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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5 10:55 할말있 수다~

문외한인 나는 건축의 미학은 모르지만,

내 미적 혹은 생활의 감수성을 망가뜨리는 건축(물)에는 치가 떨린다.


그리하여 누군가 말마따나,

건축을 문화의 한 영역으로, 예술의 한 형식으로 제대로 감상하고 안목을 높일만한 기회를 만들어다오.


그건 건축가만의 몫도 아니요,

건축을 향유하고 일상에서 건축과 마주하는 우리의 태도이자 자세.

건축이 단순히 건물을 올리는 것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문화이자 상식이 되길... 나는 원한다!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2010.08.09 22:07 할말있 수다~
누구의 것인지 모르겠으나, 여기 이 말. “음식은 1분 만에, 음악은 3분 만에, 영화는 2시간 만에 새로운 세계를 맛볼 수 있다.” 결론부터. 요네하라 마리 여사는, 『미식견문록』은 이 말의 작은 증명이자, 확인이다.(물론 1분, 3분, 2시간이라는 숫자는 무시해도 좋다. 음식이나 음악, 영화가 주는 새로운 경험과 사유를 말하는 것이니까.)

그녀의 음식기행은 여느 미식가의 것과 다르다. 각 음식에 대한 품평이나 음식점 혹은 요리사에 대한 인상비평이 아니다. 촌철살인의 음식비평을 기대할 것은 아니란 말씀.


내가 본 『미식견문록』은 이랬다. 아버지의 튼튼한 위를 물려받았고 맛있는 음식 앞에선 이성 따윈 잃는 ‘쓰바키 히메(냠냠공주)’가 음식을 먹어가며 세계를 사유한 기록. 마리 여사는 자신을 이렇게 묘사한다. “맛있는 것이라면 정신 못 차리지만 미식가를 자처할 정도로 전문가도 아니요, 미각에도 자신이 없다. 먹는 양과 속도만큼은 평균 이상이지만 요즘 뜨는 푸드파이터(상금을 목적으로 도전하는 프로 대식가들) 발끝에도 못 미친다.”(p.245)  

그러다보니, 그녀의 음식 이야기, 군침을 돌게 하기보다는 새로운 세계를 유랑하는 기분을 맞보게 한다. 러시아의 속담이라고 했던가. ‘(보드카를) 마셔도 죽고, 안 마셔도 죽어. 어차피 죽을 운명, 안 마시면 아깝지.’

러시아에서 살아서일까. 그녀의 음식기행도 마찬가지다. 어린 날, 병아리의 죽음에 눈물 펑펑 흘리며 다시는 닭고기나 달걀이 들어간 어떤 것도 입에 대지 않던 그녀는, 어느 날 카스텔라(달걀이 들어간)를 맛있게 먹으며 깨닫는다. 그리고 어른이 된다. “먹는다는 것과 산다는 것, 이는 어찌 이리도 잔혹하고 죄 많은 일인가. 살생의 죄책감과 맛있는 것을 먹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 이 모순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어른이 된다는 것일까.”(p.23)

아하, 맞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선, 정면으로 응시해야 한다. 링 밖에서 맴돌지 말고 링 위로 올라가야 한다. 일종의, 첫사랑 극복법.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던가. 내게도 물론 그랬지만, 첫사랑은 대부분 자연스럽게 속물이 되기 직전, 순수함이 철철 묻어날 때, 재테크가 어떠니, 연봉이 얼마니, 자동차가 뭐니, 따지기 이전의 단계다. 그래서 평생 지워지지 않을지도 모를 첫사랑. 하지만 대부분 안타까이 막을 내리는 첫사랑. 무너져 버린 첫사랑, 그렇게 가슴 속에서 죽은 첫사랑을 제대로 애도해야만 우리는 다시 사랑을 할 수 있듯이.

다시 달걀을 입에 넣음으로써, 마리 여사는 인간의 모순도 깨닫고 어른이 된다. 그러니 꼭 어느 하나만 옳다고 단정 짓지 말 것. 나는 비교적 채식에 우호적이지만, 채식주의자가 곧 착한 사람이고, 육식이 성질을 포악하게 만든다는 단정적인 말에는 완전 비호감! 마리 여사도 말하지 않았던가. “히틀러도 채식주의자였다.”



그런 한편으로, 그녀는 음식을 먹는 것에서 사람을 보고 세계를 읽는다. 그것 참 재밌다. 혈액형으로 사람을 보는 놀이는 너무 나갔다. 그저 놀이일 뿐이었는데, 많은 이들은 그것을 지고지순한 진리로 보는 것이 문제다. 여기서 마리 여사의 새롭진 않지만, 나름의 옹골찬 방식이 있다.

그녀에게, 인간은 딱 두 타입이다. 타고난 성향의 문제. ‘살기 위해 먹는’ 타입과 ‘먹기 위해 사는’ 타입. 자신은 ‘먹기 위해 사는’ 부류라고 커밍아웃한 그녀는, 각 타입별 성격 분석까지 해 댄다. 전자가 공상벽이 있는 염세주의적 경향의 철학자에 많다면, 후자는 낙천적이고 인생을 즐기려는 현실주의자가 많단다. 아, 나는 어딜까, 생각해보니, 나 역시도 후자다. ‘잘’ 먹는 것이 곧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미래의 불안을 담보로 현재를 유보할 생각이 없으니까.


음식을 통한 사람읽기는 또 가지를 친다. 그것이 그런데, 그럴듯하다. 러시아 주요 인사들의 통역으로 동행하면서 그녀는 세계사의 변혁에 중요한 위치를 지닌 인사들의 먹는 방식과 정치스타일을 비교한다. 오호, 어쩌면 이것은 비약하자면 음식이 만들어낸 세계사의 변혁이 아닐까. 리가초프, 고르바초프, 옐친의 음식 취향이 그것인데, 그들 각자의 낯선 음식에 대한 반응과 정치에 대한 혁신성이 정비례한다는 사실.

물론, 아까도 언급했지만, 히틀러가 채식주의자이듯, 보수적인 식생활을 즐기는 혁명가도 있을 터이며, 희한한 음식을 즐기는 보수정치가도 있다는 것을 마리 여사는 간과하지 않는다. 어쨌든 한 번 따져보고 싶더라. 내 음식취향과 정치적 입장은 어떻게 매칭이 되는지 살펴보고선, 문득 궁금해졌다. 이 나라의 가장 큰 쥐구멍에 서식하는 대왕쥐(?)는 어떤 음식취향을 갖고 있는지, 한식 세계화를 부르짖는 여사쥐(?)는 진짜 제대로 먹을 줄 아는지.
 
‘맞아, 맞아’, 손뼉 치며 고갤 끄덕인 부분이었다. 음식에 대한 선택이 한 사람을 드러내거나 보여주는 창이 되겠구나. “음식은 자기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니, 처음 보는 음식을 먹을 때는 무의식적으로 본성이 나온다. 그 사람의 호기심과 경계심 사이의 균형감각이 드러나고 마는 것이다. 미지의 것에 얼마나 마음을 열고 있는지를 볼 수 있는 리트머스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겠다.”(p.191) 혈액형 놀이가 식상하다면, 이젠 음식으로 놀이할 수 있는 방법도 있겠다. 빙고.

다만, 나고 자란 환경과 문화의 영향 또한 무시할 순 없다.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극한 상황에서, 인육까지는 아니더라도 먹어본 적이 없는 동물을 입에 댈 수 있는지 여부는 개인의 성향보다는 태어나 자란 문화에 좌우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본다.”(p.119)

그녀는 음식을 통해 사람을 아는 것에서 나아가 세계의 평화를 찾는 사유까지 나간다. 그것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 흥미로웠다.(사실, 전혀 논리적이진 않다.) 말하자면, 그녀는 ‘푸드평화주의자’인 셈인데, 어떻게든 세계평화를 바라는 그녀의 마음이 음식을 통해 투영된 듯하다. 그녀는 다른 자연 조건, 역사와 문화를 배경으로 형성된 식생활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 음식을 ‘맛없다’고 잘라 말하는 것은 오만불손임을 잘 알면서도, 영국과 미국 음식을 혹평한다. “이런 변변찮은 음식을 먹고 자란 사람들은 세계 각지 어디로 파견되든 먹는 것에 불만을 품는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해봤다.”(p.210)

이에 엄청난 비약일지라도, “맛없는 요리, 이것이 영국이나 미국으로 하여금 세계를 제패하게 만든 원동력이 아닐까? 영국이나 미국 요리가 맛있어진다면 세계가 좀더 평화로워질지 모르겠다.”(p.210) 찬성. 동감. 한 표.

