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현재 서식지 근처의 다리, 한남대교.
경찰과 119, 수상안전요원들을 비롯해 시민들이 북적거린다.

뭥미?
빠꼼 고갤 내밀어 경찰에게 물었다. "무슨 일?"
심드렁하게 답한다. "사람이 다리에서 뛰.어.내.렸.다."

아, 갑자기 아득해진다.
다리 한 번 쳐다보고, 물 한 번 쳐다본다.
저 거리. 물리적으로 잰다면, 글쎄 한 30미터? 50미터? 잘 모르겠다.
고개를 한 번 들었다 놓았다 하면 충분한 그 거리.
그 거리가 누군가에겐 세계를 들었다놨다할 거리가 된 셈일까.

누가 그랬는지, 왜 그랬는지, 모른다.
인터넷을 뒤져봤지만, 어떤 뉴스도 정보도 없다.
어제 처음 물어본 뒤, 한참 지나 다시 물어봤지만, 경찰은 찾지 못했다고 했다.

정확힌 모르겠지만,
아마 찾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지금 고인이 됐을 것이다.

어제 새삼 경험한 이물감은,
같은 공간에서 한 세계가 그렇게 무너져버렸건만,
다른 세계는 그 세계의 무너짐에 무심한 듯 웃고 떠들고 달리고 걷고.
카페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풍경.
지척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노래가 흐르고, 사람들의 왁자찌껄함은 여전.

물론,
다른 세계도 아주 조금씩 균열을, 그 슬픔 혹은 아픔을 어떤 식으로든 감내하리라.
한 세계의 무너짐과 아주 무관한 세계를 살고 있는 건 아니니까.
뭣보다,
누군지 모르겠으나, 그 세계의 무너짐으로 당면한 슬픔을 감내해야 할 남아 있는 사람(들)이 밟힌다.

그 거리를 생각했다.
어쩌면 그것은 저승과 이승의 거리.
그 물은, 입 속의 검은 잎이었던 걸까.



3월7일 새벽, 21년 전.
기형도는 뇌졸중으로 세계에 작별을 고했다.
그만의 절박한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꽃샘추위가 봄 기운에 취하는 것을 막기 때문일까.
어떤 한 세계의 무너짐이 기형도를 깨웠기 때문일까.

기형도는 더 버티고 견뎠어야 옳다. 예술은 그래야 한다.
요절은 일종의 최면이다. 그것이 환기하는 심리나 정서는 강력하다.

죽음에서 기형도를 파생하는 건, 너무 익숙한 클리셰지만,
기형도의 시 곳곳에 박힌 죽음은 어쩌면 버티고 견디기 위한 몸부림이 아녔을까.
궁금하다.
검은 잎 속으로 뛰어들어야했던 몸부림은 얼마나 치열했을까.
우리는 어떤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일까.

고인의 명복을 빈다.




기형도는 봄이다...
3월7일 기형도
 

저작자 표시 비영리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사람을 찾습니다."
요리를 '잘 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제목 그대로, '좋아하는'.

눈물 짤랑짤랑 흘리며 봤어요. ㅠ.ㅠ <줄리 & 줄리아>.
뭐 이유는, 감동적이어서 그런 건 아니고, 좋아서, 사랑스러워서!
참으로 므훗해서 흐르는 그런 눈물, 아시죠? 괜스리 입가에 미소가 방긋하는.


당신도 좋아서 막 깨물어주고픈 그런 영화 있죠?
최근 제겐 <줄리 & 줄리아>가 그랬다죠. 아잉. 쪼아쪼아.
1년 여 전쯤 봤던 <다우트>의 메릴 스트립과 에이미 애덤스가 다시 재회한 영화.

<줄리 & 줄리아>를 보면서 든 생각이 뭐~였게요?

아, 나도 전설의 프렌치 쉐프, 줄리아(메릴 스트립)가 되고 싶다...
그래, 나도 요리 블로거, 줄리(에이미 애덤스)가 되고 싶다... 가 아니공,

내가 좋아하는 것에 폭 빠져서, 책을 내고 싶다...
유명 블로거로 많은 이들과 소통하며 즐거움을 나누고 싶다... 도 아니공,

짜잔~ 그렇다면, 뭣이다냐.
폴(줄리아 남편, 스탠리 투치)이, 에릭(줄리 남편, 크리스 메시나)이 되고 싶다.
꼭 제가 남자여서만은 아니겠지만,
좋아서 요리하는, 요리를 좋아하는, 줄리아와 줄리의 모습도 사랑스러웠지만,
뭣보다 이들의 무쇠같이 든든한 지원군이고픈 생각이 간절하게 모락모락.



요리랑 복작거림시롱 삶을 사랑하고 자존감을 키우는, 자신의 여자를 위해!
그들의 요리를 맛봐주공, 요리사를 위해 주방보조가 되는 남자들. 
아,
폴과 에릭은, 그야말로, 멋진 남자들인 거 있죠. *_*

요리? 잘할 필요도, 이유도 없어요.
전설의 프렌치 쉐에~ㅍ이 되라는 말도 안 해요.
365일 동안 총 524개의 레시피에 도전하라는 말도 안 해요.
그저 딴 거 없어요.
우리가 먹는, 땅·바람·비·해 등 우주의 모든 기가 모아진 식재료에 감사하고,
그것에 또한 노력과 땀을 담아 농사를 지어준 농부에게 감사할 줄 알며,
요리하는 즐거움과 함께 먹는 즐거움을 아는 여자. 
그렇게 요리를 좋아하기만 해도 돼요.

요리하는 기쁨, 요리하는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으면 돼요.

난 그런 내 여자를 위해 기꺼이 주방보조가 되어서,
내 여자가 만든 요리에 어울리는 커피를 만들어주고 싶었어효~

"먹는 것이 곧 사람이다."(
《프랑스 스타일》(미레유 길리아노 지음)).
우리가 먹는 음식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요리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아는 당신!
당신은 나의 쉐에~ㅍ
감히 그런 당신에게 제가 데이트 신청 들어갑니다효~

그리하여,
펴엉생, 그런 당신의 주방보조가 되고,
그런 당신만을 위한 특별한 커피를 뽑는 사람이 되어도 좋으니,
그런 당신, 있나효?
나는 당신의 폴이자, 에릭이 될게효~

그런 우리는 말하자면,
당신은 나의 쉐프, 나는 당신의 바리스타.

그런 당신에게, 이말을.
You're the butter to my bread and breath to my heart!

아, 소심하게 이말도...
Bon appétit!

이 영화, 한 번 보세요. 당신에게 왕추합니당~
울 엄니 아빠께도 보여드렸는데, 참 재미나게 보셨대요.
물론 요리 잘하는 아내를 둔 울 아빠는 아마 저 같은 생각은 안 하셨겠지만.ㅋㅋ

저작자 표시 비영리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오늘 아침, 일어나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머리칼을 깎으러 가야한다! 

그렇다. 오늘은 준수의 아름다운 여신님을 알현하는 날이기 때문.
우리 연아?
오~ 노!
연아 따윈 상관 없어. 
연아의 몸놀림과 움직임은 예술이지만,
그 예술을 떠올리지도 못하게 한 준수의 아름다운 여신님.

김.선.우.
시인. 혹은 소설가.
그러니까, 작가이며 예술가.


그러니까, 오늘! 2월24일.
준수의 아름다운 여신님, 드디어 알현.
아침부터 약간의 조증. 아아, 어떠케요.
뭔가 붕붕 거리며 두근두근 쿵쿵.

왜케 여신님 뒤에선 빛이 나는 거야. 흑.
그야, 당연. 준수의 아름다운 여신님이니까.


너, 이놈, 왜 이리 여신님이 많냐고 타박해도, 우짜겠노.
좋은 걸 어떡해.
그래도 아름다운 여신님을 그렇게 지근거리에서 뵙고,
나를 향해 말씀을 건네주신 분은, 선우 여신님이 아마도 처음!!!

심장이 멎는 줄 알았네, 휴.............
이름을 건넨 쪽지를 보고 건네신 그말 한마디. "본인이세요?"
아, 수줍어 제대로 말도 몬하고 눈도 못 맞추고... 수줍준수!
아름다운 여성 앞에 한 없이 쑥맥인 준수는,
오늘 여신님 앞에서 끝도 없이 쑥맥인 채로 총총...
쪽 팔리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가 모냐...ㅠ.ㅠ


아, 그래도 오늘 다른 일이야 어찌됐건,
오늘은 무조건 좋은 날. 기분은 붕붕붕~
꽃 향기를 맡으면 힘이 솓는 꼬마 자동차 준수!

그렇게, 나의 2010년 2월24일은 아름다운 선우 여신님을 알현한 날.
아, 좋아라~ 오늘, 준수는 행복한 사람~

여신님, 기억하겠나이다.
꿈꾸는 촛불나무!
수처작주 입처개진!




저작자 표시 비영리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단 한 장면으로 기억되는 영화가 있다.
다른 단점들을 싸그리 망각하게 만드는 임팩트 작렬!

무방비로 있다가 음악 하나에 마음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영화가 있다.
음악 하나만의 힘이라기보다 이야기와 영상에 어우러져 펼쳐지는 마법! 

말하자면,
<마법사들>(송일곤 감독)이 그랬다.

초반부, 약간 꾸벅꾸벅. ㅠ.ㅠ
몸 상태가 피곤에 절은데다 약간 낯선 형식에 쉬이 적응을 못한 탓이리라고 자위.

그런데, 훅~ 갔다.
어느 순간부터 까빠박 몰입해 있는 거닷!

저거 저거,
기억이 빚어내는 마법에,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아바바바... 뭔 얘기를 하고 있냐. 뷁!


마침내,
마법사들 밴드멤버들이 3년 만에 규합했을 땐,
아 거 뭐냐. 찌릿찌릿 + 저릿저릿 한 거 있지. 파파박!  

'실비아'.
몽환적이고 마법 같은 그 노래가 울려퍼질 땐, 
나는 마법에 걸려 꼼짝 못하는 폐국의 황태자라도 된 기분? (음, 비유가...^^;;)
아주 잠시, 그 노래를 듣다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함께 밴드 멤버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도 그들과 함께 자은이를 기억하고 싶었다.
"기억하는 모든 것들은 사랑이 된다"는 카피에 전적으로 동의하진 않지만, 
나는 '모든' 대신 '어떤'을 넣고 싶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아마 한동안 나는 실비아를 찾아 헤맬 것이다.

