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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붉은 로자. 불꽃의 여인. 마르크스 이후 최고의 두뇌.
레닌, 한마디 덧붙인다. "그녀는 혁명의 독수리였으며, 독수리로 남을 것이다."
로자 룩셈부르크. 순정한 혁명주의자의 이름.  
급진적이었고, 극좌라는 표현도 잘못된 건 아닐 것이다.
폴란드 출신 독일의 사회주의자인 그녀는 타협을 모르는 불굴의 혁명가였다.

엊그제 장원봉 교수의 협동조합 강연, 로자 누나의 이름이 언급됐다. 반가웠다.
뜨거운 수정주의 논쟁을 펼친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과 협동조합과 관련해 펼친 논쟁의 일부.

로자는 협동조합을 수정주의로 인식했다. 그녀는 주장했다.
"협동조합에게서 무슨 사회성을 발견할 수 있지? 결국 그것들은 개인주의적인 것뿐이야. 결국 개인주의 기업으로 퇴행할 거야."

베른슈타인은 반박했다.
"생산자협동조합은 판매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소비자 협동조합의 구매를 위해 생산한다고!"

다시 로자는 공격했다.
"그렇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세상을 봐. 거대한 제조산업이 성장하고 있고, 그것이 협동조합으로 가능할까?"

베른슈타인, 뜸을 다소 들이며,
"하지만 우리는 산업자본은 노동조합이 통제하고, 상업자본은 소비자협동조합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어."


100년 전이었다. 결과적으론 로자의 주장이 옳았다. 
급격한 시장화와 제도화가 진행되면서 이전에 발흥했던 사회적경제는 퇴조했다.
복지국가의 도래도 협동조합이 약해지는데 한몫했다. 국가가 협동조합의 몫을 대신했으니까.

로자는 어쨌든 대처 이전 '철의 여인'이었다. 물론 대처와 판이하게 다른 철학과 사상으로 실천한.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사회. 로자의 신념과 이상은 그에 기반했다. 실패도 그녀에겐 자극일 뿐.  

로자가 마지막에 남긴 글은 이랬다.
"그러나 혁명이 가진 특수한 생명 법칙이 있다면 그것은 거듭되는 패배를 통해서만이 최후의 승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말, 바꿔말하면, "씨바, 쫄지 마!"
즉, 패배는 혁명의 '스펙'이다. 스펙을 그만큼 쌓아야, 승리도, 혁명도 가능하다는 법칙.

결론은 이렇다.
나로선, 로자 룩셈부르크와 커피의 친연성은 알 수가 없다.
다만 순정한 혁명주의자였기에 그녈 떠올린다면 1월15일의 커피는 '리스트레또'.
커피 향과 맛을 좌우하는 성분 중심으로 뽑는 리스트레또가 맞다.
잡맛을 가능한 제거한 순정한 에스프레소의 엑기스.  

로자는 93년 전인 1919년 이날, 살해당했다. 비극, 그 자체였다.
한때의 동지가 집권한 가운데, 군인의 개머리판에 머리를 맞고 확인사살당했고 강에 버려졌다.

그 죽음,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이렇게 노래했다.
"붉은 로자도 사라졌네/ 그녀의 몸이 쉬는 곳마저 알 수 없으니/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유를 말했고/ 그 때문에 부유한 사람들이 그녀를 처형했다네."  


한명숙
1월15일. 1919년 로자는 죽었고 2012년 한명숙은 민주통합당 당대표가 됐다.
한 여성이 죽고, 한 여성이 일어났다. 1월15일의 커피가 '리스트레또'가 돼야 할 또 하나의 이유.

아 물론, 로자와 한명숙은 너무도 다른 인물이다.
'무죄녀' 한명숙 대표, 청렴한 행정가일 수 있겠다. 반MB정서를 업고 야당 대표로까지 올라섰다. 잘된 일이다. 그것도 여성이. 격하게 찬성!

