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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는 아니고, 주성철 씨네21 기자의 이야기다.

그의 《홍콩에 두 번째 가게 된다면》에는, 홍콩영화에 대한 애정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그전부터 홍콩영화, 하면 주성철이라는 얘기('홍빠'라는 얘기도ㅋㅋ)도 들었지만, 책은 그것을 확인하기에 충분하다.

특히나, 나도 푹 빠졌던 어떤 홍콩영화에 대한 언급이 나올라치면, 절로 어떤 장면들이 떠오르면서, 그때의 공기와 느낌이 떠오르곤 했다. 아, 그땐 그랬지, 하면서 나는 추억에 잠기고, 그때를 더듬었다.


다만, 나는 홍콩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고, 홍콩영화를 두루두루 섭렵한 편이 아니다. 편식이었달까. 주성철의 애정을 내것으로 받아들이기엔 갭이 좀 있었다는 거지. 간혹 별처럼 빛나는 순간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아주 흥미로운 홍콩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래도, 좋아하는 무언가를 위해, 자신을 송두리째(아마도?) 바쳐서 그 애정을 담은 그의 모습이 참 좋아보인다.

다시 스크린에서 만난, <아비정전>. 좋았다. 고마웠다. 그녀도 잊을 수 없다고 했던, 그 '1분'과 '장국영이 엄마에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뒷모습', <아비정전>은 역시 장국영의 영화였다. 아래는, 지난 11월3일, <아비정전>과 장국영을 만나고, 주성철을 만났던 기록. 







시간이 ‘흐른다’는 건, 한편으론 맞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틀렸다. 어떤 시간은 더 이상 흐르지 않는다. 멈춰버린 순간이 있다. 더 이상 흐르지 않는 시간으로 박제된 순간. 누군가는 그래서 한순간을 잊는 데 전 생애가 필요하다. 어떤 안간힘을 써도 지워지지 않는,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시간은 흐르지만, 멈추기도 한다. 나는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 있다. 나도 흐르지만, 나는 흐르지 않는다. 아마도, 수리진(장만옥)이 그러지 않았을까. 모든 것은 이말 때문이었다.


“1960년 4월 16일 오후 3시, 우리는 함께 했어.
우리 두 사람이 함께 했던 1분을 잊지 않을 거야.
이 1분은 이제 지울 수 없는 1분이 됐어. 내일 다시 올게.”


<아비정전>. 장국영(아비)이 장만옥에게 행했던 궁극의 작업멘트. ‘1분’으로 한 여자의 모든 것을 진압하고야 말았던. 고작 60초에 불과한 시간이라고 반박할지 몰라도, 누군가에겐 그 무엇으로도 표백할 수 없는 시간이요, 멈춰버린 시간. 그건 수리진 스스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1분을 쉽게 잊겠지만 난 영원히 잊을 수 없었다.” 역시 토로한다. “그는 나에게 순간을 이야기하고 영원히 지속되리라 했죠. 하지만 그와 헤어진 이후 그를 잊기 위한 순간이 되어버렸어요.”


이건 주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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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비 나리는 2010년의 4월1일.
지난 7년 전, 홀연히 세상과 절연을 선언하고, 영원히 우리 가슴에만 남은,
(장)국영이 형의 기일.

만우절이면, 아니 만우절보다
떠올릴 수밖에 없는 그 이름, 장국영.



어떤 커피가 좋을까.
뜨겁게 살다가, 한 순간에 식은 국영이형을 떠올리며,
국영이 형이 가장 좋아했던 동티모르 커피라고 하면,... 새빨간 뻥이고.
어떤 커피를 좋아했는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그를 위해, 그를 기억하며, 에스프레소 샤커레또.
에스프레소 더블샷을 얼음과 함께 쉐이킹해서 급아이싱한,
얼음을 제외한 차갑게 식은 에쏘의 맛과 향이 그대로 냉각된, 에쏘 샤커레또!


