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블로그 이미지
사랑이 아니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야
낭만_커피

Notice

Recent Comment

Archive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691,258total
  • 6today
  • 126yesterday

봄비. 

살며시 세상을 적시고, 마음에 촉촉하게 젖어드는 봄의 전령. 


이아립의 노래로 지금 이 순간의 봄은 충만하고 완전하다.


그 어느날의 밤9시, 이아립이 우리 공방에서 노래를 들려주는 시간을 기다리며.

밤9시의 커피를 응원해주는 한 사람에게 지란지교의 향을 담은 커피를 내리면서. 


그날, 내가 내리는 밤9시의 커피는,

이름 없는 커피. 

당신과 함께, 이아립과 함께, 커피와 함께.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그러니까, 
3월7일의 냄새는 알싸했다. 안개 냄새 덕분이었다.  

봄안개의 밤이었다. 흡~. 봄이 밤이었고, 밤이 봄이었다. 
그 안개가 봄을 몽환적으로 만들었고, 냄새 덕분에 나는 충분히 봄이 될 수 있었다.

내가 볶고 내린, 
내 마음을 함께 흘려내린 커피를 오전 중 연신 맛있다며 마셔주었던 두 사람 덕분에,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였도다. 더 이상 바랄 것도 없던 하루를 봄안개가 또 휘감았도다.  

아마도 그 커피와 안개에는 기형도가 블렌딩돼 있었다는 것을. 
차베스의 죽음에서 가장 가까운 내가 보유하고 있던 멕시코 치아파스 커피.
그 커피의 이름은 '기형도'였음을.  

그리하여, 
기형도의 [ 안개 ]가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봄밤. 3월 7일, 기형도 24주기(1989). 

1
아침저녁으로 샛江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2
이 邑에 처음 와 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江을 건너야 한다.
앞서간 一行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어떤 날은 두꺼운 空中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안개의 軍團은 샛江에서 한 발자국도 移動하지 않는다.
出勤길에 늦은 女工들은 깔깔거리며 지나가고
긴 어둠에서 풀려나는 검고 무뚝뚝한 나무들 사이로
아이들은 느릿느릿 새어 나오는 것이다.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동안
步行의 경계심을 늦추는 법이 없지만, 곧 남들처럼
안개 속을 이리저리 뚫고 다닌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쉽게 안개와 食口가 되고
멀리 送電塔이 희미한 胴體를 드러낼 때까지
그들은 미친 듯이 흘러다닌다.
 
가끔씩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면
방죽 위로 걸어가는 얼굴들은 모두 낯설다. 서로를 경계하며
바쁘게 지나가는, 맑고 쓸쓸한 아침들은 그러나
아주 드물다. 이곳은 안개의 聖域이기 때문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안개는 샛江 위에
한 겹씩 그의 빠른 옷을 벗어놓는다. 순식간에 空氣는
희고 딱딱한 액체로 가득 찬다. 그 속으로
植物들, 工場들이 빨려 들어가고
서너 걸음 앞선 한 사내의 반쪽이 안개에 잘린다.
 
몇 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다.
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 당했다.
寄宿舍와 가까운 곳이었으나 그녀의 입이 막히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겨울엔
방죽 위에서 醉客 하나가 얼어 죽었다.
 
바로 곁을 지난 三輪車는 그것이
쓰레기더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不幸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안개가 걷히고 正午 가까이
工場의 검은 굴뚝들은 일제히 하늘을 향해
젖은 銃身을 겨눈다. 상처 입은 몇몇 사내들은
험악한 욕설을 해대며 이 發水의 고장을 떠나갔지만
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났다. 그 누구도
다시 邑으로 돌아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3
아침저녁으로 샛江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안개는 그 邑의 名物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株式을 가지고 있다.
女工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工場으로 간다


아울러, 
3월8일 오늘, 세계 여성의 날. 
빵(생존권)과 장미(인간의 존엄성과 인권)를 들고 나섰던 1908년의 오늘을 기념하며, 내가 아는 세상의 근사하고 아름다운 여성에게 조공하는 장미. ^^

오늘, 수운잡방에서는,
아름다운 여성 당신들에게 장미와 커피를. 어쩌면 덤으로 초콜릿까지.



@}-;--`--- 

@}->-- 

@>+-+--  

@}--,--`------- 


곧 수운잡방이 아름다운 당신을 맞이합니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그 봄, 안개가 붑니다. 수운잡방이라는 안개. 당신의 마음을 감싸는 안개.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이 넓은 우주에 우리뿐이라면 그것은 엄청난 공간 낭비 아니겠니?

(If it is just us, it seems like a awful waste of space?)


- 영화 <콘택트>에서 조디 포스터가 분한, Dr. 앨리 애로위의 대사 


커피향 공유하는 커피 만드는 노총각의 독백..... 이랄까?~ 


된장, 감동 먹었다. 그 어떤 향긋한 커피향보다 더 진하고 강렬한 향이었고, 기똥차게 볶아서 내린 그 어떤 커피의 알싸함보다 짜릿한 맛이었으며, 행복감을 전파하는 커피의 고운 마음씨보다 더 강력한 행복 바이러스였다.  


조디 포스터. 쉰 한 살의 직업이 배우인 이 여자. 1월 13일, 한국시각으로는 14일, 제70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쳤다. 압축하자면, 이렇다. "나, 동성애자다." 커밍아웃. 물론, 아는 사람은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 조디 포스터에 조금 이상의 관심이 있었다면, 그것은 철 지난 유행가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알고 있던, 나는 훅~ 갔다. 시상식이라는 공개석상에서 내가 누구인지 당당하게 말할 줄 아는 사람. 여전히 '다른 나'에 대해 거부감과 차별을 내면화한 세계를 향해 똥침을 날릴 줄 아는 사람. 신선하고 멋있다. 그 카리스마, 반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뻔할 정도로. 


왠 오버냐, 하겠지만, 

전사 같은 강인한 이미지의 조디 포스터라지만, 공개석상에서 그런 고백을 위해선 얼마나 큰 마음 졸임과 고민의 순간이 있었을까를 생각해 보라. 몇 번이고 심호흡을 가다듬고, 할까 말까를 놓고 번민을 거듭했을 순간. 그리고 마침내 입을 떼면서 다가왔을 환희. 그 심연 같은 마음을 이해하는 건, 스트레이트인 나로선 한계가 있지만, 


그럼에도

저 굳센 팔뚝에 매달리고 싶을 정도다. 이토록 사랑스럽고 멋진 여자라니.

이 여자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에 나는 감사한다.  

 

 

대개의 경우, 시대가 여성상을 만든다. 그러나 드물게 어떤 여성은 등장만으로 새 시대를 열거나 세상에 스스로를 증명함으로써 견고한 세상의 벽에 금을 가게도 한다. 조디는 맞다. 후자다. 조디에게 훅 감동 먹으면서 나는 확인했다. 내가 혹하는 여성은 타인의 생이 아닌 자기만의 서사와 캐릭터로 자신의 생을 꾸리는 여성임을. 


