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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아니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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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며칠, '봄비'가 왔다. 꽃샘추위와 함께 나린 비.
감히 봄비라고 붙이기 민망했던 비. 춥다.

그 빗속, 문득 심장이 기억한다.
길모퉁이를 돌다 우연이라도 만나진 못하지만,
다시 만나도 더 이상 가슴이 뛰지 않을 것을 알지만,
아직도... 두근두근.

봄, 많이 아팠다.

아팠고, 아팠고, 아플 수밖에 없었던 그 지나간 봄.

함께 지을 수 있는 우리의 말간 웃음이 없었던 유일했던 계절.

 
그래도, 나는 봄이 좋다.
이유? 그냥 봄이니까. 봄봄봄.
그러고보니, 난 싫어하는 계절이 없다. 싫어하는 날씨만 있을 뿐.

지난달 20일, 밤삼킨별 카페를 처음 찾았던 기억.
희한하게, 몹쓸병도 생각났다. 아무도 모를 내 어떤 흔적.


너, 나 보고 싶니... 기억 하니... 아직도.. 두근두근

[현장취재] 『사랑에 다친 사람들에 대한 충고』 더필름


‘몹쓸병’.

수 년 전, 아무도 모르던, 내 첫 블로그에게 부여한 이름.

녀석은 툴툴 거렸을 것이다. 내가 토해놓은 몹쓸 얘기들 때문에.

기억의 토사물을 거르지도 않고 받아냈어야 할 괴로움 같은 것.

지금은 없다. 몹쓸 짓도 오래하면 질려. 녀석에게도 미안했고.


기억을 떼는 가게.

사랑에 다친 사람들이라면,

생각해봤음직한 솔깃한 소리.

미셸 공드리<이터널 션사인>은,

그것을 보여줬으나, 결국 어쩔 수 없더라.

그 기억은 어떻게든 꿈틀댄다.

내 DNA에, 내 몸에,

내 심장에 박혔던 또 하나의 생명.

어쩌란 말이냐. 그 기억 없인 나는, 내가 아닌 걸...

 

실연, 이라고 표현하자.

사랑이 떠났다. 사랑에 다쳤다.

그 처 죽일 놈의 사랑이 내게 번지지만 않았어도.

실연의 아픔. 그러니까, 어떻게든 사랑에 다치고 앓았던 순간. 모든 것은 잿빛이었다.

몸도, 가슴도, 머리도.


그 언젠가, 이렇게 적었지. 말하자면, 실연 극복법!


실연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는, 실연을 현실 그 자체로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대를 만나고, 그대와 마주보며 숨을 쉬고, 그대를 안고서 힘이 들면 눈물을 흘릴 수 있었던 시절은 갔다. 실연은 그 모든 것을 추억으로 품게끔 강요한다. 그 강요로 인해 나는 갈증에 시달리고, 길을 걷다 눈물에 젖고, 골방에 처박힌다. 세상 모든 슬픈 노래는 나의 몫이다. 그럼에도 나는 실연을 온전히 나의 몫으로 감당한다. 실연으로 인해 나를 둘러싼 세계의 변화는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실연 이후의 나의 모든 행동과 의식 모두가 그 강요의 극복을 위한 것이다. 실연을 실연 그 자체로 받아들일 때 진정한 극복은 이뤄질 수 있다. 믿지 못할, 아니 믿기 싫은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 그것이 내가 실연에 대처하는 자세.


한편으로 실연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왜 극복해야 하는가. 실연은 실연 그 자체로 소중한 경험이다. 실연이 없었다면, 미처 경험하지 못할 행동과 감정이 지배할 것이다. 그래서 실연은 우리 생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 실연을 소중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실연 이전의 사랑을 생각하라. 사랑에 고마워해라. 나의 세계가 넓어졌음에. 또한 실연으로 나의 세계가 더 넓어졌음에.


