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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게 길을 묻다'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2.05.08 수운잡방으로 오실래요? : 숲에게 보내는 답장
  2. 2010.10.23 가을 숲길, 함께 거닐어 볼래?
2012.05.08 11:20 러브레터 for U

그러니까, 이것은 답장입니다. 이제는 케케묵은 골동품 같은 뉘앙스가 돼 버린 편지. 그 편지를 받아들고 찡했던 제 마음의 울림을 담은 답신이죠. 물론 앞서, 제 마음을 흔들었던 《숲에게 길을 묻다》에서 이어진 작은 인연 덕분이기도 하겠죠.


이 편지를 받은 저도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숲이 뿜은 피톤치드를 그의 분신인 종이를 통해 받은 기분이라고 할까요. 선생님이 지닌 행운을 나눈 까닭이기도 할 겁니다. ‘제 스스로 찾은 기쁨과 즐거움의 삶의 시간을 재조립시키는 마법’을 볼 수 있어서이기도 하고요.

 

삶의 변곡점. 저도 제게 불쑥 다가왔던 그 순간을 기억합니다. 내 선택을 위해 모든 것을 뒤집는다는 것. 그 순간은 각자에게 다른 형태이자 내용이겠지만, 그때의 느낌, 여전히 잊지 못합니다. 그냥 주어진 대로만 살다가는 죽을 것 같아서 탈출을 감행했던 순간. 노예의 편안과 자본의 (거짓)평안을 거부하고 나섰던 순간. 그 순간을 다시 오롯이 기억해낸 것도 선생님의 책 덕분입니다.

 


여우숲을 떠올렸습니다. 선생님을 처음 만나 뵀을 때 상상했던 그 숲. 그리고 다시 만났을 때 접했던 그 숲. 숲 학교가 들어서고 만났던 그 숲. 한때, 서울, CEO... 선생님의 몸과 마음에 묻은 그 기억이 낙엽처럼 썩어서 새로운 삶의 흙이 됐고, 그 흙이 뿌려진 숲은 참 좋았습니다. 그제서 깨달았습니다. 흙 묻었다며 더럽다고 야단치던 도시 어른들의 어리석음을. 저는 그래서 그런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울러 백오산방. 선생님 스스로 짓고, 선생님의 삶을 고스란히 품은 그 집. 저는 아직 도시의 네모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제 살 집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 그리고 상상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압니다. 집은 사는(Buy) 것이 아니라, 사는(Live) 것이며,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지으면 더 행복하다는 것을.

 

당장은 아니지만, 성급하게도 저는 이미 제 살 집의 이름을 정했습니다. 살짝 알려드리자면, 수운잡방입니다. 조선 중종 때 안동 출신 김유가 지은 전통 요리서의 이름이기도 하지요. ‘풍류를 아는 사람에게 대접하는 특별한 요리’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제 사는 곳에서 그렇게 풍류를 아는 사람에게만 커피를 비롯해 요리를 대접하고 싶거든요. 


제 소박한 바람은 그것입니다. 선생님의 편지를 읽으며 조금 더 선연하게 그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그게 다 선생님을 비롯한 바람잡이들 때문(!)입니다. 백오산방을 비롯, 몇몇 분들이 살 집을 스스로 짓고 그 안에서 스스로 노래하는 풍경을 자꾸 접해서 그렇습니다. 그 분들, 그렇게 살 집을 스스로 짓고, 농사도 짓고, 숲과 자연에 기대 온전한 자신만의 삶을 모색하고 실험하십니다. 저는 그것에 마구 끌리는 학생인 셈이죠.


물론 저는 바지런한 농사꾼은 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천성이 한량이라, 온 몸과 마음을 쏟아야 할 농사꾼의 자질에 턱도 없이 모자라서죠. 다만 텃밭을 어떻게든 가꿀 생각입니다. 커피도 퉁퉁 볶을 생각이고요. 그리고 선생님의 기조를 빌리려고요. 내가 만든 농작물과 볶은 커피를 돈으로만 사려는 사람에게 팔지 않을 심산입니다. '따라쟁이'라고 호통 치진 마세요. 하하. 그냥 선생님 생각에 동조하는 한 사람이라고 여겨주세요. 


