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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9 03:04 메종드 쭌/무비일락
내 심장의 일부를 말하기 전, 이 얘기부터 하지요.

얼마 전,
한때 야큐계를 풍미했던, 구대성(이라 쓰고, 대성불패라 읽는다!)의 은퇴 경기.


아, '쿠옹'도 이렇게 떠나는구나.
우리의 한 시절도 이렇게 접히는구나.
'대성불패(臺晟不敗), 안녕', 을 마음속으로 외치던 날입니다.

헌데 이날,
나를 '가장' 뭉클하게 만든 건, 한 여성팬의 피켓 문구였다지요.

"당신 때문에 야구팬이 되었습니다."

아, 가슴이 찡찡했습니다.
이보다 더한 극강의 상찬이 있을까요. 흑ㅠ.ㅠ
생을 송두리째 야큐에 바친 야큐선수의 은퇴경기에 피켓문구로서 가장 좋은 예.

'모태야큐'가 아니라면, 친구의 꼬드김이 아니라면,
야큐를 보고, 야큐장을 찾게 된 어떤 계기가 있을 겁니다.

야큐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던 이가,
TV에서 야큐 경기가 펼쳐지면 '대체 뭐가 재밌다고 저런 걸 보나'싶던 이가,
어느 순간, '아, 이래서 사람들이 야큐에 빠지는구나'하는 깨달음을 얻는 것은,
어떤 특정 선수의 활약상 때문이기도 할 것이라고요.

그 여성에겐 그 대상이 '대성불패'였던 것이죠.
그 어떤 수치나 수상 경력보다 은퇴선수의 심금을 가장 울리지 싶은 저 말.
"당신 때문에 야구팬이 되었습니다."
(아, 저요? 전 모태야큐, 모태노떼(자이언츠)였다지요.^^)


미안. 서론이 길었죠? ^^;
이 영화, <마루 밑 마루에티>(借りぐらしのアリエッティ,The Borrowers).
보고선 쿨쩍훌쩍 했습니다.ㅠ.ㅠ 조금 있다 얘기하겠지만, 쿠옹의 은퇴에 최고의 상찬이었던 그 피켓문구가 자연스레 떠오르더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신상입니다.

메리 노튼의 소The Complete Borrowers(국내제목 :《마루 밑 바로우어즈》)가 원작이죠. 하야오 할아버지가 젊은 날 읽고, 품고 있던 아이템입니다. 40여년을 삭힌 내공, 과연 하야오 철학과 잘 맞물려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기획과 각본만 하야오 할아버지가 맡았다는데, 지브리의 최연소 감독인 서른일곱의 요네바야시 히로마사의 연출은 하야오 할아버지의 자장에 있습니다. '하야오'라는 이름이 여전히 각인된 작품이라는 얘기죠.
 

자, 옆의 이 초상이 바로 아리에티입니다. 보는 순간, 훅~ 갔습니다. 곧 '여신 포스'를 발산할 것 같은 요정 포스의 그녀는, 14살입니다. '아니, 14살짜리가 왜 저래?'하면서 같이 보던 친구에게 툴툴(?)거렸습니다. 성숙하다못해 섹시하다니. 요정은 저런 거야, 응?


물론, 그렇게 아리에티가 그려진 것은 다 이유가 있더군요. 씨네21의 김혜리 기자가 전한 아리에티 탄생의 비화(?). "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감독은 “<아리에티>를 연출하기로 결정한 다음 프로듀서와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처음 받은 주문은 아리에티를 아주 관능적으로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며 미소짓는다. 뚜렷한 로맨스 일화가 없음에도 아리에티의 이같은 분위기는 영화에 줄곧 첫사랑의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아하, 아무렴. 아리에티의 관능에 매혹되지 않는 자, 유죄!

