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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아니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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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빛

표지만 보고 있어도 가슴이 몽글몽글해진다.

근래 몇 년동안 정서적으로 나를 가장 풍성하고 충만하게 만든 만화(바닷마을 다이어리) 다섯 번째 이야기. 30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만화. 아마 죽을 때까지 품고 갈 만화를 고르라면, 지금까지 내겐 《H2》《바닷마을 다이어리》시리즈다. 


네 번째 이야기까지 본 뒤, 나는 이렇게 소개했었다. 


요시다 아키미가 그린 가마쿠라 바닷가 마을엔 크고 대단한 이야기가 없다. 소소하고 작고, 사소할 뿐이다. 그건 곧 일상이다. 코다가의 네 자매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잔잔한 바다의 물결은 책을 덮을 때쯤 쓰나미로 다가온다. 일상에서 길어 올리는 잔잔하고 속 깊은 시선 덕분이다. 이토록 사려 깊은 만화라니, 가슴이 몽글몽글해진다. 詩적으로 다가오는 각 권의 제목은 책을 덮을 때면 또 다른 울림과 사색을 유도한다. 《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한낮에 뜬 달》《햇살이 비치는 언덕길》《돌아갈 수 없는 두 사람》. 그리고 마침내 책을 덮을 때마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힌다. ‘아, 이런 마을, 당장 살고 싶다.’ 꼭 옆에 두고 좋아하는 사람들하고만 나누고픈 작품이다. 맞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만화작품 중 하나다. 참고로, 도쿄 근교에 위치한 가마쿠라는 《슬램덩크》의 무대이기도 했다. 




'그 여름의 순정'이라고 했다.

뭔가, 가슴이 찡했다. 내게도 있었던 그 여름의 순정(들) 때문일까. 

아 그래, 여름이 끝나지 않았구나. 끝물이라고 해도 내겐 아직 여름이 남았구나. 순정의 기억은 여전히 그해 여름(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 '한낮에 뜬 달'을 그리며, '햇살이 비치는 언덕길'을 올랐다. 그 뒤안길로 '돌아갈 수 없는 두 사람'이 보였다. '남빛'의 바다가 보고 싶어 졌다. 모든 게 사라져버리는 게 아니다. 사라지지 않는 것도 분명히 있다. 끝났다고 다 끝난 게 아니다. 마초에게도 그 여름의 순정이 있다. 


남빛 커피, 마시고 싶다. 남빛 같았던 너의 기억으로 버무려진 커피. 깊고 푸른 남빛 같았던 너와 함께 마셨던 그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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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비. 길지 않았지만, 여름비가 왔어.

 

좋더라.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 호우시절(豪雨時節).

빗소리, 어쩌면 빗소리를 질료 삼아 빚어낸 것 같은 니 하이톤의 목소리, 그 목소리.

니 생각이 잠깐 났어. 그래, 우린 여름에 만났는데, 여름비를 함께 맞이한 적이 없더라.


오래된, 너에 대한 기억을 공유한, 함께 늙어가는 아해들을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었을 거야.

 

역시 니 이름이 호명되고, 이 늙어가는 아해들은 볼 때마다 똑같은 이야기로 웃음을 터트린다.

그만큼 우린, 즐거웠고 행복했던 거지. 호우시절이었을 거야.

날짜를 봤어. 아, 그렇구나. 6월 들어 생각이 들긴 했는데, 이젠 코앞이네. 

 

사랑이다, 아니다. 아해들은 그때 그 시절, 각자의 추억을 놓고 그렇게 주판알을 튕구더라.

하하호호. 즐거웠어. 너도 꼭 함께인 것 같은 시간. 상호, 진희, 종민이도 그렇게 즐거운 시간.

 

그래, 모든 게 여름비 때문이었을 거야. 때를 알고 내린 좋은 비.

 

여름이야, 여름.

네 하이톤으로 여름이에게 건네는 인사가 듣고 싶네.
네가 알려준 거야. 그렇게 인사하는 것. 나 여름이한테 지난주 인사했거든. 안녕, 나의 여름. :)

 

여름비가 좀 더 내려줬으면 좋겠어. 좋다, 여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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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봄눈

강풍을 동반한 비에 이어 눈이 날린다. 씽씽 불어라. 펄펄 날려라. 4월이라는 달력의 타이틀이 무색하다. 그러나 '4월'이라는 것을 제한다면, 그게 그리 대순가. 실은 4월의 눈, 반갑고 좋았다.(춥다고 봄날씨가 왜 이러느냐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말은 못했지만^^;) 19년 만이라고 했다. 19년 만의 손님이잖나.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봄비도 그렇다. 어느 때부턴가 봄은 가뭄이 더 익숙한 계절이었다. 그런데, 이틀에 걸쳐 내렸던 봄비라니. 젖은 봄밤이 섹시했다. 어쩌면 쉬이 찾아오지 않을 봄비의 흐느낌. 어젠 특히 소리도 좋았고, 내음도 좋았다.

무릇, 봄밤은 그렇게 익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누군가의 마음에만 쌓인 봄눈과 함께.

미도리  

어제 봄비 소리 들으면서 이번 4월, 모처럼 미도리를 꼭 만나야겠다고 다짐했다. 봄날의 곰 같은 미도리. 그래, 맞다. 《상실의 계절(노르웨이의 숲)》의 미도리. 봄눈 같은 그 여자.

미도리도 아마, 봄밤을 가장 좋아하지 않을까? 미도리와 봄커피 한 잔, 하고 싶어졌다. 그녀는 아마 혀가 얼얼할 정도의 시큼한 산미의 커피를 좋아할 것 같다. 나는 그 커피, 미도리 커피라고 명명한다. 봄은 산미가 찐한 커피가 제격이다.

