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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8 14:39 메종드 쭌/무비일락
지난 12일 폐막한 12회 부산국제영화제(PIFF).
9편의 시네마 혹은 세계와 조우했고,
행복한 시네마 유람이었다.

그리고 PIFF리뷰에 올린, 어설프게 갈겨쓴 세편의 감상문.

좀더 많은 에드워드 양 감독님의 유작들을 보지 못한 아쉬움도 있지만,
<마작>(Mahjong)이라도 봐서 다행. 10여년 전의 장첸도 나오더군.

도시와 청춘에 건네는 편지


그래, 그땐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어디에도 끼일 틈이 없어 부유했고, 도시는 그런 부유하는 나를 음흉한 미소로 부추겼다. 그래서 도시와 청춘은 때론 함께 부유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지 않은가도 싶다. 너희들을 보면서도 그랬다. 도시는 정글과 같았고, 그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청춘은 도시를 이용하지 않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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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작>의 한 장면. 출처 : www.piff.org


너희들을 마주하면서 그랬다. ‘그래, 타이베이라고 다르지 않겠지.’ 96년 작품이라지만, 나는 어떤 지금과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고 실토해야겠다. 도시는 여전히 욕망을 머금고 있고, 그의 산물인 너희 청춘들도 그 욕망에 사로잡힌 포로.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인정투쟁’은 자연스러운 욕구다. 그래서 너희들의 투정에 나는 마음이 갔다. 너희들을 한때 키워주던 가족이나 기성세대는 더 이상 너희들을 보호하지도 못하고, 존경받을만한 사람들도 아니었잖아. 마음 붙일 곳을 상실한 청춘이 도시에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겠니. 그저 그것을 비웃고 외면하는 수밖에.

그렇다고 너희들이 그것을 제대로 조롱하고 뛰어넘을 수 있는 단단한 무언가를 갖추지도 못했잖아. 너희들의 사기, 구라, 사업(?)은 결국 낙오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싶다. 누구도 너희들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알 수 있게끔 알려주지도 않고, 기성세대는 그런 책임에 무심했잖아. 역할모델이 다 뭐야.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전고투할 수밖에 없는 비정한 도시의 얼굴. 비극이지, 비극. 신흥도시였던, 타이베이 역시 그렇게 제대로 된 근대화를 겪지 못한 채 숨가쁘게 달려가기만 했으니까.

그래, 너희들에게서 그런 공통분모와 연민을 느낀 건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였을거야. 이 곳 역시 이른바 ‘아시아의 4룡’으로서 한때 맹위를 떨쳤지. 너희 나라와 같은 테두리에서 비슷한 궤적을 그렸더랬지.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경제성장’이라는 화두에 탐닉해서 속도만 낼 줄 알았지, 브레이크가 고장된 것은 알지 못했던. 국제화된, 메트로폴리탄이 되고픈 도시는 결국 외국인들의 도마에 오른 먹잇감이었던 거겠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뒤틀린 욕망게임.

도시고, 청춘이고, 영혼은 따라가지 못하는데, 몸만 멀찌감치 앞서 나가고 비대해지다 보니, 결국 파열음이 나기 마련이지. 물론 그 속도에 잘 편승한 사람이야 다르겠지. 하지만 그 사이에 끼인 엉거주춤한 청춘은 어디에도 마음 둘 곳 찾지 못한 채, 살아남기 위해 악다귀 같은 전투를 벌여야 하잖아. 상실의 시대를 관통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뭐? 그래, 부유하는 것이지. 진짜 내가 원하는 욕망을 알지 못하는 자들의 유일한 선택.