『미식견문록』이 신났던 것은, 음식문화에 대한 세계의 확대 덕분이었다. 전채부터 수프, 메인요리, 치즈, 디저트 순으로 음식이 한 접시씩 나오는 것이 프랑스가 아닌 러시아식 ‘서비스’였단다. 오호, 그런 일이! 토마토가 처음엔 그저 관상용이었고, 감자는 악마의 음식이라며 외면당했다는 ‘굴욕의 역사’라니. 지금의 서양 요리를 봐라. 토마토나 감자가 없는 게 말이 되나. 그만큼 미각은 보수적이라는 말도 되렷다. 다만, 어떤 식으로든 미각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고 새로운 맛을 만나게 되면, 미각은 시간을 두고 극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 아, 우리의 전통음식은 과연 어떨까.

터키꿀엿보다 맛있었던, 천상의 맛이었던, 할바를 통해 그녀는 이리 말했다. “고대에서 중세에 걸쳐 유라시아 대륙이 여러 유목민이나 상인들로 맺어져 있던 정경이 눈앞에 어린다.”(p.93) 음식을 통해 연결되는 세계라니, 근사하다. 내게, 공정무역이 그렇고, 친환경․유기농이 그랬듯이, 세계는 그렇게 잇닿아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 마리 여사가 그렇게 방점을 찍어주시는구나.

무엇보다,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권력자의 서슬 퍼런 으름장보다 더 강력했던, 러시아 최초의 무장봉기를 일으켰던 데카브리스트, 이상주의 로맨티스트 귀족 청년들의 음식 혁명이었다. 표트르 대제도 못한 감자 보급을 그들은 해냈다. 농민들의 식생활, 전 세계의 음식에 그들이 미친 영향이라니. 체 게바라보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에 준하는 관심을 주어줘야 하지 않을까.

“거창한 봉기보다. 이상주의 로맨티스트 귀족 청년들이 험난한 현실에 직면해 꺾이지 않고 오히려 현실을 깨달음으로써 자신들의 이상을 관철한 이야기에 나는 매료된다. 마치 땅속에서 열리는 감자처럼, 드러나지 않지만 깊은 맛이 우러난다.”(pp.75~76)


마리 여사의 『미식견문록』은 혀의 미뢰나 코가 판별하는 음식의 향미만을 서술하지 않는다. 나로 말하자면, 세계를 넓히는 경험과도 같았다. 음식이 사람과, 세계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서술이었다고나 할까. 그 음식 틈새로 드러나는 세계에 대한 사유가 음식 그 이상의 음식, 미식 그 이상의 미식을 보여줬다. 아마 음식에 대한 촉수가 조금 더 예민해질 것이고, 그것이 먹기 위한 내 삶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들 것 같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머리에 맴도는 이것. 고도의 정보기술사회임을 내세우는 지금, 나는 그 ‘고도’에 의문을 품는다. 인간 삶도 과연 고도에 도달하고 있는지. 첨단 기술이 판을 치지만, 그것이 누구나 배 곪지 않을 수 있는 사회를 구축하고 있는지. 의심과 의혹이 토핑처럼 뿌려진 음식을 먹고 불안해하는 지금에, 누구나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어디에 있을까.

마리 여사는 농업을 천시함으로써, ‘누구나 배불리 빵을 먹을 수 있는 사회’라는 이상에 모순적인 형태를 보인 소비에트 연방, 즉 소련은 붕괴했고, 지옥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농민들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준 일본도 지옥에 떨어질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단다. 한국도 마찬가지인데, 그렇다면 우리는 지옥행 열차를 타고 있는 셈인데, 열차를 되돌리기 위해, 아니 최소한 늦추기 위해서라도, 나는, 우리는 어떻게 음식을 만나야할까.
 
에잇, 모르겠다. 어렵게 생각말자. 단순명료하게 내린 나의 결론. ‘좋은’ 음식 만나면 ‘나눠’ 먹자. “아무튼 엄청난 먹보가 많은 우리 친지들은 맛있는 음식을 발견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먹이고 싶어 하는 습성이 있다. 또 그것이 사람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p.174)

나는 그렇게 행복 하고 싶다. 미식이 별건가. 미식가가 별건가. 나는 侎食(어루만질 미, 밥 식)할 것이다. 내 주변을, 작지만 내가 품은 세계를 어루만질 수 있는, 그런 섭생을 하고 싶다. 아, 역시 세계는 넓고 먹을 것은 많구나. 마리 여사가 생전에 한 번 음식이라도 나눌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그래도 이렇게라도 먹는 것과 산다는 것에 대한 통찰을 알려줘서 참 고맙다.    

참, 글의 ‘서곡’으로 제시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에 대한 답을 냈다고, 최근 영국 과학자들이 발표했다. 그들은 ‘닭이 먼저’라며, 달걀 껍질이 형성되는 과정을 밝혀내면서 달걀이 닭의 난소에서만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근거로 제시했단다. 글쎄, 마리 여사가 이 기사를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아마, 달걀이 잔뜩 들어간 카스텔라를 먹으면서 ‘집 잃은 닭도 한 번 키워볼까?’라고 말했을까. 궁금하다.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2010.01.20 18:16 할말있 수다~
1월20일.
2009년 그날 불길이 치솟은 이후, 우리는 또 하나의 트라우마를 갖게 됐다.
권력과 이권에 의해 움직이는 세상의 야만을 너무 뼈 아프게 절감했다.

정확하게 1년을 버틴 날 내리는 비는,
아마도 1년 전 그 화마와 불길을 기억해서일 것이다.
이 비로도 야만의 시대와 동물의 세계를 씻겨내릴 수는 없다.
아마도, 그날을, 그 참사를, 우리의 발가벗은 몸을 잊지 말라는 뜻일 게다.

이 개좆 같은 세상.
그래도, 희미하게나마 아직 이 세계가 살아갈만한 곳이라고 생각하거든,
혹은 우리 사는 세계의 누군가를 아직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고 김연수는 말한다.

비, 용산, 노력...
지난해 9월에 만난,

김연수를 다시 끄집어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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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와 영향을 주고받은, 비 오던 그날 밤의 이야기

[독자만남] 『세계의 끝 여자친구』 저자 김연수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날, 내 일터이자 서식지로 향하는 버스 안, 김연수의 새 책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읽고 있었다. 그 무렵, 내 서식지에선 용산참사 현장에서 주워온 냉장고, 간판, 문고리, 숟가락, 도마, 컵, 선반 등 자질구레한 물건들과 예술가들의 현장작업이 결합된 전시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영정도 있었고, 고인과 유족들의 일상이 깃든 사진도 있었다. <용산포차, 아빠의 청춘>이라는 이름의 전시. 200일이 넘었지만, 다섯 분의 철거민과 한 분의 경찰관이 죽었지만, 진상규명은커녕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는 시대의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함이자, 그들을 위무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날 마침, 이 전시의 특별한 행사가 있었다. 막걸리와 빈대떡 등을 파는 일일 포장마차를 운영, 수익금 전액을 용산 참사의 유가족들에게 전하기 위한 행사. 그 행사를 향해 가던 버스 안, 나는 해당 소설집의 단편,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를 읽고 있었다. 우연찮게 그 단편은 용산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편의점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온 동료들이 다시 사무실로 들어오는 걸 보고 내가 화면을 끌 때까지, 거기에는 타오르는 불꽃과 시커먼 연기와 아래에서 솟구치는 물줄기가 침묵의 공간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날 새벽, 거기서 여섯 명의 사람들이 불에 타 죽었다는 건 며칠이 지나서야 알았다.”(p.107)




읽고 있던 와중에 나는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 동안 보아오던 영정과 가족사진, 이 아이와 아버지가 함께 찍은 사진도 있었다는 생각이 미쳤다. 윤현구군이 아버지에게 썼다는 편지가 나오는 구절에서, 내 눈물샘은 무방비였다.


“그리고 그렇게 바람을 맞으며 내가 떠올린, 그날 새벽의 타오르던 붉은 불꽃과 시커멓게 피어나던 검은 연기와 아래에서 솟구치는 하얀 물줄기들에 대해서,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히 읽게 된 편지의 구절들에 대해서. "아버지와 아빠에게"라는 구절로 시작해서 "아빠, 나는 아빠가 보고 싶어. 지금은 이 마음 하나뿐이야.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 꿈속에서라도 한번 나와 줘, 나는 아빠를 힘껏 끌어안고 놔주지 않을 거야. 떠나지 못하게 절대 놔주지 않을 거야. 그리고 아빠한테 말할 거야, ‘아버지 사랑합니다’라고"(2009년 1월 용산참사로 숨진 윤용헌씨의 장남 윤현구군이 쓴 편지 중에서)로 끝나는. 아까 내가 울었던 건 그 편지의 구절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나는 얘기했다.”(p.114)


어쩔 수 없이 짊어져야 할 빚. 2009년 1월20일 이후로, 내게 용산은 더 이상 ‘전자상가’로 대변되는 장소가 아니었다. 용산은 이 시대의 몰염치와 패악이 집중된 참사현장이자 아픔이 됐다. 김연수의 글은, 그 전시와 함께 어느 새 용산과 시대의 야만을 희미하게 희석시키고 있는 내 기억과 신경의 나태함을 건드리고 있었다. ‘케이케이’를 사랑했던 미국인 작가(「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마냥, 정말이지, 나도 그랬다. “‘무엇도 영원한 것이 없는, 스쳐 지나가는 것들로 가득한, 좌충우돌의 도시’에서 떠나고 싶다. 지금 당장.” (p.20)


아니 그런데, 너는 용산참사와 아무 관계없는 놈 아니었냐고? 참사의 희생자들 가운데 알거나 관련 있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 그렇다고 막장식 살인진압을 지휘하거나 감행한 국가권력과도 연관을 지은 것도 아니면서, 무슨 얘기냐고?


