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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아니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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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친구가 문자를 보내왔다. 

첫사랑이 결혼한다고 알려왔다며, 인연은 현실과 일치하지 않더라, 고 회한 섞인 넋두리를 털어놓았다. 자기는 먼저 (다른 사람과) 결혼한 주제에 그녀가 결혼한다고 마음이 흔들리다니, 뭔 도둑놈 심보냐고 놀려댔다. 허나 그들의 사랑했던 날을 알고 있던 나는 문자에 꾹꾹 눌러 담은 녀석의 마음을 엿봤다. 흔들리는 마음, 그건 죄가 아니다. 누구는 결혼하고 누구는 결혼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불공평하니 그렇지 않니, 저울질할 것은 아니지 않은가. 녀석은 흔들리는 마음의 실체를 잘 모르겠다고 했다. 마음이 허한 것도 같고 이상하다고도 했다. 그럴 만도 했다. 녀석에겐 결정적인 순간마다 어그러지는 인연이었던 그 사랑, 첫사랑이었다. 물론 그 기억, 첫사랑이라는 이유로 미화되거나 왜곡되기 일쑤임도 분명했지만. 녀석과 술 한 잔 마셨다. 물었다. 마음이 아파? 흔들리는 거야? 진짜 첫사랑이야?


사람은 처음 하는 것에 의미를 붙이고 오래도록 기억하(고자 하)는 습성이 있다. 

‘첫’이라는 관형사를 붙여. 시간이 흐르면서 ‘첫’은 모든 것을 천천히 삼킨다. 세상의 모든 ‘첫’은 아련해지고 애틋해진다. 첫사랑은 그 중에서도 으뜸이다. 그런데 한 결혼정보회사가 결혼하지 않은 351명에게 첫사랑에 대해 물었다. ‘첫사랑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가장 많은 답변(62%)은 ‘가장 많이 좋아한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첫’에서 흔히 생각하는 ‘가장 처음 좋아한 사람’을 답변한 사람은? 25%였다. ‘가장 아프게 좋아한 사람’을 첫사랑으로 생각하는 응답도 10% 있었다. 첫사랑은 따라서 (각자의) 해석이다.

 

문제는, 첫사랑은 과거로만 끝나지 않는다. 

현재와 교류하거나 영향을 미친다. 좋거나 나쁘거나, 현재진행형이다. 요절이 슬픈 것은 열어볼 수 없는 미래의 어떤 가능성 때문이다. ‘깨진’ 첫사랑도 마찬가지다. 첫사랑의 요절과도 같은 그것은 영원히 응답을 기대할 수 없는 기다림이다. 쉽게 잊히지 않는 사건이다. 첫사랑이 현재의 사랑이라면 다른 문제이겠으나, ‘첫사랑은 깨진다’는 속설처럼 실현되지 못하고 좌절된 사건이 첫사랑이다. 그래서 첫사랑은 역설적으로 그 후로도 오랫동안, 생의 시간을 지배하거나 향을 남긴다.


첫사랑처럼 광범위한 사회 공통의 경험도 드물다. 

대부분 한 번쯤 겪고 앓는다. 그리고 신성시된다. 과거 ‘순수한 한때’를 상징하는 시공간으로 특권을 부여받는다. ‘그때와 달리’ 세속의 때도 적당히 묻고 속물이 돼 버린 지금, 첫사랑은 ‘잃어버린 순수를 품고 있었던 시절’을 상징한다. 현재의 비루함이나 궁상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종교적 체험이다. 그땐 그랬지, 라고 우리는 과거는 물론 첫사랑을 미화한다.


술 한 잔하면서 다시 확인하니 친구의 그 첫사랑, ‘처음’은 아니었다. 

가장 아프게 사랑한 기억이라고 했다. 뭔가 아쉬움이 남았고 그것이 마음 한 구석에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이젠 마음에서 보낼 수 있겠다고 했다. 첫사랑 장례식! 다만 그것이 왜 결혼 때문이어야 하는지, 나는 할 말이 있었으나 녀석 앞에서 꺼내진 않았다. 애도는 녀석의 몫으로 남길 뿐.


첫사랑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흔들리게 하는 마술 같은 단어다. 

세상에 단 하나여야만 할 것 같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존재. 나는 그것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내가 하는 모든 사랑을 첫사랑이라고 명명했다. 그 사람과 내가 하는 처음 사랑이니까, 첫사랑. 그러니까 나는 첫사랑‘들’을 겪었다. 따라서 첫사랑이라고 특별할 것도, 유난스러울 것도 없다. 오래 전,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2003)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나는 첫사랑을 억지로 ‘사수’할 생각이 없다. 


