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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  ‘수잔 손택(Susan Sontag)이 건넨 한마디
(1933.1.16~2004.12.28)


내 이름은 수잔 손택(Susan Sontag).
내 얘기 좀 들어볼래? 


벌써 4년이 흘렀군. 4년 전 12월28일, 난 이 끔찍한 세계의 고통에 더 이상 삼투압하지 못하고 눈을 감았지. 어쩔 수 없었어. 나도 활동을 계속 하고 싶었지만, 병마가 날 더 이상 놔두질 않더군. 알다시피, 난 세 차례 암과 싸웠잖아. 그러면서 그 고난을 질료 삼았지. 내가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한 말, 알지? “질병은 치료해야 할 그 무엇일 뿐임에도 불구, 학자나 작가들이 만들어낸 병에 대한 은유적 이미지가 환자들의 질병에 대한 투쟁을 방해하고 있다.”

내 몸의 질병도 그렇지만, 세계가 앓고 있는 질병 또한 그래. 전쟁과 같은 ‘질병’을 스펙터클화하고 은유함으로써, 우리의 감각과 이성을 마비시키지. 놀라운 잔대가리야. 특히 부시 같은 전쟁광이 그랬지. 나도 저 하늘에서 신발을 던지고 싶어. 


요즘 구름 아래를 내려다보니, 시끌시끌하면서도 골골거리네. 금융위기, 경제위기, 불황이니, 스스로 제어하지 못한 탐욕의 결과물에 거침없이 흔들리는 것이 안타까워. 입으론 그렇게 호들갑을 떨지만, 정작 몸과 마음은 풀이 죽었으니, 이 불협화음을 어찌해야 할까. 실업의 공포가 또 얼마나 사람들의 영혼을 잠식할 런지. 기득권들은 또 이것을 악용할 텐데...

다른 무엇보다 ‘악’소리 제대로 내지도 못하는 이들이 눈에 밟혀. 누구도 돌아보지 않고, 마음을 주지 않는 사람들. 내가 떠난 시점이기도 하지만, 연말이라 더욱 그러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필요할 땐데... 내 코가 석자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고개 돌릴 여지가 없으니.

내가 1988년에 김남주 시인 등 구속문인 석방을 촉구하기 위해 방문했던 한국에선, 이 엄혹한 시기에 더 엉뚱하고 해괴한 일이 벌어지더군. 파시즘이 창궐하는 것이 아닐까싶을 정도로, 엉성한 독재자가 온통 물을 흐려놓고 있어.

없는 사람보다 있는 놈을 위한 정책이 남발되는 건, 기본. 지옥에서 한 철을 보내고 있는 학생들을 ‘일제고사’의 늪에 빠뜨리고, 아이들 앞에 떳떳하고자 한 교사를 해직하고, 상해임시정부를 인정 않는 오도된 역사를 설파하고, 노동부가 최저임금을 깎자는 안을 내놓질 않나. 그 와중에 정작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이나 복지정책은 시궁창 개만도 못한 신세고.


그래 맞아. 이 세계에는 헤아릴 수도 없는 수많은 아픔과 고통이 있어. 나와는 전혀 상관없고, 내 책임도 아닐 법한. 그렇다고 이를 개무시하는 게, 과연 맞을까. 남의 고통에 이렇게 정말 무심해도 될까.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은 무슨 악의나 큰 죄가 있어서 그런 걸까.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면, 누가 그랬을까.

우리, 눈길을 외면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이제는 그곳을 떠나, 이 구름의 저편에 있는 나도 이렇게 눈이 가고, 마음이 향하는데. 같은 땅을 밟고 있는 사람들마저 그러면, 이 세계가 너무 슬퍼지지 않겠어?

 
무엇보다, 당신 역시 아무런 악의 없는 누군가나 시스템에 의해 상처 입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줘. 내가 외면하면, 언젠가 나도 외면 받게 될 거라는 사실도. 이건 ‘불편하지만, 잊어선 안 될 진실’이야.

《타인의 고통》에서 내가 적은 이 글을 다시 읊조리고 싶어.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 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생전 내게 붙었던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 ‘새로운 감수성의 사제’ ‘뉴욕 지성계의 여왕’과 같은 레떼르는 과분한 찬사였을 뿐이야. 나는 작가로서, 그리고 현실참여의 예술평론가로서, ‘사회의 환부를 남보다 먼저 감지하고 기득권의 지배논리에 포섭되지 않는 마음의 목록을 지닌 사람’이길 늘 바랐어. ‘진지하자, 열정적이자, 깨어 있자!’라던 내 삶의 좌표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그래서 난 작가, 문화비평가, 연극연출가, 영화감독, 예술가, 사회운동가 등으로 끊임없이 변신할 수 있었던 거야. 시대와 세계에 문화적 스타일과 감수성의 자극을 줄 수 있었다고 평가를 해 준다니, 고마울 따름이야.


그토록 환멸 했던 부시가 곧 물러나지만, 그것으로 이 세계가 착해진다거나 나아질 것이란 섣부른 기대는 않아. 이 세계가 구축한 공고한 흉포한 질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야. 그럼에도 우리는 괴물이, 바보가, 되지는 말아야지. 비록 당신들과 함께 그 엄혹한 현실에 동참하진 못하지만, 계속 위에서 주시하고 있을게. 세계를 조금이라도 덜 슬프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바로 당신의 마음과 작은 행동이고, 난 이 말을 믿어.

불가능,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야!

(※참고자료 : 수전손택 공식 홈페이지(www.ssansontag.com), 위민넷 )

[몰링 기고]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지난 22일, 히스 레저의 1주기.
좋아라~하는 호돌 형과 술 한잔의 페이지를 넘기면서, 그를 꺼냈다.
형은 그런 말을 했고, 나는 맞장구를 쳤다.
이 세상에 남아 있어야 할 사람들은 일찍 죽고,
일찍 뒤져야 할 놈들은 떵떵거리며 뻘짓거리 해 댄다고.
이 국가가 저지른 용산 참사와 맞물려, 우리는 괜히 눈시울 붉히며 술잔을 꺾었다.

죽어서도 그는 어떤 울림을 가져온다. 남은 자들은 그의 이름을 명명한다.
지난 11일 골든글로브 시상식.
그는 <다크 나이트>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고,

전미 비평가 협회에서도 같은 상을 받았다.
그리고 바로 엊그제, 그의 기일과 맞물린 제81회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 발표.
그는 역시 남우조연상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때론 감동 섞인 드라마 같은 일을 즐기는 아카데미에서는,
세상에 없는 그를 다시 한번 명명하지 않을까도 싶다.


그리고 미처 알지 못했던 그의 어떤 면모를 다시 엿볼 수 있었다.
1년 전 떠난 히스 레저를 추모하며
<스파이더 맨> 출연 기회를 거절했다는 그 어떤 일화에서,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아카데미 수상을 못한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는 일화에서,
그를 좋아하는 이유를 새삼 재확인했다.

무엇보다,
그의 강력한 포스를 확인할 수 있는 이 19장의 사진들.
In Memoriam: Heath Ledger

미국에선 사망 1주기를 맞아 <다크 나이트> 재개봉에 들어갔고,
한국이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2월19일부터 재개봉에 들어간단다.
<다크 나이트> 재개봉

그때까지 기다리질 못하겠다.
이번 연휴 때, 집에서 가까운 CGV왕십리 아이맥스관을 찾아야겠다.
레저와 함께 짧은 레저를 즐겨야겠다.
아주 가끔은, 그가 그리울 것이다.
그리고, 이젠 어쩔 수 없이 그와 맞물려서 떠올리게 될,
국가의 살인으로 죽음에 이른 나의 가여운 이웃들.


잊지, 않겠다.
'석기'시대로 시계를 되돌린 명바기의 만행.
지금-여기를 고담시 혹은 '다크 나이트'로 만든 MB의 똘짓.
죽고 없는 조커를 대신해, 숱한 악행을 저지르는 살인귀 이명박의 연기.
아카데미위원회가 올해 '화염상'을 만들어 박이한테 화염을 수상하면 딱 좋겠다.
젠장, 슬픔이, 분이, 안 풀리네. 그 정도론 너무 약해서. 쯧.

이래나 저래나, 슬프고 분통한 일이다.
히스 레저를 1년 전에 떠나 보낸 것도,
공권력과 용역(깡패)의 협잡으로 용산에서 철거민과 경찰관을 보내야 했던 일도,
무엇보다 내 나라의 대통령을 죽일 놈마냥 잘근잘근 씹어야 한다는 사실이.
이명박, 똘갱이 쉐이. 내 같은 찌질한 놈한테도 이런 쌍욕을 듣다니... 
누군가의 말을 약간 바꾸자면, 이렇게도 가능하겠다.
"대통령에 대한 존경이 없는 사회의 대통령은 불행하다.
그러나 존경할 수 있는 대통령을 갖지 못한 국민들은 더 불행하다."
아, 나는 어쩔 수 없이 불행한 국민이다...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환생한 존 레논,

‘오노 요코(Ono Yoko, 1933.2.18~)’와 다시 사랑하다~♥


“1980년 12월8일이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너무 놀라 뱃속까지 울렁거렸다. 그 며칠 전에 5년 동안의 휴식기간을 끝내고 막 새 앨범을 출간한 참이 아닌가. 그날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한 그 <더블 판타지>를 들었는데! 그 앨범의 첫 번째 타이틀은 <스타팅 오버>. 5년 동안 나는 존 레논이 음악활동을 재개하기를 간절히 염원해 왔다. 그리고 기다렸다. 왜냐하면 우리를 그토록 기다리게 하며 휴식에 들어간 이유에 대해 존 레논은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라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나는 존 레논이 부러웠다.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보여준 아버지의 존재방식에 동경을 품었기 때문이다. 스타팅 오버. ‘재출발’이라는 그 곡과 함께 돌아와 새롭게 일어서려는 순간, 흉탄에 스러져간 존 레논. …”

-《도쿄타워 :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릴리 프랭키 지음) 중에서 -


존 레논(이하 존) : Oh my love, 오노 나~ 왔어요. 28년 전 그날,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 “나 총 맞았어”이후 처음 말하는 거네요. 하하. 당신, 여전히 아름다워요.~♥


오노 요코(이하 오노) : 오~ 존. 당신이 왔군요. Oh my love! 그렇지 않아도 당신 노래 듣고 있었어요. 우리 함께 했던 순간에 나왔던, ‘Imagine’을. ‘천국도, 지옥도, 국가도, 종교분쟁도, 소유도, 배고픔도 없고, 오로지 우리 위에 하늘만 있어서, 모든 사람이 오늘을 위해 살고,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며, 오직 인간에 대한 사랑만 존재하는 그런 세상을 꿈꾸’던 우리의 노래. 기억나요? 이 노래 만들 때?