아리에티는 10cm 작은 생명입니다. 현재 지하 700m 갱도에 갇힌 칠레의 33인 광부들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지름 8.8cm의 구멍보다는 약간 큰 10cm. 그들은 크기만 다를 뿐, 사람의 형상과 똑같습니다. 다만 인간에게 자신들의 존재를 들키면 안 되죠. 그들에게 인간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위험한 존재'거든요. 종족이 멸종 위기에 처한 것도, 인간에게 존재가 '뽀록'났기 때문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일까요. 자신들의 종족에서 유일하게 남은 아리에티 가족. 걱정작렬하는 엄마, 아빠는 아리에티에게 신신당부를 합니다. 인간에게 틀켜선 안 돼. 그리되면 우리 종족은 멸망이란다. 멸족 여부를 고민하는 그들의 대화를 듣자니, 나는 인간(!) 땜시 멸족(멸종)한, 혹은 멸족 위기에 처한 생명(들)의 이야기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인간의 탐욕과 숭악함 때문에 사라져 가는 지구의 어떤 이들.

괜히 미안해집니다. 나 역시, 그런 인간의 탈을 쓰고 있잖아요. 만물의 영장'이라며 지구의 쥔장처럼 행세하는 인간은, 때때로 수시로, 기고만장에, 안하무인의 존재입니다. 인간이 가장 무섭다는 말, 이 애니에서는 실감납니다. 작은 생명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은 한 없이 불투명에 가까운,
오롯이 '공포'라지요. 아, 나라는 인간이 누군가에겐 공포가 될 수도 있겠구나.


우리의 요정, 아리에티의 눈으로 인간남자(소년) '쇼우'를 처음 봤을 때의 방식부터, 시계의 초침소리는 어찌나 큰지, 공포감 작렬입니다. 문 여닫는 소리도 천둥치는 것 같고, 작은 생명들이 부엌과 방, 테이블을 오갈 때의 거리감과 모험도 장난이 아닙니다.

이는 어떤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하죠.
익숙한 우리네 인간 세계임에도, '아, 저런 시각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다른 세계에 대한 감각을 요구합니다. 그것 참, 나쁘지 않습니다. 묘합니다. 짜잔.

그건 역시 지브리, 곧 하야오 할아버지의 대부분 작품이 관통하는 인간에 대한 관점과 일맥상통하지 않나 싶어요. 인간이야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공포스럽고 숭악한 존재일 수 있다는 것. 그리하여 인간의 성찰을 은연중에 요구하기도 하는.

아마, 이 애니를 보는 인간이 인간에게 가장 공포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어쩌다보니 극중 악당 비스무리한 역할을 맡은 집사 여자를 통해서일 겁니다. 아마 가장 보통의 인간을 대변하는 존재일 그녀는, 딱히 나쁘다고 볼 수 없는 캐릭터지만, 어느덧 감정이입이 된 아리에티 가족을 잡으려고 혈안이 된 탓에 그리 느껴지게 됩니다. 그녀를 통해 어떤 죄의식도 없이 다른 생명(심지어 같은 인간)에게 위해를 가하는 인간이란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아, 그러는 거 아니야~ 아니야~


이런 것도 있어요. 아리에티와 그 가족이 인간에게 '빌리는' 각설탕, 티슈, 빨래집게 등의 '전리품'은 우리의 일반적인 용도와 달리 활용이 돼요. 아하, 세상 모든 것의 용도가 하나로 묶인 것은 아니구나.

뭣보다, 아리에티와 그 가족의 생존방식인 '빌리기'에서 나는 무릎을 탁 쳤습니다. 아, 감탄했어요. 찌리릿. 커피 한 잔 찐~하게 마시고 싶더라고요. 애니의 원제, 원작의 제목을 잠깐 볼까요? '빌려서 생활하는(더부살이) 아리에티(借りぐらしのアリエッティ
)', 혹은 '빌려 쓰는 사람들(The Borrowers)'.

아리에티와 가족은, 우리의 통념으로 보면 '훔치'는 행위를 '빌린'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것을, 아주 조금씩 빌려 가면서 생존을 유지합니다. 그렇다고 당장 인간에게 큰 손해가 닥치는 것은 아니죠. 있는 둥 없는 둥, 결과적으로 인간은 그들에게 나눠주는 형국입니다.


이런 빌리고 빌려 주는 관계에서, 인간과 자연 혹은 세계가 지닌 관계를 떠올리게 됩니다. 인간, 빌려 쓰는 주제입니다. 인간보다 훨씬 크고 위대한 존재인 자연으로부터. 그리고 미래로부터, 어떤 생명들로부터도. 작은 생명이 인간에게 그러하듯, 인간은 자연(지구)로부터 그러하지요. 인간 모르게 필요한 것을 빌려 가는 아리에티 가족과 자연 모르게 필요한 것을 빌려 가는 인간들.

