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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 극장'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2.02.19 시대를 풍자하고 담아냈던 ‘카바레’의 힘

시대를 풍자하고 담아냈던 ‘카바레’의 힘
『베를린, 천 개의 연극』 박철호



지금 베를린은, 새로운 ‘아트 씬’이다.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다. 전 세계 예술계의 ‘it place’. 점점 더 많은 예술가들이 베를린을 향한다. 더불어 예술을 향유하고픈 사람들의 행렬도 잇는다. 덕분에 현재의 베를린, 유럽에서 가장 흥미로운 도시다. 예술뿐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에서도 베를린은 대세. 세계 미술계의 축이 베를린으로 이동했다는 말, 틀리지 않다.

‘예술가들의 천국’으로도 불리는 베를린. 수치로 나타낼 수도 있다. 갤러리 600개. 미술가 5000명, 작가 1200명, 대중음악 밴드 1500개, 연극극단 300개. 베를린시도 예술가 후원에 적극적이다. 27개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연간 2000만유로(약 300억원)를 예술가들에게 지원한다. 수많은 기업과 기관도 예술가들 후원에 힘을 싣고 있다.

“베를린은 가히 세계 공연 예술의 메카라 할 수 있다. 현 독일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의 말을 빌면, “베를린은 아름답지는 않지만 정말 섹시하다.””(p.10)

어쩌면 이것은 낯선 풍경, 아니다. 베를린이 백남준, 요셉 보이스, 안젤름 키퍼 등 현대 미술가들의 거점이었던 시절도 있었으니까. 그러다 한동안 뜸했다. 파리와 뉴욕의 힙(hip)함에 눌렸다. 그런 베를린, 1990년대 초부터 다시 꿈틀댔다. 젊은 예술가들이 몰렸다.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고민이 덜했기 때문이다. 저렴한 물가라는 미덕. 여행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특히나, 집값이 저렴했다. 작업실 얻기가 쉬웠다.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다. 파리나 뉴욕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
 


또 하나.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결정적 계기가 있었다. 분단. 그것이 무너지자 독특한 문화가 생성됐다. 정부의 지원이 시너지 효과를 발하면서 분단이라는 시대적, 공간적 특수성은 베를린만의 독특한 예술과 문화를 낳았다. 가령, 미테지구(Mitte District)에는 폐건물을 갤러리 등의 예술 공간으로 활용했다. 레스토랑과 카페, 클럽 등도 속속 들어섰다. 지금 대세는, 뉴요커도 파리지엥도 아니다. 신선한 정신으로 무장한 베를리너(Berliner)들이다.

『베를린 코드』의 저자 이동준은 베를린을, ‘티 나지 않게 사람을 중독 시키는 매력을 지닌 도시’, ‘틈새가 많은 도시’, ‘자유롭고 가난하고 섹시한 도시’라고 불렀다.

여기 이 사람, 박철호. MBA 공부하러 갔다가 느닷없이 “마약과도 같은” 연극에 빠졌고, 연극과 문화의 중심지, 베를린을 주목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베를린 등지에 머물면서 500여 편의 연극과 공연을 접했다. 그것을 추려, 책으로 냈다. 『베를린, 천 개의 연극』.  

“독일 중에서도 베를린을 택한 것은 유럽 최고 수준의 연극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p.9)

국내 초연 <변두리 극장> 공연 관람

지난달 18일, 서울 명륜동 게릴라극장. 『베를린, 천 개의 연극』 저자 박철호와 함께하는 연극 공연 관람이 있었다. 이날의 연극은 국내 초연인 <변두리 극장>. 연극계와 문화예술계에선 알아주는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배우들이 선을 보인 무대였다. 원작은 20세기 초중반에 독일에서 극작가, 희극배우, 민중가수, 영화제작자 등으로 활동한 카를 발렌틴(Karl Valentine, 본명 발렌틴 루트비히 파이 Valentin Ludwig Fey)의 것으로, 이를 각색해 무대에 올렸다.

연극은 지금 우리 시대의 풍경을 담아내고 있었다. 원작을 국내의 상황에 맞춰 각색했다. 언어유희와 광대의 우스꽝스런 몸짓 속에 힘없는 인민의 비애가 서렸고, 저항이 꿈틀댔다. 아울러 인민들의 욕망이나 허영, 고정관념 등도 함께 담겼다. 은유와 풍자가 자연스러운 연기에 녹았고, 배우들은 종종 객석에 대사를 던짐으로써 관객이 연극을 보고 있음을 각인시켰다. 브레히트의 ‘소외효과(낯설어 보이게 하는 효과)’. 