존 :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어요. 1971년이었죠. 당신의 이말, “‘그레이프 프루트(자몽)’를 상상해 봐요.” 이 말이 아니었다면, 우리의 ‘Imagine’은 나오지 못했을 거예요. 악상이 떠오르지 않아 크레이지할 것 같았는데, 이 충고 덕분에 딱! 떠올랐잖아요. 오렌지와 레몬의 잡종교배인 자몽이 상징하는 것. 당신이 자몽에 빗대 늘 얘기하던 문화적 잡종성.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 국가․인종․이념의 차이에서 비롯된 불화나 차별을 극복하는 것. 결국 당신과 내가 바라던 바를 ‘Imagine’에 담을 수 있었던 것도 당신의 그 말 덕분이에요. 당신은 정말 내가 바라던 온도의 사람이에요.


오노 : 하하, 오랜만에 그 말 들으니, 추억이 새록새록 하네요. 우리가 처음 만난 날, 당신이 건넸던 말, “우리는 같은 온도를 가지고 있군요!” 7살 어린 당신이 그 말을 했을 때, 내 안의 온도계도 당신과 교감했어요.


존 : 내가 당시 사람들에게 그랬었잖아요. “사람들 눈에 요코가 어떻게 보이든 나한테는 최고의 여성이에요. 비틀즈를 시작할 때부터 내 주변에 아름다운 사람들은 얼마든지 널려 있었죠. 하지만 그들 중에 나와 예술적 온도가 맞는 여자들은 없었어요. 난 늘 예술가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것을 꿈꾸어왔어요. 나와 예술적 상승을 공유할 수 있는 여자 말이에요. 요코가 바로 그런 여자에요.” 당신이 없었다면, 어찌 내가 있을 수 있었을까요. 당신의 설치미술을 보러 가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당신을 만나지 못했다면, 비틀스 이후의 나는 없었어요. 그건 존 레논이라는 이름은 없는 거예요. 당신은 당신 자체로 빛나는 사람이었지만, 당신으로 인해 나는 더 빛날 수 있었어요. 하하. 그때, 당신이 내게 처음으로 한 말이, ‘breathe’(숨 쉬어라)였잖아요.



오노 : 아이, 그만해요. 적어도 우리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알아보고 예술적 전류가 통한다는 것을 감지한 거잖아요. 난 당신의 부나 명성을 보고 사랑한 것이 아니듯, 당신도 나의 외모나 나이를 보고 사랑에 빠진 것도 아니고. 우린 너무 닮았어요. 상대방을 자기자신처럼 여기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잖아요.


존 :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했지만, 정말 그래요. 당신과 나는 음악과 정치, 예술, 모든 분야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요, 거기다 섹스까지 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파트너가 어디 있단 말인가요. 당신에게 ‘세상의 모든 여자들로부터 존 레논을 빼앗은 마녀’ ‘비틀즈를 해체시킨 악녀’라는 타이틀에 흔들리지 않은 당신이 정말 자랑스러워요. 당신은 이전의 내 모든 것을 버리고서라도 선택해도 될만큼 소중한 존재였으니까.


나는 후회없어요. 당신 덕분에 난 세상이 열린 기분이었으니까요. 당신 때문에 여성들이 그렇게 훌륭한 존재라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언젠가 인터뷰에서 그랬듯, “여성을 제외한다면 진정한 혁명이란 있을 수 없어요.” 그때처럼 당신을 안아주고 싶어요. 롤링스톤 표지사진을 찍을 때처럼요. (그래요, 존, 이리와요.) 다시 그 질문, “당신은 요코를 얼마나 사랑해요?”를 받아도 똑같이 할 거예요. 이렇게 당신에게 매달리듯 감싸고선, 입을 맞추고, “이게 내가 요코를 사랑하는 방식이에요.” 쪼옥~♥ 당신 좀 아니 매우 짱이에요~^^


[몰링 기고]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아해들은, 그런 소년을, 미친놈이라고 했습니다.
시험이 바로 다음날이었죠.
타율학습(!), 그까이꺼 땡땡이 치고 갔습니다.
안 갈 수 없었을 겁니다.
소년의 방 벽면의 곳곳에서 저를 향해 미소짓고 있는 (최)진실누나가 부산에 첫 행차했답니다!
어찌 그런 누나를 알현(!)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신원에벤에셀이 부산 남포동에 매장을 내면서, 전속모델이던 누나를 델꼬 온 겁니다. 사인회라는 명목.
문현동에서 남포동까지 날랐습니다.
역시나, 사람들 미어 터집니다.
더구나 대부분 여자입니다.
사춘기의 그 고딩 소년, 쪽팔림을 무릅쓰고 줄을 섰습니다. 줄이 줄어들길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헉~! 숨 막히는 순간. 진.실.누.나가 눈 앞에 있습니다. 그것도 소년을 향해 미소를 띄우면서.
심장이 벌렁벌렁, 콧구멍은 푸슉푸슉, 숨이 가쁩니다. 이런 순간이 오다니.
이름을 묻습니다. 아, 감개무량. 소년의 입에서 '준수'라는 이름이, 아주 조그맣게 나옵니다. 부끄러웠나 봅니다.
진실누나에게 친히 싸인을 받은 브로마이드를 고이고이 신주단지 모시듯, 품에 품고서 집에 돌아옵니다.
행여나 구겨질세라, 가상합니다.
그까이 꺼 시험, 망쳐도 좋아~
소년은 그저 행복합니다. 누나를, 여신을 직접 눈앞에서 알현해서, 누나가 소년을 향해 웃어줘서.
그날 밤, 별이, 바람이, 소년의 마음을 알싸~하게 스치웁니다. 아해들 말마따나, 미친놈 같습니다.


그땐 그랬습니다.
누나가 스타로 뜰 무렵, 일간스포츠에 연재되던 누나 스토리를 읽으며 눈시울을 붉혔고,
누나가 출연한 CF광고가 나올라치면, 브라운관을 빵꾸 나도록 쳐다봤으며,
<우리들의 천국>을 눈 빠지게 기다렸던 이유도, 최초엔 누나 때문이었습니다.
거의 꼬박꼬박 봤지요. 대학생활, 저런 건가 싶어서.
사실 나쁜 드라마지요. 현실의 쓴맛은 쏘옥 빼버리고 당분만 잔뜩 넣어 단맛을 낸.
그럼에도 그때는 왜 그리 흥미진진했는지...
어쨌든, 누나는 극 중 승미라는 이름으로, (홍)학표 형과 열애합니다.
그러나 백혈병에 걸려서 학표 형을 떠납니다. 
아, 미치겠습니다. 더 이상 누나를 볼 수 없다니.
실제론 영화 출연 때문에 이 드라마에서 빠지게 된 거라, 그런 설정을 한거죠.
그런데,
그렇게 승미가 병에 걸려 죽어가면서 한 대사가, 지금 오버랩됩니다.
"내가 죽어도 이 세상은 그대로겠지..."
그리 잘 알았으면서도, 누나는...


술 사러갔다가, 추리닝 차림으로 멀거니 훔쳐봤습니다.
촌놈, 서울로 올라와 홍대 부근에 서식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절, 하숙집에선 만날 술판. 하숙집 막내였던 청년은 하숙집 형들의 명을 받들어 편의점으로 술사러 댕겼습니다.
어라, 늘상 가던 세븐일레븐 앞에서 드라마 촬영이 있습니다. 생전 처음 봅니다.
오, 어디선가 많이 보던 빨간색 프라이드.
맞습니다.
"넌 대체 누굴 보고 있는거야~♪내가 지금 여기 눈 앞에 서 있는데~♩날 너무 기다리게 만들지마~♪ 웃고  있을거라 생각지마~♬"
당시 최고의, 그리고 대한민국 트렌디드라마의 최초 격인 드라마 <질투>의 촬영. 당시 청년의 완소이자 애청 드라마.
역시나 오오오~ 진.실.누.나.가 있습니다.
추리닝 차림으로 털래털래 나섰던 술 배달길. 목적은 내팽개치고, 멀거니 누나를, 촬영현장을 지켜봤습니다.
"누나~ 접니더. 부산 남포동에서 싸인 받았던 아입니더."하고 외쳤냐구요?
에이, 그럴리가요. 소심하고 수줍음 많은 그 청년은 그저 바라만 봤습니다.
그렇게 바라만 봐도 좋았던 그때 그시절.
 


진실은 저 너머에...

