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2003년 12월9일.

요즘과 같은 강추위가 강타하던 그날,
혜화동 부근에서 한 사람이 추위에 떨다 숨을 거뒀다.
그야말로, 동사. 누구도 챙기지 않은 혹은 외면한 죽음.

나는, 그 사실을 뒤늦게 접했다.
2005년 김동원 감독님(<송환> <상계동 올림픽> 등)께서 국가인권위에서 제작한 옴니버스영화 <다섯개의 시선> 가운데 <종로, 겨울>을 연출하신단 소식과 함께였다.


오늘 모진 추위, 알코올 유혹을 뿌리치고 '서울독립영화제(서독제)2009'를 찾았다.
세상엔 알코올보다 더 좋은 것들이 있으니까! ^.~ (음, 인간이 초큼 학실히 달라졌다;;)

영화는 장률 감독님의 <이리>.

그것 자체로도 뿌듯했는데, 상영 직전에 꺄아아아아아아~ 소릴 지를 뻔 했다.

내 앞앞자리에 김동원 감독님이 성큼 앉으시는 것 아닌가!!!!!!!!!!!!!!

역시 잘 왔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면서,
3년 전 뵀을 때와 함께, '아, 이 즈음이었지'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글의 처음에 언급했던 그 사람, 고 김원섭 씨.
우리의 무관심으로 차디찬 고국 땅에서 동사할 수밖에 없었던. 

영화를 본 뒤, 냉큼 김동원 감독님께 꾸벅, 인사했다.^.^
당연히 감독님은 날 기억하지 못했지만, 굳이 얘기하진 않고,
사진을 부탁드렸다.

언제 다음 작품을, 내년에는 볼 수 있냐는 질문에, 수줍은 미소를 지으시면서 확답을 못하시던 감독님.
"괜찮습니다. 계속 기다릴 수 있습니다." (-> 내 마음 속)

간단히 감독님께 작별 인사를 드리고,
바깥 무시무시한 추위를 온몸으로 맞닥뜨리며, 종로통을 거니면서,
6년 전 길바닥에 쓰러져 살을 에는 추위에 덜덜 떨고 있었을,
무엇보다 조선족이라는 이유로, 마음 깊이 후벼파는 추위에 더욱 쓰라렸을,
김원섭 씨를 떠올렸다.

흥청망청 종로의 밤은 깊어갔고,
나의 마음에도 밤이 내렸다.
오늘 나는 얼마나 많은 타인의 아픔과 상처를 스치듯 지나갔는가.
봉석아, 오늘 너의 아픔을 충분히 위로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죽을 때까지 외로웠을 김원섭 씨, 다시 한 번 미안합니다...

김동원 감독님을 만나뵀던 3년 전의 인터뷰를 꺼냈다.


"동북공정엔 흥분하면서 그 땅에 사는 동포엔 왜?..."

2년전 세밑을 앞두고 흥청거리던 서울 종로구 혜화동 골목통에서 한 조선족 동포가 동사한 채로 발견됐다. 경찰 지구대 사무실에서 불과 20여m 떨어진 장소였다.

고(故)김원섭씨. 그 날의 사건을 신문은 이렇게 전하고 있었다.

"법무부의 장기 불법체류자 단속을 피해 농성을 해오던 중국동포가 체불 임금을 받으러 나간 뒤 하루만인 9일 새벽 서울 도심 거리에서 동사한 채 발견됐다. 이 중국 동포는 숨지기 전에 112와 119에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구조를 요청했으나, 도움을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출신의 김씨에게 고국의 품은 차가웠다. '잘 살아보겠다'며 조국을 찾아와 공사장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던 김씨에게 고국의 기업은 임금을 체불했다. 정부는 장기 불법체류자라는 딱지를 붙여 김씨를 강제추방 대상에 넣었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추위 속에서 헤매던 그가 십여 차례 이상 119, 112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지만 의사전달이 제대로 안돼 구조의 손길을 받지 못했다.

불법체류로 체불의 고통을 받았던 우리의 한 재중동포는 차디찬 골목바닥에서 주린 배를 움켜쥔 채 죽어갔다. 그는 '동포'였지만 '우리 안의 타자(他者)'였다. 차별과 소외가 내재화한 사회. 그런 엄혹한 현실은 그를 사지로 내몰았다. 어떻게 보면 김원섭씨는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타살'을 당한 셈이다.

독립영화계의 대부이자 정신적 지주로 불리는 '송환'의 김동원 감독이 이번에는 동사한 조선족의 흔적을 좇았다. 옴니버스 인권영화 '다섯개의 시선' 중 '종로, 겨울'을 연출한 우리의 어떤 시선이 조선족 동포를 동사하게 만들었는지, 왜 그는 죽어갈 수 밖에 없었는지, 짧지만 굵은 이야기를 풀어냈다.

김 감독은 "차별받는 사람들을 불쌍한 시선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차별하는 상황들을 스스로 인식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한번쯤 돌아보게끔 하고 싶었다"고 연출의도를 밝혔다.

다음은 29일 서울 신대방동에 위치한 푸른영상에서 김 감독과 나눈 일문일답.


-  이번 영화의 참여 제안은 언제 받았으며 중국동포에 대한 이야기를 찍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지난해 8월 인권위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제안을 받고 상계동 철거민(<상계동 올림픽>)이나 비전향장기수(<송환>) 뒷얘기 등 다른 것들도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전에 고 김원섭씨에 대한 이야기가 가슴에 맺혀 있었고 이를 풀고 싶었다.

또 조선족동포를 바라보거나 우리의 역사에 대한 시선 때문에 이 문제를 택했다. 우리는 만주 땅을 찾고 싶어 하면서도 그 땅에 있는 동포한테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또 이쪽 동포들은 다른 이주노동자보다 더 차별받는다. 재외동포법에서도 미국과 유럽과 같은 제1세계 동포보다 한국에서의 권리를 차별받고 있다. 이 문제를 물고 늘어지고 싶었다.
 
- 처음 고 김원섭씨에 대한 뉴스를 접하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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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물론, 낚시질이다.^^;;

그렇다고 영원히 낚시질로 끝나질 않았으면 좋겠다. 