내가 나임을 아는 것. 그게 뭐 어려운 일이냐고? 천만에.

지금 물어보라.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에 슬퍼하고 싫어하는지. 

어려운 일이다. 알면 알수록 거부하고 싶은 나도 있다. 

그럼에도 나를 안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나를 알면, 기적이 일어나기도 한다. 

조디는 그래서 삶을 기적으로 바꿨고, 그 기적으로 세상을 다시 변화시키는 놀라운 여성이다. 

악전고투. 그리고 '내가 나'임을 증명하고 연출한다. 세상은 그것에 감동하며 바뀐다. 나는 조디가 '내가 나'임을 드러냄으로써 세상이 좀 덜 슬픈 곳이 되리라 믿는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그렇지 않음, 세상이 너무 좆 같잖아. 슆아.


로자 룩셈부르크도 그랬다. 생뚱 맞지만, 조디의 외침을 들으면서 로자가 떠올랐다. 연관성? 없다. 단지, 1월 15일 즈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1919년 1월 15일, 사회주의 혁명의 꿈은 암살당했다. 만땅으로 마흔 여덟을 채우지 못한 채. 사랑과 혁명의 화신이었던 로자의 94주기. 


그래서 15일의 커피는, 사회주의 국가의 커피로만 블렌딩한 혁명 커피, 로자. 


또 15일에 슬픔이 뚝뚝 묻어난 이유는, 또 하나의 혁명이 시들었기 때문이었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이 별세하셨다. 누구냐고? <감각의 제국>! 엉뚱한 장면 상상작렬하느라, 그 안에 품은 오시마의 혁명적 송곳을 놓친다면 아쉽고, 또 아쉽다. 그는 금기된 것을 깨부숨으로써 혁명을 꾀했다. 군국주의 일본의 국가적 광기와 검열에 대해 격렬하게 저항하고 비판했다. 로자 위에, 오시마의 스러진 혁명의 꿈이 겹쳐졌다. 

 

 

그리고 나는 오늘,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조직의 한 사람이라도 행복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는 행복해질 수 없다는 사실. 잠시 잊고 있었다. 나를 둘러싼 문제에만 너무 매달리느라. 나는 아직 인간이 되긴 멀었지만, 삶이 점점 더 재밌어진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절망 뿐인 세상에서도 생은 그런 세상을 때론 배반하기도 한다. 물론, 잠시일 뿐이겠지만, 그러면 또 어떠랴. 찰나의 배신이 즐거운 것을. 그것을 기적이라 부르지 말라는 법이 없다면, 그래, 그건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조디 누나를 통해 꿈꾼다. 내가 누구인지 거리낌 없이 말해도 괜찮은 그런 세상.

지금, 혁명까지는 회의적이라도, 그런 세상, 내가 누구인지 말해도 괜찮은 세상,   


아름답다. 

그런 세상에 어울리는 커피, 


당신을 위해 짓는다. 



뷰티풀 & 굿럭.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세상이 달리 보이는 계기는 무엇일까? 

세상을 달리 보게 되는 순간은 언제일까? 


그런 계기나 순간, 누구에게나 다가온다. 원하든 그렇지 않든, 어떤 형태로든. 가령, 세상이 요구하는 속도로, 애써 문제의식을 외면하고 달리던 내가 ‘일단 멈춤’을 택한 것은 그 어느 해 가을날의 햇살 때문이었다. 햇살은 고왔는데, 내 삶은 질척거렸다. 뭔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 어떤 간극이 자꾸만 생을 좀먹고 있는 것 같았다. 갑갑했고, 우울했다.


그런 날, 내 목을 타고 내려간 커피 한 잔. 어쩌면 뜻밖의 사건이었다. 그리고 곧, 나는 ‘다른 세상’을 보게 됐다. 관성처럼 바라보던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됐다. 달리 보였고, 달리 보게 됐다. 내 생을 칭칭 동여매고 있던 붕대를 벗어던지기로 했다. 허위로 날 지탱하던 직업을 그만 뒀고, 나는 커피를 만들기로 문득 결심했다.


그리고 나는 커피를 만드는 남자가 됐다. 최고의 커피를 만드는 사람은 아니지만, 최고의 커피를 만들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나는 ‘당신’이라는 단 한 사람을 위한 커피를 만드는 남자가 됐다. 커피라는 창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고 사유하는 사람이 됐다. 그리고 나는, 에스프레소나 인스턴트커피가 아닌, 드립커피를 내리는 속도로 발걸음을 옮기게 됐다. 간극은 좁혀졌고, 나는 이전보다 좀 더 행복한 사람이 됐다. 나의 원래 속도를 찾았다. 커피, 아 템포(본래의 빠르기로).



엘리자베스 토바 베일리. 

그가 세상을 달리 보게 된 첫 계기는 질병의 역습이었다. 서른네 살의 유럽여행, 심각한 신경장애 증상을 유발하는 미확인 바이러스성 또는 세균성 병원체가 그를 덮쳤다. 자율신경계가 망가졌고, 모든 신체기능들이 고장 났다. 그가 할 수 있는 일, 순간순간을 참고 이겨내는 것밖에 없었다. 질병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앗아갔다. 행간을 보건대, 절망으로 도배된 세상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또 다른 세상이 도래한다. 제비꽃 화분에서 일어난 뜻밖의 사건. 달팽이가 그에게 왔다. 거의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에게 느림보 생명체가 느닷없이 다가왔다. 세상 모든 속도가 급하게 멈춘 그에게, 달팽이는 유일하게 따라잡을 수 있는 속도였다. 두 생명은 의기투합했다. 《달팽이 안단테》는 그러니까, 두 생물의 동거의 기록이다.


흥미로웠다. 세상의 주류 속도에서 생래적 혹은 불가항력의 사고로 이탈한 두 생명의 교류와 교감. 물론 저자의 일방적인 관찰처럼 보이지만, 내겐 그렇게 보이진 않았다. 생명은 눈을 맞추고 속도를 맞추는 순간, 서로가 영향을 미치고 받는다. 물리적 환경이 아니라 함께 살고 있는 다른 생명들이 형성하는 생물 환경. 생물 환경은 그것이 둘러싸고 있는 생물과 함께 변화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곧, ‘공진화(coevolution)’인 셈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달팽이의 세계가 점점 더 가까워질수록 나와 관계된 인간 세계는 반대로 점점 더 멀어졌다. 나와 같은 종은 너무 크고 너무 경솔하며 너무 혼란스러웠다.”(p.55) 


그는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됐다. 어느 날부터는 방문객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하는 데 몰두하는 자신도 발견한다. 달팽이와의 동거와 관찰이 야기한 새로운 시선이다. 어디 상상이나 했을까.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녀석의 호기심과 우아함은 나를 평화와 은자의 세계로 점점 더 가까이 이끌었다.”(p.57)


내게 커피가 그랬다. 커피의 우아한 맛은 나를 평화의 상태로 이끌었고, 커피의 역사와 유통을 통해 나는 세상의 불공정한 교역실태를 새삼 깨달았다. 커피의 다양한 맛과 다양한 변수에 의한 변덕(?)은 사소함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뭣보다 나는 내 생에 맞는 속도를 찾았다. 모두 똑같은 시간을 살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생에 묻은 시간의 결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았다.


