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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9.02 '왜 나는 당신을 잊지 못하는가'
  2. 2008.06.14 발끝에 머문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친구, 병률에게… (6)
2010.09.02 18:13 메종드 쭌/무비일락
<씨네21> 763호의 피쳐기사인, <영화평론가, 영화평론가를 만나다 ① - 김영진, 이동진, 김혜리 영화가 맺어준 친구들, 언어의 힘을 생각하다>. 무척 흥미롭다. 세 명외에 정성일, 허문영 씨까지 해서 다섯 영화문필가들이 나누는 대화는, 흥미진진한 탁구경기를 보는 것 같다.

뭐 어쨌든, 말하고자 하는 건, 그 내용이 아니고, 좀 엉뚱한 거다. 피쳐기사의 첫 장면에 김영진, 김혜리, 이동진 씨가 함께 찍은 사진이 나온다. 사진을 보자마자 팡~ 터졌다. 김혜리 여사님의 자연스러운 포즈와 표정에 비해, 사람남자 둘의 포즈와 표정은 뭐랄까. 뭔가, 불편함과 어색함을 견딜 수가 없다는 표정이다. :)

사진은 여러모로 재미난 대비를 이룬다. 시소를 놓으면 사람남자 둘 쪽으로 기울어야 할 듯 싶지만, 구도 등 여러가지를 봐도 왠지 균형을 이루는 모양새다. 희한하기도 하지. 뒤에 있는 나무들을 봐도 그렇고. 참 재미난 사진이다.

김영진 씨는 몇 년 전, 그가 <필름2.0>에 적을 두고 있을 무렵,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물론 그는 기억 못하겠지만) 목소리 좋고, 글 좋고, 무게감 짱이다. 이동진 씨는 광화문의 커피스트에서 수다를 떨었던 적이 있고, 몇 번 그가 초대된 행사에 간 적이 있는데, 의외로 유머가 좔좔좔. 그의 글과 다른 재미를 볼 수 있다. 


어쨌든, 나는 이 사진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 본인들은 어찌 느끼는지 모르겠으나. ^^;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환상의 빛>을 봤다. 전설처럼 제목만 설핏 들었던 그 영화. 당최 뭐라 표현할 수 있는 재능이 내겐 없다. 이동진 씨가 그 자리에 함께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빠돌이'였구나. 괜히 반가웠다. 나는 빠돌이까지는 아니지만, 고레에다 감독 작품을 참 좋아한다. 특히, <원더풀 라이프>. 이동진 씨도 참 좋아한다고 했다. 괜히 또 반가웠다.

<환상의 빛>은, 동명의 원작에 나온 구절로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 좋겠다.
“비 그친 선로 위를 구부정한 등으로 걸어가는 당시의 뒷모습이 뿌리쳐도, 뿌리쳐도 마음 한구석에서 떠오릅니다.”(p.12) 그날의 기록이다. <환상의 빛>이 내 마음에 틈입했던 기록. 



‘왜 나는 당신을 잊지 못하는가’

<환상의 빛> 출간기념 영화평론가 이동진과의 대화


“다만 삶의 하중荷重이, 그 무게가 불현듯 어깨를 짓누르고, 일상의 생의 부담이 가시처럼 마음에 박혀들면 홀연히, 스스로 꿈결처럼 사라지고 싶은 것이다. 그뿐이다. 단순하다면 단순하고 질박하다면 그런대로 또 질박하다.”(『도깨비 본색, 뿔난 한국인』, p.251)


물론, 아무도 모른다. 본인만 알 것이다. 스스로 꿈결처럼 사라지고 싶은 욕망. 아니, 자신도 모를 수 있다. 그저, 그 순간이 다가왔을 뿐. 걸어도 걸어도, 알 수 없는 것일 수 있다. ‘주무주주(住無住住)’라고 했던가. 머무름이 없는 곳에 머무는 것, 그것이 곧 머무름이라고 했던. 바람이 분다.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떠남은, 분명 그런 것이다. 이 자리에 있고도 없어지고 싶은 욕망 같은 것.


안타깝다. 어디서 본 표현이었을까. 출처를 미처 적어놓질 못했다. “사슬을 풀고 구름이 되고 싶다. 연줄을 자르고 안개가 되고 싶다. 연관의 고리를 부수고는 물 흐름이 되고 싶다. 우리는 그러기를 바라는 존재다.”


<환상의 빛>.