첫사랑은 사수보다 (마음의) 장례를 치르는 것이 중요하다. 

작가 정여울(《마음의 서재》)의 말을 곱씹는 이유다. “모든 첫사랑은 저마다의 가슴 속에서 한 번씩은 죽는다. 안타깝게 끝나버린 첫사랑을 위한 가상의 장례식을 치러야만, 첫사랑은 매번 ‘그 다음 사랑’과의 고통스러운 비교대상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평생 첫사랑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은, 자신의 내면에서 첫사랑의 애도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세상 거의 모든 이들에게 그토록 넓은 오지랖을 자랑하는 첫사랑. 

피할 수는 없다. 다만 첫사랑이 끝난 뒤, 꼬리를 잘 잘라야 한다. 만남이 우연에 의해 조작된다면 이별은 의지가 작동한다. 진즉 끝냈어야 할 것을 질질 끄는 것은 나쁘다. 첫사랑과의 이별 역시 마찬가지. 사랑하는 동안 다 쏟아야 한다. 어설프게 꼬리를 남기고 마는 사랑은 나쁘다. “가장 슬픈 이별도 나쁜 지속보다는 낫다”는 말을 긍정하는 이유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널 사랑하지 않아. 기억할 뿐이야. 굿바이, 내 첫사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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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서울 항동의 푸른수목원, 해 지는 노을이 끝내줍니다. 그 노을빛으로 이 가을을 채우기에 충분하다 싶을 정도죠. 그런 곳에서, 지금은 세상에 없는 정은임 아나운서를 떠올리는 '기억의 숲'이 무성하게 잎을 피웁니다.


기억의 숲이 무성하게 잎을 피울 무대는 단촐하며 정든님 정은임을 이야기하기 딱 좋아요. 크거나 거대하지 않습니다. 조곤조곤 속삭이기 좋은 무대와 넓지 않은 풀밭.



19일(일) 오후 5시 푸른수목원에서 정은임과 <정은임의 FM영화음악>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눕니다. 정든님 정은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함께, 정도 나누고 기억과 추억을 공유합니다.


더불어숲 축제 전체를 연출하는 장주원 PD님의 요청으로 <기억의 숲 : 제 목소리 들리세요?_정은임의 FM영화음악>을 기획하고 진행합니다. 정은임을 기억하는, 매년 정은임 추모바자회를 여는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기억의 숲: 제 목소리 들리세요?>은 영화와 음악 그리고 사람과 사회를 담았던 <정은임의 FM영화음악>(이하 <정영음>)을 기억하고 현재에 맞춰 재구성하는 시간입니다. 10년 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정은임 아나운서의 10주기, 46번째 생일(10월 13일)을 맞아 정은임이 누구인지, 정은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왜 그를 여전히 품고 있는지, <정영음>의 현재적 의미 등을 공유합니다.


1부 순서에는 ‘우리 마음의 공동체, 느낌의 공동체 <정영음> 그리고 정은임에 대하여’ 노래하고 이야기합니다. 왜 우리는 정은임과 <정영음>이라는 감성 브랜드를 품고 있는지, 90년대 정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감성브랜드의 관점으로 [정영음, 정은임]을 말합니다.


알다시피, <정영음>은 단순히 영화음악을 전달하는 기능으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청춘의 감수성을 짚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도 했습니다.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건넸다기보다 시대에 필요한 가치와 의미를 넌지시 생각해보게끔 만들었습니다.


2부에는 '우리 목소리 들리세요? 정은임을 기억하는 현재에 대하여' 노래하고 이야기합니다. 정은임과 <정영음>은 여전히 우리 마음에 살아 있음을 확인시키는 자리가 될 겁니다. 지금 왜 다시 '정은임'이며 <정영음>을 떠올리는지, 그 현재성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우주시 하늘동의 은임씨, 듣고 계세요?"라는 제목으로, 제가 은임 누나에게 보내는 연서를 낭독할 예정입니다. <정영음>에 단 한 번도 보내지 못한 엽서를 아주 늦게 보내는 셈이라고나 할까요.


그렇게 정은임을 말하고, 기억하며, 그리워하는 시간입니다. 푸른수목원으로 오세요.



