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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아니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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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금 노래를 듣고 있다.~ 5월8일의 노래다.~♪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으로 시작하는 노래라고 짐작한다면, 틀렸다!

"달콤해요.당신의 미소는 달콤해요. 마치 봄바람 속에 꽃이 핀 것처럼 봄바람 속에 핀 것 처럼. 어디서, 어디서 널 보았었지. 너의 미소가 이렇게도 낮익은데, 잠깐 생각이 안났지만 꿈속에서... 꿈속에서 널 본 적이 있어..."

이런 닭살 가사가 촘촘히 박힌 노래다. 사실 이 닭살도 번역된거지, 실제 들리는 것은 "피엔니니닝 니샤이 친미미 하유센아얼 가이차보링 사이앙리 자이치궈닝 닝닝샤우롱... 불라불라... " 뭐 이런거다. 그렇다. 센스가 있다면 눈치챘겠지. 중국 노래다. 제목은 첨밀밀. 바로 등려군의 노래닷.

쯧. 어버이날 뭔 호들갑이냐고. 글쎄 말이다. 어버이(은혜)송가가 울려퍼지는 마당에 왠 중국 노래에, 첨밀밀이냐고. 범수가 버럭할 일이다. 이 돌대가리야! 하고 외치겠지. -.-;; 뭐 버럭범수가 버라라락한들 쪼릴 일은 아니다만, 그냥 그런 것 있지 않나. 세상이 불러대는 메아리와 때론 무관하게 그날 하루를 다른 이슈로 접수하는.

어버이 은혜야 내가 굳이 말 안해도 여기저기서 봇물이다. 어버이께 카네이션 달아드리고 말과 마음으로도 감사는 드렸지만, 이런 되바라진 생각도 하는 것이 나다. 이날 이때까지 살아있음에 당신들도 내게 고마워해야 하고, 내가 태어나서 당신들은 행복했고 지금도 그렇지 않냐고 말이다.^^; 그게 진짜 부모 자식 관계 아니겠나. 자식이 누군가에게 맞고 왔다고 본인이 직접 나서서 응징하는 치졸한 내리사랑 같은 것 말고 말이다.

말이 샛다만, (한국에서) 5월8일은 어버이날이다. 그런데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런 노래를 듣는건, 내가 이날을 기억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어버이날과 맞물린 덕에 더욱 생각이 잘 나는건지도 모르겠다. 이 노래는 한편으로 대단한 노래다. 식물인간도 깨어나게 했단다. 믿거나 말거나.
노래 '첨밀밀' 식물인간 깨어나게 했다

물론 이런 놀라운 기적이 전적으로 '첨밀밀' 노래 덕분이었다는 식으로 말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식물인간으로 지내던 사람이 세상에 다시 길을 놓게끔 도와준 공로에 '첨밀밀' 노래도 있지 않았을까. 그 노래를 듣는 것이 그에겐 어쩌면 식물인간이 되기 전부터 특별한 사건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식물인간으로서 뇌 기능이 정지된 상태에서 아내가 틀어주는 그 노래가 어떻게 그의 뇌를 자극했을까. 나는 그 노래와 그 사람 사이에 놓인 길도 궁금하다.

뭐 그래서 노래를 듣냐고. 아니. 그럴리가. 난 식물인간도 아닌데.^^; 나와 5월8일 사이에 놓인 어떤 다리 때문이지. 그 노래 역시 거기서 한몫 하거든. 그저 내 별 볼 일 없는 생에 놓인 한 토막의 이야기. 나와 5월8일 사이에 놓인 이야기. 그래서 오늘 그 다리를 건너는 방법. 5월8일 내게 다가오는 영화들. 그 영화들을 통해 나는 5월8일을 소화한다. 꺼억~~~ 어버이날 만큼이나 내겐 각별한 이들. 그런데 괜히 아쉬운건, 작년 뉴욕을 갔을 때, 그들의 10년 간의 그리움이 다시 해후한 곳을 들르지 못했다는 거다. 아, 그럼 다시 뉴욕을 갈 핑계가 생기는건가. 좋다. 다음번 뉴욕 스토리는 첨밀밀이다.

작년에 긁적였던 5월8일의 두 영화 이야기. 나는 1년여 만에 다시 그들을 끄집어낸다. 근데 요 근래 몇년간 5월8일의 케이블TV에선 이 영화들을 볼 수가 없으니 그것도 한때? 담당 PD가 바뀌어서 그런가. 문득 궁금해지네.


의도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에 들어와 둥지를 트는 것들이 있다. 의식하려 한 것은 아니지만, 특정한 날이 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영화들이 있다. 그건 일종의 주술이다. 비의도와 무의식을 가장한. 수리수리 마수리, 샤빌라빌라~~

그건 ‘어버이날’의 주술. 정확하게는 5월8일. 어느 때부터인가 그날이면 어쩔 수가 없다. 내 영화의 숲속 시계는 여지없이 종소리를 울린다. ‘촤르르~’ 돌아가는 영사기. 내 기억의 스크린에는 투사되는 영상들. 그리고 서랍 속에서 오래된 일기장을 끄집어내듯, 수납장에서 DVD를 꺼낸다. 이 주술의 위력.

내가 이 주술에 걸린 건 순전히 영화 속 날짜 때문이다. ‘첨밀밀’과 ‘러브 어페어’의 5월8일. 다시 만나거나 혹은 어긋나는(줄 알았던) 날. 그리고 뉴욕. 사실 전혀 연관이 없는 조합. 사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과 기억이 버무려진 영화를 묶어놓은 혼자만의 동시 상영이다.

