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해들은, 그런 소년을, 미친놈이라고 했습니다.
시험이 바로 다음날이었죠.
타율학습(!), 그까이꺼 땡땡이 치고 갔습니다.
안 갈 수 없었을 겁니다.
소년의 방 벽면의 곳곳에서 저를 향해 미소짓고 있는 (최)진실누나가 부산에 첫 행차했답니다!
어찌 그런 누나를 알현(!)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신원에벤에셀이 부산 남포동에 매장을 내면서, 전속모델이던 누나를 델꼬 온 겁니다. 사인회라는 명목.
문현동에서 남포동까지 날랐습니다.
역시나, 사람들 미어 터집니다.
더구나 대부분 여자입니다.
사춘기의 그 고딩 소년, 쪽팔림을 무릅쓰고 줄을 섰습니다. 줄이 줄어들길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헉~! 숨 막히는 순간. 진.실.누.나가 눈 앞에 있습니다. 그것도 소년을 향해 미소를 띄우면서.
심장이 벌렁벌렁, 콧구멍은 푸슉푸슉, 숨이 가쁩니다. 이런 순간이 오다니.
이름을 묻습니다. 아, 감개무량. 소년의 입에서 '준수'라는 이름이, 아주 조그맣게 나옵니다. 부끄러웠나 봅니다.
진실누나에게 친히 싸인을 받은 브로마이드를 고이고이 신주단지 모시듯, 품에 품고서 집에 돌아옵니다.
행여나 구겨질세라, 가상합니다.
그까이 꺼 시험, 망쳐도 좋아~
소년은 그저 행복합니다. 누나를, 여신을 직접 눈앞에서 알현해서, 누나가 소년을 향해 웃어줘서.
그날 밤, 별이, 바람이, 소년의 마음을 알싸~하게 스치웁니다. 아해들 말마따나, 미친놈 같습니다.


그땐 그랬습니다.
누나가 스타로 뜰 무렵, 일간스포츠에 연재되던 누나 스토리를 읽으며 눈시울을 붉혔고,
누나가 출연한 CF광고가 나올라치면, 브라운관을 빵꾸 나도록 쳐다봤으며,
<우리들의 천국>을 눈 빠지게 기다렸던 이유도, 최초엔 누나 때문이었습니다.
거의 꼬박꼬박 봤지요. 대학생활, 저런 건가 싶어서.
사실 나쁜 드라마지요. 현실의 쓴맛은 쏘옥 빼버리고 당분만 잔뜩 넣어 단맛을 낸.
그럼에도 그때는 왜 그리 흥미진진했는지...
어쨌든, 누나는 극 중 승미라는 이름으로, (홍)학표 형과 열애합니다.
그러나 백혈병에 걸려서 학표 형을 떠납니다. 
아, 미치겠습니다. 더 이상 누나를 볼 수 없다니.
실제론 영화 출연 때문에 이 드라마에서 빠지게 된 거라, 그런 설정을 한거죠.
그런데,
그렇게 승미가 병에 걸려 죽어가면서 한 대사가, 지금 오버랩됩니다.
"내가 죽어도 이 세상은 그대로겠지..."
그리 잘 알았으면서도, 누나는...


술 사러갔다가, 추리닝 차림으로 멀거니 훔쳐봤습니다.
촌놈, 서울로 올라와 홍대 부근에 서식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절, 하숙집에선 만날 술판. 하숙집 막내였던 청년은 하숙집 형들의 명을 받들어 편의점으로 술사러 댕겼습니다.
어라, 늘상 가던 세븐일레븐 앞에서 드라마 촬영이 있습니다. 생전 처음 봅니다.
오, 어디선가 많이 보던 빨간색 프라이드.
맞습니다.
"넌 대체 누굴 보고 있는거야~♪내가 지금 여기 눈 앞에 서 있는데~♩날 너무 기다리게 만들지마~♪ 웃고  있을거라 생각지마~♬"
당시 최고의, 그리고 대한민국 트렌디드라마의 최초 격인 드라마 <질투>의 촬영. 당시 청년의 완소이자 애청 드라마.
역시나 오오오~ 진.실.누.나.가 있습니다.
추리닝 차림으로 털래털래 나섰던 술 배달길. 목적은 내팽개치고, 멀거니 누나를, 촬영현장을 지켜봤습니다.
"누나~ 접니더. 부산 남포동에서 싸인 받았던 아입니더."하고 외쳤냐구요?
에이, 그럴리가요. 소심하고 수줍음 많은 그 청년은 그저 바라만 봤습니다.
그렇게 바라만 봐도 좋았던 그때 그시절.
 


진실은 저 너머에...

