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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머리 여성은 정이현을 만나서 정말 좋았을거다'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0.03.24 누군가를 알기 위해,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그러니까, 내겐 세 번째 정이현.

통돌이 세탁기 질문을 던졌던 <사랑니> 재상영회,

2007년과 작별을 공유했던 시간,

그리고 이번 세 번째는, 낭독회라는 타이틀.


물론, 서로 아는 사이? 당근 아니지.

나만 알고 있는 사이. 당연히 '너는 모른다'.


독자만남에 온 사람 대부분을 희한하게 기억한다고 정이현은 말했지만,

그것도 사람 나름이지. 지극히 평범한 아주 보통의 존재는 때론 모르는게 편하다.


정이현을 무척 꽤나 아주 많이 좋아해서,

이 자리에 우겨서 왔다는 한 사자머리를 한 여성이 있었다.

(멋있었다. 내 눈엔!)

그날 알코올에 잠식당한 것 같았음에도,

오매불망 정이현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낭독회를 듣고,

글에는 쓰지 않은 아주 재미있는 질문으로 함께 한 우릴 웃겨주기도 했는데.


그런 그녀가 사인을 받을 찰나 내 앞에 서서,

혼자 왔냐고 물어 끄덕끄덕 거렸더니,

정이현 작가와 사진을 찍어달라면서 우리 친구 하잖다.

누구라도 끄덕끄덕 할 수밖에 없는 상황.

우리는 서로 모르지만.


하지만, 사진기는 고장이 났는지, 내 손에서 작동을 하지 않았고,

그녀에게 사진기를 다시 돌려주며 사인을 받은 나는 자리를 휙 떳다.

나중에 들은 후문으로,

그녀는 정이현과 함께 있다는 것에 감격해서인지, 펑펑 울었단다.


정이현이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모르겠으나, (아마 당혹스러웠겠지)

글의 완성도나 미학에 상관없이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가진 작가는,

한편으로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낭독회 끝난 뒤 만난 하얀 복실이가 보고 싶다.

홍대부근에 가거든 잘 있는지, 살펴봐야겠다.

아래는, 그 낭독회의 기록.

=====================


누군가를 알기 위해,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너는 모른다』 정이현 작가와 함께하는 낭독의 시간


얼마 전 날아온, 메일 한 통. 니가 좋아하던, 존 스타인벡(『분노의 포도』 『에덴의 동쪽』등)이 했다는 말이 적혀 있었어. “타인을 정말로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기껏해야 그들이 자신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사람을 알기까지」중에서) 아, 그 말을 입으로 곱씹는 순간, 삐뽀삐뽀, 머릿속엔 경광등이 켜졌다. 니가 갑자기 휘발됐거든. 니가 떠오르질 않았어. 고작 아는 건, 니 이름, 희미한 생김새, 하는 일과 같은 겉모습뿐. 니 마음, 니 속살은 어디에도 없는, 텅 빈 내 마음.


이런, 당황스러웠어. 물론 너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어. 넌 그저 나와 ‘다른’ 사람이었을 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한때의 착각. 내가 너이고, 네가 나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었던 우리들의 시절. 안다. 모른다. 그 쉬이 건너기 힘든 강. 어쩌면, 내게 넌 아는 여자, 나는 네게 그저 아는 남자였을지도. 우린 서로를 통해 자신을 투영하고 있었을 뿐인지도 모르겠어.


뜬금없지만, 나는 다른 사람이 누군가를 ‘착하다’고 하는 말을, 늘 의심해. ‘내 친구, 착해’라는 흔한 말. 대체 뭐가 착하다는 거지? 그 착하단 말, 어떤 의미를 품고 있는 거지? 내게 피해를 주지 않는? 그저 세상에 맥없이 순응하기만 하는? 나는 네가 착하다고 생각한 적, 단 한 번도 없었어. 다른 누군가에게 널 말할 때도 그렇게 얘기한 적도 없지. 타인을 얼마나 잘 알기에 착하다는 말을 그렇게 쉽게 꺼내는 걸까. 다들 주변엔 착한 사람만 있다는데, 세상은 왜 이 꼬라지지? 아직, 나는 궁금해.

