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0일.
2009년 그날 불길이 치솟은 이후, 우리는 또 하나의 트라우마를 갖게 됐다.
권력과 이권에 의해 움직이는 세상의 야만을 너무 뼈 아프게 절감했다.

정확하게 1년을 버틴 날 내리는 비는,
아마도 1년 전 그 화마와 불길을 기억해서일 것이다.
이 비로도 야만의 시대와 동물의 세계를 씻겨내릴 수는 없다.
아마도, 그날을, 그 참사를, 우리의 발가벗은 몸을 잊지 말라는 뜻일 게다.

이 개좆 같은 세상.
그래도, 희미하게나마 아직 이 세계가 살아갈만한 곳이라고 생각하거든,
혹은 우리 사는 세계의 누군가를 아직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고 김연수는 말한다.

비, 용산, 노력...
지난해 9월에 만난,

김연수를 다시 끄집어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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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와 영향을 주고받은, 비 오던 그날 밤의 이야기

[독자만남] 『세계의 끝 여자친구』 저자 김연수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날, 내 일터이자 서식지로 향하는 버스 안, 김연수의 새 책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읽고 있었다. 그 무렵, 내 서식지에선 용산참사 현장에서 주워온 냉장고, 간판, 문고리, 숟가락, 도마, 컵, 선반 등 자질구레한 물건들과 예술가들의 현장작업이 결합된 전시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영정도 있었고, 고인과 유족들의 일상이 깃든 사진도 있었다. <용산포차, 아빠의 청춘>이라는 이름의 전시. 200일이 넘었지만, 다섯 분의 철거민과 한 분의 경찰관이 죽었지만, 진상규명은커녕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는 시대의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함이자, 그들을 위무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날 마침, 이 전시의 특별한 행사가 있었다. 막걸리와 빈대떡 등을 파는 일일 포장마차를 운영, 수익금 전액을 용산 참사의 유가족들에게 전하기 위한 행사. 그 행사를 향해 가던 버스 안, 나는 해당 소설집의 단편,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를 읽고 있었다. 우연찮게 그 단편은 용산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편의점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온 동료들이 다시 사무실로 들어오는 걸 보고 내가 화면을 끌 때까지, 거기에는 타오르는 불꽃과 시커먼 연기와 아래에서 솟구치는 물줄기가 침묵의 공간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날 새벽, 거기서 여섯 명의 사람들이 불에 타 죽었다는 건 며칠이 지나서야 알았다.”(p.107)




읽고 있던 와중에 나는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 동안 보아오던 영정과 가족사진, 이 아이와 아버지가 함께 찍은 사진도 있었다는 생각이 미쳤다. 윤현구군이 아버지에게 썼다는 편지가 나오는 구절에서, 내 눈물샘은 무방비였다.


“그리고 그렇게 바람을 맞으며 내가 떠올린, 그날 새벽의 타오르던 붉은 불꽃과 시커멓게 피어나던 검은 연기와 아래에서 솟구치는 하얀 물줄기들에 대해서,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히 읽게 된 편지의 구절들에 대해서. "아버지와 아빠에게"라는 구절로 시작해서 "아빠, 나는 아빠가 보고 싶어. 지금은 이 마음 하나뿐이야.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 꿈속에서라도 한번 나와 줘, 나는 아빠를 힘껏 끌어안고 놔주지 않을 거야. 떠나지 못하게 절대 놔주지 않을 거야. 그리고 아빠한테 말할 거야, ‘아버지 사랑합니다’라고"(2009년 1월 용산참사로 숨진 윤용헌씨의 장남 윤현구군이 쓴 편지 중에서)로 끝나는. 아까 내가 울었던 건 그 편지의 구절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나는 얘기했다.”(p.114)


어쩔 수 없이 짊어져야 할 빚. 2009년 1월20일 이후로, 내게 용산은 더 이상 ‘전자상가’로 대변되는 장소가 아니었다. 용산은 이 시대의 몰염치와 패악이 집중된 참사현장이자 아픔이 됐다. 김연수의 글은, 그 전시와 함께 어느 새 용산과 시대의 야만을 희미하게 희석시키고 있는 내 기억과 신경의 나태함을 건드리고 있었다. ‘케이케이’를 사랑했던 미국인 작가(「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마냥, 정말이지, 나도 그랬다. “‘무엇도 영원한 것이 없는, 스쳐 지나가는 것들로 가득한, 좌충우돌의 도시’에서 떠나고 싶다. 지금 당장.” (p.20)


아니 그런데, 너는 용산참사와 아무 관계없는 놈 아니었냐고? 참사의 희생자들 가운데 알거나 관련 있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 그렇다고 막장식 살인진압을 지휘하거나 감행한 국가권력과도 연관을 지은 것도 아니면서, 무슨 얘기냐고?


글쎄,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렇다면 한번 들어보자. 용산참사의 현장을 접했던, 망설였으나 글을 통해 이를 말할 수밖에 없었던 김연수의 이야기. 지난 21일 가을비 내리던 저녁, 대학로의 연우무대에서 독자들과 함께 공기를 나눈 김연수의 이야기. 때로는 모노드라마처럼 관객석에 앉은 독자들을 향해 연기를 하는 것 같았던 김연수의 이야기. 한편으로 함께 호흡하면서 저녁시간을 공유한 우리의 이야기. 그런 우리가 정말, 용산참사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걸까. 이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이글을 쓰고 있는 나는, 그저 안드로메다와 지구 사이의 거리만큼 떨어진 광년에서 숨 쉬는 것일까. 일단 들어보자.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작가의 말에는, 책 뒤표지에는 이런 말이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무슨 교과서 혹은 꼰대 같은 말이냐고? 그러게 말이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모범생 같고 성실하다고 그랬는데, 요즘은 그러지 않는다. 사실, 난 모범생이 아니다. (웃음) 처음 이 문장을 소설에 쓰고픈 생각은 없었다. 무슨 교장선생님 말씀 같지 않나? 다들 노력하는 거, 별로잖나. 누구든 노력 안하고 뭐든 성취했으면 싶고...”



김연수는 명절을 손꼽아 기다리던 아이였다. 판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날 수도 있는 날. 그랬기에 명절이 끝날 무렵이면 상실감이 몰려오곤 했다. 친척들과 막상 헤어지게 되면 속상하고 맘이 아파서, 정작 방에 박혀서 혼자 슬픔을 감내하던 소년. 어릴 때는 참으로 궁금했다. ‘좋았던 시간들은 왜 끝나고 마는가.’ 살다보니 그런 고민들은 이어지게 마련이고, ‘차리리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지 않나?’라는 생각까지 했다.


김연수는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 “소설을 쓰면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생각하면서, 내 삶을 보면 괜찮은 것 같다. (웃음) 다른 사람들을 (소설 속에) 쓰긴 쓰는데, 왜 이렇게 사나 싶다. 최근에 그런 주인공들이 많아졌다. 이상(주. 『꾿빠이, 이상』)도 마찬가지였다. 천재였을 것 같지만, 이상은 나랑 비슷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이런 삶을 살았을까, 싶고. 『밤은 노래한다』에서도 그렇고, 지금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소년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여기서도 그렇다. (주인공들이) ‘어떻게 불합리한 자신의 삶을 납득하게 됐는가’를 따져보고 있다.”


그리하여, 작가의 그 말,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는, 최근 5년 동안의 그런 생각들이 농축된 것이다. 자기를 견디는 일에 대한. 자기를 사랑하게 된다면, 자기 인생의 빛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고통 속에서 자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게 사랑이다.” 사랑은, 그렇게 살기 위한 필요충분조건. 살아가기 위해 사랑한다는 것. 사랑하기 위해 살아간다는 것. 그리하여, 우리는 사랑하고 노력하고 살아간다. 비루한 일상을 버티고 견딘다. 사랑한다면, 그렇게 노력한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는 어떻게 나왔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 모르는 얘기는 할 수 없고, 아는 얘기만 하겠다는 김연수. 이 소설집의 크게 두 개의 부류로 나뉜단다. 2005년 5월 출간된 『나는 유령작가입니다』가 그 경계다. 그 책을 다 쓰고 여력이 남아 쓴 3편의 단편(「기억할 만한 지나침」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웃는 듯 우는 듯, 알렉스, 알렉스」)이 있고,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이후에 썼던 소설은, 지금의 상태와 유사한 소설이라는 것이 김연수의 설명이다.


