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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가 진행될수록
사물들에 대한 더욱더 많은 새로운 사실들이 인간의 마음과 정신을 꽉 채울 것이다. 
                                                                      - 에드워드 O. 윌슨,  《바이오필리아》

 

차가 꿀렁거린다. 

수도 딜리의 풍경과 또 다르게, 산지는 어쩔 수 없이 역시 산지다. 꾸르릉꾸르릉. 차의 꿀렁거림은 당연한 것이다. 처음 만난 이방인을 등짝에 태우기까지 했으니, 차라고 오죽하겠나. 나도 꿀렁, 차도 꿀렁. 우리는 그렇게 꿀렁거리는 것으로 하나가 됐다.  

나의 꿀렁거림은 설렘이다. 커피는 평지에서 자라지 않는다. 산지형 생물이니까, 나는 그를 만나기 위해 당연히 올라가야 한다. 평지형 인간이 산지형 생물을 만나러 가는 길, 평탄한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동티모르의 풍경은, 다른 동남아의 것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트럭이든 버스든, 사람을 꾸역꾸역 매달고 다닌다. 뒤뚱거리듯 왠지 불안해도 가기도 잘도 간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매달린다. 갖가지 자세와 표정으로 차와 합체한다.  

나도 군대에서 군트럭에 매달려봤지만, 저렇게까진 해보지 않았다. 꿀렁거려도 편하게 가는 내가 약간은 미안하다. 
 


달리 말하면, 동티모르는 아직 모터리제이션(Motorization) 사회가 아니다.  


자동차가 일상과 밀접하게 관련되고 광범위하게 보급돼 있지 않다. 다행이랄까. 모터리제이션이 본격 진전되면, 당신도 알다시피 자동차를 놓고, 사람을 가르는 일이 비일비재해진다. 차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부터, 어떤 차를 소유하고 있는가로 사람을 평가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저항 없는 일상이 된다.  

물론 동티모르에도 차는 꼭 필요하다. 나 같은 평지형 인간이 높은 커피 산지를 갈 수 있는 건, 차 덕분이다. 평지형 인간에게 아웃도어의 후원·협찬이 있을 턱이 없잖나. 커피를 만나고픈 마음에 자리한 것은 등정주의도 아니요, 등로주의도 아니다. 오로지, 날 받아아달라는 애원과 한 없는 겸손. 내 일상을 지배하는 커피를 키운 대지를 만난다는, 득템의 순간을 향한 종종걸음. 

다시 더 자세하게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커피는 모순의 시대를 뚫고 분출한 액체다. 커피를 본격적으로 들이키기 시작한 시민사회 형성기로 돌아가보자. 시민사회의 이념적 동력이 뭔가.  

자유, 평등, 박애!  

커피라는 검은 혈액의 투여 혹은 흡입. 근대적 시민의식의 형성은 커피를 일정부분 빚졌다. 커피하우스에서 이뤄진 작당모의. 커피는 지성을 깨우고(잠을 못자게 하고), 토론을 빚었다(수다를 이끌어냈다). 

그럼에도, 그 시민사회는 자국 울타리에만 머물렀다. 그것도 주로 남성들에게만! 물론 그 시민사회는 완성형이 아니었다. (내 부박한 지식으로, 한국은 언제고 시민사회를 제대로 열어젖힌 적이 없다. 지금까지도!) 울타리 밖으로 나갔을 때, 자유, 평등, 박애라는 시민사회의 이념은 탱자가 됐다. 인종주의나 쇼비니즘(배외주의)이 그것이다. 씁쓸하지 않나? 

지들 나라의 시민사회 완성을 위해 식민지를 두고, 커피를 마시려고 식민지에 커피나무를 심게 했다. 당시 많은 열강이 그랬다.



구름과 안개가 산을 에워싸고 있다. 저것이 커피가 자라는 풍경이다. 열대의 어딘가에 나는 있는 것 같았다. <아비정전>의 시작과 끝을 장식했던 필리핀의 열대우림이 떠올랐다. <아비정전>의 슬픔 띤 정조와는 달랐으나, 동티모르라고 왜 슬픔이 없겠나. 커피나무도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
다. 

차는 오르고 또 오르고 넘고 또 넘는다.

재밌는 건, 조디와 하 대표님의 말(언어)은 통하지 않으나 말(소통)이 되는 대화가 계속 되고 있다.  두 사람은 이미 친구다. 잘 생긴 수줍은 청년 조디와 유쾌하고 즐거운 하 대표님의 조합은 꽤나 어울린다. 