그러나, 냉정하게. 한 대표가 정권을 바꾸게 하는데 일조할지는 모르겠다. 
한명숙(으로 대표되는 세력)이 인민의 삶을 바꾸진 못할 것이다. 혁명은 없다.   
지금 엄혹한 1대99 시스템을 바꿀 정치인, 아니다. 나는 그들의 개혁(가능성)조차 회의한다.
근본적 모순에 대한 언급도 없고, 반성도 미미하다. 그 모순을 해결할만한 콘텐츠도 미약하고.

더 냉정하게 투표로 이들 세력에게 권력을 준들,
그들이 김대중·노무현 시대의 반성과 성찰, 깨달음을 통한 실천을 못한다면,
우리는 투표 기계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투표만 하면 뭐든 바뀐다고? 조까라 마이싱. 내가 보기엔 그들은 로자가 아니다.
결국 인민이 말을 하고 행동해야 한다. 투표보다 직접 액션을 통해 점령해야 한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월호, 세르주 알리미 발행인의 말을 담아둬야 할 이유. 
"만약 올 한 해 동안, 권력을 휘두르는 금융자본을 제어할 적절한 수단과 정치적 의지가 표출되지 않는다면 모든 선거는 쓸데없는 짓이 될 것이다."
 


직접 눈으로 확인한 바는 아니지만,
독일 베를린의 지하철 한 역 이름이 '로자 룩셈부르크'라더라.
그 언젠가 1월15일엔 로자 룩셈부르크 역에서 리스트레또 한 잔을.

아 물론, 강철 여인, 혁명의 독수리에게도 사랑은 있었다.
리투아니아 출신 사회주의자 레오 요기헤스. 로자의 오랜 스승, 동료, 연인이자 사실상 남편.
고종석에 의하면, "독립 여성의 상징이라 해도 좋을 로자가 레오 앞에서만은 순한 양이 되었다." 로자가 레오에게 보낸 연애편지, 참으로 달큼하다. 로자라는 한 여자안에서 나온 것인지, 우와~

혁명은 사랑과 함께다. 커피도 사랑과 함께라면, 이날의 리스트레또는 달금하다.  


룩셈부르크
로자 '룩셈부르크' 얘기기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룩셈부르크의 속담 중 하나. (으응?)
"룩셈부르크인은 혼자 있을 때 장미밭을 가꾸고, 둘이 모이면 커피를 마시고, 셋이 모이면 악단을 만든다." 그렇게 커피를 들입다 마시니, 이런 통계도 나온다.

2010년 기준 27.2kg.
룩셈부르크 한 사람당 1년에 소비하는 커피의 양이다. 세계 최대란다. 한국? 
같은 해 기준 1.9kg이다. 전 세계 34위. 그래봐야 룩셈부르크의 1/14이다. 


루니 마라(루느님!) 
여자 얘기 또 안 할 수 없는데, 나, 한 여자한테 단단히 뿅 갔다.
이토록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이라니! 일은 물론이요, 자기 앞가림도 끝내주게 잘한다.  
용 문신한 여자가 이리 치명적일 줄이야. 격하게 애정할 수밖에 없는 여자, 루니 마라!!!
데이비드 핀처판 <밀레니엄>히로인이다. 남자주인공 미카엘 역의 다니엘 크레이그, 저리 가~

얼굴과 몸 곳곳엔 피어싱, 등에는 용 문신, 가죽점퍼로 간지를 뽐내고 줄담배를 피우며 오토바이를 모는 폭주족, 리스베트 역의 루느님.

그녀가 극중 법적보호자인 변호사 닐스(요릭밴 와게닌젠)의 변태성행위에 복수하면서부터, 나는 훅~ 갔다.

미카엘을 죽음 직전에서 구하고,
그에게 May I Kill? 하고 묻는데, 씨바, 얼릉 죽여 줘, 죽여 줘, 뒤따라다니면서 외치고 싶었다.

