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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8 18:10 메종드 쭌/무비일락

제발 어디든, 이곳이 아닌 어딘가로, 잡히지 말고 가주오.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나는 그렇게 마음 깊이 바라고 있었다. 거의 스크린을 향해 애원하고 있었다. 그들은 탈영병이며,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을 죽인 범죄자였다. 그럼에도, 내 마음은 그들과 함께 달리고 있었다. 그들처럼, 그네들이 서 있는 이곳만 아니면 될 것 같았다.

억지로 끼워맞추면, 그것은 스톡홀름신드롬이 아녔을까. 나는 그들의 뒤를 따르는 (자발적) 인질이었고, 그들에게 호감과 끌림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탈영이 아니었다. 이유야 어찌됐든, 그것은 사회적 알레고리였다. 그들이 탈주를 시도한 곳은 군대가 아니라, 이 빌어먹을 세상이었다. 그러니, 감정이입된 것은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각자 이유는 분명하다. 박민재 상병(진이한)은, 속사정은 군대 간부의 성추행을 견디다 못해, 명분상으론 여자친구를 만나기 위함이라는. 강재훈 일병(이영훈)은 죽어가는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말도 안되는 이유로 상관은 재훈에게 휴가를 보내지 않았다.)  거기에 한 명 더. 소영(소유진). 재훈이 군대 가기 전, 할인점에서 같이 일했던 인연. 자수를 권유하던 그녀는, 어쩐 이유에선지 그들의 탈주를 돕는 공범이 된다. 역시나 스톡홀름신드롬?


그렇게 세 명을 축으로 로드탈주무비는 본격화된다. 그들은 6일 동안 갖가지 위기와 위협, 예기치 않은 살인 등을 거친다. 승용차는 개장수트럭으로 바뀌고, 나중에는 모터바이크에 몸을 싣는다. 도망자의 불안감이 내부적으로 충돌을 불러오고 갈등도 빚지만, 그들은 어차피 더 이상 이 땅에 발을 붙일 수 없는 존재 아니던가. 이미 경계 밖으로 내몰린 존재의 선택은 두 가지다. 죽느냐, 떠나느냐.

감정은 고조되고, 인질이 된 나는 어느 순간 그들이 탈영이 아닌 탈주를 꾀하고 있다고 동화된다. 그래서 '탈영'이 아닌 '탈주'라는 제목은, 적절했다. 아마도 <탈영>이었다면, 나는 그저 군대라는 범주에서만 그들의 행위를 읽으려 했을지도 모르겠다. 모양새는 군대를 탈출한 이들의 이야기지만, 그것은 소재일 뿐. <탈주>는 가난하고 없는 사람들에게 한없이 무자비한 국가와 사회에 내몰린 자들의 이야기다.

 

저항은 딱 그만큼이다. 탈주 성공을 간절하게 바랐건만, 집단적 공포감으로 무장한 국가권력의 처벌은 언제나 냉혹하다. 내일 따윈 없어, 탈주. 순식간에 허물어지는 감정의 파고. 그 안타까움, 그 애처로움, 그 무력함. 여기만 아니면 된다고 했던, 그들의 마음이 나를 후벼판다. 털썩 주저앉아 울고 싶도록 만든 마지막 장면.

그 결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 초반부 함께 탈주를 시도했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임병이 그러지 않았나. "어디에 있든 지옥"이라고. 집으로 가든, 군대에 있든, 다를 바가 없다고. 여기가 아닌 그 어딘가로 가기만 하면 달라졌을까. 이 영화, 마음을 참으로 서걱거리게 만든다. 꼭 개봉하라. 개봉촉구!!!

P.S...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무장탈영' 소식이 나면, 나는 그들이 전하는 '이유'에 대해 늘 불신한다. 사람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그럼에도 그들은 단순화시킨다. 무자비하게 처단하고 재단한다. 공포감을 조장하지. 그 이유는 안에 있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러면 군대가 쓰나. 존립기반이 흔들거리는 걸. 군대? 조까라 마이싱! 참, 소유진 다시 봤다. 서프라이즈~ 영화든, 소유진이든, 예기치 않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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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6년 전, 2003년 12월9일.