즉 어느날, 그것이 현실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서울독립영화제(서독제)2009를 유영하고 있는 지금.

반짝반짝 빛나는 영화들과 영화인들을 만나면서, 나는 나름 그것을 즐기고 있다.  

온전하게 거기에만 에너지를 쏟을 순 없지만.

 

그런 와중에, 씨네21에서 오다기리 조의 인터뷰를 접했다. 

알다시피, 나의 빛나는 완소배우.

 

그는 최근 대학생국제평화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한국을 찾았다.

인터뷰는 그런 일환으로 이뤄졌는데,

그는 역시나 내 마음을 흔들어놓을 줄 아는 배우다.

 

내 마음을 흔든 그의 발언은 이거다.

"벌써 10년 정도 일하고 있는데 일하다보면 생각할 게 많다.

내 요구뿐만 아니라 이 시대, 사회가 뭘 원하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여느 배우와 다른, 좀더 특별한 포스와 아우라를 갖고 있다.

예술가연 한다거나  스타성을 좀더 발휘한다는 그런 뜻은 아니고. 

그렇다고 그에게 '사회적(성) 배우'라고 레떼르를 붙이고 싶진 않다.

 

그는, 사회적 발언과 행동에 적극 나서는 조지 클루니와도 또 다르다.  

물론 나는 스타 혹은 배우가, 꼭 그래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밤하늘의 별처럼 만질 수 없으나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것이 스타 혹은 배우의 존재이유이며 우리가 원하는 것도 그런 것이니까.

연기 등을 통해서 주는 즐거움도 빠질 순 없겠지.

 

그럼에도, 나는 오다기리 조가 주는 마음의 환기에 더욱 마음이 간다.

내가 사는 이 땅에도 오다기리 조와 같은 배우(스타)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우리 사는 이 세계를 염려하는, 시대와 사회가 원하는 것을 고민하는.

 

오다기리는 인터뷰를 통해,

한국영화계의 제안이 오면 기쁘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했다.

대학생국제평화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게 된 것도,

영화제쪽에서 제안한 결과다. 아마 해당영화제쪽도 큰 기대는 않고 제안한 것이리라.

 

그래서 생각했다.

우리의 인디영화가 그를 영화에 출연시키거나,

서독제의 심사위원으로 참여시키는 것은 어떨까. 

물론 타이밍이 가장 중요하다!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만나는 '오다기리 조'.

관객 입장에서는 얼마나 가슴 설레는, 벅찬 일인가.

서독제와 궁합도 잘 맞을 것 같은데, 당신은 어떤까.

 

가까우면 더욱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언젠가 이뤄진다면,

나는 더덩실 춤이라도 출테오. 

 

그렇게, 오다기리 조를 만나고 싶다.

 

인터뷰 한 대목을  잠시 인용하자면.

- 이번 영화제 참가뿐 아니라 부쩍 한국에서의 활동이 많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

그 이유는 내가 더 궁금하다. (웃음) 생각해보니 타이밍이 아닐까 싶다. 최근 들어 일본영화계에 비해서 한국영화계가 더 발전했다. 한국은 작품성있는 영화가 꾸준히 생산되는 곳이고, 좋은 감독도 많다. 그러다보니 나 역시 한국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세상 모든 아들들의 엄니 … ≪도쿄타워 :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미시적인 반항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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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석. 누군가에겐 생소한 이름일지 모르겠는데, 배우다.
영화배우이기도 하고, 연극배우이기도 한. TV에도 나온 바 있는.

뜬금없이 이 이름을 꺼낸 건, 그가 주연으로 등장한 영화가 개봉해서다.
영화의 제목하야, <부산>


이 쉐이,
그걸 빌미로 지 고향 얘길 꺼낼라카나,
아니면  못 가서 한이 맺힐라카는 PIFF를 꺼낼라카나, 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아이고. 고마 고창석.

<부산>에서 유승호, 김영호와 삼각 트라이앵글로 주연을 맡은 배우, 고창석 아저씨. 
사실, 나랑 나이 차는 별로 나진 않는다. ^^;;  

지난해 연말 무렵, 시네시티 부근의 커피집에서 만났다.
<영화는 영화다>로 막 대중과 근접조우하면서, 이른바 떴다.
봉 감독이란 애칭으로 사랑을 받던 시절, 
오랜 연극배우 생활 끝에 늦둥이 영화배우로 주목을 받았고,
보폭을 넓히기 시작할 찰나였다.
겁내 무섭게 생겼지 싶어도, 앞에서 얘기 나누이 꼭 정겨운 동네아저씨 같드마.


그를 만난 전후로,
그는 꽤 많은 영화에 얼굴을 내밀었다.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인사동 스캔들> <이태원 살인사건>,  
그리고 TV드라마 <친구, 우리들의 전설> <드림> 까지.

이번에는 그의 고향이기도 한 <부산>이다.
인터뷰 할 때, 부산을 로케이션으로 하는 작품에도 출연할지 모른다더니,
과연 <친구, 우리들의 전설>와 <부산>에 출연했다.  
<친구, 우리들의 전설>을 볼 때는 브라운관 속인데도 어찌나 반갑던지, 헐~

거의 9개월 이상 묵은 기사지만,
<부산> 개봉을 맞아, 그를 스크린을 통해 다시 만나고픈 생각에 꺼낸다.
뭐, <부산>의 영화평은 그닥 좋은기 아이다만,
고마, 부산이라니까 함 가줄라꼬.
내 이번에 PIFF때 몬가서 슬픈, 부산이 우째 나왔는가, 함 봐야게따 싶어가꼬.

아래, 인터뷰의 흔적은 그와의 만남을 토대로 재구성한 기다.

*********************************



내 이름은 봉 감독, 아니 고창석. 내 얘기 좀 들어볼래? “레디~액쑌!”

