


지은, 용병술의 귀재


음악도 자신의 깊은 곳에서 자연스레 뛰쳐나왔다. 사실 일본에 간 것도 음악과 작별하기로 한 직후였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한 음악이었다. 간절히 원했다기보다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다. “내 (음악)언어도 없는 상태에서 하고 있었는데, 답보상태인 거다. 7~8년이 돼도 답이 안 나왔다. 결국 ‘나는 음악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일본으로 떠났다. 그렇게 지내다보디 곡이 스르륵 나왔다. 1집에 있는 「 작은 방」이 일본에서 첫 번째 쓴 곡이다. 한국에 돌아오면서 본격적으로 곡을 쓰기 시작했다. 음악을 안 하고 사니까 어색하더라. 자연스럽게 음악이 나오기까지 얼쭈 10년이 걸린 셈이다. 10년은 곡을 쓰기까지의 고민이었던 셈이고.”


그러니까 야구 유망주가 갑작스레 회의를 품고, 도피성 유학을 떠났다가 자신의 길을 되찾은 경우라고 얘기하면 될까. 막상 떠나고 보니, 막 좀이 쑤셨던 거지. 그의 노래도 이같은 자연스러운 마음의 흐름과 궤를 같이 한다. 기존의 다른 뮤지션들과는 다른 노래가 나올 수 있었던 이유. “노래도 끼워 맞춘 것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나온 거다. 내가 해야 하는 음악이 그런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을) 만들어야지 작정하고 하면 뒤틀린다. 내면의 흐름에 맡기는 음악을 당분간 하게 될 것 같다. 아마 음악학교를 다녔으면 정형화된 방식으로 나왔을 것이다.”


2집은 1집과 비슷한 맥락에 있으면서도 자신을 변주하고 있다. 그것은 당연히 1집을 만들 때의 그와 2집을 만들 때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켜켜이 쌓고 있다. 그는 소설, 미술, 음악, 영화 등 다른 장르의 창작자들에 대한 인터뷰를 유심히 본다. 어떻게 하면 이런 작품들이 나왔나, 그 창작의 비밀이 궁금하단다. 그만한 분석 깜냥은 아니라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많고 창작욕이 들끓는 뮤지션이다. 뭐든 재미가 있어야 제 맛이라고 생각하고.


2집은 그런 면에서 재미있는 협업 작업이었다. “(음반이) 갈 방향으로 잘 간 것 같다. 스스로 만족한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많았는데, 사공이 많아도 산으로 가지 않아서 좋다. (웃음) 디어 클라우드의 기타 ‘용린’과 같이한 트랙은 1시간 만에 끝냈다. 나도 만족하고 저쪽도 만족하는 지점을 찾았다. 타이틀곡인 ‘날 사랑하는게 아니고’는 MOT의 이언과 한 달 동안 메신저 등을 통해서 음악파일을 주고받으면서 합일지점을 만들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베이스를 맡고 있는 정중엽도 그를 빛내주는 세션이다. 


그의 표현으로는 이건, WBC에서의 김인식 감독의 용병술. 적절하게 어울릴 법한 선수들을 직감적으로 선택했고, 그것이 주효했다. “좋아하는 음악인들과 같이 할 수 있었던 것이 영광이고 정말 좋았다.” 더구나, 이런 재미있는 작업이 선배 음악인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에 그는 꿈인가, 생시인가, 마법 같은 순간이라고 황홀해 한다. 유희열은 그를 ‘홍대 여왕’이라고 부르고, ‘언니네이발관’의 이석원은 올해 발매된 음반 중 오지은 2집이 최고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니까, 오지은이 음악을 계속 하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나. 휴~ 안도의 한숨을 쓸어내려도 좋다.


지은, 평범함에서 길어 올리는 음악


오지은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평범한 일상의 사람들이 일상의 배경음악으로 자신의 음악을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그에겐 평범함이, 가장 소중한 가치다. 그는 또한 그런 평범함을 지키고 유지하는 것이 힘듦을 안다.


