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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풍자하고 담아냈던 ‘카바레’의 힘
『베를린, 천 개의 연극』 박철호



지금 베를린은, 새로운 ‘아트 씬’이다.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다. 전 세계 예술계의 ‘it place’. 점점 더 많은 예술가들이 베를린을 향한다. 더불어 예술을 향유하고픈 사람들의 행렬도 잇는다. 덕분에 현재의 베를린, 유럽에서 가장 흥미로운 도시다. 예술뿐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에서도 베를린은 대세. 세계 미술계의 축이 베를린으로 이동했다는 말, 틀리지 않다.

‘예술가들의 천국’으로도 불리는 베를린. 수치로 나타낼 수도 있다. 갤러리 600개. 미술가 5000명, 작가 1200명, 대중음악 밴드 1500개, 연극극단 300개. 베를린시도 예술가 후원에 적극적이다. 27개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연간 2000만유로(약 300억원)를 예술가들에게 지원한다. 수많은 기업과 기관도 예술가들 후원에 힘을 싣고 있다.

“베를린은 가히 세계 공연 예술의 메카라 할 수 있다. 현 독일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의 말을 빌면, “베를린은 아름답지는 않지만 정말 섹시하다.””(p.10)

어쩌면 이것은 낯선 풍경, 아니다. 베를린이 백남준, 요셉 보이스, 안젤름 키퍼 등 현대 미술가들의 거점이었던 시절도 있었으니까. 그러다 한동안 뜸했다. 파리와 뉴욕의 힙(hip)함에 눌렸다. 그런 베를린, 1990년대 초부터 다시 꿈틀댔다. 젊은 예술가들이 몰렸다.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고민이 덜했기 때문이다. 저렴한 물가라는 미덕. 여행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특히나, 집값이 저렴했다. 작업실 얻기가 쉬웠다.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다. 파리나 뉴욕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
 


또 하나.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결정적 계기가 있었다. 분단. 그것이 무너지자 독특한 문화가 생성됐다. 정부의 지원이 시너지 효과를 발하면서 분단이라는 시대적, 공간적 특수성은 베를린만의 독특한 예술과 문화를 낳았다. 가령, 미테지구(Mitte District)에는 폐건물을 갤러리 등의 예술 공간으로 활용했다. 레스토랑과 카페, 클럽 등도 속속 들어섰다. 지금 대세는, 뉴요커도 파리지엥도 아니다. 신선한 정신으로 무장한 베를리너(Berliner)들이다.

『베를린 코드』의 저자 이동준은 베를린을, ‘티 나지 않게 사람을 중독 시키는 매력을 지닌 도시’, ‘틈새가 많은 도시’, ‘자유롭고 가난하고 섹시한 도시’라고 불렀다.

여기 이 사람, 박철호. MBA 공부하러 갔다가 느닷없이 “마약과도 같은” 연극에 빠졌고, 연극과 문화의 중심지, 베를린을 주목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베를린 등지에 머물면서 500여 편의 연극과 공연을 접했다. 그것을 추려, 책으로 냈다. 『베를린, 천 개의 연극』.  

“독일 중에서도 베를린을 택한 것은 유럽 최고 수준의 연극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p.9)

국내 초연 <변두리 극장> 공연 관람

지난달 18일, 서울 명륜동 게릴라극장. 『베를린, 천 개의 연극』 저자 박철호와 함께하는 연극 공연 관람이 있었다. 이날의 연극은 국내 초연인 <변두리 극장>. 연극계와 문화예술계에선 알아주는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배우들이 선을 보인 무대였다. 원작은 20세기 초중반에 독일에서 극작가, 희극배우, 민중가수, 영화제작자 등으로 활동한 카를 발렌틴(Karl Valentine, 본명 발렌틴 루트비히 파이 Valentin Ludwig Fey)의 것으로, 이를 각색해 무대에 올렸다.

연극은 지금 우리 시대의 풍경을 담아내고 있었다. 원작을 국내의 상황에 맞춰 각색했다. 언어유희와 광대의 우스꽝스런 몸짓 속에 힘없는 인민의 비애가 서렸고, 저항이 꿈틀댔다. 아울러 인민들의 욕망이나 허영, 고정관념 등도 함께 담겼다. 은유와 풍자가 자연스러운 연기에 녹았고, 배우들은 종종 객석에 대사를 던짐으로써 관객이 연극을 보고 있음을 각인시켰다. 브레히트의 ‘소외효과(낯설어 보이게 하는 효과)’. 

“브레히트는 스타니슬랍스키의 사실주의 연출 기법과 정반대되는 이론을 내세우는 것이다. 관객이 연극에 몰입해서 스스로 연극의 주인공이라고 착각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게 싫다는 말이다. 브레히트는 이런 식의 연출이 극작가의 의도를 방해한다고 생각했다.”(p.198)

참고로, 발렌틴은 500편이 넘는 단막극, 촌극, 1인극, 시나리오를 썼다. 그가 작성한 공연 목록에 의하면, 작품수가 26개, 공연 횟수가 5969회에 이른다. 그만큼 발렌틴은 대중성과 인기를 누렸다. 그런 한편, 그는 단순한 희극인 이상으로 철학과 창작력을 겸비한 예술가로 평가받는다.


연극이 끝난 뒤, 저자를 비롯한 연출자, 배우들과 관객이 나눈 대화의 시간이 마련됐다.

박철호, ‘카바레’를 말하다.

『베를린, 천 개의 연극』 저자 박철호는 연극의 무대가 된 ‘카바레’ 이야기부터 꺼냈다. 한국에서 카바레, 하면 우선, 뭔가 침침하고 끈적끈적한 무도장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본디 카바레는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프랑스어인 카바레의 어원은 라틴어인 cavus(구멍)·cave(지하실) 및 아랍어의 khamaret(목로주점)였다. 무대가 있고, 손님이 음식·댄스를 즐기게 하고, 밴드 연주나 쇼가 펼쳐졌다. 일종의 사교장이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카바레는 관광업이 궤도에 오르고, 호텔이 늘면서 관광객 유치를 위한 수단으로 등장했다. 나름 애환이 있었으나 수준 높은 사교장 역할은 하지 못했다.

“한국의 카바레와 원래의 카바레는 다르다. 프랑스에서 시작됐는데, 카페에 가면 까만 고양이가 그려져 있다. 유럽에 많은데, ‘물랭 루즈’가 대표적인 카바레였다. 그런데, 베를린 카바레는 또 다르다. 1891년쯤 생겼다. 보통 카바레는 버라이어티한데, 독일은 철저히 풍자고 정치적이었다. <나꼼수>를 생각하면 된다.”

저자에 의하면, 베를린에도 카바레가 많았다. 그래서 카바레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들도 많았다고 한다.

독일인이 베를린 사람을 부를 때, ‘슈나이저’라고 불렀다. 주둥이, 아가리라는 뜻을 지녔다. 그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하고 입이 거칠다는 의미였다. 베를린의 카바레는 그만큼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면모가 있었다.

“베를린의 카바레는 잘 나갔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전쟁이 끝나고 나서 엄청난 흥행기를 맞았다. 사상 유래가 없을 만큼.

전 세계에서 베를린으로 몰렸는데, 카바레뿐 아니라 문화적으로 베를린이 풍성했다. 게이문화 등 다양하고 색다른 문화가 형성됐다. 그러다 다시 1933년 히틀러가 취임하면서 폭탄을 맞았다. 카바레는 끝장이 났다.”

히틀러가 총리에 취임하면서 카바레는 씨가 말랐다. 풍자 카바레, 문학 카바레 등이 급속도로 사라졌다. 문학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고, 전반적으로 프로파간다(선동)용 외의 문화예술은 위축됐다. 이 와중에 카바레의 유명인사 카를 발렌틴도 괴벨스 등에 의해 나치의 선전도구로 사용될 뻔 했으나, 발렌틴은 이를 거부했다. 그러다 1948년 폐렴과 영양실조로 사망했다. 이 작품은 그런 발렌틴의 단막극 22가지 가운데, 7가지를 뽑아 각색한 것이다.

Q&A

극중 연주는 진짜로 연주한 것인가?

원래 이 작품이 오케스트라로 유명해서 그리 하고 싶었는데, 그렇게는 못했다. 4곡은 라이브로 연주했고 나머지는 라이브가 아니다. 배우들도 한두 분을 빼고 악기는 처음이라 한 달 반 동안 맹훈련을 했다.

공연 마지막에 무대가 해체되고 난장판이 된다. 조용히 음악이 흐른다. 그런 허무함의 철학이 니체의 것인지, 아니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마무리를 했나?

철학이나 사상으로 받아들여도 되고, 혹은 극장이 무너져도 거리에 나가서 연극을 하겠다는 우리의 사명을 표현한 것이다. 극장이 무너져도, 지정한 것이 아니어도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그런 것이다. 발렌틴의 원래 엔딩은 너무 차갑기도 하다.

발렌틴의 원작 22가지 레퍼토리 중 7가지를 선정했다고 했다. 어떤 기준이 있었는지?

재미있는 것으로. (웃음) 가장 놓칠 수 없는 내용이 전쟁에 관한 것이었다. 3가지를 더 하고 싶었는데,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불투명해지는 것 같아서 7가지로 압축했다. 덜 재미있어도 의미가 있는 것으로 골랐다. 공연을 하지 못할 뻔한 위기가 있었는데, 때마침 김정일 위원장이 죽었다. (웃음) 그 때문에 (연극이) 동시대로 확 들어올 수 있었다.

지휘자 캐릭터는 원작의 캐릭터를 분석하고 만들었나?

원래 본 작품은 단막극 구성인데, 기승전결의 구조로 이뤄진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 전체적인 캐릭터가 없다. 예전부터 브레히트 탐구는 많이 했는데, 발렌틴은 처음 했다. 해 보니 연극적, 사회적으로 가치가있더라. 실제로 발렌틴과 브레히트는 절친한 사이였고, 브레히트의 ‘생소한 효과’의 단서를 제공한 사람이 발렌틴이다. 사회적인 대표성이라는 의미가 짧고 강한 극에도 맞았고, 브레히트의 연극성과도 맞아 떨어졌다.

발렌틴이 독특한 사람이라, 팡팡 터지기도 했다. 발렌틴의 개성이 너무 강해서 그 사람이 아니면 힘들 만큼, 지휘자는 그의 분신과도 같은 역할이다. 그래서 따로 개인적인 개성을 붙이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텍스트의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거기에 집중했다.


(박철호 작가) 내 책에 레퍼토리 극장을 언급했는데, 연희단거리패가 그 시스템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에 같이 했다. 국내에서 이 정도의 수준을 가진 극단도 드물지 않나 싶다.

“독일에는 각 도시마다 레퍼토리 극장이 있다. 레퍼토리 극장이란 한 시즌의 몇 개의 레퍼토리를 선정하여 순서대로 상연하는 극장을 말한다.”(pp.9~10)

현재 연극배우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승헌 선생 작품을 늘 본다. 연기할 때 편해 보이는데, 어떻게 그렇게 하는지. 

따로 신체훈련을 하진 않고, 모든 걸 원리에 입각해서 연기에 임한다. 1970년대 바이오 메커니즘 학문이 연구된 적이 있는데, 그걸 다시 연구해보려고 한다. 마음은 믿을 수 없다. 때문에 숨은 감각을 불어넣을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계속 탐구하려고.

7가지 에피소드를 뽑았는데, 엄청난 아이디어로 에피소드별 연결을 잘 한 것 같다. 배치를 어떻게 했나?

끊임없이 배치해 본다. 연습은 10가지 에피소드로 했고, 원래 야외극부터 하려고 했다. 여기 무대에 들어오기 전에 관객과 어울리고 만담이 이뤄지는. 그런데 날씨가 추워서 안에서 했다. (웃음) 개인의 판단보다는 관객들이 모니터 해 주는 게 도움이 된다. 공연을 계속할 수 있다면 에피소드 하나를 더 넣고 싶다. 매일 조금씩 리허설하면서 끊임없이 배치해보는 수밖에 없다. 초연이라 완성된 것도 아니다. 이번에 해 봤는데, 재미없으면 접고, 다시 다음어서 다른 버전으로 올릴 수도 있다.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밀양연극제)에서는 더 왁자지껄하게 하고 싶다.

배미향 배우께선 24년 연기를 하셨다는데, 이번 작품이 좋았던 점과 힘든 점이 있었다면?

나는 코믹배우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관객들을 웃긴다는 게 꽤 긴장됐다. 그래서 이번 연극이 힘들었다. 그런데, 관객이 웃어주니까 그게 참 좋았다.

(박철호 작가) 연극이 참 어렵다. 쉬운 장르가 아니다. 많은 레퍼토리를 정성을 다해 만들어주고, 국내 유일하다시피 한 레퍼토리 극단인 연희단거리패에 감사드린다.   


[예스24 기고원문]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한강. 처음 만난 한강은, 손을 강하게 힘을 주면 '쨍'하고 깨질 것 같은 컵 같다고 생각했다. 혹은 발에 무게를 실으면 쩍 갈라지는 강에 낀 얼음. 《희랍어 시간》이 그랬다. 위태로운 듯 섬세하고, 여린 듯 강했다. 아울러, 뭔가 진한 여운을 남겼다. 이전 작품, 《바람이 분다, 가라》, 《채식주의자》 등에 대한 언급이나, 영화로 만들어진 <채식주의자>의 평을 본 적은 있으나 첫 만남은 이번 《희랍어 시간》이 됐다.

두 세계의 만남은 안개 낀 산책길을 걷는 느낌이다. 한치앞을 보기 힘드나, 걸어가다 보면 호수의 냄새에 천천히 젖고, 호수와 길이 맞물리는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는 경험. 그리고 좀 더 호수를 둘러싼 세계의 본질에 더듬이를 세울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 두 세계는 촘촘하지 않다. 그래서 독자는 그 세계를 채우는 수고를 해야 한다. 세계의 확장이다. 

사랑은 안다고 떠벌리는 건, 오만이다. 사랑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을 감추고자 그런 말을 하는 것이리라. 《희랍어 시간》은 사랑의 아주 작은 부분이다. 한강 작가는 이 소설을 쓰면서 투명하고 연한 부분을 발견했다고 한다. 사랑의 투명하고 연한 부분, 무엇이 그럴까 생각했다. 사랑은 여전히 호기심 천국이다.

지난달 1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과 맞물렸던 그날,
한강이라는 세계를 처음으로 만났던 기록.



“소설을 쓰고 사랑의 투명하고 연한 부분을 발견했다”
『희랍어 시간』 한강


한 세계가 으스러졌다. 그 세계, 견고했고, 철옹성에 가까웠다. 베일에 가린 세계였다. 어떤 세계에 그 세계는 주적이었다. 건강을 잃어가고 있던 남자, 김정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난달 19일이었다.

한 세계가 접힌 그날. 『희랍어 시간』이었다. 말을 잃어가는 여자와 눈을 잃어가는 남자가 만났던 시간. 한 교실 안에 있었지만, 완전히 다른 세계에 속해있던 그들이었다. 극히 보기 드문 희랍어가 등장했고, 이탤릭체가 중간중간 나왔다. 그 시간은 두 사람을 오갔다. 편지가 나오는가 하면 3인칭으로 전개되기도 한다.

한강 작가의 신작, 『희랍어 시간』이 서울 서교동 산울림소극장에서 독자들과 만났다. 한강 작가의 낭독으로 문이 열린다. 남자와 여자가 관계를 맺는 희랍어 수업의 공간을 묘사한 부분이다. 

“여자는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은다. 이마를 찡그리며 흑판을 올려다본다. 자, 읽어봐요, 알이 두꺼운 은테안경을 낀 남자가 미소를 머금고 말한다. 여자는 입술을 달싹인다. 혀끝으로 아랫입술을 축인다. (…) 짧은 희랍어 문장을 빠르게 흑판에 쓴다. 악센트들을 채 찍기 전에 백묵이 두동강나며 떨어진다.”(pp.9~11)

낭독이 잦아든 뒤, 출판사 관계자의 사회로 한강 작가와 이야기를 나눴다. 근황부터 시작한 이야기는 희랍어, 소설, 사랑, 세계 등을 종횡무진하며 전개됐다. 

한강, 『희랍어 시간』을 말하다

근황은 어떤가?

책이 나온 지 40여일이다. 책 표지가 예쁘게 나와서, 상상보다 훨씬 더 예쁘게 나와서 기뻐하고 있었다. 책과 관련해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자리가 계속 있었고, 오늘 이 자리가 『희랍어 시간』과 관련한 마지막 자리가 될 것 같다.

희랍어 공부는 좀 했나?

공부를 하려고 마음먹었었다. 소설에 나온 것 같은 시민아카데미의 강좌가 있어서, 실제 알아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시점에선 교실 분위기나 전체적인 느낌을 가진 상태여서, 그것과 같을 순 없어서 굳이 가지 않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교재만 3개 사놓고 희랍어 공부를 하고 있다고 상상하면서 계속 들여다봤다. 막힐 때는 동영상 강의도 보고. 결과적으론 익히지 못했다.

희랍어뿐 아니라 그리스철학 이야기도 많다. 남자주인공은 혹시 모델이 있지 않았나?

모델은 없다. 플라톤철학 강의는 대학원에서 들었다. 공부는 나름 했는데, 공부 한 것을 다 쓰진 않고, 쓰고 나선 잊어버리려고 노력했다.


한 작가의 낭독. 남자가 하는 말(글)과 여자에 대한 이야기.

