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빠바바바 바 바바, 빠바바바 바 바바... 하고 사운드가 기어나올 때,
나는 이미 넉다운이었다. 이런 감격이 있나, 허. 눈물까지, 시큼.

<대부>를 필름으로 첫 대면하는 그 순간.
이제야 필름 스크린으로 알현하게 된 송구스러움도 꾸물거리고,
지금에라도 필름으로 대면할 수 있게 됐다는 뿌듯함도 꿈틀대고,
아, 그 때 그 순간의 느낌을 글로 표현하기엔 내 필력이 딸릴 뿐. 띠바.

<대부>가 고전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렇게 보고 또 봐도, 여전히 새롭고 흥미진진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 빌어먹을 가족 서사는 지금에서도 충분히 현실을 향한 사유를 가능케한다.
하긴 어느 시대에든, 이 서사가 사유와 흥분을 멈추게 할 리는 없지.


아울러, 말론 브란도가 아닌 돈 콜레오네는 상상 불가능.
나의 상상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탓해도 어쩔 수가 없다. 된장.

그가 떠난지 6년.
그의 마지막이 어땠는지 모르지만,
돈 콜레오네가 쓰러질 때의 모습과 오버랩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러니까, <대부>에선, 시쳇말로, 브란도의 미친 존재감!이 캐작렬.

말론 브란도를 그렸다.
지난 1일이 6주기였다. 아래 기고문은 그래서 나왔다.

p.s. 지난 5월에 개봉한 <대부>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은,
아직 극장(씨네코드 선재)에 걸려있다. 놓치지 않길 권한다.
특히, 필름으로 아직 <대부>를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아니면, 오는 30일 팡파레를 울리는,
서울아트시네마의 2010 시네바캉스 서울!

그 바캉스 시즌에 <대부>가 역시 껴 있다는 즐거운 소식.
8월8일(일) 김영진 평론가의 씨네토크와 함께 펼쳐지는 <대부> 박항스~
13:00다. 엔간하면 가야지, 생각하고 있다. 혹시 만나면 가벼운 눈인사라도. ^^



말론 브란도, 아버지였지만 아버지를 부정한 이름
예술이 지녀야 할 자세에 대하여


지난 5월 <대부>가 재개봉했다. 국내 개봉이 1977년(미국은 1972년)이니, 33년 만이다. ‘디지털 리마스터링’한 이번 버전은, 향수와 함께 바뀐 세대의 스크린 경험을 위한 것이겠다. 그러니,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있나. <대부>는 그렇게 다시 왔다.


스크린을 통해 처음 만난 <대부>는 위엄 있고, 웅장했다. 경건함과 비장미까지 갖춘 고전적 서사의 재등장이었다. <대부>에 대한 개인적인 애정을 감안한다면, 이는 후광효과에 기댄 감상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다. <대부>는 표피만 놓고 보자면, 마피아 협잡극에 불과하니 말이다. 물론, 이것은 <대부>의 진짜 가치를 모르는 오해가 되겠다. 마피아로 포장됐을 뿐, <대부>는 당시 1970년대 시대상황과 연관된 문화적 산물이자 서사였다.


마리아 푸조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대부>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영화로 우선 각인돼 있다. 재능 있는 신예 감독에서 이 영화로 거장 대열로 성큼 올라선 코폴라의 연출력이 <대부>를 만신전에 올려놓은 일등 공신이다. 마피아 세계를 그들만의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인류학적으로, 뭣보다 누구도 자유롭기 힘든 가족서사로 <대부>는 여전히 우리의 폐부를 찌른다.


돈 콜레오네였던 사나이


그 핵심에, ‘돈(비토) 콜레오네’가 있다. 가족과 패밀리의 질서를 확립한( 것처럼 오해받는) 가부장, 돈은 <대부>의 핵심이다. 그것은, 또한 말론 브란도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한때 제임스 딘도 선망했던 메소드 연기의 달인이었던 그는, 당시 전성기가 지난 처지로, 제작사는 그의 캐스팅을 극구 반대했다. 코폴라의 고집이 위대한 <대부>를 만들어냈지만, 돈을 스크린에 현현시킨 것은 전적으로 브란도의 공이었다.



여기, <대부> 카메라 테스트에서의 일화. 브란도는 구두약을 머리에 발라, 비토의 헤어스타일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소설 속 인물이 불도그 같이 생겼으니, 화장지를 입안 양쪽 볼에 집어넣었다. 늙은 얼굴과 염색, 어눌한 말투까지 곁들여 우리가 아는 비토, 대부는 창조됐다. 그가 어떻게 연기를 하는지, 메소드 연기의 달인이라는 별칭이 왜 붙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다.


한편으로 브란도가 비토를 맡은 것은 아이러니다. 현실이나 스크린에서 그는 아버지를 거부하고, 아버지의 질서에 저항한 인물이었다. 젊은 시절 그의 연기는 노동자 계급의 것에 가까웠다. 앞선 남자 배우들이 도덕군자와 정의의 사나이에 붙박인 캐릭터를 연기했다면, 그는 달랐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주목받은 그는 <비바 자파타> <워터 프론트> <아가씨와 건달들> 등을 통해 소외계층을 대변하는 반영웅으로 각인됐다. 그는 당대 미국의 변화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1950~60년대 젊은 미국에게 어울리는 배우였다.


침체기였다고는 하나, 그런 반영웅이 선택한 <대부>는 의외였다. 말하자면, 돈 콜레오네는 가부장의 화신이다. “내 말이 곧 법”인 마피아의 절대군주로, 모든 질서를 관장하는 절대자 아버지. 세월에 굴복한 것일까, 그도 늙은 것일까. 아버지가 만든 기성의 규율에 반항하고, 투쟁했던 그가 전성기 이후에 택한 배역이 아버지라니.


버르장머리 없는 거친 짐승 같은 그가 한 순간에 바뀔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대부>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자가 됐지만, ‘할리우드의 인디언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이유로, 그 항의의 표시로 수상을 거부했다. 그의 반항 기질과 퇴폐적인 매력은 불혹의 나이에도 어딜 가지 않았다. 그 안에 내재된 짐승을 어찌하겠는가.


파리에서의 한 가지 표정, 브란도


<대부>의 선택이 아버지의 규율에 편입하기 위한 수순은 아니었다. 브란도의 다음 선택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였다. 그의 표정은 180도 달라졌다. 도시의 무감과 삶의 비루함을 담은 얼굴. 부성의 체화가 불러온 반발이었을까. 신랄하고 퇴폐적인 폴로 변신한 브란도의 무기력한 정사가 이어졌다.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잔느(마리아 슈나이더)와 정사를 나누면서 그는 외친다. “네 이름을 알고 싶지 않아! 너도 이름이 없고 나도 이름이 없어. 우리는 모든 것을 잊는 거야.” 세상에 지치고 모든 것을 잊고 싶은 아노미 상태에 빠진 폴에게 이름과 과거는 거부하고 싶은 무엇이었나 보다.

한편으로 그것은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었다. 허무가 감싼 폴의 얼굴. 그것은 또한 브란도의 것이었다. 메소드 연기의 진수를 보여준 그의 증명이었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개봉 즉시 논란이 됐다. 파격적인 내용과 정사신 등으로 사람들의 입에 회자됐다. 그것은 많은 것을 담고 있었던 폴의 표정 때문이기도 했다. 한 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그 표정. 그 표정은, 1970년대의 어떤 풍경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것도 프랑스 파리.