요즘과 같은 강추위가 강타하던 그날,
혜화동 부근에서 한 사람이 추위에 떨다 숨을 거뒀다.
그야말로, 동사. 누구도 챙기지 않은 혹은 외면한 죽음.

나는, 그 사실을 뒤늦게 접했다.
2005년 김동원 감독님(<송환> <상계동 올림픽> 등)께서 국가인권위에서 제작한 옴니버스영화 <다섯개의 시선> 가운데 <종로, 겨울>을 연출하신단 소식과 함께였다.


오늘 모진 추위, 알코올 유혹을 뿌리치고 '서울독립영화제(서독제)2009'를 찾았다.
세상엔 알코올보다 더 좋은 것들이 있으니까! ^.~ (음, 인간이 초큼 학실히 달라졌다;;)

영화는 장률 감독님의 <이리>.

그것 자체로도 뿌듯했는데, 상영 직전에 꺄아아아아아아~ 소릴 지를 뻔 했다.

내 앞앞자리에 김동원 감독님이 성큼 앉으시는 것 아닌가!!!!!!!!!!!!!!

역시 잘 왔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면서,
3년 전 뵀을 때와 함께, '아, 이 즈음이었지'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글의 처음에 언급했던 그 사람, 고 김원섭 씨.
우리의 무관심으로 차디찬 고국 땅에서 동사할 수밖에 없었던. 

영화를 본 뒤, 냉큼 김동원 감독님께 꾸벅, 인사했다.^.^
당연히 감독님은 날 기억하지 못했지만, 굳이 얘기하진 않고,
사진을 부탁드렸다.

언제 다음 작품을, 내년에는 볼 수 있냐는 질문에, 수줍은 미소를 지으시면서 확답을 못하시던 감독님.
"괜찮습니다. 계속 기다릴 수 있습니다." (-> 내 마음 속)

간단히 감독님께 작별 인사를 드리고,
바깥 무시무시한 추위를 온몸으로 맞닥뜨리며, 종로통을 거니면서,
6년 전 길바닥에 쓰러져 살을 에는 추위에 덜덜 떨고 있었을,
무엇보다 조선족이라는 이유로, 마음 깊이 후벼파는 추위에 더욱 쓰라렸을,
김원섭 씨를 떠올렸다.

흥청망청 종로의 밤은 깊어갔고,
나의 마음에도 밤이 내렸다.
오늘 나는 얼마나 많은 타인의 아픔과 상처를 스치듯 지나갔는가.
봉석아, 오늘 너의 아픔을 충분히 위로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죽을 때까지 외로웠을 김원섭 씨, 다시 한 번 미안합니다...

김동원 감독님을 만나뵀던 3년 전의 인터뷰를 꺼냈다.


"동북공정엔 흥분하면서 그 땅에 사는 동포엔 왜?..."

2년전 세밑을 앞두고 흥청거리던 서울 종로구 혜화동 골목통에서 한 조선족 동포가 동사한 채로 발견됐다. 경찰 지구대 사무실에서 불과 20여m 떨어진 장소였다.

고(故)김원섭씨. 그 날의 사건을 신문은 이렇게 전하고 있었다.

"법무부의 장기 불법체류자 단속을 피해 농성을 해오던 중국동포가 체불 임금을 받으러 나간 뒤 하루만인 9일 새벽 서울 도심 거리에서 동사한 채 발견됐다. 이 중국 동포는 숨지기 전에 112와 119에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구조를 요청했으나, 도움을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출신의 김씨에게 고국의 품은 차가웠다. '잘 살아보겠다'며 조국을 찾아와 공사장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던 김씨에게 고국의 기업은 임금을 체불했다. 정부는 장기 불법체류자라는 딱지를 붙여 김씨를 강제추방 대상에 넣었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추위 속에서 헤매던 그가 십여 차례 이상 119, 112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지만 의사전달이 제대로 안돼 구조의 손길을 받지 못했다.

