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 노래. 

눅눅한 피곤에 절은 이밤. 한없이 나를 안아주고 감싸준다. 

내 생일도 아니지만, 꼭 생일축하 받는 느낌까지.

기분이 참참참 좋아. 이 노래. 마음이 방실방실.


내가 사랑하는 당신(들)의 생일에, 꼭 이 노랠 불러주고 싶어.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생일 축하해.
정말이지, 콱 깨물어주고 싶을만큼 사랑스런 당신을 위해 말이야.  
 
얼마 전, 생일을 맞았던 내 주변 몇몇 사람들에게도...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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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목숨보다 아낀, 아니 목숨처럼 아낀 사내의 이야깁니다.

이 밤을 꼬박 새우고도 남을 비밀을 당신에게만 털어놓습니다.

아주 간혹, 당신을 위해 들려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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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들어 놓은 이 세상이 좆같은, 경제경영이 학문의 제왕 노릇을 하는 이상한 현실에 토할것 같은, 아니 그게 아니라도 좋다. 경쟁? 승리? 흥, 그 따위 개쉐이한테나 줘버리라고 말할수 있는 당신과 함께 나는 줄라이홀로 들어가고 싶다.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과 슈베리트의 음악을 듣고 싶다. 같이 동굴로 들어갈 사람, 손! (단, '명박류' 혹은 '명박종'은 절대 안 됨!)


음악과 커피가 익는 줄라이홀에서 보낸 한철

[독자만남] 『지구 위의 작업실』의 저자 김갑수


#1. 미래를 준비하란다. 준비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단다. 노후를 위해 지금을 희생하란다. 지금보다 시간이 덜 곰삭았던 한때, 이 말들을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살았었다. 미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현재의 ‘자기 창조적 불안’을 품고, 그 방법의 하나로, 적금을 붓고 펀드도 했다. 그래야만 나는 이 엄혹한 시대의 ‘당당한 지상의 대열’에서 낙오하지 않을 거라는 ‘환상’을 가졌다. 유인촌 장관께서 말씀하신 그 ‘세뇌’를 당한 것이었다. 불안에 쫓긴 나는 오지도 않은 공포에 무릎을 꿇었다. 저렴한 무릎으로 스스로를 하향 조정한 것이었다. 


그렇게 나도 ‘지구촌 불안 동지’였다. 쉽게 말해, 삽질을 했다는 얘기다. 불안은 마음의 ‘부란(腐爛)’이었다. 썩고 문드러진다는 그런 의미. 그러다가 가까스로 조금씩 더디지만, 미래의 불안을 조금씩 지워가고 있다. 삽도 내던졌다. 삽질은 나 아니더라도, 저 높디높으신 양반들이 해주고 계시니, 굳이 나까지 뭐. 킁.


#2. 올 여름 가장 주목받는 공포영화 중의 한 편, <마터스: 천국을 보는 눈>(‘지난 10여년간 만들어진 호러영화 중 가장 괴로운, 두려운,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그러나 끝까지 볼 수밖에 없는 영화!’라는 평도 있다.)의 감독, 파스칼 로지에의 말. “공포영화는 세상을 살아갈 때 필요한 조건들이 얼마나 흉측하고 괴로운 것들로 가득 차 있는지를 거짓 없이 드러낸다.… 나는 세상이 너무나 좆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분 좋은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내 자신을 배반하는 행위로 본다. 그건 정말 역겨운 일이다.” 오우~ 세상에 대한 명징하고 분명한 인식.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여기에 대한 이말이 떠올랐다. “나는 우리가 만들어놓은 오늘의 이 세상을 참을 수가 없다. 경제경영이 학문의 제왕 노릇을 하고 시장이 권력의 자리를 점령하고 베스트셀러 대다수는 자기계발 지침서이고 재테크 요령이 일상적 관심사가 되고 연예인 사생활이 국민적 화제로 들먹여지고 서울대학교 축제에는 원더걸스가 초청되어 난장판 사고가 벌어지고 교회에서는 현금액이 적은 사람을 조롱하는 ‘천 원 송’이 불리고 이라크, 이란, 북한 등의 나라를 ‘악’으로 규정한 미국 대통령의 주장을 별 이의 없이 받아들이고……”(p.164)


뒷얘기는 시인이자 문화평론가 김갑수 선생의 말이다. 그의 저작 『지구 위의 작업실』에 나온. 핸드드립을 하고 있는 책 표지, ‘지구 위의 작업실’이라는 뭔가 있어 보이는(!) 제목, 평소 그의 글에 대한 호감, 끌렸다. 끌리면 가라! 마침 궁금이 증폭됐던 찰나였다. 앞서 만난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의 저자 김정운 교수(인터뷰 <감탄하지 않는 자, 그대는 유죄!>)는 ‘지구 위의 작업실’이 참 좋다며, 내 호기심에 바람을 불어넣었던 참이었다. 더구나 그 곳에서 로스팅도 하고, 커피가 있다니. 이 어찌 좋지 아니할쏜가. 아싸라비야~


줄라이홀, 발 디디다


지난달 30일 몇몇 독자들과 김갑수 선생의 작업실을 찾았다. 이름 하여, 줄라이홀. 김갑수 선생은 마포의 한 건물 지하에 동굴을 파고 산다. 이곳은 정말 동굴이다. 햇빛과 소리와 날씨로부터 완벽하게 차단된. 실제 면적은 37평이라는데, 공간은 더 돼 보인다. 들어가는 순간, 우와~ 하는 탄성이 절로. 격하게 좋다.



‘줄라이홀’의 이름? 얼터너티브 록음악의 원조격인 거물밴드 R.E.M.의 이름 짓기와 비슷했단다(R.E.M.멤버들이 밴드이름을 지으려고 사전을 휘리릭 펼쳐 가장 먼저 짚인 글자가 ‘급속안구운동’(Rapid Eye Movement)였고, 그것을 밴드이름으로 정했다). 친구가 한 무리를 이끌고 작업실을 찾아왔는데, 손님 가운데 줄라이라고 불리는 미모의 외국회사 임원이 있었고, 이름은 그렇게 정해졌다. “황당한 건가, 멋진 건가, 혹은 둘 다인가.”(p.44)


아울러 줄라이홀이 지하에 있는 이유. “작업실은 반드시 캄캄한 지하에 있어야 한다. 무슨 작업을 하든 마찬가지다. 국어사전적으로 작업이란 뭘 새로 만드는 일일 텐데, 그러자면 기존의 것들과 결별할 수 있어야 한다. 여자에게 작업 걸 때 상투적 언행으로는 씨알머리가 먹히지 않는 것처럼, 작업실이 작업스러우려면 뭔가 달라야 한다.”(p.32) 그렇게 작업실이 지하로 피신해 들어가야 할 이유에 대해, 김 선생은 날씨, 소리, 햇살 등 대략 마흔아홉 가지쯤 된단다. 마흔아홉.


김 선생은 말하자면, 커피 긱(Geek)이고, 오디오파일(애호가)이며, 호모 히스테리쿠스. 줄라이홀은 “커피를 마시는 곳”이자, “오디오 놀음을 하는 곳”이며, “음악을 듣는 곳”이다. 김 선생과 줄라이홀은 이 삼각편대로 존재한다. 김 선생은 그러니까 줄라이홀(앞으로 김 선생은 줄라이홀으로 칭한다).


마침 에스프레소 기계가 약간 애를 먹였지만, 막 고치고 커피 한 잔과 약간의 다과가 우리를 반긴다. 줄라이홀이 볶아서 추출한 커피. 직접 커피콩을 볶아서 내린 커피의 향미가 나를 안성기로 만든다. ‘음, 그래 이 맛이야.’ “7월 초에 아는 사람들을 모아 출판기념회를 열었는데, 초상집이더라. 초상집이 그렇지 않나. 모여서 죽은 한 사람만 얘기하는. 그러니 편하게 놀다가라. 음악도 준비돼 있고, 커피도 있다.”




이육사는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라 했지만, 줄라이홀은 아마 ‘내 작업실 줄라이홀 칠월은 커피와 음악이 익어가는 시절’이라 하지 않을까.





