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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아니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야
낭만_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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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다를까,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다. "안 오냐?"

아 띠바. 그렇잖아도, 마음이 싱숭생숭한데, 브루투스, 너마저...

그렇다. 눈치 챘나!

부산국제영화제(PIFF).

보고 싶었다... <바람의 소리>!


내 가을의 가장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자 공간이건만,
나의 정기적인 가을 행차였건만,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일찌기 2년 내리 못 간 적은 없었다.
전무후무한 일이다. ㅠ.ㅠ
이건 오명이다!

된장, 속이 뒤비지고 있다.
노떼도 사라진 마당에,
아아, 이럴 순 없는 게다.

정말정말 부럽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그냥 지고 말겠다.
부럽다!!!! 조낸!

나 보고 싶다는 부산의 팬들에게도 미안하다!
이 행님도 우짤 수가 엄따...ㅠ.ㅠ

부산영화제 갈 수만 있다면, 내 영혼을 악마에게 팔아도 좋다.
누가 내 싼티 영혼을 사달라~~~ 저렴하게 판다~~~ 흑.

좆도. 이 가을이 넘넘 가혹하다...
내  가을, 돌리도~

지금, 절대 내게 부산에서 전화하지 말 것.
염장지르지 말 것.
난 이미 졌으니까.... OTL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2007.10.21 18:28 메종드 쭌/무비일락
지난 12일 폐막한 12회 부산국제영화제(PIFF).
9편의 시네마 혹은 세계와 조우했고,
행복한 시네마 유람이었다.

그리고 PIFF리뷰에 올린, 어설프게 갈겨 쓴 세 편의 감상문.

찰나지만, 어떤 사소한 순간을 포착해서 그것을 특별하고 감질나게 세공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팍팍을 넘어, 퍽퍽한 일상의 찌질한 흙탕물에서 허덕이는 이들을 구원해주곤 한다. 적진에서 만난 구원병이랄까.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도 그런 사람이 아닌가 싶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A Gentle Breeze in the Village). 나는 그 바람을 맞으며, 사소한 일이 빛나는 순간을 감지할 수 있었다. 행복한 영화보기. 그리고 새뜻한 영화 만나기.  

 
여기 한 시골마을이 있다. 산과 논이 어우러진 한적하고 순박한 마을. 주민들 또한 그 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순박한 마을주민들은 각자의 일에 충실하고, 자연은 그런 주민들과 함께 호흡한다. 따사롭고 온화한 기운이 충만하다. 로컬 푸드로 자급자족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의식주는 마을 내에서 충분히 해결된다. 가끔 그 안에서 해결할 것이 없으면, 시내로 나가면 된다.
 
중학교 2학년인 미기타 소요(카호)가 사는 곳은 그런 시골마을이다. ‘특별하고’ ‘드라마틱한’ 일은 과연 있을까 싶은. 학교도 초미니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같은 학교에 다니면서 등하교도 같이 한다. 마을주민들도 하나같이 연결돼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세계에 충분히 만족하고, 만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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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의 스틸컷. 출처 : www.piff.org


그런데, 그 조그만 시골학교에 사건이 일어난다. 도시에서 한 남학생, 오사와(오카다 마사키)가 전학을 온단다. 소요의 마음은 콩닥콩닥. 같은 나이, 같은 학년이란다. 동생들밖에 없는 학교에, 마을에, 도시물을 먹은 남학생의 등장은 잔잔한 우물가에 돌을 던지는 셈이다. 더구나 꽃미남이기까지. 특별한 일 없던 시골은 한순간 들뜨기 시작한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은 그런 마을과 소요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대개 도시인의 시골 유입은 관습적으로 다뤄지곤 한다. 도시와 시골이 충돌하면서 빚어지는 문화적 충돌이나 갈등이 다반사. 화해할 수 없는, 양립할 수 없는 가치의 대립은 사건을 불러오고, 그건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판단을 내리곤 한다. 기껏해야 도시와 시골의 화해나 갈등의 봉합 정도?
 