그래서 이 동시상영일은 ‘어버이날’이라는 세상의 구호와 달리 개인적인 취향과 기억에 편입된 하루다. 남들 ‘어버이날’이라고 왁자지껄해도 난 별개다. 이들의 어버이라도 되는 양 이들 영화(들)를 다독인다. 보듬어준다. (뭐 그렇다고 어버이날을 깡그리 무시하는 건 아니다. 카네이션 정도는 준비하는 ‘센스’는 있다. ^^;;)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비슷비슷한 ‘어버이송가’는 사실 좀 따분하다.

이런 혼자만의 주술도 한편으로는 재미있다. 1년에 한번 걸리는 ‘매직 데이’. 어쩌면 이 지리멸렬하고 팍팍한 일상을 견디는 하나의 이유가 된다. 단절되는 듯한 하루하루 속에서 씨줄과 날줄을 엮어 연결시키는. 그래서 호흡을 연장시키는. 5월8일은 특별한 극장이자 시간대다. 혼자 관람객이 돼 떠나는 나만의 영화 항해. 5월8일을 되씹는 어떤 기억.

어쨌든 이들 두 영화는 사랑의 ‘약속’과 ‘우연’한 해후를 다룬다. 어떤 이유에서든 약속은 어긋나게 마련이지만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된다’는 그런 (뻔하지만 끌리는) 이야기. 사실 시시콜콜 따지고 보면 이 우연도 그냥 우연은 아니다. 워낙 잘 세공되다보니 우연인 것 마냥 홀딱 넘어간 것이지만.

사람을 살게도 하고 죽게는 하는 그 사랑. 그날 애절하고도 저릿한 사랑을 흡입하고픈 자라면 다시 봐도 무방할 터이다. 그러나 사랑의 너절함에 넌더리가 난 사람이라면 굳이 그럴 필요는 없겠지. 당신의 선택이다.

왜 5월8일이었냐고. 가만히 당신의 기억저장소에 'rewind'를 눌러보라. 그들의 사랑을, 그들의 엇갈린 행보를. 지지지직... 스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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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사랑의 기억, <첨밀밀>

첨밀밀.
그러보니 벌써 10년이 흘렀다. 1996년, 영화가 만들어졌다.
한국에서는 이듬해 3월에 개봉을 한 터이지만 햇수로는 10년(미쳤다. 그 세월이 그만큼 흘렀다니). 이요(장만옥)와 소군(여명)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들이 다시 만나기까지의 그리움 10년을 합치면 그 첫 만남부터 어느덧 20여년인가. 아.직.도. 그들은 여.전.히. 사랑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그치?

그 5월8일의 풍경
ㄱ 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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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잡을 수 없을 것 같은 그들의 인연 앞에 역시나 ‘등려군’! 
뉴욕의 어느 전파상 TV는 등려군의 사망 뉴스를 전한다. 거기가 차이나타운이었을까?
이 넓은 세상 위에, 하고 많은 채널과 프로그램 중에 왜 등려군의 사망뉴스가?
그저 길을 거닐던 그들 앞에 놓인 ‘해후’. ‘우연’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허허. 10년. 그리고 지나친 엇갈림. 믿을 수 없다는 눈빛 교환과 함께 퍼져나는 미소.
아니나 다를까 등려군의 ‘첨밀밀’이 울려 퍼지는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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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랑. 참 징했다.
첫 사랑의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시절.
‘만나야 될 사람은 만나게 된다’는 운명론을 강력 설파하던 이야기. 영화지만 현실로 곧 튀어나올 것 같았던. 사랑했던 날이 두 사람의 기억의 숲속에 둥지를 틀고 있다면 장애물 따위는 그저 시시한 장난감인 것 같은.  

어지간하면 그만한 엇갈림 앞에 견뎌낼 장사 많지 않다. ‘운명’도 때론 좌절을 하기 마련 아니던가.
더구나 알다시피 처음부터 그들은 무척이나 달랐고 사랑이 아닌 척 거짓부렁을 했다.
그 ‘아닌 척 하기’가 들통 나서 사랑의 약속을 했다가도 운명의 가혹함은 여지없이 그들을 빗겨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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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만남에 ‘운명’이상의 적확한 단어는 없다. 아니 그것도 그저 ‘사랑’일 수도 있다.
“나의 목표는 네가 아니야. 너의 목표는 내가 아니고...”라며 부자가 되고파하던 이요에게나,
대륙에서의 첫 사랑이던 소정과 가정을 꾸미고 싶었던 소군에게나,
실은 그들이 진짜 꿈꾸었던 것은 “매일 눈을 떴을 때, 너를 볼 수 있길 바래”와 같은 서로의 마음 아니었을까.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고 주춤거렸던 그들의 어리석음이 빚은 기나긴 우회.
그래도 ‘타이밍’하곤... 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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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밀밀>의 미덕은 그들의 감정선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촘촘하게 쟁여놓은 기억의 잔재들을 시간의 흐름 속에 적절히 녹여낸 점이다. 어찌할 수 없는 엇갈림에도 그들이 사랑하고 있다는 분명한 사실은 변함 없었다.
옆에 있으면 소리라도 질러주고 끈이 있으면 던져서 연결시켜주고픈 욕망.
나는 동동 발을 굴렀고 안타까워했다.

사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스토리라인이지 않나?
그럼에도 감정의 파고를 요동치게 하는 건 그들의 눈빛이,
사랑이 기억의 숲속에 있던 사랑을, 어떤 약속을 일깨우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운명’ 따위 그저 갖다 붙이기 쉬운 허구임에도 그 이름표를 붙이고 싶은 이율배반적 욕망.

