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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혁명은 혁명에서 쏟아져 나오는 무수히 많은 말을 통해 그 성격을 알 수 있는 법이다. 그것은 입으로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문자가 있는 사회에서는 글을 아는 남녀가 써내는 수많은 글로 나타난다. - 에릭 홈스봄 -

 

 

오늘 볶는 커피는 아주 초큼은 특별해요.
매일 매일이 특별하지만, 오늘은 아주 초큼 더!

오늘, 그리고 한동안 밤9시의 커피를 찾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커피를 준비하고 있거든요. 뭣보다 '다른 세상'을 꿈꾸고 상상하는 사람과 나누고픈.

 

한 명민한 마르크스주의자이자 혁명주의자의 타계 소식에서 비롯됐어요.
역시 그 덕에, 이 서늘한 바람이 어디서 불어온 것인지도 알아차렸죠.

 

그리고 자그맣게 혼잣말을 했어요.
아 그래, 시월이구나, 시월. 10월.

 

 

에릭 홉스봄이 타계했습니다. ㅠ.ㅠ
현지시각으로 10월1일. 어젯밤 들었습니다. 향년 95세.

그리곤 떠올렸죠. 타협하지 않는 마르크스주의자이자 탁월한 역사학자의 죽음이 시월에 놓였다는 사실. 그 사실이, 새삼 다가오네요.

 

홉스봄 영감, 1917년 태어났어요. 뭔가 살짝 꿈틀하죠?
맞아요. 러시아 10월혁명(볼셰비키혁명)이 일어났던 해.

그리곤 10월 혁명을 죽는 그날까지 늘 가슴에 품고 산 남자.
"10월 혁명의 꿈은 여전히 내 안 어딘가에 남아 있다. 내버리고 거부했건만, 사라지지 않았다."

 

아… 이 미친 고해성사라니요!

 

그렇게 가슴에 콕 박힌 '혁명의 시대'를 죽을 때까지 내치지 않고,
성찰을 바탕으로 한 신념으로 평생을 지탱한 역사학자의 죽음이 시월이라는 사실. 그것에 자꾸 미련한 의미를 두게 됩니다.

 

어쩌면 혹시, 이 노친네!
죽을 날(日)까진 무리였어도 죽을 달(月)은 얄짤 없이 시월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무고한 혐의(?)까지 둡니다.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시월에 죽음을 맞은 또 하나의 혁명, 체 게바라(9일). 곧 다가올 그의 45주기.

 

또한 스물일곱의 요절로 이름을 박은,
전설의 뮤지션 3J 중의 한 명이자 혁명적 뮤지션, 재니스 조플린(4일). 그녀의 42주기.

 

시월은 그렇게 혁명의 달.
그러니, 저는 훅 끌리듯 '혁명'을 레시피로 한 커피를 볶습니다.
마성의 혁명커피. 에릭 홈스봄을 추모하면서 체 게바라와 재니스 조플린까지 블랜딩한.

 

로스팅하면서, 그들의 마음을 생각합니다.
홉스봄 영감, 자서전의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죠.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 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미완의 시대》)

 

85세의 나이 때,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며 여전히 세상의 불의에 맞설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노친네의 외침을 외면할 자신, 없습니다. 그는 같은 책에서 여전히 짱짱한 혁명가로서의 면모를 보였죠.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아직도 이렇게 속삭이는 작은 유령이 있다. "우리가 사는 이런 세상에서 마음 편히 지내서는 안 되지." 젊었을 때내가 그 글을 유심히 읽었던 사람도 비슷한 말을 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p.508)

 

세상을 바꾸고 싶은 혁명가들의 마음을 담은 커피.
그들의 마음이 마냥 강퍅하리라 오해하지 마세요.
세상을 바꾸기 위한 혁명적 마음이 얼마나 달달하고 알싸한지, 제 커피는 그것을 알려줄 거예요.

 

 

아, 마침 찾아온 우리 커피집 단골.
간혹 저와 또 다른 세상을 꿈꾸고 상상하는 그녀가 이심전심이었는지, 《혁명의 시대》를 들고 옵니다. 와우~ 이런 멋진 우연이!

 

그녀도 이미 알아챘을 거예요.
제가 오늘 어떤 커피를 만들어 제공할 것인지.
비록 9시가 되진 않았지만, 이심전심 그녀를 위해 '혁명의 시대 커피'를 1000원에 제공합니다.

 

우리 커피점 서재에 꽂힌 《혁명의 시대》에 눈길이 갑니다.
3분의 1도 채 읽지 않고 방치해놓고 있었던 《혁명의 시대》.
이 시월엔 다시 꺼내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그녀가 말합니다.

 

"우리 좀 통한다 그쵸?"

 

"하하. 절 너무 잘 아는 거 아니에요? 너무 많이 알면 조직의 후환이 있을 텐데~"

 

"피, 그 조직 하나도 안 무섭네. 사실 그동안 회사 일 핑계로 쌓아놓기만 한 책이 너무 많아요. 홉스봄 할아버지가 죽어서야 다시 꺼내는 게 미안하긴 한데, 이달의 테마는 정했어요. 먼지 털어내기! 《자본의 시대》《제국의 시대》《극단의 시대》 그리고 자서전인 《미완의 시대》까지 읽어보려고요. 그러면 '시대'를 관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와~ 다 읽고 얘기 좀 해줘요. 그말 듣고 커피 좀 만들어볼 테니까. 지연씨 말을 원재료로 블랜딩 해드릴 테니, 꼭이요."

 

"근데 아저씨, 요즘 마을공동체는 잘 돼 가요? 잘 돼야 할 텐데."

 

"뭐, 그저 그래요. 쉽지만은 않네요. 관료주의라는 괴물이 삼키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있고."

 

"그럴 거예요. 공동체, 지금 꼭 소멸된 단어 같아서 요즘 사람들 쉽게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한편, 너무 무분별하게 남발돼서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홉스봄이 이런 신랄한 말도 했어요. "사회학적 의미에서 공동체들이 실재의 삶에서 찾아보기 힘들게 된 최근 수십 년 동안처럼 '공동체'라는 단어가 무분별하고도 공허하게 남발된 것도 없을 것이다." 마을공동체도 무분별하고 공허하게 남발되는 공동체의 하나가 아니도록 끊임없이 성찰하는 신념이 필요할 거예요. 그런 면에서 홉스봄은 마을공동체에도 영감을 줄 것 같네요."

 

"이런 이런, 나보다 더 많이 마을공동체를 안다니까. 너무한 거 아니에요? 하하. 별별 일에 관심도 많고. 오늘은, 재즈 어때요?"

 

"짜잔, 그렇지 않아도 빌리 홀리데이 앨범 갖고 왔어요."

 

"야~~ 진짜, 졌다, 졌어. 그냥 평범한 회사원이 아니라니까. 오늘 안 왔으면 섭섭할 뻔 했어요. 진짜."

 

"나 이래봬도 센스 짱이라니까요. 그래서 홉스봄이 마르크스와 혁명만큼 좋아했던 재즈도 당연히 준비했죠. 하늘에서도 들으라고 이렇게 짜잔~"

"맞아. 그러고 보니, 시월은 역시 재즈의 계절이네요. 홉스봄이 시월에 생을 마감한 이유가 마땅히 있다니까. 하하."

"혹시 읽어봤어요? 《저항과 반역 그리고 재즈(Jazz Scene)》?"

"아뇨. 아직은."

 

"홈스봄 영감, 재즈광이라서 프랜시스 뉴턴이라는 필명으로 이 책을 냈어요. 역사에 대해서라면 불편부당한 자세를 꼿꼿이 유지했던 영감도 재즈 앞에선 어쩔 수 없었나 봐요. 흐물흐물해진다니까요. 되게 주관적이고 격정적으로 재즈에 대해서 아낌없는 헌사를 바치거든요. 물론 그것도 그의 말을 들어보면 이유가 있어요. "재즈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근간을 두면서도 주류 예술로 성정한 아주 드문 사례다." 아마, 더 오래 살았다면, '재즈의 시대'라는 책도 냈을지 모르죠. 호호."

 

그리하여 그녀가 들고 온,
홈스봄이 추도사까지 쓰면서 격하게 아꼈던 빌리 홀리데이의 선율을 BGM으로 깝니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시월의 가을밤, 빌리데이의 선율이 온 몸을 감쌉니다.
비록 먼저 저 세상으로 가서 홉스봄으로부터 추도사를 받기도 했던, 빌리 홀리데이지만, 지금은 홉스봄을 위해 이런 노래를 불러줄 것 같아요.

<The Man I Love> <I Cried for You>.


"아저씨, 다음주,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에 가요?"

 

"가야죠. 시월이잖아요. 그리고, 혁명의 계절이니까. 홉스봄도 없고, 체 게바라도 없고, '대가의 시대'가 소멸되고 있는 있는 마당에 재즈라도 있어야죠. 하하. 깊은 슬픔이 담긴 재즈 같은 거. 혁명처럼 지독하며 진하고 슬픈 커피와 함께라면, 이 서늘한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도 알 수 있을 거 같아요."