봄밤

어제 북살롱에서 만난 장석남 시인, 봄밤에는 바람나는 것이 제격이라고 했다. 바람나지 않으면 봄밤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니 여러분 모두 봄밤에 바람나는 것이 자신의 바람이라고 했다. 

그래, 봄밤에는 바람. 그래서 나, 봄밤이라는 계절을 가장 좋아하는 것일까.

그러니까 당신의 봄바람, 죄 아니다. 봄밤이 그렇게 부추겼으니까. 

봄바람에 흔들려야 생명인 것이다. 봄밤이니까.  

내게 봄은 김수영 시인의 '봄밤'과 함께 오는 것이었는데, 하나 더 추가요~

봄밤 2

봄밤엔 바람나네
內外 없이 바람나네
방들을 헐고 바람들 들이네
봄밤에 나는 바람난 숨결들에 반하네
늙은 살구나무의 밤샘 신음에
개나리 울타리가 노랗게 앓네
봄밤에 나는 바람난 國境이네
內外 없이, 憂國忠情 없이
바람난 國境이네
그러나 봄밤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앓고 있네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사회적기업
5일, 씨즈에서 주최한 사회적기업 관련, '비전 나눔 토크쇼'에 풍덩. 푸릇파릇한 청춘들의 세계를 향한 눈빛이 이글이글하다. 나야 흐리멍덩 동태 눈깔로 봤지만, 그들의 내뿜는 열기는 후끈후끈, 하악하악. 사회적기업이 빠질 수 있는, '좋은 일, 좋은 의미'의 함정. 암, 나도 저것을 늘 경계해야 한다고 봤다. 자가당착으로 빠지는 경우를 봤으니까. 그럼으로써, 과도한 노동, 잦은 구성원 교체, 민주적 운영의 상실 등 무늬만 사회적기업인 경우를 경험했으니까.

잘 쓰면 약, 못 쓰면 독이라지만, 지금 내가 보는 인증제도는 '독'이다. 사회적기업이 대체 인증을 받아야 할 이유가 뭣인가. 많은 이들이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아서 인건비나 딸려는 현실. 인증제도의 감옥에 창의와 혁신은 갇혔다. 박병은 트래블러스맵 이사가 지적한 것에 나는 완전 동의. '사회적기업 간판'과 '사회 혁신'은 동의어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기업의 구성원이 모두 행복한가!
쿠바 독립의 아버지이자, 문인·정치가·혁명가였던, 체 게바라에 큰 영향을 줬다는 호세 마르티는 이리 말하지 않았던가. "단 한 사람이라도 불행한 사람이 있다면, 그 누구도 편안하게 잠을 잘 권리가 없다."


올해, 사회적기업 혁신모델 탐방단이 역시 출동한다. 고민할 만하다. IT 및 SNS, 적정기술, 지역개발, 공동체 기업, 사회적기업을 위한 사회적기업, 대안소비.

나는 어떤 詩를 읊을 것인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딸이 세계가 뭔지 물었을 때, 해주고 싶은 말이 계속 남는다.
"너도 세계의 일부고, 세계도 너의 일부란다. 그 다음은 네가 생각하렴.

아울러,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서 아버지(오다기리 죠)가 아들에게 했던 말도.
"네가 가족 말고 다른 것도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음악이라든가 세계라든가."

아무렴. 사회적기업은, 세계를 생각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근데, 문제는 오다기리 죠가 저리 말하면 간지 작렬인데, 내가 하면 똥폼이 된다는 것.
아, 슬프다. 잘난 것들만 대접받는, 이 멋진 세상~
  



홍자매

홍은정, 홍은영으로 구성된 팀(홍자매)에 나는 홀라당 반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 자신 없는 것을 자신 없다, 그러니 도와 달라, 고 말하는 이들의 숨기지 못하는 '진정성'은 자신감과 같은 단어로 규정할 것이 아니다. 패기만만하고 자신감 충만해 뵈는 여느 청춘들과 다른 빛깔. 나는 그 빛깔이야말로 사회적기업의 또 다른 가능성이라고 봤다. 아니, 그냥 그들의 가능성이라고 하는 게 낫겠다. 눈은 번쩍, 귀는 쫑긋, 입은 터억. 막감동, 완전감동, 폭풍감동.

'요행'을 바라지 말고 건강한 유기농 '여행'을! 이라는 테마를 건 그들의 여정이 미더울 수밖에 없었다. '로컬푸드' 그리고 '좋은 먹거리'를 생각하고 있을 그들과 어떤 식으로든 결합할 여지가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 살짝 들떴다. 동지들을 만난듯하여. 분명 좋은 사람들이다, 확신까지 들 정도. 아름다운 자매다.홍자매.

부디, 똥파리가 들러붙어도 잘 떨어트리길. 파리채는 내가 책임진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홍자매팀은, 몇해 전 무농약 귤농사를 짓기 시작한 아버지를 계기로 '규격 외 농산물 활용과 지역관광을 통한 사회적 기업'을 준비 중이다.
지역관광의 사례학습, 규격 외 농산물의 이용현황과 활용가능 사례, 지역농산물의 2차 가공품 사례와 판로모색을 주제로 일본을 탐방했다.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요리기술을 배우는 등 조용하지만 차근차근 사회적 기업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쿠바
1월1일의 쿠바. 나는 여전히 그것을 그린다. 1953년 7월26일부터 전개된 쿠바혁명은 1959년 1월1일 바티스타 정권을 몰아냄으로써 혁명의 깃발을 꽂았다. 애니메이션 <치코와 리타>가 꽂힌 건, 바로 쿠바(인들과 음악). 이토록 관능적인 포스터하곤. 딱 보면, 숨 막히지 않나? 나? 말초신경 돋는다! 'Must-See 필름'.