시간과 기억, 그리고 사랑의 삼중주는 문득 특정한 매개체의 등장으로 연주되는 즉흥곡일지도 모르겠다.
“문득 흘러간 노래를 듣게 되면, 시간의 한 끝자락을 잡고 따라오는 잊혀진 옛사랑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는 말처럼. 그들의 사랑에는 ‘등려군’, 그의 노래가, 그런 존재였다.
흠, 과연. 당신의 사랑에도 어떤 노래가, 어떤 매개체가 있지 않은가.

이래저래 흘러간 10년.
‘너는 내 운명’에 마침표도 찍어보고, ‘사랑, 그까이꺼~’하며 냉소도 질러보고, ‘사랑은 3년이 유효기간 이래’하며 과학적 분석에 고개를 끄덕여 본 세월. ‘결혼은 미친 짓이지만, 사랑은 죽을 때까지 해야지’하는 친구 녀석의 말에 맞장구도 쳐 보는 시간도 있다. 10년은 그랬다.
그러나 영화 속의 그들은 늙지도 않는다. 세월을 머금는 건 오로지 영화 밖의 나 그리고 당신.

<첨밀밀>이 주는 또 하나의 팁.
사랑이, 차마 입밖으로 내놓지 못한 사랑이 눈앞에 사라지려 한다면
‘빵빵~’ 경적을 울려서라도 그 사람을 부르는 ‘센스~’.
그건 이요의 말 없는 간접화법이 알려준 키스의 공식(그런데 아직 써먹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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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옥누님에게 혹하고 말았던 결정적 장면!!!


아참, 그리고 실제 1995년 세상을 떠난 등려군이 불렀던 ‘첨밀밀’은 ‘달콤함’이란 뜻이란다.
인도네시아 민요에 가사를 붙였단다.
한국에서는 알지? 그래, 드라마 주제가로 알려졌었다.
감우성, 채림. 그네들 그때, 참 풋풋했었다. 유후~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 Love Affair >

‘5월8일 오후 5시2분’
그리고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그날도 '우연찮게도' 5월8일 이었다. 테리(아네트 베닝)와 마이크(워렌 비티)가 만나기로 했던 날.
그것도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꼭대기.
처음으로 엠파이어스테이트를 기어서라도 오르고 싶은 강렬한 충동.

왜 그 날이었는지 모른다. 그저 3개월 뒤를 기약하면서 그들이 맺은 ‘약속’이었다.
그러나 어느 누군가는 그 자리에 없었고, 사랑의 ‘약속’이 깨지는 듯하지만, 그들이 ‘운명’을 거역할 순 없는 법. 그들은 ‘첫 눈’에 알아본 사랑 아니겠는가. 바람둥이와 재벌의 약혼녀.
하긴 그런 표피는 그들의 ‘운명’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제스처가 아니었을까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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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흠. 이런 키스. 당신은 해봤수? ㅎㅎ


<러브 어페어>는 <첨밀밀>보다 더 됐다. 1994년 제작돼 이듬해 3월 한국에서 개봉했었다.
이 영화를 먼저 보고 온 사람들이 ‘개거품’을 물었던 기억도 자연히 뒤 따른다.
사랑과 운명에 대한 아포리즘.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을 꿈꾸는 주변 사람들의 이바구 행렬.
물론 그 과정까지 그대로 답습하고픈 욕망은 없겠지. 그저 대리만족.

사실 <러브 어페어>는 그렇다. 누구나 한번쯤 그려봤을 법한 운명적인 사랑의 판타지다.
그들의 애정행각은 적당히 일탈과 안온함을 오가면서 감정을 부대끼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갖고 있다.
각자의 약혼자가 있는 상황에서의 ‘우연’한 만남, 그리고 스파크.
예정된(?) 비행기 사고 이후 머문 타히티의 낭만적인 풍광. 그리고 행선지를 바꾸는 사랑의 이동.
덧붙여 이들의 사랑을 이어주는 매개체.
마이크의 숙모(아, 캐서린 헵번의 등장이란).

한편으로 그들이 선보이는 한없이 부르주아적인 삶의 양태는 적당히 그 사랑을 윤색한다.
계급투쟁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유한계급의 잔잔한 사랑놀음.
그럼에도 사랑의 ‘힘’은 무시할 것이 못 돼서 그저 눈이 멀었다.
‘세렌디피티’를 믿고 싶은 자들에게 가하는 사랑의 주술과도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엔리오 모리코네의 음악과 어우러진 아네트 베닝과 워렌 비티의 앙상블.
<벅시>와 <러브 어페어>로 실제 부부의 연으로까지 이어진 두 사람의 연기가 주는 안정감.
특히나 세기의 바람둥이로 알려진 워렌 비티를 한 큐에 잠재워버린 아네트 베닝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현현일 것이라는 확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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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히티. 이 청량한 사랑의 풍경.


3개월이었다. 다시 만나자고 한 유예기간. 그걸 둔 건 물론 신상의 정리에 필요한 시간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첫 눈에 벌떡벌떡 뛰어버린 심장의 오작동 유무를 확인하기 위한 기간이었던 것도 아닐까.
그래서 만약 나오지 않더라도 ‘이유를 묻지 않기’라는 단서를 달았을 지도 모를 일이지.
묻지 않음을 미덕으로 삼은 세렌디피티의 베팅은 그러나 통과의례일 뿐이다.
교통사고로 사랑의 약속도, 운명도 어긋날 것처럼 애간장을 태우던 시추에이션은
역시나 그것을 다시 감정을 붐업시킨다. 

<러브 어페어>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만 한 줄 알았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게도 유용한 점도 있고
석양은 오해를 풀고 사랑을 확인하는데 적절한 배경임을 알려주기도 했다.

때론 인생도 사랑도 모험이다.
그래서 묻는다. “나에게 모험을 해보지 않겠어요?”라고.
그 모험에 때론 모든 것을 걸기도 하고, 불길 속인 줄 알면서도 뛰어드는 것이 사람인 것을.
서로의 약속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마음 역시 알려준 <러브 어페어>.

