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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피스톨즈'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0.08.17 삐딱이들이 펼친 상상력의 향연, 에 방방 뛴 기록
고루하고 꼴통 같은 꼰대들을 향한 반역적 에너지가 충만했던 1960년대.
하고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도 살짝 꼽으라면,

68혁명이 있었다. 이건 다음에 또 얘기하자.
그리고 이듬해 우드스탁 페스티벌. 1969년 8월15일.
지금으로부터 41년 전의 그날이 있었다.

뭐, 우드스탁?
네가 한때 친구들과 음악에 맞춰 몸 흔들고 알코올 섭취하던,
신촌의 그 올드뮤직바를 말하는 것이냐. 그것도 맞다.
미국 뉴욕주 베델에 위치한 지명이기도 한 그곳은,
이젠 지역명이라기보다 20세기 하나의 문화적 사건으로 각인돼 있다.

최근,
이 우드스탁을 가능케 하는데 일조하고 우드스탁으로 전혀 다른 생을 살게 됐다고 고백하는,
엘리엇 타이버의 회고록
《테이킹 우드스탁(Taking Woodstock)》이 번역출간되고,
안 감독은 이를 같은 이름으로 영화화한 <테이킹 우드스탁>을 내놨다.
얼릉 보러 가야하는데... ^^;



알다시피, 한국에서 이를 되살리고자 했던 다소 의심스러웠던 시도는 일단 불발.

The Peace at DMZ with Artie Kornfeld, the Father of Woodstock

아무래도, (세뇌를 당한 탓(!)이겠지만,)
우리 시대의 우드스탁을 위해선 물론 누군가의 발현과 기획이 있어야겠지만,
당신과 나의 불온한 상상력이 꼭 필참해야 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들이 꼬옥 함께.
탁현민, 강산에, YB밴드, 뜨거운 감자, 그리고 김제동, 고재열... 이 삐딱이들.

왜 그들이냐고?
지난 5월, 그들과 함께 공연장에서 방방 뛴 까닭이다.

그것이 끝난 뒤 세상의 엄혹함과 비루함은 여전할지라도,
아무 것도 바뀐 것이 없다고 여길지 몰라도,
혹은 누군가의 말처럼 군중심리에 의한 빛 좋은 넌센스였을지라도,
당신과 나는, 엘리엇 타이버처럼은 아닐지라도,
생의 사소하지만 중요한 균열을 맞볼 수 있진 않을까.
우리 각자의 세계는 그렇게 초큼이라도 달라지지 않을까.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그렇게 우드스탁을 희망한다. 

그날을 희망하면서 써 내려간 이 글의 마지막 구절.
"깃발 들고 우리 놀아보자. 자, 당신의 상상력을 보탤 차례다."
내 작고 사소한 진심이다. 그렇게 나는, 레디다. 함께 방방 뛰자.

참, 혹시나 이런 판이 벌어진다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이냐! 그렇다, 커피.
상상력 발광 커피!를 당신에게~ 마시고 방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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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이들이 펼친 상상력의 향연

[현장취재] 『상상력에 권력을』 탁현민


시계를 돌려보자. 1976년 6월4일 영국 맨체스터. 전설적인 저항 펑크록밴드 ‘섹스 피스톨즈’의 공식적인 데뷔공연이 있었다. 전년도 11월6일, 런던에 위치한 전세계 디자이너들의 성지인 세인트 마틴 아트스쿨에서 한 첫 공연에 이은 것으로, 이 데뷔공연을 지켜본 이는 단 42명. 섹스 피스톨즈의 전설과 명성을 감안하면 의외일 수도 있겠다.


제 아무리 훌륭하고 좋은 뮤지션이라도 첫 시작은 미미했음을 얘기하자는 것이냐? No! 펑크록 신의 시작을 알린 이 공연은, 다른 점에서 유의미했다. 시쳇말로, 새끼를 확실하게 쳤다. 섹스 피스톨즈를 숭배했던 버나드 섬너가 같은 자리에 있던 피터 후크와 밴드를 만들었다. 역시나 그 공연에 있었던 이언 커티스가 밴드에 참여했다. 단 두 장의 앨범으로 전세계의 음악을 뒤흔든 ‘조이 디비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렇게 공연에 있던 몇몇은 ‘버즈콕스’, ‘뉴 오더’(조이 디비전의 후신), ‘진저 넛’ 등의 밴드를 결성했다. 세계적인 밴드 몇몇이 바로 그날, 섹스 피스톨즈의 공연에서 비롯됐다, 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을 더 거슬러, 하나 더. 우드스탁. 1969년의 바로 그 우드스탁 페스티벌. 위키백과의 설명 중 일부다.


