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블로그 이미지
사랑이 아니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야
낭만_커피

Notice

Recent Comment

Archive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690,072total
  • 15today
  • 69yesterday

'김동원'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12.17 이리, 익산이 아닌 이유
  2. 2009.12.16 서독제, 김동원 그리고 김원섭
  3. 2008.10.30 몽골소녀, 푸지에와 나 (2)
2009.12.17 23:48 메종드 쭌/무비일락

우연찮게도 며칠 전, '이리'를 다녀왔다.

정확하게는 '익산'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나는 '이리'라고 쓴다. 읽을 때는 '익산'이라고 읽을지도 모르겠다. 이리라고 쓰고, 익산이라고 읽는다? 며칠 후, 내가 <이리>를 볼 것이라곤 생각지도 않았다. 아니 못했다.

애초 이 영화는 연작(<중경>과 함께)이라고 진즉에 알고 있었다.지난해 개봉 당시 봐야지, 생각만 하다가, 실행의 부재로 결국 접하지 못했던 터. 두 편 모두.

내가 발 디뎠던 이리는, 단편적인 인상만 말하라면, 죽어있는 소도시 같았다. 신시가지라고 건물이 올라가고,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으나, 이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서울을 동경하는 듯한 그 뉘앙스는 불편했다. 신시가지의 그 볼품없는 간판들이 사람들의 미적 감수성을 해치긴 마찬가지고. 서울을 욕망하는, 획일화되려는 풍경. 이방인이라서 그랬겠지만, 과연 이리(에 삶의 터전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이 불편하지 않을까.

<이리> 상영 전, 조영각 서독제 집행위원장이 영화와 감독에 대한 소개를 했다.

모르겠다. <이리>를 보면서 지금 시대의 알레고리 같다고 생각한 것은 왜였을까. 30년 전 이리역 폭발사고를 소재로 했다는 영화. 30년 후 이리에 남겨진 사람들의 모습. 30년이라는 세월의 간극도 상처를 치유하진 못했다. 이리역 폭발에 따른 상흔이 30년 후에도 지속되는 건, 아마 30년 전과 다르지 않은 시대적 징후 때문일지도. 박정희와 이명박. 물론, 그것은 개인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 둘은 당대의 시대성을 상징하는 인물들이니까. 곧, 우리의 모습이라는 뜻이지.

내 기억이 맞다면, 극 중 태웅(엄태웅)은 한 번도 웃지 않는다. 정신줄을 약간 놓고 사는 누이, 진서(윤진서)는 노동에 대한 대가를 못 받아도, 윤간을 당해도 별다른 저항도 없고 덤덤하다. 물론 그것이 그의 마음까지 대변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태웅은 그런 모습을 보고도 가끔 화를 내고 패대기를 치지만, 그것 뿐이다. 근본적인 치유까지 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가끔 진서가 삶의 큰 짐처럼 느껴지는지 죽이고 싶은 충동을 드러낸다.

롱테이크는 길고, 인물들의 감정을 끌고 가야하는 것이, 참으로 무겁다. 신산하기 그지없는 삶의 풍경 앞에 관객인 나는 견뎌내야 했다. 그럼에도 그것이 싫지 않았다. 그것이야말로 감독이 우리에게 건네는 속삭임 같았기 때문이다. 어떻게든지, 버티고 견딜 것. 내 안의 이명박에게 휘둘리지 말 것. 이명박을 싫어한다고 하면서도 이명박을 닮은 우리들에게 건네는 토닥거림.



<중경>과 어떻게 연결될까. <이리>에는 <중경>이 필요한 것 같았다. 마지막 장면 때문에라도. 바다로 갔던, 진서가 서툰 중국어를 읊고 있다. 한 중국어 선생을 향해. 아마도 그것은 연결고리이리라.

익산이 아닌 이리여야 하는 이유.

내가 이리라고 쓰고 싶었던 이유.

당신은 알겠지?


아 참, 김동원 감독님과 한 공간에서 같은 영화를 봐서 좋았다.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6년 전, 2003년 12월9일.

요즘과 같은 강추위가 강타하던 그날,
혜화동 부근에서 한 사람이 추위에 떨다 숨을 거뒀다.
그야말로, 동사. 누구도 챙기지 않은 혹은 외면한 죽음.

나는, 그 사실을 뒤늦게 접했다.
2005년 김동원 감독님(<송환> <상계동 올림픽> 등)께서 국가인권위에서 제작한 옴니버스영화 <다섯개의 시선> 가운데 <종로, 겨울>을 연출하신단 소식과 함께였다.


오늘 모진 추위, 알코올 유혹을 뿌리치고 '서울독립영화제(서독제)2009'를 찾았다.
세상엔 알코올보다 더 좋은 것들이 있으니까! ^.~ (음, 인간이 초큼 학실히 달라졌다;;)

영화는 장률 감독님의 <이리>.

그것 자체로도 뿌듯했는데, 상영 직전에 꺄아아아아아아~ 소릴 지를 뻔 했다.

