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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아니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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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8.05.05 이야기라는 매력, 사랑이라는 종교 (8)

연극. 알다시피, 영화와 완전 다르다. 매력, 영화만큼 철철 많다. 말하자면, 연극이 영화보다 좋은 27가지 이유, 댈 수도 있다. 반면 영화가 연극보다 좋은 28가지 이유, 마찬가지다. 그냥 서로 다른, 장르다. 그럼에도 하나만 대보자. 연극이 영화보다 좋은 이유는, 연극이 전지현보다 좋은 이유는, 만질 수 있어서다. 만진다고? 만진다고? 무엇을? 연극을? 배우를? 소품을? 아니, 도리도리. 무대의 공기를! 배우들이, 소품이, 연극 자체가 뿜어내는 공기를, 만질 수 있는 것. 그것이 연극의 매력. 그것이 내가 연극공연을 즐겨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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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연극과 영화는, 아예 다른가. 아니. 둘은 '통'하는 것이 있다. 공통점. 그것은 스토리텔링, 즉 이야기. 물론 실험적인 것들도 간혹 있지만, 둘은 서사구조를 갖추고, 그것을 관객과 나눈다. 이야기. 중요하다. 밑줄 긋자. 그것은 창조(창작)의 영역이다. 이야기를 만드는 것,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 그것은 뻥튀기자면, 창조주가 된다는 의미다. 이야기는 그런 것이다. 애초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다 인물이 생기고, 사건이 발생하고,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문다. 완전 뻥튀겨 말하자면, 이야기가 스타트를 끊는 순간은, 천지가 창조되는 순간. 조물주가 마법을 부린 셈이다. 유후~ 환상특급행 열차를 타시라. 이야기의 세계로 들어온 당신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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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동화>는 바로, 그런 이야기의 속성에서 출발하는 조물주(?) 3인방의 공동 작품이다. 광대 복장을 한 세명의 신이,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티격태격 한다. 보아하니 광대이나, 신을 어설프게 따라한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하고, 창조한댄다. 극장 들어오기 전 안내판과 포스터에서 보았던 세 단어가 생각났다. 사랑(Love), 예술(Art), 전쟁(War). 딱 떠오르지 않는가. 대하서사로망스. 익숙한 조합이다. 세 광대 각자가 지지하는 가치가, 그것들이다. 구라빨하곤. 현란하다. 어느 하나의 가치라도 놓치고 싶지 않다. 결국 합의하는 것이, 세 가지를 믹스하는 것. 사랑도 있고, 예술도 존재하며, 전쟁 또한 자리매김한 이야기. 프롤로그는 끝났다. 이야기의 본격적인 시작, 창조주들의 환상연주곡.

주인공은 역시나, 피아니스트다. 예술의 개입. 한스라는 독일의 피아니스트. 그리고 전쟁이 발발한다. 전쟁의 광대(신)이 좋아라, 한다. 예술가의 손에는 피아노 대신 총이 쥐어지고. 아아, 어쩌란 말이냐. 인간의 생이란 원래 그러하지 않느냐. 역사의, 전쟁의 소용돌이 앞에선 자신의 의지나 재능 따위는 아무짝에도 무쓸모. 피아니스트라고 별 수 있나. 전쟁의 수레바퀴에 짓눌리는 인간의 삶. 전쟁통에서 헤매다 비슷한 처지의 적군 한명을 만나고.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외따로 떨어진 각자의 처지, 혹은 예술적 감성이 서로를 알아보도다. 허허, 전장에서 적군과의 우정이 가능한지, 묻지 마라. 그들은 만나야 하고, 환상이 때론 전쟁을 이겨내는 법이다. 나는 비록, 전쟁을 직접 경험해보지는 못하였으나.^^;

한적한 도시의 작은 카페를 상상하는 꿈 혹은 환상. 그리고 춤을 추는 한명의 무희. 적군의 여동생이란다. 꿈틀대는 한스의 예술적 감성. 아, 피아노, 피아노를 치고 싶어라. 그 춤에 어우러진 연주를 하고 싶어라. 전쟁이 생의 숨통을 조여오고, 피아노의 선율을 멈추게 했다지만, 어디 그냥 꼬꾸라지는 것이 사람이더냐. 노래하고 춤을 추고, 술을 마시자. 그것이 환상일지라도.