뻔하디 뻔한 결말로 향할 것임을 알면서도 눈길을 쉬이 떼지 못했던 영화.
그래서 닭살 느끼 커플의 대사도 그냥 퉁 쳐버렸다.
“우리 중 한 사람에게 무슨 일인가 일어나야 했다면.. 왜 그게 당신이어야 했지?”(마이크)
“걱정말아요 마이크, 기적이 일어나야 할 필요도 없어요, 당신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나는 걸을 수 있어요.”(테리)
췟, 지들끼리 놀고 있는 건 분명한데 나는 그들 사랑놀음에 푹 빠져 있었더랬다.


5월8일엔 이토록 서로 다른 계급과 상황의 두 사람이 만나 펼치는 운명적인 사랑(들)도 있다.
혼자 즐기던 5월8일을 구구절절 찌질한 감상이나 늘어놓으면서 약간이나마 공감을 얻으려는 노력이
가상타 생각된다면, 한번쯤 봐둬도 좋지 않나 싶다.
그 어느해 5월8일, 각자 다른 곳에서라도 나와 함께 기억의 숲 속을 뛰어다닐 수도 있지 않겠나.
고단하고 팍팍한 인생살이.
카네이션 달아주고 어버이은혜 목청껏 부르는 것도 좋지만 혼자 즐길 거리도 좀 만들어두면 혹시 아나.
5월8일이 어떤 운명을 안겨다줄지. 물론 싫음 말구.

아참, 그리고 언젠가 5월8일 뉴욕에 가보고 말 일이다.
이요과 소군이 만났던 그 거리, 그 전파상. 테리와 마이크의 약속의 장소,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우리 만나면 눈 인사라도 한번~ ^.^  
난 이요, 당신은 소군.
난 테리, 당신은 마이크.

혹시 내가 식물인간이 된다면 5월8일엔 이들 영화를 꼭 틀어주오. 그러면 아마 깨어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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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요즘 만나지 못한지 꽤 되었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궁금하다. 올해 미국 '피플'이 선정한 100인에 '여지 없이' 포함됐고, 임신 7개월의 모습이 포착됐다는 근황 외에는. 스크린에서 그를 대면해야 할 것을. 2004년 오픈아이를 통해 긁적였던 짧은 연서. 오 마이 줄리아~


소년 , 여신(女神)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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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기방장했던 시절, 고삐리들의 불온한 아지트(불법 영화상영관). 그 쪽방에서 소년들은 여신(女神)을 만났다. ‘귀여운 여인(Pretty Woman)’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타났던 그녀. ‘미성년자 관람불가’라는 붉은빛 딱지도 열혈남아들에게 걸림돌이 될 수 없었다. 단지 여신을 향한 경배만이 있을 뿐.

10년을 훌쩍 넘긴 세월 앞에추억 한 켠의 파노라마는 그렇게 스쳐지나간다. 그 수많은 시간과 사람들 속에 경배의 잔을 놓지 않았던 건, 아마도 그 ‘미소’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웃으면 귀에 걸릴 듯한 그 함지박만한 살. 인. 미. 소. 기억의 숲 속에는 그 미소가 웅크리고 있다. 추억은 방울방울 거품이 되어 여름의 뙤약볕 속에서 뽀글뽀글 솟아난다.

상투적이고 전형적인 할리우드판 신데렐라 이야기, <귀여운 여인>은 줄리아 로버츠에게는 할리우드 여신 등극을 위한, 내게는 여신을 알게 된, 첫 다리를 놓아주었다. 거리의 창녀, 줄리아가 백만장자 리처드 기어와 우연찮게 사랑에 빠지는 단순한 스토리. 그럼에도 그녀가 미소를 짓자 할리우드는 사랑에 빠지기 시작했고 내 가슴도 덩달아 콩콩 뛰었다. 특히 바에서 홀로 피아노를 치던 리처드 기어와 슬쩍 다가섰던 줄리아가 피아노 위에서 격정적으로 서로를 탐닉하던 영상, 과히 아트였다. 에헤라~ 풍악을 울려라...에헤~~ ^^;;;

천상에서 이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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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장자와의 사랑을 성취했던 그녀는 이후 변신을 꾀했다. 죽어가는 연인을 지극정성 간호하며 눈물샘을 자극하는 <사랑을 위하여>(Dying young). 줄리아는 애틋하기 그지없었으며 천사에 다름 아니었다. 케니G의 선율과 함께 줄리아의 눈물은 소년에게도 아팠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물론 그 아픔은 오래가지 않았다. <후크>, <적과의 동침>, <펠리컨 브리프>로 이어진 줄리아의 필모그래피를 통해 나는 여신의 모습을 보고 또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즐거워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살인미소가 어느 순간 삐뚤어졌다. <사랑의 특종>(I Love Trouble) <사랑의 게임>(Something To Talk About) <메리 라일리> 등이 줄줄이 도산했다. 덩달아 그녀에 대한 관심도 시들해졌다.

줄리아의 트레이드마크는 웨이브진 머리에 함박웃음이다. 그 미소가 전면에 드러나지 않고 심각하게 무게 잡은 영화는 일부를 제외하고 깨지거나 혹은 생기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 그녀가 그 미소를 내세워 다시 문을 두들겼다.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은 줄리아의 특기가 로맨틱 코미디에 있음을 확인시켰다. 나사 하나 빠진 듯 허둥대면서 비비꼬인 사랑의 방정식을 풀던 그 모습. 그녀는 천상의 여신에서 이승의 여성으로 격하(?)됐다. 하지만 그 인간적인 허점이 오히려 그녀를 향한 관심을 재점화시켰다. 나도 소년의 껍데기를 벗고 청년으로 변모해 갔다.

