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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아니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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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친구가 문자를 보내왔다. 

첫사랑이 결혼한다고 알려왔다며, 인연은 현실과 일치하지 않더라, 고 회한 섞인 넋두리를 털어놓았다. 자기는 먼저 (다른 사람과) 결혼한 주제에 그녀가 결혼한다고 마음이 흔들리다니, 뭔 도둑놈 심보냐고 놀려댔다. 허나 그들의 사랑했던 날을 알고 있던 나는 문자에 꾹꾹 눌러 담은 녀석의 마음을 엿봤다. 흔들리는 마음, 그건 죄가 아니다. 누구는 결혼하고 누구는 결혼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불공평하니 그렇지 않니, 저울질할 것은 아니지 않은가. 녀석은 흔들리는 마음의 실체를 잘 모르겠다고 했다. 마음이 허한 것도 같고 이상하다고도 했다. 그럴 만도 했다. 녀석에겐 결정적인 순간마다 어그러지는 인연이었던 그 사랑, 첫사랑이었다. 물론 그 기억, 첫사랑이라는 이유로 미화되거나 왜곡되기 일쑤임도 분명했지만. 녀석과 술 한 잔 마셨다. 물었다. 마음이 아파? 흔들리는 거야? 진짜 첫사랑이야?


사람은 처음 하는 것에 의미를 붙이고 오래도록 기억하(고자 하)는 습성이 있다. 

‘첫’이라는 관형사를 붙여. 시간이 흐르면서 ‘첫’은 모든 것을 천천히 삼킨다. 세상의 모든 ‘첫’은 아련해지고 애틋해진다. 첫사랑은 그 중에서도 으뜸이다. 그런데 한 결혼정보회사가 결혼하지 않은 351명에게 첫사랑에 대해 물었다. ‘첫사랑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가장 많은 답변(62%)은 ‘가장 많이 좋아한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첫’에서 흔히 생각하는 ‘가장 처음 좋아한 사람’을 답변한 사람은? 25%였다. ‘가장 아프게 좋아한 사람’을 첫사랑으로 생각하는 응답도 10% 있었다. 첫사랑은 따라서 (각자의) 해석이다.

 

문제는, 첫사랑은 과거로만 끝나지 않는다. 

현재와 교류하거나 영향을 미친다. 좋거나 나쁘거나, 현재진행형이다. 요절이 슬픈 것은 열어볼 수 없는 미래의 어떤 가능성 때문이다. ‘깨진’ 첫사랑도 마찬가지다. 첫사랑의 요절과도 같은 그것은 영원히 응답을 기대할 수 없는 기다림이다. 쉽게 잊히지 않는 사건이다. 첫사랑이 현재의 사랑이라면 다른 문제이겠으나, ‘첫사랑은 깨진다’는 속설처럼 실현되지 못하고 좌절된 사건이 첫사랑이다. 그래서 첫사랑은 역설적으로 그 후로도 오랫동안, 생의 시간을 지배하거나 향을 남긴다.


첫사랑처럼 광범위한 사회 공통의 경험도 드물다. 

대부분 한 번쯤 겪고 앓는다. 그리고 신성시된다. 과거 ‘순수한 한때’를 상징하는 시공간으로 특권을 부여받는다. ‘그때와 달리’ 세속의 때도 적당히 묻고 속물이 돼 버린 지금, 첫사랑은 ‘잃어버린 순수를 품고 있었던 시절’을 상징한다. 현재의 비루함이나 궁상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종교적 체험이다. 그땐 그랬지, 라고 우리는 과거는 물론 첫사랑을 미화한다.


술 한 잔하면서 다시 확인하니 친구의 그 첫사랑, ‘처음’은 아니었다. 

가장 아프게 사랑한 기억이라고 했다. 뭔가 아쉬움이 남았고 그것이 마음 한 구석에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이젠 마음에서 보낼 수 있겠다고 했다. 첫사랑 장례식! 다만 그것이 왜 결혼 때문이어야 하는지, 나는 할 말이 있었으나 녀석 앞에서 꺼내진 않았다. 애도는 녀석의 몫으로 남길 뿐.


첫사랑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흔들리게 하는 마술 같은 단어다. 

세상에 단 하나여야만 할 것 같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존재. 나는 그것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내가 하는 모든 사랑을 첫사랑이라고 명명했다. 그 사람과 내가 하는 처음 사랑이니까, 첫사랑. 그러니까 나는 첫사랑‘들’을 겪었다. 따라서 첫사랑이라고 특별할 것도, 유난스러울 것도 없다. 오래 전,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2003)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나는 첫사랑을 억지로 ‘사수’할 생각이 없다. 


첫사랑은 사수보다 (마음의) 장례를 치르는 것이 중요하다. 

작가 정여울(《마음의 서재》)의 말을 곱씹는 이유다. “모든 첫사랑은 저마다의 가슴 속에서 한 번씩은 죽는다. 안타깝게 끝나버린 첫사랑을 위한 가상의 장례식을 치러야만, 첫사랑은 매번 ‘그 다음 사랑’과의 고통스러운 비교대상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평생 첫사랑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은, 자신의 내면에서 첫사랑의 애도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세상 거의 모든 이들에게 그토록 넓은 오지랖을 자랑하는 첫사랑. 

피할 수는 없다. 다만 첫사랑이 끝난 뒤, 꼬리를 잘 잘라야 한다. 만남이 우연에 의해 조작된다면 이별은 의지가 작동한다. 진즉 끝냈어야 할 것을 질질 끄는 것은 나쁘다. 첫사랑과의 이별 역시 마찬가지. 사랑하는 동안 다 쏟아야 한다. 어설프게 꼬리를 남기고 마는 사랑은 나쁘다. “가장 슬픈 이별도 나쁜 지속보다는 낫다”는 말을 긍정하는 이유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널 사랑하지 않아. 기억할 뿐이야. 굿바이, 내 첫사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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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서울 항동의 푸른수목원, 해 지는 노을이 끝내줍니다. 그 노을빛으로 이 가을을 채우기에 충분하다 싶을 정도죠. 그런 곳에서, 지금은 세상에 없는 정은임 아나운서를 떠올리는 '기억의 숲'이 무성하게 잎을 피웁니다.


기억의 숲이 무성하게 잎을 피울 무대는 단촐하며 정든님 정은임을 이야기하기 딱 좋아요. 크거나 거대하지 않습니다. 조곤조곤 속삭이기 좋은 무대와 넓지 않은 풀밭.



19일(일) 오후 5시 푸른수목원에서 정은임과 <정은임의 FM영화음악>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눕니다. 정든님 정은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함께, 정도 나누고 기억과 추억을 공유합니다.