더구나 그건 제가 결국 하고 싶었던 것 중의 하나였다고요. 커피 얘깁니다. 공정무역 커피를 다루면서, 공정무역 커피산지를 다녀오면서, 저는 그만 ‘형님’했습니다. 우리가 먹는 것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을 중요시 여겼던 제게, 산지를 직접 다녀온 경험은 또 다른 축복이자, 배움이었습니다. 커피열매 한 톨에 담긴 자연과 농부들의 노고, 하얗게 피는 커피 꽃과 빨갛게 혹은 노랗게 익는 커피 열매의 향기에 감사하는 사람에게만 커피를 팔 수 있다면! 어디에서 어떻게 오는지 아는 것만으로도 물론 충분하지만, 제 수운잡방엔 더 까탈로 대하고 싶었습니다.


쉽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일회성 결심이 아닌 삶을 송두리째 바꿀 때부터 스멀스멀 스며든 사유입니다. 불가능할 거라고 좌절하지도 않습니다. 선생님의 편지 덕분입니다. 선생님 말씀, 기억합니다. “작은 확신을 실현하는 것조차 온 생애가 필요하다.” 더불어 이것도. “하찮은 소망의 실현도 만만치 않다. 자신을 둘러싼 관계와 억압을 설득하고 깨 부셔야만 얻게 되는 전리품인 탓이다.”


아무렴요. 그래야 한다고,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것은 언제나 힘들고 쉬이 오지 않는 법이잖아요. 선생님이 말씀하신 ‘겨울나기’를 마음에 새겼습니다. 겨울이 온 것을 알지 못하기에 오는 우리의 불행, 겨울엔 간결해지며 버티고 견뎌야 한다는 것에 대한. 지금의 이상야릇하게 뜨거운 봄도 겨울을 견뎠기에 가능했다는 것도.


그리하여 선생님이 말씀하신 성장의 방식, 아니 방식이라기보다 철학에 저도 좀 더 근접조우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직 그만큼 투철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니까요. 좀 더 크고 멀리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단단하게 다져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비료나 농약을 주어 단기적 성과를 얻는 방식이 아닌 이 땅을 써야 할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것 말입니다.

 

아마 농사꾼이자 숲학교 교장인 선생님도 그렇지만, 커피를 만드는 저도 꼭 만나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책에서 말씀하신 것 기억하실 거예요.


“상대적으로 모양은 조금 못났어도 자연의 수많은 은혜로 빚어지는 농산물의 건강한 맛을 인정할 줄 아는 소비자, 여느 공산품처럼 모든 농작물도 최종 가격만을 통해 그 가치가 결정된다고 믿는 것이 아닌, 땅과 햇빛과 바람과 물과 다른 무수한 생명들과의 관계가 빚어내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인정하고 그 모든 것의 수고로움에 감사할 줄 아는 그런 소비자를 만나야 합니다.”(p.68)


사실 저는 이들 소비자 앞에 굳이 ‘착한’이라는 수사를 붙이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은 선생님이 말씀하신 ‘인간’보다는 ‘사람’일 테고, 그저 우리들의 동지라고 여기고 싶습니다. 얼마 전 들은 얘기인데, ‘농부로부터’라는 유기농 가게가 있습니다. 그곳엔 ‘생긴 대로 좋아’라는 코너가 있는 모양입니다. 외모지상주의를 타파하는 이 코너, 흠집이 난 과일을 모아서 싸게 파는 자리라고 합니다. 이런 문구가 붙어 있다네요.

 

“겉모양새로 가치를 결정하는 시선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세상에는 우리가 여유롭게 누릴 수 있는 것이 한 겹 더 늘어납니다.”


한량이 바라는 포인트가 저기 있습니다. 여유롭게 누릴 수 있는 것이 한 겹 더 늘어난다는 것. 나중에, 제가 꼭 숲에 있는 것이 아니더라도, 있는 곳이 어디든, 제가 견지하고 싶은 것을 담은 이 편지를 한 번씩 들춰보겠습니다.

 

선생님이 자연스럽게 하신 이 말씀, 기억하실 겁니다.  “숲 생활 3년 만에 나는 풀도 나무도 강아지도 모두 생명인 것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놈이 되어버렸나 봅니다.”