사실 지금까지 연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어. 20여 년 전만 해도 내가 업으로 생각했던 것은, ‘국악’이었거든. 1989년 학교에 들어갔지만 공부는 안 하고 발 디디고 마음을 둔 곳이 탈춤 동아리였어. 국악이나 타악, 재미있더라. 남원에 가서 풍물도 배우고, 거리공연도 하고, 작품도 많이 만들었어. 그냥 그렇게 시작한 것이고, 그땐 그게 취미가 아니고 업이었어. 그러니까 특별히 연극을 시작하겠다고 한 게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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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하나의 상품.(화폐와 연관된 거래의 개념이 아니라)
6년 전 오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국영이형을 4월1일이면 어김 없이 되새김질할 수 있는 것도,

그것이 내 안에서 하나의 상품이기 때문.

사건이 있었던, 2003년 4월1일.
그날의 그 사건 이후, 내가 관통했던 어떤 한 시대가 접히고 있음을 절감했다.
그래서 그 이후의 4월1일은, 최소한 내겐 만우절보다 국영이형을 떠올리는 날. 꽃보다 국영!

그날 이후 4월1일이면,
DVD를 돌려 <아비정전>의 희뿌연 영상과 마주대하며 눈물을 흘리거나, 글로 사부작댔지.
☞ 국영이형, 황사바람에 잘 계시우?
☞ '아비'와 함께 우리 모두 '해피투게더'~
작년에는 <아비정전>이 재개봉한 광화문 스폰지에 있었다.
스크린에서 처음 마주하는 <아비정전>의 감격.
꺼이꺼이 극장에서 목 놓아 울고 싶었던 어떤 기억.
☞ 국영이 형, 제 맘보춤 봐 주실래요?

역시나, 올해 스폰지는 작년에 이어 <아비정전>을 불러냈고,
☞ 스폰지 <아비정전>
허리우드 극장에서는 '장국영 메모리얼 필름 페스티벌'을 펼치고 있다.
故장국영 6주기 추모 영화제
장국영 추모영화제 여는 김은주 대표 "해야할 일일 뿐"


벌써 6주기인가 싶은데,
더 이상 늙지 않는 국영이형을 본다는 건, 한편으로 괴로운 일이긴 하다.
오늘 하루, 자신의 울타리에서 그를 추모하는 것으로 사람들은 또 그렇게 1년을 난다.

<아비정전>에서의 '아비'가 가장 애잔한 모습마냥 기억되지만,
<해피투게더> '보영'의 까칠함 뒤에 도사린 쓸쓸함도 무척 아릿하지만,
나는 <동사서득>의 '구양봉'만큼 세상 모든 고독을 품은 이를 알지 못한다.

내게 있어,
국영이형 최고작(더불어 현재까지 왕가위 감독의 최고작)은,
그래서 <동사서독>.

(왕가위 감독은 최근,
“<동사서독>에서 진정한 스타는 장국영 한 명뿐이었다”며,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국영이형에게 바친 바 있다.)


그래서 나는 희망한다.
<동사서독 리덕스>.
제발, 플리즈.
개봉개봉.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였지만, 나는 못 봤을 뿐이고.
중국에서는 지난 3월 <동사서독 리덕스> 프리미어가 열렸다는데.
부디, 내년 4월1일엔 구양봉을 만나게 해 주시오.
그 사막의 모랫바람에 함께 휩쓸리고 싶소.
 
그  의미는, 결국 '장국영 리덕스'.
매년 4월1일의 장국영 리덕스.
형아 리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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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약할 때, 폴짝 땅을 딛고 허공에 발을 놀리고 있을 때,
가장 알흠다운 소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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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소년을 참으로 좋아했다.
권투를 종용하는 아버지의 강권을 뒤로하고,
발레를 택하는 소년의 속깊은 강단이 그랬고,
탄광촌 노동자 집안이라는 가정 환경에 굴하지 않고,
꿈의 부름을 따라 자신만의 몸짓으로 세상과 맞장뜨는 어른스러움이 그랬으며,
여자들과 섞여서 전혀 어색함 없이 노닐고,
커밍아웃하고픈 친구를 대하는 사려깊음도 그랬다.
특히나, 뜀박질하고 춤을 추는 장면에선,
눈물을 자아내는 꼬맹이 녀석.
어쩜, 나보다 낫다. 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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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소년의 이름은, <빌리 엘리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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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와 보수주의로 무장한 대처리즘이 노동자를, 서민들을 가혹하게 옥죄던 시대.
어쩌면, 미운 오리 새끼 같던 녀석이었다.
아버지나 형의 실존적 고민은 아랑곳 없이,
그저 자신의 꿈에만 매진하고픈 개구쟁이였다.
그래서 녀석은 뛰고 굴렀다.
권투글러브 대신 토슈즈를 신고.
꿈을 좇아, 마음을 따라.
중력을 거슬러 힘껏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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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알다시피, 녀석은 백조가 됐다.
역시나 비상할 때 가장 아름다운.
나는 그런 빌리를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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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빌리는 이 소년,
제이미 벨.
주근깨 빼빼마른 어린 댄서.

