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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아니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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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생긴 후로 한국에 모텔이 이렇게 많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요즘 새로 짓고 있는 건물의 많은 수가 모텔 등과 같은 숙박업소다. 

주로 움직이는 동선에서도 숙박업소 몇 개가 올라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니.


내 어릴 적에는 모텔이라는 것이 없었다. 호텔, 여관, 여인숙이었다. 

그랬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많던 여관, 여인숙은 어디로 갔을까. 모텔이 그 자리를 메우고 훨씬 더 많은 수의 모텔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그야말로 모텔천국. 


MOTEL. 줄여서 'MT'라고도 부르는 그것. 

모텔의 본디 뜻을 따라가면 자동차 여행자가 숙박하는 장소다. MOtor+hoTEL. 

모텔들이 주차공간을 널찍하게 마련한 것이 그런 뜻에서 비롯됐다...고 말하면 뻥이고,

그저 차를 갖고 오는 손님들을 받기 위함일 뿐이다. 


뭐, 모텔의 사회학을 쓰자는 그런 어설픈 의도는 아니다.

친구들과 술에 쩔어 술 한 잔 더 하자며 들어갔던 대학신입생절부터 이런저런 MT를 다녀봤다. (성인이 MT 가는 건 나쁜 일이 아닌 건 알지?ㅋㅋ MT 가서 의외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MT 이야기를 쓰는 것 역시 처음인데, 

태어나 처음으로 MT 리뷰어로 꼽혀서 '강동지역 최고의 호텔'이라는 수식어를 내건 IMT를 찾았다. 순전히 리뷰를 쓰기 위해서. 강동(구)에 별로 다녀본 적이 없는 나로선 새로운 세계였던 셈인데, 길동역 부근은 아예 처음이다. 늘 가던 동네와 다른 풍경의 그곳은 그 덕분에 새롭고, 어딘가 먼 곳으로 떠난 느낌도 줬다. 어느 중소도시에 와 있는 느낌이랄까. 그게 우선 신선하고 좋았다. 


더 좋은 것이 있었다. 무료니까, 그냥 일반실을 주겠거니 했다. 웬걸, VVIP나 VIP실을 제공해 준다는데, 하필 가는 날이 장날이어서 그건 예약 만땅이고, 특실을 주겠단다. 그게 어딘가 싶어서, 별 기대없이 발을 내디뎠다. 허거걱~ 



아니, 왜 이렇게 좋아? @,@

입이 떡 벌어졌다. 우선 방도 널찍하니 좋고, 침대도 우와 넓다! 침대 맡 너머에는 휴식공간과 욕조가 있는데, 와우~ 내가 너무 좁디 좁은 모텔만 다닌 것인가!ㅋ


 

물론 이렇게 큰방이나 VIP룸을 안 가본 것은 아닌데, 

그곳보다 방의 구조나 배치가 더 좋았다. 마음을 좀 더 안정적인 느낌을 갖게 하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생목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조목이어도 있으니 괜찮~다~. 


TV도 적당한 위치다. 침대에서도 휴식공간이나 욕조에서도 볼 수 있게끔 만들어놨다.

방은 그렇게 마음에 들었다. 


출출한 배를 움켜쥐고 MT를 나오니 인근이 바로 먹거리골목이다. 강동의 먹거리집은 또 독특한 개성이 있었다. 일일이 맛 본 것은 아니니 맛을 얘기할 바는 아니고, 다른 먹거리골목과 살짝 다른 공간적 특징이 있었다. 퓨전 선술집이 종종 눈에 띠었는데, 식욕을 부르는 풍경이다.   


내 다니는 동선이 지겹고, 어딘가 낯선 풍경을 만나고 싶을 때 강동을 한 번씩 찾을 생각이다.  그리고 뭣보다 IMT, 마음에 들었다. IMT는 아마도 I'm MoTel의 뜻이 아닐까 혼자 유추해봤는데, 작명 센스 나쁘지 않다. 나는 모텔이다. 자신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씩씩한 자신감. 


사진이 흐릿하고 나쁜 건 어쩔 수 없다. 사진기를 따로 들고가지 못하다보니, 스마트폰도 아닌 내 피처폰이 담을 수 있는 최상의 것이었다. 실제로 IMT의 방은 훨씬 더 좋고 넉넉하다. 내가 모텔이라고 내세우는 자신감을 믿어도 된다! 


모텔을 좋은 곳에 가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실, 새삼 깨달았다. 

문득 모텔의 사회학을 쓴 글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모텔의 변천사와 진화를 적은 글이 있다면 한 번 만나보고 싶어졌다. 모텔에는 과연 한국인의 어떤 각종 욕망이 묻어 있을까. 상당히 흥미로운 텍스트일 것 같다. 모텔의 사회학을 연구하는 학자가 과연 있을지는 모르겠다. 모텔에 근무하거나 운영하는 분들이 그런 글을 쓰고 계시지 않을까. 그것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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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imt, 강동, 길동

<그녀를 믿지 마세요>. 

같은 제목의 영화가 있었다. 김하늘과 강동원. 당시 '그녀'는 사기꾼이었다. 그러다 순박하고 착한 청년과 그 가족을 만나 개과천선한다. 재미있는 로맨틱코미디 영화였다. 김하늘을 '로코의 여왕'으로 자리매김하도록 만든 영화 중의 하나.  


그러나 대학로 추천연극 중의 하나인 <그녀를 믿지 마세요>는 영화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내용과 결을 놓고 보자면, <시라노; 연애조작단>이나 뮤지컬과 영화로 만들어진 <김종욱 찾기>와 맥이 닿는다. 



맞다. 이 연극은 '짝짓기'를 위한 고군분투기다. 짝사랑을 내사랑으로 만들고 싶은 한 여성이 한바탕 소동을 거쳐 연애 에이전시를 찾아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배우들의 적절한 슬랩스틱이 초반부터 극에 대한 흥미를 복돋는다. 


귀엽고 상큼하지만 허당매력의 의뢰인 김준희(홍바다). 그녀의 사랑이 당연히 이뤄질 것이다. 로코 연극, 해피엔딩을 마다할 이유는 없을 테고. 관건은 그 인연의 씨줄과 날줄을 얼마나 촘촘하게 엮어내는가에 달려 있다. 그녀가 찍은 짝사랑의 대상은 병원 인테리어디자이너 차명석(한재웅)이다. 잘 생기고 간지 좔좔. 카사노바 풍의 좀 느끼한 인물이다. 배우 이기우 좀 닮아주시고. 뭐 그래도 김준희가 좋다니까!ㅋ 


그리고 의뢰인의 명을 받들어 각본을 짜서 비밀작전을 수행하듯 사랑을 연결하는 연애 에이전시 로맨틱컴퍼니. 이 회사의 대표 강태범(홍성민)과 조력자 고대로(김도겸)가 오작교 노릇을 해보자고 끼어든다. 


연극 <그녀를 믿지 마세요>는 시종일관 재미를 유지한다. 가장 큰 이유는 캐릭터 간의 차별성 덕분이다. 차명석을 둘러싸고 각기 다른 성격의 세 사람이 빚어내는 좌충우돌이 조화를 이룬다. 진지하고 까칠한 차명석에 반해 그의 수족 역할을 하는 고대로는 그야말로 천방지축이다. 더구나 고대로를 연기한 김도겸은 관객들의 혼을 빼놓을 만큼 종횡무진이다. 오버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주 적절한 양념으로 극의 간을 제대로 맞춰놓는다. 아울러 차명석을 맡은 홍성민의 중저음도 그의 캐릭터를 강화하는데 일조한다. 진지함이 목소리를 타고 뚝뚝 묻어난다. 



그 와중에 서툴고 순수한 김준희의 야생마 같은 캐릭터는 사랑의 감정을 제대로 실어나른다. 사랑은 본디 이성적이라기보다 감정과 감성에 의해 좌우되는 그런 것이잖나. 


캐릭터 간의 앙상블이 극을 흥미롭게 이끄는 한편, 사랑에 대한 전형성 또한 관객들에겐 안전한 장치다. 즉, 부담 없이 극에 빠져들게끔 만드는 요인이다. 사랑의 아포리즘도 빠지지 않는다. "생각이 길어지면 용기는 사라져요. 지금 당장 고백하세요." 그래, 생각은 용기와 반비례하는지도 모른다. 사랑한다면, 지금. 그리고 옆에 있는 그 사람을 잘 들여다보길. 


무엇보다 마지막에 드러나는 놀라운 반전. 오호~ '그녀를 믿지 마세요'라는 작명의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고대로의 반전 또한 절묘하고. 이 반전의 풍경이 작품을 더욱 빛나게 만든다.  

  

헌데, 그 재미에도 불구하고, '연애 에이전시'가 사랑을 연결할 수밖에 없는 풍경이 씁쓸하다. 이는 연애불능시대를 대변한다. 연애를 할 줄 모른다는 것은 결국 관계를 잘 맺지 못한다는 뜻이다. 제도권 교육이 관계(이별 또한 관계의 일부다!)를 어떻게 잘 맺을 수 있는지를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국영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 우정, 이별 등이다. 살면서 더 필요하고 주체적으로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야 할 것들이다. 


"완벽한 사랑의 타이밍 당신에게도 만들어드립니다"라는 카피가 그래서 안타까웠다. 사랑은 온전히 나와 그 사람, 당사자들의 것임에도 누군가 그것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 말이다. 사랑이 주체적이지 못하다면, 우리는 무엇을 주체적으로 할 것인가. 


물론 사랑을 위해 주변의 도움이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각본을 짜서 비밀 공작을 펼쳐야만 사랑이 가능해지는 시대라니, 아쉽고 섬뜩하지 않나? 더 나아가 사랑에도 국정원이 필요한 시대가 오는 건 아닐까? 국정원이 '국가조작원'이 됐듯, 연애도 '연애조작단'이 창궐한다면? 끔찍하다. 모든 사랑에 조작을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때부터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이다.     


잡설은 이것으로 마치고, 데이트용으로 추천한다. 공연히 나처럼 연애 에이전시의 사회적 조건까지 생각한다면 살짝 복잡해지겠지만. 대학로 공연장 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혜화역 1번 출구에서 3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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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 Will Never Die. 

록을 말할 때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문구다. 천재하드록기타리스트 마이클 쉥커(Michael Schenker) 주축으로 결성된 마이클쉥커그룹(MSG)의 대표곡 중 하나인 'Rock Will Never Die'는 1986년 그룹 부활의 1집 음반 제목이기도 했다. 록을 한다는 사람치고, 록을 들어본 사람치고, 이 문구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라고. 로커들의 전매특허 발언이기도 하니까. 로커들을 툭~하고 건드려 보라. 이 말이 대번에 튀어나올 것이다. 


<청춘밴드>의 주인공 록밴드 '블루 스프링(BLUE SPRING)' 연습실에도 이 문구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그들이 무엇을 추구하는 그룹인지 단박에 보여주는 기표다. <청춘밴드>는 그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뮤지컬(을 표방하는 연극)인데, 결국 청춘의 이야기다. 포스터에 적힌 카피 'Rock은 청춘을 포기하지 않는다'가 이것을 대변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 <청춘밴드>, 이야기는 심심하고 지나치게 전형적인데다, 전반적인 연기와 연주, 연출은 여물지 않았다. 잠깐씩 반짝이는 순간이 있긴 하나, 그것이 모든 결점을 덮을 만큼 강력하지도 않다. 그들의 작업실이라고 보여지는 무대는, 록밴드에 대한 어떤 선입견이 작용해서인지 모르겠으나, 밴드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보다 뭔가 반듯하게 만들어져 그들이 말하는 '록 스피릿'과 동떨어진 인상이다. 무대라는 공간을 통해 블루 스프링의 정체성을 드러내는데 실패했다는 얘기다.



드라마투르기(극적 구성)는 정말 심각했다. 록밴드가 거대 기획사와 싸우는 과정에서 멤버들끼리 갈등을 빚다가 결국 이를 이겨내고 다시 록을 부른다는 줄거리인데, 이렇게 대거 줄여서 말해도 모든 이야기가 그려질 정도다. 뭐 그만큼 이해가 쉬운 이야기 구조를 택하기 위함이었다면 더 이상 말할 필요는 없겠지만, 모든 것이 너무 쉽게 쉽게만 봉합되고 넘어가니, 성의가 부족하다는 인상만 받았다. 


기획사 대표가 이간질한 멤버들의 갈등은 우스울 정도로 쉽게 풀리고, 이야기 전개는 그저 일사천리다.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이라는 트라우마를 품은 록밴 리더이자 보컬 최강인은 그 아픔과 슬픔을 담아내기엔 역부족이다. 연기력이 부족했다고 해야할지, 어설펐다고 해야할지, 연기보다는 음악을 할 줄 아는 사람을 내세운 것 같았다. 다른 멤버라고 다르진 않은데, 약방의 감초격인 설사준 외에는 전반적으로 캐릭터 모두가 연기력에서는 좋은 점수를 주기가 어렵다. 관객을 캐릭터 자체에 몰입시키지도 못했고, 그들 각자도 캐릭터와 동화되지 못하는 인상이었다. 특히, 3000만원짜리 바이올린을 부수고 밴드에 합류했다는 드러머 박태림의 특유의 하이톤 발성은 귀에 거슬렸고, 연기는 과했다. 



<청춘밴드>는 음악(연주)할 때만 그나마 즐겁고 흥겨운 기운이 퍼질 뿐, 그것도 잠시다, 전반적으로 함량 미달의 뮤지컬이다. 당연히 록밴드라고 전형성만을 띨 필요는 없겠다. 흔히 록밴드라고 했을 때 떠올릴 수 있는 그런 모습이거나 진흙속의 진주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밋밋한 캐릭터로 구성된 밋밋한 이야기로 청춘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은 무성의해 뵌다. 좀 더 농축된 캐릭터와 이야기 구조를 만들면 좋겠다. 듣기에는 리뉴얼하여 시즌4라는데, 어떻게 이렇게 밋밋하게 리뉴얼했을까, 의문스럽다.


