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루하고 꼴통 같은 꼰대들을 향한 반역적 에너지가 충만했던 1960년대.
하고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도 살짝 꼽으라면,

68혁명이 있었다. 이건 다음에 또 얘기하자.
그리고 이듬해 우드스탁 페스티벌. 1969년 8월15일.
지금으로부터 41년 전의 그날이 있었다.

뭐, 우드스탁?
네가 한때 친구들과 음악에 맞춰 몸 흔들고 알코올 섭취하던,
신촌의 그 올드뮤직바를 말하는 것이냐. 그것도 맞다.
미국 뉴욕주 베델에 위치한 지명이기도 한 그곳은,
이젠 지역명이라기보다 20세기 하나의 문화적 사건으로 각인돼 있다.

최근,
이 우드스탁을 가능케 하는데 일조하고 우드스탁으로 전혀 다른 생을 살게 됐다고 고백하는,
엘리엇 타이버의 회고록
《테이킹 우드스탁(Taking Woodstock)》이 번역출간되고,
안 감독은 이를 같은 이름으로 영화화한 <테이킹 우드스탁>을 내놨다.
얼릉 보러 가야하는데... ^^;



알다시피, 한국에서 이를 되살리고자 했던 다소 의심스러웠던 시도는 일단 불발.

The Peace at DMZ with Artie Kornfeld, the Father of Woodstock

아무래도, (세뇌를 당한 탓(!)이겠지만,)
우리 시대의 우드스탁을 위해선 물론 누군가의 발현과 기획이 있어야겠지만,
당신과 나의 불온한 상상력이 꼭 필참해야 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들이 꼬옥 함께.
탁현민, 강산에, YB밴드, 뜨거운 감자, 그리고 김제동, 고재열... 이 삐딱이들.

왜 그들이냐고?
지난 5월, 그들과 함께 공연장에서 방방 뛴 까닭이다.

그것이 끝난 뒤 세상의 엄혹함과 비루함은 여전할지라도,
아무 것도 바뀐 것이 없다고 여길지 몰라도,
혹은 누군가의 말처럼 군중심리에 의한 빛 좋은 넌센스였을지라도,
당신과 나는, 엘리엇 타이버처럼은 아닐지라도,
생의 사소하지만 중요한 균열을 맞볼 수 있진 않을까.
우리 각자의 세계는 그렇게 초큼이라도 달라지지 않을까.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그렇게 우드스탁을 희망한다. 

그날을 희망하면서 써 내려간 이 글의 마지막 구절.
"깃발 들고 우리 놀아보자. 자, 당신의 상상력을 보탤 차례다."
내 작고 사소한 진심이다. 그렇게 나는, 레디다. 함께 방방 뛰자.

참, 혹시나 이런 판이 벌어진다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이냐! 그렇다, 커피.
상상력 발광 커피!를 당신에게~ 마시고 방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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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이들이 펼친 상상력의 향연

[현장취재] 『상상력에 권력을』 탁현민


시계를 돌려보자. 1976년 6월4일 영국 맨체스터. 전설적인 저항 펑크록밴드 ‘섹스 피스톨즈’의 공식적인 데뷔공연이 있었다. 전년도 11월6일, 런던에 위치한 전세계 디자이너들의 성지인 세인트 마틴 아트스쿨에서 한 첫 공연에 이은 것으로, 이 데뷔공연을 지켜본 이는 단 42명. 섹스 피스톨즈의 전설과 명성을 감안하면 의외일 수도 있겠다.


제 아무리 훌륭하고 좋은 뮤지션이라도 첫 시작은 미미했음을 얘기하자는 것이냐? No! 펑크록 신의 시작을 알린 이 공연은, 다른 점에서 유의미했다. 시쳇말로, 새끼를 확실하게 쳤다. 섹스 피스톨즈를 숭배했던 버나드 섬너가 같은 자리에 있던 피터 후크와 밴드를 만들었다. 역시나 그 공연에 있었던 이언 커티스가 밴드에 참여했다. 단 두 장의 앨범으로 전세계의 음악을 뒤흔든 ‘조이 디비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렇게 공연에 있던 몇몇은 ‘버즈콕스’, ‘뉴 오더’(조이 디비전의 후신), ‘진저 넛’ 등의 밴드를 결성했다. 세계적인 밴드 몇몇이 바로 그날, 섹스 피스톨즈의 공연에서 비롯됐다, 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을 더 거슬러, 하나 더. 우드스탁. 1969년의 바로 그 우드스탁 페스티벌. 위키백과의 설명 중 일부다.


“우드스탁 페스티벌(Woodstock Music and Art Fair)은 1969년 8월15일부터 3일간 뉴욕 주 북부 베델 근처 화이트 레이크의 한 농장에서 열렸다. 30만, 그 이상의 사람들이 그 농장으로 몰려갔다.(입구를 부수고 들어간 사람의 수가 너무 많아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다고 함)... 우드스탁은 음향 시설이 형편없었고 음식과 물과 화장실도 턱없이 부족했으며 게다가 폭우가 쏟아져 농장은 거대한 진흙 뻘 같았다. 하지만 이런 열악한 상황도 우드스탁에 이르러 절정에 달한 히피 반문화 공동체의 열기를 누그러뜨리진 못했다. 부족한 샤워 시설과 폭우는 천진난만하게 물장구를 칠 물 웅덩이로 대체되었으며, 진흙 뻘은 히피들의 낭만적인 놀이터가 되었다.”


전설 같은 이야기. 우드스탁은 그렇다. 오죽하면, 책을 쓰다가 우드스탁이 열렸던 뉴욕 주 베델로 향한 사람도 있었다. 그도 이를테면, 많고 많은 우드스탁 신(봉)자의 하나인 셈인데, 그는 우드스탁을 이렇게 그리고 있었다.


“상상력을 믿는 사람들, 그것도 예술적 상상력을 믿는 사람들은 무모하다. 비현실적이며, 위험해 보인다. 적어도 상상력이 없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러하다. 우드스탁은 그러했다. 당대의 정신, 실패로 끝난 68혁명에 대한 모진 안타까움과 시대에 대한 열망이 예술적 상상력과 결합하여 만들어 낸, 말 그대로 상상력이 힘을 갖게 되는 자리였다. 그리고 그 공연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탁현민’이기에 가능한...


그 사람, 공연기획자 탁현민. ‘음악이 사회적 발화의 수단이 되기를 바라’는 대중문화평론가. ‘61만 명’이 모이는, 우드스탁보다 조금 더 큰 장을 펼치길 원하는 공연기획자. 현실에서 저항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고, 부정하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은, 그것이 동력인 불온아. ‘상상력에 권력을’이라는 68혁명과 우드스탁의 구호를 감히(!) 책 제목으로 내건 저자. 『상상력에 권력을』(탁현민 지음|더난출판 펴냄)은 그런 탁현민이 고스란히 담겼다.


사실 이리 말해봐야, 손만 아프다. 좀 더 쉽게.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를 앞두고, 지난 8일부터 주말마다 서울·광주·대전·대구·창원·부산을 찍은 추모콘서트 <파워 투 더 피플 2010> 연출자. 역시 지난해 노무현 추모 콘서트 <다시 바람이 분다>와 노무현재단 출범 콘서트 <파워 투 더 피플>를 연출한 바 있다.


그런 탁현민이, 지난 10일 서울 홍대부근의 V홀에서 『상상력에 권력을』(탁현민 지음|더난출판 펴냄) 출간기념 북콘서트를 ‘게릴라처럼’ 열었다. 게릴라처럼, 이라고 했지만, 쟁쟁하다, 그 이름들. 강산에, 김C, YB. 아울러, 이들 뮤지션들이 소속된 기획사(다음기획)의 김영준 대표, 고재열 기자(시사IN, 독설닷컴)까지. ‘탁현민’이라는 이름을 믿고 뭉친, 역전(?)의 용사들. 아니, 정확하게는 ‘긴급 구호팀’이다. 탁현민의 표현을 빌자면, “자신의 생각에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도 한 번쯤은 나를 믿고 무대에 올라줄 수 있는”. 물론, ‘한 번쯤’이 아니다. 탁현민이라는 이름이 길어낸, 탁현민이기에 가능한 이름들. 



이 자리, ‘제대로’ 놀아보자는 거다. 출연하기로 한 연예인들이 모조리 펑크를 내서 ‘개쪽’ 파는 짓거리가 아니라, ‘MR에 고음처리 부분을 입혀 실망스러운’ 개나리 가수를 출연시키는 그런 콘서트 말고. 우리의 숨통을 틔우기 위한 진짜 콘서트.


알다시피, 폭압의 시대다. 전쟁의 시기다. 독재의 시대다. 금기의 시절이다. 동의 안 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지금을 그리 생각한다. “전쟁의 시기에 반전을 이야기하고 폭압의 시대에 인권을 노래하는 것, 독재의 시대에 해방을 소망하며 금기의 시대에 자유를 노래하는 것은 대중예술인으로서 너무도 당연한 행동이다. 이들이 앞서서 새로운 세계를 노래하고 그 노래를 따라 부르는 대중이 늘어나면서 세상은 조금씩 바뀌게 된다. 전쟁을 멈추게 하고 인권을 기억하게 하며 해방을 이루어내고 자유를 얻게 하는 것이다.”(p.100)


그러니까, 이날 나온 유명인들은 이런 존재들. “대중에게 현실에서의 재미와 현실 이상의 상상력 두 가지를 모두 제공해 주”(p.119)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뿐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살아야 할 새로운 시대에 대한 상상을 가능하게 해주”(p.119)는. 아마, 그들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도, “유명기획사 혹은 기획된 스타들로부터 벗어나 있는 대중예술인들을 주목”(p.77)하는 이들이었을 것이다.


42명이 모인 섹스 피스톨즈의 공연처럼, 61만 명이 모일 공연의 예행연습처럼 콘서트가 막을 올렸다. 저자의 오프닝 멘트. “책을 내고 콘서트까지는 사실 생각을 안 했다. 책 내고 또 공연까지 해야 돼, 라고 생각했는데, 가수들이 굳이 해 주겠다고, 하고 싶다고 해서 자리를 만들었다.(웃음) 감개무량하다. 양해를 구할 것이 다른 중요한 공연들이 있어서 오늘, 준비를 많이 못했다. 순서는 지금부터 만들어지고 있다.(웃음) 사실 부끄럽다. 책으로 나온 것이 부담도 있고, 한편으로는 뭔가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던 것 같다. 지금까지 단독으로 네 권을 썼고, 세 권이 공저였다. 딱 한 권을 빼고는, 목적이 없었는데, 그 한 권은 돈이 목적이었다. 『남자 마음 설명서』라고. 다른 책을 합한 것보다 이 책이 가장 많이 팔렸다. 그래서 김C의 마음을 이해한다. 음악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정받고 싶지만... (웃음) 오늘은 강의나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기보다 즐기는 자리다. 나도 즐기고 싶다.”


탁현민-고재열 만담 콤비


공연도 때론 예열이 필요한 법. 세상이 거의 아는 퀴즈영웅, 고재열 기자(시사인 문화팀장, 독설닷컴: http://dogsul.com, 트위터: @dogsul)가 첫 무대를 장식했다. 보석 같은 뮤지션들 틈에 ‘주변에 맴도는 인공위성 같은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책에서 탁현민과 대담(<한국의 대중문화 그리고 문화적 상상력의 힘에 관하여>)을 진행한 바 있다.


그들의 첫 인연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탁현민은 참여연대 간사였고, 고기자는 출입 기자였다. 그들은 어느 순간, 친구가 됐다. 친구답게 짓궂다. 탁현민은 그가 나이를 속여, ‘고비열’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했고, 고기자는 나이를 밝히지 않았을 뿐이라고 했다. 여느 만담이 그렇듯, 진실은 저 너머에.  

  

그 대담에 대한 폭로(?)부터 시작된 그들의 만담을 살짝 엿보자.



“양주 1병을 받고 ‘탁비어천가’ 썼는데, 다시 보니 손발이 오그라든다. (웃음) 문제의식 있는 사람 중에 가장 끼 있는 활동가였는데, 이제는 끼 있는 공연기획자 중에 가장 문제의식 있는 사람으로 변했다고 썼는데, 문어체적인 표현이었다. 실제 느낀 건, 진정성 있는 사람 중에 사기를 잘 치고, 사기 잘 치는 사람 중에 진정성이 있다고 고치겠다. (웃음)”


탁현민이 묻는다. “왜 탁현민이 훌륭한가.”


고재열이 답한다. “여러분들 오늘 사실, 탁현민 보러 온 것 아니지 않나. (박수) 여기 온 뮤지션들이 지난 주말에 힘든 공연을 하고 쉬어야 하는데, 돈도 안 받고 여기에 왔다. 그래도 여러분이 보고 싶어 하는 분들이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오늘 공연 충분한 가치가 있을 거다. 아, 질문이? 10년 전이랑 변화가 없다. 헤어스타일이. (웃음)”


탁현민이 푸념한다. “널 부르는 게 아니었어. (웃음)”

  

탁현민은 앞서 언급했듯, 노무현 추모 공연을 기획했다. 어땠는지 물었다.

“지금 한국 상황을 보면, 바다는 어민이 지킨다. 해군이 아니고. 거리는 시민들이 지키고 있다. 경찰이 아니고. 공연장 정도는 내가 지켜야 하는 것 아닌가. (박수) 대중음악은 끊임없이 현실을 부정해야 한다. 지금 처한 상황만을 노래하는 것 뿐 아니라, 엔터테인먼트만 제공하는 게 아니라, 앞선 상상력을 보여줘야 한다. 존 레논의 <이매진>을 들어봐라. 당대엔 절대 이뤄낼 수 없겠지만, 국가와 종교와 군대만 없어도 세상은 평화로울 거라고 생각하잖나. 그런 상상력이 대중문화와 대중음악에서 나와야 한다”


“일찍이 존 레넌은 <이매진 imagine>을 통해 이렇게 노래했다. "imagine there's no countries it isn't hard to do. nothing to kill or die for and no religion too. 국가가 없다고 생각해 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야. (국가를 위해) 누구를 죽이거나 죽을 필요도 없잖아, 종교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아티스트에게 있어 음악은 자신의 삶과 철학을 표현하는 수단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존 레넌은 노래를 통해 그의 조국인 영국과 그가 말년에 살았던 미국까지도 부정한 셈이다.”(p97)


이번에는 고재열이 묻는다. “날 왜 불렀나.”


탁현민이 답한다. “고재열이 한국 언론사에 길이 남을 좋은 기자라 생각한다. 이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아는 분도 있겠지만, ‘퀴즈영웅’에 등극하면서 받은 상금을 당시 파업 중인 회사에 쾌척하지 않았나. 적어도 이 친구가 돈이나 다른 것에 매여서 쓰고 싶은 기사를 못 쓰거나 안 쓰는 기자 아니구나, 생각했다. 지금까지 늘 일관된 모습을 보여 온 기자고.”


만담하는 척 하면서, 서로 띄워주는 이 풍경. 주최 쪽의 농간(?)이겠지만, 밉살스럽거나 거북하지 않다. 왜냐! 그건 ‘사실’이니까. 물론 만담이 길면, 농담이 된다. 만담은 그 정도로. 첫 번째 게스트의 등장, 뜨거운 감자다.


감자가 달군 뜨거움


뜨거운 감자가 악기를 세팅하는 동안, 탁현민의 소개말. “사과할 일이 있다. 3~4년 전, 김C와 이야길 하면서 음악을 들려줬을 때, ‘형 노래는 당대에는 성공 못할 것 같애’라고 했다. 그런데 요전 앨범 발표하고 나서 취소했다. 오늘 낮에도 15일 공연 때문에 스태프와 연습 참관을 했는데, 뜨거운 감자 음악은 당대에 성공할 것은 물론이고 길이길이 남을 거다. 20세기가 잉태하고 21세기가 온몸으로 받아들인 뮤지션, 김C를 소개한다.”


뜨거운 감자의 김C가 화답했다. “탁이(주. 김C는 탁현민을 ‘탁이’라고 불렀다)는 고향후배이기도 하고, 회사의 직원이기도 했고, 지금은 한 회사의 대표가 됐는데, 전체적으로 사기꾼이다. (웃음) 애들도 가르친다 해서 위험한 짓을 하는구나 생각했다. 책 냈다고 해서 진짜 웃기는구나, 했다. 책을 읽었다. 굉장히 건강한 사기꾼이 됐더라. 그래서 생각했다. 약간씩만 사기 치면 행복해질 것 같다고. 탁이가 여러분과 우리의 중간자를 잘 하고 있는 것 같다.”


여느 주례사 인사말 같진 않다. 그들은 삐딱한 존재들이니까. 어쨌든 뜨거운 감자의 음악이 울려 퍼졌고, 몸은 들썩이기 시작했다.



첫 곡, <수학이 좋다>. “...네 말이 맞는다고 내 말이 틀렸다고/ 어떻게 알 수가 있겠어/ 너와 난 다르다고 넌 나를 틀렸다고/ 정답을 알고 싶을 뿐이야/...내 뜻대로 살아갈게/ 네 갈 길을 찾아라 나를 찾지 말아/ 내 뜻대로 살아갈게/ 네 갈 길을 찾아라...” 신난다. <봄 바람 따라간 여인>이 잇는다. “봄바람 따라 간 여인 어디쯤에 가고 있나”를 따라 흥얼거린다. 


세 번째 곡은, 최근 낸 영화 없는 영화음악 앨범의 <시소>. 신난다. 발은 동동 뛰고 어깨는 흥에 겹고 가슴이 뜨겁다. 이 맛이 감자다.


“어느 날 생각해봤다.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는 지금의 내 나이였을 때, 이 정도의 시대적 아픔을 안고 살아갔는지 궁금해지더라. 누구나 그런 건가. 어쨌든, 조금 현 시점이, 어휘력이 부족해서 그렇겠지만, 조금 좆같다. 영향력 있고 힘 있는 분들이 주변 모든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좋겠다. 책이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점점 뜨거워지는 현장. 네 번째 노래, <고백>이 불을 붙인다. 아마도, 어쩌면, 우릴 향한 뜨거운 감자의 뜨거운 고백. “달이 차고 내 마음도 차고/ 이대로 담아두기엔 너무 안타까워 너를 향해 가는데/ 달은 내게 오라 손짓하고/ 귓속에 얘길 하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그 순간이야...” 곡이 끝날 때마다, 짧고 강렬하게 외치는 김C의 한마디. 땡큐. 인상적이다.


김C에 대한 탁현민의 기억 한 소절. “처음 들었을 때, 김C가 노래를 못하는 줄 알았다. 2년 전쯤인가, 김C가 책을 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림을 넣어야하는 책이었는데, 어떤 분의 그림이 좋을까 고민하다가, 이외수 선생님을 떠올랐다. 댁에 찾아가서 선생님께 부탁을 했다. 선생님 왈, ‘나는 그림을 그릴 테니, 너는 밤새 내 옆에서 노래해라’. 진짜 밤을 새워 통기타 하나로 노래했다. 그때, 괜찮은 노래구나, 괜찮은 목소리구나 생각했다. (웃음)”


방만한(?) 기획사의 소신 있는 방만함


그렇다면, 잠깐. 이날 초대된 뮤지션들, ‘탁현민’이라는 이름 때문에 모인 한편으로, 사회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고 사회적 이슈를 외면 않는 이들이다. 모두 같은 기획사 소속인데, 기획사에서 이런 이들을 품고 있는 것,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 아닐까. 우리가 아는 대개의 기획사는, 소속 연예인들에게 그런 것을 원천봉쇄하고 입조심, 행동조심을 늘 상기시키건만. 이 소속사, 또라이 아냐? 궁금하다. 다음기획. 


그리하여, 또 한 명의 이야기 손님, 김영준 다음기획 대표가 등장했다. 역시나 뜨거워진 열기를 잠시 식히고자 마련된 만담의 시간.