<정은임의 FM영화음악> 팟캐스트 => http://www.podbbang.com/ch/1813


오시는 길 : 성공회대에서 가깝습니다. 푸른수목원 오는 길입니다.

http://parks.seoul.go.kr/tem…/common/park_info/location.jsp…


저녁 무렵 되면 추울 수 있으니, 아니 분명 추울꼬야. 옷 껴입고 오세효!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2014.09.28 17:29 메종드 쭌/무비일락


<슬로우 비디오>(http://슬로우비디오.kr)에서 혹했던 장면이 있었다. 


마을버스가 바다로 향한다. 상상해봤나? 늘 좁은 골목길과 마을을 누비던 버스가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는 모습. 붕붕붕, 꼬마자동차가 달린다~ 마을버스 붕붕. 그 여정에서 마을버스가 얼마나 즐거워하고 있을지 감히 모르지만, 느껴진다. 



<슬로우 비디오>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 봉수미(남상미)의 소원을 들어주고자 여장부(차태현)가 마을버스 운전기사 상만(김강현 분)에게 부탁한다. 아니 협박에 가깝지만.ㅋ 상만이 운전대 방향을 달리한다. 늘 가던 길에서 이탈한다. 아니, 자유를 찾아나서 본다. 


내가 한 번씩 꿈꾸던 장면이었다. 버스가 늘 다니던 노선을 벗어나 다른 어딘가로 떠나는 순간. 버스에 타고 있던 모두들, '벙' 찌면서도 모두 환호성을 지르는 거지. 그렇게 버스는 달리고, 우리 영혼도 즐거워진다. <슬로우 비디오>에서도 외로운 영혼들이 마을버스 한 자리씩 앉아 바다를 보러 간다. 고속도로를 타고 달린다. 현실에선 불가능한, 있을 수 없는 장면이라고 투덜거릴 수도 있겠다. 


나는 이 장면들이 그렇게 좋았다. 그러니 고속버스 톨게이트에서 마을버스를 잡고 가지 못한다고 우겨대는 경찰이 그렇게 야속할 수 없었다. 결국 바다를 꿈꾸던 마을버스는 꿈을 접고 다시 돌아오지만, 그것으로도 나쁘지 않았다. 바다를 향했으니까! 


마을버스도 어쩌면 그런 순간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늘 다니던 출근길에서 방향을 틀어 일상과 전혀 상관없는 곳으로 가는 것을 꿈꾸듯, 마을버스도 늘 다니는 골목길이 지겨운 날이 있지 않을까. <슬로우 비디오>가 일상의 다른 의미를 건네고 싶었다면, '느림(슬로우)'을 콘셉트로 잡을 것이 아니라 '다르게 보기'로 잡아줬으면 어땠을까. 다르게 보기로 잡았었다고? 그럼 연출력이 아쉬운 거고! 



다소 안이한 만듦새였다. 기대가 있었던 만큼 영화가 끝난 직후 약간 아쉬웠다. <헬로우 고스트>의 (흥행) 성공이 독이 된 것일까. 이야기는 엉거주춤했고, 의미 전달은 미흡했다. 로맨스는 애틋했으나 뭔가 부족한 차림새였다. 차태현의 연기는 선글라스 때문이었을까, 그저 그랬고, 감독의 연출도 밍숭맹숭했다. <헬로우 고스트>의 성공 방정식을 별다른 변주 없이 가져온 듯해서, 아쉬운 점이 많이 남는다. 


바쁘게만 흘러가는 세상에 느리게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되짚어보겠다는 의도, 좋다. 그래서 꺼냈을 동체시력. 남들이 그냥 지나치는 순간까지도 '슬로우 비디오'처럼 자세하게 볼 수 있는 시력을 가진 사람, 좋다. 대부분의 사람이 바쁜 일상에서 놓치는 것들을 그는 볼 수 있을 테니, '빨리빨리'가 아닌 '느리게'에서 만날 수 있는 삶의 진경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있었다. 



그러나 의도나 등장인물, 소재가 좋다고 다 잘 풀리라는 법은 없다. 바쁜 현대인의 삶에 쉼표가 되어주고 싶다는 영화의 카피는 마케팅적인 수사 같다. 이야기가 더디고 서툴다. 쉬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 극중 상황은 납득하기 힘들 때도 있다.  


동체시력을 지녔다는 이유로 따돌림 당하는 여장부(차태현 분)가 가족의 보살핌도 없이 칩거 생활만 했던 것도 이상하다.(그들 나름 화목한 가정임을 초반부에 보여주고 여장부의 성격이 괴팍한 것도 아니다!) 드라마에 빠져 있던 여장부가 "진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가 궁금"해서 나름 큰 결심을 하고 나온 바깥 세상 적응기도 뭔가 매끄럽지 못하다. 물론 상영 시간 때문에 가지를 치면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유추하지만 감정이입에 어려움을 겪었다.  