“그 목소리. 겨울밤 창문 틈을 할퀴며 들어오는 바람소리. 실톱이 쇠 위에서 소리치고 유리창이 갈라지는 소리. 당신의 목소리. (…) 당신의 심장은 규칙적으로 뛰고, 타오르며 글썽이던 두 눈은 눈꺼풀 아래에서 흔들리겠지요. 완전한 어둠 속으로 내가 걸어들어갈 때, 이 끈질긴 고통 없이 당신을 기억해도 괜찮겠습니까?”(pp.48~49)

“보고 싶은 란아. 고집불통, 기차화통 란아. 내가, 눈이 완전히 먼다 해도 지혜를 얻지 못할 사람이라는 걸 너는 알지. 마음의 눈 따위가 결코 떠지지 않을 사람이라는 걸. (…) 안경을 닦아 쓰고, 두 눈을 부릅뜨고 그 짧은 파란 빛에 얼굴을 담글 테니까. 믿을 수 있겠니. 그 생각만으로 나는 가슴이 떨려.”(pp.83~84)

“넌 나에게 말했지. 병실의 벤젠 냄새 속에서 성장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아름다움은 오직 강렬한 것, 생생한 힘이어야 한다고. 삶이란 게, 결코 견디는 일이 되어선 안 된다고. (…) 네 몸은 가끔 나를 기억했니. 내 몸은 지금 이 순간 네 몸을 기억해. 그 짧고 고통스러웠던 포옹을. 떨리던 네 손과 따스한 얼굴을. 눈에 고인 눈물을.”(pp.122~125)

“오랫동안 말을 잃은 상태를 그녀의 육체는 예민하게 드러낸다. 그녀의 몸은 실제보다 단단하거나 무거워 보인다. (…) 침묵의 얼음 속에서 그녀가 온 힘을 다해 건져내 들여다보는 것은 이주에 하룻밤 함께 지내는 것이 허락된 아이의 얼굴과, 연필을 쥐고 꾹꾹 눌러쓰는 죽은 희랍단어들 뿐이다.”(pp.58~59)

아무 것도 판단하지 않는다.
감정을 부여하지 않는다.
(…)
곁에 누운 아이는 없다. 싸늘한 침대 가장자리에 꼼짝 않고 누워, 수차례 꿈을 일으켜 그녀는 아이의 따뜻한 눈꺼풀에 입맞춘다.”(pp.102~103)

소설에 대해 구상하고 착상한 계기가 있다면?

표지의 손글씨를 써주신, 희랍철학을 공부한 선생님이 계신다. 작가의 말에도 밝혔는데, 문학과지성사 주간이 되셨을 때, 지나는 길에 들러서 인사드렸다. 철학 공부를 했다고 하시기에 고대 희랍어를 공부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꼭 배우라고 하시더라. 고대 희랍어가 뭔지 물어봤다. 희랍어는 정교하고 복잡하고 함축적인 문법 체계를 가지고 있었던 언어다. 매우 어렵고, 몇 가지 예를 들어 용법을 말해주셨다. 8년 정도 전인데, 그때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모든 것이 다 외우는 거라서 포기했다. 독일어는 격이 어렵고, 프랑스어는 시제가 어렵다는데, 그 두 개를 합한 것보다 어렵다. (웃음) 언젠가 언어에 대한 소설은 아니라도, 언어에 대한 글을 쓸 때 이런 매력적인 언어에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규칙이 까다로운 언어를 그녀는 접해보지 못했다. 동사들은 주어의 격과 성과 수에 따라, 여러 단계를 가진 시제에 따라, 세 가지 태에 따라 일일이 형태를 바꾼다.… 얼음 기둥처럼 차갑고 단단한 언어. 다른 어떤 언어와도 결합되어 구사되기를 기다리지 않는, 극도로 자족적인 언어. 돌이킬 수 없이 인과와 태도를 결정한 뒤에야 마침내 입술을 뗄 수 있는 언어.”(pp.20~21)

그리고 『바람이 분다, 가라』를 쓸 때, 1년 정도 슬럼프가 있었다. 언어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뭔가 어려운 일이 있거나 고민이 되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질문이 있을 때마다 그걸 뚫고 나가게 해 준 건 글쓰기였다. 글을 써보자 해서 오래전 생각했던 희랍어, 말을 잃은 사람, 시력을 잃은 남자, 안 보이는 곳에서 또렷해지는 목소리, 언어 등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는 보이는 세계를 계속 잃어가는 존재라서 그렇게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슬럼프 기간에 150매 정도를 썼다. 그게 너무 짧았다. 지금 분량은 600매 가량인데, 그때는 많은 조각으로 이뤄지지 않았고, 몇 개 중요한 조각만 있었다. 연재하면서 분량이 늘어 620~630매였는데, 책으로 출간하면서 좀 줄였다.

소설은 언제 어디서 쓰나?

학교에선 학생들 작품만 읽고, 책 읽는 정도만 한다. 보통은 집에서 쓴다. 밤과 새벽에 쓴다. 나도 인터넷 귀신을 피해서, 지난 3월에 작업실을 구했는데, 잘못 구했다. 위에 태권도 학원이 있다. (웃음)

작업실을 얻은 시점은 오전이었는데, 시끄러워봤자 애들이 기합 넣는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애들이 다 이단옆차기를 하더라. 형광등이 파르르 떨고. (웃음) 그래서 오전에만 가서 쓰고, 밤과 새벽에는 집에서 쓴다. 감정 기복도 심하고 잘 써질 때는 몰아서 쓰는 성격이라,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못한다. 어쩔 땐 밤도 새고.

『바람이 분다, 가라』가 격렬하고 휘몰아치는 소설이라면, 이번 소설은 정적이고 평온하고 차분한 느낌이다. 편지형식으로 쓴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 

여자는 말을 못하니, 1인칭이 될 수 없는 존재고. 남자는 시력을 잃어 가는데, 말을 걸고 싶어 한다. 그 대상이 만날 수 없는 사람이거나, 말은 걸 수 있지만 깊은 이야길 할 수 없는 여동생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절절한 속마음을 절제해서 말하려는 것이 남자의 상황이다.

일기도 중간에 들어가는데, 이 남자의 이야기는 조각조각으로 편지로 가고 싶었다. 여자는 반대로 차가운 3인칭으로 가다가 마지막에 말을 되찾는 순간, 1인칭으로 딱 한 번 나온다. 처음부터 그리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소설을 쓰다보면 생각도 있지만, 직관도 중요한 요소도 차지한다. 처음 쓸 때는 처음 낭독한 부분을 쓰고 나서 여자에게 쓴 남자의 편지를 썼다. 그때 지금 소설의 윤곽을 잡았다. 그러니 왜 그랬다고 얘기하긴 어렵다. (웃음)

여인도 목공일을 하고 남자가 나무토막으로 맞는다. 여인이 분노를 터트리고. 두 사람 사이의 사건 등에 대해 말해 달라.

이 남자는 계속 후회하는 사람이다. 시력을 잃어가는 마흔 살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자신이 알게 모르게 저지른 잘못을 참회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이 남자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처음으로 사랑했던 여자다. 그 여자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상처를 주려한 것이 아니다. 정말 사랑해서 맹목적인 어리석음으로 실수한 건데, 그걸 돌이킬 수 없게 상처를 줘서 용서를 빌고 싶은 거다.

요아힘에게 보낸 편지에 대해서도 말해준다면?

요아힘에 대한 회한은 사랑하지 못했던 나를 사랑했지만, 사랑으로 보답할 수 없었던 사람에 대한 죄의식이다. 사실은 사랑의 종류가 달랐지만 사랑하기도 했던 거고.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그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자신의 행위로 상대방에서 상처를 입힌 거라 돌아보면서 참회하고 있는 거다. 남자가 계속 발견하게 되는 것은 인간의 나약함과 어리석음이다. 신을 믿지 않는 남자지만, 신과 인간의 삶이 가진 수많은 구멍을 보고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결국 사랑의 문제다. 씻을 수 없는 과오와 상처를 주고받고, 그게 인간의 나약함이건 어리석음이건, 인간의 수많은 구멍을 가장 잘, 혹은 아픈 방식으로 드러내는 것이 사랑이 아닌가 싶다. 사랑은 무엇인가? 사랑이 뭐길래?

나, 잘 모른다. (웃음) 소설을 쓰면서도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많이 했다. 사랑이 뭘까? 처음 쓸 때는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만날지 몰랐다. 쓰면서 언제 만나고 서로 이해하게 될까를 생각했다. 이 소설은 내가 쓴 다른 소설과 달리 한치 앞을 모르면서 쓴 소설이다.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소통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는지 보면서 썼다.

나 자신도 그런 질문을 했다. 사랑이 뭐고, 어떤 사람이고, 이런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떤 종류의 소통과 교감이 가능할까, 질문하면서 썼다. 나도 사랑을 아직 잘 모르고 인간을 모르기 때문에 소설을 쓴다. 소설을 다 쓰고 나서 발견한 것은, 사랑의 투명하고 연한 부분이다.

손톱 끝으로 글씨를 써서 이야길 하잖나. 남자가 어두운 방에서 이야기할 때, 여자가 약간씩 움직여서 기척을 내는 순간들, 그런 것들을 사랑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인간 안에 있는, 가장 연해서 따뜻한 것인지조차 분별하기 어려운 상태를 소설을 쓰면서 발견했다. 굳이 답을 내놓는다면, 내가 발견한 그 부분이라고 얘기해야 할 것 같다.

소설을 쓰면서,
추구하고 탐구하고 싶은 게 있었다면?


세계를 잃어간다는 점에서 남자의 이야기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삶과 죽음의 문제를 생각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생명과 소멸. 소멸에 집착하는 이야기도 나오고. 생명을 가진 우리는 헛되게 저항하면서 삶을 이루어나가다가 안타깝게도 다 죽잖나. 그런 존재들,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것이 언어와 침묵으로 이어지는 이야기고, 그 속에서 말이 태어났고, 생명이 소멸과 동전의 앞뒤처럼 가면서 언어와 침묵도 서로 함께 가면서 싸운다.

여자는 언어가 특히 중요했던 사람인데, 언어를 잃어버린 건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즉, 언어를 되찾는 건 삶을 되찾는 거다. 소멸에 저항하겠다는 것이기도 하고. 또 한 가지는, 어둠속에서 우리들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리는 것처럼, 언어에 집중하게 된다. 어두운 곳에서 사람의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언어 자체가 이렇게 또렷한 것인가, 처음 느꼈다.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가 분리되지 않는 가치관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남자가 시력을 잃는 건, 운명과 같은 것이라면 여자가 말을 잃는 것은 의지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박탈당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말과 자신 사이에 칼을 놓은 것 같았다. 말이나 언어에 대한 회의를 보면 자발적으로 말을 잃은 것 같다. 작가의 고뇌가 담기지 않았나 싶다.

여자에겐, 언어가 너덜너덜해진 상태다. 지금은 침묵해야 하는 때인 거다. 세계와 여자는 불화하고 있고, 언어가 너덜너덜해졌고, 세계는 받아들이기 어렵고, 자신도 온전하지가 않은 상태에서, 언어를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 거다. 쥐고 있던 도구가 떨어져 발등을 찍듯이 못쓰게 된 거다. 나는 이 여자처럼 말을 잃은 적은 없다. 『바람이 분다, 가라』를 쓰고 1년 정도 슬럼프를 겪을 때, 내가 쓰는 말이 싫어진 경험은 있었다.

그때 생각했던 것은 언어의 상투성이 싫다는 그런 관념적 고민이 아니었다. 내가 하는 단어의 배열과 사용하는 단어가 너덜너덜하다는 감각적인 느낌이었다. 이 소설도 그래서 감각적으로 출발했다. 내 고민이 녹아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말을 잃은 여자가 첫 음절을 찾는 이야기랄 수도 있는데, 그 사이 일어난 일이 중요하다. 두 무너져가는 세계가 한 순간 만나고, 필담을 하는 상황에서, 희망과 같은 게 있다면?

여자가 말을 찾게 된 데는 남자하고의 일도 있지만, 그 전에 여자가 굉장히 노력한다. 희랍어도 배우고 모국어를 쓰려고 한다. 모국어가 고통을 주는 것이라서 거리를 걸으면서 얻고자 하는 것은 한 마디 말이다.

그래서 꼭꼭 묻어놓은 부분인데, 여자가 어릴 때 좋아했던 단어가 숲이다. 그래서 숲 같은 도시의 밤거리를 헤매고, 남자의 연한 부분을 발견하고 고통을 느끼기도 하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여자의 단단한 상태에 균열이 생겼고, 말이 다시 가능하게 된 거다. 남자 앞에서 한 마디 말을 할 때, 의지하지 않고 각오하면서 내적인 힘을 가지고 여자가 살아갈 것을 암시하고 싶었다.

독자들과 나눈 Q & A

근래 작품들을 보면, 세련되게 사는 사람보다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이 주로 나온다. 『채식주의자』부터 그렇게 된 것 같은데, 등장인물로부터 귀기 어린 느낌을 받는다. 의도적인가, 아니면 본인도 모르게 변한 건가?

『그대의 차가운 손』까지와 그 다음 소설 사이에 선이 그어진다는 얘긴데, 나도 그렇게 느낀다. 내 삶에도 선이 그어져 있는 것 같다. 전과 후가 많이 다르다. 개인적인 고백을 하자면, 그 즈음 몸이 안 좋았는데, 처음으로 돌아가서 생각하게 됐다. 인생이라는 것을 더 또렷하게 보고 싶다는 결심 아닌 결심을 했던 시기가 『그대의 차가운 손』을 쓰고 난 직후다. 그런 생각이 영향을 미쳐서 그 후의 소설이 달라지고, 나도 달라진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남자를 형상화할 때, 보르헤스를 생각하면서 했나?

보르헤스. 남들보다 나중에 읽은 작가인데, 각별한 애정을 갖게 됐다. 이 소설을 쓸 때 생각을 많이 했다. 이 남자와 보르헤스가 겹치는 부분도 있고, 남자의 꿈에도 나온다. 보르헤스가 불교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들, 내가 불교에 대해 갖고 있는 고민이 있다. 나는 종교가 없는데, 처음 세상에 대해 사유의 형태로 다가온 것이 불교라, 고민했던 시절이 있다. 어쨌든 보르헤스가 내겐 각별한 작가라, 이 소설을 쓰면서 생각을 많이 했다.

시는 안 쓰나?

시로 먼저 등단을 했다. 시와 소설을 같이 쓰다가 시로 먼저 등단했다. 평균을 내보면 1년 2~3편의 시를 쓰고 있어서, 어쩌면 조만간 시집을 묶을지도 모르겠다.


『희랍어 시간』에 대해 독자들과 마지막으로 만나는 시간. 한강 작가는 독자들에게 작별의 말을 하는 것이 소설과 작별 인사를 하는 것처럼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이날 추웠고, 큰 사건도 있었는데, 독자들이 함께 하면서 따뜻한 기운을 준데 대해 고마움을 표했다. 열심히 쓰겠다고 했고, 다음 책으로 만나자고 했다. 마지막 낭독이 울려 퍼졌다.

“…‥내 말이 들리나요? 그녀는 그의 말을 똑똑히 뜨고 있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는 모른다. (…) 나는 숨을 멈췄어요. 당신은 계속 숨을 쉬고 있었어요. 계속 당신의 숨소리가 들렸어요. 그때부터 우리는 서서히 떠올랐지요. 먼저 수면의 빛에 어렴풋이 닿고, 그 다음부터는 뭍으로 거세게 쓸려갔어요. (…) 마침내 첫 음절을 발음하는 순간, 힘주어 눈을 감았다 뜬다. 눈을 뜨면 모든 것이 사라져 있을 것을 각오하듯이.”


[예스24 기고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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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한 소설마초 백가흠을 낭독한 어느 가을밤
『힌트는 도련님』 백가흠

지난여름, 백가흠의 세 번째 소설집이 나왔다. 『귀뚜라미가 온다』 『조대리의 트렁크』에 이은 『힌트는 도련님』. 첫 장편이 아쉽게 유산된 뒤, 잉태된 그의 세 번째 소설집은 앞선 작품들과 다른 색깔을 주목받고 있다. 이젠 죽이지 않겠다는, 죽이는 것도 힘들다는 그의 이야기를 반영한 것일까. 


지난 10월1일, 쌀쌀함이 내린 가을밤, 서울 홍대부근의 한 카페에서 와우페스티벌의 일환으로 ‘『힌트는 도련님』 낭독의 밤’이 펼쳐졌다. 서효인 시인이 맡아, 도련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독자들과 교감하는 시간. 참고로 백가흠과 서효인, 두 사람은 같은 야구팀 소속으로, 백가흠 작가는 2루수, 서효인 작가는 포수를 맡고 있단다. 물론, 둘 다 주전이다.

근황은 어떤가?

한 달에 반 정도는 소설 연재(주. <나프탈렌>(현대문학)에 매달리고, 일주일에 나흘은 강의에 매달리고, 2주일에 한 번은 야구에 매달리고 있다. 

오늘, 「그래서」라는 작품의 낭독을 많이 하게 돼 있는데...

가끔 낭독회를 했는데, (내 소설에서) 정말 읽을 부분이 없다. 두 번째 소설집을 준비하면서 낭독회를 하면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군데군데 문장을 읽어주는 것보다 단편 하나를 온전하게 읽어보고 싶었다.

