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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처럼 검은,

지옥처럼 뜨거운,

천사처럼 순수한,

사랑처럼 달콤한.

 

-샤를 모리스 드 탈레랑- 


계절이 흔들린다. 바람의 온기도 달라진다. 

9월은 그런 시기다. 

여름은 이미 숨이 꼴딱 넘어갔다. 아이스 커피도 살살 꽁무니를 뺀다. 

커피하우스를 찾는 손님들의 표정도 미세하게 달라진다. 본인들은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 계절, 작정하고 붙잡지 않으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는 바람이 되기 십상이다.

달라진 바람과 온도 차이에 마음 틈도 벌어진다. 

바람은 그 벌어진 틈으로 들어와 쉼표를 찍는다. 

가을은 그래서 마음이 쉬어야 한다. 끊임없는 변덕들 사이에서 쉬이 지치고 피로해지는 것이 이 계절이다. 그래서 커피를 마시러 오는 손님들의 표정이 달라진다.


9월이 특별한 이유, 있다. 

내 어느 9월에 틈입했던 추억의 편린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9월11일도 끼어있다.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세계가 품은 기억들 때문이기도 하겠다.

내 것은 아니지만, 혹은 우리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내 것이기도 하고, 우리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는 커피를 준비한다. 밤9시의 커피는 9.11을 그렇게 맞이한다. 


(1) 이 커피, 2001년의 그 시간을 위한 것이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인류의 영원한 트라우마로 남을, 2001년 9월11일.

 

그때 그 사건, 뒤늦게 깨달았다. 세계는 나와 상관 없는 일이 아니구나. 

저 멀리,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일도 내게 영향을 미칠 수 있구나. 

남의 일이라고 멀뚱하게 바라볼 일만은 아니구나. 

그제서야 어설프게나마 세계를 인지할 수 있었던 순간. 깨달음의 순간. 


그리고서야 어설프게 알았다. 사랑! 

마지막 순간, 우리가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사랑'밖에 없구나.

숨 쉬고 있다면, 사랑해야겠구나.

 

누구나 똑같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하루하루 죽어간다. 

그럼에도 '살아간다'고 말하는 순간에는 사랑이 전부로다! 

죽기 직전에 '사랑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역시나 뒤늦은 자각. 


9·11을 둘러싼 숱한 담론과 해석, 이야기가 있지만, 내가 9.11으로부터 받은 가장 큰 깨달음은 '사랑'이었다.

 

그리고 직간접으로 이를 다룬 다큐나 영화를 통해 9·11을 사유하는 편이었다. 


☞ <화씨 911> <루스 체인지> <플라이트 93> <레인 오버 미> <내 이름은 칸> 등이 그것이었다. 

 

그 가운데, 압권은 <레인 오버 미(Reign over me)>. 

 

같은 아픔을 공유해도 서로 할퀴고 후벼파기도 하는 것이 사람살이임을 엿봤고, 누구나 상처 입고 피 흘리는 절망적인 세상에서도 서로 삼투하면서 타인의 슬픔에 접근할 수 있음을 알았다. 


참고로 제목. 다시 말하자면, 직역은 '나를 지배해달라'이나, 영화를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 '내 곁에 있어 줘'라고 의역될 수 있음을. 



(2) 이 커피는 2001년 이전, 1973년의 그날을 위한 것이다.

  

9월11일이 품고 있는 이날의 슬픔.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한 사회주의 정권의 대통령이 된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가 죽은 날. 아옌데를 비롯한 사회주의자들과 인민들의 이상이 피노체트라는 개새끼 때문에 산산조각났던 그날.


당시, 아옌데가 집권한 칠레는 20세기의 '파리 코뮌'이었다. 

대기업의 국유화와 농지개혁의 촉진, 분배 위주의 경제정책 등 '노동자 인민을 위한 나라'였다. 


그걸 증명하듯, <살바도르 아옌데>라는 다큐 속, 한 노인은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정말 위대한 유토피아를 위한 꿈이었다." 

 


그러나 '인민들을 위한 나라'를 용납할 수 없었던 치사하고 속 좁은 미국, 농간을 부렸다. 칠레 경제의 핵이었던 구리의 국제가격을 떨어트리는 등 인플레와 생필품 부족을 유발했고, 피노체트라는 유치찌질한 하수인을 전면에 내세워 반동쿠데타를 일으켰다.