또 여장부가 CCTV 관제센터에서 일을 하면서 한 사람 뒤만 졸졸 쫓는 것은 다른 의미에선 스토킹이 될 수 있다. 좋아한다고 그것이 용납될 수 있는가. 스토커들도 '좋아해서'라는 이유를 달지 않던가. 여장부의 사랑이 순수하고 애틋하다손, 공공의 안전을 위한 CCTV를 사유화하는 것은 지나치다. 나중에 그것이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자를 잡는 장면으로까지 이어진다지만, <슬로우 비디오>는 비약으로 극을 꾸리면서 상황 몰입을 강요한다. 


아예 영화가 판타지였으면 모를까, 판타지도 아니면서 왜 무리수를 두는 것인지 다소 불편했다. CCTV에 나오는 사람들 모두가 주인공이요, 200편의 드라마라고 하지만, 여장부나 <슬로우 비디오>는 타인의 드라마에는 관심이 없어 봰다. 주인공들의 드라마에도 뭔가 빠져 있는데, 조연이라고 오죽하려고. 특히 석의사(고창석 분)와 심(진경 분)은 왜 굳이 출연했는지 의아하다. 그들의 연기가 나빠서가 아니라 인물들의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아서 안타까워서 그렇다. 충분히 좋은 연기로 활용할 수 있는 배우들이었는데 말이다. 



여장부가 진짜 느리게 흐르는 삶을 사는 것 같지도 않다. 사회 적응이 서툴고 느릴 뿐이다. 영화에서 눈물이 흐를 만한 지점은 분명히 있다. 두 사람의 로맨스가 그렇다. 그런데 첫사랑 봉수미(남상미 분)와 애틋하게 만나기 하기 위한 장치들은 서툴고 작위적이다. 사채 빚에 쫓기는 것으로 설정된 봉수미의 상황도 너무 안이하게 다뤘다. 용역 깡패들이 한 번 헤집고 가고 울고불고 곤경에 처한 봉수미가 나오면 그것으로 끝? 연출의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슬로우 비디오>는 욕만 들어먹을 영화인가. 그렇지 않다. 현실 정합성이나 상황적 논리성을 이래저래 따지고 들었지만, 논리적으로만 영화를 보는 것은 아니다. 나름 미덕도 갖고 있다. 차태현의 연기는 믿고 볼 만하다. 차태현을 좋아하고, 찬바람이 불 무렵, 애틋한 로맨스가 가미된 잔잔하고 심심한 영화를 보고 싶다면 <슬로우 비디오>는 10월의 추천영화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아울러, 차태현은 늘 믿고 볼 수 있는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 맞다. 그럼에도 선글라스를 끼운 것은 아쉽다. <슬로우 비디오>를 보면서 느낀 것인데, 차태현 연기의 일정 부분은 그의 눈에 기대고 있다는 것을 알겠다. 그런 그에게 선글라스를 끼우다니, 자연 연기도 안 살고, 영화도 살지 못했다. 감독의 책임이다. 동체시력이 문제였던 건가?ㅋ 


남상미의 연기는 상큼하다. 영화 출연이 잦은 배우는 아닌데, 모처럼 출연한 영화에서 나름 존재감을 드러낸다. 아, 남상미를 좋아한다면 이 영화를 봐도 좋겠다. 추천한다. 


사랑스러운 배우다. 만세. 나도 따라 만세를 하고 싶다. 파마 머리도 잘 어울린다.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아름다운 사람, 정은임. 

그 어느 때보다 말랑말랑한 시기인 10~20대, 
누군가로부터 받은 '세례'가 한 사람의 평생을 지배하기도 한다.

10년이 흘렀다. 
정든님으로부터 이 세계와 영화, 음악 등에 대해 세례를 받았던 사람들은 그녀를 기억하기 위해 매년 추모바자회를 연다. 그게 올해는 오늘(8월 3일)이다. 8월 4일 기일을 하루 앞두고 1년에 한 번 다시 만났다. 

그리고 지금, 아름다운가게 서울역점에서 10주기 추모바자회를 열고 있다. 재밌고 흥미로운 일이다. 그녀가 떠난 10년, 여전히 우리는 1년에 한 번 이렇게 만나고 정든님 정은임을 그리워한다. 우리의 삶도 그렇게 흐르고 있다.

오늘 시간이 허락하거들랑, 아름다운가게 서울역점에 와서 정은임의 목소리와 모습을 보고 가는 건 어떻겠나. 물론 당신이 정은임의 세례를 받았다면 말이다. 

