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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아니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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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2000부 한정판으로만 내놨다는,
《존 레논 : In His Life》가 내 손에 왔다. 거금 주고 샀다.



레논이 왔던 날, 좋아서, 나도 저렇게 팔짝 뛰었다.
내친 김에 <존 레논 비긴즈 : 노웨어 보이>까지, 후다닥 해치웠었지.
<노웨어 보이>에 대한 소감은 차후 읊기로 하고.

카니예 웨스트의 새 앨범까지.
<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 >.

 

아 그런데, 전세계가 극찬해 마지 않고 평단과 대중이 함께 꽂힌 이 앨범이,
(롤링스톤지는 이 앨범을 '2010 최고의 앨범'으로 선정했다!)
지금의 내겐 꽂히질 않는다. 예전의 나 같으면 팍팍 꽂혔을 법한데...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내 이야기는 아니고, 주성철 씨네21 기자의 이야기다.

그의 《홍콩에 두 번째 가게 된다면》에는, 홍콩영화에 대한 애정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그전부터 홍콩영화, 하면 주성철이라는 얘기('홍빠'라는 얘기도ㅋㅋ)도 들었지만, 책은 그것을 확인하기에 충분하다.

특히나, 나도 푹 빠졌던 어떤 홍콩영화에 대한 언급이 나올라치면, 절로 어떤 장면들이 떠오르면서, 그때의 공기와 느낌이 떠오르곤 했다. 아, 그땐 그랬지, 하면서 나는 추억에 잠기고, 그때를 더듬었다.


다만, 나는 홍콩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고, 홍콩영화를 두루두루 섭렵한 편이 아니다. 편식이었달까. 주성철의 애정을 내것으로 받아들이기엔 갭이 좀 있었다는 거지. 간혹 별처럼 빛나는 순간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아주 흥미로운 홍콩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래도, 좋아하는 무언가를 위해, 자신을 송두리째(아마도?) 바쳐서 그 애정을 담은 그의 모습이 참 좋아보인다.

다시 스크린에서 만난, <아비정전>. 좋았다. 고마웠다. 그녀도 잊을 수 없다고 했던, 그 '1분'과 '장국영이 엄마에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뒷모습', <아비정전>은 역시 장국영의 영화였다. 아래는, 지난 11월3일, <아비정전>과 장국영을 만나고, 주성철을 만났던 기록. 







시간이 ‘흐른다’는 건, 한편으론 맞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틀렸다. 어떤 시간은 더 이상 흐르지 않는다. 멈춰버린 순간이 있다. 더 이상 흐르지 않는 시간으로 박제된 순간. 누군가는 그래서 한순간을 잊는 데 전 생애가 필요하다. 어떤 안간힘을 써도 지워지지 않는,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시간은 흐르지만, 멈추기도 한다. 나는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 있다. 나도 흐르지만, 나는 흐르지 않는다. 아마도, 수리진(장만옥)이 그러지 않았을까. 모든 것은 이말 때문이었다.


“1960년 4월 16일 오후 3시, 우리는 함께 했어.
우리 두 사람이 함께 했던 1분을 잊지 않을 거야.
이 1분은 이제 지울 수 없는 1분이 됐어. 내일 다시 올게.”


<아비정전>. 장국영(아비)이 장만옥에게 행했던 궁극의 작업멘트. ‘1분’으로 한 여자의 모든 것을 진압하고야 말았던. 고작 60초에 불과한 시간이라고 반박할지 몰라도, 누군가에겐 그 무엇으로도 표백할 수 없는 시간이요, 멈춰버린 시간. 그건 수리진 스스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1분을 쉽게 잊겠지만 난 영원히 잊을 수 없었다.” 역시 토로한다. “그는 나에게 순간을 이야기하고 영원히 지속되리라 했죠. 하지만 그와 헤어진 이후 그를 잊기 위한 순간이 되어버렸어요.”


이건 주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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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당신은, 아마 알 것 같아요. :)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 궁금한 계절에,
추위,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증이 겹쳐질 법한 이 시기.

다른 이유, 수 없이 댈 수도 있지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맞아요.
리버 피닉스, 주간이잖아요.


뭐, 어쩔 수 없잖아요.
시월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면,
'잊혀진 계절'을 흥얼거리는 즈음이 되면,
꼼짝마라, 생각나고야 마는 그 사람, 리버 피닉스.

당신의 우울을 담은 어제의 음악을 내가 흡수할 수밖에 없었던 어떤 이유.
리버 피닉스, 니까요. ㅠ.ㅠ

그리고, 함께 은임이 누나.

두 사람이 함께 묻은 영화, <허공에의 질주(Running on Empty)>.

올해, 그리고 지금,
내 시린 가슴이 둑흔둑흔 뛰고 있는 이유는,
허공을 질주할 그 영화가 스크린에 투사되기 때문이에요.

서울국제가족영상축제는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서울국제가족영상축제는 리버 피닉스의 사망 기일인 10월 31일,
‘마스터피스’ 상영작 중 한 편인<허공에의 질주>를 특별 추모상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불멸의 청춘 아이콘 리버 피닉스는 할로윈의 흥취로 들썩이던 1993년 10월 31일 배우 조니 뎁이 운영하는 ‘바이퍼 룸’ 인근 도로에서 쓰러져 사망했습니다.