“우드스탁 페스티벌(Woodstock Music and Art Fair)은 1969년 8월15일부터 3일간 뉴욕 주 북부 베델 근처 화이트 레이크의 한 농장에서 열렸다. 30만, 그 이상의 사람들이 그 농장으로 몰려갔다.(입구를 부수고 들어간 사람의 수가 너무 많아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다고 함)... 우드스탁은 음향 시설이 형편없었고 음식과 물과 화장실도 턱없이 부족했으며 게다가 폭우가 쏟아져 농장은 거대한 진흙 뻘 같았다. 하지만 이런 열악한 상황도 우드스탁에 이르러 절정에 달한 히피 반문화 공동체의 열기를 누그러뜨리진 못했다. 부족한 샤워 시설과 폭우는 천진난만하게 물장구를 칠 물 웅덩이로 대체되었으며, 진흙 뻘은 히피들의 낭만적인 놀이터가 되었다.”


전설 같은 이야기. 우드스탁은 그렇다. 오죽하면, 책을 쓰다가 우드스탁이 열렸던 뉴욕 주 베델로 향한 사람도 있었다. 그도 이를테면, 많고 많은 우드스탁 신(봉)자의 하나인 셈인데, 그는 우드스탁을 이렇게 그리고 있었다.


“상상력을 믿는 사람들, 그것도 예술적 상상력을 믿는 사람들은 무모하다. 비현실적이며, 위험해 보인다. 적어도 상상력이 없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러하다. 우드스탁은 그러했다. 당대의 정신, 실패로 끝난 68혁명에 대한 모진 안타까움과 시대에 대한 열망이 예술적 상상력과 결합하여 만들어 낸, 말 그대로 상상력이 힘을 갖게 되는 자리였다. 그리고 그 공연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탁현민’이기에 가능한...


그 사람, 공연기획자 탁현민. ‘음악이 사회적 발화의 수단이 되기를 바라’는 대중문화평론가. ‘61만 명’이 모이는, 우드스탁보다 조금 더 큰 장을 펼치길 원하는 공연기획자. 현실에서 저항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고, 부정하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은, 그것이 동력인 불온아. ‘상상력에 권력을’이라는 68혁명과 우드스탁의 구호를 감히(!) 책 제목으로 내건 저자. 『상상력에 권력을』(탁현민 지음|더난출판 펴냄)은 그런 탁현민이 고스란히 담겼다.


사실 이리 말해봐야, 손만 아프다. 좀 더 쉽게.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를 앞두고, 지난 8일부터 주말마다 서울·광주·대전·대구·창원·부산을 찍은 추모콘서트 <파워 투 더 피플 2010> 연출자. 역시 지난해 노무현 추모 콘서트 <다시 바람이 분다>와 노무현재단 출범 콘서트 <파워 투 더 피플>를 연출한 바 있다.


그런 탁현민이, 지난 10일 서울 홍대부근의 V홀에서 『상상력에 권력을』(탁현민 지음|더난출판 펴냄) 출간기념 북콘서트를 ‘게릴라처럼’ 열었다. 게릴라처럼, 이라고 했지만, 쟁쟁하다, 그 이름들. 강산에, 김C, YB. 아울러, 이들 뮤지션들이 소속된 기획사(다음기획)의 김영준 대표, 고재열 기자(시사IN, 독설닷컴)까지. ‘탁현민’이라는 이름을 믿고 뭉친, 역전(?)의 용사들. 아니, 정확하게는 ‘긴급 구호팀’이다. 탁현민의 표현을 빌자면, “자신의 생각에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도 한 번쯤은 나를 믿고 무대에 올라줄 수 있는”. 물론, ‘한 번쯤’이 아니다. 탁현민이라는 이름이 길어낸, 탁현민이기에 가능한 이름들. 



이 자리, ‘제대로’ 놀아보자는 거다. 출연하기로 한 연예인들이 모조리 펑크를 내서 ‘개쪽’ 파는 짓거리가 아니라, ‘MR에 고음처리 부분을 입혀 실망스러운’ 개나리 가수를 출연시키는 그런 콘서트 말고. 우리의 숨통을 틔우기 위한 진짜 콘서트.


알다시피, 폭압의 시대다. 전쟁의 시기다. 독재의 시대다. 금기의 시절이다. 동의 안 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지금을 그리 생각한다. “전쟁의 시기에 반전을 이야기하고 폭압의 시대에 인권을 노래하는 것, 독재의 시대에 해방을 소망하며 금기의 시대에 자유를 노래하는 것은 대중예술인으로서 너무도 당연한 행동이다. 이들이 앞서서 새로운 세계를 노래하고 그 노래를 따라 부르는 대중이 늘어나면서 세상은 조금씩 바뀌게 된다. 전쟁을 멈추게 하고 인권을 기억하게 하며 해방을 이루어내고 자유를 얻게 하는 것이다.”(p.100)


그러니까, 이날 나온 유명인들은 이런 존재들. “대중에게 현실에서의 재미와 현실 이상의 상상력 두 가지를 모두 제공해 주”(p.119)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뿐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살아야 할 새로운 시대에 대한 상상을 가능하게 해주”(p.119)는. 아마, 그들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도, “유명기획사 혹은 기획된 스타들로부터 벗어나 있는 대중예술인들을 주목”(p.77)하는 이들이었을 것이다.