아울러, 자은을 맡은 이승비.
<마법사들>에서 꽤나 매력적이고 독특한 캐릭터였지만, 
하영(강경헌)의 차분한 미모에 휘둘린 나의 눈에 들어오질 못했는데...

역시나 반전이! 
<마법사들>이 부린 마법이 끝나고, 
감독, 배우와 함께 토킹하는 시간에 자리했는데,
오~ 마이 갓!!!!!! @,@ (코피 팡팡~) 
와와, 완존 이뻐~ 완죤 매력적이야~
그동안 내가 거친,
<장화 홍련> <모던 보이> 플러스 <커피프린스 1호점>에도 나왔었다는데,
난 왜왜왜 그땐 몰랐었던 거얏. ㅠ.ㅠ 이 썩은 동태 눈깔 같으니!

아마 그녀는 몰랐겠지만,
그녀 거의 바로 앞 객석에서 나는 배실배실 헤벌쭈욱 웃고 있었다. 좋아서. ^^;;

심각하게,
고려 중이다. 그녀가 출연한다는, 것도 배종옥 여사님과 더블캐스팅됐다는,
연극열전3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블랑쉬 역이란다.
아, 그녀가 보고 싶어졌다...
꿈결처럼 찬란하게 그대가 오던 날...ㅎ
늘, 그대 곁에...ㅎㅎ

꿈결처럼 찬란하게 그대가 오던 날
난 알았죠 단 한눈에 사랑임을
오직 한 사람 오직 한 사랑
oh 실비아 나의 영혼
실비아 나의 운명
기적처럼 날 감싸준 실비아
이젠 영원히 머물께요
언젠가 모진 바람이 불어도
늘 그대 안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노래가 흐르고
내 사랑은 그대 위한 꽃이 되죠
oh 실비아 내 파라다이스
실비아 나의 운명
숨결처럼 날 감싸준,, 실비아
이젠 영원히 머물께요
언젠가 모진 바람이 불어와
빛을 감춰도 늘

oh 실비아 나의 태양
실비아 나의 바다
기적처럼 날 안아준 실비아
이젠 영원히 머물께요
언젠가 모진 바람이 불어도
늘 그대 곁에

====================================

 ‘매직 아워’의 순간, 당신을 초대합니다
<마법사들> 특별상영 + 감독&출연배우들과의 대화


알지? 누구에게나 ‘마법’의 순간이 있어. 모든 사람에게 말이야. 차이가 있다면 그런 거지. 그것을 알아차리는 사람이 있는 한편,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 뿐이야.


응, 그렇담 어떡하면 알아차릴 수 있을까. 그 마법의 순간은, 어떻게 문을 두드릴까. 눈을 크게 뜨고, 귀를 바짝 기울이고 있다고 알아차릴 수 있는 건 아닐 텐데... 마음이라면 알아차릴까? 그 순간, 경험하고 싶어. 알려줄 수 있어?


아마도 그 순간은, 다양한 형태와 모습으로 다가올 거야. 정해진 건 없어.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건, ‘매직 아워(Magic Hour)’야. 해가 넘어가서 사라졌지만, 아직은 밝은 빛이 약간 남아 있는 순간 말이야. 어떻게 보면 하루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비로운 순간이지. 밤이 됐지만, 아직 낮이 남아 있는 순간. 마냥, 어둡지만은 않은 시간이잖아. 물론 어둠이 빛보다 열성이거나 나쁜 거라고 말할 생각은 없어.


그렇담, 이런 건가? 세계의 끝이라고, 아니 절망의 나락인 것 같지만, 아직은 끝나지 않은 시간? 지금 당장 어려워도 결코 포기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위해, 삶을 견딜 수 있는 그런 것 말이야. 인생을 완결 짓는 순간은 늘 ‘지금’이어야 한다는, 교과서 같은 말을 하는 건 아니지만, 과거도 넉넉하게 보듬을 수 있는 지금이라면, 그것도 매직 아워가 될 수 있겠지? 슬픈 일을 겪고, 각자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다시 새로운 출발을 기약하는 것...


아, 너도 그 얘길 하고 싶은 거야? 그들이 함께 나눈 매직 아워의 시간? 나도 마침 너와 그 얘길 나누고 싶었는데. 우리, 통한 거야? 그런 거야? 하하. 우리도 이렇게 통한 이 시간을, 매직 아워라고 호명해도 되겠네. 작고 사소해도 좋아. 네 마음과 내 마음이, 캄캄한 어둠을 뚫고 한 줄기 빛처럼 공명하는 순간이, 어찌 기쁘지 않겠어. 흐~


빙고~ 너와 내가 아니더라도, 마음과 마음은 애초 밤부터 시작하는 것 아닐까. 그러다 서로를 알게 되면서, 밤과 낮이 수시로 교차하는 거지. 그러다 영원히 밤이 되기도 하지만, 밝은 빛이 쨍하고 들어오면서 아직 낮으로 남을 수 있는 매직 아워를 경험할 수도 있겠네. 그치?


좋아, 매직 아워. 한 번 경험해볼까? 내가 아는, 일군의 마법사들이 만든 매직 아워가 있었거든. 매직 아워를 경험한 마법사들이 펼친 95분. 지난 8일, ‘YES 블로거의 특별한 만남’으로 대학로 창조아트홀에서 열린 <마법사들> 특별상영회였어. 감독과 출연배우들과의 대화까지 곁들인. 내가 경험한 매직 아워는 말이지...


아, 잠깐 잠깐. <마법사들>? 음, 혹시 해리 포터 얘기? 우리 머글과 다른 DNA를 갖고 태어난 호그와트의 마법소년! 부엉이가 주는 입학원서를 받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런던 킹크로스 역의 9¾ 승강장에서 호그와트 급행열차를 타고 호그와트 마법학교로 가서 펼치는 마법을 얘기한다면, 난 사양하겠어. 

 

헐~ 그럴 리가 있나. 우선, 듣고 경험해 봐. 마법사들이 만들어 낸 매직 아워는 어떤 것이었는지. 음악을 매개로, 사람을 매개로, 시간을 빚어 만든 마법의 순간을... 자, 함께 들어가 볼까? 





95분의 원테이크 원컷이 만드는 매직 아워, <마법사들>



















난 자은(이승비). 기묘한 분장이라고? 음, 내가 좀 신분이 남달라서 그래. 그런데 왜 산장을 나풀나풀 떠도냐고? 무슨~ 일일까요~ ‘마법사’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뭔가, 신비롭지 않아? 뭔가 몽환적인 것도 같고. 그치? 나 말고, 여기 이 산장 카페(마법사들)의 두 남자와 한 여자. 나와 함께 한 밴드 멤버야. 자은인 기타리스트였고, 재성(정웅인)은 드러머이자, 내 애인이었고. 지금은 이 카페, ‘마법사들’의 주인이지.


명수(장현성), 곧 아르헨티나로 이민 갈 계획을 세운 베이시스트. 곧 말할 하영(강경헌)의 애인이었고, 그 좋아하던 음악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남자. 쉽게 말할게. 사랑도 음악도 실패한 루~저. 하하, 농담 농담. 하영은, 뭐랄까. 나의 마지막에 대한 죄의식 때문에 스스로 더 이상 노래하길 멈춘 보컬. 마음이 아파. 그 감미롭고 파워풀한 목소리로 우리 밴드를 빛내줬던 그녀임을 감안하면.


그래, 3년 전이었어. 난 세상에 작별을 고했어. 술을 마셨고, 약도 좀 했지만, 글쎄.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밴드 멤버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거지. 그들 옆에서 떠돌지만, 그들은 날 감지하지 못해. 난 그들을 느낄 수 있는데도 말이지. 재성과 명수는 왜 저렇게 술을 마시니. 내 얘기도 참 많이 하네. 하긴 오늘이, 바로 나의 3주기가 되는 날이야. 3년 만에 모여 여기서 날 추모하려고 하는 거지.


과거와 현재가 헷갈리지? 1층과 2층으로 분절된 공간을 통해 시간까지 분절한 덕분이야. 원샷 원킬, 아니 ‘원테이크 원컷’으로 우리의 이야길 들려주길 원한 감독(송일곤)의 영화적 실험이라서 그래. 꼭 마법 같지 않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이라니. 연극적인 요소가 강한 건, 그래서일 거야. 아, 예기치 않은 손님도 있네. 스노보드를 찾으러 온 승려(김학선). 화두를 풀고 하산하는 길이라지? 이 승려가 아마 나의 3주기 추모와 남은 이들의 새 출발에 대한 증인이 되겠지.


영화평론가 김지미가 그랬지. “죽은 사람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추억을 나눌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자은이는 나머지 세 명의 밴드 멤버들에게 선물을 준 셈이겠지? 아, 물론 농담이야. 당연히 알아. 나 없는 그들이 버티고 견딘 3년의 세월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남은 자가 감내해야할 슬픔이 얼마나 가혹한지. 무정한 세월이었을 거야. 그들에겐.


지금 그들이 끄집어내는 내 얘기가, 우리들의 시절이 더욱 빛나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일 거야. 많이많이 아쉬울 거야. 나도 그런데, 그들이야 오죽하겠어. 내가 남긴 기억 때문에, 훌쩍 그렇게 가 버린 나 때문에 그들이 가졌을 죄책감 때문에. 그러니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사랑에 취해, 음악에 취해, 마법에 취해, “돌아보면 네가 있을 것 같아…”라고 말하는 내 좋은 애인과 친구들을 말이야...


감독이 그랬다지? “영화란 ‘빛과 사운드를 이용해 시간을 조각하는 작업’이다.” 지금 내가 있는 이 공간, 마법사들에는 빛과 사운드, 시간이 마법처럼 직조돼 있지. 느낄 수 있지? 후고 디아즈의 탱고 선율도 멋지고, 카페의 조명은 빛과 시간을 자유로이 넘나드네. 유후~ 무엇보다 밴드 멤버들이 날 위해 부르는 「실비아」, 당신을 마법으로 인도할 우리들의 선율.


궁금하다고? 그럼 날 느껴 봐. 그것이 바로, 매직 아워야. 해가 넘어가서 사라졌지만, 밝은 빛이 남아 있는 순간 말이야. 내가 죽어서 사라졌지만, 아직 그들의 마음에 내가 남아 있는 순간. 아름답고 신비한 순간이지. 나는 비록, 그들 곁에 없지만, 그들과 함께 있어. 한 번 들어보지 않을래? 그렇게 내가 그들과 함께 한 순간 울려 퍼지는 우리 밴드의 음악, 바로 「실비아」. 음악이기에 가능한 시간들. 당신도 함께 그 순간을 목격한 사람이 돼 줬으면 좋겠어. 나는 당신을, 당신은 나를 감탄하는 시간, 그것이 우리의 매직 아워. 95분의 원 테이크 원 컷이 만드는 매직 아워. 그럼, 이 매직 아워를 만든 이들의 얘기도 들어볼까?