낭독할 때, 출신지가 드러난다. (웃음) 「그래서」에는 작가가 한 명 등장한다. 거기 나오는 백이라는 작가가 「힌트는 도련님」에서도 주요인물로 등장한다.

「힌트는 도련님」을 쓸 때, 창작가 입장에서 쓴 것은 아니었다. 독서의 편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처음에는 그 자리에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넣어봤다. 맨 처음에 카프카를 넣었는데, 카프카가 웬 말이냐, 싶더라. 여러 작가를 넣다가 퇴고를 하는데, 노인의 이미지로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노선생이 떠오르는 거다. 이러면 안 되는데, 김윤식 선생이 떠올랐다. 반쯤은 남진우 평론가도 떠오르고.

두 사람의 이미지가 반반 드러나서,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고민을 했다. 뒤집어 써야겠다 생각해서 여러 작가들을 빼고 나를 넣었다. 성공적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아는 한 이 두 분은 어마어마한 독서력을 갖고 계신 분들이다.

「힌트는 도련님」에 소설쓰기의 괴로움에 대해 언급한다.

시간이 지나도 답이 보이지 않을 것 같다. 본질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고. 예전의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것 같고. 원래 문학이라는 것을 어떻게 하려고 했었지? 그런 생각도 든다. 처음 마음가짐에서 멀어지니까, 작업이 잘 안 되는 것 같다. 때때로 고통스럽다.

이때도 힘들었다. 이제 그만 소설을 쓸까, 딴 걸 해볼까, 여러 생각이 소설 안에서의 관념의 고민이라면, 소설에 나오는 엄마와 작가의 대화는 실제다. 10년을 했는데, 지금도 밤에 1~2시쯤 일을 하고 있으면 어머니가 오셔서 불을 끄고 자라고 그러신다. 어머니는 아직도 이해를 못하시는 거다. 그런 괴리감?

백가흠 작가의 낭독이 있었다. 「그래서」의 한 부분이었다.
 
“노인이 쓴 입맛을 다시며 입을 비죽거렸다. 허공을 바라보는 노인의 눈은 흔들림이 없었다. 낙엽 위로 살짝 내려앉아 있떤 서리가 반짝였다.… 음, 네놈이 누군지 이제 알 것 같다. 고얀 놈. 노인이 마지막 책장을 넘기며 나직하게 말했다.”(pp.82~85)


세 번째 소설집의 색이 달라졌다.

보통 단편집은 쓰면서 계획하고, 몇 년 동안 쓴 것을 모아 책을 낼 무렵엔 다음 책에 대한 구상을 한다. 분위기나 콘셉트를 정하고 소설을 쓰는데, 이 책은 예정에 없던 거다. 문학적인 고민이 드러나는데, 오랫동안 해보고 싶단 생각을 했지만, 처음엔 다른 콘셉트였을 거다.

첫 번째 소설집부터 사회시스템에서 오는 부조리를 다루고 싶었다. 그런데 하다 보니 힘들더라. 자꾸 후회가 됐다. 극서사에 대한 것들, 그리고 왜 내가 한 발 더 나갔을까, 하고. 소설이 후지고 마음에 안 들어서가 아니고, 소설의 다른 세계로의 진입이 한정되고 작은 구멍만 남겨놓았다는 걸 알았다. 폭넓고 보편적인 것을 열어놓았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보니 일상이 무너지기도 했다. 그 안에서 소설만 찾으니 더 어렵고, 소설로 다시 들어가는데 집중도 안 되고. 소설을 쓰지 못하는 시간이 흐르는 와중에, 작가도 직업으로 보면 직업의 일상성이 존재한다. 직장을 다니는 것 외에 출퇴근을 반복하고 패턴화 된 일상성이 작가에게도 존재한다. 생활이나 일상을 찾는데 대한 어려움부터 스스로의 정화라고나 할까, 작가로서 의식을 정화하는 소설을 써봐야겠다, 나를 위한 소설을 써야겠다, 마음을 먹었고, 「P」라는 소설을 썼다.

「힌트는 도련님」은, 하다하다 다 포기하고, 처음엔 작가가 있는 횟집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모와 주방장 사이의 애틋한 로맨스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옛날처럼 안 나오는 거다. 문장을 참을 수도 없고, 인물이 그려낸 심리도 어렵고. 그래서 하나를 포기하고 쓴 소설이었다.

「P」는 말 그대로 자전소설이다. 여기에서 드러나는 에피소드, 인물 등은 내 기억일 수 있고, 왜곡된 것일 수도 있고, 남이 가진 기억일 수도 있다. 작가의 기억 혹은 과거라는 것이 개인만의 것일 수 있냐는 고민에서 시작됐다.

전작 『귀뚜라미가 온다』를 카페에서 다시 읽었는데, 누군가를 때리고 욕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새롭게 해야 할 문학보다는 이야기가 돌아 돌아서 자신한테 왔고, 웅크린 소설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문학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힌트는 도련님은 편집자에서 받치는 변명 같았다.


「통」의 한 부분을 읽은 서효인 시인의 낭독을 끝으로 1부가 끝나고, 2부는 초대 손님과 함께 한 자리가 마련됐다. 이날의 초대 손님은 소설가 김태용과 시인 신용목. 백가흠 작가의 친구들이다.

어떻게 친한가?

(백가흠, 이하 흠) 동갑내기 친구들이다. 데뷔한 연도나 활동이 다르긴 하나, 만난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성격이 다 지랄 같아서. (웃음) 몇 년 전부터 친하게 지내는 소중한 친구들이다. 같이 놀자고 불렀는데, 사실 나보다 재미없는 친구들이다.

(신용목, 이하 목) 나이도 같고 그래서 (백가흠의) 첫 책부터 열심히 읽었다. 읽고선 피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그냥 놔두지 않더라. 죽이든지, 괴롭히던지. (웃음) 도망을 다니다가, 불가피한 자리에서 함께 술을 마셨는데, 그게 아니더라. 사람 잘 챙기고 오지랖도 넓고. 그래서 결론을 내렸다. 친하게 지내야겠다. 

(김태용, 이하 태) (오늘 백가흠이) 요점 없이 말을 엄청 하던데, 어제 나랑 술 엄청 먹고, 12시에 헤어졌다. 문단에서 같은 나이 또래를 만나기 쉽지 않은데, 잘 챙겨줘서 친하게 혹은 부담스럽게 지내고 있다.


김태용 작가의 낭독이 있었다. 백가흠 작가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라고 했다. 낭독을 한 소설은 「그래서」였다.
“집 안은 아침이 되었는데도 어두컴컴했다. 흐린 날씨 탓으로, 집을 감싸고 있는 자욱한 안개 탓으로, 또 지붕을 타고 올라가며 창을 뒤덮은 담쟁이덩굴 때문에 집 안 가득 어둠의 빛이 무겁게 침잠되어 있었다.… 노인은 느긋하게 지난밤 다 읽지 못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제 그는, 책으로 만든 방에서 영원히 나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pp.97~98)

왜 이 부분을 낭독했나?

(태) 자주 보지만, 만나면 문학 이야길 하지 않는다. 술, 여자, 연예인 이야길 하는데, 그래서 더 편하게 만날 수 있기도 하다. 가끔 동료작가를 만나면 어떤 표정 등을 하며 글을 쓸까, 궁금했다. 이 글을 보면서 백가흠도 고통스럽게 글을 쓰는구나, 동질감을 느꼈다. 또 작품이 좋으니까.

신용목 시인의 낭독이 따랐다. 「쁘이거나 쯔이거나」였다.
“쯔이를 군산의 미군 클럽 근처에 데려다 준 것은 기종 씨였다. 짓누르는 양심의 가책 때문에 그는 한집에서 쯔이와, 형을 마주 보기가 힘들었다. 누군가는 집에서 나가야 했지만, 갈 곳 없기로는 기종 씨도 쯔이와 마찬가지였다. 도망치겠다고 제안한 그녀가 오히려 고맙기까지 했다.… 쯔이를 차에 태울 때까지 동생 기종 씨는 그녀의 허리춤을 움켜쥔 손을 한 번도 놓지 않았다. 저는, 행복하고, 싶어. 놓아줘. 부탁입니다.”(pp.218~220)

시인으로서 보는 작가 백가흠의 소설은?

(목) 소설을 읽을 때마다 내가 아는 친구가 맞는가, 할 때가 많다. 평소에는 헐렁하고 턱 없이 사람 좋은 웃음만 흘리는데, 소설을 보면 전혀 다른 세계를 펼쳐 보인다. 특히 예전 작품은 인간의 마음의 끝, 절벽으로 내몰리기 직전의 얇은 막을 여지없이 찢었다면, 최근 작품은 그 막을 어루만지고 있는 듯하다.

그전의 백가흠은 메마르고 가파른 현실을 보여주고자 했다면, 낭독에서 쯔이가 했던 말을 보면, 어떤 것들이 우릴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가를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 술 마실 때 모습과 달리. (웃음)

김태용에게 백가흠이란?

(태) 백가흠은 소주다. (웃음) 맥주가 아닌 소주다. 아까 낭독한 부분(「그래서」)을 선택한 이유도 노교수처럼 같이 동료작가로서 가고 싶다는 바람도 있었다. 소주, 우리가 버릴 순 없잖나. (웃음)

신용목에게 북한이란?

(목) 문제가 많은 곳이지만, 그 책임이 우리에게도 있다. 그것을 깨닫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내게) 백가흠은, 안주로 하겠다. 이 친구랑 술 마시면서 심심했던 적은 없다. 다만, 내가 힘들어서 술 마시자고 하면, 늘 힘든 얼굴로 나타나는 것이 단점이다. (웃음)

소설가로서 주변에 좋은 친구가 참 많다. 친구는 어떻게 만나나?

(흠) 사실, 친구 유지하기가 힘들다. 아무리 친하다가도 다시 보기 힘든 경우도 있고. 글로 오래봤고 오랫동안 지켜보고 들어보고 만나는 사이라 싸울 일이 없다. 늦게 만난 친구도 좋은 것 같다. 내 글을 봐주는 것도 고맙고, 다른 장르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다.


Q&A

첫 장편으로 연재했던 ‘향’은 어떻게 된 건가?

그 장편은 작년 2월부터 7월말까지 문지 웹진에서 연재를 했다. 많이 준비했고, 자신 있었다. 내용은 원죄에 대한 것이었다. 불교적인 것도 들어가고 기독교적인 것을 바탕으로 한. 그런데 소설이 중간부터 팍팍한 거다. 내가 읽기에. 단편이 가진 습성을 장편을 적용시켜 놓은 것 같았다. 가끔 여유도 부려야 하고 숨도 골라야 하는 장편의 테크닉을 감안 못하고 큰 욕심을 부려놓았더라. 

이런 부분이 있다. 자기 딸을 강간한 남자를 죽이려는데, 마을 사람들이 죄를 묻으려 한다. 마을에서 일어난 최초의 살인을 막기 위해, 남자를 도망가게 해주고 대신 죽는 내용을 쓰는데, 화형을 시켰다. 그걸 냄새로 풀었는데, 살이 타는 냄새를 한 번도 맡아본 적은 없으니 어렵더라.

그 글을 읽고 원고를 덮었다. 안 되겠더라. 너무 어렵고, 연기하자고 마무리 지었다. 왜 그랬냐. 책은 스스로 살아나가는 생명력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을 내면 내가 데리고 다니면서 일일이 설명하고 다녀야 할 것 같은 거다. 살아 있는 동안 계속 이야기해야 할 텐데, 그건 책 스스로의 생명력이 없다는 의미잖나. 딱 그날 하룻밤만 슬퍼하고, 지금까지 좋았다.


백가흠 교수의 수업을 듣고 있는데, 늘 컨디션이 안 좋은 것 같다. (웃음) 소설 쓸 때 언제, 어떻게 쓰는 편인가?

몸을 극복하고 싶었다. 옛날엔 밤 11~12시 뉴스를 보고 방으로 들어가선 바로 소설은 못 쓰고 분위기를 잡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보통 5~6시에 시작해 8~9시까지 쓰고 밤을 꼴딱 샜는데, 너무 힘들더라. 해서 생활을 찾으려고 지난봄부터 도서관에 가서 쓰기 시작했다. 수업 전까지도 도서관에서 쓰고. 나는 작가입네 그런 걸 싫어한다. 쥐도 새도 모르게 쓴다. (웃음)

마무리할 시간. 서효인 시인은 그를 순정한 소설마초라고 표현했다. 소설을 못 살게 굴고, 소설을 쓰면서 자신을 가학적으로 다루기 때문이란다. 힘들어하면서도 쓸밖에 없는 소설이라니. 순정하지 않으면 이것은 당최 불가능한 일이다. 순정은 원래 고통을 동반하는 법이니까. 백가흠 작가의 끝인사는 순정마초의 고민과 행복이 하나씩 더 늘었음을 보여준다.

“독자에 대한 배려를 그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지금은 진심으로 소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고맙다.”  

[예스24 기고원문, 사진은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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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지인'에게,
동티모르 잘 다녀왔냐며 받은 메일 내용에서,


밥 잘 챙겨 먹으라고,

비에는 젖어도 세상에는 젖지 않길 바란다는 말이 있다.


꽤나... 고마웠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말, 밥 잘 챙겨 먹으라는 말.

이 엄한 비에는 젖어도 세상엔 젖지 않길 바란다는 그 마음.


난 오늘 하루도, 그렇게 버틸 수 있구나. 세상을 견딜 수 있구나.ㅎㅎ :)

지금은, 고쳐야 하는 옛말이 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


소설가 박민규식으로 말하면, 조까라 마이싱!

이렇게 바꿔야 한다.


고생 끝에 병이 온다.

비 온 뒤에 땅이 무너진다. 삶이 무너진다.



그러니 밥 잘 챙겨먹어야 하고,

세상에는 젖지 말아야 하는 법이니라.


아무렴, 당신도 그러길 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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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멋진 아우라!

지난 2008년, 화폐와 그에 종속당한 디자인에 대한 환멸을 이유로 2년 내 디자인계 은퇴를 선언했던, 필립 스탁.

그는 앞선 2007년 “야만의 시대에 아름다움을 좇는 디자인과 예술은 무용하다”는 말을 던지기도 했다. 자본이 세상 모든 것을 집어삼킨 시대, 디자인 하는 족족, 금광이 됐을 마이더스의 굿바이 선언이라니, 흥미로웠다.

(알아보니, 스탁은 아직 은퇴하지 않았다. 입장 번복의 이유나 과정은 모르겠으나. 그는 여전히 '디자인'한다. 세상을 담아, 정치적인 의미를 담아.
“예쁜 것, 복잡한 것에 대한 미련을 버려라”)

바야흐로 시대정신은 ‘디자인’하면, 모든 것이 ‘돈’이 되는 양, 엉성한 설교를 해댄다. ‘디자인 서울’을 내걸고, 토건 행정을 일삼으면서 토건 도시로 파헤쳐지고 있는 서울을 보자면 그렇다. 디자인을 내세우면서도 점점 볼품없어지는 건 대관절 무슨 이유일까. (Re)디자인이 정작 필요한 것은 이 (화폐)야만의 시대일지도 모르겠다.

이 땅의 디자인 행정은 토건 행정에 가깝다보니, 사람들의 심미안을 해치기만 한다. 그건, 디자인 비슷한 것일 뿐, 디자인이 아니다. 미(美)는 없고, 이(利)만 좇는 행태다. 현 지배체제의 디자인은 이권만 좇을 뿐 사람(의 심미안)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니, 야만이라는 말이 자연스럽지,

필립 스탁은 디자인이 사회적 책무와 어떻게 조화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한 것 같다. 그는 “야만의 시대가 오면 차라리 나가 싸워야 한다”고도 말했다. 디자인(의 아름다움)만 생각한다면 그건 죄악이 될 수 있다는 뜻이리라. 그는 “물건을 사용하면서 즐거움과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는 것은 좋은 디자인의 원천”이라고 했다. 즐거움과 행복은 시대와 무관할 수 없다. 사람은 그런 존재니까.

디자인은 그런 토대에서 나와야 하지 않을까. 나는 디자인 분야에 종사하진 않지만, 스스로 는 삶을 디자인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디자인이 꼭 특정한 물건을 향한 것이 아니어도 된다. 그러니 자신의 색채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던 정은(『디자인 유학, 어디로 갈까?』의 저자)의 말은 충분히 납득 가능한 것이었다. 내 색깔을 알고 디자인 유학할 곳을 정한다는 것은, 디자인을 어떻게 할 것인가와 관련을 지을 테니까. 한 사람의 디자이너가 행하는 디자인에는 시대와 사람이 함께 드러나는 법이니까.


지난 8일, 서울 장충동 디자인하우스. 예스24와 디자인하우스가 함께하는 예술 릴레이 특강, 『디자인 유학, 어디로 갈까?』의 저자 강연이 열렸다. 작가, 아티스트, 예술디자인 관련 강의를 하는 저자 정은이 디자인 유학에 대한 생각을 풀었다. ‘유학’을 중심으로 언급했지만, 꼭 유학에 집중하지 않더라도, 디자인에 대한 사유를 돕는 자리였다.

디자인 유학의 필요충분조건

우선, 유학을 생각한다면, 살펴보고 충족돼야 할 조건에 대한 언급.
정은 저자는 세 가지 항목을 들었다.


첫째, 돈. “가장 현실적인 부분이고, 필요하다.”