글쎄,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렇다면 한번 들어보자. 용산참사의 현장을 접했던, 망설였으나 글을 통해 이를 말할 수밖에 없었던 김연수의 이야기. 지난 21일 가을비 내리던 저녁, 대학로의 연우무대에서 독자들과 함께 공기를 나눈 김연수의 이야기. 때로는 모노드라마처럼 관객석에 앉은 독자들을 향해 연기를 하는 것 같았던 김연수의 이야기. 한편으로 함께 호흡하면서 저녁시간을 공유한 우리의 이야기. 그런 우리가 정말, 용산참사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걸까. 이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이글을 쓰고 있는 나는, 그저 안드로메다와 지구 사이의 거리만큼 떨어진 광년에서 숨 쉬는 것일까. 일단 들어보자.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작가의 말에는, 책 뒤표지에는 이런 말이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무슨 교과서 혹은 꼰대 같은 말이냐고? 그러게 말이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모범생 같고 성실하다고 그랬는데, 요즘은 그러지 않는다. 사실, 난 모범생이 아니다. (웃음) 처음 이 문장을 소설에 쓰고픈 생각은 없었다. 무슨 교장선생님 말씀 같지 않나? 다들 노력하는 거, 별로잖나. 누구든 노력 안하고 뭐든 성취했으면 싶고...”



김연수는 명절을 손꼽아 기다리던 아이였다. 판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날 수도 있는 날. 그랬기에 명절이 끝날 무렵이면 상실감이 몰려오곤 했다. 친척들과 막상 헤어지게 되면 속상하고 맘이 아파서, 정작 방에 박혀서 혼자 슬픔을 감내하던 소년. 어릴 때는 참으로 궁금했다. ‘좋았던 시간들은 왜 끝나고 마는가.’ 살다보니 그런 고민들은 이어지게 마련이고, ‘차리리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지 않나?’라는 생각까지 했다.


김연수는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 “소설을 쓰면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생각하면서, 내 삶을 보면 괜찮은 것 같다. (웃음) 다른 사람들을 (소설 속에) 쓰긴 쓰는데, 왜 이렇게 사나 싶다. 최근에 그런 주인공들이 많아졌다. 이상(주. 『꾿빠이, 이상』)도 마찬가지였다. 천재였을 것 같지만, 이상은 나랑 비슷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이런 삶을 살았을까, 싶고. 『밤은 노래한다』에서도 그렇고, 지금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소년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여기서도 그렇다. (주인공들이) ‘어떻게 불합리한 자신의 삶을 납득하게 됐는가’를 따져보고 있다.”


그리하여, 작가의 그 말,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는, 최근 5년 동안의 그런 생각들이 농축된 것이다. 자기를 견디는 일에 대한. 자기를 사랑하게 된다면, 자기 인생의 빛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고통 속에서 자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게 사랑이다.” 사랑은, 그렇게 살기 위한 필요충분조건. 살아가기 위해 사랑한다는 것. 사랑하기 위해 살아간다는 것. 그리하여, 우리는 사랑하고 노력하고 살아간다. 비루한 일상을 버티고 견딘다. 사랑한다면, 그렇게 노력한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는 어떻게 나왔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 모르는 얘기는 할 수 없고, 아는 얘기만 하겠다는 김연수. 이 소설집의 크게 두 개의 부류로 나뉜단다. 2005년 5월 출간된 『나는 유령작가입니다』가 그 경계다. 그 책을 다 쓰고 여력이 남아 쓴 3편의 단편(「기억할 만한 지나침」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웃는 듯 우는 듯, 알렉스, 알렉스」)이 있고,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이후에 썼던 소설은, 지금의 상태와 유사한 소설이라는 것이 김연수의 설명이다.


어쨌든 김연수에게는, 소설을 쓰면서 변화가 생겼다. “정확히 무슨 변화인지는 모르겠는데, 문학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난 게 아닌가 싶다. 2007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쓰고, 소설을 쓴다는 것에 정리를 다 했다. ‘그래 이거야. 더 이상 고통은 없어.’라면서. (웃음) 더 이상 쓸게 없더라. 추리소설을 쓸까, 판타지나 SF를 쓸까,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케이케이의…」는 당초 원제가 ‘거무스름한 불’이었다. 편집부에서 제목을 바꿔달라고 해서 바꾼 것이 지금의 제목이었는데, 다시 원제로 바꿔달라고 했다가, 편집부에서 지금의 제목이 좋다고 주장해서, 최종 낙찰됐다. “(이 글을 쓰게 된) 최초의 동기는, 꽤나 의욕적이었는데, LA폭동에 대해 쓰겠다는 것이었다. 르포도 찾아보고 자료 수집을 하면서 반년이 지났다. 그러다 어느 날, 김중혁과 차를 타고 일산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자유로에서 검은 연기가 보였다. 가봤더니, 트럭에 불이 붙어서 타고 있더라. ‘트럭에 불이 났구나’하면서 얘기를 하는데, 어느 순간, 열기가 확 들어오더라. 유리창을 뚫고. 그 열기가 되게 인상적이었다. 물론 김중혁은 그것을 (소설로) 쓰지 않았고, 나는 썼다. 감수성의 차이지. (웃음)”


소설은 대개, 마지막 부분부터 쓴다는 김연수. 특히 단편소설은 더욱 그렇단다. 그래서 그 열기를 느끼면서 마지막 장면이 떠올라, ‘이 소설을 쓸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LA폭동과 교포들의 정체성 등을 쓰려고 했는데, 그렇게 나오진 않았고, 뜻하지 않게 상실의 이야기로 써졌다. 그러다보니, ‘영향’이라는 문제가 생기더라. 정말 살다보면, 전혀 관계없을 법한 것이 내게 영향을 미친다. 그 소설을 다 써갈 즈음, 숭례문이 불탔다. 마감하면서 봤는데, ‘영향을 받는다’라는 명제를 확신했다. 숭례문에 난 불로 인해 내 인생이 바뀔지 모르고, 삶은 그렇게 불합리한 상황에서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 다 쓰고 나서도 잘 몰랐는데, 이렇게 책이 나오고 보니 확실해진다.”


“나는 숭례문의 그 불꽃에 영향을 주고 또 영향을 받았다. 미신과도 같은 이야기지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p.317 ‘작가의 말’ 중에서) “이 우주의 90퍼센트는 그렇게 우리가 볼 수 없는, 하지만 우리에게 오랫동안 영향을 미치는, 그런 불들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물론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그 불들을 보지 못하겠지만.”(p.32)


「기억할 만한 지나침」은 『나는 유령작가…』의 여력이 남아, 소설적 도전을 많이 할 시기에 쓰인 단편이다. “여성화자에 도전할 때였다. 당시는 중요한 문제였다. 결국은 화자에 가닿을 수 없다고 보는데, 실패할 수밖에 없는 거지만, 그 실패가 날 유혹했다. 여성화자로 쓰고 싶다는 생각에 한창 많이 썼는데, 그 중의 하나다. 그런데 정작 여성분들은 이럴 수 있을까, 이러더라. (웃음) 어쨌든 도전해보고 싶어서였고, 열여덟 여자를 주인공으로 했다. 한창 소녀들에 빠져 있을 때였다. (웃음) 문학작품의 소녀들이 어떤 행동방식을 보이나 조사도 했고. (마르그리트) 뒤라스 소설이나 롤리타와 같은. 그때 알게 된 소녀들의 비밀을 이 소설에 쓴 거다.(웃음) 말이 되나?”


「세계의 끝 여자친구」의 시작은 전적으로 노래 때문이었다. 무척 좋아하는 노래 세 개 가운데, 밝고 맑으며, 달리기를 하고픈 욕망을 불러일으킨 노래. 그리하여, 일산의 호수공원을 달리기하다가, 기념식수를 여러 번 보면서 뭐가 되겠다 싶은 직업의식도 발동하고. 부근의 자주 찾아가는 마두도서관의 설립 초기, 책이 부족할 무렵에 기증됐던, 기증자 이름이 박힌 책도 그를 자극했다. 일산 라페스타 근처, 그의 작업실이 있는 곳엔 신호등이 많은데, 그 신호등을 피해 메타세쿼이아 길이 있단다. 그 기분 좋은 메타세쿼이아 역시, 소설에 한몫했다.