알다시피, 셀리브리티들에 대한 호감의 업&다운은 으레 있기 마련 아닙니까.
누군가는 청년에게 무슨 좋아하는 게 그리 많으냐고 타박하지만,(아름답고 예쁜 건 특히나 좋아하죠.ㅎㅎ)
사실 따지자면, 무관심과 경멸 혹은 비호감의 리스트도 아련하게~ 깁니다.
좋아하는 애호의 리스트만 주로 입에 담아서 그런 거지요. 무관심, 경멸, 비호감까지 굳이 입 밖에 낼 이윤 없잖아요?
다시 돌아가서, 그토록 흠모하고 좋아하던 진실 누나였지만,
알다시피 사랑은 움직이잖아요?
애정은 점점 버석해졌습니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며 CF로 얼굴을 알린 국민(여)동생 혹은 국민누나가,
억척살이 생활형 연기를 펼치는 연기자로 차츰 변해가는 동안,
그녀를 여신으로 떠받들던 소년도, 다른 여신으로 옮겨가는 변심(?)을 했지요.
물론 그것이 대체나 보완의 대상이 생겼다고 말할 순 없지만요.
험한 얘기, 루머도 많이 들었죠.
어쩌다보니, 이혼 뒤 (조)성민이와 스캔들이 있었던 룸살롱의 마담까지 만나 진실누나에 대한 뒷담화를 들어야 했으니까요.
모르죠. 그 사람 입장에서의 진실도 있겠지만,
진실 누나의 입장은 또 다를 테니, 청년은 그저 누나가 안타까울 뿐.
남들 뭐라고 입방아를 찧고 떠들어대도, 진실여부를 떠나 누나가 잘 되길 바랄 뿐.
<장밋빛 인생>도,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도 안 봤지만,
'재기'로 일컬어지거나 '연기자'로 돌아온 진실 누나가, 방가방가.^^  
참고로, 청년은 (조)성민이보다 (변)진섭이 형과의 조합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동년배인 성민이와 결혼한다고 했을 때, 마냥 부러웠답니다.

그런데, 오늘, 서늘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13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도, 1200원대를 뚫고 올라선 환율도 묻혀버린 그 소식.
진실누나가 구름의 저편에 갔습니다.
아침에 소식을 전한 아버지의 말씀에,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냈어요. 정말이냐고.
어머니는 소름이 끼쳤다고 하시더군요.
마음이 덜거덕덜거덕 거렸습니다.
점점 희미해지고 있던 누나의 존재가, 제 마음의 방 한칸에 서식하면서,
아직 제 DNA에 흔적처럼 박혀있었음을 확인했어요.
오늘 제가 만나거나 스친 남녀노소 모두 종일 그 얘기만 하더군요.
어떤 사람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언니를 갑자기 떠나보낸 것 같아 울었다고 그랬고,
누군가는 자신의 아내가 아이들이 밟혀서 눈시울을 붉혔다고 했습니다.
스캔들에 치이던 누나의 생애 마지막 스캔들이었나 봅니다.
마음은 그닥 좋지 않았고 스산했습니다.
낮동안, 하늘은 더럽게 맑고, 바람은 치사하게 시원했습니다.
우습지만, 씨바, 이래도 되냐, 는 생각도 들었구요.

진실 누나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셀리브리티라는 표현보다는, 아이콘.
그저 개인에 국한되지 않았죠. 90년대, 그 시대의 대표성을 가진 아이콘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스타들과 차별화된.
한 기사에 따르면,
특채로 드라마에 출연한 첫 세대였고,
영화나 드라마 아닌 CF로 스타덤에 오른 첫 번째 CF스타였고,
트렌드 드라마의 주연을 꿰찬 최초의 신세대 톱스타였습니다.
또한,
이혼이 커리어에 더 이상 족쇄가 되거나 영향을 미치지 않는 최초의 톱스타요,
신세대 스타에서 중년 연기로 자연스레 넘어간 최초의 중견 연기자요,
자신의 이름을 딴 패션스타일을 유행시킬 수 있는 유일한 중견 연기자요,
무엇보다,
전 남편의 성을 거부하고 자식들의 성을 누나의 것인 '최'씨로 바꾼 강한 엄마. 

하지만, 그런 누나, 이제 없습니다.
1990년대 요정 최진실의 시대를 넘어,
2000년대의 배우 최진실의 시대를 열어젖힐 것 같았던 누나는,
세상이 버거웠나봅니다. 저도 정확한 진실은, 모릅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젠 더 이상 최진실이라는 이름의 배우는 볼 수 없다는 것.
남은 건, 확인할 수 있는 건, 누나의 박제된 모습.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여느 날과 다름없었습니다. 차는 빡빡하게 막히고 있었고, 사람들은 분주했다죠.
감당키 힘든 어떤 죽음 앞에서도,
'그래도 살아야겠다. 떠난 사람을 위해서라도'라는 다짐을 했던 저는,
오늘 다시,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명제를 곱씹었습니다.
그것이 사람살이잖아요.
밥을 먹고, 똥을 싸며, 잠에 빠지는 한편,
주위 사람들과 웃고, 때론 혼자이거나 함께 우는 것.
내일이면 아마, 저는 야구장에서 목청껏 웃고 떠들며 울부짖을 겁니다.
신나게, 또 신나게, 언제 진실누나를 떠나보냈냐는 듯이.
그게 접니다. 그게 제 사람살이입니다.
진실누나는 그렇게, 차츰 제 마음의 방에서 옅어져 갈 것입니다.