사랑하는 혹은 사랑하고픈 누군가와 함께,
커피를 마시는 당신이라면,
 이날 에스프레소 샤커레또를 홀짝이며,

국영이 형이 <아비정전>에서 작렬했던 궁극의 작업멘트를 곁들여서!!!
“1960년 4월 16일 우리는 함께 했어.
우리 두 사람이 함께 했던 1분을 잊지 않을 거야.
이 1분은 이제 지울 수 없는 1분이 됐어. 내일 다시 올게.”


아마, 당신의 그 얘기를 들은 그 누군가는,
<아비정전>의 수라진(장만옥)이 읊조렸듯,
“그는 1분을 쉽게 잊겠지만 난 영원히 잊을 수 없었다.”
고 할지도...

그렇게...

안녕, 국영이형...

[메종드 쭌/그 사람 인 시네마] - 장국영 리덕스!

[메종드 쭌/기억의 저편] - 국영이 형, 제 맘보춤 봐 주실래요?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4월1일. 오늘, 오랜만에 형을 만났네요. 무척 반가웠어요. 사실, 오늘은 만우절보다 형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날이에요. 벌써 5년. 형의 소식을 접한 그날의 영상도 뚜렷하네요.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그날, 비가 추적추적 나리던 날. TV를 통해 형의 소식을 들었었는데... 믿기지 않을 법 했죠. 하필 만우절이었으니까. 거짓말 같은 죽음이라고 하더군요. 맞아요. 나도, 긴가 민가 했으니까.

더구나, 오늘은 더 특별했어요. 왜냐구요? 형을 스크린을 통해 만났잖아요.^^ '5주기' 딱지를 붙이니, 사람들도 더 애틋했나봐요. 형이 나온 <아비정전>(1990)과 <해피투게더>(1998)가 형의 기일에 맞춰 재개봉 했거든요. 저라고 빠질 순 없잖아요. 그래서 오늘 <아비정전>이 재개봉한 첫날 첫타임, 형을 만나기 위해 냉큼 준비를 했죠. 두 편이 각각 형의 20여년, 10여년 전 모습을 담고 있으니, 형도 감개무량하죠? 이렇게 오랜 세월을 버티면서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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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기다렸던 건, <아비정전>을 마침내 스크린을 통해 보게 된다는 것 때문이었어요. 수차례 보고 또 봤지만, 개봉 당시에 전 스크린을 통해 보질 못했거든요. 당시 전 고딩이었고, 특히나 영화가 환불 소동까지 빚으면서 문전박대를 당한 터라, 일찌감치 내려간 탓이었어요.

어쨌든, 설레는 맘을 품고 찾아간 스폰지하우스 광화문. 첫타임인데도, 사람들이 꽤 있더라구요. 특히 40대 아주머니 군단(?)이 형을 보기 위해 몰려와 있더라구요. 와, 놀랐어요. 재개봉에 맞춰, 아주머니들이 저렇게 단체로 오실 줄이야. 형이 한창 날리던 시절에, 청춘을 함께 관통한 팬들이었겠죠? ^^ 기분이 더 업된 건, 포스터도 하나 받았다는 거에요. <해피투게더> 포스터는 갖고 있지만, <아비정전>도 하나 꼭 품고 싶었거든요. 재개봉에 맞춰 새로이 제작된 포스터여서, 더욱 감회어렸달까. 여튼 극장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형의 살아생전 모습을 보기 위해 스크린을 주목하고 있었고, 저 역시 그 대열에 동참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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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디어 스크린이 열리는 순간, 형이 걸어나오더라구요. 아, 아비의 그 발걸음을 보는 순간, 뭉클뭉클했어요. 콜라 한병을 툭 까면서, 수리진(장만옥)에게 첫 수작을 걸던 그때. "오늘밤 우리는 꿈에서 만나게 될 거요"라는 멘트로 여운을 남기고, 다음날엔, 수리진과 1분 동안 시계를 함께 보더니, “1960년 4월 16일 오후 3시 우리는 함께 했어. 우리 두 사람이 함께 했던 1분을 잊지 않을 거야. 우리 둘만의 소중했던 1분은 이제 지울 수 없는 1분이 됐어. 이미 과거가 됐으니까. 내일 다시 올게.”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그 뻔하디 뻔한 작업성 멘트를 극장에서 다시 듣자니, 뭐랄까요. 그냥 찌리릿하더라구요. 천하에 둘도 없을 그 1분 멘트의 감흥. 1분, 고작 60초의 시간에 불과할지 몰라도, 누군가에겐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박제되겠죠. 그 무엇으로도 표백할 수도 없는. 수리진도 결국 그렇게 읊조리잖아요. "그는 1분을 쉽게 잊겠지만 난 영원히 그를 잊을 수 없었다." 난 생각해요. 형의 그 멘트는 우리에게 거는 주술과도 같은 거라고. 수리진의 독백은 그 멘트를 함께 받은 우리의 심정이고.