홍어(콩센탕)가 늘 ‘No problem’을 입에 달고 사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었어. 그런 어디로도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을 위로하기 위한, 무의식적인 자기 위안의 말. ‘No problem’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어디에도 없었지만. 결국 스스로를 기만할 수밖에 없었기에 그는 비극을 맞닥뜨리게 된 거겠지? 어디에도 구원이 없었으니까. 아버지의 자살 또한 기댈 언덕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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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작>의 한 장면. 출처 : www.piff.org


그 와중에, 제국주의적 성향을 지닌 서양인들이 너희 도시를 장악함으로써, 너희들을 더욱 발붙일 곳 없게끔 만들지 않았을까도 싶다. 홍어가 마르타(비르지니 르도엥)에게 보였던 가식적인 친절은 그래서 나온 것이지. 10년 뒤면 타이베이가 세계의 중심이 될 거라며, 19세기에 이어 21세기에도 제국주의가 영화를 누릴 것이라며, 그래서 여기에 있는 것이라던 데이빗의 말은 너희들이 발붙이고 있는 땅이 어떻게 되고 있단 걸 보여주잖아. 도시는 비열했고, 어떻게든 이익을 건사하려는 서양에서 온 자본 혹은 이익집단의 욕망이 들끓더라. ‘문명’과 ‘근대화’에 대한 우월의식 때문인지, 뒤틀린 생존욕망을 그대로 전이시키고 있는 그들의 흉포함도.

물론 데이빗을 찾아 대만까지 온 마르타가 이말 직후에, 자신을 진심으로 보호해 준 뤤뤤(고웨린)을 다시 찾아가 나누는 키스는 일말의 희망을 안겨다 준 것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어. 마냥 흑색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에드워드 양 감독님의 메시지였을까.

홍콩(장첸), 너의 울음도 어떤 새로운 징조인 것 같았다. 갑작스럽고 뜬금없어서 어이없이 웃긴 했지만, 울음으로 대신하면서 끝끝내 그 이유를 말하지 않은 것에 어쩐지 마음이 가더라. 연상녀들의 육체와 음식 파상공세에 울음을 떠뜨리면서 자신의 욕망을 대한 자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고.

나는 그렇게 너희들을 통해 우리네가 살았던, 살고 있는 한 풍경들을 엿봤다. 사실적인 근거에 바탕을 두고 도시와 청춘, 그리고 사람살이를 관찰하는 에드워드 양 감독님의 현미경을 통해. 여전히 나는 그래서, 에드워드 양 감독님이 그립네. 그래, 이만 안녕.

2007/07/02 - [메종드 쭌/시네피아] - "저도 늙어간다고 말하고 싶어요..."... 에드워드 양 감독의 유작 <하나 그리고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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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작>의 촬영장면. 에드워드 양 감독님과 장첸을 볼 수 있다. 출처 : www.piff.org


2007/10/21 - [메종드 쭌/시네피아] - 특별할 것 없지만, 특별한 마을을 찾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
2007/10/19 - [메종드 쭌/시네피아] - 너는 상상하고, 나는 즐겁고… <엑소더스>(Exodus)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우울한 시기다. 후덥지근하고 눅눅한 한여름의 기운 탓인가. 잇단 죽음과 타계 소식이 들려온다.
'한여름밤의 꿈'같은 사랑만 갈구하기에도 부족할 때이건만,
어디서든 생은 끊임없이 죽음과 시소를 탄다.

아프간 사태로 잇단 우울한 소식이 들려오는 와중에,
오는 4일은 또한 정은임 아나운서의 3주기인 마당에,

두  거장이 하루 사이로 구름의 저편으로 향했다.
30일 잉마르 베리만 감독님이 타계. 향년 89. ☞ 영화를 예술로 승화시킨 거장 지다
역시 같은 날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님이 영면에. 향년 94. ☞ 伊거장 안토니오니 감독 타계

허허. 허할 수밖에.
영화계도 두 거장을 잃은데 대해 망연자실하겠지만, ☞ 세계 영화계에 잉마르 베리만 추모 물결
미처 제대로 탐구하지 못한 거장들을 보낸 나도 참으로 허하다.
두분 다 천수를 누리셨다면 누리신 거지만, 이렇게 불쑥 구름의 저편으로 가시는 건 왠지 구슬프다...