그리고, 
10년 전 울면서 썼던 정은임 추모칼럼 : http://swingboy.net/27



[행사자료]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는 아름다운 하루

“누나처럼 편한 존재였다. 우리의 고민이나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잘 들어주던 사람이었다. 그녀가 없다는 사실을 아직 실감 못하겠다. 여전히 그녀는 우리 곁에서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다.”(정대철님)

“벌써 라고 생각될 정도로 시간이 빨리 흘렀다. 방송을 들으며 사춘기를 보냈고, 아직도 정든님(정은임)을 그리워하며 그때의 방송을 들으며 내 일기장 속의 영화 주인공들을 상상해보기도 한다. 정든님을 추모하고, 정든님을 여전히 좋아하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다행일 수 있게 끝까지 우리를 한자리로 뭉치게 해주는 정든님, 고맙고 그립다.”(박유정님)

지난 2004년 8월4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정은임 아나운서. 10년 전 그녀는 떠났지만, 마음에서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8월4일(일) 아름다운가게 서울역점에서 추모바자회를 연다.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아름다운가게가 함께하는 아름다운 하루’라는 제목으로 여는 10주기 행사는 ‘정은임 아나운서 팬페이지’(www.worldost.com)의 회원들이 ‘아름다운가게’(www.beautifulstore.org)와 함께 한다. 

이들은 매년 정은임 아나운서 기일 즈음에 맞춰 추모바자회를 열고 있다. 정은임 아나운서가 진행했던 <FM 영화음악> 등을 통해 영화와 세상, 그리고 삶을 형성했던 것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다. 그녀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서는 기억을 지속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 기억을 지속하기 위해, 그 목소리, 그 얼굴, 그 사람을 추모하기 위해 매년 ‘아름다운 하루’를 함께 보내고 있다. 

바자회는 정은임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기부와 참여로 이뤄진다. 행사 당일 아름다운가게 서울역점에 모여 봉사활동도 하고 수집된 물품을 판매한다.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수익금은 아름다운가게에 전액 기부, 소외아동지원 금으로 사용된다. 

다음은 10주기 추모바자회 내용이다. 

1. 행사일 : 2014년 8월3일 일요일 오전 11시~오후 6시
2. 행사장소 : 아름다운가게 서울역점 (서울역 14번 출구, 서울 용산구 동자동 43-54 1층, 02-363-8778) 

[관련 사이트]
http://www.worldost.com/ 정은임 추모사이트 ‘정든님’
http://www.cyworld.com/bastian2004 정은임 미니홈피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2013.12.03 02:03 메종드 쭌

12월의 겨울의 시작. 

밝고 예쁜 목소리가 열었던 겨울의 첫날, 요조의 목소리로 맺음한다.

절묘한 앙상블이다. 12월의 별자리 운세는 내게 사람을 신뢰하지 말라고 하던데, 그러거나 말거나. 흥. 


왜 요조를 '여신'이라고 부르는지, 오늘 그 이유를 목격했다. 그것이 각자 다른 이유일지 몰라도, 내가 오늘 본 것은 아름다움. 은은하게 퍼지는 어떤 아름다움.  


요조의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겨울의 낭만을 부추겼고, 

요조의 온 몸이 뿜어내는 나지막한 선율은 겨울의 낭만을 채색했다.   


요조. 참, 좋다. 참, 아름답다. 

커피 한 잔에 내 지닌 허섭한 아름다움 전부를 졸졸졸 추출해서 건네고 싶은 드문 사람.


물론 나도 평범한 속물이어서, 다른 셀럽과 결혼한 그의 옛 연인 소식에 기분이 어떨까 궁금증이 일기도 했고, 그의 옛 사랑을 쓴 글에 옛 연인을 대입시키기도 하였다. 



나야 그리 하여도, 

버스에서 나를 웃고 울린 여자, 요조. <요조, 기타 등등>. 

올해 아마도 버스에서 날 울린 두 번째 책? 그녀의 어쿠스틱 에세이. 


어디서 웃었냐고? 이 구절이었다.

"우리 모두 코를 후비며 살아가고 있다." 

팡, 터졌다. 아, 나도 그랬지, 하는 생각과 함께. 


그리고,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giant. 

창문에 비치는 밤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겨울밤 하늘의 별빛도 글썽글썽. 달빛은 울먹울먹. 


"나는 당신의 오늘을 보는 것이 좋다. 

     당신의 내일 같은 건 관심도 없다."