김혜리 씨네21 기자는 또한 그것을 '이삭줍기의 도덕'이라고 말합니다.
"가진 것 없고 약한 사회 구성원이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남아도는 재화를 공짜로 취해 생존을 유지하도록 용인하는 세계가 <아리에티>의 이상이다. 영화는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빌리는 일과 훔치는 일이 다름을 수차례 강조한다. 한데 ‘빌리기’를 더이상 허용하지 않는 시대가 온다면? <아리에티>는 문명의 이기가 필요없는 수렵과 채취의 야생으로 돌아간 소인 소년 스피라를 통해 쓸쓸한 대답을 제시한다." 


솔직히 나는 의심해요. 지금 이 시대, 더 이상 '빌리기'와 '이삭줍기'가 힘을 발할 수 있을까. 한 예를 들어볼까요? 한때 우리에게도 '대지의 여신'이 있었잖아요. 여신의 뜻을 받들고 자연의 힘을 빌어 먹을 것과 살 곳을 빌려서 살았죠. 그런데 지금 시대는 여신을 경멸하고 아예 겁탈을 했죠. '소유'라는 명목으로 빌리기가 아닌 훔쳐 버리고야 만 시대.

그리고 다르다 싶으면 무조건 박멸하고 내쫓고야 말지요. 집사 여자의 행태처럼.해충박멸 회사까지 불러들인 그녀를 보면, 기업(자본)을 통해 모든 것을 통제하고자 하는, 이른바 '문명인'을 보는 것 같습니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집시 추방 조치를 보세요. 21세기는 아직 오지 않은 것 아닐까요. 날짜만 바뀌었지, 우리가 사는 세계는 아직 20세기일지도 몰라요.

많은 것이 사라졌으며 멸망하고 있습니다. 인간소년 쇼우는, 아리에티에게 잔인하게 대놓고 말합니다. "너희는 곧 멸종할 거야. 그건 섭리야." 그런데, 그 말이 꼭 인류를 향해 하는 말처럼 들린 건 왜일까요. 그 말을 내뱉은 인간소년 쇼우야말로 심장병으로 죽어가고 있는데 말이죠. 

잠깐 <마루 밑 아루에티>의 결말에 도달해서, 스포일러라고 할 것도 없어요, 이 애니는 인간의 위협으로부터 아리에티 가족이 무사히 빠져나가는 '해피 엔딩' 구조를 취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걸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긴 힘들더라고요. 이 애니는 느슨하게 뻔한 이야기 공식이 아닌 나름 반전(?)의 형태를 가지거든요.



자, 생각해 볼까요. 인간이 아닌 작은 생물의 세계를 그나마 긍정하고 함께 살기를 바랐던 쇼우. 하지만 그는 큰 수술을 앞두고 이미 생의 의욕을 잃은 조숙한 아이입니다. 아리에티 가족이 '인형의 집'을 새로 얻게 되지 않을까, 허술하게도 생각했으나 그들은 쇼우의 집을 아예 떠납니다. 더 이상 '인간에게 빌리기'를 거부한 게 아닌가 싶어요. 자연주의적, 생태주의적 삶을 사는 듯한 스피릿을 따라간 것을 보면 말이죠. 

인간과 공존하기보다 자신들만의 종족과 뭉쳐 살기를 선택한 아리에티 가족. 결과적으로 인간이 그들을 내쫓은 셈이죠. 그나마 공존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인간인 쇼우가 아리에티에게 멸종 운운하다가 던진 이 말. "죽는 건 너희가 아니라 나야." 어쩌면, 이는 지브리가, 혹은 하야오 할아버지가 인간을 향해, 더 이상 희망으로 포장된 감언이설에 휘둘리지 말자고 건넨 말 아닐까요. 죽는 건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야. 된장, 식빵~ 