줄라이홀에 흠뻑 젖은 우리들의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는 ‘자기소개’를 통해 우리는 그렇게 줄라이홀과 한 몸이 된다. 보험사에 근무한다는, 아는 선배를 따라 줄라이홀에 발을 디딘 이는 다른 세계 같다는 말로 줄라이홀 방문 소회를 밝힌다. 마음 속 열망이지만, 쉽지 않음을 끄집어내면서. 이에 줄라이홀 왈. “이런 것 저질러도 사람은 죽지 않는다. 이른바 일반적이 아닌 다른 길을 가도 괜찮다. 일단 저질러라. 죽는 사람 없다. 나도 예전에 돈이 하나도 없어서 처참한 날이 많았다. 일단 (물건을) 들여다 놓고 시간을 보내니 해결이 되더라. (웃음) 그렇다고 도둑질한 적도 없고 빚을 얻은 적도 없다. 대신 수입을 연출하기 위해 기를 쓰게 되더라. 할 수 있는 게 원고 쓰는 것이었고, 방송일도 했다. 김치의 역사를 쓴 적도 있다. (웃음)”


그는 이어 『침묵의 봄』을 쓴 레이첼 카슨의 평전(주. 아마도 『레이첼 카슨 평전 : 시인의 마음으로 자연의 경이를 증언한 과학자』로 추정)을 읽은 얘기를 꺼냈다. “레이첼 카슨은 엄마, 사촌 등 줄줄이 먹여 살리면서 죽을 때까지 생활고에 시달렸다. 그 대단한 책이 생계 때문에 씌여진 것이다. 덕분에 나도 위로를 받았다.”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깊이가 있는 것 같아서 『지구 위의 작업실』을 입양했다는 누군가는 “정말 재밌게 읽었다. 하룻밤 새 낄낄대며 봤다. 많이 꿀꿀하게 지내던 때였는데, 책을 읽으며 유쾌해졌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최근 강남으로 이사했는데, 정말 주변에서 돈 얘기 밖에 안 해서 혼란스럽고 꿀꿀했다는 얘기.


줄라이홀이 대화를 받아준다. 삶의 통속성과 순수 사이의 줄타기에 대한 생각. “통속함을 받아들이는 태도의 변화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통속화 과정에 적응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 더 통속적으로 나가는 것도 있다.”


이와 함께 세 가지 세상의 비속성에 대한 혐오. 하나, 부자되세요, 라는 말. 돈에 대한 지나친 열광이 우웩. 둘, 건강과 장수. 건강한 것은 좋지만, 좀비처럼 오래 살고 그것 자체가 목표가 되는 것은 뜨악. 셋, 성공에 대한 과도한 펌프질이 컥. 그는 15년 방송일을 하면서, 대부분이 잘난 사람들을 인터뷰를 했는데, “성공이 개인의 행복과 그다지 상관없음”을 알았단다. 되레, “더 나은 성공이 보여 괴로울 뿐이다. 성공 자체가 삶의 목표가 되면 비참해지더라.” 그리고선, 친구인 한비야의 사례를 든다. “두뇌 구조에 ‘성공해야지’하는 게 없다. 그는 자기 열광 속에 빠져 있을 뿐이다. 그런데 늙으면 죽어야 된다. 대화하자고 해 놓고선 연설하고 있잖나. (웃음)”


줄라이홀의 『삶이 괴로워서 음악을 듣는다』를 읽었고, 라디오방송이 무척 좋아서, 사인을 받고 사적공간을 훔쳐보고 싶어서 찾아왔다는 독자의 한 마디에 팡 터졌다. “TV보다 카메라를 잘 안 받으시네요.”


“5~6년 전만해도 가시처럼 말랐는데, 최근 1년여 동안 임신 5개월처럼 살이 붙었다. (웃음) 어릴 적에 굉장히 험한 곳에서 자랐지만, 그게 나의 전부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누군가에게 멸시를 당할 때도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니가 알아?’라며 자존감과 이 현실에 뿌리박지 않은 자기연민으로 세월을 견뎠다. 그런데 요즘은 좀 슬프다. 왜 이렇게 늙었나, 싶어서.”



우리의 자부심, 자존감을 위하여


역시나 보험업에 종사하는 다른 이의 궁금함. “부인에게 안 쫓겨나고 사는지.” 줄라이홀의 대답. “처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다. 사실, (줄라이홀 때문에) 비아냥을 좀 사기도 한다. (사는 형편이) 어렵지 않아서. 처가 의사다. 무지막지 어려운 시절도 있었는데, 젊을 때 연애를 한번 잘못해서 13~14년 망가진 적이 있다. 그때 47~48kg이 나갔는데, 병원에 갔다가 주치의와 결혼했다. (웃음) 공부 열심히 한 사람은 꼬시기 쉽다. 그런데 함께 살다보니 걸리적거리는 게 있어서 (집을) 나왔다. 부부라고 해서 온 일상을 같이 흘러가야하는 건 아니다. 포기할 건 포기하는 게 좋다는 게 처와 나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처는 살림을 전혀 안 하는 사람이고, 나는 처한테 아무 것도 보살핌을 받은 것도 없다. 이해 받는 게 아니고 필사적으로 어쩔 수 없이 나왔다. 처와는 사이가 좋다. 매일 전화하고 1주일에 2~3번 만난다.”


그러니까,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해 우리는 다시 되물어야 한다. 삶의 방식은 하나가 아니므로. “"왜 부부는 언제나 붙어 지내야만 하나요?" 이런 반문이 별 문제 없는 부부의 간헐적 동거, 선택적 별거에 대한 변이 될까? 되거나 말거나, 그러거나 말거나, 아내는 직장에서 돌아온 시간의 전부를 책 읽는 데만 쓴다. 구경시켜주고 싶을 만큼 전투적이다.… 결혼하고 3년쯤 별도 공간 없이 ‘가정’에서 음악을 들어봤다. 그건, 피차간에, 그러니까, 고문이었다. 내 방식은 스위트홈에 어울리는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하고 싶은 것을 꼭 해야만 하는 성정을 똑같이 보유한 부부. 타협책은 집 밖에 결혼 전과 비슷한 공간을 따로 장만하는 거였다. 서로 그리워하는 부부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설의법적 명제. "왜 부부는 언제나 붙어 지내야만 하나요?"”(pp.194~195)



세계를 넓혀가길 원하는 취업 1년의 프로그래머와 이곳에 와서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는 여성들에게 줄라이홀은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준다. “젊은 때 일생을 관철할 관심사를 찾는 것이 좋다. 내일 김어준과 대담을 하는데, 『건투를 빈다』를 정말 재밌게 읽었다. 책을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자존감’이더라. 자기가 자기를 존중하라는. 하고 싶은 것에 용기를 가지는 게 중요하다. 내 경우는 허허실실이었다. 경쟁을 해서 이겨본 적이 없다. 대학 들어간 것도 기적이다. 반에서 오십 몇 등을 했으니까. 남들과 겨루는 게 안 된다. (웃음) 그래서 비경쟁적인 것에 관심을 두게 된 건가. 좋아하는 건 경쟁하는 게 아니지 않나.”


그렇다면 줄라이홀이 중학교 때부터 관심을 가진 세 가지. 문학, 음악, 여자. 물론 세 번째는 마음대로 안 된단다. 암, 그렇고 말고. “뭐라 설명하긴 어려운데, 하다보면, 살다보면 살아진다. ‘니가 세상에 맞출 수 없으면, 세상이 너를 맞추도록 해라’는 말도 있잖나. 자기에 빠져서 살다보면 살 길이 열린다. 거기서 중요한 것이 자존감이다. 자기 열망이 가 닿는 곳에 길이 있다. 길은 자기가 갔는데, 딱 뒤에 있는 거다. 자기 식대로 갔는데, 뒤 돌아보니 자기자취가 있는 곳이 길이다.”


무한경쟁이 미덕처럼 오도되는 시대에 비경쟁형 인간으로 살아가기. 야망 없음을 자랑으로 여기기. 그럼에도 아무 것도 없음이 아닌 자신만의 것을 채우기.


