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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혁? 아, 《퇴마록》의 저자였구나. ^^;

만나고 나서야 알았다.
스타 크래프트만큼이나, 글쎄?, 회자됐던 《퇴마록》을,
스타 크래프트 한 번도 하지 않았듯, 《퇴마록》도 읽은 적이 없어서. 영화도 못 봐서, 뭐.

그런데, 그토록 팬이 많을 줄이야, 여자, 남자 가릴 것 없이.
《바이퍼케이션 하이드라》를 그의 책 가운데 처음 읽었는데, 글쎄, 내 취향은 아니로구나.;;
지난 9월, 이우혁을 만난 기록. 




연쇄살인, 형사, 범죄심리, 프로파일러… 어쩌면 익숙한 코드다. 미국드라마 <CSI> 등을 통해, 혹은 현실 속 어떤 범죄 혹은 사건을 통해 우리는 이를 익히 접했다. 사회가 복잡다단해졌고, 과거에는 쉽게 상상하지 못한 일들도 현재는 현실로 나타난다. 그것이 텍스트나 영상을 통해 상호 교류하고,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여기, 소설 『바이퍼케이션 하이드라』(이하 『바이퍼케이션』)도 그렇다. 『퇴마록』『치우천왕기』 등의 이우혁 작가가 15년 동안의 숙성 과정을 거쳐 세상에 내놓은 새 작품이다. 우선 3권짜리 1부를 내놨다. 신화, 범죄드라마, 철학 등을 버무린 이 소설은 작가 이우혁이 건네는 하나의 질문이 관통한다. ‘인간 주체란 진정 무엇인가.’

많은 독자들이 환호를 보내고 있다. 오랜 기다림 때문이다. 이에 독자들과 함께 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9월14일, 삼성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바이퍼케이션』(이우혁 지음|해냄 펴냄) 출간기념 독자와의 만남. 눈병 때문에 고생하고 있지만, 이우혁은 독자와의 약속을 미룰 수 없어 선글라스를 끼고 동참했다. 독자들은 질문했고, 작가는 더 없이 열정적으로 답했다. 그렇게 교감했던 시간을 정리했다.


이우혁, 『바이퍼케이션』을 말하다


이우혁, 그 이름 자체가 장르가 된 사람도 있다. 말하자면, ‘이우혁 전작주의자’ 같은 독자에겐 그러지 않을까. 이 자리에 온 한 독자가 그랬다. 저자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을 찔렀으니, ‘폭풍독자’라 불러도 손색이 없으리. 그는 『바이퍼케이션』의 헤라가 그렇듯, 이우혁의 모든 작품에는 주인공이 신체상 핸디캡을 갖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극적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한 것인지를 물었다.

저자는 “나도 그건 생각 못했다”며 놀라움을 표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극적 긴장감 때문에 그랬던 것도 아니다. 다만, 그에겐 이런 믿음이 있다. 뭔가 하나가 뛰어나려면 다른 하나가 빠진다. “논증적으로 입증할 순 없지만 완벽한 인간은 없다. 어떤 하나가 투철해지려면 다른 하나의 희생을 밟고 일어서야 한다. 그것을 잃었기 때문에 강해진 거다. 그래서 어떤 캐릭터에겐 약한 점이 있다.”

『바이퍼케이션』은 영화적 상상력도 자극한다. 대사가 많은데,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썼냐는 질문이 빠지지 않는 이유다. 이우혁의 대답은, “처음부터 영화를 상정하고 쓴 건 아니다.” 그는 대사가 많은 이유와 관련, 희곡에서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는 말을 꺼냈다. 이번 소설도 은근히 희곡을 집어넣고 내포하고 있다. “글쓰기가 막힐 때 영미희곡, 특히 아서 밀러, 에드워드 올비 등을 읽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 가운데 이번에 처음으로 주인공과 영화배우를 대입시켜봤다. 니콜 키드만(헤라), 러셀 크로(가르시아 반장) 등의 이미지를 연상하면서 썼다. 그것을 홈페이지(www.hyouk.kr)에도 올렸다. 이런 식으로 캐릭터를 그리며 쓴 것은 물론 처음이었다.

그런 캐릭터를 연상하면서 쓴 『바이퍼케이션』에서 궁극적으로 다루고 싶은 건, 인간의 본질이다. 이 소설을 판타지, 형사 드라마, 신화 드라마 등 어떤 장르로 봐도 좋지만, 이우혁은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자기를 생각해보라. 진짜 내 의지로 하는 게 얼마나 있나. 우리는 본질이 뭔지 모른다. 그렇다면 진짜 인간의 본질 없나. 본질에 대한 담론이다. 오감만 갖고는 본질을 못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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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구스타보 두다멜부터 시작된 행보는,
엘 시스테마를 거쳐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에까지 도달하도다.
다큐멘터리도 있었고, 책도 있었으며, 마침내 현장 강연까지도 다다랐거든.

이런 저런 매체를 통해 접하고 만났던 아브레우 박사였어.
감히, 음악계의 '체 게바라'라고 불러도 될 사람을 알현한다는 건,
상상에서만 가닿을 수 있는 일이었지, 현실에서 구현되리란 생각은, 도리도리.


어쩌다, 기적은 폭죽을 터트리기도 하잖아. 이번이 그랬다지!
서울 평화상 수상이라는 명분에 의한 것이었지만, 아브레우 박사가 한국에 떴다.

더구나 대중 강연.
음악의 힘을 믿는, 살아있는 전설을 만나고픈 나는, 냉큼 달려갔었지.
등 굽고 다리엔 힘 없으며, (음악)혁명가가 뭐냐, 동네 할아버지가 떡, 있는 거야.

하지만, 그는 일흔살의 멋장이.
눈은 형형(炯炯)히 빛나고, 말은 총총 별처럼 심장에 박히더오. 
35년동안 음악으로 한 나라를 바꿔놓은, 무엇보다 개별 주체들에게 삶을 선사한,
음악혁명가의 면모. 아, '어른'이라는 존재는 저래야 하는구나!
등 굽은 노인네인줄 알았더니, 눈 밝은 청년이구나!!

어른이 되기엔 진즉 삑살이가 난,
아마 아브레우 박사의 발 뒤꿈치에도 도달하지 못하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

있는 자들의 전유물인줄 알았던 음악을, 천상에서 둥둥 떠돌던 음악을,
모두의 것으로 만든, 한 계층의 독점이 아닌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것임을 증명한,
특히 “모든 아이들이 아무런 구애를 받지 않고 음악을 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음악에 대한 그의 태도와 자세.
음악과 사회의 관계를 접합하는 마인드. 

다시 한 번, 내가 커피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그때를 생각한다.

커피에도 계급이 없어야 한다. 돈 벌려면 돈 많은 부자들이 있는 곳에 가야한다고?
나름 생각해줘서 한 충고는 고맙지만, 그의 커피와 손 잡지 않은 건, 다행이야.

커피가 음악만한 힘을 발휘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지만,
(아니면 다른 차원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겠지만,)
음악의 힘을 보조하고 추동할 순 있지 않을까.

남은 건 엘 시스테마의 공연을 보는 일과, 베네수엘라를 찾아가는 일.
우리, 함께 갈까? :) 그리곤 우리도, 큰 걸음처럼 나가자고, 코끼리처럼!
(엘 시스테마의 출발일과 나의 생일이 같으니, 아마 그 날짜에 맞춰야겠지? 하하!)

지난 10월28일, 아브레우 박사 알현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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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악기 연주하며 마음 부자 됐어요.”
최근 읽은 기사 제목이다. 전남 여수의 산동네 한 귀퉁이에서 바이올린, 플루트, 첼로 소리가 울려 퍼진단다. 저소득층 초중고생 오케스트라 ‘여수열린합주단’의 이야기였다. 29명으로 구성된 이 합주단 대부분은 기초수급자 혹은 차상위 계층, 한부모나 조손 가정의 아이들이다.

이들을 한데 모으고, 부유하던 마음을 붙잡은 것이 ‘음악’이었다. 정한수 목사 부부는 아이들과 음악을 맺어줬고, 2003년부터 합주단은 팡파레를 울렸다. 악기를 독학으로 익힌 동네 이발사 아저씨를 첫 스승으로, 아이들은 연주를 배우고 익히면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다. 학교 관악부원이 됐다는 진영군의 말이 찡했다. “악기는 부자들만 배우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내 마음이 부자예요. 앞으로 일본에 가서 재즈 음악을 공부하고 싶어요.”

합주단은 교육과학기술부가 추진하는 베네수엘라-한국 청소년 합동 오케스트라 공연 참가 수요 조사에 신청서를 냈다. 물론, 여수열린합주단 뿐이랴. 한국엔 또 다른 이런 합주단이 있을 것이고, 그들도 신청서를 냈으리라. 그들 모두에게 음악의 힘이 강림하길.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바랐다.

#2. 음악의 힘을 아시나요.
최근, 한국방송의 <남자의 자격 - 남자, 그리고 하모니>편에서도 확인한 바 있다. 박칼린 선생의 지도하에 오합지졸 합창단이 어떻게 하모니를 이루고, 음악을 매개로 어떻게 화합하고 성장했는지. 지난 4월 독립 200주년을 맞았던 베네수엘라에서 진정한 음악의 힘을 보여준 사례가 있다. 1975년 2월12일 차고에서 시작된 한 이야기. 음악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가난을 대처하는 좋은 예로서 작동했던.


엘 시스테마. 세계 음악계의 가장 뜨거운 이슈. (베를린 필의 상임지휘자 사이먼 래틀은, “지금 음악계에서 여기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고 말했다.) 음악의 힘을 믿었던 젊은이, 경제학자이자 음악가였던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의 꿈에서 모든 것이 비롯됐다. 그의 생각은 간단명료했다. “모든 아이들이 아무런 구애를 받지 않고 음악을 접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적으로 가난했던, 꿈도 미래도 희망도 없던 아이들이 악기를 만났다. 총을 들었고 마약을 운반했던 손에 생뚱맞게 들린 악기. 1975년 2월12일, 11명이 모인 시작은 미미했다. 차고를 전전하며 연습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었지만, 아브레우 박사도 아이들도 즐거웠다. 왜? 단순하다. 음악이 있으니까. ‘호세 란다에타 국립청소년 오케스트라’로 출발한 엘 시스테마는 어느덧 35년을 자랐다.

차고는 어엿한 학교로 변모했고, 산동네에서 울려 퍼지던 오합지졸의 선율은 세계 각국의 예술극장을 채웠다. 엘 시스테마는 35년 동안 음악의 힘을 널리 전파했다. 25개 지역에 지역 센터 221곳, 오케스트라 500개가 활동 중이다. 30만명이 음악의 힘을 직접 경험하고 자신의 삶이 바뀌는 기적을 경험했다. 60%가 빈곤층 출신이었다.

엘 시스테마는 ‘베네수엘라 국립 청년 및 유소년 오케스트라 시스템 육성 재단’의 약칭이다. 청소년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비롯해, 성인 심포니 오케스트라, 이들을 지원하는 교육센터와 악기 제작 아카데미, 가난하고 불우한 아이를 위한 지원센터 등 엘 시스테마는, ‘음악으로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일’이 됐다.

1998년 유엔개발계획(UNDP)은 엘 시스테마를 빈곤 감소를 위한 사회 운동에서 괄목할 만한 모범 사례로 추천했다. ‘음악,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권리’임을 확인하고 실천했던 엘 시스테마. 그들은 가난을 대물림하게 하는 빈곤의 문화에 맞서 싸웠다. 무엇보다, 음악이 사람의 귀와 마음만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닌, 한 사람의 생과 사회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준 좋은 예이다. 그것이야말로, ‘음악의 힘’.

“음악은 내게 전체로서 다가오고 내 느낌, 꿈, 향수, 환상, 에너지를 일깨웁니다. 음악은 행동과 헌신을 요구해요. 음악은 소년 시절 이래로 지금까지 내가 완전한 존재로 살기 위해 필요한 발전기이자 에너지예요. 음악이 없었다면 인생은 견디기 어려운 사막과도 같았을 겁니다.”(p.78)


지난 10월28일, 서울 이화여대. 타자와 약자에 대한 배려를 음악이라는 도구로 몸소 실천한 호세 아브레우 박사의 특별 강연회가 열렸다. 2010년 서울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돼 방한한 그는 한국에서도 유명 인사다. 최근 나온 『엘 시스테마, 꿈을 연주하다』(체피 보르사치니 지음/김희경 옮김|푸른숲 펴냄)를 통해 그의 이야기가 널리 퍼졌고, 다큐멘터리인 <엘 시스테마>도 상영된 덕분이다.

특별 강연을 위한 축사의 뒤, 인사말을 위해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이른바 ‘노인’이지만, 아브레우 박사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아마도, “사회안 어떤 개인도 단독자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체화하고 있는 까닭이리라.

그의 강연은 지금, 우리, 여기의 화두인 ‘공정’과도 맞닿아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다른 나라의 다른 나라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일 수 있겠다. 음악의 ‘힘’을 믿는 당신이라면, 모두가 부자가 아닌 누구도 가난하지 않는 사회를 원한다면, 공정함과 세계를 사유하고 싶다면, 아브레우 박사의 연주(!)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좋겠다. 엘 시스테마가 가난한 아이들의 손에 악기와 함께 “자유의 의지, 문화적 감수성, 성찰적 사고 능력”을 쥐어주었듯, 그가 베네수엘라의 반대편 지구인인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니까.

“아브레우 박사는 베네수엘라의 모든 어린이에게 오케스트라에 속할 권리, 문화를 즐기고 인생과 직업에서 다른 가능성을 가질 권리, 음악의 빛과 지혜 속에서 세계를 다른 시각으로 볼 기회를 선물했어요.”(p.108)

아울러, 베를린 필의 제1트럼펫 연주자인 토마스 클라모어처럼, 음악에 대한 편견도 일단 부수고. “이전까지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아이들이 음악을 하고, 오케스트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러나 베네수엘라에서는 가능합니다. 이것이 바로 나를 베네수엘라에 묶어놓은 끈입니다.”(p.127)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모인 ‘사회’여야 한다.



엘 시스테마는 어떻게 탄생했나?


엘 시스테마의 설립에 대한 아브레우 박사의 회고.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 살고 있었던 그가 안타까워한 부분이 있었다. 많은 이들에게 음악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 당시 음악교육을 많은 이들에게 제공한다는 건 생각도 못한 일이었는데도, “이런 현실이 안타까워 고민하면서 많은 선생들과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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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훌륭한 인품과 품격을 지닌 일부 법조인, 의료인도 있으며,
생로병사에 직접 관계된 의학이야말로 보편적이며 진중한 앎이 될 수 있다,
고 생각도 하지만,


지금-여기를 놓고 봤을 때,
세간의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인 법조인이나 의료인(많은 부분 권력과 화폐 때문?)을 부러워하거나 나도 저런 직업을 갖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면,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님(로빈 윌리암스) 말씀도 한 몫한다.
 “변호사, 의사와 같은 직업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좋은 수단이 된다.
하지만 시나 음악, 미술과 같은 예술은 인생의 목적 그 자체다.”

비록, 내가 시나 음악, 미술의 창조자가 될 순 없지만,
그것을 보고 듣고 감응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니까.

변호사, 의사 따위 부럽지도 존경하지도 않지만,
예술가들이 부럽고 존경스러운 이유.

지난 1월, 당시 일하던 매장에서,
'클래식 전달자' 조윤범을 만났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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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그야말로, 시간을 견뎌낸 음악. 유행가와 클래식의 차이는 그렇다. 시간을 견디느냐, 그렇지 않느냐. 유행가가 클래식의 반열에 오를 수 없는 이유는, 시간이 갈수록 힘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간을 버티고 견뎌낸 모든 것들이 예술, 아닐까. 시대를 건너 면면히 사랑받는 건, 어느 시대든 관통할 수 있는 적응력이 뛰어나다는 의미다. 즉, 시대 맞춤형 해석이 가능하기에 버틸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아는 클래식.

클래식의 대중화. 구호 같은 이 말은, 어쩐지 버티고 견디는 것이 미덕이 된 시대에 은근히 잘 어울린다. 국가라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의 엉성한 변주에 빈정 상한 사람들이 시간을 견뎌낼 수 있도록 찾아낸 방법 중의 하나? 물론, 웃자고 한 농담이고.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오 캡틴, 마이 캡틴’ 키팅 선생님(로빈 윌리암스)은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변호사, 의사와 같은 직업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좋은 수단이 된다. 하지만 시나 음악, 미술과 같은 예술은 인생의 목적 그 자체다.” 지금의 우리, 목적과 수단을 헷갈려하는 것은 아닐까. 한 곡의 클래식이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있다는 거냐고. 암, 그럴 수 있다.


여기 음악의 힘이 발휘된 경우도 보자. 영화 <피아니스트>. 이 영화 명장면 중의 하나. 독일군에 쫓겨 폐허에 숨어 사는 유태인 피아니스트가 있다. 그는 먹을 것을 찾다가, 재수 없게도 독일 장교와 맞닥뜨린다. 정체를 묻는 장교. 피아니스트라고 답하는 그. 장교는 연주를 요구한다. 피아니스트의 손놀림이 이어진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울려 퍼지는 피아노 선율. 쇼팽의 ‘발라드 1번’이다. 두 사람 사이의 긴장에 맞물려 그 선율은 관객의 심장에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린다. 장교라고 다를쏜가. 피아니스트는 목숨을 건진다. 장교는 그를 안전하게 보호도 해 준다.


영화일 뿐이라고? 좋다. 이런 경우는 어떤가. 물론 실재다. 베네수엘라 가난한 집안의 한 소년. 입에 넣을 음식도 턱도 없이 부족한 마당에, 음악은 그저 머나먼 세계의 전유물. 음악에 유난히 귀와 몸이 밝았던 소년, 우리라면 그저 집안 환경을 탓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어떤 나라는 우리와 달리, 가난한 아이들의 마음에도 신경을 쓴다. 그것도 시스템적으로. 베네수엘라의 저소득층 예술 교육프로그램 ‘엘 시스테마’. 소년은 음악과 헤어지지 않아도 됐다. 그리고 세계적인 지휘자가 됐다. 아직 서른이 채 되지 않은 구스타보 두다멜의 이야기다. 2004년 독일 밤베르크에서 열린 말러지휘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리면서 단박에 차세대 지휘자로서 이름을 올린 두다멜이다.

음악, 가난과 공정에 대처하는 아주 ‘좋은 예’



한 곡의 클래식이, 한 음악이 한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있다. 클래식이 어렵다거나, 지루하다는 건 흔하고 얕은 인상비평에 가깝다. 클래식이 그 오랜 세월을 거쳐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고, 숱한 연주자와 지휘자에 의해 연주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물론 클래식이 일견 대중과 유리된 것에 클래식 종사자들의 책임도 있겠지만.


현악사중주단 콰르텟엑스의 리더, 조윤범. 그는 클래식과 대중 사이를 잇는 전령, 혹은 전달자다. 클래식은 다른 세계의 것이 아니라, 우리네 일상 곳곳에 스며들고 밀접한 음악임을 알려준다. 작곡가들은 천상의 사람이 아닌,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이라고 말해준다. 그것이 『조윤범의 파워클래식 Vol.2』다. 앞선 1권에 이어, 그는 클래식과 연주자들을 악기가 아닌 펜으로 연주한다. 흥미롭다. 재미있다.