맞아요. 상영시간 내내, 나는 주술에 걸린 듯, 스크린만 멍하니 응시했지요. 아비. 돈 좀 가진 룸펜이자 양아치에 너무 많은 여자를 만나서, 누구를 사랑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바람둥이.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고, 다른 사람의 마음 따위 안중에도 없는 나쁜 남자. 그럼에도, 여자들은 하나같이 아비를 잊지 못해 눈물을 짜내고.

그런데 그런데 말이에요. 형은 왜 그렇게 아름다운지. 그냥 아름다움 그 자체였어요. 카메라가 형의 얼굴을 향할 때마다 묻어나는 형의 아름다움은 진짜 영원히 박제하고픈 욕망을 불러일으키더라구요. 웃음 한번 제대로 웃지 않는 형의 모습. 아름다움과 함께 전시된 그 고독함. 빗으로 머리를 쓸어올리는 형의 그 모습에선, 형이 고독을 쓸어버리고자 하는 것 같았어요. 제 기억으론 3차례 그렇게 빗을 쓸어올리더군요.

사람들은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며, 죽음 따윈 대수롭지 않은 것인양, 말하는 형의 모습에선, 글쎄요. 형이 혹시 구름의 저편으로 가는 날에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싶더라구요. 아비가 떠나는 모습에선, 5년 전 오늘이 떠올랐구요. 여전히 믿기질 않았어요. 형도 그냥 영화에서처럼 눈을 감은 것이 아닐까하고.

스크린을 통해 본 <아비정전>. 형을 본 것도 좋았지만, (장)만옥 누나, (유)가령 누나, (장)학우 형, (유)덕화 형, (양)조위 형까지, 거의 종합선물세트였어요. 20여년 전의 그들을 다시 스크린을 통해 보는 이런 호사.

와, 그러고보니, 형이 살아있다면, 한국 나이론 벌써 53살이에요. 설운도 아저씨보다 2살이나 많다면서요? 그런데 형은 아저씨라고 부르기가 싫어요. 왜일까요. 하하. 그리곤 결심했어요. 저도 그 어느해, 4월16일 3시에 홍콩무역체육관을 찾기로. 그 1분 멘트를 찾아서. 음, 아마 난 오늘 밤에 거울을 보면서 형의 맘보춤을 따라해 볼거에요. 물론 형의 그 자태는 나오질 않겠지만. 제 맘보춤이 어떤지 그곳에서도 한번 봐주세요. 그냥, 오늘 하루만은 그렇게 해보려구요. 하하.

형, 형, 국영이 형, 잘 있는거죠? 그냥 보고 싶어요. 그게 다에요... 이만 줄여요. 내년에 또 봐요...

P.S.. 아, 참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마지막에 조위 형이 나와서 그 좁은 다락방 같은 곳에서 담배도 꼬나물고, 뭔가 준비를 하잖아요. 그리고 형의 그 빗질을 따라하는데. 그거 아마 <아비정전> 2탄이 나오려고 그랬던 건가요? 다른, 그러나 같은 '아비'를 조위 형이 연기하는? 제 추측이 맞나요?