“무언가가 될 수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어떤 위치로 올라가거나 무엇을 획득할 수 있었다면 그 역시 그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음악을 들어야 했다. 음악에 포개어진 삶은 무엇이 되거나 무엇을 획득하거나 무엇에 올라서는 것을 언제나 가로막았다. 팔자려니 해야 했다. 그러나 깨달았다. 하루하루 음악을 듣는 일이 삶이 되면 되는 거잖아! 먹고사는 일이며 모든 관계를 도구나 방편으로 삼으면 되잖아! 그 무엇의 잣대를 ‘이쪽’이 아니라 ‘저쪽’ 세계의 것으로 바꾸면 되는 것을. 나는 아무 것도 못 된 것이 아니었다. 못 획득한 것도 아니었고 못 올라선 것도 아니었다. 나는 음악을 듣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조건들을 많이 가졌다. 뒤늦은 깨달음이다.”(p.196)


그렇다. 나도 아무 것도 못 된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 말하자면, 커피를 만드는 사람, 커피를 음미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 말에 격하게 동의. “에스프레소는 멋으로 맛을 만드는 일이다.”(p.81)


아울러 길의 묘사. “가보지 못한 길이란 없다. 길이란 걸어가야 길인 것이니 길을 걷지 않은, 걸어보지 못한 사람이 많은 따름이다. 이것저것 기웃거린 삶은 걸어간 것이 아니고 뱅뱅 제자리 맴돌이를 한 것뿐이다. 다만 도정의 변주는 있을 수 있다. 음악이 들리지 않을 때, 건하고 곤하고 피폐할 때 변주가 있을 수 있다. 그것이 음악에서는 오디오질이다.”(p.226)


진짜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생산성과 효용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불러온 지금의 엄혹한 세계. “자기 추구에 있어 자아와 끝없이 대면하는 상황이 필요하다. 세상에 휩쓸려 가면 편한 것도 있지만, 뒤돌아보면 뭐하는 건가 싶은 때가 있다. 사람들의 관계를 ‘인맥’으로 표현하는 것에 나는 분노한다. 필요에 의한 그런 것이잖나.”


역시나 향유형 인간다운 멘트. “인간의 종류를 생산형과 향유형으로 나눈다면, 컴퓨터 쪽과 바텐더 쪽으로 나눈다면 아, 나는 단연 향유형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 옷치장이며 얼굴 화장에 필요 이상으로 열중하는 여성들이 항변 삼아 하는 말이 있다. "남한테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고 자기만족 때문에 이러는 거라구요!" 그 말에 공감을 표한다. 남 보기에 좋으라고 개인 작업실 안에 카페를 차리지는 못한다. 고적한 실내에서 바텐더가 된 기분을 맛보려고 일을 벌였다고나 할까. 어쨌거나 요즘은 컴퓨터 의자나 음악 감상용 쇼파보다는 바텐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훨씬 많다.”(p.132)




줄라이홀에게 건넨다, “You're So Obama!”



그렇게 분위기는 익어간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가 있고 교감이 있는 풍경. 나는 줄라이홀에서 세상, 대한민국 따위는 잊었다. 아니, 커피향과 음악만으로 충분한 시간. 그 한때 ‘시인’이었으나 이젠 염치가 없어서 ‘시인’이라는 타이틀을 달지 못한다는 줄라이홀. 그럼에도 누구에게나 순정이 하나씩 있다면, 시가 자신의 순정이라고 말하는 줄라이홀. 검색을 하면 4명이 나오는 ‘김갑수’ 때문에 명함에 시인이자 문화평론가 타이틀을 단다는 줄라이홀. 언젠가 제주도 서귀포에 가서 살겠다고 말하는 줄라이홀. 그곳에선 어떤 작업실이 들어설까.



“지하 작업실 줄라이홀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대한민국은 사라진다. 그러기로 나는 결심한다. 그 안에는 차라리 떠돌이, 건달, 외돌토리, 허풍선이, 날라리…… 소속 없고 사사롭고 아직 콱 붙들리지 않은 영혼의 해방구가 열린다. 돌 틈에서 태어난 천고자의 서정이 연무를 피워낸다. 그래, 그런 착각이라도 하련다.”(p.129)


브람스의 현악 6중주가 흐르고 하이든의 음악도 흘러간다. 최근 줄라이홀의 노래라는 미선이의 'Sam'과 이른바 ‘이명박송’으로 일컬어지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아무 것도 없잖어' 등등도 함께다. 나는 그 노래(들)에 몸을 맡겼다. “잘 비워낸 한 생애가 천천히 식어가는 동안”(나희덕 ‘국밥 한 그릇’) 나도 줄라이홀을 꿈꾼다. 그것이 자기파괴적 욕망이라 할지라도. “모르핀, 코카인, 필로폰까지는 몰라도 알코올, 니코틴, 카페인의 자유쯤은 누리고 싶다. 건강과 장수라는 욕심 사나운 현대병에 맞서 우아하게 자기를 파괴하는 권리 추구이다.… 영혼의 상처 없이 문학은 가능하지 않다. 말하자면 커피는 한 잔의 문학이다.”(p.78)



당신도 작업실을 갖고 싶다고? 지하에서 생을 감식하고 싶다고? 그럼 이 동굴인 테스트에 응해보라. 당신의 적성을 묻는다. “바슐라르의 쾌락과 바르트의 고뇌가 만나는 장소가 동굴 속이다. 동굴 속 동굴인의 기질을 타고나는 사람이 있다. 동굴인에게 쾌락과 고뇌는 같은 종류의 호르몬으로 생성된다.… 동굴인이 나는 아프다, 라고 말할 때의 숨은 표정을 잘 관찰해보라. 거기 서린 어떤 쾌감을 발견하고 이해할 수 있다면 당신도 동굴인의하나일 수 있다.”(pp.31~32)


어쨌든, 나는 줄라이홀 혹은 김갑수 선생 덕분에 사고 싶어 리스트에 넣어놨던 『커피견문록』을 바로 질렀다. “세계 각지를 주유하며 ‘페송 페송’류의 문화 체험을 다채롭게 펼쳐나가고 있을 따름. 하지만 그 같은 커피 체험 속에 문명과 역사와 인간학이 담긴다. 마시는 한 잔 속에 그렇게 깊은 뜻이, 하는 가운데 맛 자체의 깊이와 넓이가 확장되는 것을 느낀다. ”(p.65)라고 설명했던 그 책. 드디어 내 품에 안겼다. 좋다. 흐흐.


나는 무엇보다 얼마 전 만난, 죽이 잘 맞을 것 같은 한 친구를 데리고 줄라이홀을 다시 찾고 싶다. 우리나라에선 그닥 알려지지 않은 멕시코 치아파스 커피원두를 들고, 줄라이홀의 ‘파에마 S1’이나 이소막의 헥사곤이 추출한 커피를 마시고 싶다.


그리하여, 줄라이홀에게 전하는 나의 이 메시지.

“You're so Obama!”(뭔 말인지 모르겠다고? 검색해 보면 된다!) 



[YES24 기고 원본 미세수정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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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좆나게 온다.
커피 한 잔, 조명 한 움큼, 더불어 마이클 잭슨의 노래 한 자락.
비와 어우려져서 분위기, 죽어죽어.

지상의 우리보다 그를 더 필요로 하여, 일찍 '황제'를 뫼시고 간 하늘도,
황제의 딸, 황녀 캐서린의 아빠를 향한 애절한 추모에 그만 팡 터졌나보다.

어제 추모공연을 보면서,
나도 그만, 팡 터졌다. 특히 'So much...'라는 그 맺음에.
캐서린에겐 진정, 최고의 아빠였으리라.
우리도 그를 통해 즐거움과 위안을 얻었으니까...


나도 캐서린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고 싶었다.
"괜찮아 괜찮아, 그리고 울고 싶을만큼 울렴... 너의 아빠는 최고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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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경 하나.
수년 전. 남대문 부근의 패션몰 공연장에서 펼쳐진 여행스케치(여치) 콘서트.
일찌감치 여치의 팬이던 소년(?)에겐 당연한 행차였다. 마침 새로이 만나기 시작한 사람과 함께였다. 말하자면, 기쁨 두 배. 내가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을 함께 볼 수 있어서. 공연은 미친 듯이 좋았다. 특히나 (남)준봉 형의 비범함(?)이 유난히 빛을 발했다. 그 감흥을 온전히 가져가려고 공연이 끝나자마자 현장에서 라이브콘서트 앨범(2CD)을 구입했다. 집에 가자마자, 뜯었다. 두근두근 쿵쿵. 하악하악.