신부였던 비발디가 합창단원인 안나와 사랑에 빠진 덕에 <사계>가 탄생했다거나, 헨델이 왕의 노여움을 가라앉히기 위해 <수상음악>을 작곡하는 등 좀 더 클래식음악을 친근하게 만든다. 시간을 이겨낸 클래식을 만든 이들답게, 그들의 이야기도 생생하다. 조윤범은 이 책을 통해 받아들이고, 예찬하며, 전달하기를 동시에 한다. “예술가의 창조적인 작업은 다음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째 받아들이기, 둘째 예찬하기, 셋째 전달하기.”(프랑스의 철학가 엠마뉘엘 레비나스)


지난 11일 연주와 강연 등으로 바쁜 조윤범을 잠깐 빼냈다. 과거에 탄생했고, 현재 진행 중임, 미래에도 숨 쉴 클래식을, 조윤범의 속살을 들여다보기 위해. 올해, 오는 24일 ‘콰르텟엑스와 함께하는 조윤범의 파워클래식 시즌2’ 공연을 시작으로, 책 출간과 더불어 여러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는 그를 다양한 경로를 통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책도 올해만 컴퓨터와 음악에 대해 네 권을 펴낼 예정이란다. 그는 말하자면, 에너자이저다. 조윤범 혹은 콰르텟엑스가 더 궁금하다면, 만나고 싶다면, 콰르텟엑스 공식홈페이지(http://quartet-x.com)에 들어가 보시라.



자유롭고 클래식하게


이번 책, 2008년 나온 『조윤범의 파워클래식』의 후속편이다. 전편에 이어 이번 책도 잘 나가고 있다. 책을 냈고, 뜨거운 호응에 대한 소회가 어떤가.


사실 2권을 쓸 때 힘들었다. 1권은 (신문에) 쓰고 있을 때, 출판사의 의뢰를 받아서 쓰고 있던 방향을 관철만 하면 됐다. 이번에는 데드라인이 정해졌고 강의와 동시에 진행하는 바람에 굉장히 시간적으로 촉박했다. 또 지방연주나 공연이 많아서 차 안에서 집필하거나 쉬지도 못한 터라, 걱정을 많이 했다. 다행히 많은 분이 좋아해주고 계셔서 안도하고 있다. 이번에도 하고 싶은 얘기를 자유롭게 했다.


1권에서는 현악곡, 특히 현악사중주의 작곡 비중이 높은 작곡가를 중심으로 실내악의 매력을 느낄 수 있게 했다. 2권 음악가 선정의 기준은 무엇이었나.


우선 1권에서 다루지 않은 작곡가 위주로 했다. 1권을 보신 분들 중에 자신이 아는 작곡가가 없어서 아쉽다는 분도 계셨고. 사실 나는 현악사중주 전문가라 2권의 작곡가들 중에는 생소한 작곡가도 많았다. 오페라나 관현악과 같이 많이 연주 못한 분야도 있어서 공부하는 마음으로 썼다. 새로운 음악을 전파하자는 생각도 하면서 공부하면서 책을 썼다.


태어난 연대별로 음악가들 정리가 돼 있고, 악장마다 소제목이 붙어 있다. 소제목은 어떻게 묶인 건가.


음악책이라 소제목을 악장별 제목같이 달았지만, 대개 살아가는 방식이 그렇지 않나. 어떤 일을 해도 무대에서 보여주는 쇼라고 생각한다. 시작이 있고 종결이 있는데, 그런 방식으로 챕터의 제목을 붙였다. 기본적으로 클래식 악장 제목이 직접적으로 아이디어를 줬다.


식상한 질문이다. 이번 책에 소개된 음악가들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는? 그리고 영감을 주는 음악가가 있다면.


이번 책을 쓰면서 바그너(<신이 내린 천재, 바그너>)를 좋아하게 됐다. 그는 기악음악을 하는 사람인데, 접하기가 쉽지 않다. 이번에 (바그너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오페라를 많이 보면서 작업했다. 오페라의 흐름도 알게 됐고. 특히 나와 닮은 모습을 많이 봤다. 고집도 강하고 여러 분야에 관심도 많은. (웃음) 인간적인 관심을 많이 느꼈다. 정말 대단한 사람 같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온 바그너를 토대로 강의도 많이 했다. 호응도 좋았다.


또 말러(<마니아들의 우상, 말러>)를 많이 듣게 됐다. 원래 1권에 넣으려고 했는데, 당시 공부가 부족해서 1권에서 제외했었다. 악보를 보고 다 연주해가면서 공부를 했다. 연주자라서 장단점이 있는데, 단점은 연주를 하기 전까지 이해가 잘 안 간다는 거다. 많은 애호가들은 듣는데 익숙해서 귀가 발달한다. 반면 연주자는 연주하지 않으면 잘 모른다. 최선의 방법이지만 시간적으로 엄청나게 소요됐다. 브루크너(<비운의 음악가, 브루크너>)를 연주하면서는 팔이 끊어질 것 같고,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웃음) 그런 경험이 소중하고 이 책에 반영됐다.


음악가와 음악에 대한 다양한 비사가 흥미로웠다. 클래식을 다시 듣게 하는 효과랄까.


내가 본 자료들은 남들이 보는 것과 똑같다. 문제는 그걸 어떻게 보느냐다. 어떤 이야기는 사생활로 볼 수 있는데, 그 안에 들어가 내 친구라고 생각해보자. 바람을 피우면 나쁜 놈인데, 그럼에도 용서할 수 있는 이유는 뭔가. 그 옆에 있다고 생각하고 그걸 느끼고 전달하니까, 독자들이 재미있게 봐준 것이 아닐까.

사실 나는 남들보다 이해력이 늦다. 빨리 알아듣지 못해서 돌아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더 깊게 알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쓴다. 그 방법 중의 하나가 작곡가와 친구가 되는 거다. 동시대에 있다면 (작곡가는) 이런 평가를 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위인들도 위인이기 전에 일반 사람들 아닌가. 평가 기준에 따라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는데, 진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과감하게 부서주고 풀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주변에선, 네가 지어낸 것 아니냐는 얘기도 들었다. (웃음)

자료는 주로 어떻게 찾고 조사했나.

무작위로 찾았다. (웃음) 기본적으로는 도서관에서 (작곡가와 관련된) 모든 책을 찾았다. 인터넷 블로그나 백과사전 등 모두를 찾아봤다. 인터넷 카페에서도 찾았다. 소화하는 게 힘들어서 오래 걸렸다.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전까지 할 수 없었으니까.


즐기면서 풍요롭게


비발디가 소녀원에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연주회 경험을 하게 해서 산만한 아이들에게 집중력을 키워줬다는 얘기를 들으니, 베네수엘라의 저소득층 예술교육 프로그램인 ‘엘 시스테마’가 떠올랐다. 엘 시스테마는 차세대 지휘의 대가인 구스타보 두다멜을 탄생시키기도 했잖나. 


진정한 과정이다. 음악은 고귀한 것에서 출발하기도 하지만, 추한 것에서 출발해서 신성한 것으로 귀결하는 과정이 음악이기도 하다. 음악은 누군가 엄청나게 연습해서 결과만 취하는 게 아니다. 뭔가를 이뤄내기 위해 음악을 도구로 사용하기도 한다. 편하게 음악을 배우거나 재능을 타고 나서 위인이라고 할 수 없다. 두다멜도 음악을 할 수 없는 환경에서 했다고 하지만 다른 명지휘자도 마찬가지다.


“당시 소녀원에는 수녀교육을 받은 아이, 음악교육을 받은 아이, 일반 교육을 받은 아이 등 세 부류의 아이들이 있었다. 이들과 함께 생활했기 때문에 소녀원의 분위기는 좀처럼 통제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비발디는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연주회를 경험하게 함으로써 아이들을 집중시켰다. 통제하기 힘든 단체 생활을 음악을 통해 극복한 예는 요즈음에도 많이 볼 수 있다. 비발디도 당시에 이런 방법을 썼고, 그것은 자신에게도 커다란 득이 되었다.”(p.19)


콰르텟엑스도 지방분교를 찾아다니며 공연을 가지고 있는데...


진정한 감동을 느끼려면 그렇게 가야한다. 음악을 들으려고 준비한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음악은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지방분교를 찾아다니며 느낀 감동을 통해 많이 배우고 있다. 이렇게 순수한 사람들, 음악을 쉽게 접할 수 없는 사람들이 연주를 보고 감동을 받아서 음악을 친근하게 느낀다. 이것이 대중화다. 요즘도 계속하고 있는데, 한 달에 두세 번 가서 연주한다. 장애인 복지관에도 많이 가는데, 그 분들에게 고맙다고 얘기하고 싶다.



비발디의 Op.3-6은 지하철 환승할 때, Op.4은 라디오시그널 등 클래식은 우리의 일상 곳곳에 포진해 있다. 화석이 아닌 현재진행형인 우리 안의 클래식이 되기 위해서는?


‘관심’이다. 지하철에서 듣고 별도의 음악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클래식이라고 생각 못하고 말이다. 게임에도, 영화에도 멋진 클래식이 나오는데, 왜 따로 생각하는가 말이다. 그걸 일깨워주는 것이 중요하다.


혹시 통화연결음은 어떤 음악인가.


쓰지 않는다. 전화를 해서 듣는 사람에게 음악을 추천하는 것 같아서 (통화연결음을) 안 한다. 시야를 좁힐 것 같아서 가급적이면 피한다.


영화 이야기가 참 많다. 영화도 실제로 꽤 좋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호로비츠를 위하여>에도 참여했고. 영화에 활용된 클래식을 안다면, 영화보기가 더 풍성해질 것 같다. 조윤범만의 영화보기가 있다면.


영화는 오늘날 이 시대의 가장 훌륭한 대중예술이다.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는 동시에 (영화를) 어떻게 만들었는가를 유추하면 더 잘 볼 수 있다. 영화에서 정말 명장면이 나오면 어떻게 찍었지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음악 들을 때도 어떻게 만들었는지 생각하면 그것이 가장 훌륭하다. 건물도 설계도를 유추해 낼 수 있다면 더 좋고.

음식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맛있다, 맛없다’를 넘어 어떻게 만들고 다른 집과 어떻게 다를까를 생각하면 미식가가 될 수 있다. 미식가가 돼야 하는 이유는 남들보다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먹으면서 즐길 수 있느냐, 그냥 채우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모든 것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예술가가 해야 할 일이다.


존 윌리엄스 얘기를 하면서 부러움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음악과 영화의 절묘한 앙상블을 이룬 윌리엄스가 당대의 최고 감독들인 스필버그, 루카스 등과 작업한데 대한. 그처럼 함께 작업하고픈 영화감독이 있다면.


아직까지는 영화감독님과 함께 작업할 레벨은 아닌 듯싶다. 대신 존경하는 감독님은 있다. 봉준호, 박찬욱, 최동훈 등 이런 분들의 영화를 무척 사랑한다. 외국 감독 중에는 웨스 앤더슨, M. 나이트 샤말란이 그렇다. 그런 분들과 동시대 살고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나치공조혐의나 파가니니가 나폴레옹을 위해 <나폴레옹 소나타>를 작곡하는 등 음악도 권력의 선전이나 통치 수단으로 활용된다. 어떻게 생각하나.


권력이든, 기업이든, 음악을 이용해야 하는 것은 맞다. 정말 위대한 예술이니까. 문제는 도움을 받아놓고 그걸 깔보는 것이 문제다. 히틀러는 바그너를 이용했지만 존경했다. 역사에서 이용을 당했다니까 문제가 되지만. (음악을) 적절한 곳에 사용해야 하는 것도 맞지만, 그렇게 권력의 통치나 선전 도구로 사용된 경우도 많다.


조윤범, 나만의 스텝으로


조윤범을 일컫는 레떼르가 있다. ‘클래식계의 뉴 아이콘’ ‘음악계의 괴물’. 그만큼 음악계 뿐 아니라 문화․사회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다는 얘긴데, 그 관심 어떤가.


좋기도 하고 부담스럽다. 점점 알아보는 사람이 늘어나니까 아무 것이나 입지도 못하고, 아무렇게 행동할 수도 없다. (웃음) 가게를 들어가서 서비스가 왜 이러냐고 했다가도, 내 팬이고 이러면 굉장히 조심스러워 진다. 진짜 그런 경우도 있었다. (웃음)



파가니니는 젊은 여인들을 실신시키기도 했는데, 그런 경험 혹시 없나?


실신해 주면 좋지. (웃음) 사실 많은 예술가들이 스캔들 속에서 살아간다. 예술가들 전기를 보면 그렇다. 그래도 누구나 그랬던 것도 아니고, 그건 (예술 활동에) 많은 방해가 된다. 가급적이면 올바르게 살아가면 좋지 않겠나.


진짜 이 책을 봐도 위대한 음악가들은 스캔들도 좀 일으키고, 사랑도 뜨겁게 해야 할 것 같다. 대신 인간적이기도 하다. 조윤범의 사랑 스타일은 어떤가.


한때, 결혼 반대주의자였다. 왜냐면 위대한 예술가들의 전기를 읽다보면 그런 느낌이 든다. 결혼하면 안 되는구나. 행복하게 산 사람들이 많지 않구나. 그런데 이번 작업을 하면서 작곡가들을 만나고 보니 공통점이 있더라. 결혼해서 행복하게 산 사람들이 몇 명 있는데, 공통점이 있다. 뭔지 아나?
(모르겠다.) 유머감각이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았다. 이게 정답이구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희망이 보이는구나. (웃음)

베토벤이 헨델에 바친 헌사처럼, 조윤범이 헌사를 바치고 싶은 음악가가 있다면.


워낙 많다. 책을 쓰고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데, 다 존경한다. 강의를 준비하고 계획할 때, 포기하고 싶은 사람도 있었다. 인생도 짧고 알려진 얘기도 없고. 그럴 경우, 두 사람을 한꺼번에 다뤄야겠다고 생각했다가도, 그 사람 일생을 읽고 찾아보면 하나같이 파란만장했음을 알 수 있었다. 정말 한편의 드라마다.


바흐가 아니었다면 비발디는 역사에 묻혔을지 모르고, 바흐도 멘델스존이 아니었다면 잊힐 수도 있다고 했다. 그만큼 후배 작곡가들의 역할이 새삼 중요한데, 대중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콰르텟엑스가 꼭 언급하고픈 음악가가 있나.


많다. 1권에서 코르볼트는 클래식 전문가는 많이 알지만, 어릴 땐 나도 몰랐다. 연주해보고 나서 정말 대단했구나 싶더라. 그러나 그렇게 알리는 것도 시기․유행을 타야 한다. 클래식은 서양이 원조라고 생각하면서 우린 변두리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본에서 유행한 뒤 우리나라로 들어온 경우가 많은데, 꼭 그래야 하나 싶다. 우리가 발굴해서 되팔면 어떨까. 그래야 선진국이다.


굳이 그런 사람을 꼽자면, 대중화되지 않은 작곡가라고 하면 되겠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나 바그너의 후기음악들. 유명 작곡가라고 해도 다 알려지지는 않았다. 보물임에도 쉽게 대중에게 다가오지 못한 경우도 있다. 개인적으로 『조윤범의 파워클래식』은 좋은 작업이었다. 책 쓰고 강의하는 것도 직업이 됐지만, 이렇게 즐거운 일을 한다는 게 보람이 있었다.


에필로그를 통해 ‘전달자’의 역할을 강조했다. 지루하지 않고 즐겁고 행복한 음악을 전달하기 위해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은.


다른 매체에서 많이 배운다. 애플의 스티븐 잡스는 그야말로 전달자다. 아이팟 등을 통해 음악을 전달시킨 사람이다. 세상에 창조는 없다. 무에서 유로 만드는 것은 신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인간은 창조를 한 역사가 없다. 전달도구를 썼을 뿐이다.

음악도 다른 매체에서 많이 배워야 한다. 왜 사람들의 필수품이 됐나를 확인한다면 클래식도 더 발전할 수 있다. 새로운 것이 나오면 의무라고 생각한다. 음악 하는 사람이라고 왜 관계가 없겠나. 예전만 해도 음악 하는 사람들은 인터넷과 관련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걸 이용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 정치인․기업인․기술자들만 취해야 하는 것 아니고, (음악 하는 사람들도) 새 기술을 빨리 활용해야 한다.


콰르텟엑스가 잘 알려지지 않은 곡을 대중화하기 위해, 클래식음악에 제목을 붙였다. 논란도 있지만, 계속 밀어붙이고 있다. 음악에 제목 붙이기, 좀 더 설명해 달라.


처음 반감을 가진 사람도 많았다. 그래도 연주가나 애호가들이 자신만의 느낌을 받아서 (클래식음악) 제목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목을 붙이면 역으로 순수하게 접근할 수 있다. 누구나 생각하는 머리가 있다면, 제목을 붙이는 것은 그 클래식음악을 위한 매개체를 주는 것과 같다.


“모든 음악에 제목을 붙여주기 바란다. 그런 제목을 전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음악을 듣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익숙한 곡은 더 자주 듣게 되고 또 쉽게 즐길 수 있지만, 처음 듣는 곡은 그러기가 쉽지 않다. 음악적인 지식이 없어서가 절대 아니다. 이런 현상은 음악 전공자나 애호가들도 자주 겪는 일이기 때문이다. 생소한 곡은, 말 그대로 생소하다. 그럴 때 음악의 제목을 붙일 생각을 하고 음악을 들으면 효과가 탁월하다.”(pp.306~307)


관심 영역이 꽤 넓다. 조윤범의 목표는 뭔가.


관심을 갖고 할 수 있는 분야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라도 하고 싶다. 관심분야를 끝없이 넓혀가는 거지. 몸이 하나라서 참 힘들긴 하다. 새롭게 쏟아지는 기술도 한 두 개가 아닌데 다, 다 하려고 하니까. (웃음) 직업이고 의무감이지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누가 하라고 해서 그리 된 게 아니고 관심 분야가 많다보니 그렇게 된 거다.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은 호기심이다.
(요즘 꽂힌 건 뭔가) 최근에 꽂힌 건 아이폰이다. 손에서 놓질 못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팔이 저리고, 누워서 만지작거리다 놓쳐서 얼굴을 다치기도 했고. (웃음)

악기를 배우고 다루는 일. 음악이라는 멋진 예술을 경험하기 위한, 삶의 즐거움 하나를 덧붙이는 일이 아닐까 싶다. 특히 아이에게 악기를 쥐어주는 것,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 아닐까 싶은데, 악기를 배우는 것에 대해.


악기는 결국은 중급으로 가는 것이다. 어려운 일이지만, 중급으로 가기 위해 기본교육에서 충분히 제공한다면 마냥 어렵진 않다.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그것을 취한 사람들이 자기만의 고급 난이도라고 홍보하면 안 된다. 그러면 일반 사람들이 올라오지 못하는 벽이 생긴다. 전문가들도 처음에는 무작정 시작했을 것이고. 나는 악기가 엄청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할 필요도 없고. 지금이라도, 누구나, 충분히 뭔가 할 수 있는 것이 악기다.


콰르텟엑스의 올해 목표와 계획이 있다면.


올해는 팀을 재정비하는 시기다. 이른바 ‘빅3’에 도전해보려고. 차이코프스키, 브람스, 슈만을 연주할 계획이다. 파워클래식도 보강하고. 아이폰과 관련된 초특급 프로젝트도 있다. 어쨌든 팀의 내실을 다지기 위해 연습 시간을 늘리고 연주자로서 해야 될 기본보강 작업을 차분하고 깊이 있게 할 예정이다.



그리고...