그러나, 전쟁의 힘은 역시나 세다. 인간의 의지를 개무시하고, 생을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능력에선 아무도 따라오지마. 한스는 귀를 잃고, 적군의 여동생, 마리는 눈을 잃는다. 뭐냐. 피아니스트가 소리를 잃고, 무용수가 빛을 잃으면 어쩌자는 거냐. 그럴 때 등장한다. 예술과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낄 자리를 못찾던 사랑, 사랑, 사랑. 징징대며 땡깡부리던 사랑의 광대(신)이 신이 났다. 사랑이란다. 나도 애타게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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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이제 각자의 소중한 것을 잃은 두 사람의 러브러브모드에 집중한다. 우연찮게 마주친 두 사람. 할 일은 러브러브 밖에 더 있겠나. 익숙하고, 뻔한 이야기 아니냐고? 맞다. 어디선가 누군가를 통해 듣거나 보거나 읽었음직한 이야기. 포연 가득한 전쟁 속에서 아름다운 예술이 꽃 피고, 전쟁도 어찌하지 못할 사랑이 이뤄지는 이야기. 전쟁이라는 거대한 수레바퀴에 짓눌린 사람들의 사랑. 광대(신)들도 뻔한 아포리즘을 들먹인다. "꿈꾸는 사람에게 동화는 환상으로만 남지 않는다." "사랑은 마법이다."

그런데 이 통속과 상투성을 극복하는 힘이 이 연극에는 있다. 그것은 아마, 우리 마음 속 한켠에 자리한 환상의 결을 건드리기 때문일 것이다. 세 광대의 절묘한 호흡과 익살, 이야기의 즐거움. 가뿐히 넘겨버리는 상투성. 포복절도할 뻔도 했다. 내가 햅틱한 무대의 공기에 웃음보가 터져버렸다. 춤과 음악이 어우러진 마당에 마임까지 곁들인 세 광대(신)의 종횡무진은 그 뻔하고 빈약한 사랑의 결을 풍성하게 만들어 줬다.

그렇게 진행된 한스와 마리의 러브러브가, 옛 동화와 결합돼 이야기는 좀더 풍성풍성. 아, 사랑은 애초 발생부터 환상이 아니던가. 환상 없는 사랑은, 사랑 아니죠. 누가 먼저 연주하고, 누가 먼저 춤을 췄는지 알 수 없게, 전쟁통에 포기했던 한스와 마리의 감성이, 꿈틀꿈틀. 아, 이 진득한 환상의 장면. 춤은 음악이 되어 울리고, 음악은 춤이 되어 공간을 채우는 사랑의 합연. 아아, 사랑이 꽃피는 앙상블. 친절이 친근함으로, 친근함이 그리움으로, 그리움이 애틋함으로, 애틋함이 절실함으로 변하는 그 사랑의 마법을 읊조리는 사랑의 광대(신). 그들 각자의 불편함 또한 더 이상 불편이 아니게 만드는 그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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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모든 것을 극복한다? 물론, 이건 거짓말. 그런데, 거짓이면 또 어떻고, 환상이면 또한 어떠리. 곰곰히 사랑했던 기억을 Rewind 시켜보라. 사랑이 뻥치지 않은 적 있더냐. "평생 행복하게 해 줄 거야"라는 가장 흔한 말. 아니라는 것 알면서 내뱉고, 아니라는 것 알면서 넘어가는, 사랑의 마법 혹은 구라빨. 그래서 나는 순순히 그들의 사랑에 넘어갔다. 눈물 글썽이며. "보이지 않음이 답답하지 않았고, 들리지 않음이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쿨쩍쿨쩍. ㅠ.ㅠ 사랑의 광대(신)이 조정하는 사랑의 마법에 나는 걸려든 셈. 낚였다!!!