한 마디로 '마성'!
예쁘진 않은데, 이뻐~
그 미친 존재감에 내 눈은 번쩍, 귀는 쫑긋, 말초신경은 아~
아드레날린 강하게 돋는다. 보장한다. 이 여자만으로도 충분하다.

리스베트가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미카엘을 사랑할 때, 나는 한없이 미카엘이 부러웠더랬다.
그녀의 온몸을 더듬고 애정하는 미카엘이 되고 싶었다.
물론 마지막 장면, 그녀는 끝까지 쓸쓸하고 멋지다. 
뻔하디뻔한 금발 편집장과 시간 보내려 리스베트의 사랑을 소외시킨 미카엘, 바보에 멍충이다.
여자 볼 줄 모르는 병신. 내게 이런 여자만 있어봐라. 평생 뫼시고 산다!

이런 파격은 드물다.
루니 마라, 단숨에 줄리아 로버츠, 스칼렛 요한슨과 동급으로 내 여신전에 올랐다. 루느님~

강한 여자에 대책없이 끌리는 나는 역시 '강한 여자종속형 수컷'일세.ㅋ



남자3호
남자 3호, 재밌고 신나는 경험.
내가 찍은 여자는 매력투성이에 마성이 보이건만, 아무도 안 찍는다.
선물만 줬다. 나도 염치를 아는 사람이니까!ㅋ   
그녀, 독립적이고 자주적이며, 자신의 서사를 가진 사람 같았다.
살면서 어떤 변수가 그녀에게 개입할진 몰라도, 내 느낌이 맞다면,
그녀는 더 멋있는 마성의 여자이면서 아름다운 사람이 될 것이다.

헤이데이의 캘리그래피. 멋있다!


아울러,
10만 년 전에 내가 여자였다는 것도 알았다.
나는 얼마나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여자였을까? 궁금해졌다.

그나저나, 내 이름은 왜 이리 제 각각이야. 쯧.  
인디언식 이름. 웅크린 태양의 그늘(그림자) (음력. 웅크린 늑대의 고향)
조선식 이름. 소싯적 마당쓸던 기생오라비. (팡 터졌다.)
일본식 이름. 아이노 켓쇼오. 사랑의 결정.
중세식 이름. 알버트 콘라드. 대단히 뛰어난 수다스런 조언자.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한 며칠, '봄비'가 왔다. 꽃샘추위와 함께 나린 비.
감히 봄비라고 붙이기 민망했던 비. 춥다.

그 빗속, 문득 심장이 기억한다.
길모퉁이를 돌다 우연이라도 만나진 못하지만,
다시 만나도 더 이상 가슴이 뛰지 않을 것을 알지만,
아직도... 두근두근.

봄, 많이 아팠다.

아팠고, 아팠고, 아플 수밖에 없었던 그 지나간 봄.

함께 지을 수 있는 우리의 말간 웃음이 없었던 유일했던 계절.

 
그래도, 나는 봄이 좋다.
이유? 그냥 봄이니까. 봄봄봄.
그러고보니, 난 싫어하는 계절이 없다. 싫어하는 날씨만 있을 뿐.

지난달 20일, 밤삼킨별 카페를 처음 찾았던 기억.
희한하게, 몹쓸병도 생각났다. 아무도 모를 내 어떤 흔적.


너, 나 보고 싶니... 기억 하니... 아직도.. 두근두근

[현장취재] 『사랑에 다친 사람들에 대한 충고』 더필름


‘몹쓸병’.

수 년 전, 아무도 모르던, 내 첫 블로그에게 부여한 이름.

녀석은 툴툴 거렸을 것이다. 내가 토해놓은 몹쓸 얘기들 때문에.

기억의 토사물을 거르지도 않고 받아냈어야 할 괴로움 같은 것.

지금은 없다. 몹쓸 짓도 오래하면 질려. 녀석에게도 미안했고.


기억을 떼는 가게.

사랑에 다친 사람들이라면,

생각해봤음직한 솔깃한 소리.