<원더풀 라이프> <아무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 <공기인형> 등을 연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이 영화를 보고, 원작인 「환상의 빛」을 읽고, 퍼뜩 메모해놨던 이 표현이 틈입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지 3개월 밖에 되지 않았으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혹은 끊을 수밖에 없었던 그 남자의 마음이 아녔을까. 혼자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실상은, 아무도 모른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유미코. 남겨진 사람. 남편이 훌쩍 그렇게 떠난 이유를 알고 싶지만, 당최 알 수 없다.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만, 불쑥불쑥 침입하는, ‘왜’를 지울 순 없다. 생은 그렇잖나. 바삐 길을 가면서 모퉁이를 돌다, 전혀 예기치도 않게 첫 번째 첫 사랑을 만날 수 있듯,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가도, 아니 10년을 떠올리지 않다가도 느닷없이 한 순간을, 생각을 만난다. 하물며, 어떤 이유도 남기지 않고 떠난 사람에게서야. 하지만, 남겨진 사람은 그것 때문에 통증이 온다. 허무함을 온 몸으로 맞닥뜨리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을 감내해야 하며, 느닷없는 슬픔을 만나야 한다. 마침내, 삶에 덕지덕지 묻은 부조리를 참고 견뎌야 하는 것도 온전히 남겨진 자의 몫이다.


그래서일까. 그저, 먹먹했다. 내겐 달리 표현할 방도도, 필력도 없다. 적어도 내게, 그 빛은 환상적이진 않았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식상하고 진부하다. 내겐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무엇이었을 뿐. 어둠과 빛을 등가로 놓는 감독의 시선에 마음이 때론 덜거덕거렸다. 특별하고 유별난 삶을 다룬 것도 아니었다. 어떤 사회를 직접 비춘 것도 아니었다. 인물을 묵묵히 따라갔을 뿐인데, 그 카메라엔 삶이 묻어났다. <원더풀 라이프> <죽어도 죽어도>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형이라. 명백한 인장이자 징표가 있었다. 나, 이런 사람이야, 라고 대놓고 말하진 않지만, 영화는 이미 그렇게 말하고 있는.


지난 7월13일, 서울 낙원동에 위치한 서울아트시네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환상의 빛> 상영회였다. 원작인 『환상의 빛』(미야모토 테루 지음/송태욱 옮김|서커스 펴냄) 출간 기념. “미야모토 테루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 위에 걸쳐 있는 박명의 빛줄기를 바라보며, 시간의 소금기가 묻어 있는 아름답고 쓸쓸한 문장들을 또박또박 적어나간다”고 추천사를 썼으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열혈 팬인 이동진 영화평론가와 함께 한 시간이었다. 


영화가 끝난 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영화가 아름답고 쓸쓸한데, 장면 몇 개를 잘라서 벽에 걸어두고 싶은 느낌이다. 그런 느낌 한편으로 (그렇게 하면) 한 달 뒤,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다. (웃음)” 지금부터 이것은, 그와 관객이 함께 나눈 기록의 일부다. 그 옛날, <원더풀 라이프>에 흠뻑 빠졌던 나는, 그 역시 이 영화의 신봉자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무척 반가웠다. After Life…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맺은 인연


“저는 동시대 외국 감독 중에선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정말 좋아합니다. 물론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최고의 감독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얘기하면 <원더풀 라이프>를 선댄스 영화제에서 처음 봤을 때의 경험 자체가 아주 강렬하게 남아 있어요. 그땐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누구인지도 몰랐지만 매우 깊은 정서적 충격 같은 게 있었거든요. 그런 경험을 선사한 사람에 대한 원초적 끌림 같은 것일 수도 있겠죠.” (씨네21 763호, <영화가 맺어준 친구들, 언어의 힘을 생각하다> 중에서)


이동진 평론가는 말하자면, ‘고빠(고레에다 히로카즈 빠돌이)’다. 현존하는 감독 중에 특히 좋아한다다. 고레에다 감독은 데뷔작인 <환상의 빛>을 포함, 근작인 <공기인형>까지 7편의 장편을 만들었다. <환상의 빛>을 찍기 전까지 TV다큐멘터리 등을 찍다가 뒤늦게 영화를 시작한 늦둥이인 셈인데, 이 영화로 좋은 반응을 얻으며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고레에다 감독 작품 중에 처음 본 것은 <환상의 빛> 아니고 <원더풀 라이프>(1998)다. 과할 정도로 좋아한다. 고레에다 감독 필모 중 가장 잘 만든 것은 <걸어도 걸어도>지만, 제일 좋아하는 건 역시나 <원더풀 라이프>다.”