더구나 약 한달전, 에드워드 양 감독님을 불현듯 보내버리지 않았던가.ㅠ.ㅠ

많은 이들이 이미 슬퍼하고 있다. ☞ 영화거장 잇단 타계, 영화팬 추모 물결
영화사의 거대한 등대들을 한꺼번에 보내버린 허함에.
 
어떻게 이런 타이밍에 절묘하게 특별전이 열린다니.
하이퍼텍 나다의 센스! 영화사 진진의 센스!
미리 이렇게 잡아놓았는데, 갑자기 영면하셔서 그 특별전은 더 특별해지겠다.
이렇게라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그래, 이 참에 베리만 감독님이 남기신 유산들과 마주해야겠다.

잉마르 베리만 특별전 (Ingmar Bergman retrosp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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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덧 없이 스러지곤 하는 인생길. 하나의 생명이 나고 자란 길목에는 무엇이든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그것이 티끌만치 소소하건, 밤하늘의 별처럼 밝게 빛나건. 그건 상관없다. 그리고 그 흔적은 인생길목 곳곳에서 파생품을 남긴다. 의도하건, 그렇지 않건. 한 생명과 아무 연관이 없어도 그만이다. 그 길목엔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흔적이 남고, 우연이 어떤 재밌는 그림을 그려내기도 한다.

이런 글 역시 그런 파생품이다. 나와는 실상 무관할 것 같지만, 그럼에도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세계 속에서 생을 영위하던, 어쩌면 몇개의 고리를 연결하면 끈이 닿았을 지도 모를 사람들에 대한 추모 혹은 소회. 근데 내가 끊임없이 기억의 회로를 돌려대는 이유는 뭘까. 나 자신도 뚜렷하게 그 이유를 댈 수가 없다. 그냥 인위적으로 분절된 시간의 흐름에서 특정 시간에만 작동하는 무언가가 나의 뇌 회로 속에 있는건가?

어쨌든 캄보디아 여객기 추락사고가 날을 축축하게 만들 즈음이다. 예기치 못한 사고에서 비롯된 오열과 슬픔은 누군가에겐 분명 일상의 분열을 일으키고 있을 것이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는 2년 전 여름 찾아갔던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누군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은 그들과 어떤 일면식이나 인연이 없음에도 묘한 연결고리가 채워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유가족이나 친구들에 비할 바는 완전 아니겠으나 슬픔은 좀더 구체적이 되고 감정도 좀더 애틋해진다. 희한한 일이다. 내가 밟았던 땅을 2년 후에 밟은 사람들이 맞닥뜨린 사고. 공간에 대한 구체적인 연상이 가능해져서일까.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는 것이 현재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그리고, 오늘 알게 된 에드워드 양 감독님의 부고 소식에 밀렸지만, 어제(7월1일)는 말론 브란도의 3주기였다. 7월 전후엔 또 하나의 역사들이 자리잡게 됐다. 에드워드 감독님은 미국 현지시각으로 6월29일 돌아가셨다니, 뒤늦게 알려진 셈이다. 그리고 어제는 위대한 배우이자, 영원한 '대부'로 자리매김한 말론 브란도가 떠난지 3년이 되는 날. 생긴 것 하나는 끝내줬던 배우.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서 엉덩이가 그토록 육감적이던 배우. 눈빛만으로도 카리스마 짱이던 배우.

지난해 개봉한 <슈퍼맨 리턴즈>에서 CG의 힘을 빌어 스크린에 등장하기도 했지. 78년 <수퍼맨>에서 주인공 수퍼맨의  아버지로 출연했던 인연 때문이었다지. 78년작의 영상샘플을 가져와 3D 그래픽으로 스크린에 등장하면서 죽음 이후에도 존재감을 과시했던 배우.