더불어숲 축제 전체를 연출하는 장주원 PD님의 요청으로 <기억의 숲 : 제 목소리 들리세요?_정은임의 FM영화음악>을 기획하고 진행합니다. 정은임을 기억하는, 매년 정은임 추모바자회를 여는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기억의 숲: 제 목소리 들리세요?>은 영화와 음악 그리고 사람과 사회를 담았던 <정은임의 FM영화음악>(이하 <정영음>)을 기억하고 현재에 맞춰 재구성하는 시간입니다. 10년 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정은임 아나운서의 10주기, 46번째 생일(10월 13일)을 맞아 정은임이 누구인지, 정은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왜 그를 여전히 품고 있는지, <정영음>의 현재적 의미 등을 공유합니다.


1부 순서에는 ‘우리 마음의 공동체, 느낌의 공동체 <정영음> 그리고 정은임에 대하여’ 노래하고 이야기합니다. 왜 우리는 정은임과 <정영음>이라는 감성 브랜드를 품고 있는지, 90년대 정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감성브랜드의 관점으로 [정영음, 정은임]을 말합니다.


알다시피, <정영음>은 단순히 영화음악을 전달하는 기능으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청춘의 감수성을 짚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도 했습니다.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건넸다기보다 시대에 필요한 가치와 의미를 넌지시 생각해보게끔 만들었습니다.


2부에는 '우리 목소리 들리세요? 정은임을 기억하는 현재에 대하여' 노래하고 이야기합니다. 정은임과 <정영음>은 여전히 우리 마음에 살아 있음을 확인시키는 자리가 될 겁니다. 지금 왜 다시 '정은임'이며 <정영음>을 떠올리는지, 그 현재성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우주시 하늘동의 은임씨, 듣고 계세요?"라는 제목으로, 제가 은임 누나에게 보내는 연서를 낭독할 예정입니다. <정영음>에 단 한 번도 보내지 못한 엽서를 아주 늦게 보내는 셈이라고나 할까요.


그렇게 정은임을 말하고, 기억하며, 그리워하는 시간입니다. 푸른수목원으로 오세요.



<정은임의 FM영화음악> 팟캐스트 => http://www.podbbang.com/ch/1813


오시는 길 : 성공회대에서 가깝습니다. 푸른수목원 오는 길입니다.

http://parks.seoul.go.kr/tem…/common/park_info/location.jsp…


저녁 무렵 되면 추울 수 있으니, 아니 분명 추울꼬야. 옷 껴입고 오세효!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2014.09.28 17:29 메종드 쭌/무비일락


<슬로우 비디오>(http://슬로우비디오.kr)에서 혹했던 장면이 있었다. 


마을버스가 바다로 향한다. 상상해봤나? 늘 좁은 골목길과 마을을 누비던 버스가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는 모습. 붕붕붕, 꼬마자동차가 달린다~ 마을버스 붕붕. 그 여정에서 마을버스가 얼마나 즐거워하고 있을지 감히 모르지만, 느껴진다. 



<슬로우 비디오>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 봉수미(남상미)의 소원을 들어주고자 여장부(차태현)가 마을버스 운전기사 상만(김강현 분)에게 부탁한다. 아니 협박에 가깝지만.ㅋ 상만이 운전대 방향을 달리한다. 늘 가던 길에서 이탈한다. 아니, 자유를 찾아나서 본다. 


내가 한 번씩 꿈꾸던 장면이었다. 버스가 늘 다니던 노선을 벗어나 다른 어딘가로 떠나는 순간. 버스에 타고 있던 모두들, '벙' 찌면서도 모두 환호성을 지르는 거지. 그렇게 버스는 달리고, 우리 영혼도 즐거워진다. <슬로우 비디오>에서도 외로운 영혼들이 마을버스 한 자리씩 앉아 바다를 보러 간다. 고속도로를 타고 달린다. 현실에선 불가능한, 있을 수 없는 장면이라고 투덜거릴 수도 있겠다. 


나는 이 장면들이 그렇게 좋았다. 그러니 고속버스 톨게이트에서 마을버스를 잡고 가지 못한다고 우겨대는 경찰이 그렇게 야속할 수 없었다. 결국 바다를 꿈꾸던 마을버스는 꿈을 접고 다시 돌아오지만, 그것으로도 나쁘지 않았다. 바다를 향했으니까! 


마을버스도 어쩌면 그런 순간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늘 다니던 출근길에서 방향을 틀어 일상과 전혀 상관없는 곳으로 가는 것을 꿈꾸듯, 마을버스도 늘 다니는 골목길이 지겨운 날이 있지 않을까. <슬로우 비디오>가 일상의 다른 의미를 건네고 싶었다면, '느림(슬로우)'을 콘셉트로 잡을 것이 아니라 '다르게 보기'로 잡아줬으면 어땠을까. 다르게 보기로 잡았었다고? 그럼 연출력이 아쉬운 거고! 



다소 안이한 만듦새였다. 기대가 있었던 만큼 영화가 끝난 직후 약간 아쉬웠다. <헬로우 고스트>의 (흥행) 성공이 독이 된 것일까. 이야기는 엉거주춤했고, 의미 전달은 미흡했다. 로맨스는 애틋했으나 뭔가 부족한 차림새였다. 차태현의 연기는 선글라스 때문이었을까, 그저 그랬고, 감독의 연출도 밍숭맹숭했다. <헬로우 고스트>의 성공 방정식을 별다른 변주 없이 가져온 듯해서, 아쉬운 점이 많이 남는다. 


바쁘게만 흘러가는 세상에 느리게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되짚어보겠다는 의도, 좋다. 그래서 꺼냈을 동체시력. 남들이 그냥 지나치는 순간까지도 '슬로우 비디오'처럼 자세하게 볼 수 있는 시력을 가진 사람, 좋다. 대부분의 사람이 바쁜 일상에서 놓치는 것들을 그는 볼 수 있을 테니, '빨리빨리'가 아닌 '느리게'에서 만날 수 있는 삶의 진경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있었다. 



그러나 의도나 등장인물, 소재가 좋다고 다 잘 풀리라는 법은 없다. 바쁜 현대인의 삶에 쉼표가 되어주고 싶다는 영화의 카피는 마케팅적인 수사 같다. 이야기가 더디고 서툴다. 쉬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 극중 상황은 납득하기 힘들 때도 있다.  


동체시력을 지녔다는 이유로 따돌림 당하는 여장부(차태현 분)가 가족의 보살핌도 없이 칩거 생활만 했던 것도 이상하다.(그들 나름 화목한 가정임을 초반부에 보여주고 여장부의 성격이 괴팍한 것도 아니다!) 드라마에 빠져 있던 여장부가 "진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가 궁금"해서 나름 큰 결심을 하고 나온 바깥 세상 적응기도 뭔가 매끄럽지 못하다. 물론 상영 시간 때문에 가지를 치면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유추하지만 감정이입에 어려움을 겪었다.  