그랬던 녀석이,
어느새 훌쩍 커버렸다.
간간히 <킹콩> <아버지의 깃발> <점퍼> 등을 통해 얼굴이나 소식을 접했지만,
아무래도 압권은, 바로 이 영화,
<할람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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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 '잘' 자란 아해들을 보면, 므흣해진다. 내가 키운 것도 아니면서.^^;
더구나, 그곳은 곳곳에 함정과 늪이 도사린 엔터테인먼트의 세계.
매컬리 컬킨, 브래드 렌프로, 린제이 로한, 드류 배리모어(비록 재기에 성공했지만..) 등등은,
망가진 채 진창을 헤맸다.
그러나 제이미 벨은, 역시나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유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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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녀석 불안정하고 별나다.
나무 위 오두막에 서식하거나,
항상 무언가를 훔쳐본다.
특히나, 다른 이들의 애정행각을.
한마디로 '피핑 톰(Peeping Tom)'.
어른이 돼 가는 녀석의 이름은 '할람 포'.
영화 제목이자, 주인공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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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할람, 트라우마로 똘똘 뭉쳤다.
엄마는 죽었고 아빠와는 충돌한다.
그러고보면, 빌리와 비슷한 면이 있다.
엄마라는 완충장치가 없었고, 아빠 세대와는 불화.
빌리가 다른 아이들의 발레하는 모습을 훔쳐봤다면,
할람은 다른 사람들의 애정을 나누는 모습이나 어머니를 닮은 여인을 훔쳐본다.
다만, 좀더 크다보니 할람의 성장통이 좀더 다이내믹하고 빡센 측면이 있다.
새엄마를 증오하면서도 성적열망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오이디푸스의 상흔이 뚝뚝 묻어난다.
혈혈단신 런던으로 가출해 시계탑 뒤 다락에 기거하면서 훔쳐보기를 멈추지 않는 할람.
잘 사는 집안을 뛰쳐나온, 세상 물정 모르는 반항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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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의 잘 자란 제이미 벨이 그냥 피핑 톰으로만 머무를리 없잖은가.
열여덟(성인으로 인정받는 나이)이 밍숭맹숭한 건, 어쩌면 인생에 대한 모욕.
이 알흠다운 청년이 너무 반듯하기만 하다면 그것 또한 심심.
역시나, 그의 알흠다움을 알아본 한 연상의 여인.
엄마를 빼다 박은 그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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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디높은 관음의 둥지에서 희한하게 건져올린 사랑.
그녀와 함께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모습은 완전 기시감.
앗, 그놈이 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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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렇다고 그 사랑이 항상 탄탄대로는 아니지만,
트라우마를 완전 극복한 것도 아닌 듯 하지만,
훔쳐보기를 그만두게 됐는지도 알 수 없지만,
할람은, 그 옛날 빌리처럼 고통 속에서 피어난 성장의 한 단면사를 보여준다.
탄광촌을 벗어나, 고딕풍의 건축물이 우뚝 솟은 에딘버러의 풍경은 그런 할람에게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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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meff에 이어 다시 본, <할람 포>.
아마 당신도 이 영활 본다면, 훌쩍 이런 말이 건네고 싶어질지 모르겠다.
"어쩜, 이리도 잘 자랐니, 제이미 벨."
뭐 이렇게 잘 자랐으니 앞으론 걱정 안해도 되겠다고?
맞다. 빌리도 그랬지만, 할람도 묘한 안심을 심어준다.
흔들리고 불안하면서도 외줄에서 떨어지지는 않을 것 같은.
그건 곧 '제이미 벨'에 대한 안심.
할리우드나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흉악함에서도 자기 중심을 잃지 않을 것 같은 든든함.

...“그들 모두가 자신이 갖지 않은 무언가를 계속해서 찾아다닌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지구라는 땅에서 20년 정도를 살았고, 앞으로도 살아야 할 지옥 같은 날들이 많이 남아 있군. 대체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앞으론 뭘 해야 하는 거지?’ 나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겁이 난다. 특히 배우라는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때 오스카를 수상하지 않은 게 나의 행운”이라고 말하는 벨은 클럽과 재활원을 부메랑처럼 오가는 ‘셀리브리티’가 되는 대신, 앞으로의 가능성에 더욱 내기를 걸고 싶어지는 스물두살의 흥미로운 배우로 성장했다...  - 씨네21 최하나 기자의 글 중에서 -

그런데 언니들은, 누나들은 정말 좋겠다.
이만큼 잘 자란 완소남이 있어서.
완전 누나들의 로망.
아마, 이런 눈빛으로 녀석을 바라보겠지? ㅎ 오메, 부러븐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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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말한다.
"맙소사, 나는 이제 아이가 아니다. 나는 남자다. 사람은 자란다니까."
("I’m not a kid now, Jesus. I’m a guy. People grow.")
어잌후, 한방 먹었다. 짜식.(입가에 미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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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난 은근히, 이 누나(소피아 마일즈)가 매력적이더만.
완전 예쁘진 않지만, 사람을 막막 끄는 매력이 솔솔 있더라구.
그래서, 나는 이번에 다시 생각했건데,
18살이 아니어서, 다시 한번 참으로 분했다.
그때 내겐, 왜 이런 누나가 없었냐고!!! 흑...
눈물 나. 된장. ㅠ.ㅠ



2007/10/21 - [메종드 쭌/시네피아] - 훔쳐보기의 성장사, <할람 포> & 비극의 속깊은 이해, <그르바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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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배우, 키아누 리브스. 우리의 인연은, <엑설런트 어드벤처>(1989)부터 어느덧 20여년.
영화 <스트리트 킹> 홍보차, 4월17일 한국방문.
키아누를 만나기 위해 행차한 용산CGV.
꽉꽉 들어찬 인파. 눈 앞에서 키아누를 접견하지 못한 아쉬움.
레드카펫을 느릿느릿 거닐며, 팬들과 악수하고 사인을 하는 키아누의 모습에선 가슴 몽클.
세월 앞에 내상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 모습까지 여전히 아름다운 나의 키아누. ^.^
언젠가, 키아누에 대한 애정사를 피력하기로 하고. 이건 그날의 풍경.
아, 살아생전, 이 땅에서 다시 키아누를 보게 될 날이 있기나.


그러나, <스트리트 킹>은 뭐 밸로. 한마디로, '짝퉁'<LA컨피덴셜>.
보는 내내, 등장인물들 행태나 사건 전개 등 그 유사성에 혐의를 뒀더니.
알고 보니, 아니나 다를까, 두 편 모두 제임스 엘로이의 손끝에서 나온 태생적 유사성.
<LA컨피덴셜>의 원작자이자, <스트리트 킹>의 시나리오 작가는 여전히 LA에 천착하고.
LAPD(Los Angeles Police Department)와 범죄자들은 한데 혼재돼 있고,
천사들의 도시, LA의 탐욕과 폭력, 어둠은 적나라하나 때론 매혹적.
<스트리트 킹>은 그러나, 밀도나 구성 면에서 <LA컨피덴셜>보다 덜렁덜렁 헐겁기만.
반전은 익히 예상 가능할 정도로 어설프고, 연출은 고저 없이 출렁출렁.