에드워드 양 감독님도 말론 브란도도 저 하늘의 저편에서 편안하시길. 그러고보니 두 사람. 살아생전 인연은 없었겠지만 구름의 저편에서 만나 영화 한편 찍어보시는 건 어떠실지. 나도 언젠가 구름의 저편으로 가는 날, 두 사람이 찍은 영화를 보게 되길. 3년 전, 그의 부고 소식을 들은 뒤 긁적였던 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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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만으로 스크린 상에서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배우들이 있다. ‘말론 브란도’가 그렇다. 어떤 역할이건 탁월한 연기력과 공력으로 스크린을 장악하는 배우를 보기란 그리 쉽지 않다. 영화는 그 배우들로 인해 더욱 빛이 나거나 생명력을 획득하기도 한다. 말론 브란도는 그런 면에서 ‘대배우’나 ‘명배우’란 타이틀이 아깝지 않다.  

그런 ‘말론 브란도’가 현지시간 지난 1일, 향년 80세의 나이로 세상에 작별을 고했다. 캘리포니아대학(UCLA) 의료센터 대변인은 폐질환으로 사망했으나 고인이 더 이상은 알리길 원치 않아 더 이상 밝힐 수 없다고 전했다.

어쨌든 명확한 것은 그가 더 이상 영화를 위해 어떤 배역도 맡을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이다. 스크린 속의 그는 영원히 박제된 채 남아 있겠지만 그가 어떤 영화에든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과연 누가 영화 속에서 ‘말론 브란도’를 대체할 수 있겠는가. 그는 오직 하나였고 그 삶에 마침표를 찍음으로써 ‘하나’가 지닌 모든 것은 세상에서 생명력을 상실했다. 그는 더 이상 영화를 위해, 관객을 위해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다.


파리에서의 그 탱고는 마지막이었다

태평양을 건너온 그의 죽음 앞에 떠오른 건, <대부>에서의 그 강건하고 근엄한 표정이 아니었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서 보여준 도시의 무감과 삶의 비루함을 담은 그 얼굴.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그에게서만 뿜어져 나오는 향취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 아닌 다른 사람의 얼굴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표현하지 못하는 그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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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자살한 아내를 둔 중년의 폴(말론 브란도)이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잔느(마리아 슈나이더)와 나누는 밑도 끝도 없는 정사. 폴은 세상에 지쳤으며 모든 것을 잊고 싶을 뿐이다. 아노미 상태에 빠진 그에게 이름과 과거는 거부의 대상이다. 그래서 신상에 대해 묻는 잔느에게 소리친다. “너의 이름을 알고 싶지 않아! 너는 이름도 없고 나도 이름이 없어. 우리는 모든 것을 잊는거야.” 그건 절규였다. 정상이라 일컬어지는 것들의 무의미함에 대한. 다수에 의해 타협된 ‘정상’이라 일컬어지는 것은 개개인의 본질을 꿰뚫지 못함을 폴과 잔느는 온 몸으로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가 불러온 논란만큼이나 말론 브란도의 표정은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 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그 표정은 한결 같았다. 그의 얼굴은 혁명의 시대가 지나친 자리에 남은 공허함과 목표를 잃은 도시의 욕망이 교차했다.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여성과의 섹스도 탈출구가 되지 못했다. 파멸은 친구였고 녹슨 해방구만이 남아있었다. 처연한 고독과 적나라한 쓸쓸함만이 나부꼈다.

내가 처음 파리에 가고 싶다고 느낀 건, 사실 그 영화 때문이었다. 파리지앵들의 우아한 발자취나 흔적보다, 68혁명을 느끼고 싶다는 욕구보다, 수많은 사상들이 잉태했던 카페에서 맡을 수 있는 사상가들의 향취보다, 파리로 오라고 유혹한 건 말론 브란도의 표정이었다. 어떻게 그런 표정이 나올 수 있는지, 그래서 파리가 궁금했다. 파리에 가면 그렇게 되나 싶어서. 물론 그건 말론 브란도였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것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말론 브란도의 몫이었다. 앞으로 누구도 그 모습을 대체할 수도 없을 테고 표정은 더욱 난감하다. 내게 있어 파리는 이제 더 이상 탱고를 출 수 없는 도시다. 이미 그건 말론 브란도의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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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과 잔느는 서로 아무 것도 묻지 않고 대답하지 않는다.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에서 영원한 ‘대부’로