저도 언젠가는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남의 인생을 살지 않게, 자기다움을 추구하며 살 수 있는 길을 조금씩 만들고 있습니다. 경제적 불편이라는 겨울이 아직 남아 있지만, 저는 생각보다 잘 버티고 견디고 있습니다. 그보다 더 행복하고 즐거운 마음을 얻었고, 이런 편지에 감흥 할 줄 아는 사람도 됐습니다. 아주 가끔은 스스로 버티고 견뎌준 것이 대견해서 토닥토닥해주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무언가를 대표하기보다 지키기로 마음먹은 것을 꾸준히 지치지 않고 지켜나가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 이 편지, 잘 간직하겠습니다. 선생님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여우숲, 참 좋았습니다. 산과 바다, 바람소리는 잘 있는지요? 참 이 책을 읽고 궁금했는데요. 절룩거리던 자자. 눈에 밟히더군요. 

 

자자의 숨결이 깃든 그 여우숲, 저는 참 좋아합니다. :)  

 

 

 ☞ 숲, 내가 낙심하지 않는 이유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잊지 않고 기억한다.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 중의 하나는,
너와 함께 나무와 잎이 우거진 길을 거닐 때라는 걸.

그래, 우리들이 있었던 시간.
그때, 우리들이 있었다.

우리 함께, 너의 학교 숲을 거닐자던 약속이 지켜지지 못한 것이,
내겐 여전히 아프지만, 나는 아주 간혹 혼자 숲을 거닐 때, 내 옆에 있는 너에게 말을 건다.
아, 숲이다. 니가 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그리고 이젠, 당신에게도 손을 내민다. 함께 숲을 거닐래요?
숲을 좋아하는 당신이라면, 더욱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숲을 좋아하게 될 거다.
당신이 있어 행복한 숲길이다. 숲길도 맥락과 관계에 따라 그렇게 모습을 달리하는 법.
특히 가을. 가을을 가을답게 즐기는 가장 눈부신 방법은 숲으로 들어가는 일이라 하지 않나.

내 마음이 허락한다면 가끔 나는, 당신에게 숲이 되어주고 싶다...
 
지난해 10월, 홍릉수목원을 찾았던 기록. 다시 거닐고 싶은 그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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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평한 세상에서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오는 것이 계절의 흐름. 그래서 지금, 누구에게나 완연한 가을. 떨어지는 낙엽을 보자면, 마음자리 보전이 필요한 계절. 깊은 숨을 쉬면 한 뼘씩 가을이 내 안으로 훅~ 들어올 것 같은 날씨가 잦은 시즌. 그런 가을에는 숲이 딱이다. 봄과 또 다른 숲의 속삭임이 내 귀에 캔디처럼 속살거린다. 향도 짙고, 빛깔도 안구를 정화시킨다.

왜 가을에는 숲이냐고? 여기 이 말, 인용하자. “가을을 가을답게 즐기는 가장 눈부신 방법은 숲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숲 안에 다 들어 있다. 빛도 어둠도, 청춘도 사랑도 가득하다. 가을 숲에 드는 순간 다 반짝인다. 우수수 흩날리는 나그네도, 바스락거리는 연인도, 푹신하게 둘러앉은 가족도 깨끗한 빛을 발한다. 숲이 가을에 더 아름다운 건 이렇게 눈부신 여러 길들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창문 맑은 날 하루 찍어, 마음 둔 이 손 잡아끌어 가까운 숲으로 들어가 보라. 여름내 얽히고설켰던 나무들, 비워내고 털어내는 인연들, 쌓이고 젖어 함께 내디딜 때마다 향기로워질 터다.”(한겨레 10월8일자)

숲에 들어간 본 사람은 알 거다. 아니, 숲과 교감해 본 사람은. 숲의 일원이 되어 본 사람은. 숲은 평화다. 도시와 일상의 폭압에 지친 이들에게 숲은 한줄기 바람이다. 누군가에게 숲은 스승이기도 하다. “숲에 기대어 사는 삶을 시작하면서부터 숲은 나에게 스승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의 가르침을 얻기 위해 내게 필요했던 것은 다만 더 나은 삶을 위한 기술과 기교를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김용규 지음 『숲에게 길을 묻다』 중에서)

숲에 발을 디뎠다. 10월18일, ‘산의 날’을 앞둔 17일, 홍릉수목원을 찾았다. 『주말이 기다려지는 숲속 걷기여행』(이천용 지음/터치아트 펴냄)의 저자와 함께 하는 숲속 걷기. 전날 밤 진짜 폭우가 내렸냐는 듯, 가을은 변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비를 머금고 말간 표정으로 반겨주는 숲. 그렇게 가을 숲을 찾았다. 아니 가을 숲이 내게로, 우리에게로 왔다. 자, 그렇게 숲과 교감한 기억, 함께 거닐어 볼까?