미셸 공드리<이터널 션사인>은,

그것을 보여줬으나, 결국 어쩔 수 없더라.

그 기억은 어떻게든 꿈틀댄다.

내 DNA에, 내 몸에,

내 심장에 박혔던 또 하나의 생명.

어쩌란 말이냐. 그 기억 없인 나는, 내가 아닌 걸...

 

실연, 이라고 표현하자.

사랑이 떠났다. 사랑에 다쳤다.

그 처 죽일 놈의 사랑이 내게 번지지만 않았어도.

실연의 아픔. 그러니까, 어떻게든 사랑에 다치고 앓았던 순간. 모든 것은 잿빛이었다.

몸도, 가슴도, 머리도.


그 언젠가, 이렇게 적었지. 말하자면, 실연 극복법!


실연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는, 실연을 현실 그 자체로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대를 만나고, 그대와 마주보며 숨을 쉬고, 그대를 안고서 힘이 들면 눈물을 흘릴 수 있었던 시절은 갔다. 실연은 그 모든 것을 추억으로 품게끔 강요한다. 그 강요로 인해 나는 갈증에 시달리고, 길을 걷다 눈물에 젖고, 골방에 처박힌다. 세상 모든 슬픈 노래는 나의 몫이다. 그럼에도 나는 실연을 온전히 나의 몫으로 감당한다. 실연으로 인해 나를 둘러싼 세계의 변화는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실연 이후의 나의 모든 행동과 의식 모두가 그 강요의 극복을 위한 것이다. 실연을 실연 그 자체로 받아들일 때 진정한 극복은 이뤄질 수 있다. 믿지 못할, 아니 믿기 싫은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 그것이 내가 실연에 대처하는 자세.


한편으로 실연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왜 극복해야 하는가. 실연은 실연 그 자체로 소중한 경험이다. 실연이 없었다면, 미처 경험하지 못할 행동과 감정이 지배할 것이다. 그래서 실연은 우리 생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 실연을 소중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실연 이전의 사랑을 생각하라. 사랑에 고마워해라. 나의 세계가 넓어졌음에. 또한 실연으로 나의 세계가 더 넓어졌음에.


사랑, 참 죽지도 않는 인류의 레퍼토리.

아마 영원히 죽지 않겠지.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또한 사랑과 이별.

왜냐고? 그 사람과 나의 사랑은, 이별은, 세상에 단 하나니까.

어느 사랑과도, 어떤 이별과도 같지 않은 오직 그 사람과 나만의 것.

사랑이 불온하듯, 이별 역시 불온하지. 왜냐고? 모든 것을 바꿔놓으니까.


그러면서도 난 우스워.

하루 종일, 빈틈없이, 촘촘하게, 네 생각만 하던 내가,

내겐 말이야, 온전하게 그 존재만으로도 세상이었던 너였는데,

그렇게 우리, 한때 너와 나라는 우주의 모든 걸 바꿔 버릴 만큼 사랑했는데,

이제 아무 느낌, 욱신거림도 없어. 왜 이러지. 나, 이래도 돼? 당신, 그래도 돼? 


길었다. 괜히. 사랑... 얘기라 그래. 알지?

지난 20일. 펄펄 날던 겨울 추위를 진정시켜 잠시(?) 멀리 떠나보낸 토요일의 햇살 푸르른 오후. 서울 압구정동 B.B카페. 올해로 아마 4년 째, 매년 도란도란 이야길 나누는 내 다이어리 친구의 산모, 밤삼킨별(bamsamkinbul,  http://blog.naver.com/bamsamkinbul)이 빛난다는 장소. 이날, 별빛에 어우러진 이야기와 음악을 들려준, 『사랑에 다친 사람들에 대한 충고』(더필름 지음|바다봄 펴냄) 저자의 북콘서트 겸 쇼케이스. 더필름. 노래하는 가수이나, 오늘만큼은 책의 저자로 다가오다. 사랑에 다친 사람들에 대한 충고 혹은 위로, 아니 독설(?)이었나. 정오를 약간 넘어선 시간, 자신에겐 정말로 이른 아침이라며 잠을 제대로 못자서 눈 아래 시커먼 원(다크서클)을 그려 넣은 로티(롯데월드 캐릭터)의 모습으로. 사랑에 다쳐본 당신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


바보들에게, 바보 같은 이들에게...



