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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_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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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7 23:54 메종드 쭌/무비일락
지난주 목요일(10일) 저녁부터 달려서,
이제 18일이면 폐막을 앞두고 있는 서울독립영화제(서독제)2009의 풍경.

 그러면 어떠리.
여전히 서독제는 즐거운 파뤼~

 치고 달리는 거지, 뭐.
다 뎀벼~ 뭐.


개막작이었던 <원 나잇 스탠드>의 포스터를 보면, 아직도 하악하악.
그 잠들 수 없던 격정의 밤이 떠올라, 하악하악.
2009/12/13 - [메종드 쭌/무비일락] - 폭풍간지의 밤, 하악하악
2009/12/13 - [메종드 쭌/무비일락] - 그 원 나잇 스탠드, 짜릿했냐고?



늘 사람들이 모이는 2층의 부스.
치고 달리기 전, 쉬어가는 곳이랄까.

갈 곳 없는 중생들이나, 갈 곳 있는 아해들 모두모두 오시라~


 

이 많은 감독들이라니.
나도 몇몇 분들은 현장에서 뵈었다네~
이 중 누군가는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있겠지.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어떤 인연이 됐든.

그날을 기다려요~ 감독님들~
(혹시 출연도 가능할까요? ^^; 행인3이라도..ㅎ)



서독제는 한편으로 만남의 장소.
사람들은 만나고 인사하고 이야길 나눈다.

그래요, 우리 모두 만나면 인사해요~ 방가방가~
물론 가벼운 눈웃음으로도 충분해요~



오늘(17일), 냉동고에 한국을 꾸깃꾸깃 집어 넣은 것 같은 추위.
그럼에도, 매표소 앞 긴 줄이 늘어선 것을 보고 뜨악~
나도 5분을 줄서서 기다린 끝에 표를 받았다.

'추위야, 물럿거라~'고 외치는 서독제?
혹은 추위 따윈 필요없어, 서독제.(서독제2010 카피로 어때효?^^;)

 

영화가 곧 시작되기 직전의 시간.
북적이던 사람들은 어느덧 공간이동을 하고.

아, 서독제의 밤은 이렇게 깊어가누나~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2009.12.17 23:48 메종드 쭌/무비일락

우연찮게도 며칠 전, '이리'를 다녀왔다.

정확하게는 '익산'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나는 '이리'라고 쓴다. 읽을 때는 '익산'이라고 읽을지도 모르겠다. 이리라고 쓰고, 익산이라고 읽는다? 며칠 후, 내가 <이리>를 볼 것이라곤 생각지도 않았다. 아니 못했다.

애초 이 영화는 연작(<중경>과 함께)이라고 진즉에 알고 있었다.지난해 개봉 당시 봐야지, 생각만 하다가, 실행의 부재로 결국 접하지 못했던 터. 두 편 모두.

내가 발 디뎠던 이리는, 단편적인 인상만 말하라면, 죽어있는 소도시 같았다. 신시가지라고 건물이 올라가고,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으나, 이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서울을 동경하는 듯한 그 뉘앙스는 불편했다. 신시가지의 그 볼품없는 간판들이 사람들의 미적 감수성을 해치긴 마찬가지고. 서울을 욕망하는, 획일화되려는 풍경. 이방인이라서 그랬겠지만, 과연 이리(에 삶의 터전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이 불편하지 않을까.

<이리> 상영 전, 조영각 서독제 집행위원장이 영화와 감독에 대한 소개를 했다.

모르겠다. <이리>를 보면서 지금 시대의 알레고리 같다고 생각한 것은 왜였을까. 30년 전 이리역 폭발사고를 소재로 했다는 영화. 30년 후 이리에 남겨진 사람들의 모습. 30년이라는 세월의 간극도 상처를 치유하진 못했다. 이리역 폭발에 따른 상흔이 30년 후에도 지속되는 건, 아마 30년 전과 다르지 않은 시대적 징후 때문일지도. 박정희와 이명박. 물론, 그것은 개인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 둘은 당대의 시대성을 상징하는 인물들이니까. 곧, 우리의 모습이라는 뜻이지.

내 기억이 맞다면, 극 중 태웅(엄태웅)은 한 번도 웃지 않는다. 정신줄을 약간 놓고 사는 누이, 진서(윤진서)는 노동에 대한 대가를 못 받아도, 윤간을 당해도 별다른 저항도 없고 덤덤하다. 물론 그것이 그의 마음까지 대변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태웅은 그런 모습을 보고도 가끔 화를 내고 패대기를 치지만, 그것 뿐이다. 근본적인 치유까지 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가끔 진서가 삶의 큰 짐처럼 느껴지는지 죽이고 싶은 충동을 드러낸다.