 

오늘 밤, 밤9시의 커피를 찾는 사람들에겐 '혁명의 시대 커피'와 함께 이 말이 적힌 쪽지를 살짝 건네야겠습니다. 홈스봄이 손자들에게 전한 유언 같은 한 마디.
"호기심을 가지거라. 호기심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최대의 자산이거든."

 

작년에 나왔으나 한국엔 아직 번역되지 않은 홈스봄의 저서 《어떻게 세상을 바꿀 것인가(How to Change the World)》가 얼른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영감의 이런저런 말씀이 오늘, 밤9시의 커피에선 반짝반짝 빛납니다.

 

물론 내가 받아들인 대의가 실패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어쩌면 공산주의를 선택하지 말아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이상을 품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인류를 위한 유일한 이상이 물질적 풍요를 통한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인류는 언젠가 멸종하고 말 것이다.

 

미래는 더욱 낫고, 더욱 정의로우며, 더욱 활력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더 나은 세상을 원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건 없다.

 

자유와 정의라는 이상 없이 인류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굿바이, 홈스봄 할아버지!
당신의 죽음으로 '대가의 시대'도 거의 종결되어가는 것 같네요.
이 서늘한 바람이 어디서 불어온 것인지, 당신 덕분에 알았습니다.
그런데 궁금해요. 그 바람결에 묻은 슬픔, 혹시 혁명이 흘린 것일까요?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변기 물을 내리고 전등을 켜고, 깨끗한 물, 

그리고 맛 좋은 커피 한 잔 마시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는 쉽다.

좀 더 어려운 것은 이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쇼펜하우어 


아마도 십 수 년 만. 

쏟아지는 비를 흠뻑 맞았다. 

전혀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쏟아지는 비로 온몸을 감싸면서,

묘하게 희한하게도 은근 기분이 좋았다. 


왜 그럴까, 속으로 궁금했다. 


그리고, 파리를 갔다. 정확하게는 스크린을 통해. 

<미드나잇 인 파리>.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파리. 

길(오웬 윌슨)은 말했다. 파리는 비가 올 때 가장 아름답다고. 

그는 그렇게 비를 맞았다. 


십 수 년 만에 흠뻑 비를 맞은 날, 

파리도 비에 젖었고, 내가 몰랐던 파리가 그렇게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나도 비에 젖은 파리를, 그 빗방울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리라. 파리에 가야 할 이유. 


우디 앨런이 그린 파리. 

환상이겠지만, 비 오는 서울도 나쁘지 않았다.  


물론, 말도 안 돼. 

사람은 그렇게 갖다 붙이길 좋아하는 존재. 아니, 내가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직 이르지만, 만추(晩秋).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 호우시절.

류준형 팀장은 여전했고, 그는 나와 수다를 떨어서 모처럼 기분이 좋다고 했다.


그리고 박경민 대리가 4년 여 전 죽었다는 소식. 놀람과 슬픔이 범벅됐다. 

그는 내가 만난 가장 샤이한 홍보맨이었다. 한참 늦었지만 명복을 빈다. 부디.


엘살바도르 커피, 깊진 않아도 깨끗하고 맛있었다. 

어쩌면, 가을날의 선물. 고마운 당신이다.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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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첫 잔을 마신 후 도취 상태에 빠져 있는 이때를 줄여서 "BC(Blissfully Caffeinated, 더 없이 행복할 정도로 카페인에 취한)"라고 부른다. 이때가 되면 거미줄이 걷히고 정상 상태인 행복하고 긍정적인 나의 페르소나로 회망이 돌아온다."

-샤나 맥린 무어

 

이 마을에 축제가 있을 때마다 등장하는 우리마을 음악가가 있다.

직업이 뮤지션, 아니다. 말하자면 '그냥 회사원'인 그녀, 음악이 그녀의 일상을 살게 하는 것 같다.

노래(보컬)도 곧잘 하고, 오카리나도 곧잘 부른다.

그녀가 속한 우리 마을 밴드의 이름은 '어루만지다 음악대'.

그들의 음악으로 우리네 마음을 달래도 주고, 어루만지면서 힐링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란다.

'어루만지다 음악대'는 어쩌다 꽂히면, 우리 커피하우스에서도 간혹 공연을 한다.

 

그녀는 수시로 좋은 음악이 있으면 들어보라고 CD를 들고 온다.

오늘은 아침부터 찾아왔다.

 

"아저씨~ 이거 틀어주세요."

 

"뭐에요?"

 

"마리아 칼라스! 아시죠?"

 

"응, 디바. B.C. 알아요. 비포 마리아칼라스. 칼라스 이전의 오페라와 이후의 오페라. 근데, 오늘 무슨 날이에요?"

 

"히히, 마리아 칼라스가 죽은 날이에요. 그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요."

 

35주기란다.

그래서 우리 커피하우스의 오늘의 음악은, 마리아 칼라스.

 

그렇다. 진짜 디바. 세상에 더 없을 목소리.

태풍 올라온다고 비도 올락말락. 흐린 날의 가을. 칼라스의 음성은 제격이다.

 

"이 목소리, 도대체 대체할 수가 없어요. 그쵸? 아저씨? 칼라스를 알고 들으면 다른 오페라 가수들의 목소리가 시시해져요."

 

"그래도, 파바로티도 있잖아요."

 

"아, 인정. 파바로티까지는 인정. 그런데 그 이후가 없어요. 칼라스-파바로티-그런데 다음이 없는 게 우리의 비극 같애요. 슬퍼."

 

"우리 예쁜 안젤라 게오르규는 어때요?"

 

"에이, 아저씨. 수컷 티 낸다. 호호. 게오르규가 '제2의 칼라스'라는 소리도 듣고, 칼라스 오마주 앨범도 냈지만, 칼라스한테는 안 돼요. 도저히 넘어설 수가 없어요. 그 목소리, 나쁘진 않지만, 칼라스를 잇기엔 너무 약해."

 

그런 것도 같다. 칼라스를 누가 대신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궁금한 것도 있다.

 

게오르규는 칼라스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일까, 여전히 넘고 싶을까?

무언가를 넘어설 수 없다는 '숙명'이 주는 감상은, 좌절일까? 안도일까?

 

나는 문득 그것이 궁금해졌는데,

진짜 디바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몸에 전율이 살짝 흐른다.

신이 내린 목소리, 맞다. 인류의 축복이다. 이런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제가 오늘의 음악 가져왔으니 어떤 커피 주실래요?"

 

때론 당돌한 그녀의 요구. 거절할 수가 없다.

또한 당연히 그래야 한다. 오늘의 커피는 BC. 마리아 칼라스를 그리는 커피.

 

그리스 이주민의 딸이었던 그녀였던 만큼,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와의 이상한 사랑도 감안한다면,

지중해가 낳은 커피를 내린다.

 

아마, 그녀도 지중해를 그리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오늘 이곳을 찾는 사람들, 마리아 칼라스의 음색을 들으며 지중해를 떠올릴 테니까.

 

"자, 기다리시라. 오늘의 커피는 BC(비포 칼라스)입니다."

 

참, 커피를 내리는 시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나온다.

처음 칼라스를 접했던, <필라델피아>에 삽입된.

AIDS에 대한 편견과 무지를 깨게끔 만들어줬던 아주 좋은 영화였다.

베스트 씬이라 해도 무방한 장면, 칼라스의 'La Mamma Motar(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움베르토 조르다노의 오페라 <Andrea Chénier(안드레아 셰니에)>의 3막에 나오는 곡이다.

 

아, 눈물이 찔끔한다. 커피에 이 눈물이 섞이면 무슨 맛일까, 미친 호기심.

몇 번을 다시 보고 또 봐도 눈물이 찔끔거리는 음악과 연기의 미친 앙상블이 떠오른다.

칼라스의 음성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불가능했을 놀라운 장면.

(물론 톰 행크스의 연기 또한 마찬가지!)

 

참, 연세대 주변 서대문 우체국 부근, '마리아 칼라스'라는 카페가 있다.

한때, 물론 오래 전, 나의 소개팅이 있던 그곳.

소개팅 그녀, 예뻤다는 외엔 얼굴은 전혀 기억나질 않고.

연인과 함께라면 참 예쁘고 좋은 곳, 추천!


또, 삼성역 부근 '카페M'이라는 대웅제약이 운영하는 와인 바의 지하,

'마리아 칼라스'라는 작은 공연장(홀)이 있다. 음향이 꽤 괜찮다.

역시 연인 혹은 친구와 와인으로 기분 내고 싶다면, 역시 추천!


아울러, 서울 모처엔 마리아 칼라스 모텔도 있다. 여긴 안 가봐서 함부로 추천 않겠지만.ㅋ

모텔 룸에는 칼라스의 음악이 흘러나올까, 약간 궁금하긴 하지만.ㅋㅋ

아래는, 마리아 칼라스에 대한 기고문.