록과 청춘을 결부하려는 움직임은 상투적이면서도 매력적이다. 그러나 록에 대한, 청춘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와 사유로 이야기트루기를 해야하지 않겠나. 단순히 음악을 즐기기 위해서라면 록페나 콘서트를 가면 된다. 뮤지컬에서 관객이 원하는 바는 그것들과 다르다. 알면서도 이렇게 만들었다면, 너무 무성의한 것이고. Rock은 윌 네버 다이하겠지만, <청춘밴드>가 시즌을 계속 이어나가려면 지금과 같은 모습이면 곤란하겠다. <청춘밴드> Will Die, Soon이 될 테니. 아쉬운 관람이었다. 


(사진출처 : 청춘밴드 공식홈페이지 http://www.oorachach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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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평전의 조건은 무엇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질문이었다. 알폰스 무하에 대한 세세하고 꼼꼼한 기록으로서 이 책은 나쁘지 않다. 기록노동과 출판노동 등에 얼마나 공을 들였을지도 익히 짐작을 할 수 있다. 저자는 감동적인 예술 작품을 만났을 때의 충격을 표현한 '스탕달 신드롬'을 거론하면서 알폰스 무하의 삶과 예술을 충실히 기술한다. 무하에 빠진 저자의 감흥도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다. 노동에 대한 평가와 결과에 대한 평가는 별개다. 내게 이 책은 알폰스 무하의 입문서 격이었는데, 저자의 감흥은 내 것이 될 수 없었다. 혼자 좋아서 블라블라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감흥, 그 격정을 적절히 제어하지 못한 채 내뱉고만 있었다. 즉, 독자와의 밀당에 실패한 셈이다.

 

좋은 평전의 조건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인물의 내면 풍경을 드러내면서 그것이 시대나 당대의 사회와 어떻게 조화를 이뤘는지, 인물에 대해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측면을 새로이 부각시키거나 비추면서 당시의 시대 배경이나 미시 생활사까지 복원해내는 것. 또 지엽적이고 사소한 이야기로 흥미를 자극하면서도 전체의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 아울러, 읽기도 좋아야 한다는 조건도 붙을 것이다. 가독성 문제인데, 전반적으로 수식어가 많고 글이 길다. 아르누보의 특징인 '장식성'을 감안한 글쓰기여서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저자의 감흥만 따르기엔 지루하다.  

 

뭐니뭐니해도 평전은 인물에 대한 깊은 연구가 선행되면서 인물의 철학이나 사유, 사상 등이 독자에게 잘 전달돼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같은 언어권의 사람이 유리하다. 역사와 문화 등을 공유하고 인물의 미묘한 뉘앙스까지 제대로 이해하고 붙잡아낼 수 있을 테니까. 혹자는 주석이 많아야 한다는 점도 좋은 평전의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주석을 통해 배우는 것이 의외로 많다는 이유에서다.

 

그런 면에서 《성공한 예술가의 초상, 알폰스 무하》는 성공적인 평전은 아닌 듯하다. 책은 때로 현실과의 접목을 위해 억지를 끌어낸다. 작가는 가령, 청년 무하의 사회 진출을 위한 출발과 오늘날 젊은이의 것을 비교한다. 이것은 범주의 오류다. 시대적 상황이나 여건이 너무 다르다. 19세기나 21세기 모두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경쟁은 치열하다'는 말을 돌고 있다며 단순 비교를 하는데, 과연 적당한 비유일까. 뭔가 지금의 청년들에게 자극을 주기 위함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자극은 적절하지 못하다. 청년 무하가 성공할 수 있었던 시대와 사회적 배경과 지금 한국의 상황을 비슷하게 끌어들이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틈만 나면 그림 삼매경에 빠졌던 한 소년이 학창시절에 재능이 없다고 통보 받아 자신이 사랑하는 미술을 시작조차 못할 줄 알았건만, 타인들의 평가에 구속됨 없이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다 보니 결국 승승장구한 아티스트가 된 이야기"(p.20)라는 소개는 분명 흥미롭다. 안타깝게도 그런 소개만큼의 전개가 안 됐다는 점이다. 책을 읽고 훅~ 당겨서 당장 전시회도 보러갈 생각이 들 것으로 기대했다. 아니었다.

 

프랑스어로 신예술을 의미하며 19세기 최후의 예술사조를 뜻하는 '아르누보'라는 개념을 알게 되고, 알폰스 무하라는 예술가를 만난 것이 소득이랄까. 아르누보의 전성시대였던 1890년~1910년이면,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절 혹은 좋은 시대)'였다. 과거에 없었던 풍요와 평화로 인해 문화예술이 번창하고 우아함이 넘쳐났던 시대. 무하와 맞물려 벨 에포크의 시대상이 잘 드러나지 않은 점도 아쉬움이다.

 

성공한 예술가의 초상을 그렸으나, 책은 '성공한 평전의 초상'으로 남지 못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이 잔뜩 묻어나고야 말았다. 전시회를 당장 가고 싶은 욕구를 불러 일으키진 못했으나 전시회에 가면 무하가 좀 더 잘 들어올지 않을까 싶은 생각은 든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았으나, 내 느낌대로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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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과 자유로운 인생을."

이런 삶의 기치, 누구나 바라는 무엇. 그렇지만 누구나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누구나 할 수 있다. 온갖 불안을 짐 지우는 사회 구조가 인민의 날개를 꺾었을 뿐.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참고, 남 아닌 자신만의 욕구도 참고, 지금 당장의 즐거움도 나중을 위해 참으라고 강권하는 사회. 


그래서 대한민국은 불안으로 굴러 간다. 참아야 복이 온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참다가 화병으로 뒤지고, 고생 끝에 병이 온다. 


정확하게 주류 세력은 불안으로 인민을 길들여서 자신의 기득권을 지킨다. 그들, 절대 이런 질문하지 않는다. "당신은 무엇을 바라는가? 당신은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가?"


그들이 진짜 자신만의 욕망을 지니면 안 되니까. 자신들이 주입한 타인의 욕망을 진짜 욕망처럼 느끼게 만든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명확히 구분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자유로운 인생을'이라는 가장 기초적인 욕구조차 이 땅에서 가능한 것인지 고민하게 한다. 


그래서일까. 한국엔 '다카하시 아유무'가 드물다. 내키는 대로 지르고, 놀지 않는 자 일하지 말라고 말하며,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는 사람.


헌데 그런 사람, ‘또라이’ 취급받기 십상이다. 그저 꿈을 가지라고 말한다. 꿈을 향해 간절하게 바라고 죽도록 노력하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꿈을 꿀 수도 가질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놓고선...



- 2012년 가을, 자기에게 돋는 닭살의 감각을 믿으라고 조언하던 다카하시 아유무를 만나고선 썼던 글을 누군가가 다시 상기시켜주다. 다카하시는 지금 또 어디를 누비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지는 여름밤. :) 


- 오늘 만난 뮤지컬 <당신만이>에서 나를 닭살 돋게 했던 두 곡의 노래 중 하나. <조율>. 한여름 밤의 노래. 참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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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되지 않은, 예스24 기고 원문)  


셀프인테리어로 집과 삶은 어떻게 바뀔 수 있는가!

숨고 싶은 집우연수집가

 


배치. 철학자이자 정신분석가 펠릭스 가타리(Fe'lix Guattari)는 젊은 시절, 심리치료사 장 우리(Jean Oury)에게 자신의 힘든 심리상태에 대한 상담을 받았다. 어느 날, 가타리는 난해하고 이상한 꿈을 꿨고, 역시 상담을 받았다. 장 우리가 물었다. “어느 쪽으로 잠을 자나요?” 가타리, 왼쪽이라고 답했다. 처방은 간단했다. “오늘부터 오른쪽으로 자세요. 그럼 괜찮아 질 거예요.” 가타리는 더 이상 이상한 꿈을 꾸지 않았다. 더 나아가 배치라는 개념을 파악했다. 현실에서 실질적인 배치를 바꿈으로써 무의식의 위치를 수정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인테리어는 그런 면에서 배치의 가장 손 쉬운 방법 중 하나다. 가구 하나만 배치를 달리해도 방의 모든 풍경은 바뀐다. 재배치된다. 삶 역시 영향을 받는다. 물론, 거대 프랜차이즈 본사의 화폐 욕심 때문에 툭하면 인테리어를 교체하는 시대지만, 그래도 좋은 방법이 있다. 셀프인테리어! 내 집, 내 방, 내가 꾸민다. 특히 이 남자의 셀프인테리어 손길, 예사롭지 않다. 우연수집가(본명 이강산, http://moment6.blog.me). 혼자 사는, 어쩌면 궁상과 절친인 것이 당연한, 삼십대 남자치곤 남다르다. 혼자 사는 전셋집을 고쳐 사는데, 배치를 달리함으로써 삶을 남이 아닌 자신의 것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으니 일상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생활하는 곳이 풍요로워야 한다는 것도 그때 깨달았다. 그래서 이사를 했고, 나만의 아지트를 만들어나가는 작업을 했다. 환경의 변화는 확실히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 그 과정 자체가 큰 즐거움과 설렘을 주었다.”(p.6)

 

눈 밝은 편집자의 눈에 띤 그의 셀프인테리어 솜씨는 숨고 싶은 집(우연수집가 지음|뜨인돌 펴냄)으로 피어났다. 출판사 표현에 의하면, 그는 새댁 블로거를 경악케 한 셀프인테리어의 달인이다. 우연수집가와 출판사, 머리를 맞댔다. 출간 기념으로 뭔가 이벤트를 해야겠는데, 뭐가 좋을까! 그리하여, 낙찰됐다. 셀프 인테리어에 마음을 둔, 삶의 배치를 달리하고픈 원룸 생활자를 위해 저자+편집자+마케터가 합심해, ‘페인트칠과 선반 시공을 해주기로! 이런 조건을 내걸었다. 벽지 페인트칠(한쪽 벽면)과 벽에 구멍을 내 선반을 다는 것에 대해.

 

- 집주인에게 허락을 받을 것.

- 집주인의 손해배상 청구까지 책임지지 않음.

 

웃기거나 슬픈 사연에 가산점을 줬고, 채널예스의 취재와 여럿이 함께 먹는 짜장면 타임이 힘들다면 신청 불가라는 주의사항을 내걸었다. 마침내, 강북구 번동의 씨가 구원의 대상자로 간택(?)됐다. 구구절절한 사연과 아량 넓은 집주인을 등에 업고, 취재와 짜장면 타임에 대한 불편이 없는 무난한 성격의 소유자였기에 낙찰! 출판은 아니지만 책 관련한 일도 하는 그녀의 원룸, 지난 115일 새로운 배치를 위한 우연수집가의 손길에 벽을 맡겼다. 과연, 이 집은 어떻게 변하고 배치됐을까.

 

셀프인테리어의 본질은 비용을 아끼면서 내 몸으로 때우자이기 때문에 많은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부디 천천히, 즐기면서, 어깨를 돌려가며 작업하시길 바랍니다.”(p.168)

 

살 곳을 정하는 것, 그것이 중요한 이유

 

어렵게 집을 찾아가니, 작가와 출판사 관계자들의 페인트칠이 한창이다. 헌데, 페인트칠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흑역사인 지독한 냄새가 덜하다. 물어봤다. 이 페인트 왜 이러느냐. 우연수집가 왈. 냄새가 덜 한 수입산 던에드워드제품이다! , 페인트 좋아졌구나, 이젠 냄새에 취하진 않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냄새가 사라지면 페인트의 존재감은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도 해본다.

 

 

원래 벽지는 보라색 동그라미가 무늬를 이루고 있었는데, 씨는 이것을 중국집 벽지 같다며 무척 싫어했다. 비가 새서 곳곳에 누런 얼룩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하얀색 페인트가 이 벽지를 채우고 있었다.

 

원룸은, 씨와 동생, 2명이 산다. 이십대 여성 두 명의 7~8평가량의 방은 아기자기한 감이 있다. 원래 이벤트 상품이던 선반 대신 블라인드를 달기로 했단다. 창문을 열면 옆집 옥상이 눈앞에 펼쳐져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도 있고, 햇살이 강해서라고 했다. 창문을 보니, 가깝긴 가깝다. 대도시는 이렇게 가까운 거리가 버겁다. 사람들 사이의 거리가 물리적 거리만큼 가까우면 부담이 덜 하겠지만, 공동체가 와해된 서울은 이웃이 드물다.

 

여기 집을 어떻게 구했고, 어떤 이유로 신청을 하게 됐느냐고 씨에게 물었다. 듣고 보니, 전셋집에 대한 흑역사가 있다. 포항에 살다가 2년 전 서울에 와서 살고 있는데 벌써 세 번째 집이다. “원래 집을 꾸미고 예쁘게 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첫 집은 동갑내기 룸메이트와 원룸에 살았다. 비싸서 반반 나눠서 살았는데, 내 집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 인테리어를 못했다. 한 달 반 살았고, 두 번째 살았던 집은, 동생과 함께였는데, 고시원 같은 반지하였다. 창문도 없고, 집주인 아줌마도 좋은 사람이 아니어서 역시 꾸미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살집을 구하다가, 딱 마음에 들어서 두 번째 집이 나가기도 전에, 이 집에 들어왔다. 운 좋게도 요즘 구하기 힘든 전세였다. 그 덕분에 앞선 집에 계약기간이 남아서 월세 몇 달치를 내야하는 출혈이 있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지하철역이 가까웠으며, 바로 옆에 경찰서가 있었으며, 뭣보다 집주인이 좋은 사람 같았다.

 

 

벽에 페인트칠을 하고 있는 작가에게도 물었다. 책과 집에 대해.