키아누를 짝사랑 하거나 만난다는 목적,
혹은 지난해 <라스트 킹>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획득한 포레스트 휘태커의 광기 어린 연기를
접하고픈 이유가 아니라면, 돈은 그냥 지갑 속에 고이.
아니면, 미드 <하우스>의 휴 로리의 다른 모습을 보고 싶다면 봐도 좋고.

참고로,
'한국인 비하' 같은 건 No.
아해들 유괴집단으로 한국인이 나왔다손, 한국어 육두문자를 내뱉는다손,
그것을 '비하'라는 단어로 규정짓는다면, 오버다. '20세기 폭스코리아'의 한심한 오버질.
그런데, 근래 이 땅의 아해들 유괴살해사건을 거듭거듭 접한 것과 맞물려,
슬쩍 스쳐지나간, 섬뜩함!
<살인의 추억>에서 박두만(송강호)이 내뱉은 말을 약간 달리 인용해,
'한국이 유괴의 왕국이냐!' (유괴범들을 향해, 드롭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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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극복'에 대해, 나는 이렇게 지껄인 적이 있다.
실연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는, 실연을 현실 그 자체로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대를 만나고, 그대와 마주보며 숨을 쉬고, 그대를 안고서 힘이 들면 눈물을 흘릴 수 있었던 시절은 갔다. 실연은 그 모든 것을 추억으로 품게끔 강요한다. 그 강요로 인해 나는 갈증에 시달리고, 길을 걷다 눈물에 젖고, 골방에 쳐박힌다. 세상 모든 슬픈 노래는 나의 몫이다. 그럼에도 나는 실연을 온전히 나의 몫으로 감당한다. 실연으로 인해 나를 둘러싼 세계의 변화는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실연 이후의 나의 모든 행동과 의식 모두가 그 강요의 극복을 위한 것이다. 실연을 실연 그 자체로 받아들일 때 진정한 극복은 이뤄질 수 있다. 믿지 못할, 아니 믿기 싫은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 그것이 내가 실연에 대처하는 자세.

한편으로 실연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왜 극복해야 하는가. 실연은 실연 그 자체로 소중한 경험이다. 실연이 없었다면, 미처 경험하지 못할 행동과 감정이 지배할 것이다. 그래서 실연은 우리 생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 실연을 소중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실연 이전의 사랑을 생각하라. 사랑에 고마워해라. 나의 세계가 넓어졌음에. 또한 실연으로 나의 세계가 더 넓어졌음에.

사실, 이건 허접한 관념의 너울이다. 아마, 실연으로부터 멀찍하게 떨어진 시점이라 가능했던 머리놀림이었을 거다. 사랑이 그러하듯, 실연 또한 교훈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실존적으로 하는 거다. '실연'을 경험케 한 그 작자(?)가 다시 누군가와 행복하기를 빌어줄 수 있는 건, 아마, 일백이십칠만년의 시간이 지난 후다. 실연의 고통엔, 크기가 없다. 세상 무엇도 그 무게감을 이겨낼 수 있는 건, 장담컨대 없다. 애초에, 시작한 것부터가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그러나, 세상 모든 연애가 그렇지 않더냐. 변할 것을 빤히 알면서도, 세월의 풍화작용이 모든 감정의 결을 깎아낼 것을 알면서도, 무모하게 감정을 배팅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겪었고, 겪을 연애가 아니더냐.

실연은, 맞다. 폭탄이다. '트루먼 카포티'는 자신의 소설에서 이런 구절을 읊어댔다지. "세상의 모든 일 가운데 가장 슬픈 것은 개인에 관계없이 세상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연인과 헤어진다면 세계는 그를 위해 멈춰야 한다" 나는, 킹왕짱 오나전 동의한다. 그래서 실연의 아픔은, 사랑, 그 연애의 시작이 언젠가는 스러질 운명과 함께 한다는 단순한 섭리를 받아들여야 하는 고통에서 비롯된다. 실연 당한 사람의 잘못도 엄연히 있다. 그 섭리를 알고 있으면서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 실연은, 알면서도 준비할 수 없는 벼락 같은 것. 비 올 것을 알았으면서도, 우산을 준비하지 않은 것.

후루룩쩝쩝, 블루베리 파이

왕가위 감독의 새로운 시식품.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이런저런 평들이 나부끼고 호불호가 갈렸지만, 상대적으로 이전작들에 비해, 왕가위의 할리우드판 레시피, '블루베리 파이'는 껄쩍지근한 편이었나보다. 자기복제에 대한 토악질을 해놓은 분도 있더만.

그러나, 나는 한입 베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었다. 바람결에 부대끼는 혹평, 왕가위의 나르시시즘과 매너리즘에 대한 비판은 그저 뒤로 돌리고. 늘 마지막으로 남는다는, '블루베리 파이'를 남겨둘 수 없었다. 손님의 간택을 받지 못해, 지독한 외로움 때문에 자기 이름도 잊어먹을지도 모를 그 파이를. 블루베리 파이 사이사이 흐르내리는 우유를 온몸으로 핥고 싶은 기분이 들 정도로.

나는 모든 감각을 열었다. 신경을 늘어뜨렸다. 최대한 느슨하고 흐리멍텅하게. 흐트러질대로 흐트러져도 된다. 왕가위의 (장편)전작주의자로서, 그의 영화를 보는 나름의 방법을 터득한 터. 전작들이 투사되면 되는대로, 나는 그저 블루베리 파이를 부유하는 우유처럼 흐른다. 그것이 내가 왕가위를 대하는 방식. 그 남자, 왕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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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있는 사람들

