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짤랑짤랑 흘리며 봤어요. ㅠ.ㅠ <줄리 & 줄리아>.
뭐 이유는, 감동적이어서 그런 건 아니고, 좋아서, 사랑스러워서!
참으로 므훗해서 흐르는 그런 눈물, 아시죠? 괜스리 입가에 미소가 방긋하는.
당신도 좋아서 막 깨물어주고픈 그런 영화 있죠?
최근 제겐 <줄리 & 줄리아>가 그랬다죠. 아잉. 쪼아쪼아.
1년 여 전쯤 봤던 <다우트>의 메릴 스트립과 에이미 애덤스가 다시 재회한 영화.
<줄리 & 줄리아>를 보면서 든 생각이 뭐~였게요?
아, 나도 전설의 프렌치 쉐프, 줄리아(메릴 스트립)가 되고 싶다...
그래, 나도 요리 블로거, 줄리(에이미 애덤스)가 되고 싶다... 가 아니공,
내가 좋아하는 것에 폭 빠져서, 책을 내고 싶다...
유명 블로거로 많은 이들과 소통하며 즐거움을 나누고 싶다... 도 아니공,
짜잔~ 그렇다면, 뭣이다냐.
폴(줄리아 남편, 스탠리 투치)이, 에릭(줄리 남편, 크리스 메시나)이 되고 싶다.
꼭 제가 남자여서만은 아니겠지만, 좋아서 요리하는, 요리를 좋아하는, 줄리아와 줄리의 모습도 사랑스러웠지만,
뭣보다 이들의 무쇠같이 든든한 지원군이고픈 생각이 간절하게 모락모락.
요리랑 복작거림시롱 삶을 사랑하고 자존감을 키우는, 자신의 여자를 위해!
그들의 요리를 맛봐주공, 요리사를 위해 주방보조가 되는 남자들.
아, 폴과 에릭은, 그야말로, 멋진 남자들인 거 있죠. *_*
요리? 잘할 필요도, 이유도 없어요.
전설의 프렌치 쉐에~ㅍ이 되라는 말도 안 해요.
365일 동안 총 524개의 레시피에 도전하라는 말도 안 해요.
그저 딴 거 없어요.
우리가 먹는, 땅·바람·비·해 등 우주의 모든 기가 모아진 식재료에 감사하고,
그것에 또한 노력과 땀을 담아 농사를 지어준 농부에게 감사할 줄 알며,
요리하는 즐거움과 함께 먹는 즐거움을 아는 여자.
그렇게 요리를 좋아하기만 해도 돼요.
요리하는 기쁨, 요리하는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으면 돼요.
난 그런 내 여자를 위해 기꺼이 주방보조가 되어서,
내 여자가 만든 요리에 어울리는 커피를 만들어주고 싶었어효~
"먹는 것이 곧 사람이다."(《프랑스 스타일》(미레유 길리아노 지음)). 우리가 먹는 음식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요리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아는 당신! 당신은 나의 쉐에~ㅍ
감히 그런 당신에게 제가 데이트 신청 들어갑니다효~
그리하여,
펴엉생, 그런 당신의 주방보조가 되고,
그런 당신만을 위한 특별한 커피를 뽑는 사람이 되어도 좋으니,
그런 당신, 있나효?
나는 당신의 폴이자, 에릭이 될게효~
그런 우리는 말하자면,
당신은 나의 쉐프, 나는 당신의 바리스타.
그런 당신에게, 이말을. You're the butter to my bread and breath to my heart!
아, 소심하게 이말도...
Bon appétit!
이 영화, 한 번 보세요. 당신에게 왕추합니당~ 울 엄니 아빠께도 보여드렸는데, 참 재미나게 보셨대요.
물론 요리 잘하는 아내를 둔 울 아빠는 아마 저 같은 생각은 안 하셨겠지만.ㅋㅋ
그렇다. 오늘은 준수의 아름다운 여신님을 알현하는 날이기 때문. 우리 연아? 오~ 노!
연아 따윈 상관 없어.
연아의 몸놀림과 움직임은 예술이지만,
그 예술을 떠올리지도 못하게 한 준수의 아름다운 여신님.
김.선.우.
시인. 혹은 소설가.