불법체류로 체불의 고통을 받았던 우리의 한 재중동포는 차디찬 골목바닥에서 주린 배를 움켜쥔 채 죽어갔다. 그는 '동포'였지만 '우리 안의 타자(他者)'였다. 차별과 소외가 내재화한 사회. 그런 엄혹한 현실은 그를 사지로 내몰았다. 어떻게 보면 김원섭씨는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타살'을 당한 셈이다.

독립영화계의 대부이자 정신적 지주로 불리는 '송환'의 김동원 감독이 이번에는 동사한 조선족의 흔적을 좇았다. 옴니버스 인권영화 '다섯개의 시선' 중 '종로, 겨울'을 연출한 우리의 어떤 시선이 조선족 동포를 동사하게 만들었는지, 왜 그는 죽어갈 수 밖에 없었는지, 짧지만 굵은 이야기를 풀어냈다.

김 감독은 "차별받는 사람들을 불쌍한 시선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차별하는 상황들을 스스로 인식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한번쯤 돌아보게끔 하고 싶었다"고 연출의도를 밝혔다.

다음은 29일 서울 신대방동에 위치한 푸른영상에서 김 감독과 나눈 일문일답.


-  이번 영화의 참여 제안은 언제 받았으며 중국동포에 대한 이야기를 찍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지난해 8월 인권위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제안을 받고 상계동 철거민(<상계동 올림픽>)이나 비전향장기수(<송환>) 뒷얘기 등 다른 것들도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전에 고 김원섭씨에 대한 이야기가 가슴에 맺혀 있었고 이를 풀고 싶었다.

또 조선족동포를 바라보거나 우리의 역사에 대한 시선 때문에 이 문제를 택했다. 우리는 만주 땅을 찾고 싶어 하면서도 그 땅에 있는 동포한테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또 이쪽 동포들은 다른 이주노동자보다 더 차별받는다. 재외동포법에서도 미국과 유럽과 같은 제1세계 동포보다 한국에서의 권리를 차별받고 있다. 이 문제를 물고 늘어지고 싶었다.
 
- 처음 고 김원섭씨에 대한 뉴스를 접하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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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2008.12.16 15:02 메종드 쭌/무비일락

복고가 ‘대세’긴 대세인가 보다. 제34회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의 포스터와 트레일러에는 1970년대 만화를 연상시키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촌스러운 그림체와 문어체 말투, 요란한 음악 등 이거이거 완연한 ‘복고풍’이다. 그러나 낡거나 후지지 않다. 되레 중독성이 있다. 보고 또 보고 싶어진다. 에너지도 충만해 뵌다. 대체 이게 무어란 말인가! 묘한 것은, 국가권력의 퇴행성(복고)과 맞물려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1970년대 무소불위식 권력이 횡행하던 시절, 그에 절망한 혹은 환멸을 극복하기 위한 불온한(!) 문화적 저항들이 있었다. 지금-여기의 국가권력과 현실을 살펴보라. 어쩐지,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혹시……?


서울독립영화제2008 ‘상상의 휘모리’
www.siff.or.kr/indexkr.php

그리하여 어찌 그 현장이 궁금하지 않을쏜가. 그래서 찾았다. ‘서울독립영화제2008’ 개막식. 11일 저녁 서울 명동 인디스페이스의 공간을 급습(?)했다. 자고로 불온함은 어둠 속에서 잉태하는 법. 행여나 국가권력에 치명적인 해를 가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 슬쩍 그들의 행적을 좇았다. 슬로건은 ‘상상의 휘모리’. 이런 역시나 복고. 아마 ‘상상력이 세상을 구원하리라’는 말을 하고팠나본데, 이건 68혁명 때도 이미 써먹은 수사가 아닌가. 그때도 누군가들은 상상을 통한 전복을 꿈꿨다. 도전과 반항, 불온함 가득한 상상을 휘몰아치면서 현실과 정면으로 맞섰던 그때. 이런 기시감이 있나. 40년 훌쩍 지난 동아시아에서 휘몰아치다니.

