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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4.27 지금-여기의 먹을거리 문제, 안녕들 하십니까? (1)
2014.04.27 00:38 할말있 수다~

지금-여기의 먹을거리 문제, 안녕들 하십니까?

삶과먹을거리 협동조합 끼니황교익 이사장 인터뷰


 


지난 1221, 서울 서교동에 자리한 수운잡방(需雲雜方)’은 왁자지껄했다. 탁탁탁탁, 음식 만드는 소리가 울렸고, 후각과 촉각을 현혹시키는 음식 향이 퍼졌다. 뭣보다 먹을거리 분야에서 난다 긴다 하는 선수(!)들이 모였다. 라인업(?)은 화려했다. 동지팥죽과 동치미, 동경식 김밥, 제철 방어회, 남원 흑돼지 족발 수육, 석화(), 부산에서 당일 생산된 어묵과 스지, 마을에서 당일 생산된 두부, 국산호두·우리밀·국산팥앙금으로 만든 광덕 호두과자, 공정한 과정을 거친 초콜릿, 밀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초코 브라우니, (호산춘과 화개장터 무감미료막걸리) 등 푸짐한 상이 차려졌다. 군침 가득이다, 꿀꺽.

 

고은정 약선요리연구가, 황교익 맛칼럼니스트, 김경애 요리사, 박상현 맛칼럼니스트, 고영주 초콜라티에, 정은정 사회학연구가, 이호준 <식객>스토리작가, 박성경 도서출판 따비 대표 등 스무 명 이상의 조합원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다. “먹는 것이 곧 사람인 요리하는 인간, ‘호모 코쿠엔스(Homo coquens)’의 잔치다.

 

삶과먹을거리협동조합 끼니(이하 협동조합 끼니, 이사장 황교익)’의 잔치였다. 이들의 대표브랜드 맛콘서트(이하 맛콘)’의 한 해를 마무리하는 행사를 열었고, 이어 조합원끼리 송년 모임도 가졌다. 호모 코쿠엔스의 모임에 맛있는 음식이 빠질 수 없는 노릇. 뭣보다 음식은 개인과 사회 집단의 정체성을 이루는 핵심 요소가 아니던가. 사실 어떻게, 무엇을 먹느냐는 본능에 따르거나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문화적인 것이다. 먹을거리를 허투루 다룰 없는 이유다


그러니까, 협동조합 끼니는 이렇게 묻는다고 말할 수 있겠다.

 당신의 먹을거리는 안녕하십니까?”



 

이날, 황교익 이사장을 만났다. 지금-여기의 먹을거리는 다시 사유해야 할 사회적인 문제다. 입으로 들어간다고 모든 것이 먹을거리는 아니다.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해서 먹는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많은 나라에서 식품의 생산, 유통, 소매는 대기업, 즉 식품복합체가 통제하고 있다. 한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그 복합체의 힘은 상상 이상이다. 우리의 입맛은 그들에 의해 길들여지고 있다. 식사보다 사료라는 표현이 더 적합한 이유다.


지금 한국의 먹을거리 구조와 문화, 어떻게 보고 있나? 협동조합 끼니는 지금 한국의 먹을거리 구조, 식품산업 등에 어떤 문제 제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 듣고 싶다.

 

맛있는 음식에 대한 열망은 인간의 본능이다. 불행하게도, 한민족은 맛있는 음식을 먹어본 경험이 없다. 늘 굶주렸다. 끼니를 잇기도 어려운데 미식은 꿈꿀 수도 없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야 먹을거리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이는 오천 년 역사에서 처음의 일이다. 그럼에도 한민족에게 유구한 미식의 역사가 있다는 착각이 만연하고 있다. 이 땅에 존재하였던 왕조국가의 극소수 왕족과 일부 관료계급의 기록에서 미식의 흔적을 찾고 있는 것이다. 한민족을 먹여 살렸던 이들은 생산자 농민이다. 이들이 한반도를 실제로 경영하였던 계급이다. 이들에게서 먹을거리를 착취하였던 극소수 계급의 특별난 기호가 한민족의 음식문화에 덧칠되는 것은 이 땅에 살았던 수많은 민중에 대한 모독이다. 못 먹고 살았어도 그게 이 땅에 살았던 대부분 민중의 일이었으면 우리의 역사로 받아들여야 한다. 한민족에게 미식의 역사가 없었음을 고백하여야 한다. 불행하였어도, 우리의 역사이다.