책도 질렀다. <몰락 선진국 쿠바가 옳았다 : 반성장 복지국가는 어떻게 가능한가?>.

내게 <치코와 리타>를 보여주면, 그 어느 해 1월1일 혁명기념일에 맞춰 쿠바로 갈 때 데리고 간다! 무슨 재주로? 사회적기업은 가능하다. 쿠바에도 커피가 나거든! 크리스탈 마운틴. 나와 함께 관능의 볼레로를~



김광석

자정 넘은 이 시각 1월 6일, (김)광석이 형 16주기.

고딩 때 한 소녀가 수줍게 건넨 녹음테이프의 B면 첫 곡이 '사랑했지만'.(A면 첫 곡은 퀸의 'Love of my life') 그런 시절, 있었다. 그때 처음 '김광석'을 알았고, 그때 이후 '김광석이라는 노래'를 줄곧 좋아했다. 탁한 듯 맑았고, 노래는 세상을 품고 있었다.

군대 가기 전, '이등병의 편지'는 또 얼마나 불러 제쳐댔던가. 저주 받은 이 군댈 나가면, 광석이 형 콘서트 보러 대학로 학전블루로 가야지 맘 먹고 있던, 제대 100일이 채 남지 않았던 1996년의 1월6일. 광석이 형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TV의 미친(?) 소리에 멍~하던 병장 이준수. 서른 즈음엔, 담배 뻑뻑 피면서 '서른 즈음에'를 주야장천 들었었다.

비록 사회적기업가들과의 약속 때문에 오후 8시에 펼쳐지는 16주기 콘서트 ‘김광석 따라부르기 2012’에는 못 가지만, 술 들이키고, 광석이 형 노래나 불러 제쳐야지.

광석이 형, 잘 있는교? ㅠ.ㅠ



배짱

1년여 전에 처음 봰 한 출판사 대표님이 "배짱 많게 생겨서" 날 기억하고 있다고 얘길 건넨다. 기억해 주신 것, 참 고마운데, 그 말 태어나서 처음 듣는다. 좋은 말이겠지?ㅋ 사실, 난 그 대표님 기억을 못했거든. 아, 어쩜 좋아. 미인들만 기억하는 더러운 뇌 구조라.^^; 오늘, [내 마음을 만지다] 참 좋았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詩를 꺼낸 그 장면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래, 원래 우리 각자 안에 시인 있거든.
우리 자체가 원래 詩거든.
그러니, 이런 질문, 당연하다.
"나는 어떤 詩가 될 것인가?"

광석이 형은 그래, 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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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2011년 만난 여자들 중에 가장 예쁜, 아니 아름답고 지적인 여자를 봤다. 올해가 며칠 남았지만, 글쎄, 바뀔까? 그리 된다면 물론 좋지만, 보는 순간, 속으로 우와~ 했다. 동공은 커지만 귀는 쫑긋, 심장은 빠담빠담. 물론 속깊은 대화를 나누지도 못했고, 다른 이들도 함께 한 자리라, 그저 외모와 아우라가 모든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1년 동안 봤던 모든 여자를 압도하는 지성과 아름다움.

美, 그 자체. Beauty, PSO!

허나, 내게만 치명적이라면 그녀가 결혼을 했단다. 우르르르, 하늘에 구멍이 뿡~ 뚫리고 있었다. 이른바, 나이 먹은 여자들이 불평 혹은 불만을 내지르곤 한다. 세상의 멋진 남자들은 이미 다른 여자들이 채갔어. 그때 내 심정이 그랬다.

아, 세상의 아름다운 여자, 美는 이미 다른 남자들이 채갔구나. 저런 여자와 사랑하고 결혼하려면 전생에 나라를 몇 번이나 구해야하는 거지? 결혼이라는 제도는 참 많은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마력을 지녔구나. 스쳐지나가며 놓친 것들도 때론 얼마나 소중한가 말이다. 2011년, 그렇게 간다.


남인사십
서울 사는 몇몇 고등학교 동창들. 송년회랍시고 어제 모였다. 얘길 나누다, 내년 사십이 된단다. 맞다. 내가 그 얘길 꺼냈다. 갑자기 분위기 싸해진다. 한 녀석은, 누군가는 사십이 되는 새해 첫날, 온몸의 마디마디가 다 쑤시고 몸부터 달라진다는 얘길 꺼낸다. 우스개였는데도 녀석들 눈빛이 후~하는 한숨을 내쉬고 있다. 그들의 거의 모든 관심사는 아이(교육)와 회사에서 쫓겨나지 않기(혹은 출세·승진).

뭔 말을 하다가 무상 의료, 무상 교육을 슬쩍 꺼냈더니, 헛소리하지 말라는 구박만 날아든다. '기본 소득' 얘기도 좀체 통하지 않는다. 나의 절망과는 다른 자포자기다. 그들은 이미 세상의 진보와 꿈따윈 사치처럼 생각하는 세대가 됐다. 슬픈 일이다. 사십이어서 슬픈 게 아니라, '나'는 지워지고 가족위주로만(가정적인 것이 아닌!) 사고하면서 세상을 사유하지 못하는 샐러리맨들이어서. 슬픈 내 동창들의 추억이여.