전셋집을 얻고 회사를 다녔는데, 어느 순간 권태가 왔다. 무엇이었든,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첫 번째로 내 주변 환경을 창의적으로 꾸며야겠다 싶었다. 집을 알아보다가 지금 한남동 집이 오래되긴 했는데, 집주인이 고쳐도 된다고 하더라. 재밌는 이야기기 나올 것 같아서 고쳤다. 창의적 생각을 위한 수단으로 환경을 그렇게 만들었는데, 그 과정을 콘텐츠화 했고, 현재 인테리어 소품 개발 사업을 준비 중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을 꾸미게 된 이유는 창의적인 작업환경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반복되는 하루하루에 지겨워질 무렵, 어릴 적 꿈들이 다시 생각나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작가든 수공예 장인이든, 그 작가라는 것이 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창의적이고 이야기가 담겨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그 출발이었다. 지난 1년 동안 영화관 같은 침실, 카페 같은 거실, 그리스 산토리니 분위기의 산뜻한 화장실, 오밀조밀한 맛이 있는 작업실 등을 만들어 나갔다.” (한겨레 1018일자 esc <초보는 나의 힘> 중에서)

 

실용서이면서 에세이 성격을 함께 품은 숨고 싶은 집의 탄생 배경이다. 제목에서도 그런 뉘앙스가 풍긴다. 세상이 요구하는 가치에서 벗어나 나만의 것을 가질 수 있는 공간.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우연수로 착각한다. ‘우연수집가라는 닉네임을 썼기 때문인데, 그는 여행이든 일상이든 우연히 마주친 것을 콘텐츠화 하고 싶다. 블로그를 개설하면서 나에게 권태를 느낄 때 일상을 예술화하기라는 대문 글을 달았다. 그것은 아직 변하지 않은 모토다. 그는 배치를 바꿈으로써 창의적인 일을 하게 됐고, 작가가 됐다. 내 살 곳을 정하고 배치한다는 것,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진화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말(바이오필리아)을 떠올린 이유다.

 

모든 생물이 생존을 위해 내딛는 가장 중요한 첫발은 살 곳을 정하는 것이다. 적절한 장소를 찾는다면 그 밖의 다른 것은 훨씬 쉬워질 것이다.”

 

새해가 시작되면서 회사를 그만두었다. 32라는 숫자 속에 담긴 초조함이 안정의 추구보다 열정의 실현쪽으로 기울었다고나 할까. 당분간 아무 생각 없이 하고 싶은 일만 해보기로 했다. 신기하게도 멍 때리는시간이 많아질수록 아이디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p.95)

 

페인트칠하면서 나누는 대화의 즐거움

 

씨는 벽이 유일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것 빼고는 이 집의 모든 것이 좋았다. 그런데 그 벽을 재배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기회가 생겼을 때, 그것을 놓치지 않고 잡는 것, 사람살이의 지혜다. 이번 이벤트가 딱 깔맞춤이었던 셈. 그만한 공도 들였다.

 

작가도 뵙고 싶고, 편집자도 좋은 분 같았다. 처음에 이벤트가 뜬 것을 보고 경쟁률이 치열하겠다 싶었다. 조건이 있긴 해도, 끝날 때 즈음 몰렸다고 하더라. 그래서 게릴라 작가사인회가 있을 때 찾아가서 얼굴 도장을 찍으면서 공을 들였다. (웃음)”

 

씨가 생각한 방의 포인트 컬러는 녹색이었다. 책장, 책상, 이불 등 곳곳에 녹색이 배치돼 있었다. 벽지를 흰색으로 선택한 것은 녹색이 강하기 때문에 잘 어울리는 색이었기 때문이다. 흰색 페인트가 벽지 위에 계속 칠해지고 있다. 우연수집가의 손길이 벽을 타고 있었다. 벽지를 뜯어내지 않고 계속 흰색으로 겹칠을 했다. 거기엔 물론 이유가 있다.

 

첫째, 벽지를 깨끗이 뜯어내는 게 페인트칠하는 것보다 훨씬 힘이 듭니다. 여러분의 벽속엔 여러분이 모르는 이 집의 역사가 고스란히 몇 겹이나 덮여 있을지 모릅니다. 둘째, 여러분이 세입자라면, 아니 집주인이라고 해도 나중에 마음이 변하면 페인트나 핸디코트를 제거해야 할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그때 벽지랑 같이 뜯는 게 나을까요, 시멘트 위에 칠해진 페인트를 일일이 벗겨내는 게 좋을까요? 이런 이유로 그냥 벽지 위에 바르는 게 좋습니다.”(p.62)

 

우연수집가도 남의 집에 이렇게 손길을 주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부탁이 많이 오나, 해 준 적은 없었다. 책 출간 이벤트 덕분에 씨는 행운을 얻은 셈이다. 페인트칠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마르면 칠하고, 또 마르면 칠하고. 냄새가 역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그래도 페인트칠을 하는 작가의 손이 즐거워하고 있다. 하긴 작가의 손만 그런 것이 아니다. 편집자와 마케터의 손도 분주하고, 자신의 공간이 새로 배치되는 것에 대해 방주인도 즐겁다.

 

편집자와 마케터는 마침, 즉흥적으로 일이 만들어졌다. 즉석 카운슬링과 작업이 이뤄진 것이다. 책장이 원룸 공간을 나누는 구조물로 기능하고 있었다. 침대 발밑, 떡하니 서 있는 책장. 뒷면이 그대로 노출돼 있었는데, 우연수집가는 이것에도 페인트칠을 하자고 권했다. MDF면이라 미관상으로도 보기 좋지 않고 포름알데히드 성분이 스멀스멀 나올 수 있다는 이유였다. 씨도 흔쾌히 응했고, 편집자와 마케터도 잉여 인력이 되지 않는다며 열심히 페인트칠.

 

두 사람, 내가 잘했니, 네가 못 했니, 토닥토닥 하면서도 때론 다정한 신혼부부나 오누이마냥 책장 뒷면을 열심히 칠했다. 흰색 페인트가 모두에게 안겨준 즐거움 같은 것. 이런 작업의 즐거움이라면, 각자의 이야기나 경험담이 나온다는 것. 독립생활자끼리의 애환이나 정보를 공유하는 대화도 오간다. 집은 발품을 제대로 많이 팔아야 한다는 둥, 몇 번 집구하기에 실패하니까 요령이 생긴다는 둥, 계약서를 처음부터 꼼꼼하게 봐야 한다는 둥, 귀찮아도 집주인과 이야기를 많이 하고 가능하면 녹음도 하고 사진도 찍으라는 둥.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정보가 쏟아진다. ‘서울에서 집을 구한다는 것의 어려움에 대하여라는 책을 펴내도 되겠다. 그만큼 집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가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 집에 대해 너무 무심하다. 자신에게 맞는 집을 찾아야함에도, 평수를 따지고 가격만 따져서 자신의 몸을 구겨 아파트로, 오피스텔로 들어간다. 물론 그 안에서도 자신만의 공간에 대한 자각이 따라주면 좋겠지만, 아파트는 애초 편리만 추구한 구조물이다 보니 사람을 게으르게 만든다. 사유를 멈추게 만든다. 내가 보기엔, 아파트공화국의 폐해다. 일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안도 다다오의 도시방황에서 한 지적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1960년대부터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만들어진 근대 건축은 공간으로부터 자연을 차단하고 테크놀로지에 의해 관리되는 공간을 조성했다. 그 안에서 건축 또한 소비상품에 불과하다. 그러나 건축이란 본디 인간이 생활하기 위한 출발점이어야 한다.”

 

 

집을 가꾼다는 것, 그 소중함에 대하여

 

흰색 페인트칠이 방을 새롭게 변화시키고 있는 중간, 짜장면 타임도 가지고, 집에 대한 생각도 다시 해본다. 올 초 32이라는 나이에 회사를 훌쩍 나온, 우연수집가에게 슬쩍 묻는다. 회사는 다시 돌아갈 생각이 없나?

 

그는 이제 거지가 될지언정, 회사는 절대 안 들어간다고 했다. 그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그것도 수석입학. 갑작스레 전향한 전공이었음에도 실기가 없는 1등을 먹었다’. 그것도 남들이 보기엔 충동적이다. 생판 모르는 펜팔 누나의 권유에 의한 삶의 전향이라니. 그러나 그것은 충동적인 것, 아니다. 그의 마음이 오래전부터 그것을 준비해온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좋아했고, 만드는 것에 흥미를 가졌다.”

 

지방 명문고의 과도한 경쟁에 찌들었던 나는 창의적인 삶에 대해 토로했고,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누나의 충고로 수능을 몇 달 앞두고 예체능으로 전향했다. 선생님과 부모님의 우려 속에서도 고집을 피웠던 것은 지금 그림을 그려보면서 느끼는 재미와 설렘을 그때도 간절히 바랐기 때문일 것이다.”(p.75)

 

만들기를 좋아하고 창의적인 환경을 원해 집안 배치를 바꾼 작가의 감성이 다른 집에서도 빛을 발한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소중하다. 즐겁게 칠하고 즐겁게 가꾸는 모습이 집에도 그대로 묻어나기 마련이다.

 

창의적인 환경을 만들어보고자 시작했던 인테리어 작업은 1년간 계속되었다. 무엇인가를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아채기 시작했다. 열 살 때의 나는 만들기를 좋아했었다. 공부도 해야 했고 스펙도 쌓아야 했기에 잊어버렸던 것뿐이다. 서른 살의 나는 다시 어린아이가 된 듯 즐겁게 만들기를 시작한다.”(p.120)

 

칠하고 또 칠한다. 세밀한 부분은 씨가 안 쓴다는 화장붓의 힘을 빌려서 흰색이 칠해진다. 동그라미 문양이 워낙 진해서 6번을 칠한 후에야 없어졌다. 훨씬 깔끔해졌다. 좋다. 이래서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한 것인가! 이 책이 준 선물이다. 씨는 함박미소로, 이 놀라운 변화에 대해 기쁨을 표한다.

 

다른 실용서는 하우 투만 다루는데, 이 책은 실용서임에도 작가의 감성이 담겨 있고 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실용적이되, 다른 작가의 실용서와는 다르다. 작업도 혼자서 했다면 도저히 엄두도 못 내고 하지 못했을 것이다. 편집자들에게도 감사한다. 작가를 발굴해준 편집자 덕분에 책도 만나고 작가도 만나게 됐잖나.”

 

못 하나 박지 못하던 남자가 1년 동안 셀프 인테리어 작업을 하면서 이제는 지중해 풍 선반을 만들어 다는 경지에 이르렀다. 관심을 가지면 정보가 생기고, 직접 작업을 하다 보면 노하우가 생기는 이치는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똑같다.”(p.108)

 

페인트와 블라인드-Before(좌) & After(우)

 

책장-Before(좌) & After(우)

 

선반 대신 자리한 흰색 블라인드도 자태를 뽐낸다. 씨의 즐거운 비명이 이를 방증한다. 벽지도 좋지만, 선반 대신 작가가 제안한 원목 블라인드가 대단히 마음에 드는 눈치다. 방이 넓어 보이고 환하다. 소녀 감성을 품은 흰색 원목 블라인드가 두 이십대 여성의 마음을 세상에 더욱 오픈하게 만들 것 같은 예감? 블라인드가 주는 오픈의 미학. 더불어 책장의 변신도 방을 더욱 화사하게 만든다. 칙칙한 벽처럼 존재하던 책장의 뒷면이 흰색의 벽으로 변신하면서, 사진도 붙이고, 함께 사는 자매의 대화를 유도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집 이름 짓기. 그들이 그 집에 이름을 붙였으면 좋겠다.

 

건축가 이일훈의 말씀 때문이다. 대도시 대부분이 번호로만 된 집살이의 강퍅함, 자신이 사는 공간만은 그 속에 굳이 편입될 필요가 없다. 이일훈은 그래서, 내가 살고 있는 집 혹은 방에 이름을 지으라고 했다. ‘당호(堂號)’의 회복을 주창한 것인데, 우리 삶을 담고 있는 그릇에 이름 없음은 비극이다. 따져 보라. 죄수에게 번호가 있고, <>에나 번호가 붙는다. 그런 번호로 된 집에 똑같은 집에 사는 것, 정말 좋은가? 스스로에게 물어라. 집 이름을 짓는 것도 건축적 행위라고 했다. 자신이 사는 공간도 꾸몄다면, 내가 살고 있는 공간에 이름을 붙여줘라. 돈도 들지 않고, 의미도 발견할 수 있다.

 

(참고로, 커피 만드는 내가 꾸민 집의 이름은 수운잡방(需雲雜方)’이다. 조선 중종 때 안동 출신 김유가 지은 전통 요리서 이름으로, ‘풍류를 아는 사람에게 대접하는 특별한 요리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내 집에서 그렇게 풍류를 아는 사람들을 위해 커피를 비롯한 요리를 대접하고 싶다는 내 바람을 담았다.)

 

집을 가꾼다는 것, 삶을 가꾸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인생도 인테리어 작업과 비슷합니다. 좋아하는 것들을 수집하고 연구하고 표현하다 보면 그것들이 모여 진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게 해주고 기회를 가져다 줍니다.”(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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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적이었던 소녀는 어떻게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가 됐나!

『그림처럼 사는』『삶처럼 그린』 김지희


지난 6월30일, 서울 마포구 북카페 <공감의 기쁨>, ‘눈물과 미소의 화가 김지희 저자강연회’가 열렸다. 출판사 사옥이면서 북카페를 겸하고 있는 공간, 저자와 독자들 오붓하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김지희, 화가가 되고 싶었던 소녀


김지희 작가,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다. 내성적이었고, 말도 없는 소녀였다. 초등학교 때는 워낙 말이 없어서 주변에선 그를 벙어리로 오해하기도 했다. 부모는 맞벌이를 했고, 혼자 있는 시간, 책을 읽고 그림 그리는 것을 즐겼다. 밖에 나가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중학교 때 미술관을 많이 다녔다. 대가의 그림 앞에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게 신기했다. 죽은 지 오래됐는데, 사람들이 몰리고 그림이 뿜어 나오는 아우라에 압도됐다.