참고로, 다음기획을 보여주는 이야기 한 대목. 한 예능프로에 나온 김C. 한 아이돌이 우리는 밥값으로 5000원 이상 못 먹는다고 하자, 김C는 우리는 마음껏 먹어도 되는데, 라며 소속사를 방만함(?)의 표본으로 널리 알렸다. 김 대표 왈. “우리는 가둬놓고 안 키운다. 풀어놓고 키운다.”


탁현민과 김 대표의 인연은 2002년부터 시작됐다. “시민단체 간사로 있을 때, 김 대표가 ‘우리 회사로 들어와라. 너의 미래를 보장 하마’라며 되지도 않는 이야길 꺼냈다. (웃음) 태어나서 처음 돈 내고 본 공연이 정태춘 공연이었다. 아주 큰 울림이 있었고, 정태춘 공연을 꼭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다음기획에 가니 소속돼 있더라. 공연 연출하러 들어간 건 아니었는데, 연출가로서 관객을 만날 수 있게끔 자리를 만들어줬다. 실수를 많이 했는데 끊임없이 기회를 많이 준 고마운 분이다.”


김 대표가 처음에 봤을 땐 조폭 같았다며, 자신의 첫 인상을 되묻는 탁현민에 대한 화답. “그냥 싸가지 없는 애였다. (웃음) 어제 공연이 노무현 추모 콘서트로 ‘시민에게 권력을’. 오늘은 ‘상상력에 권력을’. 권력을 상당히 좋아하시네. (웃음) 농담이고, 이 친구는 대한민국 대중문화 권력의 지형을 바꾸고 싶은 친구다. 덕담이 아니고, 굉장한 열정을 가진 친구다. 인간의 능력이 무한정하다는 것을 실증하는 인물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보통 출판기념회에 가면 지인들이 뭔가를 해주는데 이 친구는 혼자 마이크잡고 설친다. 이 친구가 회사에 들어온 지 1~2년 됐을 때인가. 자기 생일에 아무도 안 챙겨준다고 제과점에 가서 케이크를 사와서는 노래를 불러달라고 했던 그 모습이 오늘 떠오르더라.”


저자도 다음기획에 들어갔던 것, 김 대표를 만난 것을 생의 중요한 지점 중의 하나로 꼽는다. “나는 성공회대를 나왔고 참여연대, 오마이뉴스, 다음기획 등에 있었다. 정말 골수까지 진보다. 진보의 진골이다. 성골이나 육두품도 아니고. (웃음) 그런 것 때문에 비난도 듣는데, 그걸 의식하지 않는다. 나에겐 중요한 기억이고 인생의 중요한 지점들이다.” 


김 대표가 읽은 『상상력에 권력을』은 이랬단다. ‘탁현민을 가장 잘 설명해주며, 어떤 피가 흐르고, 머리가 뭐가 들어있는지, 싸가지는 어디서 기원했는가’를 보여주는 책. 둘의 만담도 그랬다. 열렬한 애정의 소산. 과거지만, 대표와 직원 사이라기보다, 동반자 같은 그들의 관계가 느껴진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동반자로서, 연대하며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손을 맞잡고 있다. 아마, 삐딱함이 맞아떨어진 결과이리라.


고로, 다음기획을 탁현민의 언어로 정의하자면 이렇다. “이윤의 극대화보다는 문화적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신 있는 기획사”(p.77). 고로, 방만함(!)은 소신의 결과다. 5000원짜리 밥이 설운 아이돌은, 다음기획을 두드려라. 길이 열릴 지.........................도 모른다.


“단지 상품성 있는 엔터테이너로 그리고 언제든 버려질 수 있는 아이돌로 살고 싶지 않다면 획일성과 상업성만을 요구하는 연예산업의 구조를 해체하기 위해서는, 연예인 지망자 스스로 자본의 요구에 의해 기획되고 생산되기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예술적 완성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p.77)


달리는 YB밴드, 터질 듯한 공연장


그런 기획사에서 노래하는 YB는 행복하겠다. YB와 탁현민의 인연도 2002년으로 올라간다. YB가 악기를 세팅하는 동안, 탁현민이 폭로(?)하는 윤도현이다. “2002년 월드컵 직후에 한 전화통화다. 이러는 거다. ‘야, 편의점에 갔는데, 사람들이 알아봐’. (웃음) 자기가 나온 CF를 신기하게 보던 그런 사람이었다.” 그땐 그랬지만,

 

이윽고, 시동을 건 YB의 일갈, 렛츠 락앤롤(Let's Rock&Roll). 멋지구리. <담배가게 아가씨>로, 테이프를 끊고 달린다. 후끈후끈. 이어지는 <나비>는 또 어떻고.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꺼야/ 노래하며 춤추는 나는 아름다운 나비...” 아름다운 나비, 그 노란색의 나비. 우리는 그 나비를 안다. 그 나비는 또한 우리다.


윤도현의 축사. “출판기념회에 와서 노래한 건 처음이다. 탁이가 2살 어린데, 지금 교수님이고, 사회적 지위와 위치에 있더라. (웃음) 책 쓰면서 뉴욕 가서 고독을 삼키기도 하고, 타협하지 않고 글 쓰려고 노력해서 나온 책으로 알고 있다. 성향을 보면 불의에 맞서 싸우려는 돈키호테 같은, 시대착오적인 그런 사람인데, 그런 사람 필요하잖나. 그런 얘기 나한테도 많이 한다. 나서라고. ‘형 같은 사람이 머리를 두르고 이걸 해야 해’. 내 앞길 생각도 않고. (웃음)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고, 특히 높이 사는 건, 초지일관된 우직함이다. 이런저런 소리 많이 들어도, 자신의 길을 가려는 모습은 본 받을만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깃발>이다. 탁현민이 압력을 가했다는, 그러므로 굉장히 선동적인 노래. “힘 없는 자들의 아우성 속에서 들끓는 나의 뜨거운 피를 느꼈다/ 고맙다 형제들이여 깃발을 들어라 승리를 위하여/.. 맞서 싸워 두 주먹 쥐고 깃발 들어 do it again/ 쓰러지거나 넘어져도 깃발 들어 어 moving again...” 그래, 함께 깃발을 들자. 절로 떠오르는 이 한 마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도 대사로 나왔지, 아마. 대한민국, 좆 까라 그래.


방점은, 준비 중인 새 앨범에 수록될 곡 <스테이 얼라이브>. 정규앨범이 아닌 YB밴드의 첫 싱글이란다. “일렉트릭과 락이 혼합된, 자극적이고 망하기 좋은 곡이다. 그것도 영어다. (웃음) 그래도 열심히 만들고 있다. (망하기 좋은데) 왜 내냐고. 탁처럼 굽히고 싶지 않은 뭔가가 있거든. 공연장에서 선물은 하나 해야 할 것 같고, 그래서 준비했다.”


달렸다. 뛰었다. 즐겼다. 살아서 버텨라. 이 쥐의 시대. 어떻게든 살아남으라. 살아남는 것이 곧 우리의 과제임을 상기시킨다. 삐딱하게 또 삐딱하게.


탁현민을 만든 스승들


탁현민의 회고다. 말하자면, 나는 왜 삐딱이가 됐나, 지금의 나는 어떻게 형성됐나. “돌이켜볼 나이는 아니지만, 난 문제 많은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담배를 피우다 하루에 3번 걸린 적도 있다. 학교 가다가, 화장실에서, 야간자율학습 때 걸려서. 지금도 그날이 생생하다. 맞는 건 기본이었고, 모눈종이에 반성문을 써야 했다. 그때, 반성문 쓰다가 눈이 너무 아파서, 앞에 국어선생님 책상을 봤는데,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있었다. 우연히 그렇게 읽었는데, 그 책에는 다른 생각이 있더라.”


당시 탁현민에겐 세상에 대한 저주에 가까운 비난, 스스로 열등한 존재라는 인식을 끊임없이 심어주던 학교라는 감옥에 대한 저항심이 있었다. 그런데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놀라웠다. 감옥에서 어떻게, 그렇게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을까. 그 이후 신영복 선생님은,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탁현민에게 스승이 됐고, 세월이 흘러 신 선생님이 계신 성공회대에 가게 됐다. 마침 그해 안식년이었지만, 그렇다고 끝이 아니었다. 우연히 신 선생님의 조교가 됐다.


직접 뵌 신영복 선생님의 가르침은 그러했다. 대학 4학년 때였다. 세상에 나가면 어차피 돈을 벌어야 할 터이니, 대학시절엔 돈이 안 되는 것을 공부해야 한다. 대학 4학년, 마지막 시간. 선생님은 <논어>를 던져주셨다. 남들이 토익, 토플을 공부할 때 논어 봤다. 탁현민이 ‘남다른’ 공연기획자가 될 수 있었던 한 가지 요인이다.


물론, 다른 은사들도 만났다. ‘선생님복’이 많았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 앞에 이외수 선생님 댁이 있었고, 국어선생님이 이외수 선생님과 절친한 사이였다. 글 쓰는 재주가 있었던 탁현민은 국어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이외수 선생님 밑에서 습작을 할 수 있었다. 박원순 변호사도 빼놓을 수 없다. 쉬지 않고, 세상을 향한, 사회를 위한 기획서를 쓰고 실현되도록 노력하는 소셜 디자이너.


그리고 최근에 알게 된 한 선생님에 대한 소개. “워낙 유명하신 분이지만, 유명한 분들이 대부분 실망시킨 적이 많아서 큰 기대가 없었는데, 공연과 관련해 알게 되고 몇 마디 나누면서 이 분의 진가를 알게 됐다. 역시 건강한 기운을 내게 주시고 앞으로 좀 더 아름다워질 수 있도록 만들어준 분이다. 이 자리에 와 계신다. 소개할까말까 망설였는데, 끝까지 자리에 계셔주셔서 소개한다. 정연주 KBS 전 사장님. (인사) 꼭 어떤 분을 직접 만나지 않아도 상관없다. 인생의 향방이나 방향을 결정할 때, 중요한 역할 해 주는 분이 누구에게나 있다. 나도 지금 누군가의 선생이 돼 있는데, 사실 학생들과 얘기하다보면 절망감을 느낄 때가 많다. 이른바, 꼰대적 발상이지. (웃음) 신영복 선생님한테 얘기하니, 그러시더라.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건, 다만 희망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게 선생의 제대로 된 태도라고 생각한다.” 


어떤가. 당신은 그런 스승이 있는가.


강산에, 어떤 것보다 강하고 어떤 위로보다 절절한


강산에. 세상의 다른 속도로 생과 음악을 꾸리는 뮤지션. 나는 그의 속도와 부합하는 음악을 좋아한다. 탁현민에게, 강산에는? “앞의 두 뮤지션과는 다른 위로를 주는 분이다. 나와 맞지 않는 부분도 많다. 나는 강성이고 욕도 바로 하고, 차분하게 생각하기보다 들이받던지, 한 대 맞던지 하면서 몸으로 체험해야 똑같은 실수를 안 하는 스타일이다. 강산에는 부드럽고 묵직하다. 강산에는 공연이 좀 더 부드러워야 하고, 딱딱한 것이 강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 분 노래가 그렇다. 어떤 것보다 강하고, 어떤 위로보다 절절한 위로를 준다.”


탁현민의 복이다. 선생님 복도 그렇지만, 다른 복도 넘친다. 좋은 뮤지션과 함께 일할 수 있으며, 좋은 친구들을 갖고 있고, 많은 관객들과 만난다. 공연기획을 하는 그의 복이다.



그의 복 중의 하나. 음유시인, 강산에의 등장이다. “어쨌든 여러분, 오래오래 사셔야 한다. 나도 오래 살 계획이다. 무대는 77살까지. (웃음) 그래야 내 공연에도 오실 수 있잖나.” 그러니, 우리는 아름다워야 한다. 시간을 버티는 것은 때론 예술이 된다. 아름답고 부드러운 맛있는 우리를 위한. 그렇다, <명태>다.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노래 되고 시가 되고/ 약이 되고 안주 되고/ 내가 되고 니가 되고/ 그대 너무 아름다워요/ 그대 너무 부드러워요/ 그대 너무 맛있어요/ 감사합니데이~...”


“친구 딸 이름이 그림이다. 공부를 안 하고 딴 짓을 많이 해서, 아빠가 걱정돼서 물었다. 공부 잘 하고 있니, 구구단 외울 줄 알아? 2단 외워보자. 2*1=2, 2*2=4, 2*3=6… 2*8=16, 2*9=아나.” 꺄아~ <이구아나>다. 예전에 이 노래, 처음 들었을 때, 정말 좋았다. 이구가 십팔이 아닐 수도 있음을 알려준, 세상엔 또 다른 공식도 있을 수 있다고 들려준 이 노래.


이어진 <와 그라노>까지. 내 자란 고향의 익숙하고 친근하며 푸근한 노랫말. MB한테 해 주고 싶은 말. “또 와 그라노? 니 또 와 그래샀노?” 삽질 좀 그만해 싸라.


탁현민 “강산에는 말의 속도, 생각의 속도가 느리다.”

강산에 “느리다, 빠르다 보다는 다른 거다. 아닌가?” 

탁현민 “세 가지 소원이 있었다. 정태춘 공연을 하고 싶었는데, 정태춘의 마지막 공연을 했고.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저항성 있는 팀과 하고 싶었는데, YB밴드와 했다. 세 번째는 강산에 무대에서 같이 서고 싶다. 아침부터 좀 전까지도 얘기할까말까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얘기해서 같이 하고 싶다 했더니 흔쾌히 허락해줬다.”

강산에 “허락했다기보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웃음) 의외였다. 뜻밖이었다.”

탁현민 “나는 항상 레디다.”



그렇게 마지막 노래, 강탁(강산에․탁현민)의 노래 <삐딱하게>가 무대를, 홀을 가득 채운다. “너무 착하게만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네)/ 너무 훌륭하게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네)/ TV를 봐도 RADIO를 켜도 삐따기의 모습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네)/ 있는 그대로 얘기할수 있는 삐따기/... 삐딱하게 삐딱하게/ 삐딱 삐딱 하게 삐딱 삐딱 하게/ 그가 서 있는 땅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네...”


무릇, 체제에 순응하는, 혹은 이를 넘어 체제에 복무하는 문화예술은 재미없다. 문화예술이 정치적이어선 안 된다는 말은 거짓이다. 아니, 그 말이 더 정치적이다. 연예인이, 무슨 정치적인 발언이냐고? 무식해서 내뱉는 무뇌아의 치기로 받아주겠다.


“예술은 정치사회적인 것들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맹신을 가지고 있는 한국사회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예술의 사회라 할 수 있다. 해방이후 지금까지 이 땅에서의 예술은 철저하게 지배층의 이데올로기를 선전하거나 혹은 저항하는 전부였다.”(p.82) 


대중문화, 대중예술의 꽃은 삐딱함에서 핀다. “우리 시대의 대중예술인 가운데 상당수는 자신의 음악과 발언을 통해 사회질서와 체제, 심지어 무의식 속의 관념까지도 부정한다... 이들이 국가와 사회를 비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체제를 공격하고 제도와 관습을 부정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세상을 바라보는 그 삐딱한 시선이야말로 대중예술인이라면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어야 하는 덕목이기 때문이다. 문화적 풍요는 결국 다양한 생각을 수용할 수 있는 사회에서만 가능하며, 대중예술인들은 그 풍요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p.98)


그렇다면 무엇으로부터 삐딱하게, 무엇에 대해 저항해야 하는가. “오늘날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란 단지 ‘돈’의 문제를 떠나, 가장 철저하게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이른바 자본의 ‘논리’에 대한 저항이라 할 수 있다. 사회적 금기와 체제에 대한 저항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고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질서를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하는데, 오늘날 가장 공고한 질서는 다름 아닌 자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을 부정하는 것은 현 시대의 전부를 부정하는 것과 같은데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문화사회적 실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p.157)


빙고. 돈을 멀리하라는 말, 아니다. 자본의 논리에 저항하라는 것이다.


68혁명의, 우드스탁의 구호는 아직 유효하다(고 나는 믿는다). 당신과 나를 상상하게 하는 힘. 그것이 곧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그 상상을 하게 해주는 문화예술의 힘. “예술은 저 하늘에 반짝이는 별빛 같은 무엇이 아니다. 문화가 우리 삶의 총화이듯이 문화의 범주 안에 당연히 위치하는 예술 역시 우리들의 현실과 미래를 담고 있는 실체적인 무엇이 되어야 한다. 예술이란 결국 우리들이 당대의 현실을 인식하고 꿈꾸어야 할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힘, 그것이기 때문이다.”(p.84)


그러니, 그 힘을 지키는 것은 우리여야 한다. “그들의 역할이 아무리 위로를 주는 존재라 해도 우리가 이 위로가 되어주는 존재들과 함께하겠다면 저들의 후안무치를 탓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윤도현이 앨범을 내면 그의 앨범을 사고, 신해철이 공연을 하면 그의 공연에 가고, 김제동이 책을 쓰면 그의 책을 읽는 것과 같은 분명한 지지와 사랑을 보내주어야만, 그래야만 우리는 그를 지켜줄 수 있을 것이다.”(p.218)



뜨거운 감자, YB, 강산에의 앨범을 사서 듣고 공연장을 향하며, 『상상력에 권력을』을 사서 읽고, <시사인>을 사서 펼친다. 그러면 우리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존재들과 함께 하고, 상상을 할 수 있다. 기대하고 기다리겠다. 섹스 피스톨즈의 데뷔공연이 새끼를 친 것처럼, 이날 함께 자리했던 누군가에 의해 빛나게 될 대중문화와 61만 명이 모여 자체 발광할 상상력의 향연을. 깃발 들고 우리 놀아보자. 자, 당신의 상상력을 보탤 차례다.

 

[예스24 채널예스 기고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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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 전화(http://hotline.or.kr).

력피해여성들을 지원하고 여성인권을 위해 일하는 여성인권운동단체.

인간수컷인 내가 '여성의 전화'에 오르내리는 건, 상상도 해보지 못한 일.

분기별로 낸다는 '베틀'이라는 소식지에, 글을 싣고 싶단다.


와, 희한한 경험이겠다 싶어, 넹~ 좋아효, 했다.

그리고 내 손에 들어왔다. 씨익. ^.^

흠, 여기저기 잡문을 기고하는 날품팔이지만,

이건 색다른 경험.

어쩌다, 거참. 신기할지고.

여성들에게 가능하면 죄 안 짓고 살아야할 터인데...^^;

아, 무셔.


고료? 돈 대신 인상적인 기념품 하나 받았는데,

뭐 나쁘진 않아!

또 하나, 홍보담당자에게 확인 하나 받아뒀다.

오는 10월6일부터 9일까지 진행되는 제4회 여성인권영화제.

티켓 하나 주신단다. 우왕ㅋ굳ㅋ




☞ 2010/06/02 - [메종드 쭌/무비일락] - 상대방을 무너뜨리지 않고 손을 잡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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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라는 창으로 바라본 서울과 노동자의 삶

[북리뷰] 《너 자신의 뉴욕을 소유하라》



4년여 전, 뉴욕.

이곳에 첫발을 디딘 청년은 휘둥그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믿기지 않는 눈치다. 변화를 목적으로 두지 않았던 여행객이자, ‘까르페디엠(carpe diem)’을 외치며 순간을 즐기는 것에 초점을 둔 그는, 사진 속 뉴욕이 제 눈앞에 펼쳐지자 그만 정신줄을 놓고(?) 말았다. 말하자면, 뻑 갔다는 얘기다. 짧은 시간, 뉴욕에 사는 친구와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곳만 다니고, 좋은 것만 먹고 마셨으니, 좋을 수밖에. 이방인에게 뉴욕은 더할 나위 없는 별천지였다. 뉴욕은 먹기 좋은 솜사탕이었다. 


맞다. 인정해야겠다.