그런데,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은 다른 지점을 선택한다. 그 특별한 사건은 별다른 갈등구조를 형성하지 않는다. 조그만 일상의 균열이 불러온 그네들의 달뜬 감정을 보여주면서도, 일상의 흐름을 유지한다.

시골을 찾은 도시인들도 그들의 일상을 크게 방해하지 않는다. 감정은 시간과 궤적을 같이하면서 성장하고, 사람들의 심성 또한 한없이 투명에 가까울 뿐이다. 이런 재미없는 영화가 있나 싶겠지만, 평범한 일상과 감정을 전면에 내세운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연출은 별 볼일 없는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재주를 지녔다.

 
이 영화에서는 특정한 사건이 주인공이 아니다.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의 순간이 주인공이다. 야마시타 감독은 그 일상에서도 심장박동이 뛸 수 있는 그런 순간이 있음을 알려준다.

급식 시간의 메뉴는 ‘사이 좋은 친구밥’이라는 귀여운 방송멘트로 지칭되고, 연애질 때문에 ‘오줌 참아라’고 툭 내뱉었다가 방광염에 걸려 결석한 막내를 미안한 마음에 찾았는데, 그 막내가 반갑다고 안겨올 때, 발렌타이데이에 돌고 도는 초콜릿의 행방을 보자면, 순간 가슴이 뛴다. 아, 그래, 우리에게도 저런 순간들이 있었지,하는 감탄.

 
그건 하나의 기적이다. 생의 모든 순간을 기적이라 칭할 순 없지만, 가슴이 뛰는 찰나의 순간을 기적이라 칭하지 말란 법도 없지 않는가. 짧게 끊어치는 고만고만한 에피소드들은 제한된 공간의 사계절을 관통하면서 더욱 풍성해진다. 성장은 훌쩍 커버리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이 모인 결정체라는 것을 보여주듯.
 
야마시타 감독은 다른 세계를 향해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 힌트를 준다. 아이들은 다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 때문에 다리라는 지름길을 쉽게 건너지 못했다. 그러나 꽃한송이로 지금은 없는 그를 위로하고 성큼 다리를 건너던 오사와를 따라 소요가 선입견을 깨고 역시 위로에 나선다. 마음의 문을 여는 순간,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야마시타 감독은 또한 이 영화를 도시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나 시골에 대한 향수로 그리지 않는다. 도시와 시골에 대한 사려 깊은 연출로 도시와 시골의 간극을 자연스레 좁힌다. 오사와의 공간을 느끼고픈 소요는 수학여행을 간 도쿄에서 귀를 기울여 사물과 소리에 집중한다. 시골에서와 같은 바람소리를 들은 소요는 중얼거린다. “너희들과 언젠가 어울릴 날이 있을지도 몰라.”

 
특히 <린다 린다 린다> 등을 연출한 야마시타 감독은 소녀들의 감성과 일상을 길어 올리는데 일가견이 있음에 분명하다. 어리버리하고 순진하면서도, 사려 깊음과 여우같은 면모를 지닌 소요의 첫사랑은 공명을 일으킨다. 우리에게도 그런 설렘이 있었음을 떠올리게 하는. 마음에 드는 점퍼를 얻기 위해 첫키스와 이를 바꾸는 소요의 마음 역시.
 
영화는 그렇게 쿠라모치 후사코의 만화, <천연꼬꼬댁>의 아우라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속삭인다. 우리가 끊임없이 길어내고 잇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언젠가 마주할지 모르는 다른 세계에 마음을 여는 방법이 있다고.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등의 각본을 쓴 와타나베 아야는 충분히 원작의 기운을 살렸고, 야마시타 감독은 섬세한 감성으로 이를 연출했다. 어른부터 아이까지 배우들의 연기 또한 이를 감질나게 뒷받침한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은 어쩌면 관객의 마음에 작은 산들바람을 훅~불어넣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에도 두근거릴 수 있고,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이 특별하게 느껴질 어느 순간을 감식하게 되는 그런 ‘기적’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의 바람. 소요도 그렇게 우리에게 속삭이지 않았던가. “이제 곧 없어질지도 모르는 생각과 사소한 일이 갑자기 빛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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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의 스틸컷. 출처 : www.piff.org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2007.10.19 10:25 메종드 쭌/무비일락
지난 12일 폐막한 12회 부산국제영화제(PIFF).
9편의 시네마 혹은 세계와 조우했고,
행복한 시네마 유람이었다.