어디에도 같은 풍경이 없으니, 심심하지 않다. 중간중간 쉬면서 나는 나무를 바라봤다. 나무가 품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물론 내 공력으론 어림도 없다. 아쉽고 슬픈 일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달렸다. 어스름도 지나갔다. 어둠이 깊다. 마우비스(Maubisse)란다. 딜리에서 약 70km 거리라지만, 척박하고 험준한 산지를 오르내리다보니 시간은 꽤나 걸렸다. 해발 1400m에 위치한 산간 마을.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밤하늘이 훌쩍 내려앉아 있다.  

우리가 묵은 곳은 과거 식민시대 포르투갈 성주의 거처였던 곳이다. 현재는 게스트하우스 비슷하게 운영되는데, 객실이 6개, 레스토랑이라고 말하기 힘든 식당이 있다. 겉으로 보아, 나름 운치가 있다. 물론 동티모르는 관광시설이나 편의시설을 거의 기대할 수 없다. 편안하고 안락한 여행? 그런 건, 동티모르에선 저 멀리 안드로메다의 얘기다.   

대신, 깊고 깨끗하다. 그 깨끗함, 우리가 길들여진 청결함과는 또 다른 것이지만.


기분이 약간 묘했다. 포르투갈 성주의 관사라. 저 아래 동네가 보였고, 성주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통치를 했던 것 같다. 모든 것이 오래되고 낡았다. 시간이 멈춘 것 같다.  

포르투갈은 시민사회의 형성이 부실했었다. 동티모르를 식민지로 삼았을 무렵인 16세기, 포르투갈은 해양왕국으로 자리매김할 시점이었다. 동티모르도 포르투갈의 식민지 경영의 희생자였다. 포르투갈은 식민지를 통해 노예 획득은 물론 주요 농산물을 거둬들였다. 커피도 나중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곳의 성주도 본국에 가져갈 커피를 관리하는 것이 가장 큰 임무였을지 모른다. 해발 1400m의 깊고 깨끗한 아라비카 커피를 찾는 포르투갈 왕조와 귀족들의 명령 혹은 앙탈 때문에.  

덕분에 동티모르 사람들은 노예처럼 일을 했을 것이다.  

성주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마지못해 임무를 완수했지만 동티모르 사람들에게 관대했을까, 아니면 채찍을 들고 노동을 착취했을까. 

해상왕국 포르투갈에는 막대한 부가 쌓였으나 국부 유출 등으로 부르주아 계급이 형성되지 못했다. 즉, 시민계급이 만들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18세기 후반 개혁 시도 등이 있었으나 봉건세력의 반발로 무위가 됐고, 프랑스혁명 등의 영향이 파급된 19세기에도 중산층은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동티모르가 포르투갈의 식민에서 벗어난 것은 20세기 포르투갈 내부의 혼란에 힘입었다. 20세기 초 국왕 왕살과 공화파의 혁명으로 공화제가 성립했으나 거듭된 쿠데타와 제1차 세계대전 참전에 따른 경제위기 등으로 혼란 그 자체였다.  

마우비스의 성주도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본국에 돌아가지 않기로 마음먹고 이곳 사람들에 동화한 시간이 많은, 널찍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동티모르의 자연과 커피에 취해 그는 그냥 눌러앉기로 했을지 모른다. 그곳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곳이다. 


저녁을 먹어야 했다. 배가 고팠고, 동티모르에서의 첫 식사. 좋았다. 그 이상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쌀이 있었고, 고기가 있었으며, 감자가 자리하고 채소가 함께 했다. 멋진 저녁식사다. 허나 이 모든 것은 커피 한 잔을 하기 위한 성찬! 

저녁만찬을 마친 우리는 깊고 깨끗한 마우베시의 커피를 손에 들고 입을 적셨다. 동티모르가 내 속을 파고 들었다. 이것은 탐사요, 탐험이다. 동티모르에서의 첫밤이 익어가고 있었다. 커피가 마음을 흘렀고, 이야기가 새어나왔다. 아마도 이곳의 마지막 포르투갈 성주의 유령도 귀를 쫑긋 세워 우리와 함께 였을 것이다. 그의 희미한 웃음소리를 나는 들었다! 

양동화 간사의 동티모르 이야기는 그만큼 흥미진진했다. 특히 애정편력사. 그러니까, 다음 이야기는, 그녀는 어떻게 세계 각국의 남자들을 울렸나!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사물과 동물의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여전히 당신이 휘말릴 수 있는 우연한 일들로 가득합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중에서

 

소설가 유재현의 쿠바 기행문 《느린 희망》이었다. 쿠바인들의 수도 아바나에 발을 디디기 직전, 인상적인 표지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표지판은 이렇게 말한단다.  

"모든 쿠바인들의 수도에 오셨습니다."  