 

1999년 선댄스 영화제에 간 이동진 평론가. 이런저런 시놉시스를 훑어보다가 재밌겠다 싶었던 것이 <원더풀 라이프>. 고레에다 히로카즈?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신인인가? 그런데, 이건 뭔가. 영화를 다 본 뒤, 다리가 꿈쩍을 않는다. 감동 먹어서, 영화에 취해서. 별 수 없이 관객과의 대화까지 지켜보게 됐다.


여든 살 가량으로 추정되는, 캐나다에서 오셨다는 할머니가 손을 들고 영화에 대한 소감을 말하는데, 뭐랄까, 묘했다. <원더풀 라이프>에 나오는 할머니를 언급하면서, ‘나는 오늘 내 평생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봤다’며 예찬을 했다. 그리고선 고레에다 감독이 말을 시작하는데, “아, 저런 사람이니까 이런 영화를 찍는구나 싶더라. 친절하고 겸손한 태도에 대해서도 감동을 받았다.” 감동 두 배. 이동진이 고레에다에 빠진 날.


그 해 가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원더풀 라이프> 상영됐다. 극강이었다. 이동진 가라사대. “여태껏 내가 간 부산국제영화제의 모든 GV가운데 가장 뜨거웠던 GV였다.” <공기인형>이 개봉했을 때, 주연배우였던 배두나와 인터뷰를 했다. 배두나가 던진 진담 혹은 농담? “고레에다 감독이 무척 멋있어서 미혼이었다면 프러포즈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저 흘려들어도 좋을 만큼의 농담이지만, 유부남만 인기 좋은 더~러운 세상.


물론, 아무리 좋다손 고레에다 감독에 대한 아쉬움, 왜 없겠나. 완벽한(?) 감독에게 딱 한 가지 없는 것. 그러니까, 네(사)가지까지는 아니고. “꽤 많이 만나본 감독 중 하나고, 고레에다 감독도 날 알게 됐다. 그의 영화는 모두 DVD로 소장하고 있는데, 세 번째 영화인 <디스턴스>만 없다. 만났을 때, 그 얘길 하니까, 반색을 하며 보내주겠다는 거다. 주소를 적어줬는데, 1년이 지나도 안 오더라. <걸어도 걸어도> 국내 상영 당시에도 인터뷰를 했는데, 끝나면서 이 얘길 하니까, 너무 미안해하면서 다시 주소를 받아갔다. 지금, 1년 반이 지났는데...(웃음) 그거 하나만 빼고는 완벽하다.” 고레에다 감독님, 들리세요? 줄 건 주셔야죠. ^.~


환상의 빛, 책과 영화 사이



<환상의 빛> 원작이 번역 출간되면서, 추천사 얘기가 들어왔다. 사실 고레에다 감독 때문에 책을 들었다. 그의 데뷔작을 잉태한 원작은 어떨까. 한 장 두 장 넘기면서 깜짝 놀랐다. “어떤 면에선 소설이 (영화보다) 더 훌륭한 면도 있다. 플롯으로 읽는 소설이 있는데, 이 책은 문체로 읽는 소설이었다. 표제작인 「환상의 빛」은 중편인데, 문장을 보니 활자에서 소금기 같은 냄새가 났다. 짠 내. 문장이 워낙 좋아서 추천사에 그렇게 썼다. "…시간의 소금기가 묻어 있는 아름답고 쓸쓸한 문장들을 또박또박 적어나간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남성 소설가가 여성을 화자로 서간체로 풀어나간다는 점이었다. 시쳇말로 ‘삑살이’도 없을뿐더러, 여성 작가도 써도 이렇게는 못 쓸것 같을 정도. 번역도 상당히 좋았던 데다, 예상 외로 소설이 무척 좋아서 기분 좋게 추천사를 썼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소설은 영화보다 내용이 풍부하다. 고레에다 감독은 내용을 최대한 줄이자고 작심한 듯 영화를 풀어나간다. “소설에서 유미코가 다미오에게 시집가는 날, 기차 안에서 재일교포 여자를 만난다. 상당히 좋다. 그런데, 영화에선 생략됐다. 또 영화의 첫 장면. 유미코의 어린 시절에 할머니가 집을 떠난 뒤 ‘아들이 죽여서 구들장에 묻었다’는 소문이 도는데, 경찰이 이를 확인하기 위해 구들장을 파본다. 물론 없다. 소설에 있는데, 영화에선 묘사가 안 돼 있다.”