“이렇게 노래부터 기념식수, 기증자의 책처럼 뭔가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 때가 있다. 메타세쿼이아에도 뭔가 있을 것 같아서 조사를 했더니 소설에 들어있는 그 사실이 있었다. 그러니 자신에 대해 얼마나 확신을 가지겠나. 소설가라면 지어서라도 써야하는데, 이렇게 역사적 사실까지 있다니. (웃음) 쓰고 나서 되게 기분이 좋았다. 원고를 보내고, 일산주민들을 위한 낭독회가 있어서 읽어주기도 했는데, 배경이 주변에 있는 일이니 기분이 무척 좋았다. 음악이 감춰진 기억을 끄집어내서 쓴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는, 용산참사를 접한 뒤 나온 단편이다. “지금도 고민이다. 예를 들어 동시대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소설로 형상화할 때, 어디까지, 어떻게 할 수 있나,를 고민한다. 올 1월 용산을 보고 충격이 엄청났다. 그 이후도 다 충격이지만. 용산 지날 때마다 거대한 물음표가 생긴다. 쓸 수 있다, 없다,를 넘어 벽이자 난관이었다. 그걸 쓴다고 했을 때, 쓸 수 있을까. 처음에는 없다고, 결코 쓸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쓸 수 없다고 결론을 냈지만, 그럼에도 써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고민하다가 이렇게 나왔다.”


그가 용산을, 담는 것과 별개로,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 아녔을까. 그는 촛불을 이야기했다. 촛불시위 때 많이 나갔다는 그는, 그곳에서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감정을 새삼 실감했다. ‘같이 겪고 있구나.’ 국가권력이 물대포를 쏘아대고 있을 때도, ‘이게 우리한테 일어나는 일이고, 경험하고 있구나’하는. 같이 물을 맞고 같은 감정을 겪는 느낌, 그래서 되게 따뜻했던 느낌.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을 쓸 때, 고민이 많았고, 아직 해결이 되지 않았고, 아직까지 고민 중이다. 좋았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몰랐던 것을 알게 됐다. 우리는 지난 2년 동안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그 기간 생각해보면, 촛불, 용산, 대통령의 서거 등 우리는 많은 사건과 감정을 공유했다. 그런 공유지점이 많아서 지난 2년을 생각하면 내 얘기를 해주고 싶고,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고 싶었다.”


이는 그에겐 큰 변화의 징후를 거친 시기였다. 대화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김연수였다. 그러나 이 시기를 관통하면서 소설을 통해 말을 걸고 말을 듣는 것에 익숙해지고, 그게 가능하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물론 통하기 위해서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존재해야 하는데, 그 2년은 신뢰를 쌓게 한 시간이었다. “아직은 자신 없지만, 그런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각각의 삶은 하나씩의 이야기이고 그 이야기들은 서로 연결돼 있으니, 우리는 어디에서 무엇으로 살더라도 결코 혼자가 아니다. 한쪽 끝을 건드리면 다른 한쪽 끝이 떨린다. 그 공명과 공감 속에서 예수 시절 이래의 ‘정의와 아름다움’이 이어져올 수 있었다.”(pp.294~295)


김연수, 묻고 답하기



처음 제목을 봤을 때, 하루키의 소설(『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이 생각났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가 가장 좋았는데, 하루키의 『댄스 댄스 댄스』가 생각나기도 했다. 일말의 연관성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나.


음악에서 이름을 빌려온 거라서 하루키 생각은 안 했다. 딱 떠오른 느낌은 여자의 세계의 끝까지 간다는 것. 한 여자와 갈 수 있는 먼 세계의 끝이 어딜까 생각해봤다. 그건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감정적 장소일 것 같다. 그래서 제목을 빌려왔는데, 사람들은 하루키의 소설을 이야기하더라. 하루키 소설 읽는 것은 좋아하지만,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지금 읽고 있는 『1Q84』를 보면 좀 이상해졌다. 할아버지가 됐는지, 굉장히 멋진 얘기를 한다. 방향에서 보자면, 여전히 사람에 대해 쓰고 있고. 참, 우리나라 평론가나 언론이 말하는 하루키는 대중소설가적인, 한국소설을 망치게 한 주범이다. 그런 의미라면, 누가 하루키를 좋아하겠나. 내가 보기엔 그는 괜찮은 사람 같다. 만나본 적은 없지만.


2년 동안 좋은 일, 안 좋은 일 겪으면서 공감되는 사람도 찾았지만,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화해할 수 없는 사람도 보이더라. 그러니까, 「내겐 휴가가 필요해」의 ‘최’ 같은 사람. 그런 사람과는 어떻게 대화해야 하나.


나는 편애하는 게 좋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해주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그냥 예의만 지키고 살고, 예의를 지키지 않으면 지적하고. 안 맞는 사람도 많은데, 싫어할 이유는 없고 그냥 내버려 두면 되지 않을까. 글쎄, 답을 잘 못하겠다. 잘 알지도 못해서. (웃음)


그 질문 사이에서, 나는 어떤 ‘이해’에 대한 우리의 오해를 생각했다. ‘이해한다’는 흔한 말, 그럼에도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이 진짜 가능할까라는 의문. “우리는 모두 헛똑똑이들이다.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사실들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 대부분은 ‘우리 쪽에서’ 아는 것들이다.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것들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런 처지인데도 우리가 오래도록 살아 노인이 되어 죽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어리석다는 이유만으로도 당장 죽을 수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 삶에 감사해야만 한다. 그건 전적으로 우리가 사랑했던 나날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이해되기만을 기다리며 어리석은 우리들을 견디고 오랜 세월 버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맞다. 좋고 좋고 좋기만 한 시절들도 결국에는 다 지나가게 돼 있다.”(p.81)


「기억할 만한 지나침」과 같은 여성화자는 무리가 아닐까 생각했다. 우선 여자인 나도 이렇게 여우 같이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웃음) 혹시 아저씨가 바라본 시선 아닌가. 그리고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에 공감이 참 많이 됐다. 삼십대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기억할 만한…」의 열여덟 소녀는, 내가 만나보고 싶은 소녀 얘기를 한 거다. (웃음) 사실 그런 십대 여성이 있을 것 같지는 않고, 내가 만든 소설 같은 느낌이 든다. 「당신들 모두 …」는 쓰고 나서 좋아한 소설 중의 하나다. 찌질한 삶의 양태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허세를 부리고… 나는 서른이 되기 전에, 비장하게 돈이나 벌자, 소설 같은 거 말고, 이렇게 생각하고 출근을 하게 됐다. 일산에서 3호선을 타고 동국대까지 출근을 하는데, 너무 놀랐다. 아침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출근을 하는지, 진짜 감동적이었다. (웃음) 술을 새벽까지 늦게 마시고, 다음날 제 시간에 출근도 하는 거다. 정말 대단했다. 술을 그렇게 마셨는데도, 뭔가 만들잖나. 이런 삶을 반복적으로 하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다른 마인드도 있구나 싶었다. 삼십대 초반에, 인생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알았다. 부탁이 있다면, 삼십대에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거다. 심각해도 바뀌는 게 없다. (웃음)


그렇다. 비장하지 말기. 나는 너무도 비장하게 살아가라고 다그치는, 나잇대에 따라 사람이 이러저러해야 한다고 설파하는 그런 것들이 싫다. 미래를 위해 현재는 희생하고, 한 우물만 파서 그러면서, 종국엔 ‘대박’나라고 외쳐대는 꼬라지가 싫다. 그런 책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가 죽을 것처럼 말한다. 아니 죽어 마땅하다고 옆구리를 쿡쿡 찔러댄다. 왜 우리는 좀더 재밌게 살면 안 되나. 꼭 심각해야 제 맛인가. 우리에겐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가 책에서 발견한 것과 같은, ‘내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든가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등의. 그게 역사서든, 과학서든, 철학서든, 일 년 동안 닥치는 대로 책을 읽은 뒤 그가 알게 된 진리는 그처럼 단순했다.… 도서관에 있는 그 어떤 책을 들춰봐도 거기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또 노인이 다시 젊어져 새로운 인생을 살아갔다는 이야기도 나오지 않았다. 어이없게도 삶은 단 한 번만 이뤄질 뿐이며, 지나간 순간은 두 번 다시 되풀이되지 않는다고, 그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들은 말하고 있었다.”(pp.169~170)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음흉하고 음침한 역할이었다. 그 영화를 보고 김연수 작가에게 실망해서 오늘 이 자리에 오자고 하니까, 싫다는 변절자(?)도 있었다. 역할이 마음에 들었나? 다시 또 제의가 오면 영화 찍을 건가?