 

이 글을 봤어. “착하다는 말 속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포함돼 있을 것이다. 그 애들은 하나 같이, 타인에 대해 티끌만한 악의조차 없어 뵈는 혈색 좋고 허여멀끔한 인상을 하고 있었다.”(p.181) 존 스타인벡의 그 말을 접할 즈음, 『너는 모른다』(정이현 지음|문학동네 펴냄)를 쥐고 있었지.


음, 뭐랄까. 책장을 넘기며, 좀 생뚱맞은 경험을 했어. 책을 쥔 내내, 실종된 열한 살 소녀, 유지의 행방이 궁금해 미치겠는 거야. 왜 못 찾느냐가 아닌, 유지는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소설 등장인물이라도 되고 싶었어. 유질 찾고 싶었거든. 유지야, 어디 있는 거니. 아무도 모른다는 그것이 유지를 어떻게든 찾아야 한다는 마음을 유도했을까.


가족(이라고 쓰고, 타인이라고 읽는다)이 할 수 있는 일, 거의 없었어. 어떻게든 유지의 부모인 김상호․진옥영 부부, 남매인 은성과 혜성은 정신줄을 놓고 있을 뿐이었지. 유지와 어떤 관계든 맺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밍, 사설탐정 노릇을 하는 문영광도 속수무책. 그야말로, 아무도 모른다. 아마 그들도 유지가 자신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었겠지.


유지. 열한 살(을 나는 잘 모르지만)이 가졌으리라곤 생각할 수 없는 사유를 일삼는 소녀. 어쩌면, 나는 그 소녈 통해 널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몰랐을지 모를 너를. 한때 너만을 사랑하고, 나만이 널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던 오만도 자꾸만 밟히고...


“사람을 찾습니다.” 그 말이 떠올랐어. 최근에 읽은 어떤 소설들의 겹침. 역시나 실종된 가족(엄마)을 찾아 나선,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 그들 역시 엄마를 몰랐어. 잃고 나서야 그들은 엄마의 속사정을 하나 둘 알게 됐고, 생각을 하게 되지. ‘(가족의 일원이었던) 사람을 찾’는 소설들이 연이어 주목을 받는 것엔, 어떤 시대적 징후가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 아마 내가 아는 너라면, 어떤 답이든 줬을지도 모르겠어. 또 하나, 김연수 작가의 중단편을 모은 『세계의 끝 여자친구』. 누군가를 온전하게 알거나 이해할 수 없더라도, 그 노력을 중단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 내 안팎에서 사람을 찾는 노력 같은 거. 


응, 그래. 너에게, 때늦었지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지난달 28일, 상수 이리카페. ‘정이현 작가와 함께하는 낭독의 시간’에 귀와 마음을 열었던 시간. 너에게, 내 흔적을 꾹꾹 눌러 담는다. 『너는 모른다』에, 혹은 정이현에, 마음을 둔 사람들이 함께 한 공간. 아무도 몰랐지만, 아마도 비슷한 마음을 품고 있었을 사람들과 함께 한 시간. 유지의 행방을 알았기에, 나는 다소 홀가분했고, 유지를 비롯한 그 가족들, 분명히 예전과 다른 시간을 살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 남의 고통과 마음에 좀 더 들어가 있으리란 예감. 다른 이의 고통에 늘 민감했고, 그것을 들여다보면서 성찰하고 스스로를 그 속에 내던졌던 너. 그래, 그런 니가 이 얘기도, 들어줬으면 좋겠어.



(※ 스포일러로 간주될만한 이야기가 있으니, 책을 읽지 않은 분들은 조심하시길.)


그들을 알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


정이현 작가의 입에선 은성의 이야기부터 흘러 나왔어. 동생인 혜성의 탄생 비화(?)부터 자신이 ‘이 푸르스름한 스노볼 같은 지구에 잘못 떨어진 이유’까지. “태어나게 해 줘서 고맙습니다”라는, 부모에게 건네는 흔한 말과 달리, “날 왜 낳은 거냐”며 분노와 체념이 뒤섞인 은성의 이야기. “어떤 생명이 전적으로 또다른 생명을 위하여 태어나기도 한다는 사실에 그녀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나를 위해, 나를 고독하지 않도록 할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아기! 그것이 동생 혜성이었다. 스스로 간절히 원해서 태어난 아기는 없다.… 그러면 이 푸르스름한 스노볼 같은 지구에 잘못 떨어진 이유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텐데.”(pp.32~35)