또 여장부가 CCTV 관제센터에서 일을 하면서 한 사람 뒤만 졸졸 쫓는 것은 다른 의미에선 스토킹이 될 수 있다. 좋아한다고 그것이 용납될 수 있는가. 스토커들도 '좋아해서'라는 이유를 달지 않던가. 여장부의 사랑이 순수하고 애틋하다손, 공공의 안전을 위한 CCTV를 사유화하는 것은 지나치다. 나중에 그것이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자를 잡는 장면으로까지 이어진다지만, <슬로우 비디오>는 비약으로 극을 꾸리면서 상황 몰입을 강요한다. 


아예 영화가 판타지였으면 모를까, 판타지도 아니면서 왜 무리수를 두는 것인지 다소 불편했다. CCTV에 나오는 사람들 모두가 주인공이요, 200편의 드라마라고 하지만, 여장부나 <슬로우 비디오>는 타인의 드라마에는 관심이 없어 봰다. 주인공들의 드라마에도 뭔가 빠져 있는데, 조연이라고 오죽하려고. 특히 석의사(고창석 분)와 심(진경 분)은 왜 굳이 출연했는지 의아하다. 그들의 연기가 나빠서가 아니라 인물들의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아서 안타까워서 그렇다. 충분히 좋은 연기로 활용할 수 있는 배우들이었는데 말이다. 



여장부가 진짜 느리게 흐르는 삶을 사는 것 같지도 않다. 사회 적응이 서툴고 느릴 뿐이다. 영화에서 눈물이 흐를 만한 지점은 분명히 있다. 두 사람의 로맨스가 그렇다. 그런데 첫사랑 봉수미(남상미 분)와 애틋하게 만나기 하기 위한 장치들은 서툴고 작위적이다. 사채 빚에 쫓기는 것으로 설정된 봉수미의 상황도 너무 안이하게 다뤘다. 용역 깡패들이 한 번 헤집고 가고 울고불고 곤경에 처한 봉수미가 나오면 그것으로 끝? 연출의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슬로우 비디오>는 욕만 들어먹을 영화인가. 그렇지 않다. 현실 정합성이나 상황적 논리성을 이래저래 따지고 들었지만, 논리적으로만 영화를 보는 것은 아니다. 나름 미덕도 갖고 있다. 차태현의 연기는 믿고 볼 만하다. 차태현을 좋아하고, 찬바람이 불 무렵, 애틋한 로맨스가 가미된 잔잔하고 심심한 영화를 보고 싶다면 <슬로우 비디오>는 10월의 추천영화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아울러, 차태현은 늘 믿고 볼 수 있는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 맞다. 그럼에도 선글라스를 끼운 것은 아쉽다. <슬로우 비디오>를 보면서 느낀 것인데, 차태현 연기의 일정 부분은 그의 눈에 기대고 있다는 것을 알겠다. 그런 그에게 선글라스를 끼우다니, 자연 연기도 안 살고, 영화도 살지 못했다. 감독의 책임이다. 동체시력이 문제였던 건가?ㅋ 


남상미의 연기는 상큼하다. 영화 출연이 잦은 배우는 아닌데, 모처럼 출연한 영화에서 나름 존재감을 드러낸다. 아, 남상미를 좋아한다면 이 영화를 봐도 좋겠다. 추천한다. 


사랑스러운 배우다. 만세. 나도 따라 만세를 하고 싶다. 파마 머리도 잘 어울린다.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아름다운 사람, 정은임. 

그 어느 때보다 말랑말랑한 시기인 10~20대, 
누군가로부터 받은 '세례'가 한 사람의 평생을 지배하기도 한다.

10년이 흘렀다. 
정든님으로부터 이 세계와 영화, 음악 등에 대해 세례를 받았던 사람들은 그녀를 기억하기 위해 매년 추모바자회를 연다. 그게 올해는 오늘(8월 3일)이다. 8월 4일 기일을 하루 앞두고 1년에 한 번 다시 만났다. 

그리고 지금, 아름다운가게 서울역점에서 10주기 추모바자회를 열고 있다. 재밌고 흥미로운 일이다. 그녀가 떠난 10년, 여전히 우리는 1년에 한 번 이렇게 만나고 정든님 정은임을 그리워한다. 우리의 삶도 그렇게 흐르고 있다.

오늘 시간이 허락하거들랑, 아름다운가게 서울역점에 와서 정은임의 목소리와 모습을 보고 가는 건 어떻겠나. 물론 당신이 정은임의 세례를 받았다면 말이다. 

그리고, 
10년 전 울면서 썼던 정은임 추모칼럼 : http://swingboy.net/27



[행사자료]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는 아름다운 하루

“누나처럼 편한 존재였다. 우리의 고민이나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잘 들어주던 사람이었다. 그녀가 없다는 사실을 아직 실감 못하겠다. 여전히 그녀는 우리 곁에서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다.”(정대철님)

“벌써 라고 생각될 정도로 시간이 빨리 흘렀다. 방송을 들으며 사춘기를 보냈고, 아직도 정든님(정은임)을 그리워하며 그때의 방송을 들으며 내 일기장 속의 영화 주인공들을 상상해보기도 한다. 정든님을 추모하고, 정든님을 여전히 좋아하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다행일 수 있게 끝까지 우리를 한자리로 뭉치게 해주는 정든님, 고맙고 그립다.”(박유정님)

지난 2004년 8월4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정은임 아나운서. 10년 전 그녀는 떠났지만, 마음에서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8월4일(일) 아름다운가게 서울역점에서 추모바자회를 연다.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아름다운가게가 함께하는 아름다운 하루’라는 제목으로 여는 10주기 행사는 ‘정은임 아나운서 팬페이지’(www.worldost.com)의 회원들이 ‘아름다운가게’(www.beautifulstore.org)와 함께 한다. 

이들은 매년 정은임 아나운서 기일 즈음에 맞춰 추모바자회를 열고 있다. 정은임 아나운서가 진행했던 <FM 영화음악> 등을 통해 영화와 세상, 그리고 삶을 형성했던 것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다. 그녀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서는 기억을 지속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 기억을 지속하기 위해, 그 목소리, 그 얼굴, 그 사람을 추모하기 위해 매년 ‘아름다운 하루’를 함께 보내고 있다. 

바자회는 정은임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기부와 참여로 이뤄진다. 행사 당일 아름다운가게 서울역점에 모여 봉사활동도 하고 수집된 물품을 판매한다.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수익금은 아름다운가게에 전액 기부, 소외아동지원 금으로 사용된다. 

다음은 10주기 추모바자회 내용이다. 

1. 행사일 : 2014년 8월3일 일요일 오전 11시~오후 6시
2. 행사장소 : 아름다운가게 서울역점 (서울역 14번 출구, 서울 용산구 동자동 43-54 1층, 02-363-8778) 

[관련 사이트]
http://www.worldost.com/ 정은임 추모사이트 ‘정든님’
http://www.cyworld.com/bastian2004 정은임 미니홈피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역사가 생긴 후로 한국에 모텔이 이렇게 많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요즘 새로 짓고 있는 건물의 많은 수가 모텔 등과 같은 숙박업소다. 

