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잠든 밤. 밤안개가 살포시 기침 한번 하고 지나갈 것 같은 그런 밤. 그리고 전날 내린 눈이 세상 가득한 눈꽃을 피우고 있는 어떤 밤. 바퀴벌레 한마리 슥 지나가다가 눈에 그만 미끄덩 발을 헛디뎌,
버둥거리고야 말 것 같은 꽉 찬 한밤.
그리고 그 곳은 어느 한적하고 눈꽃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는 어느 공원. 그 공원이 품은 공기를 공유하면서 새초롬한 불빛에 의존해,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거니는데,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난 대낮 같은 풍경. 아뿔싸, 새하얀 눈밭을 뚫고 땅 밑에서 솟아난 듯한 촛불들의 향연. 하트 모양으로 대열을 이룬 촛불들의 공간이 불쑥 우리에게 손을 내민다. 안으로 들어와 커피 한잔 하라고.
드립포트가 하얀 입김을 내뿜으면서 펄펄 끓고 있고,
서버와 드리퍼가 그 옆에서 물 세례를 받을 채비를 갖추고 있으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풍부한 산미와 보디를 갖춘,
하이 로스팅된 코스타리카 타라주 도타 커피.
햇살이 참 좋았다.
너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그때도 가을이었고,
너는 한껏 가을을 뽐내고 있었다.
하늘도 참 좋았다.
그 뽀사시 샤방샤방한 하늘.
널 내려보냈던 하늘.
우리의 발걸음을 비춰주던 하늘.
이런 하늘은 그래서,
널 생각나게 만든다.
역시나,
가을이고,
햇살이 좋았고,
하늘마저 푸르렀으니.
역시나 마찬가지인, 어떤 하늘. 이 하늘을 눈에, 가슴에 담았을 때, 너를 떠올렸다.
너는 그렇게 내게, 하늘이다.
괜찮은 거지?
잘 지내는 거지?
아주 간혹, 이런 하늘을 올려다보면,
어쩔 수 없이 네 생각이 난다.
그건 정말 어쩔 수 없는 거다.
그게 나니까...
넌, 하늘이니까...
별이 보이지 않지만, 달빛이 유난히 빛나는 밤도 그렇다. 달이 떠있는 이곳도, 역시나 하늘이다.
나도 이런, 영사기가 있으면 좋겠다. 내 마음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영상말고, 너를 스크린에 투사해서 볼 수 있는 영사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관객은 오로지 나 하나, 네가 거기 있다.
보고 싶다.
그렇게 커피를 마시고 싶다. 너는 가을이고, 너는 햇살이고, 너는 하늘이다.
영사기를 통해 너를 돌리면서, 커피한잔, 가을한잔 마시고 싶다. 아마 거기엔 내 눈물도 포함되겠지만.
말하자면, 그래...
처음 봤을땐, 몰랐어.
(그땐,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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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봤을땐, 관심 없었어.
(그땐, 여전했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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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봤을땐, 시선이 움직였어.
(그땐, 꿈틀거렸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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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봤을땐, 좋아져버렸어.
(그땐, 어쩔 수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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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째 봤을땐, 보고 싶었어.
(그땐, 자꾸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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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번째 봤을땐, 사랑에 빠졌어.
(그땐, 넌 내 마음 깊은 곳에 둥지를 틀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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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번째 봤을땐, 널 가지고 싶었어.
(그땐,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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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번째 봤을땐, 그리웠어.
(그땐, 그렇게 널 보내기가 힘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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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번째 봤을땐, 힘들었어.
(그땐, 이미 난 너 없이 살 수 없을 것 같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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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번째 봤을땐, ......
그래, 어땠을거 같아?
그런데, 있잖아.
난, 아무말, 못할 것 같아.
그건, 결국 부치지 못한 편지와도 같은 거야.
그래 우리, 그 편지의 향기를 닮은, 커피한잔 마시자...
당신의 소비스타일을 바꾼다, ‘착한 소비’ 커피 한잔으로 만나는 다른 세상...“생산자에게 정당한 댓가를!
# 서울 봉래동(남대문) 부근에서 직장을 다니는 김고운(31. 가명)씨.
아침 출근길과 점심식사 후 항상 커피를 마신다. 인근에는 세계적 기업인 스타벅스나 하겐다즈 매장이 있지만, 그가 가는 곳은 정해져 있다. YMCA에서 운영하는 ‘Cafe 티모르’. 동티모르산 커피를 제공하는 이 카페는 이른바 ‘착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이다.
김씨는 아라비카종인 동티모르 커피의 좋은 향미와 인근 매장보다 저렴하다는 장점에 끌렸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김씨는 이 커피를 통해 또 다른 세계와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Cafe 티모르를 찾는다.