혁명의 시대가 지났거나, 실패로 끝난 혁명 때문이었을까. 그의 얼굴에 남은 흔적은, 곧 당대 사람들이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던 표정이었는지도 모른다. 홀연히 끝난 혁명의 공허함과 목표를 잃은 도시의 욕망이 교차했던 그 표정. 이름도 성도 모르는 여성과의 섹스도 탈출구가 되지 못함을 사람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랬다. 녹슨 해방구만 남았고, 파멸을 친구 삼아야했던 처연한 고독과 적나라한 쓸쓸함만이 나부꼈다고.


내가 가장 강렬하게 파리에 가고 싶다고 느꼈던 때는, 이 영화를 보고 난 직후였다. 파리지앵의 우아한 라이프 스타일이나 자취 때문이 아니었다. 68혁명의 도시를 가고 싶다는 욕구도 아니었다. 숱한 사상과 혁명을 잉태했던 커피하우스에서 향미를 맡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나는 폴의 표정을 잉태한 파리가 궁금했다. 말하자면, 말론 브란도가 나를 유혹했다. 어떻게 그런 표정이 나올 수 있지. 파리에 가면 저런 표정이 나올 수 있을까. 물론 안다. 그건 브란도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더 이상 배역과 한 몸이 되고 표정으로 말하는 ‘말론 브란도’를 볼 순 없다. 6년 전, 2004년 7월1일, 향년 80세, 그는 영욕의 세월을 접었다. 무명 시절, 돈을 벌려고 로데오경기에 참여했다가 코가 부러지면서 매부리코를 얻었던 그는, 깔끔하고 정갈한 꽃미남이라기보다 반항을 일삼는 터프가이였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아버지의 시대를 열어젖혔을 때도, 그는 쉽게 투항하진 않았다.


그것은 예술의 자세였다. 연기에 대해 늘 회의했고, 영화배우라는 직업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며 불평했지만, 그는 연기했고, 천생 배우였다. 오직 하나였던 배우. 그 ‘하나’가 지닌 모든 것은, 세상의 모든 아버지처럼 죽었다. 아버지라는 권위에 도전하고 투쟁하는 일. 그럼으로써 자신만의 이름을 가지는 일. 그것이 버르장머리 없는 반항아의 파괴적인 일탈일지라도 시도해보자. 예술 안에서 당신안의 짐승을 깨워보자.

[문화예술 크리틱 저널 - 뷰즈 7·8월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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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매는 인간들, 살아있는 사람들…

<카우보이 비밥> 마지막 화. 이런 얘기가 흘러 나온다. "다들 줄이 끊어진 연처럼 갈 곳을 잃고 헤매고 있다." 그렇다. 2071년의 인간들도 지금과 다를 바 없나 보다. 이런 것,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굴레'일까. 에이, 웃자고 한 소리다. 심각해지지 마시라.

그런데 한참 멀어보이는 그 미래를 그리 쉽게 단정지을 수 있냐고? 오호, 당신은 진짜 미래가 알고 싶은 건가? 그렇다면 오래오래 살아라. 실은 나는 시간의 흐름을 미래니 현재니 하면서 토막내고 싶은 게 아니다. 그것이 미래든 현재든 과거든 상관없다. 단지 현실에 발을 디딘 이야기임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누군가의 언급처럼 <카우보이 비밥>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곳엔 현실에 뿌리를 박되 깨지 않을 꿈을 꾸면서 삶을 지탱하는 어떤 현실적인 인물들이 있다. 꿈, 사랑, 과거, 죽음과 삶도 있다. 누구나 공감할만한 어떤 사람살이의 풍경. 여기에 '현상금 사냥꾼'도 있다. 재미있는 직업? 맞다. 액면상으론 범죄자를 좇는 직업인데, 실은 어떤 사람살이의 풍경을 좇는 사람을 일컫는 말일지도 모른다.

보는 사람마다 나름의 것을 느낄 수 있는 묘한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은 현상금 사냥꾼을 통해 지금의 우리를 들여다보게 한다. 미래를 빙자했지만, 그건 맥거핀이다. 갈 곳 잃고 헤매긴 지금도 마찬가지니까. 알랑방귀(!) 좀 끼자면, <카우보이 비밥>은 '사람살이의 일면을 엿보고 다양한 해석을 담을 수 있는 우주 서부극'이라고 얘기하겠다. 그곳에선, 무법자들이 있고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 수밖에 없는 아웃사이더들도 있다. 이래저래 여기저기 휘둘리는 장삼이사도 있다. 인간군상은 어쩔 수 없이 가지각색이다. 미래니 현재니 들먹일 필요도 없다. 그저 사람살이!

아, 이 짙은 허망함의 성(魔性) 하곤…

과거 따윈 상관없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 이 남자, 스파이크 스피겔.


키 크고 미끈하게 잘생긴 꽃미남. 간지작렬이다. 27살의 더벅머리 총각. 과거 중국계 거대마피아 '레드 드래곤'의 간부, 현 직업 현상금 사냥꾼. 그는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되어 우주를 떠돈다. 그에게 정의니 선악이니 하는 잣대를 들이대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액면상) 목적은 오로지 현상금, 그게 전부다.

그런데 이 남자, 현상금에 쌍심지를 켠, 돈만 밝히는 기생 오라비인줄 알면 완전 착오다. 허무가 덕지덕지 묻은 품새가 우선 눈에 띤다. 허무작렬! 염세주의자? 맞다. 그 눈빛 속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배여있다. '뭐 이래? 주인공이 이렇게 우울해도 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 수도. 그렇지만 결코 무겁지만은 않다. 그의 재능 중에는 무거움을 가벼움으로 치환할 수 있는 재능도 있다.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쿨(Cool)함을 저버리지 않는 매력. 그는 본질적으로 한 단어로 설명이 불가능한 인간이다.

스파이크는 뭣보다 경계인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꿈을 꾸고, 현실과 꿈 사이에서 배회한다. 이 남자에겐 결코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있다. 잃어버린 과거, 이미 죽음을 경험한 그에게 삶도, 죽음도 어느 것도 불분명하다. 그는 삶과 죽음이 뗄 수 없는 것임을 알고 있다. 단지 스스로 어느 선상에 서 있는 지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그의 발길에 눈을 뗄 수 없고 거부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 안에 똬리를 튼 스파이크. 삶과 죽음,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실존. 그의 짙은 허무가 온 몸을 휘감는다. 내 안에, 스파이크 있다.

기름과 섞이지 못하는 물

물과 기름은 섞이지 못한다. 제길, 나는 그걸 화학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이미 그런 건 휘발된 지 오래다. 그런데, 살아보니 그렇더라. 당최 그처럼 섞이지 못하거나 겉돌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더라. 역시나 화학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어도.

스파이크는 말하자면, 물이다. 끈적끈적한 기름이 둥둥 떠다니는 세상과 화(학적 결)합(!)이 불가능한. 기름 같은 세상에 묻어갈 수 없는. 그는 대개의 사람들이 영위하는 삶과 동떨어져 있다. 둘러보라. 그런 사람들이 있다. 세상에 깊이 들어가는 것은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는 것과 같다. 그럴 때? 옷을 벗어던질 수밖에 없다.



스파이크는 그렇다면 왜, 부유하냐고? 그 부유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를 지닌 연유는 마지막 화에서나 밝혀진다. "한쪽 눈으로는 과거를 보고 다른 한 쪽으로 현재를 봐 왔지. 눈에 보이는 것만이 현실은 아니라고 생각했어… 깨지 않는 꿈이라도 꿀 작정이었는데 어느 샌가 깨고 말았지…" 현실에만 정착할 수 없는 눈, 그 시큰둥한 눈빛이 기름처럼 세상에 붙어있을 수 없는 이유를 말해준다.

