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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아니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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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데이 루이스'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3.02.27 아카데미 힐링
  2. 2008.03.13 분별없는 열정은 어떻게 폭발하는가 … <데어 윌 비 블러드>
2013.02.27 02:20 메종드 쭌/무비일락


2월25일, 

거리를 거닐 때도, 미디어를 만날 때도, 온통 한 사람의 얼굴이 도배질하고 있었다. 뭐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가 앞으로 5년 잘하길 바란다는 이성을 비집고 나오는, 저 지겹고 구린 얼굴과 쇳소리 비슷한 목소리가 싫었다. 그가 오십 차례 이상 내뱉은 '국민'이라는 카테고리에 나는 포함이 안 됐으면 하는 지극히 편협하고 옹졸한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진짜, 이땅의 역사적인 맥락에서 어설프게 형성된 '국민'이기보다 자주적인 근대화 과정을 섭렵한 '인민'이나 '시민'이고 싶으니까. (물론 알다시피 이 땅에 자주적인 근대화 과정은 없었다!)


그걸 꿍한 마음을 치유해준 것이 아카데미 시상식이었으니. 

이땅을 아주 이상하게 만들어놓은 미국(정부)이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아니 아주 무관할 수는 없지만, 

아카데미 시상식은 내게 하루 힐링이었다. 


눈물이 찔끔.ㅠㅠ 


내게서 줄리아 로버츠를 은퇴시킨 여신, 

앤 헤서웨이(여우조연상)부터 시작된 힐링 릴레이는,

<레미제라블>팀의 감동적인 군무와 노래로 감정을 고조시키더니. 



연기가 곧 '운명'이었던 십대의 소녀에게 혹했던 기억이 아직 짠하건만,

스물 셋의 나이, 마침내 오스카 트로피를 치켜 든 '꽈당' 제니퍼 로렌스. 




늘 새로운 영화를 내놓을 때마다 나를 놀래키는 사랑과 이야기의 연금술사인, 

아시아, 그리고 대만의 감독 이안과 그가 만든 눈과 마음이 휘둥그레지도록 놀랍고 감동스러운 이야기 <라이프 오브 파이>. 땡큐, 쉐쉐, 나마스떼! 이안 감독님의 천진난만한 수상 표정은 그야말로 압권.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미친 연기자 <링컨>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


그리고 방점을 찍은 건, 미셸 오바마의 깜짝 등장에 이은 최우수 작품상 호명! 


그의 입에서 <아르고>가 툭~ 나올 줄은 전혀 일절 네버, 와우~


감독 벤 에플렉의 기쁨 한 바가지를 우물에서 길어올린 듯한 속사포 랩 소견 발표와 

그 옆에서 므흣하고 웃고 있는 제작자 조지 클루니의 그보다 아름다울 수 없는 모습.



할리우드의 시상식이 내 마음의 앙금을 깡그리 없애버렸다. 

제 나라 대통령보다 남의 나라 영화와 배우들에게 마음을 뺏기고 힐링된 나를 욕해도 어쩔 수 없다. 그게 나라는 인간이니까. 


2월25일, '원 배드 데이'에서 '원 파인 데이'로 바뀐 어느 날. 

그래, 나는 어쩔 수 없이 앤 헤서웨이의 노예로다~ㅋ 


<브로크백 마운틴>, 잭(제이크 질렌할)의 아내 루린에 대한 이야기를 외전으로 만들면 좋겠다. 그전부터 <프린세스 다이어리>로 알았다손 치더라도, 내게 처음 '배우'로 다가온 앤을 발견했던 그때 그 이야기. 그러고보니, 두 사람이 겹치네. 앤 헤서웨이, 리안. 덩달아 5년 전 1월22일 떠났던, 히스 레저. 


아,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보고 싶다. 

제니퍼 로렌스의 반짝반짝 빛나는!!! 구름의 흰 가장자리, 한줄기 빛나는 희망.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2008.03.13 01:14 메종드 쭌/무비일락
뜨겁고, 차가웠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핫함과 쿨함을 아우르는, 열정과 냉정이 교차하는, 아뿔싸, 이것은 '역사'의 기록이었음을. 문명의 역사, 인류의 역사, 석유(자본)의 역사, 종교의 역사, 피의 역사, 그리고 한 인간의 역사. 그러니, 당연하게도, 뜨겁고, 차가운 기운을 감내해야만 한다. 그것이 진짜 스스로 원하는 욕망인지조차 알 길 없는, 한 인간의 몸짓이 자초한 장대한 비극에 나는 후덜덜했다.