책을 보면서, 그에게 있어 달팽이가 내겐 곧 커피임을 알았다. 

읽는 내내, 그에게 이입이 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질병이 바꾼 저자의 삶은 더욱 격했을 터이다. 삶이라는 질병이 내게도 틈입했지만, 그는 거기에 바이러스의 침공까지 받았으니, 오죽했겠는가. 과거나 지금이나 존재하긴 매 한가지이지만, 그에게 닥친 질병의 무게는 그를 더 고립상태로 이끌었던 것 같다. 그는 종종 그것을 토로한다. 누군가 떠나고 또 누군가는 변하는 상황에서 고립은 그를 더욱 깊이 병들게 하기도 했단다.


그런 상황에서 달팽이는 구원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 작고 사소한 달팽이라는 생명이 주는 영향력이었다. 


“우리 달팽이는 내 영혼이 증발하는 것을 막아주었다. 우리 둘은 온전히 하나의 사회를 이루었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 고립감에 빠지지 않게 도와주었다.”(p.152)


그것에서 나는 “모든 것은 모든 것에 잇닿아 있다”고 말한, 아르헨티나의 대문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말을 떠올렸다. 저자는 달팽이(들)가 아니었으면 버텨내지 못했을 거라고 말한다.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신과 다른 생명체를 관찰하는 것은 그것의 삶을 돌아보는 일. 그것은 관찰자인 저자에게도 삶의 목적을 부여했다. 달팽이가 작고 느리다고 멸시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인간의 오만이다. 다윈이 자신의 일기에 썼다는 한 다짐이 떠올랐다. 어떤 생명체를 논하든, 하등하거나 고등하다고 쓰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


저자는 되레 달팽이의 존재감이 인간보다 더 낫다고 주장한다. 달팽이에 대한 감사를 표현한 것이리라. 달팽이는 주로 죽은 것들을 먹어치우고 배설물로 분비하여 토양에 영양분을 되돌려주고 토양을 비옥하게 만든다. 반면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는 상대적으로 불필요한 존재다. 오히려 해만 끼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자연과 다른 생명에 대한 오만으로 똘똘 뭉친 채.


달팽이를 다시 생각했다. 속도를 다시 돌아봤다. 이 책, 달팽이의 속도에 대한 찬양복음서 같다. 


“달팽이의 타고난 느린 걸음걸이와 고독한 삶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어둠의 시간 속에서 헤매던 나를 인간세계를 넘어선 더 큰 세계로 이끌어주었다. 달팽이는 나의 진정한 스승이다. 그 아주 작은 존재가 내 삶을 지탱해주었다.”(p.181)


그것은 아울러 너무 급하게, 너무 빠르게, 관성처럼 달려온 삶이 불러온 파열음을 알아채자는 호소다. 그런 파열음에서 비롯한 균열이 우리 세계와 자신의 삶을 갉아먹지 않도록 하자는 성찰적 호소. 느닷없이 다가온 질병에 이어 달팽이는 저자의 세계관을 송두리째 바꿨음이 분명하다. 또한 그것을 기록함으로써, 독자는 달팽이가 주는 사유에 동참할 수 있다. 암세포의 속도보다 달팽이의 속도가 인류 본연의 것임을 자각할 수도 있다.


작가는 한없이 늦춰진 속도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이 있음을 입증했다. 《달팽이 안단테》, 그것의 명백한 증거다. 커피와 함께 한 달팽이의 속도. 나는 내게 맞는 속도, 나만의 속도를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때론 역주행도 하지만, 그렇다고 '건강하게 이 사회에 썩어 들어가라'는 주술을 거부할 순 없다. 그것이 내겐 '달팽이 안단테'이기도 하니까.  


주류 속도와는 명백히 다른 빠르기. 그래도 나는 많은 것을 할 수 있음을 경험하고 있다. 아무렴, 세상이 달리 보이거나 세상을 달리 보게 되는 일은 살아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당신이라는 사람만을 위해 내리는 나의 커피, 아마도 우연이 빚은 사고(?)일 것이다. 《달팽이 안단테》를 만난 것도 마찬가지. 죽기 전 다시 들춰보고, 살아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축복이다. 그래서, 


아름답다.




사물과 동물의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여전히 당신이 휘말릴 수 있는 우연한 일들로 가득합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1903,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1927) -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바하의 선율에 젖은 날이면
잊었던 기억들이 피어나네요
바람에 날려간 나의 노래도
휘파람 소리로 돌아오네요

내 조그만 공간 속에 추억만 쌓이고
까닭 모를 눈물만이 아른거리네

작은 가슴 모두 모두와
시를 써봐도 모자란 당신
먼지가 되어 날아가야지
바람에 날려 당신 곁으로

작은 가슴 모두 모두와
시를 써봐도 모자란 당신
먼지가 되어 날아가야지
바람에 날려 당신 곁으로

 
-김광석 < 먼지가 되어 >

 

아무렴. 1월 6일은 '김광석'으로 채우는 하루.

그래서 '커피 김광석'을 마시면서, 김광석의 노래로 마음을 다스린다.

 

2013년 1월 6일, 김광석 17주기.

광석이 형이 없음에도, 노래가 여태 불리고, 추모의 기운이 번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렵지 않다.

그의 노래 한 곡 한 곡이 누군가의 추억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추억에선 <사랑했지만>이, 또 누군가에겐 <서른 즈음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그녀가 처음 울던 날> <거리에서> <이등병의 편지> 등이 어쩔 수 없이 박혀 있음으로 인해서다.

 

모든 노래가 모든 이의 추억 속 한 자락이 되는 경우, 김광석이다.

김광석이기에 가능한 그것은, 많은 이의 삶의 결에 김광석이라는 노래가 묻어 있다.

 

 

오늘, 동숭동 학전블루에서 '김광석 따라부르기'가 열렸다.

1월 26일 대구와 2월 1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김광석 다시 부르기 콘서트' 무대가 열린다. 4월엔 김광석 쥬크박스 뮤지컬 <그날들>(6월까지)이 무대에 오른다.

 

언제부터인가, 이맘 때면 늘 찾아갔던 홍대 부근의 그곳. '들꽃이 피는 자리'.