밤9시의 커피에서 'BC 커피'를 주문하기 전에 예습할 것. :)

 

============

 

천하의 비천한 속물에게 주어진 천상의 목소리

가을, 마리아 칼라스를 듣는 이유

 

1950년대 오페라를 주름잡았던 테너 주세페 디 스테파노(Giuseppe Di Stefano, 2008년 별세). 그의 오페라 단짝은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였다. 두 사람은 1951년 처음 오페라를 함께 했다. 이후 무대에 자주 함께 올랐다. 레코딩 또한 함께였다. 그들의 파트너십은 훌륭했다. 음악적으로도 그랬고, 오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공연 하나하나, 기념비적인 업적이자 전설이었다. EMI에서 남긴 전곡 레코딩은 아직 필적할 만한 것이 없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두 사람의 전성기, 10여 년으로 길지 않았다.

 

그리고 1977년, 마리아 칼라스가 죽었다. 스테파노는 그녀를 이렇게 추억했다. “칼라스는 노래를 잘하는 여자였지, 노래에 딸린 여자는 아니었다. 사랑과 성공의 인생을 살다 그걸 잃고는 세상을 떠난 것이다.”

 

오페라 계, ‘BC(Before Callas)’라는 말(프랑코 제페렐리)을 만들게 한 사람, 칼라스 이전과 이후로 오페라를 나눈 사람, 오페라의 새로운 시대를 연 사람도 사랑이 죽자 결국 무너졌다.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 마리아 칼라스(1923.12.2 ~ 1977.9.16)였다.

 

벨 칸토 오페라를 다시 수확한 디바

 

벨 칸토(Bel canto). 이탈리아어다. 액면은 아름다운(Bel) 노래(canto). ‘아름답게 부르는 창법’을 뜻하기도 한다. 18~19세기 이탈리아 낭만주의 오페라양식이다. 벨 칸토로 노래한다는 것은 극찬에 가깝다. 고도의 훈련으로 갈고 닦은 기교로 전체 성역(聲域)에 걸친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모든 성악도가 연구와 훈련을 통해 달성하고픈 창법일 것이다. 롯시니의 오페라에서 특히 강조된 창법이기도 하다.

 

여기에 가장 잘 들어맞는 소프라노가 마리아 칼라스였다. 1858년 롯시니는 벨 칸토 가수의 조건으로 내세운 바 있다. ‘전체 성역에 걸친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목소리’와 ‘노력 없이도 화려하게 부를 수 있도록 훈련된 목소리’가 그것이었다. 칼라스의 목소리는 금속성을 띠고 있었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타고난 음색과 기교로 벨 칸토 오페라를 되살렸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칼라스만의 것이었다. 탁월한 표현력과 호소력 앞에 벨 칸토 오페라는 대중들과 다시 교합했다. 칼라스였기에 수확 가능한 것이었다.

 

디바(DIVA). 여신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오페라에서 천부적 자질이 뛰어난 소프라노 가수를 뜻하는 이 말에 가장 부합한 사람이라면, 닥치고 칼라스. 일부 팝 가수 등에도 붙여주지만, 자타 공인 칼라스의 아성에 도전하는 것은 언감생심. 그녀 이전, 레나타 테발디가 있었다.

 

칼라스는 사실 그녀의 대역이었다. ‘라스칼라의 여왕’ 테발디, 1950년 <아이다>공연을 앞두고 쓰러졌다. 대타로 나선 무명의 칼라스, 테발디에게 없는 목소리로 청중을 압도했다. 객석은 놀랐고, 오페라 계는 일대 지각변동이 일었다. 1인자의 뒤바뀜. 여태껏 소프라노 역사상 모든 영역을 넘어 메조소프라노 역까지 소화할 수 있는 가수는 오직 칼라스다. 진정한 디바는 아직 바뀌지 않았다. 그녀의 노래 앞에선 복종을 맹세할 수밖에 없다. 여신의 노래를 듣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

 

우리의 귀가, 마음이 원하기 때문이다.

 

열등감 덩어리의 뜨거운 속물근성

 

 

허나 칼라스, 디바의 ‘품격’까지 갖추진 않았다. 스캔들 메이커, 트러블 메이커라는 표현, 그녀를 설명하기엔 역부족. 천상의 목소리, 타고났다. 엄청난 노력도 따랐다. 그러나 디바는 모든 것을 갖추진 않았다. 아니, 갖출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사생활은 울퉁불퉁했고, 일상은 난폭하고 끊임없이 흔들렸다. 천상의 목소리와 천하의 속물 사이, 칼라스가 있었다.

 

그녀, 콤플렉스 덩어리였다. 20대 중반까지 그녀는 굼뜨고 못생긴 뚱보였다. 심한 근시도 있었다. 가정환경도 불우했다. 소녀가장의 중압감을 일찌감치 짊어졌다. 학교와 가정 모두에서 사랑받지 못했다. 디바,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고한다. “뚱뚱하고 어수룩했으며 귀엽지도 않았던 나는 가족들 사이에서 미운 오리새끼였다.” 욕심 많은 어머니와는 평생에 걸쳐 공개적인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칼라스, 성공에 대한 근성이 남달랐다. 성악가로 성공가도를 달리자, 그녀는 엄청난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30㎏ 이상을 뺐다. 그녀를 보는 세상의 시선이 180도 바뀌었다. 최고의 미인이라는 칭송이 쏟아졌다. 미운 오리 새끼에서 우아한 백조로의 변신. 외양만 그러했다. 안은 바뀌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녀는 세상을 비웃었다. 세상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졌다. 속물들의 세상, 그녀는 스스로를 더욱 그 속에 함몰시켰다. 스스로를 삶의 주인이 아닌 ‘바깥에서 지켜보는 증인’으로 규정한 것에서도 그것을 엿볼 수 있다.

 

그녀는 대체로 나빴다. 음악을 빼곤 장점을 찾아보기 힘든 사람이었다. 끊임없이 진흙탕 싸움을 거듭하며 불화했다. 변덕은 죽 끓듯 심했고, 시기심과 질투도 남달랐다. 탐욕이 지배했고, 잘못은 늘 남 탓이었다. 남을 무시하는 것은 다반사였다. 물론, 그것에 이유도 있고, 사연도 있지만, 칼라스는 자신을 난폭하게 내몰았다. 공연과 세간의 눈초리에 따라 고무줄 늘리듯 행했던 초인적인 다이어트, 은둔하면서 보낸 만년, 홀로 쓸쓸히 세상을 등진 최후 등 그의 생의 가지들은 어떤 오페라보다, 극적이며, 그의 목소리가 방출한 어떤 노래보다 풍성하고 구불구불했다. 성공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속물. 그것이 틀린 표현은 아니다.

 

특히, 사랑.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았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세기의 스캔들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세간의 입방아를 몰고 다녔다. 30년 가까운 나이차에도 불구, 사랑에 빠졌던 사업가 메네기니(그는 엄청난 수전노였다!)와의 결혼과 이혼,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감독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과의 이루지 못한 사랑,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와 재클린 케네디와의 삼각관계. 메네기니를 버리고 음악을 멀리하면서까지 오나시스에 빠졌던 칼라스였다. 사랑을 찾아 여자로서 행복을 찾아갔으나, 칼라스의 음악을 잃은 관객은 불행했을지 모르겠다.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오나시스와 재키가 붙었다. 그녀, 우울증에 시달렸다. 목소리에 금이 갔고, 유산을 겪었으며, 자살 기도까지 이어졌다. 예술은 힘을 잃어갔고 여인은 생의 윤기를 잃었다. 다만 어설픈 위안이라면, 오나시스는 죽기 전 “진정한 연인은 칼라스였다”고 말했다는 것? 한편, 진정한 연인이라고 일컬었던 여인을 지키지 못한 남자는 얼마나 지질한가. 디바에게도 사랑이 모든 것이었나 보다. 사랑을 따르다가 음악이 망가졌고, 음악을 다시 찾으려 했지만, 사랑이 죽자 그녀도 죽었다. 사랑이 아니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닌 것, 맞다.

 

디바를 둘러싼 스캔들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여신에게 도덕률을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 제우스의 못 말리는 바람기를 봐도 말이다. 누구도 그녀를 대신할 수 없다. 전성기, 그녀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선 티켓 전쟁은 물론 교통 전쟁까지 겪어야했다. 칼라스가 파리 관광 중, 가방을 잃어버리자 비행기가 출발을 늦추고 기다렸다는 일화도 그녀의 존재감을 증명한다. 헤밍웨이는 칼라스에게 ‘황금빛 목소리를 가진 태풍’이라는 레떼르를 선사했다.

 

올해 마리아 칼라스의 35주기. 가을에는 그녀의 노래를 수확해도 좋으리라. 칼라스도 없고, 파바로티도 없는 오페라, 허약해졌다. 안젤라 게오르규? 칼라스에게 오마주를 바친들, 칼라스의 아우라엔 역부족이다. 두 사람을 이을 누군가를 아직 발굴하지 못했다.