고레에다 영화의 원형이 고스란히


영화는 고레에다 감독의 원형 같은 부분이 역시 있다. 이야기가 될 만한 부분을 거세하고 길을 거닐거나 노동을 하는 장면을 길게 보여준다. 특히, 남겨진 사람에 대한 이야기. 고레에다 감독은 대개 자신이 직접 쓴 시나리오를 영화화하는데, <환상의 빛>은 원작이 있었다. 그럼에도 남겨진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고레에다 감독의 머릿속 꼬마전구가 ‘반짝’했을 가능성도 제시됐다.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는 비유적으로 ‘박명’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엷을 薄, 빛 明. 일기로 말하자면 해가 뜨는 순간과 지는 순간, 두 번이다. 두 번의 시간이 중요하다. 가장 인상적인 이 시간을, 영화는 프레임을 세로처럼 쓰면서 보여준다. 가로 프레임에 변화를 주기 위해 문이나 벽을 이용하는데, 열린 문 사이로 좌우 벽을 보여주고 내부를 어둡게 보이게 하면 흡사 세로 프레임처럼 보인다. 봉준호 감독이 세로 프레임에 애착이 많다. 이 영화 그런 게 많다. 고레에다 감독이 좋아하는 앵글 중 하나가 실내는 어둡고 바깥은 밝은 거다. 어둠에서 빛을 향해 찍는. 근경의 어둠은 실내, 원경의 빛은 실외인 장면을 애호한다. 나는 그것이 폼 잡기로서의 애호가 아니고,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를 드러내는 징표라고 본다.”

 

그러니까, 지금 삶은 어둠이자 실내에서, 빛은 저 멀리 바깥에, 작은 부분으로 존재한다. 그런 면에서 고레에다 감독에겐 어둠 속에서 빛을 갈망하는 눈빛 같은 게 있는 것이 아닐까, 그는 진단한다. 빛을 향해 달려가는 장면이, 이 영화에도 첫 장면부터 있으니까. <원더풀 라이프>에서도 그렇듯.


“이건 감독의 인장 같은 거다. 오우삼의 흰 비둘기 같은 거. (웃음) 스타일면에서 이런 특성이 있는 한편, 이야기 측면에서도 그런 게 있다. 이 영화의 이야기를 보면, 저밀도잖나. 드라마틱한 얘기가 있을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얘기라면 아내가 한 대 후려친다거나 남자를 찔렀을 것이다. 이렇게 관습적으로 할 수 있는데, 이 영화는 그런 게 없다. 재혼도 자연스럽고. 그게 원숙한 시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은 지 세 달이 되었을 때 저는 이유도 알 수 없는 자살이라는 형태로 당신을 잃었습니다. 저는 그 후 허물처럼 살아왔습니다. 당신은 왜 자살을 했을까, 그 이유는 대체 뭐였을까, 저는 멍해진 머리로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러다가 생각하는 데 지쳐서 아무래도 좋다는 마음이 되어 집주인 부부가 꺼낸 재혼 혼담에 어느새 휘말리고 말았습니다.”(p.47)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 그리고 남은 여자. 이동진은 여자의 마음을 따라 간다. 첫 아이를 낳고 3개월, 그러니 생활력도 왕성할 즈음, 아침에 시시덕거리며 출근했던 그 남자. 그런데 왜 죽음을 택했을까. 왜, 왜, 왜! “얼마나 괴롭고 답답하겠나. 영화엔 안 나오지만, 둘이 어려서부터 친구다. 그런데, 이 남자가 죽은 거다. 별별 생각을 다 하는데, 그러다 세월이 지나고 깡촌으로 시집을 가고. 끝까지 해답을 주진 않는데, 영화는 소설보다 조금 더 나간다.”


그것이 클라이맥스였다. 여자가 지금의 남편과 바닷가에서 대화하는 장면. “좋긴 한데, 과하다고 생각한다. 환상의 빛, 바다의 유혹, 죽음의 유혹 같은 건데, 프로이트식으로 말하면 타나토스에 대한 근원적인 유혹이랄까. 살아야겠다는 유혹도 있지만, 스스로를 소멸하고픈 욕망도 있잖나.” 삶과 죽음 사이의 외줄타기. 연인 사이에만 ‘밀당(밀고 당기기)’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도 밀당이 있다. 생사, 그 다르지 않은, 분리되지 않은 그 무엇.