더필름의 이야기를, 노래를 듣기 위해 혹은 그를 만나기 위해 맹렬히 달아놓은 댓글들.

어쩌면 감성포엠에세이, 『사랑에 다친 사람들에 대한 충고』에 꽂힌 댓글들.

댓글에 담긴 마음길. 그래서 그 안에는 그 사람이 있다.

댓글로 떠올리는 그 이. 때론 재미있고, 때론 신기하다.


긴 것보다 짧은 게 더 강렬하더라고요. (웃음)

바다봄(출판사)에서 웃으면서 (댓글을) 넘겨줬는데, 밑줄 그으면서 읽고, 테마를 잡아봤어요. 첫 번째 분, 무척 강렬했어요.

‘사랑에 대한 고질병이라고요? 없다고 볼 수밖에요. 21도짜리 소주 댓병으로도 치유되지 못하는 것 아니에요?... 사랑에 다친 사람들에 대한 충고라뇨? 사랑이 아니라 사람이겠지요.’


처음 느낀 건, 이건 혹시 분노? 헐~ 왜 이리 분노에 차 있을까.

다시 읽어보니, 흠.. 이 책의 주인공에 어울리는 분이 아닐까.

상당히 강렬한 분노가 느껴지긴 해도, 나도 그런걸 뭐.

분노가 있어야 글도 써지고, 음악도 나오거든요. 

이 분 덕분에 영감을 받았어요.



잠깐 돌아가자면,

감성포엠에세이의 탄생 비화.

미니홈피에 글을 썼어요.

3년 전 헤어진 사람이 있었는데, 소주 21도짜리 댓병을 마시고, 에잇...


처음부터 충고하겠다고 쓴 것? 천만에!

사람들은 그래요. 충고가 아닌 위로가 아니냐.

제가 생각하기도 위로가 맞아요.

그러면 사람들이 잘 안 볼 거 같아. 제목이 자극적이어야 당신들도 볼 거잖아요.

도전을 불러보는 제목으로 가자! 이놈은 대체 뭔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이기에...

그러니까, 낚시질?


“‘사랑에 다친 사람들에 대한 충고’라는 글을 책으로 펴내자는 제의를 처음 출판사로부터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머릿속에 든 생각은 ‘내가 그럴 자격이 되나?...’였습니다. 충고라니. 세상에서 가장 사랑에 바보 같은 사람일지 모르는 내가 충고라니. 사랑에 관한 내 개인적인 오답노트를 공개하는 거잖아요. 창피했습니다. 저는 물어봤지요. "제가 그럴 자격이 됩니까?" 그랬더니, 출판사 측에서 웃으면서 "물론이죠, 됩니다, 되고 말구요.." 하시더군요. 왜 웃으셨을까요? 세상에서 가장 바보 같아 보이는 내 질문에 웃음이 나신 걸까요?”(p.344)


(사랑의) 상처에 많이 데여서 날카로운 턱 선을 가진 가녀린 이미지를 상상해요?

예민하고 섬세한 그런 전형적인 이미지?

고생 안 해봤을 것 같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어요. 동글동글해서.

그렇다고! 상처가 없는 것 아니에요. 섣부른 선입견은 금물.


알죠? 선수들은 외려 충고를 잘 안 해요.

책의 전체 테마로 잡은 것 중의 하나가 바보. 저 같은 바보가 많은 것 아닐까.

그런 분한테는 제가 먼저 아파본 사람으로서, 특정화된 사람들에게 향한 충고는 맞지만.