롱테이크는 길고, 인물들의 감정을 끌고 가야하는 것이, 참으로 무겁다. 신산하기 그지없는 삶의 풍경 앞에 관객인 나는 견뎌내야 했다. 그럼에도 그것이 싫지 않았다. 그것이야말로 감독이 우리에게 건네는 속삭임 같았기 때문이다. 어떻게든지, 버티고 견딜 것. 내 안의 이명박에게 휘둘리지 말 것. 이명박을 싫어한다고 하면서도 이명박을 닮은 우리들에게 건네는 토닥거림.



<중경>과 어떻게 연결될까. <이리>에는 <중경>이 필요한 것 같았다. 마지막 장면 때문에라도. 바다로 갔던, 진서가 서툰 중국어를 읊고 있다. 한 중국어 선생을 향해. 아마도 그것은 연결고리이리라.

익산이 아닌 이리여야 하는 이유.

내가 이리라고 쓰고 싶었던 이유.

당신은 알겠지?


아 참, 김동원 감독님과 한 공간에서 같은 영화를 봐서 좋았다.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2009.12.14 16:02 메종드 쭌/무비일락

이번 서독제2009의 반가운 프로그램 중의 하나는, 필리핀 독립영화 특별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이면서, 왠지 모를 친숙함이 느껴지는 나라. 필리핀을 다녀온(주로 신혼여행) 친구들의 이야기 때문일까, 아니면 필리핀 네그로스섬 농민들이 유기농으로 재배한 공정무역 설탕 '마스코바도'를 종종 접하기 때문일까.


모르긴 몰라도,

나는 이 미지의 나라산 영화가 궁금했다.

그래서 찾은 것이 <인디펜던시아>.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됐나본데, 영화평론가인 허문영의 이야기도 나를 솔깃하게 만들었으니까. (☞ 여기, 새로운 것이 시작되고 있다

글쎄, 이 영화 <인디펜던시아>는 완전히 새로운 영화적 신세계였다. 실험영화도 아닌 것이, 놀라움과 부담감을 한꺼번에 안겨준. 사실 이 영활 어떻게 말해야할지, 아직 모르겠다. 

 

 영화 시작 전, 감독과 영화에 대한 설명이 있었는데, 감독 라야 마틴은 스물 다섯의 청년이라고 했다. 1984년생.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영화를 볼수록 나는 그 스물 다섯이라는 나이가 밟혔다. 기록되지 못한 필리핀 식민역사를 삼부작 형태로 만들고 있다는 젊은 감독. <인디펜던시아>는 그 두 번째 결과물이라는데, 그런 의도도 다소 놀랍지만, 그 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메우는 상상력과 영화적 표현은 더욱 놀랍다. 난 이런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이 영화 덕분에 필리핀이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받았다는 역사도 알게 됐다. 이후에도 미국과 일본의 우산 아래 식민의 핍박을 받았다는 그 역사. 하지만, 영화는 그런 거대역사를 직접적으로 다루진 않는다. 그런 난장판 같은 시대의 한 자락에 위치한 삼대가 숲 속에서 일구는 삶이 영화가 전하는 이야기의 전부다.

별 다른 대사도 없다. 숲에 버려진 움막을 개조해서 사는 어머니와 아들. 다른 것보다 "서로를 믿을 것"을 강조했을 뿐. 그냥 먹고 자고 살아간다. 미군에게 강간당한 여인이 새 식구가 되고, 어머니가 죽고 아들이 태어나 흘러가는 세월.

시종일관 흑백으로 진행되면서 무성영화와 뉴스 릴을 연상시키는 이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는  예술작품 같다.  그것은 아름다움이고, 그에 삽입된 숲 속의 효과음도 이에 조응한다. 빛이 만드는 몽타주도 때론 황홀하다. 이것이 나중에는 비극의 전조처럼 느껴지긴 해도.  

아직도 궁금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미군에 쫓겨 절벽에 도달한 아이의 옷이 빨간색으로 변한 것은 무엇을 의도했기 때문이었을까. 흑백에서 벗어난 그 붉은 강렬함. 삼대에 걸친 한 가족사를 통해 식민시대를 압축한 스물 다섯 감독의 재능이 놀라울 뿐이다.

이야기에 몰입한다면 심심하기 그지 없겠다. 나도 잠깐 졸았으니까. 과히 당혹스러운 영화다. 라야 마틴은 올해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이 영화를 선보이면서, "사람들이 조국을 위해 그리고 영화를 위해 죽을 수 있기를 원했다"고 말했단다. 손발이 오그라들고야 말 발언이지만, 허문영 평론가는 영화를 보고 그의 말이 주문처럼 머리에 맴돈다고 했다. 그리고선 이 영화는 순결한 순교의 영화라고 표현을 했다.