주점이다. 김광석이 있고, 체 게바라가 있다. 주인 아저씨에게 김광석에 얽힌 뭔가 추억이 있음을 유추할 수 있는 공간이다. 김광석 노래가 늘 울려퍼지는 이곳. 원하면 또 틀어준다. 조만간 들꽃이 피는 자리에 들러야 겠다.

 

오늘 김광석으로 모든 것을 채우는가 했는데,

또 하나의 먼지가 된 사람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조성민.

그는 내 또래다. '한국야구 황금세대 92학번'의 절정이었던 조성민.

뭣보다 내 고등학교 때의 여신, 진실 누나의 한때 사랑이었다.

성민은 먼지가 되어 진실 누나에게 날려갔다. 참, 슬프다.

 

광석이형 만으로도 헛헛한 이내 마음.

성민이의 죽음이 내 마음에 먼지를 불러 일으킨다.

(유)덕화 형의 <심플 라이프>가 그런 내 마음을 다독여줬다.

 

커피 김광석이 1월 6일을 달래주었다.

 

그리고, 광석이 형 노래(<사랑했지만>)에 묻어 있는 너.

그런 너는 잘 있는지, 문득 궁금해지는 하루.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 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중에서


크리스마스.


얼마 전, 친구와 크리스마스가 예전같지 않다고 구시렁거렸어. 즉, 크리스마스의 낭만이 사라졌다는 불평이었던 거지. 물론, 우리가 더 이상 예전같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지. 크리스마스의 낭만도가 떨어졌다는 것, 나이를 먹었다는 증명과도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어.


우리가 좀 더 크리스마스에 흥겨이 달뜨고 감흥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크리스마스가 사회적으로도 점점 더 삭막해지고 있다는 안타까움이었어. 본디 크리스마스는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하는, 타인의 안녕과 평화를 바라는 그런 시기가 아니었던가? 그렇지 않았어? 예수의 탄생은 그런 의미 아니었어?  


그러나, 나는 이제 더 이상 크리스마스를 반길 수가 없게 됐어. 무엇이든, "크리스마스잖아요~"라고 퉁 칠 수 있었던 시대, 완벽하게 끝났어. 올해는 그것을 분명하게 확인했어.  



어제(21일) 한진중공업 복직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른 다섯, 두 아이의 아빠는 "돈이 전부인 세상에 없어서 더 힘들다"며 "돈이 무섭다"고 유서를 남겼어. 


그리고, 가족들에게도 덧붙여. "사랑하는 내 가족. 먼저 나쁜 생각해서 미안합니다. 나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힘듦입니다. 이제야 내가 많이 모자란 걸 압니다. 슬픕니다." 눈물이 났어.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눈물이 뚝뚝.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슬프건만, 오늘(22일), 현대중공업하청지회 노동자가 19층 아파트에서 투신했어. 한중 노동자의 소식을 듣고 많이 힘들어했다고 했어. 무섭다. 슬프다. 


과연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세상, 우리가 살아갈 만한 곳인가.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드는 사회라니. 정치교체는 언감생심, 유신적 정치로의 회귀를 우려하며 '죽음의 번호표'가 발부되는 것 아닐까, 라는 트친의 염려가 산산이 흩어질 언어가 될 것 같지가 않아. 이게 그저 우려로 끝났으면 하지만 말이지.


그럼에도 이 국가는, 이 나라의 정치(권력)는 묵묵부답이야. 젊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응답하라고 부르짖건만 말이야. 넌, 아니? 국가는 대체 왜 있는 것일까. 이 사회는 왜 남의 고통에 무덤덤하기만 한 것일까.


그래, 너와 나의 크리스마스가 다 무색해졌어.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크리스마스였었어. 크리스마스라는 그 이유만으로 흥겹고 즐거우며 벅찼던 시간은 모두의 것이었어. 그러나 이젠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있는 부류와 그렇지 못하는 부류로 나눠지나보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도 자본(화폐)의 자장 안에 들어간 까닭에 온 누리에 선물을 베풀지 못하나 봐. 크리스마스가 슬퍼.ㅠ.ㅠ 


이 땅의 노동자에게, 크리스마스는 없어!   


이 엄혹한 세상, 커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나는 고민하고 고민해.

커피 한 잔으로 이 모든 슬픔을 달랠 수 있을까. 위로할 수 있을까. 아니, 차라리 이 커피로 세상의 각성을 깨우고 혁명을 추동하는 것이 훨씬 더 낫지 않을까. '혁명 커피'가 필요한 것 아닐까. 커피에 시대의 통증이 고스란히 담겼다. 커피에서 느낄 수 있는 통각이란 이런 것일까. 


그러니까, 궁금해요. 

당신은 이 슬픔을 어떻게 견디나요?... 이 환멸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나요?...


우리의 커피, 우리의 음악, 당신과 함께 이 음악, 나누고 싶어.

우리의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우리의 아름다운 시절이 언제 올지는 몰라도. 그래도.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커피의 발견은

환각의 영역을 확장하고,

희망의 가능성을 높여주었다.

 

- 이시도르 부르돈 -

 

오늘 12월 8일,

우리 커피하우스에 오는 인민에게, 하나 같이 상상해보자고 강권(?)하고 있다. (내일까지 그럴 거다, 뭐. :-)) 커피하우스의 콘셉트는 '이매진(Imagine)'이요. 커피메뉴도 '이매진'이다. 뭐, 어쩔 수가 없다. 시국이 시국이고, 시절이 시절이다. 호우시절 아닌 호설시절? 좋은 눈은 때를 알고 내린다.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눈. 그런 것은 아니고. 호가배(咖啡)시절이다.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커피를 건넨다. 12월 8일의 커피 짓는 내 마음이다.

 

이 두 여성은,

종종 우리 커피하우스를 찾는다. 커피 취향은 제각각이다. 신맛만 찾거나 단 것만 마신다. 이들은, 마을 빈 공간을 찾고, 셰어하우스(share house)를 추진하는, 마을을 짓는 건축코디네이터라고나 할까.

 

셰어하우스. 아직 이 단어가 한국에선 낯선데, 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 우리의 공동주택(아파트)이 좀 웃기는 거다. 집들만 모여 있다. 안에 사는 사람들은 별다른 관계를 맺지 않는다. 이웃, 없다. 그래서, 셰어하우스는 주거에 커뮤니티와 라이프가 결합한 형태다. 이웃이 산다.

 

중요한 것은 공유공간이다.

공동 주방, 공동 식당, 공동 체육실 등 그들은 공간뿐 아니라 삶을 공유한다. 어쨌든 이들, 추진하고 있는 셰어하우스에서 커피 교육을 해달라고 조르고 있다. 커뮤니티 키친에 커피 향이 잘 배이도록 커피 기구 등의 배치도 해 달란다.

 

나는 얼른 셰어하우스나 지으라고 빙그레 웃는다. 실은 나도 기대하고 있다. 금호동의 'Y-House'정도만 돼도 좋겠다. 나는 이 하우스의 평상을 좋아한다. 마을사람들이 쉬고 논다. 이야기도 나눈다. 커피도 마신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간 같다.