내 앞앞자리에 김동원 감독님이 성큼 앉으시는 것 아닌가!!!!!!!!!!!!!!

역시 잘 왔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면서,
3년 전 뵀을 때와 함께, '아, 이 즈음이었지'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글의 처음에 언급했던 그 사람, 고 김원섭 씨.
우리의 무관심으로 차디찬 고국 땅에서 동사할 수밖에 없었던. 

영화를 본 뒤, 냉큼 김동원 감독님께 꾸벅, 인사했다.^.^
당연히 감독님은 날 기억하지 못했지만, 굳이 얘기하진 않고,
사진을 부탁드렸다.

언제 다음 작품을, 내년에는 볼 수 있냐는 질문에, 수줍은 미소를 지으시면서 확답을 못하시던 감독님.
"괜찮습니다. 계속 기다릴 수 있습니다." (-> 내 마음 속)

간단히 감독님께 작별 인사를 드리고,
바깥 무시무시한 추위를 온몸으로 맞닥뜨리며, 종로통을 거니면서,
6년 전 길바닥에 쓰러져 살을 에는 추위에 덜덜 떨고 있었을,
무엇보다 조선족이라는 이유로, 마음 깊이 후벼파는 추위에 더욱 쓰라렸을,
김원섭 씨를 떠올렸다.

흥청망청 종로의 밤은 깊어갔고,
나의 마음에도 밤이 내렸다.
오늘 나는 얼마나 많은 타인의 아픔과 상처를 스치듯 지나갔는가.
봉석아, 오늘 너의 아픔을 충분히 위로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죽을 때까지 외로웠을 김원섭 씨, 다시 한 번 미안합니다...

김동원 감독님을 만나뵀던 3년 전의 인터뷰를 꺼냈다.


"동북공정엔 흥분하면서 그 땅에 사는 동포엔 왜?..."

2년전 세밑을 앞두고 흥청거리던 서울 종로구 혜화동 골목통에서 한 조선족 동포가 동사한 채로 발견됐다. 경찰 지구대 사무실에서 불과 20여m 떨어진 장소였다.

고(故)김원섭씨. 그 날의 사건을 신문은 이렇게 전하고 있었다.

"법무부의 장기 불법체류자 단속을 피해 농성을 해오던 중국동포가 체불 임금을 받으러 나간 뒤 하루만인 9일 새벽 서울 도심 거리에서 동사한 채 발견됐다. 이 중국 동포는 숨지기 전에 112와 119에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구조를 요청했으나, 도움을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출신의 김씨에게 고국의 품은 차가웠다. '잘 살아보겠다'며 조국을 찾아와 공사장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던 김씨에게 고국의 기업은 임금을 체불했다. 정부는 장기 불법체류자라는 딱지를 붙여 김씨를 강제추방 대상에 넣었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추위 속에서 헤매던 그가 십여 차례 이상 119, 112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지만 의사전달이 제대로 안돼 구조의 손길을 받지 못했다.

불법체류로 체불의 고통을 받았던 우리의 한 재중동포는 차디찬 골목바닥에서 주린 배를 움켜쥔 채 죽어갔다. 그는 '동포'였지만 '우리 안의 타자(他者)'였다. 차별과 소외가 내재화한 사회. 그런 엄혹한 현실은 그를 사지로 내몰았다. 어떻게 보면 김원섭씨는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타살'을 당한 셈이다.

독립영화계의 대부이자 정신적 지주로 불리는 '송환'의 김동원 감독이 이번에는 동사한 조선족의 흔적을 좇았다. 옴니버스 인권영화 '다섯개의 시선' 중 '종로, 겨울'을 연출한 우리의 어떤 시선이 조선족 동포를 동사하게 만들었는지, 왜 그는 죽어갈 수 밖에 없었는지, 짧지만 굵은 이야기를 풀어냈다.

김 감독은 "차별받는 사람들을 불쌍한 시선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차별하는 상황들을 스스로 인식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한번쯤 돌아보게끔 하고 싶었다"고 연출의도를 밝혔다.

다음은 29일 서울 신대방동에 위치한 푸른영상에서 김 감독과 나눈 일문일답.


-  이번 영화의 참여 제안은 언제 받았으며 중국동포에 대한 이야기를 찍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지난해 8월 인권위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제안을 받고 상계동 철거민(<상계동 올림픽>)이나 비전향장기수(<송환>) 뒷얘기 등 다른 것들도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전에 고 김원섭씨에 대한 이야기가 가슴에 맺혀 있었고 이를 풀고 싶었다.

또 조선족동포를 바라보거나 우리의 역사에 대한 시선 때문에 이 문제를 택했다. 우리는 만주 땅을 찾고 싶어 하면서도 그 땅에 있는 동포한테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또 이쪽 동포들은 다른 이주노동자보다 더 차별받는다. 재외동포법에서도 미국과 유럽과 같은 제1세계 동포보다 한국에서의 권리를 차별받고 있다. 이 문제를 물고 늘어지고 싶었다.
 