“이제 아무래도 좋아, 행복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아, 죽는다고 해도 좋아. 뿜어져 올랐다가 흩어져 날아가는 커다란 파도와 함께 그런 생각이 자꾸만 가슴속에서 일어났습니다. 저는 어린아이처럼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당신이 죽었다는 것을, 저는 그때 확실히 실감했던 것입니다. 아아, 당신은 얼마나 쓸쓸하고 불쌍한 사람이었을까요.”(p.60)


남겨진 사람, 이유를 알고 싶은 사람



그는 그리하여,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속성을 들먹인다. 이유를 찾고 싶은, 해답이 없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생각해보라. 셀러브리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신문은 방송은, 어떻게든 ‘왜’를 규정짓고 싶어 안달이다. 스스로 죽음을 택했을 때, 이유가 단순하게 하나일까. 그럼에도 신문의 사회면은, 인간이 해답이 없는 것을 견디지 못함을 증명하듯, 불쑥 내뱉는다. “폭음을 한다?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잖나. 사실은 90%가 알코올 중독이라서 마신다. 그런데도 이유를 댄다. 마약도 마찬가지다. 트라우마니 뭐니 하면서, 사람은 이유를 갖다 댄다.”


“아아, 당신은 그냥 죽고 싶었을 뿐이구나, 이유 같은 것은 전혀 없어, 당신은 그저 죽고 싶었을 뿐이야.”(p.59)


다시 돌아가, 이 영화는 고레에다 영화가 그렇듯, 남겨진 사람의 이야기다.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초지일관 남겨진 사람 혹은 던져진 사람의 이야기. 그러니까, 이 영화, “남편이 왜 죽었을까, 는 삶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으로 환원할 수 있다. 삶이란 무엇일까, 질문했을 때, 답이 주어질리 만무하잖나. 그 질문을 곱씹으며 살아야 하잖나. 그것이 <환상의 빛>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의미를 추구하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며, 뒤집어 말하면 의미가 애당초 없었을 때 그것을 견뎌내야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동전의 양면인데, 텍스트가 과장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가 든 예는, 여자가 지하실 계단을 닦는 장면. 오랫동안 여자는 계단을 닦는다. 한참 그것을 보여주던 카메라는, 여자가 멍하니 서 있는 것도 따라간다. 그때, 남편을 생각했다고 가정한다면, 근원적인 질문은 그렇게 느닷없이 삶에 틈입한다는 것.


“아무리 중요한 문제라도 끊임없이 그 문제만 고민하는 인간은 없다. 어느 순간 갑자기, 그 남자는 왜 죽었을까, 하고 질문을 던지고 부재와 쓸쓸함이 느껴지지만, 이 여자의 재혼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팬티 하나만 입고 교태부릴 때의 행복도 있다. 그저 현재 생활로도 해결되지 않는 근원적인 질문이 있다는 거다. 그것이 끊임없이 삐죽삐죽 삐져나와 틈입한다. 그런 면에서 훌륭한 영화고 소설이다.”


“당신을 잃어버린 슬픔은 저 자신조차 몸이 떨릴 정도로 이상한 것으로, 그것은 언제까지고 언제까지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습니다. 타인의 억측이 미치지 못하는, 아무런 이유도 발견되지 않는 자살이라는 형태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발을 동동 구를 만한 분함과 슬픔이 가슴속에 서리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분함과 슬픔 덕분에 오늘까지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p.80)


이어 이동진 평론가와 가진 질의응답 시간. 


영화 첫 부분에 미스터리처럼 죽음을 몰고선 풀려나갈 것처럼 가다가, 결국 아무 것도 없다. 죽음을 이해할 순 없지만, 죽음이후 남겨진 시간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고레에다 감독은 왜 끝까지 남겨진 사람에 대해서만 얘기하는가. 동기나 이유가 궁금하다.


전제할 것은, 내가 고레에다 감독은 아니다. (웃음)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의견을 말하자면, 만약 이 텍스트에 반전이 있어서, ‘그 남자는 죽지 않았다’거나 ‘재혼남이 그 남자의 환상이었다’고 하면 이 텍스트는 완전히 깨지겠지. (웃음) 고레에다 감독은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진 않는다. 나는 고레에다 감독이 아직은 완성된 감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직 도상에 있는 사람이다. 내가 볼 땐, 방법론적 회의론자 같은 측면이 있다. 장편 7편이 스타일 등이 다 달라서 같은 사람 영화라고 보기도 어렵다.


<환상의 빛>에서 롱쇼트와 롱테이크로 찍은 감독이, <원더풀 라이프>에선 전반은 다큐처럼, 후반은 극영화처럼 찍었다. <디스턴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핸드헬드로 찍었다. <아무도 모른다>는 정해진 각본이 없었다. <걸어도 걸어도>는 배우의 미세한 애드리브도 허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찍었다. 연기부터 카메라, 편집까지 철저하게 가장 지독한 일본감독이 찍은 것처럼 만들었다. <하나>는 장르영화로 사무라이 코미디이며, <공기인형>은 한국배우를 데려다 만들었는데, 그동안 한 번도 안 찍었던 베드신을 찍었다.