어라? 그런데 CD가 달랑 하나다. CD1은 있는데, CD2가 없다. 눈물 그렁그렁. 다음날,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준봉 형 앞으로 이메일을 보냈다. 이 사태(?)를 어찌하냐고. 물론, 나는 그저 여치의 팬 일뿐, 어떤 일면식도 없는 사이. 기대 않았는데, 답장이 왔다. “헉 이런 일이? 말두 안 돼...”라는 말과 함께, 사고(?)를 수습할 수 있는 전화번호를 알려주면서. 그리고 앨범을 하나 더 받았다. 파손품이었으니 당연한 일. 참, 그때 만났던 사람은 어찌 됐냐고? 뭐 그 만남, 오래지 않았다. 여치 탓인가.^^;;


# 풍경 둘.
역시나 수년 전. 서울 근교의 놀이동산. 봄으로 기억한다. 장미가 화사했고, 온갖 꽃들이 만개했다. 흠, 나의 행차를 반기는 것인가! 역시나 만남이 얼마 되지 않았던 여인과의 첫 번째 소풍. 놀이기구에 몸도 실어보고, 꽃들의 향연을 만끽하며, 봄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어라? 익숙한 노래가 귀를 자극한다. 오오오, 여치 아닌가! 놀이동산 내 공연장에서 여치가 공연을 펼치고 있다. 냉큼 공연을 보자고 끌고 자리를 잡았다. 익숙한 레퍼토리가 연신 흘러나왔고, 노래에 몸을 맡겼다. 그러나 함께 온 사람은 여치를 잘 모른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 공연이 끝날 때까지 붙어 있었다. 여치 덕분에 더욱 즐거웠던 그날의 소풍. 참, 함께 한 그 사람은 어찌 됐냐고? 역시나 그 만남, 오래지 않았다. 또! 여치 탓인가.^^;;



한겨울, 다시 나타난 ‘여치’, 반갑다 여치야!


한 해가 거의 얼마 남지 않은 때, 세밑. 지난달 29일, 홍대 부근의 ‘빵’.
몇 년 간 종적을 감췄던 여치(여행스케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환경오염이 심해 그동안 떠나있었던 걸까. 다시 돌아온 여치가 내 마음의 환경정화를 위한 것인양, ‘왠지 느낌이 좋아’.

그들은 내 이십대와 함께였다. ‘새장 속의 나’로 지내던 내게 ‘산다는 건 다 그런 게 아니겠니’라며 삶의 한 단면을 알려줬고, ‘초등학교 동창회 가는 날’의 설렘과 ‘향수’를 곱씹게 만들어줬다. ‘옛 친구에게’ 보내는 ‘진심’을 노래로 표현하게도 해줬다.

여행을 떠날 때면, ‘여행스케치’를 목청껏 불러 제쳤고, 별 덮인 밤하늘을 하얗게 셀 때면, 나는 읊조렸다. ‘별이 진다네.’ 그런 여치였다. 2002년 9집 앨범이후 오랜 공백. 나는 서른 진입 즈음이었다. 이십대는 여치의 실종과 함께 서서히 접히고 있었다. 내 이십대의 별이 졌던 그때. 별이 지는 어제.


그래서 더 반가웠는지 모르겠다. 이 오랜만의 등장. 앨범을 들고 왔던 이전과 좀 다르다. 이번에는 다이어리와 함께다. 『2009 여행스케치 다이어리 & 미니앨범』.

불쑥 내 가슴 속에  이십대의 어떤 기억을 반짝이게 만든 그 이름, 여행스케치. 공연 시작 즈음, ‘빵’은 빽빽했다. 옛 친구를 만나는 양,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찾아왔을 터이다. 수년 째 ‘인기그룹’, 여행스케치를 만나기 위해서.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세밑의 빡빡하게 막힌 차와 인파를 뚫고.

저녁 8시7분, 머리를 질끈 동여맨 조병석 옹과 예의 개구쟁이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넥타이 맨 남준봉 형이 조용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나이듦에도 그들은 한결 같았다. 오랜만임에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만남. 바로 엊그제 만났던 것 같은 친근함.

그래, 그것이 여치 아니겠는가. 한때 13명까지 지저귀던 여치가 이젠 2명으로 재편됐지만, 중요한 것은 여전히 ‘여치’가 살아 숨쉰다는 것. ‘빵’에서의 공연은 그들에게도 어떤 추억을 상기시켰나보다. “초창기 공연 때가 생각나요. 여러분보다 저희들 숫자가 더 많았던 때가 있었어요.” 그리고 첫 번째 연주가 시작된다. 8집의 ‘왠지 느낌이 좋아’. “널 그릴 때마다 왠지 느낌이~~~ 좋아~♪”라던 날 달뜨게 만든 그 선율. 그리고 휘파람.



노래 중간, 병석 옹이 “여러분 복 많이 받으세요. 정말”이라며 랩(?)을 구사해 물의(?)를 일으켰지만, 첫 선곡은 탁월했다. 썰렁함은 20여년이 돼도 여전하다며, 준봉 형이 병석 옹을 타박했지만, 그 타박 또한 여전했다. 맞다, 여치맞다.

느낌 좋게, 기분 좋게, 활동했던 기분도 난다며 이 곡을 선곡했다던 그들은 그동안의 경과를 살짝 보고했다. 6년 동안 놀기도 하고, 사업도 했단다. 마냥 널부러져 있었던 건 아니고 영화나 드라마 음악도 하면서 음악 작업을 계속 했다. 그럼에도 다시 새로운 노래를 들고 나온 것이 가장 반가운 선물이다. 연말 동창회 온 기분도 난다면서 선곡한 노래는 ‘초등학교 동창회 가는 날’. 원래는 ‘국민학교 동창회 가는 날’이었는데, 정부시책의 변경에 따라 바뀐 제목.

그렇게 이 쇼케이스 자리에 옛 멤버들이 와 있다고 했다. 불쑥 이 노래 들으면서 며칠 전 만나기로 했다가 신년으로 만남을 연기한 초등학교 친구들이 떠올랐다. “나를 사랑했던 그 시절 친구들은 아직도 날 기억할까 /장난꾸러기 봉수와 동철이는 아직도 그대로 일까 /빨리 좀 만나봤으면♬”


여치 노래 가운데, 내가 정한 베스트 2곡 중 하나인, ‘옛 친구에게’가 동창회를 이었다. 지금은 연락이 끊긴, 내 인생의 한 친구가 떠올랐다. 노래는 그런 내 마음을 대변했다. “지난 내 어리석음 이젠 후회해 하지만 넌 지금 어디에… 아직도 나를 기억 한다면 날 용서해주오♪” 여치는 밴드활동을 했을 때, 이 곡이 1부 엔딩곡이었을 정도로 비중 있는 곡이라고 했다. 병석 옹 왈, “연말 되면 한 번씩 만난 사람을 기억해보고 그러잖아요. 그동안 연락이 뜸했던 친구들에게 연락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별이 지고 뜨는 우리의 아름다운 밤


마침내, 여치의 모든 것이 담겼다고 해도 무방한
별이 진다네’의 연주시간. 전역을 앞둔 말년휴가 때 병준 옹이 만들었다는 이곡. 제작비 절감과 색다른 음악적 시도를 위해 자연의 소리를 담은 이곡. 어스름 깊은 밤, 고즈넉이 들리는 듯한 그 익숙한 개구리 소리는 언제나처럼 내 마음을 달랜다. 그 어느 시골길에 와 있는 마냥, 한없이 그 소리에 빠져드는 밤. 여치의 데뷔곡.

“김범수, 성시경, 레이지 보이 등이 리메이크했지만, 역시 원곡이 제일 좋죠?”라고 묻는 여치에게, ‘암 그럼, 그렇지 말고’ 고개를 끄덕끄덕. 누가 어떻게 잘 부르고 해석해도, 오리지널의 아우라를 어찌 따라갈 수 있단 말인가. “어제는 별이 졌다네 나의 가슴이 무너졌네… 나의 별은 사라지고 어둠만이 짙어 가는데” 그것을 어찌 다른 가수에게 맡긴단 말인가. 오로지 여치! 오직 여치!



그리고 이번 신곡들과 미니 앨범에 대한 소개. 7곡의 노래를 다이어리라는 새로운 형식과 합궁시켰다. 예쁘다. 여행스케치의 감성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일상의 소소한 느낌을 메모처럼 적은 글을 담았어요. 저희들 흔적이 완전 담겨 있어요. 15000원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여러분의 음악적 수준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 퀄리티에 만족하실 거예요. 사진, 글, 음악이 담겨 있는데, 10%를 저희들이 채웠다면, 나머지 90%를 여러분이 채워주세요. 다이어리가 새로운 시작을 뜻하기도 하잖아요.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간다는 생각으로 제작했어요. 여러분의 소소한 일상을 적어나가면 좋은 일기가 될 거에요.”