알다시피, 셀리브리티들에 대한 호감의 업&다운은 으레 있기 마련 아닙니까.
누군가는 청년에게 무슨 좋아하는 게 그리 많으냐고 타박하지만,(아름답고 예쁜 건 특히나 좋아하죠.ㅎㅎ)
사실 따지자면, 무관심과 경멸 혹은 비호감의 리스트도 아련하게~ 깁니다.
좋아하는 애호의 리스트만 주로 입에 담아서 그런 거지요. 무관심, 경멸, 비호감까지 굳이 입 밖에 낼 이윤 없잖아요?
다시 돌아가서, 그토록 흠모하고 좋아하던 진실 누나였지만,
알다시피 사랑은 움직이잖아요?
애정은 점점 버석해졌습니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며 CF로 얼굴을 알린 국민(여)동생 혹은 국민누나가,
억척살이 생활형 연기를 펼치는 연기자로 차츰 변해가는 동안,
그녀를 여신으로 떠받들던 소년도, 다른 여신으로 옮겨가는 변심(?)을 했지요.
물론 그것이 대체나 보완의 대상이 생겼다고 말할 순 없지만요.
험한 얘기, 루머도 많이 들었죠.
어쩌다보니, 이혼 뒤 (조)성민이와 스캔들이 있었던 룸살롱의 마담까지 만나 진실누나에 대한 뒷담화를 들어야 했으니까요.
모르죠. 그 사람 입장에서의 진실도 있겠지만,
진실 누나의 입장은 또 다를 테니, 청년은 그저 누나가 안타까울 뿐.
남들 뭐라고 입방아를 찧고 떠들어대도, 진실여부를 떠나 누나가 잘 되길 바랄 뿐.
<장밋빛 인생>도,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도 안 봤지만,
'재기'로 일컬어지거나 '연기자'로 돌아온 진실 누나가, 방가방가.^^  
참고로, 청년은 (조)성민이보다 (변)진섭이 형과의 조합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동년배인 성민이와 결혼한다고 했을 때, 마냥 부러웠답니다.

그런데, 오늘, 서늘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13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도, 1200원대를 뚫고 올라선 환율도 묻혀버린 그 소식.
진실누나가 구름의 저편에 갔습니다.
아침에 소식을 전한 아버지의 말씀에,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냈어요. 정말이냐고.
어머니는 소름이 끼쳤다고 하시더군요.
마음이 덜거덕덜거덕 거렸습니다.
점점 희미해지고 있던 누나의 존재가, 제 마음의 방 한칸에 서식하면서,
아직 제 DNA에 흔적처럼 박혀있었음을 확인했어요.
오늘 제가 만나거나 스친 남녀노소 모두 종일 그 얘기만 하더군요.
어떤 사람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언니를 갑자기 떠나보낸 것 같아 울었다고 그랬고,
누군가는 자신의 아내가 아이들이 밟혀서 눈시울을 붉혔다고 했습니다.
스캔들에 치이던 누나의 생애 마지막 스캔들이었나 봅니다.
마음은 그닥 좋지 않았고 스산했습니다.
낮동안, 하늘은 더럽게 맑고, 바람은 치사하게 시원했습니다.
우습지만, 씨바, 이래도 되냐, 는 생각도 들었구요.

진실 누나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셀리브리티라는 표현보다는, 아이콘.
그저 개인에 국한되지 않았죠. 90년대, 그 시대의 대표성을 가진 아이콘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스타들과 차별화된.
한 기사에 따르면,
특채로 드라마에 출연한 첫 세대였고,
영화나 드라마 아닌 CF로 스타덤에 오른 첫 번째 CF스타였고,
트렌드 드라마의 주연을 꿰찬 최초의 신세대 톱스타였습니다.
또한,
이혼이 커리어에 더 이상 족쇄가 되거나 영향을 미치지 않는 최초의 톱스타요,
신세대 스타에서 중년 연기로 자연스레 넘어간 최초의 중견 연기자요,
자신의 이름을 딴 패션스타일을 유행시킬 수 있는 유일한 중견 연기자요,
무엇보다,
전 남편의 성을 거부하고 자식들의 성을 누나의 것인 '최'씨로 바꾼 강한 엄마. 

하지만, 그런 누나, 이제 없습니다.
1990년대 요정 최진실의 시대를 넘어,
2000년대의 배우 최진실의 시대를 열어젖힐 것 같았던 누나는,
세상이 버거웠나봅니다. 저도 정확한 진실은, 모릅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젠 더 이상 최진실이라는 이름의 배우는 볼 수 없다는 것.
남은 건, 확인할 수 있는 건, 누나의 박제된 모습.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여느 날과 다름없었습니다. 차는 빡빡하게 막히고 있었고, 사람들은 분주했다죠.
감당키 힘든 어떤 죽음 앞에서도,
'그래도 살아야겠다. 떠난 사람을 위해서라도'라는 다짐을 했던 저는,
오늘 다시,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명제를 곱씹었습니다.
그것이 사람살이잖아요.
밥을 먹고, 똥을 싸며, 잠에 빠지는 한편,
주위 사람들과 웃고, 때론 혼자이거나 함께 우는 것.
내일이면 아마, 저는 야구장에서 목청껏 웃고 떠들며 울부짖을 겁니다.
신나게, 또 신나게, 언제 진실누나를 떠나보냈냐는 듯이.
그게 접니다. 그게 제 사람살이입니다.
진실누나는 그렇게, 차츰 제 마음의 방에서 옅어져 갈 것입니다.

그럼에도, 오늘은, 지금 이 순간에서만큼은, 누나를 생각합니다.
짙은 어스름이 지배하고 있는 어느 가을밤.
서러운 마음, 서늘한 바람이 붑니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칩니다.
누나를 처음 알현했던 그 어느 밤, 소년의 마음을 알싸~하게 스쳤던 별이, 바람이,
오늘 이 밤은 참으로 다릅니다. 별과 바람도, 세월을 따라 그렇게 달라졌나 봅니다. 
오늘 이 바람은 내 심장을 할큅니다. 어쩌면, 그렇게 슬픈 밤입니다. 
커피빛깔보다 더 진하디 진한 이 밤. 커피향보다 더 쓰디쓴 이 밤.
하지만, 더 울적한 건,
누나가 떠남으로 인해 남은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어떤 슬픔.
누나가 구름의 저편으로 가기 전과 간 후가 달라지고 만 어떤 사람들의 일상.
그 일상은, 아마도 버티고 견디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괴담을 퍼뜨렸다는 혐의로 입건된 그 사람이 직면했을 비난과 야유,
무엇보다 자괴감이 들법한 이 상황, 그 사람 역시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기를...
한편으로 '베르테르 효과'로 인해,
따라하고 싶은 누군가에게, 누나는 그래도 이렇게 말할 것 같애요...
따라하지 마라, 응.

이젠 누나의 이름 앞에는 '故'가 붙겠네요.

진실 누나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의 마음에도 작은 위로를 건네고 싶습니다.
아~ 부디 오래오래 살아주세요. 제가 좋아하는 당신은...
저보다 하루라도 더 살아주세요...

오늘이 그렇게 누나와의 마지막 추억인가 봅니다.
말하자면, 누나는 그 어린 시절 나의 (일방통행) 연인이었습니다.
기억 저편에 사라졌던,
누나의 모습들이 하나 둘 떠오릅니다.
이런 날, 문득 생각난 노래는, 소라누나의 <바람이 분다>.

우연히 만난 이 문구.
어쩌면 진실 누나가 우리에게 해 줬을 법한 이 말.
가정주부이자, 자연주의자이자, 동화작가인, 무엇보다 행복한 사람이라 자부하는,
'타샤 튜더'가 했던 이 말.
"사람들은 날 장밋빛으로 본다.
보통 사람으로 봐주지 않는 것이다.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우리는 달과 같아서,
누구나 타인에게 보여주지 않는 어두운 면을 지니는 것을..."

-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 중에서 -

그래, 당신이나 나나, 우리 모두는 달과 같은 것인데...
우리가 진실 누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이해했던 것일까요,
아니, 이해까진 아니더라도 얼마나 안다고 쉽게 입방아를 찧었던 걸까요.
사람이 사람을 알고 이해한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미안합니다.

또한,
한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스스로 세상과 절연하게 만든,
그 아이콘을 지켜내지 못하고 외톨이처럼 단절시킨,
우리네의 문화적 척박함과 옹졸함.
반성합니다.

아울러,
망자에 대한 예의 따위 내팽개친 채,
애도를 가장해 각종 루머·추측으로 장사에만 열을 올리며,
망자를 부관참시하고 있는 '언론'이라는 이름의 찌라시들이 행한 작태들.
콕콕 따져보지요. 그들의 입방아처럼 괴소문이 진실누나를 절망에 이르게 했다면,
그 괴소문에 대한 사실확인이나 여과를 하지 않고 보도함으로써 되레 괴소문을 증폭시켜,
고인의 아픔과 상처를 더욱 깊이 후벼판 책임에서 그 언론들은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베르테르 효과에 의한 연쇄자살의 예방을 위해,
한국기자협회, 한국자살예방협회 등의 '언론의 자살보도 권고기준'과,
생명인권운동본부가 내놓았던 '언론인의 자살예방 보도 권고사항'을,
그 언론들은 제대로 읽어보기나 했을까요.
참 대한민국 언론수준, 알고 있지만,
너무합니다.


어쨌든,
이런 끝장면, 바랐지만,

결국 홀연히 떠나버린 누나에게 전하는, 내 짧은 마지막 인사는,
안녕, 진실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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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딘은 53년 전, 스물 넷의 나이로 요절했다.
"빨리 살고 일찍 죽는다. 그래서 보기 좋은 시체를 남긴다."

폴 뉴먼은 지난 26일(현지시각), 83세로 영면했다.
마지막으로 (스크린에서) 본 것이, <로드 투 퍼디션>이다.
<컬러 오브 머니>에서 앳띤 탐 크루즈와 공연한 것이 처음 대면이었는데.
<타워링> <스팅> <내일을 향해 쏴라>...
우리 딘 형님에 비해 훨 오래 살았다지만, 그에 대한 추억을 간직한 이들에겐 아프긴 매 한가지다.

제길, 그 빈자리를 메우기 전에 하나둘 떠나버리면 어쩌자구.