 

새로운 디바를 수확하고픈 계절, 그게 힘들다면 칼라스(의 노래)를 계속 수확하는 수밖에. <필라델피아>를 꺼내든다. AIDS에 걸린 변호사 앤드류(톰 행크스)와 그의 복직투쟁을 변호하는 조(덴젤 워싱턴)가 교감하는 장면에서 나오던 아리아. 칼라스의 음색이다. ‘La Mamma Motar(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움베르토 조르다노의 오페라 <Andrea Chénier(안드레아 셰니에)>의 3막에 나오는 곡이다.

 

그래, 지금은 라디오나 TV 등을 통해 5년여를 들었던 훈계조의 쇳소리에 오염된 귀를 깨끗이 씻어야 할 때다. 마리아 칼라스를 권한다.

 

(※ 참고 : 『마리아 칼라스 : 내밀한 열정의 고백』(앤 에드워드 지음|김선형 역 / 해냄 펴냄), 위키백과, 브리태니커백과, 필름2.0)

 

[뷰즈 기고]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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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처럼 검은,

지옥처럼 뜨거운,

천사처럼 순수한,

사랑처럼 달콤한.

 

-샤를 모리스 드 탈레랑- 


계절이 흔들린다. 바람의 온기도 달라진다. 

9월은 그런 시기다. 

여름은 이미 숨이 꼴딱 넘어갔다. 아이스 커피도 살살 꽁무니를 뺀다. 

커피하우스를 찾는 손님들의 표정도 미세하게 달라진다. 본인들은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 계절, 작정하고 붙잡지 않으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는 바람이 되기 십상이다.

달라진 바람과 온도 차이에 마음 틈도 벌어진다. 

바람은 그 벌어진 틈으로 들어와 쉼표를 찍는다. 

가을은 그래서 마음이 쉬어야 한다. 끊임없는 변덕들 사이에서 쉬이 지치고 피로해지는 것이 이 계절이다. 그래서 커피를 마시러 오는 손님들의 표정이 달라진다.


9월이 특별한 이유, 있다. 

내 어느 9월에 틈입했던 추억의 편린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9월11일도 끼어있다.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세계가 품은 기억들 때문이기도 하겠다.

내 것은 아니지만, 혹은 우리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내 것이기도 하고, 우리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는 커피를 준비한다. 밤9시의 커피는 9.11을 그렇게 맞이한다. 


(1) 이 커피, 2001년의 그 시간을 위한 것이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인류의 영원한 트라우마로 남을, 2001년 9월11일.

 

그때 그 사건, 뒤늦게 깨달았다. 세계는 나와 상관 없는 일이 아니구나. 

저 멀리,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일도 내게 영향을 미칠 수 있구나. 

남의 일이라고 멀뚱하게 바라볼 일만은 아니구나. 

그제서야 어설프게나마 세계를 인지할 수 있었던 순간. 깨달음의 순간. 


그리고서야 어설프게 알았다. 사랑! 

마지막 순간, 우리가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사랑'밖에 없구나.

숨 쉬고 있다면, 사랑해야겠구나.

 

누구나 똑같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하루하루 죽어간다. 

그럼에도 '살아간다'고 말하는 순간에는 사랑이 전부로다! 

죽기 직전에 '사랑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역시나 뒤늦은 자각. 


9·11을 둘러싼 숱한 담론과 해석, 이야기가 있지만, 내가 9.11으로부터 받은 가장 큰 깨달음은 '사랑'이었다.

 

그리고 직간접으로 이를 다룬 다큐나 영화를 통해 9·11을 사유하는 편이었다. 


☞ <화씨 911> <루스 체인지> <플라이트 93> <레인 오버 미> <내 이름은 칸> 등이 그것이었다. 

 

그 가운데, 압권은 <레인 오버 미(Reign over me)>. 

 

같은 아픔을 공유해도 서로 할퀴고 후벼파기도 하는 것이 사람살이임을 엿봤고, 누구나 상처 입고 피 흘리는 절망적인 세상에서도 서로 삼투하면서 타인의 슬픔에 접근할 수 있음을 알았다. 


참고로 제목. 다시 말하자면, 직역은 '나를 지배해달라'이나, 영화를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 '내 곁에 있어 줘'라고 의역될 수 있음을. 



(2) 이 커피는 2001년 이전, 1973년의 그날을 위한 것이다.

  

9월11일이 품고 있는 이날의 슬픔.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한 사회주의 정권의 대통령이 된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가 죽은 날. 아옌데를 비롯한 사회주의자들과 인민들의 이상이 피노체트라는 개새끼 때문에 산산조각났던 그날.


당시, 아옌데가 집권한 칠레는 20세기의 '파리 코뮌'이었다. 

대기업의 국유화와 농지개혁의 촉진, 분배 위주의 경제정책 등 '노동자 인민을 위한 나라'였다. 


그걸 증명하듯, <살바도르 아옌데>라는 다큐 속, 한 노인은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정말 위대한 유토피아를 위한 꿈이었다." 

 


그러나 '인민들을 위한 나라'를 용납할 수 없었던 치사하고 속 좁은 미국, 농간을 부렸다. 칠레 경제의 핵이었던 구리의 국제가격을 떨어트리는 등 인플레와 생필품 부족을 유발했고, 피노체트라는 유치찌질한 하수인을 전면에 내세워 반동쿠데타를 일으켰다.


쿠데타군 앞에 포위 당한 아옌데, 피델(카스트로)이 준 소총으로 죽음을 택한다. 

투항도, 망명도, 애원도 않는다. 

"칠레 만세, 인민 만세, 노동자 만세"라고 외치며 장렬한 산화. 


9월11일, 1973년의 9·11. 

물론 비극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인민가수 빅토르 하라가 16일, 인민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23일에 피노체트 하의 칠레를 거부했다. 칠레의 비극에 방점을 찍었다.


그 어느해 9월, 내가 꼭 칠레에 발 딛고 싶은 이유다.

9월의 어느날, 핏빛으로 꺾인 사회주의 혁명을 기억하며 칠레산 레드와인을 마시는 이유.

1970년 아옌데의 인민연합 대통령후보 캠페인송이었던 빅토르 하라의 '벤 세레모스(Venceremos·우린 승리하리라)'를 들으며, 파블로 네루다의 詩를 꿍얼꿍얼 읊조리면서. 아직 맛보지 못한 칠레 커피도 함께. 

아마도, 메이비가 아닌 프로바블리, 살아선 경험하지 못할, 혁명의 순간을 그리면서.

 

 

앞서 언급한 <살바도르 아옌데> 외에도 이런 영화와 책이 있다. 

밤9시의 커피가 구비하고 있는 친구들. :) 

 

☞ <칠레전투:비무장 민중의 투쟁> 3부작. 인민의 희망과 좌절, 그 기록. 참으로 먹먹하다.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는 그 비극의 9·11을 재현한다. 

<일 포스티노>(파블로 네루다) <평화 속에 살 권리>(빅토르 하라) <영혼의 집>(아옌데의 조카가 쓴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로 여성들의 삶을 통해 칠레의 역사를 보는)

 

책을 꼽자면,  

[빅토르 하라] 

[기억하라, 우리가 이곳에 있음을]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 



(3) 그렇다면 비극만 있었느냐? NO! 

1973년 이전, 1906년의 9·11. 그러니까 100년하고도 6년 전.


20세기 들어 최초의 9·11은, 평화의 기념일이었다. 

스와라지(자치)를 통해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고 말씀해주신 간디는 이날, 

남아공에서 인도 노동자 3000여명과 함께 '비폭력 불복종운동(사티아그라하)'을 펼쳤다.


변호사였던 간디, 소송사건을 맡아 남아공으로 갔다.

인도인, 황색인이라는 이유로 차별 당했다. 

기차 1등석을 샀으나 3등석으로 가라는 승무원의 요구.


간디, 간지나게 버텼으나 쫓겨났다. 

이유? 남아공의 그 유명한 아파르트헤이트(흑백인종분리)정책 때문이었다. 

굴욕 당한 간디, 깃발을 들었다. 굴욕에 저항하기 위한 3000여명과 함께 유색인의 지문을 날인하도록 하는 법안에 반대하는 의미로 신분증을 불태웠다. 자유를 위한 것이었다.  


간디의 그 유명한 비폭력 불복종운동의 시초.

이 운동, 1960년대 마틴 루터 킹의 흑인인권운동과 아파르트헤이트 철폐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을 현대음악가 필립 글래스가 재현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공연실황을 담은 영화 <사티아그라하>도 있다. 



한편으로 재밌는 역사. 

물론 의도한 바는 아니겠으나,

차별에 저항하는 평화운동이 일어난 날(1906년)과

미국의 폭력적 패권주의를 깨우는 계기가 된 날(2001년)이 같다는 것. 