궁금했다. 과연 그의 눈에 비친 하늘은 어떤 빛깔로 나타날까 하고 말이다. 우리가 푸르다고 말하는 그 하늘에 대해 스파이크는 어떻게 말을 할까.

꿈과 현실의 사이에서…

스파이크의 매력은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굳이 말 혹은 글로 표현하려는 것이 불편부당해 뵌다. 그래서 이 글은 불완전함을 품고 있다. 그는 영상을 보면서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 내 안의 스파이크는 그래야 찾을 수 있다. 스파이크는 또한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캐릭터다. 생각하게 만드는 애니메이션 주인공.

스파이크는 꿈속에서 살고 있지만 그것도 알고 있다. 생이 유한하다는 사실. 불멸에의 꿈은 그에게 가당치 않다. 죽음도 영원한 꿈으로 인식한다. 그가 천적인 비셔스와의 마지막 대결을 위해 비밥호를 떠날 때 페이(현상금 사냥꾼 동료)가 말린다. 하지만 스파이크는 말한다. "죽으러 가는 게 아냐. 내가 정말 살아있는지 확인하러 가는 거야… " 그건 현실로 돌아가는 자신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그는 자신만의 길을 거닌다. 누가 뭐라하든, 과거나 현실의 경계에서 외줄을 타든. 그리고 우리에게도 살며시 귀띔한다. "꿈을 꾸든, 현실을 살아가든, 그건 당신의 몫이야!" 멋진 놈...

(* 권하건대, 스크린에서 선보였던 극장판보다, 26회로 구성된 작품을 꼭 보시라.)


(※ 오픈아이 기고문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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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사자의 갱생기. 딱 이 한마디로 정리가 가능한 영화 <크레이지 하트>를 세간에 주목받게 한 것은, 늙은 사자를 연기한 제프 프리지스 덕분이다. 연기와 배우가 따로 분리되지 않는, 온전히 배우 그 자체의 영화. 누군가의 말마따나, ‘일생에 한번 있을 영화와 만난 경우’다. 세간의 관심을 외면하지 않은 아카데미는, 그에게 첫 오스카(남우주연상)를 안겨줬다. 아카데미나 대중 모두에게 행복한 선택이었다. 불만은 없다. 아마 영화를 본다면 당신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편으로, 나는 한쪽으로 치우친 관심 때문에 상대적으로 외면당한 이름을 꺼낸다. 진 크래드독. 그러니까, 이를 연기한 매기 질렌홀. 위험을 무릅쓰고 감히 말하건대, 매기가 아니었다면, 제프를 향한 세간의 관심도 없었다. 밤하늘의 별이 혼자 빛나는 법, 없다. 이 뮤즈, 완벽하다.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뮤즈는 생각할 수가 없다.


<크레이지 하트>의 늙은 사자, 배드 플레이크(제프 브리지스). 한때 잘 나갔던 컨트리 뮤지션이었다. 나오는 족족 히트를 쳤고, 후배 뮤지션들은 그의 곡을 받기 위해 줄을 섰다. 꽤나 많은 여성 그루피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화무십일홍. 사자도 늙기 마련이다 보니, 이빨은 거의 썩어 문드러졌고, 갈기는 숭숭 빠졌다. 축 처진 뱃살, 덥수룩한 수염, 공연이라 봐야 시골 선술집이나 볼링장 콘서트. 취미래야, 싸구려 모텔에서 포르노 틀어놓고 술을 입에 달고 있는 것. 서커스 장에서 단물 쓴물 쪽쪽 빨아 먹힌, 묘기 사자와 다를 바 없다.



이런 늙은 사자가 죽기보단 재기하는 것, 사실 익숙하다. 누군가에겐 진부할지도 모르겠다. 스크린에서도 많았을 뿐 아니라, TV를 켜거나 책을 봐도, 이런 이야기 흔하다. 황혼기에 새로운 기회가 오고, 생기를 되찾는 이야기구조 자체가 지닌 한계도 있다. 뻔하다는 관습적인 구조를 피하기 어렵다. 지난해 우리가 본 <레슬러>는, 확실히 셌다. 미키 루크라는 스토리텔링이 워낙 독보적이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자면 <크레이지 하트>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하지만, 그런 빈틈을 메운 것이 배드의 뮤즈, 진. 영화를 이끌어간 것이 배드라면, 이를 지탱한 것은 진이다. 


진은 그렇다. 뮤즈다. 늙은 사자가 더 이상 나락에 떨어지지 않고, 삶을 회생시키는 동력이다. 아니 모든 것이다. 내가 스크린을 통해 본 것도, 여느 평범한 남자의 로망이자 판타지라는 한계, 인정한다. 늙은 사자를 취재하러 온 신참내기 기자. 싱글맘. 배드는 아마도 자신이 진에게 빠지리라는 생각, 그로인해 삶(의 태도)이 바뀔 거라는 상상, 추호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잠시 거친 간이역에서 하룻밤을 나눌 상대로 생각하고 추파를 던졌을 것이다.


별 일 아닌 것에서, 사소한 것에서 삶은 균열이 일어나고, 모든 것이 변한다. 재미있다. 삶의 병적인 유머센스가 발현되는 순간. 어느 순간, 진에게 빠진 배드가 할 수 있는 것은, 다시 음악이다. 늙은 사자에게도 있던 당연히 있었던 발톱과 이빨. 진은, 사자에게 발톱과 이빨이 있음을 깨우는 조련사다. 그렇다고 채찍을 든 것도 아니요, 먹이로 유혹하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부드럽고, 조용하며, 복잡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배드의 삶에도 그렇고,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에게도 마찬가지다. 스펀지에 물 스며들듯, 그녀는 쑥 들어찬다.


알겠지만, 그건 의식적으로 상대를 대하거나 의도를 갖고 접근할 때 가능한 게 아니다. 흔해 빠진, 식상한 말이지만, 그건 ‘진심’이다. 그녀는 섹시한 몸매와 자태를 지닌, 혹은 초절정 아름다움을 지닌 미녀, 아니다. 한 순간에 사람을 뒤흔들어놓을 그런 여자도, 아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묘하게 사람을 당기는 매력을 지닌 여자랄까. 흰 티셔츠와 청바지만으로도 충분히 섹시함을 드러내는 사람.



배드가 다른 뮤즈를 만날 수 있으리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가 어떻게든 갱생하게 됐을 거라고 생각이 들진 않는다. 이야기를 진즉에 그렇게 꾸민 것 아니었냐고? 아니, 그건 온전히 매기 질렌홀이 연기한 진이었기 때문에 설득력을 획득한 거다. 앞서 언급했듯, <크레이지 하트>는 매기의 진이 있었기에 지탱가능한 이야기다. 두 사람의 교감은 사랑을 해 본 사람은 충분히 알 수 있을 거다. 사랑을 하면 사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세상이 어떻게 바뀌는지.


세상에 사람은 많지만,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그 누군가는 흔치 않다. 진이었기에 배드의 삶도 변할 수 있었고, 자신의 안에 있는 음악을 끄집어낼 수 있었던 거다. 진이라고 다른가. 그 망가진 늙은 사자와 사랑에 빠지는 것, 위험하고 앞이 보이질 않는다. 그럼에도 그녀는 안다. 진짜 나를 위하는 것, 당장 내 행복을 위해 해야 하는 것. 나쁘고 위험하다는 전제가 아니라, 그것 따위 상관없이 내 마음이 향하는 것.