클래식에 문외한이었던, 한때 잠 오는 음악이라고 치부했던 나는, 언제부터인가 달라졌다. 버티고 견디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 된 시대에 살아남기 위함일까. 어떤 곡인지, 누구의 것인지 몰라도, 클래식으로 종종 몸과 마음을 감싼다. 마음이 왠지 놓인다. 시간을 버티고 견뎌낸 음악으로부터 배우기? 그저 흘려들어도 좋을 만큼의 농담이고, 이젠 클래식이 마냥 낯설지만은 않다. 들으면 된다. 만나면 된다. 직접 행한 임상실험의 결과다. 그렇게, 클래식으로 살아남기는 계속된다. 가끔은 함께 듣고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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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동 로망.

지금 한국을 뒤덮은 투기 따위가 아닌 주거의 공간이자, 삶의 공간으로서의 부암동 말이다. 그곳에 집을 소유하고 싶은 게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이 활동하고 안식할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커피 내음 물씬 풍기는 커피하우스라면 더욱 좋겠고.

꼬불꼬불 뒷골목이,아기자기한 골목이 정겨움을 더해주는 동네가 부암동이다. 낮고 소담해서, 사람을 짓누르고 압도하는 건축이 아닌 생을 감싸주는 듯한 뉘앙스의 집이 숨을 쉬는 동네. 골목 끝에는 미술관이 있고, 재미나고 희한한 말풍선처럼 각자의 개성을 뽐내는 작은 가게들이 자리한 곳.

아, 그런 동네에서 커피를 굽고 따른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암동에 들릴 때마다 작은 소망이 꿈틀댄다. 서울에 살고 있는 동안이라도, 나는 최소한의 소품과 수용 가능한 식물로 부암동에 작은 공간을 꾸미고 싶구나! 소셜 스페이스의 전초 기지. 스멜스 귯~ 하는 커피가 움텄으면 하는 그 동네, 부암동.

부암동, 사는(Buy) 게 아닌 사는(Live) 동네였으면 참 좋겠다.
내 '부암동 로망'이다. 당신도 부암동 골목을 돌다보면 그런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이 가을, 부암동 골목을 돌아보면,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게다. 아래는, 지난 봄, 부암동 골목을 누빈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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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동.
이십여 년 전, 멋도 모르는 촌놈. 부암동 외삼촌댁에서 잠깐 서식했다. 삼촌을 졸라 마련한 노가다(막노동) 현장이 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삼촌댁은 하숙집이나 다름없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저녁에 돌아오는 생활. 지쳐 쓰러지면 그 뿐. 동네를 들여다볼 틈, 돌아다닐 엄두, 당최 없었다. 더구나 당시 촌놈에게 서울은 명동, 종로, 신촌과 같은 유흥과 환락이 휩쓴 뻑적지근한 풍경이 지배했다. 부암동? 처음 발 들여놓은 동네의 고즈넉한 풍경은, 촌놈의 레이더를 자극하지 못했다. 내 첫 번째 부암동의 기억. 하림각만 오로지 오롯이(?) 서 있는 가난한 기억. 

다시 부암동. 
커피 만드는 사람인 내게, 부암동은, 일종의 성지다. 전통의 커피 명가, ‘클럽 에스프레소’가 있다. 부암동에 향긋한 커피향을 날리며, 사람들을 행복한 커피의 세계로 인도한 곳. 더불어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최한성(이선균)의 집으로 나왔던 ‘산모퉁이’도 있다. 풍경 하나만큼은 작살이다. 이후 부암동, 커피 향이 조금씩 더해졌다. 커피하우스들이 하나둘 둥지를 튼 까닭이다. 자본의 증식을 위한 커피가 아닌, 여유와 사유를 위한 커피가 있는 곳, 부암동이다. 

또 다시 부암동.

부암동을 찾았다. 이유가 있었다. 아주 특별한 산책. 『오!!! 멋진 서울 : 서울산책자와 떠나는 매력만점 120곳 탐방』(박상준 글․사진|웅진리빙하우스 펴냄) 출간기념 저자와 함께하는 부암동 탐방의 시간. 타이틀 하여, “그대, 아직 서울을 안다고 하지 말아요.” 그래, 서울의 속살이 어깨 너머 흘러내린 어느 봄날의 오후. 부암동을 다시 찾아 나선 이유. 아는 사람은 안다는 부암동의 매력과 속살을 살짝 엿보고 싶었다. 내 가난한 부암동의 기억에 영양분을 보충해 주고픈 것도 한 가지 이유. 


저자 박상준.

역시 촌놈 출신으로, 이대역 사거리 근처에 사는, 그래서 ‘이대 사는 남자’. 12년째 살고 있는 서울은, 그에겐 ‘밥’이란다. 서울은 이젠 그의 밥줄이 됐으니까. 이 책에 앞서 지난 2008년, 『서울 이런 곳 와보셨나요? 100 : 당신이 몰랐던, 서울의 가볼 만한 곳』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니까, 저자는 서울내기들이 몰랐던 서울의 속살을 알려주는, 혹은 서울을 알고 싶은 이들의 호기심을 풀어주는, 민간 ‘서울 해설사’ 혹은 ‘서울 산책자’ 되시겠다.

사실 그도 그렇게 될 줄 몰랐다. 길을 나서니 서울이 자꾸만 민낯을 내밀고 새로운 말을 걸어왔단다. 서울과 사랑에 빠진 남자, 박상준. 서울을 걷고 서울 사람들을 만나며 에너지를 얻는다. 그는 이리도 말한다. “길은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또 다른 표정을 드러냈다.”(p.9)


길.
그렇게 길과 만난다. 오해마시라. 박정아의 연인 길, 아니다. 박상준과 함께하는 길이다. 아마도 부암동은 내게 이전과 또 다른 표정을 지으리라. 서울 산책자가 부암동 주민센터 앞에서 모인 길동무들을 이끈다. 파스타가 맛있다고 한 ‘오월’을 끼고 오롯한 옛 정서를 탐하기에 좋은, 외려 샛강처럼 열린 보은마트 옆 음산해(?) 뵈는 골목으로 향한다. 그의 심상의 길과 통한다는 그 골목. 더도 말고 덜도 마는, 그저 골목. 그는 2년 전부터, 부암동이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동네가 됐단다.

“부암동을 좋아한다. 그 빛바랜 색감이 만드는 낡은 정서가 좋다. 걸음을 뗄 때마다 들고나는 길바닥의 두툼한 시간이 사랑스럽다. 서울에는 많은 동네가 있고 저마다의 색깔을 갖지만 내게는 어느 곳보다 부암동의 은빛이 명징하다. 마음에 갈무리한 ‘우리 동네’가 있다면 아마도 이런 모습이겠지.”(P.21)



70~80년대가 훅~
다가온다. 꽃과 잎, 혹은 나무들이 담장 밖으로 빼꼼 나와 눈인사를 건네고, 골목에 살포시 내려앉은 꽃잎이 내 발걸음을 환영한다. 박상준은 이 골목이, “4월에 가장 좋다”고 알려줬지만, 5월이면 어떻게 또 다른 달이면 어떠랴 싶다. 분명,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를, 내일 또 다를 길이니, 매일매일 달라지는 길이 궁금해졌다. 언젠가 ‘초속 5센티미터’로 떨어지는 꽃잎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 속도로 살아야,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나지막한 콧노래를 흥얼흥얼.
다정한 연인이 손에 손을 잡고~♪ 부암동 길동무 가운데 부부가 있었다. 서로의 존재를 느끼며 골목길을 거니는 풍경. 꽃만 아름다우랴. 사람도 꽃만큼 아름답다. 그러고 보니, 골목길은 늘 사랑을 품고 있다. 떠올려보라. 골목길에서 나눈 키스. 안 해봤다고? 그렇담, 연애 좀 더 해보셔야겠고.

‘골목길’이라는 노래도 떠오른다. 이 골목길도 얼마나 많은 사랑의 풍경을 품고 있을까. 골목길에게, 곳곳에 보이지 않게 자리하고 있을 사랑의 흔적, 사랑의 기억을 물어보고 싶어졌다. 더불어 문득 골목길이 되고 싶어졌다. <사랑니>에서 인영(정유미)이 했던 말을 약간 바꿔서. ‘다시 태어난다면 골목길이 되고 싶어.’


 

골목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골목 옆길, 사유지 길로 살짝 접어든다. 뭐, 괜찮단다. 사람 살기 좋은 동네, 부암동이니까. 한때 잠시 서식했던 강남의 어느 사유지 길엔 아주 무시무시한 경고가 붙어 있었다. ‘절대’라는 수식어까지 붙여가며, 타인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했던 강남의 그 경고문구. 참 많이 다른 풍경.



광장.
무계정사길을 품은 골목이 확 넓어지더니 펼쳐진다. 안평대군, 몽유도원도, 현진건 집터까지.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이런 데가 있었다니...” 박상준이 화답한다. “어렵게 오시라고, 쉽게 찾으면 재미가 없잖아요.” 아무렴, 길을 쉽게 열어주면 흥미가 떨어지는 법이다. 

“안평대군 이용 집터(무계정사 터)로 가는 무계정사길은 호젓하다. 무계정사는 안평대군이 꿈에 본 무릉도원과 닮았다 해 정자를 지은 장소다. 그 꿈속의 풍경을 화폭에 담아낸 것이 안견의 「몽유도원도」였다. 「운수 좋은 날」「무영탑」등을 쓴 소설가 현진건의 집도 그 곁에 있었다.”(p.21)



“부암동 지키기 500평 주차장 반대”

빈터만 덩그러니 남았다지만, 골목길 곳곳에 나붙은 주차장 반대 플랜카드가 선뜻 이해가 간다. 그 터에 공영주차장을 조성하겠다는 종로구청의 뜻에 반대하는 주민들. 주민이 아닌 나라도 한 표 던지겠다. 사람의 발이 아닌 자동차의 바퀴가 장악하게 될 부암동은 왠지 빈정 상한다. 반대마저도 시적이다. 동네 주민들은 다들 시인이련가.

키낮은 집 어깨맞댄 좁다란 골목길
둥그런 담 굽어드는 달큰한 속삭임
복사꽃 향 빚어가는 부암동 사람들



산책의 기술.

다시 뚜벅뚜벅 발걸음. 산이 우뚝, 그 모습을 드러낸다. “서울이 다른 대도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산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대도시가 많지 않다. 그렇게 서울은 고개를 들면 산이 보이는 게 지형적인 장점인데, 최근 건물이 높아지면서 서울의 장점이 많이 없어지고 있다. 부암동이 좋은 이유는 사방에 산이 둘러싸여 있다는 거다. 북한산, 북악산, 인왕산 등이 부암동을 둘러싸고 있다. 산책의 기술이 별게 아니다. 먼 산을 보고 걸으면 좋다. 특히 오감을 열어야 한다.”


느껴라.
도시는 회색빛이란다. 회색빛 앞에선 나의 오감을 열고 싶지 않다. 미적 감수성을 해치게 될 테니까. 하지만, 부암동에선 다르다. 내 모든 세포를 열고 싶다. 눈으로 보고, 냄새를 맡는다. 새소리․바람소리, 귀가 즐겁다. 발자국 소리, 숨소리까지도. 나를 간질이는 모든 것들.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라면 더욱 좋겠구나. 아, 좋다. 나는 살아 있구나. 산책은 오감을 여는, 오감을 열어야만 온전히 즐길 수 있다. 오감이 즐거우면 감탄할 것이고, 감탄할 일이 많아지면 행복하다.



예스럽다.

‘車길 없슴’ ‘감사합니다 차고 앞’. 나무에 새겨진 이 문구들이 부암동의 분위기를 대변한다고나 할까. 예스럽다. 이렇게 동네를 장식하고 있는 것들도 그렇지만,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렇다. “개발제한구역이나 군사보호구역인 것이 호재(?)로 작용한 셈이다.” 토건국가의 막장개발 욕망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축복이었던 거다. 개발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개발하고, 사람과 어떻게 조화시킬지가 우선시돼야 한다는 거다.



자연을 존중한다.

이것 역시 부암동을 대변한다 하겠다. 자연을 무턱대고 자르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차라리 인공을 양보한다. “벽에 나무가 살아 있으니 벽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런 모습이 동네 풍경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요소라고 본다.” 그렇다, 부암동은 조화를 찾는다. 혼자 잘난 척 않는다. 4대강? 거기엔 자연이 없다. 아니, 자연의 소리를 묵살한다. 인간 혼자 삽질한다. 물, 바람, 흙, 물고기 누구에게도 묻지 않았다. 부암동 주민들을 청와대로! 

 

자하미술관.
지금까지 따라온 길, 자하미술관 가는 길이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서울에서 가장 높은 미술관. 하지만, 모르는 사람은 결국 자하미술관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계속 오르막이다 보니 지친다는 게다. 지금까지 이미 10명 중 5명은 내려갔고, 이 이정표를 발견하지 못하면, 여기 건물이 미술관이겠거니 하다가, 실망하고 남은 5명 가운데 3명도 다른 길을 찾아 나설 거란다.

 

마지막 오르막.

약간 과장해서 곰에 버금가는 크기의 개 -이름이 ‘누루’란다-가 컹컹 짖어준다. “좀 섭섭하다. 날 수차례 봤는데도 아직도 저렇게 짖어댄다. (웃음) 여기서 남은 2명 중 1명이 또 내려간다. 같은 골목이라도 언제 오느냐에 따라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데, 그게 참 매력이다.” 하지만, 여전히 오르막은 이어진다. “하이원 스키장의 상급에 버금가는 경사진 오르막 같다”는 속삭임도 바람에 나부낀다.




“서울에서 제일 전망 좋은 미술관”

아마 그랬다지. “전망 좋은 미술관은 자신에게 이르는 길을 쉽사리 열어주지 않는다.”(p.24) 그리 높은 곳도 아니건만, 모르면 심리적으로 거리감이 멀게 느껴질 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자하미술관은 그 길의 꼭대기에서 사람을 밀어내고 끌어당긴다.”(p.24)

어쨌든 이 하얀 미술관, 반갑다. 1층 주전시실. 좋다. 천장은 높고, 특히 유리로 창을 내 채광도, 시쳇말로 죽인다. “이곳을 종종 찾는 이유는 꼭 미술품 때문만은 아니다. 올라가 보면 알 거다. 부암동 정경이 다 보이고, 보고만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공간이다.”


“인왕산의 턱밑에 뿌리내린 자하미술관은 ‘서울에서 가장 높은 미술관’이라는 수식이 마음을 끌었다. 드라마 「떼루아」의 촬영지라 했다. 극중 안지선(유선 분)의 집이었다. 2008년 6월에 개관했지만 그해 겨울 드라마 촬영으로 휴관했다.”(P.21)




진짜는 2층이다.

1층 옆으로 나가면, 2층으로 향하는 바깥의 벽돌계단이 있다. 2층 2전시실 바깥의 남은 부지에는 좁은 길을 품고 잔디가 자란다. 아, 탐스럽다 싶은데, 약간 고개를 돌리니 풍경작렬이다. 이건 직접 가보지 않고 얘기가 안 된다.

“잔디 위의 망중한이다. 북악산의 가파른 산세가, 너울대는 북한산의 비봉능선이 마주한다. 묵언의 수행처럼 무언의 대화가 공기 중에 떠다닌다.”(p.27)

미술애호가 강종권 관장님이 직접 설계하고 설계한 구조란다. 이윤보다 문화의 공유가 주된 목적이라고 했다. 작품 전시도 상업성보다 장래성과 실험성에 비중을 둔다는 자하미술관. 2층 전시장 통유리를 통해 바라보는 풍경도, 그것 자체로 작품이다. 

그리고 자하미술관에서 보았던, 가장 인상적인 어떤 산책.














골목길 풍경의 의외성.

골목길은 의외성이 지배한다. “돌아다니다 보면 자기만의 습관이나 버릇이 생기는데, 나는 동네를 가면 무조건 올라간다. 부암동의 경우, 혼자 골목길을 따라 가면 정말 괜찮은 풍경 볼 수 있다. 골목길 다니면 그렇다. 저 모퉁이를 돌면 굉장한 게 나타날 것만 같다. (웃음) 그러면서 또 모퉁이가 나오고, 그렇게 돌고, 또 나오고... 2년 동안 여기도 참 자주 왔었는데, 지난달 왔을 때는 깜짝 놀랐다. 내가 알던 것이 다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같은 길을 걸어도 어느 계절에, 어떤 시간대에 오느냐에 따라 다르다. 궁상맞게 저녁에 혼자 온 적도 있지만, 친구들에게 어떤 설명보다 직접 데려오는 것이 낫다.”

갑자기 떠오르는 이승환의 노래, <너를 향한 마음> “...영화 속에서나 일어나는 일일까♪/ 저 골목을 돌면 만나지려나~♬” 행여 모퉁이를 돌다가 우연히 만나는 첫 사랑. 너무 진부한 클리셰지만, 두 사람이 어디서든 살아있다면, 7784만분의 1이라도 만날 수 있을 확률. 한때는 그것이 부러웠다.

“이 동네만 좋은 것 같아도, 그렇지 않다. 책을 다시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내가 사는 곳은 이대 부근의 연미동 골목인데, 3~4년 살았다. 어느 날 돌아다니다 보니, 이런 재미난 골목이 있었구나, 싶더라. 내가 사는 동네인데 정말 몰랐구나. 자신이 사는 동네를 돌아다녀라. 직장 출퇴근하느라 지금까지 몰랐겠지만, 한 번 돌아다니면 새로운 풍경이 보일 거다.”

 
누군가는,
집에서 음식을 시켜먹고, 어떤 연인은 부암동을 찾아 사진을 찍고 그들만의 데이트를 즐긴다. 여기는 부암동이다. 천천히 무계정사길을 내려왔다. 부암동 주민센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다시 다른 길을 오른다. 이번에는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란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

윤동주 시인의 시가 곳곳에서 흩날리는 공원이다. 「자화상」이 있고, 「코스모스」가 펼쳐지며, 「서시」를 읊으며, 「별 헤는 밤」과 「눈」 등을 만날 수 있다. “공원이 화려하진 않지만 사방으로 서울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저녁에는 특히 야경이 죽인다. (웃음)


이승환.
약간 엇박자이긴 해도, 한편으로 재미난 풍경이다. 정확한 이유야 모르겠지만, 이승환 씨 팬들이 꽃을 조성하고 포토 존을 만들었단다. 콘서트도 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윤동주의 흔적.
왜 윤동주일까. 윤동주가 이곳에서 시상을 받았다. 그의 하숙집이 이 근방에 있었다. 아마도 이곳에서 별을 헸을지도 모를 일이다. “「서시」는 누상동 하숙 시절에 쓴 시다. 그는 1941년 5월 연희전문학교 기숙사를 나와 옥인동 아래 누상동에 하숙집을 얻었다. 소설가 김송의 집이었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청운공원의 제일 높은 자락에 자리한 것도 그런 까닭이다. 언덕에서는 청운동과 옥인동, 누상동을 잇는 풍경이 차례로 이어진다.”(p.627)



윤동주 시비.

정면에는 「서시」가, 뒤편은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한 첫 해에 쓴 시, 「슬픈 족속」이 새겨져있다.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의미심장한, 서정을 배제한 의기로 충만하며,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가슴 아린 현실이 서렸다는 그 시가 말이다. 그렇게 윤동주의 성찰과 결기를 품고 있는 시비. 아마도 뿌듯하고 충만한 자존감으로 우뚝 서 있겠지. 영원히 윤동주와 함께.



아름다운 풍경.

부암동 쪽으로 서울성곽을 따라 걷는다. 친구로 보이는 여성 두 명이 성곽 위에 올라 도란도란 이야길 나누고 있다. 그림 같은 풍경. 햇살 받은 모습이 그랬다. 그 아래서 함께 풍경을 바라보지 못한 채 놓여있던 구두가 약간 안쓰럽긴 했지만.