좋아할 리가 없지. (웃음)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아주 좋아한다. 1999년에 직접 만난 적은 있는데, 이번에 조감독이 전화가 왔더라. 시나리오를 살 리는 없는데, 출연을 요청하더라. 처음에는 일 없다고 끊었다. 그런데 도와주고 싶고, 기념도 될 것 같아서 다시 내가 전화를 걸었다. 그래서 건대로 갔다. 연기를 해 보래. 설정을 주고, 열심히 노력했다. 처음에는 소설가로 나가는 줄 알았다. 스탭들이 비열한 배역이라고는 하던데, 알다시피 홍 감독 영화는 시나리오가 늦게 나오잖나. 그저 실수만 안 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사실 영화에 나오지 않은 장면이 있다. 애로배우와 풀장에 뛰어들어서 ‘저 잡아보세요’하면 ‘좋아 좋아’ 박수를 치면서 손잡는 장면이었다. 나왔으면 얼마나 추했을까. (웃음) 다음날 김태우 씨가 그 배우에게 그러더라. 지난주엔 원빈과 키스하고, 이번 주엔 김 작가랑 손잡고...

(웃음) 


그 영화, 다시는 안 보고 싶다. 드릴 말씀이 있다면, 김태우, 엄지원, 고현정 씨 등 실제로 보면 되게 예쁘다. 그런데 홍 감독 영화에선 찌질하게 나오잖나. 일반인들이 나온다면 오죽 하겠나. (웃음) 홍 감독의 영화는 카메라가 진실을 보여주는 게 아니고 왜곡시켜 보여준다. 어쨌든 순전히 기념으로, 홍 감독 영화여서, 궁금해서 출연을 한 거다. 다시는 출연 않을 거다.


문장이 즉흥적이라기보다 평소에 아이디어를 저장했다가 내놓는 것처럼 치밀하다. 문장을 쓸 때, 차곡차곡 쌓아서 하나 아니면 즉흥적으로?


문장을 쓸 때, 반복해서 쓴다. 한 번에 쓰는 경우는 흔치 않다. 잘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는 다른 것들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특히 음악. 소설에서 잘 쓴다는 건 다르다. 소설가가 지어낸다기보다는 등장인물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등장인물의 경험 등이 조합돼서 나온다. 작가는 등장인물의 감정이입을 위해 음악을 이용하거나 자료조사도 한다.


괜찮다는 지점에 이르는 것은, 막힘없이 간다는 느낌이 들 때다. 그 때는 잘 썼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은 내가 쓰는 것이 아니라, 소설화자가 쓰는 것이다. 소설가는 소설에 들어가려고 갖은 노력을 하는 거고. 그 다음에 문장이 나오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1인칭을 선호한다. 문장 쓰기가 용이해서. 그런데 3인칭을 가면 문장 쓰는 것이 달라진다.


「달로 간 코미디언」을 여러 번 봤다. 그렇게 보면서 사람이 바뀌어 가는 것을 느낀다. 쓰는 사람도 그런가.


쓸 때마다 달라진다. 소설을 쓰면서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 소설을 쓰기 전에 나는 되게 이상하고, 남 탓만 하고, 참을성이 없으며, 사람을 믿지 않았다. 책 한권을 쓰는 건, 큰 변화는 없다. 그런데 약간 변한다. 1년 정도 되면 창피할 때가 있다. 그걸 느끼면서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최근에는 변화되는 폭이 커지고 있다. 예전에는 ‘초지일관’ 이런 것을 좋아하는 (모)범생이었는데, 소설가가 되고 나서, ‘조삼모사’ 이런 것을 좋아하게 됐다. 다른 사람이 약속 안 지키고 그러면 예전에는 화를 내고 그랬는데, 이제는 뭔가 일이 생겼나보다 싶고. 뭐 내가 바뀌니까, 앞으로는 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웃음)


끝나지 않은 용산, 김연수와 우리의 고민


누군가는 오늘 이 자리, 가을비가 드문드문 내리던 어느 저녁에 김연수를 만난 것을 기화로 그동안 켜켜이 쌓아온 시간의 체적이 폭발하게 될지도 모른다. ‘영향’은 그런 것이다. 한 연인이 1982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시합을 하다가 링에서 쓰러져 죽은 권투선수(고 김득구) 때문에 서로 사랑했고, 2001년 9․11 테러로 무너진 쌍둥이빌딩 때문에 헤어졌듯(「달로 간 코미디언」), 용산참사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어쩌면 이렇게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김연수와 나는,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는 그렇게 빚을 지고 있다. 동시대를 살면서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어쩔 수 없는 빚이다. 삶의 터전을 빼앗겨 살 곳을 묻는 이들에게 국가가 폭력으로 대답하는 시대를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들의 빚. 창을 뚫고 우리에게도 확 들어온 국가권력의 화염과 열기. 우리는 최소한 이것을 뚫고 나가야 한다.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그 처절한 싸움에 우리가 함께하고 있고, 그 흉포한 만행을 잊지 않고 기억할 것임을 우리는 전해야 한다. 김연수는 여전히 그것을 고민하고 있고, 그가 할 수 있는 방법(글쓰기)으로 그 고민을 공유하고자 하고 있다.


김연수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우리도 각자의 방식대로 그에 화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렇게 연결돼 있고, 영향을 미치며, 우리는 별들이니까. “우리는 각자가 하나의 이야기들이고서로 연결되기를 기다리는 별들이다. 그러니 우리가 각자 고독하게 달로 가지 않고 모두 함께 복된 새해를 맞이할 수 있으려면 우리는 주저하지 말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 메리 올리버가 가르쳐준 대로 말이다. "절망을 말해보렴, 너의. 그럼 나의 절망을 말할 테니./ 그러는 동안 세계는 굴러가는 거야."(「기러기」)”(p.313 해설 “모든 슬픔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 중에서)


모든 삶을 어떻게든, 불합리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납득해야한다. 굳이, ‘착해지지 않아도 돼/무릎으로 기어 다니지 않아도 돼.’(메리 올리버의 시 「기러기」의 첫 문장) 어쩌면 훗날, 바로 지금 이후 발생하는 일의 어떤 근원에 용산이 버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생은 서로 물고 물리는 톱니바퀴 장치와 같으니까. 모든 일에는 흔적이 남게 마련이고, 그러므로 우리는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야 최초의 톱니바퀴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pp.63~64)


일일 포장마차는 다행히 용산을 생각하는 이들과 함께 성황리에 마무리됐고, 나는 윤현구군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나는 아빠를 힘껏 끌어안고 놔주지 않을 거야. 떠나지 못하게 절대 놔주지 않을 거야.” 아빠를 뺏기지 않으려는 아이의 안간힘이 자꾸 눈에 밟혔다. 아빠를 안을 수 있는, 아이의 그 사소한 행복조차 지켜주지 못한 이 사회는, 우리가 만들어놓은 이 사회는 대체 무엇일까.


“불편한 자세로, 우리는 물속에서 서로 껴안고 있었다. 우리는 입을 열지 않았다. 물에 젖었건 땀에 젖었건, 내가 사랑한 케이케이의 몸은 언제나 젖은 몸이었다. 나는 케이케이의 젖은 몸이 내 몸에 닿는 게 좋았다. 그 젖은 몸은 보통의 육체와 달랐다. 그 젖은 몸은 보통의 육체와 달랐다. 한없이 부드럽고 또 연약했다. 소년의 몸. 가만히 두면 물에 풀리는 물감처럼,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는, 젖은 몸. 나는 그걸 막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한사코 케이케이에게 매달렸다. 내가 아는 행복이란 그런 것이었다.”(p.21)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단 하나일지라도, 잊지 말아야겠다고. 이 흉포하게 구획된 질서에서 피 흘리는 자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 질서에 순응한다는 것은,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아도 살인에 동참하는 것임을. 잊지 않고, 그 흉포한 질서에 사소한 것이라도 불복종을 해보는 것.


비오는 가을 밤, 우리는 그날 그렇게 만났기에, 김연수와 같은 동시대의 고민을 나누었기에, 나는 그 만남을 엄중하게 담았다. “헤어진다고 하면 그저 멀리 떨어져 지낸다는 걸 뜻할 뿐, 그래도 같은 하늘 아래에 사는 게 아니겠느냐던 안이한 생각이 일순간 사라지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일의 엄중함이랄까, 그런 삶의 무게를 새삼 느꼈다고나 할까.”(pp.100~101)


그리하여, 세상 수많은 아픔 앞에서 고개 돌려 외면하지 않기. 나하곤 상관없어, 내가 그런 게 아니야, 라며 지나치면 이 졸렬한 세상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아니, 그 전에 아무런 악의도 없는 누군가에게, 시스템에 의해 상처를 입게 될지도 모를 일.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 우리 서로의 얘기를 하고 듣자. 그렇게 우리 노력했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예스24 기고원문]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2009.08.03 23:18 할말있 수다~

처음 볼 땐, '유통업자 개쉐이~'하며 지나갔지.
해운대에선 올해 닭이 활개를 치긴 어렵겠구나, 하는 그딴 생각 정도? 
해운대해수욕장 '통닭 주의보'

그런데, 다시 보니, 왠지 울컥한다. 느닷 없다.
'유통기한'이라는 말이 목에 탁탁, 켁켁.