아무렴. 당신으로 인해 나의 겨울 첫날은 충분히 좋았다. 아름다움이 충만한 하루. 이것으로 나는 12월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요조가 겨울의 낭만을 완성했다. 겨울, 이라고 적어줬고, 낭만이라고 불러줬다. 내가 이 좆 같은 세상을 버틸 수 있는 건, 아름다움 때문일 것이다. 매일 같이 만나야 하는 사소한 오늘의 아름다움. 나의 내일 같은 건 상관 없다. 오늘의 아름다움을 바랄 뿐.


당신, 요조, 그런 사람. 고마워요, 요조. 아, 좋다.

 

참, 옥상달빛의 '안부'도 오늘을 토닥토닥. 스담스담. 고마워, 옥딸.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말로@마을캠프

 

 

비가 음악소리처럼 흐르던 지난 5월의 봄밤, 말로님이 들려주던 자유의 선율에 취해 있었다. 

재즈는 자유의 또 다른 이름임을 확인했던 봄밤이 기시감처럼 살아났던 늦가을밤. 

마을캠프에서 다시 재즈를 만났다. 

말로님의 재즈가 가을밤을 휘감고 있었다.

 


 

자유! 


다시, 말로님이 그 봄밤에 내게 건넸던 자유를 꺼내 본다. 
그러니까 지금은 서울의 밤, 서울야곡에 취해도 좋을 늦가을밤.

 

 

 

22~23일, 한국 재즈의 산실 '클럽 야누스'(서초동)에서 자유가 흐른다.
아, 가고 싶다. 말로님을 비롯해 웅산, 혜원 등 나의 재즈 여신님들이 나오니까. http://news1.kr/articles/1412699

아름다운 밤이다. 
그 가을밤에도 재즈가 흐르고 있었다... 잘 있나요?, 당신!

 

가을이 떨어지고 있다. 이 가을밤, 평생 다시는 오지 않을 순간이다. 

이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쓴다. 기억한다. 느낀다. 그 해 그 가을밤처럼. 

내겐 오직 하나뿐인 순간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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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라는 말을 들으면 서야 하는 인간이 있다. 에로스에 대한 오해 때문이다. 신화 속 에로스(神)가 이 세간의 오해를 맞닥뜨린다면 얼마나 슬플까. 가난한 어미(페니아) 아래 늘 결핍 속에 살지만, 풍요를 대변하는 아버지(포로스)의 피를 받았기에 그는 선과 미, 그리고 진리를 사랑했다. 지의 사랑, 곧 철학의 정신인 에로스는 뭣보다 중간자였다. 지와 무지의 중간자. 끊임없이 지를 그리워하고 사랑했던 이유다. 인간이 진리를 추구하게끔 만드는 정신적 욕구의 의인화가 에로스였다. 고대인에겐 따라서 에로스는 육체적 생식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인간의 생명을 무한으로 끌어올리는 정신적 생식의 힘이었다.

 

그러니 세간에는 ‘사랑’에 대해 무지막지한 오해도 있다. 사랑은 공부하는 것이 아니란다. 사랑은 살면서, 저절로 주어지는 감정이라는 편견이 횡행하고 있다. 사랑은 무조건적인 행복을 안겨준다는 편견도 빠질 수 없다. 과연 그럴까. 사랑은 행복과 함께 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안락과 편의와는 함께 할 수 없다. 안락과 편의에 대한 기대조차 가질 수 없는 것이 사랑이다. 진짜 사랑을 해본 당신, 알 것이다. 사랑은 쉬이 주어지는 감정과 다르다. 좋아하는 감정은 그저 감정의 일부일 뿐 사랑의 실체가 아니다. 사랑은 당사자에게 그(녀)의 능력과 의지를 최대한 발휘할 것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실패할 수 있다. 사랑은 늘 밑바닥을 바라보게 한다. 부족함을 드러내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고도 경고한다. 사랑은 꽃놀이패가 아니다.