작가는 이렇게 은성을 얘기해. “은성이, 특이하다는 말씀 많이 하세요. 경계성 인격장애로 설정했는데, 병명은 명명하기 나름인 것 같아요. 사실 은성은 굉장히 외로운 사람이고, 안으로 삭히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표출하는 사람이죠. 나름의 방식으로 절규하지만 대상을 못 찾고 자신의 말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아픈 경험을 하는 사람이거든요. 은성이라는 인물에게 애정이 많이 갔어요. 다른 인물 다 사랑하지만, 은성에게도 많은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미친년.’ 은성이에게 붙여진 별명 같은 거였다지. 글쎄, 나로선 연민이 많이 갔던 인물이라, 그렇게 부르고 싶진 않고. 어떻게든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하고픈 은성의 안간힘이 애처로웠달까. 마음으로 울고 있는 그녀를 누구든 제대로 달래주거나 토닥여주고 안아줬더라면, 아마 그녀는 달라졌을지도 모르는데...


이번에는 밍의 이야기. 어디에도 없는 남자. 스스로,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내뱉어야만 했던 남자. 가족이라는 틀에 비집고 들어갈 수 없었던 남자. “"잘 있었어?"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때 몹시 비겁했던 적이 있다. 돌아보면 지금껏 비겁하기만 했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아무것도 망가뜨리지 않을 수 있다고 믿었다.… 숭숭 뚫린 빈칸을 이제 와서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그것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다음날 아침, 밍은 타이베이 발 서울 행 첫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pp.198~200)


이 대목은 그러네.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을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주저하다가 이 부분을 꼽을 만큼 기억에 남는 장면이에요. 쓰고 있을 때 환경도 그랬고, 일일 연재를 했기 때문에, 소설로 기억되는 게 아니고 상황으로 기억나거든요. 10월의 비오는 날, 술을 먹고 들어와서 마감은 급한데 썼다거나 굉장히 심한 감기에 들어온 날인데, 약속도 취소하고 썼다는 등으로. 그렇게 제 시간들이 녹아서 들어있는 느낌이고, 이 부분도 오래 기억이 될 부분이에요. 밍이 숭숭 뚫린 빈칸 같다고 생각할 때, 아마도 제 자신이 그러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기억에 남는 거 같아요. 다른 분이 낭독하는 걸 들으니 좋네요.”


사진제공 :


숭숭 뚫린 부분. 그래, 누군들 그렇게 제 삶에 숭숭 뚫린 부분들이 없을까. 더 이상 무엇으로도 메우지 못한 채 박제된 빈칸. 나는 그 부분을 메운다는 것을 믿지 않아. 빈칸에 완벽하게 들어맞을 점토 같은 건 없어. 작가도 그런 말을 던져. “숭숭 뚫린 부분이 채워졌나요?” “채운 듯하다가 전혀 다른데 뚫려있고 그래요.” 더 이상 캐묻지 않는 것이 예의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각자의 짐작으로 의문의 빈칸을 메울 뿐. 밍에 대한 각자의 시선이 그러하듯 말이야. 내겐 가장 가슴 아렸던, ‘아무도 모르는’ 이 남자.


여하튼 그 남자도, 스무 살 사랑이 있었어. 그 이후 이십여 년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해야 했던. 유지의 엄마, 옥영. 두 사람이 스무 살, 처음 만났었던 시절이 쓰고 달콤함이 공존하는 에스프레소 커피 향처럼 퍼진다. “한 사람의 내부는 몇 개의 공간들로 이루어져 있을까.… 지금 막 비밀스런 가정사를 고백한 어린 연인의 눈동자에 눈물방울 같은 건 맺혀 있지 않았다. 옥영은 밍의 손등 위에 손바닥을 가만히 포갰다. 따뜻했다. 이 손을 잡고서라면 어디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언제까지라도. 인생에는 한들한들 부는 산들바람에 몸뚱이를 맡겨도 되는 시간이 있다.… 그렇게 규정해야 안심하는 자신이 참 비겁하다고도 생각한다.”(pp.53~55)


그들에겐, 다신 돌아갈 수 없는 추억. ‘우리들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시절이겠지. “인생에는 한들한들 부는 산들바람에 몸뚱이를 맡겨도 되는 시간이 있다”라는 말. 정말 그랬던 시간이 떠올랐어. 너를 처음 만난 그땐, 정말 그랬으니까. 그 가을날의 산들바람이 내게, 그렇게 속삭였으니까. 몸뚱이를 맡길 수밖에 없었고, 마음까지 홀라당 맡겼던 내 스무 살 무렵도 갑자기 두둥실 떠오르기도 하더라. 