그리고 PIFF리뷰에 올린, 어설프게 갈겨쓴 세편의 감상문.

<엑소더스>(Exodus). 또 다시 임달화였다. 별다른 사전정보 없이 훌쩍 들어갔더니. 앞선 <트라이앵글>에 이어 역시 소시민으로 분한 임달화가 있었다. 낯설면서도 어울리는. 그래도 홍콩누아르의 주역 중 하나였던 임달화였는데, 후후. 사자 갈퀴 같은 머리칼 휘날리며 초원을 내달리던 그였는데, 이젠 머리카락도 숭숭 빠진 채 초원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아, 세월아.

 

<너는 찍고, 나는 쏘고>로 독특한 영화적 상상력을 보여준 팡호청의 신작, <엑소더스>는 좀더 상상력의 밀도를 높인다.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되기 이전의 홍콩을 배경으로 하면서, 묘한 연결 고리를 맺어준다. 즉, 홍콩의 반환(죽음)에 어떤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품게끔 만든다.
 
첫 장면은 다소 엉뚱하고 파격적이다. 물 속에서나 필요한 수경과 오리발을 낀 패거리들이 한 남자를 무자비하게 구타한다. 도망가려는 남자와 끝까지 그를 물고 늘어지면서 망치질을 해대면서 피를 난자시키는 장면은 벽에 걸린 영국 여왕의 초상화와 이물감을 불러일으킨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하는 의구심도 잠깐. <엑소더스>는 다소 무기력해 뵈는 경찰관, 짐(임달화)의 일상에서 운을 뗀다. 동료의 부탁으로 마지못해, 여자화장실에서 몰카를 들이댄 잡범, 콴(장가휘)를 취조하는 짐. 명백한 현행범으로 보이는 콴은 그런데 죄를 순순히 자백하기보다는 엉뚱한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이 세상의 남자를 없애려는 여자의 음모를 캐내려고 했단다. 얼씨구. 이거 웬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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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소더스>의 한 장면. 출처 : www.piff.org


콴은 그런 여자의 음모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설파하지만, 짐은 그런 여성 집단이 있다고 잘못 이해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콴의 진술번복과 동료경찰관의 미심쩍은 행동, 남자들의 잇단 살해기사 등은 짐에게 ‘남자를 살해하려는 여성 집단의 존재가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을 키우게 한다. 이런 일련의 이상한 낌새는 무기력한 경찰관, 짐에게 묘한 생기를 불어넣는다. 장모로부터 경찰관을 그만두는 사업을 하라는 권유를 받고서도 별로 의욕 없어 뵈는 업무를 그만두지 않던 짐이었다. 그런데 엉뚱한 진술에 빠져, 이를 추적하는 과정은 홍콩 반환 시기와 맞물려 스크린에 묘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더구나 콴은 죽음에 이르고, 중국 본토에서 건너왔으나, 홍콩이 싫다고 말하는 콴의 아내와 눈맞은 짐의 모습은 어쩐지, 중국 본토로의 귀속도, 영국령도 싫은 홍콩의 어떤 자화상을 비추는 것 같다. 황당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사건에 점점 집착하게 되는 짐의 모습도 이에 다르지 않다. 무엇이 사실이고, 어떤 진실이 숨어있을까.
그리고 한꺼풀 한꺼풀 베일을 벗는 이야기는 주인공들의 열연과 잘 짜인 플롯에 힘입어 하나둘 근거를 획득해 나간다. 수사와 맞물려, 어떻게 이를 처리할지 고뇌하는 짐의 표정은 하나의 표식 같다. 홍콩 반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지 혼란스러운 당시의 모습처럼. 어쩌면 원하지 않는, 뜻하지 않은 사건에 봉착했는데도, 이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면서도 걷잡을 수 없는 욕망에 사로잡히면서 팽팽하게 당겼던 줄을 놓아버리는 모습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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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소더스>의 한 장면. 출처 : www.piff.org


팡호청의 상상력은 끝까지 가지를 치고 나가면서 짐에게도 어떤 일이 생길 것임을 암시한다. 더구나 짐의 아내도 엄청난 사연을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승진 시험까지 앞둔 짐에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는 과정은 팡호청의 장기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듯하다.
 