그럼에도, 오늘은, 지금 이 순간에서만큼은, 누나를 생각합니다.
짙은 어스름이 지배하고 있는 어느 가을밤.
서러운 마음, 서늘한 바람이 붑니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칩니다.
누나를 처음 알현했던 그 어느 밤, 소년의 마음을 알싸~하게 스쳤던 별이, 바람이,
오늘 이 밤은 참으로 다릅니다. 별과 바람도, 세월을 따라 그렇게 달라졌나 봅니다. 
오늘 이 바람은 내 심장을 할큅니다. 어쩌면, 그렇게 슬픈 밤입니다. 
커피빛깔보다 더 진하디 진한 이 밤. 커피향보다 더 쓰디쓴 이 밤.
하지만, 더 울적한 건,
누나가 떠남으로 인해 남은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어떤 슬픔.
누나가 구름의 저편으로 가기 전과 간 후가 달라지고 만 어떤 사람들의 일상.
그 일상은, 아마도 버티고 견디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괴담을 퍼뜨렸다는 혐의로 입건된 그 사람이 직면했을 비난과 야유,
무엇보다 자괴감이 들법한 이 상황, 그 사람 역시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기를...
한편으로 '베르테르 효과'로 인해,
따라하고 싶은 누군가에게, 누나는 그래도 이렇게 말할 것 같애요...
따라하지 마라, 응.

이젠 누나의 이름 앞에는 '故'가 붙겠네요.

진실 누나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의 마음에도 작은 위로를 건네고 싶습니다.
아~ 부디 오래오래 살아주세요. 제가 좋아하는 당신은...
저보다 하루라도 더 살아주세요...

오늘이 그렇게 누나와의 마지막 추억인가 봅니다.
말하자면, 누나는 그 어린 시절 나의 (일방통행) 연인이었습니다.
기억 저편에 사라졌던,
누나의 모습들이 하나 둘 떠오릅니다.
이런 날, 문득 생각난 노래는, 소라누나의 <바람이 분다>.

우연히 만난 이 문구.
어쩌면 진실 누나가 우리에게 해 줬을 법한 이 말.
가정주부이자, 자연주의자이자, 동화작가인, 무엇보다 행복한 사람이라 자부하는,
'타샤 튜더'가 했던 이 말.
"사람들은 날 장밋빛으로 본다.
보통 사람으로 봐주지 않는 것이다.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우리는 달과 같아서,
누구나 타인에게 보여주지 않는 어두운 면을 지니는 것을..."

-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 중에서 -

그래, 당신이나 나나, 우리 모두는 달과 같은 것인데...
우리가 진실 누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이해했던 것일까요,
아니, 이해까진 아니더라도 얼마나 안다고 쉽게 입방아를 찧었던 걸까요.
사람이 사람을 알고 이해한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미안합니다.

또한,
한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스스로 세상과 절연하게 만든,
그 아이콘을 지켜내지 못하고 외톨이처럼 단절시킨,
우리네의 문화적 척박함과 옹졸함.
반성합니다.

아울러,
망자에 대한 예의 따위 내팽개친 채,
애도를 가장해 각종 루머·추측으로 장사에만 열을 올리며,
망자를 부관참시하고 있는 '언론'이라는 이름의 찌라시들이 행한 작태들.
콕콕 따져보지요. 그들의 입방아처럼 괴소문이 진실누나를 절망에 이르게 했다면,
그 괴소문에 대한 사실확인이나 여과를 하지 않고 보도함으로써 되레 괴소문을 증폭시켜,
고인의 아픔과 상처를 더욱 깊이 후벼판 책임에서 그 언론들은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베르테르 효과에 의한 연쇄자살의 예방을 위해,
한국기자협회, 한국자살예방협회 등의 '언론의 자살보도 권고기준'과,
생명인권운동본부가 내놓았던 '언론인의 자살예방 보도 권고사항'을,
그 언론들은 제대로 읽어보기나 했을까요.
참 대한민국 언론수준, 알고 있지만,
너무합니다.


어쨌든,
이런 끝장면, 바랐지만,

결국 홀연히 떠나버린 누나에게 전하는, 내 짧은 마지막 인사는,
안녕, 진실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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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딘은 53년 전, 스물 넷의 나이로 요절했다.
"빨리 살고 일찍 죽는다. 그래서 보기 좋은 시체를 남긴다."

폴 뉴먼은 지난 26일(현지시각), 83세로 영면했다.
마지막으로 (스크린에서) 본 것이, <로드 투 퍼디션>이다.
<컬러 오브 머니>에서 앳띤 탐 크루즈와 공연한 것이 처음 대면이었는데.
<타워링> <스팅> <내일을 향해 쏴라>...
우리 딘 형님에 비해 훨 오래 살았다지만, 그에 대한 추억을 간직한 이들에겐 아프긴 매 한가지다.

제길, 그 빈자리를 메우기 전에 하나둘 떠나버리면 어쩌자구.

그려, 거기서 잘들 계시유.
나도 언젠가는, 그쪽으로 갈테니, 그때 봅시다.
그때까지 부디, 안녕...

당신들을 추억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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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시인이다.
(콜롬비아의 대문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그를 어떤 언어로 보나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다"라고 했다.)
그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다.(1971년)
그는 공산주의자다.
그는 좌파다.
그는 정치인이다.
그는 외교관이다.
그는 혁명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사랑을 알았던 사람이다.
인류에 대한 사랑보다 더 힘든, 인간에 대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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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내가 아는, 그다. 파블로 네루다(1904.7.12~1973.9.23).
오늘은 그가 떠난지 35년이 되는 날.
그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렇다.
그를 통해 나는 칠레의 굴곡진 역사를 조금이나마 알았다.
그래서, 그는 내게 세계를 넓혀준 사람이다.
칠레의 9월은 혁명의 스러짐을 맛봤다.
살바도르 아옌데도, 빅토르 하라도 1973년 9월에 스러졌다.
칠레의 혁명은 그렇게 미완성인 채로 피를 흘렸다.
피노체트, 그 뒤의 미국이 칠레의 혁명을 일그러뜨렸다.
그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뜬 것은,
아마도 피노체트의 쿠데타 때문이었을 것이다.
네루다의 장례식 공개거행을 피노체트는 막았지만,
칠레인들은 그럼에도 군사독재정권 최초의 항거를 하며,
그의 떠나는 길을 밝혔다고 한다.