 

우리는 지금 유사 이래 가장 많은 먹을거리를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밥상 앞에서 늘 불안해하고, 배불리 먹으면서도 정신적 허기를 호소한다. 배만 불린다고 행복해지지 않는다. 협동조합 끼니는 한국인의 먹을거리가 분명한 실체를 드러낼 수 있도록 조작된 전통과 왜곡된 미각 정보를 고발하는 일에 역량을 집중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먹을거리의 생산과 가공, 유통, 소비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양심에 따라 대중에게 의견을 내놓을 수 있는 마당을 마련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한국의 노동자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먹을거리를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지 모색할 것이다. 밥상 앞에서 모든 한국인이 행복해질 수 있는 미래를 꿈꿀 것이다.”

 

 

그렇다. 인류가 풍요롭게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100년이 채 안 된다. 인류문명의 탄생 이래, 풍족한 음식과 맛으로 음식을 먹고 맛있는 것을 찾아다닌 시대는 더 짧다. 한국만 놓고 보면, 이는 훨씬 더 줄어들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먹을거리가 풍족해지면서 우리는 생각하지 않게 됐다. 배부른 돼지가 된 것이다. 흔히 하는 착각이 있다. 우리를 먹이는 것은 자연이라는 것. 하지만 우리를 먹이는 것은 산업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 대부분 공장에서 나온다.

 


지금-여기의 먹을거리 구조를 축약하자면, ‘풍성한 먹거리, 비정한 식탁이라는 표현도 가능하지 싶다. 이에 외국에서 전파된 웰빙, 로하스, 슬로푸드, 로컬푸드 등을 내걸었으나 결국 그 철학이나 가치를 제대로 흡수하지 못한 것 같다. 왜 그럴까?

 

웰빙, 로하스, 슬로푸드, 로컬푸드 등은 산업화 사회에서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으로 유럽에서 발상한 제안이다. 유럽에서 이 같은 것들이 인간을 더 행복하게 해줬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한국적 상황에서 적용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다. 유럽은 200년의 시간을 두고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었다. 한국은 그 기간이 30년이다. 유럽의 농업은 산업화 과정에 맞춰 서서히 적응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유럽 농민들은 도시 노동자들이 원하는 웰빙, 로하스, 슬로푸드, 로컬푸드의 삶을 제공해줄 수 있는 기반을 가지고 있다


한반도의 농업도 그럴까? 유기농을 위해 윤작을 할 수 있을 만큼 땅이 넓은가, 외부에서 퇴비를 가져와 넣지 않아도 되는 순환농업의 실현이 가능한가, 높은 온습도의 여름 환경에서 농약을 치지 않고 상품성 있는 농작물의 결실을 볼 수는 있는가, 유럽의 그 수많은 농가공산품처럼 한국의 농민도 농가공품을 생산하여 판매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는가, 반나절이면 전국 어디든 닿는 이 좁은 대한민국에서 로컬은 의미 있는 단어인가. 먹을거리는 옷, 자동차, 가전제품과 다르다. 먹을거리는 자연의 절대적인 영향 아래에 있다. 가공품의 생산구조도 쉬 변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인의 먹을거리 문제는 한국적 상황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맛콘서트도 그런 것을 기반으로 진행하고 있다. 뭣보다 호응이나 반응이 꽤 좋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동안 맛콘서트의 성과와 향후 방향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면?