내겐 너무 이쁜 당신, 너에게 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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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노팅힐>은 완벽하게 줄리아를 부활시켰다. 왜, 대체, 어떻게,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줄리아의 현실을 그대로 옮긴 듯한 이 곰살맞은 영화는 내게 작고 소박한 마을의 여행책방 주인이 되고 싶은 반짝 소망을 안겨줬다. 길모퉁이에서 옷에 쏟아진 오렌지주스가 사랑에 젖게 만드는 촉매가 됐고 ‘오렌지주스 로맨스’는 무척이나 맛있는 과즙음료에 다름 아니었다. 나는 누구에게 오렌지주스를 쏟을 것인가...^^;;;;

다시 총총 날아든 줄리아는 <에린 브로코비치>에서 거대기업의 비리 앞에 투쟁하는 여전사로 당당한 자태와 카리스마를 내뿜었다. 결국 이 영화의 열연으로 생애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까지 수상하는 영광을 안은 줄리아.

그녀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내게 너무 이쁜 당신’이 됐다. 또 줄리아가 연기 생활을 계속하는 한, 스크린을 통해 만남이 주선되는 한, 나와 줄리아의 관계는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스크린 밖에서 일방적이었던 만큼 나의 배신만 없다면 말이다. 그것이 스타와 팬의 관계망이다. 현실 밖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다는 것, 그것도 하나의 판타지이자 축복이다.

Forever! Your Sm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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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한 사람살이의 풍경은 가끔 그렇다. 그녀의 신작 소식 하나에 풍선처럼 살짜기 부풀어 오르는 기대감. 언제까지 이런 품새가 이어질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아직 십수 년 전 기억의 숲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 것을 보면 줄리아의 매력은 현재진행형임인가보다. 다시 십수 년 세월의 고개를 넘은 어느 날, 로이 오비슨의 ‘Oh∼Pretty Woman’이 어디선가 흘러나오면 어깨를 들썩이며 슬며시 기억의 숲 속으로 들어가는 여정이 이어질 듯 하다.

작년 7월, <멕시칸>의 카메라맨이었던 대니얼 모더와 두 번째 결혼식을 올렸던 줄리아. 그녀의 영화에서 결혼은 ‘환상’혹은 ‘비극’이었으나 현실은 무채색이 아니길 바래본다. 머나먼 곳에서 팬 이상도 이하의 관계도 아닌 한 청년이 말이다. 늘 쿨~한 면모를 보였던 그녀는 더 이상 ‘프리티(Pretty)’가 아닌 ‘뷰티풀(Beautiful)’ 여인(Woman)으로 우리 곁에 서 있다.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만우절. 장국영. 전혀 연관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것 같던 두 단어.

그러나 4년 전, 그들은 묘한 관계를 맺었다. 만우절이면, 장국영하면, 상호 침투하는 관계.

오늘 4월 1일. 대중교통 요금이 오른 날. 최근 정신없이 하루하루 견디다보니 날짜도, 사람도 생각을 않고 지냈다. 오늘이 '4월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첫날임도 인식못했다. 그래서 만우절 생각을 못했건만, 국영이형을 떠올리지도 못했건만, 버스를 타고가다 길가의 벗꽃을, 개나리를 보면서 한숨 돌리고 보니 두 단어가 밀려왔다.

그래. 4월 1일, 국영이형이 '발 없는 새'로 비상했던 날. 4년 전이 문득 떠올랐다. 묘하게도 상황이 정확히 일치하는 건 아니지만, 그때처럼 지금의 나는 야생동물로서의 '이야기'를 꾸려나갈 것을 요구받고 있다. 무릇 여러 차이가 있긴 하지만 마음 속에 둥지를 튼 생각 중 다른 것은 하나. 당시엔 생존에 아우른 성장을 꿈꾼 반면 지금은 지속가능함이 우선이다. 국영이형처럼 '단절'하게 되지 않기를. 외부요인에 의한 내부의 상처가 곪아 터지지 않기를.

지난해 긁적였던 3주기의 단상. 그냥 올해도 같이 묻고 싶네. <아비정전>, 오늘 볼 수 있을까. <아비정전> 보다는 <동사서독>이 더 보고싶은 황사 짙은 어느 봄밤. 황사와 장국영. 묘한 공명을 불러 일으키네. 나만 그런가?    


어느 봄비 내리는 4월의 첫 날. 다시 그를 만났다. 아니 그저 볼 수밖에 없었다. 3년 전 오늘이 만들어낸 내 일상의 변화. 느닷없이 찾아온 이별이어서일까. 그날이 오면 박제된 그를 어김없이 끄집어낸다. 장.국.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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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만에 다시 끄집어낸 ‘아비’는 여전했다. 창백한 아름다움. 그 창백함이 어쩐지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밝은 표정 속에서도 알 수 없는 그늘이 숨어있었다. 살아생전에도 그랬지만 죽어서도 그러하다. 

‘발 없는 새’는 그날이면 내 일상의 구름 위를 그렇게 떠돈다. 그리고 흘러간 어떤 한 시대의 지난 흔적을 되새김질하게 만든다.

만우절이었다. 3년 전. 그래서 ‘거짓말 같은 죽음’이라고 그랬다. 비보였다. 그리고 휑뎅그레 남겨진 팬들의 당혹감. 더구나 만우절이라니. 3년 전 그날부터 만우절이 더 이상 내겐 이전과 같은 만우절이 아니다. 4월1일이 만우절이라는 사실보다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생긴 것이다. 피할 수 없는 기억의 작동.  