그는 사실 ‘부러진 코’를 지녔다. 무명 시절, 돈을 벌기 위해 로데오경기에 참여했다가 코가 부러지면서 인상 깊은 매부리코를 얻었다. 그래서 그는 깔끔하고 정갈한 꽃미남의 이미지보다는 터프하고 강인한 인상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는 날 때부터 탁월한 연기자의 운명을 타고 태어났다. 세일즈맨이었던 아버지보다 배우였던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은 말론 브란도는 미네소타의 연극 아카데미에 들어갔다가 퇴교당한 뒤, 뉴욕으로 가 ‘스텔라 애들러’를 스승으로 본격적인 배우의 길에 접어들었다. 당시 그는 스승으로부터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천부적인 배우” “브란도가 연기하지 못할 인간은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전해진다.

연기력만큼이나 그의 외모는 특출했다. 특히나 젊은 시절, 그는 제임스 딘과 비교되곤 했다. 성난 눈빛은 당대의 젊은 카리스마로 인정받으며 반항아로서 그의 입지를 단단하게 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직후 방황하는 청춘들의 아이콘으로서, 승전국이 된 미국의 전형적인 ‘아메리칸 마초’로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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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카리스마는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1951)에서 거칠고 황량한 스탠리 코왈스키 역이나 <와일드 원>(1953)에서도 갱두목 역을 통해 명실상부하게 인정받았다. <워터 프론트>(1954)에서 외로운 복서 역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타기도 했다.   

그러나 제임스 딘이 죽어서 신화가 됐으나 말론 브란도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순간적인 임팩트가 강한 사람이었고 배우로서의 캐리어를 쌓아갈 뿐 신화가 된 제임스 딘을 잡을 수는 없었다.

그는 한때 식탐과 여탐에 파묻혀 있기도 했다. 1950년대의 활발한 연기 활동 뒤 60년대 들어 그는 뜸하게 활동했다. 대신 그는 이혼과 재혼을 반복했으며 인디언들을 위한 인권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언제나 넘치는 에너지를 곳곳에 발산했다.

그러다 다시 돌아와 중년의 카리스마를 뽐낸 것이 <대부>(1972)였다. ‘말론 브란도’하면 떠오르는 대명사가 바로 ‘대부’이듯, 그에게서 이 작품을 빼놓을 수 없다. 어눌한 말투의 시실리 출신의 뉴욕 마피아는 말론 브란도의 모든 것을 드러냈다. ‘대부’인 ‘돈 콜레오네’에서 시작되는 마피아 가문의 대서사시 첫 장을 장식한 이 작품에서 말론 브란도의 역은 의당 ‘대부’였다.

캐스팅 과정에서 감독인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외에 제작진이나 회사는 말론 브란도를 반대했다. 40대 중반인 말론 브란도가 60대로 키가 작고 뚱뚱하며 회색머리를 가진 돈 콜레오네를 맡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코폴라 감독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은 채 가진 스크린 테스트의 돈 콜레오네 역이 극찬을 받았는데 그 분장을 한 이가 바로 말론 브란도였다. 늙은 얼굴과 염색, 입안에 솜뭉치까지 넣어 어눌한 말투로 완벽히 변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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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자가 됐으나 ‘할리우드의 인디언에 대한 부당한 대우’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수상을 거부했다. 반항 기질은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했고 연기에 대한 열정만은 변함없었다. 영화계의 ‘대부’마냥 그는 영화를 통해 생의 끝 날까지 자신을 확인했다. 말론 브란도는 지난해 6월에 애니메이션 <빅 벅 맨>에서 목소리 연기를 맡았고 자신의 생애를 담을 예정이던 <브란도 앤 브란도>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말론 브란도의 반세기를 넘은 연기 일생의 마무리를 통해 분명 한 시대가 접혔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말론 브란도는 그러나 연기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했다. 따분하고 지루하고 유치한 것이 연기라는 소회를 내뱉고 영화배우라는 직업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불평했다. 그럼에도 그는 천상 ‘배우’였고 영원히 그렇게 기억될 것이다. 신화는 되지 못했지만 ‘대배우’로 자리매김한 그는 영원히 박제된 ‘대부’로서 그를 좋아했던 영화 팬들의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다.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2007.07.02 14:48 메종드 쭌/무비일락
비를 타고 에드워드 양 감독의 타계 소식이 들려왔다. 어떤 준비도 미처 돼 있지 않았다. 이런 갑작스런 소식으로 7월을 열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하나 그리고 둘> 이후 언젠가 선보일 차기작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차였다. 그러나 차기작 소식은 언감생심. 환갑을 채우지 못한 채 힘겨운 투병생활을 끝냈다는 소식이 먼저였다. 결국 <하나 그리고 둘>이 유작이 돼 버린 셈이다.