어쨌든 김연수에게는, 소설을 쓰면서 변화가 생겼다. “정확히 무슨 변화인지는 모르겠는데, 문학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난 게 아닌가 싶다. 2007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쓰고, 소설을 쓴다는 것에 정리를 다 했다. ‘그래 이거야. 더 이상 고통은 없어.’라면서. (웃음) 더 이상 쓸게 없더라. 추리소설을 쓸까, 판타지나 SF를 쓸까,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케이케이의…」는 당초 원제가 ‘거무스름한 불’이었다. 편집부에서 제목을 바꿔달라고 해서 바꾼 것이 지금의 제목이었는데, 다시 원제로 바꿔달라고 했다가, 편집부에서 지금의 제목이 좋다고 주장해서, 최종 낙찰됐다. “(이 글을 쓰게 된) 최초의 동기는, 꽤나 의욕적이었는데, LA폭동에 대해 쓰겠다는 것이었다. 르포도 찾아보고 자료 수집을 하면서 반년이 지났다. 그러다 어느 날, 김중혁과 차를 타고 일산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자유로에서 검은 연기가 보였다. 가봤더니, 트럭에 불이 붙어서 타고 있더라. ‘트럭에 불이 났구나’하면서 얘기를 하는데, 어느 순간, 열기가 확 들어오더라. 유리창을 뚫고. 그 열기가 되게 인상적이었다. 물론 김중혁은 그것을 (소설로) 쓰지 않았고, 나는 썼다. 감수성의 차이지. (웃음)”


소설은 대개, 마지막 부분부터 쓴다는 김연수. 특히 단편소설은 더욱 그렇단다. 그래서 그 열기를 느끼면서 마지막 장면이 떠올라, ‘이 소설을 쓸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LA폭동과 교포들의 정체성 등을 쓰려고 했는데, 그렇게 나오진 않았고, 뜻하지 않게 상실의 이야기로 써졌다. 그러다보니, ‘영향’이라는 문제가 생기더라. 정말 살다보면, 전혀 관계없을 법한 것이 내게 영향을 미친다. 그 소설을 다 써갈 즈음, 숭례문이 불탔다. 마감하면서 봤는데, ‘영향을 받는다’라는 명제를 확신했다. 숭례문에 난 불로 인해 내 인생이 바뀔지 모르고, 삶은 그렇게 불합리한 상황에서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 다 쓰고 나서도 잘 몰랐는데, 이렇게 책이 나오고 보니 확실해진다.”


“나는 숭례문의 그 불꽃에 영향을 주고 또 영향을 받았다. 미신과도 같은 이야기지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p.317 ‘작가의 말’ 중에서) “이 우주의 90퍼센트는 그렇게 우리가 볼 수 없는, 하지만 우리에게 오랫동안 영향을 미치는, 그런 불들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물론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그 불들을 보지 못하겠지만.”(p.32)


「기억할 만한 지나침」은 『나는 유령작가…』의 여력이 남아, 소설적 도전을 많이 할 시기에 쓰인 단편이다. “여성화자에 도전할 때였다. 당시는 중요한 문제였다. 결국은 화자에 가닿을 수 없다고 보는데, 실패할 수밖에 없는 거지만, 그 실패가 날 유혹했다. 여성화자로 쓰고 싶다는 생각에 한창 많이 썼는데, 그 중의 하나다. 그런데 정작 여성분들은 이럴 수 있을까, 이러더라. (웃음) 어쨌든 도전해보고 싶어서였고, 열여덟 여자를 주인공으로 했다. 한창 소녀들에 빠져 있을 때였다. (웃음) 문학작품의 소녀들이 어떤 행동방식을 보이나 조사도 했고. (마르그리트) 뒤라스 소설이나 롤리타와 같은. 그때 알게 된 소녀들의 비밀을 이 소설에 쓴 거다.(웃음) 말이 되나?”


「세계의 끝 여자친구」의 시작은 전적으로 노래 때문이었다. 무척 좋아하는 노래 세 개 가운데, 밝고 맑으며, 달리기를 하고픈 욕망을 불러일으킨 노래. 그리하여, 일산의 호수공원을 달리기하다가, 기념식수를 여러 번 보면서 뭐가 되겠다 싶은 직업의식도 발동하고. 부근의 자주 찾아가는 마두도서관의 설립 초기, 책이 부족할 무렵에 기증됐던, 기증자 이름이 박힌 책도 그를 자극했다. 일산 라페스타 근처, 그의 작업실이 있는 곳엔 신호등이 많은데, 그 신호등을 피해 메타세쿼이아 길이 있단다. 그 기분 좋은 메타세쿼이아 역시, 소설에 한몫했다.


“이렇게 노래부터 기념식수, 기증자의 책처럼 뭔가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 때가 있다. 메타세쿼이아에도 뭔가 있을 것 같아서 조사를 했더니 소설에 들어있는 그 사실이 있었다. 그러니 자신에 대해 얼마나 확신을 가지겠나. 소설가라면 지어서라도 써야하는데, 이렇게 역사적 사실까지 있다니. (웃음) 쓰고 나서 되게 기분이 좋았다. 원고를 보내고, 일산주민들을 위한 낭독회가 있어서 읽어주기도 했는데, 배경이 주변에 있는 일이니 기분이 무척 좋았다. 음악이 감춰진 기억을 끄집어내서 쓴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는, 용산참사를 접한 뒤 나온 단편이다. “지금도 고민이다. 예를 들어 동시대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소설로 형상화할 때, 어디까지, 어떻게 할 수 있나,를 고민한다. 올 1월 용산을 보고 충격이 엄청났다. 그 이후도 다 충격이지만. 용산 지날 때마다 거대한 물음표가 생긴다. 쓸 수 있다, 없다,를 넘어 벽이자 난관이었다. 그걸 쓴다고 했을 때, 쓸 수 있을까. 처음에는 없다고, 결코 쓸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쓸 수 없다고 결론을 냈지만, 그럼에도 써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고민하다가 이렇게 나왔다.”


그가 용산을, 담는 것과 별개로,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 아녔을까. 그는 촛불을 이야기했다. 촛불시위 때 많이 나갔다는 그는, 그곳에서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감정을 새삼 실감했다. ‘같이 겪고 있구나.’ 국가권력이 물대포를 쏘아대고 있을 때도, ‘이게 우리한테 일어나는 일이고, 경험하고 있구나’하는. 같이 물을 맞고 같은 감정을 겪는 느낌, 그래서 되게 따뜻했던 느낌.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을 쓸 때, 고민이 많았고, 아직 해결이 되지 않았고, 아직까지 고민 중이다. 좋았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몰랐던 것을 알게 됐다. 우리는 지난 2년 동안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그 기간 생각해보면, 촛불, 용산, 대통령의 서거 등 우리는 많은 사건과 감정을 공유했다. 그런 공유지점이 많아서 지난 2년을 생각하면 내 얘기를 해주고 싶고,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고 싶었다.”


이는 그에겐 큰 변화의 징후를 거친 시기였다. 대화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김연수였다. 그러나 이 시기를 관통하면서 소설을 통해 말을 걸고 말을 듣는 것에 익숙해지고, 그게 가능하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물론 통하기 위해서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존재해야 하는데, 그 2년은 신뢰를 쌓게 한 시간이었다. “아직은 자신 없지만, 그런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각각의 삶은 하나씩의 이야기이고 그 이야기들은 서로 연결돼 있으니, 우리는 어디에서 무엇으로 살더라도 결코 혼자가 아니다. 한쪽 끝을 건드리면 다른 한쪽 끝이 떨린다. 그 공명과 공감 속에서 예수 시절 이래의 ‘정의와 아름다움’이 이어져올 수 있었다.”(pp.294~295)


김연수, 묻고 답하기



처음 제목을 봤을 때, 하루키의 소설(『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이 생각났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가 가장 좋았는데, 하루키의 『댄스 댄스 댄스』가 생각나기도 했다. 일말의 연관성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나.


음악에서 이름을 빌려온 거라서 하루키 생각은 안 했다. 딱 떠오른 느낌은 여자의 세계의 끝까지 간다는 것. 한 여자와 갈 수 있는 먼 세계의 끝이 어딜까 생각해봤다. 그건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감정적 장소일 것 같다. 그래서 제목을 빌려왔는데, 사람들은 하루키의 소설을 이야기하더라. 하루키 소설 읽는 것은 좋아하지만,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지금 읽고 있는 『1Q84』를 보면 좀 이상해졌다. 할아버지가 됐는지, 굉장히 멋진 얘기를 한다. 방향에서 보자면, 여전히 사람에 대해 쓰고 있고. 참, 우리나라 평론가나 언론이 말하는 하루키는 대중소설가적인, 한국소설을 망치게 한 주범이다. 그런 의미라면, 누가 하루키를 좋아하겠나. 내가 보기엔 그는 괜찮은 사람 같다. 만나본 적은 없지만.