사랑, 참 죽지도 않는 인류의 레퍼토리.

아마 영원히 죽지 않겠지.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또한 사랑과 이별.

왜냐고? 그 사람과 나의 사랑은, 이별은, 세상에 단 하나니까.

어느 사랑과도, 어떤 이별과도 같지 않은 오직 그 사람과 나만의 것.

사랑이 불온하듯, 이별 역시 불온하지. 왜냐고? 모든 것을 바꿔놓으니까.


그러면서도 난 우스워.

하루 종일, 빈틈없이, 촘촘하게, 네 생각만 하던 내가,

내겐 말이야, 온전하게 그 존재만으로도 세상이었던 너였는데,

그렇게 우리, 한때 너와 나라는 우주의 모든 걸 바꿔 버릴 만큼 사랑했는데,

이제 아무 느낌, 욱신거림도 없어. 왜 이러지. 나, 이래도 돼? 당신, 그래도 돼? 


길었다. 괜히. 사랑... 얘기라 그래. 알지?

지난 20일. 펄펄 날던 겨울 추위를 진정시켜 잠시(?) 멀리 떠나보낸 토요일의 햇살 푸르른 오후. 서울 압구정동 B.B카페. 올해로 아마 4년 째, 매년 도란도란 이야길 나누는 내 다이어리 친구의 산모, 밤삼킨별(bamsamkinbul,  http://blog.naver.com/bamsamkinbul)이 빛난다는 장소. 이날, 별빛에 어우러진 이야기와 음악을 들려준, 『사랑에 다친 사람들에 대한 충고』(더필름 지음|바다봄 펴냄) 저자의 북콘서트 겸 쇼케이스. 더필름. 노래하는 가수이나, 오늘만큼은 책의 저자로 다가오다. 사랑에 다친 사람들에 대한 충고 혹은 위로, 아니 독설(?)이었나. 정오를 약간 넘어선 시간, 자신에겐 정말로 이른 아침이라며 잠을 제대로 못자서 눈 아래 시커먼 원(다크서클)을 그려 넣은 로티(롯데월드 캐릭터)의 모습으로. 사랑에 다쳐본 당신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


바보들에게, 바보 같은 이들에게...



더필름의 이야기를, 노래를 듣기 위해 혹은 그를 만나기 위해 맹렬히 달아놓은 댓글들.

어쩌면 감성포엠에세이, 『사랑에 다친 사람들에 대한 충고』에 꽂힌 댓글들.

댓글에 담긴 마음길. 그래서 그 안에는 그 사람이 있다.

댓글로 떠올리는 그 이. 때론 재미있고, 때론 신기하다.


긴 것보다 짧은 게 더 강렬하더라고요. (웃음)

바다봄(출판사)에서 웃으면서 (댓글을) 넘겨줬는데, 밑줄 그으면서 읽고, 테마를 잡아봤어요. 첫 번째 분, 무척 강렬했어요.

‘사랑에 대한 고질병이라고요? 없다고 볼 수밖에요. 21도짜리 소주 댓병으로도 치유되지 못하는 것 아니에요?... 사랑에 다친 사람들에 대한 충고라뇨? 사랑이 아니라 사람이겠지요.’


처음 느낀 건, 이건 혹시 분노? 헐~ 왜 이리 분노에 차 있을까.

다시 읽어보니, 흠.. 이 책의 주인공에 어울리는 분이 아닐까.

상당히 강렬한 분노가 느껴지긴 해도, 나도 그런걸 뭐.

분노가 있어야 글도 써지고, 음악도 나오거든요. 

이 분 덕분에 영감을 받았어요.



잠깐 돌아가자면,

감성포엠에세이의 탄생 비화.

미니홈피에 글을 썼어요.

3년 전 헤어진 사람이 있었는데, 소주 21도짜리 댓병을 마시고, 에잇...


처음부터 충고하겠다고 쓴 것? 천만에!