그려, 거기서 잘들 계시유.
나도 언젠가는, 그쪽으로 갈테니, 그때 봅시다.
그때까지 부디, 안녕...

당신들을 추억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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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시인이다.
(콜롬비아의 대문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그를 어떤 언어로 보나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다"라고 했다.)
그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다.(1971년)
그는 공산주의자다.
그는 좌파다.
그는 정치인이다.
그는 외교관이다.
그는 혁명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사랑을 알았던 사람이다.
인류에 대한 사랑보다 더 힘든, 인간에 대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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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내가 아는, 그다. 파블로 네루다(1904.7.12~1973.9.23).
오늘은 그가 떠난지 35년이 되는 날.
그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렇다.
그를 통해 나는 칠레의 굴곡진 역사를 조금이나마 알았다.
그래서, 그는 내게 세계를 넓혀준 사람이다.
칠레의 9월은 혁명의 스러짐을 맛봤다.
살바도르 아옌데도, 빅토르 하라도 1973년 9월에 스러졌다.
칠레의 혁명은 그렇게 미완성인 채로 피를 흘렸다.
피노체트, 그 뒤의 미국이 칠레의 혁명을 일그러뜨렸다.
그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뜬 것은,
아마도 피노체트의 쿠데타 때문이었을 것이다.
네루다의 장례식 공개거행을 피노체트는 막았지만,
칠레인들은 그럼에도 군사독재정권 최초의 항거를 하며,
그의 떠나는 길을 밝혔다고 한다.

혁명은 때론 그런 것이다. 김수영(푸른 하늘을)이 그리 말했듯.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나는 오늘, 그를 생각하며 칠레도 떠올린다.
언젠가, 나는 칠레를 찾아,
파블로 네루다의, 살바도르 아옌데의, 빅토르 하라의, 흔적을 만나고 싶다.

오늘, 파블로 네루다를 생각한다.

나는 생각한다 (파블로 네루다)

나는 생각한다 키스와 침대
빵을 나누는 사랑을

영원한 것이기도 하고
덧없는 것이기도 한 사랑을

다시금 사랑하기 위하여
자유를 원하는 사랑을
찾아오는 멋진 사랑을
떠나가는 멋진 사랑을

그리하여, 나는 모든 이를 위해 노래한 그를, 또 생각한다.

모든 이를 위하여 (파블로 네루다)

내가 그대에게 말해야 할 걸
문득 말할 수 없을 따름이다,
친구여 용서해다오; 그대는 안다

그대가 내 말을 듣지 못할지라도
내가 잠들었거나 눈물 속에 있지 않앗다는 것을,
오랫동안 그대를 보지 못했어도 나는
그대와 함께 있고 또 끝까지 그러리라는 것을.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걸 나는 안다.
"파블로는 뭘 하지?" 나는 여기 있다.
그대가 이 거리에서 나를 찾는다면
그대는 내가 바이올린을 갖고 있는 걸 알 것이다,
노래를 시작할 준비가 되어,
죽을 준비가 되어.

내가 이 사람들이나 그대에게가 아니라
다른 누구를 향해 떠나야 한다는 건 별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대는 잘 들을 것이다, 빗속에서,
들을 것이다,
내가 오가며 떠도는 것을.

그리고 그대는 내가 떠나야 한다는 걸 안다.
내 말이 그걸 모른다고 해도
확언하건대, 나는 떠난 사람이다.
끝나지 않는 침묵은 없다.
그때가 되면, 나를 기다려다오,
그리고 내가 내 바이올린을 가지고
거리에 도착하고 있음을 알려다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영화 <일 포스티노>도 권한다.
파블로 네루다, 그리고 <일 포스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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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한해의 반이 지나갈 시점. 그래서일까. 유난히도 얼룩이 많은 것은. 무언가 아쉬워서? 아니면 부족해서? 이도저도 아니라면 무언가 차고 넘쳐서?

그 6월의 복작복작한 풍경에, 올해 한폭의 그림이 추가됐다. 촛불. 쇠고기에서 본격 점화된, 우리네 촛불. 2008년 6월은, 그렇게 촛불로 밝혀졌고, 그렇게 촛불과 함께 뜨거운 여름의 시작이었다. 6월에 활짝 핀 '개나리'덕분이었다. 이 땅의 위정자 '나리'들은, 알고 보니 '개'였다는 사실. 2008년의 6월은 개나리가 활짝 핀 촛불시즌. 내겐 그렇게 기억되겠다. 나는 그렇게, 6월이 아프다.  

아래는, 2004년 6월에 긁적였던 <아들의 방>에 대한 단상. 그래, 완전히 승리할 때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균열을 버티고 견뎌야 하는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그 어느해 6월, 우리가 또 다른 사건사고와 맞닥뜨리더라도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달려야 한다. 혼자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혼자 달리다보면 누군가가 함께 옆에서 뛰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느슨하게 연대하겠지...  하지만, 99년 6월의 균열은 정말 큰 상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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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유독 공동체의 기억을 많이 품고 있다. 또 그 기억은 유난스레 핏빛과 붉은 색이 도드라진다. 그러고보면 6월은 ‘평온’과는 거리가 있었다.

가장 가까이 2002년. 월드컵이라는 거대 이벤트가 불러온 ‘붉은 악마’가 온 나라를 들썩이고 들끓게 한 반면 이 함성에 묻힌 채 미군의 군화발에 짓밟힌 두 영혼, 미선이와 효순이의 핏자국이 선명하게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4년 전 6월 15일에는 적색국가로 공동체의 안보의식에 뿌리박힌 북한을 방문, 역사적인 악수를 청한 ‘6·15공동성명’이 있었다.

세월을 건너뛰어 1987년에는 6·10항쟁의 불꽃이 피어올라 거대한 광장을 형성하면서 역사의 족적을 남겼다. 그리고 훌쩍 세월을 거슬러 20세기 한국의 가장 큰 비극이자 아직도 현재진행형의 아픔을 토해내곤 하는 1950년의 6·25가 있었다. 6·6 현충일도 있다.

그리고 22일 김선일씨의 주검이 공동체의 기억 속에 박혔다. 한국민은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이라크 저항세력 앞에 “살려 달라”고 절규하는 김씨의 모습을 똑똑히 목격했다. 또 그들에 의해 처참히 살해당한 김씨의 주검은 공동체를 경악과 분노 속으로 끌어들였다.

이같은 공동체의 기억 속에서도 개개인마다 사적인 기억의 풍경 또한 똬리를 틀고 있을 것이다. 내게도 6월의 풍경화 속에는 지울 수 없는 스크래치들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런저런 잊지 못할 사건들이 길지 않은 삶을 관통하고 있다. 그 어떤 날에 박힌 기억은 내 일상을 지배하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공동체나 개인의 사건과 기억들이 뒤범벅돼 있으리라. 지우거나 불태우고 싶은 기억도 있고 심하면 인생에서 없었던 것으로 해 버리고픈 나날도 있을 것이다. 반면 반드시 소중하게 품고 영원히 기억될 나날을 가꾼 사람도 있으리라. 세세한 사변적인 기억들은 그렇게 일상 속에서 굴러다니고 있다.

‘쳇바퀴 같은 삶’이라는 둥, ‘반복의 연속’이라는 둥, 대개의 사람살이는 그렇게 칭얼댄다. 사실 현실에 발을 붙인 일상적인 삶의 풍경은 파라다이스나 유토피아와는 머나먼 나날이지 않는가. 오히려 지리멸렬하고 팍팍하다거나 지지리 궁상같다는 표현이 더 끈적끈적하게 와 닿을 지도 모르겠다. 물론 아니면 더 좋고. 그래도 그 나달나달한 일상에서 작은 행복을 찾고 느끼는 것이 또한 사람살이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균열 앞에 선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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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와중에 여기, 균열이 일어난 삶의 풍경이 있다. <아들의 방>은 그 ‘균열’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느닷없이 찾아온 일상의 균열은 굳이 영화나 소설이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일어날법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혹자는 견고하다고 자부하거나, 다른 사람의 일이라고 치부하기도 한다. 균열에 대한 인과관계만 형성되지 않는다면 나름대로 정해진, 계획된 범위에서 삶의 궤적을 그려나간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사실 평온하고 안정돼 있다고 생각하는 삶 속에서도 균열은 부지불식간에,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그건 ‘며느리도 모르’는 일이니까. 호숫가에 퍼지는 잔물결처럼 삶에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균열은 사실 예고가 없다. 물론 파장이 짧아서 노곤하고 지루한 삶으로 다시 되돌아가거나 되풀이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균열은 어떤 인과관계나 맥락 없이 일상을 기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 무방비 상태에서 그로기로 몰릴 수도 있음을 감안한다면 ‘균열 이후’가 기실 더 중요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준비’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지만 그런 기습에도 흔들리지 않기 위해선 ‘(일어나지 않으리란) 확신’보다는 ‘(일어날 수도 있는) 가능성’에 무게중심을 두는 편이 낫다는 뜻이다.

사랑, 이별, 죽음 등 어떤 형태로든 삶이란 호수에 파장을 일으키는 균열은 ‘전과 같지 않음’을 상정한다. 어떤 형태의 균열을 거친 뒤 변함없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듯하지만, 그것을 겪은 사람은 알고 있다. 같은 것을 보고 듣고 읽거나 경험해도 이전과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Before' 그리고 ’After' 두 단어사이의 간극만큼이나 삶은 기실 균등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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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족이 있다. 온화하고 침착한 정신과의사 아버지, 사랑으로 가족을 돌보는 어머니, 사춘기지만 큰 말썽 없이 부모님 말 잘 듣고 따르는 딸과 아들. 서로를 신뢰하며 평온한 일상을 보내는 가족의 풍경은 안정적인 사각(四角)구도를 이루고 있다. 어찌 보면 너무도 이상적인 가족 풍경이다.