‘관광객의 시선’으로 경험한 뉴욕이었다. 표백제로 말끔히 얼룩이 탈색된 뉴욕. 고작 여행을 떠나 잠시 스친 뉴욕에 내 로망을 던졌다. 물론 인정했다. 여행하는 이방인의 찰나적 도착증에 가깝다는 것. 정작 도시의 속살은 알지 못한다는 것. 휘황찬란함과 빛나는 문화예술 역시 노동자들이 지탱하고 있으리란 것. 그렇다고 그 로망을 압도할 순 없었다. 내 짧은 뉴욕은 ‘신자유주의의 중심 요새’라는 강박적 관념을 일순간에 날릴 정도로, 나를 휘감았으니까.


영화, 뉴욕을 만나다.

그해 겨울, 뉴욕으로 떠나기 전 읽은 책이 『안녕 뉴욕』. 저자 백은하(의 글)를 흠모했던 나로선, 그녀가 기자질을 털어내고 훌쩍 뉴욕으로 떠나 영화와 함께 한 408일이 참 좋았다. 그녀처럼 온전하게 털어내지 못했지만, 그 휴가의 끝물에는 털어내야 할, 아니 털어내기로 작정한 직장이 있었다. 영화로 뉴욕을 즐긴 그녀만큼은 아녔지만, 뉴욕의 여느 명소 따윈 필요 없어! 책이 말하는 곳이 곧, 나의 발걸음이었다. 아는 사람은 알잖아! 내 심장을 건드린 영화의 장소에 발을 디딘다는 것. 그건 곧 영화가 다시 내 눈앞에 펼쳐진다는 것과 동의어 아니던가! 아, 물론 아니면 말공. ^^;


뷰티풀 워킹 뉴욕데이즈! 

뉴욕촌놈, 그래도 뉴요커였던 친구 녀석과 싸돌아다녔다. 녀석은 집과 회사밖에 몰랐던 전형적인 워커홀릭이었다. 당시 나의 뉴욕행 덕분에 뉴욕을 함께 엿본 녀석이 더 놀랬다. 아니, 뉴욕에 이런 것이~  <세렌디피티>의 흔적을 찾아, <인 더 컴퍼니>의 사랑이 꽃피는 커피하우스 등을 찾아다니며 황홀했다. 그저 나는 여행객이었으니까. 나는 어떤 일로부터도 구속당하지 않을 휴가를 받은 상태였으니까.

아, 걷고 또 걸어도 아름다운 뉴욕의 날들이여. 그땐 그랬다. 



뉴욕, 한국을 삼키다.

그건 틀린 말이 아니다. 뉴욕은 하나의 유토피아처럼 채색되고 있었다. 그건 점점 더 가팔라지고 있다. ‘뉴욕 스타일’이라는 이름의 유령(?)도 배회했다. 한국 사회까진 몰라도 적어도 내가 발 디딘 서울은 그렇게 뉴욕에 목을 매고 있었다. “현란한 형용사에 매혹당한 한국 사회는 뉴욕의 창조성, 예술, 문화,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이야기에만 취해 있다.”(p.8) 다소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뉴욕에서 좋은 기억만 품고 온 나로선, 달리 방법이 없었다. “나도 며칠 가봤는데, 뉴욕 정말 좋더라.” 내가 뉴욕의 속살을 제대로 맛보기라도 했어야지. 관념이야 뻔했다. 뉴욕 역시 먹고사는 게 전쟁이며, 각국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의 삶은 고달프고 힘겨울 거라는. 안타깝게도 내가 헤매고 다닌 뉴욕의 거리와 시간은 내게 그런 삶을 보여주지 않았다. 아니, 내가 보질 못했다. 나라고 다를 바 있었겠나. 나는 고작해야 뉴욕의 빛나는 문화예술의 현장을 목도하고 싶은 이방인이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첼시의 화랑, 타임스광장, 센트럴파크, 소호 등. 월스트리트 정도만 빼고는 내게 뉴욕은 뷰티풀, 판타스틱, 어메이징 시티였다.


‘시크한 디즈니랜드’, 뉴욕.

그럴듯한 묘사다. 어른들의 로망이랄까. 시크함이라는 표현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도시. 뉴욕은 그렇게 소비되고 있다. 최소한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어쩌면 나도 그 스타일 소비에 작게나마 일조했을지도 모르겠다. 뉴욕 꼭 가보라며, 주위를 선동하면서 환상을 주입한 죄! 뉴욕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진짜 뉴욕을 구성하는 존재들에 대해선 쥐뿔도 모르면서. 나는, 반성해야 한다.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뉴욕은 ‘하이퍼뉴욕 hyper-New York’이라고 할 만하다. 우리는 대중문화․잡지와 신문을 통해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뉴욕을 경험하지만, 그 경험의 과정은 데이비드 하비가 말한 것처럼 “기원의 흔적을 철저하게 은폐시키며, 그것들을 생산해낸 노동과정이나 생산에 내포된 사회적 관계들의 흔적도 모두 은폐시킨다.”(p.29)


『너 자신의 뉴욕을 소유하라』.

이 책의 미덕은 이렇다. 스타일로서만 존재하던 뉴욕에 어떤 피가 흐르고, 속살을 벗기면 어떤 아픔이 있는지, 무엇이 진짜 뉴욕을 지탱하는지를 알려준다. 그러고 보니 뉴욕에 들렀을 때, 그 표피에 압도당한 탓에, 나는 몰랐다. 커피 한 잔을 마실 때, 커피를 뽑아주는 사람, 커피를 건네주는 사람, 커피 값을 계산해주는 사람, 그들도 나 같은 노동자임을. 그들은 투명인간이 아니었다. 나처럼 기쁨과 슬픔을 느끼며, 행복 하고 싶고, 꿈을 꾸고 가꾸면서 하루를 버티는 노동자. 어디 매장이나 식당을 들러도 역시나 비슷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노동자들.


진짜 뉴욕의 모습이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뉴욕 (라이프)스타일’이 아닌 뉴욕의 속살을 볼 수 있다. 고난의 시절을 거쳐 뉴욕에서 잘 나가게 됐다는, 가령 한국인의 뉴욕 유수의 투자은행(IB) 입문기였던 서른 살, 꿈에 미쳐라와 같은 성공 서사로 포장된 뉴욕 소유담, 아니다. 꿈도 아닌, 어떤 목표에 도달한 것을 놓고선, 성찰이나 세계에 대한 고민 없이 ‘나처럼 따라하면 돼’라고 읊조렸던 어이없던 기록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생생한 뉴욕. 눈에 띄지 않지만, 뉴욕을 진짜 지탱하는 것에 대한 사실적 기록이다. “…소비자본주의 시대 한국에서는 뉴욕에서 우아한 라이프스타일을 누리는 한국인 뉴요커의 도전과 좌절, 성공과 실패, 자아 찾기 식의 서사가 많아졌다. 아이비리그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꿈과 노력이 부각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러나 불안정한 노동시장에 뛰어들어야 하는 이민자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p.261)


브런치의 사회적 의미를 아는가.

이전까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브런치. 우리가 ‘아점’이라고 부르던. 그런데 브런치라고 호명함으로써, 그것은 다른 의미를 띤다. 이른바 ‘구별 짓기’가 이뤄진다. 아점을 먹는 사람과 브런치를 먹는 사람 사이. 생각해보라. 그 이미지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웃긴 거다. 브런치는 하나의 뉴욕 라이프 스타일을 대변하는 ‘상품’이 됐다. 그러나 저자는 브런치가 뉴욕의 보편적 문화도 아니요, 중간계급 이상의 전문직업인, 예술가, 대학생 등 충분한 여가시간과 경제적 능력을 가진 계층이 선호하는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 브런치가 곧 뉴욕, 아니올시다.


뭣보다 브런치를 내놓는 사람들은 노동자다.

그 사실을 우리는 잊고 있다. 한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의식적이건, 그렇지 않건, 하나의 계급적 상징이자 남과 구별 짓기 위한 기호로 쓰이는 브런치. 그 우아하고 맛있는 브런치를 내놓기 위해 누군가는 일해야 한다. 저자는 말한다. “한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은 다른 사람의 노동을 통해서만 추구되고 충족될 수 있다. 식료품점에서 물건을 정리하거나 레스토랑에서 물을 따라주고 가는 히스패닉계 노동자들, 네일숍에서 손발을 다듬고 매니큐어를 칠해주는 아시아 여성 노동자들이 없다면 우리가 상상하는 뉴요커의 삶은 결코 있을 수 없다.”(p.46)



브런치의 가격이 비싸지 않은 이유가 있더라.

다른 도시보다 임대료가 높은 뉴욕임에도 레스토랑의 브런치 혹은 식사료가 다른 도시와 비슷하거나 낮은 이유는 바로 저임금 이주노동자 때문이다. 이들은 물론 뉴욕의 화려한 때깔과 매끄럽게 다듬어진 풍경 뒤에서 보이지 않는다. 디폴트임에도, 모두에게 쉽게 인식될 수 없는 비극. 그들이 자취를 드러내면, 브런치는, 뉴욕(스타일)은 없어지는 모순. 젠장, 일하는 사람들의 고단함이란.


커피노동자인 내게도 그것은 어쩌면 슬픔이다.

커피를 볶고 추출해서 손님에게 건네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한다. 커피 생산자들의 노고와 자연의 고마움을 인식하고 있지만, 나의 고단한 노동은 아마 베일 속에 가려있을 것이다. 커피 한 잔에 담긴 노동의 가치를 알아달라고 응석을 부리는 것은 아니다. 종종 커피 한 잔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에게서, “커피가 맛있다”는 말 한마디에서 커피 노동의 보람과 행복을 찾지만, 그것이 이 팍팍하고 부박한 현실의 삶을 바꾸진 못한다. 그저 그것은 버티고 견뎌야 하는 일일 뿐이다.


‘워킹푸어’가 떠올랐다.

뉴욕이나 서울, 이 커다란 도시에서 저임금 노동으로 유지되는 삶. 일하고 있지만,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 일할수록 가난의 덫에 더 강하게 묶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 가난하다는 이유로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아야만 하는 외로운 존재. 뉴욕이든 서울이든, 그곳이 제공하는 많은 삶의 기회는 그런 저임금 노동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우리는 제대로 알고 있었던 걸까. “월스트리트의 부와 타임스광장의 대중문화, 소호와 첼시의 예술이 뉴욕을 활기차게 만들지만, 이민자들의 저임금 노동이 없다면 뉴욕은 제대로 굴러가지 않을 것이다.”(p.65)


이 말은 분명한 현실이기에 아프다. 

“이제 부지런히 일하던 이들이 도시의 주인임을 주장하던 시절은 지나가버렸다. 한때 사회민주주의적 도시를 경험했던 노동자들은 지금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냉혹한 시대를 살아간다.”(p.66) 저임금 노동자들이 없으면, 한 도시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을 거라고 확신함에도, 누구나 이에 동의할 것임에도, 누구도 그만한 대접을 하지 않는다. 뉴욕에서도 그렇겠지만, 한국의 어느 도시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기, 뉴욕의 속살을 보면서 한국의 도시를, 당신과 내 노동의 실상을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뉴욕은 그래봤는지 몰라도, 노동자가 한국에서 어느 한 도시의 주인이었던 적은 없다. 하긴 지금은 거기나 여기나 매한가지다. 비극은 그것. 워킹푸어 혹은 가난의 경계에서 외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한 사회의 지탱 혹은 번영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임에도, 그들의 행복은 사회 전체에서 없어서는 안 될 부분으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 그건 정혜윤의 말인데, 뉴욕의 저임금 이주노동자나 이 땅의 저임금 노동자에게나 마찬가지다. 


며칠 전, 지방선거가 있었다.

『너 자신의 뉴욕을 소유하라』는 뉴욕에 어느 시장이 들어서는가에 따라 변화된 모습, 즉 뉴욕의 역사와 감성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알려준다. 흥미롭다. 내가 잘못 알고 있던 것도 책은 수정해줬다. 줄리아니가 범죄적 뉴욕을 바꿨다고 생각했었다. 그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러면서 내가 발붙이고 사는 서울을 생각한다. 이곳의 시장은 앞선 4년 전과 같은 사람이다. 아마 삽질은 계속 될 것이다. 노동자를, 워킹 푸어를, 청년을 생각하지 않는 건 매한가지일 거라고 예단(!)하고 있다. 국가와 마찬가지로 지방 정부도 가난을 구제하고 약자를 지켜야하는 책임이 있지만, 나는 여전히 그 책임이 회복되지 않을 4년을 속단(!)하고 있다. 편파적인 생각이라도 어쩌겠나. 지난 4년의 학습효과다.


실은 걱정이다.

커피 노동자면서, 서울 시장이랑 니 삶이 무슨 상관이냐고? 그렇게 묻는 당신에게, “당연히 상관있다”고 말하겠다. 지금 서울은 내 삶의 터전이고, 내 삶의 질은 도시 내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좌우된다. 르네상스 시장의 재등장은 기존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려는 사람들의 정치적 기획이 아직은 건재함을 보여준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열망이 들끓었지만, 아쉽게도 그것은 뒤로 미뤄졌다. 아마, 커피 노동자로서의 내 삶은 서울을 지탱할 의무가 없음에도 서울을 지탱하는 작은 한 축이 될 것이며, 내 삶을 향상시켜줄 의무가 있는 서울시는 언제 그런 의무가 있었냐는 듯이 말간 얼굴로 삽질을 계속할 것이다.


‘새로운 서울 만들기’라고? 

그러면서 만든 구호들은 붕붕 떠다닌다. ‘세계 디자인 수도’ ‘명품도시 마케팅’ ‘한강 르네상스’ 등등. 그런데, 그게 좀 웃긴다. 서울에 사는 보통 사람들, 노동자들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말이 없다. 말만 번지르르하다. 서울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경쟁력을 높이겠단다. 브랜드 가치는 뭐고, 경쟁력은 또 대체 우리의 삶에 어떻게 삼투압할 건데? 그저 성과를 자랑질할 수 있는 수치에만 죽도록 매달린다. ““‘파리지앵’이나 ‘뉴요커’처럼 서울 시민도 서울이란 도시에 강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겠다며 자신의 비전을 정당화하지만, 어떤 파리지앵이고 뉴요커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도시 마케팅에 수천억을 쏟아 붓고, 한강 인공 섬을 만드는 데 9백억을 들여 서울을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2010년 꼭 가봐야 할 여행지’ 3위에 올려놓는 성과(?)를 이뤄냈다.”(p.262)


광장이 필요해.

뉴욕의 광장에 대한 언급도 빠지지 않았다. 1910년대의 유니언광장. “우리는 혁명을 하기 위해 모였고,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유니언광장에서 말할 권리는 우리가 땀 흘려 버는 빵보다 더 중요했다.”(p.163) 광장에서 말할 권리와 개방성. 광장의 정신은 ‘Let It Be’라고 했다. 그런데, 당신과 내게 있는 광장에는 그 정신이 없다. 우리의 것도 아니다. “…광화문광장에서는 권력의 조급함과 강박증만 느껴진다.… 정치적 야심을 위해 만들었건 건축학적으로 실패작이건 시민들에게 주어져야 비로소 ‘광장’이 된다.”(p.170)


물론 뉴욕이나 여기나 마찬가지다.

이윤과 분리주의에 입각한 공공장소의 개방성 축소문제. “이런 현상은 뉴욕뿐 아니라 전 세계의 많은 도시에서 나타나고 있다. 정치인과 관료들은 어떤 특정한 인구를 끌어들이고 다른 특정한 인구를 배제하는 정책을 펼친다. 소비하러 오는 이들에게는 개방적이지만, 저항하러 오는 자들에게는 닫혀 있다. 돈 미첼은 공공장소에 대한 위협은 단순히 “공공장소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을 배제하고 사회적․문화적 다양성을 줄이는 관리와 디자인의 방식이다.”라고 주장한다.”(p.167)



다시 뉴욕을 생각한다.

지난 뉴욕 방문에서, 나는 ‘뉴욕’과 관계를 맺은 것이 아니었다. 진짜 뉴욕을 만드는 노동자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은 것이 아니었다. 특정 시공간과 인간 사이의 구체적 관계에 집중하지 못하고 뉴욕 스타일에만 현혹됐던 게다. 상품화된 라이프스타일, 즉 교환가치를 가진 기호에 홀딱 넘어가면서 뉴욕의 속살을 살펴보고 사유하지 못했다. 책을 읽고 난 지금, 뉴욕을 낭만으로만 인식했던 허약한 사유체질의 껍데기를 벗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다시 뉴욕을 간다면, 스타일이 아닌, 생활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뉴욕은 미국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 말했고, 뉴욕 스스로도 그렇게 선언했다. “소설가 폴 오스터는 어느 인터뷰에서 “뉴욕이 미국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독립적 도시국가가 되는 것을 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만이 아니라 뉴욕에 애정을 가진 많은 이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뉴욕에 사는 사람들은 ‘아메리칸’보다는 ‘뉴요커’라고 불리기를 원하고, 제국의 국민보다는 관용이 살아 있는 뉴욕의 시민이 되고 싶어 한다. 이들은 이민자와 이방인에 대한 관용의 정신이 뉴욕을 뉴욕답게 만드는 힘이라고 말한다.”(pp.342~343)


그러나 지금은 뉴욕이 그 뉴욕이 아니다.

“그러나 ‘뉴욕다움’은 계속 사라지고 있다. 한 공연에서 부시 행정부를 풍자하던 코미디언이 이렇게 말했다. “이제 더 이상 뉴욕을 사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뉴욕이 점점 아메리카처럼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청중들은 오래된 농담 같은 그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뉴요커로서의 자부심과 미국인으로서의 자괴감이 뒤섞인 씁쓸한 웃음이었다.”(p.343) 관용은 휘발되고 법과 처벌을 강조하며 사회적 약자를 배재하고 추방하는 현실. 내가 있는 이곳의 지금이라고 다른가.


너 자신의 뉴욕을 소유하라!

이 책의 제목이 품고 있듯, 여기 나온 뉴욕도 뉴욕의 모든 것이 아니다. 편파적 보고서라고 일찌감치 선언하지 않았던가. 모든 뉴욕은 모두 편파적이다. 그게 뉴욕이다. 너의 뉴욕, 나의 뉴욕, 그들의 뉴욕. 저자는 뉴욕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일상인으로서 뉴욕을 전해줬다. 이방인이자 여행객으로 뉴욕을 살짝 맛보고 온 나의 뉴욕이라고 마냥 틀린 것은 아니다. 벗겨보지 못한 속살을 남겨뒀을 뿐. 그 속살의 일부를 저자가 전해줬을 뿐. 간혹은 그가 전하는 뉴욕의 흔적에 내 마음이 흔들렸다. 뉴욕은 여전히 내 기억의 숲속에 둥지를 틀고 있는 게다. 내게 한 뼘 정도는 넓어진 뉴욕, 언젠가는 그곳에 내 일상을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 아마 내 세계는 두 뼘 정도 더 넓어지고, 내 우주는 더 많은 사람을 만나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물론 그때도 여전히 나는 노동자로서, 뉴욕을 지탱하는 저임금 이주노동자로 살아갈 것이다. 그러면서 언젠가 내 자신의 뉴욕을 소유하는 날, 당신에게도 그 이야길 들려주고 싶다.


p.s. 책은 아쉽게도, 오타가 간혹 보인다.

아프리칸 이메리칸(p.56) -> 아프리칸 아메리칸

신보주수주의자들의...(p.203) -> 신보수주의자들의... 

미국 국세청 규정의미국 국세청은...(p.240) -> 미국 국세청은...

 

2쇄 찍을 때 교정을 보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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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줄의 추천사를 써달란다. 어찌 거역할 수가 있을까.
그래서 이렇게 얼렁뚱땅 보냈다. 훨씬 길게 갈겨댔다.

러블리 라이프, 브라보 라이프!
     
나는 그녀가 부럽다. 723일의 여행? 아니. 내 로망이자 느린 희망의 고장 '쿠바'의 속살을 살짝 훔쳐보고, 진한 오리지널 쿠바 커피까지 마셨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쫌' 안다. 삶은 늘 맨땅에서 시작하는 것임을.