2년 동안 좋은 일, 안 좋은 일 겪으면서 공감되는 사람도 찾았지만,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화해할 수 없는 사람도 보이더라. 그러니까, 「내겐 휴가가 필요해」의 ‘최’ 같은 사람. 그런 사람과는 어떻게 대화해야 하나.


나는 편애하는 게 좋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해주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그냥 예의만 지키고 살고, 예의를 지키지 않으면 지적하고. 안 맞는 사람도 많은데, 싫어할 이유는 없고 그냥 내버려 두면 되지 않을까. 글쎄, 답을 잘 못하겠다. 잘 알지도 못해서. (웃음)


그 질문 사이에서, 나는 어떤 ‘이해’에 대한 우리의 오해를 생각했다. ‘이해한다’는 흔한 말, 그럼에도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이 진짜 가능할까라는 의문. “우리는 모두 헛똑똑이들이다.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사실들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 대부분은 ‘우리 쪽에서’ 아는 것들이다.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것들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런 처지인데도 우리가 오래도록 살아 노인이 되어 죽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어리석다는 이유만으로도 당장 죽을 수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 삶에 감사해야만 한다. 그건 전적으로 우리가 사랑했던 나날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이해되기만을 기다리며 어리석은 우리들을 견디고 오랜 세월 버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맞다. 좋고 좋고 좋기만 한 시절들도 결국에는 다 지나가게 돼 있다.”(p.81)


「기억할 만한 지나침」과 같은 여성화자는 무리가 아닐까 생각했다. 우선 여자인 나도 이렇게 여우 같이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웃음) 혹시 아저씨가 바라본 시선 아닌가. 그리고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에 공감이 참 많이 됐다. 삼십대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기억할 만한…」의 열여덟 소녀는, 내가 만나보고 싶은 소녀 얘기를 한 거다. (웃음) 사실 그런 십대 여성이 있을 것 같지는 않고, 내가 만든 소설 같은 느낌이 든다. 「당신들 모두 …」는 쓰고 나서 좋아한 소설 중의 하나다. 찌질한 삶의 양태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허세를 부리고… 나는 서른이 되기 전에, 비장하게 돈이나 벌자, 소설 같은 거 말고, 이렇게 생각하고 출근을 하게 됐다. 일산에서 3호선을 타고 동국대까지 출근을 하는데, 너무 놀랐다. 아침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출근을 하는지, 진짜 감동적이었다. (웃음) 술을 새벽까지 늦게 마시고, 다음날 제 시간에 출근도 하는 거다. 정말 대단했다. 술을 그렇게 마셨는데도, 뭔가 만들잖나. 이런 삶을 반복적으로 하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다른 마인드도 있구나 싶었다. 삼십대 초반에, 인생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알았다. 부탁이 있다면, 삼십대에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거다. 심각해도 바뀌는 게 없다. (웃음)


그렇다. 비장하지 말기. 나는 너무도 비장하게 살아가라고 다그치는, 나잇대에 따라 사람이 이러저러해야 한다고 설파하는 그런 것들이 싫다. 미래를 위해 현재는 희생하고, 한 우물만 파서 그러면서, 종국엔 ‘대박’나라고 외쳐대는 꼬라지가 싫다. 그런 책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가 죽을 것처럼 말한다. 아니 죽어 마땅하다고 옆구리를 쿡쿡 찔러댄다. 왜 우리는 좀더 재밌게 살면 안 되나. 꼭 심각해야 제 맛인가. 우리에겐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가 책에서 발견한 것과 같은, ‘내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든가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등의. 그게 역사서든, 과학서든, 철학서든, 일 년 동안 닥치는 대로 책을 읽은 뒤 그가 알게 된 진리는 그처럼 단순했다.… 도서관에 있는 그 어떤 책을 들춰봐도 거기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또 노인이 다시 젊어져 새로운 인생을 살아갔다는 이야기도 나오지 않았다. 어이없게도 삶은 단 한 번만 이뤄질 뿐이며, 지나간 순간은 두 번 다시 되풀이되지 않는다고, 그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들은 말하고 있었다.”(pp.169~170)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음흉하고 음침한 역할이었다. 그 영화를 보고 김연수 작가에게 실망해서 오늘 이 자리에 오자고 하니까, 싫다는 변절자(?)도 있었다. 역할이 마음에 들었나? 다시 또 제의가 오면 영화 찍을 건가?


좋아할 리가 없지. (웃음)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아주 좋아한다. 1999년에 직접 만난 적은 있는데, 이번에 조감독이 전화가 왔더라. 시나리오를 살 리는 없는데, 출연을 요청하더라. 처음에는 일 없다고 끊었다. 그런데 도와주고 싶고, 기념도 될 것 같아서 다시 내가 전화를 걸었다. 그래서 건대로 갔다. 연기를 해 보래. 설정을 주고, 열심히 노력했다. 처음에는 소설가로 나가는 줄 알았다. 스탭들이 비열한 배역이라고는 하던데, 알다시피 홍 감독 영화는 시나리오가 늦게 나오잖나. 그저 실수만 안 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사실 영화에 나오지 않은 장면이 있다. 애로배우와 풀장에 뛰어들어서 ‘저 잡아보세요’하면 ‘좋아 좋아’ 박수를 치면서 손잡는 장면이었다. 나왔으면 얼마나 추했을까. (웃음) 다음날 김태우 씨가 그 배우에게 그러더라. 지난주엔 원빈과 키스하고, 이번 주엔 김 작가랑 손잡고...

(웃음) 


그 영화, 다시는 안 보고 싶다. 드릴 말씀이 있다면, 김태우, 엄지원, 고현정 씨 등 실제로 보면 되게 예쁘다. 그런데 홍 감독 영화에선 찌질하게 나오잖나. 일반인들이 나온다면 오죽 하겠나. (웃음) 홍 감독의 영화는 카메라가 진실을 보여주는 게 아니고 왜곡시켜 보여준다. 어쨌든 순전히 기념으로, 홍 감독 영화여서, 궁금해서 출연을 한 거다. 다시는 출연 않을 거다.


문장이 즉흥적이라기보다 평소에 아이디어를 저장했다가 내놓는 것처럼 치밀하다. 문장을 쓸 때, 차곡차곡 쌓아서 하나 아니면 즉흥적으로?


문장을 쓸 때, 반복해서 쓴다. 한 번에 쓰는 경우는 흔치 않다. 잘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는 다른 것들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특히 음악. 소설에서 잘 쓴다는 건 다르다. 소설가가 지어낸다기보다는 등장인물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등장인물의 경험 등이 조합돼서 나온다. 작가는 등장인물의 감정이입을 위해 음악을 이용하거나 자료조사도 한다.


괜찮다는 지점에 이르는 것은, 막힘없이 간다는 느낌이 들 때다. 그 때는 잘 썼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은 내가 쓰는 것이 아니라, 소설화자가 쓰는 것이다. 소설가는 소설에 들어가려고 갖은 노력을 하는 거고. 그 다음에 문장이 나오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1인칭을 선호한다. 문장 쓰기가 용이해서. 그런데 3인칭을 가면 문장 쓰는 것이 달라진다.


「달로 간 코미디언」을 여러 번 봤다. 그렇게 보면서 사람이 바뀌어 가는 것을 느낀다. 쓰는 사람도 그런가.


쓸 때마다 달라진다. 소설을 쓰면서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 소설을 쓰기 전에 나는 되게 이상하고, 남 탓만 하고, 참을성이 없으며, 사람을 믿지 않았다. 책 한권을 쓰는 건, 큰 변화는 없다. 그런데 약간 변한다. 1년 정도 되면 창피할 때가 있다. 그걸 느끼면서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최근에는 변화되는 폭이 커지고 있다. 예전에는 ‘초지일관’ 이런 것을 좋아하는 (모)범생이었는데, 소설가가 되고 나서, ‘조삼모사’ 이런 것을 좋아하게 됐다. 다른 사람이 약속 안 지키고 그러면 예전에는 화를 내고 그랬는데, 이제는 뭔가 일이 생겼나보다 싶고. 뭐 내가 바뀌니까, 앞으로는 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웃음)


끝나지 않은 용산, 김연수와 우리의 고민


누군가는 오늘 이 자리, 가을비가 드문드문 내리던 어느 저녁에 김연수를 만난 것을 기화로 그동안 켜켜이 쌓아온 시간의 체적이 폭발하게 될지도 모른다. ‘영향’은 그런 것이다. 한 연인이 1982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시합을 하다가 링에서 쓰러져 죽은 권투선수(고 김득구) 때문에 서로 사랑했고, 2001년 9․11 테러로 무너진 쌍둥이빌딩 때문에 헤어졌듯(「달로 간 코미디언」), 용산참사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어쩌면 이렇게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김연수와 나는,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는 그렇게 빚을 지고 있다. 동시대를 살면서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어쩔 수 없는 빚이다. 삶의 터전을 빼앗겨 살 곳을 묻는 이들에게 국가가 폭력으로 대답하는 시대를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들의 빚. 창을 뚫고 우리에게도 확 들어온 국가권력의 화염과 열기. 우리는 최소한 이것을 뚫고 나가야 한다.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그 처절한 싸움에 우리가 함께하고 있고, 그 흉포한 만행을 잊지 않고 기억할 것임을 우리는 전해야 한다. 김연수는 여전히 그것을 고민하고 있고, 그가 할 수 있는 방법(글쓰기)으로 그 고민을 공유하고자 하고 있다.