허풍선이 남작이 활개 칠 수 있는 그 날이 만우절이란 것도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었듯 장국영의 죽음도 불가항력이었다. 어떤 의지가 있었다면 그건 장국영의 것이리라. 우린 그냥 받아들여야 할 뿐. 

어쨌든 그날 이후 내게 4월의 시작은 장.국.영.으로부터 비롯된다. 잔인한 4월의 시작. 4월을 ‘잔인한 달’로 각인시킨 장본인은 T.S.엘리엇이 아닌가 싶다. <황무지>는 그렇게 읊조린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라고.

어느 수필가도 만물이 자기 피부를 찢으며 소생하는 계절, 그 울음소리가 천지를 진동한다며 그 ‘잔인함’의 유래를 설명했다. 딥퍼플은 ‘April’이란 노래를 통해 잔인한 4월을 노래했었다.

그렇듯, 누구에게든 ‘4월이 잔인하다’면 나름의 연유가 있겠지. 누군가의 죽음도 그 잔인함을 상징할 수 있을 것이고. 그저 나는 그를 기억할 뿐이다.

그런데 만약 만약에 말이다. 현재까지 그가 살았다면 어느덧 그는 지천명, 50이다. 거참. 죽기 전도 그랬지만 박제된 그에게서 50이란 나이를 떠올리기란 ‘대략난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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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국영의 죽음으로부터 한 시대의 접힘을 실감하다

그의 비상이 애틋했던 건 사실 그의 열광적인 팬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살아생전, 최소한 내게 있어 그는 홍콩배우 가운데 퍼스트가 아니었다. 그는 어쩌면 들러리였다. 양조위의 니힐함을 따르지 못했고 유덕화의 터프함에 미치지 못했으며 주윤발의 액션을 따라잡기에도 모자랐다. 그는 그저 잘생긴 ‘백면서생’이었다.

그럼에도 그 죽음은 왠지 서글펐다. 내가 그의 죽음에서 맞닥뜨린 것은 한 시대의 접힘이었다. 영웅본색(1986)부터 해피투게더(1997)까지. 내 청춘의 한 자락을 장식했던 장국영. 그러나 이후 시선에서 사라져버린 그였다. 아주 가끔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을 뿐, 그는 서서히 잊혀져가고 있었다. 전성기를 보내고 신진 세력에 밀린 과거의 스타가 돼 버렸다.

그게 서글퍼서였을까. 아니면 반발이었을까. 그는 극적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스스로 끊어버린 목숨. 그것도 높은 고층에서의 추락. 날개 없는 추락, 발 없는 새의 비상은 비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40대 중반을 넘어선 나이였지만 그의 죽음은 ‘요절’에 가깝다. 어떤 아름다움으로 인해, 영원히 청춘일 것 같은 이미지로 인해.

그랬다. 세월은 그렇게 흘렀던 것이다. 그저 일상에 저당 잡힌 생의 팍팍함은 따져보면 불연속적인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느끼게 만들지 못했던 것도 같다. 그저 변했다고, 바뀌었다고, 습관처럼 말했지만.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으나 실상 그러하지 못했다는 것. 탕진이라곤 없을 것 같던 청춘은 계절을 잃은 꽃처럼 흩날렸다.


아비정전.. 작업 거는 장국영

다시금 <아비정전>을 본다.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는 그의 흔적 찾아보기. 그는 참으로 니힐하다. 그런 한편으로 우리가 함께 했던 시대를 기억해달라며 그는 작업을 거는 것 같다. 궁극의 작업 멘트. 숱한 연애의 정석과 기술서들이 판을 치더라도 장국영이 뿜어내는 아우라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1분 멘트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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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정전> 개봉 소식을 알리는 광고?

“1960년 4월 16일 우리는 함께 했어. 우리 두 사람이 함께 했던 1분을 잊지 않을 거야. 이 1분은 이제 지울 수 없는 1분이 됐어. 내일 다시 올게.” 아비(장국영)가 수리진(장만옥)에게 건넨 이 궁극의 멘트는 기실 우리에게 거는 마법과도 같다. “그는 1분을 쉽게 잊겠지만 난 영원히 잊을 수 없었다.”는 수라진의 독백은 바로 우리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이젠 “내일 다시 올게”라는 말조차 박제된 장국영의 흔적. 그 기억은 이제 지울 수 없게 됐다. 수리진과 같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어쩌면 이런 것이 아닐까. “그는 지상에서의 기억을 쉽게 잊겠지만 우리는 영원히 잊을 수 없었다.”

땅에 내려오는 순간 죽고 만다는 ‘발 없는 새’의 전설마냥, 그는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더 이상 늙지 않을 수 있는, 그리고 영원히 기억될 박제의 길. 선뜻 알아차릴 수 없었던 어떤 시대의 접힘을 그는 죽음이라는 표현방식을 통해 보여줬다.

내게 장국영은 그렇다. 늘 내게 강렬한 인상을 줬던 풍경은 ‘정착불감증’에 시달리는 모습이었다.
 
<아비정전>의 ‘아비’부터 <동사서독>의 ‘구양봉’, <패왕별희>의 ‘두지’, 그리고 내키면 오고 그렇지 않으면 훌쩍 떠나버리곤 하던 <해피투게더>의 ‘보영’까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그는 여기-지금, 땅에 발을 내리지 못했던 것인지도.  

각자가 기억하는 장국영의 모습은 제각각이겠지만, 내 생체기억이야 4월1일의 하루에만 그를 떠올리겠지만, 오늘 하루, 그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나를 관통했던 어떤 시기를, 그 시대의 접힘을 실감한다. 오래전 그가 나왔던 초콜렛 선전은 참으로 달콤했었다. 아마 그 때도 비가 내리고 있었지... 거참 희한하네.