'쿠바'의 수도가 아니라, '쿠바인'들의 수도. '人'이라는 말 하나만 덧붙였는데, 그 느낌이 확 다르다. 국가가 아닌 사람을 앞세우는 발상이라니, 놀랍고 재밌다. 아마도, 체 게바라가 쿠바 사람들과 함께 이룩한 쿠바 혁명의 영향이 아닐까, 나는 진단했었다. 

그 뒤, 어디라도 갈라치면 나는 그곳의 표지판을 본다. 허나, 아직 쿠바를 만나지 못한 탓일까. 나는 다른 어디에서도 사람을 앞세우는 표지판을 보진 못했다. 어설프게라도 우리의 공정무역 커피하우스에선 'OOO OO지역 사람들이 만든 커피'라고 알려주면서 자족하는 정도랄까.  

물론 동티모르라고 다르진 않다. 비행기에서 땅에 발을 디디자, 제일 먼저 반기는 말은 'WELCOME TO TIMOR-LESTE'다. 동티모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래도 저 말이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를 알려준다. 아, 진짜 동티모르 사람들이 사는 곳, 동티모르 커피가 자라는 곳에 왔구나.  

하늘은 맑았고, 구름은 복스러웠다. 우리의 발걸음을 환영해주는 듯한 태도라고, 멋대로 생각한다. 언젠가 내가 동티모르에서 동티모르에 온 사람들을 환영하는 인사말을 건넨다면, 동티모르 커피 한 잔을 주면서 이리 말하리라. 

"여러분이 마시는 동티모르 커피가 자라는 나라에 오셨습니다." 

 그 '커피'라는 말에는 모든 것이 들어있다. 땅, 햇빛, 구름, 비, 안개 등과 같은 자연 그리고 사람들. 한 잔의 커피는 그렇게 '사물과 동물의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우연처럼 휘말리고 결합한 관계의 결정체다. 그 관계는, 다시 "커피 한 잔 하자"는 말로 새끼를 친다. 관계는 관계를 낳는다.   

동티모르 사람들의 수도에 있는 딜리공항은 작고 소박했다. 한국의 어느 작은 도시의 공항보다 더 작고 낡았다. 시골의 터미널 수준이라고 보면 되겠다. 낯섦과 설렘이 한 공간에서 뒤엉킨다.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동티모르를 느껴본다. 한국과는 확연히 다른 공기가 목구멍을 넘어간다. 그렇다고 커피 냄새가 날리는 없다.   

우리와 다르지 않지만, 피부가 약간 더 검은 사람들이 공항을 메우고 있다. 몇 년 전의 내전 탓인지, 군복 비슷한 것을 입은 요원도 보이고, 시골 터미널의 어수선함을 닮았다. 그들이 우리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것 같진 않다. 다만 아이들의 시선은 다르다. 경제적으로 가난한 나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애처로움을 품은 똘망똘망한 눈으로 여행객에게 다가서는 아이들이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충분히 알 수 있다. 십 수년 전, 인도에 처음 발을 디딜 때, 나는 그것에 무척 당황했었다. 기브 미 원 달러. 몇 명의 아이들이 나를 에워싸고는 하나같이 외쳤다. 어찌할 바를 몰라, 줘야 할 지 말아야 할 지의 문제가 아니라,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해야 하는 것인지 머리가 하얗게 탈색됐던 인도의 첫밤이었다.  

뭣보다, 그 아이들은 너무 일찍 어른이 된다. 원하는 바도 아니요, 돈벌이를 위해 어른들에게 등을 떠밀려 나와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지어야하는지, 어떻게 해야 동정을 살 수 있는지, 곧 스스로 알아차린다. '아이가 아이답게 자랄 수 없는' 환경은 아이를 어른이 되게 만든다. 이 초롱초롱한 아이의 눈에서 고단하고 애처로운 삶의 면모를 엿봐야 한다는 사실도 우리를 슬프게 만든다. 

딜리공항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일행이 있었다.  양동화 전국YMCA전국연맹 간사와 현지인 조디. 이 낯선 땅에서 의지할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안도할 일이기도 하다.  

5년 전, YMCA가 동티모르에서 공정무역 커피사업을 전개할 무렵, 양 간사는 산지 개발과 커뮤니티 조성을 위해 이곳에 왔다. 이십대 후반에 동티모르를 자원한 양 간사는 어느덧 삼십대가 돼 있다. 국내에서 두 번 가량 본 적이 있어 나와는 구면이다. 건강한 얼굴의 그녀를 보니 좋았다.