여느 때처럼 일요일은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 급작스런 환자의 연락에 아버지는 아들과의 조깅 약속을 미루고 아들은 할 수 없이 친구들과 스쿠버다이빙을 간다. 그리고 사고는 예기치 않게 문을 두들기며 아들은 목숨을 잃는다. 그리고 안정적인 사각의 한 변을 잃은 가족. 균열은 그렇게 평온하던 가정의 균형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한 모서리가 빠진 구도는 좀처럼 예전처럼 안정적일 수가 없다.

이처럼 갑작스레 뻥하고 뚫린 빈자리로 인해 구성원들의 삶은 휘청거린다. 아버지는 조깅 약속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동시에 당시 갑자기 자신을 호출했던 환자를 원망하고 또 원망한다. 자신의 괴로움에 못 이겨 환자들의 고통을 돌볼 여유가 없는 정신과 의사. 다른 사람의 심정적 안정을 다스리는 정신과 의사가 막상 자신에게 닥친 균열 앞에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 아이러니하다.

어머니 역시 안정감을 잃은 채 아들의 여자친구를 통해 곁에 ‘없는’ 아들의 흔적을 찾으려한다. 온순하던 딸은 점점 난폭해지면서 농구 경기 중 퇴장을 당하기도 한다. 가족은 그렇게 한쪽 모서리가 떨어져 나간 돛단배에 몸만 건사한 채 풍랑에 휩쓸리고 있는 중이다. 과연 한 축을 잃어버린 배가 제대로 나아갈 수 있을지 조마조마하다.

남은 가족들은 서로를 위로하고 위로받고 싶지만 함께 있는 순간에도 그들은 전과 같이 평온한 일상을 되찾을 수 없다.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은 현실에서 여과 없이 투영되고 차마 내뱉지 못하는 가슴 깊은 구석의 안타까움이 자맥질한다. 아버지는 끊임없이 그 균열을 가져왔던 인과관계를 따지고 싶어 할 뿐이다. 되돌릴 수 없음을 너무도 잘 알면서도….

그러니까, 혼자 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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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갈라놓은 것은 단지 이승과 저승의, 땅과 지하(혹은 하늘)의 공간적 경계만이 아니다. 남은 사람들의 일상을 이전(before)과 이후(after)로 구획 짓는 것 또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다. 자식이나 부모, 혹은 사랑하는 이를 먼저 보낼 수밖에 없었던 사람에겐 고스란히 묻어나올 수밖에 없는 그런 것들 말이다(에릭 클랩톤이 네살배기 아들이 옥상에서 실족사한 뒤 내놓은 ‘Tears in heaven’을 들으면 그의 슬픔과 진한 부성이 묻어남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얼마 전 더 이상 공식석상에서 이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고 얘기했다).

<아들의 방>은 죽음을 앞둔 긴장과 슬픔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 죽은 ‘이후’의 남은 자들의 감정의 결을 보여준다. 그 어떤 설명이나 개입 없이, 때론 거칠게 날 것 그대로, 남은 자들의 흔들림이 현실적으로 드러난다. 과장되거나 부족함 없이.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누이도 아들 혹은 동생의 방이 ‘비었음’을 인정하고 그 슬픔과 격정을 감당해야 함을 알고 있다. 그래도 삶이 지속되고 있음에, 살아야 하기 때문에 먹고 마시고 자고 친구들과도 어울리고 다시 일을 한다. 일상 속에 발을 담가놓고 아무 일 없듯 표정 관리를 한다.

그러나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다. 그것이 때론 지옥 같은 일로 불쑥 다가옴을. 길을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갑작스레 뇌리를 스치는 떠난 자에 대한 기억 혹은 추억. 특정 장소나 행동, 어떤 사물을 접하면 불현듯 떠오르는 모습. 죽은 자는 그렇게 가고 없지만 추억은 방울방울 남은 자들의 슬픔의 감정을 자극하고 박제되기 마련이다. 특정 기억을 팔 수 있는 가게는 없다. 그 기억을 빼고선 정체성도 없다.

<아들의 방>은 또 찬찬히 보여준다. 그들이 ‘아들’을 뺀 일상에 적응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아들의 흔적을 ‘변화 없이’ 유지하고 싶어 한다. 무전여행중인 아들의 옛 여자친구가 집 앞을 지나다 들렀고 빈자리에 여전히 허우적대던 그들은 그녀와 그녀의 새 남자친구를 그들이 원하는 곳까지 밤새워 차로 태워주고 밥을 먹이고 떠나보낸다. 그런 와중에 그 둘이 사귀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들의 심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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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들은 그 과정에서 깨닫는 듯 하다. 아들의 빈자리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함을. 그래도 삶은 지속되고 있음을. 온 가족이 화목하게 웃고 떠들던 이전의 ‘가족 찬가’와 같지 않고 다시 되돌리지 못할 시간이겠지만 일상의 균열에 각자 대처해야 함을 말이다. 아들과 달리던 길, 이젠 아버지 혼자 달려가야 한다. 우리는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다.

사랑하는 아들아
그 한통의 전화에 너를 잃게 될 줄이야.
악착스런 승부근성이 없어도
그저 묵묵히 침묵하고 있어도
다른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들지 않는
그렇게도 특별했던 너
그래, 너는 어쩌다 마법의 동굴에서 잠깐 길을 잃은 거야.
인생을 결정하는 건 우리가 아니니까
그래도 아들아
너에게 꼭 하고픈 말이 있었는데
시간을 돌리지 못하는 아빠를 용서하렴.
기적이라는 게 있다면... 그래서 너의 웃는 모습을 다시 한번 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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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5월30일 인간사에서 욕망의 중요성을 알려주던 한 노인네가 타계하셨더랬다. 일본인이었다. 몇몇 그의 작품을 통해 감탄을 자아냈던 감독님이셨다. 고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님. 당시, 향년 80세였다. 간암이었다. 역시나 암암암. 엊그제 시드니 폴락 감독님이 그랬던 것처럼. 암은 참 나쁘다. 감독님들 자꾸만 데리고 간다.ㅠ.ㅠ

그런데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님의 간암 타계는 그의 한 필모를 떠올리게 했다. <간장 선생>. 간염 퇴치를 목적으로 밤낮으로 왕진가방을 들고 뛰어다니며 어떤 환자든 '간염'이라고 진단을 내리던 아카기 선생. 그래서 별명도 '간장 선생'이던 (돌팔이)의사.

그러나 그의 돌팔이 행세는, 무조건 나쁘다고 쏘아붙일 것이 아니었다. 뭔가 다른 생각을 하게 해주는 측면이 있었다. 그런 액션은 당시의 시대상과 맞물렸다. 군국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페인팅 모션 같은 것. '부조리'한 세상을 풍자하는 내공 같은 것.

영화는 즐거웠다. 이마무라 감독님도 즐긴 것 같았다. "관객을 숨쉬게 해 줄 영화를 찍고 싶다"던 그 말은 자신이 즐거워야 한다는 것의 또 다른 표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감독은 뭐니뭐니해도 자신의 영화의 첫 번째 관객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간염 퇴치는 아직 안 됐고 이마무라 감독은 간암으로 세상을 등진 묘한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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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필모 가운데 가장 먼저 접했던 <우나기>도 참 괜찮은 영화였는데, 그의 작품 중 마지막으로 봤으으며 가장 짜릿했던 영화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는 한마디로 '감탄'이었다. "쪼잔하게 살지말고 욕망대로 살라"는 노익장의 속삭임은 '구원'과도 같았다. 에로티시즘을 향한 예찬. 천박하지도 않았으며, 은근히 혹은 대놓고 '욕망'을 감추고 살도록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풍자는 가히 고희가 넘은 '할아버지'의 것이라고 믿기 힘들었다(이 '편견'도 얼마나 웃긴가. 나이에 기대 개인을 평가하거나 규정해 버렸던 나의 무지함). 그의 이름을 세계 영화계에 알린 <나라야마 부시코>는 아직 보지 못했다.^^;

인간의 '욕망'을 이해했던 사람. 그리고 자연스런 욕망을 억압하는 사회를 무겁지 않게 풍자하고 비꼬았던 사람. 그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는 욕망을 감옥에 가둬놓고 사식이나 주면서 연명하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구름의 저편으로 훌쩍 가버린 그는 이제 어떤 욕망을 사색하고 있을까.

4년 전, 거의 비슷한 시기인 5월말경. 아마 대학로의 하이퍼텍 나다 극장이 아니었나 싶다.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을 봤다. 그리고 그 감탄을 토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읊조린 욕망 예찬. 나는 과연 내 욕망에 얼마만큼 충실한가. 당신은 당신의 욕망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나는 진짜 제대로 나의 욕망을 따르고 있는 것일까. 그래, 제발 꼴리는대로. "나는 욕망한다, 고로 존재한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막스 베버가 갈파하고 근대자본주의 발전의 동력이었던 '프로테스탄티즘'은 근면성실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한마디로 ‘열심히 뺑이 치라’(소명론)는 것이 프로테스탄티즘의 핵심이었다. 당시 형성되기 시작한 상인과 수공업자들은 이 같은 점을 적극 활용하면서 자본가화되는 과정을 거쳤다. 자본주의는 그렇게 프로테스탄티즘을 탄환으로 삼아 뻗어나갔고 그 우월함을 과시했다. 사람들은 그 과정에서 개인의 욕망을 억누르고 ‘참을 인(忍)’자를 새겨야만 했다. 그리고 익숙해졌다. 누가 그 견고함에 비수를 들이댈 수 있으랴.

현재 우리를 되돌아보자. 우리는 일하지 않고 배겨날 수 없는, 혹은 적극적으로 노동을 착취당하는 구조 속에 편입돼 있다. 이를 거부하는 자는 이른바 ‘낙오’라는 허울을 뒤집어쓴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고 광고는 부르짖지만 실은 “성실하게 일하지 않는 자, (회사에서 혹은 사회에서) 떠나라”는 말이 숨어 있다는 사실.