그녀는 '자주' 찾는다. 낯선 땅에서 고투와 희비쌍곡선을 그리면서도, 어떨 때 스스로 행복하고 마음과 감각이 살아있는지를. 그렇기에,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변화를 여행의 목적으로 두지 않았으니까. 그저, 즐김. 그저, 까르페디엠.

여행 곳곳에 뿌려진 그녀의 마음길에서 나는 여행의 '정보'나 빈틈없는 '일정'보다, 세상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를 엿봤다. 세간에서 구획 지은 성공과 실패의 잣대보다 스스로 자유로워지기를 택한 그녀의 발걸음에 내 마음이 덩달아 따라 나선 이유다. 

어딘들 낯설지 않으랴. 어디서든 이방인이 아니랴. 그럼에도, 책장을 넘기다보면, 그녀가 온몸과 마음의 감각을 살려 지구인으로 자리매김했음을 느낀다. 무엇보다 시즌2를 맞은 그녀에게, 부엔 까미노(앞날에 좋은 일만 있기를 or 좋은 여행하세요)!

그리고, 그녀가 그리 오래 붙잡고 있던, 줄이고 줄이고 또 줄이느라 똥줄을 뺀,
책이 마침내 나왔다.

제목 때문에도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더니,
짜잔~ 마침내 순풍 낳은 제목은,
《여행의 여왕》!


내 책도 아닌데, 뿌듯하다. 
책 뒤표지에는 저 추천사 원문의 1/4 정도가 나와 있다.

알맞게 줄여주셔서 고맙긴 한데,
맨 끝에 적은 '부엔 까미노'는 꼭 들어갔음 했는데,
간택을 받지 못해서, 추천글의 애비로서 쫌 아쉽다. 우짜겠노. ㅠ.ㅠ

뭐? 추천사 써주는 것도 돈 받냐고?
에잇! 그런 속물스런 질문을!!!!!!
이라고 타박 않겠다.

나란 인간, 속물작렬이라, 원래 돈 받아야 뭐든 써준다.
그러나 돈 안 받았다.
왜냐! 그녀가 예쁘니까. ^^;;;;
예쁘면 돈도 안 받는다, 나란 속물.
예쁘면 커피 한 잔, 공짜로 막막 준다, 나란 속물.

우리, 예쁘면 좋아한다.
예쁘고 아름다우면 편애한다.
차별과 뭐가 다르냐고? 사전 찾아봐라.;;

그러고 보니, 그렇군.
나는,
예쁜 것만 편애하는 더러운 수컷이다. ^^;
평생 못 고칠 것이다. 아마.

오냐, 그러는 넌 예쁘냐고?
바보냐, 이미 얘기했잖나. 나! 더러운 수컷이라고. 흐흐.

참, 그녀는 잘 있을까.
여행의 여왕은 지금 몽골에 있다.
내가 4년 전, 아주 잠시 몸을 위탁했던 그 곳에.
지구촌나눔운동 소속 NGO활동가로 몽골과 부대끼고 있는 그녀.
멋지다. 예쁜 것도 황공하온데, 멋지기까지.

더 멋지고 죽이는 것 알려줄까?
그녀는 이 책의 인세 50%를 쾌척한다.
전 세계의 빈곤, 전쟁, 학대에 시달리는 사람을 돕는데 말이다.
그녀의 시즌2는, 리스타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사실 시즌1은 그랬다. 2007년, 여행의 여왕은 생각지도 못할 당시.
나이는 서른하고도 후반, 허리디스크에 툭하면 장 트러블로 고생하던 저질체력에,
전셋집 빼서 마련한 여행자금 3500만원이 가진 돈의 전부였던 여자.

남의 나라 정치, 문화 등등 기본 교양에 관심 조차 없던 그녀가,
723일의 여행을 통해 세상을 품고 세계를 담았다.
전쟁, 평화, 인간, 종교 등 그동안 친하지 않던 것에 대해 '생각'을 시작했다.
세상의 소수자에게 마음을 내주는 방법도 깨달았다.

그녀는 그렇게 세상과 마주침으로써 인격과 품격이 높아졌고,
장담하건대, 이 책을 접하는 순간, 당신의 인격과 품격도 높아질 것이다.

결론은, 책 사서 보라는 얘기!
예쁘고 아름다운 사람의 책은 사줘야 한다. 그것이 나의 지론이다. (응? 증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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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는 아마 예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마지막 저서인 《카메라 루시다》에서 언급한 '푼크툼'이 회화 보기에서 차용될 줄이야. 그것도 21세기, 자신의 나라에서 멀리 떨어진 한국에서 말이다. 미학자 진중권 교수가 이번에는 미학과 미술사를 넘어, 회화보기의 새로운 경지를 제시했다. 롤랑 바르트의 푼크툼을 회화에도 적용해서 말이다.  

책 제목이기도 한 피터르 브뤼헐의 '교수대 위의 까치'는 최근 그의 처지와 맞물려 묘한 기시감을 불러 일으킨다. 더구나 브뤼헐은 당대 권력자들을 조롱하고 대운하를 반대한 전력을 갖고 있으며, 그에게 풍자의 대상은 서민이라고 비껴가질 않았다. 진 교수 또한 마찬가지 아닌가. 그는 인터넷을 사용하는 일반인이라고 무조건 편들지 않는다. <디 워>논쟁에서도 우리는 그것을 목격했다.  

그런 진 교수가 스스로 꽂혔다며, 열 두 작품을 언급했다. 우리가 잘 아는 작품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른바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것)도 있다. 어떻든간에《교수대 위의 까치》를 관통하는 개념은 푼크툼이다. 즉, 똑같은 제재를 보더라도 알 수 없는 이유로 꽂히는 감각. 나한테는 꽂히지만, 다른 이에겐 꽂힌다는 보장도 없는, 작품과 나 사이의 개별적이고 고독한 관계. 피사체가 있는 사진에서만 쓰이던 개념인데, 그 개념을 완화했다는 것이 진 교수의 설명이다.


그것은 참 재미있는 개념이다. 진 교수가 언급한 열 두 작품은 이전에 우리에게 주입된 회화를 보는 방법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낯설게 보기다. 표준적인 작품 해설에 의한 미술사 보기가 아닌, 내 마음에 꽂히는 '삘'로 작품 마주대하기. 표준적인 작품 읽기가 아니어서일까. 책은 흥미를 불러 일으키며, 의외로 미술보기에 대한 관심을 더욱 증폭시킨다.  

더구나, 타의에 의해 교단에서 쫓겨난 그의 처지와 맞물려, 책에 나온 작품들이 (잘리지 않았다면) 강의실에서 얘기될 것들이었다고 하니, 마지막 강의를 받고 있는 듯한 느낌. 책에 대한 집중도 또한 높아진다. (교단에서) 사라졌지만, 우리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온 이 아이러니.  

책은 곳곳에서 찔러댄다. 회화를 보는 시선이 하나가 아니며, 미술사가 아닌 전혀 다른 분야의 시선을 빌려서도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의미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범례적으로 보여준달까. 경계를 넘어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 방법이 앞으로 회화를 만나면, 나만의 푼크툼의 순간을 만끽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것이란 기대를 하게 한다.   

'사라진 주체'라는 테마로 진행된 요하네스 굼프(Johannes Gump, 1626~?)의 <자화상>이 메타 회화를 언급한다는 대목에선 17세기 화가들의 자의식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엿봤다. 이 작품, 희한하게 주체가 3개다. 하나는 뒤통수, 다른 하나는 거울, 남은 하나는 캔버스. 현실과 비현실, 더 나아간 비현실이 함께 등장하는데, 현실과 비현실은 위치를 바꾼다. 가장 현실적이어야 할 작가는 뒤통수만 보이고 캔버스에 그려진 자화상이 가장 강력한 효과를 드러낸다. 가상이 현실을 압도하는 셈이다.   

이것은 그렇다고, 굼프가 창안한 것은 아니란다.그럼에도 굼프를 비롯한 17세기 화가들은 보들리아르가 언급한 시뮬라크르(자기동일성이 없는 복제)를 일찌감치 다룬 셈이다. 화가의 정체성을 넘어 회화의 정체성을 다룬 진화의 단계. “굼프는 관객에게 등을 돌려 얼굴을 감추어버리고는 화폭 위에 거울에 비친 ‘영상’과 캔버스에 그려진 ‘모상’만 남겨둔다. 그 결과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자연스레 그림을 그리는(또는 거울을 비추는) ‘행위’만이 전면에 나서게 된다. 이런 식으로 굼프는 자화상을 이용해 ‘주체의 본성’이 아니라 ‘재현의 본성’을 주제화하려 했던 것이다. 여기서 굼프는 ‘화가의 정체성’을 묻고 있지 않다. 그가 묻는 것은 ‘회화의 정체성’이다.”(pp.143~144) 

휴머니스트 출판사에서 만나 봰 진중권 교수(뒤)


여러모로 진 교수의 범례적 회화읽기는 곳곳에서 놀라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림 보기가 보다 즐거워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답이 있어야 안심을 하는 제도권 교육의 폐해는 이런 것이 아닐까. 답 하나만 좇아 모든 가능성을 차단해 버리는 것. 푼크툼은 그것만큼 중요한, 새롭게 문제를 다룰 수 있는 방법이 있음을 알려준다. 답을 푸는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질문을 제기하는 능력임을.  

굼프의 <자화상>이 진 교수를 사로잡은 이유는, ‘모델-재현’의 상식적 관계를 무너뜨린 디테일 때문이었다. “재현은 모델과 상관없이 제 의지를 가지고 따로 움직인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있는가? 어느 것이 나인가? 뒤통수를 보이는 저 머리인가? 아니면 거울 속의 얼굴인가? 그것도 아니면 캔버스 위의 얼굴인가?”(p.159) 진 교수로 하여금 질문을 던지게 만든 굼프의 <자화상>. 

세상을 보는, 세상을 사는 재미가 하나 더 늘었다.
푼크툼으로 인해, 《교수대 위의 까치》가 안겨준 책 읽기의 행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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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내겐 세 번째 정이현.

통돌이 세탁기 질문을 던졌던 <사랑니> 재상영회,

2007년과 작별을 공유했던 시간,

그리고 이번 세 번째는, 낭독회라는 타이틀.


물론, 서로 아는 사이? 당근 아니지.

나만 알고 있는 사이. 당연히 '너는 모른다'.


독자만남에 온 사람 대부분을 희한하게 기억한다고 정이현은 말했지만,

그것도 사람 나름이지. 지극히 평범한 아주 보통의 존재는 때론 모르는게 편하다.


정이현을 무척 꽤나 아주 많이 좋아해서,

이 자리에 우겨서 왔다는 한 사자머리를 한 여성이 있었다.

(멋있었다. 내 눈엔!)

그날 알코올에 잠식당한 것 같았음에도,

오매불망 정이현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낭독회를 듣고,

글에는 쓰지 않은 아주 재미있는 질문으로 함께 한 우릴 웃겨주기도 했는데.


그런 그녀가 사인을 받을 찰나 내 앞에 서서,

혼자 왔냐고 물어 끄덕끄덕 거렸더니,

정이현 작가와 사진을 찍어달라면서 우리 친구 하잖다.

누구라도 끄덕끄덕 할 수밖에 없는 상황.

우리는 서로 모르지만.


하지만, 사진기는 고장이 났는지, 내 손에서 작동을 하지 않았고,

그녀에게 사진기를 다시 돌려주며 사인을 받은 나는 자리를 휙 떳다.

나중에 들은 후문으로,

그녀는 정이현과 함께 있다는 것에 감격해서인지, 펑펑 울었단다.


정이현이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모르겠으나, (아마 당혹스러웠겠지)

글의 완성도나 미학에 상관없이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가진 작가는,

한편으로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낭독회 끝난 뒤 만난 하얀 복실이가 보고 싶다.

홍대부근에 가거든 잘 있는지, 살펴봐야겠다.

아래는, 그 낭독회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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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알기 위해,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너는 모른다』 정이현 작가와 함께하는 낭독의 시간


얼마 전 날아온, 메일 한 통. 니가 좋아하던, 존 스타인벡(『분노의 포도』 『에덴의 동쪽』등)이 했다는 말이 적혀 있었어. “타인을 정말로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기껏해야 그들이 자신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사람을 알기까지」중에서) 아, 그 말을 입으로 곱씹는 순간, 삐뽀삐뽀, 머릿속엔 경광등이 켜졌다. 니가 갑자기 휘발됐거든. 니가 떠오르질 않았어. 고작 아는 건, 니 이름, 희미한 생김새, 하는 일과 같은 겉모습뿐. 니 마음, 니 속살은 어디에도 없는, 텅 빈 내 마음.


이런, 당황스러웠어. 물론 너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어. 넌 그저 나와 ‘다른’ 사람이었을 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한때의 착각. 내가 너이고, 네가 나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었던 우리들의 시절. 안다. 모른다. 그 쉬이 건너기 힘든 강. 어쩌면, 내게 넌 아는 여자, 나는 네게 그저 아는 남자였을지도. 우린 서로를 통해 자신을 투영하고 있었을 뿐인지도 모르겠어.


뜬금없지만, 나는 다른 사람이 누군가를 ‘착하다’고 하는 말을, 늘 의심해. ‘내 친구, 착해’라는 흔한 말. 대체 뭐가 착하다는 거지? 그 착하단 말, 어떤 의미를 품고 있는 거지? 내게 피해를 주지 않는? 그저 세상에 맥없이 순응하기만 하는? 나는 네가 착하다고 생각한 적, 단 한 번도 없었어. 다른 누군가에게 널 말할 때도 그렇게 얘기한 적도 없지. 타인을 얼마나 잘 알기에 착하다는 말을 그렇게 쉽게 꺼내는 걸까. 다들 주변엔 착한 사람만 있다는데, 세상은 왜 이 꼬라지지? 아직, 나는 궁금해.

 

이 글을 봤어. “착하다는 말 속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포함돼 있을 것이다. 그 애들은 하나 같이, 타인에 대해 티끌만한 악의조차 없어 뵈는 혈색 좋고 허여멀끔한 인상을 하고 있었다.”(p.181) 존 스타인벡의 그 말을 접할 즈음, 『너는 모른다』(정이현 지음|문학동네 펴냄)를 쥐고 있었지.


음, 뭐랄까. 책장을 넘기며, 좀 생뚱맞은 경험을 했어. 책을 쥔 내내, 실종된 열한 살 소녀, 유지의 행방이 궁금해 미치겠는 거야. 왜 못 찾느냐가 아닌, 유지는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소설 등장인물이라도 되고 싶었어. 유질 찾고 싶었거든. 유지야, 어디 있는 거니. 아무도 모른다는 그것이 유지를 어떻게든 찾아야 한다는 마음을 유도했을까.


가족(이라고 쓰고, 타인이라고 읽는다)이 할 수 있는 일, 거의 없었어. 어떻게든 유지의 부모인 김상호․진옥영 부부, 남매인 은성과 혜성은 정신줄을 놓고 있을 뿐이었지. 유지와 어떤 관계든 맺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밍, 사설탐정 노릇을 하는 문영광도 속수무책. 그야말로, 아무도 모른다. 아마 그들도 유지가 자신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었겠지.


유지. 열한 살(을 나는 잘 모르지만)이 가졌으리라곤 생각할 수 없는 사유를 일삼는 소녀. 어쩌면, 나는 그 소녈 통해 널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몰랐을지 모를 너를. 한때 너만을 사랑하고, 나만이 널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던 오만도 자꾸만 밟히고...


“사람을 찾습니다.” 그 말이 떠올랐어. 최근에 읽은 어떤 소설들의 겹침. 역시나 실종된 가족(엄마)을 찾아 나선,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 그들 역시 엄마를 몰랐어. 잃고 나서야 그들은 엄마의 속사정을 하나 둘 알게 됐고, 생각을 하게 되지. ‘(가족의 일원이었던) 사람을 찾’는 소설들이 연이어 주목을 받는 것엔, 어떤 시대적 징후가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 아마 내가 아는 너라면, 어떤 답이든 줬을지도 모르겠어. 또 하나, 김연수 작가의 중단편을 모은 『세계의 끝 여자친구』. 누군가를 온전하게 알거나 이해할 수 없더라도, 그 노력을 중단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 내 안팎에서 사람을 찾는 노력 같은 거. 


응, 그래. 너에게, 때늦었지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지난달 28일, 상수 이리카페. ‘정이현 작가와 함께하는 낭독의 시간’에 귀와 마음을 열었던 시간. 너에게, 내 흔적을 꾹꾹 눌러 담는다. 『너는 모른다』에, 혹은 정이현에, 마음을 둔 사람들이 함께 한 공간. 아무도 몰랐지만, 아마도 비슷한 마음을 품고 있었을 사람들과 함께 한 시간. 유지의 행방을 알았기에, 나는 다소 홀가분했고, 유지를 비롯한 그 가족들, 분명히 예전과 다른 시간을 살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 남의 고통과 마음에 좀 더 들어가 있으리란 예감. 다른 이의 고통에 늘 민감했고, 그것을 들여다보면서 성찰하고 스스로를 그 속에 내던졌던 너. 그래, 그런 니가 이 얘기도, 들어줬으면 좋겠어.



(※ 스포일러로 간주될만한 이야기가 있으니, 책을 읽지 않은 분들은 조심하시길.)


그들을 알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


정이현 작가의 입에선 은성의 이야기부터 흘러 나왔어. 동생인 혜성의 탄생 비화(?)부터 자신이 ‘이 푸르스름한 스노볼 같은 지구에 잘못 떨어진 이유’까지. “태어나게 해 줘서 고맙습니다”라는, 부모에게 건네는 흔한 말과 달리, “날 왜 낳은 거냐”며 분노와 체념이 뒤섞인 은성의 이야기. “어떤 생명이 전적으로 또다른 생명을 위하여 태어나기도 한다는 사실에 그녀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나를 위해, 나를 고독하지 않도록 할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아기! 그것이 동생 혜성이었다. 스스로 간절히 원해서 태어난 아기는 없다.… 그러면 이 푸르스름한 스노볼 같은 지구에 잘못 떨어진 이유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텐데.”(pp.32~35)


작가는 이렇게 은성을 얘기해. “은성이, 특이하다는 말씀 많이 하세요. 경계성 인격장애로 설정했는데, 병명은 명명하기 나름인 것 같아요. 사실 은성은 굉장히 외로운 사람이고, 안으로 삭히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표출하는 사람이죠. 나름의 방식으로 절규하지만 대상을 못 찾고 자신의 말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아픈 경험을 하는 사람이거든요. 은성이라는 인물에게 애정이 많이 갔어요. 다른 인물 다 사랑하지만, 은성에게도 많은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미친년.’ 은성이에게 붙여진 별명 같은 거였다지. 글쎄, 나로선 연민이 많이 갔던 인물이라, 그렇게 부르고 싶진 않고. 어떻게든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하고픈 은성의 안간힘이 애처로웠달까. 마음으로 울고 있는 그녀를 누구든 제대로 달래주거나 토닥여주고 안아줬더라면, 아마 그녀는 달라졌을지도 모르는데...