그러니까, 작가이며 예술가.
그러니까, 오늘! 2월24일.
준수의 아름다운 여신님, 드디어 알현.
아침부터 약간의 조증. 아아, 어떠케요.
뭔가 붕붕 거리며 두근두근 쿵쿵.
왜케 여신님 뒤에선 빛이 나는 거야. 흑.
그야, 당연. 준수의 아름다운 여신님이니까.
너, 이놈, 왜 이리 여신님이 많냐고 타박해도, 우짜겠노.
좋은 걸 어떡해.
그래도 아름다운 여신님을 그렇게 지근거리에서 뵙고,
나를 향해 말씀을 건네주신 분은, 선우 여신님이 아마도 처음!!!
심장이 멎는 줄 알았네, 휴.............
이름을 건넨 쪽지를 보고 건네신 그말 한마디. "본인이세요?"
아, 수줍어 제대로 말도 몬하고 눈도 못 맞추고... 수줍준수!
아름다운 여성 앞에 한 없이 쑥맥인 준수는,
오늘 여신님 앞에서 끝도 없이 쑥맥인 채로 총총...
쪽 팔리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가 모냐...ㅠ.ㅠ
아, 그래도 오늘 다른 일이야 어찌됐건,
오늘은 무조건 좋은 날. 기분은 붕붕붕~
꽃 향기를 맡으면 힘이 솓는 꼬마 자동차 준수!
그렇게, 나의 2010년 2월24일은 아름다운 선우 여신님을 알현한 날.
아, 좋아라~ 오늘, 준수는 행복한 사람~
초반부, 약간 꾸벅꾸벅. ㅠ.ㅠ
몸 상태가 피곤에 절은데다 약간 낯선 형식에 쉬이 적응을 못한 탓이리라고 자위.
그런데, 훅~ 갔다.
어느 순간부터 까빠박 몰입해 있는 거닷!
저거 저거,
기억이 빚어내는 마법에,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아바바바... 뭔 얘기를 하고 있냐. 뷁!
마침내,
마법사들 밴드멤버들이 3년 만에 규합했을 땐,
아 거 뭐냐. 찌릿찌릿 + 저릿저릿 한 거 있지. 파파박!
'실비아'.
몽환적이고 마법 같은 그 노래가 울려퍼질 땐,
나는 마법에 걸려 꼼짝 못하는 폐국의 황태자라도 된 기분? (음, 비유가...^^;;)
아주 잠시, 그 노래를 듣다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함께 밴드 멤버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도 그들과 함께 자은이를 기억하고 싶었다.
"기억하는 모든 것들은 사랑이 된다"는 카피에 전적으로 동의하진 않지만,
나는 '모든' 대신 '어떤'을 넣고 싶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아마 한동안 나는 실비아를 찾아 헤맬 것이다.
아울러, 자은을 맡은 이승비.
<마법사들>에서 꽤나 매력적이고 독특한 캐릭터였지만,
하영(강경헌)의 차분한 미모에 휘둘린 나의 눈에 들어오질 못했는데...
역시나 반전이!
<마법사들>이 부린 마법이 끝나고,
감독, 배우와 함께 토킹하는 시간에 자리했는데,
오~ 마이 갓!!!!!! @,@ (코피 팡팡~)
와와, 완존 이뻐~ 완죤 매력적이야~
그동안 내가 거친,
<장화 홍련> <모던 보이> 플러스 <커피프린스 1호점>에도 나왔었다는데,
난 왜왜왜 그땐 몰랐었던 거얏. ㅠ.ㅠ 이 썩은 동태 눈깔 같으니!
아마 그녀는 몰랐겠지만,
그녀 거의 바로 앞 객석에서 나는 배실배실 헤벌쭈욱 웃고 있었다. 좋아서. ^^;;
심각하게,
고려 중이다. 그녀가 출연한다는, 것도 배종옥 여사님과 더블캐스팅됐다는,
연극열전3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블랑쉬 역이란다.
아, 그녀가 보고 싶어졌다...