 

그렇기에 나는 사랑에게 늘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내게 행복이기도 했지만, 아픔이었고, 쪽팔림이었으며, 나를 성찰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무엇이었다. 달이 차오를 때까지, 사랑했지만, 헤어짐도 피할 순 없었다. 아팠지만, 쓰라렸지만, 사랑의 반대말은 헤어짐(이별)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 이렇게 말하더라. “인연이 아니었나보다.” 대놓고 반박하진 않지만 어이가 없었다. 그걸 위로라고 하다니! 인연이 아니라면, 우리가 어떻게 만날 수 있었을까. 어떻게 사랑할 수 있었을까. 그러니까 그 위로의 전제에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있다. 나름대로 그 어쭙잖은 위로를 해석하면 이렇다. 인연이 아니라는 말 앞에는 ‘결혼을 하지 못했으니’ ‘결혼에 이르지 못했으니’가 생략된 것이다. 아니, 사랑이면 사랑이지, 왜 결혼과 늘 연결을 지을까? 결혼이 사랑의 완성이라는 엉성하고 빈약한 이데올로기에서 사람들은 왜 벗어나질 못하는 거지? 나는 그것이 늘 궁금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답을 얻었다. 사랑에 대해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을 떠나 보낸 내게 위로 같지 않은 위로를 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얘기했었다. “인연이 아닌 게 아냐. 인연이 딱 그만큼이었던 게지.” 인연이 아니라는 말, 내 사랑에 대한 모독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책은 거듭 그것을 확인해준다. 사랑은 한 세계(우주)가 다른 세계(우주)를 만나는, 일대 사건 혹은 사고임을. 평행우주의 궤적이 어쩌다 공명하게 된 순간이다. 사랑사건 혹은 사랑사고. 오죽하면, 트루먼 카포티는 이런 말을 했을까.

 

“세상의 모든 일 가운데 가장 슬픈 것은 개인에 관계없이 세상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연인과 헤어진다면 세계는 그를 위해 멈춰야 한다.”


그리하여, 헤어졌지만 새로운 세계를 알려 준 그 사랑(연애)에 나는, 늘 고마워했다. 물론 경우마다 사유의 깊이나 폭은 달랐을지언정, 나는 그 사랑(들)이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 요소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내 안에 그들(사랑) 있다! 그렇다고 내가 사랑을 완벽하게 마스터한 것은 아니다. 사랑은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할 호기심 천국이다. 세상엔 ‘사랑 불능 환자’가 얼마나 많은가. 그렇게 사랑 타령이 넘실대지만, 사랑에 대한 아포리즘도 넘치지만, 우리는 언제나 사랑이 고프다. 사랑이 아프다. 왜? 


사랑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다. 배우지 못했으니 체화할 수도 없다. 사랑(연애) 불능자가 넘쳐나는 이유다. 연애가 불가능한 시대인 이유다. 기이하고 기괴할 정도로 ‘싱글 지옥, 커플 지옥’에서 차고 넘칠 것 같은 연애지만, 그런 분위기는 상업주의 자본이 만든 지옥도다. 우리는 그 지옥도에서 사랑과 연애에 오해의 딱지를 붙여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다.

 

나는 ‘사랑’이라는 단어에 우리가 분류하는 모든 것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 사랑 안에 있다. 사랑만 제대로 알아도 (사람으로서) 기본은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통해 만난 ‘사랑학’에 공감했다. 사랑은 그저 한 사람의 마음에 똬리를 튼 감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모름지기 사회적 관계의 산물이고 사회적 소통이다. 세간의 사랑에 대해 불만이 있다손, 마냥 그들만 탓할 것도 아니다. 그들이 배우고 훈육 받은 것이 그랬다. 학교고, 사회고, 가르쳐주지 않았다. 사회구조적인 문제다. 사랑이 중요하다고 시부렁거리면서, 정작 사랑을 공부하고 배움을 줄 수 있는 환경을 조성 못한 죄. 고작 미디어 등을 통해 왜곡된 사랑(연애)의 형태나 편견을 강화하도록 전달했다.

 

고대부터 사랑은 공부하는 것이었다는 증거도 있다. 《인문학스터디》는 이렇게 전달한다. “철학적 삶에 대해 플라톤이 주목한 또 하나의 사랑이나 욕구, 즉 에로스(eros)가 지닌 중요한 역할이다. 플라톤이 《파이드로스》에서 묘사한 소크라테스는 활력에 넘쳐 에로스의 요소를 철학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사랑은 무엇을 ‘위해’ 있는가? 사랑은 우리에게 좋은 것인가? 우리는 자율성을 얻기 위해 우리의 사랑을 아주 작게 줄여야 하는가? 이것들은 오늘날 젊은 남녀들도 당연히 호기심을 품는 문제다.”