사람들은 그래요. 충고가 아닌 위로가 아니냐.

제가 생각하기도 위로가 맞아요.

그러면 사람들이 잘 안 볼 거 같아. 제목이 자극적이어야 당신들도 볼 거잖아요.

도전을 불러보는 제목으로 가자! 이놈은 대체 뭔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이기에...

그러니까, 낚시질?


“‘사랑에 다친 사람들에 대한 충고’라는 글을 책으로 펴내자는 제의를 처음 출판사로부터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머릿속에 든 생각은 ‘내가 그럴 자격이 되나?...’였습니다. 충고라니. 세상에서 가장 사랑에 바보 같은 사람일지 모르는 내가 충고라니. 사랑에 관한 내 개인적인 오답노트를 공개하는 거잖아요. 창피했습니다. 저는 물어봤지요. "제가 그럴 자격이 됩니까?" 그랬더니, 출판사 측에서 웃으면서 "물론이죠, 됩니다, 되고 말구요.." 하시더군요. 왜 웃으셨을까요? 세상에서 가장 바보 같아 보이는 내 질문에 웃음이 나신 걸까요?”(p.344)


(사랑의) 상처에 많이 데여서 날카로운 턱 선을 가진 가녀린 이미지를 상상해요?

예민하고 섬세한 그런 전형적인 이미지?

고생 안 해봤을 것 같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어요. 동글동글해서.

그렇다고! 상처가 없는 것 아니에요. 섣부른 선입견은 금물.


알죠? 선수들은 외려 충고를 잘 안 해요.

책의 전체 테마로 잡은 것 중의 하나가 바보. 저 같은 바보가 많은 것 아닐까.

그런 분한테는 제가 먼저 아파본 사람으로서, 특정화된 사람들에게 향한 충고는 맞지만.

오늘 제 홈피(www.cyworld.com/mightbe)에 들어가서 ‘사랑에 다친 사람들에 대한 충고’를 포스팅 했어요.

딱 3000회 때, 봤어요. 기분 좋더라고요. 3000회의 바보들. 우린, 그렇게 바보들.



“어쨌든 이 책을 집어든 사람은

나 같은 바보들일테지요.


어쨌든 이 책을 보며

옛 기억에 젖은 사람들은 바보들일테지요.


어쨌든 이 책을 읽으며

한 장면이라도 저와 같은 추억을

떠올린 사람들도 바보들일테지요.


어쨌든 이 책을 연인에게 넌지시 건네 놓고

아닌 척, 쿨한 척 얘길 꺼내는 사람들도

바보들일테지요.


어쨌든 이 책을 가져와

‘따뜻한 음악이라도 들으면서 읽어야겠다’ 싶은

당신도,

나도, 

우리도,

바보...들 일 테지요.


맞 죠?

맞 지 요 ?


.. 아닌가요?

바보들만 읽으세요.

바보가 아닌 사람은 읽지 마세요.


이 책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보들에게 바칩니다.” (p.347)


한 곡 들려드릴게요.

저 원래 상처 안 받고 해피하게 살았던 사람인데. 하하.

지금 3집을 내서 활동 중인데, 1집이 되게 순수해요.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2~3학년 때까지 썼던 글인데, 이런 곡을 썼어요.

상처 받기 전 음악이에요. 이후 상처받고 상처가 깊어지는 단계로.. ㅎㅎ

이루마와 친구인데, 이루마의 앨범에 들어간 곡이기도 하고, 제목은 ‘드리밍 보이’.

당시엔, 이런 감성을 갖고 살고 있었어요. (음악 ♪)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노래


봄. 제일 좋아해요.

그래서 봄엔 아픈 얘기를 넣기 싫더라고요.


“잘 해보면 된단다 -

동서고금 막론하고 싫어하는 사람과

맛난 식사 하러 나오는 사람 없다는 것 -”


“그 사람이 정말 그 음식을

좋아해서 나오는 걸 수도 있잖아요.”