하지만, 절망도 완전한 것은 없습니다. 희망이 그렇듯.
대성불패 쿠옹을 맨 처음 꺼낸 이유도 이젠 말씀 드리죠.
아리에티 가족이 새로운 곳에서 자신들의 종족을 만나 잘 정착했는지, 쇼우가 수술을 잘 마쳤는지는 모릅니다. 이 애니는 그것까지 펼쳐 보이질 않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 점을 아쉬워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저는 이 불친절함(?)이 외려 좋았습니다.
"인간이라고 다 무서운 건 아니"라며 인간소년 쇼우를 옹호하던 아리에티의 말에서 '절망의 구'에서 탈출하려는 소수의 모습을 봤다면,

떠나는 아리에티에게 쇼우는 나지막하게 말합니다.
"아리에티 고마워. 너 덕분에 살아갈 용기를 얻었어."

죽기로 결심한, 죽을 것을 예감한 누군가도 아주 작은, 10cm에 불과한 생물의 존재에서 힘을 얻을 수 있구나. 8.8cm의 지름도 33인을 살게 하지 않는가. 살아가야 할 이유, 살아갈 용기를 주는 것은, 당신이 잘 볼 순 없지만, 당신 옆의 하찮은 무엇일 수 있습니다. 가장 보통의 속물이자 평범한 악이었던 내가 지금까지 건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건강하게 이 사회에 썩어 들어가길" 바란 그녀의 말이었듯 말이죠.

쇼우가 수술을 잘 마치고 살아있을까,를 내게 묻는다면, 음, 고개를 도리도리흔들 것 같아요. 매정하고, 냉정한 답변일지 몰라도, 난 그런 생각을 하게 돼요. 하지만, 아리에티가 수술을 앞둔 그에게 준 '살아갈 용기' 덕분에 그저 맥없이 눈을 감진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러니 몰라도 좋을 것은 없습니다. 이 지구상에. 그 작은 존재가 준 선물을 생각한다면 말이죠.

아울러 아리에티 가족은 몇 안 되는 자신의 종족들과 계속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것 같아요. 아리에티가 멸망 운운하던 쇼우에게 했던 이말처럼 말이죠. "우린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아. 다들 나름 열심히 살고 있어!" 아리에티 가족을 보면서 새삼 생각했습니다.

잘 보이진 않아도, 자그만 생물들이 지구상에는 무지하게 많고 그들과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고 있구나. 잘 빌려주고 잘 빌려야겠구나. 우리 살고 있는 이 지구는, 인간뿐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무수한 점들에 의해서 꾸준히 돌아가는구나.

아, 혹시 멀쩡하게 있었는데, 없어진 게 있다면 아마 바로우어즈가 빌려간 것이니, 너무 노여워 마세효~ 아, 애니를 본 뒤 후유증이라면, '내 심장의 일부, 아리에티'가 침대 밑에 혹은 의자 밑에 행여나 있는지 살펴보게 된다는 건데, 아파트는 바로우어즈가 살기엔 참 좋지 않은 환경이에요. 된장. 

* 참, 장난감에 숨을 불어넣은 픽사의 <토이스토리3>와 비교해서 보는 것도 재미있어요. 픽사와 지브리, 미국과 일본, 더 크게는 서양과 동양의 어떤 차이를 엿볼 수 있다는.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2008.12.15 15:40 메종드 쭌/무비일락


이 창백한 아름다움, <트와일라잇>


굶주렸나보다. 피가 필요했나보다. 요즘 뱀파이어 영화가 연이어 나오다니(앞서는 <렛미인>). 그런데 앞서 개봉한 미국에선 난리가 났단다. 10대 소녀들은 관람 내내 여자 주인공이 부러워 한숨을 내쉬고, 뱀파이어 소년의 얼굴을 보고선 까무러칠 정도란다. 극장 안팎에선 ‘에드워드’를 호명하는 것이 대세란다. 새로운 아이돌의 탄생이다. 바야흐로 10대 뱀파이어의 전성시대가 된 것인가. 창백한 아름다움 때문일까. 햇빛을 사랑하는 17세 소녀 벨라(이사벨라 스완)가 햇빛이 싫은 그에게 무방비로 빠지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인걸까. ‘무심한 듯 시크한’ 이 매력덩어리만으로 이 영화, 충분하다. 인간을 사랑한 뱀파이어가 인간이 되고 싶어 안달한 경우는 많아도, 인간이 뱀파이어가 되고 싶은 바람을 가지다니, 어허, 역시나 10대 신세대는 다르도다. 단, 남자들은 조심하시라. (영화 보는 내내) 여자들이 남자친구는 거들떠보지 않을지도 모른다. 쩝, 남자들은 여자친구를 동반할까 말까 고민되겠다. 참, 이 겨울, 목덜미를 훤히 내놓은 소녀들이 많아졌다는 후문이다.왜냐고? 에드워드의 왕림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 탐스런 에드워드의 치아. 빨려도 좋아!