“숲속으로 햇살이 밀려올 때, 자연의 평화가 당신에게 밀려올 것이다. 숲의 바람은 당신에게 신선감과 생동감을 주며, 그때 당신이 가진 걱정은 마치 가을에 낙엽이 떨어지듯이 사라질 것이다.”  -존 뮤어(John Muir)- 

이천용 숲박사와 함께 한 숲길 거닐기


국립산림과학원에 들어선다. 곧, 홍릉수목원이 있는 곳이다. 오늘의 숲 해설가, 이천용 박사가 근무하는 곳. 심호흡 깊게 한번, 가을이 코를 통해 내 안으로 들어온다. 아, 그래 가을이구나.


이천용, 그러니까 숲박사가 함께 숲을 거닐 우리에게 인사를 건넨다. 연구직 공무원으로 숲과 문화를 연구하는 ‘숲과문화연구회’의 부회장을 맡고 있다. 이 책도 전국의 좋은 숲을 찾아 15년을 다닌 결과물이다. 일단 100년 이상 된 오래된 52개 숲을 담았고, 앞으로도 계속 이 작업을 계속 할 것이란다. 최근 숲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걷기 열풍을 따라 책이 예상 밖으로 잘 나가, 2쇄를 찍게 돼서 홍보차 나왔단다. 왁자한 웃음. 숲도 함께 웃는다.

“숨은 숲이 전국에 굉장히 많다. 지방의 마을 숲에는 역사가 없는 곳이 없다. 우리나라에는 소나무와 참나무가 제일 많은데, 한 20%씩 된다. 가장 많은 나무는 물론 소나무다. 느티나무 숲도 꽤 있는데, 은행나무는 집단성이 없어서 관리를 해 주지 않으면 숲에서 살 수가 없다.”

그렇다. 나무가 자라서, 우리가 아는 숲이 된다. 옛날에는 나무에 관심이 많았으나 지금은 숲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그것이 숲이 주는 어떤 효용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사람은 절대적으로 숲으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숲은 생태계를 지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떤 사람은 숲에서 살면 아토피가 없다는데, 살아보라. 아토피가 생기면 내가 변상해 주겠다. (웃음) 생물 뿐 아니라, 무생물도 숲의 일원이다. 공기, 물, 땅 등 과거보다 생각이 유연해지고 포괄적이 되면서, 무생물까지 함께 생각한다. 인간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생각한다. 과거에는 나무, 풀 등만 숲으로 생각했다.”



아무렴, 저 나뭇가지 사이로 들어오는 저 햇살도 숲이다. 이 모든 것이 숲의 일원이다. 목재 생산을 위한 곳만이 숲이 아니다. 인간의 산업적 필요에 의해 숲을 좁게만 봤다면, 이젠 인간도 숲의 일부임을 인정해야 한다.

“모든 문화는 숲에서 태동된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어떡하면 숲에 문화를 접목시켜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만들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서 동료들과 숲과문화연구회를 시작하게 됐고, <숲과 문화>라는 격월간 잡지를 만들고 있는데, 이를 지속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숲에 가면, 뭐가 있나 하고 땅도 쳐다보고, 하늘도 바라보고, 잎도 만져보고, 나무를 비롯해 무생물, 생물과 교감하면서 봐야 한다.”


그래, 그는 책머리에 이렇게 쓰고 있었다. “숲을 문화와 연관시켜 글을 쓰려면 소재가 무궁무진하다. 산림문화의 매력이 여기 있다. 그리고 숲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숨 쉬면 정신과 육체의 건강이 보장된다.”(p.8)


본격적으로 숲 탐방을 나섰다. 숲과 교감하기 위한 발걸음. 내 발걸음이 숲에게 어떤 해도 되지 않길. 숲과 내가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숲은 누구든 반긴다. 다만 숲과 대화하고 교감하는 과정에서 어긋나게 된다면, 숲은 대화를 멈출 뿐. 걷기에만 치중하지 말고 눈과 귀를 열면서 내 안의 신경세포를 깨울 것. 