꿈결처럼 찬란하게 그대가 오던 날...ㅎ
늘, 그대 곁에...ㅎㅎ
꿈결처럼 찬란하게 그대가 오던 날 난 알았죠 단 한눈에 사랑임을 오직 한 사람 오직 한 사랑 oh 실비아 나의 영혼 실비아 나의 운명 기적처럼 날 감싸준 실비아 이젠 영원히 머물께요 언젠가 모진 바람이 불어도 늘 그대 안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노래가 흐르고 내 사랑은 그대 위한 꽃이 되죠 oh 실비아 내 파라다이스 실비아 나의 운명 숨결처럼 날 감싸준,, 실비아 이젠 영원히 머물께요 언젠가 모진 바람이 불어와 빛을 감춰도 늘
oh 실비아 나의 태양 실비아 나의 바다 기적처럼 날 안아준 실비아 이젠 영원히 머물께요 언젠가 모진 바람이 불어도 늘 그대 곁에
알지? 누구에게나 ‘마법’의 순간이 있어. 모든 사람에게 말이야. 차이가 있다면 그런 거지. 그것을 알아차리는 사람이 있는 한편,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 뿐이야.
응, 그렇담 어떡하면 알아차릴 수 있을까. 그 마법의 순간은, 어떻게 문을 두드릴까. 눈을 크게 뜨고, 귀를 바짝 기울이고 있다고 알아차릴 수 있는 건 아닐 텐데... 마음이라면 알아차릴까? 그 순간, 경험하고 싶어. 알려줄 수 있어?
아마도 그 순간은, 다양한 형태와 모습으로 다가올 거야. 정해진 건 없어.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건, ‘매직 아워(Magic Hour)’야. 해가 넘어가서 사라졌지만, 아직은 밝은 빛이 약간 남아 있는 순간 말이야. 어떻게 보면 하루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비로운 순간이지. 밤이 됐지만, 아직 낮이 남아 있는 순간. 마냥, 어둡지만은 않은 시간이잖아. 물론 어둠이 빛보다 열성이거나 나쁜 거라고 말할 생각은 없어.
그렇담, 이런 건가? 세계의 끝이라고, 아니 절망의 나락인 것 같지만, 아직은 끝나지 않은 시간? 지금 당장 어려워도 결코 포기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위해, 삶을 견딜 수 있는 그런 것 말이야. 인생을 완결 짓는 순간은 늘 ‘지금’이어야 한다는, 교과서 같은 말을 하는 건 아니지만, 과거도 넉넉하게 보듬을 수 있는 지금이라면, 그것도 매직 아워가 될 수 있겠지? 슬픈 일을 겪고, 각자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다시 새로운 출발을 기약하는 것...
아, 너도 그 얘길 하고 싶은 거야? 그들이 함께 나눈 매직 아워의 시간? 나도 마침 너와 그 얘길 나누고 싶었는데. 우리, 통한 거야? 그런 거야? 하하. 우리도 이렇게 통한 이 시간을, 매직 아워라고 호명해도 되겠네. 작고 사소해도 좋아. 네 마음과 내 마음이, 캄캄한 어둠을 뚫고 한 줄기 빛처럼 공명하는 순간이, 어찌 기쁘지 않겠어. 흐~
빙고~ 너와 내가 아니더라도, 마음과 마음은 애초 밤부터 시작하는 것 아닐까. 그러다 서로를 알게 되면서, 밤과 낮이 수시로 교차하는 거지. 그러다 영원히 밤이 되기도 하지만, 밝은 빛이 쨍하고 들어오면서 아직 낮으로 남을 수 있는 매직 아워를 경험할 수도 있겠네. 그치?
좋아, 매직 아워. 한 번 경험해볼까? 내가 아는, 일군의 마법사들이 만든 매직 아워가 있었거든. 매직 아워를 경험한 마법사들이 펼친 95분. 지난 8일, ‘YES 블로거의 특별한 만남’으로 대학로 창조아트홀에서 열린 <마법사들> 특별상영회였어. 감독과 출연배우들과의 대화까지 곁들인. 내가 경험한 매직 아워는 말이지...
아, 잠깐 잠깐. <마법사들>? 음, 혹시 해리 포터 얘기? 우리 머글과 다른 DNA를 갖고 태어난 호그와트의 마법소년! 부엉이가 주는 입학원서를 받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런던 킹크로스 역의 9¾ 승강장에서 호그와트 급행열차를 타고 호그와트 마법학교로 가서 펼치는 마법을 얘기한다면, 난 사양하겠어.