둘째, 능력. “포트폴리오가 얼마나 좋은가, 학교에 적합한 학생이라고 설득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셋째, 마음의 준비.
“마음이 약하거나 준비가 덜 돼 있으면 유학은 미지수다. 어렸을 때, 캐나다 유학을 준비했던 친오빠가 있는데, 마음이 여렸는지, 유학을 떠나기 전 하루 전날, 유학을 못가겠다고 했다. 어린 마음에 참 의아했는데, 이게 마음의 준비가 덜 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헌데, 이와 비슷한 비중으로 반드시 중요하게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즉, 가고자 하는 학교의 색채가 자신과 얼마나 맞아떨어지느냐. 정은은 단정짓는다. “이 질문의 답변을 갖지 못한다면 유학이 무의미해질 수도 있다. 위의 세 가지는 내가 도와줄 수 없지만, 학교 색채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이 자리는 자신이 갖고 있는 색채가 각 학교와 얼마나 조화가 될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기회가 되겠다. 뭣보다 외국의 (디자인)학교는 한국의 대학과 달라서, 서열이나 순위보다 각자가 지닌 색채가 더 중요하게 부각되기 때문이다.

“가령, 내가 졸업한 영국의 골드스미스는 인본주의적인 학교다. 학생 하나하나가 운동가처럼 철학이 강하다. 학교는 사회문제나 인류학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한다. 한국 학생들이 개념적으로 가진 실질적인 것은 다루지 않는다. 강의 시간에 경제학자가 달러 얘기를 하고, 의사가 암 얘기를 하고, 아프리카 댄서가 춤을 추기도 하는 등 한국적인 교육 풍토에선 이해가 안 가는 일이 많다. 외국은 지방대학이라고 소외되지 않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거나 특정분야에 대해 프라이드가 강하고 좋은 커리큘럼을 지닌 곳이 많다.”

“특히 영국의 경우 교육자는 재능 있는 사람들 선별해 내는 ‘선택자’가 아니라 학생들이 목표를 이루도록 ‘도움을 주는 자’이기 때문이다. 한국을 생각하고 어느 정도 교수에게 의지했다가는 길을 잃어 눈물을 흘리게 될 수도 있다. ‘인본주의’ 정신의 후예들은 인간의 노력에 큰 점수를 매기는 사람들이다.”(p.9)

유학을 가기 전, 중요한 것은 학교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다. 자신의 색채와 학교의 색채를 파악하지 않으면 유학은 시간낭비일 가능성이 크다고 정은은 경고한다.

“일단 유학을 실행에 옮기기로 결정하면 그 다음에 가장 중요한 선택은 학교다. 외국의 경우 학교 자체의 명성이 높다고 해서 그 안에 포함된 디자인 대학의 교육 수준까지 높다거나 이력서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 대학마다 강한 학과가 모두 다르고 규모가 작아도 역사아 전통을 자랑하는 디자인 전통대학도 많다. 또한 학교마다 대부분 비슷한 커리큘럼을 갖고 있는 국내 대학과 다르게 외국의 디자인 대학들에는 저마다 다른 커리큘럼과 목표, 그리고 ‘성격’이 있다.”(p.8)

나의 색채는 무엇인가?

정은이 강조하는 또 하나의 지점. 자신의 색채를 파악하는 것. 학교 색채와 맞물려야하기 때문이다. 허나 문제가 있다. 한국적인 교육환경은 천편일률의 인간을 양산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개성과 적성이 고려되지 않는 성적 위주의 답 맞추기. 이는 결국 한 사람이 자신의 색채를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


자신의 색채를 모른 채 유학을 가면, 난관에 맞닥뜨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주변에서도 유학을 다녀와서 자신의 생각과 너무 다르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았다. 두 가지를 파악하고 만나게 해주지 못해서 생긴 문제다. 학교 색채를 파악하는 건 빠를 수 있지만, 자신의 색채를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 부분이 하이라이트다. 자신의 색채를 파악하고 학교의 색채를 파악한 뒤에야 유학을 가야 한다.”

색채 파악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저자도 강의를 하면서 많이 겪었다. 심지어 자신의 색채를 파악하라는 수업 중 지시에 울음을 터뜨리는 학생도 있었단다. 제도권 교육이 안겨준 폐해랄까. 선생이 주는 것, 부모나 선생이 원하는 것만 따르던 학생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질문이 당황스러웠던 것일까.

“문제는 외국 교육과정은 정반대라는 거다. 그쪽은 자기 성향이 강한 학생들을 선호한다. 내가 원하는 것이 뭐고, 왜 디자인을 전공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유학을 가기 위해 준비하는 것과 동시에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 자신의 색채 찾기다. 자신의 색채가 약하면 입학이 어려울 수 있다. 물론 미국은 조금 다른데, 학교의 성향이나 색채, 교육스타일이 한국과 유사성을 띠기도 한다. 유럽은 전혀 다르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네가 좋아하는 게 뭐니, 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데, 이것은 유학생활 내내 따라다닐 질문이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영국(의 디자인 학교)은 자신의 색채가 강한 학생을 선호한다. 또 벨기에의 앤트워프왕립예술학교는 패션으로 유명한데, 학생에게 아티스트 수준의 철학을 요구한다.

“앤트워프는 패션이 의미하는 가장 넓은 영역을 다루고 싶다고 강조한다. 이들의 교육 목표에는 패션이 시대와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 중 하나이기 때문에 사회를 반영하면서 사회에 의문을 던지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p.215)

그렇다면 저자는 유학 시절이 어땠을까. 그녀는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거부감보다 신기함이 앞서, 골드스미스에서 유학하는 것이 즐거웠단다. 교수들이 어떤 가이드라인도 주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도, 그녀에겐 맞았다.


허나, 저자와 함께 유학했던 한국인 동기는 달랐다. 유학 후 그 동기가 고백하길. “나는 정말 5천원 어치의 지식도 얻지 못했다.” 그 말을 남기고, 학교를 떠났다. 자신의 색채와 명백하게 다른 학교를 택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색채와 학교의 색채를 매칭시키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저자가 강조한 중요한 포인트 중의 하나는 영어다. 토론이나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수업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과는 전혀 다른 수업 방식에 당황을 넘어 감정이 상하게 되거나 좌절을 하는 경우도 생긴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 그래서 준비돼야 한다는 면은 물론 자신의 색채를 표현할 때도 영어는 중요하다.

영국과 미국의 학교 훑어보기

저자는 처음 출판을 의뢰받았을 때, 정보서적으로 만들자고 했다. 그러다 독자들에게 실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을 담고자 하는 마음에 학교별 색채를 실었다. 물론 정보서적이라는 한계 때문에 더 많은 문화적인 이야기나 학교의 성격을 모두 담지 못한 아쉬움도 있단다. 특히 책은 본문의 30% 가량을 학교가 속한 지역사회, 문화 등을 실었다. 학교가 지역사회와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는 경우가 많아서이다.

책은 영국과 미국의 학교 각각 15곳을 선정하고 10곳을 아시아로 하면서 총 40개 학교를 다뤘다. 특별한 기준이 있다기보다, 영국과 미국의 학교가 월등히 좋다는 것보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각자의 색채를 빛내고 있는 곳을 소개했다. 일부 학교들에 대한 짧은 소개.

에딘버러 예술대학(ECA)
“리서치가 강한 학교로, 유럽의 경치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싶은 학생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쇼핑을 좋아하거나 상업성에 관심 많은 학생은 이곳에 유학오면 돈 낭비라고 생각할 거다. 에딘버러는 감성이 충만한 학생에겐 참 좋다.”

골드스미스
“나 같은 캐릭터에겐 무척 좋았다. 커리큘럼의 80%가 에콜로지컬 디자인에 치우쳐 있고, 상업성에 관심이 큰 학생에겐 힘들 수도 있다.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선 책도 많이 읽어야 한다. 나는 책을 읽다가 기절한 적도 있다. (웃음) 코피 한 번 안 흘리는 체질이었는데.”

로열칼리지오브아트(RCA)
“(디자인계) 스타들이 포진해 있고, 스타들이 가르치는 학교다. 토드 분체라는 비교적 젊은 디자이너가 학과장인데, 프라이드가 무척 강하다. 매점에 일하는 직원도 자부심을 가질 정도로 전통을 자랑하는 학교다. 다만 입학금이 비싸고 대학원만 있다.”

센트럴세인트마틴예술디자인대학(CSM)
“골드스미스가 인본주의적, 사회적인 색채가 강하다면, 여긴 상업적인 색채가 강하다. 패션디자인은 많이 떴다. 예술성을 강조하긴 하나 전반적으로 커머셜한 부분에 집중한다. 실용적인 면을 생각한다면 이곳을 강조하고 싶다. 폴 매카트니의 딸 스텔라 매카트니, 가레스 퓨 등의 패션디자이너가 이곳 출신이고 그래픽 디자인에도 강점이 있다.”

브루넬대학교
“한국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디자인 엔지니어링에 큰 강점을 갖고 있다. 외관 디자인을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인데, 전에는 외관에서 먼저 시작했다면, 디자인 안에 숨어 있는 기능적인 면까지 고려해서 안과 밖이 연동되도록 한 디자인이다. 애플 시리즈를 디자인한 스티브 잡스의 오른팔인 조나단 아이브(애플 부사장)가 엔지니어링 중심의 디자인을 했다. 기계적인 부분을 많이 다룬다.”


노팅엄트렌트대학교
“대학교 순위평가에선 어떤 위치인지 모르겠으나, 노팅엄은 문화유산이 풍부한 도시다. 작은 도시의 풍부한 문화유산에 풍덩 빠지고픈 사람에겐 좋다. 디자이너 폴 스미스가 후원하는 곳이다. 유서 깊은 학교라 프라이드 강하다.”

브라이튼대학교
“한국 사람이 별로 없는 대학 중의 하나다.”

런던메트로폴리탄대학교
“요즘 뜨는 학교로, 무척 크고 시설이 좋다.”

캠버웰예술대학
“북아트에 강점이 있는 학교다.”

미국 교육은 유럽과 한국의 중간으로 볼 수 있는데, 미국 디자인교육의 특징은,  

1. 바우하우스 : 독일의 바우하우스가 미국에 건너가 발달하게 됐다.
2. 유럽에서 교육받은 디자이너들이 많다. 
3. 상업주의에 기반을 둔다.

마무리로, 저자는 유학을 통해 얻는 것을 언급했다. 그녀는 우선 노력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새겼고, ‘노하우(Know-how)’를 쌓았다. 또 다양한 관점에서 세상을 볼 수 있는 시각을 얻었고, 다른 문화권 안에서 가치관을 재평가할 수 있는 힘도 키웠다. 저자는 유학을 간다면 반드시 적극적이어야만 그 생활을 견뎌낼 수 있음을 강조하는 한편, 유학을 100% 권하는 입장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유학만 간다고 능사가 아니란 얘기다. 디자인에서도 중요한 것은 자신을 먼저 아는 것이다. 


Q&A

영국을 선택한 이유는?

자기 색채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내 성향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문화, 역사 등에 관심이 많았다. 미국은 성숙한 상업주의가 발달한 곳이라고 봤고, 유럽에 가면 근원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어가 갖춰지면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호기심이 80이라면 영어가 20으로, 영국을 선택했다. 지금은 유럽에 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당시에는 미국에 유학 가는 친구들이 많았다. 미국에 갔던 당시 친구들은 인지도 때문이었다.

영국은 석사가 1년이고, 미국은 2년이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그것 때문에 차별은 없었나.

내가 아는 한은 없었다. 더 알려지고 덜 알려진 차별은 있어도, 과정이 1년이든 3년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졸업한지 몇 달이 지났다 이런 것은 따지는 것은 있더라.


디자인 유학을 졸업하고 갔나, 아니면 직장생활을 하다가 갔나?

일장일단이 있는데, 나는 졸업하자마자 갔다. 졸업하자마자 온 사람은 초반에 헤매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살짝 더 오픈마인드였던 것 같다. 자극이나 새로운 것에 대해서. 매너리즘도 없었다. 매너리즘이 강하면 유학을 통해 깨치지 못할 수도 있다. 일 경험을 쌓고 유학을 가면 장점이 있다. 한국에 돌아가 다시 일을 하는데 쉬울 수 있다. 외국에서 많이 깨치고 자유로운 영혼이 돼서 돌아왔는데, 한국에서 통용되지 않거나 설 영역이 없을 수 있다.

언어에 대한 준비는 어떻게 했는지.

나는 유학을 가서 했다. 영국에 가서 어학원을 다니면서 포트폴리오를 더 잘 만들어서 1년을 알차게 보내면서 준비했다. 공부뿐 아니라 문화 활동에 참여하고 다채로운 문화행사를 보면서 얻은 경험 등을 통해 언어를 공부했는데도 영어 성적이 모자랐다. 그래서 조건부로 입학했는데, 굉장히 힘들었다. (웃음) 절박한 심정과 훈련을 통해 영어가 많이 늘었다. 영어에서 필요한 노력과 자세는 자존심을 버리는 것이다. 영어는 실수하면서 는다.


[예스24 기고원문 초큼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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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지도 않게 맑은 날,

누군가는 사랑에 빠지고,
다른 누군가는 이별을 겪는다.

그 남자는 죽음을 선고 받고,
그 여자는 세상에 이름을 새긴다.

혹자는 느닷없이 한 방 맞고,
누구는 온 힘을 실어 선빵을 날린다.

누구에게나 아무렇지도 않게 맑은 날이지만,
모두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맑은 날은 아니다.

2011년의 4월8일,
그 사람은 버스 안에서 한 여자의 흘러내린 옆 머리칼을 보면서 생각했다.
아, 나는 이제부터 여자의 옆 머리칼을 유심히 지켜보겠구나.
구렛나루 아닌 그 머리칼은 절묘한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아무 이유도 없었다.
굳이 꼽자면, 그 사람, 어제 전혀 예상치 못한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일까.
 
아무렇지도 않게 맑은 날,
세상의 모든 짐이 그나마 잠시 가벼워지는 밤임에도,
그 사람은, 슬프게 하루를 닫는다. 노떼가 넥쉔에게 완봉패를 당했다.

히까리를 따라하, 련다.
노떼의 시합을 보고 있으면,
이겨도, 져도,
울고 싶어지니까.


그 사람, 따라쟁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맑았던 날, 
그 사람, 히까리가 보고 싶어졌다. 그녀가 울고 있다...


궁금하다.
필립 스탁은 정말 은퇴했을까. 초콜릿을 만들고 있을까.
오늘 디자인 하는 사람에게 물었지만, 만족할만한 답을 얻지 못했다.
그 사람, 감독에서 은퇴하고 제작자로 나선 뤽 베송의 예를 들었지만,
글쎄, 나는 왠지 필립 스탁이 그랬을 것 같진 않다. 어떤 근거도 없지만.

왜 그런 게 궁금하냐는 표정이었는데,
글쎄, 모르겠다. 굳이 꼽자면 아무렇지도 않게 맑은 날이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더치 커피 한 잔,
마셨으면 좋겠다. Soul 36.6에는 있는데, 집에는 없다.
아무렇지도 않게 맑은 날, 더치 커피 한 잔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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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은 많은 경우, ‘지겨움’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된다. 일상은 반복되는 쳇바퀴이며, 비슷한 패턴에 의해 되풀이되는 무엇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지겹다는 감정은, 변화가 없다는, 곧 ‘별 일 없음’이 주는 마음의 상태일 텐데, 그건 한편으로 세상에 심드렁해졌다는 의미도 있다.

어쩌다, 우리의 일상이 그렇게 꾀죄죄해졌을까. 일상이 지겹다는 말, 일상이 듣는다면 참으로 섭섭해 할 말이다. 화도 나고, 울어 버릴지도 모르겠다. 변명하자면, 일상은 그리 지겹거나 무감하게 지나쳐야 할 무엇이 아니다. 일상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은 탓이다. 혹은 타의나 외부의 자극에만 몸과 마음을 맡긴 탓 아닐까. 정작 중요한 내 마음, 내 몸의 주체적인 끌림에 반응하지 못한 까닭은 아닐까.

돌아보라. 자신의 감성을. 무뎌진 것은 아닌지, 노화될 때가 아닌데, 어느덧 노화된 것은 아닌지. 너무 강한 외부의 자극에만 길들여진 것은 아닌지. 감탄할 줄 모른다는 것은 큰 문제다. 그것이 크건 작건 문제가 아니다.

『플레이!』의 저자 강미영은 이렇게 자극(?)한다. “자극에 반응하지 못하는 것은 위험하다. 누군가 진심으로 충고를 해주더라도 반성하지 못하고 작은 일에 감동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른다. 이건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이다.”(p.106)

나는 생각한다. 아주 간혹이라도 찰나처럼 스친 행복감을 기적이라고 부르지 말란 법이 없다면, 일상은 때론 기적의 연속이다. 대부분 사람은 슬픔, 노여움, 화, 분노, 짜증 등이 기쁨, 즐거움, 환희, 감탄 등보다 생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적을 만날 수 있다. 일상을 축제처럼 보내는 비기(秘技)가 아닐쏜가.