오늘 제 홈피(www.cyworld.com/mightbe)에 들어가서 ‘사랑에 다친 사람들에 대한 충고’를 포스팅 했어요.

딱 3000회 때, 봤어요. 기분 좋더라고요. 3000회의 바보들. 우린, 그렇게 바보들.



“어쨌든 이 책을 집어든 사람은

나 같은 바보들일테지요.


어쨌든 이 책을 보며

옛 기억에 젖은 사람들은 바보들일테지요.


어쨌든 이 책을 읽으며

한 장면이라도 저와 같은 추억을

떠올린 사람들도 바보들일테지요.


어쨌든 이 책을 연인에게 넌지시 건네 놓고

아닌 척, 쿨한 척 얘길 꺼내는 사람들도

바보들일테지요.


어쨌든 이 책을 가져와

‘따뜻한 음악이라도 들으면서 읽어야겠다’ 싶은

당신도,

나도, 

우리도,

바보...들 일 테지요.


맞 죠?

맞 지 요 ?


.. 아닌가요?

바보들만 읽으세요.

바보가 아닌 사람은 읽지 마세요.


이 책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보들에게 바칩니다.” (p.347)


한 곡 들려드릴게요.

저 원래 상처 안 받고 해피하게 살았던 사람인데. 하하.

지금 3집을 내서 활동 중인데, 1집이 되게 순수해요.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2~3학년 때까지 썼던 글인데, 이런 곡을 썼어요.

상처 받기 전 음악이에요. 이후 상처받고 상처가 깊어지는 단계로.. ㅎㅎ

이루마와 친구인데, 이루마의 앨범에 들어간 곡이기도 하고, 제목은 ‘드리밍 보이’.

당시엔, 이런 감성을 갖고 살고 있었어요. (음악 ♪)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노래


봄. 제일 좋아해요.

그래서 봄엔 아픈 얘기를 넣기 싫더라고요.


“잘 해보면 된단다 -

동서고금 막론하고 싫어하는 사람과

맛난 식사 하러 나오는 사람 없다는 것 -”


“그 사람이 정말 그 음식을

좋아해서 나오는 걸 수도 있잖아요.”


“어허, 이 바보야,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p.98 추억 IN SPRING 중에서)


댓글을 보고 테마를 만들고, 분류법을 했어요.

어떤 분은 단계가 아직 겨울이에요.

첫사랑이 그리우면 겨울. 

봄은 막 시작한. 뭔가 아시는 분들은 여름. 소주 댓병은 가을. (웃음)

가을을 뛰어넘어 도인 같이 이런 분들은 늦가을(후유증).


이쯤에서 겨울 감성에 어울리는 곡을 들려드릴게요.

먼저 낭독. “기억 IN WINTER 겨울엔 그 사람이 한 없이 그립습니다. 겨울엔 조금 아픈 기억들이 생각납니다. 겨울은 그 사람의 생일이 들어있는 계절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감정이 생기면

마음은 땅에 붙어있질 못해


아무리 묶어두려 해도

하늘로 붕 -

뜨려는 습성이 있어


많이

다쳐봤으면서,

많이 

아파봤으면서,


다시는 올라가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울며 다짐 했으면서

마음은 마치 풍선과 같아 (p.50, 기억 IN WINTER 중에서)


이어진 곡은 ‘안녕’. “니가 보고 싶을 땐 난 이렇게 말해...♪ 안녕...♩”


이 노래,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왠지 노래만 들으면 사랑 많이 해 본 사람 같고, 상처 엄청 입은 사람 같고.

전 이게 풋사랑 같더라고요. 이때가 예쁜 거 같아요.

상처 받고 나서 사랑에 대한 주관이 생기면 삼신할머니가 와도 전혀 굴하지 않고 자기만의 논리를 펼 때가 와요. 누구나 한 번씩은 겪어봤잖아요. 번호 지웠다 살렸다...


이런 분도 있어요. “고질병이라서 처방전도 없는 거 같아요. 이젠 아프면 또 시작이구나, 하며 무덤덤해 지는 게 슬프군요.”