그러던 어느 날, 클로드 모네의 <생 라자르 역>을 봤다.

 

강한 열망이 피어올랐다. 나도 이런 화가의 길을 가고 싶다! 화가는 죽고 나서도 가치를 남기는 위대한 직업처럼 느껴졌다. 모네 그림에 영혼이 있는 것처럼 대화를 나눴다.

 

막연하게 화가의 길이 어렵다는 것은 알았다. 먹고 살기 힘들고 가난하다는 이유. 그런 생각이 들어서 정말 화가가 되고 싶은가를 물었다. 마음이 답했다. 힘들고 외롭고 쉽지 않아도 작가의 길을 가고 싶다.


“부모님께 화가가 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깜짝 놀라시면서 당장 미술학원을 그만두게 했다. 그게 1년 넘어 길어지면서 미술을 못하게 될 수 있겠다는 불안이 들었다. 예고를 가면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중학교를 수원에서 다녔는데, 주변에 변변한 미술학원이 없었고, 주변에 조언을 해줄만한 사람도 없었다. 학원 몇 군데를 돌아다녔다. 시험이 4주 남았는데,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다. 어머니를 설득했지만 실망을 많이 하셨다. 계속 하고 싶다고 하니까 결국 승낙하셨지만, 네 인생이 어떻게 될지는 책임 안 진다고 하셨다.”


소녀 김지희, 이를 악물었다. 이것조차 못 넘으면 안 될 것 같았다. 4주 밖에 안 남았지만, 매일 새벽까지 열심히 그렸고, 마침내 붙었다. 그러나 부모님한테 칭찬도 못 받고 외로웠다. 자신이 선택한 길, 스스로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양화를 선택했다. 다행히 고등학교에서 시선도 많이 받고 소질도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동양화를 선택했다. 생전 처음, 천재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러다 슬럼프가 찾아왔다. 고등학교 2학년. 그림이 안 그려졌다. 선생으로부터, ‘이런 실력으로 어떻게 예고를 왔니?’라는 호된 비난도 받았다. 상처였다. 슬럼프를 탈피하고자 했지만 별달리 나아지지 않았다. 어느 일요일, 학교에 가서 국화만 주야장천 그렸다. 다음날 새벽까지. 월요일 좋은 평가를 받았다. 마침내, 슬럼프를 탈출하는 순간.


“그 경험이 소중했다. 100장의 그림 중에 99장까지 별다른 변화가 없다가, 100장 째에서 뭔가 탁 풀리는 경험이었다. 안 풀려도 멈춘다고 생각하지 말고 될 때까지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지희, 작가의 길에 들어서다


고등학교 졸업했다. 서울대에 가고 싶었지만, 떨어졌고 이화여대에 입학했다. 화가가 되고 싶었고, 죽어서도 좋은 화가가 되고 싶었다. 대학도 하나의 과정으로 본격적인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했다. 대학 가서도 매일같이 그렸다. MT를 가건 미팅을 하건, 매일 작업실에 갔다. 단 30분이라도 무조건 그렸다.

 


“12시 15분이라는 시간이 긴장감을 줬다. 마지막 차 시간이 12시15분이었다. 4년 동안 수원에서 통학하면서 매일 그 시간이었다. 중간에 나갔다 와도 30분을 그렸다. 융통성이 없어 보일 수 있으나 그런 습관이 쌓였을 때, 좋은 화가의 길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했다. 과제 잘하고 학점 잘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방학 때도 일상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 수업도 열심히 했지만, 수업 외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다.”


그렇게 고민하다가 만든 것이 스터디 그룹이었다. 작가들을 주제로 공부를 많이 했다. 작가도 많이 만났다. 상도 받았다. 『예술가에게 길을 묻다』라는 책도 냈다. 의미 있는 활동이었다. 졸업을 했다. 부모님께선 교사가 되라며 교육대학원을 권했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일반대학원이었다. 조교를 했다. 문제는 조교를 하면 실기를 못한다는 점.


그가 선택한 것은 자투리시간 활용하기. 그 시간을 활용하니 학부생보다 실기를 많이 할 수 있었다. 개인전도 열었다. 25살 때였다. 개인전을 하겠다고 부모에게 기댈 형편이 아니었고, 공모전에도 숱하게 떨어지면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또 다른 길도 찾았다.


“대학원 졸업할 때가 됐고, 혼자 작업을 해 나갔다. 그림만큼 잘 하는 게 뭘지 생각했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니, 미술전문지에서 글을 쓰면 작업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지원을 했고, 글 쓰는 일을 하게 됐다. 작업이 차츰 알려지고 있는 상황이라 회사 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겠다고 말씀 드리고, 일을 시작하게 됐다. 그러면서도 붓을 한 번도 놓은 적이 없었다.”


문제는 생각보다 일이 많았다는 것. 일을 시작하면서 다짐했다. 네 시간을 내 작업시간으로 삼자. 새벽 1시에 들어오면 새벽 5시까지 그림을 그렸다. 1~2시간 눈 붙이더라도 그렇게 했다. 하루에 3~4시간 자고, 주말엔 자신의 그림을 그리면서 남들과 똑같이 일했다. 그리고 개인전도 하면서 작가로서의 입지도 굳혀갔다.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결국 몸에 탈이 났다. 빈혈도 심해지고, 어지럼증도 있고, 가만있으면 머리도 띵하고. 갑상선에 혹도 생겼다. 병원에 갔다. 다행히 양성이었다. 내가 이일을 사랑한다는 생각도 새삼 들었다. 피하지 않고 부딪혀서 해결하고 걱정과 두려움에 집착하지 않으면, 평상심을 찾고 하고자 하는 일을 하니, 잘 풀리더라.”


열심히 하니, 기회도 왔고, 그 기회가 오기 전까지는 엄청나게 준비를 했다. 김지희 작가의 삶의 스타일이었다. 일을 하면서 알았다. 기회가 당장 다가오지 않아도 준비를 하고 있으면 기회는 언젠가는 온다는 것을. 20대 안에 북 아트페어에 나가자는 꿈을 키웠고, 계속 준비를 했다. 미술상을 수상하면서 결국 뉴욕 아트페어에 초대받았다. 그의 깨달음이었다. 당장 눈에 띄지 않아도 준비하고 있으면 기회가 다가온다는 것을.


“주변에서 반대를 많이 하고 아무도 날 지지하지 않고, 친구들보다 환경이 나쁜 것 같아도, 오히려 그게 내겐 좋은 기회였다. 절실하게 내 길을 걸었다. 외롭고 힘들어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눈앞이 보이지 않아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니 그런 걸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선택을 할 때, 주변의 조언도 좋지만, 진심으로 고민하는 당사자는 자신이다. 부모도 나만큼 진지하게 고민 못한다. 자신을 꾸준히 일관되게 들여다보면, 내 길이 보인다. 나도 운이 좋았다. 젊은 작가들이 화단에서 주목받는 시대가 됐고, 활동무대도 넓어졌다. 이런 좋은 환경에서 사랑 받을 수 있는 건 운이 좋아서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단순하게 자신을 믿고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행복한 약속을 하면 나아갈 수 있는 기회들이 있을 것이다.”


Q&A

 


연애할 시간이 있나?


그 와중에도 연애를 계속 했다. 나도 바쁘고, 그도 바쁜, 같이 바쁜 사람을 만났다. (웃음)


외모는 새침해보이고,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는데, 얘기를 들으니 배울 게 많다. 평정심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게 습관이 된 것 같은데,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 외국에 나갈 기회가 많을 텐데, 노하우가 있다면?


어렸을 때, 스트레스를 풀려고 그렸던 것이 그림이었다. 작업하면서 스트레스는 별로 안 받았다. 잘 안 그려질 때도 그림이 좋아지는 것에 대한 만족이 있었다. 그림, 글 모두 해소하는 것에 가까웠다. 외국어도 꾸준히 공부해서 잘 하는 게 해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자신감을 갖고 하면 되더라. 해외에서 인터뷰를 하면 물어볼 질문이 빤하니 거기에 대한 준비를 했었다. 해외에 나가 유명 평론가랑 인터뷰를 한 적도 있는데, 신경이 많이 쓰이더라. 그 전에 너무 바빠서 인터뷰 준비를 제대로 못했는데, 바쁜 와중에 100개의 영작을 틈틈이 했다. 비행기 안에서 그것을 외웠다. 그 분을 만나 다행히 후회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인터뷰를 했다.


낸시 랭과 살짝 비슷한 것도 같고, 롤모델이 있나?


낸시 랭과 그림이 약간 비슷하다. 캐릭터에 가까운 그림들. 낸시랭은 팝아트고, 그래서 비슷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화가도 다양한 모델이 있으면 좋겠다. 그림을 그리고 싶고, 작가가 되고 싶었을 때, 롤모델이 눈에 띄지 않았다. TV에도 나오고 작품 활동도 일반인들에게 비춰질 수 있을 만큼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이 없었다. 많은 팝아티스트들이 요즘 활동을 많이 하는데, 그런 활동이 아티스트들이 살아가는 길인 것 같다. 낸시 랭은 방송활동이 적성에 맞아서 잘 하지만, 난 퍼포먼스 이런 걸 잘 못한다. 워낙 내성적인 성격이라 그걸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낸시 랭처럼 액티브하게는 못해도 다른 방향에서 그림을 그리고 전시나 작품 위주로 관객과 계속 만나지 않을까?


동생이 의상디자인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내가 엄청 반대를 했다. 김지희 작가를 뵈니 죄책감을 느끼는데, 지금이라도 하면 늦지 않았을까? 미술 하는 게 돈도 많이 들어서 가정에서 뒷받침도 해야 하는데, 지금이라도 후원을 하면 할 수 있을까?


정말 하고 싶다면 박봉일 수도 있고, 돈을 못 버는 한이 있어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으면 한다. 나도 화단에서 힘든 모습만 주로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어서 한 것이다. 서른, 마흔이라도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최악의 상황에서도 예스라는 답이 나오면 후회 없이 할 수 있다. 성공 여부보다 내가 이 일을 해서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으면 해야 한다.

 


어렸을 때 롤모델이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화가로 살면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나?


어디선가 들은 게 있으니 그랬겠지. 지금도 왜 사람들은 화가라고 하면 가난하고 힘들다는 생각을 먼저 하는지 모르겠다. 나도 그랬긴 하다. 음악이나 다른 예술분야에선 스타가 있는데, 미술에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 역사에서 많은 화가들이 가난하고 요절한 사람이 많다보니, 힘들게 살다가 죽어서 조명을 받고 그러다보니, 그런 것 아닐까?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나?


식사를 조심한다. 인스턴트와 같이 좋지 않은 것을 안 먹는다. 과음하지도 않고. 담배 안 피고. 스트레스 평소에 안 받으려고 노력하고. 집에 갈 때도 한 정거장 전에 내려서 걷는다. 술 마실 때 너무 늦게까지 마시고 그러지 않고, 먹는 것부터 조심한다.


[예스24 기고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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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내가 한 이 말, " 음악 없는 여름은 상상할 수 없다."
137% 리얼이다. 물론 여름 아닌 다른 계절이라고 다를 쏘냐 마는. 그럼에도 여름을 빛나게 해주는 요소에 음악은 반드시 포함된다. 

비 오는 여름밤, 정민아의 연주와 노래는 그야말로 '폭풍'이었다. 
연주할 때 정민아는 정말이지 눈부시도록 빛났다. 
행복했던 유월의 어느 밤. 나는 그 가야금 연주에 매혹됐던 그 밤을 여전히 기억한다. 
정민아, 쵝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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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진실 씨가 이 책을 쓰는데 박차를 가하게 만들었다”

『덴동어미전』 박정애


대개의 한국 남자들, 소아병적인 연대를 한다. 알코올 연대. 오죽하면 이런 우스개가 있을까. “한국 성인 남자는 여가의 절반을 술을 마시는 데 사용하고 나머지 절반은 술을 깨우는 데 사용한다.” 그들은 술이 없으면 ‘반심불수’다. 술자리를 갖고 술에 취해야 의리를 찾고 정을 느낀다. 퇴행적 온정주의.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이 아님에도, 꼭 그래야만 버티는 서글프면서도 미성숙한 연대 아닌 연대.


그러나 여자들은 다르다. 여자들의 연대는, 남자들의 것이 짝퉁이라면, 진짜다. 이야기를 많이 하고, 서로를 위로해준다. 목적지향적인 남자와 달리 여자는 관계지향적이기 때문이다. 경쟁적으로 남자들의 관계가 형성된다면, 남녀관계는 성적 긴장감이 있고, 여자들의 관계는 피지배자의 연대감이 개입, 그들을 묶는다.


과거, 화전놀이에서도 그 전통을 찾을 수 있다. 가부장제가 심한 영남 지방에서 1년에 한 번 여자들만의 축제. 수다를 떤다. 각자의 처지를 털어놓고 서로를 위로한다. 이야기 치료의 장. 그리고 『덴동어미전』은 기고한 덴동어미의 생을 통해 여성들의 연대를 보여준다.

 



그리고 지난 6월29일, 서울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 『덴동어미전』 출간 기념 소설가 박정애와 함께하는 북콘서트가 열렸다. 사회자는 이날 부산에서 올라온 소설가 서진. 여름비가 내렸고, 훈훈한 이야기가 오갔던 이날의 풍경. 모던가야그머, 정민아도 함께 했다.  


이 책, 어떻게 쓰게 됐나?


소설의 모티브가 된 ‘화전가’가 있다. 작자 미상이다. 보통 내방가사와 달리 이야기가 있고, 캐릭터도 선명하다. 학자들이 다른 화전가와 구분하기 위해 ‘덴동어미전’이라고 이름 붙였다. 『구운몽』이나 『한중록』처럼 유명한 고전은 아니다.