사랑은 또한 그런 것 아닌가. 산소같은 것이면서도, 벼락같은 것. 그래서 나를 살게도 하지만, 죽게도 하는 것. 물론 나의 말은 아니지만, <환상동화>는 그 말에서 '산소'와 '살게도'에 방점을 쾅쾅. 전쟁이 벼락처럼 다가와 소리를 잃게 하고, 빛을 잃게 하더라도, 사랑은 그 모든 것을 잊게 만드는 마취제. 그렇다. 이 연극의 정체. 사랑하고 있다면 그것이 행복한 일임을, 사랑하지 않고 있다면 사랑하고 싶음을, 알려주는 연극 아닌가. 전쟁 밑에서 납작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고, 전쟁광대(신)의 진실 그 자체인 일갈마냥, "비명과 함께 태어나 고통과 함께 살고 결국 절망하여 죽는 것이 인간"이지만, 꿈꾸라고, 상상하라고, 사랑하라고, 말하더라. 또한 전쟁과 역사가 지나고 난 뒤 풍선처럼 빵빵해지는 강한 생명력을 가진 것이 인간이라고.

무엇보다 이야기의 '힘'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할 수 있는가를 느끼게 한 연극. 연극 자체의 서사가 대단하단 것은 아니지만, 행복한 연극 보기. 일상의 무게에 짓눌려, 이야기와 상상의 힘을 간과하고 있었다면, <환상동화 > 쪼아~ 천지가 창조되고 환상이 시작되는 순간의 황홀경에 빠질 수 있거든. 한스도 전장 속에서 그 작은 이야기와 상상 덕분에 살아나고 삶을 변화시키지 않았던가. 대사는 문학적이면서도 때론 반짝반짝 빛난다. 아포리즘에도 그닥 기름기를 느낄 수 없다. 작가 겸 연출가인 김동연 감독이 수많은 고전에서 영감을 얻은 덕인가보다. 무엇보다 세 광대(신)의 호흡은 쵝오.가장 아름다운 광경은, 음... 예술광대(신)가 마리와 한스의 사랑 마임 앞에서 뿜어내던 조그만 비눗방울의 향연. 그 방울방울에 올라타고 별들 사이에 길을 놓고 싶었던 내 마음.


다만 그 거대한 전쟁의 격변 속에서 짓눌릴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을 좀더 통찰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을. 화자인 광대(신)들이 모든 것을 설명하다보니, 마리와 한스의 이야기는 별다른 힘을 발하지 못한다. 주객이 전도된 격이랄까. 광대(신)들이 한스와 마리보다 더 빛났고, 서사의 주체가 조연으로 기능할 수밖에 없더라. 그래서일까. 마리와 한스의 존재감은 완전 부족. 보고난 후, 광대(신)들의 재롱(?)이 우선 생각나. 전쟁통에서의 예술혼을 불태워야 할 한스의 연기도 어정쩡하고. 비중이 작아서 그랬는지, 연기력이 좀 안돼서 그랬는지, 선후가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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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공연의 캐스팅은,
사랑광대 - 최요한
예술광대 - 송재룡
전쟁광대 - 최대훈
마리 - 김지현
한스 - 이현배


P.S... 음, 근데 마리 역을 연기한 김지현의 길쭉길쭉한 팔다리와 갸름한 얼굴은, 옛날 여자친구를 연상시키더군. 이미지가 닮았달까. 내가 뭐가 그리 좋은지, 입을 헤~벌리고 보더라는 친구의 말. 내 관람태도가 그랬던 건, 뭐 딴 이유 있겠어. 예뻐서. 예뻐서. 사랑스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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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