 

마법사들의 속삭임


감독 송일곤 : 5년 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지원한 <디지털 삼인삼색 2005>의 일환으로 시작했다. 디지털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고, 내가 잘 아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보험 들고 직장 다니는 그런 친구가 아닌. 친구 중에 아끼는 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그 친구에 대한 만가(輓歌)로 만들었다. 


대본을 빨리 썼고, 배우를 캐스팅했다. 절친이자 소울메이트인 장현성에게 부탁했고, 천재배우라 부르는 이승비 씨에게도 부탁했다. 하고 싶었던 것이 원테이크였다. 디지털로 뭔가를 표현할 때 시간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싶었다. 편집 없이 과거와 더 과거와 미래와 근미래까지 시간을 조각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런 의미에서 한 테이크로 찍었다. 필름 시대라면 불가능했겠지만, 디지털이 나오면서 한 테이크에 찍는 것이 가능해졌다. 


작업하면서 굉장히 즐거웠다. 매우 뛰어난 배우들과 리허설을 3주 했는데, 연극적인 베이스가 없으면 힘들었을 거다. 훌륭한 배우와 작업하는 게 즐거웠다.


배우 이승비 : 가슴이 콩닥콩닥 뛰면서 봤다. 운 좋게 한국에서 공연하게 돼서 이틀 전 독일에서 왔다. 정말 기억하는 것은 사랑이 되는 것 같다. 이 영화, 아름답고 예쁜 추억의 조각인 것 같다. 뒤에서 보면서 울고 그랬다. 많이 와 주셔서 감사한다. 


배우 장현성 : 나를 포함해 93명이 왔다. 어떤 경로로 왔는지는 몰라도 4년 전에 만든 영화를 같이 보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마련돼서 매우 즐겁다. 영화의 장점이 배급이고, 그것을 통해 파괴력이 생기는데, 92명의 관객이 4년 전의 영화를 감독, 배우와 함께 소곤소곤 할 수 있는 것이 재미있다. 참 반갑다.


마법사들에게 질문을 던졌고, 마법처럼 이를 풀어낸 시간이 이어졌다.


찍으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은?


(송일곤, 이하 송) 힘든 게 없었다. 즐거웠다. 다만, 배우들과 촬영감독이 힘들었을 거다. 무척 추운 날이었거든. 배우들은 연극을 다 한 분들이지만, 영화는 연극과 분명 다른 면이 있다. 영화는 카메라를 알아야 하고 조명도 받아야 하고, 동선도 정확해야 한다. 이 영화는, 촬영을 한 번에 해야 했다. 스테디캠으로 찍었는데, 무게가 25~30kg 나가는 것을 95분 동안 메고 다녀야 했다. 또 계속 움직이고 크레인도 타야했고... 굉장히 추운 날이었는데, 촬영감독이 한 번 찍고 나면 움직이질 못했다. 콧물이 나와도 닦아줄 수도 없었고. (웃음) 모니터가 6~8개 있는데, 나는 기네스 맥주캔을 두고 담배를 피면서 최초의 관객이 돼서 굉장히 즐거웠다.


(이승비, 이하 승) 약간 고소공포증 있다. 크레인을 타고 발 두 개를 얹을 수 있는 곳에 올랐는데, 그게 2층 반 정도 높이인데, 무서워서 혼났다. 병 깨는 신이 나오는데, 진짜 병이었다. 두 번 정도 조감독이 가르쳐줬는데, 의외로 잘 됐다. 스냅으로 돌려서 바로. (웃음) 처음에 그걸 준비하는 과정에서 힘들었다. 나머지는 다 좋았다. 연극하는 것처럼 촬영해서 되게 행복했던 작업이었다.


(장현성, 이하 장) 다른 건 없고, 너무 추워서 자꾸 술을 마시게 됐다. 96분 중에 60분이 넘어가면서 필름이 끊긴 부분이 있다. (웃음) 너무 추워서. 그게 제일 힘들었다.


(송) 비화인데, (남자 주인공 두 명이) 소변을 누는 신이 있다. 성기가 노출돼서 어떻게 감춰야 할지 그것 때문에 애먹었다. (웃음) 자세히 보면, 굉장히 아슬아슬하다.


(장) 리허설 할 때 계획은, 허리 정도에서 사이즈를 끊는 것으로 돼 있었다. 이날 진짜 맥주를 마셨다. 최대한 맥주를 마시고 최대한 참은 뒤, 소변발의 수압을 올려서 그게 필름에 잡힐 수 있도록 하면 실감 나겠다고 해서 그렇게 했다. 그렇게 찍은 게 있을텐데, 그걸 안 써서... (웃음)


연극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이 형식이 다른 형식에 대해 가지는 차별성이나 장점은 뭔가. 또 자은이라는 인물은 다른 시공간에 사는 캐릭터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어떤 느낌으로 연기를 했는지. 아울러 장현성이 맡은 명수는 가장 현실감 있는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실재 성격은 어떤가.


(송) 연극은 장치가 많고 무대가 오픈돼 있는데, 영화는 감독의 시점으로 제한돼서 보여준다. 이 영화는, 굉장히 연극적이면서 영화적이고, 영화적이면서도 연극적이다. 그게 약점이자 장점이다. (연극과 영화는) 본질적이고 미학적인 측면이 다르다.


(승) 자은이는 결핍․소통의 부재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캐릭터다. 당시 나한테는 그런 부분이 많았다. (영화를) 찍을 때, 딱 자은이였다. 그래서 감독과 별 트러블 없이 쭉 갈 수 있었다. (웃음) 사람들은 열망하고 원할 때,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방법이 다른데, 자은이는 말하자면, 민폐 캐릭터다. (웃음) 그런데 밉지 않게, 연민이 갈 수 있게 표현된 것 같아서 마음에 든다. (영화를 찍을 때인) 2005년에 연예인 가운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많았고, 나는 그 감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어떤 상태인지를. 그 시점에 도달했을 때는 이성이라곤 없다. 멍한 공간에 들어가서 그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쑥 빨려 들어가는 그런 거다. 자은이도 그래서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남은 사람들이 너무 아프잖나. 물론, 전에는 나와 비슷한 부분이 많았는데, 지금은 없어진 상태다. (웃음) 


(장) 베이시스트 명수. 배우 장현성. 자연인 장현성. 세 인물로 본다면 배우는, 자연인 장현성을 가운데 둔 여러 가지 얼굴이랄 수 있겠다. 자연인 장현성과 베이시스트 명수는 꽤 닮았다.


좋은 영화 보여줘서 고맙다. 처음 기획은 영화제 출품을 위해서였는데, 디지털과 한 번에 찍겠다는 의도도 포함됐던 건지. 인물에 포커싱이 맞춰진 것이 아니고 흐릿한 부분도 있는데, 의도적으로 그렇게 해서 흔들리거나 불안한 감정을 표현하고자 한 것인지. 스님이 등장하는데 넣은 의도는. 이승비 씨는 해외에서 연극을 하는데, 현지 스탭이나 배우들과 일하면서 힘든 점이나 다른 점은 무엇이며, 지금 귀국했는데 어떤 작품활동을 할 것인지.


(송) 처음에는 단편으로 대본을 썼다. 현장에서 첫 리허설로 리딩을 했는데, 그게 참 좋았다. (배우들이) 대충할 줄 알았더니 정말 잘하는 배우들이라 그런지... 장현성이 먼저 피치를 올리고, 따라서 정웅인이 피치를 올리고 이승비도. (웃음) 첫 리딩을 하니 40~50분 정도 나왔다. 그 다음주에 호주 갈 일이 있었고, 촬영을 빨리 해야 했는데, PD에게 호주에 가서 몇 신을 더 써올 테니 3억을 구해달라고 했다. 호주에서 돌아왔더니 (돈을) 구했더라. 그래서 장편을 찍었고, 영화제에선 딱 잘라서 (단편으로) 보여주고.


스님은 초고를 썼을 때, 내가 하려고 했다. 연출할 때, 배우 얼굴을 봐야 하는데, 스님을 하면 앉아있어야 해서. 스님은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 이들의 작은 치유를 목격했으면 좋겠고, 보드를 찾으러 온 스님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넣게 됐다. 내가 보드에 한참 빠져있을 때라... (웃음)


(승) 나는 유명배우도 아니고, 연극이 정말 좋아서 했고, 영화는 아주 간혹 찍었다. 독일에 혼자 여행을 갔는데, 오디션 소식을 들었고, <행복의 잡지>라는 초연 작품이었다. 공주 역할이 나오는데, 그 역할로 오디션 본 건 아니었다. 친구가 독일어를 잘 했는데, 그 친구가 번역을 해줬다. 영어로 오디션을 봤다. 그런데 연출가가 겁도 없이 공주 역할을 준 거다. 오디션 때, 아리랑을 불렀고, <리타 길들이기>의 대사를 했다. (극에서) 실제로 아리랑도 부른다. 스탭들과 소통 등 다른 문제점은 없었다. 한국이 배우를 위하는 나라구나 싶더라. 독일엔 배우들이 매니저 없이 다니고 자기들이 다 알아서 한다. 독일엔 분장술이 정말 아니다. (웃음) 손재주는 우리나라가 좋더라. 왼쪽 손으로 내가 해도 더 잘할 텐데. (웃음)


지금은 ‘연극열전3’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블랑쉬 역으로 캐스팅 됐다. 배종옥 선배랑 더블 캐스팅 됐고, 오늘 처음 했다. 공연 많이 보러 와 달라. (웃음)
 


영화에서 장현성 씨를 보면 대개 지식인이다. 평범하게 묻혀 사는 지식인 이미지가 강한데, 실제로 보니 발랄해 보인다. (웃음) 송일곤 감독 영화는 대개 자연이 배경이 된다. 특별한 이유라도? 분장이나 장치에 상징적인 의미가 있나.


(송) 장현성, 참 발랄하다. 얼굴이 각 지고 강해서 그런지, 그런 역을 많이 준다. 굉장히 다양한 역을 맡았다. 저주 받은 지식인? 굉장히 다양한 스펙트럼 가지고 있고 무척 근사한 인간이다. 친구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분장은 밴드라서 각자의 캐릭터를 두드러지게 나타나길 바랐다. 의상비는 거의 안 들었고, 자연을 배경으로 한 것은 무의식적이었던 것 같다. 도시를 떠난 어떤 곳에서 치유를 받는 느낌처럼, 내 영화를 보고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지금 준비하는 영화는 서울에서 이뤄지는 영화다. 나이도 들고 그래서 이제는 솔직하게 정면 승부하는 영화를 하려고 한다.