헐~ 그럴 리가 있나. 우선, 듣고 경험해 봐. 마법사들이 만들어 낸 매직 아워는 어떤 것이었는지. 음악을 매개로, 사람을 매개로, 시간을 빚어 만든 마법의 순간을... 자, 함께 들어가 볼까?
난 자은(이승비). 기묘한 분장이라고? 음, 내가 좀 신분이 남달라서 그래. 그런데 왜 산장을 나풀나풀 떠도냐고? 무슨~ 일일까요~ ‘마법사’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뭔가, 신비롭지 않아? 뭔가 몽환적인 것도 같고. 그치? 나 말고, 여기 이 산장 카페(마법사들)의 두 남자와 한 여자. 나와 함께 한 밴드 멤버야. 자은인 기타리스트였고, 재성(정웅인)은 드러머이자, 내 애인이었고. 지금은 이 카페, ‘마법사들’의 주인이지.
명수(장현성), 곧 아르헨티나로 이민 갈 계획을 세운 베이시스트. 곧 말할 하영(강경헌)의 애인이었고, 그 좋아하던 음악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남자. 쉽게 말할게. 사랑도 음악도 실패한 루~저. 하하, 농담 농담. 하영은, 뭐랄까. 나의 마지막에 대한 죄의식 때문에 스스로 더 이상 노래하길 멈춘 보컬. 마음이 아파. 그 감미롭고 파워풀한 목소리로 우리 밴드를 빛내줬던 그녀임을 감안하면.
그래, 3년 전이었어. 난 세상에 작별을 고했어. 술을 마셨고, 약도 좀 했지만, 글쎄.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밴드 멤버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거지. 그들 옆에서 떠돌지만, 그들은 날 감지하지 못해. 난 그들을 느낄 수 있는데도 말이지. 재성과 명수는 왜 저렇게 술을 마시니. 내 얘기도 참 많이 하네. 하긴 오늘이, 바로 나의 3주기가 되는 날이야. 3년 만에 모여 여기서 날 추모하려고 하는 거지.
과거와 현재가 헷갈리지? 1층과 2층으로 분절된 공간을 통해 시간까지 분절한 덕분이야. 원샷 원킬, 아니 ‘원테이크 원컷’으로 우리의 이야길 들려주길 원한 감독(송일곤)의 영화적 실험이라서 그래. 꼭 마법 같지 않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이라니. 연극적인 요소가 강한 건, 그래서일 거야. 아, 예기치 않은 손님도 있네. 스노보드를 찾으러 온 승려(김학선). 화두를 풀고 하산하는 길이라지? 이 승려가 아마 나의 3주기 추모와 남은 이들의 새 출발에 대한 증인이 되겠지.
영화평론가 김지미가 그랬지. “죽은 사람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추억을 나눌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자은이는 나머지 세 명의 밴드 멤버들에게 선물을 준 셈이겠지? 아, 물론 농담이야. 당연히 알아. 나 없는 그들이 버티고 견딘 3년의 세월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남은 자가 감내해야할 슬픔이 얼마나 가혹한지. 무정한 세월이었을 거야. 그들에겐.
지금 그들이 끄집어내는 내 얘기가, 우리들의 시절이 더욱 빛나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일 거야. 많이많이 아쉬울 거야. 나도 그런데, 그들이야 오죽하겠어. 내가 남긴 기억 때문에, 훌쩍 그렇게 가 버린 나 때문에 그들이 가졌을 죄책감 때문에. 그러니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사랑에 취해, 음악에 취해, 마법에 취해, “돌아보면 네가 있을 것 같아…”라고 말하는 내 좋은 애인과 친구들을 말이야...
감독이 그랬다지? “영화란 ‘빛과 사운드를 이용해 시간을 조각하는 작업’이다.” 지금 내가 있는 이 공간, 마법사들에는 빛과 사운드, 시간이 마법처럼 직조돼 있지. 느낄 수 있지? 후고 디아즈의 탱고 선율도 멋지고, 카페의 조명은 빛과 시간을 자유로이 넘나드네. 유후~ 무엇보다 밴드 멤버들이 날 위해 부르는 「실비아」, 당신을 마법으로 인도할 우리들의 선율.