그러니까, 죽음에 더 가까워지는 하루인 내일을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기대하느니, 내 남은 생애 가운데 가장 젊은 하루인 오늘의 일상에 감탄을 심어라. 『플레이!』는 그런 소소한 감탄 심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3000명, 꿈을 향한 첫 발자국



이에, 지난 16일 서울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 『플레이!』 출간기념 북 콘서트 ‘혼자 오는 파티’가 열렸다. 이날의 주제는, “일상의 예술을 즐겨라!” ‘혼자 놀기’의 달인, 저자 강미영이 선사하는 일상에서 길어 올리는 축제 혹은 행복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당신의 일상을 다독이는 법, 한 번 훑어봐도 좋겠다. 밤9시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 그것이 때론 당신을 외롭지 않게 만들 수 있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강미영이 공부한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의 학생들이 그의 축제를 함께 즐겼다. 누군가는 기타 연주와 노래를 불렀고, 다른 이는 플롯을 연주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시를 낭송했다. 다들 각자의 일상에서 길어 올린 것들일 것이다. 누군가는 하루하루가 파티 같을 수 있다. 인생이 곧, 파티이며 축제라는 본질을 깨닫고 실천하는 이에겐.

이날 이 자리, 그녀가 꿈을 향해 내딛는 첫 번째 발걸음이었다. 아마도 그녀에겐 평생을 잊지 못할 그런 순간이리라. 누구에게든 세상 모든 ‘첫’은 모든 것을 무화 시킬 만큼 힘이 세니까. 그녀의 꿈이 뭐냐고? 3000명이 모인 자리에서 강연을 하는 것. 그보다 훨씬 적은 숫자가 모였지만, 그녀에게선 잔뜩 긴장이 묻어난다. 허나, 누구에게나 처음부터 꿈이 바람처럼 다가오진 않는다. 첫 발은 그런 것이다. 두려움과 긴장감이 엄습하는 것. 아마도, 그녀는 그 감정을 즐겼을 것이다. 그 어느 해, 3000명을 상상하면서.

“여기 오기 전에 그런 다짐을 했다. ‘혼자 오는 파티’니까, 이런 자리에 혼자 올 때의 뻘쭘함을 알기 때문에, 한 분 한 분 인사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첫 번째 오신 분을 보는 순간부터 굉장히 떨리고 그래서 그러지 못했다. 오늘 3000명보다 적은 인원인데도, 포스가 장난이 아니다. 인원을 줄여야겠다. 3000명은 너무 많은 것 같고. (웃음)”

본격적인 파티 문을 열기 전,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소장의 축사와 짧은 문답이 있었다. 

“나는 기억하고 있다. 13년 전, 책을 처음 낼 때, 그게 내 손에 쥐어졌을 때를. 무척 좋았는데, 사람들 앞에선 티를 못 냈다. 진짜 좋아한 건, 화장실에서였다. 마음 놓고 좋아했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것을 잊기 마련인데, 어떤 느낌이 내 안으로 몰려왔을 때의 순간은 잊히지 않는다. 13년 전 이야길 할 때는 그때 그 기분이 떠오른다. 강미영씨에게도 그럴 거다. 첫 번째 만큼의 감동과 에너지, 충격적인 기쁨으로 다가올 진 모르지만, 여러 번 반복하면 덜해지기도 하지만, 두 번째 책도 자신이 낳은 아이고, 품에 안을 때 기쁨이 있다. 나는 첫 책에서 내 인생이 바뀔 거라는 예감을 받았고, 진짜 바뀌었다. 오늘 멋진 시간 보내길.”

1년에 한 번씩 책을 낸다. 책 쓰는 게 즐겁지만은 않다. 어떻게 극복하나?


홈페이지 게시판에 이런 글이 있었다. 혼자 있으니 외롭다. 안 써진다. 그래서 내가 댓글을 달았다. 사람 맛을 알면 술을 퍼 먹지, 왜 글을 쓰냐. (웃음) 글을 쓴다는 건, 그 앞에 뭔가 생략돼 있다는 거다. 두렵다, 꼴값 한다 등. 글 쓰는 게 잘 안 되면 머리를 쥐어뜯는데, 그냥 나가서 놀다오면 된다. 그러는 게 좋다.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면 뭔가 채워진다. 안 채워지면 술을 퍼마시면 되고. (웃음) 살다가 채워지면 쓰게 되고, 쓰게 되는 것에 만족한다.

이번에 나오는 책이 있다던데, 어떤 책인가.


제목을 아직 결정 안 했는데, 내가 강력하게 밀고 있는 제목은 ‘깊은 인생’이다. 위대함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 속에 있는 위대함이 어떨 때 발화하게 되는지를 담았다. 그런 것들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터닝 포인트로 촉발되는 건지.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함에 관심을 갖게 됐다. 앞으로 더 연구하고 싶은 건데, 위대한 사람들도 소급해 보면 평범하고 나약하고 절망할 때가 있었다. 어떻게 했기에 우리가 아는 위대함을 갖췄을까. 역사적 인물 속에서 구했지만, 역사성에는 관심 없었고, 그 순간에 느꼈을 정신적 경지를 추측한 거지. 문학 같은 건데, 사실은 구라다. (웃음)

공개! 일상을 축제로 즐기는 비기(秘技)


이어 강미영의 순서. 책에는 없는, 그 이후에 발견했던 일상의 발견이나, 책에 넣고자 했으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실리지 못한 이야기. 맥락은 같다. 일상을 축제처럼 즐기는, 그녀의 비기. 일상을 축제처럼 만드는 마음의 행로 따라잡기. 일상에서 길어 올리는 기적. 자, 이젠 당신의 일상을 건드릴 지어다. 그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참고로, 그녀는 이런 사람이다. “재미없거나 포기하게 될까 봐 아예 시작도 하지 않는 사람은 되지 않겠다. 이대로 주저앉아 버리기에는 내가 너무 젊고, 또 아직 하고 싶은 일도 많다. 비록 끝까지 가지 못하더라도 그 시간들이 모두 내 안에 어딘가 쌓여간다는 사실을, 나는 믿는다.”(p.133)


화장품 가게 : 그녀가 선물을 주는 방법

“마음에 드는 립글로즈를 그냥 사서 갖고 있다가 주고 싶은 사람을 만나면 준다. 대개 목적을 갖고 선물을 사러 가는데, 나는 그냥 내 마음에 드는 선물을 사서 준다. 난데없는 선물을 하는 거지. 받을 사람을 생각해서 사는 것도 좋지만, 내가 사고 싶은 것을 사서 아무 이유 없이, 그 사람이 좋거나 그냥 어울릴 것 같아서 주는 것도 권해주고 싶다.”

파자마 파티 : 그녀, 관계를 넓히다

“적당한 사진이 없어서 책에 싣지 못했다. 파자마 입고 재밌게 노는 파티인데, 보기에도 느끼한 아저씨부터 다양한 사람들이 잠옷을 입고 논다고 생각하니 처음엔 부담스러웠다. 취지는 허물없이 친하게 지내자는 건데, 나는 그 파티를 하면서 생각이 많았다. 파자마를 입은 모습은 대개 가족들에게만 공개하잖나. 그러니 가족 같은 친구를 만난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어릴 때는 나이 등에 상관없이 관계가 넓었다. 그런데 학교에 가면서 동성친구, 또래 등으로 관계가 좁아지는 느낌이었다. 파자마 파티는 그래서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나이 많은 사람들과도 가족 같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연령대를 떠나 관계도 확장시킬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내겐 그런 계기가 파자마 파티였다.”

캐릭터 볼펜 : 그녀, 효율이 아닌 즐거움을 찾다

“캐릭터 볼펜을 굉장히 좋아한다. 그런데 볼펜만 놓고 봤을 땐, 성능이 좋은 건 못 봤다. 하나씩 하자를 갖고 있음에도 좋아한다. 한 번은 친구가 생일선물로 휴대폰 줄을 골라왔다. 예쁘다고 하면서도, 무슨 기능이 있냐고 물었다. 휴대폰 줄에도 창을 닦는 기능 등이 있잖나. 친구가 ‘예쁘면 됐지, 뭘’ 그러는 거다.

그 얘길 되짚어봤다. 어떤 것이든 예쁜 것은 중요하지 않고 기능 위주로 따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미 있고 충격적이었다. 기능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예뻐서 맛있어서! 모든 게 효율만 따지는 건 아니구나. 캐릭터 볼펜은 모시고 다녀야하는데도 꼬박 챙겨서 나간다. 그런 기분 느끼고 싶을 때가 있다. 글 쓰는 입장에선 잘 써지는 볼펜이 좋은데도, 그런 걸 포기하고 즐길 수 있는 걸 찾는 거지. 난 그렇게 즐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밥벌이와 연결되지 않는 일은 의미 없는 시간 낭비이고 기억하는 것조차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밥벌이가 아닌 일에 관심을 두고 자신을 확장시켜나가는 것은 밥벌이만큼 중요하다. 이것은 나에 대한 믿음과 확신의 문제이기도 하다.”(p.140)

카페 : 그녀, 다른 시선을 느끼다

“카페 밖에서 카페 안을 들여다본다고 생각해보라. 마침 그게 출근길이다. 카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여유 있게 앉아 있는 것 같다면. 출근길에 친구와 홍대 카페 앞을 지나는데, 카페에서 한 사람이 컴퓨터를 치고 있더라. 우린 벌어먹고 살기도 힘든데, 팔자 좋은 사람은 카페에 앉아 놀고 있다고 얘기했더니, 친구가 그러는 거다. 우리 회사 오려고 이력서 쓰고 있을 걸? 내가 부러워 미칠 지경인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은 나를 보며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는 거지. 나, 그렇게 형편없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내 생각과 달리 다른 사람이 보는 시선은 다를 수 있고, 나를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우린 달라질 수 있다.”

김밥과 라면 : 그녀, 공동의 외로움에 대하여

“분식집에 혼자 갔는데, 사람이 붐볐다. 4인 테이블에 혼자 앉았는데, 마침 혼자 온 아주머니와 함께 대각선으로 앉았다. 난 혼자 밥 먹는 게 어색하지 않았는데, 아주머니는 어색해서 내 눈치를 보는 거다. 내 눈치를 보는 게 불편했는데, 물을 두 잔 떠서 한 잔을 드렸다. 물 뜨러가서도 고민을 했다. 찬물? 따듯한 물?(웃음)

그때 알았다.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말 건네는 것이 힘들고 생각이 많아지는 순간이긴 하지만, 손을 내밀면 고맙고 편해질 수 있는 관계가 된다. 혼자 온 사람만이 혼자 온 사람의 마음을 안다. 둘이 있을 때는 혼자 온 사람에겐 관심이 없었고 혼자 온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혼자 가면 혼자 온 사람이 보인다. 그럴 때 용기를 내서 말을 건네 보길 바란다.”

수요일 : 그녀, ‘리틀 토요일’을 만들다

“나는 목요일만 되면 일주일치 체력이 바닥나는 저질체력이다. 금요일은 힘없이 지내는데, 이런 나를 위해서 만든 것이 리틀 토요일이다. 사대를 나와서 교사 친구가 많은데, 제일 억울한 것이 방학이다. (웃음) 나는 수요일마다 가급적 칼퇴근을 하는데, 어느 날 회사 차원에서 수요일은 칼퇴근을 하라는 거다. 그러니 싫어지더라. 그래서 지금은 하지 않고 있는데, (웃음) 하루를 정해서, 꼭 칼퇴근이 아닐 수도 있고, 일주일 중 기운을 충전할 수 있는 날을 만들어 봐라. 일주일을 지치지 않고 달려갈 수 있는 힘이 된다.”

화장지 : 그녀, 가족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일

“화장실에서 거의 다 쓴 화장지를 보면 화가 난다. 갈아 끼워놓고 가지, 그러면서. 어느 날부터인가 내가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직접 갈아 끼워놓고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니 이것에 집착하기 시작한 거다. (웃음) 생각해보니, 우리 집에서 그게 내 자리인 것 같더라.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즐거움이자 기쁨이다. 한때는 가족이 다 집에 오면, 신발을 정리하는 역할을 해봤다. 재밌는 시간이었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의무고 책임이지만, 가족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작은 지점을 찾아 나의 즐거움으로 삼는다면, 그것이 훨씬 즐거울 수 있다.”

같은 사물이라고 누구에게나 똑같지 않다. 용도가 있다손, 모든 것이 그것으로만 재단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을 어떻게 두느냐의 문제. 강미영의 말. “돈 들여서, 공부 많이 해서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관심을 갖고 발견하려고 노력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그녀의 일상의 발견은, 특별해서가 아니다. 세상에 대한, 자신의 마음에 대한 관심이다. 노력이다. 세상은 보려고 하는 만큼 특별해지고 풍성해진다. 당신이 지금 보는 컴퓨터 모니터에도 이름을 붙여줘 봐라. 당신의 친구 이름 하나가 더 늘었다. 당장, 세상은 달라진다. 삭막한 것은 세상이기보다 당신의 마음일 가능성이 크다.

사진이 바꾼 삶


책에서 사진을 담당한 안태영의 순서다. 카메라를 든 지 3년이 좀 넘은, 『나는 똑딱이 포토그래퍼다』의 작가다. 그도 책 덕분에 삶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그는 이 책에 함께 참여하면서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이 책은 그의 일상에 어떻게 틈입했을까.

“원고를 받고 천천히 읽어봤는데, 남자인 내가 소화할 수 있을까 싶어서 여러 번 읽었다. 공감 가는 부분도 많았다. 케이크, 분홍수건, 요구르트 한 병에 특히 공감이 갔다. 아내와 아들 둘이 있는 내 가족도 생일 때만 주로 케이크 먹었는데, 특별한 날이 아니라도 케이크를 사는 게 얼마나 일상을 바꿀 수 있나 실험을 했다.”

과연 어떤 실험이었기에. 그는 아내와 싸운 다음날 케이크를 샀다. 화해하기 위해서였다. 케이크를 조르는 두 아들을 뿌리치고, 아내에게 케이크를 선사했다. 결과는? 그 자리에선 안 풀렸단다. 헌데 다음날이 달라졌다. 매일 아침 먹는 계란프라이. 그는 노른자를 터트리지 않은 계란프라이를 좋아함에도, 아내는 바쁘단 이유로 노른자를 터트린 계란프라이를 먹이곤 했으나 케이크 다음날 아침의 계란프라이, 노른자가 생생히 살아있었다. 케이크가 바꾼 일상이었고, 결과적으로 먹혔다. 종종 케이크를 사갔더니, 돈 아깝다며 아내가 말렸다는 후일담까지 그는 전한다.

‘요구르트 한 병’에 공감한 그의 또 다른 실험. 아내에게 이틀에 1만원씩 용돈을 받는다는 그. 하루는 점심을 얻어먹은 덕에 1만원이 굳었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톨게이트를 통과하면서 1만원을 쾌척(!)했다. 대신 뒤로 오는 차량 열 대의 톨게이트 비용을 받지 말라면서.

“일부러 천천히 갔다. 인사라도 할까 봐. (웃음) 세 대한테는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 그 이후의 차는 내가 낸 줄 모르니까 안 했을 테고. 기분이 색다르더라. 아내에게 얘기했더니, 허세 부렸다고 야단맞았다. (웃음) 단돈 만원이지만, 열 사람에게 짧은 기쁨을 주고 나도 얻었다는 걸 책을 통해 느꼈다. 일상에서 기쁨 찾는 게, 여행을 가거나 술을 마시지 않아도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요구르트를 안 먹는 날이면 깜짝 이벤트처럼 냉장고에 누군가를 위해 요구르트를 넣어두었다.… 그리고 며칠 후 냉장고에는 기적처럼 "아무나 드세요"라고 써 붙인 우유가 나타났다.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의 트레버처럼 좋은 것 하나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결국에는 이 세상이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뀔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p.216)

그는 이어 어떻게 카메라를 들게 됐는지 사연을 언급했다. 3년 정도를 함께 한 카메라, 이 책을 보니, ‘카메라와 혼자 잘 놀아왔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란다. 더 젊은 날, 그는 군대 제대 후 직장생활을 1년 하고 자신의 사업을 꾸렸다. 돈을 많이 벌겠다는 욕심이 컸다. 하지만, 그는 부자 아빠의 욕망을 이루지 못했고, 하던 사업을 접고 실의에 빠져 있었다. 그때 친구가 카메라를 샀다며 보여줬는데, 캐논 400D였다. 필름이 아닌 디지털 카메라가 나왔다는 사실에 놀랐고, 자신도 카메라를 마련했다.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안태영 사진의 출발점이었다.

“그런데 처음에는 별로 재미가 없었다. 그런 시점에 아이들과 놀이동산에 갔는데, 그때 찍은 사진을 인화하면서 사진에 재미가 붙고 알아갔다. 그렇게 3년 사진을 찍었다. 그 시간동안 자기만의 사진을 토대로 책을 쓰고 인지도를 가진 것은 빠른 편이라고 얘기하는 분도 있다. 3년 동안 사진을 했다는 것, 이 책을 읽으니 내가 잘 걸어왔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는 그 3년, 혼자 시작하고 즐긴 사진을 좋아하는 분도 생겼다는 것에 고마워했다. 그러면서 대중을 무시해선 안 되고, 혼자 하는 작업이라도 대중과의 소통이 이뤄진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블로그나 미니홈피 등의 공간에 글이나 사진을 올리는 행위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남들을 신경 쓰기보다 내 일상을 기록하거나, 사진으로 일기를 대신하는 것도 좋다. 그것이 모였을 때, 과거를 되돌아갈 수 있다. 일기는 내가 과거의 이날은 이랬고, 이런 사람을 만났다는 타임머신 역할을 할 거다. 사진도, 글도 스스로 즐길 수 있는 것을 찾아 각자 많이 즐겼으면 좋겠다.”