이번 다이어리 미니앨범의 타이틀 곡은 ‘별이 뜬다네’다. 뭔가, 매칭이 되지 않는가. 맞다. ‘별이 진다네’와 맞물린다. 이 곡, 준봉 형의 반대가 심했단다. “‘별이 진다네’의 감성을 간직하고 싶었는데, 처음에는 왠지 난도질하는 느낌이었어요. 2주간 병석이 형이랑 얘기를 안 했을 정도라니까요. (웃음)”


여치의 멤버가 둘로 되면서 생각을 제한을 두지 말자고 했다. 좀더 자유롭고 열어두고 싶었단다. 병준 옹은 그렇게 ‘별이 뜬다네’의 의미를 설명한다. 이 곡은 랩에 가깝다. 들어보면 알겠지만, ‘별이 진다네’와는 완전 다르다. 여치의 예전 노래를 안다면, ‘어라?’ 소리가 나올 정도다.

피처링도 있다. 예전 라디오방송 때의 게스트 인연을 고리 삼아 배우 김정은 씨를 무작정 찾아가 부탁했다. 흔쾌히 승낙한 덕에 김정은 씨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나 항상 그대를’ 부를 때의 그 목소리가 맞다. 다만, 준봉이 형은 아쉬웠단다. 노래 연습 시켜주면서 하루를 ‘뽀송’하게 보내고 싶었는데, 연습을 무척 열심히 한 덕에, 녹음이 1시간 만에 끝나버렸단다. 아뿔싸.



사실 ‘별이 뜬다네’는 준봉이 형도 처음엔 반대를 했지만, 주변에서도 전반적으로 반대가 심했다. 그래서 병석 옹은 결단을 내렸다. 모니터를 해서 반응이 좋으면 앨범에 싣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묻어버리기로. 반응은 의외로 “기분이 좋아진다” “좋다” 등이 많았다. 물론 모니터 집단이 준봉 형 회사 직원이었지만. 그것이 ‘별이 뜬다네’의 탄생 비화다. 자칫하면 세상에 빛을 발산하지 못할 뻔한 어떤 별의 이야기.

“(‘별이 진다네’와) 글자 하나만 바꿨을 뿐이지만, 분위기가 많이 다를 거예요. 그런데 음반 매장에는 없어요. 다이어리로 분류가 돼서 서점이나 팬시점에만 있어요. 오랜만에 느껴보는 긴장감이에요.” 내 마음에도 별이 떴다. 오랜만에 여치라는 별이 다시 떴다. 그렇게, 별은 내 가슴에.


신곡이 이어졌다. 새롭게 출발하는 연인을 위한 ‘Y의 축복송’은 자신의 이름에 이니셜 ‘Y’가 들어가는 분들이 좋아한단다. 연희, 수연 등등. 가사는 예쁘고, 축복의 느낌이 가득하다. 시절인연을 만나 사랑을 새로이 가꿔나가는 당신에게 이 노래, 권한다.

이어진 병석 옹의 솔로곡 ‘눈물이 난다’. “가사 내용을 들으면 알 거예요. 난 하기 싫었어요”라는 준봉 형의 투덜거림에, “넌 어려서 몰라~”로 퉁쳤던 병석 옹의 애잔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청춘’이라는 부제마냥,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왔는데, 창가에 내리는 눈을 보니 이유 없이 눈물이 흘러내리던 어떤 청춘의 기억을 되살리는 이 노래. 엄혹한 시대에 직면한 지금-여기의 청춘에게 바치는 여치의 헌사 혹은 위로 같은 노래.

배우 조승우가 나온 CF에 삽입된 ‘마이 프렌드 굿 프렌드’도 흘러나온다. 눈앞에 짠하게 펼쳐지는 프라하의 어떤 풍경. 아, 떠나고 싶다. 봄이 오면, 역시나 프라하. 우리 함께 떠날래요? 아름다운 밤이다. 별이 지고 뜨더니, 시작하는 연인들의 시절인연을 축복하고 청춘의 눈물을 닦아주고선, 프라하까지 펼쳐놓다니.



세상 모든 여치들의 합창


“세상에 친구만큼 좋은 것이 있겠느냐”며 애초 언급한 대로, 관객석에 있던 옛 멤버들을 무대로 불러 모은 여치. 89년 12월9일에 1집 첫 공연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19주년이 막 지난 셈이다. ㅊㅋㅊㅋ. 2009년은 데뷔 20주년. 와, 놀랐다. 여치가 저렇게 나이를 먹었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저 세월을 머금었다는 것이. 나도 따지자면, 거의 여치와 함께 한 20여년이 아닌가.

처음 그룹을 조직할 때, 산파역할을 했다는 신동철 대장에 대해 병석 옹과 준봉 형은 깍듯했다. 신 대장 왈. “둘이서 하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고 힘겨워 보이기도 하지만, 잘하고 있는 것 같네요. 옛 생각도 나네요. 통기타 2개 들고 강원도를 돌아다니며 개구리 소리를 녹음하던 때가. 멋진 공연을 해보고픈 간절한 생각도 있고. 20년 흐른 여치 공연에도 함께 자리를 하고 싶어요.”



지금은 유명 작사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윤사라 씨(김범수 ‘보고 싶다’, 김종국 ‘사랑스러워’ ‘편지’, 제이 ‘어제처럼’, 이기찬 ‘바보’, 박효신 ‘좋은 사람’)도 자리에 올랐다. 무엇보다 그는 내가 요즘 가장 즐겨듣는 노래의 작사가다. 얼마 전 막을 내린 TV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의 삽입곡인 성시경의 ‘연연’. 여치에서 나와 1집 앨범 ‘천국에서 길을 잃다’를 냈으나, 결국 길 잃고 작사에만 전념하고 있는 음악인. “당시 3만 몇 천 장이 팔렸다. 지금이라면 ‘대박’인데... 오늘 오빠들 노래하고 랩하는 것을 보니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풋풋한 그 느낌으로 돌아간 것 같아 기분도 좋고요.”


그리고 ‘산다는 건 다 그런 게 아니겠니’의 보컬을 담당했던 김수현 씨. 지금은 결혼 8년차 학부형이자 아이들 음악을 가리키고 있단다. “병석 오빠의 썰렁함은 세월이 가도 안 변하네요. 약도 없고요. (웃음) 8년 여치에서 활동했는데 오빠들이 멋있어 보이는 건 오늘이 처음이에요. ‘와, 잘한다. 연애인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물론 랩 할 때는 안쓰럽기도 했어요. 이제는 확실히 여치 팬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노래, ‘산다는 건 다 그런 게 아니겠니’가 울려 퍼졌다. 이미 여치에서 빠져 나갔으나, 여전히 ‘여치人’일 수밖에 없는 여치들의 앙상블. 빵은 빵빵하게 터질 듯이 환호와 열광, 박수가 함께 했다. 여치가 뿌린 행복바이러스가 퍼지는 공간. 산다는 건 다 그런 거다. 노래 한곡의 찰나처럼 스쳐가는 행복에도 세상이 아름다워 보일 수 있는 것. 흥얼흥얼 나는 씹고 또 씹었다. “산다는 건 그런 게 아니겠니 원하는 대로만 살 수는 없지만 / 알 수 없는 내일이 있다는 건 설레는 일이야 두렵기는 해도”


세션하는 3명도 함께 초대됐다. 건반의 정연경 씨, 일렉기타의 김민교 씨, 건반의 한재성 씨. 그리고 이어진 노래는 배우 이나영이 나온 화장품 CF의 삽입곡이기도 했던 ‘기분 좋은 상상’. 신년을 앞두고 이런 노래 흥겹다. “어느 날 천사가 네게로 와서 너의 소원 하나를 들어 준다고 묻는다면 어떻게 말할래 / 커다란 종이비행기를 접어 그녀와 함께 타고 솜사탕 같은 구름에 가득 이렇게 쓰고 싶다고 / loving you, I`m loving you”

‘기분 좋은 상상’으로 흥겨움과 사랑이 그렇게 두둥실 떠올랐다면, 프로포즈 노래인 ‘치키치키 러브송’이 대미를 장식했다. “치키치키 Love forever oh happy day / 자기자기 나를 부르는 너 상상에 / 치키치키 Love song for you / 날 만난 뒤로 지기지우보다 널 아껴줄 오직 한사람 그건 바로 나야 나”


물론 그것이 진짜 끝은 아니었다. 5천년 역사에서 제1의 제도라는 ‘앵콜’. 오랜만에 듣는 열화와 같은 앵콜이었을 터. 여치의 대표곡 중 하나인 ‘여행스케치’가 락처럼 울려 퍼졌다. 빵은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 세밑의 여치 쇼케이스는 그렇게 흥겨운 한마당이었다. 2009년 여치의 데뷔 20주년을 앞둔 워밍업으로서는 충분히 좋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여치와 호흡을 맞추는 것도 2009년의 행복이 될 수 있겠다. 우선 1월6일 대학로 학전블루에서 열리는 ‘故김광석 13주기 추모공연’에 여행스케치도 참여하고, 2월 초순부터 대학로 스타시티에서는 한 달간 여치의 공연이 펼쳐진다.