더, 솔직히? 무서웠다. 압도 당한 탓이다. 런닝타임 거의 내내. 더구나, 극장엔 사람도 많질 않았다. 나 포함 3명. 심령 호러물보다 더 마음을 옥죄고, 불편했다. 그리고,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의 몸짓, 말짓 하나하나에 나는 육신이 삐걱거리고, 뼈와 살이 욱신거렸다. 뼈와 살이 타는 것까진 아니어도 폐부를 콕콕 찔러댔다. 어쩌면, 아마도, 이 땅의 현실과도 오버랩된 탓이겠다, 고 나는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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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실용'이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고 집어삼키는 시대. 그것이 '시대정신'(!)이라는 말로까지 치환되는 이 얼토당토 않은 현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저 머나먼 할리우드의 시대극임에도, '지금-여기'의 일정부분 현실을 찝어낸 것 같은 기시감을 불렀다. 그것은, 결국 대니얼 플레인뷰(다니엘 데이 루이스)에게서 기인한 것이렸다. 도저한 불굴의 의지를 지닌 인간이 불러온 '분별없는' 열정. 나는, 그것이 무서웠던 것이다!

시작부터 그랬다. 어떤 산맥과 황야를 조망하며 들리는 기계음은, 비극의 전조와도 같았다. 뇌가 바짝 얼어붙는 느낌. 시작부터 그렇게 압도적인 경험은 거의 처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라디오헤드의 조니 그린우드의 음악이 먼저 붙들었다면, 거의 10여분 이상을 거의 대사 없이 꿈틀대는 플레인뷰의 퍼포먼스가 뒤를 이었다. 단 한마디 대사, "드디어 찾았어"를 제외한다면, 은광을 채굴하는 그의 모질고 험한 분투가 이어진다. 그것은 어떤 경외심까지 불러일으켰다. 노동에 대한 단순하면서도 숭고한 경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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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인뷰는 혼자, 끊임없이, 갱을 오르내린다. 그러다 결국 다리까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한다. 함께 굴러떨어지는 느낌. 그 통각은, 기묘한 경험이었다. 스크린을 통해 고스란히 내 몸에 스며드는 그 이상한 경험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결국 다리를 절게 되는 그를 보는 것 또한 어떤 고통의 연장선상이 아닌가 싶은.

그리고, 이어진다. 일종의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하는 블레인뷰. 뻥 튀겨서 '평민성공시대'의 본격적인 개막. 그는 아마, 어릴 적 가난에 치를 떤 경험이 있지 않을까 추정될만큼 그는 앞으로만 달려나간다. DNA에 그렇게 각인돼 있었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왜 그렇게 석유에, 즉 돈에 집착하는지 끝까지 알 순 없지만, 그는 그런 인물이다. 그저 자신이 자발적으로 뛰어든 게임에 몰두하는, 광기 그 자체의.

플레인뷰는 성공가도를 달린다. 하나둘 사람이 붙지만, 그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사람들을 봐도 도무지 정이 안가"라고 자백(?)까지 한다. 그에게 유일신은 '석유' 하나 뿐이다. 그의 현존을 믿게 하는 유일한 존재. 그러면서, 그는 어떤 '플레이'를 한다. 일종의 마케팅. 스스로 '패밀리맨'이며, 유정사업은 '패밀리 비즈니스'라고, 사람들에게 선전한다. 유정사업의 인부들은 물론, 땅을 판 사람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사업이라고. 자신의 양아들인 꼬마, H.W.를 사업설명회 등에 데리고 다니는 것은 그런 목적이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모든 활용 가능한 자원과 마케팅을 동원하는 수완. 거대한 제국의 완성을 위한 자수성가는 역시, 그냥 이뤄지지 않았다.

나는 엉뚱하게, '대운하'에 모든 것을 걸고자 하는, '지금-여기'의 누군가를 떠올렸다. 어떤 반대의 명분조차, 정치적이고, 이념에 경도됐으며, 국익에 반하는 것으로 치부하는, 그 폭주기관차 말이다. 석유를 위해 모든 것을 건 불굴의 사나이처럼. 그래서, '국민성공시대'라는, 의미조차 불가해한 '성공'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그 누군가. 그것도 아마, '특정 국민'의 '자본을 축적할 수 있게 하는' 성공이 아닐까, 난삽한 해석을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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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포장술이었지만, 플레인뷰가 '패밀리'라는 존재 앞에 약해지는 모습 또한 겹친다. 아들의 안부를 묻는 메이저 석유회사 간부의 질문 앞에, 자신의 약점을 잡힌 듯, 불같이 화를 내고 무모할 것 같은 싸움을 걸던 플레인뷰. 이복동생이라고 찾아온 한 사내를 의심하면서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품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하는 플레인뷰. 그 철갑무적도 '패밀리'앞에선 어쩔 수 없었다. '형님상왕' '형님공천' '형님인사'라는 정당한 비판이 쏟아지고, '개혁공천'의 매듭이었음에도, 그저 이를 묵과한 불도저. 거침없이 청계천을 '개발'하고, 대운하 '건설'에 말뚝을 박겠다는 불굴(?)의 남아가, 가족 앞에 오그라드는 꼬락서니하곤. '남아당자강'(男兒當自强)도 '패밀리' 앞엔 '고개 돌리'는 풍경?