그 옆의 조디. 잘 생기고 착하게 생긴 청년이다. 인도네시아 출신인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동티모르에서 YMCA의 공정무역 커피사업을 위해 일하고 있단다. 영어조차 쉬이 알아듣지 못해 의사소통이 쉽지 않지만, 우리는 지구인 아니던가! 반갑게 인사를 하고, 웃음으로 서로를 확인한다. 

인사를 대강 마치고, 두 대의 차에 나눠타고 딜리공항을 떠난다. 며칠 후면 다시 만날 곳이겠지만, 여기(사는 곳)가 아닌 어딘가에 왔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확인하게 되는 장소가 공항이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됐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장소 또한 목적지의 공항이다.  

그곳을 떠난다. 딜리 시내를 향한다. 동티모르의 첫 기착지인 마우베시를 향하는 길이다. 험한 길을 달려야 하는 여정, 오프로드용 차는 왠지 믿음직하다. 나는 두 사람과 함께 조디가 운전하는 차를 탔다.  

차창을 통해 가난이 덕지덕지 묻은 풍경이 지나간다. 여느 동남아시아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의 모습 또한 엇비슷하다. 섬나라이며, 오세아니아에 속한다지만, 그 모습은 영락없이 동남아시아인이다. 물론, 그들은 그런 나의 이방인적인 시선에 불쾌할지도 모르겠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국, 일본, 중국 사람을 구분 못하지만, 우리는 작은 차이를 통해 그들을 구분할 수 있는 것처럼.  

수도라지만, 높은 건물도 없고, 도로 포장도 시원찮다. 바깥 풍경은, 만만디 그 자체였다. 덥고 가난한 나라의 여유로움 혹은 나른함이 도시를 휘감고 있었다. 느릿했고, 무심한 듯 흘러가고 있었다. 곳곳에서 노점상이 진을 치고 있었고, 허름하고 청결해 뵈지 않는 상점들도 도열해 있다. 집도 대충 지은 듯 허술해 뵌다. 이런 시각은 아마 지나치게 깔끔하고 정결하게 구획된 자본의 질서에 익숙해진 탓일 게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도로를 달리는 차에서 나는 하나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듯 밖을 바라본다. 나와 동티모르는, 동티모르 사람들은 어떤 우연으로 이렇게 마주한 것일까. 어떤 우연한 일들이 함께 할까. 궁금하고 설렜다.  

테튬어라는 언어를 사용하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최하위권인 나라의 사람들. 오랜 식민의 기억과 독립의 짜릿함도 잠시, 그들은 어쨌든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는 구체적인 존재들이다. 이방인의 해묵은 관점으로 그들을 재단하려는 사고를 막아야 했다. 나는 이것만은 세상 누구에게나 똑같으리라 믿는다.

하루를 잘 살아내는 일이 가장 어렵고 중요하다는, 변치 않을 사실.


그러고보면 그들과 우리는 똑같은 '하루'를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동티모르 사람들의 삶에 틈입한 이방인이지만, 서로 우연한 일들에 휘말린 동지다. '커피'라는 관계의 창을 통해 우리는 이렇게 만난 것이다.  

동티모르가 내 삶의 사정권 안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내가 이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동티모르라는 말이 나오면, 나는 솔깃했고, 더듬이를 세웠다. 그리고 마침내 이렇게 찾아온 것이다.  

장병원 영화평론가는 말했다. "타인의 사정에 무심한 개인은 뿔뿔이 나뉜 자신의 영역 안에서 그들만의 진실을 쌓기 마련이다."  

아마 그랬다면, 나는 동티모르를 그저 '내전이 일어나고 있는 위험한 나라'라고만 생각하고 어떤 더듬이를 세울 노력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내가 이곳에 와 있다는 사실은 내 삶에 동티모르를 끌어들였고, 나 역시 동티모르 사람들의 역사에 아주 작고 사소한 흔적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그런 풍경에서도 차 안에서는 즐겁다. 옥천에서 장애인들을 고용해 빵을 만드는 하 대표님의 구수한 입담 덕분이다. 운전을 하는 조디의 옆자리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데, 그들은 대화를 한다. 뒷자리에서 그걸 보면서 신기했다. 서로를 알아듣고, 이야기를 나눈다. 동티모르는 또 다른 신기한 경험을 하게 만든다.   

낯선 땅이라는 두려움보다 설렘이 점점 더 크게 자리를 잡아간다.   