2008/03/29 - [메종드 쭌/기억의 저편] - '아비'와 함께 우리 모두 '해피투게더'~
2007/04/01 - [메종드 쭌/기억의 저편] - 국영이형, 황사바람에 잘 계시우?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장국영. '4월1일'의 이름.
'만우절'을 밀어내고, 그날을 추모의 날로 만든 그의 위력.
벌써 5주기다. 발 없는 새를 떠나보낸 지 5년.
지천명이 채 되기 전에 떠난 그는, 여전히 아름답다. 박제된 모습 밖에 볼 수 없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가슴 속에선 여전히 살아 있는 장국영.

그럼, 4월1일에 필요한 건 뭐?
그렇다. (장)국영 행님을 만나는 일.
국내 개봉 당시 환불소동까지 빚었던 저주받은 걸작, <아비정전>과,
동성애를 이유로 개봉 불가 판정을 받는 등 수난을 겪은 수작 <해피투게더>.
문득, 생각난다. 그렇게 보고 싶어하던 <해피투게더>.
학교의 어떤 조직에서 그것을 구해 학내에서 야외상영을 했고,
그닥 좋지 않은 화질로 보게 됐지만, 감격하고 감동 먹었던 그때.
☞ 장국영 떠난 4월1일 수난작 해피투게더-아비정전 재개봉

5주기여서일까. '장국영 SPACE'까지 생겼다. 장국영의 삶과 흔적.
☞ '장국영 SPACE', 장국영을 추모하며 전시회 개최

이제야 본디 모습을 찾은 포스터의 모습이, 어찌 반갑다 아니하리오.
☞ '아비정전', 18년만에 바뀐 재개봉 포스터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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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국영 행님을 그리워하는 물결. 우리 모두, 그를 'miss'하고 있다는 사실.
☞ 4월1일 홍콩서 장국영 추모콘서트

우리 (유)덕화 행님도 한 마디. "영원히 잊지 말아달라"
☞ 방한 류더화 "친구 장궈룽, 영원히 잊지 않았으면…"

덩달아, 신난(?) (왕)가위 감독. 국영 행님 추모작이 모두 가위 감독 작품이다. 최근에 신작,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와 재개봉한 <중경삼림>까지 감안하면, 가위 풍년.
☞ 왕가위, 4월의 감독


또 하나,
재개봉 하는 두 작품 모두, 우리의 (양)조위 행님께서도 함께 출연한다는 것.
조위 행님이 10년, 20년 전 뽀송뽀송하던 시절의 그 영화들.

국영이형과 다시 만나는 시간. 우리 모두 인사를...
극장에서 우리 스쳐 지나가면 살짝 눈인사를...
그리고, We Miss U...


2007/04/01 - [메종드 쭌/기억의 저편] - 국영이형, 황사바람에 잘 계시우?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그를 대면한지도 어언 20여년을 향하고 있다. 주변의 많은 아해들이 유덕화, 장국영, 주윤발 등에 열광할 때 그는 그들보다 더 내 가슴을, 눈길을 끌었다. 그는 대체로 니힐했고 우울함이 덕지덕지 묻어났다. 무엇보다 (스크린 상의) 그 눈빛이 날 끌어당겼다. 기쁨보다 슬픔이, 희망보다는 절망이, 당당함보다는 심드렁함이 우선 보였던 그 눈빛. 그 밖에도 외로움, 죽음, 비애, 방황, 허무, 부유, 몽환 등...