그렇다. 우린 속았다. 시민이 주인이라고? 국민이 주인이라고? 그렇다면 그 주인의 욕망은 왜 뒷전인가? 기업, 조직, 전체 앞에 개인의 욕망은 기지개를 펼 수가 없다. 늘 조직 앞에 희생해야 하는 건 개인의 욕망이다. 그러니 장삼이사(張三李四)에 불과한 이들이 이 땅에 빌붙어 살기 위해, 연명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겠는가. 고개 숙인 것은 남자뿐 아니다.

욕망하지 않는 자, 유죄!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이런 개인들에게 따스한 시선을 보낸다. 기발하고 야~한 삶의 찬가를 지휘하며 악기들의 앙상블을 연출한다.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이하 <붉은 다리…>)은 상상력의 성찬을 차려놓는 동시에 개인의 욕망을 두둔한다. 생의 소중함은 무엇보다 개인의 욕망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데서 나온다는 것을 이 영화는 갈파한다.

<붉은 다리…>의 주인공이 그렇다. 하루아침에 회사에서 내쫓기고 가정에서도 내몰린 요스케(야쿠쇼 고지). 이 평범소심남은 전형적인 샐러리맨의 전형이다. 21세기는 그렇다. 노동력, 즉 고용없이도 생산성을 높이려는 기업들의 몸부림은 ‘고용없는 성장’이라는 인간소외의 경제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그런데 누구도 거부하지 못한다. 최고 통치자건 경제 수장이건 자본주의는 이미 그들의 머리 꼭대기에 있다는 사실. 기업들은 생존이라는 명목으로 이윤에 극도로 목을 매단다.

그런 구조 앞에 어깨를 늘어뜨린 요스케는 파란텐트 철학자, 타로를 찾아가나 그는 이미 숨을 거둔 뒤다. 답답함을 토로할 곳마저 잃은 그가 무턱대고 찾아간 곳은 타로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불상이 숨겨진 곳. 전쟁 직후 노토반도의 한 마을, 붉은 다리 옆에 있는, 창가로 바다가 보이는 집이다. 그 곳에서 요스케는 사에코(시미즈 미사)를 만난다. 성욕이 차오르면 몸에서 물이 나오는 여자. 섹스를 하면 분수처럼 물을 내뿜는 여자.

이런 이런, 말도 안 되는 설정이라고 끌끌~ 혀를 차지 말 지어다. 그건 감독이 욕망을 두둔하고 본능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냥 즐겁게 즐길 지어다. 우린 욕망을 누르고만 살아야 한다는 사회의 조직의 명에만 너무 익숙하지 않았던가. 일탈하고 싶다는 그 욕망. 스크린은 그런 욕망의 한 켠을 서슴없는 상상력으로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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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욕망을 잊은 채 살아가는 요스케와 본능의 분출구를 찾지 못해 서성이던 사에코는 결합한다. 두 삶의 욕망이 어떻게 결합하는지, 욕망에 충실한 그들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영화는 천천히 그러나 찰지게 보여준다. 그 쾌감은 보는 사람에게도 한줄기 시원한 청량제와도 같은 느낌을 준다.

물론 욕망의 과정에도 갈등과 불협화음이란 내재하기 마련이다. 개인과 개인의 욕망 사이에 왜 빈틈이 없겠는가. 그럼에도 그 갈등을 풀 수 있는 열쇠 또한 욕망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 그건 한편으로 재미있는 아이러니다. 욕망이 욕심을 부르고 질투를 야기하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제어하면서 그 욕망의 합일점을 찾는다면 행복해 질 수 있다는 이야기. 이마무라 감독은 “후회하며 죽지 말 것”을 진심으로 권하고 있다. 타로 노인을 통해 이마무라 감독은 자신의 할 말을 쏟아낸다.

“욕망에 충실한 것이 진짜 삶이야”

살아생전 타로 노인은 요스케에게 말한다. “쪼잔하게 살지 말고 욕망대로 살라”고. 비록 자신은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고 살았지만 요스케에겐 다 제쳐두고 ‘즐기고 살 것’을 권유한다. 새로울 것 없는 하루하루, 21세기가 오면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변한 것 따위는 없는 세상. 20세기를 관통했던 ‘야만’은 세기를 넘어서도 칼날을 거두지 않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개인은 설 자리가 없다. 지치고 자기 방어에만 급급한 삶이 대부분이다.

대부분 회사는 말없이 일만하는 사원을 좋아하는 법이다. 회사도 유기체인 마냥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수용해 질적인 삶의 향상을 꾀할 듯한 감언이설을 내뱉지만 속을 필요는 없지. 개인도 자신의 욕망을 위해 회사를 이용할 필요가 있다. 타로 노인은 그걸 위해 ‘뇌세포에 쥐가 날 때까지 생각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진정한 자유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을 내려서 행복을 찾는 거라면서.

과연 우리는 얼마나 욕망에 충실한가. 개인의 자아실현 욕구와 회사의 목표를 조화시킨다고? 글쎄. 이마무라 감독이 영화에서 언뜻언뜻 보여주는 조직에 대한 단상을 유추컨대 그건 불.가.능.이다. 개인의 자유의지는 조직과 조화를 이룰 수 없다. 자아실현이란 단어조차 어떤 지위나 위치, 명예 등을 내포하고 있는 뉘앙스이지 않은가. 그건 조직이나 기업 속에서 형성될 법한 이야기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란 풍류를 읊조렸던 과거의 한량들이 어쩌면 옳을 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은 제대로 된 풍류고 놀이여야 한다(타락이나 환락과 같은 방종의지(자유의지가 아닌)는 오히려 욕망을 모욕하는 짓이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건 개인의 욕망과 사회의 요구가 어느 정도 톱니바퀴를 맞물렸을 때 얘기다. 자본주의 사회가 성실한 노동자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건 기정사실이다. 오로지 로또적 역전만이 삶의 유일한 희망인양 부여잡는 필부들에게 그 경구는 더 이상 효력이 없다. 자본이 자본만을 증식할 수 있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빠져나갈 탈출구는 로또 밖에 없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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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차라리 욕망에 충실하게 살라는 이마무라 감독의 목소리는 충분히 경청할만하다. 욕망이 만발하는 것은 죄악이 아니며 삶은 그 욕망을 동력원으로 삼는다는 얘기다. ‘욕망예찬’은 늙은 거장이 젊은이들에게 넌지시 건네는 삶의 지혜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일하기 싫다. 그래도 생활을 보장해 달라”는 ‘문화사회’ 혹은 ‘놀이사회’의 도래는 불가능한 것일까.

(그런 의미에서 “친구야~놀자”라는 부름을 엔간하면 거절하지 말라. ‘놀자’는 친구의 말은 진짜 삶을 풍성하게 하는 요소들 가운데 하나일 수도 있다...^^ 물론 욕망이 시키지 않는 다면 갈 굳이 응할 필요는 없겠지만 말이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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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은 이틀 전 들었지만, 늦었지만,
그저 '안녕'을 고할 시간이 없었다는 어줍잖은 핑계.

그래서 이제서야,
안녕, 시드니 폴락 감독님...
굿바이, 시드니 폴락 (Good-bye, Sydney pollack)...

현지 시각으로 26일 월요일 떠나셨으니, 3일장이라면 오늘 발인하고, 장지로 모셔진 건가요.
물론 그곳 사정이야 나로선 알 수가 없지만서리. 향년 73세. 암 투병 중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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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마이클 클레이튼>에서도 쟁쟁한 모습이었는데,(조지 클루니의 로펌대표였죠. 악을 변호하는.)
이렇게 마지막 소식을 알리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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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셨단 소식을 접하는 순간,
내 눈 앞에 펼쳐진 건, 황혼을 뒤로 하고 아프리카의 드넓은 초원에 있는 女와男.
메릴 스트립과 로버트 레드포드.
그래요. <아웃 오브 아프리카>. 생애 처음으로 스크린에서 마주한 아프리카의 풍광이었죠.
1986년. 간혹 가족들에게 영화를 쏘시던 아바이 동무는,
아카데미 7개 부문 수상에 빛나는 작품을 보여준다고 우리를 극장에 데리고 가셨죠.

사실, 세세한 내용은 기억나질 않아요.
남자의 죽음과 함께 눈물 철철 흘러내린 애잔했던 로맨스,
처음 만난 아프리카의 풍광의 황홀함,
더불어, 지금 커피를 배우고 있는 와중에 떠올리는 메릴 스트립의 커피 농장.

무엇보다, 특히, 아무래도, 고 앤서니 밍겔라 감독님. 3월에 먼저 떠난 앤서니 감독님과의 인연 때문에.
시드니 감독님은, 그와 함께 미라지 엔터테인먼트라는 영화사를 운영하면서,
<리플리><콜드 마운틴><캐치 어 파이어><무단침입> 등 앤서니 영화에 제작자로 참여했네요.
친구를 먼저 보낸 슬픔에 암과 싸우던 힘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한 때문일까요.
못다한, 하고픈 작품들이 있었을텐데, 살아남은 자에게 고스란히 그걸 떠넘기고 가시다니...

그래도 아직 미개봉작인 <메이드 오브 오너>에서 주인공인 패트릭 뎀지의 아버지 역으로 출연,
마지막으로 그를 스크린에서 만날 기회는 남았다고나 할까요.
<마이클 클레이튼>이 마지막이 아니었던 셈이네요.

어쩌면, 감독으로서 그는 이미 끝난 커리어였는지도 몰라요.
그의 감독연출작 중에 제가 본 건, <아웃 오브 아프리카>외에, <추억> <투씨> <야망의 함정> 정도.
톰 크루즈가 나온 <야망의 함정>이 1993년이고,
그 이후 감독 필모그래피는 4편 밖에 추가를 안 했으니, 그럴만도 하지요.
평가가 좋았던 것도 아니니.
제작과 제작총지휘, 배우로서 좀더 활발한 활동을 했다는 편이 맞겠네요.
워낙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후광이 커서 어쩌면 그도 이후 작품에 부담이 됐을지도 모르겠지만요.