 

이 책의 미덕은 단순하다. 사랑을 공부하라. 사랑을 하려면,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 사랑은 살아가는 시공간과의 소통이다. 사회적 관계의 산물이다. 두 사람만의 것이 아닌 사회적인 사건사고! 더 넓은 세계로 입문하는 통로. “사랑은 궁극적으로 ‘삶을 아름답게 창조하는’ 행위”이며, 사랑은 그래서, 어떤 시대적 기준을 들이대도, 불온하다. 모든 것을 바꾸기 때문이다. 사랑이, 혁명과도 일맥상통하는 이유다. 부디 당신의 사랑과 연애가 우리 각자의 삶과 유리되지 않길 바란다. 연애한다고 친구를 끊고, 사회적 관계망을 좁히는 것은 연애가 아니다. “사랑의 능력에서 핵심은 사랑과 삶이 맺는 관계에 있다.” 그리하여, 반복한다. 사랑은 반드시 공부해야 한다. 공부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고로, 사랑을 공부하지 않는 후천성사랑결핍증 환자들에게, 이 책을 권함! 


(특히 <안 생겨요>(개그콘서트)의 두 안 생긴 개그맨들에게 권함! 아차차, 그러면 안 되겠구나. 그들이 이 책 읽고 생기면, 코너가 폐지될지 모르니까~ㅎ)


  

p.s.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연애컨설턴트랍시고, 연애 코칭, 연애 멘토링을 자처하며 펴낸 연애기술서들을 보겠다면, 쌍수 들어 말린다. 그것들 거의 모두 쓰레기다. 그깟 쓰레기따위 다 소각하거나 개무시하시라.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와 다음의 책들을 권한다.




(* 2008년, 그린비 판본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리뷰의 개정판이다. 반디앤루니스의 다정한 에디터(콘텐츠팀) 요청으로 일부 수정해서 '오늘의 책'에 게재했다. 또 보낸 원고에서 아주 살짝 수정하거나 빠진 부분을 회복(눈 밝은 이는 눈치 챘으리라~ㅋ)했다. 북드라망 개정판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은 읽질 않아서 어떻게 수정됐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믿고 보는 '고미숙' 선생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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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굿 닥터>인데, <배드 닥터>가 됐다. ㅠ.ㅠ
왜? 심장 터져 죽을 뻔 했으니까! 


차윤서(문채원)의 가을밤 고백, 심장이 그만 퍼펑~ 하고 터져 버렸다. 

시온(주원)이는 좋겠다. 그건 '기적'이니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주는 것, 세상에 그만한 기적은 없다. 

아, 둑흔둑흔 빠담빠담 <굿 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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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4 01:54 메종드 쭌

 

가을비, 기다리고 있다.


계절의 흔들림에 종지부를 찍고 짧게나마 정착하게 해 줄,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 호우시절.

 

그 비가 오신단다.

 

비를 기다리던 소년과 여인의 마음이 스크린을 뚫고 고스란히 전달됐던,
올해 가장 감성 돋게 만든 어느 여름날의 감성우화, <언어의 정원>.

 

구두를 만드는 소년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미각 장애로 맥주와 초콜릿 맛만 느끼던 여인의 감각을 깨워주던, 레인.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 호우시절. 그리고 가을이 오면.

당신도 꼭 인사 해 줘. 안녕, 나의 가을~ 
이 비가 가을을 호출하면 널 만나러 갈게. 비처럼 가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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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1 20:06 메종드 쭌


비관적 낙관주의. 
세상이 더 나아지고 바뀔 수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하면서도, 
숙명처럼 자신의 길과 삶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에게 있는 것. 
홍세화 선생님의 얼굴에 아로새겨진 그런 인장 같은 것. 

오늘 박찬일 셰프님에게 들은, 
가장 격하게 공감했던 비관적 낙관주의. 

아마도 세상을 비관하되, 
역사의 사필귀정을 믿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능력.


세상을 바꾸겠다고 호언장담하며 그것에 매달리는 것보다, 

내가 세상의 격랑에 휩쓸려 바뀌는 것을 경계하며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그러니까, 
이 풍진 세상,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행복한 사람'을 친구로 두는 것.
누군가는 행복한 사람을 이리 말한다. 아마 극히 소수일 법한 행복한 사람.

-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 보수적이지 않다
- 타인을 신뢰하고 배려한다
- 개인-집단간 우월관계를 거부하며 권위적이지 않고, 행복의 효과를 믿는다
- 물질 소비보다 경험 소비를 추구하며 상처의 치유 수단으로 돈이 아닌 관계의 힘을 믿고 활용한다

- 남이 아닌 나에게서 행복의 근원을 찾는다 (타인의 삶을 살지 않는다) 


그런 당신을 친구로 뒀었기에 내가 행복할 수 있었나 봐. 

지금 당신이 없어도, 내가 살 수 있는 이유인가 봐. 

고마워,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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