쿠데타군 앞에 포위 당한 아옌데, 피델(카스트로)이 준 소총으로 죽음을 택한다. 

투항도, 망명도, 애원도 않는다. 

"칠레 만세, 인민 만세, 노동자 만세"라고 외치며 장렬한 산화. 


9월11일, 1973년의 9·11. 

물론 비극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인민가수 빅토르 하라가 16일, 인민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23일에 피노체트 하의 칠레를 거부했다. 칠레의 비극에 방점을 찍었다.


그 어느해 9월, 내가 꼭 칠레에 발 딛고 싶은 이유다.

9월의 어느날, 핏빛으로 꺾인 사회주의 혁명을 기억하며 칠레산 레드와인을 마시는 이유.

1970년 아옌데의 인민연합 대통령후보 캠페인송이었던 빅토르 하라의 '벤 세레모스(Venceremos·우린 승리하리라)'를 들으며, 파블로 네루다의 詩를 꿍얼꿍얼 읊조리면서. 아직 맛보지 못한 칠레 커피도 함께. 

아마도, 메이비가 아닌 프로바블리, 살아선 경험하지 못할, 혁명의 순간을 그리면서.

 

 

앞서 언급한 <살바도르 아옌데> 외에도 이런 영화와 책이 있다. 

밤9시의 커피가 구비하고 있는 친구들. :) 

 

☞ <칠레전투:비무장 민중의 투쟁> 3부작. 인민의 희망과 좌절, 그 기록. 참으로 먹먹하다.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는 그 비극의 9·11을 재현한다. 

<일 포스티노>(파블로 네루다) <평화 속에 살 권리>(빅토르 하라) <영혼의 집>(아옌데의 조카가 쓴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로 여성들의 삶을 통해 칠레의 역사를 보는)

 

책을 꼽자면,  

[빅토르 하라] 

[기억하라, 우리가 이곳에 있음을]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 



(3) 그렇다면 비극만 있었느냐? NO! 

1973년 이전, 1906년의 9·11. 그러니까 100년하고도 6년 전.


20세기 들어 최초의 9·11은, 평화의 기념일이었다. 

스와라지(자치)를 통해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고 말씀해주신 간디는 이날, 

남아공에서 인도 노동자 3000여명과 함께 '비폭력 불복종운동(사티아그라하)'을 펼쳤다.


변호사였던 간디, 소송사건을 맡아 남아공으로 갔다.

인도인, 황색인이라는 이유로 차별 당했다. 

기차 1등석을 샀으나 3등석으로 가라는 승무원의 요구.


간디, 간지나게 버텼으나 쫓겨났다. 

이유? 남아공의 그 유명한 아파르트헤이트(흑백인종분리)정책 때문이었다. 

굴욕 당한 간디, 깃발을 들었다. 굴욕에 저항하기 위한 3000여명과 함께 유색인의 지문을 날인하도록 하는 법안에 반대하는 의미로 신분증을 불태웠다. 자유를 위한 것이었다.  


간디의 그 유명한 비폭력 불복종운동의 시초.

이 운동, 1960년대 마틴 루터 킹의 흑인인권운동과 아파르트헤이트 철폐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을 현대음악가 필립 글래스가 재현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공연실황을 담은 영화 <사티아그라하>도 있다. 



한편으로 재밌는 역사. 

물론 의도한 바는 아니겠으나,

차별에 저항하는 평화운동이 일어난 날(1906년)과

미국의 폭력적 패권주의를 깨우는 계기가 된 날(2001년)이 같다는 것. 


4. 여기에 이젠 또 하나의 9·11이 덧붙여진다. 2012년 9월11일.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의 공식적인 개소를 알렸다. 


이것은 그러니까, 9·11의 '네 가지' 의미.  


밤9시의 커피는 네 가지 커피 메뉴를 준비했다. 

각각이 지닌 역사와 의미를 버무리고 블렌딩하여, 맛과 향을 낸.

BGM으로는 '벤 세레모스(Venceremos·우린 승리하리라)'를 깔았다.


밤9시의 커피를 찾은 당신을 위해 준비했다. 

9월11일의 메뉴 중 당신은 무엇을 고르겠는가? 

그리고 그것을 통해 당신의 마음과 이야기를 듣는다. 밤9시의 커피다.  

 

1. 레인 오버 미

2. 칠레의 눈물 

3. 사티아그라하

4. 부엔 카미노(Buen camino·당신의 앞날에 행운이 가득하기를)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너는 태어나고, 나는 죽고.
너는 죽고, 나는 태어나고.