주로 움직이는 동선에서도 숙박업소 몇 개가 올라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니.


내 어릴 적에는 모텔이라는 것이 없었다. 호텔, 여관, 여인숙이었다. 

그랬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많던 여관, 여인숙은 어디로 갔을까. 모텔이 그 자리를 메우고 훨씬 더 많은 수의 모텔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그야말로 모텔천국. 


MOTEL. 줄여서 'MT'라고도 부르는 그것. 

모텔의 본디 뜻을 따라가면 자동차 여행자가 숙박하는 장소다. MOtor+hoTEL. 

모텔들이 주차공간을 널찍하게 마련한 것이 그런 뜻에서 비롯됐다...고 말하면 뻥이고,

그저 차를 갖고 오는 손님들을 받기 위함일 뿐이다. 


뭐, 모텔의 사회학을 쓰자는 그런 어설픈 의도는 아니다.

친구들과 술에 쩔어 술 한 잔 더 하자며 들어갔던 대학신입생절부터 이런저런 MT를 다녀봤다. (성인이 MT 가는 건 나쁜 일이 아닌 건 알지?ㅋㅋ MT 가서 의외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MT 이야기를 쓰는 것 역시 처음인데, 

태어나 처음으로 MT 리뷰어로 꼽혀서 '강동지역 최고의 호텔'이라는 수식어를 내건 IMT를 찾았다. 순전히 리뷰를 쓰기 위해서. 강동(구)에 별로 다녀본 적이 없는 나로선 새로운 세계였던 셈인데, 길동역 부근은 아예 처음이다. 늘 가던 동네와 다른 풍경의 그곳은 그 덕분에 새롭고, 어딘가 먼 곳으로 떠난 느낌도 줬다. 어느 중소도시에 와 있는 느낌이랄까. 그게 우선 신선하고 좋았다. 


더 좋은 것이 있었다. 무료니까, 그냥 일반실을 주겠거니 했다. 웬걸, VVIP나 VIP실을 제공해 준다는데, 하필 가는 날이 장날이어서 그건 예약 만땅이고, 특실을 주겠단다. 그게 어딘가 싶어서, 별 기대없이 발을 내디뎠다. 허거걱~ 



아니, 왜 이렇게 좋아? @,@

입이 떡 벌어졌다. 우선 방도 널찍하니 좋고, 침대도 우와 넓다! 침대 맡 너머에는 휴식공간과 욕조가 있는데, 와우~ 내가 너무 좁디 좁은 모텔만 다닌 것인가!ㅋ


 

물론 이렇게 큰방이나 VIP룸을 안 가본 것은 아닌데, 

그곳보다 방의 구조나 배치가 더 좋았다. 마음을 좀 더 안정적인 느낌을 갖게 하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생목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조목이어도 있으니 괜찮~다~. 


TV도 적당한 위치다. 침대에서도 휴식공간이나 욕조에서도 볼 수 있게끔 만들어놨다.

방은 그렇게 마음에 들었다. 


출출한 배를 움켜쥐고 MT를 나오니 인근이 바로 먹거리골목이다. 강동의 먹거리집은 또 독특한 개성이 있었다. 일일이 맛 본 것은 아니니 맛을 얘기할 바는 아니고, 다른 먹거리골목과 살짝 다른 공간적 특징이 있었다. 퓨전 선술집이 종종 눈에 띠었는데, 식욕을 부르는 풍경이다.   


내 다니는 동선이 지겹고, 어딘가 낯선 풍경을 만나고 싶을 때 강동을 한 번씩 찾을 생각이다.  그리고 뭣보다 IMT, 마음에 들었다. IMT는 아마도 I'm MoTel의 뜻이 아닐까 혼자 유추해봤는데, 작명 센스 나쁘지 않다. 나는 모텔이다. 자신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씩씩한 자신감. 


사진이 흐릿하고 나쁜 건 어쩔 수 없다. 사진기를 따로 들고가지 못하다보니, 스마트폰도 아닌 내 피처폰이 담을 수 있는 최상의 것이었다. 실제로 IMT의 방은 훨씬 더 좋고 넉넉하다. 내가 모텔이라고 내세우는 자신감을 믿어도 된다! 


모텔을 좋은 곳에 가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실, 새삼 깨달았다. 

문득 모텔의 사회학을 쓴 글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모텔의 변천사와 진화를 적은 글이 있다면 한 번 만나보고 싶어졌다. 모텔에는 과연 한국인의 어떤 각종 욕망이 묻어 있을까. 상당히 흥미로운 텍스트일 것 같다. 모텔의 사회학을 연구하는 학자가 과연 있을지는 모르겠다. 모텔에 근무하거나 운영하는 분들이 그런 글을 쓰고 계시지 않을까. 그것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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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TAG imt, 강동, 길동

<그녀를 믿지 마세요>. 

같은 제목의 영화가 있었다. 김하늘과 강동원. 당시 '그녀'는 사기꾼이었다. 그러다 순박하고 착한 청년과 그 가족을 만나 개과천선한다. 재미있는 로맨틱코미디 영화였다. 김하늘을 '로코의 여왕'으로 자리매김하도록 만든 영화 중의 하나.  


그러나 대학로 추천연극 중의 하나인 <그녀를 믿지 마세요>는 영화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내용과 결을 놓고 보자면, <시라노; 연애조작단>이나 뮤지컬과 영화로 만들어진 <김종욱 찾기>와 맥이 닿는다. 



맞다. 이 연극은 '짝짓기'를 위한 고군분투기다. 짝사랑을 내사랑으로 만들고 싶은 한 여성이 한바탕 소동을 거쳐 연애 에이전시를 찾아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배우들의 적절한 슬랩스틱이 초반부터 극에 대한 흥미를 복돋는다. 


귀엽고 상큼하지만 허당매력의 의뢰인 김준희(홍바다). 그녀의 사랑이 당연히 이뤄질 것이다. 로코 연극, 해피엔딩을 마다할 이유는 없을 테고. 관건은 그 인연의 씨줄과 날줄을 얼마나 촘촘하게 엮어내는가에 달려 있다. 그녀가 찍은 짝사랑의 대상은 병원 인테리어디자이너 차명석(한재웅)이다. 잘 생기고 간지 좔좔. 카사노바 풍의 좀 느끼한 인물이다. 배우 이기우 좀 닮아주시고. 뭐 그래도 김준희가 좋다니까!ㅋ 


그리고 의뢰인의 명을 받들어 각본을 짜서 비밀작전을 수행하듯 사랑을 연결하는 연애 에이전시 로맨틱컴퍼니. 이 회사의 대표 강태범(홍성민)과 조력자 고대로(김도겸)가 오작교 노릇을 해보자고 끼어든다. 