이번 상영은 <허공에의 질주>에서 잊기 힘든 명연기를 보여준 리버 피닉스를 추모하기 위한 특별 프로그램입니다. 4회 서울국제가족영상축제 상영작 중 가장 뜨거운 관객 호응을 받고 있는 <허공에의 질주>의 특별 추모 상영은 10월 31일 일요일 밤 10시 송파CGV 4관에서 있을 예정입니다."


된장. 어쩔 수 없어요.ㅠ.ㅠ
울컥, 나는 울어버릴 걸 알면서도,
좀비처럼 그를 향해 질주해야 합니다.

쉬파, 이 허섭한 글을 꾹꾹 누르면서도 왜 작후만, 방울이 맺힐까요.

그래,

내 청춘의 한 얼굴, 리버 피닉스, 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어설프기 짝이 없는 자기연민이라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것은 리버 피닉스, 이기 때문입니다.

시월의 마지막 날.
올해는 어떤 '리버 피닉스' 커피를 제조해서 마실까, 목하 고민 중.

그렇게,
내 소박한, 불사조를 향한 의식은 쭈욱~ 계속됩니다.

알겠죠?
시월의 마지막 날, 준수의 커퓌 메뉴는 늘 '리버 피닉스'입니다.
현재 예약자는 몇 년 전부터 찜하고 있는 한 명.
당신의 자리도 마련했으면 좋겠습니다. :) 

자, 함께 허공을 향해 달려볼까요? 붕붕붕~

물론,
은임 누나에게도 인사, 함께 할게요. 누나, 안녕.
누나 목소리, 리버 피닉스를 향한 누나 목소리, 함께 듣고 싶어요.

이만하면, 이 정신줄 놓은 듯한 격한 추위가,
대체 어디에서 왔는지, 알만 하죠?

근데 쒸베리아,
내가 리버 형의 핸섬함 반만이라도 됐으면, 이리 안 살텐데, 조낸 조을텐뎅!

웨라이, 그냥 보고싶은 형아를 향한 백골이 진토되어 넋두리 하공 말공,
우리, 리버 형이 연주하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그러니까, '비창', 함께 들어요. 뒤쪽에 있어용~


* 오늘, 인도네시아 '토라자' 커피를 생애 처음으로 마셨는데,
지금도 그 생각하면 침이 자가발전하면서 꼴깍 목을 적시고 마는데,

뒤늦게 알았다. 인도네시아에 쓰나미와 화산 폭발까지 덮쳐 일어난 대참사!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은 마음을 무겁게 만듭니다.
나는 그 커피를 통해 인도네시아(인)와 연결됐었는데,
그들에게 닥친 대참사와 고통이 마냥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나는 지구촌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에디트 피아프는, '사랑'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사람이지.
그녀가 부른 불멸의 노래 곳곳에 그 사랑의 흔적과 감정이 묻어 있거든.
노래에 틈입한 에디트 피아프의 이야기를 알고 듣는다면, 노래가 또 달라질 걸.

"이제 목요일이면 너의 품에 안겨서 꿈을 꾸고, 너를 사랑할 수 있겠지. 너 없는 시간은 너무나 지루하고, 너 없는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밤이나 낮이나 나는 네 생각뿐이야. 어서 돌아와서 나의 근심을 멈춰줘." (이경준 음악칼럼니스트의 <사랑의 두 비극: 그럼에도 우리는 왜 사랑에 빠지는가?>에서 인용)

피아프가 유일하게 진실한 사랑이라고 밝힌 세르당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다.
그리고 비극으로 끝난 피아프와 세르당의 사랑을 담은, 무척 유명한 노래, 
‘사랑의 찬가(Hymne a L’amour)’.
 
작사를 피아프가 했으며, 작곡은 그녀의 친구인 마르그리트 모노가 했다.
가사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면, 자신도 따라 죽고 우리는 함께 할 것"이라는 내용을 품었다. 물론, 피아프는 세스당을 따라 죽진 않았다. 

최윤희 씨 부부, 《D에게 보낸 편지》,  에디트 피아프가 맞물린다.
한 사람이 없는 텅 빈 세상, 혼자 살아가는 일이 없길 바라는 어느 사랑(들).
물론, 당연하게도 한 쪽이 없어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것도 사랑이다.
알잖아. 'Dieu réunit ceux qui s'aiment(신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해준다)'니까!!!
 
10월11일.
에디트 피아프의 47주기.
잡지 <뷰즈>에 기고한 에디트 피아프 이야기.

안개 낀 가을날.
에디트 피아프 노래를 들으며 진한 커피 한 잔이면 충분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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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노래했으므로, ‘난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

샹송 디바,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 (1915.12.19 ~ 1963.10.11)


지난 여름, 흥행몰이에도 성공하고, 각종 화제로 들썩했던 영화 <인셉션>. 그 화제의 1인치에는 중요한 삽입곡인 ‘Non, Je Ne Regrette Rien(아니,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가 있었다. 그 내용은, 굳이 지면을 통해 말하진 않겠다. 그게 핵심은 아니니까. 이 노래, 에디트 피아프를 안다면, 아니 몰라도 워낙 유명한 노래니 들으면 ‘아~’하는 탄성을 내지를 것이다. 영화팬에게도 무척 익숙한 노래다. 스크린을 통해 다반사로 나오니까.  


대충 목록을 읊어보자. 독일 영화 <파니 핑크>의 메인 테마. ‘여자가 서른 넘어 결혼할 확률은 원자폭탄에 맞을 확률보다 낮다’고 생각하는 노처녀 파니 핑크를 위한 곡이었다. 프랑스 영화 <몽상가들>의 엔딩곡. 68혁명의 어느 한 순간을 다룬 이 영화에서, 이 곡은 어쩌면 실패로 규정된 68혁명을 보듬는 뉘앙스도 풍긴다.