슬퍼도 다시 한 번 오지 않을, 사십이여. 사십, 그냥 이 쇼를 즐겨라(Just enjoy the show!). 인생은 미로 같고 사랑은 수수께끼 같으니까. 잘 얻어먹었으니, 녀석들에게 건네는 나의 선물, < The Sho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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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기대, 없었어요. 나는 그저 공연장에 있었고, 그저 흘러나오니까 흘러나오는 대로 귀를 열었고, 피곤과 고단에 쩐 몸을 풀썩 흐트려 놓고 있었을 뿐이지요. 

그러다, 부르르르, 몸이 반응을 합니다. 음악이 몸을 깨우고, 마음에 스밉니다. 음악이 온 몸을 감싸면서 신경계를 타고 곳곳에 전이되는 그런 느낌. 혹시, 아세요? 쉽지 않은 경험이죠. 아마도 지독히 몸이 고단해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지만, 뭐 그럼 어때요. 

감동입니다. 그 파르라니 푸르라니 떨리는 라이브의 음색. 루시아라는 이름. 생소했어요. 어? 발랄하고 예쁘네? 노래보다 말을 먼저 들었을 때 느낌은 그랬는데, 음악이 흐르면서 저는 그만 풍덩 빠지고야 맙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흐르고서야 알아차리고 말았습니다. 저의 둔감한 센스하곤! 

에피톤 프로젝트. 심규선. 아. 부디... 그 노래를 듣고서야 그만... 눈물샘이 먼저 알아챕니다. 눈물이 또르르르... 그제서야 알아차렸습니다. 멍.충.이, 준수. 심규선이 루시아였음을. 에피톤 프로젝트와 함께 작업하던 뮤지션이었음을. 

아, 어쩜 좋아요. 제 마음에서 오지은, 한희정, 이아립, 요조, 타루, 다 밀어버리고선, 루시아는 단박에 만신전에 오르고 맙니다. 배신자요? 어쩔 수 없어요. 속수무책입니다.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고야 만 겁니다. 손 쓸 도리도 없이, 마음 붙잡아 둘 여지도 없이. 그저 그럴 수밖에 없는 그런 것.


꽃처럼 한 철만 사랑해 줄 것이 아닌, 뮤지션을 건졌습니다. 서경식 선생님 알현이 목적이었던 그 자리에서요. 이런 걸 본말이 전도됐다고 하나요? 아님, 레어템 획득? 그는 분명, 레어한 뮤지션이자,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껄이자면, 레어한 여인일 겁니다. 더디고 무책임한 감이지만, 저는 그런 감을 잡았으니까요!

오늘, 커피를 만들면서 커피향과 함께 한, 아니 공기와 함께 한 거의 모든 시간, 그녀의 음악이 공기 중에 흐르게 하거나, 허밍이 떠돌아다닙니다. 가을비라고 믿고 싶은 눈물이 나무가 그만 잡은 손을 놓아버린 잎 사이로 흐르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 음악들에 위로 받고, 슬픔을 함께 나눴습니다. 고맙습니다. 루시아. 그리고 그 음악들. 지금도 그렇고요. 밤별이 노래와 함께 흘러요.

끔찍하게 민감한 마음. 그녀는 용감하고 씩씩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눈치 챘을 거예요. 그녀의 말에 묻어있는 어떤 슬픔과 여운. 짝사랑 앓으면서 만들었다는, '꽃처럼 한 철만 사랑해 줄 건가요'의 정조도 그랬지만, 그녀의 말꼬리에 붙은 어떤 마음의 조각들.  

부디, 이 노래가 끝나자, 사람들은 박수를 쳤는데, 나는 그 박수가 미웠어요. 산통 다 깨는 기분이었어요. 단 몇 초라도 정적과 고요가 필요했거든요. 그 짧은 순간이라도 이 노랠 음미할 수 있으면 했어요. 어떤 라이브 음악은 그렇지 않아요? 박수보다 그저 안에서 곱씹으면서 잔향을 품고 싶은.

당신도 그런 적 있죠?  

당신이라는 시간, 그 길고짧음은 큰 의미 없다고 보는데, 당신 없는 계절의 바뀜, 어쩌면 혹독해요. 지금 나무들처럼 많은 것을 놔야 하는데, 당신과 함께 한 순간이 너무 빛났던 까닭일까요.

당신을 떨쳐버리기 위한 목적만은 아니지만, 나도 당신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이것저것 많은 일을 하고, 몸을 때론 혹독하게 다그칠 때도 있어요. 헌데, 정말 루시아의 말처럼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상관없이 당신이 있어요. 당신은 내게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 모르죠?

내가 당신을 생각하며 할 수 있는 건, 당신이 만족할 수 있는, 당신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지게끔 만드는 커피를 추출하는 것이었는데. 당신은 그런 마음을 들게 한 사람이었는데,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커피를 만들고 있는 걸까요. 내가 가진 도구로 당신을 향한, 당신에 대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던 날들, 모든 것들이 꿈만 같아요.  

그래도 있잖아요. 나도 이 계절이 혹독해도, 이토록 좋은 음악을 해주는 뮤지션들을 만나고, 어설피 깝죽대는 내게 자극과 지혜를 심어주는 서경식 선생님과 같은 좋은 어른들, 내게 커피를 내리게끔 만드는 사람들이 있는 한, 그렇게 아주 혹독하지만은 않을 거예요.

그렇게 말하고 있는 새, 11월이 안녕을 고하고, 12월이 안녕을 말해요. 루시아의 노래 중에, 안녕, 안녕 이라고 있는데, 묘하게 맞물리네요. 음악의 힘은 참 강해요. 말했던 가요? 나는 다른 무엇보다, 음악이 가장 힘이 세다고 생각한다는 걸. 서경식 선생님도 비슷한 말씀을 전하셨는데, 칸딘스키가 그랬대요. 음악은 예술 중에서 최고의 분야라고.