연극 <그녀를 믿지 마세요>는 시종일관 재미를 유지한다. 가장 큰 이유는 캐릭터 간의 차별성 덕분이다. 차명석을 둘러싸고 각기 다른 성격의 세 사람이 빚어내는 좌충우돌이 조화를 이룬다. 진지하고 까칠한 차명석에 반해 그의 수족 역할을 하는 고대로는 그야말로 천방지축이다. 더구나 고대로를 연기한 김도겸은 관객들의 혼을 빼놓을 만큼 종횡무진이다. 오버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주 적절한 양념으로 극의 간을 제대로 맞춰놓는다. 아울러 차명석을 맡은 홍성민의 중저음도 그의 캐릭터를 강화하는데 일조한다. 진지함이 목소리를 타고 뚝뚝 묻어난다. 



그 와중에 서툴고 순수한 김준희의 야생마 같은 캐릭터는 사랑의 감정을 제대로 실어나른다. 사랑은 본디 이성적이라기보다 감정과 감성에 의해 좌우되는 그런 것이잖나. 


캐릭터 간의 앙상블이 극을 흥미롭게 이끄는 한편, 사랑에 대한 전형성 또한 관객들에겐 안전한 장치다. 즉, 부담 없이 극에 빠져들게끔 만드는 요인이다. 사랑의 아포리즘도 빠지지 않는다. "생각이 길어지면 용기는 사라져요. 지금 당장 고백하세요." 그래, 생각은 용기와 반비례하는지도 모른다. 사랑한다면, 지금. 그리고 옆에 있는 그 사람을 잘 들여다보길. 


무엇보다 마지막에 드러나는 놀라운 반전. 오호~ '그녀를 믿지 마세요'라는 작명의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고대로의 반전 또한 절묘하고. 이 반전의 풍경이 작품을 더욱 빛나게 만든다.  

  

헌데, 그 재미에도 불구하고, '연애 에이전시'가 사랑을 연결할 수밖에 없는 풍경이 씁쓸하다. 이는 연애불능시대를 대변한다. 연애를 할 줄 모른다는 것은 결국 관계를 잘 맺지 못한다는 뜻이다. 제도권 교육이 관계(이별 또한 관계의 일부다!)를 어떻게 잘 맺을 수 있는지를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국영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 우정, 이별 등이다. 살면서 더 필요하고 주체적으로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야 할 것들이다. 


"완벽한 사랑의 타이밍 당신에게도 만들어드립니다"라는 카피가 그래서 안타까웠다. 사랑은 온전히 나와 그 사람, 당사자들의 것임에도 누군가 그것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 말이다. 사랑이 주체적이지 못하다면, 우리는 무엇을 주체적으로 할 것인가. 


물론 사랑을 위해 주변의 도움이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각본을 짜서 비밀 공작을 펼쳐야만 사랑이 가능해지는 시대라니, 아쉽고 섬뜩하지 않나? 더 나아가 사랑에도 국정원이 필요한 시대가 오는 건 아닐까? 국정원이 '국가조작원'이 됐듯, 연애도 '연애조작단'이 창궐한다면? 끔찍하다. 모든 사랑에 조작을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때부터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이다.     


잡설은 이것으로 마치고, 데이트용으로 추천한다. 공연히 나처럼 연애 에이전시의 사회적 조건까지 생각한다면 살짝 복잡해지겠지만. 대학로 공연장 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혜화역 1번 출구에서 3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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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7 00:38 할말있 수다~

지금-여기의 먹을거리 문제, 안녕들 하십니까?

삶과먹을거리 협동조합 끼니황교익 이사장 인터뷰


 


지난 1221, 서울 서교동에 자리한 수운잡방(需雲雜方)’은 왁자지껄했다. 탁탁탁탁, 음식 만드는 소리가 울렸고, 후각과 촉각을 현혹시키는 음식 향이 퍼졌다. 뭣보다 먹을거리 분야에서 난다 긴다 하는 선수(!)들이 모였다. 라인업(?)은 화려했다. 동지팥죽과 동치미, 동경식 김밥, 제철 방어회, 남원 흑돼지 족발 수육, 석화(), 부산에서 당일 생산된 어묵과 스지, 마을에서 당일 생산된 두부, 국산호두·우리밀·국산팥앙금으로 만든 광덕 호두과자, 공정한 과정을 거친 초콜릿, 밀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초코 브라우니, (호산춘과 화개장터 무감미료막걸리) 등 푸짐한 상이 차려졌다. 군침 가득이다, 꿀꺽.

 

고은정 약선요리연구가, 황교익 맛칼럼니스트, 김경애 요리사, 박상현 맛칼럼니스트, 고영주 초콜라티에, 정은정 사회학연구가, 이호준 <식객>스토리작가, 박성경 도서출판 따비 대표 등 스무 명 이상의 조합원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다. “먹는 것이 곧 사람인 요리하는 인간, ‘호모 코쿠엔스(Homo coquens)’의 잔치다.

 

삶과먹을거리협동조합 끼니(이하 협동조합 끼니, 이사장 황교익)’의 잔치였다. 이들의 대표브랜드 맛콘서트(이하 맛콘)’의 한 해를 마무리하는 행사를 열었고, 이어 조합원끼리 송년 모임도 가졌다. 호모 코쿠엔스의 모임에 맛있는 음식이 빠질 수 없는 노릇. 뭣보다 음식은 개인과 사회 집단의 정체성을 이루는 핵심 요소가 아니던가. 사실 어떻게, 무엇을 먹느냐는 본능에 따르거나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문화적인 것이다. 먹을거리를 허투루 다룰 없는 이유다


그러니까, 협동조합 끼니는 이렇게 묻는다고 말할 수 있겠다.

 당신의 먹을거리는 안녕하십니까?”



 

이날, 황교익 이사장을 만났다. 지금-여기의 먹을거리는 다시 사유해야 할 사회적인 문제다. 입으로 들어간다고 모든 것이 먹을거리는 아니다.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해서 먹는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많은 나라에서 식품의 생산, 유통, 소매는 대기업, 즉 식품복합체가 통제하고 있다. 한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그 복합체의 힘은 상상 이상이다. 우리의 입맛은 그들에 의해 길들여지고 있다. 식사보다 사료라는 표현이 더 적합한 이유다.


지금 한국의 먹을거리 구조와 문화, 어떻게 보고 있나? 협동조합 끼니는 지금 한국의 먹을거리 구조, 식품산업 등에 어떤 문제 제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 듣고 싶다.