똑같다. 현란한 카메라워킹과 화려한 색감의 향연 속에서도 그의 페르소나들은 여전하다. 사랑하고 이별하고, 기쁘다가도 아파하고, 고독하고 외롭고 쓸쓸하다. 부박한 삶은 또한 니힐하다. 주룩주룩 흘러 내린다. 기쁨, 슬픔, 웃음, 울음, 관심, 무관심, 쾌활, 우울, 안정, 불안, 온순, 분노, 연민, 감탄, 암담, 황홀, 고뇌, 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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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자, 엘리자베스(노라 존스). 세상 모든 실연의 아픔은, 혼자 떠안았다. 그녀에겐 더 이상 열쇠가 없다. 언제든 문을 따고 들어갔던 그곳엔, 이젠 다른 여자가 차지했다. 사랑을 잃고 징징거리는 캐릭터는 여타 전작들에선 대부분 남자들이 맡았던 캐릭터. 카페의 마지막 성찬, 그러나 간택받지 못한 블루베리 파이만이 그녀를 위로한다. 물론 그 파이는 바로 제레미(주드 로)의 페르소나. 거부하고 싶은 실연을 안고 떠나는 그녀는, 그저 차를 갖고 싶다. 어디로 몰 것인가는 자신의 의지. 사랑은 어디에도 있고, 이별도 어디에도 있더라. 누구에게나, 스토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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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제레미는 누군가의 절실한 부름을 받고 싶어한 남자가 아니었을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하고, 다른 이의 이야기가 담긴 열쇠를 모아두던, 자신의 이야기엔 인색하던 그 남자. 그의 사연을 추정할 수 있는 에피소드가 있지만, 그는 그저 기다릴 뿐이다. 마지막 남은 블루베리 파이처럼. 엘리자베스가 주소 없는 편지를 통해 자신을 객관화하는 동안에도 그는 그저,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언제 돌아올지 모를 그녀의 예약석을 만들어놓고. 블루베리 파이 또한 주인을 기다렸겠지. 그를 간택할 수 있는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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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바랜 사랑의 집착에서 벗어나고픈, 그리고 고통 받은 이 여자. 왠지 가장 끌렸다. 수린(레이첼 바이스). 이유는 모르겠다. 아마도, 너무도 스타일리쉬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녀가 지닌 아픔에 비하자면, 이상할 것 같지만, 묘하게 그것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애초 고독한 사람이었다. 남편을 만나게 된 계기도 그렇고, 그 남편의 집착에 못이겨 떠난 것도 그렇다. 온몸에 고독을 덕지덕지 바르고 있던. 결국은, 죽은 남편의 외상값까지 갚고, 당분간 그 계산서를 벽에서 떼지 말아줄 것을 부탁하고야 말던 이 여자. 마을 사람들이 그 사람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함이라던. 나는 그 말을 하는 순간이 가슴에 박혔다. 어찌할 수 없이 고독을 아는 여자. 롱테이크 한 순간으로 나를 사로잡아 버린 여자. 참고로, <아비정전>에서 장만옥이 맡은 역할의 이름이 '수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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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버거워서, 미워서, 카지노를 전전하던 이 여자, 레슬리(나탈리 포트만). 거침 없고, 쿨한 것 같지만, 가슴 속엔 결국 상처가 있다. 아버지의 존재를 잊고 싶지만, 결국엔 아버지의 사랑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게다. 포커판에서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고 큰 소리 치지만, 자신의 마음은 알지 못하는 바보 같은 사람. 나탈리 포트만은 하루하루 커지는 배우 같다. 더구나, 몸매까지 저렇게 착해주시니,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군. 스칼렛 요한슨과의 <천일의 스캔들> 왕 기대!

왕가위가 내린다

굳이 스토리를 따라가지 않았다. 나는 그저 우유처럼 흘러내리는, 감정의 찌꺼기들을 눈으로 핥고 음미했다. 엘리자베스의 실연 여행도, 그리고 제레미와의 재회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어떤 기억을 품은 스크린에 들러붙어서 서식하고 있었을 뿐. 노라 존스의 끈적끈적한 음색과 기름진 영상이 나는 나쁘지 않았다. 그저 몸을 맡기고 의식을 내동댕이 쳤으니까. 나는 그들과 함께, 블루베리 파이를 함께 나누고 있는 기분. 당신에겐 모르겠지만, 내겐 맛있는, 블루베리 파이!

실연은 어떤 식으로든, 해석될 수 없더라. 영화도 그랬고, 나에게도 그랬다. 그저 몸을 맡기고, 실연과 함께 하는 것. 왕가위의 영화가 그러했듯. 비가 내리면, 우산을 펼 때도 있고, 그냥 비를 맞을 때도 있다. 그런데 왕가위가 내리면, 우산보다는 그냥 맞고 지나는 것이 훨씬 낫더라. 나는 그렇더라.  
 
2008/03/05 - [메종드 쭌/그 사람 인 시네마] - 지독한 갈증과 슬픔, 그리고 왕.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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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내린 빗방울 수 만큼의 기다림이나, 우주를 수놓은 별들의 수만큼의 그리움,
은 당연 아니다. 이런 기다림과 그리움은, 아주 지독한 사랑을 할 때나 가능한 일이고.

그럼에도, 그 이름이 호명될 때면,
나는, 가뭄 끝에 내리길 바라는 짧은 비만큼의, 어떤 기다림을 품는다.

그 이름, 왕가위.
신작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부터, 기다리고 있다.
마침내, 그런 왕가위가 내린다. 비처럼.

이름하여,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언제나처럼, 그 속엔, 어떤 '사랑'과 '이별'의 풍경화가 펼쳐지리라. 기억과 상처 역시 품은.
(왕)가위 감독이 미국 할리우드에서 찍은 첫 장편영화라는 타이틀이 붙은 이 작품.
주드 로, 노라 존스, 나탈리 포트만...
양조위, 장만옥, 장국영 등이 아닌, 새로운 조합이 만들어놓을 가위's World는 어떨까.
블루베리 파이와 함께, 어떤 밤들을 지새우면 '블루베리 나이츠'로 명명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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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인 평이 그닥 좋은 것 같진 않다만, ( ☞ 의아할 정도로 가볍고 퇴행적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
이같은 평 또한, '왕가위'라는 이름값에 붙은 기대값 때문에 그러하지 않겠는가.
사실 중요한 건, '왕가위'를 만난다는 사실.
지난 <2046>때처럼, 다시 4년을 기다린 끝의 만남.
나는, 그저 '블루베리'를 냉큼 베어먹을 준비가 돼 있다.
설혹, 그것을 먹고 배탈이 난다 하더라도, 어쩔 수 있나.
'블루베리'를 선택한 건, 결국 나인걸.