초록지붕의 집.

계속 길을 따르는데, 눈에 띤다. 아, 예쁘다. 감탄이 튀어나온다. 주근깨 빼빼 마른 우리 ‘빨간머리 앤’이 살았다는 초록지붕도 살짝 떠오른다.(주. 지난 4월로 출간 102주년이 된 『빨간머리 앤』의 원제는 『초록지붕의 앤』이다.) 드라마 <찬란한 유산>을 찍었단다. “북악산을 내 집 앞마당처럼 볼 수 있는 집이라 참 좋아했다. 그런데 <찬란한 유산> 때문에 만천하에 알려져서 매력이 뚝 떨어졌다. (웃음)” 드라마를 보지는 못했지만, 저런 곳에 사는 주인공이었다면, 딴 건 몰라도 마음씨 하나만은 끝내줬으리라. 물론, 아니면 말고.

 

이젠 막바지다.
윤동주의 시가 아로새겨진 시멘트 계단을 지나 골목길을 타고 내려왔다. 분홍색 꽃잎이 눈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영화 <봄날은 간다>가 떠올랐고, 상우(유지태)와 은수(이영애)가 마지막으로 만난(아마, 그 이후 둘은 다시 만나지 아니했을 것이다) 장면이 떠올랐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백설희의 노래, ‘봄날은 간다’도. 연분홍 치마를 떠올리게 한 꽃잎들 때문이었을지도. 공식행사는 그것으로 끝이 났다.



비공식.

박상준이 커피를 한 잔씩 주겠단다. 유후~ 아지트가 있었다. 깜짝 놀랐다. 아주 자그마한 카페. 이름하야, 유쾌한 황당. 부제는 부암동 산책안내소. 5월 초, 이 커피하우스를 인수했단다. 단골에서 주인장으로. 황당한 쥔장의 유쾌한 변덕에 따라 메뉴는 변화무쌍할 것이란다. 부암동을 담고 싶다면, 이곳에 잠시 들러 부암동 산책의 기술을 전수 받아도 좋겠다. 부암동은 쉬이 변하지 않을 것이다.

“부암동이 삼청동처럼 카페와 레스토랑의 거리로 변하지 않을 거라 믿는 이들은 산으로 숨어드는 그 지세에 기대를 건다.”(p.24)


그는 앞으로 정기적으로 사람들과 함께 산책하는 기회를 가질 것이라고 했다. 함께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나누고 싶다면, 부암동에 마련한 아지트 ‘유쾌한 황당’(☏ 070-8658-3448)과 인터넷 카페(http://cafe.naver.com/tourhwangdang)를 통하면 된다.

“가끔씩 독자들과 함께 걷는 기회를 만들어보고 싶다. 처음 만나서 낯선 얼굴들, 그러나 ‘서울’이라는 공통점으로 곧 친해질 이들과 함께 편안한 마음, 간편한 복장으로 서울을 산책하고 싶다. 그 길 위에서 서로의 서울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즐거우리라. 그날이 또 서울의 멋진 날이 된다면 어찌 아니 좋을까. 그날까지 나는 또 나만의 서울을 만나기 위해 이 도시의 어느 골목을 걷고 있을 것이다.” (‘시작하며’ 중에서)

 

『오!!! 멋진 서울』이 인상적인 것은, 박상준의 발걸음 속에 드러나는 서울의 진짜 얼굴이다. 감히 ‘진짜’라고 붙이는 게 조심스러운 일면도 있지만, 서울에 몸과 마음을 의탁해 있으면서도 서울을 모르는 서울 촌사람들에게 이 책이 유용하리란 것, 확신한다. 그의 발걸음에 녹아 있는 서울의 문화, 사람, 역사, 풍경 등이 그것을 방증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시간이 갈수록 변해가는 서울의 모습들도 담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뭣보다 이 책의 장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걸으면 완전 좋을 길이 꽤 들어있다는 것. 단, 이 책을 들키지 말 것. 애인을 위해 좋은 곳을 찾아다니며 사전답사 했다고 호방하게 말할 것. 아마도, “오!!! 멋진 내 애인”이라는 찬사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골목길에서 키스 세례도 충분히 받을 수 있다.  

나도 얼른 섭렵해야겠다. 그리고 말하련다.
자, 가자. 내 연인아. 당신을 위해 서울을 준비했다. 너에게 서울을 선물해줄게.
글을 읽는 당신에겐 좀 미안하다. 손발 좀 오그라들어도 참아주오. ^^;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잊지 않고 기억한다.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 중의 하나는,
너와 함께 나무와 잎이 우거진 길을 거닐 때라는 걸.

그래, 우리들이 있었던 시간.
그때, 우리들이 있었다.

우리 함께, 너의 학교 숲을 거닐자던 약속이 지켜지지 못한 것이,
내겐 여전히 아프지만, 나는 아주 간혹 혼자 숲을 거닐 때, 내 옆에 있는 너에게 말을 건다.
아, 숲이다. 니가 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그리고 이젠, 당신에게도 손을 내민다. 함께 숲을 거닐래요?
숲을 좋아하는 당신이라면, 더욱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숲을 좋아하게 될 거다.
당신이 있어 행복한 숲길이다. 숲길도 맥락과 관계에 따라 그렇게 모습을 달리하는 법.
특히 가을. 가을을 가을답게 즐기는 가장 눈부신 방법은 숲으로 들어가는 일이라 하지 않나.

내 마음이 허락한다면 가끔 나는, 당신에게 숲이 되어주고 싶다...
 
지난해 10월, 홍릉수목원을 찾았던 기록. 다시 거닐고 싶은 그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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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평한 세상에서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오는 것이 계절의 흐름. 그래서 지금, 누구에게나 완연한 가을. 떨어지는 낙엽을 보자면, 마음자리 보전이 필요한 계절. 깊은 숨을 쉬면 한 뼘씩 가을이 내 안으로 훅~ 들어올 것 같은 날씨가 잦은 시즌. 그런 가을에는 숲이 딱이다. 봄과 또 다른 숲의 속삭임이 내 귀에 캔디처럼 속살거린다. 향도 짙고, 빛깔도 안구를 정화시킨다.

왜 가을에는 숲이냐고? 여기 이 말, 인용하자. “가을을 가을답게 즐기는 가장 눈부신 방법은 숲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숲 안에 다 들어 있다. 빛도 어둠도, 청춘도 사랑도 가득하다. 가을 숲에 드는 순간 다 반짝인다. 우수수 흩날리는 나그네도, 바스락거리는 연인도, 푹신하게 둘러앉은 가족도 깨끗한 빛을 발한다. 숲이 가을에 더 아름다운 건 이렇게 눈부신 여러 길들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창문 맑은 날 하루 찍어, 마음 둔 이 손 잡아끌어 가까운 숲으로 들어가 보라. 여름내 얽히고설켰던 나무들, 비워내고 털어내는 인연들, 쌓이고 젖어 함께 내디딜 때마다 향기로워질 터다.”(한겨레 10월8일자)

숲에 들어간 본 사람은 알 거다. 아니, 숲과 교감해 본 사람은. 숲의 일원이 되어 본 사람은. 숲은 평화다. 도시와 일상의 폭압에 지친 이들에게 숲은 한줄기 바람이다. 누군가에게 숲은 스승이기도 하다. “숲에 기대어 사는 삶을 시작하면서부터 숲은 나에게 스승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의 가르침을 얻기 위해 내게 필요했던 것은 다만 더 나은 삶을 위한 기술과 기교를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김용규 지음 『숲에게 길을 묻다』 중에서)

숲에 발을 디뎠다. 10월18일, ‘산의 날’을 앞둔 17일, 홍릉수목원을 찾았다. 『주말이 기다려지는 숲속 걷기여행』(이천용 지음/터치아트 펴냄)의 저자와 함께 하는 숲속 걷기. 전날 밤 진짜 폭우가 내렸냐는 듯, 가을은 변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비를 머금고 말간 표정으로 반겨주는 숲. 그렇게 가을 숲을 찾았다. 아니 가을 숲이 내게로, 우리에게로 왔다. 자, 그렇게 숲과 교감한 기억, 함께 거닐어 볼까?


“숲속으로 햇살이 밀려올 때, 자연의 평화가 당신에게 밀려올 것이다. 숲의 바람은 당신에게 신선감과 생동감을 주며, 그때 당신이 가진 걱정은 마치 가을에 낙엽이 떨어지듯이 사라질 것이다.”  -존 뮤어(John Muir)- 

이천용 숲박사와 함께 한 숲길 거닐기


국립산림과학원에 들어선다. 곧, 홍릉수목원이 있는 곳이다. 오늘의 숲 해설가, 이천용 박사가 근무하는 곳. 심호흡 깊게 한번, 가을이 코를 통해 내 안으로 들어온다. 아, 그래 가을이구나.


이천용, 그러니까 숲박사가 함께 숲을 거닐 우리에게 인사를 건넨다. 연구직 공무원으로 숲과 문화를 연구하는 ‘숲과문화연구회’의 부회장을 맡고 있다. 이 책도 전국의 좋은 숲을 찾아 15년을 다닌 결과물이다. 일단 100년 이상 된 오래된 52개 숲을 담았고, 앞으로도 계속 이 작업을 계속 할 것이란다. 최근 숲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걷기 열풍을 따라 책이 예상 밖으로 잘 나가, 2쇄를 찍게 돼서 홍보차 나왔단다. 왁자한 웃음. 숲도 함께 웃는다.

“숨은 숲이 전국에 굉장히 많다. 지방의 마을 숲에는 역사가 없는 곳이 없다. 우리나라에는 소나무와 참나무가 제일 많은데, 한 20%씩 된다. 가장 많은 나무는 물론 소나무다. 느티나무 숲도 꽤 있는데, 은행나무는 집단성이 없어서 관리를 해 주지 않으면 숲에서 살 수가 없다.”

그렇다. 나무가 자라서, 우리가 아는 숲이 된다. 옛날에는 나무에 관심이 많았으나 지금은 숲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그것이 숲이 주는 어떤 효용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사람은 절대적으로 숲으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숲은 생태계를 지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떤 사람은 숲에서 살면 아토피가 없다는데, 살아보라. 아토피가 생기면 내가 변상해 주겠다. (웃음) 생물 뿐 아니라, 무생물도 숲의 일원이다. 공기, 물, 땅 등 과거보다 생각이 유연해지고 포괄적이 되면서, 무생물까지 함께 생각한다. 인간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생각한다. 과거에는 나무, 풀 등만 숲으로 생각했다.”



아무렴, 저 나뭇가지 사이로 들어오는 저 햇살도 숲이다. 이 모든 것이 숲의 일원이다. 목재 생산을 위한 곳만이 숲이 아니다. 인간의 산업적 필요에 의해 숲을 좁게만 봤다면, 이젠 인간도 숲의 일부임을 인정해야 한다.

“모든 문화는 숲에서 태동된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어떡하면 숲에 문화를 접목시켜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만들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서 동료들과 숲과문화연구회를 시작하게 됐고, <숲과 문화>라는 격월간 잡지를 만들고 있는데, 이를 지속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숲에 가면, 뭐가 있나 하고 땅도 쳐다보고, 하늘도 바라보고, 잎도 만져보고, 나무를 비롯해 무생물, 생물과 교감하면서 봐야 한다.”


그래, 그는 책머리에 이렇게 쓰고 있었다. “숲을 문화와 연관시켜 글을 쓰려면 소재가 무궁무진하다. 산림문화의 매력이 여기 있다. 그리고 숲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숨 쉬면 정신과 육체의 건강이 보장된다.”(p.8)


본격적으로 숲 탐방을 나섰다. 숲과 교감하기 위한 발걸음. 내 발걸음이 숲에게 어떤 해도 되지 않길. 숲과 내가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숲은 누구든 반긴다. 다만 숲과 대화하고 교감하는 과정에서 어긋나게 된다면, 숲은 대화를 멈출 뿐. 걷기에만 치중하지 말고 눈과 귀를 열면서 내 안의 신경세포를 깨울 것. 


위로 오르면서 휘어진 도토리나무(상수리나무) 앞. 이런 나무는 목재로 쓰지 못하고, 숯 등으로 소비된단다. 목재로 쓰려면 쭉 뻗어서 6m 이상 되는 나무여야 한단다. 그러니까, 이 정도 자라려면 40~50년이 돼야하는데, 눈앞의 돈에 늘 허물어지곤 하는 인간의 습속은 이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러함으로 인간은 결국 위험을 맞이한다. 부를 축적하고 유지하기 위해 거칠게 자연을 다룸으로써 우리가 맞이하는 위기. 멈춤 없이 성장해야 간신히 유지될 수 있는 미친 지금의 주류 경제체계. 언젠가 우리는 나무로부터 호된 불호령을 맞을 것이다.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면서 나는 최대한 눈과 귀를 열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러면 숲의 화음이 나를 감싼다. 사~ 서~ 솨~~ 짹짹… 바람과 나무가 서로를 애무한다. 바람이 나무를 건드리는 것인지, 바람이 지나가는 길에 나무가 서 있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나무와 바람이 몸을 부대끼는 소리가 도시 한 복판에서 억세진 마음을 위로한다. 새의 지저귐까지 화음을 맞춰서. 그 소리를 함께 들려줄 수 없는 것이 아쉽다.



홍릉수목원에는 야생화 개량종도 키우고, 요즘 관심이 많아 조경도 하는 구절초 등을 별도의 장소에서 재배도 한다. 숲을 가꾸기 위한 노력이면서 다양한 생태가 조화를 이루면서 살도록 하는 배려이리라. 아마도 인간 세상도 그러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세상에 잡초는 없다. 무명(
無名)은 없다. 이름을 모르고 있을 뿐. 인간 숲에도 차별이 아닌 차이를 인정하면서 생태계가 제대로 유지됐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남기고 왔다. 



이곳은 홍릉터다. 명성왕후가 묻혔던 곳. 그러다 1919년 고종과 함께 합장되면서 터만 남았다고 한다. 숲을 가꾸면서 명성왕후의 분노가, 한국인들의 상처도 조금씩 치유됐을까. 물론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일. 숲은 그렇게 테라피스트(therapist)다.


잣나무란다. 열매를 맺으면 이듬해에나 딸 수 있는. 이 숲 박사가 묻는다. 이 잣나무, 몇 년이나 된 것 같냐고. 얇고 작은 것으로 보아,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이 나무, 20년이 넘었단다. 가지가 있는 마디 하나가 1년인데, 나무가 별로 자라지 못했다. 잣나무는 그늘에서 자라는 음수인데, 옆에 다른 나무가 없고 햇빛을 받으면 쑥쑥 자랄 수 있는데, 그런 환경이 되지 못한 탓이다. 각 나무의 특성을 살려서 숲을 가꿔야 한다는 것이 이 숲 박사의 설명. 사람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러나 이 땅은 그런 개개인의 특성을 갖고 살게 하기보다, 획일적으로 사람을 다루고 네모난 상자에 넣어 키운다. 몰개성의 시대, 틀린 말 아니다.
 
 

다래나무다. 다른 나무를 칭칭 감아 올라 나무를 파이게 만든단다. 이렇게 다래나무가 파고 들어간 나무는 목재로 쓰일 수 없다. 물론 이곳은 수목원이니까, 목재로 사용할 이유가 없으니 그들의 애무 혹은 싸움을 그냥 놔두는 게다. 숲에서도 경쟁을 한다.

그러나 숲의 경쟁은 인간의 것과는 또 다르다. 숲의 생물이 벌이는 경쟁은, 수많은 이웃의 욕망이 충돌하는 수직의 공간에서 자기의 하늘을 확보할 힘을 갖기 위한 것이다. 인간들마냥 타자의 공간을 빼앗기 위한 것이 아니라, 비어 있는 공간에 내 존재 기반을 만들어내기 위해 자신을 키우고 변화시키는 경쟁, 즉 자신과의 다툼이다. 물론 이것은, 김용규 숲생태전문가의 얘기다. 



작은 계곡에 물이 졸졸졸 흐른다. 수량은 많지 않다. 어제 비가 온 까닭이리라. 이 숲 박사는 비가 그친 뒤 왜 계곡에 물이 흐르는지를 질문한다. 그러고 보니,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없다.

“물의 원천은 흙이다. 흙 속에 고체알맹이가 있고 그 공간에 물이나 공기가 차 있다. 토양 속 공간이 제대로 형성돼 있으면, 비가 오면 물을 담았다가 서서히 빠져 나온다. 그래서 계곡에 물이 흐른다. 물이 흐르고 그렇지 않고는, 흙이 물을 제대로 담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좌우된다. 숲이 우거졌다고 물이 많은 건 아니다. 토양이 제대로 역할을 하고, 숲이 적당해야 증발산 작용이 제대로 이뤄진다. 숲은 돈이 들더라도 제대로 가꿔져야 인간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산성비가 내리는 것도 토양의 중화작용이 약해져서 그런 거다.” 아하, 그렇구나.




삼나무, 편백나무 등 우리나라의 남쪽 혹은 일본에서 자랄 수 있는 나무들이 모여 있다. 시범적으로 심은 것이란다. 이곳에 뿌리를 내린 지 30년 이상 됐으나, 역시나 잘 자라진 못한다. 가늘고 허약해 뵌다. 그래, 원래 있어야 할 곳이 아니니까. 사람도 마찬가지일 텐데... 각자 있어야 할 땅과 하늘이 있는 법이다. 각자의 자리에 있지 못하고 탐욕과 불안에 사로잡혀 있는데다, 그릇이 되지 않는 자가 높은 곳에 있다 보니, 그 부작용이 심각하다. 일본에서 태어났다는 그 사람, 왜 서울에 있으면서 사람들을 괴롭히니? 응?




이천용 숲박사를 따르면서 우리 가슴속에는 숲이 조금씩 들어왔다. 숲친화 탐방이었다고나 할까. 자주 쉬면서 이 숲박사에게는 물론 숲에도 귀를 기울였다. 눈을 자주 돌렸다. 그렇게 마음은 평화를 찾아갔다. 이것이 숲의 힘인가.



숲과 하늘은 이보다 멋질 수 없는 앙상블을 보여줬고, 내 마음은 이미 구름을 타고 숲길 구석구석을 훑고 다닌 기분이었다.


숲에서 평화를 경험한 사람들의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볍지 않았을까. 그녀의 자전거가 내게 들어온 것 마냥, 숲이 내게로 들어온 그런 경험? 자연과 교류․교감하는 통로로서의 숲길을 거닐었기에. 


홍릉수목원에서의 숲속 걷기여행을 그렇게 끝났다. 비록 숲의 바람과 소리까지 건네지 못해서 안타깝지만, 그건 당신이 직접 숲으로 향해서 경험해야 할 몫으로 남겨두는 것도 좋지 않겠나. 영원히 소멸되는 건 아니지만, 그때만큼은 당신이 가진 걱정, 가을에 낙엽이 떨어지듯이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풀고 싶은 어떤 고민의 답을 얻어갈 수도 있겠지.

이 숲박사는 이렇게도 말했다. “사람도 세상도 점점 악해진다. 그 가운데 숲이 있다. 심신을 정화하고, 특히 아이들에게 좋은 영감과 건강을 주는 것이 숲이다.” 세상의 악은 바이러스처럼 퍼진다. 악의 점점 평범해진다. 악의 평범함. 악을 악으로 느끼지 못하도록, 세상과 사람은 서로를 직조한다. 발효가 아닌 부패되는 것이 또한 세상이자 사람이다. 영혼을 세척하고 세상을 덜 슬프게, 세상이 당장 썩지 않도록 만드는 방부제로서의 숲.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만큼에 비례해 숲도 점차 망가질 것이다. 그것은 자명하다. 문명의 역사에서 인간의 손길이 닿은 곳치고 타락하고 부패하지 않은 것이 있었던가.