뭣보다, 에디트 피아프의 전기 영화인 <라비앙 로즈>에서의 이 노래, 물 만났다. 피아프로 분한 마리안 코티아르가 실감나게 모창했다. 피아프의 현현인가 착각이 들 정도. 코티아르는 이 역할로 2008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탔다. (코티아르는 <인셉션>에도 나오는데, 이 노래와 함께 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한국에선 어떻게 회자됐을까. 지난 9월1일 1주기였던 영화배우 고 장진영은 자신의 영화인생에 가장 많은 영감을 준 음악으로 이 곡을 꼽았다. 역시 지난 여름, 최고 인기드라마였던 <제빵왕 김탁구>. 탁구(윤시윤)가 학생운동을 하다 잡혀간 유경(유진)을 향해 택시 세레나데를 펼치며 들려줬던 음악이 ‘Non, Je Ne Regrette Rien’. 


피아프를 수렁에서 건진 노래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Non, Je Ne Regrette Rien’는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 그 자체다. 노래가 곧 사람이요, 사람이 곧 노래인. 사연은 뒤로 미루고, 번역된 가사부터 엿 보자.


“아니에요, 아무 것도.

아니에요, 난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대가는 치렀고, 다 지난 일이고, 이젠 잊힌 과거니까.

과거는 신경 쓰지 않아, 내 추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

왜냐하면 나의 삶, 나의 기쁨이 오늘 그대와 함께 시작되거든요.…”



샹송의 디바, 에디트 피아프의 4대 명곡 중 하나로, 가장 늦게 발표된 노래였다. 사랑에 얽힌 과거 대신 새로운 사랑을 꾀하겠단다. 권토중래라고 해도 될까. 피아프의 연애사를 안다면, 고개 끄덕일 만하다. 그러니, 사랑에 배신당했다고 세상 끝, 아니다. 사랑은 모습을 바꿔 다시 온다. 그것도 노래와 함께. 피아프라면 그리 말할 만하다.


사랑도 그렇지만, 이 디바의 삶은 그 굴곡이 예사롭지 않다. 이 곡을 발표하기 전, 피아프는 피폐했다. 정신이나 몸, 모두 망가진 상태였다. 술, 마약은 기본이요, (굳이 남자는 넣지 않겠다) 예민한 예술가에게 따르곤 하는 자살미수도 있었고, 결핵, 간염, 관절염, 암 등 온갖 질병도 함께하곤 했다.


빛나던 ‘작은 새’의 영민함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실의에 찬 나날이었던 피아프에게 한 작곡가가 찾아왔다. 작사가 미셀 보케르의 소개로 찾아온 샤를르 뒤몽(Charles Dumont). 몇 차례 수상 경력이 있긴 했으나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작곡가였다. 피아프는 물었다. “왜 날 만나자고 했지요?” 그는 피아프를 만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제가 미력하나마, 피아프님께 작품을 헌정하고 싶습니다.” 그토록 고대하던 대가수 앞, 떨리는 목소리였다. 병든 닭 같은 피아프의 모습이었지만, 뒤몽의 심장박동은 멈추지 않는 폭주기관차였다.


여느 때처럼 꼬이는 똥파리를 대하듯 시큰둥한 표정으로, 피아프는 말했다. “당신이 쓴 곡이니 직접 불러보세요” 두둥. 뒤몽은 떨리는 몸을 부여잡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Non, rien de rien... Non, je ne regrette rien...♪” 노래가 한참 진행되던 와중, 피아프가 벌떡 일어났다. 눈이 반짝반짝. 병의 기색이 순간 사라졌다. “멋져요. 당신은 정말 멋진 곡을 썼어요. 내게 딱 어울리는 가사고요. 나의 유언장이 될 것 같은 노래에요. 당신은 요술쟁이.”


물론 ‘우후훗~’까지는 없었지만, 지금까지 반세기 동안 사랑 받는 피아프의 명곡 ‘Non, Je Ne Regrette Rien’는 이렇게 탄생했다. 1960년 12월, 피아프의 네 번째 올림피아 극장 라이브에서 공식적으로 데뷔한 이 노래. 피아프의 삶이 그대로 담겨져 있었다. 사람들은 당당히 “후회하지 않는다”며 외치며 돌아온 탕자(?)를 연호했고, 피아프는 화답했다. 과거? 후회? 그건 오늘이 아니니까, 이제 그만. 사랑하며 살고, 후회 없이 노래하리.


피아프, 그 불가항력적인 욕망의 화신    


피아프는 죽을 때까지 사랑을 멈추지 않았다. ‘사랑의 찬가’를 부를만한 가수다. 그녀는 1962년, 21살 연하의 데오 사라포와 결혼했다. 죽기 1년 전이었다. 소화기계통 출혈로 요양소 생활을 하던 그녀는 1963년 사라포가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했다. 비극이 끊임없이 삶으로 삼투압 하던 와중에서도 노래와 사랑을 놓지 않던 그녀도 이땐 어쩔 수 없었나보다.


물론, 그녀는 후회하지 않았을 것이다. 거리의 가수 딸로 대낮 거리 한 복판에서 태어난 피아프였다.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환경. 부모는 그녀를 떠났고, 매춘부 소굴에 버려진 그녀를 구원한 것은 바로, 목소리. 노래를 부르며 친구와 서로 의지해 살던 그녀는 16살에 배달사환인 루이 듀퐁과 사랑에 빠져 이듬해 딸 마르셀을 낳았다. 하지만 아이는 2살 무렵 수막염으로 죽고 말았다. 다음 남자친구는 하필 포주였는데, 몸을 팔지 않기 위해 거리에서 노래를 불러 번 돈을 그에게 상납했다. 아직 피아프는 십대 소녀였다.