시인들은 아마 그렇게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9월23일에는.

두 시인, 무슨 상관이 있을까마는, 고개를 갸웃할지 몰라도,
두 시인,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고, 지구 정반대편에서 활동했다.
한 시인은 요절했고, 다른 시인은 사회주의 혁명의 좌절에 생의 끈을 놓아버렸다.

두 시인, 본명 아닌 필명을 썼고,
다른 누군가가 대신할 수 없는 천재였으며,
뭣보다 시대적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시대의 혈서를 썼다.
식민지 제국주의자들에게 가장 위험한 무기, 詩를 가졌던 사람들.


이만하면 알겠지?
 

태어났던 시인은 김해경이라는 본명을 가진,
'이상'(
李箱, 1910.9.23∼1937.4.17).
죽었던 시인은,
리카르도 네트탈리 레예스 바소알토라는 본명을 가진,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1904.7.12~1973.9.23).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이상의 탄생 100주년이다.
그가 시대와 불화하고 거동이 수상할 수밖에 없었던 건,
어쩌면 그가 태어났던 해와 깊은 연관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일강제병합, 1910년 8월22일, 그가 태어나기 한 달 전 맺어진 조약.
그는 어머니 뱃속부터 분노를 전달받아 현실에서 어떻게 표출할지 연구했다,
고 나는 상상해 본다. 이상이 천재시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식민지 현실에서 환멸과 저항을 에둘러 실험적으로 다뤘던,
가장 보통의 사람들로선 선뜻 이해하기 힘들었던,
이상의 전위적이고도 실험적인 파격.

고 김현 문학평론가는, 시인 이상에 대해,
"폐쇄주의적 비관주의의 시각에서 식민지 현실에 비순응한 대표적인 작가"라며,
"인간에 대해 기본적으로 신뢰감을 갖고 있지 아니하면서도 그가 인간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율배반적인 세계인식 위에서 세계와 현실, 자아를 바라본 작가"라고 평했다.

그리하여,
스물 일곱, 그 요절은 아이러니하다.
그 자신의 미래를 혹독하게 거세당한 대신,
무수한 가능성으로 점철된 가상의 미래를 후세에 안겨주니까.


스물 일곱에 죽어도, 한 사회가 탄생 100주년을 기릴 수 있다는 건,
그가 생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 아닐까.
('스물 일곱'은 요절한 천재들의 '상징' 같다! 희한!!)
지금 서울 혜화동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는,
이상 탄생100주년 기념전시가 열리고 있다.
'木3氏의出發 '(이씨의 출발)
(이상의 詩, '차8씨의 출발(且8氏의 出發)'에서 따왔단다.)

이상의 활동기간이 7년 남짓에 지나지 않았다면,
파블로 네루다는 달랐다. 그는 70여년을 살았고, 활동기간만 50년 이상이다.

어쩌다 보니,
이달 들어 11일부터 '칠레 3부작'(?)을 포스팅한 셈이 됐는데,
그 마지막 완결편, 혁명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 편.
파블로 네루다, 그리고 <일 포스티노>

파블로 네루다, 당신도 잘 알고 있을 테니,
굳이 구구절절 썰을 풀어놓을 필욘 없을 테고,
1973년 9월23일, 그의 마지막 순간 무렵에 집중해보자.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의 생이 힘을 잃은 결정적 계기는,
죽기 열이틀 전에 겪은, 살바도르 아옌데 칠레 대통령의 죽음이었다.

평생을 공산주의자로 살았던 네루다에게,
아옌데는 정치적 동지이자 칠레의 희망이었다.
"사람에게 어떤 딱지도 붙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던,
 네루다의 희망, 곧 칠레의 희망을 실현해 줄 수 있었던 사람.

그런 사람이 죽었다.
희망을 잃은 땅에서 늙은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아아, 어쩌란 말이냐.

두 사람이 상호간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일화 한 토막. 다큐 <피노체트 재판>에 나온 내용이란다.
피노체트 기소를 생각해낸 카스트레사나 검사에게 사람들, 물었다.
"왜 그런 귀찮은 일을 떠맡으려 하는가?"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 독재를 피해 50만명의 스페인 사람들이 국외로 탈출했습니다. 그때 칠레의 주스페인 영사가 배를 한 척 내주면서 "이 배에 태울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영사가 바로 파블로 네루다였습니다. 그는 연대의 표시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하지만 영사가 그렇게 한다고 해도 칠레 당국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었죠. 그때 칠레의 보건장관이 그들을 모두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가 누군지 아십니까? 바로 살바도르 아옌데였습니다."