부디, 함께 들어요.
루시아의 말을 빌자면, 이것은 무탄산, 열량이 없는 달콤함으로, 죄의식이나 책임감은 조금도 함유되지 않았으니까. 부디, 이것을 낭비해 주세요!

닥치고 루시아! 음원이 아니라, 저는 앨범을 삽니다. 한 철만 좋아할 뮤지션이 아니라면! 저는 닥치고 앨범(음반) 구매. 아, 혹시라도 루시아님이 내 커피를 마시러 온다면, 나는 온 마음과 내 모든 존재로 커피를 내리게 될지도 몰라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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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시인 김수영. 詩로, 술로, 노동으로, 온몸으로, 시대와 사회에 저항한 사람. 대개는 시대가 시인을 만든다. 시인은 시대속에서 부대낀다. 허나 어떤 시인은 그 등장만으로 새 시대를 연다. 나는 김수영이 후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는 詩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새로운 시인의 등장이었다.

이 너절하고 졸렬한 야만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오롯이, 詩다. 자본과 폭력앞에 詩想이 떠오르지 않는 시대니까. 희망을 노래하고 온몸으로 희망을 뿜던 송경동 시인이 구속됐다.

그 개새끼들은 詩를 모른다. 詩가 왜 필요한지, 시인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지, 모른다. 시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시인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시인은 사회의 환부를 남보다 먼저 감지하는 몸을 지녔다지 않나. 시인의 아픔이자 숙명이다. 송경동 시인이 우리 앞에 나선 것은 그런 까닭에서였을 것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 '詩를 말하는 것'이 사치가 된 시대, '시인이 나선 것'이 죄가 된 시대, 죽은 시인의 시대. 누군가는 그래도 아직 다른 나라보다는 시집이 많이 팔린다며 안도하지만, 글쎄 나는 잘 모르겠다. 시인을 척결하고자 자본과 국가는 혈안이 돼 있는데, 무슨 희망 따위를 말할까. 

김수영이 필요하다. 이젠 우리가 김수영이 돼야 하지 않을까. '난닝구' 입고도 저런 미친 존재감을 발할 수 있는 사람. 저 포스, 저 아우라는 정직한 자기성찰과 반성, 일상성에 대한 수용과 폭력을 향한 저항을 할 줄 알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진정한 시인이란 선천적 혁명가"라고 선언하지 않았던가. 그는 혁명가였다. 요절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혁명은 좀 더 앞당겨졌을지도 모른다.


2011년 11월27일. 김수영 탄생 90주년. 너에게 김수영을 권한다. 지금, 김수영이 필요한 시간.

시인을 석방하라던 이라영 씨의 말, 나도 그녀 말을 따른다. "시를 행한 죄-시인을 석방하라"


수애
그런데 사실은... 있잖아... 지금, 김수영보다 수애가 더 좋아. ^^;;
수애가 지금 내겐 곧 詩이자 시인이란다. 더 정확하게는 서연, 이서연(<천일의 약속>).
저토록 강인하고 지적인 여자, 뭣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사랑을 할 줄 아는 여자. 우히~

그녀가 3년이라는 축복을 부여받았으면 좋겠다. 천일이잖아. 천일의 약속. 천일동안.


강릉
정작 커피축제 때는 못갔다. 커피향 가득한 공간이 된 강릉의 향기가 궁금했는데, 허난설헌을 만나기 위해 강릉을 갔다. 400여년 전 스물 일곱에 요절한 허난설헌은 어쩌면 시대가, 사회가 죽인 타살이 아니었을까.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녀가 받아야했던 멸시와 굴욕. 조선시대 이후, 수컷남자들이 여자사람을 계속 죽이고 있다.

강릉 초동마을의 늦가을.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바람은 없었고, 詩가 있었다. 허봉, 허초희(허난설헌), 허균, 시인이자 사회를 바꾸고 싶던 개혁가들의 자취가 덕지덕지. 조선, 한국, 그 앞선 시대 모두 이땅에선 기득권이 바뀐 적이 없다. 개혁이건, 혁명이건 성공하지 못했다.

강릉의 커피는, 커피대자본(들)의 획일적인 커피 맛과 향을 뒤집어주는 '커피혁명'을 바람.

스물일곱. 지미 헨드릭스, 재니스조플린, 짐 모리슨, 커트 코베인, 에미미 와인하우스가 요절한 나이. 그들은 결국 난설헌을 따르고 싶었던 거야. 난설헌이 스물일곱 요절의 시초였었어!

그런데, 얼마나 예쁘고 총명했으면 난설헌이라고 불렸을까. 영정사진이나 조각은 너무 늙었고, 고전적이야. 재미가 없어. 강릉시의 미적 감수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난 아름다운 난설헌을 보고 싶어. 아름다운 여자, 난설헌. 수애 정도의.

아놔~ 나 지금, 수애병인가 봐. 알츠하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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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격언이랍시고, 어른들은 말했다. 지금도 말한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시련이 큰 그릇을 만든다. 조까라 마이싱. 그건 박물관에 처박힌 말이거나,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때 지껄이는 상투적인 관성이다. 김한길의 어머니가 말씀하셨듯, 대개의 경우 시련이란 보통의 그릇을 찌그러뜨려 놓기가 일쑤다. 그리고 고생 끝에는 낙? 지랄, 거개는 병이 온다. 자칫하면 죽는다.