42명이 모인 섹스 피스톨즈의 공연처럼, 61만 명이 모일 공연의 예행연습처럼 콘서트가 막을 올렸다. 저자의 오프닝 멘트. “책을 내고 콘서트까지는 사실 생각을 안 했다. 책 내고 또 공연까지 해야 돼, 라고 생각했는데, 가수들이 굳이 해 주겠다고, 하고 싶다고 해서 자리를 만들었다.(웃음) 감개무량하다. 양해를 구할 것이 다른 중요한 공연들이 있어서 오늘, 준비를 많이 못했다. 순서는 지금부터 만들어지고 있다.(웃음) 사실 부끄럽다. 책으로 나온 것이 부담도 있고, 한편으로는 뭔가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던 것 같다. 지금까지 단독으로 네 권을 썼고, 세 권이 공저였다. 딱 한 권을 빼고는, 목적이 없었는데, 그 한 권은 돈이 목적이었다. 『남자 마음 설명서』라고. 다른 책을 합한 것보다 이 책이 가장 많이 팔렸다. 그래서 김C의 마음을 이해한다. 음악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정받고 싶지만... (웃음) 오늘은 강의나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기보다 즐기는 자리다. 나도 즐기고 싶다.”


탁현민-고재열 만담 콤비


공연도 때론 예열이 필요한 법. 세상이 거의 아는 퀴즈영웅, 고재열 기자(시사인 문화팀장, 독설닷컴: http://dogsul.com, 트위터: @dogsul)가 첫 무대를 장식했다. 보석 같은 뮤지션들 틈에 ‘주변에 맴도는 인공위성 같은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책에서 탁현민과 대담(<한국의 대중문화 그리고 문화적 상상력의 힘에 관하여>)을 진행한 바 있다.


그들의 첫 인연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탁현민은 참여연대 간사였고, 고기자는 출입 기자였다. 그들은 어느 순간, 친구가 됐다. 친구답게 짓궂다. 탁현민은 그가 나이를 속여, ‘고비열’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했고, 고기자는 나이를 밝히지 않았을 뿐이라고 했다. 여느 만담이 그렇듯, 진실은 저 너머에.  

  

그 대담에 대한 폭로(?)부터 시작된 그들의 만담을 살짝 엿보자.



“양주 1병을 받고 ‘탁비어천가’ 썼는데, 다시 보니 손발이 오그라든다. (웃음) 문제의식 있는 사람 중에 가장 끼 있는 활동가였는데, 이제는 끼 있는 공연기획자 중에 가장 문제의식 있는 사람으로 변했다고 썼는데, 문어체적인 표현이었다. 실제 느낀 건, 진정성 있는 사람 중에 사기를 잘 치고, 사기 잘 치는 사람 중에 진정성이 있다고 고치겠다. (웃음)”


탁현민이 묻는다. “왜 탁현민이 훌륭한가.”


고재열이 답한다. “여러분들 오늘 사실, 탁현민 보러 온 것 아니지 않나. (박수) 여기 온 뮤지션들이 지난 주말에 힘든 공연을 하고 쉬어야 하는데, 돈도 안 받고 여기에 왔다. 그래도 여러분이 보고 싶어 하는 분들이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오늘 공연 충분한 가치가 있을 거다. 아, 질문이? 10년 전이랑 변화가 없다. 헤어스타일이. (웃음)”


탁현민이 푸념한다. “널 부르는 게 아니었어. (웃음)”

  

탁현민은 앞서 언급했듯, 노무현 추모 공연을 기획했다. 어땠는지 물었다.

“지금 한국 상황을 보면, 바다는 어민이 지킨다. 해군이 아니고. 거리는 시민들이 지키고 있다. 경찰이 아니고. 공연장 정도는 내가 지켜야 하는 것 아닌가. (박수) 대중음악은 끊임없이 현실을 부정해야 한다. 지금 처한 상황만을 노래하는 것 뿐 아니라, 엔터테인먼트만 제공하는 게 아니라, 앞선 상상력을 보여줘야 한다. 존 레논의 <이매진>을 들어봐라. 당대엔 절대 이뤄낼 수 없겠지만, 국가와 종교와 군대만 없어도 세상은 평화로울 거라고 생각하잖나. 그런 상상력이 대중문화와 대중음악에서 나와야 한다”


“일찍이 존 레넌은 <이매진 imagine>을 통해 이렇게 노래했다. "imagine there's no countries it isn't hard to do. nothing to kill or die for and no religion too. 국가가 없다고 생각해 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야. (국가를 위해) 누구를 죽이거나 죽을 필요도 없잖아, 종교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아티스트에게 있어 음악은 자신의 삶과 철학을 표현하는 수단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존 레넌은 노래를 통해 그의 조국인 영국과 그가 말년에 살았던 미국까지도 부정한 셈이다.”(p97)


이번에는 고재열이 묻는다. “날 왜 불렀나.”