그녀는 약하면서도, 강하다. 무엇보다 사랑스럽다. 두 사람 모두 결함투성이이기에 가능한 결합. 배드는 아마 나쁜 남자일 것이다. 그럼에도 진은 왜 빠졌냐고. 그건 진의 마음만 알 수 있는 거다. 나쁜 남자, 나쁜 여자라고 알면서도 우리는 사랑에 빠진다. 늘 완벽한 사람을 만나는 것, 아니잖나. 우리는 늘 부족한 무언가를 채워주고, 채워지기를 바라면서 살고 있다.


진이 이 영화의 주춧돌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뭣보다 배드가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진짜 사랑은, 자신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거다. 육체에 빠져도 좋고, 마음 씀씀이에 혹해도 좋다. 그럼에도 나는, 조금이라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나를 만나게 해주는 그런 사랑에 혹한다. 진이 배드에겐, 그런 사람이다. 그건 의도한 것도 아니요, 바꾸길 원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자연스러운 마음과 몸의 흐름이 세계를 바꿔놓은 것이다.


사랑에 빠진 진이 배드에게 했던 이 말, 아직 생생하다. 다친 몸으로 진의 침대에서 음악을 만드는 배드에게 건넨. “당신이 내 침대에서 그 노래를 부르고 있잖아! 당신은 떠날 테지만 난 침대에 누울 때마다 그 노래가 생각날 거라고!” 마음이 짠... 사랑하는 당신과 나눈 사소한 시간, 그것이 10초, 1분에 지나지 않을 거라도, 마음은 그냥 저장하고 마는 걸. 내 기억은 그렇게 당신을 담아버리고 마는 걸.


어떤 자극적이고 화려한 아름다움보다 더 마음을 움직인 여자, 진을 연기한 매기 질렌홀은 제프 브리지스에 비해 저평가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온전하게 이 영화를 함께 지탱한 양대 축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크레이지 하트>에 대한 찬사를 한다면, 마땅히 그녀에게도 가야하고, 그것만이 찬사가 온전해질 수 있다. 티셔츠와 청바지, 스니커즈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섹시하고 멋진 여자, 진. 이 영화, 늙은 사자의 갱생기도 맞지만, 뮤즈의 힘을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겠다.



매기는 이 한편으로 내가 모셔놓은 배우 만신전에 올라섰다. 비록, 올해 오스카 여우조연상 후보에만 오르고 수상은 놓쳤지만, 뭐 어때. 수상자만 기억하는 ‘더러운’ 오스카보다 나의 만신전에 올라 영원히 내게서 남아 있는 것도 나름 괜찮을 듯. 그녀는 이제 나의 여신, 아니 뮤즈. 이 여자, 정말 사랑스러워 미치겠다!!! 


참, 만신전에는 누가 있냐고? 천천히 말해주마. 기다려주시라. 싫음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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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2003년 12월9일.

요즘과 같은 강추위가 강타하던 그날,
혜화동 부근에서 한 사람이 추위에 떨다 숨을 거뒀다.
그야말로, 동사. 누구도 챙기지 않은 혹은 외면한 죽음.

나는, 그 사실을 뒤늦게 접했다.
2005년 김동원 감독님(<송환> <상계동 올림픽> 등)께서 국가인권위에서 제작한 옴니버스영화 <다섯개의 시선> 가운데 <종로, 겨울>을 연출하신단 소식과 함께였다.


오늘 모진 추위, 알코올 유혹을 뿌리치고 '서울독립영화제(서독제)2009'를 찾았다.
세상엔 알코올보다 더 좋은 것들이 있으니까! ^.~ (음, 인간이 초큼 학실히 달라졌다;;)

영화는 장률 감독님의 <이리>.

그것 자체로도 뿌듯했는데, 상영 직전에 꺄아아아아아아~ 소릴 지를 뻔 했다.

내 앞앞자리에 김동원 감독님이 성큼 앉으시는 것 아닌가!!!!!!!!!!!!!!

역시 잘 왔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면서,
3년 전 뵀을 때와 함께, '아, 이 즈음이었지'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글의 처음에 언급했던 그 사람, 고 김원섭 씨.
우리의 무관심으로 차디찬 고국 땅에서 동사할 수밖에 없었던. 

영화를 본 뒤, 냉큼 김동원 감독님께 꾸벅, 인사했다.^.^
당연히 감독님은 날 기억하지 못했지만, 굳이 얘기하진 않고,
사진을 부탁드렸다.

언제 다음 작품을, 내년에는 볼 수 있냐는 질문에, 수줍은 미소를 지으시면서 확답을 못하시던 감독님.
"괜찮습니다. 계속 기다릴 수 있습니다." (-> 내 마음 속)

간단히 감독님께 작별 인사를 드리고,
바깥 무시무시한 추위를 온몸으로 맞닥뜨리며, 종로통을 거니면서,
6년 전 길바닥에 쓰러져 살을 에는 추위에 덜덜 떨고 있었을,
무엇보다 조선족이라는 이유로, 마음 깊이 후벼파는 추위에 더욱 쓰라렸을,
김원섭 씨를 떠올렸다.

흥청망청 종로의 밤은 깊어갔고,
나의 마음에도 밤이 내렸다.
오늘 나는 얼마나 많은 타인의 아픔과 상처를 스치듯 지나갔는가.
봉석아, 오늘 너의 아픔을 충분히 위로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죽을 때까지 외로웠을 김원섭 씨, 다시 한 번 미안합니다...

김동원 감독님을 만나뵀던 3년 전의 인터뷰를 꺼냈다.


"동북공정엔 흥분하면서 그 땅에 사는 동포엔 왜?..."

2년전 세밑을 앞두고 흥청거리던 서울 종로구 혜화동 골목통에서 한 조선족 동포가 동사한 채로 발견됐다. 경찰 지구대 사무실에서 불과 20여m 떨어진 장소였다.

고(故)김원섭씨. 그 날의 사건을 신문은 이렇게 전하고 있었다.

"법무부의 장기 불법체류자 단속을 피해 농성을 해오던 중국동포가 체불 임금을 받으러 나간 뒤 하루만인 9일 새벽 서울 도심 거리에서 동사한 채 발견됐다. 이 중국 동포는 숨지기 전에 112와 119에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구조를 요청했으나, 도움을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출신의 김씨에게 고국의 품은 차가웠다. '잘 살아보겠다'며 조국을 찾아와 공사장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던 김씨에게 고국의 기업은 임금을 체불했다. 정부는 장기 불법체류자라는 딱지를 붙여 김씨를 강제추방 대상에 넣었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추위 속에서 헤매던 그가 십여 차례 이상 119, 112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지만 의사전달이 제대로 안돼 구조의 손길을 받지 못했다.

불법체류로 체불의 고통을 받았던 우리의 한 재중동포는 차디찬 골목바닥에서 주린 배를 움켜쥔 채 죽어갔다. 그는 '동포'였지만 '우리 안의 타자(他者)'였다. 차별과 소외가 내재화한 사회. 그런 엄혹한 현실은 그를 사지로 내몰았다. 어떻게 보면 김원섭씨는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타살'을 당한 셈이다.

독립영화계의 대부이자 정신적 지주로 불리는 '송환'의 김동원 감독이 이번에는 동사한 조선족의 흔적을 좇았다. 옴니버스 인권영화 '다섯개의 시선' 중 '종로, 겨울'을 연출한 우리의 어떤 시선이 조선족 동포를 동사하게 만들었는지, 왜 그는 죽어갈 수 밖에 없었는지, 짧지만 굵은 이야기를 풀어냈다.