유통기한이니 하는 말, 사람에게 먹힌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이잖아.
생명이 아닌, 유통기한(그래, 이미 '죽은' 닭, 맞아). 

우리의 닭, 태어날 때,
인간의 식용이 돼야 한다는 사명이나 운명을 타고 난 것은 아닐텐데. 된장.

그런 녀석에게 생명이 아닌 유통기한이라는 말을 붙이니.
왜 그리 서글프고 울컥 하지?
식용닭으로 키운다고? 그래서 뭐?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만년으로 하고 싶다는,
금성무의 독백(<중경삼림>)이,
실은 닭들의 절규가 왕가위에게 빙의돼 나온 대사가 아닐까(그래, 미쳤다 -.+).

괜스리, 기자질 그만 두길 잘 했다는 생각도 들고.
아무런 생각 없이 관성으로 그런 기사나 단어를 썼을 테니.
뭐, 기사 쓴 사람을 타박하자는 건 아니고(뭐, 소심해서.. ^^;;).

이미 자본적 부가가치(의 창출효과)로 따졌을 때, 
아마도 나는 지금 시대에선 유통기한이 끝난 통닭신세.
그렇다면, 앞으로 남은 유통기한은 다른 가치를 위해서, 빙고~

당신은 어때. 유통기한이 얼마나 남았어?ㅋ 
아, 지금 이 엄혹한 시대에 너무 가혹한 질문인가.


좋아, 인정.
아마, 난 전생에 닭이었나 봐. 꼬꼬닭~
그리하여 나도 닭처럼 먹힌다면,
이왕이면, 예쁜 뇨자한테 먹히고 시포~
특히 키스를 부르는 입술에 닿고설랑 저릿하게 유통기한 끝~ 캬캬.

그럼 통닭, 안 먹느냐고?
아니, 잘 먹는다규. 꼬꼬닭~
사주기만 해줘봐. 크왕~

나도 가끔은, 육식남!

어이, 쥐박이.
유통기한 지난 통닭, 함 처묵어주시지~
통조림에 담아 줄까?
3년 여 유통기한 남은 쥐새끼에겐 줄 선물은 그런 거.
한국 온 부쉬랑 같이 있는 꼬라지도 딱이더만. 할.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2008.12.31 13:37 할말있 수다~
당신, 정말 애쓰셨어요.
그건 당신은 물론, 저 스스로에게 건네는 말이기도 하고요.

목수정 씨의 소르본느대학 어학과정의 반편성 시험 문제를 약간 변용하자면,
나도 당신에게, 나에게 이런 말을 살며시 건넵니다.
"당신의 지난 2008년은 왜 그토록 특별히 힘들었나요?"

정말, 애쓰셨어요.
이 말이 왜 이리 찡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어요.
누군가 나에게 이 말을 던진다면, 눈물이 그렁그렁거릴 것 같아요.

우리 내년에도 여전히 애쓰면서 생을 버티고 견디겠지요.
뭐, 그럼 어때요. 우린 아직 이렇게 살아 있잖아요.
살아서, 그렇게 다시 만나요.

내년엔, 첫 눈 내린 것 같은 머그잔으로,
당신을 위한 커피 한잔 대접할게요.


안녕, 2008년.
그리고 안녕, 2009년.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2008.12.28 16:36 할말있 수다~

한국 방문한 일본 ‘HANA프레스’출판사의 배정렬 대표



“한국 문학이나 인문서, 취미 등 장르에 상관없이 좋은 책을 일본에 소개하고 한국에 대해 좀 더 깊숙한 것을 알려주고 싶다.”


일본 도쿄에서 출판사 ‘HANA프레스’를 운영하고 있는 배정렬 대표(43)가 한국을 찾았다. 지난 11월12일 방한해 12월2일까지 머물면서 한국 출판업계와 접촉하고 출판 관련 작업을 진행했다. 홍익대학교 부근의 출판사들과 파주 헤이리마을의 출판단지 등을 둘러 본 그는 일본에 알릴만한 한국의 서적에 대한 탐사도 했다. HANA프레스는 다른 출판사의 출판 기획․제작을 대신해 주면서 한국어 관련 학습서를 출판하고 있다.


“한국에 대해, 한국의 문화를 알리고 싶다”


이번 한국방문은 다소 긴 여정을 택했다. 12월 중 나올 일본의 한국어 학습자를 위한 『쉬운 한한사전』의 인쇄를 한국에서 진행한 까닭도 있지만, 한국의 출판업계를 좀 더 알고자 하는 욕구도 있었다. 이전에는 3박4일 정도의 짧은 여정으로 한국을 방문했었다.


배 대표는 기본적으로 한국 문화를 일본에 알리고 싶다는 열정과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이다. 사실 그렇다. 두 나라 사이에는 다양한 문화적인 교류가 오가고 있지만, 책을 통한 교류는 거의 일본의 독주다. 일본 문학 등의 일본 책은 한국에 쏟아져 나온다. 서점에 가보라. ‘일류(日流)’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다. 일본 작가의 코너는 만만하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다르다. 한국은 책을 통해 일본인들과 만날 기회가 많지 않다.


그래도 우리에겐 한류(韓流)가 있지 않냐고? 일부는, 맞다. 배 대표도 한류의 긍정적인 영향을 인정한다. “한류는 (일본에서) 분명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고 선호 계층도 있다. 일본 서점에 한국과 관련한 책장이 예전보다는 조금 커지고 넓어졌다. 그러나 이는 한류 중심의 콘텐츠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한국 책장 내 문학의 비중이 컸으나 비중만 놓고 보면 문학은 그 비중이 줄어들었다. 한류가 나름대로 한국에 다가갈 수 있는 접근 통로가 됐고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한류 덕분에 한국어를 공부하려는 주부나 젊은이들도 많다. 그런 한편으로 이제는 한류가 아닌 방식으로 (일본인들에게) 접근하는 것도 필요할 때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한국을 일본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을까.


‘한국어저널’의 산파이자 한국을 알리는 전도사로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린 그해. 배 대표는 그 이전부터 한일 양국의 문화적인 교류를 위한 방편이 없을까 구상하고 있었다. 일본의 어학전문출판사에서 근무하던 그가 떠올린 것이 한국어학습 잡지. 회사에서는 반대가 심했다.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창간호가 적자를 내면 바로 폐간하겠다’고 설득해 <한국어저널> 창간호를 낸 것이 2002년 6월. 한일 월드컵이 열리고 있던 시기였지만, 일본 내 한류는 아직 찾아보기 힘든 때였다(일본 내 한류는 2003년 <겨울연가>가 위성방송을 통해 선보인 뒤 이듬해 NHK에서 방영되면서 본격적인 붐이 일게 됐다).


야심차게 내놓은 <한국어저널>은 그러나 초반에는 별 볼일 없었다. 발간 당일 도쿄의 유명서점에서 직접 판촉에도 나섰지만 10여부가 나갔다. 울상이었다. 편집장으로서 체면 안서는 부수였다. 그러나 구겨진 체면은 며칠 뒤, 갑자기 빳빳하게 펴졌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책을 사기 시작한 것. 창간호만 3만권 이상의 판매부수를 기록했다.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성공이었다. 


그는 하나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한류가 본격적으로 상륙하기 전,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을 확인한 것이다. 한국어는 한국을 제대로 알기 위한 가장 확실한 디딤돌이다. “언어는 한 나라를 알기 위한 큰 무기다. 그 나라를 알고 싶으면 언어를 우선 아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후 읽고,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을 알리고 싶다는 그의 생각은 한국 서적과 한국어관련 서적의 보급과 제작에 힘을 쏟게 만들었다.


그는 피천득의 ‘인연’ 등을 담은 <대역 피천득 수필집>을 내 한국의 수필문학을 일본에 알리기도 했고, 한국을 폭넓게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 2006년 독립했다. 이후 HANA프레스를 통해 <한국어 표현문형> <소리로 맛보는 한국어 명문 명작> <하루에 한 문장, 짧은 글로 읽은 한국어 리딩> <KBS한국어 : 표준발음과 낭독> <KBS한국어 : 라디오드라마> 등의 책을 내 한국어를 좀 더 깊게 배우고자 하는 중상급을 위한 책을 내놨다.