“이 소설의 모태는 《소백산대관록》이라는 필사본 시가집에 실린 작자 미상의 <화전가>입니다. 여느 화전가와 달리 덴동어미라는 인물의 성격과 이야기가 뚜렷이 살아 있어 <덴동어미화전가>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하지요.”(p.242)


내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나온 적 없었고, 대학에서도 신문학과를 나왔는데, 그때도 몰랐다. 대학원 때도 현대소설을 접해서 몰랐다. 박사과정에서, 현대소설 전공도 고전문학 수업을 듣게 되면서, 비로소 만났다. 수많은 고전을 접했는데, 덴동어미 화전가는 마음에 닿는 부분이 있었다. 마음의 현을 건드리고 울렸다. 아마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을 때라 그랬던 것 같다. 한줌 먼지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어머니가 등과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주듯, 덴동어미 화전가가 치유에너지를 줬다. 이후에도 힘들 때, 치유가 됐던 경험이 있었다. 언젠가는 장편소설을 써야지 했다. 3~4년 전 시작했었는데, 어느 날 최진실 씨가 갑자기 갔다고 그러더라. 애들 두 명 남겨놓고. 죽음의 길은, 번복할 수 없잖나. 사람이 어느 하나에 사로잡히면 눈이 머는데, 내 불행에 눈이 멀면 다른 걸 못 본다. 세상엔 그런 경우가 너무 많고, 덴동어미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받은 치유에너지를 함께 하고 싶어서 박차를 가했다.


오늘도 사는 게 힘든 당신,

제 설움에 눈멀어 ‘다른 길’, ‘다른 풍경’은 통 못 보는 당신.

어떤가요, 저 비봉산 화전놀이에 슬그머니 끼어보심이? 덴동어미의 마술 같은 말에 당신의 상한 마음을 얹어보심이?”(p.246)




화전가를 모티브로 했다는 것은 알았다. 그래서 날로 먹은 것 아닌가, 물어봤다. (웃음) 뒷부분이 특히 좋았다.


내방가사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기본적으로 시가 문학이고, 분량이 길진 않다. 덴동어미라는 인물을 가져왔으나 사건 등은 여러 가지를 내가 만들었다. 날로 먹은 건 아니다. (웃음) 처음과 뒤는 완전히 새로 창작한 것이다.


남편이 네 번 바뀌었고, 덴동어미에 대한 해학적 이야기를 무척 재밌게 읽었다. 


되게 슬픈 이야기인데, 해학적으로 읽었다고? (웃음) 당시는 결혼을 하면 친정나들이를 못했었다. 시집을 가서 1년 뒤에나 친정을 간다. 그래서 여자들에게 가장 좋은 나들이가 친정 나들이, 그 다음이 화전 나들이였다. 첫 번째 남편은 그네를 타다가 죽고, 두 번째도 남편이 망하고 역병에 걸려서 죽는다. 경주에서 바깥머슴 안머슴을 부리고 살다가 경주에 역병이 돌면서 남편이 죽는다. 돈 빌려준 사람도 다 죽고, 결국 덴동어미가 구걸을 한다.


남편이 죽고 나서 구걸도 하고 그런다. 요즘 같으면 목숨도 위태롭고 보살펴 주지 않는데, 이때는 인정이 남아서 동네 사람들이 도와주고, 새로운 인연을 만난다. 그릇 장사하는 남자.


두 번째 남편이 죽고 걸인이 돼서 울고 있는데, 그릇 장사하는 노총각이 다가와서는 너무 서럽게 운다며 덴동어미의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릇 장사하는 남자가 마음 맞춰서 살아보자고 해서 함께 살아간다.


사투리를 아주 구수하게 구사했다. 

 

사투리가 처음에는 읽는데 애로가 될 수 있는데, 고비만 넘기면 재밌게 읽을 수 있다. 많이 사랑해 달라. (웃음) 내가 친숙해서 그렇지, 다른 지방 사투리였으면 엄두가 안 났을 거다.


마지막에 나이 든 엿장수 남편을 만났다. 그때 애가 나온다. 불에 대였다고 ‘덴동’이다. 불에 데인 아이라는 뜻이다. 결국 그 남편도 죽는데...


마지막 남편인 조 첨지와 덴동어미가 아이 재롱에 빠져서 대목이 온 줄도 모른다. 조 첨지 친구가 애를 위해 돈을 벌라고 하자, 사흘 밤낮 엿을 만들었다. 열기가 가득 찬 상황에서, 동해안에 푄현상이 있는데, 심한 바람이 분다. 초가집이 홀랑 타고, 남편도 불에 타 죽는다.



네 명의 남편이 죽고, 친정도 망했다. 그때 덴동어미를 보살펴 준 사람이 안동댁이다. 주변 사람도 함께 보살펴주고. 그리곤 마을 사람들과 화전을 간다.


화전놀이가 영남 지방에서 성했다. 영남이 가부장제가 가장 강했다. 여자에 대한 억압이 심했던 거지. 그래서 여자들이 숨 쉴 수 있는 숨구멍이 있어야 했는데, 1년에 하루 여자들끼리 화전놀이를 나갔다. 배불리 먹고 수다를 떨면서 산천 구경도 한다. 영남 지방 여자들은 꼭 이걸 지키려고 한다. 여자들의 명절이지. 다른 명절은 ‘일 명절’일 뿐이었다.


그 좋은 날, 10대 청상과부가 계속 울고 있다. 함께 놀러가서 한 사람이 울면 분위기가 가라앉잖나. 이유를 들어보니, 친정에서 개가하라는데, 그 자리도 전실 자식이 줄줄이 딸려 있는 거다. 어떻게 해야 할지 죽고 싶은 거다. 진달래가 자기를 비웃는 것 같고, 바람소리도 슬프고, 꾀꼬리는 보기도 싫고. 다 싫은 거지. 왜 나를 화전놀이 오자고 했느냐고.


이때 덴동어미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풀고, 깨달음을 말한다. 이야기 치료라는 것이 있다. 정신과 치료도 억눌려 있던 자신의 감정, 분노를 말로 풀어내는 거다. 화전놀이를 하면서 집단 치유의 장이 열린 셈이다.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불현듯 깨닫는다.


그때 달실댁과 안동댁의 수양딸 봄이가 어떻게 변하는지가 주제라고 생각한다.


과거 여성들은 개가와 수절의 프레임에만 갇혀 있었다. 다른 길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 덴동어미가 말해준다. 덜 가파른 비탈길이 있을 수도 있고, 계곡을 돌아가는 길도 있을 거라고. 개가 여부만 놓고 고민하지 말라고 한다. 당시가 1920년대였는데, 학교 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도 해준다. 개가 여부에 갇히지 말고 다른 풍경에 눈을 돌리라고 말한다.


여성들의 연대의식이 특이한가 보다. 남자들 술 마시면서 연대한다. 우리 친구 아이가, 그러면서. 그런 연대의식과 여성들의 것은 다르다.


아직도 여름마다 만나는 친구들이 있다. 고등학교 때, 대구에서 자취를 같이 한 친구들이다. 이 친구들과 만나면 여행보다 이야기를 많이 한다. 서로 위로해주고. 그런 시간이 좋다. 대학 때 함께 책을 읽고 격려해준 부분이 지금도 내 인생에서 큰 역할을 한다. 지금은 그런 전통이 많이 사라졌지만.




Q&A


말씀하신 이야기 치료, 진짜 공감한다.  


덴동어미도 남편들이 계속 죽고, 자신도 죽으려고 한다. 그때, 할머니들이 꽃도 필 때가 되어야 핀다는 식의 이야기를 해준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서 새로운 눈을 뜨는 거다.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좋고, 없으면 책이라도 읽어야 한다.


원전을 조금 훑어봤다. 이렇게 여인의 일생을 다룬 조선시대의 다른 문학이 있나? 또 영화나 뮤지컬로 제작할 의향은 없나?


없다. 한 여인의 일대기가 살아있고 기록된 것은 덴동어미전이 유일하다. 영화나 뮤지컬 같은 것, 제작하면 좋은데, 돈이 없어서 못한다. (웃음) 자본 있는 분들이 해줬으면 좋겠다.


수업을 들은 학생인데, 수업 때 보면 거침이 없으셨다. 책 역시 거침이 없다. 비결이 뭔가? 타고 나는 건가, 노력의 결과인가?


내가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쓴다.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기도 하지만, 내가 쓸 수 있는 것을 쓴다. 나는 서진 작가처럼 뉴욕의 좀비 이야기는 못 쓴다. 나는 청도 초가집에서 10년을 살았다. 소 키우고 막내 동생 업어서 키우고. 그래서 이런 늙은 소설 쓰는 것 같다. (웃음)


또 살던 곳이 집성촌이어서 나가면 다 삼촌, 아제, 이모였다. 그래서 그런 세계를 형상화하는 것 아닐까? 나는 내 속에서 이야기가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걸 쓴다. 전업소설가가 아니라서 시간이 파편적인데, 앞에 쓴 것을 읽어보고 그 리듬을 타면서 읽고 쓰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그 이음새가 거침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오늘, 다른 책이 나왔다. 『사람 빌려주는 도서관』이라는 책이다. 어린이 책, 청소년 책도 썼는데, 책이 사람에게 가장 영향을 미치는 시기는 청소년기다. 나도 청소년기에 읽은 책이 내 삶의 방향을 바꿨다.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하고,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그때 읽은 책 덕분이다. 


그래서 청소년 책의 힘을 높이 평가한다. 책임감도 느낀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것도 청소년 책이고, 앞으로도 청소년 책 몇 권을 더 쓸 것 같다.


하나만 소개하자면, 원주 출신의 기생이야기다. 엄마가 기생, 아빠는 양반인데, 기생의 딸은 기생이 된다. 기생 아들에게 시집을 가든지. 김금원이라는 아가씨도 길이 두 가지였다. 기생집 아들에게 시집가든지, 기생이 되든지. 그런데 이 아가씨가 몸은 약했는데, 열네 살에 부모와 담판을 짓고, 남장을 하고 전국 여행을 떠난다. 구경도 실컷 하고 돌아 와선, 내 인생 살겠다며 기생이 되는 여자의 이야기다.


운명이나 팔자를 넘어서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김금원은 나는 왜 이 모양이냐고 생각하지 않았다. 요즘으로 치면, 성적 압박 등으로 죽고 싶을 때, 죽느니 여행을 하는 게 나은 것 같다. 그렇게 조선시대, 여자, 신분의 한계에 묶여서 힘들었던 열네 살 소녀가 세상을 구경한 이야기를 준비 중이다. 그리고 이 여성이 여행기를 남겼다. 여행기도 짧고, 한문으로 써서 독자들이 감흥을 받기 어렵다. 그것을 텔링하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폭발, 모던가야그머 정민아


이것으로 끝, 아니다. 박정애 작가, 이날의 하이라이트라며 ‘모던가야그머’ 정민아를 소개한다. 가야금 싱어송라이터이자 3집 가수. 좌중을 휘어잡는 포스 그리고 카리스마의 등장이다.



“『덴동어미전』이 화전놀이를 하는 이야기다보니, 가야금 하는 사람을 부르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 책, 나도 재밌게 읽었다. 그리고 덴동어미전 북콘서트에는 정민아가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다. (웃음)「천안도 삼거리」라는 민요를 첫 곡으로 연주하겠다.”


계속 흥을 잇는 다음 곡은 「민아 탱고」. 첼리스트 이경준, 베이시스트 황현우와 함께 정민아의 연주가 하늘을 난다. 가야금과 첼로, 베이스가 어우러진 탱고. 멋지다. 뭉클하다. 음악은 글로 표현할 수가 없다. 표현한다고 시도하는 것, 과욕이다. 눈물 난다. 문득 생각했다. 음악이 없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았을까.


다음 곡, 「새야 새야」.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멘트가 아닌 음악을 하는 정민아의 목소리는 왠지 처량하다. 이 노래의 정서에 그대로 몰입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샅샅이 파고든다. 새를 생각했다. 파랑새. 녹두꽃이 떨어지는 풍경의 파랑새.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풍경. 역시나. 음악이 없었다면 나는 어떻게 살았을 것인가. 여름날의 금요일 밤, 나는 당신을 생각한다. 이 순간, 당신과 함께 한 모든 순간.


“『덴동어미전』 읽으면서 줄을 치면서 읽은 구절이 있었다. 화전가의 일부분이었다. 작가의 말을 봤더니, 살아가면서 힘들 때면 화전가를 읽는다고 하셨더라. 나랑 통한다고 생각했다. 여성들이 가진 인생에 대한 애환, 역경에 마음이 갔다. 결혼은 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웃음) 그런 의미에서 지금 곡은 어울릴 것 같다. 들으면 눈물 쏙 뺄 곡이다. 「무엇이 되어」라는 곡인데, 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에 올라가 있다.”


바람이 돼야 만날까/ 구름이 돼야 만날까/ 강물.. 바다.../ 그대가 무엇이 되었어도 그 무엇이 되었어도, 난 그대 가까이 있는 무엇이 되고 싶네/ 물고기로 이별할까, 가재 되어 이별할까/ 그대가 무엇이 되었어도 그 무엇이 되었어도/ 난 이대로 그대와 나 사이/ 이별 안에 있네/ 그대가 무엇이 되었어도, 그 무엇이 되었어도/ 난 이대로 그대와 나 사이에 이별 안에 있네/ 무엇이 되어 만날까. 어찌 이별할까.