무엇보다 20주년 세상 모든 여치들이 함께 하는 기념앨범, 와우, 전국투어도 당연히 있을 터. 전국 곳곳에 여치 노랫소리가 퍼질 것이다. 부디 그들이 오면 반겨주시라.

올해는 더구나, UN이 정한 ‘세계 천문의 해’. 그렇다면 별을 노래하는 ‘여행스케치의 해’가 되는 것도 좋지 아니한가. ‘별이 진다네’로 시작해 20년 만에 ‘별이 뜬다네’로 돌아온 여치에게 덕담을 해 준다면, ‘2009년에는 분명 ★이 뜰거야’.

참고로, 데일리메일(
www.dailymail.co.uk)을 보면, 허블우주망원경으로 관측된 ‘별의 일생’이 게재됐다. 볼만하다. 별의 생성부터 소멸까지가 담겼다. 아, 별나라 여행, 떠나고 싶다. 그게 아니라면, 그저 다른 어디라도. “여행을 떠나 기차를 타고 / 들판을 넘어 산속 계곡 따라 / 자연을 벗 삶아 노래도 불러보고 / 동굴 속에서 소리도 쳐 보네♪” 이 노래, 들린다면, 내가 여행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해 달라.


추신. 쇼케이스를 마치고 버스로 이동하는 길. 눈이 날리고 있었다. 딱 한주 앞선 12월22일에도 쇼케이스를 마치고 펑펑 함박눈이 내렸는데, 준봉형은 오한과 발열을 동반한 독감에 걸렸다고 했다. 준봉 형, 또 독감 걸리지 않았을까. 참, 12월31일은 병석 옹의 생일이었다. 늦었지만, 축하드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치의 스무 살. 그 성인됨을 나는 축하한다. 별이 지는 어제, 별이 뜨는 오늘. 별은 여전히 내 가슴에.

[YES24 기고, 말하자면 원본. 2009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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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여자,

2009/02/07 15:55

이런 여자,
매력적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읽는 것만으로 기분을 좋게 만드는 여자,
알지는 못하지만, 그런 여자가 되길 바란다...^.^


나는 언제 어디서나 기분 좋은 느낌을 풍기는 여자이고 싶다.

 

늘 가슴 설레는 일이 있어 보이고
사소한 일로도 행복에 겨워하는 것 같고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주거나
웃는 모습이 참 환하다거나
왠지 모르게 모든 일에 두근거려 하는 것 같은 그런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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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첼로 선율로부터 받는 위로의 어떤 것, ‘요요 마’

앨범데뷔 30주년 기념음반 ‘기쁨과 평화의 노래(Song of Joy & Peace)’ 기자회견


‘천재’ 소리를 듣던 세계 최정상급 첼리스트의 익살과 유머는 여전했다. 12일 서울 반포동 JW메리어트호텔 클래식세븐에서 열린 ‘요요 마(Yo-Yo MA)’의 기자회견장.

최근 발매한 앨범 데뷔 30주년 기념 앨범 ‘기쁨과 평화의 노래’(첫 레코딩은 1978년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에 대해 알리는 자리였다. 그는 친구를 만나 담소를 나누듯, 기자회견을 가졌다. 전날 가진 서울 공연의 피로감은 찾아볼 수 없는 기색. 사진을 따로 찍는 시간(포토 콜)에도 그는 익살스런 표정과 몸짓으로 행사장의 긴장을 푸는 넉살을 보여준다. 노력하는 천재라서 보여줄 수 있는 여유일까. 아니면 데뷔 30년이 주는 안정적인 연륜일까. 스스럼없이 인사를 나눈 그의 표정엔 세월이 주는 푸근함과 안정감이 묻어있다.

그의 목소리는 첼로선율을 닮았다. 그건 첼로의 소리가 사람의 목소리를 닮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가 연주하는 첼로의 소리는 그의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조곤조곤 그러나 때론 열정과 유머를 담아 요요 마의 음색이 행사장을 메운다.

요요 마는 이번 앨범의 컨셉트를 ‘친구’와 ‘가족’으로 설명했다. 사실 그의 말마따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음악가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협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택한 것이 각개격파 및 취합. 각 음악가를 찾아 함께 녹음을 진행하고 최종적으로 6월 뉴욕의 스튜디오에서 이를 취합한 것. 음악가 ‘친구’들이 요요 마를 기점으로 한데 네트워크를 이룬 것이다. 그리고 앨범의 음악은 각 나라의 명절이나 파티 등에 가족․친지들이 모여서 기쁨과 평화를 나누고 있는 분위기를 연상하면서 간택된 것들이라는 것이 요요 마의 설명이다.


특히 국적과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해온 클래식 뮤지션 요요 마는 이번 앨범을 통해 한층 더 흥미롭고 진화된 시도를 했다. 다이애나 크롤, 제임스 테일러, 크리스 보티, 르네 플레밍, 조슈아 레드맨, 데이브 브루벡, 에드가 마이어, 알리슨 크라우스, 실크로드 앙상블, 파키토 드리베라, 아사드 패밀리 등 세계 정상급 뮤지션들과 함께 작업한 것이 첫 번째. 그리고 ‘도나 노비스 파쳄(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의 멜로디를 녹음했는데, 이 음원을 누구나 인다바뮤직 사이트(www.indabamusic.com)를 통해 다운로드 받아 선율을 입히거나 편곡을 해서 올리면 투표를 통해 요요 마와 레코딩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로 한 것. 소통과 교류를 통해 좀더 나은 음악을 하겠다는 요요 마의 의지가 담긴 것이라고 하겠다.


이날 회견에서 요요 마는 “30년을 돌아보면 머리숱이 많이 줄었다.(웃음) 머리 숱을 잃었지만 많은 음악적 경험을 얻었다”며 “3년 전 이라면 이 앨범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요요 마는 무엇보다 이번 앨범작업을 ‘올림픽’에 비유하면서 “매일 훌륭한 아티스트들이 와서 연주를 하면 그때가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고 느낀다. 그런데 다음 날에도 또 다른 아티스트가 와서 연주를 하노라면 또 그 순간이 최고의 순간이라고 느낀다. 매일같이 ‘최고다’, ‘최고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매순간 나는 눈이 커지고 그들의 재능과 선의에 놀랐다”고 말했다.


요요 마는 그렇게 전진한다. 타고난 천재였지만, 그에겐 ‘노력하는’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천재로 태어나는 것보다 천재로 남아 있는 것이 때론 더 힘든 법이다. 30년 세월과 그가 여전히 우리에게 선사하고 있는 아름다움은 그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 코엑스몰 내방객을 위한 감성매거진 '몰' 기고)
 
(사진제공 : 소니B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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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과꽃은 어김없이 피었고, 우리는 다시 걸었다. 벌써 4년차 여정을 마쳤다. 가끔 그런 생각도 한다. 이 무심하고 앙상한 도시 생활의 폭압을 견뎌나가게끔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함께 걷는 우리의 여정이 아닐까하고. 내년에 다시 꿀 꿈이 있기에 세월의 하중을 버티고 서 있는 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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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의 10억 추억 만들기

올해도 마찬가지로 바람이고 싶고, 강물이고 싶은 우리네 마음을 길 위에 꾹꾹 눌러 담고 한 다발 추억도 심었구나. 지구상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 언젠가는 다 식어빠지고, 밑동이 드러나고, 이빨까지 빠질 뻔하디뻔한 삶의 한 자락에 우리는 짧은 쉼표를 찍고 한 박자 템포를 늦췄다. 갖다 대려면 얼마든지 많은 이유를 붙일 수 있겠지만 어디 사람살이가 이유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겠냐. 그냥 길이 있었고 너와 내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니었겠냐.  