(장) 송일곤 감독과 함께 있으면, 전혀 유식하지도 않고 저질이다. 둘이 앉아 음담패설을 하고 여자 얘기를 한다. (웃음) 한 기자에게 들었는데, 가장 치욕스런 얘기가, 내가 유치장에 들어가 있으면, 노상방뇨로 들어왔는데도 정치범처럼 보인다는 얘기였다. (웃음) 송일곤 감독은 좋은 연출가이고 좋은 친구다. 오랜 시간 함께 꿍꿍이를 벌이고 있고, 사적인 고민이나 한국에서 남자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있다. 작가와 배우로서 서로 기대고 혼내고 그런 시간이 좋다. 좋아하는 친구면서, 존경하는 친구다.


그동안 영화가 제주도, 아르헨티나, 쿠바 등 남국에 대한 판타지가 있는 것 같다. 혹은 이상향인가. 그리고 영화에 장현성 씨가 항상 나오는데, 페르소나인가.

 

성향인 것 같다. 동유럽에서 공부했지만, 남미에 대한 동경도 있다. 서울이 갖고 있는 빡빡함에서 벗어나고 싶고, 그런 쪽을 좋아한다. 탱고나 남미 음악도 좋아한다. 장현성 씨를 통해서 뭔가 특별한 메시지를 나타내는 것 일 수도 있는데, 그건 무의식이다. 어떻게 보면 영화계에서 그런 관계도 부러웠다. 우리 둘의 성향이나 세계관이 비슷하다. 장현성 씨의 성향과 내가 세상을 보는 성향이 공통적인 게 많고, 내가 이 친구에게 기대는 것도 많다.


다른 영화들은 장면전환이 있어서 상념을 정리할 수 있는데, 사실 오늘 굉장히 피곤했다. 이런 작업을 계속할 건지, 앞으로 무얼 준비하는지 알고 싶다.


피곤하게 했다면 죄송하다. 이런 식의 작업을 하기 쉽지 않고, 아까도 말했지만 특정 목적이 있었다. 영화의 어떤 측면을 강조한 거고. 지금, 아주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내년 박스오피스를 강타할 영화를 준비 중이다. (웃음) 

[Yes24 기고문]

 

저작자 표시 비영리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물론, 얼토당토 않은 제목 되시겠다. (저건 뭐야, 응?)
생일에 흰눈이 내린다면, 이면 모를까. 앙~ (헐~ 미친 재롱?)

송송송 눈이 뿌린다. (눈송송 머리탁) 
생일에 맞아보는 첫눈. (오호, 이럴 수가~)
그 첫눈을 맞으며 기분이 쪼아쪼아. (와우~ 하늘도 날 축하해?)
생일에 흰눈에 내린다면 아닌, 흰눈에 생일이 내린다면. (뇌회로가 엉킨 거얏!)
어쨌거나, 와이트 버~쓰데이(White Birthday)~ (쌔바닥 굴리지 마라, 이 빵구똥꾸)

물론, 마이 버~쓰데이. (와, 축하해~)














그리고 함께 축하하고 받을 사람들. (어? 또 누규?)
링컨, 다윈, 예니(칼 마르크스의 아내). (오호~ 근데 그게 어쨌다고!)



그래두 그래두 뭣보다 우리 보영이. 꽃보다 보영!
(보영이? 누구야? 예뻐, 응?)

헤헤헤. 그러니까, 박보영!(<과속스캔들>)
(에이, 씨바준수 같으니라굿!)

워워워.
14일(설날) K둘 본부 밤 10시25분에,
<과속스캔들> 한다~ (오우, 보영이 보는 겨?)





뭐, 생일 같다고 특별할 것도, 아무 상관도 없다. (알긴 아는군, 킁~)
오늘, 그렇게 생일 맞은 지구의 모든 이들에게, "생일 축하해~ (구랴, 너도 ㅊㅋ)

이 노래, 함께 들을까? ^.^ (그래, 한 번 틀어봐!)


참, 며칠 전부터 어젯밤을 피크로 오늘까지 축하해 준 이들에게 캄솨를.
(ㅋㅋ 숙취, 괜찮아?)
특히 오늘, 좋지 않은 컨디션에도 즐거운 얘기를 나눠준 진국 형님께도 캄솨~^.^
(너, 참 많이 빚지고 산다? 언제 갚을래? 응?)

아, 눈이 와서 좋은 어느 겨울날. (귀향길 막힌다, 짜식아, 버럭)
생일선물로 송송송 눈을 받아든 마음. (쯧, 낭만 찾다 뒈질라 ㅋㅋ)

그렇게, 흰눈에 생일이 내린다면... (아 쉣~ 자꾸 말도 안 되는 말, 쓸래?) 
당신 생일엔 내가 송송 내렸으면 좋겠어. (그래, 함 내려봐, 안 내리기만 해봐!ㅎ)

뿌온 꼼쁠레 안노!


참, 이날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고, 그의 후세들이 호들갑에 육갑을 떤,

돈암 돈병철(호암 이병철)은 당연 포함하지 않겠다. (오~ 잘 해쓰~)


기분 나빠. 같은 날 태어나서. (지가 늦게 태어나고선, 쯧)

공과가 있다곤 하지만, 나,

돈성(삼성)의 극악무도한 몰염치와 후안무치에는 돈병철의 잘못이 지대하다고 봄. (동감!)

그는 노동자 피를 쪽쪽 빨아먹고 큰, 악덕 장사꾼(사업가? 지랄!)이었고, (테러 당할라ㅋ)

인간은 없고 돈만 최고의 가치로 아는 아들 잘못 키운 원죄가 크니까. (돈건희~)


돈병철 탄생 100주년?

조까라 마이싱이다. (미투!)


링컨, 다윈, 예니 때때로 나!


저작자 표시 비영리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파스타>.
요즘 가장 꽂힌 드라마지요.

쉐엡~~ 쉐엡~~~ ^.^
아, 그 말 들으면 우리 매력적인 버럭 쉐엡~이 두둥실~
귀연 우리 요리사, 효진이의 함박 웃음도 더덩실~

그렇게 <파스타>에 빠져 있다보면,
내게도 쉐엡~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지요...^___^

그래서, 짜잔. 박찬일 쉐엡~하고 불러봅니다.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에서 이미 검증된 맛깔진 글과 풍성한 요리 이야기가,
저를 훅~ 매혹시켰습니다.

요리 하나로, 나와 당신의 영혼이 빛날 수 있음을 이젠 확실히 믿습니다.
박찬일 쉐엡~ 덕분이죠.

무엇보다 요리사의 철학. 쉐엡~의 철학. 그것이 가장 빛나고 완전 공감!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의 등장인물인 이탈리아의 슬로우푸드 시칠리아 지부 창립자이자, “요리사란 요리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한 그릇의 요리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통제하고 감시하는 관찰자여야 한다”고 여기는 ‘파또리아 델레 또리’의 주방장인 쥬제뻬 바로네의 믿음. “온갖 인공 첨가물이 들어간 그런 음식을 먹으면 영혼이 파괴된다고 믿었다.”(『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p.130)

무엇보다 요리를 하고 싶도록 만든 대목.
“무엇보다 그가 내게 유전자처럼 심어준 건 요리하는 영혼이었다. 그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는 나의 재료로, 가장 전통적인 조리법으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먹는 요리를 만들라’는 요리의 삼박자를 깨우쳐주었다. 모양이나 장식으로 멋을 내는 줄만 알았던 서양요리, 이딸리아 요리의 진정한 승리는 이 삼박자에 있었다는 걸 그는 알려주었다.”(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p.284)


그리하니,
박찬일 쉐엡~을 직접 알현하고, 그의 요리(혼)까지 섭렵하고픈 욕망이 생기지 않겠사옵니까. 뵙고 싶습니다. 알현하고 싶사옵니다. 쉐엡~ 하고 불러보고 싶사옵니다. ^.^ 내 보통날의 파스타를 만나 내 몸안으로 밀어넣고 싶사옵니닷!

파스타와 스토리텔링의 만남!
함께 먹고 영혼을 나누실래요? ^__^


저작자 표시 비영리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냉정과 열정 사이.
친구들 중에 나를 간혹 '준쉐이(혹은 준셍이)'라고 부르는 넘들이 있다.
당연히 영화(<냉정과 열정사이>)의 준세이처럼 간지나고 잘생겼기 때문이지.
라고.................................하면 새빨간 거짓말이고.^^;
첫사랑을 오매불망 잊지 못해 그녀를 품고 세월을 버티는 순정남이라서.
라고..................................해도 끔찍한 뻥이야. OTL

이유? 단순하다.
그저 내 이름 중에 '준'이 쏙 얼굴을 내밀기 때문이지.
간혹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생각난다. 내게도 있었던 아오이(들).
풋풋한 스무살 시절, 준세이와 10년 약속으로 손가락을 걸었던 여인.
5월25일 피렌체 두오모에서 해후하면서 옛사랑을 복원했던 준세이와 아오이.


어제 밤, TV에서 <냉정과 열정사이>를 방영했다.
영상보다 음악이 더 도드라졌던, 
원작(책)보다 밀도와 질감이 미치지 못했던 영화를 다시 응시하면서,
이번에는, 준세이와 아오이보다 다른 인물들에 눈을 맞췄다.

운명(으로 포장된) 사랑을 위해 들러리를 서야 했던,
바퀴벌레 한쌍의 작당에 희생당할 수밖에 없었던 두 사람. 메미와 마빈.
메미는 (아오이 없는) 준세이의 연인이었고,
마빈은 (준세이 없는) 아오이의 연인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정작 마음은 저 멀리 가 있는 연인 때문에 가슴은 가슴대로 앓고,
눈물은 눈물대로 흘려야 했던 그네들.
단지, 주인공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두 주인공이 덧칠하는 옛사랑의 복원 때문에 동원됐지만,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따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들이라고 왜 마음이 없겠는가. 사랑을 왜 지키고 싶지 않았겠나.
그럼에도 주목받지 못한 채 스크린 뒤로 물러서야 했던 그네들의 마음.

냉정과 열정사이라는 제목은,
주인공들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어쩌면, 아오이와 준세이가 복원하려는 사랑이 열정이라면,
그 틈바구니에서 외면당해야 했던 마빈과 메미는 그야말로, 냉정.