“어허, 이 바보야,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p.98 추억 IN SPRING 중에서)


댓글을 보고 테마를 만들고, 분류법을 했어요.

어떤 분은 단계가 아직 겨울이에요.

첫사랑이 그리우면 겨울. 

봄은 막 시작한. 뭔가 아시는 분들은 여름. 소주 댓병은 가을. (웃음)

가을을 뛰어넘어 도인 같이 이런 분들은 늦가을(후유증).


이쯤에서 겨울 감성에 어울리는 곡을 들려드릴게요.

먼저 낭독. “기억 IN WINTER 겨울엔 그 사람이 한 없이 그립습니다. 겨울엔 조금 아픈 기억들이 생각납니다. 겨울은 그 사람의 생일이 들어있는 계절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감정이 생기면

마음은 땅에 붙어있질 못해


아무리 묶어두려 해도

하늘로 붕 -

뜨려는 습성이 있어


많이

다쳐봤으면서,

많이 

아파봤으면서,


다시는 올라가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울며 다짐 했으면서

마음은 마치 풍선과 같아 (p.50, 기억 IN WINTER 중에서)


이어진 곡은 ‘안녕’. “니가 보고 싶을 땐 난 이렇게 말해...♪ 안녕...♩”


이 노래,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왠지 노래만 들으면 사랑 많이 해 본 사람 같고, 상처 엄청 입은 사람 같고.

전 이게 풋사랑 같더라고요. 이때가 예쁜 거 같아요.

상처 받고 나서 사랑에 대한 주관이 생기면 삼신할머니가 와도 전혀 굴하지 않고 자기만의 논리를 펼 때가 와요. 누구나 한 번씩은 겪어봤잖아요. 번호 지웠다 살렸다...


이런 분도 있어요. “고질병이라서 처방전도 없는 거 같아요. 이젠 아프면 또 시작이구나, 하며 무덤덤해 지는 게 슬프군요.”

이 단계는 후유증이에요. 이런 분들은 한 바퀴가 도는 거죠. 사이클.

전 지금 가을과 늦가을 사이인 것 같아요. 가을에서 다시 풋풋한 겨울로만 갈 수 있다면 그게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텐데. 이 단계에서 삐뚤어질 수도 있거든요.

후유증 단계를 보면 동병상련이 느껴져요.



가을에 맞는 노래가 있어요. ‘누구시죠’.

책 사신 분도 있겠지만, 이런 공연은 뭘까, 궁금해서 오신 분들도 있잖아요.

지금 들려드리는 곡은 음원이나 컬러링으로 찾아볼 수 없어요.

책을 사시면 보내드리는. (웃음)

책 내고 만든 곡이에요. 메일로 보내줘요.

CD로 안 보내준다고 악플 다는 분 있다는데, 이건 제작비가 많이 들어서... (웃음)


(음악 ♪)


어때요? 

앞서 불렀던 ‘안녕’과 감성이 같으면서도 다르죠?

이 노래 가사 써놓고 마음에 들었어요. 보통 가사와 멜로디가 같이 나오는데, 이 곡은 처음에 누구시죠? 라는 말이 입에서 맴돌았어요. 비슷하죠? 아시나요~ (웃음)


이런 노래에요.

정말 좋아했던 사람 사진을 보고 얘기하는 거예요. 근데 그 사진이 갑자기 낯선 거야.

오그라들죠? 제 책을 보면, 오그라든다는 얘기를 많이 하세요. 하하.

저만의 감성을 표현한 거예요. 실젠 늘 그렇진 않아요.

누구나 혼자 추억할 때는 자기만의 감성이 있잖아요.

이 가사를 쓰고 너무 슬펐어요.

이 사진을 보고 낯이 선 걸 떠나, 너 누구냐고 덤덤하고 말하는 것에...