“한 가지만 제대로 즐겨도 재미있게 신나게 살 수 있다. 무엇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큼 주변에 널린 것들을 충분하게 누릴 마음의 여유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 내 손에 쥐어진 것이 많지 않더라도 일상 속에 널려 있는 기쁨의 순간을 충분히 느끼는 것만으로도 나의 하루는 달라질 수 있다.”(p.57)

강미영에게 묻고, 강미영이 답하다



어디에 초점을 두고 쓴 책인가.


뭔가 특별한 설정이 아니라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나는 얘기를 하고자 했다. 첫 책이 일상에서 혼자 놀기라면, 이 책은 일상에서 발견하는 나만의 축제라는 느낌으로 잡았다. 자기만의 시간을 확보한 사람을 위해, 뭔가를 채울 수 있는 새로운 생각, 관계 맺기 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리뷰 중엔 호감 리뷰도 있고, 비호감 리뷰도 있는데, 이를 바라보는 마음은 어떤가.


리뷰는 일단 다 본다. (웃음) 책을 쓴다는 건, 연습문제를 푸는 느낌이다. 끝을 가도 알 수 없는 답일 수 있는데, 문제도 스스로 낸 것이긴 하지만 독자들에게 답을 제출하는 것 같다. 그래서 독자는 꼭 채점자 같다. 모든 분들이 내 책을 좋아할 수도 없다고 생각하고, 그런 것도 좋아하진 않는다. 10 중에 7이 내 책을 좋아해준다면 충분히 만족한다.

안 좋은 리뷰를 처음 봤을 땐, 굉장히 충격 받았다. 내가 왜 썼을까, 고민도 됐는데, 이젠 맷집이 생긴 건지, 그렇지 않다. 예전에 나도 책을 읽고 내가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하면 쉽게 판단하고 버렸는데, 이젠 잘 못 읽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내 책을 안 좋게 읽은 분은 ‘네가 제대로 못 읽었네’하고 생각도 한다. (웃음) 점점 더 독자와 리뷰를 보는 게 편안해 질 거라고 본다.

두 번째 책인데, 사회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어려운 말이다. 성향이나 재능으로 봤을 때, 나는 큰 판을 벌일 수 있는 사람은 아니거든. 정치나 투쟁은 내 영역은 아니고, 나는 큰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의 참모 역할은 잘 할 수 있는 것 같다. 큰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정해져 있진 않은데, 누군가가 자신의 색깔을 찾는데 내가 사례가 돼서 자신의 길을 찾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고향이 제주도다. 제주도는 어떤 의미인가?


매력적인 곳이라 많은 분들이 여행 삼아 가는데, 안타깝게 나에겐 떠나고 싶은 곳이다. 20년 넘게 산 뒤, 서울에 와서 살았는데, 당시는 왜 그곳을 떠나고 싶었는지 몰랐다. 다시 일 때문에 3년 정도 제주도에서 생활하면서 왜 그랬는지 깨달았다. 아는 사람이 너무 많은 거다. 여행 온 사람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데, 내겐 제주도가 그런 곳이 아니었다. 그게 너무 스트레스였다. 그게 제주도 떠나고 싶은 이유였다.

지금은 도시를 동경하는 편이다. 다시 돌아가고픈 마음도 조금 있으나, 관계에 대한 매듭이 풀어지지 않는다면 제주도에서 생활하고 싶을진 모르겠다. 그런 관계를 내 나름대로 승화시킬 수 있다면, 돌아가고 싶은 곳이다.

3월에 여행 간다는데, 어떤가.


3월부터 6월까지 유럽에 갈 생각이다. 나가서 글 쓰고, 책을 낼 생각이다. 출판사랑 얘기한 건 아니고. 제주도에 살면서 늘 궁금했다. 다른 사람들은 와서 뭘 보고 느끼고, 충전시킬까. 나에겐 일상의 공간이라 보이지 않았는데,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여행자 신분이 돼서 낯선 곳으로 갈 거다. 여행자 신분에서 바라보는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여행지 정보나 지식을 주진 않겠지만, 일상을 도와줄 수 있는 것에 대해 조사하고 책을 쓰고 싶다.

언제 둘이 놀기 할 건가.


글쎄, 지금은 결혼할 생각이 없다. 한국 나이로 서른셋인데, 이왕 늦은 거 할 것 다해보고 가자는 주의다. 결혼은 내 계획 중엔 가장 후순위다. 그래서 맨 나중에 둘이 놀기, 셋 놀기 해보고 싶다.

글을 쓸 때도 혼자 쓸 텐데, 가장 행복했다고 느낀 순간은?


첫 책은 멋모르고 썼고, 얼결에 썼다. 독자들이 남긴 리뷰에서, 내가 표현하지 않은 것까지 느껴줬을 땐 정말 희열이었다. 이번 책은 그 힘으로 썼는데, 기쁨을 느끼는 순간은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상상하는 순간이다. 처음엔 나를 위한 글을 썼는데, 이번 책은 독자를 상상하고 공감하는 글을 쓰려고 했다. 그런 사람들과 대화하는 느낌이 들 때 희열을 느낀다. 피드백을 상상하면서 에너지를 얻어서 다음 글을 쓰게 되는 것 같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첫 책인 『혼자 놀기』를 쓰고 나서 처음엔 기쁘고 그랬는데, 나중에 스멀스멀 올라온 느낌은 내가 왜 그랬을까, 였다. 어떤 분은 책을 내면, 광화문에 알몸을 벗고 서 있는 느낌이라고 했는데, 나도 공감했다. 알몸으로 서점에 놓여 있는 느낌?

이번 책을 쓰면서 자기검열이 심해지는 거다. 어디까지 나를 보여주고 솔직해야 하는지 고민도 했다. 나는 내 삶을 이야기하는 글을 쓰기로 결정했다. 삶에 대한 탐구가 새로운 보편성을 만들어낼 거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이 갖는 특별함에 집중하고 싶고, 내가 가진 것을 하나씩 보여주면서 모범 답안은 아니지만 사례로 보여주면서, 힌트를 주고 싶다. 나는 내 삶이 들어 있는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 사람이 얼마나 다양한 감정을 갖고 있는지는 삶의 질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다양한 느낌을 갖고 있다는 것은 자신에게 벌어진 일들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성숙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저 좋고 기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좋고 기쁜지를 정확히 느낄 수 있어야만 진지하게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p.117)

p.s. 참, 책에서 아쉬운 게 있다. ‘똑같은 일상에서 틀린 그림 찾기’라는 챕터. 제목이 ‘틀렸다’. 내용은, ‘날마다 완전히 다르게 펼쳐지는 일상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말하는데, 제목과 내용엔 ‘틀린 그림 찾기’라고 적어 놨다. ‘다르다’와 ‘틀리다’의 구분에 신경을 덜 쓴 탓인가? 저자도 그렇지만, 편집자의 잘못도 있다. 관용어처럼 받아들이는 것이라도, 그것이 틀렸으면, 책에서 굳이 쓸 이윤 없지 않나? 일상에서 '틀린 것 찾기'를 놀이처럼 하는 까칠한 내 눈에 들어와서 꼬집어봤다. 유후~ ^^;;  

[예스24 기고원문 아주 초큼 수정]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지난해 최영미 시인의 『도착하지 않은 삶』을 읊조리다가,
혼자 파파팡 터졌다. ^^;


‘2008년 6월, 서울’이라는 詩,

“한국 남자들의 품종이 눈부시게 개량됐어”때문이었다.

그리고선 문득 궁금했던 기억.
나는 '개량 품종'일까? 허나, 개량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다. 좋을 때도, 나쁠 때도.




당신에게 ‘서른’은 무엇인가. 그 서른까지가 아직 남았든, 그 서른을 관통했든, 살아있다면 누구나 거쳐야 할 정류장, 서른. 물론 정류장은 종착역이 아니다. 삶에서 서른은 도착하는 것만으로 끝날 무엇이 아니다. 소설가 김연수는 (남몰래 흘리는 눈물보다 더 빨리 우리의 기억에서 마르는) 스무 살이 지나면, 스물한 살이 아닌 스무 살 ‘이후’가 온다고 했지만, 누군가에겐 서른이 또 그럴지도 모른다.

1990년대 ‘서른’이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된 적이 있었다. 고 김광석은 ‘서른 즈음에’를 통해 이렇게 노래했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에/ 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네.” 시인 최영미도 서른을 읊조렸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서른은 그렇게 비고, 가는, 시기였다.

리고 세월이 흘렀다. 그 90년대, 서른을 노래하던 이는 이미 세상과 작별했다. 예순의 나이에 할리 데이비슨을 몰고 싶다던 이였다. 서른을 읊조리던 시인은 한때 시와 절연하리라 마음도 먹었지만, 이제는 시가 천직임을 깨닫고 보다 성숙한 글을 쓰고 싶어 한다. 그 시인이 그렇게 우리에게 다시 돌아왔다. 『도착하지 않은 삶』이란 한결 너른 제목을 품고. 앞선 『돼지들에게』이후 4년 만이다.

시니컬하면서도 재기발랄한 비유,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시적 화법으로 문단과 세상에 큰 화제를 몰고 왔던 그였다. 1994년 출간된 『서른, 잔치는 끝났다』. 지금까지 51만부 넘게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 시집이다. 멋도 모르고 긁적인 이 시집으로 최영미는 신드롬이 됐다. 그런데 그것이 그에겐 감당하기 힘든 짐이었다. 시 쓰기는 점점 어려워졌고, 삶은 도착할 곳 없는 방랑이 됐다.

그는 첫 번째 시집이후, 산문집과 미술 에세이, 장편소설을 펴냈다. 시집을 낸 만큼이나 시집 아닌 책들도 냈다. 시 쓰기의 어려움이었을까. 오죽하면, 그는 ‘다시는’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토해내고 있었다. “시를 쓰지 않으마/ 불을 끄고 누웠는데……/ 옆으로, 뒤로, 먼지처럼 시가 스며들었다./ 오래 전에 죽은 단어들이/ 하나둘 달빛에 살아 움직여도,/ 나는 연필을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깨닫는다. “밖에 무언가 어른거려,/ 바람의 그림자에 속아/ 아까운 잠이 달아났다.”

허나 그는 숙명적으로, 운명적으로 ‘시인’이다. 시를 쓰지 않고자 했을 때, 스스로 방랑자였다고 표현한 그는 이제, 시가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옷임을 안다. 다시 시로 돌아온, 시인 최영미다. 어쩌면 파블로 네루다에게 시가 그랬듯, 시가 그에게로 온 것일까. 다시 그때처럼, 그는 시를 저질렀다. ‘나는 시를 쓴다’고 말하는 시인 최영미에게, 우리는 그가 우리에게 건넸던 이 말을 되건넨다. “먼길 떠나는 나그네가/ 살아서 떠돌/ 지상의 모든 길이/ 영원히 푸른 하늘과 닿게 하소서.”

지난 21일 홍대부근 상상마당에서 여전히 곱고 아름다운 최영미 시인을 만났다. 그에게 다시 시를 물었고, 계속되는 인터뷰에 지쳤을 법하지만, 그는 차분한 어조로 답했다.

첫 시집이후, 설레는 건 이번 네 번째 시집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런 설렘은 시집에 대한 만족감인가? 아니면 또 다른 설렘의 근원이 있나?

지난 2005년 소설을 쓰고, 시를 쓰지 못할 줄 알았다. 안 쓰려고 했었다.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시에 대한) 회의 같은 게 있었고, 작가로서의 위기도 있었다. 2006년 이수문학상을 탔다. 처음으로 (문학상을) 받은 건데, 분명 기뻤지만 (글 쓰는 것이) 더 힘들어졌다. 이번 시집에도 그런 마음이 담긴 시가 있다. 그리고 2007년까지 이래저래 개인적으로 무척 힘들었던 시기였다. 그러다가 이번 시집을 냈는데, 마음의 평화랄까. 설렘은 그런 평화에서 온 것 같다.

그런 의미였나. 이번 시집에 대해, “연애의 즐거움을 음미하는 느낌”이라고 했던데. 시작(詩作)이 그만큼 즐거웠다는 것인가.

20대 때는 그러니까, 멋모르고 쓴 거다. 시가 무엇인지, 시를 어떻게 써야하는지, 아무 것도 모르고 시를 쓴 거지. 그런데 이번에는 뭐랄까, 시 쓰는 것의 재미를 느끼고, 그것을 음미했다. 시를 안 쓰다가 1년 만에 쓴 시가 ‘내일을 위한 기도’였다.

일부 시는 광주일보와 문예잡지사에 선보였던 것인데, 계기가 있었나.

광주일보에서 시를 청탁했다. 처음이자 유일하게 일간지에서 내게 시를 청탁한 경우였다. 그러니까 청탁이 받아서 쓴 것이지, 다른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해설을 보면 일본의 사가와 아키 시인은 이런 말을 남겼다. “‘도착하지 않은 삶’이란 현대의 ‘도착하지 않은 사랑’ ‘도착하지 않은 시’를 의미한다… 도착하지 않은 삶을 구하는 것이 시이다.” 시집의 제목에 담긴 의미가 있나.

해설이 정확하게 됐다. (웃음) 나도 깜짝 놀랐다. 그러니까, 도착하지 않은 삶은, 목표 없이 떠도는 삶이기도 하고, 현실에 안주할 수 없는 삶이 아닐까. 그런 삶을 구하는 것이 시이기도 하고. 사가와 시인의 해설을 읽고 나도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런데 사실 시를 쓸 때, 나도 무슨 뜻인지 모르고 쓸 때도 있다.


마지막 시인 ‘나는 시를 쓴다’가 인상적이다. 특히, ‘詩를 저지른다’는 말이 시에 대한 열망과 내 안에 있던 시가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묘사한 것 같았다. 어떤 마음에서 나온 시인가.

(시를 처음 쓸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내게 남은 건 이것밖에 없다는 그런 심정 있지 않나. 이제 내게 남은 건 글밖에 없고, 시를 쓸 때가 가장 내게 어울리고, 내게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은. 방랑자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편안했다.

‘다시는’이라는 시에선, 시를 쓰지 않겠다는 마음이 나온다. 시를 쓰지 않겠다는 것은 어떤 마음의 표현이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아까도 말했지만, 정말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하나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복합적인 것이다.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일종의 중년의 위기였다고나 할까. 물론 이제는 벗어났다.

2007년 가을 춘천으로 거처를 옮겼다. 1년 반 춘천 생활이 시를 다시 쓰게 한 동력이 됐다고도 하던데, 춘천이라는 공간, 어떤 곳이었나.

춘천을 간 뒤로 아픈 적이 없다. 감기 한번 앓은 적이 없다. 아름답고 좋은 도시다. 위로를 받기도 했다. (서울과 일산에 있을 때는) 치여서 괴로웠다. 특히 2006~2007년에는. 춘천에서는 어디든 산이 보인다. 그런 자연으로부터 위로를 받는다. 춘천에 아는, 친한 사람은 없지만, 이상하게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다. 물론 내가 존경하는 오정희 선생님(주.『새』『돼지꿈』의 작가)도 계시고, 이외수 선생님도 계시고.


그렇다면 춘천에 간 이유가 따로 있었던 건가?

단순하다. 집값이 싸고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을 찾았는데, 그게 춘천이었다. 조카들을 좋아하는데, 춘천에서는 자주 보지 못하는 게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다. 그리고 옛날에 할아버지가 백양리역 역장을 하셨다. 4살 무렵이었던가, 아버지가 감옥에 계실 때, 할아버지와 함께 역사에서 살기도 했다.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그런 것들이 내 안에 잠재돼 있다가 춘천으로 이사할 때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이번 시집의 4부에 보면, 교토, 파리 등 여행의 흔적들이 나온다. 특히 ‘나의 여행’에서는 “거리에서 여행가방만 봐도 떠나고 싶어”라거나 “길을 잃어본 자만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구절이 인상 깊었다. 여행과 시, 혹은 익숙한 곳에서의 떠남은 어떤 의미인가.

인생은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4부에 나온 그런 곳을 여행 다녔다. 짧게 메모하고 돌아와서 한참 뒤 기억을 살리면서 시를 썼다. 젊었을 때부터 여행을 많이 했고, 20대 때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혼자서. 지금은 그렇게 여행을 자주 하지 못한다. 서울 오는 게 일종의 여행이다. 여행욕구도 해소가 된다. 한 달에 두 번 꼴로, 그러니까 평균 2주에 한 번 춘천과 서울을 오가는 여행을 하고 있는 셈이다. (웃음)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그런 에너지가 느껴지는 시들이 있다. 가령 ‘중년의 기쁨’에서 “내 몸의 시계는 멈추지 않았다”나 ‘내일을 위한 기도’에서 “당신과 함께라면 가난한 잠을 깨우는 새벽 종소리가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와 같은. 살아있다는 것을 언제 느끼는가.

재밌는 운동경기를 볼 때, 조카를 볼 때, 행복하다고 느끼고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야구를 좋아하는데, 두산 베어스의 김현수 선수 팬이다. 이승엽 이후 최고의 타자가 아닌가 싶다. 따로 정해놓고 하는 운동은 없고 평소에 많이 걷는다. 차가 없으니까. (웃음) 춘천 시내에서 집까지 걸어온 적도 있다. 1시간가량 걸린다. 그냥 생활이 걷기다. 걷는 걸 좋아해서 많이 돌아다닌다.