어쨌든, 앤서니 밍겔라 감독님에 이어, 시드니 폴락 감독님까지.
두 사람, 영화사 운영과 제작자와 감독으로서의 콤비 플레이도 있지만,
<아웃 오브 아프리카> <잉글리쉬 페이션트>.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애틋애잔 로맨스의 풍경이 묘하게 겹치는 두 영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오열하는 어떤 풍경을 공유한 두 영화.
나는 그것이 어쩐지 짠해요. 어떤 로맨스가 연기처럼 사그러든 것 같아서.
두 영화의 산파들이 연달아 구름의 저편으로 갔다는 사실이, 좀 슬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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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시드니 감독님의 명복을 빌어요.
 이런 소식 접할 때마다, 늘 어떤 추억 한자락을 밟게 되는 동시에,
한동안 잊고 있던 영화를 꺼내보게 되는 계기가 되네요.

그래서 이런 즈음, 나에게 필요한 건 뭐?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다시 꺼내 보는 것.
<추억(The way we were)>의 음악을 들어보는 것.
그저, 그렇게 그를 기억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


안녕, 시드니 폴락 감독님, 이젠 정말 '아웃 오브 월드'.
안녕, 아웃 오브 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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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야외무대에서 펼쳐진, <미술관에서 즐기는 1일휴가콘서트>에, '카페 티모르'가 함께 했다. '카페 티모르'의 케이터링을 아주 조금 도우러 간 나는, 거의 6~7년 만에 다시 찾은 (동물원 옆) 현대미술관의 풍경 앞에 약간 설렜다. 더구나 지금은 아직도 봄날.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싱글남의 춘심은 뻥뻥 부풀어오르기 마련~. 그래, 청춘이 소멸된 자리에도 춘심은 되살아나기 마련인데, 내 봄날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게지. 춘심은 또한 여심이라지만, 남심이라고 방콕하란 법은 없잖은가 말이다. ^^

그런 봄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춘심으로 들뜬 풍경. 많은 이들이 커피나 맥주를 하나씩 끼고, 바람과 풀이 행하는 속삭임과 터치에 기대고 있었다. 물론 그것만이 아니었다. 대니 정의 온몸을 흐느적대게 하거나 들썩이게 만든 섹소폰 연주가 여흥을 돋웠고, 권해효의 재기 넘치는 야부리와 노래가 붐업을 시켜줬다면, 한영애는 그 특유의 카리스마와 빨판처럼 우리의 마음을 흡입하는 노래로 봄날의 춘심을 마구마구 흔들어댔다. 특히나, 세계를 아우르는 한영애의 짧은 멘트 하나하나는 그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실감케 한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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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렇게 봄날의 저녁이 익어갈 무렵. 비록 공연장의 저 곁다리에서 '카페 티모르'의 케이터링을 도우면서, 귀동냥하고 몸동냥 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는데, 무대에 한쌍의 커플이 초청됐다. 한영애는 사연을 읽었고, 그들은 무대 위로 불러세워졌다. 이른바 '프로포즈'의 시간. 구구절절 사연은 차치하고, 사실은 기억도 잘 나진 않아. 그래도 분위기만 언급하자면, 5월의 프로포즈는 닭살스러워서 더욱 반짝반짝했다. 콘서트장에 모인 춘심(들)의 결을 따라, 그 춘심을 업시키기엔 딱 좋은 모멘텀.

그리고 한영애의 주문에 따라, 구애남이 던진 결정적 한마디. "나랑 결혼해줄래?"
그 뻔하고 식상하며 상투적이기 그지 없는 그 말도 그 순간만큼은 어떤 주술같은 힘을 발휘한다.
이미 그 연인 사이엔 어떤 교감이 있었을 테고, 타이밍의 문제였을 뿐이겠지만, 뭐랄까,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저건 마법의 주문이라고. 낯 모르는 숱한 대중들 앞에서 연인을 향한 프로포즈의 이벤트가 만드는 마법의 순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가 감염되고 마는 행복 바이러스. 유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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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는 그리고, 어떤 장래 계획을 갖고 있냐는, 한영애의 질문에 미리 준비라도 해 둔양, 연인과 꿈꾸는 혹은 행해야 할 아니면 행하게 될 행위들을 열거했다. 일종의 자신과 연인을 위한 약속 같은 것. 그 순간만큼은 나는 그 남자의 진심을 느껴졌고, 그냥 코 끝이 시큼했다. 찡~했다. 씩씩하면서도 수줍어하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 행복감과 사랑이 듬뿍 발린 그의 말을 듣자니. 결국 혼자 중얼거렸다. "님 좀 짱인 듯..."ㅋㅋ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떠올리게 됐다. 마침 5월25일을 몇 시간 앞에 둔 시점. 내 생체 및 감성 초침이 이미 향하고 있는 어떤 이야기와 욕망을 향해. 그 사랑과 그 약속이, 내 기억의 숲속에 자리잡고 있는 어떤 사랑과 약속이 오버랩됐다. 그들은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 어떤 생일파티를 하면서 이날을 맞이할까. 혹시 다시 헤어졌을 수도 있겠지. 아냐, 그래도 다시 만날지 몰라.....

언젠가, 어느해, 5월25일. 나는 피렌체 두오모에 올라가고, 블로깅을 할 것이다. 어느 여인의 생일을 축하하며, 어느 10년의 약속이 사랑과 합치되던 순간을 기억하며, 그토록 품던 피렌체 두오모에 올랐음을 자축하며, 어쩌면 누군가를 향한 프로포즈를 하고 있을지도 모를 순간을 꿈꾸며... 그건 또 내 자신과의 약속. 몇 년 후가 될 지 알 수 없지만. *^^*

하나씩 풀어보자면,
그 여인은 아오이. 소설과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의 주인공.
5월25일은 아오이의 생일이자, 두 사람이 10년 전 그들의 사랑을 위해 약속을 했던 날.
피렌체 두오모는 아오이와 쥰세이의 10년 약속이 이뤄지는 장소.
그리고,
잊혀지지 않는,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그 한마디. "사람의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 속밖에 없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그 나이 때부터, 나는 피렌체 두오모를 꿈꾸고 있다. 5월25일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감지되는. 혹시 그 시간, 그 곳에 가면 내 잔치가 다시 시작될 것 같은 예감? 아니면 어그러진 그때 그 약속의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 혹은 어떤 위로를 받기 위해서? 나도 모르는 그 이유 따윈 제쳐놓고, 오르고 말 일이다. 그 어느해 5월25일 피렌체 두오모에. 케익 하나 들고, 아오이의 생일을 축하해줘야겠지? *^^*

그래, 그렇게 5월25일이다. 10년의 약속이 있었던 그날. 5년 전 풀어냈던, 내 냉정과 열정 사이.

당신이 복원하고픈 옛사랑, <냉정과 열정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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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는 약속이 있었다. 추억보다 진하고 강력한 주술과도 같은 그런 약속. 사랑했던, 아니 사랑하는 그들은 이야기한다. “추억이 아닌 약속”이라고… 또 “약속은 미래이며 추억은 과거”이며 “추억과 약속은 의미가 다르다”고 속삭인다. 그 간극은 크다. 미래는 보이지 않지만, 과거와 달리 반드시 찾아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혹은 누군가에겐 약속은 현실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보이지 않지만 미래의 그 언젠가 찾아올(것이라고 믿는) 그 무엇. 그 약속은 일상을 지탱하게 만들고 희망을 길어낸다. 대개의 약속이 사계절의 스쳐감, 세월의 풍파에 깎이거나 퇴적되지 않을 수 있을까마는 사랑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약속이라면 때론 세월을 이겨내는 힘이 될 것이다.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의 약속은 그 순간, 당시의 감정을 가장 투명하고 충실하게 반영한 결과물일 수도 있다. 평생 잊지 못할 어느 한 순간, 사랑하는 사람들은 때론 그런 약속을 한다. “우리 영원히 함께 하자”고, “우리의 인생은 다른 곳에서 시작됐지만, 반드시 같은 장소에서 끝날 것”이라고… 이것은 어쩌면 열정이다.

물론, 혹자는 얘기한다. “약속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라고. 그럴 수 있다. 아침의 주림을 저녁의 다담상으로 잊고, 쓰지 않는 칼은 녹슬기 십상이라는 사실이 그것을 대변한다. 아무리 굳게 지어먹은 마음이라도 세상살이가 변하면 따라 변하게 마련인 것이 한편으로 우리네 사람살이다. 그것은 또한 냉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약속이 이뤄진 그 순간의 진정성은 무시할 수 없다. 그것이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손 열정을 내칠 수 없다. 찰나의 순간에 냉정을 부러 끄집어낼 수는 없다. 그리고 사랑의 약속은 세월의 모진 바람을 맞으며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외줄을 탄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불가피하게 지키지 못한 약속을 지닌 사람은 어떨까. 마음 깊은 곳에 ‘열정’을 지니고 있지만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이유로 ‘냉정’을 강요받는다면……. 그 사람에겐 평생 짊어질 회한이 남는 법이다. 가슴 속 어느 한 편에서 지워지지 않을 어떤 상흔 같은 것.

기적은 누구에게나 쉽게 일어날 수는 없다. 최소한 내가 아는 기적은, 그 기적은 그렇단 얘기다. 냉정도 열정도 그 어느 것도 될 수 없는 경계에서 그 약속은 정처 없이 부유한다. 누군가에게 그래서 ‘추억’은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한다. “추억보다 약속”이라고 말할 수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설과 영화 사이, 원작의 질감과 밀도에 미치는 못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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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책을 통해 이 사랑을 접한 사람들에게 영화는 그냥 ‘확인사살’일 뿐이다. 원작 <냉정과 열정사이>는 “하나의 사랑, 두 가지 느낌”이란 컨셉으로 어느 외로운 두 남녀가 그리는 사랑의 궤적을 담담하나 뭉클하게 담아낸다. 사랑은 일방통행이 아니듯, 아오이(Rosso)와 쥰세이(Blu) 각각의 입장에서 한 사랑의 궤적이 그려내는, 다른 색깔의 러브 로망이다.

