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일락(舞馡劮樂)] 눈으로 마시는 신의 물방울,

<와인 미라클 (Bottle Shock)>


‘와인’하면 떠오르는 국가는 어딘가. 아마 프랑스나 이태리가 먼저 떠오를 것이고, 칠레와 미국, 스페인도 빠지지 않겠다. 물론 와인은 취향이다보니 국적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알다시피 와인 종주국은 유럽이다. 그래서 미국산 와인은 어쩐지 젖비린내가 나는 사람도 있겠다. 미국에서 와인이 본격적으로 생산된 역사는 1848년 골드러시 이후다. 더구나 그것도 해충과 금주법 시행으로 못다 핀 꽃 한송이가 된 것을 감안하면 1960년대부터 기지개를 켰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반세기가 되지 않은 세월동안 미국 와인산업은 어떻게 절치부심하면서 짧은 기간 유럽 와인에 대적할 정도가 됐을까.  



그 하나의 단초를 소재로 다룬 영화가 <와인 미라클(Bottle Shock)>이다. 말하자면, 미국 와인의 ‘깜놀(깜짝 놀랄만한) 뒤집기 한판’.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 회자되는 1976년의 ‘파리의 심판(Judgement Paris)’이 그 극적인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다. 그 사건이 도대체 뭐냐고? 실상은 그랬다. 어떤 품종이건 코카콜라 맛이 난다는 둥, 프랑스 와인계로부터 멸시와 조롱을 당하던 미국 와인. 그러다 1976년, 미국의 독립 200주년 되던 해, 어쩌면 단순 이벤트였다. 영국인 와인판매상 스티븐 스퍼리어가 제안을 했다. 프랑스 보르도와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의 원산지와 상표를 모른 채 마셔보고선 어느 것이 나은지 평가해보자는 것. 말하자면 ‘블라인드 테스트’. 그런데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왔다. 프랑스 대표선수들을 미국의 신예들이 눌러버린 것. 화이트와인과 레드와인 모두 왕좌는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의 와인이었던 샤토 몬텔레나 1973년산과 스택스 립 와인셀러스 1973년산의 몫이었다.


당시 이 자리에 있던 유일한 언론인, 타임지의 조지 테이버가 이를 <파리의 심판>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타진했고, 이후 동명의 제목으로 책까지 나왔다. 이 극적인 사건을 소재로 영화는 캘리포니아산 와인의 알싸한 맛을 전하고자 허구를 덧붙였다. 캘리포니아의 휘황한 햇살 아래 근사하게 펼쳐진 나파 포도밭의 풍광, 그에 곁들인 ‘포도밭 그 사나이들(부자)’의 갈등과 화해, ‘구름 속의 산책’처럼 알콩달콩한 로맨스. 눈으로 마시는 와인이랄까. 포도(와인)에 담긴 어떤 생의 결을 다룬 이야기다보니 굳이 와인을 속속들이 몰라도 되겠다. 2004년 눈으로나마 캘리포니아를 돌아다니며 와인 맛을 음미하게 해준 <사이드웨이(Sideways)>의 감흥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다시 그곳을 만나는 기쁨도 있겠다.


참고로, 원제인 ‘Bottle Shock’는 와인을 병에 담거나 옮기는 과정에서 부주의로 향이나 맛이 변했다가 시간이 흐르면 돌아오는 일시적인 현상을 가리킨다. 참, 블라인드 테스트는 한번으로 끝났냐고? 아니. 1986년과 2006년에도 있었다. 결과는? 미국 와인이 정녕 신의 물방울인겨? 말 한해도 알겠지?



‘대세윤복’의 스크린 환생, <미인도>

‘혜원 신윤복’이 대세다. 문근영이 신윤복으로 환생해서 브라운관을 채우더니, 이번엔 김민선이 신윤복이 돼 스크린을 공략한다. 역사학자 등이 신윤복은 분명 남성이었다고 못을 박고 있지만, ‘신윤복이 여성이었다면’이라는 가정은 매력적인 소재인가보다. 화원 가문의 아들이 신통치 않자, 재능이 뛰어난 막내딸 신윤복(김민선)이 가문의 영광(?)을 짊어질 운명이 된다. 남자 행세를 하면서 오빠의 삶을 살게 된 윤복. 단원 김홍도(김영호)의 제자로 정을 쌓고 있던 그에게 어느 날 나타난 강무(김남길)는 사랑을 가르쳐준다. 그리고 김홍도와 기녀 설화(추자현)가 얽힌 사랑의 엇박자. 자유롭고 과감한 사랑의 풍속화를 그렸던 윤복과 <미인도>의 이면에 대한 상상도.


애니와 다큐의 새로운 접합, <바시르와 왈츠를>

1982년 레바논 전쟁에서 벌어진 대학살. 개인이 감당하기엔 그 학살의 충격이 너무도 컸던 탓일까. 친구의 악몽을 들으면서 자신에겐 말소된 어떤 기억의 행보를 좇는 영화감독인 ‘나’의 이야기. 그는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자신의 흔적을 찾아나서 기억퍼즐을 끼워 맞춘다. 과거의 비밀을 알아갈수록 선명하게 나타나는 어떤 그림들에 의해 역사 또한 분명해진다.  