 

맛콘의 장점은 이론과 실재가 공존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무엇이 우리 미각을 속인다고 말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의 음식을 수강자들이 직접 먹어보고 확인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가령, 대형식품업체의 두부 시장 진출이 지역경제와 자영업자의 붕괴만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미각을 왜곡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점을 공장의 브랜드 두부와 동네에서 당일 만든 두부의 비교 시식을 통해 확인하게 한다. 대부분 다른 미각교육은 좋은 음식 고르기에 대한 안목키우기 정도였다면 맛콘은 음식에 대한 시각 자체의 전복을 요구한다. 그 깨달음의 효과는 강렬하고 지속적이라 자평하고 있다. 앞으로 맛콘은 한국음식문화에서 말하는 전통의 허구성을 지적하고 근대 이후 한국인의 미각이 어떻게 왜곡되어갔는지를 탐구할 것이다.”

 

 

먹는 것은, 많은 사람의 착각과 달리,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행위이다. 먹을거리가 먹는 사람에게 전달되기까지의 수많은 과정을 보라. 수천 킬로미터의 이동은 물론 숱한 노동이 뒤따른다. 무엇보다 공정하지만은 않은 대규모 기업농업과 경제 시스템 때문에 파괴되는 자연도 있다. 먹을거리는 풍성해졌음에도 식탁 문화는 앙상해지고 비정해진다. 거대한 영향력을 가진 일부 맛집(요리)블로거들의 탈선(!)도 심심찮게 오르내린다. 그것은 먹을거리가 그만큼 막강한 콘텐츠가 됐음을 방증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바야흐로 먹방혹은 음식 포르노의 시대이다.

 

 

음식과 요리에 대한 콘텐츠가 맛집 블로거라는 타이틀을 통해 넘치지만, 알맹이는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협동조합 끼니가 추구하는 바를 혀의 인문학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텐데, ‘먹는다는 것에 대해 끼니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가?

 

한국인은 대부분 노동자이다. 노동을 팔아 먹을거리를 산다. 온 민족이 노동자로 사는, 먹을거리를 사서 먹는, 지금의 상황은 익숙하지 않다. 먹을거리에 대한 정보라고는 자본과, 그 자본에 종속된는 언론, 그리고 자본이 끊임없이 간섭하는 정부기관에서 얻는다. 방송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음식을 이용할 뿐이며, 블로거는 가상의 세상에서 허상의 품위를 얻기 위해 인증 샷을 날릴 뿐이다. 정부는 유권자들이 좋아할만한(‘이익이 될 만한이 아니다) 정책을 남발할 뿐이다. 학계와 여러 음식문화 단체의 연구가들 역시 전통을 조작하고 왜곡된 미각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이 불행한 것은 먹을거리에 대한 거짓된 정보를 의심할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다.’ 내가 먹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우리는 한국인의 먹을거리에 대한 실체를 드러내는 일에 열중할 것이다.”

 

 

흥미롭다. 저 높은 곳이 아닌 일상의 음식, 한국의 음식문화의 민낯을 보는 일이라니. 음식은 어떤 무엇보다 일상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구체적으로 사유하는 일이다. , 어떻게 살 것인가를 구성하는 기본이다. 요리 본능의 리처드 랭엄은 요리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밥을 먹는 것은 음식물로 우리 자신을 만드는 일이다. 음식이 몸을 만든다. 인간은 다른 생명체를 먹어야만 하는 저주를 타고났다. 그 동물성의 육체는 천형일 것이다. 그렇기에 음식 접시에서 눈을 들어 생각해야 할 책임이 있을 것이다.