숲이 더욱 망가지기 전에, 숲에 대한 애정을 품고 대화하고 머물러보는 것, 어떻겠나. 숲을 사랑하는 사람은 절대 악한 사람이 없다는, 그런 입에 발린 흰소리는 않겠다. 다만, 우리의 악함이 좀더 속도를 늦출 수 있다면. 그래서 세상과 지구의 부패를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다면. 숲을 빌려준 뒷 세대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면서.

숲을 거닐고 싶다면, 『주말이 기다려지는 숲속 걷기여행』을 권한다. 아울러, 숲에 대한 좀 더 인문학적인 접근을 하고 싶다면, 『숲에게 길을 묻다』(김용규 지음/비아북 펴냄)를.


참, 정상을 향해 치닫는, 산을 정복 대상으로 삼아 정상 점령을 목표로 하는 ‘등산’보다, 산을 관조하면서 거니는 입산, 숲과 길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숲 탐방을 권한다. 부디 숲에 가서는 큰 소리로 떠들지 마시고. 숲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훨씬 나을 터이니.

이천용 숲박사가 책에 적어준 말로 마무리를 대신한다.
“생명의 숲에 오심을 환영합니다.”



[예스24 채널예스 기고원문]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A. 말하자면, 나는 야구소년이었다.
야구를 잘했냐고? 선수였냐고? 워워. 일단 내 말부터 찬찬히 듣고 얘기하자.

내 기억이 닿는 한, 가장 먼저 접한 스포츠는 야구.
글을 읽기 시작한 때부터 소년은, 야구라면 무조건 읽었다.
집에 배달되는 스포츠신문(일간스포츠)의 야구부터 챙겨봤을 정도.

오죽하면 그 어린 나이, 소년은 야구를 스크랩했다.
그땐 고교야구가 지금과 달리 대세였는디, 고교야구를 꼼꼼히 챙겨 오려서 스크랩북에 고이 붙이는 수고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소년. 물론 프로야구가 대세가 되면서 옮겨탔다.

그러니까, 조그셔틀로 생의 기억을 최대한 돌려보면,
내 생애 최초의 Addiction은 야구였다, 야구.


B. 야구를 사랑한다면, 아이러브 Baseball.
방송 프로그램 홍보가 아니라, Baseball은 소년 시절의 거의 모든 것이었다.
내 사랑, Baseball.

학교가 끝나면 매일 같이 야구였다. 비가 오면 하늘이 미웠다.
아버지를 졸라 야구 장비를 마련하고 끝내 유니폼까지 맞췄다.
(어린이날 선물로 받은 회색유니폼에는 'LOTTE'라는 딱지가 떡하니 붙어있었다!)
프로야구를 보기 위해 가족들은 종종 구덕야구장을 찾았다.
와우, 야구장, 참 크고 멋있다. 소년에겐 야구장이 그랬다. 


한때 나는 동네야구계에서 군림(?)했다.
동네 형들이 '야구하기'를 그닥 좋아하지 않은 까닭에, 내가 왕고였다.
어린 동생들을 겁박(?)해 에이스 노릇까지 하면서 치고 달렸다.
물론 포볼공장 공장장이었다. 동생들은 투덜거렸지만, 끝까지 '쌩'깠다.

지금은 그런 모습 보기 힘들지만, 참 많이도 도망다니고 어른들에게 혼났다.
아파트 유리창을 깨고 차에 흠집을 냈기 때문이다.
밥보다 야구였다. 조명도 없는 곳에서 우리는 공을 던졌고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때, 세상은 'Baseball Heaven'이었다.


C. 물론, 즐김이 우선이었다.
무조건 야구가 좋았던 시절. 그러다 불이 붙었다.
내 자연스레 응원하던 연고팀 노떼 자얀츠(롯데 자이언츠)가 1984년 코리안시리즈에서 우승을 했다. 완전 극적인 우승이었다.

마지막 7차전에서 역전 3점홈런을 때린 유두열 아저씨.
내 같은 반 급우의 외삼촌이었다. 녀석까지 덩달아 영웅이 됐다.
Champion. 그것이 그렇게 좋은 것인지 처음 알았다. 아, 세상엔 이런 희열도 있구나. 그리고 8년 후, 다시 희열이 찾아왔다.

1992년, 서울에 올라온 촌놈이 한국시리즈 5차전 잠실야구장을 찾았다.
노떼와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 이글스)의 경기.
끝내줬다. 4승1패, 다시 한 번 Champion.

아, 나의 10대는 그렇게 행복하였노라.


D. 야구만화, 신난다 재미난다.
야구소년에게 야구보기, 야구하기만큼 좋아하는 것이 생겼는데, 그것이 야구만화.

생애 첫 만화부터 야구만화였다. 이현세 작가의 ≪제왕≫.
(그전부터 만화를 봤지만, 만화방에서 본 최초의 만화가 ≪제왕≫이었다!)

만화방 골수분자가 된 나는, 야구만화라면 '닥치고 본책 사수'였다.
내용 따위, 작가 따위 거의 가리지 않고 넘겼다. 이유 따로 있나, 야구앞에.

그렇게 당시 나의 Desire는 야구였다.
그렇다고 정식 선수가 되길 바란 것은 아녔다.
난 이미 동네야구 선수였고, 야구인이었으니까! 누가 뭐래도!

세상, 아니 한국의 모든 야구 만화를 섭렵하다가 만났던 이 작품.
≪H2≫!

훅~ 갔다.
이전까지 본 모든 야구 작품들을 무위로 돌릴만큼의 강력한 포스!
야구 만화의 모든 것.
세상 모든 야구작품을 합쳐도 따라오지 못할 폭풍간지.
내 생애 가장 뭉클하고 짜릿했던 야구만화였다. 
아니 '야구'를 빼도 무방할 정도의 내 생애 최고의 만화를 만났다. 심봤다~~~


E. 히로(≪H2≫의 주인공)는 나의 영웅(Hero).
깜빡 지나친 첫사랑에게,
"너한테 야구를 빼면 뭐가 남니"라는 말을 듣는 '본투비 야구소년', 히로.

나는 히로에 푹 빠졌고, 내 모든 감정을 이입했다.
아마 당시 내 감정은 이랬을 것이다. '다시 태어난다면 히로로 태어나고 싶다.'

야구소년 히로가, 야구인 준수에게 미친 Effect는 예사롭지 않았다.
말하자면, 히로 Effect.  

한 번 보자. 히로와 그의 라이벌, 히데오(히데오 역시 영웅이라는 뜻)의 비교.

히로의 절친이자 고교야구 최강 타자 히데오의 야망 스케줄은 이렇다.


* 갑자원 - 프로야구 - 신인왕 - 올스타 출장 - 개인 타이틀. 팀우승 - 많은 기록을 남기고 은퇴 - 해설자에서 감독까지

와우~ 고교야구 스타 플레이어이자 최고 타자다운 스케줄이다. 
허허, 하지만, 나의 히로는 상대적으로 야망(?) 없는 플레이어다.

"뭐, 야구야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 할 거지만. 난 동네야구든 뭐든 괜찮아."

'야망의 세월'따윈 필요없는, 허허실실 낭만적 한량 같으니.
명색이 두 사람 라이벌인데, 히로는 이래도 되느냐 싶겠지만,  

동네야구라도 상관없다는 그 태도. 나는 그 태도가 한없이 좋았다.

더구나, 비키니에 혹하고, 성인잡지라면 눈 반짝이는 십대의 야구소년이라니.
(<- 흠, 이건 십대의 나와 아주 비슷했다!)  

서울이라는 정글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한다는 강박이 짓누르던,
야망을 채우기 위해 남을 짓밟는 경쟁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시절에,
아, 그러지 않을 수도 있구나.    

물론, 히로는 "야구하고 있으면 꽤 멋진" 야구소년이자 남자다.

오진때문에 잠시 멈췄던 야구 엔진에 다시 시동을 걸면서,
히로도 히데오와 똑같이 이런 딱지를 붙인다.
하긴 누가 라이벌 아니랄까봐.

목표
갑자원

히로의 이 목표는, 히데오에게 공 던지는 재미(!)를 알아버린 탓이다.

고로, 히로는 말하자면, 야심가다.
히데오처럼 어떤 지위를 확보하거나 성취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야구가 좋아서, 어떻게든 야구를 하는 일이 점지된 소명임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라이벌이지만, 다른 두 영웅.

나는 그래서, 히로가 되고 싶었다.
나의 행보도 조금씩 변모해갔다.
히로가 나의 영웅인 까닭이다.

두 영웅, 라이벌 중에 히로를 선택한 이유!



F. ≪H2≫, My Favorite!
히로 덕분이다.
히로에 푹 빠진 덕분에 내 마음이 낭떠러지에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이 다는 아니다.
재미에서도 ≪H2≫는 극강이다.
감동에서도 ≪H2≫는 작렬이다.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다. 그래서 되레 흠좀무(흠 좀 무서운걸)? 

나는 감히, 아다치 미츠루 작가는 천재라고 생각한다.
특히 그의 야구만화는 보는 이를 들끓게 만든다. 감정을 엄청 흔든다.

사실 그의 만화 모든 작품은 내용이 빤~하다.
딱 보면 답 나온다. 구도 또한 진부하다.
그런데도, 그의 세심한 터치는 그 모든 단점을 깔아뭉갠다.

≪H2≫는 아주 유명한 작품이고, 좋아하는 사람도 엄청 많다.
그럼에도, 혹 당신이 이 작품을 안 봤다면, 무조건 무조건이다.

하루까는 히로에게 이렇게 묻는다. 
"후회되니? 히까리를 히데오한테 소개한 것."

히로는 곰곰 생각하지만, 나는 일말의 망설임없이 말할 수 있다.
"후회하지 않아."

아니, 뭘 후회하지 않아?
당신에게 이 작품을 소개한 것!
내 사랑을, 내 Favorite을 당신에게 소개한 것!!


G. 다시 ≪H2≫를 꺼낸 것은,
'이제 겨우 플레이볼 했을 뿐이야'라는 글 덕분이다.
이 글에서 나는 정말이지 어찌할 수 없는 무한 희열을 찌리릿.
꺄오~ 하고 외치고 싶은 마음이었달까.

그 블로거의 글을 나는 무척 좋아하는데,
내 사랑하는 ≪H2≫를 그 역시 좋아하다니!

내가 마음에 품고 소중하게 간직한 것을,

누군가 역시 그렇다고 하면 그 사람이 무지 친근해뵈고, 가까워진 그런 느낌.
그가 나와 같은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는 게 괜히 흐뭇해지는 그런 것.

그러니, 그가 말한 ≪H2≫에 대한 이 이야기도 덧붙여야겠다.



동의한다.
그러니 그 사람도, 나도 Guarantee한다! ≪H2≫를.
당신도 ≪H2≫를 보면, 동참하고 싶을 게다.
아니면? 그럼 당신은 우리와 다른 족속인 게지.ㅋ 

어떤 작품이든,
사귀어 보니 겉만 멋있는 게 아니었던 히까리처럼 추첨운이 따를 수도 있고,
하루까처럼 멋있다싶은 사람은 거의 다 겉만 번지르르한 뻥튀기일 수도 있지만,
이번엔 뻥튀기가 아닐거야.

아, 내가 Guarantee한다니까!


H. ≪H2≫의 'H'는 히로와 히데오의 이니셜, '2'는 두 사람을 가리킨다.
두 영웅은 확연히 '다르다'. 야구를 놓고도, 사랑을 놓고도 라이벌이지만.
어느 누구를 응원하고, 누구에게 감정이입할 것인지는 당신의 몫이다.
두 영웅의 라이벌 대결은 정말 흥미진진, 그 자체다.

물론, ≪H2≫, 히까리와 하루까를 가리킬 수도 있다.
두 소녀도 가만 보면, 라이벌이다. 것도 흥미진진.

짧은 가을 떠나보내고, 예기치 않게 겨울이 훌쩍 다가온 시간.
사랑으로 받은 상처, 사랑으로 치유하라는 말이 있듯,
야구로 받은 상처, 야구로 치유하는 것일까.

내 손에는 ≪H2≫가 쥐어져 있고,
나는 다시 플레이볼할 내년 시즌을 고대하는 '기다림 모드'로 바뀌고 있다.

내 가을야구는 안타까운 참사로 끝이 났지만,
나는, 여전히 야구인이다.

그래서 나는,
야구는 9회말 2아웃에서도 역전될 수 있음을,
야구는 3할만 치면 엄청나게 잘 치는 것임을,
야구는 시즌이 끝나면 다시 시즌이 올 것임을,

여전히 믿고 있다.

나는 이 긴 겨울을 버티고 견딜 것이다.
죽지 않는다면, 내년 시즌까지 존재한다면,
나는 여지없이 호들갑에 오두방정을 떨어대면서,
당신도 익히 예상하듯, 이리 씨불댈 것이다. "봄은, 야구와 함께 온다."

그 모든 것은,
야구 뿐 아니라, 생에도 고스란히 적용될 것을, 믿고 있다.

그래서 생이 움푹 파인 순간,
≪H2≫의 그들이 그랬던 마냥,
나는 당신 손을, 당신은 내 손을 잡는 것임을, 믿고 있다.

I 믿 You!


H2. 델리 스파이스의 <고백>.  
많은 사람이 알고, '이제 겨우 플레이볼 했을 뿐이야'에서도 언급됐다시피, ≪H2≫의 자장에서 비롯된 노래다.

덧붙이자면, 그 노래 가사는,
히로가 히까리에게 느끼는 감정,
히까리가 히로에게 느끼는 감정,
히까리가 히데오에게 고백하는 감정 등으로 엮여 있다.

≪H2≫를 보고,
<고백>을 들으면 그 노래 더 팍팍 꽂힐지니.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고루하고 꼴통 같은 꼰대들을 향한 반역적 에너지가 충만했던 1960년대.
하고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도 살짝 꼽으라면,

68혁명이 있었다. 이건 다음에 또 얘기하자.
그리고 이듬해 우드스탁 페스티벌. 1969년 8월15일.
지금으로부터 41년 전의 그날이 있었다.

뭐, 우드스탁?
네가 한때 친구들과 음악에 맞춰 몸 흔들고 알코올 섭취하던,
신촌의 그 올드뮤직바를 말하는 것이냐. 그것도 맞다.
미국 뉴욕주 베델에 위치한 지명이기도 한 그곳은,
이젠 지역명이라기보다 20세기 하나의 문화적 사건으로 각인돼 있다.

최근,
이 우드스탁을 가능케 하는데 일조하고 우드스탁으로 전혀 다른 생을 살게 됐다고 고백하는,
엘리엇 타이버의 회고록
《테이킹 우드스탁(Taking Woodstock)》이 번역출간되고,
안 감독은 이를 같은 이름으로 영화화한 <테이킹 우드스탁>을 내놨다.
얼릉 보러 가야하는데... ^^;



알다시피, 한국에서 이를 되살리고자 했던 다소 의심스러웠던 시도는 일단 불발.

The Peace at DMZ with Artie Kornfeld, the Father of Woodstock

아무래도, (세뇌를 당한 탓(!)이겠지만,)
우리 시대의 우드스탁을 위해선 물론 누군가의 발현과 기획이 있어야겠지만,
당신과 나의 불온한 상상력이 꼭 필참해야 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들이 꼬옥 함께.
탁현민, 강산에, YB밴드, 뜨거운 감자, 그리고 김제동, 고재열... 이 삐딱이들.

왜 그들이냐고?
지난 5월, 그들과 함께 공연장에서 방방 뛴 까닭이다.

그것이 끝난 뒤 세상의 엄혹함과 비루함은 여전할지라도,
아무 것도 바뀐 것이 없다고 여길지 몰라도,
혹은 누군가의 말처럼 군중심리에 의한 빛 좋은 넌센스였을지라도,
당신과 나는, 엘리엇 타이버처럼은 아닐지라도,
생의 사소하지만 중요한 균열을 맞볼 수 있진 않을까.
우리 각자의 세계는 그렇게 초큼이라도 달라지지 않을까.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그렇게 우드스탁을 희망한다. 

그날을 희망하면서 써 내려간 이 글의 마지막 구절.
"깃발 들고 우리 놀아보자. 자, 당신의 상상력을 보탤 차례다."
내 작고 사소한 진심이다. 그렇게 나는, 레디다. 함께 방방 뛰자.

참, 혹시나 이런 판이 벌어진다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이냐! 그렇다, 커피.
상상력 발광 커피!를 당신에게~ 마시고 방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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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이들이 펼친 상상력의 향연

[현장취재] 『상상력에 권력을』 탁현민


시계를 돌려보자. 1976년 6월4일 영국 맨체스터. 전설적인 저항 펑크록밴드 ‘섹스 피스톨즈’의 공식적인 데뷔공연이 있었다. 전년도 11월6일, 런던에 위치한 전세계 디자이너들의 성지인 세인트 마틴 아트스쿨에서 한 첫 공연에 이은 것으로, 이 데뷔공연을 지켜본 이는 단 42명. 섹스 피스톨즈의 전설과 명성을 감안하면 의외일 수도 있겠다.


제 아무리 훌륭하고 좋은 뮤지션이라도 첫 시작은 미미했음을 얘기하자는 것이냐? No! 펑크록 신의 시작을 알린 이 공연은, 다른 점에서 유의미했다. 시쳇말로, 새끼를 확실하게 쳤다. 섹스 피스톨즈를 숭배했던 버나드 섬너가 같은 자리에 있던 피터 후크와 밴드를 만들었다. 역시나 그 공연에 있었던 이언 커티스가 밴드에 참여했다. 단 두 장의 앨범으로 전세계의 음악을 뒤흔든 ‘조이 디비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렇게 공연에 있던 몇몇은 ‘버즈콕스’, ‘뉴 오더’(조이 디비전의 후신), ‘진저 넛’ 등의 밴드를 결성했다. 세계적인 밴드 몇몇이 바로 그날, 섹스 피스톨즈의 공연에서 비롯됐다, 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을 더 거슬러, 하나 더. 우드스탁. 1969년의 바로 그 우드스탁 페스티벌. 위키백과의 설명 중 일부다.


“우드스탁 페스티벌(Woodstock Music and Art Fair)은 1969년 8월15일부터 3일간 뉴욕 주 북부 베델 근처 화이트 레이크의 한 농장에서 열렸다. 30만, 그 이상의 사람들이 그 농장으로 몰려갔다.(입구를 부수고 들어간 사람의 수가 너무 많아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다고 함)... 우드스탁은 음향 시설이 형편없었고 음식과 물과 화장실도 턱없이 부족했으며 게다가 폭우가 쏟아져 농장은 거대한 진흙 뻘 같았다. 하지만 이런 열악한 상황도 우드스탁에 이르러 절정에 달한 히피 반문화 공동체의 열기를 누그러뜨리진 못했다. 부족한 샤워 시설과 폭우는 천진난만하게 물장구를 칠 물 웅덩이로 대체되었으며, 진흙 뻘은 히피들의 낭만적인 놀이터가 되었다.”


전설 같은 이야기. 우드스탁은 그렇다. 오죽하면, 책을 쓰다가 우드스탁이 열렸던 뉴욕 주 베델로 향한 사람도 있었다. 그도 이를테면, 많고 많은 우드스탁 신(봉)자의 하나인 셈인데, 그는 우드스탁을 이렇게 그리고 있었다.