“미디어에서는 김연아의 삶이 여느 회사원의 삶보다 중요한 듯 다뤄지는데, 그건 아니다. 각자의 인생이 있고, 각자 머릿속의 엄청난 생각을 다른 사람들도 다 갖고 있지 않나. 그렇지 않아도 인생이 괴로운데, 보통 사람들이 내 노래를 듣고 안식이나 휴식,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효용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직장생활을 해 봤는데, 음악, 소설 등 예술작품이 주는 효용이 있었다. 그걸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여느 보통의 존재는 그렇다. 이타적이기도 한 동시에 이기적인. 우리는 각개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그런 평범함이 한데 엮여 우리 사회 전체를 만든다. 그리고 어떤 창작자들은 이런 사회를 조망하거나 엮어서 서사를 만든다. 가장 보통의 존재에 감응하는 재능이다. 그 재능.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감정이입의 능력이 있어야 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사고도 갖춰야 한다. 중국이 억압한 티베트에 대해 노래한 「 작은 자유」를 듣자면, 그는 분명 그런 재능이 있다.


그의 노래가 사적이라지만 그것이 그의 안에서만 침잠하지 않는다. 1집과 비교해도 그렇다. “조금 더 철이 든 것 같다. 시선이 바깥으로 가고 있다고 느낀다. 나도 어떤 방향인지는 몰라도 그 시점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감정에 맡겨서 음악 작업도 계속 할 거다. 3집은 그래서 나도 모른다.”


때로 그의 노래는 푸르름이다. 일관성이 떨어지는 대목도 있지만, 그래도 그는 그것이 자연스럽다. “(이번 앨범의) 5번에서 7번 트랙이 뜬금 없거나 음악적으로 떨어진다는 얘기도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나의 우울을 극대화하는 건, 어떤 종류의 거짓말 같다. 사람이 늘 우울한 것도 아니고, 그러다가 히히덕 거릴 수도 있지 않나. 자기 우울에 파고들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것도 중요하다. 현재의 나는 ‘(음악적) 설정’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있다. 좀더 원숙한 음악가가 되면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말하자면, 카르페디엠(Carpe Diem). 자신의 얘기를 한다는 큰 울타리 안에서 여러 개의 톤을 지닌 자신을 상황에 맞게 드러내는 것.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그다. 그럼에도 그는 상승 욕구가 없다고 말한다. “상승에는 끝이 없는 것 같다. 30평 아파트를 마련하면 40평이 욕심나고, 40평을 가지면 100평을 욕심하고 또 이것이 충족되면 여러 채를 가지려고 하잖나. 목이 마른 상태라고 그런 거다. 나는 지금 목이 마르지 않고, 계속 목이 마르지 않은 상태로 있고 싶다.”



어찌 보면 생경한, 욕망을 제어하려는 이 이십대 여성의 태도는 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아까 언급과 같이 경제적 궁핍이 안겨 준 고민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그는 한 권의 책을 든다. 숭산 대선사의 가르침(설법)을 벽안의 현각스님이 엮은 『선의 나침반』. “극도로 우울할 때 읽은 책이다. 숭산 대선사의 큰 뜻을 얼마나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영향이 컸다. ‘오직 모를 뿐’이라는 설법이 크게 와 닿았다. 모르는 상태도 괜찮다는 것. 자신에 대한 긍정을 알려줬다. 상황을 지배하려는 건 오만임을 가르쳐줬고, 나를 구렁텅이에서 꺼내준 책이다.”


지은, 무정형의 사람


그는 정해지는 걸 두려워한다. ‘나는 이런이런 사람이다’라고 규정하는 그런 것 말이다. 몇 년 지나면 달라질 수도 있고, 한계를 만드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일까. 곡을 만들 때는 이성이 개입하지도 않고, 음반을 만들 때는 책이나 영화, 음악을 듣지도 않고 보지도 않는단다. 음반이 나오고 나서야 그는 모든 것을 즐겁게 흡수한다. 자연스럽지 않은 상황을 경계하는 것.


음악에도 그래서 전면에 메시지를 드러내고 싶지 않다. 팩트만 얘기하면서 세상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사회나 정치에 관심이 많지만, 의견이 달라도 나쁜 것은 아니다. 내부에서 생각이 익어가야지, 외부에서의 계몽은 좋지 않다고 본다. 노래로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싶지 않다.”