또한 파블로 네루다는 아옌데와 그의 죽음에 대해 이리 묘사했다.

아옌데는 탁월한 연설가는 아니었다. 지도자로서 그는 가능한 모든 통로를 통해 자문을 얻는 통치자였다.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독단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처리했다. 아옌데 시대의 민중은 발마세다 시대처럼 어수룩하지 않았다. 문제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 있는 강력한 노동자 계급이 존재했다. 아옌데는 집단적인 지도자였다. 아옌데는 민중 계급 출신은 아니지만 부패하고 정체된 착취 계급에 대한 투쟁의 산물이었다.(…) 저들은 살해 행위를 은폐하고 비밀리에 매장했다. 미망인만이 불멸의 육신을 동행할 수 있었다. 공격자들의 말로는, 대통령 궁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으며, 자살의 흔적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외국 언론의 견해는 다르다. 공중 폭격 직후, 수많은 탱크들이 작전에 돌입했다. 단 한 사람, 칠레공화국의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를 노린 대담한 작전이었다. 아옌데는 불꽃과 연기로 뒤덮인 집무실에서 혼자 당당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저들은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절대 사임하지 않을 것이기에 기관총을 난사해야 했다. 시신은 어떤 곳인지는 모르겠으나 비밀리에 매장했다. 무덤까지 가는 길에 동행한 사람은 오직 한 여인, 전세계인의 애도를 한몸에 안은 여인이었다. 시신은 칠레 군인들이 난사한 기관총에 맞아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저들은 또다시 칠레를 배신했다.
-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 (파블로 네루다 지음/박병규 옮김|민음사 펴냄) -


더구나, 네루다는 칠레 그 자체였던 사람이다.
'스무 편의 사랑의 시'를 읊던 사랑의 시인이기도 했지만,
당대 칠레의 운명과 끊임없이 싸우면서 칠레를 인민의 세상으로 바꾸고자 했다.

혁명의 시인은 이리 말했다.
"성숙한 작가는 인간적 동료의식, 사회의식 없이는 아무런 글도 쓸 수 없다."

아울러, 그 시인이
"
리얼리스트가 아닌 시인은 죽은 시인이다.
그러나 리얼리스트에 불과한 시인도 죽은 시인이다."라고 말한 것은,
숙명이다. 혁명적 시인은 그렇게 영원히 살 것을 다짐했다.
(
20세기의 가장 완벽한 인간, 체 게바라가 필서까지하면서 죽기 순간까지도 품고 있던 것이,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이라는 사실은 당연해 뵌다. 그리고 다시 해석되고 이해되는 이 말.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사랑의 언어로 토해내던 네루다의 시가,
서정과 낭만에서 출발했던 네루다의 시가,
사회와 현실을 담고 시대와 민중을 품었다.
그의 시는 그렇게 변화했고 비로소 완성됐다.

그러나,
미국의 하수인 피노체트가 벌인 쿠데타는 '한 편의 절망의 노래'!.
고독에서 인민으로 방향을 전환했던 혁명 시인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내 보잘 것 없는 시는 인민에게 칼이 되고 손수건이 되어,
무거운 고통으로 흘린 땀을 닦아주고 빵을 위한 투쟁의 무기가 되기를 열망한다"고 읊던, '리얼리즘 그 너머를 꿈꾸던 리얼리스트'는 詩를 남긴 채 눈을 감았다.
 


사랑하고 노래하던 시인의 종점은 투쟁이었다.
얼마 전, 껌정드레스님을 통해 알게 된 다큐멘터리,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
Il pleut sur Santiago)에 네루다의 장례식이 나온다.
쿠데타에 대한 인민들의 분노는 칠레 최초의 집회이자 시위로 분출됐다.
칠레가 울었고, 칠레는 멈췄다.


9월의 칠레, 파블로 네루다를 떠올라 치면,
그의 시를 마음에 꾹꾹 눌러 담아 놓자면,
남미의 붉은 태양처럼 살고 싶어진다는 누군가의 말이 딱 떠오른다.

9월23일,
이상은 태어났고,
네루다는 죽었다.