고레에다 감독은 아직도 뭔가를 시도해보는 단계인거 같다. 흥미롭고 당분간 이렇게 할 것 같다. <하나>처럼 삑살이를 낼 것도 같지만, 현재 생각으론 끝까지 좋아할 것 같다. 좋은 영화는 해답을 주는 게 아니고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그래서 고레에다 감독이 훌륭한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감독이 완성된다는 게 무슨 말인지 모르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완성된 감독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고레에다가 여전히 길 위에 있다는 점이 좋습니다. 그의 온화해 보이는 영화들은 의외로 세상이나 삶 자체와의 철두철미한 마찰에서 나오는 산물이라는 느낌이 있거든요. 고레에다의 영화들이 연기를 끌어내는 방식에서 촬영 스타일까지, 전부 다르다는 점이 무척 흥미로워요.… 아마도 고레에다의 영화들은 끝까지 좋아하고 지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씨네21 763호, <영화가 맺어준 친구들, 언어의 힘을 생각하다> 중에서)



남편이 술 먹고 들어왔는데, 유미코가 울음을 터트리는 장면을 어떻게 봤나.


소설의 클라이맥스는 거기다. 유미코가 앙탈을 부리듯이 ‘왜 전부인을 사랑했는데, 나랑 결혼했냐’ 하면서 수습이 안 되는 거다. 그러면서 불쑥 ‘그 사람이 왜 죽었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데, 그 장면을 영화는 떼서 맨 뒤에 붙였다. 시각적으로 뛰어난, 그래서 과하다싶은 장면을 만들었다. 


남자(다미오)도 그 못지않은 사연을 가진 사람이라는 거다. 그럼에도 삶의 길이 남은 거고, 두 사람은 그 길에서 만난 동반자인 거지. 그 장면은 리얼한 앙탈이면서 장면으로서도 좋다. 그런 부분을 덜어낸 것도 좋고. 


고레에다 감독이 평생의 스승으로 삼은 사람이 허우샤오시엔 감독이다. 이 영화를 찍고 가장 먼저 생각한 사람이 허우샤오시엔이고, 대만까지 가서 이 영화를 보여줬다더라. 딱 보고 스승님 왈, 영화 참 좋다. 근데 너는 모든 걸 미리 결정하고 찍었구나. 고레에다 감독이 머리에 한방을 맞은 것 같았다더라. 소설엔 강박이 없는데, 영화는 좋고 아름답지만 내 느낌엔 강박 같은 게 보인다는 그런 말이지. 형식이 먼저 결정된 것 같은. ‘멀리 관조적으로 찍을 거야’와 같은 강박이 있었다는 거지.


[예스24 기고원문]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2008.06.14 22:18 러브레터 for U
올해도 과꽃은 어김없이 피었고, 우리는 다시 걸었다. 벌써 4년차 여정을 마쳤다. 가끔 그런 생각도 한다. 이 무심하고 앙상한 도시 생활의 폭압을 견뎌나가게끔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함께 걷는 우리의 여정이 아닐까하고. 내년에 다시 꿀 꿈이 있기에 세월의 하중을 버티고 서 있는 셈이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리만의 10억 추억 만들기

올해도 마찬가지로 바람이고 싶고, 강물이고 싶은 우리네 마음을 길 위에 꾹꾹 눌러 담고 한 다발 추억도 심었구나. 지구상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 언젠가는 다 식어빠지고, 밑동이 드러나고, 이빨까지 빠질 뻔하디뻔한 삶의 한 자락에 우리는 짧은 쉼표를 찍고 한 박자 템포를 늦췄다. 갖다 대려면 얼마든지 많은 이유를 붙일 수 있겠지만 어디 사람살이가 이유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겠냐. 그냥 길이 있었고 너와 내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니었겠냐.  

나희덕 시인(국밥 한 그릇)이 언급했듯, ‘잘 비워낸 한 생애가 천천히 식어가는 동안’, 켜켜이 쌓고 있는 이 기억의 나이테가 무척이나 소중하다. 무엇보다 ‘너와 함께’라는 그것이 언젠가 맞닥뜨릴 삶의 끝에서 내가 품고 갈 수 있는 하나가 됐다.