위로 오르면서 휘어진 도토리나무(상수리나무) 앞. 이런 나무는 목재로 쓰지 못하고, 숯 등으로 소비된단다. 목재로 쓰려면 쭉 뻗어서 6m 이상 되는 나무여야 한단다. 그러니까, 이 정도 자라려면 40~50년이 돼야하는데, 눈앞의 돈에 늘 허물어지곤 하는 인간의 습속은 이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러함으로 인간은 결국 위험을 맞이한다. 부를 축적하고 유지하기 위해 거칠게 자연을 다룸으로써 우리가 맞이하는 위기. 멈춤 없이 성장해야 간신히 유지될 수 있는 미친 지금의 주류 경제체계. 언젠가 우리는 나무로부터 호된 불호령을 맞을 것이다.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면서 나는 최대한 눈과 귀를 열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러면 숲의 화음이 나를 감싼다. 사~ 서~ 솨~~ 짹짹… 바람과 나무가 서로를 애무한다. 바람이 나무를 건드리는 것인지, 바람이 지나가는 길에 나무가 서 있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나무와 바람이 몸을 부대끼는 소리가 도시 한 복판에서 억세진 마음을 위로한다. 새의 지저귐까지 화음을 맞춰서. 그 소리를 함께 들려줄 수 없는 것이 아쉽다.



홍릉수목원에는 야생화 개량종도 키우고, 요즘 관심이 많아 조경도 하는 구절초 등을 별도의 장소에서 재배도 한다. 숲을 가꾸기 위한 노력이면서 다양한 생태가 조화를 이루면서 살도록 하는 배려이리라. 아마도 인간 세상도 그러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세상에 잡초는 없다. 무명(
無名)은 없다. 이름을 모르고 있을 뿐. 인간 숲에도 차별이 아닌 차이를 인정하면서 생태계가 제대로 유지됐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남기고 왔다. 



이곳은 홍릉터다. 명성왕후가 묻혔던 곳. 그러다 1919년 고종과 함께 합장되면서 터만 남았다고 한다. 숲을 가꾸면서 명성왕후의 분노가, 한국인들의 상처도 조금씩 치유됐을까. 물론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일. 숲은 그렇게 테라피스트(therapist)다.


잣나무란다. 열매를 맺으면 이듬해에나 딸 수 있는. 이 숲 박사가 묻는다. 이 잣나무, 몇 년이나 된 것 같냐고. 얇고 작은 것으로 보아,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이 나무, 20년이 넘었단다. 가지가 있는 마디 하나가 1년인데, 나무가 별로 자라지 못했다. 잣나무는 그늘에서 자라는 음수인데, 옆에 다른 나무가 없고 햇빛을 받으면 쑥쑥 자랄 수 있는데, 그런 환경이 되지 못한 탓이다. 각 나무의 특성을 살려서 숲을 가꿔야 한다는 것이 이 숲 박사의 설명. 사람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러나 이 땅은 그런 개개인의 특성을 갖고 살게 하기보다, 획일적으로 사람을 다루고 네모난 상자에 넣어 키운다. 몰개성의 시대, 틀린 말 아니다.
 
 

다래나무다. 다른 나무를 칭칭 감아 올라 나무를 파이게 만든단다. 이렇게 다래나무가 파고 들어간 나무는 목재로 쓰일 수 없다. 물론 이곳은 수목원이니까, 목재로 사용할 이유가 없으니 그들의 애무 혹은 싸움을 그냥 놔두는 게다. 숲에서도 경쟁을 한다.

그러나 숲의 경쟁은 인간의 것과는 또 다르다. 숲의 생물이 벌이는 경쟁은, 수많은 이웃의 욕망이 충돌하는 수직의 공간에서 자기의 하늘을 확보할 힘을 갖기 위한 것이다. 인간들마냥 타자의 공간을 빼앗기 위한 것이 아니라, 비어 있는 공간에 내 존재 기반을 만들어내기 위해 자신을 키우고 변화시키는 경쟁, 즉 자신과의 다툼이다. 물론 이것은, 김용규 숲생태전문가의 얘기다. 



작은 계곡에 물이 졸졸졸 흐른다. 수량은 많지 않다. 어제 비가 온 까닭이리라. 이 숲 박사는 비가 그친 뒤 왜 계곡에 물이 흐르는지를 질문한다. 그러고 보니,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없다.

“물의 원천은 흙이다. 흙 속에 고체알맹이가 있고 그 공간에 물이나 공기가 차 있다. 토양 속 공간이 제대로 형성돼 있으면, 비가 오면 물을 담았다가 서서히 빠져 나온다. 그래서 계곡에 물이 흐른다. 물이 흐르고 그렇지 않고는, 흙이 물을 제대로 담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좌우된다. 숲이 우거졌다고 물이 많은 건 아니다. 토양이 제대로 역할을 하고, 숲이 적당해야 증발산 작용이 제대로 이뤄진다. 숲은 돈이 들더라도 제대로 가꿔져야 인간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산성비가 내리는 것도 토양의 중화작용이 약해져서 그런 거다.” 아하, 그렇구나.