 

맛있는 음식에 대한 열망은 인간의 본능이다. 불행하게도, 한민족은 맛있는 음식을 먹어본 경험이 없다. 늘 굶주렸다. 끼니를 잇기도 어려운데 미식은 꿈꿀 수도 없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야 먹을거리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이는 오천 년 역사에서 처음의 일이다. 그럼에도 한민족에게 유구한 미식의 역사가 있다는 착각이 만연하고 있다. 이 땅에 존재하였던 왕조국가의 극소수 왕족과 일부 관료계급의 기록에서 미식의 흔적을 찾고 있는 것이다. 한민족을 먹여 살렸던 이들은 생산자 농민이다. 이들이 한반도를 실제로 경영하였던 계급이다. 이들에게서 먹을거리를 착취하였던 극소수 계급의 특별난 기호가 한민족의 음식문화에 덧칠되는 것은 이 땅에 살았던 수많은 민중에 대한 모독이다. 못 먹고 살았어도 그게 이 땅에 살았던 대부분 민중의 일이었으면 우리의 역사로 받아들여야 한다. 한민족에게 미식의 역사가 없었음을 고백하여야 한다. 불행하였어도, 우리의 역사이다.

 

우리는 지금 유사 이래 가장 많은 먹을거리를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밥상 앞에서 늘 불안해하고, 배불리 먹으면서도 정신적 허기를 호소한다. 배만 불린다고 행복해지지 않는다. 협동조합 끼니는 한국인의 먹을거리가 분명한 실체를 드러낼 수 있도록 조작된 전통과 왜곡된 미각 정보를 고발하는 일에 역량을 집중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먹을거리의 생산과 가공, 유통, 소비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양심에 따라 대중에게 의견을 내놓을 수 있는 마당을 마련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한국의 노동자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먹을거리를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지 모색할 것이다. 밥상 앞에서 모든 한국인이 행복해질 수 있는 미래를 꿈꿀 것이다.”

 

 

그렇다. 인류가 풍요롭게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100년이 채 안 된다. 인류문명의 탄생 이래, 풍족한 음식과 맛으로 음식을 먹고 맛있는 것을 찾아다닌 시대는 더 짧다. 한국만 놓고 보면, 이는 훨씬 더 줄어들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먹을거리가 풍족해지면서 우리는 생각하지 않게 됐다. 배부른 돼지가 된 것이다. 흔히 하는 착각이 있다. 우리를 먹이는 것은 자연이라는 것. 하지만 우리를 먹이는 것은 산업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 대부분 공장에서 나온다.

 


지금-여기의 먹을거리 구조를 축약하자면, ‘풍성한 먹거리, 비정한 식탁이라는 표현도 가능하지 싶다. 이에 외국에서 전파된 웰빙, 로하스, 슬로푸드, 로컬푸드 등을 내걸었으나 결국 그 철학이나 가치를 제대로 흡수하지 못한 것 같다. 왜 그럴까?

 

웰빙, 로하스, 슬로푸드, 로컬푸드 등은 산업화 사회에서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으로 유럽에서 발상한 제안이다. 유럽에서 이 같은 것들이 인간을 더 행복하게 해줬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한국적 상황에서 적용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다. 유럽은 200년의 시간을 두고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었다. 한국은 그 기간이 30년이다. 유럽의 농업은 산업화 과정에 맞춰 서서히 적응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유럽 농민들은 도시 노동자들이 원하는 웰빙, 로하스, 슬로푸드, 로컬푸드의 삶을 제공해줄 수 있는 기반을 가지고 있다


한반도의 농업도 그럴까? 유기농을 위해 윤작을 할 수 있을 만큼 땅이 넓은가, 외부에서 퇴비를 가져와 넣지 않아도 되는 순환농업의 실현이 가능한가, 높은 온습도의 여름 환경에서 농약을 치지 않고 상품성 있는 농작물의 결실을 볼 수는 있는가, 유럽의 그 수많은 농가공산품처럼 한국의 농민도 농가공품을 생산하여 판매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는가, 반나절이면 전국 어디든 닿는 이 좁은 대한민국에서 로컬은 의미 있는 단어인가. 먹을거리는 옷, 자동차, 가전제품과 다르다. 먹을거리는 자연의 절대적인 영향 아래에 있다. 가공품의 생산구조도 쉬 변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인의 먹을거리 문제는 한국적 상황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맛콘서트도 그런 것을 기반으로 진행하고 있다. 뭣보다 호응이나 반응이 꽤 좋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동안 맛콘서트의 성과와 향후 방향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면?

 

맛콘의 장점은 이론과 실재가 공존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무엇이 우리 미각을 속인다고 말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의 음식을 수강자들이 직접 먹어보고 확인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가령, 대형식품업체의 두부 시장 진출이 지역경제와 자영업자의 붕괴만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미각을 왜곡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점을 공장의 브랜드 두부와 동네에서 당일 만든 두부의 비교 시식을 통해 확인하게 한다. 대부분 다른 미각교육은 좋은 음식 고르기에 대한 안목키우기 정도였다면 맛콘은 음식에 대한 시각 자체의 전복을 요구한다. 그 깨달음의 효과는 강렬하고 지속적이라 자평하고 있다. 앞으로 맛콘은 한국음식문화에서 말하는 전통의 허구성을 지적하고 근대 이후 한국인의 미각이 어떻게 왜곡되어갔는지를 탐구할 것이다.”

 

 

먹는 것은, 많은 사람의 착각과 달리,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행위이다. 먹을거리가 먹는 사람에게 전달되기까지의 수많은 과정을 보라. 수천 킬로미터의 이동은 물론 숱한 노동이 뒤따른다. 무엇보다 공정하지만은 않은 대규모 기업농업과 경제 시스템 때문에 파괴되는 자연도 있다. 먹을거리는 풍성해졌음에도 식탁 문화는 앙상해지고 비정해진다. 거대한 영향력을 가진 일부 맛집(요리)블로거들의 탈선(!)도 심심찮게 오르내린다. 그것은 먹을거리가 그만큼 막강한 콘텐츠가 됐음을 방증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바야흐로 먹방혹은 음식 포르노의 시대이다.

 

 

음식과 요리에 대한 콘텐츠가 맛집 블로거라는 타이틀을 통해 넘치지만, 알맹이는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협동조합 끼니가 추구하는 바를 혀의 인문학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텐데, ‘먹는다는 것에 대해 끼니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가?

 

한국인은 대부분 노동자이다. 노동을 팔아 먹을거리를 산다. 온 민족이 노동자로 사는, 먹을거리를 사서 먹는, 지금의 상황은 익숙하지 않다. 먹을거리에 대한 정보라고는 자본과, 그 자본에 종속된는 언론, 그리고 자본이 끊임없이 간섭하는 정부기관에서 얻는다. 방송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음식을 이용할 뿐이며, 블로거는 가상의 세상에서 허상의 품위를 얻기 위해 인증 샷을 날릴 뿐이다. 정부는 유권자들이 좋아할만한(‘이익이 될 만한이 아니다) 정책을 남발할 뿐이다. 학계와 여러 음식문화 단체의 연구가들 역시 전통을 조작하고 왜곡된 미각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이 불행한 것은 먹을거리에 대한 거짓된 정보를 의심할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다.’ 내가 먹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우리는 한국인의 먹을거리에 대한 실체를 드러내는 일에 열중할 것이다.”