김 감독은 "차별받는 사람들을 불쌍한 시선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차별하는 상황들을 스스로 인식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한번쯤 돌아보게끔 하고 싶었다"고 연출의도를 밝혔다.

다음은 29일 서울 신대방동에 위치한 푸른영상에서 김 감독과 나눈 일문일답.


-  이번 영화의 참여 제안은 언제 받았으며 중국동포에 대한 이야기를 찍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지난해 8월 인권위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제안을 받고 상계동 철거민(<상계동 올림픽>)이나 비전향장기수(<송환>) 뒷얘기 등 다른 것들도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전에 고 김원섭씨에 대한 이야기가 가슴에 맺혀 있었고 이를 풀고 싶었다.

또 조선족동포를 바라보거나 우리의 역사에 대한 시선 때문에 이 문제를 택했다. 우리는 만주 땅을 찾고 싶어 하면서도 그 땅에 있는 동포한테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또 이쪽 동포들은 다른 이주노동자보다 더 차별받는다. 재외동포법에서도 미국과 유럽과 같은 제1세계 동포보다 한국에서의 권리를 차별받고 있다. 이 문제를 물고 늘어지고 싶었다.
 
- 처음 고 김원섭씨에 대한 뉴스를 접하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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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물론, 낚시질이다.^^;;

그렇다고 영원히 낚시질로 끝나질 않았으면 좋겠다. 

즉 어느날, 그것이 현실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서울독립영화제(서독제)2009를 유영하고 있는 지금.

반짝반짝 빛나는 영화들과 영화인들을 만나면서, 나는 나름 그것을 즐기고 있다.  

온전하게 거기에만 에너지를 쏟을 순 없지만.

 

그런 와중에, 씨네21에서 오다기리 조의 인터뷰를 접했다. 

알다시피, 나의 빛나는 완소배우.

 

그는 최근 대학생국제평화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한국을 찾았다.

인터뷰는 그런 일환으로 이뤄졌는데,

그는 역시나 내 마음을 흔들어놓을 줄 아는 배우다.

 

내 마음을 흔든 그의 발언은 이거다.

"벌써 10년 정도 일하고 있는데 일하다보면 생각할 게 많다.

내 요구뿐만 아니라 이 시대, 사회가 뭘 원하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여느 배우와 다른, 좀더 특별한 포스와 아우라를 갖고 있다.

예술가연 한다거나  스타성을 좀더 발휘한다는 그런 뜻은 아니고. 

그렇다고 그에게 '사회적(성) 배우'라고 레떼르를 붙이고 싶진 않다.

 

그는, 사회적 발언과 행동에 적극 나서는 조지 클루니와도 또 다르다.  

물론 나는 스타 혹은 배우가, 꼭 그래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밤하늘의 별처럼 만질 수 없으나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것이 스타 혹은 배우의 존재이유이며 우리가 원하는 것도 그런 것이니까.

연기 등을 통해서 주는 즐거움도 빠질 순 없겠지.

 

그럼에도, 나는 오다기리 조가 주는 마음의 환기에 더욱 마음이 간다.

내가 사는 이 땅에도 오다기리 조와 같은 배우(스타)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우리 사는 이 세계를 염려하는, 시대와 사회가 원하는 것을 고민하는.

 

오다기리는 인터뷰를 통해,

한국영화계의 제안이 오면 기쁘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했다.

대학생국제평화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게 된 것도,

영화제쪽에서 제안한 결과다. 아마 해당영화제쪽도 큰 기대는 않고 제안한 것이리라.

 

그래서 생각했다.

우리의 인디영화가 그를 영화에 출연시키거나,

서독제의 심사위원으로 참여시키는 것은 어떨까. 

물론 타이밍이 가장 중요하다!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만나는 '오다기리 조'.

관객 입장에서는 얼마나 가슴 설레는, 벅찬 일인가.

서독제와 궁합도 잘 맞을 것 같은데, 당신은 어떤까.

 

가까우면 더욱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언젠가 이뤄진다면,

나는 더덩실 춤이라도 출테오. 

 

그렇게, 오다기리 조를 만나고 싶다.

 

인터뷰 한 대목을  잠시 인용하자면.

- 이번 영화제 참가뿐 아니라 부쩍 한국에서의 활동이 많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

그 이유는 내가 더 궁금하다. (웃음) 생각해보니 타이밍이 아닐까 싶다. 최근 들어 일본영화계에 비해서 한국영화계가 더 발전했다. 한국은 작품성있는 영화가 꾸준히 생산되는 곳이고, 좋은 감독도 많다. 그러다보니 나 역시 한국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세상 모든 아들들의 엄니 … ≪도쿄타워 :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미시적인 반항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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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석. 누군가에겐 생소한 이름일지 모르겠는데, 배우다.
영화배우이기도 하고, 연극배우이기도 한. TV에도 나온 바 있는.

뜬금없이 이 이름을 꺼낸 건, 그가 주연으로 등장한 영화가 개봉해서다.
영화의 제목하야, <부산>


이 쉐이,
그걸 빌미로 지 고향 얘길 꺼낼라카나,
아니면  못 가서 한이 맺힐라카는 PIFF를 꺼낼라카나, 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아이고. 고마 고창석.

<부산>에서 유승호, 김영호와 삼각 트라이앵글로 주연을 맡은 배우, 고창석 아저씨. 
사실, 나랑 나이 차는 별로 나진 않는다. ^^;;  

지난해 연말 무렵, 시네시티 부근의 커피집에서 만났다.
<영화는 영화다>로 막 대중과 근접조우하면서, 이른바 떴다.
봉 감독이란 애칭으로 사랑을 받던 시절, 
오랜 연극배우 생활 끝에 늦둥이 영화배우로 주목을 받았고,
보폭을 넓히기 시작할 찰나였다.
겁내 무섭게 생겼지 싶어도, 앞에서 얘기 나누이 꼭 정겨운 동네아저씨 같드마.


그를 만난 전후로,
그는 꽤 많은 영화에 얼굴을 내밀었다.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인사동 스캔들> <이태원 살인사건>,  
그리고 TV드라마 <친구, 우리들의 전설> <드림> 까지.

이번에는 그의 고향이기도 한 <부산>이다.
인터뷰 할 때, 부산을 로케이션으로 하는 작품에도 출연할지 모른다더니,
과연 <친구, 우리들의 전설>와 <부산>에 출연했다.  
<친구, 우리들의 전설>을 볼 때는 브라운관 속인데도 어찌나 반갑던지, 헐~

거의 9개월 이상 묵은 기사지만,
<부산> 개봉을 맞아, 그를 스크린을 통해 다시 만나고픈 생각에 꺼낸다.
뭐, <부산>의 영화평은 그닥 좋은기 아이다만,
고마, 부산이라니까 함 가줄라꼬.
내 이번에 PIFF때 몬가서 슬픈, 부산이 우째 나왔는가, 함 봐야게따 싶어가꼬.

아래, 인터뷰의 흔적은 그와의 만남을 토대로 재구성한 기다.

*********************************



내 이름은 봉 감독, 아니 고창석. 내 얘기 좀 들어볼래? “레디~액쑌!”