김연수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우리도 각자의 방식대로 그에 화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렇게 연결돼 있고, 영향을 미치며, 우리는 별들이니까. “우리는 각자가 하나의 이야기들이고서로 연결되기를 기다리는 별들이다. 그러니 우리가 각자 고독하게 달로 가지 않고 모두 함께 복된 새해를 맞이할 수 있으려면 우리는 주저하지 말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 메리 올리버가 가르쳐준 대로 말이다. "절망을 말해보렴, 너의. 그럼 나의 절망을 말할 테니./ 그러는 동안 세계는 굴러가는 거야."(「기러기」)”(p.313 해설 “모든 슬픔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 중에서)


모든 삶을 어떻게든, 불합리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납득해야한다. 굳이, ‘착해지지 않아도 돼/무릎으로 기어 다니지 않아도 돼.’(메리 올리버의 시 「기러기」의 첫 문장) 어쩌면 훗날, 바로 지금 이후 발생하는 일의 어떤 근원에 용산이 버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생은 서로 물고 물리는 톱니바퀴 장치와 같으니까. 모든 일에는 흔적이 남게 마련이고, 그러므로 우리는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야 최초의 톱니바퀴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pp.63~64)


일일 포장마차는 다행히 용산을 생각하는 이들과 함께 성황리에 마무리됐고, 나는 윤현구군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나는 아빠를 힘껏 끌어안고 놔주지 않을 거야. 떠나지 못하게 절대 놔주지 않을 거야.” 아빠를 뺏기지 않으려는 아이의 안간힘이 자꾸 눈에 밟혔다. 아빠를 안을 수 있는, 아이의 그 사소한 행복조차 지켜주지 못한 이 사회는, 우리가 만들어놓은 이 사회는 대체 무엇일까.


“불편한 자세로, 우리는 물속에서 서로 껴안고 있었다. 우리는 입을 열지 않았다. 물에 젖었건 땀에 젖었건, 내가 사랑한 케이케이의 몸은 언제나 젖은 몸이었다. 나는 케이케이의 젖은 몸이 내 몸에 닿는 게 좋았다. 그 젖은 몸은 보통의 육체와 달랐다. 그 젖은 몸은 보통의 육체와 달랐다. 한없이 부드럽고 또 연약했다. 소년의 몸. 가만히 두면 물에 풀리는 물감처럼,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는, 젖은 몸. 나는 그걸 막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한사코 케이케이에게 매달렸다. 내가 아는 행복이란 그런 것이었다.”(p.21)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단 하나일지라도, 잊지 말아야겠다고. 이 흉포하게 구획된 질서에서 피 흘리는 자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 질서에 순응한다는 것은,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아도 살인에 동참하는 것임을. 잊지 않고, 그 흉포한 질서에 사소한 것이라도 불복종을 해보는 것.


비오는 가을 밤, 우리는 그날 그렇게 만났기에, 김연수와 같은 동시대의 고민을 나누었기에, 나는 그 만남을 엄중하게 담았다. “헤어진다고 하면 그저 멀리 떨어져 지낸다는 걸 뜻할 뿐, 그래도 같은 하늘 아래에 사는 게 아니겠느냐던 안이한 생각이 일순간 사라지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일의 엄중함이랄까, 그런 삶의 무게를 새삼 느꼈다고나 할까.”(pp.100~101)


그리하여, 세상 수많은 아픔 앞에서 고개 돌려 외면하지 않기. 나하곤 상관없어, 내가 그런 게 아니야, 라며 지나치면 이 졸렬한 세상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아니, 그 전에 아무런 악의도 없는 누군가에게, 시스템에 의해 상처를 입게 될지도 모를 일.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 우리 서로의 얘기를 하고 듣자. 그렇게 우리 노력했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예스24 기고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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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볼 땐, '유통업자 개쉐이~'하며 지나갔지.
해운대에선 올해 닭이 활개를 치긴 어렵겠구나, 하는 그딴 생각 정도? 
해운대해수욕장 '통닭 주의보'

그런데, 다시 보니, 왠지 울컥한다. 느닷 없다.
'유통기한'이라는 말이 목에 탁탁, 켁켁.

유통기한이니 하는 말, 사람에게 먹힌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이잖아.
생명이 아닌, 유통기한(그래, 이미 '죽은' 닭, 맞아). 

우리의 닭, 태어날 때,
인간의 식용이 돼야 한다는 사명이나 운명을 타고 난 것은 아닐텐데. 된장.

그런 녀석에게 생명이 아닌 유통기한이라는 말을 붙이니.
왜 그리 서글프고 울컥 하지?
식용닭으로 키운다고? 그래서 뭐?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만년으로 하고 싶다는,
금성무의 독백(<중경삼림>)이,
실은 닭들의 절규가 왕가위에게 빙의돼 나온 대사가 아닐까(그래, 미쳤다 -.+).

괜스리, 기자질 그만 두길 잘 했다는 생각도 들고.
아무런 생각 없이 관성으로 그런 기사나 단어를 썼을 테니.
뭐, 기사 쓴 사람을 타박하자는 건 아니고(뭐, 소심해서.. ^^;;).

이미 자본적 부가가치(의 창출효과)로 따졌을 때, 
아마도 나는 지금 시대에선 유통기한이 끝난 통닭신세.
그렇다면, 앞으로 남은 유통기한은 다른 가치를 위해서, 빙고~

당신은 어때. 유통기한이 얼마나 남았어?ㅋ 
아, 지금 이 엄혹한 시대에 너무 가혹한 질문인가.


좋아, 인정.
아마, 난 전생에 닭이었나 봐. 꼬꼬닭~
그리하여 나도 닭처럼 먹힌다면,
이왕이면, 예쁜 뇨자한테 먹히고 시포~
특히 키스를 부르는 입술에 닿고설랑 저릿하게 유통기한 끝~ 캬캬.

그럼 통닭, 안 먹느냐고?
아니, 잘 먹는다규. 꼬꼬닭~
사주기만 해줘봐. 크왕~

나도 가끔은, 육식남!

어이, 쥐박이.
유통기한 지난 통닭, 함 처묵어주시지~
통조림에 담아 줄까?
3년 여 유통기한 남은 쥐새끼에겐 줄 선물은 그런 거.
한국 온 부쉬랑 같이 있는 꼬라지도 딱이더만.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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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정말 애쓰셨어요.
그건 당신은 물론, 저 스스로에게 건네는 말이기도 하고요.

목수정 씨의 소르본느대학 어학과정의 반편성 시험 문제를 약간 변용하자면,
나도 당신에게, 나에게 이런 말을 살며시 건넵니다.
"당신의 지난 2008년은 왜 그토록 특별히 힘들었나요?"

정말, 애쓰셨어요.
이 말이 왜 이리 찡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어요.
누군가 나에게 이 말을 던진다면, 눈물이 그렁그렁거릴 것 같아요.

우리 내년에도 여전히 애쓰면서 생을 버티고 견디겠지요.
뭐, 그럼 어때요. 우린 아직 이렇게 살아 있잖아요.
살아서, 그렇게 다시 만나요.

내년엔, 첫 눈 내린 것 같은 머그잔으로,
당신을 위한 커피 한잔 대접할게요.


안녕, 2008년.
그리고 안녕,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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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방문한 일본 ‘HANA프레스’출판사의 배정렬 대표



“한국 문학이나 인문서, 취미 등 장르에 상관없이 좋은 책을 일본에 소개하고 한국에 대해 좀 더 깊숙한 것을 알려주고 싶다.”


일본 도쿄에서 출판사 ‘HANA프레스’를 운영하고 있는 배정렬 대표(43)가 한국을 찾았다. 지난 11월12일 방한해 12월2일까지 머물면서 한국 출판업계와 접촉하고 출판 관련 작업을 진행했다. 홍익대학교 부근의 출판사들과 파주 헤이리마을의 출판단지 등을 둘러 본 그는 일본에 알릴만한 한국의 서적에 대한 탐사도 했다. HANA프레스는 다른 출판사의 출판 기획․제작을 대신해 주면서 한국어 관련 학습서를 출판하고 있다.