혁명은 때론 그런 것이다. 김수영(푸른 하늘을)이 그리 말했듯.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나는 오늘, 그를 생각하며 칠레도 떠올린다.
언젠가, 나는 칠레를 찾아,
파블로 네루다의, 살바도르 아옌데의, 빅토르 하라의, 흔적을 만나고 싶다.

오늘, 파블로 네루다를 생각한다.

나는 생각한다 (파블로 네루다)

나는 생각한다 키스와 침대
빵을 나누는 사랑을

영원한 것이기도 하고
덧없는 것이기도 한 사랑을

다시금 사랑하기 위하여
자유를 원하는 사랑을
찾아오는 멋진 사랑을
떠나가는 멋진 사랑을

그리하여, 나는 모든 이를 위해 노래한 그를, 또 생각한다.

모든 이를 위하여 (파블로 네루다)

내가 그대에게 말해야 할 걸
문득 말할 수 없을 따름이다,
친구여 용서해다오; 그대는 안다

그대가 내 말을 듣지 못할지라도
내가 잠들었거나 눈물 속에 있지 않앗다는 것을,
오랫동안 그대를 보지 못했어도 나는
그대와 함께 있고 또 끝까지 그러리라는 것을.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걸 나는 안다.
"파블로는 뭘 하지?" 나는 여기 있다.
그대가 이 거리에서 나를 찾는다면
그대는 내가 바이올린을 갖고 있는 걸 알 것이다,
노래를 시작할 준비가 되어,
죽을 준비가 되어.

내가 이 사람들이나 그대에게가 아니라
다른 누구를 향해 떠나야 한다는 건 별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대는 잘 들을 것이다, 빗속에서,
들을 것이다,
내가 오가며 떠도는 것을.

그리고 그대는 내가 떠나야 한다는 걸 안다.
내 말이 그걸 모른다고 해도
확언하건대, 나는 떠난 사람이다.
끝나지 않는 침묵은 없다.
그때가 되면, 나를 기다려다오,
그리고 내가 내 바이올린을 가지고
거리에 도착하고 있음을 알려다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영화 <일 포스티노>도 권한다.
파블로 네루다, 그리고 <일 포스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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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한해의 반이 지나갈 시점. 그래서일까. 유난히도 얼룩이 많은 것은. 무언가 아쉬워서? 아니면 부족해서? 이도저도 아니라면 무언가 차고 넘쳐서?

그 6월의 복작복작한 풍경에, 올해 한폭의 그림이 추가됐다. 촛불. 쇠고기에서 본격 점화된, 우리네 촛불. 2008년 6월은, 그렇게 촛불로 밝혀졌고, 그렇게 촛불과 함께 뜨거운 여름의 시작이었다. 6월에 활짝 핀 '개나리'덕분이었다. 이 땅의 위정자 '나리'들은, 알고 보니 '개'였다는 사실. 2008년의 6월은 개나리가 활짝 핀 촛불시즌. 내겐 그렇게 기억되겠다. 나는 그렇게, 6월이 아프다.  

아래는, 2004년 6월에 긁적였던 <아들의 방>에 대한 단상. 그래, 완전히 승리할 때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균열을 버티고 견뎌야 하는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그 어느해 6월, 우리가 또 다른 사건사고와 맞닥뜨리더라도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달려야 한다. 혼자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혼자 달리다보면 누군가가 함께 옆에서 뛰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느슨하게 연대하겠지...  하지만, 99년 6월의 균열은 정말 큰 상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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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유독 공동체의 기억을 많이 품고 있다. 또 그 기억은 유난스레 핏빛과 붉은 색이 도드라진다. 그러고보면 6월은 ‘평온’과는 거리가 있었다.

가장 가까이 2002년. 월드컵이라는 거대 이벤트가 불러온 ‘붉은 악마’가 온 나라를 들썩이고 들끓게 한 반면 이 함성에 묻힌 채 미군의 군화발에 짓밟힌 두 영혼, 미선이와 효순이의 핏자국이 선명하게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4년 전 6월 15일에는 적색국가로 공동체의 안보의식에 뿌리박힌 북한을 방문, 역사적인 악수를 청한 ‘6·15공동성명’이 있었다.

세월을 건너뛰어 1987년에는 6·10항쟁의 불꽃이 피어올라 거대한 광장을 형성하면서 역사의 족적을 남겼다. 그리고 훌쩍 세월을 거슬러 20세기 한국의 가장 큰 비극이자 아직도 현재진행형의 아픔을 토해내곤 하는 1950년의 6·25가 있었다. 6·6 현충일도 있다.

그리고 22일 김선일씨의 주검이 공동체의 기억 속에 박혔다. 한국민은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이라크 저항세력 앞에 “살려 달라”고 절규하는 김씨의 모습을 똑똑히 목격했다. 또 그들에 의해 처참히 살해당한 김씨의 주검은 공동체를 경악과 분노 속으로 끌어들였다.