이번에는 밍의 이야기. 어디에도 없는 남자. 스스로,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내뱉어야만 했던 남자. 가족이라는 틀에 비집고 들어갈 수 없었던 남자. “"잘 있었어?"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때 몹시 비겁했던 적이 있다. 돌아보면 지금껏 비겁하기만 했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아무것도 망가뜨리지 않을 수 있다고 믿었다.… 숭숭 뚫린 빈칸을 이제 와서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그것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다음날 아침, 밍은 타이베이 발 서울 행 첫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pp.198~200)


이 대목은 그러네.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을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주저하다가 이 부분을 꼽을 만큼 기억에 남는 장면이에요. 쓰고 있을 때 환경도 그랬고, 일일 연재를 했기 때문에, 소설로 기억되는 게 아니고 상황으로 기억나거든요. 10월의 비오는 날, 술을 먹고 들어와서 마감은 급한데 썼다거나 굉장히 심한 감기에 들어온 날인데, 약속도 취소하고 썼다는 등으로. 그렇게 제 시간들이 녹아서 들어있는 느낌이고, 이 부분도 오래 기억이 될 부분이에요. 밍이 숭숭 뚫린 빈칸 같다고 생각할 때, 아마도 제 자신이 그러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기억에 남는 거 같아요. 다른 분이 낭독하는 걸 들으니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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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숭 뚫린 부분. 그래, 누군들 그렇게 제 삶에 숭숭 뚫린 부분들이 없을까. 더 이상 무엇으로도 메우지 못한 채 박제된 빈칸. 나는 그 부분을 메운다는 것을 믿지 않아. 빈칸에 완벽하게 들어맞을 점토 같은 건 없어. 작가도 그런 말을 던져. “숭숭 뚫린 부분이 채워졌나요?” “채운 듯하다가 전혀 다른데 뚫려있고 그래요.” 더 이상 캐묻지 않는 것이 예의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각자의 짐작으로 의문의 빈칸을 메울 뿐. 밍에 대한 각자의 시선이 그러하듯 말이야. 내겐 가장 가슴 아렸던, ‘아무도 모르는’ 이 남자.


여하튼 그 남자도, 스무 살 사랑이 있었어. 그 이후 이십여 년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해야 했던. 유지의 엄마, 옥영. 두 사람이 스무 살, 처음 만났었던 시절이 쓰고 달콤함이 공존하는 에스프레소 커피 향처럼 퍼진다. “한 사람의 내부는 몇 개의 공간들로 이루어져 있을까.… 지금 막 비밀스런 가정사를 고백한 어린 연인의 눈동자에 눈물방울 같은 건 맺혀 있지 않았다. 옥영은 밍의 손등 위에 손바닥을 가만히 포갰다. 따뜻했다. 이 손을 잡고서라면 어디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언제까지라도. 인생에는 한들한들 부는 산들바람에 몸뚱이를 맡겨도 되는 시간이 있다.… 그렇게 규정해야 안심하는 자신이 참 비겁하다고도 생각한다.”(pp.53~55)


그들에겐, 다신 돌아갈 수 없는 추억. ‘우리들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시절이겠지. “인생에는 한들한들 부는 산들바람에 몸뚱이를 맡겨도 되는 시간이 있다”라는 말. 정말 그랬던 시간이 떠올랐어. 너를 처음 만난 그땐, 정말 그랬으니까. 그 가을날의 산들바람이 내게, 그렇게 속삭였으니까. 몸뚱이를 맡길 수밖에 없었고, 마음까지 홀라당 맡겼던 내 스무 살 무렵도 갑자기 두둥실 떠오르기도 하더라. 


정이현도 꽤나 이 부분을 좋아한대. “옥영과 밍은 스무 살 대학동창으로 만나서 이십여 년 동안 헤어졌다 만났다를 반복해요. 연인이라고도 할 수 없고 굉장히 긴 인연을 맺어가는 사이인데, 스무 살 연인으로 만났을 때 부분이죠. 좋아하는 부분이라서 읽었고요. 이 얘길 쓸 때 취재차 대만 타이베이에 갔었거든요. 3월경이었는데, 기온은 높은데, 바람이 많이 불고 습하고 추위가 느껴졌어요. 우기여서 비가 많이 왔고요. 대만대학에 다니는 사람으로 설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대만대학 앞에 일주일정도 묵으면서 산책하듯 갔다 왔다 했던 기억이 나요. 스무 살의 내 모습이 어땠는지를 반추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고요, 내일 아침 대만을 다른 일로 가는데요, 다시 그곳에 가면 어떤 마음이 들까. 이 책에 대만 얘기가 많이 나오니까, 느낌이 남 다를 거 같아요. 그래서 같이 읽고 싶었어요.”


유지, 어떻게 지내고 있니?


한 독자의 낭독이 있었어. 그래, 유지에 대한 이야기였지. <악마의 트릴>을 만든 타르티니에 대한 이야기부터. “1713년. 스물세 살의 젊은 작곡가 타르티니는 악상이 떠오르지 않아 괴로워하고 있다.… 영혼이란 걸 팔면 이런 데 다다르게 될 수도 있구나. 음악 속에서 아이는 심장을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하울카. 여전히 생경한 발음이었지만 어쩐지 할카보다 하울카 쪽이 훨씬 더 부드럽게 들렸다.… 하울카가 아이보다 한 걸음 먼저 글을 남겼다. 아이는 답글을 타이핑했다. - ...................! 백 마디의 언어보다 문장부호 하나가 유용한 순간이 있다는 것을 아이는 알았다.”(pp.262~264)


이 독자는, 성격이 잘 안 드러나지 않는 유지가, 가출을 결심하는 동기이자, 하울카란 사람과 소통하면서 자기가 얼마나 외로운지를 알아차린 것 같다고 했어. 또 음악을 통해 외로움과 슬픔을 얘기한 부분이 좋아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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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살 소녀의 블로그. 글쎄,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 아니, 열한 살이라고 밝힌 블로그를 접하진 못했어. 초딩(보다 못한) 짓거리가 가득한 블로그는 봤지만. 사실, 난 유지가 열한 살이라는 설정이 가장 와닿질 않았어. 유지를 찾고 싶다는 강력한 욕망과 다른 차원에서, ‘유지는 정말 열한 살일까?’라는 호기심도 들더라고. 가령, 이런 거지. 


“하지만 엄마는 짱깨였고 엄마의 딸인 아이도 짱깨였다. 짱깨가 아닌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였다. 그것이 폭력이 세상을 지배하는 법칙이었다. 맞서 싸우기 위한 완벽한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어금니를 꽉 물고 참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몰랐다. 섣부르게 주먹을 내질렀다가 제풀에 위태로이 비틀거리는 꼴을 목격당하는 건 더 치명적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는 내면의 동요를 감추는 기술을 배워갔다. 지상의 모든 아이들이 결국 그러하듯이.”(p.158) 


내가 열한 살을 모르는지 몰라도, 내 열한 살이 그렇지 않았는지 몰라도, 아무리 소녀가 소년의 정신연령을 훌쩍 뛰어넘는 것을 알아도, 나는 이런 생각을 하는 열한 살 소녀를 생각하긴 어려웠다고 토로해야겠어. 넌 어때? 너의 열한 살, 기억하니?


“대한민국 곳곳의 하천과 호수, 바다에서는 연평균 천 구가 넘는 표류사체가 발견된다. 2008년 5월의 마지막 일요일, 경기도 Y대교 상단에서 발견된 남성 사체도 그중 하나였다.… 뱅글뱅글 이어진 나선형 계단 중간쯤에서 은성이 주저앉았다. 혜성도 그 곁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싸구려 소독약 냄새가 빈속을 어지러이 자극했다. 치받혀오는 토기(吐氣)를 억지로 눌러 삼켰다.”(pp.477~479)


끝의 시작. 마지막 챕터의 한 부분을 낭독하는 작가의 이야기에 문득 궁금해졌어. 유지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도무지 그 깊은 속을 알 수 없었던 이 소녀는 지금 얼마나 컸을까. 올 겨울, 이 추웠던 겨울은 잘 났을까. 생전 본 적도, 얼굴도 모르는 소녀의 행방이 궁금했던 나. 나도 가만히 한 발을 내디딘 걸까. 그 조용한 세계로. 너의 세계로 들어갔던 그때처럼...


정이현, 묻고 답하기


사진제공 : 문학동네


낭독회를 통해 이렇게 독자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지는 게 어떤 좋은 점이 있나요.


『너는 모른다』가 나온 뒤, 낭독회는 두 번째 자리에요. 저만 그런 게 아니고, (작가들에게) 이런 소통의 시간이 많아졌어요. 저희는 이런 기회가 아니면 독자들을 면대면으로 마주할 기회가 없는데, 되게 감사하고 소중한 기회인 것 같아요. 사실 신간이 나오고 나서 궁금해요. 독자들이 어떻게 읽었는지. 어떤 부분에서 어떤 느낌을 가졌는지, 되게 궁금하거든요. 사실 저도 몰랐는데, 이렇게 만나고 보니, 제가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는 편이더라고요. 얼굴이 기억나요. 어른이 되면 자신과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은데, 새로운 사람 사귄다는 두근거림도 있고 그래요.


처음엔 가족 배경의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읽고 보니 주제가 소통인 것 같아요. 어떤 점을 중점으로 이야기하고 싶었고, 유지를 통해 어떤 걸 말씀하고 싶었나요.


거의 대부분이 ‘가족 서사’로 많이 읽더라고요. 처음 생각과 달라서 재밌기도 하고, 조금은 왜 그러실까, 궁금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가족이 궁금한가보다’ ‘가족소설이 필요한 때인가’라는 생각도 들어요. 바깥세상이 너무 거칠고 풍파도 많고, 가족안에서는 따뜻하고 안온하길 바라는데, 그렇지 않은 가족이 많잖아요.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열심히 생각해보고 싶었다면, 이 가족을 혈연공동체로 만들었을 거예요. 그런 인물들은 아니죠. ‘홈’이라는 가족보다, ‘하우스’라는 곳에 사는 가족을 생각했어요. 하우스는 형식적인 틀인데, 그곳에서 혈연과 혈연 밖으로 묶인 사람들 사이에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지 궁금했어요.


소통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다는데, 그런 이야기가 더 맞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거칠게 말하면, ‘너는 나를 몰라’ 그렇게 생각하고 문을 닫고 있었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나도 너를 모른다’며 살짝 인식이 바뀌는 순간, 그 순간을 희망 섞인 소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사실 저는 희망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웃음) 소설은 작고 미미한 변화의 순간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에서 출발했어요.


유지를 통해, 인물을 통해 뭘 얘기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제가 인물을 조정하는 사람도 아니고, 연재하는 동안 인물과 저 사이에 간격이 흐려졌어요. 유지라는 소녀가 있습니다. 이 소녀는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만나고 세상을 만났습니다. 그 소녀에게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같이 따라가고 싶었어요. 물론 유지라는 인물을 가족에서 해석하면 복잡한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겠지만, 가족을 유지하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분도 있었고,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유지라는 소녀는 유지라는 모습으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한 선생과 강은 어떻게 된 건가요.


한 선생과 강을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은데, 열어놓고 싶었어요. 어떤 역할을 했고, 범인이다 아니다를 밝히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닌데,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아마, 김상호라는 인물의 그림자를 상징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김상호 내면의 어두운 면을 가진 사람들. 우리 안에는 여러 사람이 있잖아요. 한 선생과 강이 특별히 타고난 악인이어서 그렇게 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우리 안의 그런 부분을 극대화시켜서 보여주는 인물이어서 그들이 정말 어떤 일을 했는지 전문을 밝히지 않는 게 좋다고 판단했어요.


이 책엔 소통의 문제도 있었지만, 사회적 사건도 있잖아요. 장기매매나 방화 같은 것도 있고, 혜성이 아버지를 신고하는 일도 있었고...


혜성의 방화에 독자들의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웃음) 방화 장면은, 혜성에게 비밀이 있는데, 그게 뭘까 저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물론 주차돼 있는 차에 불을 지르는 것은 나쁜 행위고 그래선 안 되죠. 그런데 혜성이는 자신의 고민과 갈등을 안으로만 삭히고 아무에게도 드러내지 못하는 인물이잖아요. 울분이랄까. 어디서 나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가족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고, 그 안에 쌓인 여러 감정들도 있을 거예요. 최소한 다정하고 좋은 사람인데, 그걸 유지하려는 자신이 버거웠을 거예요.


(방화는) 그런 아이가 최소한의 일탈을 하는 거예요. 그럴 수밖에 없는 짠한 마음, 슬픈 마음을 한번 생각해봤어요. 한편으로 이 책을 혜성의 성장서사로 생각하기도 하는데, 혜성이 변화하는 지점으로 방화를 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연재하면서 혜성과 밍을 좋아했고, 문영광도 좋아해보려고 했어요. 삼십대 중반의 멋진 캐릭터로 처음엔 넣었는데, 점점 하는 행동이 그렇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 마음을 접었어요. (웃음)


글이 안 써지거나 생활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땐 어떻게 극복하세요?


장편 2개를 썼는데, 두 편 모두 일일연재였어요. 글이 안 써질 때 도망가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어요. 도망가 봤자, 1~2시간이고. (웃음) 습작할 때, 글이 안 써지면 제일 권하는 것이 일단 그 글에서 떠나는 거예요. 글에 골몰해 있으면 일종의 매몰된 상황인데, 가장 중요한 건 객관적인 거리에요. 화자와 작가 사이에 객관적 거리가 있어야 하고, 컨트롤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힘든 거거든요. 며칠이라도 그것으로부터 떠나서 다른 것을 본다든지, 전혀 상관없는 만화를 본다든지, 그런 방법이 제 경우에는 도움이 됐어요. 스트레스 쌓일 때는 자는 편이고요. (웃음)


초등학교 6학년 딸이 작가가 꿈인데, 아이에게 격려의 말씀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중요한 나이인 것 같아요. 세상이 어떤지 눈을 뜨기 시작한 나이인데, 왜 그런 어려운 꿈을. (웃음) 음, 아직은 꿈이 뭐라고 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한 가지 꿈을 위해 매진하는 사람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 나이면,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고요. 중고등학교에 올라가고 더 많은 세계를 만나면 그 가능성이 열릴 거예요. 작가가 되겠다고 소설이나 문학작품만 읽거나 습작하는 건 정말 안 돼요. 작가가 되겠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책을 더 많이 읽고 다른 세상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장 안 좋은 경우가 이십대 초반에 천재라는 소릴 들으며 혜성처럼 등장한 사람이에요. 어떤 노력을 해도 더 이상은 안 되기 때문에요. 아무리 완숙한 작품을 써도 혜성으로만 기억되거든요. 또 천재는 스스로 천재라는 걸 알아서 열정을 소모하는 경우 많아요. 전 조금 둔하지만 대기만성의 작가를 좋아하는 편이에요. 두세 번째 작품이 더 나은 걸 좋아하고요. 작가가 되고 나서도 세상 공부를 많이 하고 경험을 많이 쌓고 여행도 많이 다녔으면 좋겠어요. 잡스러운 세상사나 세태를 많이 아는 사람이 좋은 소설가에요. 풍부하게 느끼고 감각하고 그랬으면 좋겠네요.


쓴 작품의 인물 중에 한 번 더 등장시켰으면 싶은 캐릭터가 있나요.

 

공교롭게 조금 전에 대담을 했는데 비슷한 질문을 받았어요. 『낭만적 사랑과 사회』라는 등단작에 유리라는 인물이 있어요. 2001년에 썼고, 그때 제가 소설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이 드러나는데, 가수도 첫 앨범을 다시 보면 복잡한 생각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열정을 생각하면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있고, 미숙한 점이 보여서 부끄럽기도 하고. 나한테도 첫 작품집이 그래요. 방법적인 부분에서 능숙하고 노련하게 처리할 수 있겠다 싶고, 그럼에도 문학에 대한 열정이나 솟구쳐 오르는 에너지들이 날 것으로 들어가 있는 책이에요. 지금 생각으로는 유리라는 인물이, 그때 이십대 초반이었으니까, 지금 서른 살이 됐을 텐데 많이 궁금해요. 결혼은 안 했을 것 같고, 어느 동네 사는지도 궁금하고, 많이 자랐을 것 같아요. 저도 유리라는 인물의 후일담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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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가 어릴 때부터 꿈이었는지, 소설을 쓴 계기는, 좋아하는 작가는요? 아울러 소설을 왜 쓰세요?


꿈은 아니었어요. 전 어렸을 때 한 번도 꿈이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는 아이였어요. (꿈을) 적어내라면 ‘선생님’ 같은 걸 써내기도 했는데, 절대 선생님이 되고 싶진 않았어요. 조직 생활을 못 견뎌하는 사람이고, 안으로 곪은 사람이라. 소설가는 조직에 속할 필요가 없는 몇 안 되는 직업 중의 하나라 소설가가 됐는지도 몰라요. (웃음)


첫 소설을 스물아홉 때 썼어요. 그런데 그 전에 산문에 콤플렉스가 있었어요. 스스로 완결하는 문장을 못 쓰는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오랫동안. 중고등학교 때 글을 잘 쓴다는 얘기를 들긴 했는데, 그건 시였어요. 시는 찰나를 포착하는 것이 더 중요한 작업이잖아요. 그래서 처음과 끝이 있는 서사는 못 쓰는 사람이고, 완결된 문장으로 만들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죠.


대학 때, 소설 창작 수업에서 콩트 하나씩을 써오라고 해서, 썼어요. 교수님이 문제작 다섯 편을 읽어줬는데, 내 것도 있었어요. 남편이랑 사는 어떤 여자가 우울해서 매일 몸이 아픈 이야기인데, <고통>이라는 제목을 붙였어요. 교수님이 그걸 읽고 나서, ‘고통’이 아니라 ‘통증’이 어울리는 제목 같다고 그러시는 거예요. 그게 놀라운 게, 당시 저는 고통과 통증이 어떻게 다른지 구별하지 않는 세계에 살고 있었거든요. 문학의 세계에서는 고통과 통증이 엄연히 다른 거잖아요. 처음으로 그것을 구별할 수 있는, 나눠야만 하는 세계에 들어왔고 그게 굉장히 매력적이었고, 그때부터 습작을 시작했어요.


좋아하는 작가는 무척 많고 늘 바뀌어요.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긴 어려우나, 단편을 잘 쓰는 작가한테 매혹되는 것 같아요. 국내는 오정희 선생님이나 김승옥 선생님의 초기 단편 같은 거. 외국 작가에서는 레이먼드 카버나 존 치버, 요즘은 준파라이라고 미국에서 활동하는 인도 작가가 있어요. 단편의 신이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그 분의 단편을 읽으면 찬탄해 마지않아요. 최근에 나온 단편으로 「그저 좋은 사람」이라고 있는데, 참 좋아요.


음, 소설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 맞지만, 직업란에 소설가라고 쓴 경우는 없었어요. ‘가’를 붙이는 건 일가를 이룬 사람에게나 붙일 수 있잖아요. 출입국을 할 때 직업을 왜 써야하는지 모르겠어요. 대개 점을 찍거나 회사원이라고 써요. (웃음) 마음껏 돼 보지 못한 직업을 쓰는 편이죠. 직업적으로 (글을) 쓰고 있는 건 맞지만, 내 직업이 소설가 인가는 의아해요. 언젠가는 소설가라고 쓸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고 있어요.


왜 소설을 쓸까, 늘 자문하는데, 잘 모르겠어요. 이 세상 제가 모르는 곳에 낙하산 줄 같은 그런 얇은 줄로 가느다랗게 연결돼 있다는 느낌 같은 것 있잖아요. 언젠가 썼던 문장을 읽은 분들이 낯선 곳에서 그 느낌을 받는다면 그걸로 우리가 통하지 않았을까. 그런 느낌을 맛보는 순간이 있어요. 그래서 쓰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한편으로 소설 쓰는 게 굉장히 힘든 작업이에요. 주로 몸으로 쓰는 게 80% 이상이라고 생각해요. 장편 하나 쓰면 팍팍 늙고. (웃음) 정신과 육체노동을 같이 하지만, 굳이 꼽으라면 육체노동을 하는 비중이 높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하기 싫다가도 저도 모르게 그 소설에 빠져 있게 되는 희귀한 순간도 와요. 그때 쾌감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잘 안 오지만, 그 분이 오는 순간이 있어요. (웃음) 그 느낌이 짧지만 강렬해서 중독성이 있지 않나 싶어요. 


P.S. 