나는 여전히 (스크린 속의) 그를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배우를 꼽으라면 그의 이름은 항상 최우선 순위에 포함된다. <2046>이후 스크린 나들이가 뜸한데 그의 소식이 들린다. 반갑다. 친구야~ <무간도>시리즈에 이어 다시 만난 유위강/맥조휘와 함께 찍은 <상성:상처받은 도시>, 그리고 리안과의 만남이라 듬뿍 기대되는 <색, 계>. 다시 그 눈빛을 기다린다. 나는 그런 눈빛을 지닌 어떤 이를 알고 있다. 그 눈빛, 참으로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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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오픈아이(www.5pen-i.com)에 기고했던 글이다. 연재물의 첫 시작은 그렇게 양조위였다. 다시 양조위를 읽는다. 내가 보유한 양조위 리스트, <아비정전> <중경삼림> <첩혈가두> <화양연화> <2046>. 어느 것을 골라볼까.

 

어쩌면 그 눈빛에 감염됐는지도 모른다 … 거부할 수 없는 눈빛이 있다. 어쩌면 숱한 연민을 갈구하는, 혹은 세상에 무관심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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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눈빛은 어딘가로 향해 있다. 그러나 정작 눈빛이 머물 곳은 어디에도 없다.

심드렁함을 전염시키는, 때론 숱한 고뇌의 시신경들이 얽히고설켜 폭발일보직전의 신경쇠약을 가늠케도 하는... 그렇다고 빨려 들어갈 만큼 강한 카리스마를 내뿜지도 않는다. 니힐리즘이 덕지덕지 붙은 그 눈빛. 괜스리 나도 니힐해진다.

그 눈빛에는 어찌할 수 없는 어둠이 깃들어 있기도 하다. 언젠가는 떠날 애인을 옆에 둔 좌불안석의. 안식보다 불안을 잉태했고, 희망보다는 절망을 감추고 있었고,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돌아가는 세상에 소외당하면서도 울음을 짓누르고 있는 것 같다. 눈빛은 그렇게 그를 대변하고 있다.

비라도 추적추적 내리면 그 니힐한 눈빛이 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덩달아 그를 담은 DVD도 비에 젖는다. 제길, 우울한건가. 째즈처럼 나른하다. 끈적끈적하면서 채워지지 않는 어떤 텅 빔. 어느 비오는 깜깜한 날, 그 회색빛 풍경을 고스란히 흡수하고픈 욕망에 시달릴 지도 모른다. 나는 그 눈빛에 서서히 감염돼 '후천성눈빛중독증'에 걸린 건지도 모른다.

양.조.위. 스크린상에서 그를 만났을 때 첫 눈에 뿅가는 강한 임팩트는 아니었다. 고만고만한 홍콩느와르의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그는 확 드러나는 꽃미남이나 위풍당당한 영웅의 모습은 아니었다. 의리로 똘똘뭉친 반항아는 언감생심.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늘만이 눈가에 고여 있다.

양조위의 실존을 처음 각인했던 <첩혈가두>. 그는 총을 들고 있었지만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고 친구를 위해 울었다. 성공은커녕 그 위태한 우정마저 송두리째 잃어버린, 어쩌면 팍팍한 사람살이의 일부에 내동댕이쳐진 가련한 서자(庶子)였다. 적자(嫡子)는 그의 몫이 아니었다. 조직이, 사회가 받아들여주지 않는... 나는 이상하게도 <영웅본색>의 윤발이형이나 <천녀유혼>의 국영오빠보다 그에게 눈이 더 갔다. 왠지 알 수 없는 이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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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노래한다. 드러낼 수 없는 어둠과 슬픔과 감추기 위해. 한자락의 비애를 담은 선율이 온 몸을 휘감는다.

그리고 간혹 그를 마주쳤다. 그에게 본격적으로 추파를 던진 <유망의생>에서 그는 의외로 밝고 명랑했다(아니 그런 척했다). 드러낼 수 없는 어둠과 슬픔을 눈빛 깊숙이 박아놓은 채. 창녀촌의 무허가 돌팔이 의사, 유문. 그는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있었고 그의 세계는 소외받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되고 있었다. 현실을 초월한 것인지, 더 이상 맞대응을 하기 싫은 것이었는지, 그는 세상의 주류에 한없이 무심했다. 입가엔 미소가 있었음에도 누군가의 표현처럼 '저기, 소리없는 한 자락의 비애'였다.