이같은 공동체의 기억 속에서도 개개인마다 사적인 기억의 풍경 또한 똬리를 틀고 있을 것이다. 내게도 6월의 풍경화 속에는 지울 수 없는 스크래치들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런저런 잊지 못할 사건들이 길지 않은 삶을 관통하고 있다. 그 어떤 날에 박힌 기억은 내 일상을 지배하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공동체나 개인의 사건과 기억들이 뒤범벅돼 있으리라. 지우거나 불태우고 싶은 기억도 있고 심하면 인생에서 없었던 것으로 해 버리고픈 나날도 있을 것이다. 반면 반드시 소중하게 품고 영원히 기억될 나날을 가꾼 사람도 있으리라. 세세한 사변적인 기억들은 그렇게 일상 속에서 굴러다니고 있다.

‘쳇바퀴 같은 삶’이라는 둥, ‘반복의 연속’이라는 둥, 대개의 사람살이는 그렇게 칭얼댄다. 사실 현실에 발을 붙인 일상적인 삶의 풍경은 파라다이스나 유토피아와는 머나먼 나날이지 않는가. 오히려 지리멸렬하고 팍팍하다거나 지지리 궁상같다는 표현이 더 끈적끈적하게 와 닿을 지도 모르겠다. 물론 아니면 더 좋고. 그래도 그 나달나달한 일상에서 작은 행복을 찾고 느끼는 것이 또한 사람살이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균열 앞에 선 삶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 와중에 여기, 균열이 일어난 삶의 풍경이 있다. <아들의 방>은 그 ‘균열’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느닷없이 찾아온 일상의 균열은 굳이 영화나 소설이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일어날법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혹자는 견고하다고 자부하거나, 다른 사람의 일이라고 치부하기도 한다. 균열에 대한 인과관계만 형성되지 않는다면 나름대로 정해진, 계획된 범위에서 삶의 궤적을 그려나간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사실 평온하고 안정돼 있다고 생각하는 삶 속에서도 균열은 부지불식간에,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그건 ‘며느리도 모르’는 일이니까. 호숫가에 퍼지는 잔물결처럼 삶에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균열은 사실 예고가 없다. 물론 파장이 짧아서 노곤하고 지루한 삶으로 다시 되돌아가거나 되풀이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균열은 어떤 인과관계나 맥락 없이 일상을 기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 무방비 상태에서 그로기로 몰릴 수도 있음을 감안한다면 ‘균열 이후’가 기실 더 중요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준비’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지만 그런 기습에도 흔들리지 않기 위해선 ‘(일어나지 않으리란) 확신’보다는 ‘(일어날 수도 있는) 가능성’에 무게중심을 두는 편이 낫다는 뜻이다.

사랑, 이별, 죽음 등 어떤 형태로든 삶이란 호수에 파장을 일으키는 균열은 ‘전과 같지 않음’을 상정한다. 어떤 형태의 균열을 거친 뒤 변함없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듯하지만, 그것을 겪은 사람은 알고 있다. 같은 것을 보고 듣고 읽거나 경험해도 이전과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Before' 그리고 ’After' 두 단어사이의 간극만큼이나 삶은 기실 균등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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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족이 있다. 온화하고 침착한 정신과의사 아버지, 사랑으로 가족을 돌보는 어머니, 사춘기지만 큰 말썽 없이 부모님 말 잘 듣고 따르는 딸과 아들. 서로를 신뢰하며 평온한 일상을 보내는 가족의 풍경은 안정적인 사각(四角)구도를 이루고 있다. 어찌 보면 너무도 이상적인 가족 풍경이다.

여느 때처럼 일요일은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 급작스런 환자의 연락에 아버지는 아들과의 조깅 약속을 미루고 아들은 할 수 없이 친구들과 스쿠버다이빙을 간다. 그리고 사고는 예기치 않게 문을 두들기며 아들은 목숨을 잃는다. 그리고 안정적인 사각의 한 변을 잃은 가족. 균열은 그렇게 평온하던 가정의 균형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한 모서리가 빠진 구도는 좀처럼 예전처럼 안정적일 수가 없다.

이처럼 갑작스레 뻥하고 뚫린 빈자리로 인해 구성원들의 삶은 휘청거린다. 아버지는 조깅 약속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동시에 당시 갑자기 자신을 호출했던 환자를 원망하고 또 원망한다. 자신의 괴로움에 못 이겨 환자들의 고통을 돌볼 여유가 없는 정신과 의사. 다른 사람의 심정적 안정을 다스리는 정신과 의사가 막상 자신에게 닥친 균열 앞에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 아이러니하다.

어머니 역시 안정감을 잃은 채 아들의 여자친구를 통해 곁에 ‘없는’ 아들의 흔적을 찾으려한다. 온순하던 딸은 점점 난폭해지면서 농구 경기 중 퇴장을 당하기도 한다. 가족은 그렇게 한쪽 모서리가 떨어져 나간 돛단배에 몸만 건사한 채 풍랑에 휩쓸리고 있는 중이다. 과연 한 축을 잃어버린 배가 제대로 나아갈 수 있을지 조마조마하다.