아마 내게도, 유지 때문이었던 것 같아. 이 책에 빠져 들었던 건. 무엇보다 실종된 열한 살 유지가 찾고 싶었고, 유지를 잃은 이들의 고통이 자꾸 밟혔어. 내가 그만한 고통을 겪은 건 아니지만, 그들의 고통에 자꾸만 눈과 마음이 가고야 마는. 일상으로부터 철거되고야 말았던 그네들의 마음 같은 것. 그러니까, 이런 것이었을 수도. “이 세상은 원래 비현실적인 일이 평화로운 일상보다 훨씬 잦은 빈도로 일어나는 곳이긴 했지만.”(p.306) “타인의 참담이 제 것처럼 아프게 심장을 찌를 수 있다는 사실이 진저리치도록 낯설었다.”(p.269)


물론 마냥 낯선 것은 아니지만, 열한 살, 같은 나이의 은정이에 대한 기사가 떠오른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어. 영구 미제사건으로 될 상황에 처한 은정이. 지난 2008년 5월, 열한 살 은정이에게 닥쳤던 비극. 괴한 두 명에게 끌려갔고, 보름여 뒤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고야 말았던 열한 살 소녀 말이야. 아마, 너도 봤겠지? 미흡한 초동수사 탓에 DNA채취도 실패하는 등 어떤 단서도 찾지 못한 채, 흘러간 1년 반. 열한 살에서 멈춰버린 딸이 차디찬 겨울에 쉴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한없이 마음이 시린 그 어머니의 절규가 아프네.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서 더 가슴이 아프고 설움이 북받쳐 올라요.” 아마, 은정이 어머니도 옥영처럼 이렇게 가슴을 쳤겠지. 


“나, 밥 먹어.”

옥영이 갑자기 소리쳤다.

“밥을 먹어, 내가. 밥이 들어가, 여기로,”

그녀가 주먹으로 제 빗장뼈를 탕탕 내리쳤다.

“…”

“그뿐인 줄 알아? 나, 화장실도 가, 화장실에 가고 싶어. 내가 사람이야? 응? 사람이야?”

(p.202)


소중한 것을 느닷없이 잃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무엇. 그 날것의 불행. “불행이야말로 날것의 감정이다. 불행하다는 느낌을 완벽히 감출 수 있는 눈동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p.249) 물론, 그 심정과 마음을 반드시 이해하거나 온전하게 아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 같아. 모든 것이 그렇게 가닿을 순 없는 법이니까. 다만, 모르겠다고 내팽개치거나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렇게 낭독을 듣고 나선 길, 한 음식점 밖에 집을 둔 새하얀 털이 복슬복슬한 강아지가 울타리를 넘고 싶었는지, 날 향해 낑낑대더라. 뭔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일까. 한동안 녀석을 바라보고 있는 내게, 녀석은 ‘너는 모른다’고 말하는 것 같았어. 그래도 녀석에게 귀를 기울이고 싶은 건, 아마도 낭독회를 들은 직후였기 때문일 거야. 평소라면 그저 지나치고 말았을 일이었겠지만, 그 녀석의 표정과 소리에 마음을 기울이고 싶었어. 물론, 나는 녀석을 끝내 모르고 말았지만.


울타리 너머에는 다른 사람이 있고, 다른 세계가 있어. 너를 통해 알게 된 거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그늘과 남의 고통에 마음을 건네고, 몸을 움직였던 너. 아주 가끔은 그런 니가 보고 싶어. 널 더 알고 싶으니까. 울타리 너머의 세계에,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울타리 너머의 세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 뿐이다. 그녀는 이제 그것이 균형의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굳이 그렇게 규정해야 안심하는 자신이 참 비겁하다고도 생각한다.”(p.55) 


[예스24 기고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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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주의자', 김창완.
내가 아는 그 역시, 헤도니스트(hedonist). 즉, 심미적 쾌락주의자. 

나도 저렇게 나이를 먹고싶다, 는 생각을 이끄는 남자.
매  순간을 완성하고자 노니는 것이 보이는 남자.
우리에게 가끔 감동으로 주단을 까는 남자.
제대로 나이를 먹는다면, 김창완처럼.

단 하나.
조선일보와 인터뷰 하는 것만 빼고.


나는야, 그렇게 헤도니스트가 되고 싶다!
고종석이든, 김창완이든, 꼰대 되는 것이 최대한 늦춰지는 그런 사람들.

물론, 실천이 가장 중요하지만, 아래 나의 이 말, 진심이다.
그 사람,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을 향한, 프로포즈.
김창완의 '결혼하자'가 그댈 향할 것이니.
어때? 나에게 오랏! 푸하하.


부디, 남 배려 따윈 하지 않는 제멋대로의 여자가 나는, 조타!
배려보다는 매 지금 자신을 완성할 줄 아는,
자신을 약간 망가뜨리는 것이 될지라도,
그 여자, 어디 있니~ 보고 싶어~


"인생을 완결 짓는 순간은 지금이다."

그렇다. 황금보다 백금보다 더 좋은 '지금'.



지난 9월 김창완 아저씨를 만나고,
정말이지 좋았던 기억. 질질 쌌던 기억. ㅋㅋ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저씨 정말 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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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완, 책과 음악으로 주단을 깔다

[북콘서트] 환상스토리, 노래를 만나다



김창완. ‘산울림’으로 우리 귀를 살살 간질이며 가슴에 방망이질 치고 방방 뛰게 만들더니, 어느 순간 배우로 우리의 눈도장을 찍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이야기의 주단을 깔았다. 뭔 소리냐고? 작가다. 그것도 환상스토리를 풀어놓는다. “슬픈 목숨을 이어가는 모든 동물들과 악의 없는 몽상가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라고 작가의 말을 담은 책, 『사일런트 머신 길자』(김창완 지음 / 마음산책 펴냄).


“글쓰기만큼 재미있는 놀이도 없다./ 연필 끝에서 바람이 불고 물이 흐르고/ 볼펜 끝에서 ‘길자’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여러분을 나의 사랑하는 고양이 ‘죠죠’가 살고 있는/ 글 동산에 초대합니다.” 이런 그의 초대를 받았다면, 마땅히 발을 디뎌야 하는 법. 지난달 24일 홍대 상상마당 라이브홀에 그가 마련한 주단이 깔렸다. ‘환상스토리, 노래를 만나다’. 책과 음악이 함께 하는 북콘서트다. 『사일런트 머신 길자』의 출간기념으로 ‘김창완밴드’와 함께 하는 자리.



김창완밴드의 등장


내 마음에 주단을 깔기 위해 모인 사람들 사이로 김창완 밴드가 모습을 드러내자, 록스타의 등장을 방불케 하는 환호성이 터진다. 한 마디로, 멋지다. 5인조 김창완 밴드,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로 등장을 알린다. 지난해 EP로 발매된 ‘The Happiest’의 수록곡.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 예순둘은 예순둘을 살고/ 일곱 살은 일곱 살을 살지♪/ 내가 스무살이었을 때 일천구백칠십년 무렵/ 그 날은 그 날이었고 오늘은 오늘 일뿐야♬”



“막내가 세상을 뜨고 만들어진 노래다. 그 경험을 하기 전에 모든 것은 순간에 이뤄진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그 일을 겪고 나서 더 절실해졌다. 인생은 이 순간, 다 완성된다. 예순이 되기 위해 스물, 마흔이 되는 것도 아니고,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이 순간을 완성해야 한다는 의미다.”


뭐랄까. 뭔가 뭉클했다. 동생을, 형제를 구름의 저편으로 보낸 슬픔에도 ‘해피스트’를 얘기하고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라니. 허허. 그가 어느 인터뷰에서 행한 말들이 떠올랐다. “지금을 완성하며 살아야 한다.” “인생을 완결 짓는 순간은 지금이다.” 말하자면, 김창완은 ‘지금주의자’. 카르페 디엠. 


이어지는 노래는 김창완밴드의 첫 번째 정규앨범인 「버스」의 타이틀곡인 ‘Good Morning’. “지하철에 버려진 아침 신문을 주워 구직광고를 다 읽네/ 어디 갈 곳도 없이 정해진 일도 없이 차가운 도시를 걷네♪/ 내게도 희망은 있는 걸까 내일은 내게도 기회를 줄까 이 세상이/ 쓰디쓴 커피 한 잔 빈속에 마시면서 구인포스터를 보네♬” 아, 이 시대의 어떤 자화상.


김창완, 책을 이야기하다


- 산문집, 동화를 냈고, 이번에는 소설이다.


출판사 사장님께서 하도 꼬집고 그래서. (웃음) 어릴 때, 거짓말을 해서라도 세상을 넓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3 때 딴 짓을 하고 있으니, 소설가가 돼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 말을 접어놨다가 수필집도 냈는데, 늘 한 켠에는 소설에 대한 생각이 있었다.


동네에 고양이가 많은데, 어느 날 어이 없이 아기고양이가 죽었다. 불쌍했다. 그리고 ‘죠죠’라는 이야기를 생각했다.(「숲으로 간 죠죠」) 달래주고 싶어서 혹은 죄책감에. 사나흘을 썼다. 지독히 슬픈 풍경으로 끝난다. 그게 원통해서 걔네 아빠를 떠올렸고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났다. 고양이 아빠와 내가 그리는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뒤를 이었다.(「죠죠 그 이후」) 그 뒤 접고 있었는데, 들들 볶아서. (웃음) 죠죠가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숲은 이상향이다. 동네에서 불쌍하게 죽어간 고양이 때문에 (소설을) 쓴 셈이다.  


- 소재는 어디서 얻었나.


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다 경험에서 나온 거겠지만, 경험을 뛰어넘고픈 욕망도 있다. 학창시절 국어시간 재미없잖나. 달아나고픈 생각을 했다. 그 틈새로부터 글이 나온 것 같다.


- 「사일런트 머신, 길자」는 소리가 없다. 소리는 떼래야 뗄 수 없는 건데, 어떤 배경에서?


읽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얼핏 도시소음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이는데, 실제는 이런 판타지를 통해 글 쓰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가, 글쓰기의 자유로움이 어디까지인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길자를 통해 나는 자유로워졌다. 글쓰기가 얼마나 자유로운지가 요체다. 참, 책 표지에 그려진 줄자가 무척 마음에 든다. 줄자는 사일런트 머신이 어디까지 작동하느냐하는 가능성의 잣대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법의 잣대, 보이지 않지 우리 내면에 잠재돼 있는 보이지 않는 잣대를 뜻하기도 한다. 나는 중국집 아이가 신호위반을 하고 달아나는 장면에서 쾌감을 느꼈다.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형상화해 준 표지를 그려준 분께 고맙다. 여러분도 길자의 모습을 보며 좀더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이어, 「사일런드 머신, 길자」의 김창완스러운(!) 낭독(p.18~23)이 있었고, 김창완밴드의 1집 수록곡인 ‘아이쿠’와 ‘29-1’이 연주됐다. 신난다. 누구나 가질법한, 버스안의 그녀에 대한 기억도 난다. 29-1번 버스를 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참 산울림스러운 음악이고, 참 좋다. 


- 죠죠 얘기를 더 해보자. 「죠죠 그 이후」의 성장하는 모습이 애틋했다. 어떻게 구상했나?


아주 오래 전 30~40년 전, 루미라는 이름의 외계인을 소재로 소설을 쓴 적이 있다. 숫자로 된 SF단편이 원형이다. 소설세계를 꿈꾼 건 아주 오래 전, 중학교 때부터고.


낭독이 다시 이어졌다. 「숲으로 간 죠죠」에서 50~53페이지까지. 「M.C. 에셔(1898~1971)」에서 89~94페이지까지. “궁금하다고? 반전이 굉장하니 책을 사보라”는 김창완은 음악이 맺어준 동생, 형제들로 모인 김창완 밴드를 소개했다. 역시 1집 곡인 ‘내가 갖고 싶은 건’과 ‘너를 업던 기억’이 연주됐다. 좋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멋진 일이다. 김창완처럼 나이를 짓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다음은, 객석의 관객들과 나눈 교감.


- 고양이를 좋아하나? 키워본 적은 있나?


전혀 없다. 어렸을 때, 동네에 집집마다 개가 있었고, 우리집도 있었다. 그런데 헤어질 때, 너무 가슴이 아파서 머리가 커서는 개를 못 키웠다. 그러다가 기회가 생겼는데, 제일 망나니로 알려진 코카스파니엘을 키웠다. 문제는, 진짜 돌대가리인 거라. (웃음) 뒷산에 풀어놓고 키웠는데, 동네에서 항의가 들어오고, 할아버지를 물어서 결국 퇴출시켰다. 고양이는, 그냥 동네에 있던 고양이를 보고 좋아했는데, 갑자기 죽어서 충격받았다. 키워보진 않았다.


- 살면서 읽은 책 가운데 좋아하거나 영향을 미친 책이 있다면.


권컨대, 책에게서 영향을 안 받았으면 좋겠다. 책을 읽고 있기엔, 삶이 너무 거대하다. 그 위대한 발견을 한 아인슈타인이 고작 바닷가에서 조개 하나 주웠다고 했겠나. 기본적으로 책으로부터 은혜를 입었지만, 자기 안에 있는 어마어마한 세상을 확인했으면 좋겠다.


한글을 깨우친 것은 참 자랑스럽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학업을 포기했는데, 쓰고 읽을 줄 아는데 뭘 더 배워. (웃음) 그래도, 책을 굳이 고르라고 한다면 교과서를 충실히 해라. 내가 소설가라서가 아니라 소설이 참 좋다. 개인적으로 나는 소설을 읽지 않는다. (웃음) 일단 쓰라고 말해주고 싶다. 백 권을 읽는 것보다 한 권 쓰는 게 낫다. 아무거나 읽어라. 흥미 있는 거라면.


- 앞으로의 계획은.


「버스」가 나온지 얼마 안돼서 홍보도 해야 하고. 곧 하늘공원과 부산국제영화제(PIFF)에서 공연도 있고, 10월28일부터 11월1일까지 충무아트홀에서 열리는 콘서트도 있다. 김창완밴드 잊지 말고 찾아주시라.



마지막 곡으로 ‘결혼하자’가 흘러나왔다. 이렇게 진솔한 프로포즈라면, 누군들 홀딱 넘어가지 않으리오. 그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결혼하는 날이 온다면, 나는 이 노래를 신부에게 바칠 것이라고 다짐했다. “우리 얼른 결혼 하자 성당 갈까 절에 갈까/ 누구라도 축복하면 우리끼리 결혼하자♪/ 꽃반지를 하나 끼고 면사포는 뭐로 할까/ 아무 거면 우린 어때 넌 내 행복 난 네 기쁨♬/… 우리 얼른 결혼하자 만났을 때 해버리자/ 친구들도 있으니까 우리 그냥 결혼하자♪/ 문방구에 색종이들 슈퍼에는 먹을 것들/ 아스팔트 거리에서 딴따라라 따라라라♬”


물론 당연히, 끝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제도, 앵콜. 우리가, 열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너의 의미’가 진짜 피날레를 장식한다. “너의 그 한마디 말도 그 웃음도/ 나에겐 커다란 의미♪/ 너의 그 작은 눈빛도 쓸쓸한 뒷모습도/ 나에겐 힘겨운 약속♪/… 스쳐 불어온 넌 향긋한 바람…”


나도 그랬다. 그는 도대체 못하는 게 뭘까. 그가 다음에는 어떤 주단을 깔까. 김창완, 여전히 그가 궁금한 이유다. 매 순간을 완성하고자 하는 남자. 나는 그 남자에게서 때론 감동을 받는다. 김창완이라는 감동, 당신도 함께 놓치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김창완이 했던 어느 인터뷰에서, “행복이란 도달해야 할 지점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이 출발선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지금 나를 있게 했고 심장을 뛰게 하는 이 모든 것들에 대한 감동을 놓치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거다.”


[예스24 기고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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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들었다. 타루.
그도, 그 흔해 빠진 '홍대 여신'의 한 축으로 호명되고 있었다.
그려려니 했다. 여신. 나쁘지 않다. 나는 여신을 경배해 마지않는, 돌쇠니까!

여신의 왕림이라기에, 그는 또 어떤 여신적 포스인가, 하고 찾아갔다.
아니 왠걸. 여신은 여신인데, 야생의 여신이다. 아주 펄떡펄떡 뛴다.
와우. 이 뮤지션, 노래는 쫄깃하고, 음색은 코브라다. 살살 휘감는다.

여신을 하나의 이미지로만 각색할 필요, 없다.
지난 10월, 야생의 현장에서 나는 즐거웠다네~
타루가, 타잔이라면, 나는 치타가 되고 싶었다.
제인 따윈 필요없어!

그는 좀, 멋지다고 생각했다.
별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타루는, 예쁘진 않은데, 귀엽다.
노래는 예쁘다, 귀엽진 않다.
조화가 잘 되지 않나.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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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직됨 없이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야생타루 탐구생활’

[인디신 팬미팅] 타루와 함께하는 야간비행


(※ 모쪼록, 이 글은 T모 방송의 프로그램 <롤러코스터-남녀탐구생활>의 내레이션을 연상하고 읽어주시면 좋을 것임을 알려드려요.)


지난 19일, 서울 홍대부근의 한 클럽에서 「사랑의 찬가」가 울려 퍼졌어요. 맞아요.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 맞아요. 잠시 이 노래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 들려줄 테니 들어보아요. 피아프에게 사랑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어요. 특히, 권투선수이자 미들급 세계챔피언이었던 막셀 세르당과의 사랑은 애절하기로 유명해요. 문제는 세르당이 다른 여자와 결혼한 상태였다는 거예요.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끌림과 매혹을 저지할 순 없었어요. 두 사람은 미국에서 처음 만났어요. 그런데 세르당이 프랑스로 돌아가면서 어쩔 수없이 잠시 떨어져 있게 됐어요. 떨어져 있는 동안 주고받은 편지는 책으로 나왔을 정도였어요.

 

하지만, 그 사랑에도 비극이 닥쳐요. 1949년 미국에서 시합이 잡힌 세르당을 피아프가 재촉해요. 빨리 자신의 곁에 오라고 채근을 해요. 이게 화근이었어요. 피아프에게로 오던 도중 비행기가 추락하고 말아요. 세르당은 그렇게 피아프 곁을 떠나고야 말았던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을 그렇게 잃은 피아프가 세르당을 위해 가사를 쓰고 부른 것이 「사랑의 찬가」에요. 참고로 이 사랑을 다룬 영화가 클로드 를르슈 감독의 <에디프 피아프의 사랑>(Edith Et Marcel, 1983)이었어요. 영화에서 세르당 역을 그의 친아들이자 복서인 막셀 세르당 주니어가 맡기도 했어요. 이런 사연을 알고 노래를 들으면, 참 슬퍼요. 술이라도 퍼마시고 싶어져요.


이 노래가 왜 울려 퍼졌는지 궁금할 거예요. 앞선 11일이 에디트 피아프의 46주기여서 울려 퍼진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틀렸어요. 타루가 이 노래를 불렀어요. 아 참, ‘타루’라는 말만 듣고, 핀란드에서 온 사람으로 오해해선 안돼요. 핀란드에서 온 사람은 ‘따루’에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에요. 두 사람이 서로 아는 사이인지는 모르겠지만, 타루는 ‘휘바’를 외치진 않아요. 확실하진 않지만, 자이리톨을 즐기는 것도 아닐 거예요.


야생타루당, 세렝게티 초원에서 놀아요



타루는 맞아요. 가수에요. 예스24의 인디씬 팬미팅 4탄으로 지난 19일 ‘타루와 함께하는 야간비행’이 열렸어요. 타루가 팬미팅 자리에서 자진자수 앵콜곡으로 이 노랠 불렀어요. 아는 분이 결혼식 축가로 부탁했대요. 그 기쁜 날, 왜 이 노래를 축가로 부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타루는 노래가 참 좋아서 선곡해봤대요.


그런데 혹시 들어나 봤어요? 야생타루당. 28일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당수(총재)는 바로 타루에요. 야생의 기운이 넘쳐나기 때문에 그렇게 지었나 봐요. 이들의 결집력은 상상을 초월하진 않지만 타루를 중심으로 당원들은 야생적으로 놀아요. 당원들은 그야말로 열혈이에요.


그 당은 대체 무얼하냐고 묻지 말아요. 당에 가입해서 열혈야생당원이 돼 보면 알아요. 아프리카의 세렝게티 초원에 따로 가지 않아도 돼요. 당원들이 모여 노니는 곳이 바로 세렝게티 초원이 돼요. 이날의 팬미팅이 바로 세렝게피였어요. 자, 함께 초원을 살짝 엿보도록 해 보아요.  