“<환타스틱 모던가야그머>. 저를 다룬 작년 8월 개봉했었던 영화다. 2주 만에 내렸다. 친구가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려줬다. 영화 목록인데, 카테고리 타이틀이 ‘모태솔로 영화관’인데, 그 영화가 독립영화 중에 유일하게 올라가 있더라. 내가 어디까지 진출할 수 있는가, 해서 영광스러웠다. (웃음)”


정민아는 음악할 때 가장 빛난다. 「잔상」이라는 연주곡에 이어 화전놀이 가는 기분으로 「풍년가」를 불렀다. 얼쑤~ 좋다~ 추임새를 넣고, 박수로 박자를 맞춘다. 절로 흥이 난다. 눈물 날 것 같던 시간이 흥겨움으로 변했다. 울다가 웃다가, 어디 구멍에 털 날 것이다. 그리고 앵콜. 연인을 위한 노래라고 했다. 「의심」. 짝사랑했을 때, 그 사람이 날 기억할까, 라는 마음으로 부른 노래. 음악이 있어 아름다운 여름밤. 음악 없는 여름은 상상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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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다른 삶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여신과의 산책』 이지민․한유주


“기록적인 폭염이었다. 내 몸뚱이가 거추장스럽게 여겨지는 더위였다. 그 더위 속에서 첫 키스를 했다. 막 연애를 시작한 박준호와, 나를 데려다주던 길의 아파트 놀이터에서였다. 잡은 손은 땀으로 미끄덩거렸다. 서툰 입맞춤이었으므로 침 냄새가 짙었다. 그래도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김이설․「화석」, p.81)


딱 그런 날들의 연속이다. 기록을 넘어서 폭풍 같은 폭염. 그런 날에도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일이 있을 수 있다면, 여신과의 산책? 여덟 명의 작가들이 한데 모였다. 문학이라는 숲을 이뤘다. 숲은 무릇 환상이다. 온갖 생명들의 분투가 있고, 우연이 질서와 교차한다. 폭염마저 잠들지 못하는 여름밤, 당신을 그런 환상으로 안내해줄 소설이다. 『여신과의 산책』.  문학평론가 조연정은 ‘기이하고 쓸쓸한 우연’이 담겨 있다고 표현했다.

 


지난 6월28일, 서울 홍대 부근의 한 카페, 여신들이 강림했다. 여덟 명의 저자 가운데, 두 명. 이런 타이틀이 걸렸다. ‘이지민 한유주 작가가 펼치는 북콘서트 : 문학의 숲을 함께 거닐다’. 진행은 조연정 문학평론가의 몫. 문학의 숲에 찾아든 세 요정은 어떤 이야기를 나눴을까.


이 여름, 어떻게 나고 있는지 근황을 묻고 싶다. 


이지민(이하 민) : 이런 자리, 쑥스럽다. 이렇게 독자와 가까이 있은 적은 처음이다. 근황은 올 초에 둘째를 낳았다. 아이 키우느라 정신없다. 생업인 영화 관련 일도 하면서 잘 지내고 있다. 공저인 이 책이 나와서 부끄러운 동시에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있다.


한유주(이하 주) : 무슨 이야길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더워서 입맛이 없다. 이틀에 한 번씩 팥빙수를 먹는다. (웃음) 그런데 2인분씩만 팔아서 되게 화가 나는 근황을 맞고 있다.


나도 화난다. 팥빙수 좋아하는데. 커다란 팥빙수를 연인끼리 먹고 있으면, 나는 이걸 집에 가져가서 먹어야 하나 생각도 들고. (웃음) 이번 책, 공저인데, 공동으로 작업한다는 것에 대해 듣고 싶다. 


민 : 인터파크 웹진에 다달이 한 명씩 작품을 발표했었는데, 그땐 읽지 못했다. 이번에 단행본으로 읽었더니 주변 공기가 통일된 느낌을 받았다. 의논해서 어떤 주제로 쓰자고 한 적 없는데, 죽음에 대한 이야길 많이 하고 있더라. 기성 작품에서 많이 보는 무거운 이야기가 아닌 삶의 과정이나 죽음을 다른 톤으로 느끼는 정서를 많이 표현했더라. 제각각 작업했는데도 색깔이 완전히 다르지 않고 어우러질 수 있다는,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이상한 일이다. 여덟 명의 소설가가 여덟 편의 소설을 내놓았다. 마치 여덟 명의 제빵사가 여덟 개의 케이크를 구운 것과 같다. 당연히 달콤한 맛이 난다. 그런데 이상하다. 달콤하면서 슬프다. 부드러우면서 깔끄럽다. 차갑게 혀에 닿는데 삼키면 뜨겁다. 별맛이다. 이 인간들, 도대체 안에 무얼 넣은 것일까.”(p.6)


주 : 이런 작업을 많이 했다. 이번 작품은, 끼워달라고 했다. 앤솔러지(동인지 혹은 공동협업)작품이 내가 단독으로 쓴 작품보다 별점이 높더라. 좀 묻어가려고. (웃음)


독자 입장에선 여러 명의 작품을 한데 읽을 수 있다는 게 흥미롭다. 이지민 작가의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들었다. 계기가 있었나?


민 : 가까운 지인의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부모의 임종을 놓친다는 건 근원을 놓친다는 건데, 사귀는 남자마다 그렇게 되니까, 당사자는 섬뜩함을 느끼나 보더라. 자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는 죄의식을 느낀다고 주변 분이 말해주셨는데, 그때 영감을 받았다. 인생의 어떤 중요한 부분이 모르는 사이에 지나간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당사자에게 허락을 얻고 썼다. 영화화 되면 판권을 준다는 조건으로. (웃음) 그런데 아직 그 친구에겐 책이 나왔다고 말을 못하고 있다. 실망하면 어쩌나 싶어서. 언젠가는 들키겠지. 이 자리엔 없지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웃음)


이전 작품을 썼을 때도, 주변 사람의 이야기를 가져왔나?


민 : 난 그렇게 사교적이지 않은데, 주변에서 많은 이야길 해준다. 청탁처럼 자기 이야기를 써달라고 한다. 단편 등에도 실제로 일어난 에피소드들이 있었다. 이야기를 모으기도 하고. 주변에서도 많이 이야기해줘서 작품 활동에 이용(?)해 먹고 있다. (웃음)


한유주 작가 소설을 보면 서사의 해체 등을 말하는데, 이번에는 정황이 그려지더라. 산울림 노래를 듣고 지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창작의 동기가 있다면? 


주 : 두 가지가 있다. 산울림의 노래,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를 많이 좋아한다. 1년에 50회 이상 반복해서 듣곤 한다. 언젠가는 이 노래를 소재로 소설을 쓰겠다고 말했더니, 김태용 작가가 자신도 쓰겠다는 얘길 한 적이 있다. (웃음) 그렇게 쓰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문학과 의학>이라는 잡지에서 죽음을 주제로 한 콩트를 써달라고 청탁을 하더라. 몽블랑 등 만년설을 생각하고 썼는데, 그 노래를 갖다 붙였다.




이지민 작가는 주로 장편을 썼다. 단편을 한 편 썼는데, 인물이 삶에 권태를 느끼기도 하지만 유머나 여유가 느껴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분위기가 엄숙해지고 달라졌다. 


민 : 그때 내지 않으면 영원히 못 낼 것 같아서 단편집을 한 번 냈었다. 그때 이후 모아놓은 단편을 생각해보니, 지금 달라진 것 같다. 톤다운 됐다고나 할까? 나는 이야기 위주의 활동을 한다. 이야기 속엔 작가가 교묘히 숨기도 하고, 자신을 과감히 드러내기도 하는데, 나는 아직 과감히 드러내진 못했다.


나는 운명을 항상 말하고 싶다. 운명과 숙명은, 다르다. 예를 들어, 내가 작가가 된 것은 운명인데, 계속 작가로 살 수 있는지 여부는 숙명이다. 또 사랑에 빠지는 건 운명이다.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건 숙명 같은 거다. 이를 갈면서 유지해야 하는. (웃음) 예전 작품과 몇 개의 단편을 보면, 쉽사리 운명을 바꿀 거라고 단정하지 않고 초탈해가면서 묻어가고, 그러면서도 운명을 숙명으로 바꾸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한유주 작가와 작품 사이엔 괴리가 느껴진다. 작품을 보면 치열한 글쓰기나 자의식이 느껴지는데, 작가는 소년 같다고 해야 하나. 그런 괴리에서 재미가 느껴진다. 이번 작품에선 죽음을 앞둔 작가가 아무 것도 쓰지 말았어야 했다는 얘기를 한다. 반면, 다른 작품에선 끈질기게 쓰겠다는 구절이 있다. 이런 차이에 대해서도 듣고 싶다.   


몇 년 전 영국 시트콤을 봤다. 주인공 남자 셋 중에서 두 명이 약속을 한다. 한 명이 먼저 죽으면 산 사람 집에 가서 침대 밑의 야동이나 야한 잡지를 없애주기로. (웃음) 나는 오래 살고 싶은데, 죽고 나서 내가 펴낸 책이 계속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니 좀 간지럽더라. 소설 속 화자와 나는 동일인물은 아니지만, 화자도 쓰는 것이 무용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미 쓴 것에 대한 자책감이나 자괴감도 있을 테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죽음 이후는 내게 중요하지 않으니까, 다음 작품에서 끈질기게 쓰겠다는 말을 한 것 같다. 


한유주 작가에게 글쓰기는 왜 중요한가?


이게 제일 적성에 맞다. 다른 걸 잘 못해서. 아니, 다른 것도 있긴 하다. 빙수 먹기, 이런 것. (웃음)


이어 본인 작품 중에 독자들과 함께 읽고 싶은 부분을 낭독한다. 우선 이지민 작가의 「여신과의 산책」.


“그가 하늘을 바라보며 고개를 젖혔다. 오뚝하게 솟은 콩에 햇빛이 떨어지자 해시계처럼 옆으로 그림자가 누웠다. 그림자의 바늘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는 그렇게 한동안 얼굴 위로 시간이 지나가도록 놔두었다.… 그러나 그는 그 ‘후회’를 오랫동안 준비해온 사람이었다. 나는 벤치에 힘없이 앉았다. 처음으로 나란 존재가 타인의 운명에 관여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신비로웠다.”(pp.39~40) 


“‘여신’이라는 제목 때문에 홍대 여신을 생각하고 읽다가, 그 여신이 아님을 알고 반전이랄까? (웃음) 우리의 삶을 견디게 하고 가능성을 주는 건 의외성과 반전이라고 본다. 이걸 쓰면서 이 남자랑 잘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 가능성을 이야기해준 대목이라고 생각해서 낭독했다.”


한유주(「나무 사이 그녀 눈동자 신비한 빛을 발하고 있네」)도 읊는다. “사람들이 멀어진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일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안전 요원들이 관광객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일에 정신이 팔려있을 때, 천천히 전망대를 둘러싼 울타리를 넘어간다.… 그리고 나는 천천히 전망대의 반대편으로, 더 깊고 더 차가운 눈이 있는 곳으로, 무릎까지 올라오는 눈을 헤치며, 걷기 시작한다.”(pp.69~70)


“작년 겨울에 몽블랑을 갔다. 케이블카가 있더라. 타고 올라갔는데, 머리가 아프더라. 높고 춥고 바람이 많이 분다. 햇볕은 뜨거운데, 춥다. 정신도 없었다. 거기서 스키를 타고 내려가는 사람이 많다던데, 나는 스키를 타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처럼 돌아다니는 사람도 많다. 걸어서 그 산을 내려갈 수 있으면 더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본 광경을 생각하며 썼다. 물론 내가 갔을 때는 겨울이라 여름에는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겠다.”




두 작가의 작품 경향이나 요소가 다른데, 서로의 작품을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하다.


민 : 어제 처음으로 한유주 작가와 얘기를 나눴다. 작가도 다른 작가의 독자여서 작가에 대한 환상을 안 깨려고 말을 안 나눴던 것도 있다. (웃음) 예전부터 한유주 작가의 작품을 좋아했다. 이번에 작품을 함께 했는데, 요새 뭐하면서 살까, 독자로서 작가를 상상하고 작품 내외적인 것을 떠올리고 환상을 유지하면서 잘 읽었다. 똑바로 쳐다보질 못하겠다. (웃음)


주 : 여신이 행운의 여신이 아닌 불운의 여신이고, 누군가 찾아와서 화자의 불운을 이용하려고 하는 것이 내가 시도하지 못하는 부분이라 되게 부러웠다.


공통적인 질문이다. 이지민 작가의 『좌절금지』라는 장편을 재밌게 읽었다. 여성의 삶이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이라는 점이 작품을 쓸 때 어떻게 작동하는지? 여성 작가로서의 여성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 적이 있는지?


민 : 작가가 되기 전, 가정환경이 자유롭고 전혀 터치 받지 않고 방목하는 집안이었다. 기본적인 생활규범도 안 지키고 윤리의식도 없고, 한 마디로 가정교육을 못 받았다. (웃음) 그래서 작가가 된 것일 수도 있다. 규격화된 삶을 살지 않아도 되는. 오히려 작가가 되고 나서, 사회 경험도 많지 않고 사회성도 부족해서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한민국 평균처럼 살아가는 친구나 주변을 관찰했다. 평균적인 삶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관찰하고 그런 인물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내 캐릭터로 소설을 쓴다면 이상한 여자가 나올 것 같다. 평균적인 여성의 삶을 나는 외려 이해하고 싶다. 중산층이 되고 싶은 여성의 욕망을 통해 나의 욕망도 들여다보고. 나도 잘 모르지만, 다른 사람도 이해하고 싶어서 그런 주제를 많이 다루는 것 같다.


주 : 7~8살 때, 크면 남자가 되는 걸로 믿고 있었다. (웃음) 여자라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그런 적이 많진 않다. 그런 것이 있음은 인지하고 있지만. 아버지가 여자들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살았는데, 아버지가 안 됐더라. 글을 쓸 때는, 의식적으로 여자로 하지 않으면, 화자가 늘 남자가 된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남자 작가들의 소설을 보면, 100%는 아니지만, 짜증을 부르는 경우가 있다. 여자가 객체, 도구가 되는 경우가 그렇다. 그걸 인지하고 아니고는 결과물에서 차이를 드러내는 것 같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집안을 다 말아먹고 집안 재산을 빼돌려서 케냐 같은 곳으로 갔을 것 같다. (웃음)


독자와 작품이 만날 때 공감을 가장 쉽게 얻는 요소는 이야기라고 본다. 독자와 어떤 것을 공유하고 싶은지, 두 작가에게 묻고 싶다. 