정이현도 꽤나 이 부분을 좋아한대. “옥영과 밍은 스무 살 대학동창으로 만나서 이십여 년 동안 헤어졌다 만났다를 반복해요. 연인이라고도 할 수 없고 굉장히 긴 인연을 맺어가는 사이인데, 스무 살 연인으로 만났을 때 부분이죠. 좋아하는 부분이라서 읽었고요. 이 얘길 쓸 때 취재차 대만 타이베이에 갔었거든요. 3월경이었는데, 기온은 높은데, 바람이 많이 불고 습하고 추위가 느껴졌어요. 우기여서 비가 많이 왔고요. 대만대학에 다니는 사람으로 설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대만대학 앞에 일주일정도 묵으면서 산책하듯 갔다 왔다 했던 기억이 나요. 스무 살의 내 모습이 어땠는지를 반추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고요, 내일 아침 대만을 다른 일로 가는데요, 다시 그곳에 가면 어떤 마음이 들까. 이 책에 대만 얘기가 많이 나오니까, 느낌이 남 다를 거 같아요. 그래서 같이 읽고 싶었어요.”


유지, 어떻게 지내고 있니?


한 독자의 낭독이 있었어. 그래, 유지에 대한 이야기였지. <악마의 트릴>을 만든 타르티니에 대한 이야기부터. “1713년. 스물세 살의 젊은 작곡가 타르티니는 악상이 떠오르지 않아 괴로워하고 있다.… 영혼이란 걸 팔면 이런 데 다다르게 될 수도 있구나. 음악 속에서 아이는 심장을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하울카. 여전히 생경한 발음이었지만 어쩐지 할카보다 하울카 쪽이 훨씬 더 부드럽게 들렸다.… 하울카가 아이보다 한 걸음 먼저 글을 남겼다. 아이는 답글을 타이핑했다. - ...................! 백 마디의 언어보다 문장부호 하나가 유용한 순간이 있다는 것을 아이는 알았다.”(pp.262~264)


이 독자는, 성격이 잘 안 드러나지 않는 유지가, 가출을 결심하는 동기이자, 하울카란 사람과 소통하면서 자기가 얼마나 외로운지를 알아차린 것 같다고 했어. 또 음악을 통해 외로움과 슬픔을 얘기한 부분이 좋아서라고.


사진제공 :


열한 살 소녀의 블로그. 글쎄,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 아니, 열한 살이라고 밝힌 블로그를 접하진 못했어. 초딩(보다 못한) 짓거리가 가득한 블로그는 봤지만. 사실, 난 유지가 열한 살이라는 설정이 가장 와닿질 않았어. 유지를 찾고 싶다는 강력한 욕망과 다른 차원에서, ‘유지는 정말 열한 살일까?’라는 호기심도 들더라고. 가령, 이런 거지. 


“하지만 엄마는 짱깨였고 엄마의 딸인 아이도 짱깨였다. 짱깨가 아닌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였다. 그것이 폭력이 세상을 지배하는 법칙이었다. 맞서 싸우기 위한 완벽한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어금니를 꽉 물고 참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몰랐다. 섣부르게 주먹을 내질렀다가 제풀에 위태로이 비틀거리는 꼴을 목격당하는 건 더 치명적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는 내면의 동요를 감추는 기술을 배워갔다. 지상의 모든 아이들이 결국 그러하듯이.”(p.158) 


내가 열한 살을 모르는지 몰라도, 내 열한 살이 그렇지 않았는지 몰라도, 아무리 소녀가 소년의 정신연령을 훌쩍 뛰어넘는 것을 알아도, 나는 이런 생각을 하는 열한 살 소녀를 생각하긴 어려웠다고 토로해야겠어. 넌 어때? 너의 열한 살, 기억하니?