자신이 마시는 커피에는 커피향미와 가격 이상의 것이 있었다. 거기에는 은근한 ‘자부심’이 담겨 있다. 커피한잔을 마실 때마다 아마 관련이 없을 것 같던 다른 세계의 생산자와 자신이 연결돼 있음을 느끼고 그들의 생활기반을 마련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뿌듯하다. 가난한 커피 생산자들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지불함으로써 ‘착한 소비’를 하고 있는 자신이 대견하기도 하다.
착한 커피는 ‘공정무역 커피’를 뜻한다. 공정무역은 쉽게 말해 생산자(노동자)들이 지속가능한 생산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가격을 보장해주는 무역방식이다. 또 생산자 공동체의 교육·의료 등 사회적 안전망 확보에 기여할 수 있는 사회적 초과이익을 보장한다. 아울러 자진해서 하는 것이 아닌, 아이들의 불법적인 노동착취를 막는 역할도 한다. 그렇다면 공정무역체계가 기존방식(자유무역체계)과 어떤 차이가 있느냐. 니카라과에서 커피 재배를 하는 농민인 블랑카 로사 몰리나의 답변은 이를 대변한다. “우리 식구가 밥을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지요.”(≪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경제, 공정무역≫(마일즈 리트비노프, 존 메딜레이 지음/모티브북 펴냄)
그것은 곧 이 세계의 지속가능성과도 연관된 활동이다. 그렇다고 공정무역은 자선이나 원조가 아니다. 어엿한 사업이다. 공정무역을 통해 가난한 나라 생산자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자립을 도울 수 있다는 또 하나의 프리미엄이 붙을 뿐이다. 단순 상품 소비를 넘어선 의미를 가진다는 점에서 공정무역을 향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 공정무역을 통한 제품을 사는 것을 ‘윤리적 소비(ethical consumption)’ 혹은 ‘착한 소비’라고 부른다. 이와 함께 최근의 먹거리 불안과도 맞물려 공정무역 제품은 주목을 받고 있다. 공정무역 제품 가운데 유기농 식품도 심심찮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서히 웅지를 트는 공정무역
지난 5월10일은 ‘세계 공정무역의 날(World Fair Trade Day)’이었다. IFAT(국제공정무역연맹)은 공정무역의 취지의 알리기 위해 지난 2002년부터 매년 5월 둘째주 토요일을 세계 공정무역의 날로 지정해 행사를 하고 있다. 공정무역은 1950년대부터 유럽에서 시작됐으며 현재 전 세계적으로 50여개국, 3,000여개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당일 덕수궁 돌담길에서 “공정무역합시다!”라는 표어 아래 행사가 있었다. 한국YMCA전국연맹 등 다양한 단체와 커뮤니티가 행사에 참여했으며 많은 시민들이 공정무역의 날 행사에 동참했다. 커피를 비롯해 옷, 설탕, 초콜릿 등 다양한 공정무역 제품들이 선보였다. 당일 행사장에서 커피트럭을 통해 공정무역 커피를 판매한 카페 Timor는 500~600잔의 커피를 판 것으로 집계됐을 정도로 관심은 뜨거웠다.
소비자들의 인식도 차츰 바뀌고 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에 점수를 주고 이들 제품의 구입에 나서고 있는 것. 윤리적 소비가 하나의 새로운 소비가치로 부상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한 시장조사기관이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 5개국 소비자 5000명을 상대로 벌인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 결과, 응답자의 3분의 1은 자동차, 식품, 화장품 브랜드 중에서 윤리경영을 준수하는 제품이라면 5~10% 이상 높은 가격을 주고라도 구매할 용의가 있다고 응답했다. 무엇보다 응답자의 56%는 “기업들이 윤리적 규정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믿고 있으며 60%의 소비자들은 “보다 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면 윤리적 브랜드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취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브랜드 전문가들도 자동차, 음식료, 소매, 의료 및 미용 등 전반에 걸쳐 윤리적 소비자운동이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백화점, 공정무역과 만나다
이처럼 착한 소비가 서서히 뜨자, 유통계에서도 나섰다. 가난한 나라의 생산(노동)자 보호를 위한 소비 트렌드가 슬슬 형성되고 있음을 간파하고 공정무역 제품의 판매에 나선 것이다.
현대백화점이 백화점 가운데 처음 발을 디뎠다. 압구정점과 무역센터점에 ‘공정무역상품’ 코너를 만든 것. 현대백화점은 국제공정무역 상표인증기구(FLO)가 인증한 ‘공정무역상품’을 중심으로 커피, 씨리얼, 딸기잼, 설탕, 코코아, 씨리얼바 등 27개 상품의 판매에 나섰다. 백화점 등 대형유통매장에서 FLO인증 상품코너를 마련한 것은 현대백화점이 처음.