삼나무, 편백나무 등 우리나라의 남쪽 혹은 일본에서 자랄 수 있는 나무들이 모여 있다. 시범적으로 심은 것이란다. 이곳에 뿌리를 내린 지 30년 이상 됐으나, 역시나 잘 자라진 못한다. 가늘고 허약해 뵌다. 그래, 원래 있어야 할 곳이 아니니까. 사람도 마찬가지일 텐데... 각자 있어야 할 땅과 하늘이 있는 법이다. 각자의 자리에 있지 못하고 탐욕과 불안에 사로잡혀 있는데다, 그릇이 되지 않는 자가 높은 곳에 있다 보니, 그 부작용이 심각하다. 일본에서 태어났다는 그 사람, 왜 서울에 있으면서 사람들을 괴롭히니? 응?




이천용 숲박사를 따르면서 우리 가슴속에는 숲이 조금씩 들어왔다. 숲친화 탐방이었다고나 할까. 자주 쉬면서 이 숲박사에게는 물론 숲에도 귀를 기울였다. 눈을 자주 돌렸다. 그렇게 마음은 평화를 찾아갔다. 이것이 숲의 힘인가.



숲과 하늘은 이보다 멋질 수 없는 앙상블을 보여줬고, 내 마음은 이미 구름을 타고 숲길 구석구석을 훑고 다닌 기분이었다.


숲에서 평화를 경험한 사람들의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볍지 않았을까. 그녀의 자전거가 내게 들어온 것 마냥, 숲이 내게로 들어온 그런 경험? 자연과 교류․교감하는 통로로서의 숲길을 거닐었기에. 


홍릉수목원에서의 숲속 걷기여행을 그렇게 끝났다. 비록 숲의 바람과 소리까지 건네지 못해서 안타깝지만, 그건 당신이 직접 숲으로 향해서 경험해야 할 몫으로 남겨두는 것도 좋지 않겠나. 영원히 소멸되는 건 아니지만, 그때만큼은 당신이 가진 걱정, 가을에 낙엽이 떨어지듯이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풀고 싶은 어떤 고민의 답을 얻어갈 수도 있겠지.

이 숲박사는 이렇게도 말했다. “사람도 세상도 점점 악해진다. 그 가운데 숲이 있다. 심신을 정화하고, 특히 아이들에게 좋은 영감과 건강을 주는 것이 숲이다.” 세상의 악은 바이러스처럼 퍼진다. 악의 점점 평범해진다. 악의 평범함. 악을 악으로 느끼지 못하도록, 세상과 사람은 서로를 직조한다. 발효가 아닌 부패되는 것이 또한 세상이자 사람이다. 영혼을 세척하고 세상을 덜 슬프게, 세상이 당장 썩지 않도록 만드는 방부제로서의 숲.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만큼에 비례해 숲도 점차 망가질 것이다. 그것은 자명하다. 문명의 역사에서 인간의 손길이 닿은 곳치고 타락하고 부패하지 않은 것이 있었던가.

숲이 더욱 망가지기 전에, 숲에 대한 애정을 품고 대화하고 머물러보는 것, 어떻겠나. 숲을 사랑하는 사람은 절대 악한 사람이 없다는, 그런 입에 발린 흰소리는 않겠다. 다만, 우리의 악함이 좀더 속도를 늦출 수 있다면. 그래서 세상과 지구의 부패를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다면. 숲을 빌려준 뒷 세대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면서.

숲을 거닐고 싶다면, 『주말이 기다려지는 숲속 걷기여행』을 권한다. 아울러, 숲에 대한 좀 더 인문학적인 접근을 하고 싶다면, 『숲에게 길을 묻다』(김용규 지음/비아북 펴냄)를.


참, 정상을 향해 치닫는, 산을 정복 대상으로 삼아 정상 점령을 목표로 하는 ‘등산’보다, 산을 관조하면서 거니는 입산, 숲과 길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숲 탐방을 권한다. 부디 숲에 가서는 큰 소리로 떠들지 마시고. 숲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훨씬 나을 터이니.

이천용 숲박사가 책에 적어준 말로 마무리를 대신한다.
“생명의 숲에 오심을 환영합니다.”



[예스24 채널예스 기고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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