딜리의 바다를 봤다. 저 바다는 내 고향 바다와 잇닿아 있을 것이다. 이십 수 년 전 봤던 그 바다가 흘러흘러 지금 여기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딜리를 차츰 벗어난다. 길이 점점 더 울퉁불퉁해지더니 산악지대로 차츰 접어든다. 모험은 본격적으로 이제부터다. 커피야, 기다려라. 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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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을 찾아가는 까닭은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 공항대합실에 서서 출발하는 항공편들의 목적지를 볼 때마다 그토록 심하게 가슴이 두근거리겠지. 망각, 망실, 혹은 망명을 향한 무의식적인 매혹.  
                                                                                           -김연수, 《여행할 권리》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떠난다는 사실을 주지시키는 곳, 공항. 소설가 김연수가 말했듯, 여기만 아니라면,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공항은 그것을 상상하게 만든다. 여느 일상과 다른 나의 존재. 그것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꼭 정치적 망명이 아니더라도 문화 망명자로서 스스로를 규정하는 재미까지.

그래, 왜 아니겠는가. 공항은 생에 스핀을 먹이는 행위가 이뤄지는 곳이다. 김연수의 표현을 빌자면, "생을 바꾸는 공간"이다. 스핀이 제대로 먹었느냐, 아니냐는 일단 떠나보고 나서야 알 수 있는 일. 떠나보면 알게 될 거야, 라는 책 제목만큼 공항에서 맞아떨어지는 건 없다. 떠나보고 나서야 알 수 있는 여행, 또한 그것이 생이다.

나도 생을 바꾸기 위해서였을까, 공항에 서 있다.  

역시나 언제나처럼 두근세근. 떠남은 곧 박동임을 확인한다. 이번에는 동티모르다. 살짝 낯 익은 세계다. 동티모르 사람들이 생산한 (공정무역)커피를 다루고 있는 커피쟁이니까. 나는 그 커피를 통해 동티모르의 자연과 사람들을 상상했다.  

그러나 낯선 땅이다. 내 발과 몸은 동티모르를 모른다. 그래서 궁금했다. 처음 밟아보는 그 땅은 내게 어떤 지령을 안겨줄까.

혹시 그것 아는가? 비행기가 땅에서 이별(이륙)하는 원리. 그것은 엔진의 추진력과 날개의 양력 때문만이 아니다. 여기가 아닌 그 어딘가로 향하겠다는, 승객들의 마음. 그 마음들도 비행기를 뜨게 한다. 동티모르를 향한 각자의 마음가짐과 설렘의 정도는 다르겠지만, 나는 그것이 비행기를 뜨게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직항은 없지만, 경유지를 거친 동티모르행 비행기를 뜨게 한 동력에는, 내 마음도 있었다. 간다, 동티모르. 기다려라, 동티모르. 지금, 만나러 갑니다, 동티모르인 여러분.  

커피를 만드는 사람인 나는, 지난 7월 커피 산지를 찾았다. 동티모르 공정무역커피를 다루면서, 몸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세계의 잇닿아있음. 동티모르 커피노동자와 한국 커피노동자는 어떻게 만나고 있는가. 글과 사진, 관념으로 알고 있던 그것. 나는 그 만남을 고대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의 염원을 품고, 비행기가 이륙한다. 나는 이 순간이 가장 짜릿하다. 누군가는 이륙할 때의 이물감이 싫어서 비행기 타기를 주저한다지만, 나는 변태스럽게도 오르가슴을 느낀다. 마음이 몸을 뜨게 만드는 순간, 나는 새로운 세계로 향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러니까, 그것은 새로운 세계로 향하고 있다는 설렘이 주는 쾌감이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짧은 밤, 머물렀다. 동티모르 직항이 없는 까닭이었다. 발리 덴파사공항에서 2시간여 남짓한 거리지만, 그 2시간을 더 날 수 있는 정치적 힘은 없다. 발리를 상징한다는 꽃, 캄보자의 강렬한 향이 내가 낯선 땅에 와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후텁지근하고 눅눅한 날씨. 동티모르의 날씨는 어떨까, 그것이 더 궁금했다.   

이튿날, 아침을 먹고 스쳐지나듯 발리를 떠난다. 비행기편으로 발리로부터 1시간50분, 호주 다윈으로부터 1시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는 동티모르.  

공식명칭은 티모르 공화국이다. 동티모르 언어인 테툼어로 티모르 로로사에(Timor Lorosa'e)라 부른다. 남지나해와 인도양 사이 티모르 섬의 동부와 티모르 섬의 서부 일부만을 동티모르로 일컫는다. 티모르 섬은 호주와 인도네시아가 통치하는 여러 섬에 둘러싸여 있다. 지리적으로는 오세아니아에 속하지만, 정치·경제·문화적으로는 아시아의 일부로 본다.

이런 지형 여건은 식민의 역사와도 깊은 연관을 맺는다. 1520년부터 시작된 400년 이상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다. 1975년 11월, 동티모르독립혁명전선이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으나, 다음달 인도네시아의 무력침공으로 이듬해 인도네시아의 27번째 주로 강제편입됐다. 이후 독립을 향한 여정은 멀고 험했다. 2002년5월20일, 인도네시아로부터 완전히 독립, 공식 인정을 받았다.  