아오이와 쥰세이사이. 그 책은 사랑의 약속을 다룬다. 둘 가운데 누가 냉정이고 누가 열정인지, 한 사람 내부에서 냉정과 열정사이는 어떻게 외줄을 타는 지를 책은 넌지시 속삭인다. 또 열정에 불이 붙고 냉정에 물이 뿌려지는 순간에 대해 책은 귀띔한다.

단언컨대, 영화는 분명 원작의 질감과 감성을 능가하지 못한다. 앞서 확인사살이라고 얘기했지만 문자언어가 영상언어로 치환되면서 감정의 밀도는 책에 미치지 못하고 양 방향의 색감이 주는 농도 역시 묽다.

두 사람 사이의 그 미묘한, 꼬집어낼 수 없는 감정의 편린들을 씨줄과 날줄로 기워내는 솜씨 또한 성기다. 원작을 일부 각색한데다 원작과 달리 두 사람의 감정 흐름에 대한 묘사력도 떨어진다. 관객들이 원작을 이미 읽었으리란 판단 하에 영화의 내러티브가 일부 진행된다는 느낌도 역력하다.

그럼에도 미덕을 얘기하고자 함은 그 영상을 통해 ‘10년의 약속’을 확인했고 스크린에서 그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단지 그것뿐이다. 숱한 영화들이 원작을 따르지 못한데 따른 비난의 화살을 맞았고 앞으로도 그러겠지만 왠지 이 영화의 풍경은 남달랐다.

소설 속 활자가 눈앞에서 영상으로 펼쳐질 때, 사소하지만 사랑을 잇는 그 약속이 꿈결 같은 목소리로 관통할 때, 사랑하는 사람들의 두오모, 피렌체의 두오모가 눈앞에 펼쳐질 때… 사랑과 약속의 방정식이 머리(이성)와 가슴(감성)사이에서 오락가락했다.

약속, 그 사랑을 테스트하는 리트머스 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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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렌스의 대성당(주. 책은 피렌체의 두오모라고 쓴다. 책을 먼저 읽어서인지 나는 ‘피렌체의 두오모’가 더 좋다)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성지래.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곳. 나와 함께 가 줄 거지?”... “언제?”...“십 년 후 생일날”... “약속해 줄 거지?”... “그래 약속해”

아오이(진혜림)와 쥰세이(타케노우치 유타카)는 속삭이듯 약속을 한다. 마치 꿈속에서 주고받은 듯한 그런 약속. 2001년 5월 25일은 순식간에 그렇게 고정된 미래가 됐다. 약속은 어쩌면 사랑을 테스트하는 리트머스 종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약속은 세월 속에 일단 잠수한다. 여느 연인들의 통관의례와도 같은 헤어짐. 오해에서 비롯된 골을 감당하기 힘들어서였을까, 그들은 어느덧 끈을 놓은 채 머나먼 이태리에서 각자의 길을 가꾸고 있다.

사실 쥰세이의 가슴속엔 잊을 수 없는 별이 있다. 아오이라는 별(★). 인간이란 잊으려하면 할수록 잊지 못하는 존재임을 증명하듯 그의 가슴 깊은 곳에 약속이 살아 숨쉬고 있다.

특히 그는 ‘회화 복원사’다. 이 설정은 의미심장하다. <봄날은 간다>에서 상우가 소리 채집가였듯, 쥰세이가 세월에 희석된 명화들을 원상태에 가깝도록 복원하는 직업을 가졌다는 것은 분명 끈을 놓쳐버린 사랑과 연관이 있다. 잃어버린 생명을 되살리는 작업, 잃어버린 시간을 돌이키는 세계에서 유일한 직업. 쥰세이가 복원할 것은 치골리나 프란체스코 코사의 작품만이 아니다. 자신안의 르네상스는 물론, 아오이와의 사랑도 복원해야 한다.

아오이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흔이 있다.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던 나날, 그 문을 우산으로 살며시 열어젖혔던 쥰세이, 태어나서 처음 사랑의 고백을 했던 그 사람과 헤어졌다. 혼자 있는 것에 냉정해질 수 있는 듯 강해 보였으나 사람을 그리워했던 아오이. 그녀에게 쥰세이는 영원히 함께 할 줄로만 알았다.

그녀는 ‘보석 세공사’다. 갈고 닦고 아름답게 광채를 내보이는 보석. 아오이는 모진 바람과 풍파를 이기고 보석처럼 영롱하게끔 사랑을 세공해야 한다.

그들에겐 스무 살, 영원히 함께할 것이란 풋풋하고 알싸한 사랑의 기억이 있다. 그리고 한 세기를 건너뛰어 서른 살, 약속의 시간은 닥쳐오고 새로운 시작이 요구된다. 그들의 삶은 10년의 약속을 위해, 그 순간만을 위해 8년의 기다림을 담보로 했기 때문이다.

고정된 미래는 어떤 삶을 규정하기도 한다. 어떤 세월의 질곡이 있든, 오해가 있든, 사랑하는 연인들의 약속과 실행은 누군가에게 삶의 변곡점이 될 수도 있다. 열정으로 기다리든, 냉정하게 내치든, 그 선택 또한 약속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약속의 전개과정은 그리 순탄치 않다. 음모도 있고 오해가 자기증식을 했으며 산산 조각난 접시의 이빨은 다른 아교풀로 접지돼 있다. 쥰세이 곁에는 메미가, 아오이의 곁에는 마빈이 있다. 예전처럼 복원할 수 없는 시간의 간극이 존재하고 있었다. 세월은 그렇듯 절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쥰세이가 시간이 멈춰버린 피렌체를 택하고 복원사의 길을 걷는 건 어쩌면 우연이 아니다.

한편 극중에서 피렌체는 또 하나의 주인공이다. 두오모를 중심으로 올망졸망 엇비슷한 키 재기로 과거를 품고 있는 도시. 퐁테베키오 다리, 팔라티나 미술관, 산타마리아노베라 역, 아르노 강 등은 사랑이 있는 풍경을 더욱 빛나게 한다. 밀라노와 도쿄까지 삼각 체제로 오가는 로망이 피렌체에서 사랑을 일차로 복원하고 과거와 현대가 교차하는 밀라노에서 결실을 맺는 설정 또한 다분히 시공간의 방정식을 풀이한 결과다.
 
세월도 깎아내지 못한 옛사랑과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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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약속은 ‘기적’이란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냉정과 열정 사이>의 약속은 그런 기적을 이야기한다. 10년의 세월과 8년의 그리움을 건너뛴 약속, 그리고 해후. 추억이 아니라면 그 약속은 유효하다. 21세기는 결국 왔다. 세월은 결국 그들의 사랑에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도쿄의 교정에서의 첫 키스를 담은 첼로리스트의 선율은 세기를 건너 피렌체의 광장에서도 심정을 아스라하게 만든다.

사랑 자체가 어쩌면 약속이다. 약속은 그를 혹은 그녀를 사랑한다는 말로 대신한다. 하지만 대개 세월은 사랑의 복원을 어렵게 만듦을 사람들은 잘 안다. 그때 그 시절, 그 사랑했던 감정은 세월을 터널을 관통하는 동안 균질감을 보장하지 못한다.

유한한 삶의 영역에서 영원히 늙지도 않은 채로 한 사랑이 박제된다면 사랑은 영원할 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랑 자체가 변화를 꿈꾸는 건 아닐까... 그래서 약속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라고 되묻기도 하듯 말이다.

그런 면에서 <냉정과 열정 사이>는 일종의 판타지다. 두 사람의 손짓 인사는 약속의 실행을 시사한다. 스므살에서 서른까지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외줄을 타던 사랑의 행로는 일단 약속의 실행으로 인해 결실을 맺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이번만큼은 그 이후가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더 이상 마흔살, 쉰살까지는 생각하기 싫었다. 그것으로 충분히 그들의 꿈결 같은 약속과 사랑의 방정식을 풀었으니까.

내 나이도 그들과 같은 서른이 됐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싸구려 향수에 취해 살고 있다. 내가 ‘싸구려’라고 표현한 것은 그 당시 내 영혼의 가난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가난함을 채워주었던 그 사람을 기억한다. 사랑했던 기억. 그리고 지키지 못했던 약속.

쥰세이가 말했다. “과거밖에 없는 인생도 있다. 잊을 수 없는 시간만을 소중히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것이 서글픈 일이라고만은 생각지 않는다... 다들 미래만을 소리 높여 외치지만, 나는 과거를 그냥 물처럼 흘려보낼 수 없다”고. 북베트남 인민군 소년병 출신 바오닌의 소설 <전쟁의 슬픔> 중의 한 구절도 그렇게 얘기한다. “내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미래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추억의 힘 때문이다”라고...

그럴 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 말들에 공감한다. 어떤 사람들에겐 결코 미래가 될 수 없는 추억이 생존의 욕망 근저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또 어떤 사람들에게 가을이 외롭거나 아픈 것은, 누가 옆에 ‘없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있어야 할 ‘그 누군가’가 없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듯, <냉정과 열정사이>는 불가능해진(혹은 그렇게 낙인찍힌) 사랑을 불러오고 싶은, 복원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연서다. 가을은 그런 연서를 읽기에 ‘딱’인 계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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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복원하고픈, 옛사랑이 있는가.
지키지 못한, 약속이 있는가.
가슴 속에, 누군가 있는가.

혹은,
당신도, 누군가의 가슴 속에 있는가.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