4. 여기에 이젠 또 하나의 9·11이 덧붙여진다. 2012년 9월11일.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의 공식적인 개소를 알렸다. 


이것은 그러니까, 9·11의 '네 가지' 의미.  


밤9시의 커피는 네 가지 커피 메뉴를 준비했다. 

각각이 지닌 역사와 의미를 버무리고 블렌딩하여, 맛과 향을 낸.

BGM으로는 '벤 세레모스(Venceremos·우린 승리하리라)'를 깔았다.


밤9시의 커피를 찾은 당신을 위해 준비했다. 

9월11일의 메뉴 중 당신은 무엇을 고르겠는가? 

그리고 그것을 통해 당신의 마음과 이야기를 듣는다. 밤9시의 커피다.  

 

1. 레인 오버 미

2. 칠레의 눈물 

3. 사티아그라하

4. 부엔 카미노(Buen camino·당신의 앞날에 행운이 가득하기를)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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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마실 때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시절, 너무도 짧게 끝나버린 그 시절들이 떠오를 것 같았다.… 또한 커피는 단순히 하나의 음료로만 간주하기에는 너무도 중요한 수많은 사건들의 일부로서 존재했다. 

- 셰릴 더들리 


어떤 일은 느닷없이 다가오고, 바람처럼 떠난다.


당신의 전화. 그렇게 다시 당신의 목소리를 듣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한 어느 여름밤. 당신은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일을 당했다고 했다. 멘붕.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당신. 그 목소리는 그런 상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렇게, 나도 멘붕. 그렇다고 멘붕에 멘붕으로 대처할 수 없는 상황.

당신 목소리, 잊었다고 아니 아무 생각없이 살고 있었는데, 순간 떨리는 가슴. 

아, 맞아. 당신도 작은 방 하나를 세놓고 살았었던 게지. 

점점 줄어든 방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갑자기 커져서 내 심장을 자극하고. 


당신의 멘붕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 

어느 순간, 당신의 처지에 공감하고야 마는 태도. 

아무렴, 한때 당신은 내가 품고 싶은 세계의 모든 것이었으니까. 

당신 이외의 세계는 없었고, 더 있다손 내겐 필요하지 않았으니까. 


당신이 처한 멘붕에 그닥 도움을 주지 못해서 미안.

당신의 멘붕 상황을 들어주는 것밖에 할 수 없어서 미안.


그래도, 순간적으로 당신이 무척 보고 싶었다.

이 얼굴을 닮았던 당신의 모습. 동티모르의 별과 함께 쏟아지던 당신.



맞아. 순전히 나의 오만이지만,

나만큼 당신을 사랑해주고 아껴줄 사람, 없을 거라는 것.

그럼에도 날 선택하지 않은 당신의 선택은 늘 옳다는 것.  


부디, 당신 아프지 않길. 당신이 좋아하는 커피와 오래도록 함께 하길.

곧 새로 여는 당신의 커피하우스가 멘붕 액땜을 통해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길. 

여전히 당신의 심장을 걱정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오늘. 그러니까, 멘붕. 


여름밤 바람. 어머니는 이 계절의 밤에 부는 시원한 바람을 좋아하신다.

나도 오늘만큼은 이 바람의 냄새를 맡았다. 시원했다. 풀벌레 울음소리가 섞인 바람. 


그렇게 바람결에 다시 날아간 당신 목소리. 안녕. 

다시 한 번, 

아파도 싸워 이기려하지 말고 다독거리며 공존하길. 

그래서 당신의 生이 그날 밤 동티모르의 별처럼 반짝거리길.


실토하건대, 

당신을 만나서, 커피를 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그렇게 그 시절, 당신을 사랑했었나 보다. 

당신 덕분에 행복했었다. 그때만큼은, 정말로.

당신의 커피가 먹고 싶어졌다. 그러진 못하겠지만. 

그 커피는 영원히 숙제로 남아 있을 것 같네.    


그러니까, 오늘은 멘붕 투데이. 

원전의 안전기준을 완화한다는 미친 소식부터 옛 동료의 노조활동에 따른 해고, 수원에서 벌어진 묻지마 살인, 여의도에서 옛 직장동료를 죽인 칼부림. 그리고 멘붕 멘붕 멘붕. 


MB시절의 자화상, 멘붕(MB).

커피가 없었다면 나는 이 시절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혹시 당신은 알아? 

커피는 때론 모든 것을 견디게 한다. 

사랑도, 미움도, 멘붕도, 나에겐 그랬다...


늦었지만, 

커피와 함께 사랑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웠다, 당신.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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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바꾸는 것보다 종교를 바꾸는 것이 더 쉽다. 

세상 사람들을 카페에 가는 사람과 가지 않는 사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이들은 서로 다른 정신세계를 지니고 있다. 

그 중 카페에 가는 사람 사람들의 정신세계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우월하다.

- 조르주 쿠트린- 


우리 마을엔, 그리고 우리 커피하우스 단골 중엔 무명의 소설가가 있다. 아니, 무명(無明)이 아니지. 이름이 없다는 말, 내가 싫어하는 표현이니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소설가가 있다. 그럼 어떤 소설을 펴냈느냐? 없다. 그의 가슴과 머리에, 그리고 이른바 '습작품'만 있다. 


굳이 따지고 들면, 소설가 지망생일 텐데, 나는 그런 것 패스. 등단이나 책을 내지 않았다고 '지망생'으로 규정하는 풍토, 별로다. 그는 내게 이미 문학가이자 소설가다. 그의 단편소설 몇 편은 그의 호의에 힘입어 읽은 적이 있다. 어땠냐고? 뭐, 내가 평론이나 비평을 할 처지는 아니다만, 실은 그저 그랬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그는 에스프레소를 즐겨한다. 그것도 리스트레또로. 한 번 더 나아가, 리스트레또를 아메리카노 잔에 마신다. 한 번 오면 죽치고 앉아 대여섯 시간을 노트북과 씨름하다가 간다. 아마도 또 어떤 소설을 쓰고 있으리라. 물론 중간중간 딴 짓을 하는지는 몰라도. 그런 그를 위해 두세 번 정도 리필을 해 준다. 그는 일일이 계산하지 않고 한 달에 자신이 먹을 만치의 계산을 한다. 늘 그보다 더 주긴 하지만.



오늘(8월18일). 그를 위해 특별히 준비했다.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 

그를 위한 커피 메뉴다. 커피를 건네면서 메뉴 이름을 말해줬더니, 눈치를 챘는지, 그가 말한다. 


"이거, 발자크 맞죠?" 


하하. 들켰다. 

"역시 소설 쓰는 사람이라 다르네요. 조심하세요. 독해요." 

"전 심장 발작은 일으키지 않으니까, 걱정마세요. 하하." 


8월18일, DJ의 3주기이기도 하지만, 커피 만드는 내겐 발자크가 우선이다. 프랑스의 대문호, 오노레 드 발자(Honore de Balzac)1850년 죽었으니 올해 162주기. 그는 '소설의 교과서'로 불린다. 발자크의 소설이 보여준 섬세한 구조와 사실적 묘사, 인물에 대한 탐구 때문인데, 그의 걸작 《고리오 영감》이 그것을 대변한다.  


아는 사람은 안다. 발자크, '커피 애호'를 넘어 '커피 개중독'이었다. 독일엔 'BALZAC COFFEE'라는 커피 프랜차이즈(1988년 시작)가 있을 정도인데, 프랑스 아닌 독일에서 그의 이름을 딴 커피 프랜차이즈가 있을 정도니, 의아하면서도 말 다했다. (캐나다 토론토에도 있다고 한다.) 



발자크는 커피에 죽고 살았다. 하루에 30잔(50~60잔에 달했다는 속설도 있다). 평생 3만 잔을 마셨다고 추정되는데, 그는 커피 없이 못 살았다. 그는 이른바 '소설 노동자'로 불렸다. 하루의 태반을 소설 쓰는데 썼다고 한다. 14~15시간을 소설 쓰는데 투여했다는 그는 그만큼 다산(多産)했다. 74편의 장편소설을 비롯해 숱하게 많은 단편을 내놨다. 


물론 그것에도 이유가 있었다. 빚을 갚아야 했다. 이른바 '생계형 소설노동자'. 여러 사업에 손을 댔으나 하나 같이 망했다. 사업가적 기질은 꽝이었으나 글쓰기만큼은 잘 했나보다. 미친 듯이 '이야기하기'를 써댔다. 그것을 위해 '커피'는 반드시 필요했다. 대체 얼마나 써대고 마셔댔는지, 이 기록을 보자.


슈테판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이렇게 묘사한다. 

"한밤중에 일어나 여섯 자루의 촛불을 켜고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시작이 반. 눈이 침침해지고 손이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4시간에서 6시간 정도가 훌쩍 지나간다. 체력에 한계가 온다. 그러면 의자에서 일어나 커피를 탄다. 하지만 실은 이 한 잔도 계속 글쓰기에 박차를 가하기 위함이다. 아침 8시에 간단한 식사. 곧 다시 써내려간다. 점심시간 때까지. 식사, 커피. 1시부터 6시까지 또 쓴다. 도중에 커피." 