굳이 종교적인 의미를 갖다 붙일 필요는 없겠다. 영화는 선동이나 선전도 아니니까.  장담하건대, <인디펜던시아>는 극장에 걸리거나 DVD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아마 더 기억에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별점을 세 개에 택한 것은, 어쩔 수없는 절충안이었다. 별 다섯과 하나 사이를 오간, 당황스러움의 절충안.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아직도 있을지 모른다.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2009.12.13 15:29 메종드 쭌/무비일락

직장탈출? 아무 것도 아니다 : 멀쩡하게 잘 다니던, 그것도 통념상 버젓한 직장(이라고 쓰고, 감옥이라고 읽는다)을 나오는 것은, 실은 대단한 용기는 아니다. 혹자는 우와~하며 부러움 혹은 놀라움을 표하겠지만, 당사자 입장에선, 그것은 그냥 그렇게 해야 하는 일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를 버리면, 다른 하나를 얻는다는 것이다. 반대로 말해도 된다. "이른바 ‘안전빵’이라는 공무원 생활을 버리니까 자유를 얻은 대신 가난이 찾아왔어요"라고 말한 ≪깐깐한 독서본능≫저자이자 영세 축산업자 윤미화(파란여우) 씨. 버리고 얻어본 이라면, 윤미화 씨의 말 중에 '자유'와 '가난' 대신 자신에게 적합한 다른 말을 넣으면 되겠다.  

교사였던 지완이 학교 선생님을 그만두고 영화판에 뛰어들겠다고 나선 것도 그렇다.  물론, 그렇게 영화판에 뛰어들면 뚝딱 영화가 만들어질줄 알았다는, 현실 모르는 나이브한 생각을 했다지만. 영화판을 대체 뭘로 본 거야. 선생이 저렇게 나이브해도 되는 거야? 라는 짧은 생각도 스쳤지만, 어쨌든.

윤경화 씨의 말을 빌자면, 지완은 '영화'를 얻은 대신 '정신질환'이 찾아온 격이랄까. 정신질환이라고 표현했지만, 액면 그대로의 것은 아니다. 시나리오를 향한 그의 사투가, 아마 그의 정신을 돌아버리게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그렇게 썼다. 사실 꼭 얻은 것도 아니고, 꼭 찾아온 것도 아니다. 감옥을 탈출했다고 대단하게 볼 것도 없고, 감옥에 붙어있다고 불쌍한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은 모든 것의 방식대로.

나는 왜 아직도 영화에 출연 못하고 있는가 : <레인보우>는 영화 만들기에 대한 영화에 가깝다. 즉, 메타영화. 사표를 쓰고 5년이 넘도록 입봉을 못하고 있는 지완을 보자니, 문득 떠오른 나의 한 친구. 얼마 전에 술을 한 꽐라 걸치고 밤 늦게 내게 전화했던 영화하는 친구. 녀석도 결혼한 지 이제 반년, 알콩달콩 행복하지만(아직은 그럴 때지, 암! 끄덕끄덕. 결혼도 못 해본 내가 어떻게?ㅋㅋ), 꽐라했던 그날의 전화통화에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애가 잔뜩 묻었다.

핵심은 그거다. 십 수 년째 영화에 매달리고 있지만, 아직 입봉을 못한 친구. 영화는 십 수 편이 엎어졌고, 이젠 현장에서도 약간 떨어져있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영화를 가르치면서 지탱하고 있지만, 언제 입봉할지도 몰라, 가장으로의 책임감은 점점 무거워져. 물론 제수씨는 아직 녀석을 몰아붙이지 않고 있었고, 생계는 대부분 그녀가 책임지고 있다(고 추정된다). 하지만 언제 제수씨가 돌변할지, 녀석의 영화꿈은 언제나 이뤄질지, 모든 것은 불투명하다. 녀석은 그렇게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아 참, 녀석의 영화를 기다리는 이유가 나도 있다. 그 영화에 나도 출연시켜 준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물론 당연히 주연은 아니고, 행인.^^; 아직 내가, 온갖 캐스팅 제의(?)에도 불구, 영화에 출연하지 못하는 이유다. 녀석의 영화에 첫 출연을 하고 싶어서? 푸하하. 쪽 팔리는구만. ^^;; 그래도 나는 녀석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영화가 뭐기에 그렇게 붙잡고 있느냐고. 영화를 사랑하기에. 사랑하기에 떠나신다는 그말, 나는 믿지 않으니까.