책으로 한국과 일본을 잇는다


사실 출판에 있어서 일본은 세계 최강국 중의 하나다. 한국이 범접할 수 없을 정도다. 일본 책이 한국에 쏟아지는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 스토리텔링의 저변이나 출판인구 혹은 역사 등 모든 제반여건에서 일본이 한국보다 월등하다. 반면 한국의 작품은 일본에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그 수요를 장담할 수가 없다. 일본의 출판사가 한국 책을 낸다는 것은 아직 일종의 ‘모험’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배 대표는 한국 문학 등을 비롯한 한국 책이 꾸준하게 조금씩 일본에 소개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광수의 <무정>이나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과 같은 근대소설을 비롯, <태백산맥>(조정래) <너에게 나를 보낸다>(장정일) <아홉 살 인생>(위기철) <서른, 잔치는 끝났다>(최영미) <무소유>(법정스님)과 함께 최근작으로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공지영) <외딴 방>(신경숙) <칼의 노래>(김훈) <아내가 결혼했다>(박현욱) 등이 일본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고 전했다. 배 대표는 “동시대 한국 작가들의 소설을 일본 독자들이 읽을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탄탄해 뵈던 일본의 출판계도 ‘불황’에 빠져있기론 한국과 마찬가지인 듯하다. “일본은 1995년이 인터넷 원년(元年)인데, 이즈음부터 사람들이 책을 덜 읽게 된 것 같다. 특히 광고수입에 의존하는 잡지 쪽의 타격이 컸다. 단행본은 아직 100만부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가끔 나오고 있다. 그래도 일본인들은 정보를 찾기 위해 책이나 잡지를 사고 편집 작업을 하고 가이드 노릇을 하는 책에 들어간 노고를 인정해 준다.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쇄매체에 대한 수요나 애정이 남아있다고나 할까.”


일본 출판계에서도 앞선 10여년의 불황이나 최근의 경기침체로 인해 실용서가 인기를 끌고 있다. 문학 분야에서는 대중문학이나 추리소설 등의 장르에 포진된 인기 작가를 중심으로 한 작품들이 주로 잘 나가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일본 출판계의 대표적 블루칩이었던 만화도 예전만큼 잘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일본 출판계도 현재 위기감을 가지면서 답을 계속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 배 대표의 설명이다.


이에 한국의 책이 영역 확대나 위기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되진 않을까. 일본 출판계의 ‘한국 알리미’ 배 대표는 현재 다양한 구상을 진행 중이다. 이런 경험도 그의 구상에 다소 영향을 줬다. 한국에도 영화팬들을 중심으로 알려진 일본의 유명배우 ‘나카타니 미키’가 그에게 읽을 만한 한국 문학작품을 알려달라고 했는데, 선뜻 답을 못했다. 일본어로 된 문학작품이 그닥 없었던 탓이다. 그는 아직도 이것이 참 미안한 경험이라고 했다.


벌써 10여년이 됐다. 한국어 관련 서적을 만들어온 것만 해도. 이제는 시즌2가 필요한 시점이고, 그는 좋은 책을 일본에 소개하고 싶다. 한국의 책이 일본에 덜 알려졌다는 점도, 누군가 이 일을 해야 한다는 점도 그에겐 기회다. 문학 작품이나 인문서를 소개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그는 한국 내 사람살이의 속살을 일본인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한국 사람들을 위한 여행이나 음식 등의 문화적 가이드북을 한국을 여행하거나 한국에 관심 있는 일본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


이에 『서울 이런 곳 와보셨나요? 100 : 당신이 몰랐던, 서울의 가볼 만한 곳(박상준 글/허희재 사진/한길사 펴냄)과 같은 책도 유심히 봤다. “일본 사람들은 가이드북을 갖고 다니면서 직접 찾아서 보는 여행 취향을 갖고 있다. 뒷골목을 거닐거나 보통 사람들의 사람살이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음식도 아주 잘 알려진 데보다는 동네 구석이나 책에는 없지만 숨겨진 동네 맛집을 찾는 소소한 재미를 찾는 사람도 많다. 이것이 한국을 좀 더 제대로 알리고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한국의 깊숙한 곳을 알려주고 싶다. 구체적이고 수준 높은 책을 선보이고 싶은 생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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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1 13:45 할말있 수다~

아세요? 세계를 움직이는 여성의 힘 (2)

안상태 기자, 불황을 위무하고 내일의 희망을 이야기한 작가
‘마가렛 미첼(Margaret Mitchell, 1900.11.8~1949.8.16)’을 만나다





앵커 : 불황의 시절, ‘D(디플레이션)의 공포’가 엄습한 시기입니다. 대공황 때문에 실의와 절망에 빠져 있던 1930년대를 떠올리거나 연상하는 이야기도 많은데요. 그만큼 지금 전 세계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당시 미국에선 한 작가가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위무하면서 대공황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줬다는 사실, 알고 계신지요. 그 사람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1936)를 쓴, 마가렛 미첼입니다. 얼마 전 탄생 108주년을 맞이했던 마가렛 미첼의 생가가 있는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나가있는 안상태 기자를 불러보겠습니다. 안상태 기자!


안상태 기자(이하 안상태) :
네, 안상탭니다. 저는 지금 애틀랜타에 나와 있습니다. 스칼렛 오하라, 레트 버틀러, 비비안 리, 클라크 게이블, 그리고 무엇보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Tomorrow Is Another Day)”, 이 유명한 대사, 기억나십니까. 그렇습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집필한 마가렛 여사를 만나러 이곳에 왔습니다. (고요한 정적…)


앵커 :
안상태 기자! 안상태 기자!



안상태 :
나~안. 마가렛 여사의 집에 들어 왔고! 저기 아담한 체구의 여사를 봤을 뿐이고! 저런 단아함에서 어떻게 시대를 위무한 위대한 작품이 나왔는지 감탄할 뿐이고! 이 작품을 출판하기 위해 들였던 열정과 끈기가 더 놀라울 뿐이고!


마가렛 미첼(이하 마가렛) :
안 기자. 정신 차리세요. 그땐 운이 좋았던 거죠. 애틀랜타에 들린 뉴욕 맥밀란출판사의 레이슨 사장이 떠난다는 단신을 보고 기차역으로 찾아갔을 뿐이에요. 물론 그가 순순히 읽어볼 것 같진 않았어요. 당시 제가 작가지망생에 불과한데다 원고는 1037페이지에 달했으니… 그래서 집에 가지 않고 시차를 두고 끈질기게 기차안의 레이슨 사장에게 전보를 보냈던 거죠. 다행히 몇 차례 거들떠보지도 않던 레이슨 사장이 마지못해 읽었다가 감동 받고 이를 출간하기로 했으니, 운이 좋은 거죠.


안상태 :
아, 죄송합니다. 제 별명이 안어벙이라. 그 열정과 끈기가, 세상 사람들에게 세기의 명작을 전파한 셈인데요. 당시 뉴욕타임스의 서평이 인상 깊네요. “미국 소설 가운데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와 가독성에서 이것을 능가하는 소설은 없다. 그야말로 최상급 소설이다.” (잠시 또 정적…)


앵커 : 안상태 기자! 안상태 기자!



안상태 :
나~안. 소설 잠시 봤고. 읽자마자 반했을 뿐이고! 무엇보다 ‘대공황’이라는 전대미문의 불황이 태양을 없앤 시절, 피폐해진 사람과 시대를 위무하고 평정심을 유지하게끔 해 준 작가의 힘에 거듭 놀랐을 뿐이고! 역시 작가는 평화와 호황 때보다 불황과 절망의 시절에 더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함을 확인했을 뿐이고!


마가렛 :
과찬이에요. 안 기자 톤으로 하자면, 나, 마가렛~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뿐이고! 그 한편에 내 모든 걸 쏟아 부었을 뿐이고! 어쩌다보니 결과가 좋았을 뿐이고! (웃음)


안상태 :
“시인은 사회의 환부를 남보다 먼저 감지하는 몸을 지닌 존재”라는 말이 있는데요. 이 말을 약간 바꿔, “작가는 사회와 사람들의 환부를 어루만져주는 마음을 지닌 존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또또 정적…)


앵커 :
안상태 기자! 안상태 기자!



안상태 :
나, 안~ 결정적 이 장면과 한마디를 다시 보고 또 감동 받았고.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Tomorrow Is Another Day)”는 최고의 대사일 뿐이고! 모든 것이 바람과 함께 사라진 폐허에서 스칼렛은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흙을 쥐고서 읊조렸을 뿐이고! 절망에서 건져 올린 희망의 한 조각일 뿐이고! 그것이 지금-여기의 우리에게 마가렛 미첼이 필요한 이유이고! 