도대체, 이 남자는 뭔가. 잠자고, 생리현상 처리하고, 식사 준비를 포함해 식사 시간과 커피를 제조하는 시간을 제하고 하루 15시간을 글쓰기. 그것도 매일. 미친 거 아냐? 소설을 쓰기 위해 그가 커피를 마셨다지만, 커피 만드는 내 입장에서 보면, 반대다. 


"제가 보기엔, 발자크는 커피를 마시려고 소설을 쓴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이게 말이 돼요? 커피가 소설인 이유죠. 죽음보다 지독한 서정이었고요. 하하. 이 정도면 덕후죠, 덕후. 커피 덕후. 커피 오타쿠."


"발자크에겐 커피라는 존재는 '동력'이었던 것 같아요. 창작의 동력. 뇌 주름을 깨우고 상상력을 발동하고 생각의 엔진을 돌리기 위한 심장의 검은 석유죠. 근데, 전 아직도 궁금해요. 커피 때문에 정말 죽었을까요?" 


글쎄, 나도 모른다. 그는 심장질환으로 죽었다. 너~무 지나치고 과도한 커피로 인해 심장병을 얻었다는 얘기도 있다. 말하자면, 커피가 '발작'을 일으킨 셈인가? 


"그럼 행복했을까요? 커피를 그렇게 좋아하고 애찬하던 사람이 커피 때문에 죽었으니. 어떤 사람은 커피 애호가다운 죽음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렇다고 발자크가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커피도 너~무 지나치면 독이 된다. 그 지나침은 물론 보통의 사람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한 방에 80잔을 들이키면 훅~ 간다.얼마 전 탈학교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커피 강의를 하면서 이걸 알려줬더니, 묻는다. "선생님, 그렇게 마신 사람 있어요?" 글쎄, 나도 그건 모른다. 


자살을 할까, 커피나 한 잔 할까》라는 책이 있던데, 읽지 않아 모르겠지만 저자인 엘리엇 부는 커피가 자살을 부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까? 물론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만! 


카페인의 분자식은 'C8H1ON402'이다. 이것 10그램을 한 방에 먹으면 황천길이다. 카페인 10그램은 그럼 커피 몇 잔 정도냐! 일반 커피 잔으로 80잔 정도다. 그래서 80잔 얘길 한 거다. 조금씩 천천히 한평생에 걸쳐 죽여주는 독약이 될 수는 있겠다. 커피 때문이라고 말은 못하겠지만. 


어쨌든 최승자는 죽음 대신 '네게로' 간다고 썼다.(「네게로」라는 詩

"흐르는 물처럼/ 네게로 가리/ 물에 풀리는 알코올처럼/ 알코올에 엉기는 니코틴처럼/ 니코틴에 달라붙는 카페인처럼/ 네게로 가리/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매독균처럼/ 삶을 거머잡는 죽음처럼"


김갑수 선생은 한 술 더 뜬다. 《지구 위의 작업실》, '커피는 한 잔의 문학'이라고 했다. 

"250밀리그램 이상의 카페인을 먹었을 때 10퍼센트 정도의 사람에게서 불안, 초조감, 안절부절못함, 홍조, 다한증, 손발의 따가운 느낌, 구역, 구토증 등이 나타난다. 1그램 이상의 카페인을 먹었을 때는 극도의 불안, 초조감, 정신착란증, 환청과 부정맥이 있을 수 있다. 10그램 이상에서는 전신발작, 호흡부전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다. 영혼의 상처 없이 문학은 가능하지 않다. 말하자면 커피는 한잔의 문학이다." 



"커피 하는 입장에선 어때요? '커피질'도 발자크만 하면 정말 쩔지 않아요?"


아니라고 말할 수가 없다. 덕후질도 저 정도면 확실히 쩐다. 


뻬쩨르부르그 사람들이 특별히 주장했다는데, "사상보다도 예술보다도 돈보다도 사랑보다도 더 지독한 액체, 그것이 바로 커피." 


커피가 서정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보다 더 잘 드러낼 수가 없다. 발자크에게도 그랬으리라. 


"커피, 정말 지독해요. 커피가 없었다면 발자크가 소설을 저렇게 쓸 수 있었을까요? 빚 때문에 죽으려고 했을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러니, 죽음보다 더 지독한 액체죠."


커피는 한편으로 불행을 극복하는 액체다. 그러니, 만날 빚더미에 눌린 발자크가 이렇게 읊어댔겠지. "불행을 새로운 출발점으로 이용하는 사람이 되라. 어떠한 지혜로도 불행을 미리 막을 도리는 없다. 그러나 그 불행 속에서 새로운 길을 발견할 힘은 우리에게 있다."


홍대 부근의 한 카페, '무슈발자크'라는 커피가 있다. 무슈는 프랑스 사람, 파리라는 뜻이기도 하고, 아저씨라는 뜻도 있다는데, '발자크 아저씨'라는 그 커피 역시 진한 에스프레소가 아메리카노만큼 담긴다. 이 커피 주인장 역시 뭔가를 아는 사람인지라, 무슈발자크라는 메뉴 이름 옆에 '심장 주의'라는 경고(?)를 달았다. 이 커피를 100잔 마시면 소설가가 된다는 '믿거나 말거나'까지 말해준다고 한다.


나는 바란다. 부디, 이 소설가에게 나의 커피가 동력이 되길. 

발자크에게처럼 커피가 발작을 일으키는 대신, '심장이 건너뛴 박동'으로 그만의 소설을 완성하길. 

나의 커피가 그의 서정과 서사를 온전하게 결합하는데 도움이 되길.


소설가의 표정이 오늘 따라 밝다. 심장이 건너뛴 박동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밤9시의 커피는 오직 당신만을 위해 커피를 만들고 내린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커피가 위 속으로 미끄러지듯 흘러 들어가면, 모든 것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생각이 전쟁터의 대부대처럼 몰려오고 전투가 시작된다. 추억은 행군의 기수처럼 돌격해 들어온다. 기병대 군인들이 멋지게 달려 나간다. 논리의 보병부대가 보급품과 탄약을 들고 그 뒤를 바짝 따라간다. 재기 발랄한 착상들이 명사수가 되어 싸움에 끼어든다. 등장인물들이 옷을 입고 살아 움직인다. 종이가 잉크로 뒤덮인다. 전투가 시작되고, 검은 물결로 뒤덮이면서 끝난다. 진짜 전투가 시커먼 포연 속에서 가라앉듯이" (발자크, ‘커피송가’ 중에서)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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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이란,

아침에 커피 한 잔을 추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6월25일은 어쩔 수 없다. 마이클 잭슨이다.

아침 오픈할 때부터 마이클 잭슨이 흘러나오게 해야 한다. 

그냥 자동이다. 내 마음보다 손이 먼저 마이클을 찾고 귀가 원한다.

3년 전 그날, 그랬었고, 작년에도 그랬더니,

올해도 마이클 잭슨을 만나기 위한 손님이 찾아오니까. 

 

아침, 그 여자 손님이 찾아왔다. 

6월25일, 특별히 휴가를 냈단다. 하긴 그녀, 작년에도 그랬다.

이 여자, 우리 가게의 특성을 안다.ㅎㅎ

오늘, 마이클이 흘러나올 것을 짐작한 거다. 센스쟁이!

나이를 묻지 않았지만, 나보다 약간 나이가 많은 것도 같다. 

검은 옷을 입었다. 한마디로, 멋지다. 아우라나 포스, 장난 아니다.

 

"마이클, 잘 지내고 있을까요?" 

물론, 그렇게 말하면서 특별한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다. 그저 인삿말이다.

 

"좋아하고 있을 것 같아요. 몇 달 전에 휘트니가 합류했잖아요."

 

싱긋 웃는다. 아, 그렇지. 휘트니 휴스턴. 2월11일이었지. 역시 한 시대를 접은 동시대의 슈퍼스타. 영국의 한 매체는 두 사람이 한때 결혼까지 꿈꿨던 연인이었다는, 믿거나 말거나를 보도하기도 했었다. 사실이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다. 세기의 두 팝스타가 천상을 아름다운 선율로 가꾸고 있을 거라는 그녀의 말. 센스 돋는다.

 

"하하, 그러게요. 하늘이 특별히 두 목소리의 앙상블을 원했나 봐요. 듣고 싶은 마이클 있어요?"  

 

"그냥, 마이클이면 돼요. 충분해요."

 

커피를 내렸다. 오늘 같은 날, 그녀는 주문이 필요없음을 안다.

내가 알아서 스페셜 커피를 내려줄 것을 안다. 단골과 주인장 사이의 신호다.

 

마침 나온 노래가 'Heal The World'.

나의 선택은, 어제 특별히 공정무역 커피들로 블렌딩한 힐링 커피. 졸졸졸. 