21세기 첫 독립국이 됐다는 명예를 받았지만, 여전히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웠다. 한국도 독립 직전, 상록수 부대 등을 PKO(평화유지군) 파병의 명분으로 보낸 바 있다. 박희순, 고창석씨가 주연한 <맨발의 꿈>의 배경이 동티모르다.   

어쨌든, 발리에서 동티모르로 가는 여정은, 쉬이 길을 내주진 않았다. 만만디 습성이라고나 할까. 발리와 동티모르를 오가는 하루 한 편의 비행기는 연착은 대수요, 기다림은 필수였다.  

 
'메르파티(Merpati, 비둘기)'라는 이름의 비행기는 우리의 사라진 기차, '비둘기호'를 연상하게 할 정도로 기체는 낡았다. 비행기 안에서 난생 처음 바퀴벌레를 만나는 일을 겪었지만, 상관 없었다. 나는 비둘기의 꼬리를 잡고 동티모르로 향한다. 무언가 좋은 소식을 들고 가야할 것 같은 기분이다. 비둘기는 자고로 소식을 전하는 메신저 아니었던가.   

마침내, 동티모르 사람들이 사는 나라, 동티모르 커피가 자라고 있는 땅에 첫발을 디뎠다. 그 첫 순간, 이곳을 사랑하게 되리라, 직감했다. 허울만 좋은 10위권 경제대국 이방인의 눈에, 오랜 식민지배와 내전을 거친 동티모르는 가난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지만, 사람들의 눈빛과 자연은 그것이 다가 아님을 말하고 있었다.  

이곳은, 동티모르다. 나는 동티모르를 밟고 있다.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오늘, '세계 식량의 날'이다.

누군가는 요즘 누가 못 먹는 사람 있어?, 하고 쉽게 말한다. 먹을 것, 정확하게는 못 먹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시대라지만, 그건 수사이거나 거짓말이다. 너무 많이 먹어서 탈인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 차고 넘친다. 


세계 식량의 날 올해의 주제는 '식량가격- 위기에서 안정으로'인데, 식량'가격'의 위기만 있는 게 아니다. 식품 값이 오른다고 아우성 치는 것, 기아의 골이 깊어진 것을 놓고 표면적으로는 기상이변과 자연재해를 이유로 든다.

이밖에 중국, 인도 등의 경제개발·성장에 따른 농지 소멸과 육류소비 증가, 허울  좋은 바이오연료 생산 등이 거론된다.

그러나 더 크고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식량을 투기의 대상으로 보는 다국적 농식품기업들과 자본의 패악질이다. 농식품복합업체들은 농수산물 생산부터 유통까지 지배함으로써 식량독점을 꾀하고, 투기자본은 국제곡물시장에 적극 개입해 가격을 폭등시켰다. 
거기엔 북반구 정부와 세계기구의 정치적 무능함 혹은 협잡도 함께 한다.

한마디로 먹는 것 갖고 각자의 이권을 챙기고자 장난 치는 '신성동맹'의 탐욕이 위기의 골을 더욱 깊어지게 만들고 있다. 허구헌 날, 기아를 줄이자고 외치면서도 사태를 악화시키는 꼴이 그것을 방증한다. 1996년 세계식량정상회의는 '전 세계 기아인구를 2015년까지 절반으로 줄이기'로 결의한 바 있으나, 지난 2007년~2008년, 2010년의 식량위기로 기아인구는 8억5000만 명에서 10억2500만 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식량의 위기는 결국 체제의 위기에 다름 아니다. '점령하라(Occupy)'는 구호의 확대와 우리네 99%를 위한 행동은 식량 위기와도 관련을 맺는다. 한 사회의 유지와 개별적인 인간의 실존은, 배를 곪지 않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과거, 나의 인디커피하우스에서 한 예술팀이 알려준 이 말.

"MOST IMPORTANT THING IN THE UNIVERSE IS -> FULL STOMACH"



지금의 식량 위기가 인간이 자행한 일이라면, 이것을 극복하는 일 또한 인간에게 주어진 과제이자, 의무다. 결자해지! 그리하여, 먹을거리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갖고, 푸드정의(Food Justice)에도 좀 더 관심을 가지는 것이 일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나는 커피라는 창을 통해 혹은 먹을거리로 이것에 대한 사유를 푸는 한편으로, 커피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풀겠다. 《미국의 송어낚시》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이 말처럼.  “때때로 인생은 단지 커피 한 잔의 문제, 혹은 커피 한 잔이 가능케 해주는 친밀감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갑자기 어디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인지 궁금한 이 계절, 당신에게 커피 한 잔 권한다. 프롤로그부터 그에 이어지는 몇 편의 이야기는 동티모르 공정무역 커피산지를 탐방한 '동티모르 커피로드' 되겠다. (참고로, 프롤로그는 '윤리적 소비' 공모전에 응모했으나 떨어진 글이다.) 