미스터리와 블랙코미디의 성격을 씌운 <엑소더스>가 일군 상상력은 한편으로 한국영화 <지구를 지켜라>를 연상시킨다. 황당한 설정과 이야기의 전개가 어떤 구조적인 문제점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굳이 큰 힘을 들이지 않는다. 주인공들의 개인사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는, 문제의식도 분명 드러낸다. 남자와 여자, 그 서로 다른 별에서 온 종족들의 화해할 수 없는 것들까지. 상상력이 즐거운 이유.
 
짐을 맡아 열연한 임달화는 서극·두기봉·임영동의 <트라이앵글>에서와 마찬가지로, 무기력한 소시민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전 냉정하고 바바리코트 휘날리던 킬러나 형사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라서, 이전 그의 모습을 기억하는 팬이라면 새롭게 변신한 그를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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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달화의 변한 모습이란. 나는 스크린을 통해 세월을 확인했다. 출처 : www.piff.org


2007/10/21 - [메종드 쭌/시네피아] - 특별할 것 없지만, 특별한 마을을 찾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
2007/10/18 - [메종드 쭌/시네피아] - 청춘과 도시에 들이댄 에드워드 양의 현미경, <마작>(Mahjong)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2007.10.18 14:39 메종드 쭌/무비일락
지난 12일 폐막한 12회 부산국제영화제(PIFF).
9편의 시네마 혹은 세계와 조우했고,
행복한 시네마 유람이었다.

그리고 PIFF리뷰에 올린, 어설프게 갈겨쓴 세편의 감상문.

좀더 많은 에드워드 양 감독님의 유작들을 보지 못한 아쉬움도 있지만,
<마작>(Mahjong)이라도 봐서 다행. 10여년 전의 장첸도 나오더군.

도시와 청춘에 건네는 편지


그래, 그땐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어디에도 끼일 틈이 없어 부유했고, 도시는 그런 부유하는 나를 음흉한 미소로 부추겼다. 그래서 도시와 청춘은 때론 함께 부유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지 않은가도 싶다. 너희들을 보면서도 그랬다. 도시는 정글과 같았고, 그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청춘은 도시를 이용하지 않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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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작>의 한 장면. 출처 : www.piff.org


너희들을 마주하면서 그랬다. ‘그래, 타이베이라고 다르지 않겠지.’ 96년 작품이라지만, 나는 어떤 지금과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고 실토해야겠다. 도시는 여전히 욕망을 머금고 있고, 그의 산물인 너희 청춘들도 그 욕망에 사로잡힌 포로.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인정투쟁’은 자연스러운 욕구다. 그래서 너희들의 투정에 나는 마음이 갔다. 너희들을 한때 키워주던 가족이나 기성세대는 더 이상 너희들을 보호하지도 못하고, 존경받을만한 사람들도 아니었잖아. 마음 붙일 곳을 상실한 청춘이 도시에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겠니. 그저 그것을 비웃고 외면하는 수밖에.

그렇다고 너희들이 그것을 제대로 조롱하고 뛰어넘을 수 있는 단단한 무언가를 갖추지도 못했잖아. 너희들의 사기, 구라, 사업(?)은 결국 낙오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싶다. 누구도 너희들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알 수 있게끔 알려주지도 않고, 기성세대는 그런 책임에 무심했잖아. 역할모델이 다 뭐야.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전고투할 수밖에 없는 비정한 도시의 얼굴. 비극이지, 비극. 신흥도시였던, 타이베이 역시 그렇게 제대로 된 근대화를 겪지 못한 채 숨가쁘게 달려가기만 했으니까.