열여덟. 처음으로 거리가 아닌 무대에 섰다. ‘쟈니스 카바레’의 지배인 루이 르플레 덕분이었다. 그는 기본 무대 매너는 물론, 피아프의 트레이드마크인 검은 드레스를 입도록 조언했다. 음악적 아버지와 같았던 루이. 그러나 그는 갱단에 살해당했고, 가수이자 시인․소설가인 레이몽 아소가 그녀의 가수활동을 도왔다. 그때부터 이름을 ‘에디트 피아프’로 사용했다.


피아프는 그 목소리 덕분에 파리의 유명인사로 발돋움했다. 인기는 높아졌고, 그녀(의 노래)를 찾는 사람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럴 때, 똥파리(남자)들도 자연스레 꼬이는 법. 이브 몽탕도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이미 거물이 된 피아프가 연하의 몽탕을 발굴, 데뷔까지 시켜줬다. ‘라비앙 로즈(La Vie En Rose, 장밋빛 인생)’는 몽탕과 함께 한 꿀 같은 사랑이 배태한 곡이다. 그러나 몽탕은 그런 그녀에게 등을 돌렸다. 다른 연인을 찾아갔다. 배신감에 치를 떨었지만, 그녀에게 몽탕이 사랑의 전부는 아니었다.


권투 미들급 세계챔피언이었던 막셀 세르당과 나눈 사랑도 널리 회자됐다. 세르당이 피아프와 만났을 때, 유부남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랑을 막을 순 없었다. 그들 사랑의 편지가 책으로 엮일 정도로 활활 타올랐으나, 비극도 피할 수 없었다.
 


1949년 10월 뉴욕 공연이 있던 피아프, 당시 시합 때문에 파리에 머물고 있던 세르당. 경기를 끝내고 여객선을 타고 뉴욕에 가려던 세르당에게 피아프는 빨리 보고 싶다며 재촉했다. 비행기로 바꿔 탄 세르당에게 가장 빨리 다가온 것은 피아프가 아닌 추락 사고였다. 자책과 절망과 그리움으로 망연자실 살던 그녀에게 어느 날 욕실에서 갑자기 떠오른 악상. 세르당을 위한 것이었다. 그 노래가 바로, ‘사랑의 찬가(Hymne a L’amour)’.  


에디트 피아프. 유난히, 예민하고 감성적이었으며 종잡을 수 없는 예술가. 사랑만 하다 죽어도 부족할 것 같은 이 여인은, “사랑은, 경이롭고 신비하고 비극적인 것이며, 사랑은, 노래를 하게 만드는 힘이고, 나에게 노래 없는 사랑은 존재하지 않으며 사랑 없는 노래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


그러면서 이율배반적이고 아이러니컬한 여인이었다. 자신의 아이보다 새 연인이 더 좋다며, 자신도 어릴 적 그리 당했으면서도, 아이를 버렸다. 미래의 사랑을 위해 오래 살아야 한다며 전쟁의 참상을 외면했다. 무대에서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관객을 압도했으나, 무대 밖에서는 외로움과 비극이 싫어 완벽한 사랑을 찾아 헤맸다. 오죽하면, “나는 나 자신을 망치고자 하는 불가항력적인 욕망을 지녔다”고 말했을까.


블랙 슈트를 입고 노래하다 죽는 것이 소원이었던 여인, 피아프는 시월에 눈을 감았다. 갑자기 어디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인지 궁금한 그 계절에. 마지막 사랑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는 더 이상 사랑에 대해서도, 노래에 대해서도 ‘빠담빠담’(심장이 뛰는 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 즉 ‘두근두근’)하지 않는 곳으로 향했다. 가을바람이 찼다. 어쩌면, 그녀는 마지막 순간, 이렇게 흥얼거렸을지도 모른다. “Dieu réunit ceux qui s'aiment(신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해준다).” ‘사랑의 찬가’, 마지막 구절이다.


 
[문화예술 크리틱 저널 <뷰즈> 기고 원문]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너는 태어나고, 나는 죽고.
너는 죽고, 나는 태어나고.

시인들은 아마 그렇게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9월23일에는.

두 시인, 무슨 상관이 있을까마는, 고개를 갸웃할지 몰라도,
두 시인,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고, 지구 정반대편에서 활동했다.
한 시인은 요절했고, 다른 시인은 사회주의 혁명의 좌절에 생의 끈을 놓아버렸다.

두 시인, 본명 아닌 필명을 썼고,
다른 누군가가 대신할 수 없는 천재였으며,
뭣보다 시대적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시대의 혈서를 썼다.
식민지 제국주의자들에게 가장 위험한 무기, 詩를 가졌던 사람들.


이만하면 알겠지?
 