 

그녀들, 둘이서 뭔가 쑥덕이더니, 내게 묻는다.

 

"아저씨, 오늘 뭔 날이죠? 왜 오늘 '이매진'이에요?" 

 

"노래!"

 

"노래?"

 

"아~ 이매진! 존 레논?"

 

"맞아, 맞아, 존 레논이 죽은 게 이즈음인데. 그쵸? 아저씨?"

 

"빙고~! 1980년 오늘, 뉴욕 맨해튼에서 오노 요코가 보는 앞에서 총탄을 맞았었죠. 그리곤 더 이상 노랠 부를 수가 없었어요. 그때가 마흔인데, 거의 내 나이. ㅠㅠ" 

 

 

Imagine there's no Heaven(천국이 없다고 상상해 봐).

It's easy if you try(하려고만 하면 쉬운 일이야).

No hell below us Above us only sky(우리 아래 지옥도 없고 위에는 오직 하늘만 있는)

Imagine all the people Sharing for today(모든 인민이 오늘을 위해 나누며 사는 모습을 상상해 봐).

 

"아저씨, 오늘 되게 슬픈 소식 있었던 거 알아요? 부산에 어떤 여자가 굶어 죽었는데, 7개월 만에 발견됐대요. ㅠㅠ"

 

"에? 7개월? 주변에 친구도, 이웃도 없었대요?"

 

"3년을 사회적 외톨이로 지냈대요. 지병도 있었고, 히키코모리(외톨이)처럼 지내다가 생활고로 그만..."   

 

무연사회, 무관심 사회. 우리도 점점 일본 사회처럼 돼가고 있다. 오늘을 서로 나누며 사는 것에서 멀어졌다. 얼마 전, 경기도 한 창고에서 할아버지와 장애를 가진 손자가 나무에 목을 매고 숨진 기사도 떠올랐다. 할아버지는 딸이 무직 상태에서 자신과 손자를 돌보느라 너무 고생하고 있는 것을 비관했다고 한다. 우리는 정말 나누며 살 수 있는 이웃이 없는 것일까?

 

 

 

Imagine there's no countries(나라가 없다고 상상해 봐).

It isn't hard to do(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야).

Nothing to kill or die for And no religion too(누군가를 죽여야 할 일도, 무언가를 위해 죽어야 할 이유도 없으며, 종교도 없는).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사는 모습을 상상해 봐).

 

"얼마 전에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후속편인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을 봤는데, 정말 화나는 거 있죠. 어휴. 이스라엘이 신을 모시는 나라 맞아요? 아저씨, 왜 이스라엘 권력자들은 아무 죄 없는 아이와 민간인을 왜 끊임없이 공격할까요" 

 

"휴, 그러게요. 평화. 이스라엘, 참 할 말이 없어요. 신의 이름으로 학살을 정당화하는 그런 태도가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우리 모두, 나라도 없고, 종교도 없으면... 아저씨, 우린 평화롭겠죠? 정말 그럴 거 같애. 다 나라 걱정하고, 종교 강요하는 거 땜에 전쟁 나고 사람 죽는 거 같애."

 

존 레논과 오노 요코는 1973년 4월 1일 만우절, 유토피아에서 따 온 뉴토피아(Nutopia)를 세웠다. 어디에도 없는 나라. 모든 사람이 싸우지도 않고 아무 근심없이 사는 나라. 이들은 건국선언문에서 이렇게 외친다.

 

"땅도 없고, 국경도 없으며, 여권도 없고, 오로지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뉴토피아에는 우주의 법칙 외에는 아무런 법규도 없다. 뉴토피아 인민은 모든 나라를 대표하는 대사다. 뉴토피아를 안다고 인정하는 인민은 누구나 뉴토피아 시민이 될 수 있다."

 

 

물론, 당연히 뉴토피아는 이매진(1971년 발표)을 기반으로 선언한 것이다. 이매진은 두 사람이 만들었다. 존 레논이 작사 작곡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노래의 바탕과 가사는 오노의 생각이 밑거름이 됐다. 나라 없는 세상. 나라를 뺏긴 것이 아니라, 아예 어디에도 없는 나라. 존 레논이 40년도 더 된 시절에 했던 상상을, 지금 우리는 왜 하지 못할까? 이유가 뭘까? 나라조차 우리 인민의 것으로 제대로 가져본 적이 없어서?

 

Imagine no possessions(소유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 봐).

I wonder if you can(당신이 그럴 수 있을지 궁금하지만).

No need for greed or hunger A brotherhood of man(욕심을 부릴 일도, 배고플 이유도 없는 한 형제처럼).

Imagine all the people Sharing all the world(모든 인민이 함께 나누며 사는 세상을 상상해 봐).

 

"아저씨, 우리들이 하고 싶은 셰어하우스가 많이 퍼졌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소유가 목적이 아니잖아요. 대신 모두가 사용할 수 있으니까. 존 레논이 말한 것과도 통하지 않아요?"

 

"하하, 그러네요. 그러니까, 나도 껴줘요." 

 

"아저씨 함께하는 거 대찬성. 커피 향, 얼마나 좋을까?~ 우리 모두의 것이니까, 자기 것처럼 아끼고, 그러면서 우리 모두의 것이 아니니까, 욕심을 부릴 일도 없고요. 회사도 그런 식으로 하면 얼마나 좋아요! 노동자 모두의 것이 되는 거, 노동자가 주체로 되는 거, 그게 경제민주화 아니에요?" 

 

"커피노동자 입장에서 봐도, 경제민주화! 공허해. 대통령이 특정 직업군이나 처지를 대변한다고 하는 건 민주화가 아니잖아요. 김순자 후보가 그랬어요. "당신이 당신의 처지를 스스로 말할 때 세상은 바뀐다""

 

"이재용은 부회장 승진했던데? 대체 무슨 근거로 그 자리에 올랐는지 몰라. 그 집안은 쪽 팔리지도 않을까요? 검증도 안 되고, 회장 아들이라고 덜컥 황태자가 되고. 그네 타는 그 여자도 마찬가지죠. 지가 무슨 진짜 공주인줄 안다니까요. 재수 없어! 오늘 낮에도 광화문에서 또 빨간 옷 입고 설쳤다매?" 

 

"그네 타듯 스트롱맨(strongman) 아버지한테 자신을 밀어달라고 보채는, 황상민 교수의 표현에 의하면 '생식기만 여자'도 그렇고, 정권 교체와 새 정치만 공허하게 말하는 문안도 그렇고. 상상을 못하는 상상결핍증 환자들 같애요."  

 

"아저씨는 누구의 국민이 되고 싶어요?"