탁현민이 답한다. “고재열이 한국 언론사에 길이 남을 좋은 기자라 생각한다. 이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아는 분도 있겠지만, ‘퀴즈영웅’에 등극하면서 받은 상금을 당시 파업 중인 회사에 쾌척하지 않았나. 적어도 이 친구가 돈이나 다른 것에 매여서 쓰고 싶은 기사를 못 쓰거나 안 쓰는 기자 아니구나, 생각했다. 지금까지 늘 일관된 모습을 보여 온 기자고.”


만담하는 척 하면서, 서로 띄워주는 이 풍경. 주최 쪽의 농간(?)이겠지만, 밉살스럽거나 거북하지 않다. 왜냐! 그건 ‘사실’이니까. 물론 만담이 길면, 농담이 된다. 만담은 그 정도로. 첫 번째 게스트의 등장, 뜨거운 감자다.


감자가 달군 뜨거움


뜨거운 감자가 악기를 세팅하는 동안, 탁현민의 소개말. “사과할 일이 있다. 3~4년 전, 김C와 이야길 하면서 음악을 들려줬을 때, ‘형 노래는 당대에는 성공 못할 것 같애’라고 했다. 그런데 요전 앨범 발표하고 나서 취소했다. 오늘 낮에도 15일 공연 때문에 스태프와 연습 참관을 했는데, 뜨거운 감자 음악은 당대에 성공할 것은 물론이고 길이길이 남을 거다. 20세기가 잉태하고 21세기가 온몸으로 받아들인 뮤지션, 김C를 소개한다.”


뜨거운 감자의 김C가 화답했다. “탁이(주. 김C는 탁현민을 ‘탁이’라고 불렀다)는 고향후배이기도 하고, 회사의 직원이기도 했고, 지금은 한 회사의 대표가 됐는데, 전체적으로 사기꾼이다. (웃음) 애들도 가르친다 해서 위험한 짓을 하는구나 생각했다. 책 냈다고 해서 진짜 웃기는구나, 했다. 책을 읽었다. 굉장히 건강한 사기꾼이 됐더라. 그래서 생각했다. 약간씩만 사기 치면 행복해질 것 같다고. 탁이가 여러분과 우리의 중간자를 잘 하고 있는 것 같다.”


여느 주례사 인사말 같진 않다. 그들은 삐딱한 존재들이니까. 어쨌든 뜨거운 감자의 음악이 울려 퍼졌고, 몸은 들썩이기 시작했다.



첫 곡, <수학이 좋다>. “...네 말이 맞는다고 내 말이 틀렸다고/ 어떻게 알 수가 있겠어/ 너와 난 다르다고 넌 나를 틀렸다고/ 정답을 알고 싶을 뿐이야/...내 뜻대로 살아갈게/ 네 갈 길을 찾아라 나를 찾지 말아/ 내 뜻대로 살아갈게/ 네 갈 길을 찾아라...” 신난다. <봄 바람 따라간 여인>이 잇는다. “봄바람 따라 간 여인 어디쯤에 가고 있나”를 따라 흥얼거린다. 


세 번째 곡은, 최근 낸 영화 없는 영화음악 앨범의 <시소>. 신난다. 발은 동동 뛰고 어깨는 흥에 겹고 가슴이 뜨겁다. 이 맛이 감자다.


“어느 날 생각해봤다.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는 지금의 내 나이였을 때, 이 정도의 시대적 아픔을 안고 살아갔는지 궁금해지더라. 누구나 그런 건가. 어쨌든, 조금 현 시점이, 어휘력이 부족해서 그렇겠지만, 조금 좆같다. 영향력 있고 힘 있는 분들이 주변 모든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좋겠다. 책이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점점 뜨거워지는 현장. 네 번째 노래, <고백>이 불을 붙인다. 아마도, 어쩌면, 우릴 향한 뜨거운 감자의 뜨거운 고백. “달이 차고 내 마음도 차고/ 이대로 담아두기엔 너무 안타까워 너를 향해 가는데/ 달은 내게 오라 손짓하고/ 귓속에 얘길 하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그 순간이야...” 곡이 끝날 때마다, 짧고 강렬하게 외치는 김C의 한마디. 땡큐. 인상적이다.