태어났던 시인은 김해경이라는 본명을 가진,
'이상'(
李箱, 1910.9.23∼1937.4.17).
죽었던 시인은,
리카르도 네트탈리 레예스 바소알토라는 본명을 가진,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1904.7.12~1973.9.23).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이상의 탄생 100주년이다.
그가 시대와 불화하고 거동이 수상할 수밖에 없었던 건,
어쩌면 그가 태어났던 해와 깊은 연관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일강제병합, 1910년 8월22일, 그가 태어나기 한 달 전 맺어진 조약.
그는 어머니 뱃속부터 분노를 전달받아 현실에서 어떻게 표출할지 연구했다,
고 나는 상상해 본다. 이상이 천재시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식민지 현실에서 환멸과 저항을 에둘러 실험적으로 다뤘던,
가장 보통의 사람들로선 선뜻 이해하기 힘들었던,
이상의 전위적이고도 실험적인 파격.

고 김현 문학평론가는, 시인 이상에 대해,
"폐쇄주의적 비관주의의 시각에서 식민지 현실에 비순응한 대표적인 작가"라며,
"인간에 대해 기본적으로 신뢰감을 갖고 있지 아니하면서도 그가 인간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율배반적인 세계인식 위에서 세계와 현실, 자아를 바라본 작가"라고 평했다.

그리하여,
스물 일곱, 그 요절은 아이러니하다.
그 자신의 미래를 혹독하게 거세당한 대신,
무수한 가능성으로 점철된 가상의 미래를 후세에 안겨주니까.


스물 일곱에 죽어도, 한 사회가 탄생 100주년을 기릴 수 있다는 건,
그가 생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 아닐까.
('스물 일곱'은 요절한 천재들의 '상징' 같다! 희한!!)
지금 서울 혜화동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는,
이상 탄생100주년 기념전시가 열리고 있다.
'木3氏의出發 '(이씨의 출발)
(이상의 詩, '차8씨의 출발(且8氏의 出發)'에서 따왔단다.)

이상의 활동기간이 7년 남짓에 지나지 않았다면,
파블로 네루다는 달랐다. 그는 70여년을 살았고, 활동기간만 50년 이상이다.

어쩌다 보니,
이달 들어 11일부터 '칠레 3부작'(?)을 포스팅한 셈이 됐는데,
그 마지막 완결편, 혁명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 편.
파블로 네루다, 그리고 <일 포스티노>

파블로 네루다, 당신도 잘 알고 있을 테니,
굳이 구구절절 썰을 풀어놓을 필욘 없을 테고,
1973년 9월23일, 그의 마지막 순간 무렵에 집중해보자.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의 생이 힘을 잃은 결정적 계기는,
죽기 열이틀 전에 겪은, 살바도르 아옌데 칠레 대통령의 죽음이었다.

평생을 공산주의자로 살았던 네루다에게,
아옌데는 정치적 동지이자 칠레의 희망이었다.
"사람에게 어떤 딱지도 붙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던,
 네루다의 희망, 곧 칠레의 희망을 실현해 줄 수 있었던 사람.

그런 사람이 죽었다.
희망을 잃은 땅에서 늙은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아아, 어쩌란 말이냐.

두 사람이 상호간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일화 한 토막. 다큐 <피노체트 재판>에 나온 내용이란다.
피노체트 기소를 생각해낸 카스트레사나 검사에게 사람들, 물었다.
"왜 그런 귀찮은 일을 떠맡으려 하는가?"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 독재를 피해 50만명의 스페인 사람들이 국외로 탈출했습니다. 그때 칠레의 주스페인 영사가 배를 한 척 내주면서 "이 배에 태울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영사가 바로 파블로 네루다였습니다. 그는 연대의 표시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하지만 영사가 그렇게 한다고 해도 칠레 당국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었죠. 그때 칠레의 보건장관이 그들을 모두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가 누군지 아십니까? 바로 살바도르 아옌데였습니다."

또한 파블로 네루다는 아옌데와 그의 죽음에 대해 이리 묘사했다.

아옌데는 탁월한 연설가는 아니었다. 지도자로서 그는 가능한 모든 통로를 통해 자문을 얻는 통치자였다.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독단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처리했다. 아옌데 시대의 민중은 발마세다 시대처럼 어수룩하지 않았다. 문제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 있는 강력한 노동자 계급이 존재했다. 아옌데는 집단적인 지도자였다. 아옌데는 민중 계급 출신은 아니지만 부패하고 정체된 착취 계급에 대한 투쟁의 산물이었다.(…) 저들은 살해 행위를 은폐하고 비밀리에 매장했다. 미망인만이 불멸의 육신을 동행할 수 있었다. 공격자들의 말로는, 대통령 궁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으며, 자살의 흔적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외국 언론의 견해는 다르다. 공중 폭격 직후, 수많은 탱크들이 작전에 돌입했다. 단 한 사람, 칠레공화국의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를 노린 대담한 작전이었다. 아옌데는 불꽃과 연기로 뒤덮인 집무실에서 혼자 당당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저들은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절대 사임하지 않을 것이기에 기관총을 난사해야 했다. 시신은 어떤 곳인지는 모르겠으나 비밀리에 매장했다. 무덤까지 가는 길에 동행한 사람은 오직 한 여인, 전세계인의 애도를 한몸에 안은 여인이었다. 시신은 칠레 군인들이 난사한 기관총에 맞아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저들은 또다시 칠레를 배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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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 (파블로 네루다 지음/박병규 옮김|민음사 펴냄) -


더구나, 네루다는 칠레 그 자체였던 사람이다.
'스무 편의 사랑의 시'를 읊던 사랑의 시인이기도 했지만,
당대 칠레의 운명과 끊임없이 싸우면서 칠레를 인민의 세상으로 바꾸고자 했다.

혁명의 시인은 이리 말했다.
"성숙한 작가는 인간적 동료의식, 사회의식 없이는 아무런 글도 쓸 수 없다."