사실 지금까지 연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어. 20여 년 전만 해도 내가 업으로 생각했던 것은, ‘국악’이었거든. 1989년 학교에 들어갔지만 공부는 안 하고 발 디디고 마음을 둔 곳이 탈춤 동아리였어. 국악이나 타악, 재미있더라. 남원에 가서 풍물도 배우고, 거리공연도 하고, 작품도 많이 만들었어. 그냥 그렇게 시작한 것이고, 그땐 그게 취미가 아니고 업이었어. 그러니까 특별히 연극을 시작하겠다고 한 게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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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하나의 상품.(화폐와 연관된 거래의 개념이 아니라)
6년 전 오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국영이형을 4월1일이면 어김 없이 되새김질할 수 있는 것도,

그것이 내 안에서 하나의 상품이기 때문.

사건이 있었던, 2003년 4월1일.
그날의 그 사건 이후, 내가 관통했던 어떤 한 시대가 접히고 있음을 절감했다.
그래서 그 이후의 4월1일은, 최소한 내겐 만우절보다 국영이형을 떠올리는 날. 꽃보다 국영!

그날 이후 4월1일이면,
DVD를 돌려 <아비정전>의 희뿌연 영상과 마주대하며 눈물을 흘리거나, 글로 사부작댔지.
☞ 국영이형, 황사바람에 잘 계시우?
☞ '아비'와 함께 우리 모두 '해피투게더'~
작년에는 <아비정전>이 재개봉한 광화문 스폰지에 있었다.
스크린에서 처음 마주하는 <아비정전>의 감격.
꺼이꺼이 극장에서 목 놓아 울고 싶었던 어떤 기억.
☞ 국영이 형, 제 맘보춤 봐 주실래요?

역시나, 올해 스폰지는 작년에 이어 <아비정전>을 불러냈고,
☞ 스폰지 <아비정전>
허리우드 극장에서는 '장국영 메모리얼 필름 페스티벌'을 펼치고 있다.
故장국영 6주기 추모 영화제
장국영 추모영화제 여는 김은주 대표 "해야할 일일 뿐"


벌써 6주기인가 싶은데,
더 이상 늙지 않는 국영이형을 본다는 건, 한편으로 괴로운 일이긴 하다.
오늘 하루, 자신의 울타리에서 그를 추모하는 것으로 사람들은 또 그렇게 1년을 난다.

<아비정전>에서의 '아비'가 가장 애잔한 모습마냥 기억되지만,
<해피투게더> '보영'의 까칠함 뒤에 도사린 쓸쓸함도 무척 아릿하지만,
나는 <동사서득>의 '구양봉'만큼 세상 모든 고독을 품은 이를 알지 못한다.

내게 있어,
국영이형 최고작(더불어 현재까지 왕가위 감독의 최고작)은,
그래서 <동사서독>.

(왕가위 감독은 최근,
“<동사서독>에서 진정한 스타는 장국영 한 명뿐이었다”며,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국영이형에게 바친 바 있다.)


그래서 나는 희망한다.
<동사서독 리덕스>.
제발, 플리즈.
개봉개봉.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였지만, 나는 못 봤을 뿐이고.
중국에서는 지난 3월 <동사서독 리덕스> 프리미어가 열렸다는데.
부디, 내년 4월1일엔 구양봉을 만나게 해 주시오.
그 사막의 모랫바람에 함께 휩쓸리고 싶소.
 
그  의미는, 결국 '장국영 리덕스'.
매년 4월1일의 장국영 리덕스.
형아 리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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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약할 때, 폴짝 땅을 딛고 허공에 발을 놀리고 있을 때,
가장 알흠다운 소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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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소년을 참으로 좋아했다.
권투를 종용하는 아버지의 강권을 뒤로하고,
발레를 택하는 소년의 속깊은 강단이 그랬고,
탄광촌 노동자 집안이라는 가정 환경에 굴하지 않고,
꿈의 부름을 따라 자신만의 몸짓으로 세상과 맞장뜨는 어른스러움이 그랬으며,
여자들과 섞여서 전혀 어색함 없이 노닐고,
커밍아웃하고픈 친구를 대하는 사려깊음도 그랬다.
특히나, 뜀박질하고 춤을 추는 장면에선,
눈물을 자아내는 꼬맹이 녀석.
어쩜, 나보다 낫다. 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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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소년의 이름은, <빌리 엘리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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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와 보수주의로 무장한 대처리즘이 노동자를, 서민들을 가혹하게 옥죄던 시대.
어쩌면, 미운 오리 새끼 같던 녀석이었다.
아버지나 형의 실존적 고민은 아랑곳 없이,
그저 자신의 꿈에만 매진하고픈 개구쟁이였다.
그래서 녀석은 뛰고 굴렀다.
권투글러브 대신 토슈즈를 신고.
꿈을 좇아, 마음을 따라.
중력을 거슬러 힘껏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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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알다시피, 녀석은 백조가 됐다.
역시나 비상할 때 가장 아름다운.
나는 그런 빌리를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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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빌리는 이 소년,
제이미 벨.
주근깨 빼빼마른 어린 댄서.

그랬던 녀석이,
어느새 훌쩍 커버렸다.
간간히 <킹콩> <아버지의 깃발> <점퍼> 등을 통해 얼굴이나 소식을 접했지만,
아무래도 압권은, 바로 이 영화,
<할람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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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 '잘' 자란 아해들을 보면, 므흣해진다. 내가 키운 것도 아니면서.^^;
더구나, 그곳은 곳곳에 함정과 늪이 도사린 엔터테인먼트의 세계.
매컬리 컬킨, 브래드 렌프로, 린제이 로한, 드류 배리모어(비록 재기에 성공했지만..) 등등은,
망가진 채 진창을 헤맸다.
그러나 제이미 벨은, 역시나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유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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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녀석 불안정하고 별나다.
나무 위 오두막에 서식하거나,
항상 무언가를 훔쳐본다.
특히나, 다른 이들의 애정행각을.
한마디로 '피핑 톰(Peeping Tom)'.
어른이 돼 가는 녀석의 이름은 '할람 포'.
영화 제목이자, 주인공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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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할람, 트라우마로 똘똘 뭉쳤다.
엄마는 죽었고 아빠와는 충돌한다.
그러고보면, 빌리와 비슷한 면이 있다.
엄마라는 완충장치가 없었고, 아빠 세대와는 불화.
빌리가 다른 아이들의 발레하는 모습을 훔쳐봤다면,
할람은 다른 사람들의 애정을 나누는 모습이나 어머니를 닮은 여인을 훔쳐본다.
다만, 좀더 크다보니 할람의 성장통이 좀더 다이내믹하고 빡센 측면이 있다.
새엄마를 증오하면서도 성적열망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오이디푸스의 상흔이 뚝뚝 묻어난다.
혈혈단신 런던으로 가출해 시계탑 뒤 다락에 기거하면서 훔쳐보기를 멈추지 않는 할람.
잘 사는 집안을 뛰쳐나온, 세상 물정 모르는 반항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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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의 잘 자란 제이미 벨이 그냥 피핑 톰으로만 머무를리 없잖은가.
열여덟(성인으로 인정받는 나이)이 밍숭맹숭한 건, 어쩌면 인생에 대한 모욕.
이 알흠다운 청년이 너무 반듯하기만 하다면 그것 또한 심심.
역시나, 그의 알흠다움을 알아본 한 연상의 여인.
엄마를 빼다 박은 그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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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디높은 관음의 둥지에서 희한하게 건져올린 사랑.
그녀와 함께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모습은 완전 기시감.
앗, 그놈이 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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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렇다고 그 사랑이 항상 탄탄대로는 아니지만,
트라우마를 완전 극복한 것도 아닌 듯 하지만,
훔쳐보기를 그만두게 됐는지도 알 수 없지만,
할람은, 그 옛날 빌리처럼 고통 속에서 피어난 성장의 한 단면사를 보여준다.
탄광촌을 벗어나, 고딕풍의 건축물이 우뚝 솟은 에딘버러의 풍경은 그런 할람에게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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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meff에 이어 다시 본, <할람 포>.
아마 당신도 이 영활 본다면, 훌쩍 이런 말이 건네고 싶어질지 모르겠다.
"어쩜, 이리도 잘 자랐니, 제이미 벨."
뭐 이렇게 잘 자랐으니 앞으론 걱정 안해도 되겠다고?
맞다. 빌리도 그랬지만, 할람도 묘한 안심을 심어준다.
흔들리고 불안하면서도 외줄에서 떨어지지는 않을 것 같은.
그건 곧 '제이미 벨'에 대한 안심.
할리우드나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흉악함에서도 자기 중심을 잃지 않을 것 같은 든든함.