 

질문을 받은 나는 섣불리 답을 할 수 없다. 나는 누구의 국민이 아닌, 이 땅의 시민이 되고 싶을 뿐이니까. 커피노동자로서의 시민. 노동자들이 자기 목소리 내기 위해 크레인에 오르고, 철탑, 송전탑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여야만 하는 나라. 나는 그런 나라의 국민이고 싶지 않다. 죽음을 각오하고 높은 곳에 올라도, 어거지를 쓴다고 땡깡을 부린다고 말하는 곳이 한국이라는 사회다.

 

"진짜 국가고 나라라면 말이죠. 모두가 부자가 되고 잘 살고, 선진국민이 되게 해 주겠다고 공갈 치는 게 아니고, 배 곪는 사람, 먹지 못해 죽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없게 하는 게 국가의 의무이자, 존재의 이유죠. 난 가난해도, 단 한 사람도 굶어죽는 사람이 없는 국가에서 노동자로, 시민으로 살고 싶어요."

 

You may say that I'm a dreamer(당신은 내가 꿈꾸는 사람일 뿐이라고 말할 지 모르지만).

But I'm not the only one(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 혼자 만은 아냐).

I hope someday you'll join us(언제가 당신도 우리와 동참하길 바라).

And the world will be as one(그리고 세상은 하나가 될 거야).

 

국민대통합의 아이콘은, 이런 상상을 하는 사람들까지 하나로 만들지 못한다. 그러니까, 그의 구호는 개뻥이다.

 

이로써, 오늘 밤9시의 커피 메뉴가 '이매진'으로 하나 된 이유를 알겠지? 함께 상상하고, 드리머가 되자는 거. 천국도, 나라도, 소유도 없는 세상. 상상만 해도 짜릿하지 않나? 1000원에 이런 세상을 꿈꾸게 만드는 커피가 있다는 거, 그것도 참 멋지지 않아?

 

자, 내일까지 밤9시의 커피는 '이매진'으로 하나되는 걸로~

I hope today you'll join us!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난 스타가 되지 않겠다. 

전설이 될 것이다. 

로큰롤의 '루돌프 누레예프'가 되겠다!" 


- 그룹 퀸, 프레디 머큐리


이것은, 그저 넋두리입니다. 

어떤 의미도 부여할 필요, 없고요. 그저 커피 한 잔에 담긴 단상이라고만 해두죠. 특히, 여기 등장하는 남자 셋, 어떤 관련 없이 나열한 것에 불과해요. 커피를 만들다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른 생각의 가지들. 


어제, 한 남자가 다시 '양보'를 했습니다. 

그것, 깊이 파고들자면 양보라는 단어로 단순화할 수 없는 무엇이겠지만, 어쨌든 그는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습니다. '단일화'라는 말이 저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보다 더 좋은 말이 선뜻 떠오르진 않지만, 그는 자신이 걸어왔던 길에서 일단 '멈춤'을 합니다. 한 남자, 안철수입니다.



안철수라는 이름. 

저는 단 한 번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안철수'가 세상을 바꿀 이름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었습니다. 세상의 흐름에 자신만의 인장을 새기며, 그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어떤 초석이 될 순 있으리란 기대 정도는 했었죠. '혹시 어쩌면…'하고 살짜쿵 가슴이 뛰기도 했으니까. 진짜 이뤄야 할 무엇을 향한 과정으로서의 안철수. 그래서 그 이름, 개인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열망과 또 어떤 바람이 섞이고 뭉쳐 '안철수'라는 단어로 표현이 된 것이겠죠.  


그의 눈에 눈물이 맺히고 살짝 울먹입니다.  

개별의 인간에게 새겨진 구체적인 존엄 같은 게 있었어요. 그 눈물과 그 발언의 실체는 내가 알 수 없는 심연이겠지만, 그렁그렁한 눈망울에 맺힌 구체적 존엄 앞에 나는 겸손해야 했어요. 그의 발표는 내게 꼭 어떤 '고백'처럼 느껴졌습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맞아요. 그는 내 스타일, 내 타입, 아니죠.

그럼에도 덩달아 슬펐습니다. 슬픔이 찰랑거렸습니다. 이상하게도. 살짝 아프기까지. 이상하게도. 아마, 안철수라는 개인때문이 아니라, 안철수라는 이름에 묻은 어떤 마음들 때문이었겠지만. 실토하자면, 안철수라는 이름 아래 3040자문단의 일원으로 살짝 참여했습니다. 어쩌다 그런 것이었지만, 그에게 조금씩 마음을 주고 있었나 봅니다. 슬프고 아픈 걸 보니. 그는 일단 멈추고 물러섰겠다고 고백했지만, 안철수라는 이름에 담긴 어떤 열망과 마음, 그것은 끝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안철수라는 이름의 약속이 계속 지켜졌으면 하는 바람, 아마 그럴 것이라는 기대, 갖고 있습니다.     


그 고백이 있고, 다음날입니다. 

한 남자의 소식에 덩달아 그 남자를 떠올렸습니다. 아니, 그 남자는 며칠 전부터 계속 맴돌던 이름이죠. 더 정확하게는 노래. 그의 노래들, 며칠 전부터 듣고 있었거든요. 그는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태어났습니다. 인도에서 자랐고, 런던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는 뮤지션입니다. 영원히 빛날 이름을 가진 멋쟁이입니다. 그 남자, 프레디 머큐리입니다. 



프레디 머큐리라는 이름.  

그룹 퀸의 보컬리스트입니다. 지루하고 따분한 삶을 사는 것이 싫었고, 1971년 퀸을 만듭니다. 전설이 되겠다는 호언장담, 허세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전설이 됐습니다. 그가 음악을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대요. 음악을 듣는 사람들 심장박동을 더 빨리 뛰게 하기 위함. 그는, 퀸은 음악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건 존 레논이 하면 될 일이지, 자신들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 거죠. 음악을 듣는 그 순간만이라도 심장박동이 뛰고 즐겁고 신나면 되는 것.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의 죽음이 세상을 조금 바꿔놓았습니다.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누그러뜨리기 시작한 것!


그는 한 마디로 잘났습니다. 

비아냥이 아니라, 진짜 그랬어요. 직접 음악을 만든 싱어송라이터였고, 공연을 기획하고 폭풍 무대를 만들었습니다. 무대에서의 끝내주는 퍼포먼스와 카리스마는 어떻고요. 뮤직비디오를 만들 때는 직접 아이디어를 내는 기획까지. 음악으로 사람들 심장박동을 뛰게 하겠다는 그의 장담은 허세가 아니었던 거죠. 20년 내내 노래를 했고, 무대에 설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겠죠. 


그의 이런 바람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난 온세상이 내 노래를 들었으면 좋겠고, 내가 무대에 섰을 때는 모든 이들이 내 노래를 듣고 날 바라봐 주길 바란다. 어떤 형태로든 내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는 사실이 좋다. 다만 30분이라도 사람들이 나로인해 운이 좋다고 느끼거나 기분이 좋아진다면, 찌푸린 얼굴을 펴고 잠시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에게 가치있는 일이다."