사랑으로 빚은 오스트레일리아 대서사시,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레일리아(호주)’가 뭉쳤다. 이건 숫제 오스트레일리아 정부 차원의 홍보영화라고 무방할 정도다. <물랑루즈>의 바즈 루어만 감독, <디 아더스>의 니콜 키드먼, <엑스맨>의 휴 잭맨… 다들 호주 출신 아닌가. 하나 빠졌다면, 러셀 크로 정도? 혹시 고향에서 사고 칠까봐? 아, 아쉬운 사람도 있다. 지난 1월 요절한 히스 레저. 어쨌든 호주의 광활함과 전쟁의 포연 속에서도 사랑은 피나니. 니콜 키드먼은 개척 시대의 여성을 다시 맡았다. <파 앤 어웨이>에서는 미국의 개척사를 퍼 나르더니, 이젠 고향으로 돌아갔다. 사랑과 개척의 테마는 같은데, 이번에는 남편을 잃은 처지에서 시작한다. 물론 사랑에 빠지고, 역시나 거친 사내와 맞닥뜨려 고생하는 건 똑같다. 그 거친 사내들이 하나 같이 멋진 사내들이어서 문제지(탐 크루즈에 이어 이번엔 휴 잭맨). 호주는 가고 싶은데, 환율 때문에 호주갈 형편이 안 되는 사람이라면, 강추!



거대한 사법권력, 초라한 개인,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우선 이 이름부터 거론해야겠다. 수오 마사유키 감독. 모른다고? 그렇다면 이 영화들, <으랏차차 스모부><셀 위 댄스>. 웃음꽃이 방긋 핀다. 그런 그가 11년 만에 들고온 새 작품은, 이전과 다르다. 법정 드라마다. 그것도 일본 사법재판체제를 고발한다. 일종의 소비자고발이랄까. 동반자는 가세 료. 현재 일본 감독들의 0순위 프로포즈 상대. 내용은 그렇다. 무직의 청년 가네코 텟페이가 만원 지하철에서 성추행 현행범으로 체포된다. 그는 결백을 주장하지만 경찰은 자백만 강요하고 5만엔의 벌금으로 끝낼 수 있었던 사건은 검찰로 넘어간다. 2년여에 걸쳐 10번이나 진행되는 공판. 그 거대한 사법권력 앞에 결백을 주장하는 개인. 일본의 사법관례상 형사재판에 기소될 경우, 유죄를 선고받을 확률은 99.9%. 무죄를 입증하기 위한 피눈물 나는 분투가 보는 이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지만 그건 옳은 불편함이다. 수오 감독이 어느 날 본 신문기사가 발단이었다. 진실과 상관없이 유죄를 양산하는 일본 재판시스템에 대한 울화통에 이 영화를 만들었단다. 그런데 되묻게 된다. 과연 우리는 자유로운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또 다른 마술, <벼랑 위의 포뇨>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번 영화도 사실 전작들과 엇비슷한 것이 있다. 소녀(혹은 여성)가 주인공인 것은 여전하고, 물은 언제나처럼 등장한다. <벼랑 위의 포뇨>에서 주인공은 “따분한 바다는 싫어”라며 육지로 가출을 시도한 물고기 소녀다. 그리고 위기에 처한 순간, 바다의 왕자, 아니 그냥 바닷가에 사는 소년 ‘소스케’ 덕분에 구출된다. 솔직한 포뇨. “포뇨는 소스케가 좋아~” 그러나 물과 육지의 사랑은 쉽지 않다. 우린 <인어공주>때부터 그걸 알고 있다. 엎치락뒤치락, 소동만발이다. 과연 포뇨와 소스케, 어찌될까~요? 자식이나 조카가 있어? 그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지 않으면, 그건 유죄! 확신한다. 그런데 어른인 나도 계속 읊조리게 된다. 포뇨포뇨포뇨~♪ 이렇게 사랑스런 물고기 소녀라니. 아, 난 그냥 포뇨가 좋아~!