주 : 세계의 본질은 애매함이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세계는 확실하지 않다는 것을 공유하고 싶다.


민 : 대부분 요리사들은 자기 요리를 한 명이라고 맛있게 먹어주면 좋다고 말하는데, 나는 내 책을 많이 읽으면 좋겠지? (웃음) 그런 건 나이가 더 들수록 생각 않게 된다. 외려 작품과 나의 관계를 더 많이 생각한다. 내가 감히 누굴 위로하고 공감을 일으킬 수 있을까. 나도 작품을 통해 위로를 받고 싶을 때가 있다. 요즘은 그렇게 활동하고 있고, 공감이라는 차원에서 쓰는 것이 아니라, 작품과 나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즐기고 있다. 누군가가 이걸 잡아 낼 수도 있을 텐데, 독자가 그 정도만이라고 얻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두 분, 소설가면서 다른 작업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소설가다. 소설만의 특이성이 뭐라고 생각하나? 소설을 많이 안 읽는 시대, 왜 쓰고 읽어야 한다고 보는지 말해 달라. 


주 : 데뷔하고 나서 수많은 악플에 시달렸다. 이것도 소설이냐, 와 같은. 그래서 시를 쓰는 시도를 해 봤는데, 결국 못 썼다. 시인들이 가장 위대한 존재 같더라. 요즘 느끼는 것은 소설은 시작과 끝이 있는 장르이고 지속적인데 반해, 시는 잘 모르겠지만, 지속보다는 시간의 한 점이라는 느낌이 든다. 세계문학을 읽고 얘기하는 수업을 하고 있는데, 학생들이 책을 잘 안 읽는다. 되풀이해서 책을 읽으면 세상이 바뀔 수 있고, 스스로가 조금이라도 바뀐다고 말한다. 살자고 읽는 것이고, 재밌게 살자고 읽는 건데, 많이 읽으면 좋다고 생각한다.


민 : 소설가가 되기 전에 영화 일을 하고 있었다. 지금도 영화 일을 간간이 하는데, 영화는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는 일이고, 소설은 스스로를 모욕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웃음) 영화는 자의식 없이 묻히는 일부일 뿐이고, 소설은 내가 누구인지 궁금해서 하는 일이다. 모욕을 즐기기 위해서 소설을 쓴다고나 할까? 소설을 워낙 좋아했고, 글쓰기를 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했다. 사실 소설 안 읽고도 재밌게 살잖나. 그럼에도 아이에게 하는 말이 있다. 아이패드만 하면 아이패드를 못 만든다고. 책이 다른 삶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건 인류의 역사에서 검증된 것이잖나! 책을 읽는다는 건 멋지고 행복한 일이다. 카페에서 책을 읽는 것 보면 예뻐 보이지 않나? 예뻐 보이는 것, 좋지 않나? (웃음) 




Q&A


최근 아이에게 읽어준 책은 무엇이고, 아이를 낳고 죽음과 운명에 대한 느낌이 어땠나?


민 : 아들은 여섯 살 평균의 남자아이인데, 만날 공룡 책만 읽어준다. (웃음) 첫째를 키우면서 엄마로서의 삶이 다른 식으로 확장이 되더라. 작가라서 그런 건 아니고, 생의 다른 쓸쓸함에 대한 느낌이 얹혀 지더라. 첫째를 낳았을 때 남편에게 출생 신고를 하고 오라고 했었다. 그리고 남편이 서류를 보여줬다. 계속 이런 문서를 쓰겠구나 생각을 하다가, ‘내가 죽으면 사망신고서는 이 아이가 써주겠지?’하는 생각이 들더라. 내 삶의 마지막에 사인하는 건 이 아이가 되겠구나 하면서. 나의 인생도 소설이구나 싶어서 만감이 교차했었다. 그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은 많지 않고, 육아에 늘 힘들어 한다. (웃음)


아이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 중 쓰고 싶은 게 있나?


어머니가 아이를 위해 『해리포터』 같은 걸 쓰라고 한다. (웃음) 나도 카페에서 작업하는데, 조앤 롤링이 카페에서 작업한 걸 빗대 어머니가 욕망을 드러낸다. 늘 아이에게 하는 말이 있다. 공대생이 되면 좋겠다고. 책을 가까이 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영혼이 되면 삶이 고달파질 것 같아서. (웃음) 그럼에도 아이가 엄마 책을 읽었을 때 그 정서를 알 수 있으면 좋겠다. 『끼리꾸루』라는 공룡이 나오는 동화가 참 아름답고 좋다. 어느 한 외로운 공룡이 있고, 새가 날아와 노래를 불러주며 친구가 된다. 이 공룡이 삶의 환희를 느끼면서 행복해진다. 지구상에 처음 있었던 이야기의 원류 같은 느낌이 난다. 아이가 있다면, 이 책을 읽어주면 좋을 것 같다.


글 쓰는 비결 듣고 싶다. 마감 기한이 있어서 쫓기면서 안 써질 때 비법이 있나?


민 : 그런 건 없다. (웃음) 나는 집에서 작업이 불가능하다. 너무 자유로워져서. 그래서 카페 가서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고,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아야 뭔가 나온다. 카페 사장한테 창피해서 움직이지도 않는다. 전화하고 돌아다니고 일부러 노출시켜서 그 분의 시선을 느끼면서 10분이라도 더 앉아 있으려고 한다. 원시적인 방법을 쓴다.


주 : 비법은 모르겠고, 글이 안 써지면 걸어 다닌다. 남이 쓴 책을 보면서 질투심에 사로잡히면 글이 써지기도 한다. 걸으면 뇌에 창조적인 무언가가 활성화된다더라. 


독자들에게 얼굴을 드러내는 것, 이렇게 독자만남을 하는 것, 어떤가?


주 : 어떻게 답변을 해야 할지 아무 생각이 없다. 독자들은 작가와 작중 인물은 구분하지 않을까?


민 : 개인적으로는 쑥스럽다. 작가는 책으로 말해야 하는 존재인데, 신비주의 고수하고 싶다. 그런데 잘 안 된다. (웃음)


[예스24 채널예스 기고원문, 사진제공 : 레디셋고(R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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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와 서양화, 어떻게 하면 잘 볼 수 있을까!

『다, 그림이다』 손철주․이주은

 

많은 사람들, 궁금하다. 그림, 어떻게 보는 것이 좋을까? 알고 싶고, 제대로 된 감상을 하고 싶다. 이에 손철주와 이주은이 동양화와 서양화를 놓고, 각자의 일리를 풀어냈다. 예스24에서 연재를 했다. <손철주 이주은의 만났고, 그래서 생각이 났다>. 그리고 이 연재는, 겨울이 들어설 즈음, 『다, 그림이다』라는 책으로 묶였다. 독자들, 반응 좋다. 


그래서 지난 9일, 서울 홍대부근의 상상마당. 『다, 그림이다』의 공저자, 손철주, 이주은이 ‘향긋한 북살롱’을 통해 독자들과 만났다. 그리고 풀었다. 그림에 대해, 풍류에 대해, 삶에 대해. 책에 서문을 쓴 소설가 김훈도 깜짝 게스트로 함께 했다. 그림 좋았던 이날의 풍경을 따라가 보자.   


손철주․이주은, 그림을 말하다

 


공저다 보니, 방식이 독특하다는 얘기가 많았다. 그런 형식을 누가 먼저 제안했나?


(손철주, 이하 주) 동양미술과 서양미술이 만났는데, 에디터와 이주은 교수 사이에 모종의 음모(?)가 있었고, 나는 거기에 체포됐다. (웃음) 즐거운 체포였다. 날 끼워줘서. 속으론 0.1초 주저함이 없었다. 마지못해 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흥겹고 고마웠다. 책이 나오고 대차대조표를 보면, 내가 더 좋은 것 같다. 이 책 덕분에 젊은 여성들을 많이 만난다. (웃음)

 

(이주은, 이하 은) 공저를 생각했고 내가 서양미술을 쓰고 다른 사림이 함께 쓰면 좋을 거라고 했더니, 편집자가 손철주 선생을 얘기하더라. 편집자에게 그분이 나랑 하겠느냐고 그랬는데, 협박을 하고 꼬드기고, (웃음) 한참 후에 승낙을 하셨다.


예스24에 연재했다. 연재 때와 달리 ‘다 그림이다’로 제목을 바꿨는데, 제목이 마음에 드나?

 

(은) 장난스럽게 나온 제목이다. 허무하다 생각하면 허무한데, 많은 걸 담고 있는 제목이다.


(주) 제목에 대해 처음 말하는데, ‘다 그림이다’과 ‘그림이 다다’ 2개를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 회고조가 되고 돌아보게 된다. 그렇게 돌아보면, 슬픈 일과 좋은 일이 엇갈린다. 당나라 시가 하나 있는데, 거기서 ‘다 그림이다’라는 것을 따 왔다.


깜짝 게스트로, 『다, 그림이다』의 서문을 쓴 소설가 김훈이 등장했다. 서문에 대해,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이 자리에 나왔다는 그는, 중간중간 이야기를 풀었다. 


어려웠던 주제가 있다면 어떤 것이고, 꼭 하고 싶어서 할애한 주제가 있다면 무엇인가?


(주) 특별히 어려운 적은 없었다. 그림의 소제목이 이미 나와 있는 상태로 시작했다. 다만 좀 더 길게 쓸 수 있고, 쓰고 싶었는데, 욕망을 자제해서 서운한 꼭지는 있다. ‘노는 남녀들의 수작’(p.221)이 그렇다. 나보고 평생 한 가지 일에 매진하라고 한다면, 음풍농월이다. 남은 여생을 음풍농월하면서 보내고자 한다. (웃음)


(김훈, 이하 훈) 음풍농월을 생산해내는 게 중요하다. 그걸 생산해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음풍농월을 반복하는 건 쉬운 일이다. 음풍보다 농월이 훨씬 어렵다. 음풍은 시간을 갖고 노는 것이나 농월은 정말 어렵다. 음풍농월을 생산해내는 경지로 나가길 바란다.

 


(은) 손 선생이 먼저 쓰고 내가 답을 하는 형식으로 썼다. 먼저 쓰신 분의 고민도 있겠지만, 따라가는 사람도 맞춰 써야 한다는 점 때문에 고민이 있었다. 편지 쓰면서 연애를 해보질 않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옛날에 편지 쓰면서 연애 해볼 걸 하는 생각을 했다. (웃음) 다른 사람 이야길 듣고 쓰는 게 그게 습관이 안 돼서 그게 좀 어려웠다.


나이와 관련한 주제에 공감한 의견이 많았다. 특히 손 선생은 오늘의 내 나이가 떳떳하다고 마무리를 했다. 독자들에게 진정성이나 진심이 전해지지 않았나 싶다.


(주) 나이에 대해 많이 생각할 지점에 도달해 있다. 내가 가진 나이에 대한 생각은 김훈 선생의 생각에 크게 빚지고 있다. 내 표현의 오리지널리티가 김훈의 생각과 글에서 나왔다. 특히 늙음과 낡음에 대한 이야기는 김훈 에세이에 있다. 나는 주석을 단 것에 불과하다.


다만, 우리는 생로병사라고 하는데, 삶속에 그게 다 섞여있다고 본다. 나는 나이 들어가는 것이 굉장히 편안하고 좋다. 나이 들면서 시력이 약해져서 젊은 사람이 보는 것보다 적게 본다. 듣는 것도 그렇다. 가는 귀가 먹어서. 이게 좋다. 세월과 나이가 주는 섭리라는 생각한다. 덜 보이고 덜 들리는 것이 이 나이에 얼마나 편안하고, 그 일이 당연지사인 것처럼 느껴지는지. 이런 것을 느끼는 자신이 무척 편안해진다. 


(훈) 늙으면 늙은이의 삶을 가져야 한다. 나는 젊음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엊그제 문상을 가서 염하는 것을 봤다. 죽었는데, 자기가 죽었는지 모르는 것 같더라. 산자들은 자기가 죽을지 모른다.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집으로 갔다. 사람은 모르고 살다가 끝장이 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 것을 알아가는 게 늙음이 아닌가 싶다. 나한테도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데, 여러분한테도 금방 바싹 다가올 것이다. 그거, 금방이다, 금방.


‘어머니, 엄마’라는 주제도, 독자들이 좋아한다. 어떤 마음으로 썼고, 딸에게 어떤 엄마인가?


(은) 뜨금. (웃음) 딸에게 좋은 엄마가 되려는 생각은 많이 하는데, 좋은 엄마인 것 같진 않고, (딸에게) 고맙다. 딸이 기적 같다. 나한테 이런 딸도 있구나, 생각하면 행복할 때가 있다. 엄마한테는 좋은 딸이 아닌 것 같다. 사랑하나, 효에 대해선 거부감이 있다. 그래서 책에 효에 대해선 빼자고 했다. 삼강오륜, 이런 건 굉장히 과장된 것 같다. 『심청전』도 그렇다. 아버지 눈을 뜨게 하겠다고 소중한 목숨을 공양미 삼백 석에 팔다니. 그래서 내 딸에겐 금서다. 휴머니즘 차원에서 절대 읽으면 안 된다. 딸에겐 효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사랑만 생각하라고 했다. 책엔 효 대신 엄마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넣자고 했다.


상대에게 보내면서 이 그림은 나와 같은 마음으로 봤으면 하고 소개한 그림이 있다면?