그래, 너희들에게서 그런 공통분모와 연민을 느낀 건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였을거야. 이 곳 역시 이른바 ‘아시아의 4룡’으로서 한때 맹위를 떨쳤지. 너희 나라와 같은 테두리에서 비슷한 궤적을 그렸더랬지.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경제성장’이라는 화두에 탐닉해서 속도만 낼 줄 알았지, 브레이크가 고장된 것은 알지 못했던. 국제화된, 메트로폴리탄이 되고픈 도시는 결국 외국인들의 도마에 오른 먹잇감이었던 거겠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뒤틀린 욕망게임.

도시고, 청춘이고, 영혼은 따라가지 못하는데, 몸만 멀찌감치 앞서 나가고 비대해지다 보니, 결국 파열음이 나기 마련이지. 물론 그 속도에 잘 편승한 사람이야 다르겠지. 하지만 그 사이에 끼인 엉거주춤한 청춘은 어디에도 마음 둘 곳 찾지 못한 채, 살아남기 위해 악다귀 같은 전투를 벌여야 하잖아. 상실의 시대를 관통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뭐? 그래, 부유하는 것이지. 진짜 내가 원하는 욕망을 알지 못하는 자들의 유일한 선택.

홍어(콩센탕)가 늘 ‘No problem’을 입에 달고 사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었어. 그런 어디로도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을 위로하기 위한, 무의식적인 자기 위안의 말. ‘No problem’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어디에도 없었지만. 결국 스스로를 기만할 수밖에 없었기에 그는 비극을 맞닥뜨리게 된 거겠지? 어디에도 구원이 없었으니까. 아버지의 자살 또한 기댈 언덕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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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작>의 한 장면. 출처 : www.piff.org


그 와중에, 제국주의적 성향을 지닌 서양인들이 너희 도시를 장악함으로써, 너희들을 더욱 발붙일 곳 없게끔 만들지 않았을까도 싶다. 홍어가 마르타(비르지니 르도엥)에게 보였던 가식적인 친절은 그래서 나온 것이지. 10년 뒤면 타이베이가 세계의 중심이 될 거라며, 19세기에 이어 21세기에도 제국주의가 영화를 누릴 것이라며, 그래서 여기에 있는 것이라던 데이빗의 말은 너희들이 발붙이고 있는 땅이 어떻게 되고 있단 걸 보여주잖아. 도시는 비열했고, 어떻게든 이익을 건사하려는 서양에서 온 자본 혹은 이익집단의 욕망이 들끓더라. ‘문명’과 ‘근대화’에 대한 우월의식 때문인지, 뒤틀린 생존욕망을 그대로 전이시키고 있는 그들의 흉포함도.

물론 데이빗을 찾아 대만까지 온 마르타가 이말 직후에, 자신을 진심으로 보호해 준 뤤뤤(고웨린)을 다시 찾아가 나누는 키스는 일말의 희망을 안겨다 준 것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어. 마냥 흑색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에드워드 양 감독님의 메시지였을까.

홍콩(장첸), 너의 울음도 어떤 새로운 징조인 것 같았다. 갑작스럽고 뜬금없어서 어이없이 웃긴 했지만, 울음으로 대신하면서 끝끝내 그 이유를 말하지 않은 것에 어쩐지 마음이 가더라. 연상녀들의 육체와 음식 파상공세에 울음을 떠뜨리면서 자신의 욕망을 대한 자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고.

나는 그렇게 너희들을 통해 우리네가 살았던, 살고 있는 한 풍경들을 엿봤다. 사실적인 근거에 바탕을 두고 도시와 청춘, 그리고 사람살이를 관찰하는 에드워드 양 감독님의 현미경을 통해. 여전히 나는 그래서, 에드워드 양 감독님이 그립네. 그래, 이만 안녕.

2007/07/02 - [메종드 쭌/시네피아] - "저도 늙어간다고 말하고 싶어요..."... 에드워드 양 감독의 유작 <하나 그리고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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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작>의 촬영장면. 에드워드 양 감독님과 장첸을 볼 수 있다. 출처 : www.piff.org


2007/10/21 - [메종드 쭌/시네피아] - 특별할 것 없지만, 특별한 마을을 찾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
2007/10/19 - [메종드 쭌/시네피아] - 너는 상상하고, 나는 즐겁고… <엑소더스>(Exod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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