“한국에 대해, 한국의 문화를 알리고 싶다”


이번 한국방문은 다소 긴 여정을 택했다. 12월 중 나올 일본의 한국어 학습자를 위한 『쉬운 한한사전』의 인쇄를 한국에서 진행한 까닭도 있지만, 한국의 출판업계를 좀 더 알고자 하는 욕구도 있었다. 이전에는 3박4일 정도의 짧은 여정으로 한국을 방문했었다.


배 대표는 기본적으로 한국 문화를 일본에 알리고 싶다는 열정과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이다. 사실 그렇다. 두 나라 사이에는 다양한 문화적인 교류가 오가고 있지만, 책을 통한 교류는 거의 일본의 독주다. 일본 문학 등의 일본 책은 한국에 쏟아져 나온다. 서점에 가보라. ‘일류(日流)’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다. 일본 작가의 코너는 만만하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다르다. 한국은 책을 통해 일본인들과 만날 기회가 많지 않다.


그래도 우리에겐 한류(韓流)가 있지 않냐고? 일부는, 맞다. 배 대표도 한류의 긍정적인 영향을 인정한다. “한류는 (일본에서) 분명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고 선호 계층도 있다. 일본 서점에 한국과 관련한 책장이 예전보다는 조금 커지고 넓어졌다. 그러나 이는 한류 중심의 콘텐츠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한국 책장 내 문학의 비중이 컸으나 비중만 놓고 보면 문학은 그 비중이 줄어들었다. 한류가 나름대로 한국에 다가갈 수 있는 접근 통로가 됐고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한류 덕분에 한국어를 공부하려는 주부나 젊은이들도 많다. 그런 한편으로 이제는 한류가 아닌 방식으로 (일본인들에게) 접근하는 것도 필요할 때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한국을 일본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을까.


‘한국어저널’의 산파이자 한국을 알리는 전도사로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린 그해. 배 대표는 그 이전부터 한일 양국의 문화적인 교류를 위한 방편이 없을까 구상하고 있었다. 일본의 어학전문출판사에서 근무하던 그가 떠올린 것이 한국어학습 잡지. 회사에서는 반대가 심했다.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창간호가 적자를 내면 바로 폐간하겠다’고 설득해 <한국어저널> 창간호를 낸 것이 2002년 6월. 한일 월드컵이 열리고 있던 시기였지만, 일본 내 한류는 아직 찾아보기 힘든 때였다(일본 내 한류는 2003년 <겨울연가>가 위성방송을 통해 선보인 뒤 이듬해 NHK에서 방영되면서 본격적인 붐이 일게 됐다).


야심차게 내놓은 <한국어저널>은 그러나 초반에는 별 볼일 없었다. 발간 당일 도쿄의 유명서점에서 직접 판촉에도 나섰지만 10여부가 나갔다. 울상이었다. 편집장으로서 체면 안서는 부수였다. 그러나 구겨진 체면은 며칠 뒤, 갑자기 빳빳하게 펴졌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책을 사기 시작한 것. 창간호만 3만권 이상의 판매부수를 기록했다.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성공이었다. 


그는 하나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한류가 본격적으로 상륙하기 전,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을 확인한 것이다. 한국어는 한국을 제대로 알기 위한 가장 확실한 디딤돌이다. “언어는 한 나라를 알기 위한 큰 무기다. 그 나라를 알고 싶으면 언어를 우선 아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후 읽고,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을 알리고 싶다는 그의 생각은 한국 서적과 한국어관련 서적의 보급과 제작에 힘을 쏟게 만들었다.


그는 피천득의 ‘인연’ 등을 담은 <대역 피천득 수필집>을 내 한국의 수필문학을 일본에 알리기도 했고, 한국을 폭넓게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 2006년 독립했다. 이후 HANA프레스를 통해 <한국어 표현문형> <소리로 맛보는 한국어 명문 명작> <하루에 한 문장, 짧은 글로 읽은 한국어 리딩> <KBS한국어 : 표준발음과 낭독> <KBS한국어 : 라디오드라마> 등의 책을 내 한국어를 좀 더 깊게 배우고자 하는 중상급을 위한 책을 내놨다.


책으로 한국과 일본을 잇는다


사실 출판에 있어서 일본은 세계 최강국 중의 하나다. 한국이 범접할 수 없을 정도다. 일본 책이 한국에 쏟아지는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 스토리텔링의 저변이나 출판인구 혹은 역사 등 모든 제반여건에서 일본이 한국보다 월등하다. 반면 한국의 작품은 일본에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그 수요를 장담할 수가 없다. 일본의 출판사가 한국 책을 낸다는 것은 아직 일종의 ‘모험’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배 대표는 한국 문학 등을 비롯한 한국 책이 꾸준하게 조금씩 일본에 소개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광수의 <무정>이나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과 같은 근대소설을 비롯, <태백산맥>(조정래) <너에게 나를 보낸다>(장정일) <아홉 살 인생>(위기철) <서른, 잔치는 끝났다>(최영미) <무소유>(법정스님)과 함께 최근작으로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공지영) <외딴 방>(신경숙) <칼의 노래>(김훈) <아내가 결혼했다>(박현욱) 등이 일본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고 전했다. 배 대표는 “동시대 한국 작가들의 소설을 일본 독자들이 읽을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탄탄해 뵈던 일본의 출판계도 ‘불황’에 빠져있기론 한국과 마찬가지인 듯하다. “일본은 1995년이 인터넷 원년(元年)인데, 이즈음부터 사람들이 책을 덜 읽게 된 것 같다. 특히 광고수입에 의존하는 잡지 쪽의 타격이 컸다. 단행본은 아직 100만부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가끔 나오고 있다. 그래도 일본인들은 정보를 찾기 위해 책이나 잡지를 사고 편집 작업을 하고 가이드 노릇을 하는 책에 들어간 노고를 인정해 준다.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쇄매체에 대한 수요나 애정이 남아있다고나 할까.”


일본 출판계에서도 앞선 10여년의 불황이나 최근의 경기침체로 인해 실용서가 인기를 끌고 있다. 문학 분야에서는 대중문학이나 추리소설 등의 장르에 포진된 인기 작가를 중심으로 한 작품들이 주로 잘 나가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일본 출판계의 대표적 블루칩이었던 만화도 예전만큼 잘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일본 출판계도 현재 위기감을 가지면서 답을 계속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 배 대표의 설명이다.


이에 한국의 책이 영역 확대나 위기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되진 않을까. 일본 출판계의 ‘한국 알리미’ 배 대표는 현재 다양한 구상을 진행 중이다. 이런 경험도 그의 구상에 다소 영향을 줬다. 한국에도 영화팬들을 중심으로 알려진 일본의 유명배우 ‘나카타니 미키’가 그에게 읽을 만한 한국 문학작품을 알려달라고 했는데, 선뜻 답을 못했다. 일본어로 된 문학작품이 그닥 없었던 탓이다. 그는 아직도 이것이 참 미안한 경험이라고 했다.


벌써 10여년이 됐다. 한국어 관련 서적을 만들어온 것만 해도. 이제는 시즌2가 필요한 시점이고, 그는 좋은 책을 일본에 소개하고 싶다. 한국의 책이 일본에 덜 알려졌다는 점도, 누군가 이 일을 해야 한다는 점도 그에겐 기회다. 문학 작품이나 인문서를 소개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그는 한국 내 사람살이의 속살을 일본인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한국 사람들을 위한 여행이나 음식 등의 문화적 가이드북을 한국을 여행하거나 한국에 관심 있는 일본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


이에 『서울 이런 곳 와보셨나요? 100 : 당신이 몰랐던, 서울의 가볼 만한 곳(박상준 글/허희재 사진/한길사 펴냄)과 같은 책도 유심히 봤다. “일본 사람들은 가이드북을 갖고 다니면서 직접 찾아서 보는 여행 취향을 갖고 있다. 뒷골목을 거닐거나 보통 사람들의 사람살이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음식도 아주 잘 알려진 데보다는 동네 구석이나 책에는 없지만 숨겨진 동네 맛집을 찾는 소소한 재미를 찾는 사람도 많다. 이것이 한국을 좀 더 제대로 알리고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한국의 깊숙한 곳을 알려주고 싶다. 구체적이고 수준 높은 책을 선보이고 싶은 생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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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요? 세계를 움직이는 여성의 힘 (2)

안상태 기자, 불황을 위무하고 내일의 희망을 이야기한 작가
‘마가렛 미첼(Margaret Mitchell, 1900.11.8~1949.8.16)’을 만나다





앵커 : 불황의 시절, ‘D(디플레이션)의 공포’가 엄습한 시기입니다. 대공황 때문에 실의와 절망에 빠져 있던 1930년대를 떠올리거나 연상하는 이야기도 많은데요. 그만큼 지금 전 세계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당시 미국에선 한 작가가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위무하면서 대공황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줬다는 사실, 알고 계신지요. 그 사람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1936)를 쓴, 마가렛 미첼입니다. 얼마 전 탄생 108주년을 맞이했던 마가렛 미첼의 생가가 있는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나가있는 안상태 기자를 불러보겠습니다. 안상태 기자!