최근의 아프니까 청춘이다, 와 같은 말도 마찬가지다. 그 말, 나름 청춘을 위로하고 힘을 불어넣고자 한 것이겠지. 그 마음, 폄하하자는 건 아니나, 명백하게는 거짓 위로다. 거짓말이다. 아파서 청춘이라는 명제가 성립 가능하기나 한가. 그런 위로보다 스산하고 암울하며 절망적인 진짜 모습을 까는 게 훨씬 낫다. 세상은 점점 나빠지기만 할 뿐이다. 거짓 위로로는 그것을 멈출 수도 제어할 수도 없다.

김한길의 《눈뜨면 없어라》의 미덕은 그런 것이다. 아직도 그의 이야기가 현실적합성을 지닌 이유다. 그냥 좆 같은 건 좆 같은 거다. 사소하게 행복해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도 그렇고, 아프고 슬퍼도 니보다 못한 사람을 생각하라는 강요도 우습다. 고작 한다는 말이, 아프니까 청춘이다? 멘토 남발에 멘티 득실. 멘멘만 거리다, '토'하고 '티'내고 말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그렇게 거짓으로 지탱되는 사회다. 하긴 언제는 안 그랬느냐만은. 거짓에 질식돼 뒈질 나라다. 물론 나는 그 나라의 소시민이니까, 거짓에 휘둘려 버티고 견디다 죽을 것이고.

씨발. 한-미 FTA로 죽도록 피똥만 싸다가 뒈질 불쌍한 우리여.
영하의 칼바람에 나라가 쏘아주시는 물대포나 맞고 버림받아야 할 불쌍한 우리여. 


낭만
낭만도 이미 죽었다. 폐기처분 됐다. 노래방, 다른 선배들은 열심히 노랠 부르고 지랄발광을 하는 와중에 한 선배가 내 귀에 대고 말한다. 니 선배들, 이 낭만이 사라진 시대에 그래도 낭만이 남아 있지 않냐? 개뿔, 무슨 개소리요, 하고 받아쳤다면 개뻥이고. 속으로, 웃었다. 아니, 비웃었다.

낭만은커녕, 추잡이요, 소아병적인 알코올 연대다. 국가의 버림으로 이라크에서 무참히 살해된 김선일 씨를 말도 안 되는 유머 소재로 아무 생각없이 사용하고, 폭탄주를 돌려야 결속이 강해지고 끈끈해진다고 생각하는 관성. 내가 듣기엔 그 노래들도 풍류 아닌 발악이다.

그런 한편으로 낭만이 밥 먹여주냐고 떠벌리면서, 어떻게든 출세하고 악착같이 돈 버는 게 장땡이라고 생각해서 조언해 준다는 사람들. 낭만이 아닌 것을 낭만이라고 말하고, 알코올을 붓고 마셔야 서로가 끈끈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들은 이런 숭고한(?) 충고까지 던진다. 뭐? 정규직만 쓴다고? 아르바이트를 안 써? 그러니까, 니 커피하우스가 돈을 많이 못 버는 거야. 돈 벌려면 알바 써, 임마.

그런 자리에 왜 꼈냐고? 그런 자리, 엎고 나와야 되는 것 아니냐고? 맞다. 그 자리에선 배시시 웃고 넘어가서랑은, 이렇게 뒷북 갈기는 나는 또 얼마나 비겁하고 야비한 존재인가. 닳을 대로 닳고, 찌들 대로 찌든 낭만적 고사(枯死). 그렇게 보면 김한길은 얼마나 낭만적인 사람인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사람들을 오가면서 나는 또 죽음에 하루 더 가까워진다.  

정말이지, 선배도 고를 수 있다면 고르고 싶다. 낭만이 밥 먹여준다고 증명해주는 선배가 그립다.



사랑
김한길의 찐~한, 사랑 돋는 연애소설을 기다린다. 나는 사랑만이 이 빌어먹도록 병든 세상의 유일한 백신이라는 환상을 가진 사람이니까. 아니, 사랑, 그것밖에 없으니까. 세상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순간, 말도 안 되는 착각에 빠지는 순간을 가능하게 하는 게 사랑이니까. 그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고 사랑을 부정하는 건 바보다. 사람이 바뀔 뿐, 사랑은 영원하다.

김한길은, 사랑을 숨겨놓지도 않은 보물을 찾는 보물찾기와도 같은 것이라고 했다. 숨겨놓지 않았으나 숨겨놓지 않았음을 우리는 모른다. 그래서 찾고 또 찾는 것이고. 역시 어른들의 거짓말? 그래도, 삶이라는 치명적인 질병을 치유하는 유일한 백신은 사랑이다. 누가 뭐래도 그렇다. 사랑 확신범인 게지.

미나. 미국 생활하는 동안 김한길의 애틋한 사랑이자 아내였던 그녀는 이어령의 딸이다. 사실 나는 궁금했다. 이어령의 딸이 왜 가난했을까. 이른바 빨갱이의 아들이었던 김한길과 사랑해서, 결혼해서? 그 내막은 모른다. 물론 그것, 전혀 중요하진 않다.

다만, 나는 《눈뜨면 없어라》의 '작가 후기'에 덤덤하고 짧게 서술된 이혼의 과정이, 그것이 짧고 덤덤해서 더욱 아팠다. 대충 이랬다. 미국 생활 5년, 갖은 쌩고생을 하다가, 그녀는 변호사가, 그는 신문사 지사장이 됐다. 방 하나짜리 셋집은 바다가 내려보이는 언덕 위 삼 층짜리 새 집으로 탈바꿈했다. 이사 한 달 뒤, 그들은 결혼생활의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혼에 성공했다.