“대한민국 곳곳의 하천과 호수, 바다에서는 연평균 천 구가 넘는 표류사체가 발견된다. 2008년 5월의 마지막 일요일, 경기도 Y대교 상단에서 발견된 남성 사체도 그중 하나였다.… 뱅글뱅글 이어진 나선형 계단 중간쯤에서 은성이 주저앉았다. 혜성도 그 곁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싸구려 소독약 냄새가 빈속을 어지러이 자극했다. 치받혀오는 토기(吐氣)를 억지로 눌러 삼켰다.”(pp.477~479)


끝의 시작. 마지막 챕터의 한 부분을 낭독하는 작가의 이야기에 문득 궁금해졌어. 유지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도무지 그 깊은 속을 알 수 없었던 이 소녀는 지금 얼마나 컸을까. 올 겨울, 이 추웠던 겨울은 잘 났을까. 생전 본 적도, 얼굴도 모르는 소녀의 행방이 궁금했던 나. 나도 가만히 한 발을 내디딘 걸까. 그 조용한 세계로. 너의 세계로 들어갔던 그때처럼...


정이현, 묻고 답하기


사진제공 : 문학동네


낭독회를 통해 이렇게 독자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지는 게 어떤 좋은 점이 있나요.


『너는 모른다』가 나온 뒤, 낭독회는 두 번째 자리에요. 저만 그런 게 아니고, (작가들에게) 이런 소통의 시간이 많아졌어요. 저희는 이런 기회가 아니면 독자들을 면대면으로 마주할 기회가 없는데, 되게 감사하고 소중한 기회인 것 같아요. 사실 신간이 나오고 나서 궁금해요. 독자들이 어떻게 읽었는지. 어떤 부분에서 어떤 느낌을 가졌는지, 되게 궁금하거든요. 사실 저도 몰랐는데, 이렇게 만나고 보니, 제가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는 편이더라고요. 얼굴이 기억나요. 어른이 되면 자신과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은데, 새로운 사람 사귄다는 두근거림도 있고 그래요.


처음엔 가족 배경의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읽고 보니 주제가 소통인 것 같아요. 어떤 점을 중점으로 이야기하고 싶었고, 유지를 통해 어떤 걸 말씀하고 싶었나요.


거의 대부분이 ‘가족 서사’로 많이 읽더라고요. 처음 생각과 달라서 재밌기도 하고, 조금은 왜 그러실까, 궁금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가족이 궁금한가보다’ ‘가족소설이 필요한 때인가’라는 생각도 들어요. 바깥세상이 너무 거칠고 풍파도 많고, 가족안에서는 따뜻하고 안온하길 바라는데, 그렇지 않은 가족이 많잖아요.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열심히 생각해보고 싶었다면, 이 가족을 혈연공동체로 만들었을 거예요. 그런 인물들은 아니죠. ‘홈’이라는 가족보다, ‘하우스’라는 곳에 사는 가족을 생각했어요. 하우스는 형식적인 틀인데, 그곳에서 혈연과 혈연 밖으로 묶인 사람들 사이에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지 궁금했어요.


소통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다는데, 그런 이야기가 더 맞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거칠게 말하면, ‘너는 나를 몰라’ 그렇게 생각하고 문을 닫고 있었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나도 너를 모른다’며 살짝 인식이 바뀌는 순간, 그 순간을 희망 섞인 소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사실 저는 희망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웃음) 소설은 작고 미미한 변화의 순간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에서 출발했어요.


유지를 통해, 인물을 통해 뭘 얘기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제가 인물을 조정하는 사람도 아니고, 연재하는 동안 인물과 저 사이에 간격이 흐려졌어요. 유지라는 소녀가 있습니다. 이 소녀는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만나고 세상을 만났습니다. 그 소녀에게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같이 따라가고 싶었어요. 물론 유지라는 인물을 가족에서 해석하면 복잡한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겠지만, 가족을 유지하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분도 있었고,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유지라는 소녀는 유지라는 모습으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한 선생과 강은 어떻게 된 건가요.


한 선생과 강을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은데, 열어놓고 싶었어요. 어떤 역할을 했고, 범인이다 아니다를 밝히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닌데,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아마, 김상호라는 인물의 그림자를 상징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김상호 내면의 어두운 면을 가진 사람들. 우리 안에는 여러 사람이 있잖아요. 한 선생과 강이 특별히 타고난 악인이어서 그렇게 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우리 안의 그런 부분을 극대화시켜서 보여주는 인물이어서 그들이 정말 어떤 일을 했는지 전문을 밝히지 않는 게 좋다고 판단했어요.