안상태 기자(이하 안상태) :
네, 안상탭니다. 저는 지금 애틀랜타에 나와 있습니다. 스칼렛 오하라, 레트 버틀러, 비비안 리, 클라크 게이블, 그리고 무엇보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Tomorrow Is Another Day)”, 이 유명한 대사, 기억나십니까. 그렇습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집필한 마가렛 여사를 만나러 이곳에 왔습니다. (고요한 정적…)


앵커 :
안상태 기자! 안상태 기자!



안상태 :
나~안. 마가렛 여사의 집에 들어 왔고! 저기 아담한 체구의 여사를 봤을 뿐이고! 저런 단아함에서 어떻게 시대를 위무한 위대한 작품이 나왔는지 감탄할 뿐이고! 이 작품을 출판하기 위해 들였던 열정과 끈기가 더 놀라울 뿐이고!


마가렛 미첼(이하 마가렛) :
안 기자. 정신 차리세요. 그땐 운이 좋았던 거죠. 애틀랜타에 들린 뉴욕 맥밀란출판사의 레이슨 사장이 떠난다는 단신을 보고 기차역으로 찾아갔을 뿐이에요. 물론 그가 순순히 읽어볼 것 같진 않았어요. 당시 제가 작가지망생에 불과한데다 원고는 1037페이지에 달했으니… 그래서 집에 가지 않고 시차를 두고 끈질기게 기차안의 레이슨 사장에게 전보를 보냈던 거죠. 다행히 몇 차례 거들떠보지도 않던 레이슨 사장이 마지못해 읽었다가 감동 받고 이를 출간하기로 했으니, 운이 좋은 거죠.


안상태 :
아, 죄송합니다. 제 별명이 안어벙이라. 그 열정과 끈기가, 세상 사람들에게 세기의 명작을 전파한 셈인데요. 당시 뉴욕타임스의 서평이 인상 깊네요. “미국 소설 가운데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와 가독성에서 이것을 능가하는 소설은 없다. 그야말로 최상급 소설이다.” (잠시 또 정적…)


앵커 : 안상태 기자! 안상태 기자!



안상태 :
나~안. 소설 잠시 봤고. 읽자마자 반했을 뿐이고! 무엇보다 ‘대공황’이라는 전대미문의 불황이 태양을 없앤 시절, 피폐해진 사람과 시대를 위무하고 평정심을 유지하게끔 해 준 작가의 힘에 거듭 놀랐을 뿐이고! 역시 작가는 평화와 호황 때보다 불황과 절망의 시절에 더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함을 확인했을 뿐이고!


마가렛 :
과찬이에요. 안 기자 톤으로 하자면, 나, 마가렛~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뿐이고! 그 한편에 내 모든 걸 쏟아 부었을 뿐이고! 어쩌다보니 결과가 좋았을 뿐이고! (웃음)


안상태 :
“시인은 사회의 환부를 남보다 먼저 감지하는 몸을 지닌 존재”라는 말이 있는데요. 이 말을 약간 바꿔, “작가는 사회와 사람들의 환부를 어루만져주는 마음을 지닌 존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또또 정적…)


앵커 :
안상태 기자! 안상태 기자!



안상태 :
나, 안~ 결정적 이 장면과 한마디를 다시 보고 또 감동 받았고.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Tomorrow Is Another Day)”는 최고의 대사일 뿐이고! 모든 것이 바람과 함께 사라진 폐허에서 스칼렛은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흙을 쥐고서 읊조렸을 뿐이고! 절망에서 건져 올린 희망의 한 조각일 뿐이고! 그것이 지금-여기의 우리에게 마가렛 미첼이 필요한 이유이고! 

    
마가렛 :
안 기자~ 미안해요. 시간이 다 됐어요. 어쨌든 저는 이 한편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요. 성공을 거뒀다지만,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불행했던 것 같아요. 다시는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니까요. 물론 1949년 남편과 함께 길을 건너다 음주운전 차량에 치어 죽지 않았다면 또 어떻게 됐을 진 모르겠지만요. 어쨌든 잘 극복하길 바라요.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뜰 거예요. 부디 내일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요. 그럼 나, 마가렛~ 바람과 함께 사라질 뿐이고! 또 어떤 작가가 당신들을 위로하고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을 주길 바랄 뿐이고!


(※참고자료 : 위민넷 ‘키위, 여성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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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요? 세계를 움직이는 여성의 힘



(1) 엘리너 루스벨트 (Eleanor Roosevelt, 1884.10.11~1962.11.7)

미국의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엘리너 루스벨트(Eleanor Roosevelt)’와 미국 44대 대통령 당선자 ‘버락 오마바(Barack Obama)’의 가상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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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너 루스벨트(이하 엘리너) : 축하해요, 오바마. 당신이 마침내 해냈군요. 이 미국에서도 아프리카계 대통령이 탄생하다니요. 1619년 네덜란드 해적선이 아프리카인 20여명을 버지니아에 떨어뜨리고 1662년 노예잔혹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으니… 비록 1862년에 링컨 대통령께서 노예해방을 선언했지만, 이후로도 차별의 역사가 지난하고 가혹했으리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죠. 물론 당신이 대통령이 됐다고 모든 것이 바뀌진 않겠지만, 미국 역사에, 그리고 전 세계에 획을 그은 것은 사실이니까요. 미국에서 아프리카계 대통령 탄생은 아마 232년 만이죠?

버락 오바마(이하 오마바) : 고맙습니다. 엘리너 여사님. 제가 혼자 잘나서 된 것도 아닌걸요. 아프리카계 미국인 선조들부터 마틴 루서 킹 목사, 말콤 X, 제시 잭슨 목사, 무엇보다 이 땅에서 핍박과 차별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버티고 견뎌준 사람들의 노고와 희생이 가장 큰 몫을 차지하지 않을까 싶어요.

엘리너 : 당신이 이렇게 당당하게 미국의 대통령까지 당선된 것을 보니, 정말 감회가 새롭네요. 지난 세월도 자연스레 떠오르고요…

오마바 : 제가 어찌 엘리너 여사님의 공적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여사님이 그 어려운 시절에도, 더구나 아프리카계가 아닌 앵글로색슨계로서 그토록 힘을 써 주신 것을요. 여사님이 남편을 설득해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옹호정책을 촉구해 주셨잖아요. 남편인 루스벨트 대통령도 사실 그런 것을 탐탁스럽게 생각하지 않으신 것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사님은 열성적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인권을 위해 설득해 주셨죠. 여사님에게 붙은 ‘흑인을 진정으로 사랑한 백인’이라는 호칭도 그냥 붙은 것이 아니잖아요. 

엘리너 : 아니에요. 전 다만 제가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인류사회에 인종차별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범죄잖아요. 제가 당시도 그랬지만, 흑인들이 백인들보다 더 가난하고 자리도 낮을지 모르나 오랜 세월이 지나면 지금과 반대로 흑인들이 백인들보다 더 나아질지도 모르는 것이잖아요.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보다 좀 낮아 보인다고 우쭐대거나 깔보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사람은 언제든지 남을 평등하게 대접해야 하는 거고요.

오마바 : 전 무엇보다 이 장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마 1935년의 어느 날, 엘라바마 버킹검에서 열린 인류번영을 논의하기 위한 회의 말입니다. 여성대표로 참석해주신 여사님께서 통로를 경계로 인종별로 나뉜 풍경을 보고 화가 나셔서 아프리카계 대표석에 앉으셨던 일이요. 인류번영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그런 아이러니한 구획과 분리가 얼마나 우습습니까. 그런데도 백인 대표들은 물론이거니와 경찰관까지 동원돼 그들 자리로 앉으라고 요구했지만, 꿈쩍도 않으셨던 그 모습, 저는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앵글로색슨계의 분노섞인 아우성과 아프리카계의 박수소리가 울려퍼지는 광경. 여사님 같은 분이 아니면 누가 이렇게 할 수 있었겠어요. 저는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고 호감 가는 ‘퍼스트 레이디’가 여사님인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엘리너 : 아유, 정말 별 얘기를 다 꺼내네요. 어쨌든 오늘은, 당신의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는 자리니까, 내 얘긴 그만해요.