이런 댓글이 있네요. “저 지금 많이 아파요. 누구는 사랑도 익숙해진다는데 점점 더 아파요. 그래서 사랑이 두려워요...”


전 애인 없이 ‘공식적으로는’ 3년이 됐어요. 가슴 설레고 이런 건 없어요.

‘이 사람이랑 헤어지면 나도 이제 삼십대 후반인데...’ 그런 두려움이 아닐까요.

서른 셋 넷 정도 되면 결혼이 아니면, 두려운 단계인 것 같아요. “처방전을 받고 싶어요. 훌훌 털고...” 그렇게 말씀 하셨으면서 처방전 받으러 안 오셨어요. (웃음)


오늘 노래도 많이 들려드리고 싶었는데, 제가 되레 재밌네요. 하하.

제가 연예인이라는 생각은 안 해요. 연예인 이전에 곡과 글을 쓸 때 행복한 사람이거든요. 연예인이라고 생각하면 내 마음이 떨어질 거 같아요.


제가 가장 열심히 하는 일 중 하나가, 1촌을 맺어서 답글 열심히 달고, 사는 얘기를 듣는 거예요. 1촌을 하자고 말씀 드리는 거예요. (웃음) 

사랑에 다친 사람들에 대한 충고...

계절마다 한 번씩 하려고요.

봄엔 봄에 맞는 얘기, 겨울엔 겨울에 맞는 얘기하고. 제가 들려드리고 싶은 노래를.

오늘, 첫 발을 내디뎠어요. 봄에 이런 식의 북콘서트는 없지만, 이런 감성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심 되고 콘서트는 할 거에요.



근황인데요. 3월말에 두 번째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데니안이 피처링을 해주는데, 그 곡으로 두 번째 에피소드 활동을 할 거고, 슈퍼스타 K의 서인국씨와 작업을 하게 됐어요. 3월 아닌 그 다음 싱글에 타이틀곡으로.

소녀시대의 한 멤버와 듀엣곡도 부르고, JYP와도 작업을 하고 있어요. 랩곡을 써달라는.

요즘 의욕적으로 재밌게 하고 있어요. 제 음악적 근간이 변하는 일은 없을 거고요.

마지막으로 요즘 홍보하는, 겨울 아닌 봄 같은 노래, ‘아직도.. 두근두근’ 들려드릴게요.


나는 소망한다, 이별해도 사랑하기


더필름이 주는 충고? 위로? 독설은 여기까지.

그리하여, 나도 마무리하자면,

사랑에 다친 사람들이 또 다른 누군가와 사랑할 수 있길.


사랑에 다쳤다고, ‘내겐 더 이상 사랑 따윈 없어’라며 자폭하는 것보다,

다친 상처․통증 감내하고, 다시 사랑하는 거. 나와 당신 모두.


더 가능하다면,

만남의 기술보다 이별의 지혜가 있는 사람이 됐으면.

만남이 우연에 의해 조작된다면, 이별은 의지가 작동하는 법.

살다보면, 이별이 필요할 때도 찾아오기 마련.

진즉 끝냈어야 할 것을 질질질 끄는 이별, 완전 나빠.

사랑하는 동안, 다 쏟아. 어설프게 꼬리를 남기고 마는 애정, 완전 나빠.

“가장 슬픈 이별도 나쁜 지속보다는 낫다”는 말, 그래서 왕공감.


그럼에도, 예전에도 언급했듯이,

방금 한 말, 글머리에 씨부렁거린 말, 말짱 관념의 퍼즐 맞추기. 즉, 허섭한 머리놀림.

사랑이 그러하듯,

실연 또한 교훈적이 아닌,

실존적으로 하는 법.

사랑에 다치게 만든 그 작자(?)가 다른 누군가와 행복하길 빌어줄 수 있는 건, 아마 일백만 년이 지난 후.


실연.

세상 무엇도 그 무게감을 이겨낼 수 있는 건, 장담컨대 없다. 잘못이라면 시작했다는 것!

