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블로그 이미지
사랑이 아니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야
낭만_커피

Notice

Recent Comment

Archive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691,258total
  • 6today
  • 126yesterday

'온통 어리석음의 기록'에 해당되는 글 74건

  1. 2007.10.16 [한뼘] 영원한 여름 궁전
  2. 2007.10.16 [한뼘] 밥풀
  3. 2007.02.12 하얀거탑, 마음을 파고들다
  4. 2007.02.02 흔들리면서, 사랑하면서, 아파하면서...
여름은 치명적인 계절이다.
훌러덩 벗어던지고선 느슨해질 것 같은 계절이라고? 천만에 여름은 허허실실이다.
여름은 어쩔 수 없는 흉기를 품고 있다. 그것은 혁명이 됐건, 사랑이 됐건, 결정적인 것을 변화시키는 열기다.
어쩌면 생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꿔버릴지도 모를 치명적인 독약.
누군가에서 그 여름은 팜므 파탈이고, 옴므 파탈이 될 수 있다.

어제 <여름 궁전>을 보고,
마침내 올해 나의 여름이 끝맺음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의 올 여름은 <영원한 여름>에서 시작해 <여름 궁전>으로 끝났는지도.
로우 예는 예의 그 명민함을 회복한 듯 보였고,
이 지독하고 치명적인 <여름 궁전>은 보는 내내, 한숨과 매혹을 동반했다.
위홍과 저우웨이의 격정적인 섹스도,
왜 그리 슬퍼보이던지. 왜 그리 갑갑하던지.
누구 말마따나, 시대의 낙오자들간의 위로이거나 자위행위.
그리고선 나는, 먹먹했다. 스크린과 어떤 체위를 취해야할지 서성거렸다.
때론 슬픔과 한숨이 넘쳐 매혹으로 가슴을 파고들 때, 나는 스크린과 슬픈 섹스를 나누고도 싶어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곤, 문득 떠올랐다.
나를 빠지게 만들었던 그 계절은 분명 가을이었지만,
사실 모든 시작은 그 여름에서 비롯됐음을.
그해 여름.
그래, 여름이 그렇게 가을을 불러온 것이다.

모름지기, 여름을 조심해라.
나는 문득 지나간 여름이, 슬프다.
리티도 위홍도 저우웨이도 모두 그해 여름을 관통했다. 혁명도 그들을 관통했다...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선배가 그런다.

"상처입은 영혼으로는, 밥풀 하나 제대로 삼키지 못한다."

나는 밥풀을 제대로 삼키고 있는가.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은둔자, 최도영이 본격적으로 부각되면서 선과 악, 혹은 이상과 현실의 구도가 좀더 팽팽해지고 있는 하얀거탑. 이젠 (병원에서 벌어지는) 정치드라마에서 탈피, 법정드라마로 발을 옮기고 있다. 장준혁이냐, 최도영이냐는 감정의 시소가 벌어질 즈음이다. 누구 편을 들 것인가, 하는 문제도 부각될 터이다.

장준혁과 최도영, 당신은 어느 편인가

이제부터 본격 드러날 최도영의 행보가 '옳은' 길임을 알면서도 나는 한편으로 장준혁(일당)의 '음모'가 좌절하지 않길 바라고 있다. 그의 설득에 당해서라기보다는 그것이 엄연한 '현실'의 외피를 둘러쓰고 있기 때문이다. 희망고문은 바라지 않는다. 내가 바라는 '희망'때문에 이 현실에 또 하나의 방탄복을 입히기 싫기 때문이다. 그 희망과 현실의 외줄타기 속에서 나는 하얀거탑을 올려다보고 있다.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가, 하는 이분법적 구도보다는 인간을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인간군상의 '찌질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같은 점과 함께 어젠 정말 눈물 팡팡 흘리면서 봤다. 마음과 관심. 숨진 권순일 환자의 부인이 내지르던 말들이 내 가슴을 후벼팠다. 자신의 남편이 죽기 전에 병원에서 마음을 보태고 관심을 보여줬다면 더 좋았지 않았겠느냐는 말. 그리고 가진 것 없는 사람 마음은 마음도 아니냐던 울부짖음.

문득 며칠 전 읽은 남재일의 '도덕적 감정'을 떠올렸다. 애덤스미스는 도덕적 행위는 이해관계를 떠난 관찰자의 위치에서 타인에 대한 공감의 능력에서 비롯된다는. 타인의 처지에 공감하는 능력(sympathy)이 선행의 토대가 된다는. 쇼펜하우어도 타인에 대한 공감 중에서 특히 고통에 공감하는 동고(同苦)의 능력을 도덕적 감정의 핵심으로 뽑았단다.

장준혁은 공감이나 동고의 능력보다 훨등히 자신을 향한 연민의 능력(narcissism)이 강한 사람이다. 그것이 자연인이라면 옳다 그르다 혹은 좋다 나쁘다의 문제가 아니다. 다만, 그가 '의사'이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타인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위치. 그는 타인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는 공감의 능력이 절대 필요한 사람이다. 에누리 없는 합리성으로 생명을 다뤄선 안되는 자리다. 그 합리성에 공감은 없다.

장준혁이 그의 사단을 도열해선 고 권순일씨의 부인에게 행한 행위는 그에게 공감의 능력이 없거나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나는 다시 한번 의사를 생각했고, 법조인들을 떠올렸다. 다른 누구보다 공감과 도덕적 감정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많은 그들에게 도덕적 감정을 앗아간 아니면 심어주지 못한 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남재일은 도덕철학자 마사 너스바움의 주장을 담았다. 그리고 사법고시에 문학적 감수성을 평가하는 과목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데 나는 거기에 의사시험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미국의 여성 도덕철학자 마사 너스바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떻게 하면 연민과 공감의 능력을 키울 수 있는지를 질문했다. 그가 로스쿨에서 강의한 내용을 요약한 '시적 정의'(poetic justice, 1995)는 문학적 상상이 도덕적 감정을 키우는 밑거름이 된다고 주장을 한다. 유년 시절의 판타지가 성인이 되어서 도덕적 행위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으며 에누리 없는 합리성은 공감의 기제가 없기 때문에 도덕적 감정이 형성되지조차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사회적 정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판관과 시인이 일신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얀거탑을 통해 나는 이런저런 세상의, 내가 몰랐던 세상의 한 단면을 본다. 그래서 나는 하얀거탑이 좋다.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늘 그러했으면서도,

그러지 말라고 은근 강요하는 세상에 고개를 끄덕이곤 했었다.  

강철 철갑을 두르지도 않은 주제에,

일부러 강한 척 할 필욘 없잖아...

나는 외로우니까, 사람이고...

외로워도 슬퍼도, 그냥 울고 만다...

타자의 율법에 얽매여 되도록 살지 않기를,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삶에 좀더 접근하기를...


지난 12월에 접한 이 말을 다시 끄집어내본다.


이제 그만 쉬자!
흔들리면서
사랑하면서
아파하면서...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