뭐 물론, 그저 흘려들어도 좋을 만큼의 농담이다. 화폐의 부작용이 커질 만큼 커져, 곪을 만큼 곪아, 금융위기라는 이름으로, 불황이라는 타이틀로 사람들의 목줄을 움켜쥔 이 시기. 도전과 가능성의 이름, 독립영화라고 그 파고를 맞닥뜨리지 않을 바는 아니다. 그렇지만 독립영화가 언제 꽃피는 봄날이었던 적이 있나. 뺄 기름기도, 감축해야 할 지방질도, 버려야 할 과소비도 없는 형편. 그래서 여느 때와 같이 올해도 그저 달린다. 늘 그 자리에서 우리를 반겨줬듯이. 그렇게 똑같이.

서울독립영화제2008은 12월 19일까지 계속된다

올해의 서독제에는 역대 최다인 623편이 공모한 결과, 경쟁부문에서 51편, 초청섹션에서는 35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특히, 국내 초청작 부문이 재밌다. 아니, 다시 열 받을지도 모르겠다. 바뀌지 않은 지금의 현실 때문에. ‘재밌거나, 열받거나’를 키워드로 한 9편의 ‘촛불영상’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여름을 밝힌 촛불정국의 기억을 다시 되새기면서 다시 우리에게 필요한 상상력을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 밖에도 독립영화감독들이 자원활동가로 활동하는 ‘일일 자원활동가’, 감독과 배우의 만남의 장을 마련한 ‘감독, 배우를 만나다’ 등의 행사가 있다. ‘Sex is cinema: 영화에서 성적 표현의 문제’ ‘거리의 촛불, 참여 미디어의 가능성’ 등의 세미나도 열린다.

개막식이 열리는 명동 인디스페이스

그렇다. 오늘, 명동이 빛나 보이는 이유가 있었다. 이런 서독제2008의 개막을 앞둔 설렘 때문이겠거니. 인디스페이스는 유난히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영화계 종사자는 물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북새통. 누군가는 오랜만에 만난 이와 반가이 인사하고, 다른 누군가는 영화로 담소에 빠져 있다. 영화제 자랑을 늘어놓으면서도 영화계를 걱정하는 소리도 있다. 모두들 휘몰아?는 서?제의 파고 앞에 뒤로 물러서지 않고 그냥 온몸으로 받아들일 자세다. 역시나 이날 개막식 티켓은 조기 매진됐단다.

그리고 예정된 7시가 넘어서도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고, 480석을 가득 메웠다. 밖은 춥지만 안은 후끈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조명이 꺼지고 스크린에 느닷없이 등장한 마루치와 아라치. 영화제 오프닝 영상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들, 고민 한번 깊다. “상상력이 문제였단 말인가!” 마루치가 ‘상상력 결핍증후군’이라는 신종병을 놓고 고민하는 사이, 각종 직업군의 사람들과 독립영화인들이 교차하면서 상상력을 이야기한다. 그렇다. 지금 필요한 건, 뭐?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강렬한 상상력의 휘몰아침. 환멸을 참고 견디기 위한 상상력의 힘. 불가해한 존재를 믿고, 요정을 불러내는 그런 상상력. <헬보이> 시리즈와 <판의 미로>의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일찍이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상상력과 희망으로 버티어낼 수 있었다. 나에게 상상은 도피가 아니다. 진실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 지금 우리에게 상상력이 필요한 이유.