그 짧은 글에서 당사자가 아님에도 왠 오지랖인지, 내가 다 아팠다. 통증 같은 거? 어떻게든 사랑으로 버티던 미국 일기가 한 순간에 무너진 탓이었을까. 모르겠다. 그냥 아욱아욱. 제목도 얼마나 아픈가. 눈뜨면 없어라. 이별 후 눈 뜨는 일이 얼마나 두렵고 어려운 일이었음을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김한길의 말처럼 사랑이 존재를 망가뜨리는 병균일지 몰라도, 평생 병균감염자로 살아야한다해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이유? 없다. 그냥, 사랑이니까. 작은 기쁨과 값싼 행복을 선사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니까.

Too Much Love Will Kill You. 노래방에서 결국 실패한 노래지만, 따지고 보면 실패가 어딨나. 그저 제대로 못 불렀을 뿐인 게지. 그러니까, 프레디 머큐리가 일찍 죽은 것도 Too Much Love 때문일 테지. 사랑에게 죽임, 당했다. 사랑은 그렇게 치명적이다. 그래도 사랑하겠다는 건 치명적인 것, 삶 혹은 세상에 맞서겠다는 저항이다.

사랑, 그놈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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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김한길은 '어른'을, (갓난아기와 달리) "울음을 참고 있는 사람들의 이름"이라고 했다. 그래서 어른이 울면 걱정이 된다고 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강정평화 유랑공연을 만나고, 나는 이에 덧붙이고 싶어졌다. 참고 있는 울음을 어떻게 돌려야하는지 아는 사람들의 이름. 즉, 그것은 '좋은' 어른을 말한다.

어디서 이런 좋은 어른들을 만날 수 있단 말인가. 이 서울이라는 험악한 시공간에서. 유쾌하고 짜릿했으며 감동적이었다. 강정마을의, 구럼비의 눈물을 이렇게 소화하고 승화하는 저들의 DNA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특히 문정현 신부님. 저 늙수구리 백발 할아버지의 에너지와 호소에, 나는 졌다고 속으로 외쳤다. 쩐다. 나는 죽어도 안 될 경지다. 강정에 해군기지가 건설된다해도 주민들은 남아 있고, 이 싸움은 계속 될 거라며, 제주도에 평화가 이룩될 때까지 싸우자는 백발의 나지막한 비수.

<스카이 크롤러>가, 오시이 마모루(감독)가 떠올랐다. 주인공 파일럿 칸나미 유이치는 사령관인 쿠사나기 스이토에게 말한다. "살아라, 무엇인가 변화시킬 때까지." 남다은 평론가는 이렇게 말했다.

"분명한 건 오시이 마모루는 젊은 세대에게 연민을 쏟고 있는 게 아니라, 그걸 넘어서 눈물을 참으며 냉정하게 부탁하고 있다. 세상이 쉽게 변할 수 있다고 다독이는 대신, 그래도 이 세상을 버텨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 영화가 희망적이라는 평에는 동의할 수 없으나, 한 가지 확신만은 할 수 있다. 오시이 마모루는 세상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아파하는 좋은 어른이다."

그렇다. 나는 오늘, 세상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아파하는 좋은 어른들을 봤다. 울음을 참고 있는 것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승화할지 아는 사람들. 다행인 하루.

그런데, 나는 이날 공연장에서 훌쩍훌쩍 울고야 말았다. 아, 좋은 어른이 되긴 역시 글렀다. 그래, 사마귀 유치원이나 열심히 다니자, '어른이 여러분'! 나도야, 어른이. ㅠ.ㅠ

사심 하나 덧붙이자면, 날라리 춤꾼이자 다큐연출가이며 온라인 강정당 당수 김세리님, 우와 진짜 예쁘다. 멋지다. 저토록 멋진 여자의 남편 조성봉 감독이 초큼 부러웠다능!


올인
지난 19일의 사회적 작당모의를 놓고, 누군가 내게, 프로젝트가 가동되면 올인할 수 있느냐고 슬쩍 물었다. 올인. 다걸기. 한 번 생각해봤다. 내가 무언가에 올인한 적이 있었던가? 스물 셋넷, 그때 첫 번째 첫사랑. 그것이 떠올랐다. 홀린 듯 밟았던, 목숨이 왔다갔다했던 내 청춘의 어떤 한줄.

그런데, 대체 올인이 뭐지? 어떻게 하면 올인이지? 당신은 올인이란 걸 해 본 적 있어요? 궁금해.

어쨌든, "우리는 모두 잘 하기로 했습니다."
'열심히'가 아닌 '잘'!


공무원
버스 내 동양대학교 광고카피. 공무원의 꿈. 동양대학교가 이뤄드리겠습니다. 뭐, 이런 비슷한 거였는데. 공무원의 꿈? 그게 설마 안정적인, 아니 정직하게 말해, 철밥통 직업군으로서의 공무원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공직에 가서, 공공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그런 꿈, 그게 진짜 공무원의 꿈이잖아. 공무원은 그래야 하잖아. 고작 먹고사니즘에 포박돼 남 위에 군림하는 작자는 공무원도 아닐 뿐더러, 그런 작자가 되는 게 꿈이 될 수 없잖아.

나? 알잖아. 난 막 건들거리며 농담따먹기나 지껄이고 칠렐레팔렐레 여유작작 놀고 싶은 날라리예요. 난, 공무원~ 못 해~! 공무원, 그거 먹는 거임? 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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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동
11월13일, '노동'을 더 유심히 봤다. 버스를 타고 버스노동자를, 커피하우스에선 커피노동자를, 영화관에선 극장노동자를, 서점에선 책노동자를. 구체적인 존재들의 노동을 봤다. 광화문에선 노동자대회가 열렸고, 노동자들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경찰도시 서울의 볼품 없는 풍경이지만, 명령에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했을 경찰노동자들의 노고까지도 오늘, 그냥 품었다.