“상상력을 믿는 사람들, 그것도 예술적 상상력을 믿는 사람들은 무모하다. 비현실적이며, 위험해 보인다. 적어도 상상력이 없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러하다. 우드스탁은 그러했다. 당대의 정신, 실패로 끝난 68혁명에 대한 모진 안타까움과 시대에 대한 열망이 예술적 상상력과 결합하여 만들어 낸, 말 그대로 상상력이 힘을 갖게 되는 자리였다. 그리고 그 공연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탁현민’이기에 가능한...


그 사람, 공연기획자 탁현민. ‘음악이 사회적 발화의 수단이 되기를 바라’는 대중문화평론가. ‘61만 명’이 모이는, 우드스탁보다 조금 더 큰 장을 펼치길 원하는 공연기획자. 현실에서 저항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고, 부정하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은, 그것이 동력인 불온아. ‘상상력에 권력을’이라는 68혁명과 우드스탁의 구호를 감히(!) 책 제목으로 내건 저자. 『상상력에 권력을』(탁현민 지음|더난출판 펴냄)은 그런 탁현민이 고스란히 담겼다.


사실 이리 말해봐야, 손만 아프다. 좀 더 쉽게.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를 앞두고, 지난 8일부터 주말마다 서울·광주·대전·대구·창원·부산을 찍은 추모콘서트 <파워 투 더 피플 2010> 연출자. 역시 지난해 노무현 추모 콘서트 <다시 바람이 분다>와 노무현재단 출범 콘서트 <파워 투 더 피플>를 연출한 바 있다.


그런 탁현민이, 지난 10일 서울 홍대부근의 V홀에서 『상상력에 권력을』(탁현민 지음|더난출판 펴냄) 출간기념 북콘서트를 ‘게릴라처럼’ 열었다. 게릴라처럼, 이라고 했지만, 쟁쟁하다, 그 이름들. 강산에, 김C, YB. 아울러, 이들 뮤지션들이 소속된 기획사(다음기획)의 김영준 대표, 고재열 기자(시사IN, 독설닷컴)까지. ‘탁현민’이라는 이름을 믿고 뭉친, 역전(?)의 용사들. 아니, 정확하게는 ‘긴급 구호팀’이다. 탁현민의 표현을 빌자면, “자신의 생각에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도 한 번쯤은 나를 믿고 무대에 올라줄 수 있는”. 물론, ‘한 번쯤’이 아니다. 탁현민이라는 이름이 길어낸, 탁현민이기에 가능한 이름들. 



이 자리, ‘제대로’ 놀아보자는 거다. 출연하기로 한 연예인들이 모조리 펑크를 내서 ‘개쪽’ 파는 짓거리가 아니라, ‘MR에 고음처리 부분을 입혀 실망스러운’ 개나리 가수를 출연시키는 그런 콘서트 말고. 우리의 숨통을 틔우기 위한 진짜 콘서트.


알다시피, 폭압의 시대다. 전쟁의 시기다. 독재의 시대다. 금기의 시절이다. 동의 안 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지금을 그리 생각한다. “전쟁의 시기에 반전을 이야기하고 폭압의 시대에 인권을 노래하는 것, 독재의 시대에 해방을 소망하며 금기의 시대에 자유를 노래하는 것은 대중예술인으로서 너무도 당연한 행동이다. 이들이 앞서서 새로운 세계를 노래하고 그 노래를 따라 부르는 대중이 늘어나면서 세상은 조금씩 바뀌게 된다. 전쟁을 멈추게 하고 인권을 기억하게 하며 해방을 이루어내고 자유를 얻게 하는 것이다.”(p.100)


그러니까, 이날 나온 유명인들은 이런 존재들. “대중에게 현실에서의 재미와 현실 이상의 상상력 두 가지를 모두 제공해 주”(p.119)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뿐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살아야 할 새로운 시대에 대한 상상을 가능하게 해주”(p.119)는. 아마, 그들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도, “유명기획사 혹은 기획된 스타들로부터 벗어나 있는 대중예술인들을 주목”(p.77)하는 이들이었을 것이다.


42명이 모인 섹스 피스톨즈의 공연처럼, 61만 명이 모일 공연의 예행연습처럼 콘서트가 막을 올렸다. 저자의 오프닝 멘트. “책을 내고 콘서트까지는 사실 생각을 안 했다. 책 내고 또 공연까지 해야 돼, 라고 생각했는데, 가수들이 굳이 해 주겠다고, 하고 싶다고 해서 자리를 만들었다.(웃음) 감개무량하다. 양해를 구할 것이 다른 중요한 공연들이 있어서 오늘, 준비를 많이 못했다. 순서는 지금부터 만들어지고 있다.(웃음) 사실 부끄럽다. 책으로 나온 것이 부담도 있고, 한편으로는 뭔가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던 것 같다. 지금까지 단독으로 네 권을 썼고, 세 권이 공저였다. 딱 한 권을 빼고는, 목적이 없었는데, 그 한 권은 돈이 목적이었다. 『남자 마음 설명서』라고. 다른 책을 합한 것보다 이 책이 가장 많이 팔렸다. 그래서 김C의 마음을 이해한다. 음악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정받고 싶지만... (웃음) 오늘은 강의나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기보다 즐기는 자리다. 나도 즐기고 싶다.”


탁현민-고재열 만담 콤비


공연도 때론 예열이 필요한 법. 세상이 거의 아는 퀴즈영웅, 고재열 기자(시사인 문화팀장, 독설닷컴: http://dogsul.com, 트위터: @dogsul)가 첫 무대를 장식했다. 보석 같은 뮤지션들 틈에 ‘주변에 맴도는 인공위성 같은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책에서 탁현민과 대담(<한국의 대중문화 그리고 문화적 상상력의 힘에 관하여>)을 진행한 바 있다.


그들의 첫 인연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탁현민은 참여연대 간사였고, 고기자는 출입 기자였다. 그들은 어느 순간, 친구가 됐다. 친구답게 짓궂다. 탁현민은 그가 나이를 속여, ‘고비열’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했고, 고기자는 나이를 밝히지 않았을 뿐이라고 했다. 여느 만담이 그렇듯, 진실은 저 너머에.  

  

그 대담에 대한 폭로(?)부터 시작된 그들의 만담을 살짝 엿보자.



“양주 1병을 받고 ‘탁비어천가’ 썼는데, 다시 보니 손발이 오그라든다. (웃음) 문제의식 있는 사람 중에 가장 끼 있는 활동가였는데, 이제는 끼 있는 공연기획자 중에 가장 문제의식 있는 사람으로 변했다고 썼는데, 문어체적인 표현이었다. 실제 느낀 건, 진정성 있는 사람 중에 사기를 잘 치고, 사기 잘 치는 사람 중에 진정성이 있다고 고치겠다. (웃음)”


탁현민이 묻는다. “왜 탁현민이 훌륭한가.”


고재열이 답한다. “여러분들 오늘 사실, 탁현민 보러 온 것 아니지 않나. (박수) 여기 온 뮤지션들이 지난 주말에 힘든 공연을 하고 쉬어야 하는데, 돈도 안 받고 여기에 왔다. 그래도 여러분이 보고 싶어 하는 분들이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오늘 공연 충분한 가치가 있을 거다. 아, 질문이? 10년 전이랑 변화가 없다. 헤어스타일이. (웃음)”


탁현민이 푸념한다. “널 부르는 게 아니었어. (웃음)”

  

탁현민은 앞서 언급했듯, 노무현 추모 공연을 기획했다. 어땠는지 물었다.

“지금 한국 상황을 보면, 바다는 어민이 지킨다. 해군이 아니고. 거리는 시민들이 지키고 있다. 경찰이 아니고. 공연장 정도는 내가 지켜야 하는 것 아닌가. (박수) 대중음악은 끊임없이 현실을 부정해야 한다. 지금 처한 상황만을 노래하는 것 뿐 아니라, 엔터테인먼트만 제공하는 게 아니라, 앞선 상상력을 보여줘야 한다. 존 레논의 <이매진>을 들어봐라. 당대엔 절대 이뤄낼 수 없겠지만, 국가와 종교와 군대만 없어도 세상은 평화로울 거라고 생각하잖나. 그런 상상력이 대중문화와 대중음악에서 나와야 한다”


“일찍이 존 레넌은 <이매진 imagine>을 통해 이렇게 노래했다. "imagine there's no countries it isn't hard to do. nothing to kill or die for and no religion too. 국가가 없다고 생각해 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야. (국가를 위해) 누구를 죽이거나 죽을 필요도 없잖아, 종교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아티스트에게 있어 음악은 자신의 삶과 철학을 표현하는 수단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존 레넌은 노래를 통해 그의 조국인 영국과 그가 말년에 살았던 미국까지도 부정한 셈이다.”(p97)


이번에는 고재열이 묻는다. “날 왜 불렀나.”


탁현민이 답한다. “고재열이 한국 언론사에 길이 남을 좋은 기자라 생각한다. 이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아는 분도 있겠지만, ‘퀴즈영웅’에 등극하면서 받은 상금을 당시 파업 중인 회사에 쾌척하지 않았나. 적어도 이 친구가 돈이나 다른 것에 매여서 쓰고 싶은 기사를 못 쓰거나 안 쓰는 기자 아니구나, 생각했다. 지금까지 늘 일관된 모습을 보여 온 기자고.”


만담하는 척 하면서, 서로 띄워주는 이 풍경. 주최 쪽의 농간(?)이겠지만, 밉살스럽거나 거북하지 않다. 왜냐! 그건 ‘사실’이니까. 물론 만담이 길면, 농담이 된다. 만담은 그 정도로. 첫 번째 게스트의 등장, 뜨거운 감자다.


감자가 달군 뜨거움


뜨거운 감자가 악기를 세팅하는 동안, 탁현민의 소개말. “사과할 일이 있다. 3~4년 전, 김C와 이야길 하면서 음악을 들려줬을 때, ‘형 노래는 당대에는 성공 못할 것 같애’라고 했다. 그런데 요전 앨범 발표하고 나서 취소했다. 오늘 낮에도 15일 공연 때문에 스태프와 연습 참관을 했는데, 뜨거운 감자 음악은 당대에 성공할 것은 물론이고 길이길이 남을 거다. 20세기가 잉태하고 21세기가 온몸으로 받아들인 뮤지션, 김C를 소개한다.”


뜨거운 감자의 김C가 화답했다. “탁이(주. 김C는 탁현민을 ‘탁이’라고 불렀다)는 고향후배이기도 하고, 회사의 직원이기도 했고, 지금은 한 회사의 대표가 됐는데, 전체적으로 사기꾼이다. (웃음) 애들도 가르친다 해서 위험한 짓을 하는구나 생각했다. 책 냈다고 해서 진짜 웃기는구나, 했다. 책을 읽었다. 굉장히 건강한 사기꾼이 됐더라. 그래서 생각했다. 약간씩만 사기 치면 행복해질 것 같다고. 탁이가 여러분과 우리의 중간자를 잘 하고 있는 것 같다.”


여느 주례사 인사말 같진 않다. 그들은 삐딱한 존재들이니까. 어쨌든 뜨거운 감자의 음악이 울려 퍼졌고, 몸은 들썩이기 시작했다.



첫 곡, <수학이 좋다>. “...네 말이 맞는다고 내 말이 틀렸다고/ 어떻게 알 수가 있겠어/ 너와 난 다르다고 넌 나를 틀렸다고/ 정답을 알고 싶을 뿐이야/...내 뜻대로 살아갈게/ 네 갈 길을 찾아라 나를 찾지 말아/ 내 뜻대로 살아갈게/ 네 갈 길을 찾아라...” 신난다. <봄 바람 따라간 여인>이 잇는다. “봄바람 따라 간 여인 어디쯤에 가고 있나”를 따라 흥얼거린다. 


세 번째 곡은, 최근 낸 영화 없는 영화음악 앨범의 <시소>. 신난다. 발은 동동 뛰고 어깨는 흥에 겹고 가슴이 뜨겁다. 이 맛이 감자다.


“어느 날 생각해봤다.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는 지금의 내 나이였을 때, 이 정도의 시대적 아픔을 안고 살아갔는지 궁금해지더라. 누구나 그런 건가. 어쨌든, 조금 현 시점이, 어휘력이 부족해서 그렇겠지만, 조금 좆같다. 영향력 있고 힘 있는 분들이 주변 모든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좋겠다. 책이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점점 뜨거워지는 현장. 네 번째 노래, <고백>이 불을 붙인다. 아마도, 어쩌면, 우릴 향한 뜨거운 감자의 뜨거운 고백. “달이 차고 내 마음도 차고/ 이대로 담아두기엔 너무 안타까워 너를 향해 가는데/ 달은 내게 오라 손짓하고/ 귓속에 얘길 하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그 순간이야...” 곡이 끝날 때마다, 짧고 강렬하게 외치는 김C의 한마디. 땡큐. 인상적이다.


김C에 대한 탁현민의 기억 한 소절. “처음 들었을 때, 김C가 노래를 못하는 줄 알았다. 2년 전쯤인가, 김C가 책을 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림을 넣어야하는 책이었는데, 어떤 분의 그림이 좋을까 고민하다가, 이외수 선생님을 떠올랐다. 댁에 찾아가서 선생님께 부탁을 했다. 선생님 왈, ‘나는 그림을 그릴 테니, 너는 밤새 내 옆에서 노래해라’. 진짜 밤을 새워 통기타 하나로 노래했다. 그때, 괜찮은 노래구나, 괜찮은 목소리구나 생각했다. (웃음)”


방만한(?) 기획사의 소신 있는 방만함


그렇다면, 잠깐. 이날 초대된 뮤지션들, ‘탁현민’이라는 이름 때문에 모인 한편으로, 사회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고 사회적 이슈를 외면 않는 이들이다. 모두 같은 기획사 소속인데, 기획사에서 이런 이들을 품고 있는 것,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 아닐까. 우리가 아는 대개의 기획사는, 소속 연예인들에게 그런 것을 원천봉쇄하고 입조심, 행동조심을 늘 상기시키건만. 이 소속사, 또라이 아냐? 궁금하다. 다음기획. 


그리하여, 또 한 명의 이야기 손님, 김영준 다음기획 대표가 등장했다. 역시나 뜨거워진 열기를 잠시 식히고자 마련된 만담의 시간.



참고로, 다음기획을 보여주는 이야기 한 대목. 한 예능프로에 나온 김C. 한 아이돌이 우리는 밥값으로 5000원 이상 못 먹는다고 하자, 김C는 우리는 마음껏 먹어도 되는데, 라며 소속사를 방만함(?)의 표본으로 널리 알렸다. 김 대표 왈. “우리는 가둬놓고 안 키운다. 풀어놓고 키운다.”


탁현민과 김 대표의 인연은 2002년부터 시작됐다. “시민단체 간사로 있을 때, 김 대표가 ‘우리 회사로 들어와라. 너의 미래를 보장 하마’라며 되지도 않는 이야길 꺼냈다. (웃음) 태어나서 처음 돈 내고 본 공연이 정태춘 공연이었다. 아주 큰 울림이 있었고, 정태춘 공연을 꼭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다음기획에 가니 소속돼 있더라. 공연 연출하러 들어간 건 아니었는데, 연출가로서 관객을 만날 수 있게끔 자리를 만들어줬다. 실수를 많이 했는데 끊임없이 기회를 많이 준 고마운 분이다.”


김 대표가 처음에 봤을 땐 조폭 같았다며, 자신의 첫 인상을 되묻는 탁현민에 대한 화답. “그냥 싸가지 없는 애였다. (웃음) 어제 공연이 노무현 추모 콘서트로 ‘시민에게 권력을’. 오늘은 ‘상상력에 권력을’. 권력을 상당히 좋아하시네. (웃음) 농담이고, 이 친구는 대한민국 대중문화 권력의 지형을 바꾸고 싶은 친구다. 덕담이 아니고, 굉장한 열정을 가진 친구다. 인간의 능력이 무한정하다는 것을 실증하는 인물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보통 출판기념회에 가면 지인들이 뭔가를 해주는데 이 친구는 혼자 마이크잡고 설친다. 이 친구가 회사에 들어온 지 1~2년 됐을 때인가. 자기 생일에 아무도 안 챙겨준다고 제과점에 가서 케이크를 사와서는 노래를 불러달라고 했던 그 모습이 오늘 떠오르더라.”


저자도 다음기획에 들어갔던 것, 김 대표를 만난 것을 생의 중요한 지점 중의 하나로 꼽는다. “나는 성공회대를 나왔고 참여연대, 오마이뉴스, 다음기획 등에 있었다. 정말 골수까지 진보다. 진보의 진골이다. 성골이나 육두품도 아니고. (웃음) 그런 것 때문에 비난도 듣는데, 그걸 의식하지 않는다. 나에겐 중요한 기억이고 인생의 중요한 지점들이다.” 


김 대표가 읽은 『상상력에 권력을』은 이랬단다. ‘탁현민을 가장 잘 설명해주며, 어떤 피가 흐르고, 머리가 뭐가 들어있는지, 싸가지는 어디서 기원했는가’를 보여주는 책. 둘의 만담도 그랬다. 열렬한 애정의 소산. 과거지만, 대표와 직원 사이라기보다, 동반자 같은 그들의 관계가 느껴진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동반자로서, 연대하며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손을 맞잡고 있다. 아마, 삐딱함이 맞아떨어진 결과이리라.


고로, 다음기획을 탁현민의 언어로 정의하자면 이렇다. “이윤의 극대화보다는 문화적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신 있는 기획사”(p.77). 고로, 방만함(!)은 소신의 결과다. 5000원짜리 밥이 설운 아이돌은, 다음기획을 두드려라. 길이 열릴 지.........................도 모른다.


“단지 상품성 있는 엔터테이너로 그리고 언제든 버려질 수 있는 아이돌로 살고 싶지 않다면 획일성과 상업성만을 요구하는 연예산업의 구조를 해체하기 위해서는, 연예인 지망자 스스로 자본의 요구에 의해 기획되고 생산되기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예술적 완성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p.77)


달리는 YB밴드, 터질 듯한 공연장


그런 기획사에서 노래하는 YB는 행복하겠다. YB와 탁현민의 인연도 2002년으로 올라간다. YB가 악기를 세팅하는 동안, 탁현민이 폭로(?)하는 윤도현이다. “2002년 월드컵 직후에 한 전화통화다. 이러는 거다. ‘야, 편의점에 갔는데, 사람들이 알아봐’. (웃음) 자기가 나온 CF를 신기하게 보던 그런 사람이었다.” 그땐 그랬지만,

 

이윽고, 시동을 건 YB의 일갈, 렛츠 락앤롤(Let's Rock&Roll). 멋지구리. <담배가게 아가씨>로, 테이프를 끊고 달린다. 후끈후끈. 이어지는 <나비>는 또 어떻고.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꺼야/ 노래하며 춤추는 나는 아름다운 나비...” 아름다운 나비, 그 노란색의 나비. 우리는 그 나비를 안다. 그 나비는 또한 우리다.