 

 

서울을 먹다라는 책도 내셨다. 지금 서울음식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서울은 한성이 아니다. 서울이 조선시대 왕가가 있었던 도시이나 서울의 문화적 정체성은 조선에 기대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서울음식 하면 궁중음식, 양반음식부터 떠올린다. 서울음식 중에 일부 그런 음식들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서울 사람들이 현재 먹고 있는 음식 중에 조선에도 있었던 음식은 별로 없다. 조선에 있었다 하여도 지금은 식재료와 조리기구가 바뀌어 그 맛과 스타일이 크게 다르다. 조선시대에는 한성음식이 있었고 대한민국에는 서울음식이 있다. 서울음식이란 서울 사람들이 두루 먹으며, 또 그 음식을 먹으면서 자신이 서울이라는 문화 공동체 안에서 살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음식이다. 나는 그 같은 서울음식으로 종로 빈대떡과 설렁탕, 신당동 떡볶이, 을지로 골뱅이와 평양냉면, 동대문 닭한마리, 태릉 갈비, 오장동 함흥냉면, 신림동 순대, 마포 돼지갈비, 왕십리 곱창, 장충동 족발, 혜화동 칼국수 등등을 꼽았다. 서울시민은 대부분 이주민이다. 이 음식들에는 이주민의 삶과 아픔이 묻어 있다. 이게 진짜 서울음식이다.”

 

협동조합 끼니는 내년 1월초 우리 장 전문가 양성을 위한 전통장 아카데미를 시작으로 다양한 활동과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2014년 어떤 계획들이 있는가?

 

음식을 인문학적 화두로 삼으려는 젊은이들이 많다. 조합원들의 역량으로 그들의 지적 욕구를 채워줄 수 있다. 그에 맞는 강좌를 열 것이다. 한국음식이 맛없는 까닭은 한국 식재료에 대한 이해와 조리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계절별 최상의 식재료를 구하는 방법과 이를 이용한 음식 개발 또는 개선의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서울과 먹을거리에 대해 한 말씀 부탁한다.

 

서울이라는 곳이 대한민국의 식재료들이 다 올라오는 곳이다. 전국 사람들이 다 올라오니까 음식도 따라 움직인다. 향토음식도 서울에 다 올라온다고 봐야 한다. 대한민국의 맛있는 것은 서울에 모여 있다고 봐야 한다. 맛있는 음식이 서울에 다 있다고 하지만 무엇이 맛있는 것이라는 것에 대해선 잡혀 있지 않다. 뉴욕, 파리 등 다른 나라의 대도시는 각 나라 음식문화의 중심이다. 그런데 서울은 대한민국의 음식문화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지 못하다. 거기에 대한 생각도 서울시에서 해봤으면 좋겠다.”

 

 

모름지기, 입이 열려야, 먹을 것이 들어가야 마음이 열리는 법이다. 가령, 우리는 의식적으로 커피를 마시거나 초콜릿을 먹는다. 심신을 깨우거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먹는 것을 통해 의식적으로 심리상태를 조절한다.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인간의 정서와 기분은 의사결정과 의식 같은 높은 수준의 정신활동 과정에 본질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그만큼 정서와 기분을 좌우하는 먹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음식은 스스로를 조절하는 강력한 수단이고, 이 수단으로 스스로를 안심시키거나 기분을 북돋고자 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다. 호모 코쿠엔스의 즐거움은 인류의 것이다. 장석주 시인의 가 그것을 확인해준다.

 

어떤 일이 있어도 첫사랑을 잃지 않으리라

지금보다 더 많은 별자리의 이름을 외우리라

성경책을 끝까지 읽으리라

가보지 않은 길을 골라 그 길의 끝까지 가보리라

시골의 작은 성당으로 이어지는 길과

폐가와 잡초가 한데 엉겨 있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로 걸어가리라

깨끗한 여름 아침 햇빛 속에 벌거벗고 서 있어 보리라

지금보다 더 자주 미소 짓고

사랑하는 이에겐 더 자주 정말 행복해라고 말하리라

사랑하는 이의 머리를 감겨주고

두 팔을 벌려 그녀를 더 자주 안으리라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 자주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보리라

_장석주,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중에서 



사진. 협동조합 끼니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