예전 ‘Personal Computer’에서 친구보다 애인보다 낫다며, “컴-퓨-터와 씹할 수만 있다면!”이라는 당시로선 충격적이고 도발적인 언어로 컴퓨터를 풍자했다. 과거, 재기발랄한 비유, 직설적인 화법이 화제에 오르기도 했는데, 이번 시집에선 세련되고 무르익거나, 달리 말하면 무뎌졌다는 인상도 받는다. 스스로 어떻게 달라졌다고 보나.

뭐랄까. 나이 들어서 보이는 게 있다. 젊어서는 못 보지만 나이듦이 안겨다주는 그런 것들이 있다. 친구들 얘기를 들으면, 이번 시집에 나이듦이 보인다고 하더라. 최영미, 살아있구나 하는 말도 듣고. (웃음) 남들 얘기를 들으면 그런 얘기들이 많은데, 그냥 덤덤하다. 누구나 늙는 거니까.

기계를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요즘도 여전한가. 혹시 시나 다른 글을 쓸 때, 원고지를 쓰는가.


기계치다. 아직 휴대폰의 문자 메시지를 보낼 줄 모른다. 문자 받아서 보는 법을 배운 것도 얼마 안 됐다. 노트북도 원고를 넘길 때만 쓴다. 초고는 종이에 쓴다. 기계를 그만큼 싫어한다. 그래서 여행할 때 카메라도 안 들고 간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여행할 때 딱 1번 카메라를 들고 간 적이 있다. 한 여성월간지에 산문을 쓸 때가 있었는데, 카메라를 협찬을 받았다. 카메라를 들고 갔는데, 한 컷도 못 찍었다. 가기 전에 카메라 작동법을 배웠는데 기억이 안 나더라. 그래서 유럽에 살고 있는 친구가 카메라 들고 있는 포즈를 찍어줘서 다행히 ‘땜빵’을 했다. (웃음)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스타가 된 후 나머지 세월을 “설거지하며 살았다”고 했다. 예기치 않은 스타덤의 부담이 너무 컸다는 얘기인가.


스타라고 할 수 있나. 시집이 그냥 좀 팔린 것일 뿐이지. (웃음) 그땐 뭐든 준비가 안 됐다. 글을 써서 산다는 것, 작가의 길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다른 길을 엿봤는데 나이 들어서 다른 직업을 구하기도 쉽지 않더라. 공부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공부에 미련이 있어서. 시간강사로 한 학기 해 봤는데, 그것도 체질이 아니더라.


요즘 (시인이) 천직이라고 깨닫고 있다. 나는, 여럿이 하는 일을 못한다. 그러니까 조직에 들어가서 하는 일 있잖나. 혼자서 하는 일이 나한테 맞는다. 그 책이 나온 뒤로도 인터뷰를 잘 하지도 못하고 서툰데다 힘든 게 많았다.


우연찮게 시인이 됐다. 1991년 겨울 대학원 학기가 끝나고 일기장에 써 온 시를 일간지 선배에게 보내고, 출판사에서 ‘재능이 있다’며 날마다 시를 쓰라고 권하고. 그런데 1994년에야 시집이 나왔다. 당시 얘기 좀 해 달라.


당시 일기장에 적어놓은 시가 10편 쯤 됐다. 정서(正書)로 옮겨 적고 베껴 놓은 노트를 갖고 있는데, 참 애틋하다. 그걸 보면 목숨 걸고 썼구나, 싶다. 그만큼 정서를 여러 번 했다. 처음 일기장에 쓸 때는, 별 생각 없이 장난삼아 썼던 시였다.


그렇게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시인이 돼서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작가나 시인을 알 기회가 없었고, 주변에도 없었으니까, 이 동네 상식이나 기본도 몰랐다. 이 업계 상식을 몰라서, 지금도 많이 모르지만, 애를 먹기도 했다. 직업인데 제대로 알아야 할 것이 있지 않나. 어디 업계든 살아남기 위해 룰이 있고, 룰을 알아야 하는 건데, 그런 면에서 나는 좀…


5공화국을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 중에 사랑이 있더라. 어떤 사랑을 갈망하고, 지금 사랑하는 대상이 있나.


그때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시대 분위기에 눌려 스무 살에 풋풋하게 연애할 기회를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은 조카다. 남녀 간 사랑은 별 것 아니다. 사랑의 폭이 넓어지는 것 같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좋아한다. 자연도 좋아하고.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애정이 점점 깊어진다.


‘2008년 6월, 서울’이라는 시에서 유모차를 호위하는 청년들을 보면서, “한국 남자들의 품종이 눈부시게 개량됐어”라고 했다. 한바탕 웃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과거 품종(?)은 어땠기에.


요즘 젊은이들, 멋있어졌다. (과거보다) 마초기질이 희석되고 부드러워졌다. 외모도 개량되고. (웃음) 좋게 보인다. 이 사회가 남자는 여자보다 일찍부터 비열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도록 만드는 것 같다.
(군대에서 주로 그런 것을 체화한다고 하자) (남자들에 대해) 불쌍하고 연민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군대는 없어져야 한다.

시인의 말에 보면, “보다 성숙한 글을 쓰는 작가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고 했다.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


지금보다 좀 더 인간미나 세상을 품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죽을 때까지 성장하는. 그냥 좋은 글이고 만족스러운 글을 쓰고 싶다. 이번 시집이 4년 전에 나온 『돼지들에게』보다 만족스럽듯, 앞으로 나올 글이 나에게도 흡족하고, 사람들에게도 흡족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앞으로 바람이나 계획이 있다면. 시인으로서도 좋고, 생활인으로서도 좋고.


춘천에 사는 집의 대출금을 아직 못 갚았는데, 빨리 갚았으면 좋겠다. (웃음) 지금 조카가 기브스를 한 상태인데, 빨리 나았으면 하고. 나도 비교적 건강한 편이기는 하나, 아프지 않았으면 한다. 물론 주변 사람들도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계획이라면, 시집은 잘 모르겠고, 두 번째 장편소설을 쓰다가 중단한 상태다. 7년쯤 전에 산문집이 나왔는데, 6월 중에 지금 시집이 나온 출판사에서 산문집이 나올 예정이다. 현재 교정을 보고 있다. 소설 쓰기도 계속 할 거고, 앞으로는 시와 소설에 집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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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으로 이어진 세계, 고마움 한 움큼 전한다
[리뷰] 《히말라야의 선물》

커피를 마신다. 세상에서 가장 향긋한 내음이 코를 자극하더니, 입에서 퍼지는 향미가 뇌를 깨움과 동시에, 목구멍을 타고 마음을 적신다. 몸과 마음, 커피는 곳곳에 박힌다. 커피가 주는 선물이다. 아, 행복하다. 커피야, 고마워.

그와 함께 때론, 나는 울컥한다. 방금 마신 커피 때문만은 아니다. 선물 같은 이 커피가 어디서, 어떻게 온 것인지를 생각하면 그렇다. 커피 한 잔이 내게 오기까지 거쳐 온 수고를 생각하면 그렇다. 커피농사를 짓는 사람부터, 방금 커피를 따라 준 사람까지. 물론, 커피라는 농작물이 자랄 수 있게 해 준 흙, 안개, 햇빛, 바람, 비, 나무 등 모든 자연에 대해서도. 내게 행복을 주기 위해, 지구의 모든 것이 한데 모여 있다. 이 커피 한 잔에 말이다. 참으로 고맙다.

나는 커피를 만드는 사람이다. 멋으로 맛을 내는 사람이고자, 오늘도 커피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나는 커피라는 창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이다. 누구나 자신의 직업이나 관심을 통해 세계를 읽고 해석하듯, 나도 그렇다. 커피 그 자체와 함께, 커피를 둘러싼 다양한 세계에 나는 촉각을 세우고, 사유하고자 노력한다. 아마 그 덕분일 것이다. 내가 다루고 만지는 커피는, 공정무역 커피다.

말하자면, 커피노동자인 나는, 내가 만드는 커피가 누군가의 하루를, 순간을 행복하게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 커피가 어떻게 세계를 연결시켜주고, 어떻게 온 것인지 알았으면 하는 바람도.

커피 강의를 할 때마다 언급하고, 이전 글을 통해서도 언급한 적도 있지만,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이 말.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탁자에 앉아 남아메리카 사람들이 수확한 커피를 마시거나,
중국 사람들이 재배한 차를 마시거나 서아프리카 사람들이 재배한 코코아를 마신다.
우리는 일터로 나가기 전에 벌써 세계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

나는, 그리고 커피를 마시는 당신은 그렇게 이미 신세를 지고 있다. 커피 한 잔을 마실 때 세계의 누군가에게 신세지고 있음을 생각하면, 커피 향미가 더욱 짙게 다가온다. 사실, 이건 생소한 개념이 아니다. 우린 어릴 때, 부모로부터 학교에서 늘 이런 말을 들었다. 밥을 먹을 때마다, “니가 먹는 이 밥을 만든, 벼농사를 지은 농부의 노고를 생각해 봐라.” 나도 그랬고, 많은 이들이 대수롭지 않게 들었겠지만, 같은 맥락이다.

참농부가 여기 있었네

《히말라야의 선물》
을 보고, 그래, ‘농부’의 뜻을 재차 다졌다. 누구보다 땅님의 힘을 믿고, 바람님, 해님, 물님, 별님, 안개님 등 자연이라는 큰 선생님의 뜻을 받들고 합일점을 찾는 분, 농부님. 네팔에 있다고 다르랴, 커피를 다룬다고 다르랴. 더구나, 그들은 잔머리 굴리지 않는다. 편하고 손쉬운 방법을 구하지 않는다. 그저 몸으로 밀어붙인다. 몸에서 우러난 철학이랄까. 교과서나 책을 통해 배운 것이 아니다. 땅을 일구고, 커피나무를 기르며, 유기농법을 하는 그들의 모습이 그렇다.


책의 저자이자 EBS다큐프라임 <히말라야 커피 로드>를 찍은 이들의 이야기다. “마을 사람들은 유기농법이야말로 자연이 그들에게 허락한 농사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을 거스르는 일은 해본 적도, 하고 싶지도 않다는 말레 마을 농부들. 이런 고집 속에서 단순히 커피 수확량을 늘리기보다는 깨끗한 커피, 건강한 커피를 키워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p.141)

거참, 돈독 든 화폐주의자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뻘짓하고 자빠졌다. 많이 팔아서 많이 남겨야 미덕이지, 뭔 깨끗한 커피, 건강한 커피란 말인가. 화학 농약 화끈하게 뿌려줘서, 수확 빠방하게 하고 봐야지. 뭐어, 천연 비료? 천여언 비료오~ 그럼 소는 누가 키워? 소는? 하고 버럭할 일이다.

뭐, 그런다고 여기 말레 마을 사람들, 끄떡할 사람들도 아니다. “사람 몸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은 화학 농약입니다. 우리는 화학 농약은 전혀 쓰지 않아요. 우리는 약초로 천연 비료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에게도 식물에게도 절대로 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커피를 정말 깨끗하게 만듭니다.”(p.141)

그러니까, 배운 놈들이 더하다는 말, ‘틀린’ 말이 아니다. 말레 마을표 유기농 비료를 만드는 이쏘리의 경우처럼, 여기의 커피 농부들은 편하고 빠른 방법 대신 느리지만 자연과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택했다. 땅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그 땅이 건강한 커피나무를 길러낸다는 것을 몸으로 알고, 땅에서 배운 현자들.

하다못해, 열네 살 커피 농부 수커바르도 이리 말한다. “만약에 제가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지 않는다면, 사람들의 건강에 해를 끼칠 거예요. 그래서 좋은 유기농법을 이용해 커피 농사를 짓고 싶어요.”(p.254)


아, 이런 커피, 당신이라면 마시지 않을 텐가? 내 알기로 많은 공정무역 커피가 그렇다. 내가 다루고 만드는 공정무역 커피 역시. 나도 그래서, 종국엔 농부하고 싶다는 거고. 어린 커피나무를 쓰다듬으며 두 손 모아 “커피가 이 땅에서 잘 자라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커피 농부의 모습을 지녔던 이쏘리처럼.

커피, 말레 마을의 모든 것

열한 가구가 사는 말레 마을. 어쩌다 커피나무를 재배하게 됐지만, 마을 인민들은 저자들이 마을에 발 딛기 전까지, 커피가 어떤 맛인지, 어떻게 먹는 것인지, 어디에 쓰이는 물건인지도 몰랐다. 처음엔 커피를 환영하지도 않았고, 그저 생계에 도움이 될까,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있을까, 하나둘 시작한 것이 커피나무 재배였다.

허나, 이젠 커피가 그들의 삶에 깊이 삼투했다. 그들에게 커피가 어떤 존재이냐면, 희망의 다른 이름이요, 최고의 치유약이며, 돈이었다. 또 행복을 가져다주고, 공부를 할 수 있게 한다. 친구 같은 존재요, 더 나은 방향으로 삶을 이끈다. 가족이자, 미래며, 약속이다. 인생의 전부이자, 의무요, 아름다움이다. 슬픔과 상처를 이기는 방법이다.

우리가 무심하게 마시는 커피 한 잔에 담긴 마음과 삶이다. 커피 한 잔 마실 때마다, 이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허나, 이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크나큰 차이다. 세계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달라진다. 그것은 곧 행동과 실천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히말라야의 햇빛과 안개, 그리고 농부들의 정성 어린 손길을 머금고 마침내 말레 마을 올해의 첫 커피가 완성되었다. 한국에서 무심히 마시던 한 잔의 커피. 그 안에 말레 마을 사람들의 정성이 이렇게나 깃들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p.304)

특히나, 책이 술술 읽히는 것은, ‘이야기’가 잔뜩 묻어있기 때문이다. 열한 가구, 모든 가구마다 커피에 얽힌 사연과 이야기가 읽는 이를 툭툭 건드린다. 모든 이야기는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다큐와 마찬가지로,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주인공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 다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지만 말레 마을이 좀 더 특별했던 이유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커피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다는 것이다.”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스물다섯 미나 판데의 이야기가 가장 아릿했다. 남편을 사별하고, 다섯 살에서 아홉 살까지의 모두, 만주, 마야, 머니스 등 먹성 좋은 네 아이를 키우는, 말레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가족. 황무지와 사투를 벌여, 맨손으로 커피 밭을 일군 스물다섯 억척여인의 분투가 말이다.


그 미나가 이파리 하나 달려 있지 않은 막대기, 즉 죽은 커피나무에 물을 주는 이야기와 사진에서, 나는 커피의 쓴맛을 알싸하게 느껴야 했다. 물 준다고 살아날리 없는 커피나무에 물을 줄 수밖에 없는 그 마음 때문에. 가족에게 유일한 희망의 끈인 커피를 놓치지 않으려는 그 마음 때문에 말이다.

말레 마을의 가장 어린 커피 농부이자, 가장 좋은 커피를 재배한 수커바르, 가진 것 없이 가난하나, 식구들이 헤어지지 않고 모여 사는 게 가장 큰 소망인 다슈람, 산사태로 육십 그루의 커피나무가 죽고, 단 한 그루에서 희망을 바라본 이쏘리, 커피와 가족을 위해 열 살짜리 아들을 스승으로 글을 공부하는 서른여덟의 문맹 아빠, 로크나트 등. 모두가 그렇게 커피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투영하고 있었다.

커피 한 잔으로 맺는 관계

아, 다시 묻겠다. 이런 커피, 당신이라면 마시지 않을 텐가? 커피가 그냥 커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커피에 묻은 이야기, 삶, 세계가 커피 향을 더욱 북돋지 않는가 말이다. 책은 굳이 공정무역임을 내세우진 않는다. 자연스레 공정무역이 왜 필요한가를 말레 마을 인민들을 통해 스며들게 한다. 그게 최선이다.

공정무역이 최선이냐고 묻는다면, 확실하냐고 되묻는다면, 물론 뜸을 들일 수밖에 없다. “공정무역(Fair Trade)은 저개발국 생산자에게 정당한 몫, 공정한 대가가 돌아가도록 한다는 목적 아래 펼쳐지고 있는 운동”(p.226)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다. 기존의 시장질서체제 내에서 작동 가능한 모델이기 때문이다. 공정무역이 당장 이들의 경제적 가난을 타파할 수는 없다. 세상의 빈곳을 약간 메우면서, 더 나은 체제를 고민하는 단계라고나 할까.

허나, 이것마저도 외면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커피는 세계(교역과 경제시스템)의 불공정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품 중 하나다. 그건 좀 더 깊이 들어갈 필요가 있지만, 이 책은 그것까진 다루지 않는다. 물론 그것이 흠은 결코 아니다. 우선은, 이런 이야기가 널리 퍼져야 한다. 선물을 함께 나눠야 한다.

누구든 꿈꾸는 유기농 삶. 말레 마을의 커피 농부들을 통해 그것을 살짝 엿볼 수 있다. 덕분에 우리 마음도 은근 유기농이 된다. 더 질 좋은 커피, 더 깨끗한 커피를 키워내겠다는 말레 마을 인민들의 꿈이 있기에, 우리는 더 질 좋은 커피, 더 깨끗한 커피를 마실 수 있다.

고로,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커피를 골라야 하는지 좀 더 자명해지지 않는가. 다른 커피가 불공정하다는 건 아니지만, 커피 한 잔이 어떤 세계를 품을 수 있는지, 나와 당신의 커피 한 잔이 어디에서 어떻게 온 것인지 안다면, 커피가 더 맛있게 느낄 수 있지 않겠는가. 당신은 자부심까지 살 수 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공정무역에 대한 오해 중의 하나라면, 비싸지 않느냐는 건데, 모르고 하는 소리다. 좀 더 알아봐라.