 

 

흥미롭다. 저 높은 곳이 아닌 일상의 음식, 한국의 음식문화의 민낯을 보는 일이라니. 음식은 어떤 무엇보다 일상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구체적으로 사유하는 일이다. , 어떻게 살 것인가를 구성하는 기본이다. 요리 본능의 리처드 랭엄은 요리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밥을 먹는 것은 음식물로 우리 자신을 만드는 일이다. 음식이 몸을 만든다. 인간은 다른 생명체를 먹어야만 하는 저주를 타고났다. 그 동물성의 육체는 천형일 것이다. 그렇기에 음식 접시에서 눈을 들어 생각해야 할 책임이 있을 것이다.

 

 

서울을 먹다라는 책도 내셨다. 지금 서울음식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서울은 한성이 아니다. 서울이 조선시대 왕가가 있었던 도시이나 서울의 문화적 정체성은 조선에 기대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서울음식 하면 궁중음식, 양반음식부터 떠올린다. 서울음식 중에 일부 그런 음식들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서울 사람들이 현재 먹고 있는 음식 중에 조선에도 있었던 음식은 별로 없다. 조선에 있었다 하여도 지금은 식재료와 조리기구가 바뀌어 그 맛과 스타일이 크게 다르다. 조선시대에는 한성음식이 있었고 대한민국에는 서울음식이 있다. 서울음식이란 서울 사람들이 두루 먹으며, 또 그 음식을 먹으면서 자신이 서울이라는 문화 공동체 안에서 살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음식이다. 나는 그 같은 서울음식으로 종로 빈대떡과 설렁탕, 신당동 떡볶이, 을지로 골뱅이와 평양냉면, 동대문 닭한마리, 태릉 갈비, 오장동 함흥냉면, 신림동 순대, 마포 돼지갈비, 왕십리 곱창, 장충동 족발, 혜화동 칼국수 등등을 꼽았다. 서울시민은 대부분 이주민이다. 이 음식들에는 이주민의 삶과 아픔이 묻어 있다. 이게 진짜 서울음식이다.”

 

협동조합 끼니는 내년 1월초 우리 장 전문가 양성을 위한 전통장 아카데미를 시작으로 다양한 활동과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2014년 어떤 계획들이 있는가?

 

음식을 인문학적 화두로 삼으려는 젊은이들이 많다. 조합원들의 역량으로 그들의 지적 욕구를 채워줄 수 있다. 그에 맞는 강좌를 열 것이다. 한국음식이 맛없는 까닭은 한국 식재료에 대한 이해와 조리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계절별 최상의 식재료를 구하는 방법과 이를 이용한 음식 개발 또는 개선의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서울과 먹을거리에 대해 한 말씀 부탁한다.

 

서울이라는 곳이 대한민국의 식재료들이 다 올라오는 곳이다. 전국 사람들이 다 올라오니까 음식도 따라 움직인다. 향토음식도 서울에 다 올라온다고 봐야 한다. 대한민국의 맛있는 것은 서울에 모여 있다고 봐야 한다. 맛있는 음식이 서울에 다 있다고 하지만 무엇이 맛있는 것이라는 것에 대해선 잡혀 있지 않다. 뉴욕, 파리 등 다른 나라의 대도시는 각 나라 음식문화의 중심이다. 그런데 서울은 대한민국의 음식문화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지 못하다. 거기에 대한 생각도 서울시에서 해봤으면 좋겠다.”

 

 

모름지기, 입이 열려야, 먹을 것이 들어가야 마음이 열리는 법이다. 가령, 우리는 의식적으로 커피를 마시거나 초콜릿을 먹는다. 심신을 깨우거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먹는 것을 통해 의식적으로 심리상태를 조절한다.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인간의 정서와 기분은 의사결정과 의식 같은 높은 수준의 정신활동 과정에 본질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그만큼 정서와 기분을 좌우하는 먹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음식은 스스로를 조절하는 강력한 수단이고, 이 수단으로 스스로를 안심시키거나 기분을 북돋고자 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다. 호모 코쿠엔스의 즐거움은 인류의 것이다. 장석주 시인의 가 그것을 확인해준다.

 

어떤 일이 있어도 첫사랑을 잃지 않으리라

지금보다 더 많은 별자리의 이름을 외우리라

성경책을 끝까지 읽으리라

가보지 않은 길을 골라 그 길의 끝까지 가보리라

시골의 작은 성당으로 이어지는 길과

폐가와 잡초가 한데 엉겨 있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로 걸어가리라

깨끗한 여름 아침 햇빛 속에 벌거벗고 서 있어 보리라

지금보다 더 자주 미소 짓고

사랑하는 이에겐 더 자주 정말 행복해라고 말하리라

사랑하는 이의 머리를 감겨주고

두 팔을 벌려 그녀를 더 자주 안으리라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 자주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보리라

_장석주,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중에서 



사진. 협동조합 끼니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2013.12.03 02:03 메종드 쭌

12월의 겨울의 시작. 

밝고 예쁜 목소리가 열었던 겨울의 첫날, 요조의 목소리로 맺음한다.

절묘한 앙상블이다. 12월의 별자리 운세는 내게 사람을 신뢰하지 말라고 하던데, 그러거나 말거나. 흥. 


왜 요조를 '여신'이라고 부르는지, 오늘 그 이유를 목격했다. 그것이 각자 다른 이유일지 몰라도, 내가 오늘 본 것은 아름다움. 은은하게 퍼지는 어떤 아름다움.  


요조의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겨울의 낭만을 부추겼고, 

요조의 온 몸이 뿜어내는 나지막한 선율은 겨울의 낭만을 채색했다.   


요조. 참, 좋다. 참, 아름답다. 

커피 한 잔에 내 지닌 허섭한 아름다움 전부를 졸졸졸 추출해서 건네고 싶은 드문 사람.


물론 나도 평범한 속물이어서, 다른 셀럽과 결혼한 그의 옛 연인 소식에 기분이 어떨까 궁금증이 일기도 했고, 그의 옛 사랑을 쓴 글에 옛 연인을 대입시키기도 하였다. 



나야 그리 하여도, 

버스에서 나를 웃고 울린 여자, 요조. <요조, 기타 등등>. 

올해 아마도 버스에서 날 울린 두 번째 책? 그녀의 어쿠스틱 에세이. 


어디서 웃었냐고? 이 구절이었다.

"우리 모두 코를 후비며 살아가고 있다." 

팡, 터졌다. 아, 나도 그랬지, 하는 생각과 함께. 


그리고,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giant. 

창문에 비치는 밤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겨울밤 하늘의 별빛도 글썽글썽. 달빛은 울먹울먹. 