흑, 그러나 세상 모든 연애가 그렇지 않더냐.

변할 것 빤히 알면서도, 세월의 풍화작용이 모든 감정의 결을 깎아낼 것을 알면서도, 무모하게 감정을 배팅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겪었고, 겪을 사랑이 아니더냐.

당신의 사랑, 돌아보라. 그렇지 않은 적 있나?

아니라고? 그럼, 그건 사랑 아니다. 장담한다.


실연. 

폭탄이다. 나는 이 말, 철저히 동의한다. “세상의 모든 일 가운데 가장 슬픈 것은 개인에 관계없이 세상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연인과 헤어진다면 세계는 그를 위해 멈춰야 한다.” ‘트루먼 카포티’가 자신의 소설에서 읊은. 그건 세계가, 우주가 빅뱅하는 거다. 한 우주가 사라지는데, 오죽하겠나.


그렇다. 실연의 아픔은, 사랑의 시작이 언젠가는 스러질 운명과 함께 한다는 단순한 섭리를 받아들여야 하는 고통에서 비롯된다. 사랑에 다친 사람의 잘못도 엄연히 있다. 그 섭리를 알고 있으면서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 실연은, 알면서도 준비할 수 없는 벼락같은 것. 비 올 것을 알았으면서도, 우산을 준비하지 않은 것.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에 다친 사람들에 대한 충고? 위안? 독설? 커피 만드는 내가 그런 당신을 위해 준비할 수 있는 건, 이탈리안 로스팅을 한 독한 에스프레소의 엑기스를 뽑아낸 리스트레또(ristretto). 아마, 그 검은 액체가 당신을 지독하게 감싸줄지도. 아니라면? 딴 거 없다. 뽑은 거, 내가 대신 마신다. ^^; 



알코올만 취하는 것, 아니다.

커피에 취해, 이렇게 내뱉을지도.

너, 나 보고 싶니... 기억 하니... 아직도.. 두근두근


[예스24 기고원문]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실연극복'에 대해, 나는 이렇게 지껄인 적이 있다.
실연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는, 실연을 현실 그 자체로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대를 만나고, 그대와 마주보며 숨을 쉬고, 그대를 안고서 힘이 들면 눈물을 흘릴 수 있었던 시절은 갔다. 실연은 그 모든 것을 추억으로 품게끔 강요한다. 그 강요로 인해 나는 갈증에 시달리고, 길을 걷다 눈물에 젖고, 골방에 쳐박힌다. 세상 모든 슬픈 노래는 나의 몫이다. 그럼에도 나는 실연을 온전히 나의 몫으로 감당한다. 실연으로 인해 나를 둘러싼 세계의 변화는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실연 이후의 나의 모든 행동과 의식 모두가 그 강요의 극복을 위한 것이다. 실연을 실연 그 자체로 받아들일 때 진정한 극복은 이뤄질 수 있다. 믿지 못할, 아니 믿기 싫은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 그것이 내가 실연에 대처하는 자세.

한편으로 실연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왜 극복해야 하는가. 실연은 실연 그 자체로 소중한 경험이다. 실연이 없었다면, 미처 경험하지 못할 행동과 감정이 지배할 것이다. 그래서 실연은 우리 생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 실연을 소중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실연 이전의 사랑을 생각하라. 사랑에 고마워해라. 나의 세계가 넓어졌음에. 또한 실연으로 나의 세계가 더 넓어졌음에.