남은 가족들은 서로를 위로하고 위로받고 싶지만 함께 있는 순간에도 그들은 전과 같이 평온한 일상을 되찾을 수 없다.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은 현실에서 여과 없이 투영되고 차마 내뱉지 못하는 가슴 깊은 구석의 안타까움이 자맥질한다. 아버지는 끊임없이 그 균열을 가져왔던 인과관계를 따지고 싶어 할 뿐이다. 되돌릴 수 없음을 너무도 잘 알면서도….

그러니까, 혼자 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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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갈라놓은 것은 단지 이승과 저승의, 땅과 지하(혹은 하늘)의 공간적 경계만이 아니다. 남은 사람들의 일상을 이전(before)과 이후(after)로 구획 짓는 것 또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다. 자식이나 부모, 혹은 사랑하는 이를 먼저 보낼 수밖에 없었던 사람에겐 고스란히 묻어나올 수밖에 없는 그런 것들 말이다(에릭 클랩톤이 네살배기 아들이 옥상에서 실족사한 뒤 내놓은 ‘Tears in heaven’을 들으면 그의 슬픔과 진한 부성이 묻어남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얼마 전 더 이상 공식석상에서 이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고 얘기했다).

<아들의 방>은 죽음을 앞둔 긴장과 슬픔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 죽은 ‘이후’의 남은 자들의 감정의 결을 보여준다. 그 어떤 설명이나 개입 없이, 때론 거칠게 날 것 그대로, 남은 자들의 흔들림이 현실적으로 드러난다. 과장되거나 부족함 없이.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누이도 아들 혹은 동생의 방이 ‘비었음’을 인정하고 그 슬픔과 격정을 감당해야 함을 알고 있다. 그래도 삶이 지속되고 있음에, 살아야 하기 때문에 먹고 마시고 자고 친구들과도 어울리고 다시 일을 한다. 일상 속에 발을 담가놓고 아무 일 없듯 표정 관리를 한다.

그러나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다. 그것이 때론 지옥 같은 일로 불쑥 다가옴을. 길을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갑작스레 뇌리를 스치는 떠난 자에 대한 기억 혹은 추억. 특정 장소나 행동, 어떤 사물을 접하면 불현듯 떠오르는 모습. 죽은 자는 그렇게 가고 없지만 추억은 방울방울 남은 자들의 슬픔의 감정을 자극하고 박제되기 마련이다. 특정 기억을 팔 수 있는 가게는 없다. 그 기억을 빼고선 정체성도 없다.

<아들의 방>은 또 찬찬히 보여준다. 그들이 ‘아들’을 뺀 일상에 적응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아들의 흔적을 ‘변화 없이’ 유지하고 싶어 한다. 무전여행중인 아들의 옛 여자친구가 집 앞을 지나다 들렀고 빈자리에 여전히 허우적대던 그들은 그녀와 그녀의 새 남자친구를 그들이 원하는 곳까지 밤새워 차로 태워주고 밥을 먹이고 떠나보낸다. 그런 와중에 그 둘이 사귀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들의 심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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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들은 그 과정에서 깨닫는 듯 하다. 아들의 빈자리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함을. 그래도 삶은 지속되고 있음을. 온 가족이 화목하게 웃고 떠들던 이전의 ‘가족 찬가’와 같지 않고 다시 되돌리지 못할 시간이겠지만 일상의 균열에 각자 대처해야 함을 말이다. 아들과 달리던 길, 이젠 아버지 혼자 달려가야 한다. 우리는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다.

사랑하는 아들아
그 한통의 전화에 너를 잃게 될 줄이야.
악착스런 승부근성이 없어도
그저 묵묵히 침묵하고 있어도
다른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들지 않는
그렇게도 특별했던 너
그래, 너는 어쩌다 마법의 동굴에서 잠깐 길을 잃은 거야.
인생을 결정하는 건 우리가 아니니까
그래도 아들아
너에게 꼭 하고픈 말이 있었는데
시간을 돌리지 못하는 아빠를 용서하렴.
기적이라는 게 있다면... 그래서 너의 웃는 모습을 다시 한번 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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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5월30일 인간사에서 욕망의 중요성을 알려주던 한 노인네가 타계하셨더랬다. 일본인이었다. 몇몇 그의 작품을 통해 감탄을 자아냈던 감독님이셨다. 고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님. 당시, 향년 80세였다. 간암이었다. 역시나 암암암. 엊그제 시드니 폴락 감독님이 그랬던 것처럼. 암은 참 나쁘다. 감독님들 자꾸만 데리고 간다.ㅠ.ㅠ

그런데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님의 간암 타계는 그의 한 필모를 떠올리게 했다. <간장 선생>. 간염 퇴치를 목적으로 밤낮으로 왕진가방을 들고 뛰어다니며 어떤 환자든 '간염'이라고 진단을 내리던 아카기 선생. 그래서 별명도 '간장 선생'이던 (돌팔이)의사.

그러나 그의 돌팔이 행세는, 무조건 나쁘다고 쏘아붙일 것이 아니었다. 뭔가 다른 생각을 하게 해주는 측면이 있었다. 그런 액션은 당시의 시대상과 맞물렸다. 군국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페인팅 모션 같은 것. '부조리'한 세상을 풍자하는 내공 같은 것.