루저? 위너? 행인! : 아들과 남편을 둔 30대 후반의 여성, 지완에게 영화계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시나리오만 쓰고 엎기를 수차례. 노트북에서 개미가 기어다니는 환영에 시달리기까지 한다. PD의 재촉을 받으며 상업성과 하고 싶은 이야기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지완. 집에서 남편은 언제 영화 하느냐고 재촉하고, 밴드를 하겠다는 아들은, 사춘기다. 아, 어쩌란 말이냐.

지완은 버티고 견딘다. 음악영화를 하겠다고 취재에 나섰다가 한 페스티벌에서 발견한 악보에서 그녀는 또 다른 재미를 맛본다. 물론 그렇다고 현실의 영화일이 잘 풀리는 것은 아니다. 옆 방의 별 볼일 없이 빈둥대는 감독은 국제영화제에서 수상도 하는데, 이상하리만치 자신은 죽도록 고생만 한다. 화를 내거나 분출하는 것도 없이 그저 묵묵히, 묵묵히.  

그렇다고 묵묵하게만 살 수 있나. 어느 날, 후배의 영화 현장에서 우연히 행인 엑스트라로 참여하게 되면서, 한 순간 폭발하고야 마는 지완. 뭔가 홀가분해진 것 같은 느낌. 진즉에 터졌으면 싶었는데... 아들이 묻는다. 엄마, 루저가 뭐야? 지완은 답한다. 잃을 게 더 없는 사람. 그럼 위너는? 더 이상 얻을 게 없는 사람. 그럼 엄마는? 엄마는 행인. 그냥 걸어가는 사람.

지완의 깨달음. 그냥 걸어가는 거다. 내가 가는 곳이 길이다. 시스템에 갇혀 있지 말자. 반보 후퇴하고 일보 나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족한 거다. 지완이 언제쯤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영화 만드는 것 자체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더 이상 그녀를 근심하지 않는다. 그녀는 걸어나갈 테니까. 그녀는 행인이니까.

영화 만들기에 대한 영화, <레인보우>.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 영화에 뜻을 둔 사람에겐 특히나 자신의 처지와 연동돼 어떤 정서적 울림이나 감흥이 더 와닿을 순 있겠다. 글쎄, 얼마 전 전화가 와서 하소연 한 친구가 아녔다면, 이 영화가 그렇게 와 닿았았을진 모르겠다. 물론 나도 행인이니까, 지완의 처지에 공감은 충분히 했겠지만.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2009.12.13 00:06 메종드 쭌/무비일락

'아~ 지랄~'이라며 눙쳐도 상관 없다만,

호들갑, 좀 떨어야겠다.

 

그렇다. 폭풍간지의 밤.  

그날 밤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겠다. 하악하악.

생각만 해도 이건 뭐, 오르가슴이 할딱할딱.

 

아니, '원 나잇 스탠드' 예고하더니,

아주 뽕을 내고 온 거냣? 하고 물으신다면, 응. 끄덕끄덕.

 

뭔 일이 있었는지, 테이프를 Rewind 해보자.

 

 

사건일지1.

 

그러니까, 12월10일.

세계인권선언일에 서울독립영화제(서독제)2009 치고달리기(HIT&RUN)에 살짝 발을 담궜단 말씀. 

 

잠깐, 세계인권선언일과 서독제가 뭔 상관? 

 

음, 그건 그래. 

굳이 세계인권선언일에 서독제 개막일정을 맞춘 건 아닐 테고.

그냥 우연의 일치라고 해 두지. 

 

그래도 '통'하는 건 있지. 

뭐냐고? 재미!  

인권이 재미없다는 건 편견.

사람답게 산다는 것, 사람으로서 자존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이 어딨나. 그 인권 충만한 느낌이 재미 아니겠나. 워낙 인권이 개무시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시대다보니, 인권이라고 하면 그저 재미없는 것으로 치부해서 그렇지.

 

서독제의 재미야, 지난해에도 언급했으니, 이걸로 퉁 칩시다.  

연말 술자리보다 더 알싸하고 짜릿한, 이건 어떤가! <서울독립영화제2008>

 

보슬비가 살짝 내 뺨을 스치던 그 밤, 뚜벅뚜벅 찾아갔더니,

아니 이게 뭬야~~~~~~~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장률 감독님(<망종> <경계> <중경> <이리> 등)을 위시하여, 경순 감독님(<쇼킹패밀리>), 장형윤 감독님(<무림일검의 사생활)...

 

아, 잠깐 여기서 장형윤 감독님의 인간성에 반한 한가지 사건.