김C에 대한 탁현민의 기억 한 소절. “처음 들었을 때, 김C가 노래를 못하는 줄 알았다. 2년 전쯤인가, 김C가 책을 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림을 넣어야하는 책이었는데, 어떤 분의 그림이 좋을까 고민하다가, 이외수 선생님을 떠올랐다. 댁에 찾아가서 선생님께 부탁을 했다. 선생님 왈, ‘나는 그림을 그릴 테니, 너는 밤새 내 옆에서 노래해라’. 진짜 밤을 새워 통기타 하나로 노래했다. 그때, 괜찮은 노래구나, 괜찮은 목소리구나 생각했다. (웃음)”


방만한(?) 기획사의 소신 있는 방만함


그렇다면, 잠깐. 이날 초대된 뮤지션들, ‘탁현민’이라는 이름 때문에 모인 한편으로, 사회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고 사회적 이슈를 외면 않는 이들이다. 모두 같은 기획사 소속인데, 기획사에서 이런 이들을 품고 있는 것,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 아닐까. 우리가 아는 대개의 기획사는, 소속 연예인들에게 그런 것을 원천봉쇄하고 입조심, 행동조심을 늘 상기시키건만. 이 소속사, 또라이 아냐? 궁금하다. 다음기획. 


그리하여, 또 한 명의 이야기 손님, 김영준 다음기획 대표가 등장했다. 역시나 뜨거워진 열기를 잠시 식히고자 마련된 만담의 시간.



참고로, 다음기획을 보여주는 이야기 한 대목. 한 예능프로에 나온 김C. 한 아이돌이 우리는 밥값으로 5000원 이상 못 먹는다고 하자, 김C는 우리는 마음껏 먹어도 되는데, 라며 소속사를 방만함(?)의 표본으로 널리 알렸다. 김 대표 왈. “우리는 가둬놓고 안 키운다. 풀어놓고 키운다.”


탁현민과 김 대표의 인연은 2002년부터 시작됐다. “시민단체 간사로 있을 때, 김 대표가 ‘우리 회사로 들어와라. 너의 미래를 보장 하마’라며 되지도 않는 이야길 꺼냈다. (웃음) 태어나서 처음 돈 내고 본 공연이 정태춘 공연이었다. 아주 큰 울림이 있었고, 정태춘 공연을 꼭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다음기획에 가니 소속돼 있더라. 공연 연출하러 들어간 건 아니었는데, 연출가로서 관객을 만날 수 있게끔 자리를 만들어줬다. 실수를 많이 했는데 끊임없이 기회를 많이 준 고마운 분이다.”


김 대표가 처음에 봤을 땐 조폭 같았다며, 자신의 첫 인상을 되묻는 탁현민에 대한 화답. “그냥 싸가지 없는 애였다. (웃음) 어제 공연이 노무현 추모 콘서트로 ‘시민에게 권력을’. 오늘은 ‘상상력에 권력을’. 권력을 상당히 좋아하시네. (웃음) 농담이고, 이 친구는 대한민국 대중문화 권력의 지형을 바꾸고 싶은 친구다. 덕담이 아니고, 굉장한 열정을 가진 친구다. 인간의 능력이 무한정하다는 것을 실증하는 인물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보통 출판기념회에 가면 지인들이 뭔가를 해주는데 이 친구는 혼자 마이크잡고 설친다. 이 친구가 회사에 들어온 지 1~2년 됐을 때인가. 자기 생일에 아무도 안 챙겨준다고 제과점에 가서 케이크를 사와서는 노래를 불러달라고 했던 그 모습이 오늘 떠오르더라.”


저자도 다음기획에 들어갔던 것, 김 대표를 만난 것을 생의 중요한 지점 중의 하나로 꼽는다. “나는 성공회대를 나왔고 참여연대, 오마이뉴스, 다음기획 등에 있었다. 정말 골수까지 진보다. 진보의 진골이다. 성골이나 육두품도 아니고. (웃음) 그런 것 때문에 비난도 듣는데, 그걸 의식하지 않는다. 나에겐 중요한 기억이고 인생의 중요한 지점들이다.” 


김 대표가 읽은 『상상력에 권력을』은 이랬단다. ‘탁현민을 가장 잘 설명해주며, 어떤 피가 흐르고, 머리가 뭐가 들어있는지, 싸가지는 어디서 기원했는가’를 보여주는 책. 둘의 만담도 그랬다. 열렬한 애정의 소산. 과거지만, 대표와 직원 사이라기보다, 동반자 같은 그들의 관계가 느껴진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동반자로서, 연대하며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손을 맞잡고 있다. 아마, 삐딱함이 맞아떨어진 결과이리라.


고로, 다음기획을 탁현민의 언어로 정의하자면 이렇다. “이윤의 극대화보다는 문화적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신 있는 기획사”(p.77). 고로, 방만함(!)은 소신의 결과다. 5000원짜리 밥이 설운 아이돌은, 다음기획을 두드려라. 길이 열릴 지.........................도 모른다.