이번엔 어떤 사랑과 기억이, 스크린을 지배할까. 궁금하다.
그런 면에서, 내게 가위 감독의 최고작은, <동사서독>이다.
그 황량한 사막에서 펼쳐진 서사시의 운율을, 상처에 할퀸 외로운 군상들의 사랑에 대한 기억과 슬픔을,
나는 환상처럼 품고 있다. 어쩌면, 실제보다 기억 속에서 더 부풀려졌을 영화의 감흥.
간절하고, 또 간절하면서도,
누르고 묻을 수밖에 없었던 어떤 사랑과 기억 한자락.
마시면, 지난 기억을, 지난 일을 모두 잊게 해준다는 술, 취생몽사(醉生夢死 : 본뜻은, 술에 취하여 자는 동안에 꾸는 꿈 속에 살고 죽는다는 뜻으로, 한평생을 아무 하는 일 없이 흐리멍덩하게 살아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그리고 그들만의 농담. 잊으려 하면 할수록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이 기억임을 아는 두 사람만의 어떤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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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좋아라~한다.
개거품 물면서, 바라보는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홍상수 감독의 영화-지금까지의 작품 모두-에 나는, 만족하는 편이다. 대부분 작품(아니, 모든 작품이라 해도 무방하겠다)은 남자들의 찌질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찌질한 남자의 모습을 담아놓은 박물관이라고나 할까.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수컷인지라, 나는 그들을 통해 내 안의 찌질함을 되새김질 한다. 쿨럭.^^;; 일정 부분 불편하면서도, 동의할 수밖에 없는. 그런 한편으로 우리 상수 감독께서는 내 안의 지적허영심을 충족시켜주기도 한다. 나는, 역시나,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속물이다. 흐흐. ^^;

그런 상수 감독의 신작이 곧 개봉한댄다. <밤과 낮>. 오, 이 무슨 심오한 제목이란 말인가.
나는, 역시나 그 신작을 기대한다. 밤에 볼까, 낮에 볼까, 그 심오한(!) 고민을 해대면서.
조만간 개봉할 그 영화를 기다리면서,
나는 한 영화를 떠올렸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 젊은 배우를 기억의 숲속에서 끄집어냈다.

내게, 상수 감독의 작품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꼽으라면,
현재로선 <오! 수정>이다.
우연과 의도 사이에서,
찌질한 남자들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수정을 기억한다.
그 수정 역할을 한 이가 고 이은주.

나는, 이은주를 <오! 수정>에서 발견했고,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눈에 넣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그는 영영, 떠났다. 그렇게 떠나는 것, 완전 노땡큐인데.
벌써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2005년 2월22일.
영원히 스물다섯에 머문 그는, 이제 박제된 초상이다.
생전 외로웠다던 그를 생각해서일까.
그의 소속사였던 나무액터스에서는,
더 이상 그를 슬픔 속에 기억하지 않기 위한 '추억의 밤'을 연댄다. 역시나 그는 혼자가 아닌게지.
☞ 故 이은주 '추억의 밤', 그녀 떠난 날 열린다

나는,
그를 발견한 <오! 수정>을 보면서,
그를 기억하련다.

어때, 당신은, 이은주를 기억하는가?
당신에게, 이은주는 어떻게 기억돼 있어?

아래는,
3년 전, 그가 떠난 뒤,
그를 추모하며 바람에 날려 보낸 글.

========================================================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인기절정에서도 혼자였던 故이은주씨를 추모하며

하루가 길기만 하고 홀로 밤을 맞은 당신.
혼자인 밤, 인생의 어려움은 모두 맛본 듯이 느껴질 때, 아직 포기하지 마세요. 누구나 울기도 하고 누구나 상처를 입으니까요.
모든 것이 잘못됐다고 느껴질 때, 그때가 바로 함께 노래를 불러야 할 때입니다. 하루가 밤처럼 어둡고 혼자일 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질 때, 인생의 쓴맛을 충분히 맛봤다고 느껴질 때, 그때 포기하지 마세요. 누구나 상처를 받는 법이죠, 친구들에게 위안을 찾으세요.
자신을 포기하지 마세요, 혼자라고 느껴지는 순간에도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R.E.M 의 (번역)가사
박운정/음악칼럼니스트 씨네21 491호 <그런지 시대를 연 남자들-R.E.M>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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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수정>에서는 우연인지 의도인지 모를 엇갈린 사랑의 기억을 만드는 역할을 맡았다.

배우 故이은주씨. 영원한 스물다섯으로 대중들의 뇌리와 가슴에 박힌 사람. 지난달 예기치 않게 세상과 절연하면서 세상을 놀라게 했지만 시간은 흐르고 있다. 그가 거부해버린 시계 초침은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거역할 수 없는 일상의 무게다. 그는 남아있는 대중들의 일상에서 차츰 지워질 것이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지독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 에 대한 추앙의 흔적이 온갖 미디어를 통해 태풍처럼 지나간 시간. 안타까웠고 아까웠다. 더 이상 그의 새로운 모습을 스크린이나 브라운관을 통해 엿볼 수가 없다. 그도 여느 요절 유명 연예인의 초상마냥 그리움의 대상으로만 박제된 셈이다. 10여 편의 필모그래피. 그 사람이 문득 떠오를 때면, 이제 그 남은 흔적들만이 우리에게 말을 건넬 수 있다.