아울러, 그 시인이
"
리얼리스트가 아닌 시인은 죽은 시인이다.
그러나 리얼리스트에 불과한 시인도 죽은 시인이다."라고 말한 것은,
숙명이다. 혁명적 시인은 그렇게 영원히 살 것을 다짐했다.
(
20세기의 가장 완벽한 인간, 체 게바라가 필서까지하면서 죽기 순간까지도 품고 있던 것이,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이라는 사실은 당연해 뵌다. 그리고 다시 해석되고 이해되는 이 말.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사랑의 언어로 토해내던 네루다의 시가,
서정과 낭만에서 출발했던 네루다의 시가,
사회와 현실을 담고 시대와 민중을 품었다.
그의 시는 그렇게 변화했고 비로소 완성됐다.

그러나,
미국의 하수인 피노체트가 벌인 쿠데타는 '한 편의 절망의 노래'!.
고독에서 인민으로 방향을 전환했던 혁명 시인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내 보잘 것 없는 시는 인민에게 칼이 되고 손수건이 되어,
무거운 고통으로 흘린 땀을 닦아주고 빵을 위한 투쟁의 무기가 되기를 열망한다"고 읊던, '리얼리즘 그 너머를 꿈꾸던 리얼리스트'는 詩를 남긴 채 눈을 감았다.
 


사랑하고 노래하던 시인의 종점은 투쟁이었다.
얼마 전, 껌정드레스님을 통해 알게 된 다큐멘터리,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
Il pleut sur Santiago)에 네루다의 장례식이 나온다.
쿠데타에 대한 인민들의 분노는 칠레 최초의 집회이자 시위로 분출됐다.
칠레가 울었고, 칠레는 멈췄다.


9월의 칠레, 파블로 네루다를 떠올라 치면,
그의 시를 마음에 꾹꾹 눌러 담아 놓자면,
남미의 붉은 태양처럼 살고 싶어진다는 누군가의 말이 딱 떠오른다.

9월23일,
이상은 태어났고,
네루다는 죽었다.

이상은, "멜론이 먹고 싶다"고 말한 뒤 숨을 거뒀고,
네루다는, "나, 간다"고 마지막 말을 남기고 떠났다.

시대를 품고 태어나,
시대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어 문학으로, 문학보다 더 절박한 현실에서 투쟁하던,
두 시인이 있었다.

그러니까, 이런 것. "작가(시인)를 찾습니다."
절묘하게 교차한 두 시인의 생사에 상상력을 덧입혀,
우리의 리얼리즘과 그 너머의 리얼리스트가 지닌 꿈을 자극할,
그런 이야기를 술술 풀어줄 작가, 어디 없수?~

나도,
사람에게 어떤 딱지도 붙지 않는 그런 세상에 살고 싶어서.
풍요함 따윈 약속하지 않고, 존엄성과 진정한 자유에의 희망을 약속하는, 세상.

애초 뉘들에게 어떤 철학조차 없는 '부강한 나라' 따윈 필요없어!
언제 어느때, 칠레를 배신한 그들마냥, 한국을 배신할지도 모를 뉘들이니까.




어쨌거나 한가위.
서울 돌아오니, 피 비해부터 물어보고,
어떨결에 피해를 당한 사람들에게 눈길을 돌려야 할 시절이지만,

보름달 보자니, 내 마음속 가장 서정과 낭만으로 분칠된 그해 한가위가 두둥실!
여러 사람 앞에서 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지만, 내겐 그녀밖에 보이지 않았다.
음식을 나눠먹고 있었지만, 내겐 오로지 그녀의 입만 보였던 그 어느해 한가위.


"마음을 다해 사랑했다면, 결국 그 사람 앞에 서게 됩니다."
아무렴. 누군가는 휘영청 보름달을 품고서, 이 말이 이뤄지길 소원을 빌었겠지.
그의, 그녀의, 그 소원이 이뤄지는 경이로운 순간이, 그 시간이 찾아오길.
비록 그를, 그녀를 모르고 알 수 없는 사이지만, 나는 바란다.
때론 누군가에게 저 말은, 거짓임을 알지만,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는 것.
그건 계속돼야 하니까.
 안녕, 내 사랑.


“나는 안다. 이 경이로운 순간은 현실의 수레바퀴에 닳아 금세 사라져버리고 앞으로 고독한 밤들이 찾아올 거라는 걸. 하지만 또 시간이 지나면 고독한 밤들을 채워주는 경이로운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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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해 9월16일.
우리의 '소셜 카페(Social Cafe)'에는,
'소셜 커피(Social Coffee)'와 함께, 이 노래들이 울려퍼지리라.
물론, 나는 DJing(디제잉)을 할테다! "오늘은 왠지~~~" (손발 오그라들어도 꾹!)


1.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

천상의 디바, 오페라의 여신.
헤밍웨이는 그녀를 두고, "황금빛 목소리를 가진 태풍"이라 불렀다.

1977년 9월16일, 더 이상 그녀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오늘, 33주기. 그 목소리를 듣는다.
스피커가 후져서 아쉽다.
 
지금 나오는 곡은, 맞다. 그렇다.
덴젤 워싱턴, 탐 행크스 나온 <필라델피아>에서 주인공의 감정을 훅 끌어올리는,
지오르다노의 오페라 [안드레아 쉐니에] 중 'La mamma morta(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천상의 목소리와 천하의 속물 사이,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


2.
빅토르 하라(Victor Lidio Jara Martinez).