“단지 상품성 있는 엔터테이너로 그리고 언제든 버려질 수 있는 아이돌로 살고 싶지 않다면 획일성과 상업성만을 요구하는 연예산업의 구조를 해체하기 위해서는, 연예인 지망자 스스로 자본의 요구에 의해 기획되고 생산되기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예술적 완성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p.77)


달리는 YB밴드, 터질 듯한 공연장


그런 기획사에서 노래하는 YB는 행복하겠다. YB와 탁현민의 인연도 2002년으로 올라간다. YB가 악기를 세팅하는 동안, 탁현민이 폭로(?)하는 윤도현이다. “2002년 월드컵 직후에 한 전화통화다. 이러는 거다. ‘야, 편의점에 갔는데, 사람들이 알아봐’. (웃음) 자기가 나온 CF를 신기하게 보던 그런 사람이었다.” 그땐 그랬지만,

 

이윽고, 시동을 건 YB의 일갈, 렛츠 락앤롤(Let's Rock&Roll). 멋지구리. <담배가게 아가씨>로, 테이프를 끊고 달린다. 후끈후끈. 이어지는 <나비>는 또 어떻고.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꺼야/ 노래하며 춤추는 나는 아름다운 나비...” 아름다운 나비, 그 노란색의 나비. 우리는 그 나비를 안다. 그 나비는 또한 우리다.


윤도현의 축사. “출판기념회에 와서 노래한 건 처음이다. 탁이가 2살 어린데, 지금 교수님이고, 사회적 지위와 위치에 있더라. (웃음) 책 쓰면서 뉴욕 가서 고독을 삼키기도 하고, 타협하지 않고 글 쓰려고 노력해서 나온 책으로 알고 있다. 성향을 보면 불의에 맞서 싸우려는 돈키호테 같은, 시대착오적인 그런 사람인데, 그런 사람 필요하잖나. 그런 얘기 나한테도 많이 한다. 나서라고. ‘형 같은 사람이 머리를 두르고 이걸 해야 해’. 내 앞길 생각도 않고. (웃음)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고, 특히 높이 사는 건, 초지일관된 우직함이다. 이런저런 소리 많이 들어도, 자신의 길을 가려는 모습은 본 받을만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깃발>이다. 탁현민이 압력을 가했다는, 그러므로 굉장히 선동적인 노래. “힘 없는 자들의 아우성 속에서 들끓는 나의 뜨거운 피를 느꼈다/ 고맙다 형제들이여 깃발을 들어라 승리를 위하여/.. 맞서 싸워 두 주먹 쥐고 깃발 들어 do it again/ 쓰러지거나 넘어져도 깃발 들어 어 moving again...” 그래, 함께 깃발을 들자. 절로 떠오르는 이 한 마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도 대사로 나왔지, 아마. 대한민국, 좆 까라 그래.


방점은, 준비 중인 새 앨범에 수록될 곡 <스테이 얼라이브>. 정규앨범이 아닌 YB밴드의 첫 싱글이란다. “일렉트릭과 락이 혼합된, 자극적이고 망하기 좋은 곡이다. 그것도 영어다. (웃음) 그래도 열심히 만들고 있다. (망하기 좋은데) 왜 내냐고. 탁처럼 굽히고 싶지 않은 뭔가가 있거든. 공연장에서 선물은 하나 해야 할 것 같고, 그래서 준비했다.”


달렸다. 뛰었다. 즐겼다. 살아서 버텨라. 이 쥐의 시대. 어떻게든 살아남으라. 살아남는 것이 곧 우리의 과제임을 상기시킨다. 삐딱하게 또 삐딱하게.


탁현민을 만든 스승들


탁현민의 회고다. 말하자면, 나는 왜 삐딱이가 됐나, 지금의 나는 어떻게 형성됐나. “돌이켜볼 나이는 아니지만, 난 문제 많은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담배를 피우다 하루에 3번 걸린 적도 있다. 학교 가다가, 화장실에서, 야간자율학습 때 걸려서. 지금도 그날이 생생하다. 맞는 건 기본이었고, 모눈종이에 반성문을 써야 했다. 그때, 반성문 쓰다가 눈이 너무 아파서, 앞에 국어선생님 책상을 봤는데,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있었다. 우연히 그렇게 읽었는데, 그 책에는 다른 생각이 있더라.”


당시 탁현민에겐 세상에 대한 저주에 가까운 비난, 스스로 열등한 존재라는 인식을 끊임없이 심어주던 학교라는 감옥에 대한 저항심이 있었다. 그런데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놀라웠다. 감옥에서 어떻게, 그렇게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을까. 그 이후 신영복 선생님은,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탁현민에게 스승이 됐고, 세월이 흘러 신 선생님이 계신 성공회대에 가게 됐다. 마침 그해 안식년이었지만, 그렇다고 끝이 아니었다. 우연히 신 선생님의 조교가 됐다.