윤도현의 축사. “출판기념회에 와서 노래한 건 처음이다. 탁이가 2살 어린데, 지금 교수님이고, 사회적 지위와 위치에 있더라. (웃음) 책 쓰면서 뉴욕 가서 고독을 삼키기도 하고, 타협하지 않고 글 쓰려고 노력해서 나온 책으로 알고 있다. 성향을 보면 불의에 맞서 싸우려는 돈키호테 같은, 시대착오적인 그런 사람인데, 그런 사람 필요하잖나. 그런 얘기 나한테도 많이 한다. 나서라고. ‘형 같은 사람이 머리를 두르고 이걸 해야 해’. 내 앞길 생각도 않고. (웃음)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고, 특히 높이 사는 건, 초지일관된 우직함이다. 이런저런 소리 많이 들어도, 자신의 길을 가려는 모습은 본 받을만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깃발>이다. 탁현민이 압력을 가했다는, 그러므로 굉장히 선동적인 노래. “힘 없는 자들의 아우성 속에서 들끓는 나의 뜨거운 피를 느꼈다/ 고맙다 형제들이여 깃발을 들어라 승리를 위하여/.. 맞서 싸워 두 주먹 쥐고 깃발 들어 do it again/ 쓰러지거나 넘어져도 깃발 들어 어 moving again...” 그래, 함께 깃발을 들자. 절로 떠오르는 이 한 마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도 대사로 나왔지, 아마. 대한민국, 좆 까라 그래.


방점은, 준비 중인 새 앨범에 수록될 곡 <스테이 얼라이브>. 정규앨범이 아닌 YB밴드의 첫 싱글이란다. “일렉트릭과 락이 혼합된, 자극적이고 망하기 좋은 곡이다. 그것도 영어다. (웃음) 그래도 열심히 만들고 있다. (망하기 좋은데) 왜 내냐고. 탁처럼 굽히고 싶지 않은 뭔가가 있거든. 공연장에서 선물은 하나 해야 할 것 같고, 그래서 준비했다.”


달렸다. 뛰었다. 즐겼다. 살아서 버텨라. 이 쥐의 시대. 어떻게든 살아남으라. 살아남는 것이 곧 우리의 과제임을 상기시킨다. 삐딱하게 또 삐딱하게.


탁현민을 만든 스승들


탁현민의 회고다. 말하자면, 나는 왜 삐딱이가 됐나, 지금의 나는 어떻게 형성됐나. “돌이켜볼 나이는 아니지만, 난 문제 많은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담배를 피우다 하루에 3번 걸린 적도 있다. 학교 가다가, 화장실에서, 야간자율학습 때 걸려서. 지금도 그날이 생생하다. 맞는 건 기본이었고, 모눈종이에 반성문을 써야 했다. 그때, 반성문 쓰다가 눈이 너무 아파서, 앞에 국어선생님 책상을 봤는데,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있었다. 우연히 그렇게 읽었는데, 그 책에는 다른 생각이 있더라.”


당시 탁현민에겐 세상에 대한 저주에 가까운 비난, 스스로 열등한 존재라는 인식을 끊임없이 심어주던 학교라는 감옥에 대한 저항심이 있었다. 그런데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놀라웠다. 감옥에서 어떻게, 그렇게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을까. 그 이후 신영복 선생님은,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탁현민에게 스승이 됐고, 세월이 흘러 신 선생님이 계신 성공회대에 가게 됐다. 마침 그해 안식년이었지만, 그렇다고 끝이 아니었다. 우연히 신 선생님의 조교가 됐다.


직접 뵌 신영복 선생님의 가르침은 그러했다. 대학 4학년 때였다. 세상에 나가면 어차피 돈을 벌어야 할 터이니, 대학시절엔 돈이 안 되는 것을 공부해야 한다. 대학 4학년, 마지막 시간. 선생님은 <논어>를 던져주셨다. 남들이 토익, 토플을 공부할 때 논어 봤다. 탁현민이 ‘남다른’ 공연기획자가 될 수 있었던 한 가지 요인이다.


물론, 다른 은사들도 만났다. ‘선생님복’이 많았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 앞에 이외수 선생님 댁이 있었고, 국어선생님이 이외수 선생님과 절친한 사이였다. 글 쓰는 재주가 있었던 탁현민은 국어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이외수 선생님 밑에서 습작을 할 수 있었다. 박원순 변호사도 빼놓을 수 없다. 쉬지 않고, 세상을 향한, 사회를 위한 기획서를 쓰고 실현되도록 노력하는 소셜 디자이너.


그리고 최근에 알게 된 한 선생님에 대한 소개. “워낙 유명하신 분이지만, 유명한 분들이 대부분 실망시킨 적이 많아서 큰 기대가 없었는데, 공연과 관련해 알게 되고 몇 마디 나누면서 이 분의 진가를 알게 됐다. 역시 건강한 기운을 내게 주시고 앞으로 좀 더 아름다워질 수 있도록 만들어준 분이다. 이 자리에 와 계신다. 소개할까말까 망설였는데, 끝까지 자리에 계셔주셔서 소개한다. 정연주 KBS 전 사장님. (인사) 꼭 어떤 분을 직접 만나지 않아도 상관없다. 인생의 향방이나 방향을 결정할 때, 중요한 역할 해 주는 분이 누구에게나 있다. 나도 지금 누군가의 선생이 돼 있는데, 사실 학생들과 얘기하다보면 절망감을 느낄 때가 많다. 이른바, 꼰대적 발상이지. (웃음) 신영복 선생님한테 얘기하니, 그러시더라.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건, 다만 희망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게 선생의 제대로 된 태도라고 생각한다.” 


어떤가. 당신은 그런 스승이 있는가.


강산에, 어떤 것보다 강하고 어떤 위로보다 절절한


강산에. 세상의 다른 속도로 생과 음악을 꾸리는 뮤지션. 나는 그의 속도와 부합하는 음악을 좋아한다. 탁현민에게, 강산에는? “앞의 두 뮤지션과는 다른 위로를 주는 분이다. 나와 맞지 않는 부분도 많다. 나는 강성이고 욕도 바로 하고, 차분하게 생각하기보다 들이받던지, 한 대 맞던지 하면서 몸으로 체험해야 똑같은 실수를 안 하는 스타일이다. 강산에는 부드럽고 묵직하다. 강산에는 공연이 좀 더 부드러워야 하고, 딱딱한 것이 강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 분 노래가 그렇다. 어떤 것보다 강하고, 어떤 위로보다 절절한 위로를 준다.”


탁현민의 복이다. 선생님 복도 그렇지만, 다른 복도 넘친다. 좋은 뮤지션과 함께 일할 수 있으며, 좋은 친구들을 갖고 있고, 많은 관객들과 만난다. 공연기획을 하는 그의 복이다.



그의 복 중의 하나. 음유시인, 강산에의 등장이다. “어쨌든 여러분, 오래오래 사셔야 한다. 나도 오래 살 계획이다. 무대는 77살까지. (웃음) 그래야 내 공연에도 오실 수 있잖나.” 그러니, 우리는 아름다워야 한다. 시간을 버티는 것은 때론 예술이 된다. 아름답고 부드러운 맛있는 우리를 위한. 그렇다, <명태>다.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노래 되고 시가 되고/ 약이 되고 안주 되고/ 내가 되고 니가 되고/ 그대 너무 아름다워요/ 그대 너무 부드러워요/ 그대 너무 맛있어요/ 감사합니데이~...”


“친구 딸 이름이 그림이다. 공부를 안 하고 딴 짓을 많이 해서, 아빠가 걱정돼서 물었다. 공부 잘 하고 있니, 구구단 외울 줄 알아? 2단 외워보자. 2*1=2, 2*2=4, 2*3=6… 2*8=16, 2*9=아나.” 꺄아~ <이구아나>다. 예전에 이 노래, 처음 들었을 때, 정말 좋았다. 이구가 십팔이 아닐 수도 있음을 알려준, 세상엔 또 다른 공식도 있을 수 있다고 들려준 이 노래.


이어진 <와 그라노>까지. 내 자란 고향의 익숙하고 친근하며 푸근한 노랫말. MB한테 해 주고 싶은 말. “또 와 그라노? 니 또 와 그래샀노?” 삽질 좀 그만해 싸라.


탁현민 “강산에는 말의 속도, 생각의 속도가 느리다.”

강산에 “느리다, 빠르다 보다는 다른 거다. 아닌가?” 

탁현민 “세 가지 소원이 있었다. 정태춘 공연을 하고 싶었는데, 정태춘의 마지막 공연을 했고.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저항성 있는 팀과 하고 싶었는데, YB밴드와 했다. 세 번째는 강산에 무대에서 같이 서고 싶다. 아침부터 좀 전까지도 얘기할까말까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얘기해서 같이 하고 싶다 했더니 흔쾌히 허락해줬다.”

강산에 “허락했다기보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웃음) 의외였다. 뜻밖이었다.”

탁현민 “나는 항상 레디다.”



그렇게 마지막 노래, 강탁(강산에․탁현민)의 노래 <삐딱하게>가 무대를, 홀을 가득 채운다. “너무 착하게만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네)/ 너무 훌륭하게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네)/ TV를 봐도 RADIO를 켜도 삐따기의 모습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네)/ 있는 그대로 얘기할수 있는 삐따기/... 삐딱하게 삐딱하게/ 삐딱 삐딱 하게 삐딱 삐딱 하게/ 그가 서 있는 땅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네...”


무릇, 체제에 순응하는, 혹은 이를 넘어 체제에 복무하는 문화예술은 재미없다. 문화예술이 정치적이어선 안 된다는 말은 거짓이다. 아니, 그 말이 더 정치적이다. 연예인이, 무슨 정치적인 발언이냐고? 무식해서 내뱉는 무뇌아의 치기로 받아주겠다.


“예술은 정치사회적인 것들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맹신을 가지고 있는 한국사회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예술의 사회라 할 수 있다. 해방이후 지금까지 이 땅에서의 예술은 철저하게 지배층의 이데올로기를 선전하거나 혹은 저항하는 전부였다.”(p.82) 


대중문화, 대중예술의 꽃은 삐딱함에서 핀다. “우리 시대의 대중예술인 가운데 상당수는 자신의 음악과 발언을 통해 사회질서와 체제, 심지어 무의식 속의 관념까지도 부정한다... 이들이 국가와 사회를 비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체제를 공격하고 제도와 관습을 부정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세상을 바라보는 그 삐딱한 시선이야말로 대중예술인이라면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어야 하는 덕목이기 때문이다. 문화적 풍요는 결국 다양한 생각을 수용할 수 있는 사회에서만 가능하며, 대중예술인들은 그 풍요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p.98)


그렇다면 무엇으로부터 삐딱하게, 무엇에 대해 저항해야 하는가. “오늘날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란 단지 ‘돈’의 문제를 떠나, 가장 철저하게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이른바 자본의 ‘논리’에 대한 저항이라 할 수 있다. 사회적 금기와 체제에 대한 저항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고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질서를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하는데, 오늘날 가장 공고한 질서는 다름 아닌 자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을 부정하는 것은 현 시대의 전부를 부정하는 것과 같은데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문화사회적 실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p.157)


빙고. 돈을 멀리하라는 말, 아니다. 자본의 논리에 저항하라는 것이다.


68혁명의, 우드스탁의 구호는 아직 유효하다(고 나는 믿는다). 당신과 나를 상상하게 하는 힘. 그것이 곧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그 상상을 하게 해주는 문화예술의 힘. “예술은 저 하늘에 반짝이는 별빛 같은 무엇이 아니다. 문화가 우리 삶의 총화이듯이 문화의 범주 안에 당연히 위치하는 예술 역시 우리들의 현실과 미래를 담고 있는 실체적인 무엇이 되어야 한다. 예술이란 결국 우리들이 당대의 현실을 인식하고 꿈꾸어야 할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힘, 그것이기 때문이다.”(p.84)


그러니, 그 힘을 지키는 것은 우리여야 한다. “그들의 역할이 아무리 위로를 주는 존재라 해도 우리가 이 위로가 되어주는 존재들과 함께하겠다면 저들의 후안무치를 탓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윤도현이 앨범을 내면 그의 앨범을 사고, 신해철이 공연을 하면 그의 공연에 가고, 김제동이 책을 쓰면 그의 책을 읽는 것과 같은 분명한 지지와 사랑을 보내주어야만, 그래야만 우리는 그를 지켜줄 수 있을 것이다.”(p.218)



뜨거운 감자, YB, 강산에의 앨범을 사서 듣고 공연장을 향하며, 『상상력에 권력을』을 사서 읽고, <시사인>을 사서 펼친다. 그러면 우리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존재들과 함께 하고, 상상을 할 수 있다. 기대하고 기다리겠다. 섹스 피스톨즈의 데뷔공연이 새끼를 친 것처럼, 이날 함께 자리했던 누군가에 의해 빛나게 될 대중문화와 61만 명이 모여 자체 발광할 상상력의 향연을. 깃발 들고 우리 놀아보자. 자, 당신의 상상력을 보탤 차례다.

 

[예스24 채널예스 기고 원문]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한국여성의 전화(http://hotline.or.kr).

력피해여성들을 지원하고 여성인권을 위해 일하는 여성인권운동단체.

인간수컷인 내가 '여성의 전화'에 오르내리는 건, 상상도 해보지 못한 일.

분기별로 낸다는 '베틀'이라는 소식지에, 글을 싣고 싶단다.


와, 희한한 경험이겠다 싶어, 넹~ 좋아효, 했다.

그리고 내 손에 들어왔다. 씨익. ^.^

흠, 여기저기 잡문을 기고하는 날품팔이지만,

이건 색다른 경험.

어쩌다, 거참. 신기할지고.

여성들에게 가능하면 죄 안 짓고 살아야할 터인데...^^;

아, 무셔.


고료? 돈 대신 인상적인 기념품 하나 받았는데,

뭐 나쁘진 않아!

또 하나, 홍보담당자에게 확인 하나 받아뒀다.

오는 10월6일부터 9일까지 진행되는 제4회 여성인권영화제.

티켓 하나 주신단다. 우왕ㅋ굳ㅋ




☞ 2010/06/02 - [메종드 쭌/무비일락] - 상대방을 무너뜨리지 않고 손을 잡는 법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뉴욕’이라는 창으로 바라본 서울과 노동자의 삶

[북리뷰] 《너 자신의 뉴욕을 소유하라》



4년여 전, 뉴욕.

이곳에 첫발을 디딘 청년은 휘둥그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믿기지 않는 눈치다. 변화를 목적으로 두지 않았던 여행객이자, ‘까르페디엠(carpe diem)’을 외치며 순간을 즐기는 것에 초점을 둔 그는, 사진 속 뉴욕이 제 눈앞에 펼쳐지자 그만 정신줄을 놓고(?) 말았다. 말하자면, 뻑 갔다는 얘기다. 짧은 시간, 뉴욕에 사는 친구와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곳만 다니고, 좋은 것만 먹고 마셨으니, 좋을 수밖에. 이방인에게 뉴욕은 더할 나위 없는 별천지였다. 뉴욕은 먹기 좋은 솜사탕이었다. 


맞다. 인정해야겠다.

‘관광객의 시선’으로 경험한 뉴욕이었다. 표백제로 말끔히 얼룩이 탈색된 뉴욕. 고작 여행을 떠나 잠시 스친 뉴욕에 내 로망을 던졌다. 물론 인정했다. 여행하는 이방인의 찰나적 도착증에 가깝다는 것. 정작 도시의 속살은 알지 못한다는 것. 휘황찬란함과 빛나는 문화예술 역시 노동자들이 지탱하고 있으리란 것. 그렇다고 그 로망을 압도할 순 없었다. 내 짧은 뉴욕은 ‘신자유주의의 중심 요새’라는 강박적 관념을 일순간에 날릴 정도로, 나를 휘감았으니까.


영화, 뉴욕을 만나다.

그해 겨울, 뉴욕으로 떠나기 전 읽은 책이 『안녕 뉴욕』. 저자 백은하(의 글)를 흠모했던 나로선, 그녀가 기자질을 털어내고 훌쩍 뉴욕으로 떠나 영화와 함께 한 408일이 참 좋았다. 그녀처럼 온전하게 털어내지 못했지만, 그 휴가의 끝물에는 털어내야 할, 아니 털어내기로 작정한 직장이 있었다. 영화로 뉴욕을 즐긴 그녀만큼은 아녔지만, 뉴욕의 여느 명소 따윈 필요 없어! 책이 말하는 곳이 곧, 나의 발걸음이었다. 아는 사람은 알잖아! 내 심장을 건드린 영화의 장소에 발을 디딘다는 것. 그건 곧 영화가 다시 내 눈앞에 펼쳐진다는 것과 동의어 아니던가! 아, 물론 아니면 말공. ^^;


뷰티풀 워킹 뉴욕데이즈! 

뉴욕촌놈, 그래도 뉴요커였던 친구 녀석과 싸돌아다녔다. 녀석은 집과 회사밖에 몰랐던 전형적인 워커홀릭이었다. 당시 나의 뉴욕행 덕분에 뉴욕을 함께 엿본 녀석이 더 놀랬다. 아니, 뉴욕에 이런 것이~  <세렌디피티>의 흔적을 찾아, <인 더 컴퍼니>의 사랑이 꽃피는 커피하우스 등을 찾아다니며 황홀했다. 그저 나는 여행객이었으니까. 나는 어떤 일로부터도 구속당하지 않을 휴가를 받은 상태였으니까.

아, 걷고 또 걸어도 아름다운 뉴욕의 날들이여. 그땐 그랬다. 



뉴욕, 한국을 삼키다.

그건 틀린 말이 아니다. 뉴욕은 하나의 유토피아처럼 채색되고 있었다. 그건 점점 더 가팔라지고 있다. ‘뉴욕 스타일’이라는 이름의 유령(?)도 배회했다. 한국 사회까진 몰라도 적어도 내가 발 디딘 서울은 그렇게 뉴욕에 목을 매고 있었다. “현란한 형용사에 매혹당한 한국 사회는 뉴욕의 창조성, 예술, 문화,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이야기에만 취해 있다.”(p.8) 다소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뉴욕에서 좋은 기억만 품고 온 나로선, 달리 방법이 없었다. “나도 며칠 가봤는데, 뉴욕 정말 좋더라.” 내가 뉴욕의 속살을 제대로 맛보기라도 했어야지. 관념이야 뻔했다. 뉴욕 역시 먹고사는 게 전쟁이며, 각국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의 삶은 고달프고 힘겨울 거라는. 안타깝게도 내가 헤매고 다닌 뉴욕의 거리와 시간은 내게 그런 삶을 보여주지 않았다. 아니, 내가 보질 못했다. 나라고 다를 바 있었겠나. 나는 고작해야 뉴욕의 빛나는 문화예술의 현장을 목도하고 싶은 이방인이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첼시의 화랑, 타임스광장, 센트럴파크, 소호 등. 월스트리트 정도만 빼고는 내게 뉴욕은 뷰티풀, 판타스틱, 어메이징 시티였다.


‘시크한 디즈니랜드’, 뉴욕.

그럴듯한 묘사다. 어른들의 로망이랄까. 시크함이라는 표현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도시. 뉴욕은 그렇게 소비되고 있다. 최소한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어쩌면 나도 그 스타일 소비에 작게나마 일조했을지도 모르겠다. 뉴욕 꼭 가보라며, 주위를 선동하면서 환상을 주입한 죄! 뉴욕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진짜 뉴욕을 구성하는 존재들에 대해선 쥐뿔도 모르면서. 나는, 반성해야 한다.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뉴욕은 ‘하이퍼뉴욕 hyper-New York’이라고 할 만하다. 우리는 대중문화․잡지와 신문을 통해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뉴욕을 경험하지만, 그 경험의 과정은 데이비드 하비가 말한 것처럼 “기원의 흔적을 철저하게 은폐시키며, 그것들을 생산해낸 노동과정이나 생산에 내포된 사회적 관계들의 흔적도 모두 은폐시킨다.”(p.29)


『너 자신의 뉴욕을 소유하라』.