“브레히트는 스타니슬랍스키의 사실주의 연출 기법과 정반대되는 이론을 내세우는 것이다. 관객이 연극에 몰입해서 스스로 연극의 주인공이라고 착각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게 싫다는 말이다. 브레히트는 이런 식의 연출이 극작가의 의도를 방해한다고 생각했다.”(p.198)

참고로, 발렌틴은 500편이 넘는 단막극, 촌극, 1인극, 시나리오를 썼다. 그가 작성한 공연 목록에 의하면, 작품수가 26개, 공연 횟수가 5969회에 이른다. 그만큼 발렌틴은 대중성과 인기를 누렸다. 그런 한편, 그는 단순한 희극인 이상으로 철학과 창작력을 겸비한 예술가로 평가받는다.


연극이 끝난 뒤, 저자를 비롯한 연출자, 배우들과 관객이 나눈 대화의 시간이 마련됐다.

박철호, ‘카바레’를 말하다.

『베를린, 천 개의 연극』 저자 박철호는 연극의 무대가 된 ‘카바레’ 이야기부터 꺼냈다. 한국에서 카바레, 하면 우선, 뭔가 침침하고 끈적끈적한 무도장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본디 카바레는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프랑스어인 카바레의 어원은 라틴어인 cavus(구멍)·cave(지하실) 및 아랍어의 khamaret(목로주점)였다. 무대가 있고, 손님이 음식·댄스를 즐기게 하고, 밴드 연주나 쇼가 펼쳐졌다. 일종의 사교장이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카바레는 관광업이 궤도에 오르고, 호텔이 늘면서 관광객 유치를 위한 수단으로 등장했다. 나름 애환이 있었으나 수준 높은 사교장 역할은 하지 못했다.

“한국의 카바레와 원래의 카바레는 다르다. 프랑스에서 시작됐는데, 카페에 가면 까만 고양이가 그려져 있다. 유럽에 많은데, ‘물랭 루즈’가 대표적인 카바레였다. 그런데, 베를린 카바레는 또 다르다. 1891년쯤 생겼다. 보통 카바레는 버라이어티한데, 독일은 철저히 풍자고 정치적이었다. <나꼼수>를 생각하면 된다.”

저자에 의하면, 베를린에도 카바레가 많았다. 그래서 카바레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들도 많았다고 한다.

독일인이 베를린 사람을 부를 때, ‘슈나이저’라고 불렀다. 주둥이, 아가리라는 뜻을 지녔다. 그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하고 입이 거칠다는 의미였다. 베를린의 카바레는 그만큼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면모가 있었다.

“베를린의 카바레는 잘 나갔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전쟁이 끝나고 나서 엄청난 흥행기를 맞았다. 사상 유래가 없을 만큼.

전 세계에서 베를린으로 몰렸는데, 카바레뿐 아니라 문화적으로 베를린이 풍성했다. 게이문화 등 다양하고 색다른 문화가 형성됐다. 그러다 다시 1933년 히틀러가 취임하면서 폭탄을 맞았다. 카바레는 끝장이 났다.”

히틀러가 총리에 취임하면서 카바레는 씨가 말랐다. 풍자 카바레, 문학 카바레 등이 급속도로 사라졌다. 문학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고, 전반적으로 프로파간다(선동)용 외의 문화예술은 위축됐다. 이 와중에 카바레의 유명인사 카를 발렌틴도 괴벨스 등에 의해 나치의 선전도구로 사용될 뻔 했으나, 발렌틴은 이를 거부했다. 그러다 1948년 폐렴과 영양실조로 사망했다. 이 작품은 그런 발렌틴의 단막극 22가지 가운데, 7가지를 뽑아 각색한 것이다.

Q&A

극중 연주는 진짜로 연주한 것인가?

원래 이 작품이 오케스트라로 유명해서 그리 하고 싶었는데, 그렇게는 못했다. 4곡은 라이브로 연주했고 나머지는 라이브가 아니다. 배우들도 한두 분을 빼고 악기는 처음이라 한 달 반 동안 맹훈련을 했다.

공연 마지막에 무대가 해체되고 난장판이 된다. 조용히 음악이 흐른다. 그런 허무함의 철학이 니체의 것인지, 아니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마무리를 했나?