‘장기하와 얼굴들’의 축하공연

그렇게 차츰 달아오르는 열기에 불을 붙인 인물은, 동방신기 제6의 멤버라는 소문이 도는, 인기가 차오르는 인디밴드 ‘장기하와 얼굴들’. 잠깐, 이들의 현재 인기가 어떤가 보자. YES24에선 동방신기, 빅뱅이 새 앨범을 냈을 때도 이에 꿀리지 않고 판매순위 3위를 하더니, 어느덧 지금은 2위다. 윤상에 이어. 아직 첫 앨범도 아닌 싱글인데 말이다. 이만하면 포크록밴드라는 정체성이 무색하게, ‘아이돌’ 아닌가! 장기하와 얼굴들을 좋아하는 팬들은 요즘, ‘장미중(장기하와 얼굴들에 미치고 중독된다)’를 외치고 있다는 믿거나말거나 후문.

서독제라고 다르지 않다. ‘장교주’를 연호하는 관객들의 환성이 그것을 증명한다. 무대에 올라 “아, 떨리는군요.”라는 말로 문을 연 장기하와 얼굴들은 인디끼리의 만남에 더욱 고무된 눈치다. 예의 어눌하고 어색한 말투로 할 말 다하는 캐릭터인 그들의 매력이 극장을 휘몰아쳤다. 무엇보다 압권은 쇄골 부근에 빨간 코사지로 장식한 장교주의 패션. ‘아무것도 없잖어’로 시작된 공연은 ‘말하러 가는 길’을 거쳐 인기절정의 ‘싸구려 커피’로 이어졌다. 관객들도 어깨가 들썩들썩. 그리고 올 것이 왔다. 호피무늬 원피스와 빨간 모자와 빨간 테 선글라스를 낀 ‘미미시스터즈’와 함께한 2부는 불온함으로 가득했다. ‘찌질’한 남성의 울부짖음을 담은 ‘나를 받아줘’에서 미미시스터즈는 담뱃불을 붙였고, ‘달이 차오른다, 가자’에서 그들은 팔을 허우적대며 달이 차오른다고 읊조렸다. 앵콜곡 ‘느리게 걷자’까지, 그들의 노래는 서독제와 궁합, ‘딱’이다. 한마디로, 휘몰아치는 상상력의 전조이자, 중독성 짙은 마력의 공연. 잠깐 엇나가자면, 그들의 레이블, ‘붕가붕가레코드’을 통한 장기하와 얼굴들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원한다면, 당신의 지갑을 열어라. 그들의 앨범을 사라.

사회자 권해효와 류시현

열띤 공연이 끝나고 등장한 개막 사회자는 올해도 어김없이 권해효, 류시현. 각각 8년째, 5년째 서독제의 사회를 맡고 있다는 그들은 만담 수준의 유려한 진행을 자랑했다. 10년 전 1998년의 국제통화기금(IMF) 시즌과 비교한 권해효는 화폐의 위기에 닥친 올해라고 힘 빠질 게 없단다. “언제 가진 게 있었어야지. 그러니 타격이 없어요.”라며 서독제의 굳건한 항해를 자축했다. 그리고 다른 10년을 축하했다. ‘한국독립영화협회’의, 독립영화배급사 ‘인디스토리’의, 영화제작사 ‘청년필름’의. 그리고 제안했다. 9일 동안의 신나는 축제를 즐겨줄 것을. 누구도 주인이 아닌, 관객과 감독이 주인 되는 축제를.

이어서 올해 서독제에 자신의 작품도 출품한 임창재 이사의 개막선언이 있었고, “영진위의 모든 사업은 독립영화를 위한 사업이며 독립영화의 든든한 후원자로 제 역할을 하겠다.”라고 다짐한 영화진흥위원장 강한섭의 축사가 있었다. 서독제 관련한 식구들(외빈)과 김조광수 심사위원장을 위시한 심사위원들에 대한 소개와 무엇보다 서독제의 든든한 주인공인 경쟁작과 초청작의 감독들이 인사를 나눴다. 오오, 놀라워라. 이토록 많은 감독들과 함께하는 자리라니. 감독(들)의 휘모리.