검은 눈물이다. 세계를 걱정하고 지구를 사랑했던 마이클의 눈물 모아. 

향이 유난히 진하다. 액은 더더욱 검다. 그녀 앞에 살포시 내려놓는다. 

 

향을 음미하는 그녀, 입을 연다.     

"아저씨~ 엑설런트." 엄지를 들어준다.  

 

아무렴, 커피 맛도 모르는 입이 입인가. 나도 그녀의 탁월한 미각에 엄지로 화답해준다.

 

 

누군가는 마이클 잭슨 코스프레를 입고선 커피를 마시러 왔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잠시 짬을 내 공연을 하겠다며, 마이클의 춤을 선보이고 갔다.

한 무리는 마이클 잭슨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그렇게 오늘은 마이클 잭슨으로 가득했던 이 공간.

 

밤 9시가 넘었다.

본인의 뜻과 무관하게, 유작 앨범이 된 [This Is It]을 튼다.   

2CD 디럭스 에디션의 두 번째 디스크에 있는, 마이클이 직접 짓고 낭송한 詩 . 처음과 끝부분, 이런 말이 흐른다. 

  

"Planet Earth, my home, my place 작은 행성 지구, 나의 고향, 나의 공간 (...) Planet Earth, gentle and blue 작은 행성 지구, 온화하고 푸르다. 

With all my heart, I Love You 나의 온 마음을 담아, 사랑해."

 

마이클이 살아 있었다면,

이 무슨 손발 오글와글 거리는 낭송이자 고백이냐고 지청구를 늘어놓겠지만,

3년 전 그날 이후, 도저히, 차마, 그럴 수가 없다.

그건 마이클의 명백한 진심이라고 찰떡처럼 믿고야 만다.

With all my heart!

 

스캔들 혹은 독설적 가십이 난무하고,
오해와 조롱 섞인 언사들이 증식한 것도 사실이고, 

팝의 황제라는 그의 커리어가 계속 내리막을 걸은 것도 사실이지만,
느닷없는 죽음으로 인해 마이클은 여전히 슈퍼스타임을 입증했다. 

물론 그는 대중의 오해와 편견에 고통 받은 슈퍼스타였었다.

슈퍼스타의 필요충분조건이 있다. 즉, 개인의 죽음이 한 시대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도 슈퍼스타만이 향유할 수 있는 특권. 한 시대가 고스란히 막을 내렸던 마이클의 죽음이었다.

 

6월25일.

민족의 비극, 6·25인데,

나는 반공세대로 길들여졌음에도, 

3년 전부터, 6월25일을 슈퍼스타 마이클 잭슨이 승천한 날로 기억한다. (내 어린 날의 핀업걸, <미녀삼총사> 파라 포셋이 함께 눈을 감은. ㅠ.ㅠ)

못돼 먹은 놈이라고 욕 들어도 할 말 없다.

  

9시 됐을 때, 문 앞에 써 붙였다. "혼자 온 손님만 받습니다."

당연히 주인장의 제멋대로 신공. 싱글 천국, 커플 지옥.

  

혼자 온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온다.

쉿, 아무말도 필요없다. 자리에만 앉으라고 권했다. 웃는 낯으로. 

따로 주문이 필요없다고 했다. 드리겠다고. 

꾸준히 들어온다.

이 도시엔, 이 마을엔 혼자인 사람도 꽤 있다. 물론 이 시간, 혼자이고 싶은 사람도 있다. 

 

그들을 위해 준비한 스페셜 커피 레시피, 'You are not alone'.

말 없이 외로운 밤 9시, 오롯이 외로운 당신만을 위해 준비했다. 

당신만의 외로움을 품은 커피 한 잔, You are not alone.

다 함께 외로운 밤 9시의 커피, 그래서 당신과 나, 외롭지 않다. 

커피 한 잔이 당신과 나를 연결해 주니까. :)

 

계속 나는 커피를 내렸다. 외로워도 외롭지 않음을 알려주기 위해서.

6월25일 밤 9시의 커피는 그렇게 외로움을 똑똑 떨어트리고 있었다.

나는 영원을 추출하고 있는 것이다. 영원히 슈퍼스타로 남을 마이클을 추모하며.

 

마이클, 당신이 외롭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당신이 그립거든요. ㅠ,ㅠ

마이클, 정말 최고였어요!

잘 지내나요, 당신?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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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 후의 우리 사회의 문학하는 젊은 사람들을 보면, 예전에 비해서 술을 훨씬 안 먹습니다. 술을 안 마시는 것으로 그 이상의, 혹은 그와 동등한 좋은 일을 한다면 별일 아니지만, 그렇지 않고 술을 안 마신다면 큰일입니다. 밀턴은 서사시를 쓰려면 술 대신에 물을 마시라고 했지만, 서사시를 못 쓰는 나로서는, 술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술을 마신다는 것은 사랑을 마신다는 것과 마찬가지 의미였습니다. 누가 무어라고 해도, 또 혁명의 시대일수록 나는 문학하는 젊은이들이 술을 더 마시기를 권장합니다. 뒷골목의 구질구레한 목로집에서 값싼 술을 마시면서 문학과 세상을 논하는 젊은이들의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지 않는 나라는 결코 건전한 나라라고 볼 수 없습니다." (1963. 2)

 

사촌동생 윤수의 결혼(식). 신부는 익히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애가 맞다. 두 사람, 오랜 연애 끝에 결혼을 했다는 얘기다. 사촌형 노릇하느라, 축의금을 받고 식권을 나눠줬다.(노총각 사촌형 둘, 즉 나와 내 동생이 그 노릇을 했다.ㅋ)

 

가만 지켜보니, 한 사람이 돈봉투 뭉텅이로 내놓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른바 '(축의금) 배달부' 노릇을 하는 경우. 한 사람이 그렇게 배달부 노릇 하면서 '독박'을 쓴다. 결혼식에 오지 않은 이들, 그렇게해서라도 면죄부(?)를 받는다. 거칠고 야박하게 말하자면, 이런 것. '나, 돈 냈다, 됐지?'

 

뭐, 그게 나쁘다거나 이런 걸 말하는 것, No! 그렇게라도 결혼식 참석 못 한 걸 미안해 한다면, 그 마음, 갸륵할쏘. 나도 누군가의 결혼식에 갈 때, 오지 못한 녀석들의 축의금 청탁(축의금을 대신 내 달라는)을 꽤 많이 받았다. 나는야, 배달부! 

 

결혼식 참석이든 축의금이든, 그것이 '축하'보다는 '의무' 혹은 '반대급부'처럼 너무 관성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시. 축의금 리스트에 이름과 돈 액수를 쓰는데, 여기 이름을 쓰지 않고 액수를 적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잠시 상상. 각자의 이름을 쓴 봉투도 싸그리 없애버리고 말이지.

 

뭐, 사촌동생한테 쿠사리 먹을 것 같아서 실행에는 못 옮겼다만.ㅋㅋ   

 

6월16일의 결혼식. 내겐 6월16일이 더 중요했다. 사촌동생 부부는 김수영(시인)을 모른다. 그들이 이날을 결혼식 날짜로 잡은 건 그야말로 우연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걸 말해줄 이유도 없고. 그들에게 김수영은 세상에 없는 존재다. 모르기도 하고, 별로 알고 싶어하지도 않을 것이다.

 

원한다면 그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 한 잔이라도 내려주고 싶었지만, 세상의 여느 정형화된 결혼식에서 그런 건 불가능하다. 웨딩홀의 주어진 스케줄과 프로그램에 따라야만 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의 슬픈 비극.

 

 

다시 6월16일.

도저한 자유를 향한 열망을 품은 '자유의 시인', 김수영 시인의 44주기.  

요절했지만, 김수영, 지금 여전히 유효한 이름이자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름이다.

 

그러니까, 이런 날, 값싼 술로 문학과 세상을 논하는 것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것도 결혼식에 그런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면, 아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결혼식으로 기억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지금은 없는, 이미 박제된 풍경. 그런 풍경, 내 결혼식에서 꿈꾼다. 그날엔, 오직 하객들 당신들만을 위해 특별히 내가 준비한 커피를 내려 드리리다. 물론 그 하객, 날 안다고 될 순 없다. 특별히 초청된 소수 정예의 사람들.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축의금 같은 건 갖고 오지 마시라. 나, 속물이라서 100만원 정도 갖고 오면 넙죽 받을 의향은 있지만.ㅋ

 

원로시인 김시철의 산문집 《격랑과 낭만》에 의하면, 김수영.

그는 詩와 커피를 맞바꾸던 시인이었다. 고로, 커피는 詩와 동격이다!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詩를 읊는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김수영도 명동다방촌 죽돌이였다. 

'명동멋쟁이'라 불린 시인의 단골 다방은 '휘가로'.