테이프를 더 앞으로 돌려서.  


지난 9월 시네코드 선재에서 열린 신카이 마코토전.

마지막 날, 마지막 시간,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를 만나러 갔더니,

마침 장형윤 감독님 GV시간까지.

지난 2월 문래동 랩39에서의 독립영화상영전 때 이후 다시 방가방가~ 

 

GV시간에 주최 측에서 퀴즈였나? 뭐 그런 걸 내면서 시네코드의 영화표를 많지도 않은 관객들에게 나눠줬는데, 어쩌다 마지막에 사람들이 한꺼번에 몇명 나왔다. 나도 그 자리에 꼈는데.

영화표는 사람 수에 비해 모자라고.

 

아니, 그때, 장형윤 감독님이 냉큼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극장측에서 준 자신에게 준 영화표를 함께 나눠주겠단다. 이거 나누면 되지 않냐고.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누가 보면 되지 않겠냐고.

가슴이 뭉클뭉클. 아무 일 아닌 것 같지만, 이거이거 쉽지 않은 일이다. 덕분에 나는 영화표를 받았고, 그 표로 꽤나 좋은 영화 <여행자>를 봤다는 사실. 늦었지만, 정말 고맙. 꾸벅.

 


 

자리를 잡고 앉았더니,

두구두구둥~ 등장하는 불나방스타 쏘세지 클럽.

얘기는 종종 들었다만, 실제로 눈 앞에서 본 것은 처음.

 

아무래도, 서독제는 붕가붕가를 좋아해~ 자꾸자꾸 좋아지면 나는 어떡해~

지난해에는 장기하와 얼굴들이더니, 이번에는 불쏘클이라니. 

사진으로만 봤지만, 실제 본 아우라, 와우~ 장난 아니다.

콧수염에 선글라스, 모자, 패션... 느와르마초의 간지가 완전 폭풍이다.

 

사진 빌려온 곳 : 서독제 홈페이지(www.siff.or.kr)


 

얼터너티브 라틴음악을 표방했지만... 실은 얼치기라네~

어쨌든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음악을 하는데, 아주 뿅~갔다.

간드러지게 혹은 신파적으로 작렬하는 음악이 거의 황홀경이다.

 

리더 조까를로스는,

어눌한 듯 하면서도 할 말 다한다.

말투가 아주 장기하와 비슷하다. 붕가붕가의 특징이냐!

 

특히, 마지막 곡 [석봉아]에서는 까무라쳤다.

"너는 글을 쓰고, 나는 떡을 썰고~" 랩, 아주 죽어죽어.

 

(하나 고해성사하자면, 우리 어릴 적, 우리 살던 동네 (성)호기심천국 아해들에게 '석뽕'이라는 이름은 섹스행위의 의성어로 주로 활용됐었다.^^;;; 물론 노래는 이것과 전혀 상관없는데, 갑자기 그때가 생각나서 혼자 낄낄낄...)

 

  

잘 노는 아해들이라서 반갑고,

더구나 간지나게 놀아서 짜릿하고,

좌중을 후덜덜 쩔게 만들어서 더욱 흥겨웠던 불쏘클의 무대.

이, 고질적 신파도 사랑하게 될 예감? 유후~

나도 꼭 개발새발 밴드 결성하리라. 훅.

 

서독제2010에도, 역시나 붕가붕가의 멤버를 꼭 불러주시라.

내가 권장하는 멤버는 '술탄 오브 더 디스코'.


그렇게 올해도 변함 없이,

권해효 행님이랑 유시현 씨의 사회로 넉살 좋고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던,

서독제 개막식. 쪼아쪼아~

 

조영각 집행위원장님께서는 작년에 나비 넥타이 매고 오셨더니,

올해는 아니넹~ 나비 넥타이 어울리시드만.ㅎㅎ

 

이토록 엄혹한 시대,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확인시켜줘서 고마웠던 (독립)영화인들과 관객들.

치고 달리기(Hit & Run)로 이 좆같은 시대, 다시금 돌파하자규!~

해효 행님도 감사의 말을 표했지만,

이 겨울과 서독제를 훈훈하게 지탱해주는 자원활동가들에게 나도 캄솨~ 

 

아주 아주 듁여줬던 폭풍간지의 밤에 대한 허접한 감상.

사건일지1은 이만.

언제 꼭 서독제 개막식에 나처럼 발을 담궈보시길 권함.

당신도 하악하악, 거릴 걸? ㅎㅎ

 

아니 그런데, 원 나잇 스탠드 경험담은 어딨냐고? 사건일지2에 고함. 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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