11월13일, 전태일 열사의 41주기. 

오늘, 나는 쉬는 날을 맞은 커피노동자지만, 어머니 아버지를 위해 커피를 졸졸졸 내렸다. 어머니의 가사노동은 일요일이라고 쉬지 않는다. 나의 커피는 그런 어머니를 위한 사소한 마음. 노동을 위한 나의 마음. 나는 오늘 하루, 어머니 단 한 사람, 한 노동자만을 위한 바리스타!


2. 김진숙 이후
한 원고에서 나는 이렇게 썼다.

"김진숙, 내려오다. 이 말은 아마 2011년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열쇳말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309일 동안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의 복직 등을 위해 고공농성을 해야 했던 김진숙 위원이었다. 돈과 권력에, 1%에 일방적으로 밀려 번번이 실패만 거듭하던 99%가 일군 아주 드물고 사소한 성공의 사례.

11월13일, 41주기를 맞이한 전태일 열사와 지난 9월3일 소천하신 이소선 어머니도 천국에서 미소를 지어주셨으리라. 그렇게 전태일을 떠올리는 시간,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소식이 퍼지고 김진숙 위원이 땅을 밟은 날, 쌍용자동차에선 19번째 죽음소식이 날아왔으니까. “해고가 살인”임을 알면서도 자본은 스스럼없이 살인을 자행한다.

세계 7대 자연경관으로 선정된 제주, 그곳의 아름다움과 평화를 담당하는 강정마을을 파괴하고자 하는 국가(군대)와 자본의 협잡과 침탈은 또 어떻고. 우리는 구럼비의 울음을 감당할 수 있을까. 99%의 일상을 흔들어놓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그냥 놔둬도 좋을까. 희망버스가 향할 곳은 아직 많음을 보여준다. 사소한 성공을 이어야 할 이유까지."

쉿. 가카께 비밀이지만, 노동자혁명당 추진모임이 있다. 가카껜 절대 비밀이어야 한다. 심기를 불편하게 해 드려선 안 되잖나. 백성의 도리!

 
3. 조제, 봉빈, 오드리 헵번
7년 만에 조제와 츠네오를 스크린에서 만났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스폰지하우스 광화문. 7년 전과 눈물을 흘렸던 지점이 달라졌다. 그리고 그때와 약간 달라보였다. 나이를 들면서 시각이 약간 변한 걸까? 뽀송뽀송한 츠마부키 사토시, 우에노 주리, 이케와키 치즈루. 사랑스러운 그(녀)들.

며칠 전, <채홍> 김별아 작가와 저녁을 함께 했다. 다른 독자들과 함께였는데, '봉빈' 덕분이었다. 봉빈이 누구냐고? '세종대왕의 며느리이자, 조선왕조 동성애 사건의 장본인'으로 기록되지 않은, 그러나 기억돼야 할 어떤 사랑의 주체. 즉, <채홍>의 주인공이다.
 
그전에,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봤었는데, 조제, 봉빈, 할리 골라이틀리(오드리 헵번)이 나란히 줄을 섰다. 공통점? 조제(다나베 세이코의 단편)와 할리(트루먼 카포티의 단편) 모두 원작소설의 주인공이니,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자신의 삶에 주체적인 여성들이다.

특히, 골라이틀리(<티파니에서 아침을>). 싱글걸에 대한 세속적 편견을 바꾼 여자. 빌리 와일더의 표현에 의하면, "혼자 힘으로 풍만과 육감의 시대를 바꾼" 여자. 대개의 경우, 시대가 여성상을 만들지만, 어떤 여성들은 반대다. 등장만으로 새 시대를 열어젖힌다. 오드리 헵번의 골라이틀리가 그랬다. 조제도, 봉빈도 어떤 편견과 틀을 깨는 여자들이다. 

그러니, 울면서 풀썩 주저앉은 츠네오는 이 시대 수컷들의 다가올 미래일지도 모른다. 

'노동'과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함께 지저귀는 이 묘한 풍경, 재밌군.
 

 
 
4. 저런 사랑
<천일의 약속> 재방송. 지형(김래원)이 알츠하이머로 바보가 되어가는 서연(수애)을 향한 사랑(글쎄, 동정은 아니겠지!)때문에 향기(정유미)와 결혼을 취소했고, 두 집안에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지형의 시선은 오로지 서연을 향해 있다.  
 
이것을 보고 있던 어머니, 내게 이런 말씀 툭 던진다.

"아들아~, 너도 저런 사랑을 하거라." 

어머니의 근엄한 명령. 네, 어무니, 그럴게요, 하면서도 나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나도 아버지에게 쫓겨나면, 아버지가 빌려준 돈, 어무니가 대신 주나요? 그러니까, 지형, 넌 참 팔자 좋은 아들이다.ㅋ 하지만, 그 (동정 아니어야 할) 사랑, 인정!

 
나는 그 사랑이 아프다. 나는 그 사랑이 슬프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것이 사랑이거늘, 도리 없이 사랑과 기억을 잃어야 할 사랑이라니.
궁금하다. 알츠하이머는, 가슴도 그 사랑을 잃어야 하는 것일까.

알렉스가 분한 서형의 친구이자 사업파트너는 "사랑에 목숨 거는 건 촌스러운 짓"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진짜 사랑이라면 목숨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촌스러운 사람이다.  

먹먹한 내 가슴이다.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 <천일의 약속> 8회 마지막에 삽입된 박인환의 詩 '세월이 가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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