이준권 현대백화점 상품본부 과장은 “전 세계적으로 제3세계 노동자를 배려하는 윤리적 소비활동이 확산되는 추세”라며 “국내에서도 공정무역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어 취급 품목을 점차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착한 소비’는 알게 모르게 소비자들의 마음을 더디지만 스멀스멀 파고들고 있다. 제품의 기능적 가치에만 집중하던 시기는 지났다. 현명한 소비자들의 기대에 맞춰주고 그들의 요구에 선행해 제품을 선보이는 것이 기업들에게도 중요한 과제가 됐다. ‘착한 소비’는 소비자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업에게도 결국 이익을 만들어줄 수 있다. 지속가능한 기업이 되기 위한 선행조건이 되는 셈이다. 다만 세계 10위권의 무역대국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정부차원의 지원이나 정책이 부재하다. 소비자에게 자부심과 기쁨을, 생산자(노동자)에게 희망과 생존을 주는 착한 소비는 경제주체들의 톱니바퀴가 제대로 맞물려 돌아갈 때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다. (월간 경제포커스 7월호 기고)
잊지 못할, 그날. 12년 전, 어느 햇살 좋은 가을날의 주말. 내가 ‘One Fine Day’라고 명명한 그날. 내 생에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이 있었던. 내 설렘과 사랑이 시작됐고, 한편으로 용기와 통증을 동반한 날. 누군가를 보고 ‘아찔하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경험한, 매우 특별했던 그날의 이야기. 그것은 어쩌면, 일생에 단 한번 찾아올까 말까한 그런 순간이 아닌가 싶다. 그 전까지만 해도, 나는 누군가의 뒤에서 광채나 후광이 보인다는 말, 믿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순간이 내게 닥친 것이다. 우리는 타향살이를 하고 있었고, 그 전날, 그녀는 카메라를 사고 싶다며, 다운타운에 동행해달라고 했다. 주말에 하릴없이 하숙집에 박혀있기가 무료했든, 바깥공기가 그리웠든, 쇼핑을 하고 싶었든,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하숙집을 나왔다. 나는 접속장소였던 학원의 정원 앞에서 음악을 들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저 멀리서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싶었다. 햇살을 등지고 걸어오는데, 뭐랄까, 눈이 아득해졌다. 하늘거리는 원피스와 파란빛 자켓, 얼굴을 감싸는 챙 넓은 모자와 푸른 선글라스로 한껏 분위기를 낸 모습이 가을 햇살과 뒤범벅됐던 순간, 나는 아주 작은 탄식을 냈다. 심장은 박동속도를 높였고, 쿵쿵쿵 우렁찬 소리까지 내고 있었다.
순식간이었다. 그건 교통사고 같은 ‘사랑사고’였다. 느닷없이 당하고야 마는. 준비도 예고도 없이 맞닥뜨리는. 그렇게 작동한 심장을 부여잡고, 다운타운을 거닐다가 들어간 곳이 백화점 옥상 테라스에 위치한 커피숍. 가을풍경이 잘 보일 것 같다며 들어간 그곳의 커피 한잔 가격은 25센트. 가난한 학생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착한 가격이었다. 우리는 본격적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그전부터 서로 알고 있었다지만, 그날은 특별했다. 서로의 마음에 들어간 순간이었다고나 할까.
우리는 ‘전혜린’을 이야기했고, ‘사포’를 기억했고, ‘전태일’을 기렸다. 그녀는 남자가 ‘전혜린’을 알고 있는 것에 신기해했고, 악몽 같았던 군대 시절의 상처를 보듬어줬다. 나는 주절주절 있는 것, 없는 것 다 풀어놓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였기 때문일까. 그 25센트짜리 커피에 나는 흠뻑 취했다. 커피향이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 하고 처음 느꼈다. 그렇게 커피와 함께 한 그녀와의 대화에 젖어들면서 나는 진정 이끌림을 맛봤다. 그 커피향에는 내 설렘이 가미됐고, 내 첫 번째 첫사랑은 그렇게 커피와 함께 시작됐다. 가을날의 햇살이 그렇게 부추겨서였을지는 몰라도.
커피 한잔. 25센트 커피 한잔의 잊지 못할 가을의 기억. 25센트짜리 커피한잔에 담긴 25달러짜리 커피향을 맡으며 새긴 25만 달러짜리 기억. 조잘대던 그녀의 입술, 가을햇살 담은 그녀의 맑은 눈, 빙긋 미소 지을 때 들어가는 그녀의 보조개, 내 말에 자지러지던 그녀의 함박웃음, 그리고 내 심장박동을 뛰게 하던 당신. 나는 그날, 그 순간을 그렇게 기억한다.
그리고 그날, 우리는 인근의 대학 캠퍼스까지 섭렵했다. 원래 목적이었던 카메라는 어디에도 없었다. 우리는 그저 그날을 꾹꾹 담았다. 가을햇살을 맞았고, 산책을 했고, 커피를 마셨고,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우연히 고향이 같았던 탓일까. 우린 생각보다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었고, 각자의 기억을 이식했다. 커피와 함께 한, 커피향 같은 그녀와 마주한 그 순간을 나는 잊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