그는 약속을 지킬 줄 아는 의리남이었습니다. 

잘난 그였기에, '퀸=프레디 머큐리'라는 등식을 떠올리기에 충분했기에, 주변에선 퀸을 탈퇴하고 솔로활동을 하라는 유혹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팀을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죽는 날까지 밴드를 떠나지 않은 '의리자(者)'. 퀸의 성공에 기여한 자신의 몫은 1/4이라고 말했다죠. 물론 퀸의 리더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도 가장 중요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은 해봤다지만. 


프레디가 세상을 떠난 1991년 11월 24일. 

지금으로부터 21년 전. 나는, 그해 그를 처음 알았어요. 그가 세상을 떠난 직후. 당시, 더벅머릴 길러서 완전 어설픈 반항아 록스타 같던 시절, 한 무리의 또래들 중에 나름 가장 예뻤던 여학생으로부터 다양한 노래를 녹음한 테이프를 선물 받았었죠. A면 첫 곡이 'Love of My Life'(B면 첫 곡은 광석 형의 '사랑했지만'). 퀸의 노래를 처음 들었습니다. 프레디 머큐리라는 뮤지션도 처음. "오래 사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너무 지루할것 같다"면서도 "난 제발 에이즈만 걸리지 않게 해달라고 늘 기도한다"던 그는, 결국 에이즈로 세상을 떠납니다. 고백한 다음날, 에이즈로 그 좋아하던 음악을 멈춥니다. 프레디 머큐리의 폭풍 보이스도 이젠 안녕. 


물론, 오해하지 마세요. 

한 남자와 그 남자의 고백은 완전 다를 뿐더러, 퍼포먼스가 끝났다고 끝난 것 아닙니다. 안철수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계속 걸어갈 터이고, 프레디 머큐리의 노래는 21년이 지난 오늘도,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내가 그를 기억하고, 세상이 그의 음악을 영원한 전설로 인정합니다. "로큰롤의 '루돌프 누레예프'가 되겠다!"는 그의 말에 완전 수긍. '루돌프 누레예프'는 죽을 때까지 춤을 춘 전설의 발레리노입니다.  


두 사람, 위풍당당했습니다. 

한 남자, 국민을 사랑하고,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자유주의자 면모를 보이면서 약속을 지킨다며 일단 멈춰섰습니다. 그 남자, 여자와 남자를 사랑하고, 물고기와 고양이를 사랑하며, 자신의 호언장담을 죽는 그날까지 지켰습니다. 두 사람 모두, 누군가의 심장을 뛰게 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 남자, 준수는 그렇게 두 남자를 기억합니다. 

오늘, 내 좋은 커피 동료들과 찾은 커피하우스. 안타깝게, 탄자니아가 없습니다. 프레디 고향에서 날아온 향미로 한 남자와 그 남자의 향을 음미할까 했는데 말이죠. 아쉬워서 같은 네 글자짜리 온두라스 커피를 마셨습니다. 물론, 탄자니아와 온두라스, 서로 대륙은 다르지만 말이죠. 하하.  



11월 23일, 안철수가 대선후보로서의 행보를 멈췄습니다. 

(정치인으로서 그는 계속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약속 때문에라도!!)  

11월 24일, 프레디 머큐리가 뮤지션으로서의 노래를 멈췄습니다. 

(전설로서 그는 영원히 살아 있을 것입니다! 호언장담 때문에라도!!)

그리고, 준수의 2012년은 이것으로 끝났습니다. 달력에 남은 날짜는 그냥 덤. 

(커피 만드는 남자로서 그는 계속 이야기를 만들 것입니다! 삶 때문에라도!!)  


오늘 밤9시의 커피는 탄자니아 킬리만자로를 준비했습니다. 그에 어울리는 노래는, 

Don't stop me now. 지금, 날 막지 마.

그래, 모두 멈추지 마. 프레디도, 안철수도, 나도, 커피도. 

나도 그들처럼, 관료주의에 잠식 당한 내 다른 일을 그만두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그것,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상업영화 시스템으로 들어간 내 몸을 빼고, 독립영화를 다시 찍기로 합니다. 나는 그것이 어울리는 사람이니까요. 그것은 곧 다시 시작이며, 영원한 향기를 뿜어내는 일이기도 해요. 좋은 것만 누리기에도 인생은 너무 짧습니다. 즐겁고 재미있게. 오늘 봰 윤광준 선생님도 내게 힘을 실어주셨어요!  


윤 선생님, 내게 이런 말을 남겨주셨습니다. 

"커피의 향이 곧 좋은 삶입니다." 



암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잘 찍은 사진 한 장' 같은 '잘 뽑은 커피 한 잔', 그것이 커피를 처음 할 때처럼, 내 삶의 영원한 목표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잘 뽑은 커피 한 잔'!  :-)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 커피 한 잔에 담긴 한 세계의 모든 것. 커피 한 잔을 통해 사유하는 한 줌의 삶.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나의 커피.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 


아울러, 철수 형과 프레디 형에게도 커피 한 잔씩 건네고 싶은 내 마음 한 자락. 

내가 준비한 오늘의 커피 메뉴는, Don't stop me now.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We want bread, but want roses, too!
(우리는 빵도 원하지만, 장미도 원한다!)

 

- 켄 로치 감독, <빵과 장미> 중에서 -

 

 

막걸리를 마시며 전태일을 꺼냈고, 함께 마신 이들과 우리의 노동을 생각했습니다.
11월13일이어서 그랬을 겁니다.

1970년 그날, 42년 전 불길 속에서 산화한 노동의 이름.

 

'전태일'이라는 이름 덕분에 나는 '노동'을 처음 알았습니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노동이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모두 노동자였고, 세상의 태반이 노동자였으며, 나도 노동자로 살아가야 할 것임에도, 어른들은 '노동'을 알려주지 않더군요. (자본주의 사회라면서 '자본' 역시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나는 늘 노동자였고, 지금도 노동자이며, 앞으로도 쭉 노동자일 것입니다.
그리고 별 볼 일 없는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타이틀, 커피노동자!

 

얼마 전, 밤에 창신동을 찾았었습니다.
창신동에서 마을을 가꾸는 두 청년(러닝투런-키다리와 콩)을 만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죠.

 

키다리의 안내로, 창신동 봉제공장을 처음 가봤습니다.
한창 성수기라며 그 야심한 밤에도 노동에 취한 봉제공장들의 불빛.
그리고 원단을 자르고 가공하는 노동자들의 바쁜 모습.
50년을 그 자리에서 재단 노동을 하고 있다는 엘림패션의 김 사장님.

어찌나 열성적으로 자신의 노동에 대해 말씀을 하시던지.

나는 "형님~!", 손을 잡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전태일, 떠올랐었습니다.