그나저나 국영이형, 잘 계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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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대면한지도 어언 20여년을 향하고 있다. 주변의 많은 아해들이 유덕화, 장국영, 주윤발 등에 열광할 때 그는 그들보다 더 내 가슴을, 눈길을 끌었다. 그는 대체로 니힐했고 우울함이 덕지덕지 묻어났다. 무엇보다 (스크린 상의) 그 눈빛이 날 끌어당겼다. 기쁨보다 슬픔이, 희망보다는 절망이, 당당함보다는 심드렁함이 우선 보였던 그 눈빛. 그 밖에도 외로움, 죽음, 비애, 방황, 허무, 부유, 몽환 등...

나는 여전히 (스크린 속의) 그를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배우를 꼽으라면 그의 이름은 항상 최우선 순위에 포함된다. <2046>이후 스크린 나들이가 뜸한데 그의 소식이 들린다. 반갑다. 친구야~ <무간도>시리즈에 이어 다시 만난 유위강/맥조휘와 함께 찍은 <상성:상처받은 도시>, 그리고 리안과의 만남이라 듬뿍 기대되는 <색, 계>. 다시 그 눈빛을 기다린다. 나는 그런 눈빛을 지닌 어떤 이를 알고 있다. 그 눈빛, 참으로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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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오픈아이(www.5pen-i.com)에 기고했던 글이다. 연재물의 첫 시작은 그렇게 양조위였다. 다시 양조위를 읽는다. 내가 보유한 양조위 리스트, <아비정전> <중경삼림> <첩혈가두> <화양연화> <2046>. 어느 것을 골라볼까.

 

어쩌면 그 눈빛에 감염됐는지도 모른다 … 거부할 수 없는 눈빛이 있다. 어쩌면 숱한 연민을 갈구하는, 혹은 세상에 무관심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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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눈빛은 어딘가로 향해 있다. 그러나 정작 눈빛이 머물 곳은 어디에도 없다.

심드렁함을 전염시키는, 때론 숱한 고뇌의 시신경들이 얽히고설켜 폭발일보직전의 신경쇠약을 가늠케도 하는... 그렇다고 빨려 들어갈 만큼 강한 카리스마를 내뿜지도 않는다. 니힐리즘이 덕지덕지 붙은 그 눈빛. 괜스리 나도 니힐해진다.

그 눈빛에는 어찌할 수 없는 어둠이 깃들어 있기도 하다. 언젠가는 떠날 애인을 옆에 둔 좌불안석의. 안식보다 불안을 잉태했고, 희망보다는 절망을 감추고 있었고,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돌아가는 세상에 소외당하면서도 울음을 짓누르고 있는 것 같다. 눈빛은 그렇게 그를 대변하고 있다.

비라도 추적추적 내리면 그 니힐한 눈빛이 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덩달아 그를 담은 DVD도 비에 젖는다. 제길, 우울한건가. 째즈처럼 나른하다. 끈적끈적하면서 채워지지 않는 어떤 텅 빔. 어느 비오는 깜깜한 날, 그 회색빛 풍경을 고스란히 흡수하고픈 욕망에 시달릴 지도 모른다. 나는 그 눈빛에 서서히 감염돼 '후천성눈빛중독증'에 걸린 건지도 모른다.

양.조.위. 스크린상에서 그를 만났을 때 첫 눈에 뿅가는 강한 임팩트는 아니었다. 고만고만한 홍콩느와르의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그는 확 드러나는 꽃미남이나 위풍당당한 영웅의 모습은 아니었다. 의리로 똘똘뭉친 반항아는 언감생심.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늘만이 눈가에 고여 있다.

양조위의 실존을 처음 각인했던 <첩혈가두>. 그는 총을 들고 있었지만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고 친구를 위해 울었다. 성공은커녕 그 위태한 우정마저 송두리째 잃어버린, 어쩌면 팍팍한 사람살이의 일부에 내동댕이쳐진 가련한 서자(庶子)였다. 적자(嫡子)는 그의 몫이 아니었다. 조직이, 사회가 받아들여주지 않는... 나는 이상하게도 <영웅본색>의 윤발이형이나 <천녀유혼>의 국영오빠보다 그에게 눈이 더 갔다. 왠지 알 수 없는 이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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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노래한다. 드러낼 수 없는 어둠과 슬픔과 감추기 위해. 한자락의 비애를 담은 선율이 온 몸을 휘감는다.

그리고 간혹 그를 마주쳤다. 그에게 본격적으로 추파를 던진 <유망의생>에서 그는 의외로 밝고 명랑했다(아니 그런 척했다). 드러낼 수 없는 어둠과 슬픔을 눈빛 깊숙이 박아놓은 채. 창녀촌의 무허가 돌팔이 의사, 유문. 그는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있었고 그의 세계는 소외받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되고 있었다. 현실을 초월한 것인지, 더 이상 맞대응을 하기 싫은 것이었는지, 그는 세상의 주류에 한없이 무심했다. 입가엔 미소가 있었음에도 누군가의 표현처럼 '저기, 소리없는 한 자락의 비애'였다.

무언지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 … 양조위의 주변에 유령처럼 떠도는 공허함이나,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빈자리는 신비감이 아니었다. 그는 현실에 일정부분 늘 접점을 두고 있었다. 주변부에 자리 잡을 수밖에 없던 개인이었지만.

홍콩영화가 날림에 의해 기세등등했던 시절, 그도 다작을 했다. 1985년 <무명경찰>로 데뷔를 했지만 별다른 뽀다구가 없던 탓에 한동안 나의 레이더 밖이었다. 그런 그가 내 속으로 들어왔다. 그의 인상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아비정전> <중경삼림> <동사서독> <해피투게더>를 거치며 왕가위에 의해 새롭게 빚어진 그는 <화양연화>에서 장만옥과 함께 그 존재감을 뚜렷이 각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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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그는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엇박자의 사랑이 그에겐 숙명인지도...