해방과 함께 다방들, 명동 언저리에 하나둘씩 문을 열었다. 다방은 해방의 감격이 흘러넘치는 공간이었다. 예술가들이 가만 있을 턱이 있나. 식민지 시대의 상처는 이제 안녕. 부흥이 필요했다. 새로운 기운을 찾고자 하는 예술적 포스가 흘러넘치는 공간, 그것이 다방이었다. (휘가로를 찾아보시라!)

 

김수영, 박인환, 김규동 시인이 그린 소공동 플라워다방의 모습도 엿보자.

 

 

다방은 예술가만의 것이 아니었다. 다목적 종합문화생활공간이었다.

룸펜들의 무위도식처였고, 실업자들이 죽치는 온상이었다.
룸펜들, 커피 한 잔에 네댓시간을 죽치고 앉아보냈다. 

룸펜은 다방을 사랑했고, 다방은 그런 룸펜을 품었다. 다방은 해방 공간이었다. 
다방, 쑥쑥 생겼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던 정당들에 빗대어 이들을 '커피당'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문화시설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전후 환경.

다방은 각종 만남의 장소로 물론이요, 전시회, 출판기념회, 영화상영회, 문학낭독회, 독립투사추모회, 동창회, 송별회 등 온갖 모임을 수용했다. 지금 카페를 문화공간으로 꾸미고자 하는 시도는 그러니까, 새로운 것이 아니다. 커피하우스, 카페의 역사가 그렇게 시작됐었다.

 

헌데, 밥 사먹을 돈도 없었던 가난한 시절, 예술가라고 자처하던 이들은 명동으로 몰려들어 하루종일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워대고 술을 퍼부어댔을까?

 

'명동백작'이라 불렸던 소설가 이봉구, 그것을 말해준다.

"그래, 그들은 너무도 가난한 나라에 그마저 예술가가 할 일도 없던 시절에 태어난 것이다. 할 일을 찾아 예술인들이 많은 명동으로 몰려든 것은 당연했고, 그곳에서 시를 쓰고 원고를 청탁받고 원고료를 받으러 돌아 다닌 것이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자존심을 잃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데 있어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택한 것이 바로 술이었다."

 

참고로, 김수영 시인이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로 꼽은 열 개는,

'마수걸이, 에누리, 색주가, 은근짜, 군것질, 총채, 글방, 서산대, 벼룻돌, 부싯돌'.

 

결혼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 아버지를 위해 커피를 내렸다. 

커피향이 죽인다는 어머니의 탄성이 흘러나온다. 

당신들을 위한 것이었고, 김수영과 사촌동생 부부를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라는 속물을 위한 커피 한 잔. 

 

커피를 마시는 시간, <이 거룩한 속물들>을 펴고, 다시 읽는다.

좋다. 이맛이 커피다. 이맛이 김수영이다. 이맛이 삶이다. 

나는 그렇게, 밤9시의 커피다. :)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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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력을 높이고 싶다면 커피를 마셔라.

커피는 인텔리전트(지적인) 음료다.

 

- 시드니 스미스 (영국 수필가) -

 

얼마 전, 물론 지금까지도,
남양유업과 동서식품이 인스턴트 커피(비슷한 것의)시장, 정확하게는 카제인나트륨 유해성 여부를 놓고 한바탕 요란법석, 우당탕탕 했다. 남양은 카제인나트륨의 유해함을, 동서는 근거 없다며, 결론은 서로 저 잘났다고 투닥거렸다.

 

뭐, 결과적으론 식품안전연구원이 카제인나트륨,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고 발표를 했으나, 그렇다고 몸에 절대 좋을리도 없는 그것. 그것을 뺀 것은 백 번 잘한 일이나, 허나!

 

궁금해지는 거지.  

과연 과감히 그것을 뺀 남양, 국민건강을 위해 대단한 가치와 철학을 갖고 했을까? 

 

지금부터는 우스꽝스러운 얘기 되겠다. 

남양의 주력제품인 두유를 보자. 거기엔 백설탕에 두유향, 꿀향 등의 합성착향료가 들어간다. 두유에 왠 '인공'두유향? 원료로는 제대로 맛을 못 내니까, 혹은 안 나니까 인공향료를 넣었다. 묽은 두유를 진한 두유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성분을 미처 살펴보지 못했다면, 마을슈퍼에 가서 남양의 두유 제품을 들어서 성분을 확인해 보라. 기가 찰 노릇이다. 미친 짓이다.

 

그것뿐이랴. 더 코미디. 남양유업, 지난 2009년 방사선 조사 원료가 혼입돼서 회수처리 명령을 받았던 키플러스 분유 등의 유아용 분유와 어린이용 유제품에 카제인을 넣었었다. 카제인에 화학적 성분을 결합한 물질인 카제인 가수분해물, 카제인 포스포펩타히드를. 불가리스, 프렌치카페 등에 모두 카제인나트륨을 넣어주셨던 것. 그러니까 그들, 지금 그네들이 개거품 물면서 유해하다는 그걸 아해들 입에 잔뜩 집어넣었었던 거다.

 

거기다 카제인나트륨 대신 우유 넣는다는 핑계로 가격까지 올리는 삼중개꼼수!

고작 커피 비슷한 인스턴트 커피 놓고 건강을 왈가왈부하는 이 지랄은 뭔 지랄?

공공의 적들끼리 치고 받으며 건강 운운하는데, 기도 안 찬다. 커피 전쟁? 헛소리다.

 

연아(동서)가 마시든, 태희(남양)가 마시든,

그녀들은 철저히 이용 당하고, 생각 없이 광고에 나왔음을 증명할 뿐이다.

진짜 커피 아닌 이른바 '커피 비슷한 것'을 마셨으니,

이해력이 높아지지도 않고, 지적일 수도 없다.

커피 비슷한 그것(인스턴트 커피)는 진짜 커피가 아니거등.

 

어지간하면 이런 말 잘 안 하는데, 그래 5월14일, 식품안전의 날. 

식품안전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제고하기 위해 제정한 날이라서 Tip 한 번 날린다.

 

이건 부록으로. 이걸 보면, 당신의 식생활을 한 번쯤은 돌아보게 될 거다.

물론, 이미 먹거리 비슷한 것에 중독된 사람이라면, 눈 하나 깜짝 않겠지만.  

 

18년 간 썩지 않는 불멸의 버거 … 벌레들도 안 먹어

http://news.nate.com/view/20120512n00210&mid=n0411&cid=349611

 

The World’s First Bionic Burger

이 동영상.

자연의 법칙을 개무시(!)하는 미친 식품제조업자들의 꿍꿍이(!)를 엿볼 수 있다.

 

18년을 썩지 않고 버티는 햄~버거.

황교익 맛칼럼니스트의 표현에 의하면, '햄버거, 놀라운 현대문명의 미스테리'.

 

어딜 가나, 식품 안전은 위협 받는다. 

당신이 먹는 것이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 알아야 하는 이유다.

그때, 우리는 이해력도 높아지게 될 것이다. 커피 한 잔과 함께.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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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커피 잔 속에 위안이 있다(There's comfort in my coffee cup)."

- 빌리 조엘 -

 

 

살아 있어서, 그 노래, 그 목소리 듣게 해줘서 고마운 사람이 있다.

마이클 잭슨도, 휘트니 휴스턴도 박제된 지금, 이 봄밤. 이 목소리에 나는 위안과 평안을 얻는다.

밤 9시가 넘은 시간, 내 마을엔, 내 커피하우스엔 이 노래가 울려퍼지면 좋겠다.

그 어느해 봄밤에.

 

2006년 도쿄돔 콘서트. "아리가또 도쿄"

 

땡스, 빌리 조엘.

당신도 늙었지만 살아있어줘서 감사합니다. 영어로 땡큐, 중국어 쉐쉐.

참 내일이네. 5월9일, 당신의 63세 생일, 완전 축하. 해피 버스 데이, 빌리 조엘. 

 

빌리가 노래했다.

"내 커피 잔 속에 위안이 있다. (There's comfort in my coffee cup)"

커피를 위안이라고 말하는 사람.

그런 그의 노래를 위안이라고 말하는 나.

 

빌리에게 커피는 그랬다.  

실패가 계속됐고, 생활고가 그의 생을 포박했다.

생을 포기하고 싶을 때 커피가 그를 붙들었다. 온기와 함께.

 

그의 손과 입을 통해 그의 안으로 들어간 커피는,

그의 마음을 데우는 동시에 신의 음율과 선율을 만들게 했다. 

 

'피아노 맨'은 그렇게 커피가 빌리의 몸을 빌어 낳은 작품이다. 

믿거나 말거나.  

 

빌리 조엘의 노래가 울려퍼지고 나는,

오로지 당신만을 위한 커피 한 잔을 만들면서,

당신 하나만을 위해 연주하는 피아노맨이 되고 싶다.

 

커피 향, 참 좋다.

당신 향, 참 좋다.

 

5월9일,

봄밤 9시의 커피엔 그래서,

'피아노 맨'이라는 커피가 당신을 기다린다. 온기와 함께. 위안을 담아.

 

피아노 맨 한 잔, 하실래요?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