직접 뵌 신영복 선생님의 가르침은 그러했다. 대학 4학년 때였다. 세상에 나가면 어차피 돈을 벌어야 할 터이니, 대학시절엔 돈이 안 되는 것을 공부해야 한다. 대학 4학년, 마지막 시간. 선생님은 <논어>를 던져주셨다. 남들이 토익, 토플을 공부할 때 논어 봤다. 탁현민이 ‘남다른’ 공연기획자가 될 수 있었던 한 가지 요인이다.


물론, 다른 은사들도 만났다. ‘선생님복’이 많았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 앞에 이외수 선생님 댁이 있었고, 국어선생님이 이외수 선생님과 절친한 사이였다. 글 쓰는 재주가 있었던 탁현민은 국어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이외수 선생님 밑에서 습작을 할 수 있었다. 박원순 변호사도 빼놓을 수 없다. 쉬지 않고, 세상을 향한, 사회를 위한 기획서를 쓰고 실현되도록 노력하는 소셜 디자이너.


그리고 최근에 알게 된 한 선생님에 대한 소개. “워낙 유명하신 분이지만, 유명한 분들이 대부분 실망시킨 적이 많아서 큰 기대가 없었는데, 공연과 관련해 알게 되고 몇 마디 나누면서 이 분의 진가를 알게 됐다. 역시 건강한 기운을 내게 주시고 앞으로 좀 더 아름다워질 수 있도록 만들어준 분이다. 이 자리에 와 계신다. 소개할까말까 망설였는데, 끝까지 자리에 계셔주셔서 소개한다. 정연주 KBS 전 사장님. (인사) 꼭 어떤 분을 직접 만나지 않아도 상관없다. 인생의 향방이나 방향을 결정할 때, 중요한 역할 해 주는 분이 누구에게나 있다. 나도 지금 누군가의 선생이 돼 있는데, 사실 학생들과 얘기하다보면 절망감을 느낄 때가 많다. 이른바, 꼰대적 발상이지. (웃음) 신영복 선생님한테 얘기하니, 그러시더라.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건, 다만 희망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게 선생의 제대로 된 태도라고 생각한다.” 


어떤가. 당신은 그런 스승이 있는가.


강산에, 어떤 것보다 강하고 어떤 위로보다 절절한


강산에. 세상의 다른 속도로 생과 음악을 꾸리는 뮤지션. 나는 그의 속도와 부합하는 음악을 좋아한다. 탁현민에게, 강산에는? “앞의 두 뮤지션과는 다른 위로를 주는 분이다. 나와 맞지 않는 부분도 많다. 나는 강성이고 욕도 바로 하고, 차분하게 생각하기보다 들이받던지, 한 대 맞던지 하면서 몸으로 체험해야 똑같은 실수를 안 하는 스타일이다. 강산에는 부드럽고 묵직하다. 강산에는 공연이 좀 더 부드러워야 하고, 딱딱한 것이 강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 분 노래가 그렇다. 어떤 것보다 강하고, 어떤 위로보다 절절한 위로를 준다.”


탁현민의 복이다. 선생님 복도 그렇지만, 다른 복도 넘친다. 좋은 뮤지션과 함께 일할 수 있으며, 좋은 친구들을 갖고 있고, 많은 관객들과 만난다. 공연기획을 하는 그의 복이다.



그의 복 중의 하나. 음유시인, 강산에의 등장이다. “어쨌든 여러분, 오래오래 사셔야 한다. 나도 오래 살 계획이다. 무대는 77살까지. (웃음) 그래야 내 공연에도 오실 수 있잖나.” 그러니, 우리는 아름다워야 한다. 시간을 버티는 것은 때론 예술이 된다. 아름답고 부드러운 맛있는 우리를 위한. 그렇다, <명태>다.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노래 되고 시가 되고/ 약이 되고 안주 되고/ 내가 되고 니가 되고/ 그대 너무 아름다워요/ 그대 너무 부드러워요/ 그대 너무 맛있어요/ 감사합니데이~...”


“친구 딸 이름이 그림이다. 공부를 안 하고 딴 짓을 많이 해서, 아빠가 걱정돼서 물었다. 공부 잘 하고 있니, 구구단 외울 줄 알아? 2단 외워보자. 2*1=2, 2*2=4, 2*3=6… 2*8=16, 2*9=아나.” 꺄아~ <이구아나>다. 예전에 이 노래, 처음 들었을 때, 정말 좋았다. 이구가 십팔이 아닐 수도 있음을 알려준, 세상엔 또 다른 공식도 있을 수 있다고 들려준 이 노래.


이어진 <와 그라노>까지. 내 자란 고향의 익숙하고 친근하며 푸근한 노랫말. MB한테 해 주고 싶은 말. “또 와 그라노? 니 또 와 그래샀노?” 삽질 좀 그만해 싸라.


탁현민 “강산에는 말의 속도, 생각의 속도가 느리다.”

강산에 “느리다, 빠르다 보다는 다른 거다. 아닌가?” 