(주) 옛 그림에 대해 내가 감상하고 해설하는 방향으로 이주은 교수를 강제로 끌고 간 느낌이 있다. 귀하도 수긍해, 이런 느낌으로 쓴 것이 있었다. 이 교수에게 그리했지만, 독자에게 강요한 측면도 있을 거다. 그건 좋지 않다. 감상은 필연적으로 오독과 편협에 빠질 수밖에 없다. 화가가 생각하는 그림을 그린 이유에 초점을 두면 안 된다. 화가조차도 자신이 생각한 것을 100% 재현하지 못한다. 그림은 태어날 때부터 오독의 운명을 타고 난다.


또 감상은 무조건 편애다. 미술에서는 ‘목적 외 전용’에 대한 처벌법이 없다. 감상이란 오독과 편애의 운명을 타고 난다. 감상은 원리나 보편적 진리를 찾는 게 아니다. 내게서 창의될 수 있는 일리를 찾는 행위가 감상이다. 그림에서 원리를 찾으려하지 말고 일리, 자기에게 참이 되는 것을 찾아라.


(은) 내가 제일 처음 띄운 게 앤드루 와이어스의 「결혼」이다. 그림을 보면 창문이 열려있다. 옛 추억을 밤새 이야기하다가 창문을 열어놓고 잤다. 그런 좋은 의미로 읽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죽음과도 같은 느낌도 난다. 잠깐 사랑하고 평생을 죽음처럼 살아야 것이 결혼일지도 모른다. 이 그림을 보고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 글을 쓰겠다고 보냈는데, 김훈 선생도 약간 놀라면서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물어보더라. (웃음)

 


(훈) 그림을 봤더니, 한 이불을 덮고 있는데, 흐트러짐이 없고 미동도 없더라. 열린 창으로는 먼 데서부터 새벽의 시간이 오고, 유리창 밖으로 전개된 시간의 느낌을 들여다봤더니 시간이 인간을 버리고 가는 거다. 제목은 ‘결혼’이지만, 어떤 미적인 충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나 삶의 의미에 대해 무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교수가 서두에 왜 이런 질문을 던지는지 알 수 없었다. 물어볼 수도 없고. (웃음)


화답으로 손 선생은 앙드레 고르의, 아내와 동반자살을 하는, 처절하고 아름다운 말로를 말한다. 「결혼」이라는 그림과 고르의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인생을 이루는 「와운」이라는 그림이다. 인생의 여러 모습 사이에 끼어 있는 열정과 소망, 좌절이나 울분, 힘, 에너지를 그렸다. 나는 「결혼」보다, 고르의 사랑보다, 「와운」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다.


「와운」은 ‘인생은 무엇이다’라는 것을 말이나 관념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런 의도를 드러내지 않는 그림이다. 그래서 나는 그 그림을 좋아한다.


(은) 「결혼」이라는 그림에 대한 손 선생의 화답을 읽고 뭉클했다. 「와운」은 정적이지 않고, 삶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멋질 것 같고 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 김 선생의 말씀을 들으니, 향후 서문에 만족할 분이 아니란 생각이 들면서 이 교수와 손철주의 남은 글쓰기가 매우 어려워질 거란 우울한 예감이 든다. (웃음) 여담으로 고르의 『D에게 보내는 편지』에 대해 말하자면, 고르는 좌파, 생태학자다. 처음 만난 여성과 평생을 살았다. 나중에 부인이 불치병에 걸렸다. 고르는 하던 일을 다 버리고, 수십 년 아내 간병에만 매달렸다. 전 세계를 돌아다녔지만,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더 견딜 수 없어서 한 날 한 시에 음독자살을 했다. 그게 프랑스와 유럽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죽은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사랑고백이 『D에게 보내는 편지』다. 추천사를 김훈 선생이 썼는데, 마지막 문장이 “아, 나는 언제 이런 사랑 한번 해보나”였다. (웃음)


(훈) 서양인들은 그것을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느끼는 모양인데, 나는 풍자와 아이러니로 그리 쓴 거다. 내가 하고 싶다는 건 아니다. 그것은, 삶과 죽음을 혼동하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여러분도 모방해서 따라할 생각 마라. 어리석은 짓이다.


(은) 나도 공감한다. 『다, 그림이다』 표지에 열일곱에 생을 마감한 작가의 그림(주. 「채터톤」, 헨리 월리스)을 넣어서, 학생들에게 질문을 많이 받았다. 우리에게 좌절이 많을지라도 미리 죽음을 택하는 것은 따라하지 마세요, 라고 하고 싶었다. 지금, 살아볼 가치가 있으니까. 그런 이야길 하고 싶었다.


동양화, 서양화 감상하는 노하우를 알려달라.  

 


(주) 동양화든 서양화든, 그림을 보는 눈을 훈련시킬 필요가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인의 몸을 더듬은 손의 촉수처럼 눈을 굴려야 한다.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나는 늘 하는 일이다. (웃음) 주마간산으로 보면, 그림은 아무 맥락 없이 파편화된 소재에 불과하다. 마음을 실어서 그림을 샅샅이, 바닥에 있는 피의 흐름까지 더듬어 보겠다는 느낌으로 봐야 한다. 해 봐라. 그게 잘 안 되면 연애부터 해야 한다. (웃음) 그러면 그림이 다르게 보인다.


서양화와 달리 우리 옛 그림은 어느 나라의 것과도 구분되는 형식이 있다. 즉, 그림 속에 글이 있다. 그림과 글의 관계를 면밀히 살피면서 봐야 옛 그림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고 근접한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눈에 촉수를 달아라. 그게 가장 중요하다.


(은) 손 선생 말씀을 듣고 눈에 촉수를 달고 감상했는데, 그날 오후 피곤이 몰려오더라. (웃음) 그래서 나는 안 되겠구나, 사람마다 감상법이 있구나 생각했다. 나는 반복해서 보는 타입이다. 뭐든 섭렵해야 보인다.


서문에서 김훈 선생은 솔거 일화를 꺼낸다. 그 의미나, 소개한 의도가 있다면?


(훈) 미술과 현실의 관계에 대한 최초의 사유를 썼다. 솔거라는 좋은 예가 있었던 거지. 화가는 현실의 의미를 끌어안고 화폭에 들어가고, 그림을 보는 사람은 화폭을 들고 현실에 들어간다. 우리의 시선이 화폭에서 교체가 되고 있다고 보는 거지. 동양화에는 글이 있다고 했는데, 이 글은 현실이 화폭으로 들어가는 중간 정류장쯤 된다. 화폭과 세상의 중간쯤.


동양의 그림은 뜻과 정신을 그린다. 자연과 삶을 접하면서 그 정신을 화폭에 그린다. 서양화는 뜻보다는 형체와 색을 그린다. 동양은 원근법을 무시한다. 동양 그림은 인생을 바라보는 여러 시각이 겹쳐 있다. 형체와 색보다는 인간의 정신을 앞세우는 마음이, 원근법을 무시하게 되는 거지. 동양화는 봐도 분석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서양화는 원근법을 맞춰서 과학적이고 인간의 현실에 맞다는 느낌이 든다. 둘 사이에는 우열의 차이는 없으나 세계를 바라보는 안목과 사유의 방향은 다르게 나타난다.


소개하고픈 그림이 있다면?

  

(주) 구한말 화원을 지낸 조중묵의 그림(「눈 온 날」)이다. 지금 우리가 보는 태조 이성계의 얼굴을 이 화가가 그렸다.

 

솔잎에 눈이 많이 내리니까, 눈이 얹힌 모습을 밤송이처럼 묘사했다. 소나무와 매화로 보이는데, 폭설이 와서 눈이 앉았다. 그림을 보면, 이 집에서 다른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없다. 다리도 없다. 눈은 내려서 적막강산이다.


은거. 숨어 사는 모습은 마땅히 저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거처하는 곳에 길이 있다면 그 길을 통해 은거하는 사람이 마을로 내려가고픈 생각도 들 거다. 그 길을 통해 누군가 올라오길 바라는 마음도 있을 거다. 숨어사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다. 길이 없고 다리가 없고 대문이 없고.

 

그래서 은거하는 자의 모습을, 그림자는 산을 벗어나지 않고 발자취조차 속세에 들여놓지 않는다고 옛 사람은 시를 읊었다. 은거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느냐. 세상사의 시시비비에 대해 말하지 않겠노라. 단지 꽃이 피고 지는 것만 바라다볼 뿐, 이것이다.


(훈) 저 그림은 은거, 은자라는 것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잘 설명한다. 언어적으로 설명하는 것 같다. 내 느낌은 그림이 너무 뚱뚱해. 야위고 가파른 것이 없다. 저 추위는 더워. 덥게 느껴지는 추위다. 뚱뚱해서 그림이 떠 있는 것 같다. 이야기로서는 훌륭하다.


(주) 은자, 은둔의 삶에 대해 나는 강퍅한 정의를 내리는데, 저 그림은 수척한 그림이 돼야 한다. 그런데 저 그림은 윤기가 흐른다. 허탈하다기보다 서정적이다. 적막강산 속에서 소나무와 설중매를 고대하는 은자의 한적한 마음을 화가가 그렸을 것이다. 나는 화가가 무엇을 생각하든, 저 그림 속에 은둔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내 생각을 몰아간 것이다.


(은) 내가 소개하고 싶은 건, 요셉 보이스의 오브제(「socket and lemon」)다. 레몬을 전구에 꽂아놓은 건데, 상큼하지 않나? 상큼한 맛이 들고, 내 컴퓨터 바탕화면에 깔아뒀다. 이유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상큼하게 만끽하라고 뜻으로. (웃음)


‘시즌2’ 계획이 혹시 있나? 김훈 선생은 서문을 써 줄 용의가 있는지?


(주) 이번 책을 쓸 때 선택하지 않은, 미뤄둔 것이 많이 있다. 독자들이 원한다면 못할 리 있나. 시즌2를 하면 재밌을 것 같다.


(은) 예술이라는 것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가까이 있는 것이다. 세상의 때가 묻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고 아름다운 것 같다. 때도 묻고 타락하고 반성하고, 그런 것이 즐거운 삶이 아닐까. 세상과 대면하는 것. 세상에 때를 묻히고 사는 것도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훈) 책에는 사사로운 얘기가 나온다. 문제가 될 만큼은 아니라고 봤다. 사사로운 정서가 있는 것도, 글 읽는 독자에게 편안함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책이 나오면 뭘(서문) 쓸 수 있겠냐고 물었는데, 나도 모른다. 먼 앞날의 일을 어찌 아나.

 

독자들과 나눈 Q&A


미술담당기자였는데, 미술칼럼을 쓴 계기와 그림을 선정한 기준이 있다면?


(주) 미술기자를 하게 된 이유는 데스크가 하라고 해서. (웃음) 중학교 이전부터 그림을 좋아했다. 그것들이 내 마음속에 남아 있었던 거지. 또 대개 기자들은 미술담당을 안 하려고 한다. 그림은 문학과 달리 안 읽혀지니까. 자청하다시피 하게 됐고, 운 때가 좋았다. 나는 직업적으로 글을 쓰게 된 경우다. 


그림을 고르는 기준은, 내게로 와서 꽃이 되는 그림이 좋다. 나의 일리로 장악이 될 수 있는 그림. 무엇이든 내가 봤을 때 꽃이 되냐, 아니냐를 따진다. 여러분도 그리 하면 된다. 천하의 미술평론가가 좋다고 해도, 나한테 아무 의미도 감흥도 없다면 안 봐도 된다.


오독을 하든 상관없다고 했는데, 독자가 멋대로 구성하면 그 텍스트를 읽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또는, 오독을 하면, 작가와 독자 간에 교류가 이뤄질 수 없을 것 같은데.

 

(은) 미술의 정석이 있다면 그런 제목을 붙여서 팔고 싶은 생각도 있다. (웃음) 오답이라는 말을 하기 어렵다.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머나먼 여행을 한다. 둥둥 떠다니다가 의미가 닿을 내린다고 하는데, 여러 계기로 작품이 읽히게 된다. 이리저리 읽힌다고 해서 작가가 화낼 자격은 없다. 이렇게 읽을 수도 있고 저렇게 읽을 수도 있다. 작가의 삶과 환경을 아는 건 팁이고, 상상력을 발휘해서 닻을 내리기 쉽게 만드는 거다. 둥둥 떠다니다가 닻을 내리게 만드는 것은, 작품을 보는 ‘나’다.


세 분, 풍류객이라고 생각하는데, 풍류(風流)에 대한 이야기 듣고 싶다.

 


(훈) 바람 ‘풍(風)’자는 동양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는 글자다. 모이지 않고 흘러가는 것을 풍이라고 한다. 풍류라는 것은 바람이 흘러간다는 뜻이다. 삶의 한 순간을 틀이나 양식에 고정시킬 수 없다는 뜻이다. 출렁거리면서 흘러간다는 거다.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는 거다. 풍류는 퇴폐가 아니다. 풍류는 창조다. 풍류는 호랑방탕이 아니다. 호랑방탕은 잡놈이 하는 거다. 모든 순간을 어떤 틀에 묶이는 것을 거부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자가 풍류객이다. 아프고 숨 막히는 사람들이지. 나는 그런 풍류객이 되고 싶다. 남의 풍류를 구경한 적은 많다.


(주) 풍은 정박하는 게 아니고, 잡을 수 없는 것이다. 풍류가 대접을 받고 풍류생활을 하려면 기뻐하되 음한 데로 흐르면 안 된다. 그러면 탕아가 된다. 풍류객은 슬퍼하되 마음을 상하게 하면 안 된다. 내가 생각하는 풍류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사람에 빠지느니 차라리 연못에 빠져라. 사람에 빠지면, 풍류객은 도리 없는 속인의 예정된 말로를 걸을 수밖에 없다.


(은) 풍류객은 넘어서는 자 같다. 풍류객은 술과 연관되지 않더라도 뭔가 확 넘어서는 자, 세상 돌아가는 것을 넘어 볼 줄 아는 자인 것 같다.

 

[예스24 기고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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