플레인뷰는 야비하다. 그럼에도, 전형적인 악인의 모습이 아니다. 그는 욕망 앞에 거칠 것 없는 폭주기관차지만, 가끔은 약하다. 자신의 다리가 부러지고, 인부들이 죽고, 아들이 청력을 잃는 순간, 그는 썩소를 날리면서도, 일말의 연민을 내비치고, 애도를 한다.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아스퍼거 장애를 앓고 있진 않은가 보다. 그러나, 그의 감정은 사업과 실용에 근거한다. 아들이 청력을 잃고, 가지 말 것을 애원하지만, 그는 콸콸 쏟아지는 석유 앞으로 내달린다. 그러면서 그 광경을 쳐다보며,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동업자에게 말한다. 석유(돈)가 쏟아져 벼락부자가 될텐데 왜 찌푸리고 있냐고. 허허. 그 난감함이란.

아니, 그것은 자본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동정 없는 자본의 가장 적나라한 광경. 플레인뷰의 표정에서 나는 자본을 향한 숭고함을 엿본다. 그 모습이야말로 '지금-여기'의 실용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한 친구가 얼마전 얘기한 대목이 떠올랐다. 식사 시간에 현 정권의 국정철학(실제 있는지는 도저히 확신할 수 없다 ^^;)을 씹어댔더니, 한 사람이 발끈하더니 말하더란다. 철 없는 소리 말라고, 자본만큼 확실한 철학은 없다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가장 큰 미덕이라고. 그 견고한 소신에 경배를.

대운하의 소신남, 따지고 보면, 절대악, 아니다. 그도 어떤, 나는 과문해서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진 않지만, '실용'과 '국익'이라는 판단근거에 기반해 정책을 펴나가고자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나름의 선의가 있겠지. 그러나, 선의가 늘 좋은 결과를 낳는 것, 아니지. 더구나, 반대의 논리와 명분도 또렷하지 않는가. 토론을 원천봉쇄하는 태도야말로 진짜, 나쁘다. 그건, 유정이 있냐, 없냐를 따지는 모 아니면 도의 사업이 아니지 않나. 플레인뷰의 욕망과 판단은, 해당 일터와 마을에 국한되지만,  그것은, 파급력이 엄청나고 후유증도 감당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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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기시감은 교회. 석유(자본)과 종교는 현 세계의 플레인뷰의 캐릭터를 더욱 공고하고 극적으로 만들어준 것은 종교와의 대립이었다. '제3계시교'라는 엑소시즘을 통해 선교활동을 하는 또 하나의 '분별없는' 열정의 화신, 선데이(폴 다노). 두 분별없는 열정의 맞장은, 자본과 종교의 부딪힘을 보여주면서도, 끊임없이 상호 침투한다. 플레인뷰가 '실용'을 위해 교회에서 거짓 고백을 하고, 선데이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세번째 예언자'라고 부르짖는 장면에서, 나는 둘 사이의 부적절하면서도 절묘한 궁합을 엿봤다. "서울 봉헌"을 외치고, "신앙심이 부족해 복지정책이 실패하고 양극화가 심화됐다"는 어떤 이들의 신실함 역시 어쩌면 '실용'을 전도하기 위한 할리우드 액션? 궁극은 역시나 통하는 법이라고 했던가.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이른바 '막장'이자, '끝장의 영화다. 플레인뷰의 마지막 읊조림, "I'm finished'가 불러온 자폭의 느낌이 그렇다. '자본 불리기'에만 몰두하고 '신성 전하기'에만 매달리던 성공의 이면. 그 모든 '분별없는 열정'의 종국을 암시하는, 그 외침은 참으로 강렬하다. 악인 아닌 '하찮은 형'의 처음이자 마지막 회한섞인 피로감의 토로였을까.

마지막은,
이 분별없는 열정의 서사극을 연출한 폴 토머슨 앤더슨 감독의 인터뷰 발언을 인용한다. 끊임없이 정치를 혐오하고, 스스로 정치적이지 않다고 거짓부렁을 일삼는, 실은 정치미숙아에 불과한, '실용주의자'를 떠올리면서.

우리가 정치적이다, 라고 생각하는 건 끔찍하지만,
정치적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건 바로 그 자체가 정치적이라는 의미다. (씨네21 중에서)



뱀발... 그러나, 어떤 공통점을 지닌 두 남자에 대한 인상비평은 극과 극이다.
솔직히 플레인뷰는, '우와 멋있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그에 겹친 어떤 사내에 대해서는, '에이 찌질하다'는 생각밖에 안 드니.
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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