조금씩 세상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통을 시작했지만 그 눈빛은 여전히 비애를 품고 있었다. <중경삼림>에서 그는 사람 좋은 경찰이었지만 그의 사랑은 일방향이었다. 배신한 아내를 잊지 못한 채 시력을 잃어가는 검객이었던 <동사서독>, 떠남과 돌아옴을 반복하는 연인 앞에서 무기력하기만 한 <해피투게더>에서도. 결국 인생의 가장 화려한 시절이라는 <화양연화>에서도 양조위는 사랑의 엇박자에 슬픔만을 머금을 뿐이었다.

왜 그랬는지 물을 수 없었다. 그는 세속적인 성공의 개념도, 자신이 원했던 그 무엇도 시원스레 성취하지 못한 못난이였다. 그게 눈에 걸렸다. <무간도>에서도 그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길을 거닐었고 정체성을 잃은 채 떠돌던 방랑자는 죽음으로 생을 마무리했다.

주변부, 그의 보금자리 … 그랬다. 그는 늘 소수였고 무기력한 소시민이었다. 집단 속에 파묻히지 못하고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경계인. 그가 속한 자리는 늘 변두리였던 것이다. 개인에게 닥치는 불행은 집단이나 사회 속에서 함몰될 뿐,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도 없다. 그러면서도 그는 시대 혹은 사회의 격랑에 휩쓸렸고 사지가 꺾였다. 고종석 씨의 표현을 빌자면 '집단이라는 추상 앞에서 개인이라는 구체는 언제나 서자'임을 그는 몸소 보여줬다. 호부호형 못하는 홍길동이 무술이나 율도국은 커녕 저잣거리로 내몰린 것인가.

양조위는 그것을 눈빛으로 얘기할 뿐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스크린 속의 양조위는 적자(嫡子)가 아닌 서얼(庶孼)로서의 주변인을 대변하고 있다. 꺾어져야 할 것을 미리 알고 있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그런 그에게 허우샤오시엔의 <비정성시>가 압축판이다. 최근에 본 그 영화를 통해 왜 그의 눈빛에 매혹당할 수밖에 없는지를 알아냈다. 시기적으로 다른 영화보다 빨랐지만 그는 이미 그 눈빛을 예고했다. 격랑 앞에서 별다른 격노를 보이지 않았으며 사악해 질 수 없는 선량한 눈빛만을 그렁그렁 투사했다. 대만어를 할 수 없기에 귀머거리에 벙어리를 맡아야 했지만 그 선택은 탁월했다. 말할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그 아픔은 눈빛을 더욱 아스라하게 만들었다.

적어도 여기보단 자유롭다며 "북극에 가고 싶다"던 <첩혈속집>의 대사는 영화를 빌어 그가 말하고 싶던 건지도 모른다. <화양연화>의 차우처럼 "비밀은 영원히 가슴에 묻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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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할 수 없는, 선량하기 그지없는 그 눈빛을 나는 알고 있다. 그와 정면으로 눈길을 마주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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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들 반가운 친구들이 몰려오면 행복한 비명을 질러야 하나...^^;

어린 시절, 나의 가슴을 두드렸던 존재들의 부활 혹은 재활. 이들은 70~80년대 나를 구성했던 자양분이었다. 그들이 2007년 이렇게 찾아와서 가슴을 다시 두드릴 줄이야. 반갑다 친구야~를 외치고 한번 껴안아줘야 되지 않겠나.

달려라 달려 로버트야. 로버트 태권브이

태권브이 자유게시판엔 이런 글도 있다. 초등학생이라고 밝혔는데,

"...저희는 아직 어린 초등학생입니다. 그런데 부모님께 말로만 듣던 태권브이가 다시 살아 났습니다. 항상 지구는 미국과 일본 로봇이 지킨다고 왕의 남자 감독님이 말씀 하셨는데, 이제 태권브이가 지구를 지킬수가 있겠네요..."

아, 이 깜찍한 멘트!

로뎀, 로프로스, 포세이돈, 그리고 바벨2세. 아 요미도 빠뜨리면 서운하겠지? 바벨2세의 세 부하 중에는 로뎀을 가장 좋아했더랬는데. 클로버문고에서 나온 단행본도 당시 다 샀었다. 어머니한테 무자게 욕 들어먹으면서. 그 단행본들 다 어디에 버렸을까.
올드보이의 향수 '바벨2세'의 부활
'바벨2세', 다음은 '마즈'를 기다리며

그리고 마지막으로 록키.
빠바밤 빠바밤 혹은 빰 빰빰빠 빰빰빠 빰빰빠~ 이 경쾌한 풋워크 소리와 함께 시작하는 록키의 이야기도 빼먹을 수 없지. 전설의 귀환. 다시 그 때처럼 계단을 오르내리고 싶을지도 모르지. 'Eye of the Tiger'를 들으면서. 스탤론이건 록키건 한물갔다고 해도 그건 중요치 않아. 1편의 그때를 되살렸다니. 아, 생각만 해도 벅찬 일이야.
록키발보아
실베스타 스탤론의 귀환. <록키 발보아> 첫 공개
<록키 발보아> 그들의 영웅, 록키에 대한 팬들의 인터뷰 

호찬님 말대로 이건 가슴 떨리는 소식이 아니고 무엇이랴. 나도 반갑다, 친구들아~

무언가는 비록 복고와 추억에 기댄 자본주의적 상술일지라도, 내 추억과 가슴떨림을 내팽겨치진 않으리니. 나는 그들에게 기꺼이 내 손을 내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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