이상은, "멜론이 먹고 싶다"고 말한 뒤 숨을 거뒀고,
네루다는, "나, 간다"고 마지막 말을 남기고 떠났다.

시대를 품고 태어나,
시대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어 문학으로, 문학보다 더 절박한 현실에서 투쟁하던,
두 시인이 있었다.

그러니까, 이런 것. "작가(시인)를 찾습니다."
절묘하게 교차한 두 시인의 생사에 상상력을 덧입혀,
우리의 리얼리즘과 그 너머의 리얼리스트가 지닌 꿈을 자극할,
그런 이야기를 술술 풀어줄 작가, 어디 없수?~

나도,
사람에게 어떤 딱지도 붙지 않는 그런 세상에 살고 싶어서.
풍요함 따윈 약속하지 않고, 존엄성과 진정한 자유에의 희망을 약속하는, 세상.

애초 뉘들에게 어떤 철학조차 없는 '부강한 나라' 따윈 필요없어!
언제 어느때, 칠레를 배신한 그들마냥, 한국을 배신할지도 모를 뉘들이니까.




어쨌거나 한가위.
서울 돌아오니, 피 비해부터 물어보고,
어떨결에 피해를 당한 사람들에게 눈길을 돌려야 할 시절이지만,

보름달 보자니, 내 마음속 가장 서정과 낭만으로 분칠된 그해 한가위가 두둥실!
여러 사람 앞에서 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지만, 내겐 그녀밖에 보이지 않았다.
음식을 나눠먹고 있었지만, 내겐 오로지 그녀의 입만 보였던 그 어느해 한가위.


"마음을 다해 사랑했다면, 결국 그 사람 앞에 서게 됩니다."
아무렴. 누군가는 휘영청 보름달을 품고서, 이 말이 이뤄지길 소원을 빌었겠지.
그의, 그녀의, 그 소원이 이뤄지는 경이로운 순간이, 그 시간이 찾아오길.
비록 그를, 그녀를 모르고 알 수 없는 사이지만, 나는 바란다.
때론 누군가에게 저 말은, 거짓임을 알지만,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는 것.
그건 계속돼야 하니까.
 안녕, 내 사랑.


“나는 안다. 이 경이로운 순간은 현실의 수레바퀴에 닳아 금세 사라져버리고 앞으로 고독한 밤들이 찾아올 거라는 걸. 하지만 또 시간이 지나면 고독한 밤들을 채워주는 경이로운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그 어느해 9월16일.
우리의 '소셜 카페(Social Cafe)'에는,
'소셜 커피(Social Coffee)'와 함께, 이 노래들이 울려퍼지리라.
물론, 나는 DJing(디제잉)을 할테다! "오늘은 왠지~~~" (손발 오그라들어도 꾹!)


1.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

천상의 디바, 오페라의 여신.
헤밍웨이는 그녀를 두고, "황금빛 목소리를 가진 태풍"이라 불렀다.

1977년 9월16일, 더 이상 그녀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오늘, 33주기. 그 목소리를 듣는다.
스피커가 후져서 아쉽다.
 
지금 나오는 곡은, 맞다. 그렇다.
덴젤 워싱턴, 탐 행크스 나온 <필라델피아>에서 주인공의 감정을 훅 끌어올리는,
지오르다노의 오페라 [안드레아 쉐니에] 중 'La mamma morta(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천상의 목소리와 천하의 속물 사이,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


2.
빅토르 하라(Victor Lidio Jara Martinez).

기타와 노래로 쿠데다와 불의에 저항한 칠레의 가수.
사회주의 정권을 세운 아옌데 대통령의 지지자였다.
반란 허수아비 피노체트군에 의해 노래를 멈췄다.

1973년 9월16일, 아옌데 대통령이 죽은지 불과 5일 후였다.
지난해, 사후 36년 만에 부검을 했다. 30발 이상의 총격을 받았다.
그리고 산티아고 묘역에 재안장됐다. 수천 명의 칠레인이 함께 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음악 뿐 아니라 연극 연출가로도 두각을 나타냈다.
모든 사람은 자유와 평등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이상을, 그는 노래에 담았다.
칠레 공산당에서 활동하면서 칠레뿐 아닌 라틴아메리카를 돌며 자유를 노래했다.