이 책엔 소통의 문제도 있었지만, 사회적 사건도 있잖아요. 장기매매나 방화 같은 것도 있고, 혜성이 아버지를 신고하는 일도 있었고...


혜성의 방화에 독자들의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웃음) 방화 장면은, 혜성에게 비밀이 있는데, 그게 뭘까 저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물론 주차돼 있는 차에 불을 지르는 것은 나쁜 행위고 그래선 안 되죠. 그런데 혜성이는 자신의 고민과 갈등을 안으로만 삭히고 아무에게도 드러내지 못하는 인물이잖아요. 울분이랄까. 어디서 나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가족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고, 그 안에 쌓인 여러 감정들도 있을 거예요. 최소한 다정하고 좋은 사람인데, 그걸 유지하려는 자신이 버거웠을 거예요.


(방화는) 그런 아이가 최소한의 일탈을 하는 거예요. 그럴 수밖에 없는 짠한 마음, 슬픈 마음을 한번 생각해봤어요. 한편으로 이 책을 혜성의 성장서사로 생각하기도 하는데, 혜성이 변화하는 지점으로 방화를 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연재하면서 혜성과 밍을 좋아했고, 문영광도 좋아해보려고 했어요. 삼십대 중반의 멋진 캐릭터로 처음엔 넣었는데, 점점 하는 행동이 그렇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 마음을 접었어요. (웃음)


글이 안 써지거나 생활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땐 어떻게 극복하세요?


장편 2개를 썼는데, 두 편 모두 일일연재였어요. 글이 안 써질 때 도망가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어요. 도망가 봤자, 1~2시간이고. (웃음) 습작할 때, 글이 안 써지면 제일 권하는 것이 일단 그 글에서 떠나는 거예요. 글에 골몰해 있으면 일종의 매몰된 상황인데, 가장 중요한 건 객관적인 거리에요. 화자와 작가 사이에 객관적 거리가 있어야 하고, 컨트롤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힘든 거거든요. 며칠이라도 그것으로부터 떠나서 다른 것을 본다든지, 전혀 상관없는 만화를 본다든지, 그런 방법이 제 경우에는 도움이 됐어요. 스트레스 쌓일 때는 자는 편이고요. (웃음)


초등학교 6학년 딸이 작가가 꿈인데, 아이에게 격려의 말씀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중요한 나이인 것 같아요. 세상이 어떤지 눈을 뜨기 시작한 나이인데, 왜 그런 어려운 꿈을. (웃음) 음, 아직은 꿈이 뭐라고 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한 가지 꿈을 위해 매진하는 사람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 나이면,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고요. 중고등학교에 올라가고 더 많은 세계를 만나면 그 가능성이 열릴 거예요. 작가가 되겠다고 소설이나 문학작품만 읽거나 습작하는 건 정말 안 돼요. 작가가 되겠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책을 더 많이 읽고 다른 세상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장 안 좋은 경우가 이십대 초반에 천재라는 소릴 들으며 혜성처럼 등장한 사람이에요. 어떤 노력을 해도 더 이상은 안 되기 때문에요. 아무리 완숙한 작품을 써도 혜성으로만 기억되거든요. 또 천재는 스스로 천재라는 걸 알아서 열정을 소모하는 경우 많아요. 전 조금 둔하지만 대기만성의 작가를 좋아하는 편이에요. 두세 번째 작품이 더 나은 걸 좋아하고요. 작가가 되고 나서도 세상 공부를 많이 하고 경험을 많이 쌓고 여행도 많이 다녔으면 좋겠어요. 잡스러운 세상사나 세태를 많이 아는 사람이 좋은 소설가에요. 풍부하게 느끼고 감각하고 그랬으면 좋겠네요.


쓴 작품의 인물 중에 한 번 더 등장시켰으면 싶은 캐릭터가 있나요.

 

공교롭게 조금 전에 대담을 했는데 비슷한 질문을 받았어요. 『낭만적 사랑과 사회』라는 등단작에 유리라는 인물이 있어요. 2001년에 썼고, 그때 제가 소설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이 드러나는데, 가수도 첫 앨범을 다시 보면 복잡한 생각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열정을 생각하면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있고, 미숙한 점이 보여서 부끄럽기도 하고. 나한테도 첫 작품집이 그래요. 방법적인 부분에서 능숙하고 노련하게 처리할 수 있겠다 싶고, 그럼에도 문학에 대한 열정이나 솟구쳐 오르는 에너지들이 날 것으로 들어가 있는 책이에요. 지금 생각으로는 유리라는 인물이, 그때 이십대 초반이었으니까, 지금 서른 살이 됐을 텐데 많이 궁금해요. 결혼은 안 했을 것 같고, 어느 동네 사는지도 궁금하고, 많이 자랐을 것 같아요. 저도 유리라는 인물의 후일담이 궁금합니다.