대중의 추앙을 받으며 인기와 부를 얻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 누구나 울기도 하고, 누구나 상처를 입음에도, 나는 어리석게도 그들이 조금은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나보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혼자였던 사람’이었다. 미디어를 통해 공개된 유서의 일부를 통해 ‘참 힘겨웠나보다’라고 생각했다. ‘이제 그만’이라는 혼잣말을 던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여느 사람살이의 힘겨움을 토로했다. 춥고 어두운 그의 방이었나보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라고 했던 그. 그가 얼마나 외로워했는지, 그에게 가해지고 있는 현실의 무게감이 무거웠을는지, 그저 어림짐작하고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한편으로는 슬프다. 진즉 좀더 따스한 손을 내밀지 못한 팬으로서 말이다.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

스크린상에서 만난 그는 아름다웠고 주체적이었다. 자신만의 캐릭터를 구축했고 자신의 마음이 가리키는 방향을 주시했고 움직였다. 슬픈 비극을 예고하는 가운데서도 꿋꿋함을 잃지 않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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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점프를 하다>에서 태희역을 맡았던 이은주씨


시공간을 훌쩍 뛰어넘은 사랑의 판타지를 묘사했던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이씨가 맡은 태희는 유난했다. 두근거리는 첫 만남의 설렘과 진실하고 열정적으로 나눈 사랑의 시간. 그러나 예기치 않게 닥친 비극을 뒤로 하고 태희는 빙의였건, 환생이었건, 옛 사랑과 해후한다. 가슴에 박힌 그 ‘사랑’은 이성애의 신화에 발목이 묶여 보수적인 성 정치학의 한계를 드러내면서 ‘번지점프’를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이씨의 연기는 인상 깊었다. 자신의 앞에서 주춤대던 인우를 이끌면서 실루엣 왈츠를 추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었다. 그는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그랬다. 사랑을 위해 주체적으로 손을 내밀고 말을 건넸다. 혼자이지 않았다.

그리고 <연애소설> 역시. 경희(이은주)는 사랑하는 지환(차태현)이 자신의 친구 수인(손예진)을 사랑함을 알았지만 꿋꿋했다. 경희는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행동했다. 상처를 품고서 끝까지 꿋꿋하게 희망을 품던 모습도 있었다. 지환에게 어느 날 “내 장례식에 와 줄 거지”하며 죽음이 안겨다주는 두려움과 슬픔을 목 넘기던 그였다. 서로의 상처를 다독이고 위로 한줌 나눠가지던 그였다. 친구를 잃고 자신마저 흔적을 지워야한다는 사실을 얼마나 인정하기 싫었을까. 그럼에도 극 중의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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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에서


연애의 과정을 해부하던 <오! 수정>에서도 그는 과감했다. 우연과 의도. 엇갈린 사랑의 기억을 만드는 수정을 연기하던 이씨는 묘한 공명을 만들어냈다. 가슴이 시린, 그러면서도 사랑의 속살을 한 꺼풀 뒤집어주던 수정은 이씨에 의해 생명감을 얻었다. 여성을 울타리에 가둔 <태극기 휘날리며>였지만,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집안을 이끈 강인한 모습을 보였고 헌신했다.

이제 당신이 행복해졌으면 합니다

혹자는 이씨의 죽음을 필모그래피에서 맡은 배역과 연관 짓기도 하지만, 외려 그는 대개 주체적인 역할을 맡아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증명하고, 서로의 상처를 다독였다고 생각한다. 그런 모습에서 그에 대한 매력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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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휘날리며>에서

현실의 그가 어떠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누군가 좀더 가까이에서 손을 내밀어줬으면 좋았을 터였다. 많이 울었을 터이고 상처도 여기저기 곪아 있었을 그가 누구에게든 함께 노래를 불렀어야 할 터였다. 친구들이 그가 포기하지 않도록, 혼자가 아님을 각인시켜줬으면 하는, 유효기간이 지난 넋두리도 해 본다.

그저 언제 들어도 힘을 주고 마음을 달래주는 노래나 영화가 그에게도 있어서 그를 붙잡을 수 있었다면.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그의 영화가 누군가에게는 힘이 되고 희망을 줄 터인데 그에겐 정작 그런 것들이 없었던 것일까 하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마음에 힘이 되는 그런 존재들이 너무도 아쉬운 이 팍팍하고 지리멸렬한 현실. 그래도 남은 자들은 버티고 견뎌야 한다. 세상은 분명 우릴 속이고 있지만, 우리 곁에는 너와 내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아주 사소하고 작은 일에도 웃고 기뻐할 수 있는 너와 내가 있음으로 인해 우리네 사람살이는 그렇게 지탱된다.

때늦은, 부질없는 넋두리겠지만 그에게 건네주고 싶은 말이 있다.

“이제 당신은 혼자가 아니랍니다. 이제 당신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당신에게 끝은 없습니다.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던 당신이었지만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라는 말은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한해가 지나면 나는 한 살이 또 늘겠지만 당신은 영원한 스물다섯으로 남아 당신을 부러워하는 날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아득하게 멀게만 보이고 당신을 끄집어내는 날은 그리 많지 않겠지만, 그리 쉽게 잊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도 당신이 그리운 날은, 당신의 흔적이 남은 영화들을 ‘잠깐 일어나봐’하며 깨워서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땐 귀찮더라도 잠시 와 주세요. 살짝 내 머리맡에 혹은 내 가슴속에 잠시 들어와서 서로 혼자가 아님을 확인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출연한 <번지점프를 하다>의 마지막 장면에서 인우가 읊조렸던 나레이션을 다시 한번 건넵니다.”

인생의 절벽 아래로 뛰어 내린대도,
그 아래는 끝이 아닐 거라고
당신이 말했었습니다.
다시 만나 사랑하겠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합니다.

(2005. 3 국정넷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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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 레저를 그리고, 떠올린다...

아직은 그의 영화를 선뜻 볼 용기는 나지 않지만,
인터넷에서 회자되는 이 장면은 히스가 정말 행복하게 연기를 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10 Things I Hate About You)>에서
'Can' take my eyes off you'를 쌩으로 불러대는 이 장면.


언젠가, 히스 레저는 연기를 하는 이유에 대해,
"오직 재미있기 때문"이며 "언젠가 재미가 없어지면 떠날 것"이라고 했다는데...
떠난 이유야 어떻든, 그는 떠났고, 그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이 영화, 언젠가 꺼내보고 싶다.
히스 레저를 좋아하는, 그의 떠남을 애석해 한 이들과 함께.

아, 띠바랄.
죽음은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아...

더불어 오늘,
구름의 저편으로 떠나신 한 선배의 아버님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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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질 수 없는, 버려져선 안되는 생의 사랑 by 필감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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