"나는 당신의 오늘을 보는 것이 좋다. 

     당신의 내일 같은 건 관심도 없다."



아무렴. 당신으로 인해 나의 겨울 첫날은 충분히 좋았다. 아름다움이 충만한 하루. 이것으로 나는 12월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요조가 겨울의 낭만을 완성했다. 겨울, 이라고 적어줬고, 낭만이라고 불러줬다. 내가 이 좆 같은 세상을 버틸 수 있는 건, 아름다움 때문일 것이다. 매일 같이 만나야 하는 사소한 오늘의 아름다움. 나의 내일 같은 건 상관 없다. 오늘의 아름다움을 바랄 뿐.


당신, 요조, 그런 사람. 고마워요, 요조. 아, 좋다.

 

참, 옥상달빛의 '안부'도 오늘을 토닥토닥. 스담스담. 고마워, 옥딸.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
2013.11.27 23:23 할말있 수다~

 

 

[마을캠프 7회] 마을TV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 미디어, 마을을 담다 (11/28 서울시청 9층)

 

1981년, 미국의 뮤직비디오 전문채널 M-TV가 첫 전파를 쏘았습니다. 개국 첫 비디오클립, 그야말로 기똥찬 선곡이었습니다. ‘VIDEO KILLED THE RADIO STAR’! 시대의 전환을 알리는 예고탄. 듣는 음악을 보는 음악으로 바꾼 일대 전환이었을 뿐 아니라 영상문화가 도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라디오, 죽지 않아! 1990년, 라디오는 ‘소리를 높이자’는 선동을 합니다. 마우스가 아닌 라디오를, 헤드셋이 아닌 고출력 스피커를 끼고 살았던 시대, <볼륨을 높여라>가 그랬습니다. 90년대의 문화를 관통한 ‘응답하라’ 세대에겐 전설 같은 영화죠. 절정기의 크리스찬 슬레이터가 분한 내성적인 고교생 마크. 그런 그가 밤이면 밤마다 해적방송DJ 하드 해리로 변신, 또래의 울분과 기성세대와 현실에 대한 돌직구를 날립니다. 


그리고 21세기, 인터넷이 창궐했습니다. 거대 미디어는 덩치를 불리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가장 큰 목적이라면 아마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획득하고 자본을 긁어모으기 위해서겠죠. 이 틈바구니에서 사소하지만 소중한 우리의 이야기가 끼어들 여지는 점점 줄어듭니다. 이러한 때, ‘마을의 목소리는 우리가 내자’는 선동(?)을 하는 게릴라 미디어가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바로 마을미디어입니다. 마을의 목소리를 조곤조곤 담아내는 마을미디어입니다. 

   

자신들의 삶과 마음이 담긴 목소리만큼 호소력 있는 선동의 도구는 없습니다. 미디어가 담은 마을, 마을이 품은 미디어의 활동이 서울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고, 내 삶과 속속 연결된 사소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며, 누구나 마을의 셀러브리티가 될 수 있고, 방송인이 될 수 있는 이야기 듣고 싶지 않으세요? 마을캠프의 마지막을 장식할 일곱 번째, 그런 이야기가 흘러나옵니다. (참가신청 : http://www.wisdo.me/4254)  

 

 이창림 (마을신문 도봉N발행인)

도봉N(http://dobongn.kr)은 2009년 8월 창간, 최근까지 42호를 발행한 마을신문입니다. 도봉구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소통으로 마을공동체의 작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 덕에 지금 인터넷라디오, 영상뉴스, 영화 등 다양한 미디어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도봉의 마을사람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고, 주인공이 되는 미디어로서 자리매김한 도봉N 이야기를 변화를 만들어내고 열정을 끌어내는 것에 관심이 많은 이창림 발행인이 들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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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훈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장, 미디액트 부소장)

미디어를 통해 마을의 삶과 목소리를 마을의 손으로 직접 담아내고 싶다면, 이곳을 찾아가면 됩니다.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www.facebook.com/maeulmedia)! 마을의 소통 활성화를 지원하는 이곳은 ‘우리마을미디어문화교실’ ‘우리마을미디어공방’ 등의 일을 하고 있고요. 마을에 필요한 장비와 시설 지원, 마을미디어의 장기적 발전을 위한 정책 연구, 콘텐츠 유통배급 지원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서울 어딘가에 미디어와 관련한 무슨 일이 생기면 달려가는 이주훈 센터장이 서울 곳곳의 마을미디어 현장을 생생하게 들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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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8일(목) 저녁 7시 30분 서울시청 9층 하늘광장에서 ‘[마을캠프] 마을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마지막 시간 <마을TV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 미디어, 마을을 담다>를 통해 확인하세요. 마을캠프의 마지막 방청객으로 참여하세요. ‘서프라이즈’가 다가올지도 모릅니다.  

※ 사정상 일부 변경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다시 돌아가 <볼륨을 높여라>. 해적방송DJ 하드 해리를 통해 생존과 저항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는 십대들의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밤하늘을 메웁니다. 동시에 그들은 기성세대의 체제에 대해 반란을 꾀합니다. 물론 가만있을 리 없는 기성세대는 공권력을 동원해 마크를  연행합니다. 마크, 끌려가면서도 외칩니다. Talk Hard(소리 높여 이야기해라, 그냥 말해버려)! 물론 끝이 아닙니다. 또 다른 DJ 해리가 곳곳에서 튀어나옵니다. 마크(해리)의 뒤를 따라 다른 아이들도 개인 방송을 시작하는 거죠. 나의 목소리, 우리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울려 퍼진다는 이야기. 현실의 부조리는 커지고, 거대한 것들이 모든 것을 장악한 시대. 그럼에도 소리 높여 말하고 싶습니다. 내 목소리,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싶습니다. 그 목소리, 마을미디어를 통해 낼 수 있습니다. Talk H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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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24일. 퀸의 리더, 프레디 머큐리의 22주기. 
카페쇼에서 특별히 탄자니아 생두까지 구매했다. 

왜 '탄자니아'냐고? 
=> http://procope.org/488

오늘(일) 시간이 허락하질 못해서 탄자니아를 볶지 못했다.
내일(월) 수운잡방 오는 사람에게 특별히 제공할 나의 커피는, 'It's A Beautiful Day'! 


퀸과 함께다. 정확하게는 프레디 머큐리와 함께다.

 
당신의 아름다운 하루를 위해. 

죽기 전까지 노래하고 싶다던 프레디를 위해. 

여전히 아름답고 불멸로 남을 그의 노래를 위해.

It's A Beautiful Day.

물론 이 좆 같은 세상이 아름다울리 없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프레디 머큐리 형님이 그렇단다. 

잇츠 어 뷰티풀 데이라고. 

믿지 않을 도리도 없다.

우선, 탄자니아 커피 마시면서 생각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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