이 단계는 후유증이에요. 이런 분들은 한 바퀴가 도는 거죠. 사이클.

전 지금 가을과 늦가을 사이인 것 같아요. 가을에서 다시 풋풋한 겨울로만 갈 수 있다면 그게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텐데. 이 단계에서 삐뚤어질 수도 있거든요.

후유증 단계를 보면 동병상련이 느껴져요.



가을에 맞는 노래가 있어요. ‘누구시죠’.

책 사신 분도 있겠지만, 이런 공연은 뭘까, 궁금해서 오신 분들도 있잖아요.

지금 들려드리는 곡은 음원이나 컬러링으로 찾아볼 수 없어요.

책을 사시면 보내드리는. (웃음)

책 내고 만든 곡이에요. 메일로 보내줘요.

CD로 안 보내준다고 악플 다는 분 있다는데, 이건 제작비가 많이 들어서... (웃음)


(음악 ♪)


어때요? 

앞서 불렀던 ‘안녕’과 감성이 같으면서도 다르죠?

이 노래 가사 써놓고 마음에 들었어요. 보통 가사와 멜로디가 같이 나오는데, 이 곡은 처음에 누구시죠? 라는 말이 입에서 맴돌았어요. 비슷하죠? 아시나요~ (웃음)


이런 노래에요.

정말 좋아했던 사람 사진을 보고 얘기하는 거예요. 근데 그 사진이 갑자기 낯선 거야.

오그라들죠? 제 책을 보면, 오그라든다는 얘기를 많이 하세요. 하하.

저만의 감성을 표현한 거예요. 실젠 늘 그렇진 않아요.

누구나 혼자 추억할 때는 자기만의 감성이 있잖아요.

이 가사를 쓰고 너무 슬펐어요.

이 사진을 보고 낯이 선 걸 떠나, 너 누구냐고 덤덤하고 말하는 것에...


이런 댓글이 있네요. “저 지금 많이 아파요. 누구는 사랑도 익숙해진다는데 점점 더 아파요. 그래서 사랑이 두려워요...”


전 애인 없이 ‘공식적으로는’ 3년이 됐어요. 가슴 설레고 이런 건 없어요.

‘이 사람이랑 헤어지면 나도 이제 삼십대 후반인데...’ 그런 두려움이 아닐까요.

서른 셋 넷 정도 되면 결혼이 아니면, 두려운 단계인 것 같아요. “처방전을 받고 싶어요. 훌훌 털고...” 그렇게 말씀 하셨으면서 처방전 받으러 안 오셨어요. (웃음)


오늘 노래도 많이 들려드리고 싶었는데, 제가 되레 재밌네요. 하하.

제가 연예인이라는 생각은 안 해요. 연예인 이전에 곡과 글을 쓸 때 행복한 사람이거든요. 연예인이라고 생각하면 내 마음이 떨어질 거 같아요.


제가 가장 열심히 하는 일 중 하나가, 1촌을 맺어서 답글 열심히 달고, 사는 얘기를 듣는 거예요. 1촌을 하자고 말씀 드리는 거예요. (웃음) 

사랑에 다친 사람들에 대한 충고...

계절마다 한 번씩 하려고요.

봄엔 봄에 맞는 얘기, 겨울엔 겨울에 맞는 얘기하고. 제가 들려드리고 싶은 노래를.

오늘, 첫 발을 내디뎠어요. 봄에 이런 식의 북콘서트는 없지만, 이런 감성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심 되고 콘서트는 할 거에요.



근황인데요. 3월말에 두 번째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데니안이 피처링을 해주는데, 그 곡으로 두 번째 에피소드 활동을 할 거고, 슈퍼스타 K의 서인국씨와 작업을 하게 됐어요. 3월 아닌 그 다음 싱글에 타이틀곡으로.

소녀시대의 한 멤버와 듀엣곡도 부르고, JYP와도 작업을 하고 있어요. 랩곡을 써달라는.