유기농 커피는 제각각 익는다. 인위적인 처방이 아닌 자연 법칙 그대로 따르다보니 한 나무 안에서도 열매가 익어가는 속도가 다르다. 한 배에서 태어난 자식이라고 다 똑같지 않은 것과 같다. 그러니, 공정무역 커피도, 익어가는 속도가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처음부터 와 닿아서 실천하는가 하면, 다른 이는 와 닿아도 실천이 느릴 수 있고, 혹자는 와 닿지도 않고 실천하지도 않을 것이다.

커피 열매가 익기까지 기다림의 미덕이 있듯, 커피 한 잔의 여유가 일상에서 필요하듯, 우리는 지난하게 고민하고 실천하는 수밖에 없다. 공정무역이 빈곤을 단박에 벨 수는 없으며, 세상을 뒤집을 수는 없다. 허나, 이 책을 읽는다면, 내가 만드는 커피를 마신다면, 앞으로 커피는 댁들이 평소 알던 그런 커피가 아냐. 커피 장인(농부)이 한 알 한 알 정성스레 심은 커피콩으로, 바리스타가 그 노력과 마음에 자신의 마음과 노동까지 담아 빚어낸 선물인 거다. 그게 바로 내가 아는 커피의 관계(학)이다.

“혼자서는 갈 수 없기 때문에 모두가 힘을 합쳐 준비해야 하는 것이 커피로드”(p.307)라고 했다. ‘커피 한 잔 마시기까지의 길’(커피로드)에는 얼마나 많은 이들이 연관돼 있고, 신세를 져야 하는지 알겠지? 대문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그랬다. “모든 것은 모든 것에 잇닿아 있다.” 커피 한 잔으로 우리는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커피의 역사》의 저자인 하인리히 E.야콥의 말도 하나 인용하자면, “한 잔의 커피는 경이롭고 놀라운 관계의 집합체이다.”

커피 한 잔 마시자는데 왜 그렇게 까다롭냐고. 그러니까, 세상 너무 띄엄띄엄 보지 마라. 확~ 수틀리면, 카푸치노(거품) 키스해 줄 테니까. 언제든 말만 해라. 참, 카푸치노가 마냥 좋은 건 아니다. <시크릿 가든>에서 그런 의도는 전혀 없었겠지만, 사회지도층과 가난한 계층이 카푸치노 키스로 하나가 됐다고 착각하지 마라. 그렇게 계층, 인종 등으로 분리된 사회를 카푸치노 사회라고 부른단다. 지금, 우리의 사회가 그런 셈이겠지. 돈 있는 놈과 돈 없는 분으로 나뉜, 거품 가득 낀 사회. 기회가 된다면, 좀 더 자세한 카푸치노 이야기도 들려주마. 오늘은 이만하고, 그래, 커피 한 잔 하자. 널 위해 만들어주마. ‘준수의 선물’이다. 너와 난, 그렇게 관계를 맺는구나.


제게도 희망은 '커피'입니다. 그것도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즐거운 커피.
현재 '커피 만드는 사람'으로서, 저는 커피라는 창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고 사유합니다. 세계 교역량 2위의 상품으로서, 물 다음으로 많이 음용되는 커피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지 저는 매일매일 목격합니다.

그럼에도, 커피는 세계의 불공정, 불균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죠. 커피 생산국과 소비국 사이의 그 엄청난 괴리감. 커피는 '감성'이라고 많이들 말하지만, 그것도 맞지만, '이성' 또한 크게 작용하는 산물입니다. 커피의 생산에서 소비까지 그 유통을 보면 극명하게 잘 알 수 있죠.

저는 그런 커피를,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담으면서, 제가 만들고 따르는 커피를 통해 제 삶을 묻고, 삼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커피는 '관계'라고 생각해요. 단순하게 커피와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의 관계가 아닌, 그 이전의 단계까지 포괄하고, 그것을 매개로 사람 사이에 묻어 있는 사회성과 역사성까지 전달할 수 있는. 그러니까, 마음 한 잔, 커피 한 잔.

커피를 통해 '사회적 인간'으로서 자리매김하고픈 제게, '커피'야말로 희망이지요.
그것 역시 저만의 희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저 멀리 직접 대면하진 못했지만, 커피 한 잔을 위해 애쓰고 힘쓰는 커피 농민들의 희망이 함께 되기를 바라는. 그것이 비록 아주 지난하게 오래 걸리는 것일지라도, 공정무역 커피가 가진 한계가 있을지라도, 그것만이라도 하지 않으면 세상은 더욱 엄혹해지리라는 것.

미약하나마, 세상을 덜 슬프게 만드는 커피를 통해, 저의 희망을, 세상의 작은 풀뿌리 희망들이 서로 느슨하게라도 연대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희망에 좀 더 군불을 지필 수 있는 《히말라야의 선물》을 만나고 싶어요~

- '이 책에 나오는, 히말라야 말레 마을의 희망은 바로 커피입니다. 당신의 희망은 무엇인가요?'
라고 물었던 출판사의 블로그 이벤트에 달았던 댓글 -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토요일(1/22) 방송될 울산 MBC라디오의 한 프로그램에,
비록 나는 그것을 들을 수 없지만, 노래를 신청했다. 틀어준다더라.
아무렴, 나는 예언자는 아니지만, 2011년 1월22일 늦은 오후의 어느 한 때,
대한민국 울산의 공기 중에는 이 노래가 공명할 것이다,
He Was A Friend Of Mine」.

울산의 내가 모르는 누군가는, 이 노래를 듣고, 이 사람을 떠올릴 것이다. 히스 레저.
떠올려줬으면 좋겠다. 그와 나는 모르는 사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통하는 사이일 것이다.

오늘, 귀 기울여 들었던 유이한 노래,
He Was A Friend Of Mine」와 거위의 꿈」.
이 글을 접한 당신도 아마 울산(과 그 인근)에 있지 않다면, 라디오를 통해선 듣지 못할 터,
플레이 버튼을 살짝 눌러 이 노랠 들어도 좋겠다. 그저, 그 사람을 짧게라도 떠올려보는 시간.


그런데 왜 연고도, 관련도 없는 울산이냐고? 그건 개인적으로 물어라. 아프지 않게.ㅋ :P




히스 레저, 그 아름다운 사랑의 초상
3년 전, 서른 즈음에 세상을 떠난 ‘히스 레저’를 추모하며


1월22일. 커피 한 잔을 준비한다. 커피야 매일같이 마신다지만, 이날은 약간은 다른 커피야. 특별한 레시피로 준비하는 건 아니다. 다만, 마음 한 스푼이 더 들어가지. ‘에스프레소 리스트레토(ristretto)’1)를 뽑고, 스티밍한 우유, 한 점을 찍는다. 메뉴의 이름은, ‘브로크백 마운틴’. 시간과 양에서 제한된 채 추출됐으나, 맛이 진하고 짙은 풍미를 지닌 리스트레토. 거기에 덧붙여진 한 점은, 브로크백 마운틴에 대한 동경이야.


맞아. 그 커피 위에 떠오르는 얼굴이 있지? 광활한 산맥과 함께 떠오르는, 히스 레저(본명. 히스클리프 앤드루 레저). 서른 즈음, 요절한 배우예술가. 마음 한 스푼은 다름 아닌, 히스 레저에 대한 추모심이야. 아마 ‘콩’도 함께여야 할 것 같은 커피 한 잔의 시간. 3년 전, 2008년 1월22일 히스 레저가 영영 떠났어. 남겨진 사람은 일상을 살아가고 있고. 그가 없는 삶을, 누군가는 살아가고 있다. 당신과 함께 커피 한 잔, 나눈다.

아름다운 청년, 히스 레저

커피 한 잔에 콩, 끝이 아니야. 사실 하나 더 있어.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 거기엔 아름다운 얼굴이 있으니까. 아마, 그건 마음이 아리는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마다할 수 있는 일도 아니지.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이런 말을 남겼어. 히스가 떠난 직후인 제14회 배우조합(Screen Actors Guild) 시상식, <데어 윌 비 블러드>로 영화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그는 소감을 통해 히스를 거론했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히스 레저는 완벽했다. 나는 그를 만나본 적이 없지만 그는 이미 인생에서 아름다운 일들을 많이 했다.” 아름다운 청년, 히스 레저. 죽어서도 호명된 그의 이름에는 그렇게 아름다움이 묻어있구나.



아름다운 누군가는 그를 향해, “I Swear...”를 읊조릴지도 모르겠다. 잊지 않겠다는 그 맹세는, 사실 히스의 것이었어.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히스가 분한 에니스는 잭(제이크 질렌할)의 옷을 보면서 그렇게 나지막하게 뱉었지. 아마, 이 영화를 가슴으로 본 사람이라면, 히스의 죽음 소식을 듣고선, 이 장면에서 카메라를 다시 돌렸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랬다. 그 슬픔을 가슴으로 삼킨 그 얼굴이 떠올랐다.

도리가 없잖나. 당신이라면 어떤 얼굴을 떠올렸겠나. 유작 직전의 작품이 됐지만, <다크 나이트>의 조커? 글쎄, 그가 조커역을 맡아 지나치게 몰입, 정신적인 혼란을 겪었다는 말도 있었다만, 그건 배우가 가진 일종의 숙명이었을 터. 온전하게 배우였던 그가, 조커를 즐겼을망정, 그것을 마지막 얼굴로 삼고자 했을 리는 없지 않았을까.

차라리, <브로크백 마운틴>의 에니스가 제격이지 않아? 완벽에 가까운 배우, 다니엘도 완벽하다고 격찬했던 그 얼굴 말이야. 어쨌거나 <브로크백 마운틴>의 잔상이 그를 온통 지배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음 그래, 커피 한 잔 마시면서 계속 얘기하자.


아픔, 사랑의 다른 판본

아마도 그건, 사랑, 그것도 세상에서 파멸당한 사랑 때문이었을 거야. 사랑했지만,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못하고, 밖으로 표출하지 못한 채, 안으로만 삭혀야만 했던 사랑. 해서는 안 될 사랑, 그런 게 있어선 안 되잖아. 물론, 세상의 윤리는 때론 사랑을 속박해. 울타리를 쳐놓지. 브로크백에 풀어놓은 양들처럼 말이야. 방목하는 것 같지만, 결국 누군가의 소유고, 정해진 틀을 벗어나선 안 되지. 그저, 울타리가 넓을 뿐.

하지만, 사랑에 필요한 건 세상의 윤리가 아니잖아. 사랑에 오로지 사랑의 윤리만 있으면 되잖아. 사랑을 정의할 수 없는 마냥, 사랑의 이치는 단순하다. 당사자의 선택이 돼야 한다는 것.

사랑은, 기실 세상의 윤리가 갖다 대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사랑은 ‘누가 누구와 함께하고 싶은가’의 문제야.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끼리 함께하면 그건 옳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하면 그른 것이다.(이건 명로진의 말에서 빌어왔다.) 사랑은 세상의 윤리가 가늠하거나 잣대를 들이댈 것이 아니다. 옆에서, 혹은 당사자도 아닌 이가, 너의 사랑이 이러쿵저러쿵, 말짱 헛것이고, 헛말이다. 닥치고 꺼져라, 외쳐도 좋을 터.


당신도 알다시피, 히스는 사랑하는 모습을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온몸으로 보여줬다. 이안 감독의 연출이었다고는 하나, 히스가 아닌 다른 에니스는 상상할 수가 없다. 물론, 그는 닥치고 꺼져라, 고 외치지 못했어. 이른바 ‘도둑 사랑’ 혹은 ‘몰래한 사랑’.

돈 많은 잭이 그 따위 시선에 ‘F word’를 날리자고 했으나, 에니스를 칭칭 감은 세상의 윤리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지. 겁이 난 거야. 돈 없는 노동자가 택할 수 있는 선택이란 건, 그닥 우호적이질 않거든. 그것이 사랑이라도 말이다. 사랑에도 혐오가 있는 건, 참 꼴불견이야, 그렇지 않아?

결국 그 사랑, 파멸 당했다. 브로크백은 그저, ‘시크릿 가든’이었던 거지. 둘만의 사랑을 간직했지만, 실상은 마법도 없고, 체인지도 없는. 현실에선 인어공주는 거품이 될 뿐이야.

하늘은 가끔, 지상의 위대한 연인을 질투해, 자신의 처소로 불러들이곤 한다. 히스도 아름다운 사람을 먼저 하늘로 데려가곤 하는 하늘의 습관에 불려간 건 아닐까. 하늘은 그렇게 제 욕심을 채우곤, 지상에 슬픔과 아픔만 똑 남기더라. 그건 꼭 남은 사람들의 몫인 양. 사랑이 한편으론 곧 아픔이요, 슬픔이라는 것을 알라는 하늘의 뜻인가. 커피가 탄다. 쓰지만 강한 풍미를 느끼고 싶다. 커피 한 잔에 농축된 아픈 사랑의 흔적.



Heath is not here, but…


에니스는 터뜨리지 않고 꾹꾹 누르고 삼키던 사람이었어. 가슴에 돋는 칼로 사랑과 슬픔을 자르던. 히스는 그런 에니스로 각인된 것이 어떨 진 몰라도, 예민하고 섬세한 예술가의 초상이었다. 고전 ≪폭풍의 언덕≫의 주인공 히스클리프를 본 뜬 이름부터, 그는 깊은 강이 되고 싶었다. 호주 출신으로 할리우드의 공세에 잡아먹히지 않은 배우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예술적 영혼 덕분이 아녔을까. 


당신은 봤는지 모르겠네. 그는 <아임 낫 데어>에서 ‘밥 딜런’의 어떤 한 모습을 그렸어. 그는 세상에 없는 모습을 구현하지 않았음에도, 영화 제목처럼, ‘I'm Not There’를 실현하고야 말았다. 이제 더 이상, 새로운 그를 스크린에서 불러낼 재간은 없어. 디지털 매직이 그것을 가능케 한다 해도 그건, 히스가 아니다. 그는 이제 박제된 히스로만 재현될 것이다. 성장도 노화도 멈춘 그때 그 모습으로만.



히스는 거기도 여기도 없다. 허나, 나와 당신뿐 아니라, 그를 애도하고 추모하는 개인의 물결이 넘실댈 거야. 그러니, 그는 비록 없어도 없는 것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명복을 빌거나 어쩌다 히스가 그리워지는 날에 영화를 돌려보고, 추모를 공유하는 일밖에 없을지라도. 브로크백이 안겨준 에니스와 잭의 사랑에, 당신과 내가 ‘사랑 확신범’으로서 응원할 수밖에 없어도.


아울러 마틸다 레저, 히스가 세상에 남긴 딸. 그 아이는 올해, 한국 나이로 일곱 살이지, 아마. 히스라는 아빠 없는 생이지만, 잘 버티고 견뎌나가길. 세상의 악행에 쉬이 굴하지 않고, 거칠고 더러운 공공연한 비밀을 품은 세계를 어떻게든 헤쳐 나가길. 사람의 있을 곳이란, 이렇게 커피 한 잔에도 있구나. 그래, 안녕 에니스, 안녕 히스 레저. 참, 노래는 <브로크백 마운틴> OST에 담긴,
He Was A Friend Of Mine」. 커피 참, 진하다. 



1) 에스프레소 종류 중의 하나로, 리스트레토는 이탈리아어로 ‘농축, 제한’의 뜻이다. 에스프레소 싱글과 같은 양의 원두를 사용하되, 에스프레소가 추출될 때 가장 맛이 진한 시점(15초 안팎)에서 추출을 멈춘 메뉴. 에스프레소 싱글보다 양이 약간 적고, 맛이 진하고 풍미가 강한 편이다.


[뷰즈 기고 원문 약간 수정]


p.s. 20일, 어제 용산 2주기. 아직 용산참사는 끝나지도, 아픔이 아물지도 않았다.
故 이상림, 양회성, 한대성, 이성수, 윤용헌 님과 당시 경찰이었던 김남훈 님,
명복을 빈다.

여전히 아픈 건, 그 '사람(들)'을 죽인 주체가, 그들이 믿고 살던 국가였다는 거다.
'사람 아닌' 김석기(당시 서울경찰청장)는 1월10일 오사카 총영사로 내정됐다.
거참, 시기도 그렇지만,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이 국가의 정신줄은 대체. 
그러니, 한국엔 '정부'가 없다. 몰염치한 '회사'만 있고. 어메이징하다.


마침, 오드리 헵번과 겹치는 이유다.
그녀가 스크린의 요정, 그 이상으로 '아름다운 사람'인 이유가 있다.
1988년 유니세프 친선대사가 된 그녀는 1992년 9월 소말리아를 방문, 말했다.

"어린이 한 명을 구하는 것은 구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어린이 백만 명을 구하는 것은 신이 주신 기회입니다." 배우일 때보다 더 많은 정열과 생을 다하면서 구호 운동에 헌신한 그녀의 이 말은, 구호와 기부에 대한 관심을 크게 북돋았다. 명성과 부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체화한 그녀였다. 스크린의 요정이자 은막의 여왕으로 받은 사랑, 어떻게 돌려줘야 하는지를 알았던 아름다운 사람.

오드리 여사는, 1993년 1월20일 세상을 떠났다.
구호활동에 매진하다 건강이 악화됐고, 직장암에 걸리고 말았던 것이다.
아들에게 들려준 유언이나 명언으로 많이 알고 있으나, 실은 그녀가 좋아한 詩다.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