누구나 그렇게 자신의 삶에서는 주인공이다.
메미와 마빈에게도 마음이 있고, 사랑이 있다.
조연이라고, 들러리라고 무시하지 마시라.

히스 레저.
어제, <브로크백 마운틴>을 돌려보고 싶었다.
동료에게 그 말을 했다. 카페에서 그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고.
어제 1월22일이 그의 2주기라서. 좋은 생각이라고 했다.
집의 DVD 플레이어는 고장났다. 브로크백 마운틴을 삽입해도 소용이 없다.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도 보고 싶었지만, 결국 보지 못했다.

히스 레저를 생각하면,
그냥 딸 마틸다가 눈에 밟힌다.
내 딸도 아니고, 아무 연관도 없는 아이임에도.
올해 여섯 살이 되었을 마틸다.
아빠의 존재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느닷없이 곁을 떠나야 했던 아빠의 부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마틸다 레저가,
세상의 악행과 슬픔을 잘 견뎌나가길.
거칠고 더러운 공공연한 비밀을 품은 세계를 헤쳐 나가길.  
어느날, 훌쩍 커버린 마틸다를 보곤 '잘 컸구나'하는 탄성을 뱉을 수 있길.


오늘, 봉춘이가 결혼했다.
녀석. 이렇게 훅~ 가게 될지는 우리 친구들 아무도 몰랐다.
다들 놀랍다는 말 한 마디씩 덧붙인다.
원투쓰리(1월23일). 꾹꾹 눌러담은 그 말로 결혼식에 와 달라던 녀석.
몰래 사랑도 아니고, 알기론 너무 미적지근한 사이였음에도,
그렇게도 결혼은 한다. 나로선 의아한 일이긴 해도, 녀석은 녀석의 방식대로!
내가 녀석에 대해, 녀석의 결혼에 대해 재단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행복하길. 아니 녀석에게 행복이 작은 한뼘이라도 늘어나길.

몇 남지 않은 미혹 혹은 비혼에게, 어떡할거냐는 진부한 타박(?)도,
나는 열외인종. "쟤는 그냥 재껴놔." 친구들마저 이젠 인정한다.
뭐 내 의도와는 무관.
나는 독신주의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결혼주의자도 아닌, 회색인간, 열외인종.

그래도, 커피가 나를 달래준다.
메미와 마빈, 히스 레저와 마틸다까지.
아름다운 여자만큼 커피가 좋은 이유. ^.^

사람의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 속밖에 없다지만,
마음의 있을 곳이란, 커피 한 잔에도 있단다.

어쨌든 5월25일 피렌체 두오모에는 갈 테닷!
피렌체 두오모에서 커피 한 잔 마실테고.
그 순간, 당신이 함께였으면 좋겠다. :)

[메종드 쭌/기억의 저편] - 5월25일, 당신의 가슴 속에도 누군가가 있는가...

[메종드 쭌/기억의 저편] - ▶◀ 안녕, 에니스... 안녕, 히스 레저...

[메종드 쭌/기억의 저편] - 우리, 히스 레저 배웅할까요~

[메종드 쭌/기억의 저편] - 히스 레저, 그리고 우리들의 '다크 나이트'


저작자 표시 비영리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샤넬'.

한때는 사치의 대명사로 치부했었다.
그것은 오산. '샤넬'이라는 이름 안에 얼마나 풍성한 이야기가 있는지 알기 전의 오해.
명품이라고 일컫기 이전의 샤넬은 그야말로 어떤 혁명. 특히나 여성들에겐 해방의 이름.

샤넬은, 곧 코코 샤넬.
진부하고 식상한 이야기 한 토막.
세기의 섹스심벌, 마릴린 먼로에게 한 기자가 물었다.
"밤에 뭘 입고 주무삼?" (그따위가 궁금하더냐, 이 기자놈아!)
마릴린 먼로의 우문현답. "샤넬 No.5다, 이놈아." (먼로에 대해서라면 다음 기회에~)

그렇다. 샤넬은 본능이었다.
전세계 여성이 가장 간절하게 원하는 핸드백이,
샤넬 '2.55 퀄팅백'이라지?
1955년, 코코의 60번째 생일을 맞아 선보인,
퀼팅(누빔)처리한 가죽백에 금색 체인을 달아,
어깨에 멜 수 있도록 만든 이 제품.
하나의 2.55를 위해 180여개 공정을 거쳐 장인 6명이,
일주일 이상 정성을 들인다는 이 제품.

(여성의) 손을 해방시킨 것은 물론, 샤넬을 갖는 것을 로망으로 삼게끔 했다.
당시, 오죽하면 이런 말도 있었단다.
"샤넬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여자는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여자가 아니다." 허허.

스타일, 샤넬의 모든 것.
카디건 슈트, 샤넬 슈트, 샤넬 No.5...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터.
하나로 정리하자. 샤넬 스타일(Chanel style). 독창적인 시그니쳐 룩.
가식 따윈 아듀~ 쓸모없는 복장에 대한 저항.

장 콕토는 말했다.
"매력적이면서 호감을 주고, 인간적인가 하면 잔인하며, 때론 너무 지나쳐 보이기도 하는 여자. 분노, 변덕스러움, 친절함, 유머, 반짝이는 생각, 검소함, 그리고 관대함이 샤넬이라는 다시 없을 독특한 여자의 모든 것이다."
장 콕토도 샤넬, 무척 좋아했었나보다. 행간마다 꼼꼼한 애정이 넘친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여자를 어떻게 표현할까.


물론 과장도 있었겠다.
코코는 스스로 "마음이 고약하고 화를 잘 내며 도둑에다 거짓말쟁이, 엿듣기의 명수"라 말했다.
의상 제작에 있어 여성 해방을 적극적으로 내비친 적도 없단다.
그저 샤넬 스타일이, 여성 해방과 연관 지을 수 있는 지점이 나타난 게고, 
사후 누군가가 과장했을지도.
코코는 또 사랑에 빠져, 독일 나치의 스파이 노릇도 했다.

왜 샤넬 이야길 꺼냈냐고?
1971년 1월10일, 39년 전, 코코 샤넬이 파란만장한 영욕의 세월을 꺾었다.
미터기도 아닌데, 왜 꺾냐고. 내릴 때가 됐으니, 꺾는 게지.
어쨌든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 샤넬은 (여성) 몸의 혁명을 만든 장본인이다.

샤넬, 알고 입으면 당신은 더욱 멋진 사람.
내게 샤넬은 더 이상 사치의 대명사, 아니다.
샤넬의 옷이건 액세서리건 향수건, 당신의 스타일을 위해서라면 향유해야지.
그러면서 샤넬의 것이 어떤 의미를 품고 있는지, 코코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면,
나는 당신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겠소이다. 하하.
샤넬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21세기의 샤넬이 된다면, 더더욱 얼쑤~~~

P.S. 샤넬은 여전히 개인기업 형태로 운영된단다.
말인즉슨, 주주나 투자자에게 공개한 주식회사가 아니며 경영실적을 공개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적인 사업의 확대나 이윤의 추구만이 샤넬이라는 기업의 모토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란다. 믿거나 말거나, 당신의 몫.

영화 <코코 샤넬>은 보고 싶었는데, 아직 못 봤다. 어떻든가?
오드리 토투의 샤넬. 정말 구미 당기는 조합이긴 하다.

==============


문화․예술 혁명을 기대한다, 당신도 샤넬처럼

20세기 여성을 해방시킨 패션혁명가에서 엿보는 우리 시대


“20세기 여성 해방에 가장 기여한 사람이 샤넬이다. 코르셋을 벗을 수 있게 만든 사람이 아니냐. 물론 코르셋 없는 속옷을 만든 이는 따로 있지만, 상품으로 팔릴 수 있도록 예쁘게 만든 사람이 샤넬이다. 핸드백에 끈을 달아, 한 손을 풀어준 사람도 샤넬이고. 샤넬은 화도 잘 내고 말도 막 한 사람인데, 살면서 가장 분노했던 사람 중의 하나가 크리스티앙 디오르다. 디오르는 H라인, A라인 등을 만들었는데, 남성의 눈으로 남성이 보기에 괜찮은 옷을 만든 사람이다. 샤넬은 디오르를 향해 반동이라는 말을 썼다. 20대들은 샤넬을 소비하고 싶은 사람이 아닌, 샤넬이 되면 된다. 샤넬은 돈도 잘 벌고 재밌게 살았다. (웃음)”


- 우석훈 (≪88만원 세대≫,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의 저자)의 강연 중-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는, 늘 달라야 한다”


지난 1971년, 39년 전 1월10일. 한 시대가 저물었다. 코코 샤넬. 본명은,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Chanel), 별칭이 코코(Coco). 패션 브랜드이자 아이콘으로서 주로 회자되던 그 이름. 산책을 한 뒤 자신의 침대로 향했던 그녀가 갑자기 소리쳤고 가정부가 달려왔다. “이것 봐, 이렇게 죽는 거야.”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자의 죽음 치고는 황망했나. 아니, 그렇지만도 않다. 어쩐지 죽음을 예감한 뉘앙스 아닌가. 향년 87세. 1월의 찬바람을 살짝 만끽한 뒤, 육신을 접은 것은 영원한 스타일리스트이자 혁명가의 센스일지도.



샤넬의 이름 앞에 혁명가라는 레떼르가 낯설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떠올려보자. 여성을 코르셋으로부터 해방시킨 것, 그것은 몸의 혁명이 아녔을까. 샤넬 이전, 복잡하고 불편한 옷을 감내하고 살아야했던 여성들이었다. 샤넬은 ‘왜 여성만’이라고 반문했다. 손을 움직였다. 우아하면서도 격식을 차리지 않는 의상디자인이 그녀의 손끝에서 나왔다. 답답한 속옷이나 장식성이 많은 옷에서 간단하고 입기 편하며 여성미가 넘치는 스타일이 나왔다.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저지드레스, 슈트, 나팔바지, 단발머리, 트렌치코트, 터틀넥스웨터, 리틀블랙드레스 등. 이른바 샤넬 스타일의 시작이었다. 유행은 흐르고 바뀌어도, 변함없이 애용되는 바로 그것, 샤넬 스타일.