사진제공 : 문학동네


소설가가 어릴 때부터 꿈이었는지, 소설을 쓴 계기는, 좋아하는 작가는요? 아울러 소설을 왜 쓰세요?


꿈은 아니었어요. 전 어렸을 때 한 번도 꿈이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는 아이였어요. (꿈을) 적어내라면 ‘선생님’ 같은 걸 써내기도 했는데, 절대 선생님이 되고 싶진 않았어요. 조직 생활을 못 견뎌하는 사람이고, 안으로 곪은 사람이라. 소설가는 조직에 속할 필요가 없는 몇 안 되는 직업 중의 하나라 소설가가 됐는지도 몰라요. (웃음)


첫 소설을 스물아홉 때 썼어요. 그런데 그 전에 산문에 콤플렉스가 있었어요. 스스로 완결하는 문장을 못 쓰는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오랫동안. 중고등학교 때 글을 잘 쓴다는 얘기를 들긴 했는데, 그건 시였어요. 시는 찰나를 포착하는 것이 더 중요한 작업이잖아요. 그래서 처음과 끝이 있는 서사는 못 쓰는 사람이고, 완결된 문장으로 만들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죠.


대학 때, 소설 창작 수업에서 콩트 하나씩을 써오라고 해서, 썼어요. 교수님이 문제작 다섯 편을 읽어줬는데, 내 것도 있었어요. 남편이랑 사는 어떤 여자가 우울해서 매일 몸이 아픈 이야기인데, <고통>이라는 제목을 붙였어요. 교수님이 그걸 읽고 나서, ‘고통’이 아니라 ‘통증’이 어울리는 제목 같다고 그러시는 거예요. 그게 놀라운 게, 당시 저는 고통과 통증이 어떻게 다른지 구별하지 않는 세계에 살고 있었거든요. 문학의 세계에서는 고통과 통증이 엄연히 다른 거잖아요. 처음으로 그것을 구별할 수 있는, 나눠야만 하는 세계에 들어왔고 그게 굉장히 매력적이었고, 그때부터 습작을 시작했어요.


좋아하는 작가는 무척 많고 늘 바뀌어요.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긴 어려우나, 단편을 잘 쓰는 작가한테 매혹되는 것 같아요. 국내는 오정희 선생님이나 김승옥 선생님의 초기 단편 같은 거. 외국 작가에서는 레이먼드 카버나 존 치버, 요즘은 준파라이라고 미국에서 활동하는 인도 작가가 있어요. 단편의 신이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그 분의 단편을 읽으면 찬탄해 마지않아요. 최근에 나온 단편으로 「그저 좋은 사람」이라고 있는데, 참 좋아요.


음, 소설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 맞지만, 직업란에 소설가라고 쓴 경우는 없었어요. ‘가’를 붙이는 건 일가를 이룬 사람에게나 붙일 수 있잖아요. 출입국을 할 때 직업을 왜 써야하는지 모르겠어요. 대개 점을 찍거나 회사원이라고 써요. (웃음) 마음껏 돼 보지 못한 직업을 쓰는 편이죠. 직업적으로 (글을) 쓰고 있는 건 맞지만, 내 직업이 소설가 인가는 의아해요. 언젠가는 소설가라고 쓸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고 있어요.


왜 소설을 쓸까, 늘 자문하는데, 잘 모르겠어요. 이 세상 제가 모르는 곳에 낙하산 줄 같은 그런 얇은 줄로 가느다랗게 연결돼 있다는 느낌 같은 것 있잖아요. 언젠가 썼던 문장을 읽은 분들이 낯선 곳에서 그 느낌을 받는다면 그걸로 우리가 통하지 않았을까. 그런 느낌을 맛보는 순간이 있어요. 그래서 쓰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한편으로 소설 쓰는 게 굉장히 힘든 작업이에요. 주로 몸으로 쓰는 게 80% 이상이라고 생각해요. 장편 하나 쓰면 팍팍 늙고. (웃음) 정신과 육체노동을 같이 하지만, 굳이 꼽으라면 육체노동을 하는 비중이 높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하기 싫다가도 저도 모르게 그 소설에 빠져 있게 되는 희귀한 순간도 와요. 그때 쾌감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잘 안 오지만, 그 분이 오는 순간이 있어요. (웃음) 그 느낌이 짧지만 강렬해서 중독성이 있지 않나 싶어요. 