탁현민 “세 가지 소원이 있었다. 정태춘 공연을 하고 싶었는데, 정태춘의 마지막 공연을 했고.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저항성 있는 팀과 하고 싶었는데, YB밴드와 했다. 세 번째는 강산에 무대에서 같이 서고 싶다. 아침부터 좀 전까지도 얘기할까말까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얘기해서 같이 하고 싶다 했더니 흔쾌히 허락해줬다.”

강산에 “허락했다기보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웃음) 의외였다. 뜻밖이었다.”

탁현민 “나는 항상 레디다.”



그렇게 마지막 노래, 강탁(강산에․탁현민)의 노래 <삐딱하게>가 무대를, 홀을 가득 채운다. “너무 착하게만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네)/ 너무 훌륭하게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네)/ TV를 봐도 RADIO를 켜도 삐따기의 모습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네)/ 있는 그대로 얘기할수 있는 삐따기/... 삐딱하게 삐딱하게/ 삐딱 삐딱 하게 삐딱 삐딱 하게/ 그가 서 있는 땅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네...”


무릇, 체제에 순응하는, 혹은 이를 넘어 체제에 복무하는 문화예술은 재미없다. 문화예술이 정치적이어선 안 된다는 말은 거짓이다. 아니, 그 말이 더 정치적이다. 연예인이, 무슨 정치적인 발언이냐고? 무식해서 내뱉는 무뇌아의 치기로 받아주겠다.


“예술은 정치사회적인 것들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맹신을 가지고 있는 한국사회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예술의 사회라 할 수 있다. 해방이후 지금까지 이 땅에서의 예술은 철저하게 지배층의 이데올로기를 선전하거나 혹은 저항하는 전부였다.”(p.82) 


대중문화, 대중예술의 꽃은 삐딱함에서 핀다. “우리 시대의 대중예술인 가운데 상당수는 자신의 음악과 발언을 통해 사회질서와 체제, 심지어 무의식 속의 관념까지도 부정한다... 이들이 국가와 사회를 비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체제를 공격하고 제도와 관습을 부정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세상을 바라보는 그 삐딱한 시선이야말로 대중예술인이라면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어야 하는 덕목이기 때문이다. 문화적 풍요는 결국 다양한 생각을 수용할 수 있는 사회에서만 가능하며, 대중예술인들은 그 풍요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p.98)


그렇다면 무엇으로부터 삐딱하게, 무엇에 대해 저항해야 하는가. “오늘날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란 단지 ‘돈’의 문제를 떠나, 가장 철저하게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이른바 자본의 ‘논리’에 대한 저항이라 할 수 있다. 사회적 금기와 체제에 대한 저항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고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질서를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하는데, 오늘날 가장 공고한 질서는 다름 아닌 자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을 부정하는 것은 현 시대의 전부를 부정하는 것과 같은데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문화사회적 실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p.157)


빙고. 돈을 멀리하라는 말, 아니다. 자본의 논리에 저항하라는 것이다.


68혁명의, 우드스탁의 구호는 아직 유효하다(고 나는 믿는다). 당신과 나를 상상하게 하는 힘. 그것이 곧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그 상상을 하게 해주는 문화예술의 힘. “예술은 저 하늘에 반짝이는 별빛 같은 무엇이 아니다. 문화가 우리 삶의 총화이듯이 문화의 범주 안에 당연히 위치하는 예술 역시 우리들의 현실과 미래를 담고 있는 실체적인 무엇이 되어야 한다. 예술이란 결국 우리들이 당대의 현실을 인식하고 꿈꾸어야 할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힘, 그것이기 때문이다.”(p.84)


그러니, 그 힘을 지키는 것은 우리여야 한다. “그들의 역할이 아무리 위로를 주는 존재라 해도 우리가 이 위로가 되어주는 존재들과 함께하겠다면 저들의 후안무치를 탓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윤도현이 앨범을 내면 그의 앨범을 사고, 신해철이 공연을 하면 그의 공연에 가고, 김제동이 책을 쓰면 그의 책을 읽는 것과 같은 분명한 지지와 사랑을 보내주어야만, 그래야만 우리는 그를 지켜줄 수 있을 것이다.”(p.218)



뜨거운 감자, YB, 강산에의 앨범을 사서 듣고 공연장을 향하며, 『상상력에 권력을』을 사서 읽고, <시사인>을 사서 펼친다. 그러면 우리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존재들과 함께 하고, 상상을 할 수 있다. 기대하고 기다리겠다. 섹스 피스톨즈의 데뷔공연이 새끼를 친 것처럼, 이날 함께 자리했던 누군가에 의해 빛나게 될 대중문화와 61만 명이 모여 자체 발광할 상상력의 향연을. 깃발 들고 우리 놀아보자. 자, 당신의 상상력을 보탤 차례다.

 

[예스24 채널예스 기고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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