사실, 이건 허접한 관념의 너울이다. 아마, 실연으로부터 멀찍하게 떨어진 시점이라 가능했던 머리놀림이었을 거다. 사랑이 그러하듯, 실연 또한 교훈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실존적으로 하는 거다. '실연'을 경험케 한 그 작자(?)가 다시 누군가와 행복하기를 빌어줄 수 있는 건, 아마, 일백이십칠만년의 시간이 지난 후다. 실연의 고통엔, 크기가 없다. 세상 무엇도 그 무게감을 이겨낼 수 있는 건, 장담컨대 없다. 애초에, 시작한 것부터가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그러나, 세상 모든 연애가 그렇지 않더냐. 변할 것을 빤히 알면서도, 세월의 풍화작용이 모든 감정의 결을 깎아낼 것을 알면서도, 무모하게 감정을 배팅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겪었고, 겪을 연애가 아니더냐.

실연은, 맞다. 폭탄이다. '트루먼 카포티'는 자신의 소설에서 이런 구절을 읊어댔다지. "세상의 모든 일 가운데 가장 슬픈 것은 개인에 관계없이 세상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연인과 헤어진다면 세계는 그를 위해 멈춰야 한다" 나는, 킹왕짱 오나전 동의한다. 그래서 실연의 아픔은, 사랑, 그 연애의 시작이 언젠가는 스러질 운명과 함께 한다는 단순한 섭리를 받아들여야 하는 고통에서 비롯된다. 실연 당한 사람의 잘못도 엄연히 있다. 그 섭리를 알고 있으면서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 실연은, 알면서도 준비할 수 없는 벼락 같은 것. 비 올 것을 알았으면서도, 우산을 준비하지 않은 것.

후루룩쩝쩝, 블루베리 파이

왕가위 감독의 새로운 시식품.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이런저런 평들이 나부끼고 호불호가 갈렸지만, 상대적으로 이전작들에 비해, 왕가위의 할리우드판 레시피, '블루베리 파이'는 껄쩍지근한 편이었나보다. 자기복제에 대한 토악질을 해놓은 분도 있더만.

그러나, 나는 한입 베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었다. 바람결에 부대끼는 혹평, 왕가위의 나르시시즘과 매너리즘에 대한 비판은 그저 뒤로 돌리고. 늘 마지막으로 남는다는, '블루베리 파이'를 남겨둘 수 없었다. 손님의 간택을 받지 못해, 지독한 외로움 때문에 자기 이름도 잊어먹을지도 모를 그 파이를. 블루베리 파이 사이사이 흐르내리는 우유를 온몸으로 핥고 싶은 기분이 들 정도로.

나는 모든 감각을 열었다. 신경을 늘어뜨렸다. 최대한 느슨하고 흐리멍텅하게. 흐트러질대로 흐트러져도 된다. 왕가위의 (장편)전작주의자로서, 그의 영화를 보는 나름의 방법을 터득한 터. 전작들이 투사되면 되는대로, 나는 그저 블루베리 파이를 부유하는 우유처럼 흐른다. 그것이 내가 왕가위를 대하는 방식. 그 남자, 왕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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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있는 사람들