궁금하다고? 그럼 날 느껴 봐. 그것이 바로, 매직 아워야. 해가 넘어가서 사라졌지만, 밝은 빛이 남아 있는 순간 말이야. 내가 죽어서 사라졌지만, 아직 그들의 마음에 내가 남아 있는 순간. 아름답고 신비한 순간이지. 나는 비록, 그들 곁에 없지만, 그들과 함께 있어. 한 번 들어보지 않을래? 그렇게 내가 그들과 함께 한 순간 울려 퍼지는 우리 밴드의 음악, 바로 「실비아」. 음악이기에 가능한 시간들. 당신도 함께 그 순간을 목격한 사람이 돼 줬으면 좋겠어. 나는 당신을, 당신은 나를 감탄하는 시간, 그것이 우리의 매직 아워. 95분의 원 테이크 원 컷이 만드는 매직 아워. 그럼, 이 매직 아워를 만든 이들의 얘기도 들어볼까?
마법사들의 속삭임
감독 송일곤 : 5년 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지원한 <디지털 삼인삼색 2005>의 일환으로 시작했다. 디지털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고, 내가 잘 아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보험 들고 직장 다니는 그런 친구가 아닌. 친구 중에 아끼는 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그 친구에 대한 만가(輓歌)로 만들었다.
대본을 빨리 썼고, 배우를 캐스팅했다. 절친이자 소울메이트인 장현성에게 부탁했고, 천재배우라 부르는 이승비 씨에게도 부탁했다. 하고 싶었던 것이 원테이크였다. 디지털로 뭔가를 표현할 때 시간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싶었다. 편집 없이 과거와 더 과거와 미래와 근미래까지 시간을 조각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런 의미에서 한 테이크로 찍었다. 필름 시대라면 불가능했겠지만, 디지털이 나오면서 한 테이크에 찍는 것이 가능해졌다.
작업하면서 굉장히 즐거웠다. 매우 뛰어난 배우들과 리허설을 3주 했는데, 연극적인 베이스가 없으면 힘들었을 거다. 훌륭한 배우와 작업하는 게 즐거웠다.
배우 이승비 : 가슴이 콩닥콩닥 뛰면서 봤다. 운 좋게 한국에서 공연하게 돼서 이틀 전 독일에서 왔다. 정말 기억하는 것은 사랑이 되는 것 같다. 이 영화, 아름답고 예쁜 추억의 조각인 것 같다. 뒤에서 보면서 울고 그랬다. 많이 와 주셔서 감사한다.
배우 장현성 : 나를 포함해 93명이 왔다. 어떤 경로로 왔는지는 몰라도 4년 전에 만든 영화를 같이 보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마련돼서 매우 즐겁다. 영화의 장점이 배급이고, 그것을 통해 파괴력이 생기는데, 92명의 관객이 4년 전의 영화를 감독, 배우와 함께 소곤소곤 할 수 있는 것이 재미있다. 참 반갑다.
마법사들에게 질문을 던졌고, 마법처럼 이를 풀어낸 시간이 이어졌다.
찍으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은?
(송일곤, 이하 송) 힘든 게 없었다. 즐거웠다. 다만, 배우들과 촬영감독이 힘들었을 거다. 무척 추운 날이었거든. 배우들은 연극을 다 한 분들이지만, 영화는 연극과 분명 다른 면이 있다. 영화는 카메라를 알아야 하고 조명도 받아야 하고, 동선도 정확해야 한다. 이 영화는, 촬영을 한 번에 해야 했다. 스테디캠으로 찍었는데, 무게가 25~30kg 나가는 것을 95분 동안 메고 다녀야 했다. 또 계속 움직이고 크레인도 타야했고... 굉장히 추운 날이었는데, 촬영감독이 한 번 찍고 나면 움직이질 못했다. 콧물이 나와도 닦아줄 수도 없었고. (웃음) 모니터가 6~8개 있는데, 나는 기네스 맥주캔을 두고 담배를 피면서 최초의 관객이 돼서 굉장히 즐거웠다.