영화는 즐거웠다. 이마무라 감독님도 즐긴 것 같았다. "관객을 숨쉬게 해 줄 영화를 찍고 싶다"던 그 말은 자신이 즐거워야 한다는 것의 또 다른 표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감독은 뭐니뭐니해도 자신의 영화의 첫 번째 관객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간염 퇴치는 아직 안 됐고 이마무라 감독은 간암으로 세상을 등진 묘한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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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필모 가운데 가장 먼저 접했던 <우나기>도 참 괜찮은 영화였는데, 그의 작품 중 마지막으로 봤으으며 가장 짜릿했던 영화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는 한마디로 '감탄'이었다. "쪼잔하게 살지말고 욕망대로 살라"는 노익장의 속삭임은 '구원'과도 같았다. 에로티시즘을 향한 예찬. 천박하지도 않았으며, 은근히 혹은 대놓고 '욕망'을 감추고 살도록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풍자는 가히 고희가 넘은 '할아버지'의 것이라고 믿기 힘들었다(이 '편견'도 얼마나 웃긴가. 나이에 기대 개인을 평가하거나 규정해 버렸던 나의 무지함). 그의 이름을 세계 영화계에 알린 <나라야마 부시코>는 아직 보지 못했다.^^;

인간의 '욕망'을 이해했던 사람. 그리고 자연스런 욕망을 억압하는 사회를 무겁지 않게 풍자하고 비꼬았던 사람. 그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는 욕망을 감옥에 가둬놓고 사식이나 주면서 연명하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구름의 저편으로 훌쩍 가버린 그는 이제 어떤 욕망을 사색하고 있을까.

4년 전, 거의 비슷한 시기인 5월말경. 아마 대학로의 하이퍼텍 나다 극장이 아니었나 싶다.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을 봤다. 그리고 그 감탄을 토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읊조린 욕망 예찬. 나는 과연 내 욕망에 얼마만큼 충실한가. 당신은 당신의 욕망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나는 진짜 제대로 나의 욕망을 따르고 있는 것일까. 그래, 제발 꼴리는대로. "나는 욕망한다, 고로 존재한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막스 베버가 갈파하고 근대자본주의 발전의 동력이었던 '프로테스탄티즘'은 근면성실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한마디로 ‘열심히 뺑이 치라’(소명론)는 것이 프로테스탄티즘의 핵심이었다. 당시 형성되기 시작한 상인과 수공업자들은 이 같은 점을 적극 활용하면서 자본가화되는 과정을 거쳤다. 자본주의는 그렇게 프로테스탄티즘을 탄환으로 삼아 뻗어나갔고 그 우월함을 과시했다. 사람들은 그 과정에서 개인의 욕망을 억누르고 ‘참을 인(忍)’자를 새겨야만 했다. 그리고 익숙해졌다. 누가 그 견고함에 비수를 들이댈 수 있으랴.

현재 우리를 되돌아보자. 우리는 일하지 않고 배겨날 수 없는, 혹은 적극적으로 노동을 착취당하는 구조 속에 편입돼 있다. 이를 거부하는 자는 이른바 ‘낙오’라는 허울을 뒤집어쓴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고 광고는 부르짖지만 실은 “성실하게 일하지 않는 자, (회사에서 혹은 사회에서) 떠나라”는 말이 숨어 있다는 사실.

그렇다. 우린 속았다. 시민이 주인이라고? 국민이 주인이라고? 그렇다면 그 주인의 욕망은 왜 뒷전인가? 기업, 조직, 전체 앞에 개인의 욕망은 기지개를 펼 수가 없다. 늘 조직 앞에 희생해야 하는 건 개인의 욕망이다. 그러니 장삼이사(張三李四)에 불과한 이들이 이 땅에 빌붙어 살기 위해, 연명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겠는가. 고개 숙인 것은 남자뿐 아니다.

욕망하지 않는 자, 유죄!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이런 개인들에게 따스한 시선을 보낸다. 기발하고 야~한 삶의 찬가를 지휘하며 악기들의 앙상블을 연출한다.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이하 <붉은 다리…>)은 상상력의 성찬을 차려놓는 동시에 개인의 욕망을 두둔한다. 생의 소중함은 무엇보다 개인의 욕망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데서 나온다는 것을 이 영화는 갈파한다.

<붉은 다리…>의 주인공이 그렇다. 하루아침에 회사에서 내쫓기고 가정에서도 내몰린 요스케(야쿠쇼 고지). 이 평범소심남은 전형적인 샐러리맨의 전형이다. 21세기는 그렇다. 노동력, 즉 고용없이도 생산성을 높이려는 기업들의 몸부림은 ‘고용없는 성장’이라는 인간소외의 경제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그런데 누구도 거부하지 못한다. 최고 통치자건 경제 수장이건 자본주의는 이미 그들의 머리 꼭대기에 있다는 사실. 기업들은 생존이라는 명목으로 이윤에 극도로 목을 매단다.

그런 구조 앞에 어깨를 늘어뜨린 요스케는 파란텐트 철학자, 타로를 찾아가나 그는 이미 숨을 거둔 뒤다. 답답함을 토로할 곳마저 잃은 그가 무턱대고 찾아간 곳은 타로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불상이 숨겨진 곳. 전쟁 직후 노토반도의 한 마을, 붉은 다리 옆에 있는, 창가로 바다가 보이는 집이다. 그 곳에서 요스케는 사에코(시미즈 미사)를 만난다. 성욕이 차오르면 몸에서 물이 나오는 여자. 섹스를 하면 분수처럼 물을 내뿜는 여자.