나희덕 시인(국밥 한 그릇)이 언급했듯, ‘잘 비워낸 한 생애가 천천히 식어가는 동안’, 켜켜이 쌓고 있는 이 기억의 나이테가 무척이나 소중하다. 무엇보다 ‘너와 함께’라는 그것이 언젠가 맞닥뜨릴 삶의 끝에서 내가 품고 갈 수 있는 하나가 됐다.

사랑과 이별도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추억할 것이 많은 사랑의 행로가 마음을 풍성하게 만들고 최악의 이별은 추억할 것이 전혀 없다는 것 아니겠냐. 광풍처럼 불어 닥치고 있는 1억, 10억 만들기와 같은 현대적 삶의 궤적에서 너와 나 마냥 자유로울 순 없겠지만 네가 어느 라디오에서 나온 멘트라며 해줬던 “10억 원 가치의 추억 만들기”에 나는 전적으로 동감했다. 누가 보면 돈 없는 놈들의 하릴없는 넋두리이자 푸념일 뿐이겠지만 나는 너와 함께 10억 원 가치를 훌쩍 넘을 추억들이 쌓여가고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그 행로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생각은 없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굳이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심에서 나 역시 벗어나고 싶다. 그건 단지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기억이 되고 추억으로 저장됐을 뿐이니까. 터벅터벅 뚜벅뚜벅 그 모습처럼, 나의 발, 나의 눈, 나의 가슴을 통해 들어온 모든 것을 고이 받아들이고 싶었던 게지. 우린 길의 감식자도 아니고 행랑채에 머물러 국밥 한 그릇 말아먹은 나그네였던 것 맞지?  

방파제에 산산이 부서진 하얀 파도들 앞에서 폼 잡거나 모래사장에 발을 다독거리며 두런두런 나눴던 이야기들, 거의 차도 다니지 않고 쭉 뻗은 밤길을 전봇대 숫자를 세며 단축 마라톤 했던 기억. 이방인을 향해 짖어대는 개들 앞에 주눅 들어 날름 도망갔던 소심자들의 모습. 그래 올해도 우린 반딧불이가 안 보인다는 소리를 하기 무섭게 그들을 보았지. 추억은 방울방울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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켜켜이 쌓이고 있는 너와 나의 추억의 나이테

그 추억의 행로와 맞닿았던 한 영화가 있다. 네가 보지 못했겠지만 <원더풀 라이프>는 ‘삶이라 불리는 심호흡을 끝내고 나는 무엇을 추억하면서 저승으로 갈 수 있을까’ ‘내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더라’라며 자문하게끔 만든다. 이승과 저승의 문턱을 넘어갈 즈음 마음에 품을 추억을 떠올리지 못하면 그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는 영혼들이 거기에 있다. 머리 속에선 이런 저런 영상들이 가지를 친다. ‘그래, 그런 때가 있었지…’ ‘아니 이건 어떨까…’하고 공연히 기억의 회로를 들쑤시게 만드는 무엇들.

아름답고 행복했던 순간을 영원히 가지고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좋지 않겠니. <원더풀 라이프>는 상상의 공간이자, 지상에서 영원으로 가는 중간역인 ‘림보’에서 망자들이 머무르는 일주일을 보여준다. 죽음을 맞이한 이후 저승으로 가는 길목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중간기착지에서 각 영혼은 하나씩 과제를 부여받지. 그 지난하고 다양한 삶의 스펙트럼 가운데 가장 행복했던 단 하나만의 추억을 골라내야 하는 것이다. 다른 모든 기억들은 망각의 늪 속으로 던져버린 채.

림보의 면접관은 망자들의 행복한 순간을 영상으로 재현시키고 망자들은 그 순간을 보면서 영원의 시간으로 편입한다. 대개의 망자들은 담담하게 살아생전 기억을 털어놓으며 자신이 죽음에 접어들었음을 쉽게 인정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게 마련이겠지. 개중에는 추억을 선택하지 못해 저 세상으로 가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한편으로 독백처럼 풀어놓는 그들의 추억도 망자 중 한 사람이 얘기했듯 ‘기억을 이미지화 시킨 것’이라 불확실하고 가공된 측면을 내비친다. 따지고 보면 지나간 기억은 빛깔은 윤색되고 미화되기도 하는 운명 아니겠냐. 그러나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죽을 때까지 간직하고픈’, ‘힘들 때 의지하게 되는’ ‘마음에 힘이 되는’ 추억이 기실 개인의 삶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개인의 삶에 대한 심판을 통해 ‘천당’과 ‘지옥’으로 갈리는 양자구도가 아닌 망자가 행복한 사후를 ‘선택’한다는 그 인식은 참으로 많은 것을 얘기해주고 있더라.   

<원더풀 라이프>는 그렇게 삶의 일부분을 머리 속에 이미지화 시키는 작업, ‘추억’의 되새김질을 통해 관객에게 속삭인다. ‘림보’를 거치는 이들은 모두 같은 질문을 받지만 각 개인마다 행복의 순간은 다른 색깔과 모양을 지니고 있다. 삶의 순간마다 켜켜이 쌓아올려진 작은 일상의 편린들이 얼마나 소중할 수 있는지, 누군가와 함께 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 될 수 있는지, 영화는 너무나도 느린 템포로 화두를 던져준다.

무심하게 흐르는 시간 속에 매몰된 채 기계처럼 일어나 습관처럼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주변 사람들과 날씨 얘기를 나누거나, 거리를 하얗게 색칠하는 눈에 괜스레 짜증을 내며 죄 없는 담배만 빠끔거리는 일상의 조각들도 있다. 그러나 이도저도 아닌 것 같은 감정은 텅 빈 진공상태에서 무의미한 유영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원더풀 라이프>는 사후 세계를 빌어 일상에도 작은 의미를 지녀볼 것을 살며시 권유하더라. 그것 또한 추억의 나이테를 쌓는 일이니까.

너와 나의 그 추억도 일상의 한 결이다. 네가 받아들이는 색깔과 내가 다르듯, 각자의 이야기는 언젠가 약간씩 다른 추억의 빛깔로 변색될 수도 있겠지. 그러나 나의 추억 속에는 네가 함께 자리 잡고 있음을, 그 길이 있음을, 나는 감사할 수 있을 것 같다. 지울 수 없는 옛 사랑과 함께 고래처럼 숨 쉬고 있는 추억의 박동은 그렇게 언젠가 삶의 끝에서 나를 무난히 저승으로 인도해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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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있어 행복한 우리들

<원더풀 라이프>는 또한 행복에 대한 영감도 보여준다. 행복한 추억을 선택하지 못해 림보에서 면접관으로 일하고 있는 모치즈키는 다른 망자가 그 추억을 선택하게끔 도와주지만 정작 본인은 그러지 못한다. 물론 사연이 있겠지. 그리고 와타나베란 노인도 평생 동안 평범하기만 한 삶에서 행복의 순간을 채집하지 못한다.

그런데 모치즈키가 와타나베의 일생이 담긴 비디오를 보여주는 과정에서 모치즈키와 와타나베, 그리고 와타나베의 아내 사이에 얽힌 관계가 우연찮게 드러난다. 와타나베는 테이프를 돌리면서 평범하기만 한 삶에서 잊고 있던 어떤 기쁨을 깨닫고, 아내가 죽기 전 새로운 마음을 약속하던 순간을 선택해서 그녀와의 추억을 안고 떠난다. 사랑했던 여자가 자신의 죽음 직후 다른 남자를 선택했음을 쉬이 받아들이지 못했던 모치즈키도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지.

두 사람은 다른 시공간에서 서로를 질투하고 있었다. 우연히 발견한 와타나베 아내의 파일에서는 모치즈키가 죽기 전 함께 했던 순간이 담겨있었던 것이지. 50년 동안 림보를 떠나지 못했던 모치즈키도 자신이 다른 누군가의 행복의 일부분으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행복한 추억에 대한 선택의 망설임에 종지부를 찍는다.