사랑과 이별도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추억할 것이 많은 사랑의 행로가 마음을 풍성하게 만들고 최악의 이별은 추억할 것이 전혀 없다는 것 아니겠냐. 광풍처럼 불어 닥치고 있는 1억, 10억 만들기와 같은 현대적 삶의 궤적에서 너와 나 마냥 자유로울 순 없겠지만 네가 어느 라디오에서 나온 멘트라며 해줬던 “10억 원 가치의 추억 만들기”에 나는 전적으로 동감했다. 누가 보면 돈 없는 놈들의 하릴없는 넋두리이자 푸념일 뿐이겠지만 나는 너와 함께 10억 원 가치를 훌쩍 넘을 추억들이 쌓여가고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그 행로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생각은 없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굳이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심에서 나 역시 벗어나고 싶다. 그건 단지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기억이 되고 추억으로 저장됐을 뿐이니까. 터벅터벅 뚜벅뚜벅 그 모습처럼, 나의 발, 나의 눈, 나의 가슴을 통해 들어온 모든 것을 고이 받아들이고 싶었던 게지. 우린 길의 감식자도 아니고 행랑채에 머물러 국밥 한 그릇 말아먹은 나그네였던 것 맞지?  

방파제에 산산이 부서진 하얀 파도들 앞에서 폼 잡거나 모래사장에 발을 다독거리며 두런두런 나눴던 이야기들, 거의 차도 다니지 않고 쭉 뻗은 밤길을 전봇대 숫자를 세며 단축 마라톤 했던 기억. 이방인을 향해 짖어대는 개들 앞에 주눅 들어 날름 도망갔던 소심자들의 모습. 그래 올해도 우린 반딧불이가 안 보인다는 소리를 하기 무섭게 그들을 보았지. 추억은 방울방울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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켜켜이 쌓이고 있는 너와 나의 추억의 나이테

그 추억의 행로와 맞닿았던 한 영화가 있다. 네가 보지 못했겠지만 <원더풀 라이프>는 ‘삶이라 불리는 심호흡을 끝내고 나는 무엇을 추억하면서 저승으로 갈 수 있을까’ ‘내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더라’라며 자문하게끔 만든다. 이승과 저승의 문턱을 넘어갈 즈음 마음에 품을 추억을 떠올리지 못하면 그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는 영혼들이 거기에 있다. 머리 속에선 이런 저런 영상들이 가지를 친다. ‘그래, 그런 때가 있었지…’ ‘아니 이건 어떨까…’하고 공연히 기억의 회로를 들쑤시게 만드는 무엇들.

아름답고 행복했던 순간을 영원히 가지고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좋지 않겠니. <원더풀 라이프>는 상상의 공간이자, 지상에서 영원으로 가는 중간역인 ‘림보’에서 망자들이 머무르는 일주일을 보여준다. 죽음을 맞이한 이후 저승으로 가는 길목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중간기착지에서 각 영혼은 하나씩 과제를 부여받지. 그 지난하고 다양한 삶의 스펙트럼 가운데 가장 행복했던 단 하나만의 추억을 골라내야 하는 것이다. 다른 모든 기억들은 망각의 늪 속으로 던져버린 채.

림보의 면접관은 망자들의 행복한 순간을 영상으로 재현시키고 망자들은 그 순간을 보면서 영원의 시간으로 편입한다. 대개의 망자들은 담담하게 살아생전 기억을 털어놓으며 자신이 죽음에 접어들었음을 쉽게 인정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게 마련이겠지. 개중에는 추억을 선택하지 못해 저 세상으로 가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한편으로 독백처럼 풀어놓는 그들의 추억도 망자 중 한 사람이 얘기했듯 ‘기억을 이미지화 시킨 것’이라 불확실하고 가공된 측면을 내비친다. 따지고 보면 지나간 기억은 빛깔은 윤색되고 미화되기도 하는 운명 아니겠냐. 그러나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죽을 때까지 간직하고픈’, ‘힘들 때 의지하게 되는’ ‘마음에 힘이 되는’ 추억이 기실 개인의 삶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개인의 삶에 대한 심판을 통해 ‘천당’과 ‘지옥’으로 갈리는 양자구도가 아닌 망자가 행복한 사후를 ‘선택’한다는 그 인식은 참으로 많은 것을 얘기해주고 있더라.   

<원더풀 라이프>는 그렇게 삶의 일부분을 머리 속에 이미지화 시키는 작업, ‘추억’의 되새김질을 통해 관객에게 속삭인다. ‘림보’를 거치는 이들은 모두 같은 질문을 받지만 각 개인마다 행복의 순간은 다른 색깔과 모양을 지니고 있다. 삶의 순간마다 켜켜이 쌓아올려진 작은 일상의 편린들이 얼마나 소중할 수 있는지, 누군가와 함께 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 될 수 있는지, 영화는 너무나도 느린 템포로 화두를 던져준다.