철학이나 사상으로 받아들여도 되고, 혹은 극장이 무너져도 거리에 나가서 연극을 하겠다는 우리의 사명을 표현한 것이다. 극장이 무너져도, 지정한 것이 아니어도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그런 것이다. 발렌틴의 원래 엔딩은 너무 차갑기도 하다.

발렌틴의 원작 22가지 레퍼토리 중 7가지를 선정했다고 했다. 어떤 기준이 있었는지?

재미있는 것으로. (웃음) 가장 놓칠 수 없는 내용이 전쟁에 관한 것이었다. 3가지를 더 하고 싶었는데,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불투명해지는 것 같아서 7가지로 압축했다. 덜 재미있어도 의미가 있는 것으로 골랐다. 공연을 하지 못할 뻔한 위기가 있었는데, 때마침 김정일 위원장이 죽었다. (웃음) 그 때문에 (연극이) 동시대로 확 들어올 수 있었다.

지휘자 캐릭터는 원작의 캐릭터를 분석하고 만들었나?

원래 본 작품은 단막극 구성인데, 기승전결의 구조로 이뤄진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 전체적인 캐릭터가 없다. 예전부터 브레히트 탐구는 많이 했는데, 발렌틴은 처음 했다. 해 보니 연극적, 사회적으로 가치가있더라. 실제로 발렌틴과 브레히트는 절친한 사이였고, 브레히트의 ‘생소한 효과’의 단서를 제공한 사람이 발렌틴이다. 사회적인 대표성이라는 의미가 짧고 강한 극에도 맞았고, 브레히트의 연극성과도 맞아 떨어졌다.

발렌틴이 독특한 사람이라, 팡팡 터지기도 했다. 발렌틴의 개성이 너무 강해서 그 사람이 아니면 힘들 만큼, 지휘자는 그의 분신과도 같은 역할이다. 그래서 따로 개인적인 개성을 붙이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텍스트의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거기에 집중했다.


(박철호 작가) 내 책에 레퍼토리 극장을 언급했는데, 연희단거리패가 그 시스템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에 같이 했다. 국내에서 이 정도의 수준을 가진 극단도 드물지 않나 싶다.

“독일에는 각 도시마다 레퍼토리 극장이 있다. 레퍼토리 극장이란 한 시즌의 몇 개의 레퍼토리를 선정하여 순서대로 상연하는 극장을 말한다.”(pp.9~10)

현재 연극배우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승헌 선생 작품을 늘 본다. 연기할 때 편해 보이는데, 어떻게 그렇게 하는지. 

따로 신체훈련을 하진 않고, 모든 걸 원리에 입각해서 연기에 임한다. 1970년대 바이오 메커니즘 학문이 연구된 적이 있는데, 그걸 다시 연구해보려고 한다. 마음은 믿을 수 없다. 때문에 숨은 감각을 불어넣을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계속 탐구하려고.

7가지 에피소드를 뽑았는데, 엄청난 아이디어로 에피소드별 연결을 잘 한 것 같다. 배치를 어떻게 했나?

끊임없이 배치해 본다. 연습은 10가지 에피소드로 했고, 원래 야외극부터 하려고 했다. 여기 무대에 들어오기 전에 관객과 어울리고 만담이 이뤄지는. 그런데 날씨가 추워서 안에서 했다. (웃음) 개인의 판단보다는 관객들이 모니터 해 주는 게 도움이 된다. 공연을 계속할 수 있다면 에피소드 하나를 더 넣고 싶다. 매일 조금씩 리허설하면서 끊임없이 배치해보는 수밖에 없다. 초연이라 완성된 것도 아니다. 이번에 해 봤는데, 재미없으면 접고, 다시 다음어서 다른 버전으로 올릴 수도 있다.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밀양연극제)에서는 더 왁자지껄하게 하고 싶다.

배미향 배우께선 24년 연기를 하셨다는데, 이번 작품이 좋았던 점과 힘든 점이 있었다면?

나는 코믹배우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관객들을 웃긴다는 게 꽤 긴장됐다. 그래서 이번 연극이 힘들었다. 그런데, 관객이 웃어주니까 그게 참 좋았다.

(박철호 작가) 연극이 참 어렵다. 쉬운 장르가 아니다. 많은 레퍼토리를 정성을 다해 만들어주고, 국내 유일하다시피 한 레퍼토리 극단인 연희단거리패에 감사드린다.   


[예스24 기고원문]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