어느 밤 문득 외롭거든, 삶의 미각에 쓸쓸함이 묻어나거든, 문을 두드리시라. 당신을 위해, 밤9시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 건네겠다. 그래서, 밤9시의 커피다. 커피 한 잔 나눌 당신이 있어서 다행이다. 

[프롤로그] 나는 너무 많이 먹고, 너무 적게 움직인다!                
동티모르 공정무역 커피산지를 가다

 


하얀 커피꽃이 피었다. 빨간색 커피체리가 익었다. 체리의 외피·과육을 벗기고 건조를 위한 사람들의 몸짓도 분주하다. 커피 한 잔을 위해 자연이 내려앉고 인간의 노고가 투입되는 현장이다. 내가 만들고 마시는 커피 한 잔이 잉태되는 터전이다. 나는 동티모르 로뚜뚜 마을에 와있다. 공정무역 커피산지다. 비행기를 갈아타고, 동티모르 딜리공항에서도 꼬박 십여 시간 이상 험한 산을 타고서야 도달할 수 있는 산촌의 커피마을.

동티모르의 7월, 커피가 익어가는 계절에 ‘만남’을 가졌다. 놀랍고 신기한 일이다. 우연에 우연이 빚은 산물. 그래,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1927)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사물과 동물의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여전히 당신이 휘말릴 수 있는 우연한 일로 가득하다.”

그래, 사실 모든 것이 우연이었다.

제도교육권에서 가장 보통의 신자유주의적 인간으로 사육됐던 나는, 신자유주의적 사이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직장 생활을 꾸역꾸역 감당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디서 불어온 바람이었을까. 커피를 만드는 사람이 됐다. 아니, 커피라는 창을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됐다. 커피를 만들고, 공정무역 커피하우스를 꾸리며, 사회적기업을 공부하면서, 공정무역 커피산지에 발을 디뎠다. 그 모두가 우연이었다.  

많이 궁금했다. 내가 지지고 볶고 추출하는 커피의 근원이.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보고, 상상했을 뿐이었으니까. 태고의 산악이 품은 동티모르에서 내 커피의 근원과 세계의 잇닿아있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운이 좋았다. 그곳에 왔다. 숨을 깊이 들이쉰 순간, 느꼈다. 아, 우리는 연결된 존재구나. 동티모르
로뚜뚜에 도달한 순간, 실감했다. 눈 앞에 펼쳐진 모든 것은 커피 한 잔에 담긴 자연이었다. 땅, 햇빛, 바람, 비, 안개, 별 등 대자연을 머금고 자란 커피열매와 그것을 따고 다듬는 사람들. 자연과 땀의 결정이었다.

커피가 어떻게 나오는지 알고 있는가? 나는 이제 확실하게 안다. 하얀 마음과 빨간 열정이 어우러져 갈색의 음료가 나온다. 이방인을 위해 내려준 커피에서 온유한 맛을 느낀 건 그런 이유였나 보다. 커피를 내리는 내 마음이 그 자연을 제대로 담을 수 있을까,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시간이다.


다만 안타까운 일이라면, 기상이변의 비극은 한국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동티모르에도 기상이변이 덮쳤다. 하늘이 뚫린 마냥 10년 만에 최악의 폭우가 닥쳤단다. 아무도 그런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하긴 미국과 유럽, 일본, 중국 등에는 눈을 돌려도 누가 동티모르의 비극에 관심이 있을까.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관심이 없다면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그것을 알게 된, 운 좋은 한국 사람인 셈이다.

문제는 커피 농사가 흉년이었다. 매년 25~30톤가량 이뤄지던 커피 생산은 1톤으로 팍 줄었다. 자연의 분노는 수시로 인간의 삶을 위협한다. 커피로 생계를 유지하는 자들에게 커피열매가 맺지 못하는 현실은 삶 또한 영글지 못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의 생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런데, 놀라운 일은 이후 벌어졌다.

굳이 말을 붙이자면, 공정무역이 지닌 회복탄력성이라고 할까. 공정무역이 단순히 생산자에게 시장가보다 돈 몇 푼 더 쥐어줌으로써 끝나는 체제가 아님은 알고 있었다. 커뮤니티의 유지와 생산자조합(혹은 그룹)의 결성 등 그들이 그들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힘과 지혜를 나누는 것. 전국YMCA연맹에서 파견된 양동화 간사는 5년 여 동안 커피로 동고동락한 사람들의 좌절과 절망을 이해했다.