...“그들 모두가 자신이 갖지 않은 무언가를 계속해서 찾아다닌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지구라는 땅에서 20년 정도를 살았고, 앞으로도 살아야 할 지옥 같은 날들이 많이 남아 있군. 대체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앞으론 뭘 해야 하는 거지?’ 나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겁이 난다. 특히 배우라는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때 오스카를 수상하지 않은 게 나의 행운”이라고 말하는 벨은 클럽과 재활원을 부메랑처럼 오가는 ‘셀리브리티’가 되는 대신, 앞으로의 가능성에 더욱 내기를 걸고 싶어지는 스물두살의 흥미로운 배우로 성장했다...  - 씨네21 최하나 기자의 글 중에서 -

그런데 언니들은, 누나들은 정말 좋겠다.
이만큼 잘 자란 완소남이 있어서.
완전 누나들의 로망.
아마, 이런 눈빛으로 녀석을 바라보겠지? ㅎ 오메, 부러븐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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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말한다.
"맙소사, 나는 이제 아이가 아니다. 나는 남자다. 사람은 자란다니까."
("I’m not a kid now, Jesus. I’m a guy. People grow.")
어잌후, 한방 먹었다. 짜식.(입가에 미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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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난 은근히, 이 누나(소피아 마일즈)가 매력적이더만.
완전 예쁘진 않지만, 사람을 막막 끄는 매력이 솔솔 있더라구.
그래서, 나는 이번에 다시 생각했건데,
18살이 아니어서, 다시 한번 참으로 분했다.
그때 내겐, 왜 이런 누나가 없었냐고!!! 흑...
눈물 나. 된장. ㅠ.ㅠ



2007/10/21 - [메종드 쭌/시네피아] - 훔쳐보기의 성장사, <할람 포> & 비극의 속깊은 이해, <그르바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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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배우, 키아누 리브스. 우리의 인연은, <엑설런트 어드벤처>(1989)부터 어느덧 20여년.
영화 <스트리트 킹> 홍보차, 4월17일 한국방문.
키아누를 만나기 위해 행차한 용산CGV.
꽉꽉 들어찬 인파. 눈 앞에서 키아누를 접견하지 못한 아쉬움.
레드카펫을 느릿느릿 거닐며, 팬들과 악수하고 사인을 하는 키아누의 모습에선 가슴 몽클.
세월 앞에 내상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 모습까지 여전히 아름다운 나의 키아누. ^.^
언젠가, 키아누에 대한 애정사를 피력하기로 하고. 이건 그날의 풍경.
아, 살아생전, 이 땅에서 다시 키아누를 보게 될 날이 있기나.


그러나, <스트리트 킹>은 뭐 밸로. 한마디로, '짝퉁'<LA컨피덴셜>.
보는 내내, 등장인물들 행태나 사건 전개 등 그 유사성에 혐의를 뒀더니.
알고 보니, 아니나 다를까, 두 편 모두 제임스 엘로이의 손끝에서 나온 태생적 유사성.
<LA컨피덴셜>의 원작자이자, <스트리트 킹>의 시나리오 작가는 여전히 LA에 천착하고.
LAPD(Los Angeles Police Department)와 범죄자들은 한데 혼재돼 있고,
천사들의 도시, LA의 탐욕과 폭력, 어둠은 적나라하나 때론 매혹적.
<스트리트 킹>은 그러나, 밀도나 구성 면에서 <LA컨피덴셜>보다 덜렁덜렁 헐겁기만.
반전은 익히 예상 가능할 정도로 어설프고, 연출은 고저 없이 출렁출렁.

키아누를 짝사랑 하거나 만난다는 목적,
혹은 지난해 <라스트 킹>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획득한 포레스트 휘태커의 광기 어린 연기를
접하고픈 이유가 아니라면, 돈은 그냥 지갑 속에 고이.
아니면, 미드 <하우스>의 휴 로리의 다른 모습을 보고 싶다면 봐도 좋고.

참고로,
'한국인 비하' 같은 건 No.
아해들 유괴집단으로 한국인이 나왔다손, 한국어 육두문자를 내뱉는다손,
그것을 '비하'라는 단어로 규정짓는다면, 오버다. '20세기 폭스코리아'의 한심한 오버질.
그런데, 근래 이 땅의 아해들 유괴살해사건을 거듭거듭 접한 것과 맞물려,
슬쩍 스쳐지나간, 섬뜩함!
<살인의 추억>에서 박두만(송강호)이 내뱉은 말을 약간 달리 인용해,
'한국이 유괴의 왕국이냐!' (유괴범들을 향해, 드롭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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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극복'에 대해, 나는 이렇게 지껄인 적이 있다.
실연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는, 실연을 현실 그 자체로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대를 만나고, 그대와 마주보며 숨을 쉬고, 그대를 안고서 힘이 들면 눈물을 흘릴 수 있었던 시절은 갔다. 실연은 그 모든 것을 추억으로 품게끔 강요한다. 그 강요로 인해 나는 갈증에 시달리고, 길을 걷다 눈물에 젖고, 골방에 쳐박힌다. 세상 모든 슬픈 노래는 나의 몫이다. 그럼에도 나는 실연을 온전히 나의 몫으로 감당한다. 실연으로 인해 나를 둘러싼 세계의 변화는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실연 이후의 나의 모든 행동과 의식 모두가 그 강요의 극복을 위한 것이다. 실연을 실연 그 자체로 받아들일 때 진정한 극복은 이뤄질 수 있다. 믿지 못할, 아니 믿기 싫은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 그것이 내가 실연에 대처하는 자세.

한편으로 실연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왜 극복해야 하는가. 실연은 실연 그 자체로 소중한 경험이다. 실연이 없었다면, 미처 경험하지 못할 행동과 감정이 지배할 것이다. 그래서 실연은 우리 생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 실연을 소중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실연 이전의 사랑을 생각하라. 사랑에 고마워해라. 나의 세계가 넓어졌음에. 또한 실연으로 나의 세계가 더 넓어졌음에.

사실, 이건 허접한 관념의 너울이다. 아마, 실연으로부터 멀찍하게 떨어진 시점이라 가능했던 머리놀림이었을 거다. 사랑이 그러하듯, 실연 또한 교훈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실존적으로 하는 거다. '실연'을 경험케 한 그 작자(?)가 다시 누군가와 행복하기를 빌어줄 수 있는 건, 아마, 일백이십칠만년의 시간이 지난 후다. 실연의 고통엔, 크기가 없다. 세상 무엇도 그 무게감을 이겨낼 수 있는 건, 장담컨대 없다. 애초에, 시작한 것부터가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그러나, 세상 모든 연애가 그렇지 않더냐. 변할 것을 빤히 알면서도, 세월의 풍화작용이 모든 감정의 결을 깎아낼 것을 알면서도, 무모하게 감정을 배팅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겪었고, 겪을 연애가 아니더냐.