    
마가렛 :
안 기자~ 미안해요. 시간이 다 됐어요. 어쨌든 저는 이 한편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요. 성공을 거뒀다지만,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불행했던 것 같아요. 다시는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니까요. 물론 1949년 남편과 함께 길을 건너다 음주운전 차량에 치어 죽지 않았다면 또 어떻게 됐을 진 모르겠지만요. 어쨌든 잘 극복하길 바라요.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뜰 거예요. 부디 내일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요. 그럼 나, 마가렛~ 바람과 함께 사라질 뿐이고! 또 어떤 작가가 당신들을 위로하고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을 주길 바랄 뿐이고!


(※참고자료 : 위민넷 ‘키위, 여성을 말하다’)

[코엑스몰 내방객을 위한 무료감성매거진 '몰링' 기고]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2008.11.20 14:49 할말있 수다~

아세요? 세계를 움직이는 여성의 힘



(1) 엘리너 루스벨트 (Eleanor Roosevelt, 1884.10.11~1962.11.7)

미국의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엘리너 루스벨트(Eleanor Roosevelt)’와 미국 44대 대통령 당선자 ‘버락 오마바(Barack Obama)’의 가상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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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너 루스벨트(이하 엘리너) : 축하해요, 오바마. 당신이 마침내 해냈군요. 이 미국에서도 아프리카계 대통령이 탄생하다니요. 1619년 네덜란드 해적선이 아프리카인 20여명을 버지니아에 떨어뜨리고 1662년 노예잔혹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으니… 비록 1862년에 링컨 대통령께서 노예해방을 선언했지만, 이후로도 차별의 역사가 지난하고 가혹했으리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죠. 물론 당신이 대통령이 됐다고 모든 것이 바뀌진 않겠지만, 미국 역사에, 그리고 전 세계에 획을 그은 것은 사실이니까요. 미국에서 아프리카계 대통령 탄생은 아마 232년 만이죠?

버락 오바마(이하 오마바) : 고맙습니다. 엘리너 여사님. 제가 혼자 잘나서 된 것도 아닌걸요. 아프리카계 미국인 선조들부터 마틴 루서 킹 목사, 말콤 X, 제시 잭슨 목사, 무엇보다 이 땅에서 핍박과 차별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버티고 견뎌준 사람들의 노고와 희생이 가장 큰 몫을 차지하지 않을까 싶어요.

엘리너 : 당신이 이렇게 당당하게 미국의 대통령까지 당선된 것을 보니, 정말 감회가 새롭네요. 지난 세월도 자연스레 떠오르고요…

오마바 : 제가 어찌 엘리너 여사님의 공적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여사님이 그 어려운 시절에도, 더구나 아프리카계가 아닌 앵글로색슨계로서 그토록 힘을 써 주신 것을요. 여사님이 남편을 설득해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옹호정책을 촉구해 주셨잖아요. 남편인 루스벨트 대통령도 사실 그런 것을 탐탁스럽게 생각하지 않으신 것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사님은 열성적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인권을 위해 설득해 주셨죠. 여사님에게 붙은 ‘흑인을 진정으로 사랑한 백인’이라는 호칭도 그냥 붙은 것이 아니잖아요. 

엘리너 : 아니에요. 전 다만 제가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인류사회에 인종차별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범죄잖아요. 제가 당시도 그랬지만, 흑인들이 백인들보다 더 가난하고 자리도 낮을지 모르나 오랜 세월이 지나면 지금과 반대로 흑인들이 백인들보다 더 나아질지도 모르는 것이잖아요.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보다 좀 낮아 보인다고 우쭐대거나 깔보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사람은 언제든지 남을 평등하게 대접해야 하는 거고요.

오마바 : 전 무엇보다 이 장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마 1935년의 어느 날, 엘라바마 버킹검에서 열린 인류번영을 논의하기 위한 회의 말입니다. 여성대표로 참석해주신 여사님께서 통로를 경계로 인종별로 나뉜 풍경을 보고 화가 나셔서 아프리카계 대표석에 앉으셨던 일이요. 인류번영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그런 아이러니한 구획과 분리가 얼마나 우습습니까. 그런데도 백인 대표들은 물론이거니와 경찰관까지 동원돼 그들 자리로 앉으라고 요구했지만, 꿈쩍도 않으셨던 그 모습, 저는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앵글로색슨계의 분노섞인 아우성과 아프리카계의 박수소리가 울려퍼지는 광경. 여사님 같은 분이 아니면 누가 이렇게 할 수 있었겠어요. 저는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고 호감 가는 ‘퍼스트 레이디’가 여사님인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엘리너 : 아유, 정말 별 얘기를 다 꺼내네요. 어쨌든 오늘은, 당신의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는 자리니까, 내 얘긴 그만해요.

오바마 : 하하, 여사님 겸손하시긴요. 저의 당선에는 분명 여사님 몫도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공화당 지지였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민주당으로 돌아선 때도 루스벨트 시대였고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제대로 일자리도 얻고 군대도 갈 수 있게 된 것이 바로 2차대전이 끝날 무렵이었으니까요. 그런 것들 모두가 쌓이고 쌓인 것 아니겠어요. 저는 여사님을 대통령 부인으로서보다 소외받고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노력한 사람으로 기억할 겁니다. 부족한 제가 견고한 인종차별에 금을 가게 했다면, 이젠 성차별을 깰 필요도 분명 있을 겁니다. 여사님 같은 훌륭한 여성이 대통령이 될 시대가 곧 와야죠. 저는 꼭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고,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엘리너 : 고마워요, 오마바. 이제 다음 대통령은 여성의 몫이 돼야한다는 말, 꿈에서 현실이 될 날이 꼭 올 거예요. 부디 우리 세상의 부조리하고 몰염치한 구조를 바꾸는 일에 힘이 되는 대통령이 돼 주세요.

(※참고자료 : 『엘리너 루스벨트』(메리 윙젯 지음, 성우 펴냄), 수원일보, 위키백과)


[ 코엑스 내방객을 위한 감성매거진 '몰' 기고문 ]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2008.03.27 18:52 할말있 수다~
지난주 운 좋게도, '패션쇼' 티켓이 생겼다. 오호~
'서울 패션 위크(Seoul Fashion Week) 가을/겨울(F/W) 08-09'의 첫 테이프를 끊은 '장광효 컬렉션'.
바로 직전, ≪장광효, 세상에 감성을 입히다≫의 불미스런 표절사건으로 망신을 당했지만,
그래도, 쑈는 계속돼야 하는 법. 무조건,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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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아서 잘 보이진 않지만, 미니 팜플렛 뒷면엔,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라는 문구가 표기돼 있다.

이른바 '빠숑 드~자이너'인 친구가 있긴 하지만,
빠숑쇼는 나랑 별반 상관 없는 세계라고 생각했었다.
그렇잖아! 나 같은 장삼이사에게 패션쇼는, 그저 화보 이상은 아니지!
그 화려하고 비싼 옷의 향연이라니.
서민들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괜한 위화감이나 쌓고 말 일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였나 모르겠다.
나는 그 세계를 보고 싶었다. 경험하고 싶었다.
마냥 화려하기만 한 줄 알았던, 런웨이에도 사람이,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알았다.

'패션'은, 다른 세계가 아니었다.
바로 우리의 어떤 일상이다.
어떤 옷을 입고 걸칠 것인지,
어떻게 나를 표현할 것인지,
패션은 안드로메다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곳에도 전세계 수천수억만명의 종사자가 일을 하는 터전이며,
그들의 땀과 피가 우리의 살과 접촉한다.
 
그리고, 패션쇼.
그것은 의상을 매개로 하는 하나의 문화체험이다.
밖의 살랑이는 봄 바람을 차단하고,
가을과 겨울을 조망하는 이상한 경험.
굳이 패션이나 디자인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건, 온전히 내 감각을 열고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에디 슬리먼도 그런 말을 남기지 않았던가.
"쇼의 화려함은 지극히 작고, 소소한 기억에서 시작된다."

이번 패션쇼를 다녀온 나의 단상이다.
당신도,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쑈를 즐겨라.^.^
또 다른 세계가 당신의 뉴런을 툭툭 건드릴 것이다.
세계는 우연찮은 계기로 넓어지고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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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쑈'가 끝난 뒤,
나는 런웨이를 밟았다.
기분이 묘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모델의 한발.
나는, 그 순간만큼은 런웨이의 모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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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판 <보그> 편집장을 지낸 다이애나 브뤼랜드는,
"디자이너란 사람들이 원하는지조차 몰랐던 재주를 보여야 한다"고 했다.

나는,
'패션' 디자이너는 아니지만,
라이프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그렇게 디자이너다.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2008.03.09 01:42 할말있 수다~
웅이 아버지, 웅이 아버지,
해샀길래. 한번 봤는데.
어라랏, 재밌네.
난 <웃찾사> 안 보거든.

그래서 따라해봤는데,
내가 듣기엔 비슷하다. 헤헤.

웅이 아버지~ 웅이 아버지~~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