무언지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 … 양조위의 주변에 유령처럼 떠도는 공허함이나,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빈자리는 신비감이 아니었다. 그는 현실에 일정부분 늘 접점을 두고 있었다. 주변부에 자리 잡을 수밖에 없던 개인이었지만.

홍콩영화가 날림에 의해 기세등등했던 시절, 그도 다작을 했다. 1985년 <무명경찰>로 데뷔를 했지만 별다른 뽀다구가 없던 탓에 한동안 나의 레이더 밖이었다. 그런 그가 내 속으로 들어왔다. 그의 인상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아비정전> <중경삼림> <동사서독> <해피투게더>를 거치며 왕가위에 의해 새롭게 빚어진 그는 <화양연화>에서 장만옥과 함께 그 존재감을 뚜렷이 각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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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그는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엇박자의 사랑이 그에겐 숙명인지도...

조금씩 세상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통을 시작했지만 그 눈빛은 여전히 비애를 품고 있었다. <중경삼림>에서 그는 사람 좋은 경찰이었지만 그의 사랑은 일방향이었다. 배신한 아내를 잊지 못한 채 시력을 잃어가는 검객이었던 <동사서독>, 떠남과 돌아옴을 반복하는 연인 앞에서 무기력하기만 한 <해피투게더>에서도. 결국 인생의 가장 화려한 시절이라는 <화양연화>에서도 양조위는 사랑의 엇박자에 슬픔만을 머금을 뿐이었다.

왜 그랬는지 물을 수 없었다. 그는 세속적인 성공의 개념도, 자신이 원했던 그 무엇도 시원스레 성취하지 못한 못난이였다. 그게 눈에 걸렸다. <무간도>에서도 그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길을 거닐었고 정체성을 잃은 채 떠돌던 방랑자는 죽음으로 생을 마무리했다.

주변부, 그의 보금자리 … 그랬다. 그는 늘 소수였고 무기력한 소시민이었다. 집단 속에 파묻히지 못하고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경계인. 그가 속한 자리는 늘 변두리였던 것이다. 개인에게 닥치는 불행은 집단이나 사회 속에서 함몰될 뿐,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도 없다. 그러면서도 그는 시대 혹은 사회의 격랑에 휩쓸렸고 사지가 꺾였다. 고종석 씨의 표현을 빌자면 '집단이라는 추상 앞에서 개인이라는 구체는 언제나 서자'임을 그는 몸소 보여줬다. 호부호형 못하는 홍길동이 무술이나 율도국은 커녕 저잣거리로 내몰린 것인가.

양조위는 그것을 눈빛으로 얘기할 뿐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스크린 속의 양조위는 적자(嫡子)가 아닌 서얼(庶孼)로서의 주변인을 대변하고 있다. 꺾어져야 할 것을 미리 알고 있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그런 그에게 허우샤오시엔의 <비정성시>가 압축판이다. 최근에 본 그 영화를 통해 왜 그의 눈빛에 매혹당할 수밖에 없는지를 알아냈다. 시기적으로 다른 영화보다 빨랐지만 그는 이미 그 눈빛을 예고했다. 격랑 앞에서 별다른 격노를 보이지 않았으며 사악해 질 수 없는 선량한 눈빛만을 그렁그렁 투사했다. 대만어를 할 수 없기에 귀머거리에 벙어리를 맡아야 했지만 그 선택은 탁월했다. 말할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그 아픔은 눈빛을 더욱 아스라하게 만들었다.

적어도 여기보단 자유롭다며 "북극에 가고 싶다"던 <첩혈속집>의 대사는 영화를 빌어 그가 말하고 싶던 건지도 모른다. <화양연화>의 차우처럼 "비밀은 영원히 가슴에 묻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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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할 수 없는, 선량하기 그지없는 그 눈빛을 나는 알고 있다. 그와 정면으로 눈길을 마주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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