또 들어볼까. 핸드백으로부터 손을 자유롭게 한 것, 무릎 근처로 올라간 치마로 땅에 닿는 긴 치마로부터 벗어나게 해 준 것도 샤넬의 공이었다. 여성용바지 또한. 무엇보다 철 지난 것이 아닌 불멸의 것으로 스타일을 창조한 사람. 기존의 것과 달라야하는 것. 그것은 혁명의 다른 이름. “패션은 복장에만 있는 그 무엇이 아니다. 패션은 하늘에도 거리에도 있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이자 늘 새롭게 일어나는 그 무엇이다.” 잊거나 모르고 있지만, 여성을 옷뿐만 아니라, 시대의 속박으로부터 자물쇠를 연 사람, 샤넬이다. 당신에게 지금 샤넬 제품이 없을지 몰라도, 둘러보라, 샤넬 스타일은 있다.


“일할 시간과 사랑할 시간 외에 또 다른 시간이 필요한가”



샤넬은 사랑하며 살았고, 후회 없이 일했던 사람이었다. 한편으로 세간의 입방아로 비유하자면, 스캔들 메이커였다. 어린 시절의 불행을 보상받으려는 듯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했다. 1895년, 그녀 나이 12살. 어머니가 세상을 뜨자 아버지는 샤넬을 포함한 세 자매를 고아원으로 보냈다. 아버지가 버젓이 있는데도 고아가 돼야 했던 소녀의 마음은 어땠을까. 18세, 낮에는 보조양재사로, 밤에는 카바레에서 노래를 불렀다. 코코란 별칭도 이때 얻었다. 본인은 이를 내켜하지 않았지만.


커리어의 시작은, 젊은 장교 발잔과 연인이 되고 나서부터였다. 그녀는 남성용 승마복과 스웨터 등을 여성용으로 개량하는 솜씨를 발휘했다. 1910년, 발잔의 친구이자 영국 폴로 선수인 아서 카펠과 사랑에 빠진 그녀는 카펠의 도움으로 파리에 여성용 모자 가게를 열고 곧 스웨터, 스커트, 액세서리 등도 취급했다.


하지만 카펠의 죽음은 샤넬에게 지울 수없는 상처를 남겼다. 영국 귀족의 딸과 결혼한 그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뜨자, 샤넬은 “모든 것을 잃었다”며 통곡을 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녀가 남긴 이 말은 카펠의 죽음이 남긴 상흔이 아녔을까. “나는 사랑을 원했다. 그러나 사랑하는 남성과 사랑하는 의상 가운데 선택해야 했다. 나는 의상을 택했다. 내 인생에서 남성들이 없었다면 나의 ‘샤넬’이 가능했을지 가끔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 와중에도 그녀는 도빌룩, 리블블랙드레스 등을 통해 패션의 전설을 기워나갔다. 남성의 눈이 아닌, 여성의 편리에 초점을 맞춘 샤넬 정장도 만들었다. 샤넬은 옷으로부터 만들어지는 혁명을 진두지휘한 혁명가였다. 1921년 5월5일 선보인 ‘샤넬 넘버5’는 당시 연인이자 샤넬이 결혼을 꿈꿨던 러시아의 귀족 드미트리 파블로비치의 소개로 만난 향수전문가 에르네스트 보에게 제작을 의뢰해 선보인 제품이다.


샤넬은 일과 함께 사랑도 멈추지 않았다.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공작, 폴 이리브 등과 사랑에 빠졌던 그녀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첩보원으로 활동한 사건도 있었다. 물론, 이는 그 죽일 놈의 사랑 때문이었다. 13살 연하의 독일군 장교 한스 귄터 폰 딩클라게(슈파츠)에게 빠져 ‘모자 견본’이라는 작전(암호)명으로 활동했다. 그녀는 독일에 협력한 배신자로 구금됐다가 처칠의 영향력으로 풀려났으나, 슈파츠와 함께 스위스의 호텔을 전전하면서 모르핀을 주사했던 시기를 거쳤다.


“패션은 건축, 그것은 균형과 비율의 문제”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여정이었다. 1939년 사업상 부티크를 닫아야했던 샤넬이 패션계에 복귀한 것은 1954년, 71세 때였다. 크리스티앙 디오르가 ‘뉴룩’으로 패션계를 장악하고 있던 시기. 앞서 말했듯, 샤넬에게 그는 가장 분노한 대상이었다. 기껏 여성들이 주체가 되는 옷을 만들어놨더니, 남자의 시각에서 여성을 재단한 옷으로 흐름을 바꿔놓았기 때문이었다. 이 시기에도 그녀는 트위드 슈트, 앞부분이 까만 구두, 금색 체인의 누빈 가방 등 오늘날에도 사랑받는 샤넬 스타일을 창조했다.



샤넬은 그렇게 자기 주체적으로 모든 것을 만들고 자존감을 세운 혁명가였다. “나는 자신이 사용하는 향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여성들이 불쌍하다. 향은 그 자체가 말해야 한다. 향은 은밀하게 속삭인다”라는 말도 남겼다. 그녀는 늘 달라야한다는 혁명적 주체였기에, 문화예술계에 대한 후원도 아끼지 않았다. 물론 염문설도 끊이질 않았고. 그녀는 피카소 등 예술가와의 우정을 위해 최초의 남자 향수 ‘뿌르무슈(Pour Monsieur)’를 만들기도 했으며, 달리, 장 콕토, 스트라빈스키, 헤밍웨이, 콜레트, 그레타 가르보, 마를리네 디트리히 등 수많은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창작활동을 도왔다.


대문호 앙드레 말로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세기(20세기) 프랑스에는 세 이름만 남을 것이다. 샤넬, 드골, 피카소.” 폴 모랑도 그녀를 향해, “19세기의 막을 내린 천사”라고 일컬었다. 그 말은 과장이 아니다. 패션을 건축과 비유하면서 균형과 비율을 강조했던 샤넬은, 종합예술가였다. 스타일 그 자체로 온전한 하나의 세계이길 바랐던.


그는 늘 시대를 읽고자 애를 썼으며, 시대에 함몰되지 않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했다. ‘남들만큼, 남들 보기에’라며,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를 대세처럼 늘어놓고, 획일화될 것을 강요하는 이 몰개성의 시대. 샤넬을 사는 것보다 샤넬이 되는 것은, 우리가 기대하는 가장 현실적인 혁명을 향한 디딤돌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당신을, 기대한다. 


  [뷰즈 2010 1·2월호 기고문]


저작자 표시 비영리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매혹.
2009에게 작별을 고하기 전, 매혹에 대한 이야기 한 토막.

매혹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나는 그녀(들)에게 매혹됐다. 첫 눈에, 한방에, 훅~
가슴은 벌렁벌렁, 자꾸만 그녀에게 파고 들어가고픈 마음은 후끈후끈. 

내 첫 번째 첫사랑 이후,
보자마자 나를 훅~ 가게 만들었던 두 여자가 있었다.
그야말로 매혹 덩어리. 나를 매혹으로 칭칭 동여맨 여자. 

화려하다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고,
고양이의 도도함과 의도적이 아닌 섹시함을 뿜어냈으며,
사회에 대한 인식의 정도, 지적수준 또한 간혹 나를 끌어당겼던 그녀.

각기 다른 시간,
두 여자와 술 한 잔을 꺾고 이야길 나누면서, 나는 그렇게 매혹당했다.
아무리 말을 늘어놔봐야 그때 매혹의 순간을 온전하게 설명하는 건 불가능하다.
나는 첫눈에 훅~ 가설랑은 그 도저한 매력에 허우적거리고 있었으니까. 튜브도 없이.
뻥을 좀 튀겨서, 그네들이 내게 살인을 교사했어도, 나는 꼼짝없이 그 분부를 수행했을 거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아, 라는 생각도 언뜻 했으니까.
내 삶을 송두리째 날려버릴 팜므 파탈이었다면,
아마 나는 소원 하나를 성취한 셈이었겠지.

물론, 그 매혹의 순간은, 앰블런스 차 같았다.
훌쩍 눈 앞에서 싸이렌만 크게 울리고 지나가 버리는.

그녀는 역시 그러지 않았을까.
삶을 송두리째 망가지게 하기엔, 내 인생이 너무 하찮았던 게지.
아무렴, 큰 걸 해야지. 째째하게. 나 같은 피라미를, 송사리를. 쯧.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그녀 중 한 사람을 다시 봤다.
그때처럼 가슴이, 가슴이, 자맥질하지 않았다.
사랑도, 매혹도 언제나 타이밍이 중요하긴 하나,
뛰지 않는 가슴에게 말했다. "그때 고장났던 거니?"

글쎄, 모르겠다.
아마, 인생이 두 번 흘러가지 않듯,
어쩌면 매혹도 일생에 한 번이 아닐까. 한 사람에 단 한 번. 인생이 그러하듯.

헤어진 연인에게 다시 손을 뻗치거나,
다시 시작하자는 투의 애원을 건넨 적은 없다.
아팠지만, 헤어짐은 받아들여야 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버텼다.
꾸질꾸질, 질척거리는 이별은 싫었다. 좋은 이별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헤어졌다가 우연찮게 희한하게 다시 만났던 여자도 있었다.
두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했다는 생각을 했다. 역시나 머리와 가슴 사이는 멀었다.

나를 매혹이라고 불러주던 여자가 있었다.
글쎄, 내가 그녀를 매혹시킨 것은 무엇이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미스테리지만,
그런 그녀도 나에게 헤어짐을 고했다. 그녀는 나를 다시 잡지 않았다.
그렇다. 매혹이, 차였다. 우와앗.

<렛미인>. 
열  두살 소녀에게 반한다는 건 말도 안 돼! 롤리타 증후군은 남 얘기라고 생각했으니.
그런데 누가 그녀를 열  두살이라고 보겠나. 이엘리.
훅~ 갔다. 물론 그녀는 뱀파이어다.
그러면 어때. 내 목을 내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올해 나를 매혹시켰던 영화, <렛미인>. (지난해 개봉 때 못 보고 특별상영회를 통해 봤거든!)

두 번은 살짝 겁이 난다.
처음 볼 때처럼 매혹당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녀가 그랬듯.
이엘리에게 더 이상 마음을 뺏기지 않으면 어떡하지. 내 목은 이미 그녀 것이었는데.

그럼에도,
언제나 나는 매혹당할 준비가 돼 있다.
2010년, 나는 다시 매혹 당할 것이다. 그녀에게, 당신에게.
다시 한번, 간절하게 두려움 없이, 들어가게 해 줘....

지난 9월4일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펼쳐진,
책  출간기념 특별상영회의 현장을 담았던 글. 그러니까, 어떤 매혹의 기록.