시네마유람객 ‘토토의 천국’(procope.org)

영화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무비일락’은 그래서, 나온 얘기다. 그리고 영원히 영화와 놀고 싶은 소박한 꿈도 갖고 있다. “음식은 1분 만에, 음악은 3분 만에, 영화는 2시간 만에 새로운 세계를 맛볼 수 있다”는 말도 믿고 있다. 영화를 통해 사유하는 세계를 좋아한다. 그래서 내겐, 가슴 뛰는 영화를 만난다는 건, 생의 숨 막히는 순간을 만나다는 것 혹은 생을 감식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코엑스몰 내방객을 위한 무료감성매거진 '몰링' 기고]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2008.12.05 14:48 메종드 쭌/무비일락


미야자키 하야오 할아버지 오시네~♪, <이웃집 토토로>

말이 필요 없다. ‘미야자키 하야오’다. 그것도, ‘이웃집 토토로’라니,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그런데 갑자기 웬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집 토토로냐고? 하야오 할아버지의 신작이자 12월 개봉 예정인 <벼랑위의 포뇨>에 앞서, 메가박스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전’을 마련했다. 일종의 팬 서비스다. 사츠키, 메이, 고양이 버스, 그리고 토.토.로. 꺄아아아아아~ 좋아서, 소리치고 싶지 않아? 좋다면, 당장 달려라. 시간이 많지 않다. 30일까지 <이웃집 토토로>외에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3편이 선보인다. 하야오 할아버지의 전작이 아니라 아쉽다고? 쩝, 이게 어디냐. 스크린에서 다시 하야오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는데 말이다. 웰컴, 하야오 할아버지! 




조선 최고 주먹은 누구?, <1724 기방난동사건>

1724년 조선의 기방엔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난동은 누가 부렸을까. 또 하나의 퓨전사극이 온다. 그런데, 이번엔 조폭이다. 대가 끊긴 조폭 영화를 조선에 부활시킨 음모? 글쎄, 그렇게 눈을 부라릴 필욘 없겠다. 주먹들의 얘기가 나오긴 하나, 마냥 조폭영화로 몰아붙일 순 없다. 왜냐고? 여균동 감독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물론 예전 같진 아니하나, 알게 모르게 박힌 시대적․사회적 함의가 끊임없는 당파싸움으로 혼란스러운 영화 속 시국과 맞물려 기시감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르겠다. 조선 최고의 주먹, 천둥(이정재)과 조선 최고의 야심가, 만득(김석훈), 그리고 두 사내의 마음을 홀라당 사로잡은 조선 최고의 미색, 설지(김옥빈). 그저 흘려들어야 할 농담인데, 만득이의 이니셜을 보자니 MD인데, 혹시 MB 동생인가?


 


잊지 않고 찾아왔다, <쏘우Ⅴ>

역시나, 어김없이, 아니나 다를까, 다시 찾아왔다. 벌써 5년 째 시즌마다 찾아온다. 그렇다, 쏘우다. 5번째 이야기다. 미국에선 할로윈 시즌마다 찾아와 박스오피스를 흔들어놓고 간다. 직쏘는 대체 언제쯤 살인게임을 멈출까. 하긴 그건 무의미한 질문이다. 하나의 게임이 끝나면 또 다른 게임이 시작되는, 이 게임의 악순환. 그래서 안심은 금물이다. 이번엔 서로를 모르는 5명의 사람들이 한방에서 깨어난다. 직쏘가 명령한다. 트랩은 1가지이나 모두 연결돼 있다. 열쇠는 5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직쏘가 정한 룰은 ‘함께 풀어라’. 이런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패러디냐. 함께 살아남아야 하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게임. 게임은 시작됐다. 직쏘가 싫거나 지겨운 사람은 그냥 퉁, 치시라.



[코엑스몰 내방객을 위한 무료 감성매거진 '몰링' 기고]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