오바마 : 하하, 여사님 겸손하시긴요. 저의 당선에는 분명 여사님 몫도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공화당 지지였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민주당으로 돌아선 때도 루스벨트 시대였고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제대로 일자리도 얻고 군대도 갈 수 있게 된 것이 바로 2차대전이 끝날 무렵이었으니까요. 그런 것들 모두가 쌓이고 쌓인 것 아니겠어요. 저는 여사님을 대통령 부인으로서보다 소외받고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노력한 사람으로 기억할 겁니다. 부족한 제가 견고한 인종차별에 금을 가게 했다면, 이젠 성차별을 깰 필요도 분명 있을 겁니다. 여사님 같은 훌륭한 여성이 대통령이 될 시대가 곧 와야죠. 저는 꼭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고,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엘리너 : 고마워요, 오마바. 이제 다음 대통령은 여성의 몫이 돼야한다는 말, 꿈에서 현실이 될 날이 꼭 올 거예요. 부디 우리 세상의 부조리하고 몰염치한 구조를 바꾸는 일에 힘이 되는 대통령이 돼 주세요.

(※참고자료 : 『엘리너 루스벨트』(메리 윙젯 지음, 성우 펴냄), 수원일보, 위키백과)


[ 코엑스 내방객을 위한 감성매거진 '몰' 기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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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운 좋게도, '패션쇼' 티켓이 생겼다. 오호~
'서울 패션 위크(Seoul Fashion Week) 가을/겨울(F/W) 08-09'의 첫 테이프를 끊은 '장광효 컬렉션'.
바로 직전, ≪장광효, 세상에 감성을 입히다≫의 불미스런 표절사건으로 망신을 당했지만,
그래도, 쑈는 계속돼야 하는 법. 무조건,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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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아서 잘 보이진 않지만, 미니 팜플렛 뒷면엔,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라는 문구가 표기돼 있다.

이른바 '빠숑 드~자이너'인 친구가 있긴 하지만,
빠숑쇼는 나랑 별반 상관 없는 세계라고 생각했었다.
그렇잖아! 나 같은 장삼이사에게 패션쇼는, 그저 화보 이상은 아니지!
그 화려하고 비싼 옷의 향연이라니.
서민들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괜한 위화감이나 쌓고 말 일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였나 모르겠다.
나는 그 세계를 보고 싶었다. 경험하고 싶었다.
마냥 화려하기만 한 줄 알았던, 런웨이에도 사람이,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알았다.

'패션'은, 다른 세계가 아니었다.
바로 우리의 어떤 일상이다.
어떤 옷을 입고 걸칠 것인지,
어떻게 나를 표현할 것인지,
패션은 안드로메다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곳에도 전세계 수천수억만명의 종사자가 일을 하는 터전이며,
그들의 땀과 피가 우리의 살과 접촉한다.
 
그리고, 패션쇼.
그것은 의상을 매개로 하는 하나의 문화체험이다.
밖의 살랑이는 봄 바람을 차단하고,
가을과 겨울을 조망하는 이상한 경험.
굳이 패션이나 디자인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건, 온전히 내 감각을 열고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에디 슬리먼도 그런 말을 남기지 않았던가.
"쇼의 화려함은 지극히 작고, 소소한 기억에서 시작된다."

이번 패션쇼를 다녀온 나의 단상이다.
당신도,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쑈를 즐겨라.^.^
또 다른 세계가 당신의 뉴런을 툭툭 건드릴 것이다.
세계는 우연찮은 계기로 넓어지고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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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쑈'가 끝난 뒤,
나는 런웨이를 밟았다.
기분이 묘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모델의 한발.
나는, 그 순간만큼은 런웨이의 모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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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판 <보그> 편집장을 지낸 다이애나 브뤼랜드는,
"디자이너란 사람들이 원하는지조차 몰랐던 재주를 보여야 한다"고 했다.

나는,
'패션' 디자이너는 아니지만,
라이프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그렇게 디자이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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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이 아버지, 웅이 아버지,
해샀길래. 한번 봤는데.
어라랏, 재밌네.
난 <웃찾사> 안 보거든.

그래서 따라해봤는데,
내가 듣기엔 비슷하다. 헤헤.

웅이 아버지~ 웅이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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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라는 거대한 권위와 권력. 그것은 개인을 감염시킨다. 그리고 오염시킨다. 무섭더라. 한순간 돋은 소름. 공동체 의식과 일체감이라고? 봉건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삼성 신입사원 매스게임 동영상 인기폭발

그래서 나는 이말에 동감한다.
"어떤 명분을 내걸던 모두가 똑같은 소리를 내야한다는 건 참을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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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터지지 말아야 할 것이 터졌다. 혹은 터질 것이 터졌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비극은 늘 사후에야 폭발한다. 애초 비극을 잉태하고 있었음에도.

윤장호. 그는 비극의 실체가 됐다. 어제 얼핏 영결식을 보면서 감정이 울컥 눈물이 왈칵했다. 그리고 구역질이 났다. 왜 그의 죽음을 봐야하는지, 부모 형제 친구의 오열을 봐야하는지, 나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 누가 그를 '파병'이란 배에 띄워보냈는가 말이다. 착한 척 하느라 온갖 똥품을 다 잡더니 결국 이럴거였니? 왜 그러니?  윤 하사의 부재가 불러올 'before'와 'after'의 간극. 나는 그 간극이 무섭다. 그걸 주변 사람들만이 감당해야할 몫으로 돌리는 건 그를 머나먼 곳으로 보낸 자들이 할 짓이 아니다.

윤 하사의 죽음을 둘러싸고 미디어 혹은 사람들의 시선은 갈리고 있다지만,(고 윤장호 하사와 '조기 철군') 나는 여기서 대한민국(정부)의 착각과 집착을 본다. 앞선 고 김선일씨에게서도 교훈을 얻지 못한. '착한' 일 하러간다고 떠벌렸다. 이라크 파병 때도 그랬듯, 아프간 파병도 마찬가지였다. 인도적 차원의 구호, 진료활동, 평화재건을 지원하는 국제적 연대에 동참해 세계 평화에 기여한다고 목청 높였었다. 곧 죽어도 "착한 일 하는 거야"라고 외치는 격이다.

영결식 소식을 들으며 다시 이 영화가 오버랩된 건 우연의 일치일까. <무간도3>. 조폭 출신으로 경찰에 잠입한 스파이, 유건명(유덕화)의 외침이 그랬다. "착한 인간으로 살려고 했어"라고, "나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라던. 자아분열증. 착하지 않음, 좋은 사람이 아니란 열등감으로 더욱 몸부림 치는 유건명. 결국은 더이상 제어할 수 없는 울렁증으로 자신을 파멸로 몰아넣고야 말던.

나는 파병을 극력 주장한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에서 유건명이 연상된다. 그리고 애도를 표한 그의 발언("국가는 도덕적 의무를 위해 국민 목숨도 요구" )에서 유건명의 자아분열을 본다. 마지막 궁지에 몰린 유건명의 발악. "왜 기회를 안줘? 착한 인간으로 살려고 했어, 착한인간으로. 왜 기회를 안줘?" 유건명의 운명은 그렇게 영원히 고통에 짓이겨 살아가야하는 무간지옥이다.

나는 무간지옥이 두렵다. 노 대통령은, 파병을 찬성하는 이들은 그렇지 않은 걸까. 착하게, 좋은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명분만으로 유건명의 죄는 씻길까. 그래서 결국 착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무간도3>를 다시 본다.

그리고 '고추장'과 '김열공'이 입을 연다. "왜 그러니?" "왜 그렇게 못됐니?" 
노 대통령과 찬성론자들은 '이강남'처럼 입을 열까. "어쩌란 거니?" 

아울러 강 건너 불구경하듯 이라크와 아프간, 그리고 중동을 다루고 보는 우리들의 속좁음에 대하여. 편견을 거두고 새롭고 넓은 세계로 발 디딜 수 있는 기회를 수수방관만 하고 있는 우리들의 미욱함에 대하여.
이라크·아프간 문제가 왜 '외신'이어야 하나

* 2004년 7월에 긁적인 이 글이 아직도 유효해야 함 또한 비극이다. 고 윤장호 하사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빈다.


“착한 정부와 살고 싶다”
(* 사건의 전말을 눈치 챌 수 있는 스포일러 있음. 그래서 잘못하면 무간지옥에 빠질 수 있음...^^;;;;;;;;;;;;;;;;;)

파병하지 말라... 구해 달라... 살고 싶다... 한국에 가고 싶다던 한 청년의 바램은 끝내 좌절됐다. 그토록 밟고 싶어했던 고국의 땅은 주검이 돼서야 돌아올 수 있었다. 아버지 칠순잔치에는 꼭 돌아오겠다던 약속은 영원히 ‘지키지 못한 약속’으로 봉인됐다.