(이승비, 이하 승) 약간 고소공포증 있다. 크레인을 타고 발 두 개를 얹을 수 있는 곳에 올랐는데, 그게 2층 반 정도 높이인데, 무서워서 혼났다. 병 깨는 신이 나오는데, 진짜 병이었다. 두 번 정도 조감독이 가르쳐줬는데, 의외로 잘 됐다. 스냅으로 돌려서 바로. (웃음) 처음에 그걸 준비하는 과정에서 힘들었다. 나머지는 다 좋았다. 연극하는 것처럼 촬영해서 되게 행복했던 작업이었다.
(장현성, 이하 장) 다른 건 없고, 너무 추워서 자꾸 술을 마시게 됐다. 96분 중에 60분이 넘어가면서 필름이 끊긴 부분이 있다. (웃음) 너무 추워서. 그게 제일 힘들었다.
(송) 비화인데, (남자 주인공 두 명이) 소변을 누는 신이 있다. 성기가 노출돼서 어떻게 감춰야 할지 그것 때문에 애먹었다. (웃음) 자세히 보면, 굉장히 아슬아슬하다.
(장) 리허설 할 때 계획은, 허리 정도에서 사이즈를 끊는 것으로 돼 있었다. 이날 진짜 맥주를 마셨다. 최대한 맥주를 마시고 최대한 참은 뒤, 소변발의 수압을 올려서 그게 필름에 잡힐 수 있도록 하면 실감 나겠다고 해서 그렇게 했다. 그렇게 찍은 게 있을텐데, 그걸 안 써서... (웃음)
연극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이 형식이 다른 형식에 대해 가지는 차별성이나 장점은 뭔가. 또 자은이라는 인물은 다른 시공간에 사는 캐릭터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어떤 느낌으로 연기를 했는지. 아울러 장현성이 맡은 명수는 가장 현실감 있는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실재 성격은 어떤가.
(송) 연극은 장치가 많고 무대가 오픈돼 있는데, 영화는 감독의 시점으로 제한돼서 보여준다. 이 영화는, 굉장히 연극적이면서 영화적이고, 영화적이면서도 연극적이다. 그게 약점이자 장점이다. (연극과 영화는) 본질적이고 미학적인 측면이 다르다.
(승) 자은이는 결핍․소통의 부재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캐릭터다. 당시 나한테는 그런 부분이 많았다. (영화를) 찍을 때, 딱 자은이였다. 그래서 감독과 별 트러블 없이 쭉 갈 수 있었다. (웃음) 사람들은 열망하고 원할 때,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방법이 다른데, 자은이는 말하자면, 민폐 캐릭터다. (웃음) 그런데 밉지 않게, 연민이 갈 수 있게 표현된 것 같아서 마음에 든다. (영화를 찍을 때인) 2005년에 연예인 가운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많았고, 나는 그 감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어떤 상태인지를. 그 시점에 도달했을 때는 이성이라곤 없다. 멍한 공간에 들어가서 그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쑥 빨려 들어가는 그런 거다. 자은이도 그래서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남은 사람들이 너무 아프잖나. 물론, 전에는 나와 비슷한 부분이 많았는데, 지금은 없어진 상태다. (웃음)
(장) 베이시스트 명수. 배우 장현성. 자연인 장현성. 세 인물로 본다면 배우는, 자연인 장현성을 가운데 둔 여러 가지 얼굴이랄 수 있겠다. 자연인 장현성과 베이시스트 명수는 꽤 닮았다.
좋은 영화 보여줘서 고맙다. 처음 기획은 영화제 출품을 위해서였는데, 디지털과 한 번에 찍겠다는 의도도 포함됐던 건지. 인물에 포커싱이 맞춰진 것이 아니고 흐릿한 부분도 있는데, 의도적으로 그렇게 해서 흔들리거나 불안한 감정을 표현하고자 한 것인지. 스님이 등장하는데 넣은 의도는. 이승비 씨는 해외에서 연극을 하는데, 현지 스탭이나 배우들과 일하면서 힘든 점이나 다른 점은 무엇이며, 지금 귀국했는데 어떤 작품활동을 할 것인지.