똑같다. 현란한 카메라워킹과 화려한 색감의 향연 속에서도 그의 페르소나들은 여전하다. 사랑하고 이별하고, 기쁘다가도 아파하고, 고독하고 외롭고 쓸쓸하다. 부박한 삶은 또한 니힐하다. 주룩주룩 흘러 내린다. 기쁨, 슬픔, 웃음, 울음, 관심, 무관심, 쾌활, 우울, 안정, 불안, 온순, 분노, 연민, 감탄, 암담, 황홀, 고뇌, 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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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자, 엘리자베스(노라 존스). 세상 모든 실연의 아픔은, 혼자 떠안았다. 그녀에겐 더 이상 열쇠가 없다. 언제든 문을 따고 들어갔던 그곳엔, 이젠 다른 여자가 차지했다. 사랑을 잃고 징징거리는 캐릭터는 여타 전작들에선 대부분 남자들이 맡았던 캐릭터. 카페의 마지막 성찬, 그러나 간택받지 못한 블루베리 파이만이 그녀를 위로한다. 물론 그 파이는 바로 제레미(주드 로)의 페르소나. 거부하고 싶은 실연을 안고 떠나는 그녀는, 그저 차를 갖고 싶다. 어디로 몰 것인가는 자신의 의지. 사랑은 어디에도 있고, 이별도 어디에도 있더라. 누구에게나, 스토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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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제레미는 누군가의 절실한 부름을 받고 싶어한 남자가 아니었을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하고, 다른 이의 이야기가 담긴 열쇠를 모아두던, 자신의 이야기엔 인색하던 그 남자. 그의 사연을 추정할 수 있는 에피소드가 있지만, 그는 그저 기다릴 뿐이다. 마지막 남은 블루베리 파이처럼. 엘리자베스가 주소 없는 편지를 통해 자신을 객관화하는 동안에도 그는 그저,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언제 돌아올지 모를 그녀의 예약석을 만들어놓고. 블루베리 파이 또한 주인을 기다렸겠지. 그를 간택할 수 있는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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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바랜 사랑의 집착에서 벗어나고픈, 그리고 고통 받은 이 여자. 왠지 가장 끌렸다. 수린(레이첼 바이스). 이유는 모르겠다. 아마도, 너무도 스타일리쉬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녀가 지닌 아픔에 비하자면, 이상할 것 같지만, 묘하게 그것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애초 고독한 사람이었다. 남편을 만나게 된 계기도 그렇고, 그 남편의 집착에 못이겨 떠난 것도 그렇다. 온몸에 고독을 덕지덕지 바르고 있던. 결국은, 죽은 남편의 외상값까지 갚고, 당분간 그 계산서를 벽에서 떼지 말아줄 것을 부탁하고야 말던 이 여자. 마을 사람들이 그 사람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함이라던. 나는 그 말을 하는 순간이 가슴에 박혔다. 어찌할 수 없이 고독을 아는 여자. 롱테이크 한 순간으로 나를 사로잡아 버린 여자. 참고로, <아비정전>에서 장만옥이 맡은 역할의 이름이 '수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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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버거워서, 미워서, 카지노를 전전하던 이 여자, 레슬리(나탈리 포트만). 거침 없고, 쿨한 것 같지만, 가슴 속엔 결국 상처가 있다. 아버지의 존재를 잊고 싶지만, 결국엔 아버지의 사랑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게다. 포커판에서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고 큰 소리 치지만, 자신의 마음은 알지 못하는 바보 같은 사람. 나탈리 포트만은 하루하루 커지는 배우 같다. 더구나, 몸매까지 저렇게 착해주시니,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군. 스칼렛 요한슨과의 <천일의 스캔들> 왕 기대!

왕가위가 내린다

굳이 스토리를 따라가지 않았다. 나는 그저 우유처럼 흘러내리는, 감정의 찌꺼기들을 눈으로 핥고 음미했다. 엘리자베스의 실연 여행도, 그리고 제레미와의 재회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어떤 기억을 품은 스크린에 들러붙어서 서식하고 있었을 뿐. 노라 존스의 끈적끈적한 음색과 기름진 영상이 나는 나쁘지 않았다. 그저 몸을 맡기고 의식을 내동댕이 쳤으니까. 나는 그들과 함께, 블루베리 파이를 함께 나누고 있는 기분. 당신에겐 모르겠지만, 내겐 맛있는, 블루베리 파이!

실연은 어떤 식으로든, 해석될 수 없더라. 영화도 그랬고, 나에게도 그랬다. 그저 몸을 맡기고, 실연과 함께 하는 것. 왕가위의 영화가 그러했듯. 비가 내리면, 우산을 펼 때도 있고, 그냥 비를 맞을 때도 있다. 그런데 왕가위가 내리면, 우산보다는 그냥 맞고 지나는 것이 훨씬 낫더라. 나는 그렇더라.  
 
2008/03/05 - [메종드 쭌/그 사람 인 시네마] - 지독한 갈증과 슬픔, 그리고 왕.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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