궁즉통이라고 했다. 공감한다면, 방법이 보인다. 마침, 도서관과 학교 등의 건립이 추진되고 있었고, 이들을 그곳의 자원으로 돌렸다. 공정무역의 진짜 힘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자연의 분노 앞에서도 인간은 겸허해야 한다. 로뚜뚜의 사람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늘을 쉬이 원망하지는 않았다. 기다리고 인내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쨌든 한 해 동안, 로뚜뚜 마을 커피향은 약해지겠지만, 몇 년 뒤 책향기가 덧붙여져 로뚜뚜 커피는 더 좋은 품질과 향미로 다가설 것임을, 나는 확신했다.

뭣보다, 커피생산자와 함께 밥을 나눠먹고 커피를 마신 시간을 잊을 수 없다. 그들과 마주한, 해발 1004m에 자리한 마을사무실(겸 숙소)은 고도 덕분에 ‘천사의 집’이라고 불렸다. 천사가 있다면, 지상에 내려와 커피 한 잔 마시는 휴식처로 쓸 법한 곳에서, 지상의 천사들과 마주 한 시간이었다. 나는 손에 힘주어 그들과 악수를 했으며, 또박또박 이름을 부르며 눈을 보았다. 개별의 인간에게 새겨진 구체적인 존엄이 거기 있었다. 내 커피의 실존과 마주대했다. 감격스러웠다. 
 
물론 그 삶의 실체는 내가 알 수 없는 또 다른 심연이겠지만, 나는 그 구체적 존엄 앞에 겸손해야 했다. 그들은 자연의 일부였고, 나는 그들이 얼마나 대단하고 소중한 일을 하고 있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그 커피 덕에 저 멀리 한국의 누군가는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고.


그래, 누군가를 행복하게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가 말이다. 나는 그들 몇몇에게 커피란 당신에게 무엇인지를 물었다. 누군가는 커피는 행복이라면서 웃었고, 다른 누군가는 생각을 더 많이 할 수 있는 존재라고 답했다. 어떤 이는 여자 친구 같다고 했다. 다들 하나 같이 다른 답변, 그래, 그것이 커피다.

나는 당신들이 채집한 커피가 ‘디아’(좋다)하고 ‘가빠쓰’(맛있다)라고 말해줄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곳은 커피나무를 경작하지 않는다. 플랜테이션 농장 등에서 가꾸는 농사가 아닌 채집이다. 자연이 키워준 것을 때가 되면 채취할 뿐이다. 유기농 그 이상이다. 생두는 튼실하며 빛깔도 좋다. 맛도 뛰어나다. 자연에 대한 고마움과 경이로움을 품은 야생 커피가 지닌 장점이다.

하얀 커피꽃과 빨간 커피체리, 녹색 생두를 잉태하는 자연과 생산자를 만나면서 커피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다짐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커피를 더 정성스레 만들어야겠다. 커피는 곧 마음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그들은 그것을 확인해줬다. 대자연과 생산자의 마음에 커피를 내리고 마시는 사람의 마음이 합쳐진다면, 커피가 그보다 맛있을 수 있을라고! 공정무역 커피는 그런 ‘만남’과 ‘관계’속에서 빛을 발한다.

 
윤리적소비는 별다른 게 아니다. 내가 먹는 것이 어디에서 어떻게 온 것인지 아는 것. 그래서 세계가 연결돼 있음을 깨닫고, 고마움을 가지는 것. 협동조합운동이 양이나 이물질 포함여부를 속이지 않음에서 시작한 것은, 마음을 담았다는 말이다. 좋은 커피에 가급적 화학첨가물을 섞지 않고, 유기농을 고집하는 우리 커피하우스의 노력은 당연한 의무다.

그들의 노동과 실존을 마주하면서 지금 내 생존의 윤리를 생각했다. 아, 나는 너무 많이 먹고, 너무 적게 움직이는구나. 조금 덜 먹고, 더 움직이자. (물론 커피는 많이 마셔도 된다!) 요즘 내가 만든 커피 한 잔에 담긴 윤리다. 로뚜뚜를 통한 깨달음이다. 우리는 그렇게 연결된, 세계의 점들이다. 세계는 지금을 살아가는 무수한 점들에 의해서 돌아간다. 로뚜뚜의 속삭임이다. (공정무역)커피를 마신다는 건, 세계와 관계를 맺고 연결됨을 확인하는 행위다.

우리, 커피 한 잔, 할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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