실연은, 맞다. 폭탄이다. '트루먼 카포티'는 자신의 소설에서 이런 구절을 읊어댔다지. "세상의 모든 일 가운데 가장 슬픈 것은 개인에 관계없이 세상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연인과 헤어진다면 세계는 그를 위해 멈춰야 한다" 나는, 킹왕짱 오나전 동의한다. 그래서 실연의 아픔은, 사랑, 그 연애의 시작이 언젠가는 스러질 운명과 함께 한다는 단순한 섭리를 받아들여야 하는 고통에서 비롯된다. 실연 당한 사람의 잘못도 엄연히 있다. 그 섭리를 알고 있으면서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 실연은, 알면서도 준비할 수 없는 벼락 같은 것. 비 올 것을 알았으면서도, 우산을 준비하지 않은 것.

후루룩쩝쩝, 블루베리 파이

왕가위 감독의 새로운 시식품.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이런저런 평들이 나부끼고 호불호가 갈렸지만, 상대적으로 이전작들에 비해, 왕가위의 할리우드판 레시피, '블루베리 파이'는 껄쩍지근한 편이었나보다. 자기복제에 대한 토악질을 해놓은 분도 있더만.

그러나, 나는 한입 베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었다. 바람결에 부대끼는 혹평, 왕가위의 나르시시즘과 매너리즘에 대한 비판은 그저 뒤로 돌리고. 늘 마지막으로 남는다는, '블루베리 파이'를 남겨둘 수 없었다. 손님의 간택을 받지 못해, 지독한 외로움 때문에 자기 이름도 잊어먹을지도 모를 그 파이를. 블루베리 파이 사이사이 흐르내리는 우유를 온몸으로 핥고 싶은 기분이 들 정도로.

나는 모든 감각을 열었다. 신경을 늘어뜨렸다. 최대한 느슨하고 흐리멍텅하게. 흐트러질대로 흐트러져도 된다. 왕가위의 (장편)전작주의자로서, 그의 영화를 보는 나름의 방법을 터득한 터. 전작들이 투사되면 되는대로, 나는 그저 블루베리 파이를 부유하는 우유처럼 흐른다. 그것이 내가 왕가위를 대하는 방식. 그 남자, 왕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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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있는 사람들

똑같다. 현란한 카메라워킹과 화려한 색감의 향연 속에서도 그의 페르소나들은 여전하다. 사랑하고 이별하고, 기쁘다가도 아파하고, 고독하고 외롭고 쓸쓸하다. 부박한 삶은 또한 니힐하다. 주룩주룩 흘러 내린다. 기쁨, 슬픔, 웃음, 울음, 관심, 무관심, 쾌활, 우울, 안정, 불안, 온순, 분노, 연민, 감탄, 암담, 황홀, 고뇌, 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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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자, 엘리자베스(노라 존스). 세상 모든 실연의 아픔은, 혼자 떠안았다. 그녀에겐 더 이상 열쇠가 없다. 언제든 문을 따고 들어갔던 그곳엔, 이젠 다른 여자가 차지했다. 사랑을 잃고 징징거리는 캐릭터는 여타 전작들에선 대부분 남자들이 맡았던 캐릭터. 카페의 마지막 성찬, 그러나 간택받지 못한 블루베리 파이만이 그녀를 위로한다. 물론 그 파이는 바로 제레미(주드 로)의 페르소나. 거부하고 싶은 실연을 안고 떠나는 그녀는, 그저 차를 갖고 싶다. 어디로 몰 것인가는 자신의 의지. 사랑은 어디에도 있고, 이별도 어디에도 있더라. 누구에게나, 스토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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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제레미는 누군가의 절실한 부름을 받고 싶어한 남자가 아니었을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하고, 다른 이의 이야기가 담긴 열쇠를 모아두던, 자신의 이야기엔 인색하던 그 남자. 그의 사연을 추정할 수 있는 에피소드가 있지만, 그는 그저 기다릴 뿐이다. 마지막 남은 블루베리 파이처럼. 엘리자베스가 주소 없는 편지를 통해 자신을 객관화하는 동안에도 그는 그저,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언제 돌아올지 모를 그녀의 예약석을 만들어놓고. 블루베리 파이 또한 주인을 기다렸겠지. 그를 간택할 수 있는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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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바랜 사랑의 집착에서 벗어나고픈, 그리고 고통 받은 이 여자. 왠지 가장 끌렸다. 수린(레이첼 바이스). 이유는 모르겠다. 아마도, 너무도 스타일리쉬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녀가 지닌 아픔에 비하자면, 이상할 것 같지만, 묘하게 그것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애초 고독한 사람이었다. 남편을 만나게 된 계기도 그렇고, 그 남편의 집착에 못이겨 떠난 것도 그렇다. 온몸에 고독을 덕지덕지 바르고 있던. 결국은, 죽은 남편의 외상값까지 갚고, 당분간 그 계산서를 벽에서 떼지 말아줄 것을 부탁하고야 말던 이 여자. 마을 사람들이 그 사람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함이라던. 나는 그 말을 하는 순간이 가슴에 박혔다. 어찌할 수 없이 고독을 아는 여자. 롱테이크 한 순간으로 나를 사로잡아 버린 여자. 참고로, <아비정전>에서 장만옥이 맡은 역할의 이름이 '수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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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버거워서, 미워서, 카지노를 전전하던 이 여자, 레슬리(나탈리 포트만). 거침 없고, 쿨한 것 같지만, 가슴 속엔 결국 상처가 있다. 아버지의 존재를 잊고 싶지만, 결국엔 아버지의 사랑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게다. 포커판에서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고 큰 소리 치지만, 자신의 마음은 알지 못하는 바보 같은 사람. 나탈리 포트만은 하루하루 커지는 배우 같다. 더구나, 몸매까지 저렇게 착해주시니,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군. 스칼렛 요한슨과의 <천일의 스캔들> 왕 기대!

왕가위가 내린다

굳이 스토리를 따라가지 않았다. 나는 그저 우유처럼 흘러내리는, 감정의 찌꺼기들을 눈으로 핥고 음미했다. 엘리자베스의 실연 여행도, 그리고 제레미와의 재회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어떤 기억을 품은 스크린에 들러붙어서 서식하고 있었을 뿐. 노라 존스의 끈적끈적한 음색과 기름진 영상이 나는 나쁘지 않았다. 그저 몸을 맡기고 의식을 내동댕이 쳤으니까. 나는 그들과 함께, 블루베리 파이를 함께 나누고 있는 기분. 당신에겐 모르겠지만, 내겐 맛있는, 블루베리 파이!

실연은 어떤 식으로든, 해석될 수 없더라. 영화도 그랬고, 나에게도 그랬다. 그저 몸을 맡기고, 실연과 함께 하는 것. 왕가위의 영화가 그러했듯. 비가 내리면, 우산을 펼 때도 있고, 그냥 비를 맞을 때도 있다. 그런데 왕가위가 내리면, 우산보다는 그냥 맞고 지나는 것이 훨씬 낫더라. 나는 그렇더라.  
 
2008/03/05 - [메종드 쭌/그 사람 인 시네마] - 지독한 갈증과 슬픔, 그리고 왕.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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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질 수 없는, 버려져선 안되는 생의 사랑 by 필감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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