P.S. 

아마 내게도, 유지 때문이었던 것 같아. 이 책에 빠져 들었던 건. 무엇보다 실종된 열한 살 유지가 찾고 싶었고, 유지를 잃은 이들의 고통이 자꾸 밟혔어. 내가 그만한 고통을 겪은 건 아니지만, 그들의 고통에 자꾸만 눈과 마음이 가고야 마는. 일상으로부터 철거되고야 말았던 그네들의 마음 같은 것. 그러니까, 이런 것이었을 수도. “이 세상은 원래 비현실적인 일이 평화로운 일상보다 훨씬 잦은 빈도로 일어나는 곳이긴 했지만.”(p.306) “타인의 참담이 제 것처럼 아프게 심장을 찌를 수 있다는 사실이 진저리치도록 낯설었다.”(p.269)


물론 마냥 낯선 것은 아니지만, 열한 살, 같은 나이의 은정이에 대한 기사가 떠오른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어. 영구 미제사건으로 될 상황에 처한 은정이. 지난 2008년 5월, 열한 살 은정이에게 닥쳤던 비극. 괴한 두 명에게 끌려갔고, 보름여 뒤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고야 말았던 열한 살 소녀 말이야. 아마, 너도 봤겠지? 미흡한 초동수사 탓에 DNA채취도 실패하는 등 어떤 단서도 찾지 못한 채, 흘러간 1년 반. 열한 살에서 멈춰버린 딸이 차디찬 겨울에 쉴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한없이 마음이 시린 그 어머니의 절규가 아프네.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서 더 가슴이 아프고 설움이 북받쳐 올라요.” 아마, 은정이 어머니도 옥영처럼 이렇게 가슴을 쳤겠지. 


“나, 밥 먹어.”

옥영이 갑자기 소리쳤다.

“밥을 먹어, 내가. 밥이 들어가, 여기로,”

그녀가 주먹으로 제 빗장뼈를 탕탕 내리쳤다.

“…”

“그뿐인 줄 알아? 나, 화장실도 가, 화장실에 가고 싶어. 내가 사람이야? 응? 사람이야?”

(p.202)


소중한 것을 느닷없이 잃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무엇. 그 날것의 불행. “불행이야말로 날것의 감정이다. 불행하다는 느낌을 완벽히 감출 수 있는 눈동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p.249) 물론, 그 심정과 마음을 반드시 이해하거나 온전하게 아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 같아. 모든 것이 그렇게 가닿을 순 없는 법이니까. 다만, 모르겠다고 내팽개치거나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렇게 낭독을 듣고 나선 길, 한 음식점 밖에 집을 둔 새하얀 털이 복슬복슬한 강아지가 울타리를 넘고 싶었는지, 날 향해 낑낑대더라. 뭔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일까. 한동안 녀석을 바라보고 있는 내게, 녀석은 ‘너는 모른다’고 말하는 것 같았어. 그래도 녀석에게 귀를 기울이고 싶은 건, 아마도 낭독회를 들은 직후였기 때문일 거야. 평소라면 그저 지나치고 말았을 일이었겠지만, 그 녀석의 표정과 소리에 마음을 기울이고 싶었어. 물론, 나는 녀석을 끝내 모르고 말았지만.


울타리 너머에는 다른 사람이 있고, 다른 세계가 있어. 너를 통해 알게 된 거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그늘과 남의 고통에 마음을 건네고, 몸을 움직였던 너. 아주 가끔은 그런 니가 보고 싶어. 널 더 알고 싶으니까. 울타리 너머의 세계에,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울타리 너머의 세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 뿐이다. 그녀는 이제 그것이 균형의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굳이 그렇게 규정해야 안심하는 자신이 참 비겁하다고도 생각한다.”(p.55) 


[예스24 기고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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