도와달라고 절규를 내뱉은 김선일씨는 누구로부터도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대답없는’ 너였다. 한국 정부는 “국가가 당신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지를 생각하라”던 케네디의 일성을 신앙처럼 간직하고 있었나보다. 또 초슈퍼울트라 막무가내 미국의 대통령도, 혼자 협상을 벌이며 일을 키운 김천호 사장도, 어디에도 구원은 없었다. 다들 그렇게 ‘쌩’ 까버리다니.

‘일개 목숨’이었던 것이겠지. 여느 개인의 목숨보다 귀중한 ‘국익’탓이었던 게지. 높으신 어르신들은 국익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나 설명 따위도 없다. 파병하지 않으면 어떤 불이익이 우리의 일상을 덮칠지 당최 계산이 안 된다. 그들만의 성마른 조바심이 아닌지 생각도 해본다.

좋은 정부, 착한 정부는 언감생심이다.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던 대한민국의 헌법은 사문화됐고 졸지에 전범국의 국민으로 전락하고 있는 우리는 어떤가. ‘국익’을 내걸고 행하는 국가의 살인에 희생당한 국민은 어떻게 존재감을 획득해야만 하는 것일까.


진실은 저 너머에…

이런 과정에서 <무간도3>이 겹쳐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전혀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개봉이 연기됐음을 감안하면) <무간도3>는 현 상황의 미묘한 메타포(은유)같다. 이미 악행을 저지른 뒤 착하게 살고자 몸부림치는 유건명(유덕화)의 모습 속에서 무언가가 오버랩된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며 흔들리는 정체성을 안고 고뇌와 갈등 속에서 허우적대던 그의 모습이, 못내 어느 한 국가의 미래상과 겹친다. 유건명은 대한민국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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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극무간”이란 부제에서 보듯 <무간도3>은 제목인 ‘무간지옥’의 결정판이다. 영화의 이야기와 제목 사이의 관계나 연관성은 비로소 3편에서 완결된다. <무간도> 1편에서 설명되는 무간도의 의미를 되새김질할 필요가 있다. “열반경 제19권에 따르면 가장 심한 지옥이 ‘무간’이며 끊임없이 고통을 받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디 짭새임에도 갱단에 잠입해 위악을 행했지만 이미 1편에서 죽어버린 진영인(양조위)은 더 이상 어찌할 수가 없다. 따라서 <무간도3>는 본시 갱단임에도 경찰에 잠입해 전도유망하게 잘 나가던 유건명이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진영인의 죽음과 연관된 과거의 숨겨진 사실들도 드러나지만 ‘무간지옥’의 진정한 몫은 <무간도3>에서 분명해진다. 꼬이고 꼬인 실타래는 양금영(여명)과 심등(진도명), 닥터리(진혜림)의 등장으로 매듭을 풀어가면서 긴장감을 놓지 않게끔 만든다.

다만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평행선처럼 교차되면서 관객의 머리회전을 극도로 자극하는 기법은 어지럼증(!)을 동반할 가능성도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수많은 복선과 사소한 단서 하나하나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어떻게 스토리가 이어지는지, 긴장을 풀어선 알 수 없다는 얘기다.

엇갈린 신분과 정체성의 혼란이 주는 비극은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다. 유건명은 상처를 봉합하지도 못한 채 “좋은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열망에 점점 침잠한다. 죄책감과 불안은 점점 그의 영혼을 잠식한다. 그런 와중에 수상한 행동을 보이며 자신과 같은 조직의 첩자로 의심되는 양반장은 그를 옥죈다. ‘진실’은 하나라는데 누가 진실인지는 불확실하다.

무간지옥에 빠진 자의 비극은 ‘진실’의 공개여부와도 연관을 맺는다. 자신을 둘러싼 진실들은 감추려고 애를 쓰지만 진실로 “좋은 사람”을 원했던 아이러니. 결국 그 봉합될 수 없는 충돌은 비극을 잉태하는 법이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은 것 또한 감당하기 힘들다. 착한 누군가를 죽게 만들었다는 죄의식 속에 자신을 그와 동일시하는 이중의 자아. 혼돈은 개인이나 국가를 파멸로 이끌 수도 있다.

김선일씨 피살과 관련된 여러 의혹에 대해 “철저히 진실을 규명하라”는 정부의 외침이 공허한 것도 마찬가지다. 정작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에 대해서는 감추고 함구하면서 그들은 국민들의 의혹을 밝혀줄 진실을 알리고자 진상 조사를 한다. 과연 그 간극은 누가 메워줄 수 있을까. 이미 불귀의 객이 돼 버린 김선일씨가? 김천호씨가? 그렇지 않으면 AP가? 진실은 저 너머에 있을 뿐이다.

질곡의 길, 슬픔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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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건명과 양금영

<무간도3>에서 유건명과 양금영은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미행한다. 물고 물리면서도 진실을 향해 한발자국씩 전진한다. 운명은 거기서도 뒤죽박죽 씨줄과 날줄의 교차를 탄다. 그들이 어떻게 만나게 됐고, 그 숙명의 골이 얼마나 깊었는지도. 그것은 슬픈 운명이자 현실이다.

<무간도3>의 장점은 그것이다. <무간도> 시리즈는 과거 과도한 비장미로 인한 감정의 과잉을 잉태했던 홍콩 영화의 기름기가 없다. 그들이 처한 상황의 비극성은 충분히 매력적이고 흔들리는 사람살이의 의미를 되새김질하게 만든다.

또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과도 접점을 느끼게 한다. 끊임없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착하게 살고 싶다”고 웅얼대며 자아의 파괴를 경험하는 유건명의 외줄타기가 그렇다. 그는 진심이었던 듯싶지만 현실은 그의 모순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 함정은 결국 유건명 스스로가 판 것이니까.

죽어서 명예를 복구하고 죽어서 진실이 밝혀지는 비극성은 결코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공식이 아닌듯하다. 이미 나쁜 놈을 도와(그 이면은 굴복의 기운이 도사리고 있지만) 공범이 된 마당에, 한국 정부는 재건과 회생이라고 부르짖지만 과연 그런가. 그건 거짓이며 허위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치국만 마시고 있는 꼴이다. 정작 재건과 복구가 목적이라면 이라크인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이라크인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쁜 놈이 아니다. 우린 당신을 돕기 위해 왔다. 우린 착하다”고 외치고 있지만 정말 그런가. 유건명은 그래서 혼란을 겪은 것인가.

과연 무엇을 위한 파병인 것일까. 초지일관 파병결정을 밀고 나가겠다는 ‘아집’은 대한민국을 전범국으로 낙인찍히게끔 만들고 있다. 나는 졸지에 전범국의 국민으로 낙인이 찍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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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이 ‘국익’이 되는 세력과 파병이 ‘죽음’을 의미하는 세력 사이의 간극은 화해할 수 없는 유건명과 진영인의 관계와도 같다. 협상을 원하는 유건명에게 진영인은 말한다. “나는 경찰이야” 유건명은 이 말 앞에 어떤 반박도 할 수 없고 무기력하다. 이래저래 발버둥도 쳐보고 발악을 해도 그는 “좋은 경찰” “좋은 사람”이 아니니까.

지 아무리 발버둥쳐도 대한민국은 이미 늪에 발을 빠뜨리고 있다. 질곡이다. 헤어 나올 수 없는 곳으로 차츰 발걸음을 떼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유건명이 갔던 길. 나는 그것이 두렵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진태(장동건)은 ‘가족애와 사랑’이라는 명분에 맹목적으로 함몰돼 괴물이 되어간다. 자신을 파괴하고 타인을 개무시한다. 그래도 그의 명분은 “사랑하니까”다. 사랑한다는 말이면 다 용서되고 올바른 줄 안다. 반면 진석(원빈)은 전쟁이 두렵다. 그 와중에서 동료를 배려하고 적이라 불리는 자들에 관용을 보인다. 그래서 진석은 ‘사랑’ 때문에 타인에게 총부리를 들이대고 괴물이 된 진태에게 외친다. “누가 그렇게 해달라고 했어?”

한국 정부도 제발 이라크를 위해, 우리 후손을 위해 그렇게 했다는 항변은 하지말자. 이라크인들도, 우리 후손들이 그것을 인정해 주리라 속단하지 말란 얘기다. 누구 때문에 이라크 침략전쟁의 일원으로, 전범국의 국민으로 낙인이 찍혔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지랄 옆차기 하는 개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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