본성을 배반하는 순백의 잔혹한 사랑, <렛미인>을 만나다

[독자만남] 이동진과 함께하는 <렛미인> 특별상영회


‘아름답다’보다 더욱 진한 말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 내 목을 내어주고 싶었다. 하얀 눈 위에 떨어지는 빨간 내 피를 바라볼 수 있었으면 했다. 무엇보다 한 번도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 못했던 ‘열두 살’이 되고 싶었다. 내가 아는, 가장 유명한 열두 살은 케빈(<케빈은 열두 살>)밖이었는데, 이젠 바뀌었다. 케빈 대신 들어선 그 이름은, 오스칼(카레 헤데브란트)와 이엘리(리나 레안데르손)가 됐다.


그렇다. <렛미인>. 스웨덴에서 날아온 이상한 뱀파이어 영화. 기존의 뱀파이어 영화의 관습에서 떨어진, 아름답고 슬픈 영화. 이 영화, 눈이 펑펑이 아닌 펄펄 내린다고 감식한 이동진 기자는 리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12살 8개월 9일’이라고 자신의 나이를 못 박는 소년과 ‘한 12살쯤’이라고 살아온 세월을 얼버무리는 소녀의 사랑은 그렇게 시간과 존재의 벽을 넘어선다. 혹은 어린 인간과 여린 뱀파이어의 사랑은 상대의 입술에 핏자국을 남기거나 유리창에 희미한 손자국을 남기며 희미해져 간다.”


<렛미인>, 당신을 매혹시킬 어떤 사랑의 풍경


이 영화, 애초 원작이 있었다. 독일, 영국 등의 유럽 12개국에 번역된 스웨덴 작가 욘 린퀴비스트(John Ajvide Lindqvists)의 베스트셀러 『Lat Den Ratte Komma In(Let the Right One In)』. 이 제목은,  ‘들어가도 되니?’, ‘들어가게 해 줘’라고 허락을 구하는 뱀파이어의 언어를 일컫는다고 한다. 과연, 영화에서 이엘리는 “들어가도 되니?”라며, 초대를 원한다.


나는 그것을 단순히 집에 들어가는 것만을 뜻한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인간의 초대 없이 들어가지 못하는 이엘리의 그 하소연은, 우리가 이뤄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인간과 뱀파이어의 사랑을 갈구하는 것이었다. 오스칼의 머뭇거림으로 이엘리는 피를 흘리는 장면에서 나는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오스칼은 이내 이엘리를 안아준다. 슬프도록 아름다웠던 장면.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의 관습에서 벗어난 두 사람의 관계는, 그것 자체로 신선하고 우리네가 맺고 있는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뱀파이어의 피를 타고난, 이엘리는 소수이며 약자였고,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상상 속에서만 자신의 복수를 하는 오스칼 역시 마찬가지다. 두 사람의 연대 혹은 사랑에서 나는 어떤 소수자의 연대를 경험했다면 오버일까.


내 마음을 아스라하게 했던 것은, 쾌락이 아닌 살아남기 위해 피를 빨아야만 하는 생계형 뱀파이어, 이엘리의 존재였다. 특히 먹잇감(오스칼)을 앞에 놓고서도 침을 꿀꺽 삼키며, 꾹꾹 자신의 본성을 눌러대는 그 눈빛.


영화는, 뱀파이어의 존재로 인한 공포가 지배하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분명히 사랑. 열두 살이라고 무시하지 마라. 사랑은 못내, 그렇게 불쑥 다가온다. 외려 그들은 섹시하기까지 하다. 새벽녘, 창문을 열고 오스칼의 방에 찾아온 이엘리가 오스칼의 뒤에서 안아줄 때, 나는 그만 훅~하고 침을 꼴깍 삼켜야 했다. 어떤 성인들의 것보다 섹시하였기에.

      

한편으로 최근 한국어로 번역된 소설 『렛미인』은 좀더 깊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적 각색이 빛나는 부분이기도 하고, 영화에서 불분명했던 부분을 명확하게 알려주는 역할도 한다. 이엘리의 아버지 느낌을 주는 하칸이 그렇고, 이엘리나 오스칼 아버지의 섹슈얼리티 등에서도 그렇다. (그러니까, 알고 싶다면 책을 읽으면 된다!)  


지난 4일 서울 이화여대에 위치한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한국어판 책 출간기념으로 <렛미인>을 다시 만나는 행사가 열렸다. ‘이동진과 함께 하는 <렛미인> 특별 상영회’. 처음이건, 아니건, <렛미인>을 보고 훅~ 갔던 사람들이 있었고, ‘내 귀에 캔디’ 이동진 기자(이동진닷컴)와 나눈 대화의 시간. 아직, 보지 못했다고? 그렇다면, 일단 보고나서 이야기하자. 책이든 영화든. 경고하자면, 훅~ 갈지 모른다. 조심하시라.


이동진 기자에게 묻고 싶고 듣고 싶은 <렛미인>


사진 제공: YES24 hohoazime™ 님


- <렛미인>에 대해, ‘피와 눈물의 연금술’이라는 평을 남겼는데.


표현은 짜내서 나오기보다 머리에 떠오르는 경우다. 소설(원작)과 이 영화의 가장 다른 점이 잎을 떨군 겨울의 문장이다. 소설은 시적이라기보다 단아한 산문이다. 영화에서 가장 좋은 건, 다시 봐도 느끼는 게, 영화의 리듬이 정말 좋다. 좋은 예술은 음악의 상태를 동경한다. 그래서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숏과 숏, 신과 신이 모이는 게 연금술 같다. 피와 눈물을 재료 삼아 만든 연금술 같은 영화다.


- 이 영화의 미덕과 문학의 장점은 뭔가.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읽었는데.


처음 영화를 보고 나서 영역으로 된 것을 읽을까 하다가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국어로 된) 책이 나와서 추천사를 썼다. 내용적으로 영화에 수많은 함의가 있겠지만, 사랑 얘기로 봤다. 소설은 사랑 얘기도 많지만 성장소설의 성격이 강하다. 그런 면에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영화가 특히 좋았던 것은, 동화와 호러를 접목하는 방식이 좋았다. 대개 이 두 가지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의외로 잘 맞는다.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도 호러라고 생각하는데, 슬픔 감성이 있잖나. 그림형제 우화 등의 원전을 보면 끔직하다. 동화세계도 따져보면 끔직한 게 많다. 살인, 식인 등의 모티브도 많고. 『헨젤과 그레텔』 『빨간 모자』 등을 봐도 알 수 있잖나.


어린이 개념이 확립된 것이 200~300년 전, 즉 근대 이전이다. 그때는 어린이를 작은 어른으로 봤다. 순수하고 악을 가려준다는 관념 자체가 근대적 산물이다. 그런 점에서 호러와 동화는 잘 맞는다. 영화에서도 (오스칼이 이엘리를) 초대해 주지 않자, (이엘리가) 피를 흘리는 장면은 무섭기도 하면서 외로움이 느껴지지 않나. 그런 게 이 영화에서 잘 묘사돼 있다.



- 소설은 어떻게 봤나.


소설은 되게 재밌게 봤다. 기괴한 상상력이 있고, 책을 읽게 만드는 문체의 힘이 있다. 이런 뱀파이어 소설은 없었다. 영화를 먼저 본 사람에게 좋은 것은 (영화 속에 나온) 암시적인 표현을 다 알려준다는 점이다. 가령, 오스칼의 아버지가 동성애자인 것이 감은 잡히지만, 정확하게 알려주진 않지만, 소설에서는 이를 알려준다.


감독이 원작의 섹슈얼리티를 잘 발라냈다고 본다. 또 원작에서 중요한 캐릭터가 영화에선 나오질 않는데, 책에서 제일 재밌는 것 중의 하나는 호칸이라는 캐릭터다. 책에서는 선생이고 소년성애애호증 환자다. 공중화장실에서 12살 소년을 사기도 하고. 그런데 이 캐릭터가 선생이라는 점 때문에 그것을 억제하고자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을 갈구하는 입체적인 면이 있다.


이엘리도 소설에는 이전 이름이 엘리아스이고 남자임을 알려준다. 영화에서도 (이를 암시하는 장면이) 짧게 나오나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책은 이야기 고리를 속 시원히 열어주는 측면이 있다. 물론, 90%는 속이 시원하고 10% 정도는 몰랐으면 좋았을 걸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웃음) 어쨌든, 소설은 소설대로 좋고, 영화는 영화대로 좋다. 감독이 각색을 참 잘했다.


-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가방에 들어가 있는 이엘리가 모르스 부호를 치는데, 어떤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소설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기차에 올라타는 장면에서 끝난다. 그런 면에서 아주 영화적인 각색이다. 모르스 부호는 스페인어로 PUSS인데, ‘가벼운 키스’라는 뜻이다. 아주 앙큼하다. 조그만 놈들이. (웃음) (이걸 보고 써 먹는 분들도 많을 것 같다) 그걸 써 먹는 분들은 많을 것 같지 않다. 열 다섯 밑으로 써야지. 늙수그레한 사람들이 쓰면 닭살이다. (웃음)



- 영화를 보면서 든 생각이 있다면.


첫째는, 안데르센의 동화인데, 어릴 때 집에 계몽사 전집이 있었다. ‘하이얀 눈의 여왕’이라고. 안데르센 동화가 물론 대부분 유명했지만, 이건 상대적으로 그리 유명하지 않은 동화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본 순간, 그 동화를 본 느낌이 확 떠올랐다. 내용은 다르다. 동화는 <나니아 연대기>랑 차라리 더 비슷한데, 이상하게 생각이 났다. 이 영화에 대한 리뷰에서 ‘하이얀 눈의 나라에서…’라고 썼는데, 사실 어법이 틀렸지 않나. ‘하이얀’이 아니고 ‘하얀’이 돼야 하는데. 어릴 때, 본 ‘하이얀 눈의 여왕’ 때문에 그렇게 썼다.


둘째, 지금은 공포영화를 무서워하지 않는데, 어릴 때는 무서워했다. 전설의 고향이 특히 무서웠는데, 어느 해 겨울, 초등학교 4~5학년 때인가, 제목이 <설녀>라고 있었다. 귀신인데 사람을 해치고 그랬다. 그렇게 무서웠다. 이걸 보면서 <설녀>가 생각났다.


셋째, 이 영화의 첫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 어두운 밤하늘에 먼지처럼 날리는 눈. 그러다 오스칼이 나오게 되지. 보통 눈 올 때 소리가 나지 않잖나. 김광균의 시, ‘설야’에 보면, ‘멀리서 여인의 옷 벗는 소리’라는 구절이 나온다. 어릴 때도 (이 구절이) 에로틱하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에서 눈이 올 때 의태어로 ‘펑펑’이나 ‘펄펄’을 쓰잖나. 이 영화에선 절대 펑펑이 아니고 펄펄이라고 생각했다. 어감 차이 대단히 크고, 펄펄은 왠지 서러운 느낌이 든다. 그래서 영화에서 소리가 나지 않는 눈 내림의 광경이 가장 좋았다. 리뷰의 첫 머리에서 눈이 펑펑이 아닌 펄펄 내린다고 쓴 이유가 그것이다.