하지만 함께 림보에서 모치즈키를 짝사랑했던 시오리는 그와의 행복한 날들을 잊지 않기 위해 림보에 계속 남아있는 것을 택하더라. 두 사람은 엇갈린 선택을 하지만 행복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지 않냐. 누군가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행복의 일부분으로 누군가 존재하고 있음을.

생각해보면 조금 더 주위를 둘러보란 의미를 품고 있었던 것 같다. 나의 행복은 가족, 친구, 애인 등 그 누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며 나도 그 누군가의 행복의 일부분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을. 항상 곁에 있지 않더라도 단지 누군가 있었다는 사실로 행복해 질 수 있기를.

림보에 다다를 그 날까지 행복했던 순간을, 그 영상을 마음속에서 가끔 재현해 보는 것도 어떨까 싶다. 추억을 먹고산다는 이야기처럼 누구나 가질 법한 삶의 아름다운 한때, 보물 같은 추억을 저 마음 깊은 곳에서 꺼내서 말이야. <원더풀 라이프>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저 세상에 편히 가기 위해서라도 이 세상에서 진한 추억 하나쯤은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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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듬성듬성하지만 한올한올 짜고 있는 내 추억의 나이테는 너와 함께여서 점점 진해지고 있다. 나는 준비된 저승길을 삶 속에서 짜고 있다. 림보에서 면접관의 질문에 나는 망설임 없이 진한 추억들을 담은 보따리를 풀어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네가 겪진 못했지만 알고 있는 내 깊은 곳의 그 추억들까지 담은 보따리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이만하면 우리, 너와 나의 생에 대해 “원더풀 마이 라이프(Wonderful My Life)!”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 아름다운 동행, 나의 친구 병률아, 고맙다. 네가 있어서, 너와 함께 할 수 있어서.

(* 한겨레-대티즌 UCC공모전 응모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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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ose of May

2008/05/14 11:08
너에게 보내는 5월의 내 붉은 마음.
장미만큼이나, 아니 장미보다 더, 내 심장을 뛰게 만들고...
장미보다 더 붉디붉은 빛깔로 내 마음을 온통 색칠한 너에게...
5월, 메이, 로즈, 레드, 그리고 너...
너는 그렇게 내게 5월의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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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5월의 키스.
장미의 미소와 질투를 유발하는 황홀한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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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대 모습이 아주 즐거워 보여요~
그대의 두손에 담겨진 빨간 장미가 함께 웃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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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3일), 있잖아. 나, 너에게 책 선물을 받았으면 좋겠다. 그럼 음, 난 너에게 장미를 안겨줄게.^.^
갑자기 무슨 뚱딴지 소리냐구? 너에겐, 내가 항상 뚱딴지잖아.ㅋ
음 사실 왜냐면, 오늘이 바로, '책의 날'이라서. 여자는 남자에게 책을, 남자는 여자에게 장미를 주는 날이거든.

몰랐지? 하긴, 너에겐 제대로 말해준 적이 없네. 뭐, 그래도 넌 늘 내게 책이자 장미야.
좋은 책처럼 흠잡을 데 없는 지성을 갖추고, 장미처럼 아름답잖아, 넌.^.^* 아니, 장미보다 아름답지!
하하, 아부가 심했나? 근데, 그건 진정이다. 넌 내게 진짜 그런 존재야.

지난 1995년부터 유네스코가 독서증진을 위해 정한 날이 바로 4월23일이야. 정식으론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World Book & Copyright Day)'이구.
처음엔 '세계 책의 날'이라고 했는데, 러시아가 저작권 관련의제를 제의했고, 이를 받아들였다네.
그런데, 왜 장미가 튀어나왔을까요~ 거기엔 스페인에서 전해내려오는 믿거나말거나 전설이 있대.
'호르디(Jordi)'라는 병사가 있었대. 어느 날, 공주가 용에게 납치된거야. 간혹 인간 세상으로 와서 횡포를 부리는 나쁜 용이었대. 그럴 때면, 처녀와 어린 양을 바치곤 했는데, 이번엔 공주가 선택되고 만거야. 짜잔, 호르디가 나섰어. "용아, 덤벼라." 용용 약 올려가면서, 호르디가 용의 목을 베었어, 뎅강. 피가 솟구치는데, 무슨 조화인지, 장미덩쿨이 피어났대. 그건 조화가 아니라, 생화였겠지?ㅋ 의기양양한 호르디가, 가장 어여쁜 장미를 꺾어 공주에게 건넸다는군. 공주는 아마 뿅 갔겠지? 하하.

그 호르디의 생일이 4월23일이었다네. 중세 때부터 이날 장미축제를 열었대. '상트 호르디(세인트 조지) 축일'이라고 부르면서, 장미꽃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그런 날로 말이야.
캬~ 멋지지? "장미를 받아주오~♪" 하면서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 어때, 연상이 돼?^.^

그런데, 그 호르디 생일! 1616년의 그날, 세계적인 대문호 2명이 눈을 감은거 있지.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 여담이지만, 셰익스피어가 글쓰기를 통해 부와 명성을 누린 반면, 세르반테스는 글쓰기로 생계유지가 안돼 줄곧 빈궁한 생활에 쪼들렸다고 해. 그래서 '돈키호테'는 좀더 불온하고, 용감한 캐릭터가 될 수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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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 죽은 날짜에 대한 이견도 있어.
분명, 두 문호의 서거는 1616년 4월23일 같은 날이었지만, 당시 영국(셰익스피어)과 에스파니아(세르반테스)가 서로 다른 달력을 썼다는 것. 영국은 율리우스력을, 에스파냐는 그레고리력을. 지금 우리가 쓰는 건 그레고리력이구.
≪타임머신 없는 시간여행≫을 보면, 교황청에서 1582년 그레고리력으로 바꾸는 칙령을 내리면서, 열흘을 증발시켰어. 그렇게 두 나라가 다른 달력을 썼으니, 두 문호의 서거날에는 차이가 있다는 말씀. 세르반테스가 먼저 바이바이 한 거지.
뭐, 그래도 사람들은 편의에 따라, 두 대문호 서거날이 같다고 해석하기로 암묵적 합의가 됐나봐.

그런 연유로, 에스파냐의 카탈루냐 지방에선 '상트 호르디' 축일에 남녀가 책과 장미를 주고받는 전통이 있었는데, 1926년부터 본격적인 지역 축제로 자리잡았대. 요즘은 굳이 남녀 가르지 않고, 책읽는 사람에게 장미를 선물하거나, 책을 사면 장미를 딸려주기도 하지. 행사도 많아.
그래도 난 너에게 책을 받고 싶어.*^.^* 너의 반짝반짝 빛나는 지성으로 골라준 책을 말이야.
사실, 네가 나보다 책을 훨씬 더 좋아하고, 많이 읽었으니까.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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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언젠가 나, 스페인 특히 바르셀로나를 발딛고 싶어. '책과 장미의 날'에 맞춰서 말야.
스페인은 책의 날 기원국이기도 하고, 그날 바르셀르나의 가장 서민적인 거리라는 람블라(Rambla) 거리엔 온통 책과 장미의 향기가 진동을 한다지? 큰 거리 전체가, 중고 및 새 책들로 가득한 벼룩시장이 된다니. 아, 상상만해도 므훗하지 않아?
이날 하루 바르셀로나에선, 400만 송이가 넘는 장미, 50만권이 넘는 책이 팔려나간다네. 우와. 수봉 언니의 '백만송이 장미'도 무색할 지경이야.

몇년 전 이날, 선배 몇명과의 술자리에서 '책과 장미의 날'에 대한 얘길해줬더니, 술자리가 끊어지더라구. 왜냐고?
장미 사들고 집에 들어가야겠다며 1차로 술자리 끝내고 간다지 뭐야. 췟. 후배보다는 아내지. 아내 없는 자의 설움이었달까.
그래서, 이후론 이날에 술자리가 있어도 이 얘길 안해.ㅎㅎ 나, 잘하는 거 맞아?^^;

어쩌면, 부정확한 정보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건 그래.
음, 너에게 이 책을 선물받고 싶다. 넌 없지만...
다음달, 68혁명이 발화됐던 달을 앞두고, 60년대의 그 용광로 같은 어떤 혁명과 불온함을 기록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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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난 아름다운 너에게, 이 장미를. 장미보다 아름다운 너에게.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떨어지는, 우리의 외로움을 달랜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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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우린, 둘다 붉구나. 책도 장미도.
널 향한 내 마음도 그랬어. 알고 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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