괜히 허해진다. 후미진 골목에서 나란히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생을 둘러싼 통찰을 넌지시 건네주던 멘토 혹은 스승을 잃은 기분이랄까. <하나 그리고 둘>은 나에게 그런 존재감의 영화였다. 그가 대만 출신의 감독이라거나,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거나 등의 거적은 내게 필요없었다. 그는 내게 생의 한 단면을 알게 해 준 고마운 이였다. 그것이 -한번 만나본 적 없어도- 그의 죽음이 내게 비통한 이유다.

결국 3년 전 국정브리핑에 올렸던 <하나 그리고 둘>의 감상평을 다시 한번 되새김질 해 본다.
에드워드 감독님의 새로운 영화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그래도 남은 그의 자식(영화)들을 보며 그를 기억하련다.

안녕, 감독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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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한 현대인의 일상. 속도와 경쟁의 논리는 현대 문명의 대표 논리다. 속도와 경쟁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결국 삶은 일견 구차한 것으로 전락했고 거짓부렁 철학은 삶을 기만한다. 등 뒤에, 어깨 위로 놓여진 짐은 점점 무게감을 더하건만 우리에겐 뒤돌아볼 여지도 많지 않다. 이젠 반성이란 단어도 텍스트 속에서만 맴도는 단어 같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니 말이다. 앞만 보고 달리니 성찰할 틈이 어딨나. 그저 남들에게 뒤쳐지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 그것만이 유일한 삶의 작동기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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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마당에 스스로 볼 수 없는 뒤통수는 또 어떻게 볼 것인가. 볼 수 없고 겪을 수 없는 일들에 대한 불신. 현대인들은 그렇게 쓸쓸한 내면으로 침잠하고 있다. <하나 그리고 둘>은 그런 현대인들의 흔들리는 자화상을 미니멀하게 그려낸다. 누구도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그런 삶에 대한 시각을 견지하면서도 뚜렷한 메시지를 전파한다. 세상 어디에 있건 충분한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이야기로 말이다.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이라고 칭얼대는 도회적 삶. 앞만 보고 뒤를 보지 못하는 반쪽 시선은 그래서 불완전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파편 같은 이야기 속에서도 <하나 그리고 둘>이 빛을 발하는 부분은 따로 있다. 파도와 풍파에 이리저리 휩쓸리던 모래알들이 지난날의 상처를 통과의례로 삼고 한자리에서 연대감을 확인한다는 것이다. 뒤통수는 영원히 뒤에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 뒤통수를 제대로 봐 주는 사람의 소리를 듣는 건 그야말로 행운이다. 삶은 그렇게 지속되고 진전되기도 한다.