요즘 의욕적으로 재밌게 하고 있어요. 제 음악적 근간이 변하는 일은 없을 거고요.

마지막으로 요즘 홍보하는, 겨울 아닌 봄 같은 노래, ‘아직도.. 두근두근’ 들려드릴게요.


나는 소망한다, 이별해도 사랑하기


더필름이 주는 충고? 위로? 독설은 여기까지.

그리하여, 나도 마무리하자면,

사랑에 다친 사람들이 또 다른 누군가와 사랑할 수 있길.


사랑에 다쳤다고, ‘내겐 더 이상 사랑 따윈 없어’라며 자폭하는 것보다,

다친 상처․통증 감내하고, 다시 사랑하는 거. 나와 당신 모두.


더 가능하다면,

만남의 기술보다 이별의 지혜가 있는 사람이 됐으면.

만남이 우연에 의해 조작된다면, 이별은 의지가 작동하는 법.

살다보면, 이별이 필요할 때도 찾아오기 마련.

진즉 끝냈어야 할 것을 질질질 끄는 이별, 완전 나빠.

사랑하는 동안, 다 쏟아. 어설프게 꼬리를 남기고 마는 애정, 완전 나빠.

“가장 슬픈 이별도 나쁜 지속보다는 낫다”는 말, 그래서 왕공감.


그럼에도, 예전에도 언급했듯이,

방금 한 말, 글머리에 씨부렁거린 말, 말짱 관념의 퍼즐 맞추기. 즉, 허섭한 머리놀림.

사랑이 그러하듯,

실연 또한 교훈적이 아닌,

실존적으로 하는 법.

사랑에 다치게 만든 그 작자(?)가 다른 누군가와 행복하길 빌어줄 수 있는 건, 아마 일백만 년이 지난 후.


실연.

세상 무엇도 그 무게감을 이겨낼 수 있는 건, 장담컨대 없다. 잘못이라면 시작했다는 것!

흑, 그러나 세상 모든 연애가 그렇지 않더냐.

변할 것 빤히 알면서도, 세월의 풍화작용이 모든 감정의 결을 깎아낼 것을 알면서도, 무모하게 감정을 배팅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겪었고, 겪을 사랑이 아니더냐.

당신의 사랑, 돌아보라. 그렇지 않은 적 있나?

아니라고? 그럼, 그건 사랑 아니다. 장담한다.


실연. 

폭탄이다. 나는 이 말, 철저히 동의한다. “세상의 모든 일 가운데 가장 슬픈 것은 개인에 관계없이 세상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연인과 헤어진다면 세계는 그를 위해 멈춰야 한다.” ‘트루먼 카포티’가 자신의 소설에서 읊은. 그건 세계가, 우주가 빅뱅하는 거다. 한 우주가 사라지는데, 오죽하겠나.


그렇다. 실연의 아픔은, 사랑의 시작이 언젠가는 스러질 운명과 함께 한다는 단순한 섭리를 받아들여야 하는 고통에서 비롯된다. 사랑에 다친 사람의 잘못도 엄연히 있다. 그 섭리를 알고 있으면서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 실연은, 알면서도 준비할 수 없는 벼락같은 것. 비 올 것을 알았으면서도, 우산을 준비하지 않은 것.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에 다친 사람들에 대한 충고? 위안? 독설? 커피 만드는 내가 그런 당신을 위해 준비할 수 있는 건, 이탈리안 로스팅을 한 독한 에스프레소의 엑기스를 뽑아낸 리스트레또(ristretto). 아마, 그 검은 액체가 당신을 지독하게 감싸줄지도. 아니라면? 딴 거 없다. 뽑은 거, 내가 대신 마신다. ^^; 



알코올만 취하는 것, 아니다.

커피에 취해, 이렇게 내뱉을지도.

너, 나 보고 싶니... 기억 하니... 아직도.. 두근두근


[예스24 기고원문]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