 

키다리와 콩은 그 노동자들이 발을 굴리는 동안,
어쩌면 방치될 수밖에 형편의 그곳의 아이들과 함께 놀면서 여러가지 재미난 실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기회를 만들어서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을 겁니다.
마을과 청년이 어떻게 창신동이라는 풍토에서 만나고 있는지.


그리고 마을과 노동. 반드시 다루어져야 할 주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마을에서 노동은 어떻게 자리매김하고, 노동과 마을은 서로 어떻게 삼투하는지.
'노동'이라는 영원히 계속돼야 할 사유와 더불어.

 

그리하여, 광고하자면, (노동에 대한 어설픈 접근이지만, 처음이니까! ^^;)
다음주 월욜(19일), 마을공동체 TV강연 '마을, 일자리를 부탁해'가 광화문 역사박물관에서 열립니다.

무료니까, 마을일자리에 대해 한 번 들어보세요.
신청은, '위즈돔'에서. ☞(클릭) [서울 마을공동체] 마을, 일자리를 부탁해!

 

 

 

"빵은 나누어져야 하고, 자유는 확대되어야 합니다. 빵과 자유를 위한 투쟁은 영원합니다."

 

명민한 좌파감독이자 영원한 노동자의 감독, 켄 로치 <빵과 장미>.

 

빵도 필요하지만, 장미도 당연히 필요하고 요구해야 하는 것.

 

그러나 이 땅은 여전히 빵조차 나누길 거부하는 사회. 낮은 자들이 높은 곳에 기어이 올라가도 콧방귀조차 끼지 않는 몰염치한 세상.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8일째 철탑 고공농성의 한파를 맞이하고 있으며, 23개의 세계가 무너진 쌍용차 노동자들.

 

42년 전의 전태일을 끊임없이 호명하고야 마는,

'자본 천국, 노동 지옥'의 아, 대한민국.

속된 말로, 일하다 죽는 것이 당연한 '일천국(잡코리아?)', 오, 대한민국.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는 말합니다. 대한민국 노동자의 연간 근무시간은 2256시간으로 OECD 회원국 중 1위(OECD 평균 1750시간). 독일보다 800시간, 일본보다 500시간 많은 반면 여가 시간에서는 뒤에서 1위, 자살률 1위. 1등만 기억하는 조까라 마이싱, 대한민국!)


당신의 노동은 안녕하신가?

 

그러니까,

내가 당신에게 권하는 건, 일 대신 커피.

노동을 뉘이는 한편 노동을 사유하는 커피 한 잔.

다시 꺼내는, 요즘 내가 꽂힌 이 노래를 들으면서 커피 한 잔.

우리의 음악.


노동이 음악으로 바뀔 수 있는 세상을 바라는 마음에서.

우리의 노동, 우리의 음악.

 

그대여, 사랑을 미워하진 마. 우리가 함께 했던 계절을. 때로는 눈부시던 시절을. 모든 게 조금씩 빛이 바랬고, 우리가 함께 듣던 노래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어.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내게 커피를 주시오, 아니면 죽음을 주시오"


- 패트릭 헨리(미국 독립운동 지도자)


그래, 당신도 동의할 거야.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어. 가령, 사랑이 그렇고, 죽음이 그래. 


오늘, 한 우주가 스러졌어. 

처음 가본 서울추모공원, 친구 아버님이 한 줌의 먼지가 되셨어. 

이 세계를 구성하던 하나의 우주가 희미해지면서 없어진다는 것, 비극.

느닷없이 닥쳐온 비극 앞에 인간은 무력할 수밖에 없지만, 이별 앞에서 필요한 것은 예의여야 함을 새삼 깨달았던 시간. 


아버님을 화장실로 보내기 직전의 곳, '고별실'이라는 팻말을 달고 있었어. 

그 '고별'이라는 말, 유난히 마음에 콕콕 박히더라. 

장례에서 죽은 사람에게 이별을 알림, 고별. 


이별해야 하는 곳. 한 우주의 스러짐을 마음으로 확인해야 하는 곳. 


그래, 익숙해지지 않는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었어.

개별의 인간이기 때문이지. 구체적인 존엄이 새겨진 개별의 인간이기 때문이었어.

숱한 죽음 앞에 내가 익숙해질 수 없는 이유가 그것이었던 거야. 

한 우주가 구축한 세계, 그 삶의 구체는 내가 알 수 없는 심연이겠지만, 

구체적 존엄 앞에 나는 고개를 숙여야했고, 추모는 마땅한 것이었어. 

이별 앞에 반드시 예의를 필요한 이유도 거기 있었고. 


화장 후 곱게 갈린 뼈라고, 개별의 구체가 아닐쏘냐.  

그래서, 성당으로 향하는, 아버님의 유골을 태운 리무진에 나는 고개를 숙여야 했어.



그리고, 

45년 전 오늘, 타살 당한 혁명을 떠올렸어. 

1967년 10월9일, 볼리비아에서 날아왔을 혁명의 으스러짐. 


체 게바라. 

오늘, 그에 대한 추모도 함께.

당신과 함께 타살 당한 혁명을 추모하는 것이고, 위로하는 것이지.  


비록 우리에게 혁명의 새벽은 오지 않았고,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지 몰라도,

만나지도 못한 혁명에게 이별을 말할 수는 없는 노릇.

그렇다고, 혁명과 만날 날을 포기할 순 없는 법. 

언젠가 올 혁명에 대한 예의!


그리하여, 

오늘 같은 밤에도, 노떼 자얀츠가 이겨줘야 할 것 같아.

내 마음에 꿀렁이는 이 슬픔과 추모의 마음에 대한 위로.  

당신도 여전히 우리 자얀츠 팬이지?   


그래 내겐,  

당신이 혁명이었어. 내 마음은 그래서 이미 혁명을 경험한 거야.


당신 하나로 내겐 충분히 가능했던 혁명. 


당신과 함께 보고 싶은 이 영화. 끝내 개봉하지 못하고 DVD로 직행한 이 영화, <체>.


오늘, 서울추모공원에서 만났던 커피, 향긋했어.

커피 자체 맛보다는 카페인이 필요했거든. 내 정신을 깨우고 싶은.

내 마음의 추모도 담아 마셨던 그 커피, 오늘의 나를 지지해 준 커피.

수골실 앞에서 커피 마시던 유족들 모습에서, 나는 커피가 주는 위로를 생각했어.


슬픔을 안녕~할 순 없지만, 커피는 슬픔을 위로할 수 있구나.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커피를 건네고 싶다...     



  

언젠가 이 세계에 변혁을 초래할 인간이 찾아올 것이다.

그 인간에게도 방황하는 밤이 있을 것이다.

그 밤에 문득 펼쳐본 책 한 줄의 미미한 도움으로 변혁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그 하룻밤, 그 책 한 권, 그 한 줄로 혁명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는 일은 무의미하지 않다.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 프리드리히 니체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