그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나 그리고 둘>이 지난 미덕 중 하나는 삶의 구석구석에 대한 관찰과 애정이다. 영화는 현미경을 들이댄 것처럼 삶의 미묘한 조각과 원자들을 한 꺼풀씩 벗긴다. 사실 <하나 그리고 둘>에서는 주인공이 없다, 아니 모든 사람이 주인공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삶은 마냥 쪼개진 채 흩뿌려지지 않는다. 파편같이 조각난 삶의 그림들이 모여 하나로서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각 개인의 캐릭터에 초점을 맞춰 그들의 동선을 따라 가다보면 어느 한 물줄기를 본다.

아버지, NJ는 소란스러운 처남 아제의 결혼식에서 첫 사랑과 우연찮게 해후한 뒤 혼란을 겪게 되며 어머니(민민)는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초라한 삶에 지쳐 가족들을 잠시 떠난다. 그리고 갑자기 쓰러진 할머니에 대한 죄책감을 지닌 채 사춘기의 혹독한 연애담을 겪는 딸(정정)과 꼬마철학자 같은 풍모로 감정에 미묘한 파동을 주는 아들(양양). 이밖에 이들이 이야기를 풀어나갈 시초를 주는 할머니와 어쩌면 도회적인 일상의 플롯을 간직한 아제(외삼촌) 등 <하나 그리고 둘>은 3대의 가정·개인사를 통해 연애담, 사업, 돈, 결혼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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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남 결혼식에 모인 NJ의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건 꼬마철학자, ‘양양’이다. 양양은 감독(에드워드 양)의 대변자이자 관객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를 전하는 화자다. 양양의 호기심은 간단하지만 만만치 않다.
“아빠가 보는 걸 난 못보고 난 보는데 아빤 못 봐요. 둘 다 보려면 어떻게 하죠? 왜 우린 뭐든 반밖에 못 보죠?”
이에 아버지(NJ)가 권한 카메라는 양양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도구다.
“왜 뒷모습을 찍느냐”는 물음에 양양은 대답한다. “못 보니까 보여 주려고요”

자기가 볼 수 없는 뒷모습을 다른 사람은 볼 수 있다는 것. 그야 누가 뭐래도 자명한 사실이고 모르는 사람도 없을 법한 얘기지만 누군가의 입 혹은 어떤 글이나 영상을 통해 그것이 발설될 때 그 의미는 자못 심장하다. 일상에서 쉽게 떠올리지 못하는 부분이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깨달음과 관련을 맺을 수 있다.  

<하나 그리고 둘>은 또 한번 살다갈 인생의 소중함을 넌지시 속삭인다. 윤회사상이나 부활 같은 거듭남보다 현실에 뿌리를 내린, 땅에 발을 디디고 있는 현실에 대한 자각. 일장춘몽이라고 그랬거늘, 현실을 도외시한 채 일탈을 꿈꾸거나 일상의 무게감에 짓눌린 사람들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현재 내가 서 있는 이 곳이 가장 많은 힘과 노력을 쏟아야 할 곳”이라는 경구는 진실을 품고 있다.  

에드워드 양 감독은 이를 위해 한 일본인 비즈니스맨을 등장시킨다. 어려워진 회사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비즈니스의 추잡한 면모를 드러내는 NJ의 사업 파트너와 달리, 그는 ‘진짜’를 위해 NJ와 대화하고 신뢰를 쌓는다. 그는 이미 NJ가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이란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는 ‘하루하루가 그 날로선 처음이고 아침마다 새롭다는 사실’을, ‘똑같은 날을 두 번 살지 않음에도 아침에 깨는 걸 두려워하’는 우리네 일상에 의문을 던진다.   

이 말은 후반, NJ의 가족이 고비와 풍랑을 겪은 뒤 다시 되새김질 된다. 부인이 자리를 비운 새 옛날로 돌아갔다 왔음을 고백한 NJ는 깨달음을 읊는다. “삶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 다시 부딪혀 보면 다를 줄 알았어. 하지만 결과는 같고 다를 게 없었어. 다시 태어나는 건 별 의미가 없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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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랑을 만났던 NJ는 아내에게 이를 고해성사하며 깨달음을 읊는다.