그의 노래는,
인민의 삶을 달래주고 사회에 적극 참여, 변혁을 추동하는 에너지를 품었다.
'Te recuerdo Amanda(당신을 회상합니다, 아만다여)',
'Cancion del arbol del olvido(망각수의 노래)',
'일하러 나갈 때', '선언' 등도 좋지만,
뭐니뭐니해도, 벤세레모스(
Venceremos·우리 승리하리라)!

책, 2년 전 개정판으로 나온
《빅토르 하라》.
과거에는 《끝나지 않은 노래》로 나왔다지?
빅토르 하라의 부인이자 무용가인,
조안 하라(Joan Jara)의 비망록.
그들의 뜨거웠던 사랑,
칠레(인)와 자유·평등을 향한 열정. 핫, 뜨거뜨거!


커피는 따뜻하고, 음악은 뜨겁다.
펼쳐든 책은,
《빅토르 하라》 혹은 마리아 칼라스.
영상을 튼다면, <칠레 전투> 혹은 <칼라스 포에버>.
                                아, 행복하다. '소셜 카페'로 오세요. :)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그는 시인이다.
(콜롬비아의 대문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그를 어떤 언어로 보나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다"라고 했다.)
그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다.(1971년)
그는 공산주의자다.
그는 좌파다.
그는 정치인이다.
그는 외교관이다.
그는 혁명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사랑을 알았던 사람이다.
인류에 대한 사랑보다 더 힘든, 인간에 대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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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내가 아는, 그다. 파블로 네루다(1904.7.12~1973.9.23).
오늘은 그가 떠난지 35년이 되는 날.
그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렇다.
그를 통해 나는 칠레의 굴곡진 역사를 조금이나마 알았다.
그래서, 그는 내게 세계를 넓혀준 사람이다.
칠레의 9월은 혁명의 스러짐을 맛봤다.
살바도르 아옌데도, 빅토르 하라도 1973년 9월에 스러졌다.
칠레의 혁명은 그렇게 미완성인 채로 피를 흘렸다.
피노체트, 그 뒤의 미국이 칠레의 혁명을 일그러뜨렸다.
그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뜬 것은,
아마도 피노체트의 쿠데타 때문이었을 것이다.
네루다의 장례식 공개거행을 피노체트는 막았지만,
칠레인들은 그럼에도 군사독재정권 최초의 항거를 하며,
그의 떠나는 길을 밝혔다고 한다.

혁명은 때론 그런 것이다. 김수영(푸른 하늘을)이 그리 말했듯.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나는 오늘, 그를 생각하며 칠레도 떠올린다.
언젠가, 나는 칠레를 찾아,
파블로 네루다의, 살바도르 아옌데의, 빅토르 하라의, 흔적을 만나고 싶다.

오늘, 파블로 네루다를 생각한다.

나는 생각한다 (파블로 네루다)

나는 생각한다 키스와 침대
빵을 나누는 사랑을

영원한 것이기도 하고
덧없는 것이기도 한 사랑을

다시금 사랑하기 위하여
자유를 원하는 사랑을
찾아오는 멋진 사랑을
떠나가는 멋진 사랑을

그리하여, 나는 모든 이를 위해 노래한 그를, 또 생각한다.

모든 이를 위하여 (파블로 네루다)

내가 그대에게 말해야 할 걸
문득 말할 수 없을 따름이다,
친구여 용서해다오; 그대는 안다

그대가 내 말을 듣지 못할지라도
내가 잠들었거나 눈물 속에 있지 않앗다는 것을,
오랫동안 그대를 보지 못했어도 나는
그대와 함께 있고 또 끝까지 그러리라는 것을.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걸 나는 안다.
"파블로는 뭘 하지?" 나는 여기 있다.
그대가 이 거리에서 나를 찾는다면
그대는 내가 바이올린을 갖고 있는 걸 알 것이다,
노래를 시작할 준비가 되어,
죽을 준비가 되어.

내가 이 사람들이나 그대에게가 아니라
다른 누구를 향해 떠나야 한다는 건 별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대는 잘 들을 것이다, 빗속에서,
들을 것이다,
내가 오가며 떠도는 것을.

그리고 그대는 내가 떠나야 한다는 걸 안다.
내 말이 그걸 모른다고 해도
확언하건대, 나는 떠난 사람이다.
끝나지 않는 침묵은 없다.
그때가 되면, 나를 기다려다오,
그리고 내가 내 바이올린을 가지고
거리에 도착하고 있음을 알려다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영화 <일 포스티노>도 권한다.
파블로 네루다, 그리고 <일 포스티노>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