타루에게 묻고, 답해요


타루가 여행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상영이 돼요. 이어 당원들의 사연도 소개가 돼요. 우주여행부터 신혼여행(니스), 독재여행(독일) 등이 거론이 돼요. 열혈야생당원답게, 야생인답게 재미난 사연들이 수북수북 쌓여 있어요.


지난 콘서트 이후에 사랑에 빠졌는데, 한동안 잊고 있어서 미안하다는 사연도 들어있어요. 사랑에 빠진 거 맞는지 모르겠어요. 이민 가는 직장동료를 위해 야간비행에 동참한다는 애절한 사연도 있어요. 10년 지기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돈독한 우정을 위해 이 자리에 오고 싶었다는 얘기도 있어요. 타루는 우정의 상징인가 봐요. 그래도 타루는 야생인답게 상투적인 내용은 그냥 물어뜯어요. 당수의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대목이에요. 물론 지금은 민주주의가 실종된 시대라서 그렇게 표현하는 거예요.



타루가 말해요. “여성 팬을 우대하는데, 별로 없어서 속상해요.” 그래도 뻥을 곁들여서 한 100명은 모인 것 같아요. 타루의 야생이 하늘에 포효를 해요. “기뻐요. 그런데 팬 미팅은 팬이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 인상착의가 궁금했다는 한 사연에는 지금 보라고 말을 해줘요. 다들 팡 터져요.


타루가 글을 올리는 시간이 늘 새벽녘이에요. 그래서 물어보아요. 대체 몇 시에 자는 거예요. 새벽 5~6시에 잔대요. 이 늦은 시각까지, 아니 이른 시각까지 곡도 만들고 인터넷쇼핑도 한 대요. 덧붙여, 요즘은 쇼핑을 끊고 게임을 한 대요. 그러다 아차 해요. 회사에서도 모르는데, 자기 입으로 그만 실토해서 타루가 진땀을 흘려요. 세렝게티 초원이 타루의 땀으로 흥건해져요.


좋아하는 아이돌을 묻는 질문에는 단박에 튀어나와요. ‘2NE1’이래요. 남자 아이돌은 딱히 없나 보아요. “2NE1에 반했어요. 노래를 잘 해서. 앞으로 크게 될 거에요.” 혹시, 타루가 2NE1의 다섯 번째 멤버가 되는 건 아닌지 몰라요. 아, 농담이에요. 세렝게티 초원에서 참혹하게 물려죽어 변사체가 될 순 없어요.


몇 가지 퀴즈를 내서 타루가 선물도 주어요. 타루의 생일은? 7월10일이에요. 타루 첫 앨범의 온라인 발매일은? 8월28일이에요. 10월19일 현재 클럽의 당원수는? 아무도 몰라요. 그래서 패스를 해버려요. 좋아하는 시인은? 『와락』을 지은 정끝별 시인이래요. 「내 처음 아이」란 시를 좋아한대요.


야생타루는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대요


인생의 동반자, 오박사 얘기도 꺼내요. 목욕탕 가서 함께 때를 밀고 밀리는 사이래요. 그리고선 오박사에게 “누가 제일 좋아?”라고 물어요. “언니가 제일 좋아”라고 공식적으로 확인까지 받아요. 역시나 야생의 날것 그대로에요.


아, 인터뷰를 거절한 언론사가 있는데, 조선일보래요.  뭐, 안티조선운동하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이 신문사만은 안되겠다 싶어서 거절했어요. 팬 중에 어린 친구들도 많은데, 그 신문을 통해 (제 인터뷰기사를) 읽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장기적으로는 그게 낫다고 봤어요. 미천한 저에게 관심을 갖지 말아달라는 거죠. (웃음)” 이만하면 박수칠 만해요. 박수! 개념 있는 뮤지션이라는 생각이 막막 들어요.


그러다 원맨밴드 하기 지쳤나 봐요. “하고 싶은 거 없으세요? 저를 위해 노래 준비하신 분?” 아, 안타깝게도 없어요. 당원들의 야생성이 아직 제대로 발현되지 못하고 있어요. “점점 타루 팬미팅은 안드로메다로 조용히 흘러가고 있네요.” 누군가 타루당수 앞에서 하품을 해요. 따끔한 일침이 날아와요. “왜 하품해요! 입술을 콱 깨물고 참으셔야죠!” 버럭. 역시나 야생타루다워요.


타루는 편한 사람이고 싶어요. 방송 나가면 ‘여신’이라고 부풀리기 방송을 해대는데, 그게 싫다고 말해요. 예전에 동갑내기의 공연을 보면서 부리부리한 눈에서 뿜어 나오는 카리스마에 혹한 적도 있지만, 지내고 보니 그런 무서운 사람이 되고 싶진 않대요. “친구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당장 내일 만나자는 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스케줄이 있어서요. (웃음) 언제든 차 한 잔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시간이 되면 홍대동선을 그려서 올려놓고 싶어요.” 참, 타루는 홍대 메인거리에는 잘 없다고 말해요. 합정동이나 상수동 근처에서 야생성을 발현한다는 힌트를 줘요.



다시 질문이 쏟아져요. 몸매 관리는? 먹어도 살이 안 찐다고 자랑쟁이 같은 말을 해요. 그러나 이것도 몸에 필터가 고장난 탓이라고, 지병이 있다고 실토해요. 아무리 먹어도 감흥이 없다고 해요. “극심한 다이어트는 하지 마세요.” 당부도 잊지 않아요. 동안이라고 생각하나요? “동안이라고 생각해요. 술․담배 하지 마세요.” (웃음) 혼자 산다는데 외롭지 않아요? “외로워 죽겠어요. 그런데 어쩔 수 없어요. 어느 책에 보니 고독한 시간을 잘 견뎌야 오롯이 삶을 꾸려나갈 수 있대요.” 맞아요. 혼자서도 잘 놀고, 혼자 있는 시간을 다스릴 줄 알아야 다른 사람과도 잘 놀 수 있고, 삶이 풍성해져요.


스트레스 폭발할 때는? “소리를 질러요. ‘꺼져’라고 소리치기도 하고요. 혼자 있을 때 나쁜 생각을 길게 하면 안 좋아요. 빨리 다른 생각을 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대요.” 연애스타일은? “잔소리도 하고 엄마처럼 잘 챙겨줘요. 그런데 차여요. 남자는 이상한 동물이에요. (웃음) 저는 한 번 뒤돌아서면 뒤도 안 돌아봐요. 인간관계가 그래요. 그래도 잘해줄 땐 정말 잘해줘요.”


여행하고 싶은 곳은, 요즘 사막이래요. 신비로운 것 같다는 이유를 들어요. 그래서 가고 싶은 곳이 이집트라고 말해요. “목이 마른데 대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사막에 밤도 있고 별이 많다고 들었어요. 사막에서 하늘을 보며 잠이 들고 싶어요.” 아, 낙타를 타고 사막을 가로지르는 타루의 모습, 꽤나 멋질 것 같아요. 낭창낭창한 목소리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서 별이 폭포처럼 흘러내려요. 열혈야생당원들이 사막에서 팬미팅을 추진하는 날이 와야 할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거리를 물어요. “추억이나 아픔, 상처 모두 역치가 있는 것 같아요. 저한테는 모두 소중해요. 무대에서 공연하고 뒷풀이에서 맛있는 것 먹는 것도 좋아요. 이걸 해 보고 싶어요. 5천 당원들이 광화문 사거리에서 매트릭스 분장을 하고 모이는 거예요.” 언젠가 광화문에서 매트릭스 분장을 한 열혈야생당원을 볼 지도 몰라요. 그땐 ‘깜놀’하지 말고, 야생타루의 사주라고 여기고 보아요.


보물1호는? 오박사, 목소리 얘기가 당원들 사이에서 터져 나와요. 그래도 꿋꿋하게 말해요. “딱 한 가지만 세상에서 중요하다고 하면 억울하죠. 보물들은 많아요. 나중에 자녀가 생긴다면 보물1호라고 붙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야생타루의 아이가 문득 궁금해져요. ‘야생타루보호구역’이 만들어질지 두고 보아요.


학창시절도 역시나 물어보아요. 공부는 많이 하지 않았고 과목을 편식했다고 말해요. 특이사항으로 선도부장을 했나 봐요. “별명이 악바리였어요. 엄격하게 관리했어요. 제가 생각했을 때, 융통성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야생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어요. 경직된 건 싫다는 당수의 바람이 전달이 되어요. 당원들에게 미리 주지했던 바, 주섬주섬 가방에서 야생의 먹이들이 나오고 있어요. 육포, 김치전, 치킨, 막걸리… 이런 자유분방한 공연, 놀라워할 것 없어요. 노래를 부르면서 관객에게 육포를 받아먹어요.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있어요. 참, 격의 없는 야생의 현장다워요. 타루의 노래와 흥겨움이 함께 하는 시간이에요. 노래는 「Don't Let Me Down」부터 시작을 해요. 이어 「내일이 오면」「Sad Melody」을 거쳐, 이날 모인 당원들을 위해 새롭게 편곡한 「연애의 방식」과 첫 사랑과 연관된 노래라는 루시드 폴의 「풍경은 언제나」까지, 타루의 시간이 관통하고 있어요. 



이날의 야생타루 탐구생활은, 첫머리에 얘기했던, 「사랑의 찬가」와 함께 막을 내리게 되어요. 타루의 낭창낭창한 목소리로 46주기를 갓 지난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를 듣는 경험은 왠지 신비로워요. ‘작은 참새’ 혹은 ‘아기 참새’라고 불렸던 피아프의 이미지가 타루에게도 약간은 겹쳐 보여요.


갑자기 어디에서 이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인지 궁금한 이 계절에, 타루의 탐구생활을 일단 끝내고 흥얼거려 보아요. “어디론가로 차를 타고 떠나고만 싶어/ 끝없이 펼쳐진 하이웨이로/ 끝없는 모험과 이야기들/ 자유롭게 휘날리는 머릿결 우후/ 내일이 오면 다시 내일이 오면/ 다시 내일이 오면 나는 떠날 거야 자유롭게♪ (「내일이 오면」 중에서)” 그리고선,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에서 빛들이 폭포처럼 흘러내리던 어떤 풍경을 떠올려요. 머리카락을 쓸어 올릴 때마다 어둠과 빛이 교차했던 어떤 순간의 추억이에요. 똑똑, 물어보아요. 잘 지내나요? 당신...

 

P.S. 참, 야생타루를 만나고 싶다면, 이곳을 가면 돼요. 당신도 당원이 될 수 있어요. 총재의 허락을 득하기만 한다면요. http://rockruler.tossi.com


[예스24 기고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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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만나기 전, 그들은 듣보잡이었다. 밴드 이름도, 노래 제목도 온통 듣보잡.
막상 음악이 흘러나오고, 귀가 익숙해지자 듣보잡은 슬슬 볼매가 됐다.
메이트(mate) 얘기다.

'인디돌'이라고 표현한 건,
인디신 팬미팅이기도 하고,
아이돌은 아니지만, 귀여운 맛이 있어서 붙여봤다.

노래는 다소 간지러운 감이 있어도, 내 귀에 캔디!
그리하야, 이건 볼매가 된 기록이라고 봐도 되겠다.

내가 꼽은 메이트의 베스트는, '그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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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미남 인디돌, 메이트와 함께 한 가을밤의 스케치북

[인디신 팬미팅] <Be Mate>의 메이트 


메이트(mate).

1 (노동자 등의) 동료, 친구;《영·구어》 여보게, 형씨 《노동자·뱃사람끼리의 친밀한 호칭》 2 배우자, 배필 《남편 또는 아내》;짝[한 쌍]의 한 쪽.


소울메이트, 룸메이트, 하우스메이트, 데이트메이트… 어쩌면 우리네 생은 그렇게 메이트를 찾는 여정이 아닐까. 홀로이지만, 때론 홀로이고 싶지 않은 생. 그러니까, 지금은 가을, 메이트가 필요한 시기. 당신은 어떤 메이트가 있나요. 그리고 당신은 어떤 메이트인가요.


자, 여기, 음악을 들고 찾아온 뮤직메이트(Music Mate)가 있다. 스스로 ‘메이트’라고 자처하는, 임헌일(보컬, 기타), 정준일(보컬, 키보드), 이현재(드럼)로 구성된, 3인조 밴드. 지난 4월 1집앨범 <Be Mate>를 내고,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꽃미남 인디돌.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유희열이 그간의 출연자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세 팀을 선정해 그들과 함께 공연을 했는데, 그 중의 한 팀. 멤버 셋 모두 술과 담배를 하지 않아 카페에서 와플 먹으며 시간을 보내는, 스키니가 잘 어울리는 유기농밴드.


그들이 지난달 28일 홍대 클럽 ‘타’에서 팬들과 가을의 만남을 가졌다. 이것은 등장만으로도 숱한 여성들의 아우성을 자아낸 꽃미남 인디돌이 지근거리에서 팬들과 속삭였던, 메이트와 팬들이 공유한 노래와 이야기, 이름 하여, ‘메이트의 스케치북’. 이 가을, 당신과 당신의 메이트가 함께 듣고 마음을 나눌 노래를 찾는다면, 어쩌면 그것은 메이트.


메이트의 스케치북이 열리다


“…난 너만 있으면 난 너만 있으면/ It's alright/ I love you I need you I want you/ 우리 처음 만났던 그날들처럼/ I love you I need you I want you/… 지친 하루의 끝에/ 네가 내 곁에 없다는 게/ 내겐 얼마나 힘이든지/ 넌 몰랐겠지만 알 수 없겠지만/ It's alright”


시작은 그렇게, 「It's alright」였다. 사랑에게, 끊임없이 건넸던 그 말, I love you, I need you, I want you. 그래, 너만 있으면 모든 것이 괜찮았던, 네가 곁에 없어서 힘들었지만, 괜찮아야했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그렇게 ‘It's alright’를 읊조리며 다가온 메이트. “팬들이랑 이렇게 가까이서 뵙는 건 처음이에요. )”실물이 훨씬 나아요“라는 소리가 나오자) 사실 걱정이 많이 됐어요. 몇 분이니 오실까 걱정도 되고. 그래도 경쟁률이 엄청났다고 들었어요. 무척 기분도 좋고요, 얘기도 많이 하고 싶어요. (큐시트를 들고선) 메이트의 스케치북을 그럼 시작해볼게요.”



이 자리가 열리기 전, 예스24에서는 ‘Best of mate’라는 이벤트가 열렸다. 메이트 1집 가운데 최고의 노래라고 생각하는 1곡을 고르는. 「It's alright」는 4%의 득표율로 10위였다. 1위는 20%의 득표율을 자랑한 「그리워」, 2위는 17%의 「너에게... 기대」.


「그리워」를 쓴 임헌일은 후일담을 들려준다. “가수 성시경과 일본 투어를 할 때였어요. 밤마다 음주가무로 힘든 밤을 보내고 있었는데. (웃음) 어느 날 일렉기타를 치다가, 곡이 훅~ 나오는 거예요. 써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고, 한국에 돌아와서 가사도 슥~ 나왔어요. 당시 어려운 일도 있었고.”


정준일의 화답. “이 노래 처음 들었을 때, 당시 메이트를 할 멤버를 찾고 있을 땐데, 헌일이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선 팀을 하면 앞으로의 부귀영화가 상상됐어요. (웃음) 농담이고요, 재미있게 음악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에게... 기대」는 정준일의 곡이다. “앨범 마지막에 들어간 노래에요. 친구가 연인과 헤어진 밤에 불러내서 신세한탄을 하는 거예요. 그때 친구의 얘기를 듣자니, 과거 나도 그랬었는데 라고 일깨워줘서 쓰게 됐어요. 처음 만나면 영원을 이야기하지만, 헤어지고 나면 하루가, 그 순간이, 반나절이 그렇게 힘들잖아요. 「너에게... 기대」「안녕」「난 너를 사랑해」는 쓰는데 하루도 안 걸린 곡들이에요.”


그렇지 않나. 끝내놓고서도 갑작스레 덤비는 기억 때문에, 힘든 긴 하루에 생각나는 존재 때문에, 때론 힘들었던 순간, 당신도 있지 않은가. “우리 왜 이렇게 힘들기만 했는지/ 왜 그렇게 널 놓지 못했는지/ 참 바보 같아 참 바보 같아 너를 아직도 비워내지 못해/… 가끔은 길고 긴 내 하루에 네가 있어줬으면 곁에 있어준다면/ 아직도 네가 생각날 때면/ 난 이렇게 아픈데 너도 나처럼 힘들까 봐”


어쨌거나, ‘Best of mate’에 대한 이유도 역시나 가지가지. “그리워란 가사가 잊히지 않는다” “남친과 헤어지고 메이트가 떠올랐다” (「그리워」) “마음에 와 닿는다” (「너에게... 기대」) “경쾌하다” “지친 나에게 힘을 준다”(「하늘을 날아」) 등등.



「난 너를 사랑해」에 대한 정준일의 이야기. “처음에는 다른 것 때문에 끌리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른 것 때문에 싸우잖아요.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이야기를, 그럼에도 떠날 수 없는 복잡미묘한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했어요. 이 노래가 제일 외면당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여러분이 좋아해줘서 참 고마워요.”


그렇지. 다르지만, 사랑했던 우리. 달라서 좋다는 말이, 너무 달라서 헤어진다는 말로 전이되기까지의 과정들. 그럼에도 사랑했던 추억을 공유한 우리. 나를 안아준다면, 여전히 사랑하는 우리. “우린 너무 달라 잘 알고 있잖아/ 서로의 진심을 안을 수 없잖아/  이해하지 않아 기억하지 않아/ 늘 말뿐인 말들 - 기대하지 않아/… / 난 너를 사랑해 난 너를 사랑해/ 난 너를 사랑해 난 너를 사랑해/ 난 너를 사랑해 난 너를 사랑해/ 따스한 그대의 손길로 / 나를 안아줘 나를 잡아줘”


메이트에게 묻고 답하다


청중들과 호흡하는 시간. 메이트는 날아온 질문을 피하지 않고 척척 답한다.



- 메이트에게 음악이란.

(임헌일, 이하 헌) 할 수 있는 유일한 것? 음악을 할 때, 그나마 사람 같아요.

 

(이현재, 이하 재) 음악이 전부인 게 아니라 같이 가는 친구 같아요. 비중이 적은 게 아니라, 음악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음악 말고 나머지 인생도 있는 거고, 음악은 일부분이랄까요.


(정준일, 이하 준) 아직은 음악이 재미있고 전부에요. 나이를 더 먹으면 바뀔 수도 있지만, 27년 동안 듣고 만들고 연주하는 게 가장 재밌고 전부라고 말할 수 있어요. 관객 없이 연주해도 힘들지 않아요. 여자친구를 사귈 때도 음악이 전부라고 얘기했어요. 이해해라. 어쩔 수 없다.


- 만약 음악을 하지 않았다면.


(재) 어렸을 때는 화가가 꿈이라고 말하고, 동물을 좋아해서 수의사라고 말하고 다녔어요. 그리곤 음악이 좋아서 방과 후엔 드럼 치러 가고. (웃음) 학교 다닐 때도 음악 말고 아무 것도 안 했어요. 여자친구를 안 사귀었더니, 누가 진지하게 묻더라고요. 너 게이 아니냐고. (웃음)


(준) 음악인 아닌 거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아 어릴 때, 컬링(주. 빙상에서 평면으로 된 돌을 브룸(비 모양을 한 것)으로 미끄러지게 하여 표적에 넣어 득점을 겨루는 경기) 전국체전에 나가기도 했어요. 이것저것 경험해 봤는데, 태어날 때부터 음악을 해야지 한 것 같아요. 단 한번도, 다른 것을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헌) 어렸을 때는 음악이 싫었어요. 제일 싫어하는 과목에 음악을 적고. 만화가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가 그린 만화가 재미없다고 해서 트렌드만 따라갔을 뿐이구나 싶어서 그만 뒀고. 주변 형들이 기타 치는 게 멋있어서 겉멋에 시작했는데, 알면 알수록 새롭고 재밌어서...