- 처음 고 김원섭씨에 대한 뉴스를 접하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더보기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세계는, 세상은 늘 희한하게도, 연결돼 있다.
그건 부인할 수 없는, '참'인 명제다.

얼마 전, ≪밤은 노래한다≫를 낸 김연수의 낭독유혹이 펼쳐진 '향긋한 북살롱'.
한 독자의 질문에, 김연수는 다큐멘터리 한편을 입에서 꺼냈다.
뭐랄까. 그는 그 다큐를 떠올리면서, 그때의 감상을 되씹고 있는 듯 했다.
한없이 진지한 그의 표정과 입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김연수는 그랬다.
무방비 상태로 봤다가, 압도적인 감정에 짓눌렸다고.
다큐를 다 본 뒤, 땅을 쳤단다.
왜? 글을 더 잘 써야겠다고 반성했단다.
일본인 탐험가가 자전거를 타고 몽골을 횡단하면서 만난 몽골소녀의 이야기,
다큐멘터리 <푸지에>는 그렇게 내게 존재감을 각인시켰었다.
<푸지에>는 2007년 EBS국제다큐멘터리페스티벌(EIDF)에서 대상을 타고,
올해 EIDF에 '2007 우수작시리즈'의 한편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나는 보지 못했다.


그런데 내가 회원으로 있는, 푸른영상에서 정례 메일이 왔다.
매달 다큐보기 프로그램에 대한 안내 메일.
별 생각 없이 문을 열었다.
아니, 깜짝이야. 정수리가 반짝~
<푸지에>라는 이름. 익숙한 이 이름.
김연수를 통해 처음 접했던 그 이름.

허허,
세상은, 내 발 딛고 있는 세계는 이렇게 연결돼 있구나.
나는 생각했다.
지난 2006년 몽골초원을 찾았을 때, 혹시 그 초원에서 푸지에를 스쳐지나지 않았을까.
소녀의 비보가 있기 전이니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나도 모르게, 푸지에는 내 주변사람이었던 양 번뜩 생각이 들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이 말.
"모든 것은 모든 것에 잇닿아 있다."

2008/10/22 - [온통 어리석음의 기록] - [책하나객담] 사랑을 읊고, 밤을 노래한 김연수의 낭독유혹기

<푸지에> 상영회 개요.
언제 : 2008년 10월 31일 금요일 저녁 7시 30분
장소 : 푸른영상 사무실 (위치를 모르시는 분은 홈페이지 참조, 혹은 전화주세요.)
http://www.docupurn.org
TEL : 02)823-9124
 
<푸지에 / Puujee>  
· 감독 야마다 카즈야 
· 제작국가 일본, 몽골 
· 제작년도 2006 
· 러닝타임 110min 
· 원작언어 일본어, 몽골어 

-시놉시스
1999년 의사이자 탐험가인 세키노는 남미에서 아프리카까지의 긴 여행 도중 몽골에서 숙련된 솜씨로 말을 타는 소녀 푸지에를 만난다.
당시 푸지에는 여섯 살. “가까이 오지 마세요.” 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녀와의 만남 이후 5년 동안,
세키노는 몽골을 휩쓰는 슬프고도 강한 변화의 바람을 목격한다. EIDF 2007 대상 수상작.

-작품리뷰
드라마나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이야기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들이다.
이런 픽션들은 대게 현실에서 있을 법한, 그러나 결코 일어나지 않을 우연들로 시청자들을 유혹한다.
그리고 이런 우연이 어쩌다 일어난 일이 아닌 필연적인 일임을 끊임없이 주입하지만, 그 끝은 결국 현실로 돌아오는 것으로 맺는다.
우연히 일어난 극적인 상황들을 극복하고 다시 우연적인 상황들을 거쳐 현실복귀가 이루어지기 위한 과정에서 우연은 결국 필연으로 변모하는 셈이다.
그리고 모든 문제들에서 벗어나 결국 현실로 돌아오는 결론은, 보는 이들에게 현실의 안온함과 일상의 축복을 느끼게 한다는 것은 과장일까?
몽골소녀 푸지에와의 만남은 우연에 가깝고 우리는 이 만남을 통해 한 소녀의 삶과 변화하는 몽골의 현재를 들여다 보게 된다.
정해진 극본이 없는, 다큐멘터리와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극적인 푸지에의 삶에서 불행을 포함한 우연들은 결국 필연이었을까?
어떤 각본보다도 더 극적인 현실귀환에 앞서 감독은 계속 우리에게 묻고 싶었던 듯하다. (이봉욱)

-수상내역
2007 EIDF 대상
2006 [키네마 준보] 선정 3위 영화 랭크

-감독소개
Yamada Kazuya 야마다 카즈야
1954년 일본 고치현 출생. 도쿄농경대학을 졸업했다. 템플대학 예술학부에 입학해 방송과 영화를 공부했으나 도중에 그만 두었다.
니혼 TV의 계약 감독으로 일했으며, 현재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