독특한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바시르와 왈츠를>은 새로운 영화적 경험이 될 수도 있다. 실존인물을 토대한 한 영화내용 또한 역사와 개인의 관계를 새삼 자각하게 만든다. 2008년 칸에서 선보이며 호평을 받았고, 국내 영화제 등에서도 관객들의 시선을 끌었다. 영화적 신경험도 되고, 세계를 사유할 수 있는 수작 애니메이션.


보이지 않는 세계의 추악함, <눈먼자들의 도시>

갑자기 전 인류의 눈이 먼다면? 그런데 나 혼자만 눈이 보인다면? <눈먼자들의 도시>는 이 끔찍한 상황을 다룬다. 실명(失明)이 대세가 된 시대와 장소가 불분명한 어느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아마도 보이지 않는다고 별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틀렸다! <눈먼자들의 도시>는 이를 아수라장으로 묘사한다.

포르투갈의 문호, ‘주제 사라마구’는 인류문명의 취약함을 안다. 그의 소설 『눈먼자들의 도시』와 『눈뜬자들의 도시』는 인간의 취약한 본질을 꿰뚫는 현미경 같은 책이다. 그의 소설이 어떻게 영상화됐는지, 궁금하다고? 소설보다 약할지는 몰라도, 영상으로 구현된 상상력도 나름 볼만한 거리를 제공한다. 물론 더 좋은 것은, 소설을 통해 당신의 머리와 가슴이  구현한 상상력이겠지만. 


[코엑스몰 내방객을 위한 감성매거진, '몰링'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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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시네마디지털서울 2008 (CinDi 2008).
CinDi클래스 <24시티>.
처음 만난 지아장커.


지금-현재 세계영화계의 핵인 지아장커를 눈 앞에서 봐서,
아, 약간은 감개무량했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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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여기의 공포, <미드나잇 미트트레인 (Midnight Meat Train)>


여름의 끝물이라고? 천만에. 여름이면 만끽해야 할 공포를 제대로 맞보지 못했다면, 여름은 끝이 아니다. 아니 더 사실을 말하자면, 광우병 공포로 열어젖힌 지금-여기의 여름이 아니던가. 그 공포는 현재진행형이기에, 비약하자면 우리는 여전히 호러썸머시즌의 자장 안에 있다. 벌건 대낮에 공영방송 사장 목을 날리는 ‘임명권자’의 ‘무어처구니 슬래셔’까지 감안한다면, 올 여름의 공포는 여느 해보다 극강이다. 그 임명권자는 올 여름, 상복이 참 많다. 최고의 피바다 미학 연출상, 최고의 사이코패스 호러지휘상, 덧붙여 최고의 (국민)고문호러 감독상까지. 자국의 국기까지 거꾸로 들고 흔드는 코미디까지 감안한다면, 호러코미디에도 일가견 있음이 분명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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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풍경과 맞아떨어지는 이 호러의 풍경은 또 어떤가. “광기와 암흑, 그리고 모든 금지된 것으로의 가차 없는 하강.” 헉, 지금-여기의 풍경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이 오싹함. 호러 작가이자 호러영화의 고전 <헬레이저>의 감독 클라이브 바커는 자신의 단편소설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Midnight Meat Train)》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리고 이 단편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동명의 영화가 선보인다. 이런 절묘한 타이밍하곤. 그것도 뉴욕을 배경으로, 일본인 감독이 연출했다. 허허. 지금-여기의 공포 상황을 어떻게 그들이 예견하고. 놀랍고도 섬뜩한 예지력?

그렇다.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은 새로운 호러 심볼의 호러 만신전 등극을 예고한다. 그 주인공은 ‘마호가니’(비니 존스). 뉴욕의 야간 지하철에 서식하는 연쇄살인마다. 그는 인정사정 보지 않는다. 탑승객을 상대로 가르고 베고 짓이기고 벗겨낸다. 또 발목에 갈고리를 꿰었을 때 어떤 반응을 나타내는지, 손톱을 뺐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 등을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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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사롭지 않다. 유혈낭자와 도살도령의 풍경이. 마호가니의 쇠망치는 오대수(<올드보이>)보다 확실히 더 직접적이다. 그래서 덜 위험하긴 하다. 쇠망치에 족족 쓰러지는 더미(인형)의 훼손된 육체는 살풍경을 즐기는 호러 팬에겐 축제가 될 수도 있겠다. 두근두근 쿵쿵이다. 한편으로 혹자에겐 현실세계의 풍자되겠다. 마호가니를 보자면, 딱 누군가가 떠오르겠다.