무심하게 흐르는 시간 속에 매몰된 채 기계처럼 일어나 습관처럼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주변 사람들과 날씨 얘기를 나누거나, 거리를 하얗게 색칠하는 눈에 괜스레 짜증을 내며 죄 없는 담배만 빠끔거리는 일상의 조각들도 있다. 그러나 이도저도 아닌 것 같은 감정은 텅 빈 진공상태에서 무의미한 유영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원더풀 라이프>는 사후 세계를 빌어 일상에도 작은 의미를 지녀볼 것을 살며시 권유하더라. 그것 또한 추억의 나이테를 쌓는 일이니까.

너와 나의 그 추억도 일상의 한 결이다. 네가 받아들이는 색깔과 내가 다르듯, 각자의 이야기는 언젠가 약간씩 다른 추억의 빛깔로 변색될 수도 있겠지. 그러나 나의 추억 속에는 네가 함께 자리 잡고 있음을, 그 길이 있음을, 나는 감사할 수 있을 것 같다. 지울 수 없는 옛 사랑과 함께 고래처럼 숨 쉬고 있는 추억의 박동은 그렇게 언젠가 삶의 끝에서 나를 무난히 저승으로 인도해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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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있어 행복한 우리들

<원더풀 라이프>는 또한 행복에 대한 영감도 보여준다. 행복한 추억을 선택하지 못해 림보에서 면접관으로 일하고 있는 모치즈키는 다른 망자가 그 추억을 선택하게끔 도와주지만 정작 본인은 그러지 못한다. 물론 사연이 있겠지. 그리고 와타나베란 노인도 평생 동안 평범하기만 한 삶에서 행복의 순간을 채집하지 못한다.

그런데 모치즈키가 와타나베의 일생이 담긴 비디오를 보여주는 과정에서 모치즈키와 와타나베, 그리고 와타나베의 아내 사이에 얽힌 관계가 우연찮게 드러난다. 와타나베는 테이프를 돌리면서 평범하기만 한 삶에서 잊고 있던 어떤 기쁨을 깨닫고, 아내가 죽기 전 새로운 마음을 약속하던 순간을 선택해서 그녀와의 추억을 안고 떠난다. 사랑했던 여자가 자신의 죽음 직후 다른 남자를 선택했음을 쉬이 받아들이지 못했던 모치즈키도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지.

두 사람은 다른 시공간에서 서로를 질투하고 있었다. 우연히 발견한 와타나베 아내의 파일에서는 모치즈키가 죽기 전 함께 했던 순간이 담겨있었던 것이지. 50년 동안 림보를 떠나지 못했던 모치즈키도 자신이 다른 누군가의 행복의 일부분으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행복한 추억에 대한 선택의 망설임에 종지부를 찍는다.

하지만 함께 림보에서 모치즈키를 짝사랑했던 시오리는 그와의 행복한 날들을 잊지 않기 위해 림보에 계속 남아있는 것을 택하더라. 두 사람은 엇갈린 선택을 하지만 행복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지 않냐. 누군가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행복의 일부분으로 누군가 존재하고 있음을.

생각해보면 조금 더 주위를 둘러보란 의미를 품고 있었던 것 같다. 나의 행복은 가족, 친구, 애인 등 그 누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며 나도 그 누군가의 행복의 일부분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을. 항상 곁에 있지 않더라도 단지 누군가 있었다는 사실로 행복해 질 수 있기를.

림보에 다다를 그 날까지 행복했던 순간을, 그 영상을 마음속에서 가끔 재현해 보는 것도 어떨까 싶다. 추억을 먹고산다는 이야기처럼 누구나 가질 법한 삶의 아름다운 한때, 보물 같은 추억을 저 마음 깊은 곳에서 꺼내서 말이야. <원더풀 라이프>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저 세상에 편히 가기 위해서라도 이 세상에서 진한 추억 하나쯤은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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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듬성듬성하지만 한올한올 짜고 있는 내 추억의 나이테는 너와 함께여서 점점 진해지고 있다. 나는 준비된 저승길을 삶 속에서 짜고 있다. 림보에서 면접관의 질문에 나는 망설임 없이 진한 추억들을 담은 보따리를 풀어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네가 겪진 못했지만 알고 있는 내 깊은 곳의 그 추억들까지 담은 보따리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이만하면 우리, 너와 나의 생에 대해 “원더풀 마이 라이프(Wonderful My Life)!”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 아름다운 동행, 나의 친구 병률아, 고맙다. 네가 있어서, 너와 함께 할 수 있어서.

(* 한겨레-대티즌 UCC공모전 응모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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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