기타와 노래로 쿠데다와 불의에 저항한 칠레의 가수.
사회주의 정권을 세운 아옌데 대통령의 지지자였다.
반란 허수아비 피노체트군에 의해 노래를 멈췄다.

1973년 9월16일, 아옌데 대통령이 죽은지 불과 5일 후였다.
지난해, 사후 36년 만에 부검을 했다. 30발 이상의 총격을 받았다.
그리고 산티아고 묘역에 재안장됐다. 수천 명의 칠레인이 함께 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음악 뿐 아니라 연극 연출가로도 두각을 나타냈다.
모든 사람은 자유와 평등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이상을, 그는 노래에 담았다.
칠레 공산당에서 활동하면서 칠레뿐 아닌 라틴아메리카를 돌며 자유를 노래했다.

그의 노래는,
인민의 삶을 달래주고 사회에 적극 참여, 변혁을 추동하는 에너지를 품었다.
'Te recuerdo Amanda(당신을 회상합니다, 아만다여)',
'Cancion del arbol del olvido(망각수의 노래)',
'일하러 나갈 때', '선언' 등도 좋지만,
뭐니뭐니해도, 벤세레모스(
Venceremos·우리 승리하리라)!

책, 2년 전 개정판으로 나온
《빅토르 하라》.
과거에는 《끝나지 않은 노래》로 나왔다지?
빅토르 하라의 부인이자 무용가인,
조안 하라(Joan Jara)의 비망록.
그들의 뜨거웠던 사랑,
칠레(인)와 자유·평등을 향한 열정. 핫, 뜨거뜨거!


커피는 따뜻하고, 음악은 뜨겁다.
펼쳐든 책은,
《빅토르 하라》 혹은 마리아 칼라스.
영상을 튼다면, <칠레 전투> 혹은 <칼라스 포에버>.
                                아, 행복하다. '소셜 카페'로 오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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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

아름다운 지구를 아직도 그리워할 황제, This is it

 
파라 포셋

중딩 준수의 내 아름다운 핀업걸, Wow
 

 

라이언 오닐에게는 초큼 미안한 노릇이지만,
우리가 올려다보는 저 구름의 저편에서 두 사람이 염문(?)을 흩날리는,
몹쓸 상상을...

그렇게라도 두 사람,
약물과 암의 고통 없이 행복한 순간이길.

아름다운 사람만 기억하는 더러운 준수 같으니... ㅠ.ㅠ


2009/06/26 - [메종드 쭌/기억의 저편] - 안녕, 마이클 잭슨 그리고 파라 포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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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던 어느 봄날.

부암동을 찾았다. 산책을 했다.

그리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어떤 산책의 풍경.

 곧, 그 특별한 부암동 이야기도 해 주마.












위에서 사진 찍는 내 그림자가 없었다면 더 좋았을,
그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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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현재 서식지 근처의 다리, 한남대교.
경찰과 119, 수상안전요원들을 비롯해 시민들이 북적거린다.

뭥미?
빠꼼 고갤 내밀어 경찰에게 물었다. "무슨 일?"
심드렁하게 답한다. "사람이 다리에서 뛰.어.내.렸.다."

아, 갑자기 아득해진다.
다리 한 번 쳐다보고, 물 한 번 쳐다본다.
저 거리. 물리적으로 잰다면, 글쎄 한 30미터? 50미터? 잘 모르겠다.
고개를 한 번 들었다 놓았다 하면 충분한 그 거리.
그 거리가 누군가에겐 세계를 들었다놨다할 거리가 된 셈일까.

누가 그랬는지, 왜 그랬는지, 모른다.
인터넷을 뒤져봤지만, 어떤 뉴스도 정보도 없다.
어제 처음 물어본 뒤, 한참 지나 다시 물어봤지만, 경찰은 찾지 못했다고 했다.

정확힌 모르겠지만,
아마 찾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지금 고인이 됐을 것이다.

어제 새삼 경험한 이물감은,
같은 공간에서 한 세계가 그렇게 무너져버렸건만,
다른 세계는 그 세계의 무너짐에 무심한 듯 웃고 떠들고 달리고 걷고.
카페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풍경.
지척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노래가 흐르고, 사람들의 왁자찌껄함은 여전.

물론,
다른 세계도 아주 조금씩 균열을, 그 슬픔 혹은 아픔을 어떤 식으로든 감내하리라.
한 세계의 무너짐과 아주 무관한 세계를 살고 있는 건 아니니까.
뭣보다,
누군지 모르겠으나, 그 세계의 무너짐으로 당면한 슬픔을 감내해야 할 남아 있는 사람(들)이 밟힌다.

그 거리를 생각했다.
어쩌면 그것은 저승과 이승의 거리.
그 물은, 입 속의 검은 잎이었던 걸까.



3월7일 새벽, 21년 전.
기형도는 뇌졸중으로 세계에 작별을 고했다.
그만의 절박한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꽃샘추위가 봄 기운에 취하는 것을 막기 때문일까.
어떤 한 세계의 무너짐이 기형도를 깨웠기 때문일까.

기형도는 더 버티고 견뎠어야 옳다. 예술은 그래야 한다.
요절은 일종의 최면이다. 그것이 환기하는 심리나 정서는 강력하다.

죽음에서 기형도를 파생하는 건, 너무 익숙한 클리셰지만,
기형도의 시 곳곳에 박힌 죽음은 어쩌면 버티고 견디기 위한 몸부림이 아녔을까.
궁금하다.
검은 잎 속으로 뛰어들어야했던 몸부림은 얼마나 치열했을까.
우리는 어떤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일까.