이 마호가니를 쫓는 또 하나의 축인 사진작가 레온(브래들리 쿠퍼)을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 되겠다. 기이한 도착증에 사로잡힌 그의 렌즈를 보자면, 지금-여기의 어떤 미디어가 연상된다. 그래서 기시감 투성이의 영화라고 투정할 수도 있겠다. 단, 원작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결말의 반전은 다소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이 영화 보고, 새벽 2시6분에는 지하철 타지 않는 것이 좋겠다. 왜? 돌이킬 수 없는 길이 될지 모르니까. 하지만, 지금-여기에는 2시 넘어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다. 마호가니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사실 없다. 그러나 대낮에도 여기저기서 보이는 그놈이 문제지. 쯧. 마호가니 같은 그놈. 현실과의 싱크로율 109%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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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그리고 무엇보다, 70~80세대에게 반가운 소식. <블루 라군>의 브룩 쉴즈가 오랜만에 스크린에 도달한다. 레온을 지하철로 몰아넣는 갤러리 관계자 수잔 역. 오랜 만에 인사해도 좋다. ‘롱타임 노씨.’

( ※ <더 몰링> 9월 창간호에 기고했으나, 창간호 발간이 무산되면서 사장된 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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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최고의 만화라고 말, 분명 못한다.
하지만, 내 생애 이만큼 복잡하지만 흥미진진한 플롯의 작품은 흔치 않았다.
우라사와 나오키 작가의 《20세기 소년》 얘기다.

우라사와 작가의 《몬스터》에 대책없이 풍덩 빠졌던 나는,
《20세기 소년》에도 어쩔 수 없이 흡입되고 말았다.^^;

언제부터였는지 확실치 않지만,
《20세기 소년》을 내 서재에 채워넣기 시작했고,
찔끔찔끔 나오는 20세기 소년을 기다리는 일이,
나의 일상 중 하나가 되고 말았던 적이 있다.

그리고 도저히 영화화가 불가능하리라 여겨졌던,
《20세기 소년》이 영화로 만들어진단다.
기다렸다.
그 엄청난 예언의 스펙터클을 스크린을 통해 만나는 일을.

그 오랜 기다림의 끝, 마침내,
《20세기 소년》이 스크린에 도달했다.
3부작으로 관객을 만나게 된 《20세기 소년》.
1부가 2008년 9월11일, 개봉박두.

원작(만화)을 그대로 스크린에 이식(카피)한 탓인지,
"원작에 지나치게 충실한 각객"(김봉석)
"힘겨워 보이는 각색, 터질 것 같은 스크린"(김혜리)
"속편에 대한 기대감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 밍숭맹숭한 결과물"(김종철)
등의 평을 듣고 있는 <20세기 소년:제1장 강림>이지만,

뭐 어때. 나는야, <20세기 소년>을 기둘리는 21세기 키덜트 아니던가.
고로, 현재의 내 심정은, 이렇다.
두근두근 쿵쿵.
당신과 함께, <20세기 소년>을 만나고 싶다.
참고로, 원작(만화)를 꼭 보라.
당신을 향한 나의 강추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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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지난 2년 전,
당시 동료였던 배성준님의 도움으로,
<괴물>의 봉준호 감독과 우라사와 나오키 작가의 대담을 정리했던 글.
이 대담의 정리를 제의받으며, 가슴 설렜던 한줌의 기억. ^^
두 몬스터(괴물)의 만남.

음, 그래도 사실 나는 우라사와 작가의 작품 중에,
《20세기 소년》보다 《몬스터》를 더 좋아한다.
2년 전, 《몬스터》의 영화화 또한 진행 중이라고 들었는데,
언제쯤 스크린에 도달하시려나.
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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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봉준호, <20세기 소년> <몬스터>의 우라사와 나오키를 만나다

두 ‘괴물’이 만난 현장을 훔쳐봤다. 한일 양국에서 매체형식은 다르지만, 각자 영역에서 최고 수준에 올라있고, ‘괴물’(몬스터)이라는 작품을 갖고 있는 창작자들. 관객 1000만에 도달한 영화 <괴물>의 봉준호 감독과 일본의 국민작가로 인정받으면서 전세계에 팬을 갖고 있는 <몬스터>의 우라사와 나오키 작가의 만남. 다르게 말해보자면, 이 현장은 1000만 관객(<괴물>의 현재까지 관객동원)과 2500만 독자(<몬스터>의 일본 내 판매부수)의 만남이다. 이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가. 두 사람의 팬이라면, 이 ‘괴물’들의 충돌이, 그들이 뿜어내는 에네르기의 향연에 므흣해 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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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소년》의 켄지가 부르는, T.Rex의 1973년 히트곡 ‘20th Century Boy’
2008/07/27 - [온통 어리석음의 기록] - 여전히 서식 중인 ‘괴물’, 약자들의 연대가 필요함을 보여준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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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보이(Marine Boy : 저용량 MB와는 전혀 무관).
그건 내 애칭이었어.ㅎㅎ 자칭타칭.

뭐 다른 이유 없었어.
단지 바다가 낳고 키운 아이였다는 것(바다 출신), 오로지 그것 하나.

그 애칭은 또한 마린보이,
그 애니메이션에서 비롯된 이름이었지.
바다의 왕자 마린보이 푸른 바다 밑에서 잘도 싸우는
슬기롭고 씩씩한 용감스러운 마린보이 소년은 우리 편이다~
그래서, 이 노래, 늘 함께 했지.
애니의 주제가이자, 내 주제가.ㅋㅋ

근래 '마린보이'라는 애칭이 자주 불리게 된 건,
(박)태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