그는 바보 같은 여행도 선호한다. 그날 나의 상태와 마음에 따라 발걸음을 옮기는 그런 여행. 나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 같은 명분은 위험하다. 못 찾으면 어쩔 것인가. 여행은 그저 여행. 뭔가를 꼭 얻겠다는 생각보다 그것 자체로의 즐김. 돌아오는 순간에 느끼는, ‘그래도 파이팅하면서 살아봐야지’하는 그런 느낌이 좋다. 자신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도 그랬으면 좋겠단다. 일상의 정형을 벗어나는 순간을 만끽하게 되길.


그렇다면 3집을 벌써 꺼내 들어도 될까. 역시나 그는 아직 모른다. 그러면서도 정규 음반이 아닌, 생각지도 못한 것을 하지 않을까 싶다. “잠깐 오지은이 아닌 무엇을, 자기 복제나 자기 소모를 안 하기 위해서 좀 더 즐겁게 하고 싶다. 1~2집은 슬픈 얘기가 많아서 무대 위에서 운 적도 있는데, 새로운 작업을 한다면 무대에서 즐길 수 있는 그런 것을 하고 싶다.”


참, 잊지 않고 얘기해야겠다. 그는 번역 일도 한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알려진 작품인 『커피 한 잔 더』. 현재 2권까지 나왔는데, 커피 한 잔에 담긴 우리네 사람살이를 맛깔나게 담은 작품이다. “무척 좋은 작품이라 번역에 아쉬움을 갖고 있다. 번역일은 명예직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좋은 작품을 번역하게 돼서 명예롭기도 하고. 따뜻한 감성이 돋보이는 SF만화인 『토성맨션』도 그가 번역했다.


오지은은 여전히 실험 중이며 전진하고 있다. 완결형이 아니다. 홍대 인디신의 여왕이라는 수사에 압도당할 필요는 없다. 그저 그의 음악이 당신과 매칭된다면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다른 음악을 찾으면 그만일 터. 그럼에도 상냥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의 말은 자연 곱씹게 된다. 그는 상냥한 사람을 이렇게 표현했다. “사근사근한 그런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친구나 주변 사람한테 구원 받은 적이 많다. 밥도 사주고 자고 가라고도 그러고. 정말 무척 많은 위로를 받았다. 멋진 친구, 언니, 오빠들로부터. 그런 보살핌이 지금의 나를 세운 것이다.” 


그의 노래가 어쩌면 발레리나의 발 같은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모든 걸 내던지면서 타인과 교감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이 담긴 노래. 그는 기교 부리지 않고 노래를 참 자유롭게 부른다. 그것도 마음을 드러내면서. 재능이 세상을 섬기게 될 때 그 가치는 더욱 돋보이게 마련이다. 그의 사적인 마음은 세상과 연대하기에 마냥 개인만의 것이 아니다. 자기 욕망에의 실현에 천착하지 않는 그의 마음 때문에라도, 나는 그의 노래가 세상을 덜 슬프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기대한다.


물론 그는 큰 야심을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가 야심가라고 해야겠다. 김혜리 씨네21 편집위원의 말을 빌려. 어떤 지위를 확보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탁월한 뮤지션이 되는 일이 점지된 운명이자 소명임을 의심치 않는다는 의미에서 야심가다. 좋은 예술가는 찬사까지 이겨내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실. 그가 찬사에 짓눌리지 않는 상냥한 사람이 되길 나는, 바랐다. 그리고 흥얼거렸다. “착한사람이 되고 싶어/ 매일 내가 되고 싶어/ 웃을 때 이빨이 8개가 보이도록/ 친구가 되어준 너에게/ 나를 좋아라해 준 너에게/ 연락은 자주 못하더라도 사랑해요 ♪” 응? 나도 그러고 싶어. 착한 사람. 상냥한 사람. 참, 이 상냥한 사람(의 노래)을 만나고 싶다면, 31일 마포에서 열리는 그의 단독공연을 찾으시라. 아마, 후회는 않을 거다.


[예스24 기고 거의 원문. 댓글 덕분에 싱글홈런이라고 잘못 썼던 것을 솔로홈런으로 고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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