고인의 명복을 빈다.




기형도는 봄이다...
3월7일 기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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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 사이.
친구들 중에 나를 간혹 '준쉐이(혹은 준셍이)'라고 부르는 넘들이 있다.
당연히 영화(<냉정과 열정사이>)의 준세이처럼 간지나고 잘생겼기 때문이지.
라고.................................하면 새빨간 거짓말이고.^^;
첫사랑을 오매불망 잊지 못해 그녀를 품고 세월을 버티는 순정남이라서.
라고..................................해도 끔찍한 뻥이야. OTL

이유? 단순하다.
그저 내 이름 중에 '준'이 쏙 얼굴을 내밀기 때문이지.
간혹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생각난다. 내게도 있었던 아오이(들).
풋풋한 스무살 시절, 준세이와 10년 약속으로 손가락을 걸었던 여인.
5월25일 피렌체 두오모에서 해후하면서 옛사랑을 복원했던 준세이와 아오이.


어제 밤, TV에서 <냉정과 열정사이>를 방영했다.
영상보다 음악이 더 도드라졌던, 
원작(책)보다 밀도와 질감이 미치지 못했던 영화를 다시 응시하면서,
이번에는, 준세이와 아오이보다 다른 인물들에 눈을 맞췄다.

운명(으로 포장된) 사랑을 위해 들러리를 서야 했던,
바퀴벌레 한쌍의 작당에 희생당할 수밖에 없었던 두 사람. 메미와 마빈.
메미는 (아오이 없는) 준세이의 연인이었고,
마빈은 (준세이 없는) 아오이의 연인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정작 마음은 저 멀리 가 있는 연인 때문에 가슴은 가슴대로 앓고,
눈물은 눈물대로 흘려야 했던 그네들.
단지, 주인공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두 주인공이 덧칠하는 옛사랑의 복원 때문에 동원됐지만,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따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들이라고 왜 마음이 없겠는가. 사랑을 왜 지키고 싶지 않았겠나.
그럼에도 주목받지 못한 채 스크린 뒤로 물러서야 했던 그네들의 마음.

냉정과 열정사이라는 제목은,
주인공들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어쩌면, 아오이와 준세이가 복원하려는 사랑이 열정이라면,
그 틈바구니에서 외면당해야 했던 마빈과 메미는 그야말로, 냉정.

누구나 그렇게 자신의 삶에서는 주인공이다.
메미와 마빈에게도 마음이 있고, 사랑이 있다.
조연이라고, 들러리라고 무시하지 마시라.

히스 레저.
어제, <브로크백 마운틴>을 돌려보고 싶었다.
동료에게 그 말을 했다. 카페에서 그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고.
어제 1월22일이 그의 2주기라서. 좋은 생각이라고 했다.
집의 DVD 플레이어는 고장났다. 브로크백 마운틴을 삽입해도 소용이 없다.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도 보고 싶었지만, 결국 보지 못했다.

히스 레저를 생각하면,
그냥 딸 마틸다가 눈에 밟힌다.
내 딸도 아니고, 아무 연관도 없는 아이임에도.
올해 여섯 살이 되었을 마틸다.
아빠의 존재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느닷없이 곁을 떠나야 했던 아빠의 부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마틸다 레저가,
세상의 악행과 슬픔을 잘 견뎌나가길.
거칠고 더러운 공공연한 비밀을 품은 세계를 헤쳐 나가길.  
어느날, 훌쩍 커버린 마틸다를 보곤 '잘 컸구나'하는 탄성을 뱉을 수 있길.


오늘, 봉춘이가 결혼했다.
녀석. 이렇게 훅~ 가게 될지는 우리 친구들 아무도 몰랐다.
다들 놀랍다는 말 한 마디씩 덧붙인다.
원투쓰리(1월23일). 꾹꾹 눌러담은 그 말로 결혼식에 와 달라던 녀석.
몰래 사랑도 아니고, 알기론 너무 미적지근한 사이였음에도,
그렇게도 결혼은 한다. 나로선 의아한 일이긴 해도, 녀석은 녀석의 방식대로!
내가 녀석에 대해, 녀석의 결혼에 대해 재단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행복하길. 아니 녀석에게 행복이 작은 한뼘이라도 늘어나길.

몇 남지 않은 미혹 혹은 비혼에게, 어떡할거냐는 진부한 타박(?)도,
나는 열외인종. "쟤는 그냥 재껴놔." 친구들마저 이젠 인정한다.
뭐 내 의도와는 무관.
나는 독신주의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결혼주의자도 아닌, 회색인간, 열외인종.

그래도, 커피가 나를 달래준다.
메미와 마빈, 히스 레저와 마틸다까지.
아름다운 여자만큼 커피가 좋은 이유. ^.^

사람의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 속밖에 없다지만,
마음의 있을 곳이란, 커피 한 잔에도 있단다.

어쨌든 5월25일 피렌체 두오모에는 갈 테닷!
피렌체 두오모에서 커피 한 잔 마실테고.
그 순간, 당신이 함께였으면 좋겠다. :)

[메종드 쭌/기억의 저편] - 5월25일, 당신의 가슴 속에도 누군가가 있는가...

[메종드 쭌/기억의 저편] - ▶◀ 안녕, 에니스... 안녕, 히스 레저...

[메종드 쭌/기억의 저편] - 우리, 히스 레저 배웅할까요~

[메종드 쭌/기억의 저편] - 히스 레저, 그리고 우리들의 '다크 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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