이런 이런, 말도 안 되는 설정이라고 끌끌~ 혀를 차지 말 지어다. 그건 감독이 욕망을 두둔하고 본능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냥 즐겁게 즐길 지어다. 우린 욕망을 누르고만 살아야 한다는 사회의 조직의 명에만 너무 익숙하지 않았던가. 일탈하고 싶다는 그 욕망. 스크린은 그런 욕망의 한 켠을 서슴없는 상상력으로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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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욕망을 잊은 채 살아가는 요스케와 본능의 분출구를 찾지 못해 서성이던 사에코는 결합한다. 두 삶의 욕망이 어떻게 결합하는지, 욕망에 충실한 그들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영화는 천천히 그러나 찰지게 보여준다. 그 쾌감은 보는 사람에게도 한줄기 시원한 청량제와도 같은 느낌을 준다.

물론 욕망의 과정에도 갈등과 불협화음이란 내재하기 마련이다. 개인과 개인의 욕망 사이에 왜 빈틈이 없겠는가. 그럼에도 그 갈등을 풀 수 있는 열쇠 또한 욕망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 그건 한편으로 재미있는 아이러니다. 욕망이 욕심을 부르고 질투를 야기하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제어하면서 그 욕망의 합일점을 찾는다면 행복해 질 수 있다는 이야기. 이마무라 감독은 “후회하며 죽지 말 것”을 진심으로 권하고 있다. 타로 노인을 통해 이마무라 감독은 자신의 할 말을 쏟아낸다.

“욕망에 충실한 것이 진짜 삶이야”

살아생전 타로 노인은 요스케에게 말한다. “쪼잔하게 살지 말고 욕망대로 살라”고. 비록 자신은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고 살았지만 요스케에겐 다 제쳐두고 ‘즐기고 살 것’을 권유한다. 새로울 것 없는 하루하루, 21세기가 오면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변한 것 따위는 없는 세상. 20세기를 관통했던 ‘야만’은 세기를 넘어서도 칼날을 거두지 않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개인은 설 자리가 없다. 지치고 자기 방어에만 급급한 삶이 대부분이다.

대부분 회사는 말없이 일만하는 사원을 좋아하는 법이다. 회사도 유기체인 마냥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수용해 질적인 삶의 향상을 꾀할 듯한 감언이설을 내뱉지만 속을 필요는 없지. 개인도 자신의 욕망을 위해 회사를 이용할 필요가 있다. 타로 노인은 그걸 위해 ‘뇌세포에 쥐가 날 때까지 생각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진정한 자유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을 내려서 행복을 찾는 거라면서.

과연 우리는 얼마나 욕망에 충실한가. 개인의 자아실현 욕구와 회사의 목표를 조화시킨다고? 글쎄. 이마무라 감독이 영화에서 언뜻언뜻 보여주는 조직에 대한 단상을 유추컨대 그건 불.가.능.이다. 개인의 자유의지는 조직과 조화를 이룰 수 없다. 자아실현이란 단어조차 어떤 지위나 위치, 명예 등을 내포하고 있는 뉘앙스이지 않은가. 그건 조직이나 기업 속에서 형성될 법한 이야기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란 풍류를 읊조렸던 과거의 한량들이 어쩌면 옳을 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은 제대로 된 풍류고 놀이여야 한다(타락이나 환락과 같은 방종의지(자유의지가 아닌)는 오히려 욕망을 모욕하는 짓이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건 개인의 욕망과 사회의 요구가 어느 정도 톱니바퀴를 맞물렸을 때 얘기다. 자본주의 사회가 성실한 노동자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건 기정사실이다. 오로지 로또적 역전만이 삶의 유일한 희망인양 부여잡는 필부들에게 그 경구는 더 이상 효력이 없다. 자본이 자본만을 증식할 수 있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빠져나갈 탈출구는 로또 밖에 없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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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차라리 욕망에 충실하게 살라는 이마무라 감독의 목소리는 충분히 경청할만하다. 욕망이 만발하는 것은 죄악이 아니며 삶은 그 욕망을 동력원으로 삼는다는 얘기다. ‘욕망예찬’은 늙은 거장이 젊은이들에게 넌지시 건네는 삶의 지혜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일하기 싫다. 그래도 생활을 보장해 달라”는 ‘문화사회’ 혹은 ‘놀이사회’의 도래는 불가능한 것일까.

(그런 의미에서 “친구야~놀자”라는 부름을 엔간하면 거절하지 말라. ‘놀자’는 친구의 말은 진짜 삶을 풍성하게 하는 요소들 가운데 하나일 수도 있다...^^ 물론 욕망이 시키지 않는 다면 갈 굳이 응할 필요는 없겠지만 말이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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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은 이틀 전 들었지만, 늦었지만,
그저 '안녕'을 고할 시간이 없었다는 어줍잖은 핑계.

그래서 이제서야,
안녕, 시드니 폴락 감독님...
굿바이, 시드니 폴락 (Good-bye, Sydney pollack)...

현지 시각으로 26일 월요일 떠나셨으니, 3일장이라면 오늘 발인하고, 장지로 모셔진 건가요.
물론 그곳 사정이야 나로선 알 수가 없지만서리. 향년 73세. 암 투병 중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