- 리뷰를 쓸 때, 한 번 보고 쓰는데, 메모를 하나. 그리고 본인이 쓴 것에 확신을 하나. 


확신은 없다. 다만 영화에서 설득된 내 감정이 있을 뿐이다. 어떤 영화에 매혹당하거나 싫을 때, 곱씹어보는 방식으로 리뷰를 쓴다. 사후에 생각하는 거지. 감정은 리얼하지만, 진실은 확률로만 존재한다. 65%, 87%의 진실은 있어도, 100%의 진실은 없다고 본다.


리뷰를 쓸 때, 일단 메모를 한다. 평생 버릇 같은 거고. 어둠 속에서 다른 사람보다 메모를 세게 한다. 화면을 보면서 써서 못 알아보는 경우도 있고, 볼펜이 다 돼서 긁은 흔적만 남은 경우도 있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지금까지 영화를 대략 5000~8000편을 본 것 같다. 영화도 그 정도 보면 모든 영화의 패턴이나 언어가 보인다. 아주 잘 본 영화는 숏이나 신의 구성도 생각이 나고. 일반인들은 이런 것까지는 기억을 잘 못하지만, 직업적으로 훈련이 돼 있으면 이도 가능하다. 나도 모르는 새, 단련이 된 것 같다. 그래서 한 번 보고도 리뷰를 쓸 수 있는 것 같다.


사진 제공: YES24 hohoazime™ 님


- 영화를 꽤 많이 봤는데, 10편 중 몇 편 정도나 감동을 받나.


사실 안 좋은 영화가 좋은 영화보다 많다. 직업적 후각도 있는데, 후질 것 같은 감이 들면 핑계를 대고 안 간다. 일부러 일을 만드는 거지. (웃음) 내 별점이 후하다고 얘기를 많이 하시는데, 그건 별점이 좋지 않을 것 같은 영화는 안 보기 때문이다.


직업적 매너리즘이 없다고는 얘기 못한다. 그렇지만 영화를 봐서 행복한 경우도 많다. 최근 <걸어도 걸어도>와 같은 영화들. 휴가를 가면 영화를 한 편도 안 본다. 비행기를 타도 기내 영화는 기를 쓰고 보지 않는다. 악착 같이 자거나 책을 본다. (웃음) 휴가 때 영화를 안 봐서 행복하다. 1년에 51주는 영화를 보는데, 한 주만큼은 영화의 신도 용서해주지 않겠는가. (웃음)


- 다른 영화에서도 <렛미인>과 같은 풍경을 볼 수 있는지.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북구 영화의 성장 영화가 참 좋다. <개 같은 내 인생>이나 <정복자 펠레> 같은 영화들. 특히 <정복자 펠레>에서 떠날 때의 눈 장면이나 부감이 참 좋다. 북구 영화에서 비 냄새나 나거나 습하고 우울한데, 스코틀랜드나 아이슬랜드 영화도 그렇다. 프레드릭 토드 프레드릭슨 감독(아일랜드)의 영화를 보면 이런 느낌들이 난다.


- 영화 속 장소를 찾아가는 책도 냈는데, 스웨덴에도 관심이 있나.


작년까지 4년 간 여행을 갔다. 올해는 제반 여건상 시리즈를 안 하고 있다. 하지 않기로 한 건 아니고 이런저런 사정이 생겼다. 제일 안타까운 게, <렛미인>과 <더 폴>이다. 시리즈를 계속 했다면 꼭 갔을 거다. 11월에 책이 한권 나올 예정인데, 이것도 여행 책이다.


소설가 김중혁 씨가 씨네21에 연재를 하는 게 있는데, <렛미인> 촬영지를 갔다 왔더라.(주. <뱀파이어가 덮쳤던 곳이 여기야?>) 그런데, 그걸 보고 웃었다. 여행을 잘못 한 것이다. 영화는 블라케베리를 배경으로 하지만, 실제 거기서 찍지 않았다. 설정 샷만 찍고, 루엘라라고 스웨덴 북쪽에서 찍었다. 소설가 출생지가 블라케베리인데, 영화 배경에 맞는 곳을 찾다보니 루엘라에서 찍은 거다. <카사블랑카>도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에서 찍은 것이 아니고, LA에서 찍었다. 극 중 장소를 어디라고 말해놓고 실제 찍는 곳이 다른 것도 비일비재하다. 시리즈를 다시 하게 된다면 루엘라에 꼭 갈 거다.



- 오스칼이 참 착해 보이고, 도덕적인 아이 같은데, 어떻게 흡혈귀를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파워 오브 러브’ 아니겠나. (웃음) 영화를 볼 때, 사랑하는 감정을 이엘리에게 이입했다. 사랑도 처음에는 인간 본성을 따라가잖나. 그런데 다음 단계로 고양될 때는, 본성을 배반하는 방식으로 넘어간다. 이엘 리가 피를 보고 햝아 먹는 것을 보고, 이엘 리가 피를 갈구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흡혈귀인데도, 오스칼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이 본성을 배반하는 것 아니겠나. 영화에 숭고한 측면이 있다면 그것이다. 가장 가까운 곳에 먹잇감(오스칼)이 있는데도 이를 악물고 참는 장면이 나오지 않나. 이엘리도 본성을 배반한 것이다.

 


끝난 뒤, 밤이 깊게 내려앉았다. 뱀파이어와 나눈 사랑에 매혹된 밤. 이엘리를 만날 수 있다면, 내 피를 빨려도 좋다고 생각했다. 평범한 소녀나 여자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당장 기차표를 끊을 수도 있고, 가방을 준비할 수도 있다. 열두 살(들)에게 보고 들은 사랑이 꽤나 인상 깊었나보다. 간절하게, 두려움 없이. 사랑은 그런 거다. 너에게 들어가고 싶은 것. 그리하여 다시 한번, 간절하게 두려움 없이, “들어가게 해 줘...”


[예스24 기고 원문]




사진 제공: YES24 hohoazime™ 님


저작자 표시 비영리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서울독립영화제2009 폐막작,

두 편의 단편, <남매의 집>과 <닿을 수 없는 곳>에 대한 감상.

공통점이라면, 주인공을 감싸주고 안아줄 수 있는 존재의 부재.

그들은 어떻게든 '사회적' 고아들이다. 우리의 지금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닿을 수 없는 곳(김재원 감독)

가난한 사람들의 일상적 풍경이 펼쳐진다. 엄마와 아들딸로 구성된 가족은 고시원 쪽방에 살고 있다. 가족을 부양하는 것은 스무 살 진섭이다. 몸이 아파 일을 할 수 없는 엄마와 다섯 살 동생. 아버지는 없다. 10여 년 전 가족을 버리고(어떤 이유든 있었겠지만, 그것은 드러나지 않는) 나갔다. 

새벽 전단지를 돌리는 것부터 주유소 일을 하면서 진섭은 힘겨운 스무 살을 버티고 있다. 그 고단함은 그의 표정에서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스무 살이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감, 청춘의 활기라곤 없다. 친구와 시덥잖게 농담따먹기를 하는 것이 유일한 돌파구랄까.   

그런 진섭에게 입영통지서가 날아온다. 병무청을 찾아 생계형 면제를 알아볼 수밖에 없는 상황. 아픈 엄마의 진단서를 떼오란다. 검진비용만 백만원이 넘는 거금이지만, 어떻게든 떼야만 한다. 병원은 돈 없는 자에게 냉담하고 어떤 사정도 고려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환자의 병은 곧 돈으로 치환되는 기제일뿐.

친구에게 돈을 빌려 가까스로 처리하지만, 서류상 남아 있는 아버지가 문제다. 없는 아버지까지 찾아내란다. 서류상으로 처리가 안 된단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는, 없는 사람들의 사정까지 고려하지 않는다. 국가는 과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얼떨결에 '없는' 아버지를 죽이라고까지 말하는 병무청의 무심함. 아버지를 찾아나선 진섭 앞에 병든 아버지가 있다. 그 아버지를 죽이고 싶은 진섭의 선택은.

왜, 제목이 '닿을 수 없는 곳'이어야 하는지 알 것 같다. 국가는 아무 것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다. 국가의 존재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국가는 이제, 그냥 기업이니까. 대통령이 CEO인 세상에 말이다. 묻고 싶다. 비가 오면 피하게 해주는, 감싸고 위로하는 존재는, 그저 힘 없는 개인들의 몫일 뿐이냐. 진섭의 막막한 눈빛이 쉬이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남매의 집(조성희 감독)

한 눈에 보기에도 가난을 등에 업은 반 지하의 집. 아버지, 어머니도 없다. 남매만 덩그러니 있는 집. 동생은 오빠에게 한복도 자랑하고 싶지만, 오빠는 빨간펜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숙제를 마쳐야 한다. 과연 빨간펜 선생님이 올까 싶지만.

언제부터 아버지, 어머니가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누구에게도 문을 열어줘선 안 된다는 아버지의 당부만 남아 있다. 남매는 밖에도 나가지 않고 오로지 반지하의 집에서만 모든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누군가 문을 두들기고, 감언이설로 남매를 꼬드긴다. 물만 먹겠다는 조건으로 괴한들은, 들이닥친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괴한 외계적 행동들.

‘알지 못함’에서 오는 두려움과 불안을 표현하려 했다는 감독의 의도처럼, 소년은 그 기괴한 일들이 꿈같다. 고립에서 오는 인간의식이 어떻게 똬리를 틀고 무한 증식하는지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내 눈에는 고아처럼 내버려진 남매의 무기력함이 약탈자를 맞이한 지금 우리의 모습 같아서 가슴이 아렸다. 고아들의 시절, 부모 없는 시대.

 

저작자 표시 비영리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 PREV | 1 | 2 | 3 | 4 | 5 | ... 17 | NEXT ▶

BLOG main image
버려질 수 없는, 버려져선 안되는 생의 사랑 by 필감준수

공지사항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259)
My Own Coffeestory (36)
메종드 쭌 (164)
러브레터 for U (12)
온통 어리석음의 기록 (32)
할말있 수다~ (12)
캘리쭌 다이어리 (3)

글 보관함

달력

«   2010/03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otal : 378,458
Today : 15 Yesterday : 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