그렇다. 인간은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반성하고 깨달으면서 삶을 지속시킨다.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다는 것은 어쩌면 다행이다. 미래를 미리 알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건 별다른 의미를 찾을 수 없다. 별다른 고난의 흔적을 남길 여지도 없고 그건 또한 심심한 일이 아니겠는가. 예측 가능한 인생이란 여러 노력이 어우러진 성과일 수도 있겠지만 인생은 수시로 예측하지 못한 상황 앞에 휘청거리기도 하는 법이다.

한편으로 세대를 건너뛴 연애담은 엇갈린 갈지자를 그린다. 첫 사랑과 도쿄 출장길에서 재회해 첫 데이트의 감상을 되새김질하는 아버지와 같은 시각 대만에서 첫 데이트에 나선 딸이 병치된다. 또 30년 만에 만나 애틋한 감정의 선율을 보여주는 NJ-셰리(NJ의 첫사랑)와 꼬인 관계 속에서도 결혼 이후 가끔 ‘서비스’를 주고받는 아제-운운(옛 애인)의 두 종류의 재회는 다른 빛깔을 드러낸다. 전자의 경우 피천득의 ‘인연’을 연상시켜 서로 간절히 원하면서도 엇갈릴 수밖에 없는 회한의 감정을, 후자는 지극히 속물적인 욕망에 이끌리는 경박한 관계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가끔씩 뒤를 돌아보자

21세기 인류는 광포한 전쟁의 현장을 그대로 목도하고 있는 한편 일상에서도 총성 없는 전쟁의 작두 위에서 굿판을 펼치고 있다. 살아남는다는 명목으로 타인에 대한 관용을 버리고 무식해지기 위해 자신에 대한 존중을 무시해버리는 현대인의 일상은 충분히 널브러져 있다.

그래서일까. 에드워드 양 감독은 날이 갈수록 잔인의 강도를 더해가고 인간에 대한 배신과 오해를 거듭하는 세상에서 매일 같은 굴레를 자초하는 사람들에게 삶의 단면을 쪼개볼 필요가 있음을 알려준다. 가끔은 뒤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 실패와 실수의 반복에서도 배우거나 깨닫지 못한 일이 많다는 것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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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정정은 할머니에게 고민을 이야기한다.


제목, <하나 그리고 둘>은 어쩌면 ‘하나만 알고 둘은 알지 못하는’ 도시인의 삶을 가리키는 지도 모른다. 영화 카피가 “스스로가 보지 못하는 뒷모습 같은, 나머지 진실 반쪽을 담고 있는” 얘기라고 표현했듯, 가끔씩 뒤에도 진실이 있을지 모른다. 내가 걸어온 길 위에 무엇이 나있는지, 나의 뒷모습은 어떨지 물끄러미 되새김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어느 순간, 한 꼬마가 당신 뒤에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럴 땐 한 마디 해주는 건 어떨까. “그 사진 나에게 주겠니?”라고. 우린 또 다른 삶의 진실을 마주대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장면은 담담하면서도 인상적이다. 거센 풍랑이 치는 바다를 건너온 가족들은 할머니의 장례식에 모두 모인다. 그런데 할머니에게 평소 얘기를 않던 양양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얘기를 담담하게 읊어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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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영전 앞에서 이야기하는 양양.


“할머니 죄송해요.
할머니와 말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제가하는 말은 죄다 할머닌 아시니까 안했어요.
할머닌 가셨는데 하지만 어디로 가셨죠? 아마 우리가 아는 곳일 거에요.
남이 모르는 일을 알려주고, 못 보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그럼 날마다 재밌을 거예요. 할머니 계신 곳도 찾겠죠.
그러면 모두에게 말해서 함께 할머니께 가도 되나요?
할머니 보고 싶어요. 특히 이름이 없는 아기를 보면.
할머니가 늘 늙었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요.
저도 늙어간다고 말하고 싶어요.”

유작이 된 <하나 그리고 둘> 예고편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