조영각 집행위원장

결코 빠질 수 없는 개막식의 후반부 하이라이트는 조영각 집행위원장이 장식했다. 처음으로 양복을 입고 나타났다는 그의 패션은, 결코 장기하에 뒤지지 않는 센스를 보여줬다! 빨간색 나비넥타이는 단연 압권. 관객들의 열광 섞인 환호성이 그의 새로운 패션에 대한 품평을 대신한다고나 할까. 조 위원장은 올 서독제가 특별히 준비한 2가지를 소개했다. 하나는, 상상마당, 미디액트와 함께 진행하는 제작지원사업. 에로티시즘을 주제로 옴니버스 단편 3편을 제작, 내년 서독제에서 선보이고 내후년에 개봉키로 했다. 세고 야한, 무엇보다 새로운 체위(!)를 개발한 영화들이 선보일 것이라는 조 위원장의 호언장담이 있으니, 내년을 기대해도 좋겠다. 나머지 하나는 지난 1999년에 가졌던 ‘감독, 배우를 만나다’를 이번에 다시 열어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영화관을 가득 메운 관계자와 관객들

마지막으로 개막작 <푸른 강은 흘러라>의 강미자 감독과 주연배우들의 인사가 있었다. 변화하는 중국 연변사회를 담은 새로운 청춘영화로 소개된 이 작품은 오랜 숙성을 거쳤다. 3년 전 프로듀서를 맡은 이지상 감독에 의해 기획된 <푸른 강은 흘러라>는 쉽지 않은 상황에서 마침내 완성돼 관객들과 만났다. 강 감독이 10년 전 단편 <현빈> 이후 만든 첫 장편인 이 영화. 연변 작가인 량춘식의 중편 『하류의 물살』과 단편 「푸른 강은 흘러라」, 김남현의 단편 「갈등-문제의 소녀」를 토대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무엇보다 힘겹게 영화를 완성한 강 감독의 말이 인상 깊다. “영화가 자기 생명력을 갖고 움직이고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3년 전 기획했는데, 아직 이 영화가 유효한 것으로 봐서, 세상에 나올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영화 상영. 영화는 뭐랄까. 참으로 푸르다. “푸르름은 낭만이야/푸르름은 광대무변이지/그것은 숙원의 약속이고/그것은 옥같은 고백이야”로 시작된 영화는 낯설면서도 청량한 감정을 불어넣는다. 숙이와 철이라는 70년대 풍의 주인공 이름부터 문어체의 연변말 대사들이 전자라면, 선생과 학생들, 친구들 간의 관계 속에서 엿보이는 건강함과 애틋함은 후자다. 이 영화를 보자니, 아직 가보지 못한, 두만강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곳에서 “푸른 강” 하고 외치고 싶었다. 누군가와 함께 간다면 두만강처럼 푸르게 살자는 약속이라도 덜컥 해버릴지도 모른다. 이런 청춘영화, 참으로 생소하지만 반갑다. 재개발된 청계천보다 아직 가보지 못한 두만강이 훨씬 낫다.

개막작 상영이 끝나고 인근에서 얼큰한 뒤풀이가 있었다. 곤드레만드레, 달짝지근, 그날 새벽녘의 명동은 분홍빛으로 물들었다는 후문이다. 기분 좋은 시작. 서독제는 그렇게 문을 열었다. 오는 19일까지 신나는 축제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신산하고 강퍅한 현실과 맞물려 거친 상상력이 휘몰아치는 서독제로 발걸음을 향하는 것도 좋겠다. 송년회 술자리 대신, 송년회 서독제는 어떤가. 알코올보다 더 황홀하고 짜릿한 상상력이 당신을 업!시킬 지도 모른다. 달이 차오른다, 가자. 잊지 마라. 달이 진 다음에는, 소용없다. 참, 이번 서독제2008에는 ‘아침에 주문하면, 저녁에 도착하는’(사회자 권해효의 코멘트다) YES24가 공식후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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