이 책의 미덕은 이렇다. 스타일로서만 존재하던 뉴욕에 어떤 피가 흐르고, 속살을 벗기면 어떤 아픔이 있는지, 무엇이 진짜 뉴욕을 지탱하는지를 알려준다. 그러고 보니 뉴욕에 들렀을 때, 그 표피에 압도당한 탓에, 나는 몰랐다. 커피 한 잔을 마실 때, 커피를 뽑아주는 사람, 커피를 건네주는 사람, 커피 값을 계산해주는 사람, 그들도 나 같은 노동자임을. 그들은 투명인간이 아니었다. 나처럼 기쁨과 슬픔을 느끼며, 행복 하고 싶고, 꿈을 꾸고 가꾸면서 하루를 버티는 노동자. 어디 매장이나 식당을 들러도 역시나 비슷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노동자들.


진짜 뉴욕의 모습이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뉴욕 (라이프)스타일’이 아닌 뉴욕의 속살을 볼 수 있다. 고난의 시절을 거쳐 뉴욕에서 잘 나가게 됐다는, 가령 한국인의 뉴욕 유수의 투자은행(IB) 입문기였던 서른 살, 꿈에 미쳐라와 같은 성공 서사로 포장된 뉴욕 소유담, 아니다. 꿈도 아닌, 어떤 목표에 도달한 것을 놓고선, 성찰이나 세계에 대한 고민 없이 ‘나처럼 따라하면 돼’라고 읊조렸던 어이없던 기록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생생한 뉴욕. 눈에 띄지 않지만, 뉴욕을 진짜 지탱하는 것에 대한 사실적 기록이다. “…소비자본주의 시대 한국에서는 뉴욕에서 우아한 라이프스타일을 누리는 한국인 뉴요커의 도전과 좌절, 성공과 실패, 자아 찾기 식의 서사가 많아졌다. 아이비리그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꿈과 노력이 부각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러나 불안정한 노동시장에 뛰어들어야 하는 이민자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p.261)


브런치의 사회적 의미를 아는가.

이전까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브런치. 우리가 ‘아점’이라고 부르던. 그런데 브런치라고 호명함으로써, 그것은 다른 의미를 띤다. 이른바 ‘구별 짓기’가 이뤄진다. 아점을 먹는 사람과 브런치를 먹는 사람 사이. 생각해보라. 그 이미지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웃긴 거다. 브런치는 하나의 뉴욕 라이프 스타일을 대변하는 ‘상품’이 됐다. 그러나 저자는 브런치가 뉴욕의 보편적 문화도 아니요, 중간계급 이상의 전문직업인, 예술가, 대학생 등 충분한 여가시간과 경제적 능력을 가진 계층이 선호하는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 브런치가 곧 뉴욕, 아니올시다.


뭣보다 브런치를 내놓는 사람들은 노동자다.

그 사실을 우리는 잊고 있다. 한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의식적이건, 그렇지 않건, 하나의 계급적 상징이자 남과 구별 짓기 위한 기호로 쓰이는 브런치. 그 우아하고 맛있는 브런치를 내놓기 위해 누군가는 일해야 한다. 저자는 말한다. “한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은 다른 사람의 노동을 통해서만 추구되고 충족될 수 있다. 식료품점에서 물건을 정리하거나 레스토랑에서 물을 따라주고 가는 히스패닉계 노동자들, 네일숍에서 손발을 다듬고 매니큐어를 칠해주는 아시아 여성 노동자들이 없다면 우리가 상상하는 뉴요커의 삶은 결코 있을 수 없다.”(p.46)



브런치의 가격이 비싸지 않은 이유가 있더라.

다른 도시보다 임대료가 높은 뉴욕임에도 레스토랑의 브런치 혹은 식사료가 다른 도시와 비슷하거나 낮은 이유는 바로 저임금 이주노동자 때문이다. 이들은 물론 뉴욕의 화려한 때깔과 매끄럽게 다듬어진 풍경 뒤에서 보이지 않는다. 디폴트임에도, 모두에게 쉽게 인식될 수 없는 비극. 그들이 자취를 드러내면, 브런치는, 뉴욕(스타일)은 없어지는 모순. 젠장, 일하는 사람들의 고단함이란.


커피노동자인 내게도 그것은 어쩌면 슬픔이다.

커피를 볶고 추출해서 손님에게 건네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한다. 커피 생산자들의 노고와 자연의 고마움을 인식하고 있지만, 나의 고단한 노동은 아마 베일 속에 가려있을 것이다. 커피 한 잔에 담긴 노동의 가치를 알아달라고 응석을 부리는 것은 아니다. 종종 커피 한 잔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에게서, “커피가 맛있다”는 말 한마디에서 커피 노동의 보람과 행복을 찾지만, 그것이 이 팍팍하고 부박한 현실의 삶을 바꾸진 못한다. 그저 그것은 버티고 견뎌야 하는 일일 뿐이다.


‘워킹푸어’가 떠올랐다.

뉴욕이나 서울, 이 커다란 도시에서 저임금 노동으로 유지되는 삶. 일하고 있지만,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 일할수록 가난의 덫에 더 강하게 묶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 가난하다는 이유로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아야만 하는 외로운 존재. 뉴욕이든 서울이든, 그곳이 제공하는 많은 삶의 기회는 그런 저임금 노동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우리는 제대로 알고 있었던 걸까. “월스트리트의 부와 타임스광장의 대중문화, 소호와 첼시의 예술이 뉴욕을 활기차게 만들지만, 이민자들의 저임금 노동이 없다면 뉴욕은 제대로 굴러가지 않을 것이다.”(p.65)


이 말은 분명한 현실이기에 아프다. 

“이제 부지런히 일하던 이들이 도시의 주인임을 주장하던 시절은 지나가버렸다. 한때 사회민주주의적 도시를 경험했던 노동자들은 지금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냉혹한 시대를 살아간다.”(p.66) 저임금 노동자들이 없으면, 한 도시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을 거라고 확신함에도, 누구나 이에 동의할 것임에도, 누구도 그만한 대접을 하지 않는다. 뉴욕에서도 그렇겠지만, 한국의 어느 도시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기, 뉴욕의 속살을 보면서 한국의 도시를, 당신과 내 노동의 실상을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뉴욕은 그래봤는지 몰라도, 노동자가 한국에서 어느 한 도시의 주인이었던 적은 없다. 하긴 지금은 거기나 여기나 매한가지다. 비극은 그것. 워킹푸어 혹은 가난의 경계에서 외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한 사회의 지탱 혹은 번영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임에도, 그들의 행복은 사회 전체에서 없어서는 안 될 부분으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 그건 정혜윤의 말인데, 뉴욕의 저임금 이주노동자나 이 땅의 저임금 노동자에게나 마찬가지다. 


며칠 전, 지방선거가 있었다.

『너 자신의 뉴욕을 소유하라』는 뉴욕에 어느 시장이 들어서는가에 따라 변화된 모습, 즉 뉴욕의 역사와 감성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알려준다. 흥미롭다. 내가 잘못 알고 있던 것도 책은 수정해줬다. 줄리아니가 범죄적 뉴욕을 바꿨다고 생각했었다. 그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러면서 내가 발붙이고 사는 서울을 생각한다. 이곳의 시장은 앞선 4년 전과 같은 사람이다. 아마 삽질은 계속 될 것이다. 노동자를, 워킹 푸어를, 청년을 생각하지 않는 건 매한가지일 거라고 예단(!)하고 있다. 국가와 마찬가지로 지방 정부도 가난을 구제하고 약자를 지켜야하는 책임이 있지만, 나는 여전히 그 책임이 회복되지 않을 4년을 속단(!)하고 있다. 편파적인 생각이라도 어쩌겠나. 지난 4년의 학습효과다.


실은 걱정이다.

커피 노동자면서, 서울 시장이랑 니 삶이 무슨 상관이냐고? 그렇게 묻는 당신에게, “당연히 상관있다”고 말하겠다. 지금 서울은 내 삶의 터전이고, 내 삶의 질은 도시 내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좌우된다. 르네상스 시장의 재등장은 기존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려는 사람들의 정치적 기획이 아직은 건재함을 보여준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열망이 들끓었지만, 아쉽게도 그것은 뒤로 미뤄졌다. 아마, 커피 노동자로서의 내 삶은 서울을 지탱할 의무가 없음에도 서울을 지탱하는 작은 한 축이 될 것이며, 내 삶을 향상시켜줄 의무가 있는 서울시는 언제 그런 의무가 있었냐는 듯이 말간 얼굴로 삽질을 계속할 것이다.


‘새로운 서울 만들기’라고? 

그러면서 만든 구호들은 붕붕 떠다닌다. ‘세계 디자인 수도’ ‘명품도시 마케팅’ ‘한강 르네상스’ 등등. 그런데, 그게 좀 웃긴다. 서울에 사는 보통 사람들, 노동자들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말이 없다. 말만 번지르르하다. 서울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경쟁력을 높이겠단다. 브랜드 가치는 뭐고, 경쟁력은 또 대체 우리의 삶에 어떻게 삼투압할 건데? 그저 성과를 자랑질할 수 있는 수치에만 죽도록 매달린다. ““‘파리지앵’이나 ‘뉴요커’처럼 서울 시민도 서울이란 도시에 강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겠다며 자신의 비전을 정당화하지만, 어떤 파리지앵이고 뉴요커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도시 마케팅에 수천억을 쏟아 붓고, 한강 인공 섬을 만드는 데 9백억을 들여 서울을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2010년 꼭 가봐야 할 여행지’ 3위에 올려놓는 성과(?)를 이뤄냈다.”(p.262)


광장이 필요해.

뉴욕의 광장에 대한 언급도 빠지지 않았다. 1910년대의 유니언광장. “우리는 혁명을 하기 위해 모였고,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유니언광장에서 말할 권리는 우리가 땀 흘려 버는 빵보다 더 중요했다.”(p.163) 광장에서 말할 권리와 개방성. 광장의 정신은 ‘Let It Be’라고 했다. 그런데, 당신과 내게 있는 광장에는 그 정신이 없다. 우리의 것도 아니다. “…광화문광장에서는 권력의 조급함과 강박증만 느껴진다.… 정치적 야심을 위해 만들었건 건축학적으로 실패작이건 시민들에게 주어져야 비로소 ‘광장’이 된다.”(p.170)


물론 뉴욕이나 여기나 마찬가지다.

이윤과 분리주의에 입각한 공공장소의 개방성 축소문제. “이런 현상은 뉴욕뿐 아니라 전 세계의 많은 도시에서 나타나고 있다. 정치인과 관료들은 어떤 특정한 인구를 끌어들이고 다른 특정한 인구를 배제하는 정책을 펼친다. 소비하러 오는 이들에게는 개방적이지만, 저항하러 오는 자들에게는 닫혀 있다. 돈 미첼은 공공장소에 대한 위협은 단순히 “공공장소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을 배제하고 사회적․문화적 다양성을 줄이는 관리와 디자인의 방식이다.”라고 주장한다.”(p.167)



다시 뉴욕을 생각한다.

지난 뉴욕 방문에서, 나는 ‘뉴욕’과 관계를 맺은 것이 아니었다. 진짜 뉴욕을 만드는 노동자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은 것이 아니었다. 특정 시공간과 인간 사이의 구체적 관계에 집중하지 못하고 뉴욕 스타일에만 현혹됐던 게다. 상품화된 라이프스타일, 즉 교환가치를 가진 기호에 홀딱 넘어가면서 뉴욕의 속살을 살펴보고 사유하지 못했다. 책을 읽고 난 지금, 뉴욕을 낭만으로만 인식했던 허약한 사유체질의 껍데기를 벗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다시 뉴욕을 간다면, 스타일이 아닌, 생활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뉴욕은 미국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 말했고, 뉴욕 스스로도 그렇게 선언했다. “소설가 폴 오스터는 어느 인터뷰에서 “뉴욕이 미국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독립적 도시국가가 되는 것을 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만이 아니라 뉴욕에 애정을 가진 많은 이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뉴욕에 사는 사람들은 ‘아메리칸’보다는 ‘뉴요커’라고 불리기를 원하고, 제국의 국민보다는 관용이 살아 있는 뉴욕의 시민이 되고 싶어 한다. 이들은 이민자와 이방인에 대한 관용의 정신이 뉴욕을 뉴욕답게 만드는 힘이라고 말한다.”(pp.342~343)


그러나 지금은 뉴욕이 그 뉴욕이 아니다.

“그러나 ‘뉴욕다움’은 계속 사라지고 있다. 한 공연에서 부시 행정부를 풍자하던 코미디언이 이렇게 말했다. “이제 더 이상 뉴욕을 사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뉴욕이 점점 아메리카처럼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청중들은 오래된 농담 같은 그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뉴요커로서의 자부심과 미국인으로서의 자괴감이 뒤섞인 씁쓸한 웃음이었다.”(p.343) 관용은 휘발되고 법과 처벌을 강조하며 사회적 약자를 배재하고 추방하는 현실. 내가 있는 이곳의 지금이라고 다른가.


너 자신의 뉴욕을 소유하라!

이 책의 제목이 품고 있듯, 여기 나온 뉴욕도 뉴욕의 모든 것이 아니다. 편파적 보고서라고 일찌감치 선언하지 않았던가. 모든 뉴욕은 모두 편파적이다. 그게 뉴욕이다. 너의 뉴욕, 나의 뉴욕, 그들의 뉴욕. 저자는 뉴욕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일상인으로서 뉴욕을 전해줬다. 이방인이자 여행객으로 뉴욕을 살짝 맛보고 온 나의 뉴욕이라고 마냥 틀린 것은 아니다. 벗겨보지 못한 속살을 남겨뒀을 뿐. 그 속살의 일부를 저자가 전해줬을 뿐. 간혹은 그가 전하는 뉴욕의 흔적에 내 마음이 흔들렸다. 뉴욕은 여전히 내 기억의 숲속에 둥지를 틀고 있는 게다. 내게 한 뼘 정도는 넓어진 뉴욕, 언젠가는 그곳에 내 일상을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 아마 내 세계는 두 뼘 정도 더 넓어지고, 내 우주는 더 많은 사람을 만나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물론 그때도 여전히 나는 노동자로서, 뉴욕을 지탱하는 저임금 이주노동자로 살아갈 것이다. 그러면서 언젠가 내 자신의 뉴욕을 소유하는 날, 당신에게도 그 이야길 들려주고 싶다.


p.s. 책은 아쉽게도, 오타가 간혹 보인다.

아프리칸 이메리칸(p.56) -> 아프리칸 아메리칸

신보주수주의자들의...(p.203) -> 신보수주의자들의... 

미국 국세청 규정의미국 국세청은...(p.240) -> 미국 국세청은...

 

2쇄 찍을 때 교정을 보겠지? ^.^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2~3줄의 추천사를 써달란다. 어찌 거역할 수가 있을까.
그래서 이렇게 얼렁뚱땅 보냈다. 훨씬 길게 갈겨댔다.

러블리 라이프, 브라보 라이프!
     
나는 그녀가 부럽다. 723일의 여행? 아니. 내 로망이자 느린 희망의 고장 '쿠바'의 속살을 살짝 훔쳐보고, 진한 오리지널 쿠바 커피까지 마셨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쫌' 안다. 삶은 늘 맨땅에서 시작하는 것임을.

그녀는 '자주' 찾는다. 낯선 땅에서 고투와 희비쌍곡선을 그리면서도, 어떨 때 스스로 행복하고 마음과 감각이 살아있는지를. 그렇기에,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변화를 여행의 목적으로 두지 않았으니까. 그저, 즐김. 그저, 까르페디엠.

여행 곳곳에 뿌려진 그녀의 마음길에서 나는 여행의 '정보'나 빈틈없는 '일정'보다, 세상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를 엿봤다. 세간에서 구획 지은 성공과 실패의 잣대보다 스스로 자유로워지기를 택한 그녀의 발걸음에 내 마음이 덩달아 따라 나선 이유다. 

어딘들 낯설지 않으랴. 어디서든 이방인이 아니랴. 그럼에도, 책장을 넘기다보면, 그녀가 온몸과 마음의 감각을 살려 지구인으로 자리매김했음을 느낀다. 무엇보다 시즌2를 맞은 그녀에게, 부엔 까미노(앞날에 좋은 일만 있기를 or 좋은 여행하세요)!

그리고, 그녀가 그리 오래 붙잡고 있던, 줄이고 줄이고 또 줄이느라 똥줄을 뺀,
책이 마침내 나왔다.

제목 때문에도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더니,
짜잔~ 마침내 순풍 낳은 제목은,
《여행의 여왕》!


내 책도 아닌데, 뿌듯하다. 
책 뒤표지에는 저 추천사 원문의 1/4 정도가 나와 있다.

알맞게 줄여주셔서 고맙긴 한데,
맨 끝에 적은 '부엔 까미노'는 꼭 들어갔음 했는데,
간택을 받지 못해서, 추천글의 애비로서 쫌 아쉽다. 우짜겠노. ㅠ.ㅠ

뭐? 추천사 써주는 것도 돈 받냐고?
에잇! 그런 속물스런 질문을!!!!!!
이라고 타박 않겠다.

나란 인간, 속물작렬이라, 원래 돈 받아야 뭐든 써준다.
그러나 돈 안 받았다.
왜냐! 그녀가 예쁘니까. ^^;;;;
예쁘면 돈도 안 받는다, 나란 속물.
예쁘면 커피 한 잔, 공짜로 막막 준다, 나란 속물.

우리, 예쁘면 좋아한다.
예쁘고 아름다우면 편애한다.
차별과 뭐가 다르냐고? 사전 찾아봐라.;;

그러고 보니, 그렇군.
나는,
예쁜 것만 편애하는 더러운 수컷이다. ^^;
평생 못 고칠 것이다. 아마.

오냐, 그러는 넌 예쁘냐고?
바보냐, 이미 얘기했잖나. 나! 더러운 수컷이라고. 흐흐.

참, 그녀는 잘 있을까.
여행의 여왕은 지금 몽골에 있다.
내가 4년 전, 아주 잠시 몸을 위탁했던 그 곳에.
지구촌나눔운동 소속 NGO활동가로 몽골과 부대끼고 있는 그녀.
멋지다. 예쁜 것도 황공하온데, 멋지기까지.

더 멋지고 죽이는 것 알려줄까?
그녀는 이 책의 인세 50%를 쾌척한다.
전 세계의 빈곤, 전쟁, 학대에 시달리는 사람을 돕는데 말이다.
그녀의 시즌2는, 리스타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사실 시즌1은 그랬다. 2007년, 여행의 여왕은 생각지도 못할 당시.
나이는 서른하고도 후반, 허리디스크에 툭하면 장 트러블로 고생하던 저질체력에,
전셋집 빼서 마련한 여행자금 3500만원이 가진 돈의 전부였던 여자.

남의 나라 정치, 문화 등등 기본 교양에 관심 조차 없던 그녀가,
723일의 여행을 통해 세상을 품고 세계를 담았다.
전쟁, 평화, 인간, 종교 등 그동안 친하지 않던 것에 대해 '생각'을 시작했다.
세상의 소수자에게 마음을 내주는 방법도 깨달았다.

그녀는 그렇게 세상과 마주침으로써 인격과 품격이 높아졌고,
장담하건대, 이 책을 접하는 순간, 당신의 인격과 품격도 높아질 것이다.

결론은, 책 사서 보라는 얘기!
예쁘고 아름다운 사람의 책은 사줘야 한다. 그것이 나의 지론이다. (응? 증말?)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