- 멤버 중, 이것 하나만은 내가 제일 잘한다는 것이나 다른 멤버의 습관이나 비밀 하나씩.


(준) 기타는 헌일이가 제일 잘 쳐요. 다른 건 뭐 없어. (웃음) 아, 머리 세팅을 잘 한다.


(재) 준일이형은 사람들 없을 때, 코를 잘 파요. 아무도 모르게. (웃음)


(헌) 준일이는요, 옷 잘 입고, 스타일에 관심 많고, 옷빨도 잘 받아요. 그런데 잘 보면 근육이 하나도 없어요. 뒷태를 보면 여성 같아요. (웃음)


이어, ‘Best of mate’에서 1, 2위를 차지한 「그리워」와 「너에게... 기대」가, 오리지널과 다른, 이곳에서만 들을 수 있는 버전으로 특별연주됐다. 메이트가 오늘 스케치북을 함께 꾸며준 관객들에게 선사한 작은 선물. “특별한 자리”이기 때문에 “색다르게 편곡”하여 들려줬다는 메이트의 멘트. 그리고 메이트가 불러줬으면 좋겠다는 관객들의 신청곡에 대한 일부 화답도 따랐다. 정엽의 「Nothing better」과 이소라의 「트랙3」 등이 불려지면서, 깊어가는 가을밤.



메이트의 계획은 어떻게 될까.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있을텐데.


(헌)“계획이 많아요. 앨범도 준비하고 있어요. 녹음을 시작했고, 정규는 아니고 미니앨범을 생각하고 있어요. 언제일지는 모르나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랜트 민트 페스티벌에도 나가야하고. 연말에는 (단독)공연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열심히, 진지하게, 가볍지 않게, 실망하는 모습이 있어도 너그러이 봐주셨으면 해요.”


(재)“계획이라면, 연말 공연 때는 드럼을 앞으로 빼도록 하겠습니다. (와~) 모두 다 볼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앞 두줄만 보이네요. 다 예뻐보이고. (웃음) 팬들 만나는 게 아직 어색하고 쑥스럽긴 해요. 적응도 안 되고.”


(준)“무척 좋았어요. 데뷔 5달, 많은 일이 있었고 경험하고, 많은 사랑도 받고. 공연을 알차게 준비하고 싶어요. 단독공연을 안 하냐 묻는 분도 계시는데, 정말 멋진 공연을 하려고 Keep하고 있어요. 한번을 해도 여러분 가슴 깊이 박히고 깊은 울림이 있는 공연을 준비할게요. 감사하단 말 밖엔 없고, 어느 자리에 있든 최선을 다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메이트와 함께 호흡했던 가을밤은 그렇게 익어갔다. 사진과 사인 공세에 시달리는 꽃미남 인디돌이 누군가에겐 가을의 선물이 되리라. 당신에게 어떤 메이트든 있다면 좋겠지만, 행여 혼자여도 좋을 시간이라도, 뮤직메이트가 당신의 시간을 달래고 안아줄 수 있다면, 어쩌면 그것은 메이트. 그리고 문득 내 그리운 메이트에게 들려주고픈 노래, 난 너를 사랑해.


[예스24 기고문]


최고의 노래에 투표하고, 메이트를 만나세요!
Best of Mate

투표기간 : 2009.09.10~09.24
순위 곡명 투표수
1위 그리워 109
2위 너에게... 기대 96
3위 하늘을 날아 81
4위 난 너를 사랑해 59
5위 우울한 너에게 53
6위 고백 40
7위 안녕 31
8위 Come Back To Me 28
9위 26
10위 It's Alright 23
총 투표수 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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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90년대의 추억.

그의 노래를 듣자면, 생각나는 어떤 추억도 있고.


지난 9월, 노래가 아닌 책 때문에 그를 만났다.

강남의 어느 한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그도 약간 늦었지만, 내가 약속 장소를 착각하는 바람에, 나는 더 늦어버렸다. 헐~

그런 일은 처음이었는디. 어쨌든 이너뷰는 무사히 마쳤다. 


직접 만나 짧게나마 이야길 나눠보니, 뭐랄까.

경제적으로나 교양면에서도 좋은 집안에서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면서,

잘 자란 강남 중산층의 느낌 있잖나.


만나기 전, 한 친구가 옛날 스캔들에 대해 한 번 물어봐 달랬는데,

에이~ 별 궁금하지도 않고, 그런 걸 어떻게 물어보겠어. 소심해서. ㅋㅋ 


그가 낸 책 , 『뮤직비타민』은,

아이를 키우는,

특히 아이에게 음악과 자연스레 만나게 하고픈, 부모에겐 나쁘지 않을 듯.

뭐, 난 애가 없으니까... 아, 물론 아내도 없고~

당장 와닿진 않았으나, 아이가 있다면 음악일기, 음악행복, 함께 연주하는 악기 등등 책에서 언급한 음악적 교감을 꼭 나누고 싶다는, 나눠야겠다는 생각은 들더라.   



“음악을 통해 아이들과 100% 교감이 가능하다”

[만나고 싶었어요] 『뮤직비타민』 지은 가수 김현철


따지고 보면, 그 노래 때문이었다. 내 살던 고향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춘천을 그리고, 그곳에 갈라치면 꼭 기차를 타야 한다고 고집했다. 다른 교통수단은 왠지 마뜩찮았다. 낭만도 흥겨움도 훨씬 덜할 것 같은 기분.


어떤 연애에서 그녀와 나의 첫 여행지가 춘천으로 정해진 것도 순전히 그 노래 때문이었다. 어디선가 <춘천 가는 기차>를 듣고, 우리는 느닷없이 춘천을 가기로 했고, 기차를 탔다. 물론 지금 그녀는 내 곁에 없고, 춘천은 내게도 ‘오월의 내 사랑이 숨 쉬는 곳’이다. 나를 데리고 갔던 춘천 가는 기차는, 물론 지금도 끊임없이 누군가를 데리고 간다. 그때 그 기차는 기억하고 있을까. 그녀와 나의 이야기와 사랑, 우리의 체취를.

 

그저 사소한,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이 말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음악(노래)의 힘은 세다. 가보지도 못한 어떤 곳에 끌림을 느끼거나,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와 교감하기도 하고, 그건 음악이라는 매개체 때문에 가능해지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3~4분 만에 새로운 세계를 맛보는 것이 가능한 것, 그것도 음악이다. 지극히 사적인 경험이면서, 다른 이와 마음을 나눌 수 있다. 음악은, 그렇게 센 친구다.   


그런 면에서, 아이를 둔 부모가 아이와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가 음악이다. 음악을 통해 함께 행복을 느낄 수도 있다. 아이의 감(수)성도 자연스럽게 키워줄 수 있다. “나는 오늘도 행복의 의미를 알려주기 위해 아이에게 음악을 들려준다”는 사람이 있다. <춘천 가는 기차>의 가수 김현철이다. 벌써 데뷔 20년을 맞이한 그가, 이번에는 앨범이 아닌 책을 내놨다. 『뮤직비타민』(김현철 지음/와이쥬 크리에이티브 펴냄). ‘감성을 풍부하게 만드는 김현철만의 방식’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궁금했다. 어느덧 두 아이이의 아빠가 된, 데뷔 20년의 중견(!)가수가 던지는, ‘아이와 음악 친하게 만들기’ 프로젝트. 어떻게 하면 아이의 감성을 풍부하게 만들고, 행복하게 만들어줄까 고민하는 당신이라면,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좋겠다. 지난 8일 그를 만났다. 가수 김현철이 아닌, 책의 저자로 마주친 그. 여전하면서도 달라졌다. 고등학교 시절, 처음 마주한 그(의 노래)와 더불어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왠지 좋았다. 물론, 아빠가 된 뒤, 아이들을 위한 노래와 책에 더 신경을 쓰는 듯한 그에게 약간의 아쉬움을 전하고, 언제쯤 새 노래를 들어볼 수 있느냐는 앙탈(?)도 덧붙였다.   



-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책을 낸 것에 대해 ‘무리한 도전’이라고도 했다. 그래도 첫 책을 냈는데, 소회나 느낌이 어떤가.

“어려웠다. 누구나 처음 하는 일은 어렵지만, 처음 곡을 썼을 때처럼 힘든 작업이었다. 그래도 책이 나오고 보니까, 대견하기도 하다. (웃음) 한편으로는 ‘더 잘 쓸 수도 있었는데...’하는 아쉬움도 있다. 창작자는 누구나 자신의 작품에 대해 그런 감정 가지잖나. 책은 2월부터 7월까지 5개월 동안 썼다. 늘 해오던 생각이니까, 그것을 정리한 셈이었다.”


- 책에 보면, 아이에게 음악을 알려주는 것에 대해, ‘교육’이라는 말 대신 ‘행복’이라는 말을 쓰자고 했다. 행복이라고 일컬은 것에 대해 얘기한다면.


“대개 교육이라고 하면, 수학이나 과학을 예로 들어보면, 커리큘럼이 오래 전부터 있었고, 가다듬어졌고, 교육화 시켜서 나름 굳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배울 땐, 차례가 있다. 수학을 할 땐, 덧셈부터 하고 뺄셈으로 가고, 미분하고 적분으로 가잖나. 그러나 음악은 그렇지 않다. 음악은 말하자면, 교육이 아니다. 같이 듣고 즐기는 것이다. 그만큼 일상적인 것이다. 같이 듣는 데서 오는 행복감도 있잖나. 그런 일상의 행복을 강조하고 싶어서 행복이라는 말을 썼다. 다시 말하지만, 음악은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다음 단계로 꼭 가야 하는 무엇도 아니다.”


- ‘음악을 듣는 우리 가족’의 풍경을 묘사한다면 어떻게 말하고 싶나.


“그냥 자연스럽게 듣고 부른다. 각자가 듣고 싶은 포즈대로, 듣고 싶은 만큼 음악을 듣는다. ‘자, 음악 들어야 할 시간이다’, 이런 게 하면서 듣는 게 아니다. 그냥 틀어놓으면 좋은 거고, 같이 들어서 좋은 거고. 행복감을 느끼고. 많은 부모들이 대개 진도를 따지는데, 음악에는 진도를 따질 수 없다. 어떤 게 어렵고 쉽고, 이런 것도 없고. 음악에는 귀함과 천함도 없다. 취향이 있을 뿐이다. 수학은 1차 방정식을 모른다고 하면, 무식하다고 말할 지도 모르지만, 음악은 ‘합창’은 알고 ‘비창’을 모른다고 무식하다고 할 수 없다. 진도 따지는 부모님들은 그래서 곤란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아, 그 얘기 책에서 인상 깊더라. 음악을 배울 때, ‘진도가 아닌 완성도’라는 말. 체르니 40번이나 바이엘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고, 즐길 수 있도록 풀어두면서 음악을 만나는 것을 강조했다. 더불어 부모가 아이에게 아낌없이 선사해야 할 것은 재촉하는 기대가 아니라 기대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결국 부모의 과도한 기대나 조급증이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말 같은데... 


“그런 의미로도 해석될 수도 있겠다. 진도를 따지는 거나 과도한 기대를 갖는 것이 전체적으로 (아이에게) 나쁜 영향 미칠 수 있다. 주변에 봐라. 아이들 대부분은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운다. 그러나 지금 와서 피아노를 칠 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 않냐. 진도주의 때문이다. 어머니들이 재촉하니까. 음악을 음악으로 배우지 못하고, 학문이나 기술로 배워서 그런 거다.”


- 어린 시절, 이런저런 음악을 듣고 연주․작곡하길 즐겼다고 했는데, 부모님이 참 좋은 분이셨던 것 같다. 부모님이 어떤 음악행복을 만나게 해 주셨나.


“음악이 좋다는 건, 부모님한테 배운 것이나 다름없다. 듣고 싶을 때 듣고, 듣고 싶지 않을 때는 안 듣는. 그래서 음악이 좋다는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음악을 할 때도, 실제로 ‘네가 음악을 하고 싶으면 하고, 음악 하기 싫으면 관둬도 돼’라고 하셨다. 그러다 또 하고 싶으면 또 해도 된다고 하셨고. 내 아이도 음악을 좋아한다고 하면 말릴 생각은 없다. 다만 겉멋에 들리지 않도록 하려면 어릴 때부터 훈련이 돼야 한다고 본다.”


- 부모님은 어떤 음악을 주로 들려주셨는가.


“꽤 많은데... 팝송이 많았던 것 같다. 어머니가 팝송을 자연스럽게 들려주시고, 가수가 누군지도 모르고, 음악 그 자체로 들었다. 폴 앵카, 마이클 잭슨, 올리비아 뉴튼 존 등등 굳이 누구를 들지 않더라도 음악이 늘 있었다.”


- 지금 가족 사운드트랙을 만든다면, 어떤 음악들로 채워질 런지.


“부모가 가져서는 안 될 것 중의 하나가, 자신이 위주가 돼서 무언가를 하겠다는 생각이다. 자신이 주장해서, 자신의 주장을 밀고 나가는 것은 곤란하다. 아이들이 주장을 하게끔 만들어야 한다. 부모는 놀 자리를 펴주거나 멍석을 깔아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자신들이 어떤 음악을 듣는 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아이들의 음악이 중요하다.”


- ‘음악일기’라는 아이디어가 참 좋더라. 음악일기의 효용이 있다면.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사실 아이가 음악을 듣는 것은 단순하고 곡도 많지 않다. 한 노래를 듣고 또 듣고, 쓸 수도 있는데, 그 느낌이 다르다. 같은 노래라도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하루에 아이의 발달상황 같은 걸 지켜보기에도 좋고. 어제는 싫다가 오늘은 좋다고 그러기도 한다. 어른들이 보기엔, 변덕이 심한 것이지만, 그만큼 아이들의 감성은 시시각각 다르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할 수 있다.”


- 사랑받는 어른, 매력적인 어른이 되도록 하기 위해, 아이들이 학원에서 벗어났다고 음악까지 등지게 하지는 말자고 했다. 그런데 학교에서의 음악교육은 음악을 등지게 하는 측면이 강하지 않나 싶다. 어떻게 생각하나?


“학교 다닐 때, 수학을 싫어하고 등지게 되는 게, 다 그런 거다. 특히 영어. 되지도 않는 영어를 강요해서 그런 것다. 음악도 마찬가지고. 음악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건데, 학교에서 음악교육은 강요하고, 주입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대개 음악시험을 본다. 음악사 시험을 보는 건 이해하지만, 음악은 정말 시험과 관계가 없다. 그저 느끼는 거다. 음악을 들으면 느낌이 풍부해지고 생각의 각이 넓어지고 사람이 유연해진다. ‘이거 아니면 안 돼’ 하는 게 아니고, 우연하고 오픈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 지속적인 음악교육, 아니 음악행복을 만끽하기 위해 가정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나라에서는 구체적인 방식을 너무 원하는데, 그런 마인드 자체가 변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음악일기가 좋으니까, 앞으로 이거 써’ 그러면, 어느 아이가 좋아서 음악일기를 쓰겠나. 이건 음악을 등지라고 하는 거고.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좋다. 구체적인 방법도 없다. 우선은 마인드가 제일 중요하다.”


- 집안에서 DJ로 산다는 것에 대해. 방송국 DJ보다 훨씬 어렵다고 했는데.


“조그만 아이들도 취향이 있고, 금방 또 바뀌기도 하더라. 그리고 아이들은 공감각적이라 만화영화 주제가 그런 걸 좋아한다. 왜 우리나라의 많은 부모들은 만화영화 주제가를 아이들과 함께 부르지 않는지 모르겠다. 30분만 시간 내면 배울 수 있는데, 안 부른다. 싫어한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엄마아빠도 같이 부르는 노래가, 진짜 노래다. 부모가 좋아하는 노래가 아니라. 애들이 좋아하면, 노래를 함께 부를 수 있고, 춤도 출 수 있는 그런 게 좋다.”


- 아이에게 음악을 들려주는데 있어 주의할 점이 있다면.


“대중음악도 상당히 좋다. 대중음악에서도 좋은 음악이 꽤 많긴 하나, 선정적이고 폭력적이거나 저속한 그런 것들에 노출되는 것은 부모가 막아야 한다. 그 밖에 음악이라면 다 좋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모차르트 이펙트’처럼 너무 클래식 일변도인 것도 잇다. 이 책도 그래서 평범한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아빠들이 봤으면 한다. 세계 제일의 바이올리니스트나 음악천재로 키우는 그런 걸 다루지 않는다. 그냥 아이들 잘 자라는 데 조금 더 감성적이었으면 하는 것을 담았다. 진짜 바이올리니스트가 될 애들은 교육방식도 다르다. 이 책은 그렇지 않은 대다수의 아이들의 부모를 위한 거다.”


- 악기도 어릴 때부터 다루면 좋잖나. 2만원짜리 바이올린으로 교감하는 것도 정겹더라.


“악기도 마찬가지다. 결코 진도로 놓고 시키면 안 된다. 뭐든 재미있어야 한다. 재미있는 것과 재미없는 것을 하는 건 다르지 않나. 일이든 뭐든. 사람은 그렇게 끝없이 재미를 추구하면 사는데, 일단 악기도 재미있어야 한다. 일단 흥미롭게 해야 하고.”


- 애니메이션 <카>의 OST를 들으며 아이들과 흥겨운 시간을 보낸 에피소드도 좋았는데, 음악으로 아이들과 교감하는 즐거움에 대해.


“교감은 100% 가능하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어른과 아이와의 소통에는 반드시 음악이 있어야 한다. 대개 부모라는 게 서른 살쯤 많지 않나. 나도 둘째를 서른여섯에 봤는데, 그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겠나. 그게 음악이다. 책에도 있지만, 친구 한 명이 마이클 잭슨을 아는 중학생 아들이 있는데, 그 둘에게는 마이클 잭슨이 또 다른 매개체다. 부모와 아이의 그런 매개체로 음악이 가장 힘에 세다. 아버지와 아들이 싸울 수도 있다. 그럴 때,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들었던 노래를 틀어 놓는다던가하는 식이다. 그러면, 아빠가 화해하자는 뜻이구나 하고 아들이 여길 수도 있다. 반대로 아들이 그럴 수도 있고. 그게 음악이 가진 힘이다.”


- 자신의 노래 중, 아이들에게 권해주고픈 노래가 있다면.


“책에도 그런 걸 쓰면 그 곡만 전부 다인 줄 알까봐 쓰지 못했는데... 뭔가를 추천해달라는 것보다 뭐를 추천해주지 않겠느냐가 더 좋겠냐. 아까도 말했지만, 일부의 저속하고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노래는 아이들이 접속하지 않게끔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게 부모의 역할이다.”



- 음반이든 책이든, 아이들을 위한 음악선물도 좋지만, 나처럼 가수 김현철을 기다리는 성인 팬들도 많다. 지난 2006년 12월에 발매된 9집 앨범이 마지막이었는데, 언제쯤 함께 늙어가는 성인들을 위한 새 앨범을 발표할 예정인가.


“올해 데뷔 20주년이라는데, 의미는 잘 모르겠다. (웃음) 어쨌든 지금 (새 앨범을) 준비하있다. 발매는 올해가 될지 내년이 될지 모르겠다. 앨범은 완성도니까 언제까지 내겠다고 말은 못하겠다. 어쨌든 준비하고 있고, 작업을 계속 하고 있다.”


- 팬들에게 인사 한 말씀, 해 달라.


“음, 잘 지내고 있다고 말씀 드리고 싶다. 음악이라는 것은 나랑 떼래야 뗄 수 없는 거니까, 계속 음악을 하고 있고, 결코 음악을 그만두거나 하지는 않을 거다. 앨범을 내는 것도 시간이 더 걸릴 뿐이지, 늘 음악과 함께 하고 있으니 좀더 기다려 주시면 충분히 행복을 느끼게 해 드리고 싶다.”


[YES24 기고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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