(송) 처음에는 단편으로 대본을 썼다. 현장에서 첫 리허설로 리딩을 했는데, 그게 참 좋았다. (배우들이) 대충할 줄 알았더니 정말 잘하는 배우들이라 그런지... 장현성이 먼저 피치를 올리고, 따라서 정웅인이 피치를 올리고 이승비도. (웃음) 첫 리딩을 하니 40~50분 정도 나왔다. 그 다음주에 호주 갈 일이 있었고, 촬영을 빨리 해야 했는데, PD에게 호주에 가서 몇 신을 더 써올 테니 3억을 구해달라고 했다. 호주에서 돌아왔더니 (돈을) 구했더라. 그래서 장편을 찍었고, 영화제에선 딱 잘라서 (단편으로) 보여주고.
스님은 초고를 썼을 때, 내가 하려고 했다. 연출할 때, 배우 얼굴을 봐야 하는데, 스님을 하면 앉아있어야 해서. 스님은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 이들의 작은 치유를 목격했으면 좋겠고, 보드를 찾으러 온 스님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넣게 됐다. 내가 보드에 한참 빠져있을 때라... (웃음)
(승) 나는 유명배우도 아니고, 연극이 정말 좋아서 했고, 영화는 아주 간혹 찍었다. 독일에 혼자 여행을 갔는데, 오디션 소식을 들었고, <행복의 잡지>라는 초연 작품이었다. 공주 역할이 나오는데, 그 역할로 오디션 본 건 아니었다. 친구가 독일어를 잘 했는데, 그 친구가 번역을 해줬다. 영어로 오디션을 봤다. 그런데 연출가가 겁도 없이 공주 역할을 준 거다. 오디션 때, 아리랑을 불렀고, <리타 길들이기>의 대사를 했다. (극에서) 실제로 아리랑도 부른다. 스탭들과 소통 등 다른 문제점은 없었다. 한국이 배우를 위하는 나라구나 싶더라. 독일엔 배우들이 매니저 없이 다니고 자기들이 다 알아서 한다. 독일엔 분장술이 정말 아니다. (웃음) 손재주는 우리나라가 좋더라. 왼쪽 손으로 내가 해도 더 잘할 텐데. (웃음)
지금은 ‘연극열전3’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블랑쉬 역으로 캐스팅 됐다. 배종옥 선배랑 더블 캐스팅 됐고, 오늘 처음 했다. 공연 많이 보러 와 달라. (웃음)
영화에서 장현성 씨를 보면 대개 지식인이다. 평범하게 묻혀 사는 지식인 이미지가 강한데, 실제로 보니 발랄해 보인다. (웃음)송일곤 감독 영화는 대개 자연이 배경이 된다. 특별한 이유라도? 분장이나 장치에 상징적인 의미가 있나.
(송) 장현성, 참 발랄하다. 얼굴이 각 지고 강해서 그런지, 그런 역을 많이 준다. 굉장히 다양한 역을 맡았다. 저주 받은 지식인? 굉장히 다양한 스펙트럼 가지고 있고 무척 근사한 인간이다. 친구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분장은 밴드라서 각자의 캐릭터를 두드러지게 나타나길 바랐다. 의상비는 거의 안 들었고, 자연을 배경으로 한 것은 무의식적이었던 것 같다. 도시를 떠난 어떤 곳에서 치유를 받는 느낌처럼, 내 영화를 보고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지금 준비하는 영화는 서울에서 이뤄지는 영화다. 나이도 들고 그래서 이제는 솔직하게 정면 승부하는 영화를 하려고 한다.
(장) 송일곤 감독과 함께 있으면, 전혀 유식하지도 않고 저질이다. 둘이 앉아 음담패설을 하고 여자 얘기를 한다. (웃음) 한 기자에게 들었는데, 가장 치욕스런 얘기가, 내가 유치장에 들어가 있으면, 노상방뇨로 들어왔는데도 정치범처럼 보인다는 얘기였다. (웃음) 송일곤 감독은 좋은 연출가이고 좋은 친구다. 오랜 시간 함께 꿍꿍이를 벌이고 있고, 사적인 고민이나 한국에서 남자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있다. 작가와 배우로서 서로 기대고 혼내고 그런 시간이 좋다. 좋아하는 친구면서, 존경하는 친구다.
그동안 영화가 제주도, 아르헨티나, 쿠바 등 남국에 대한 판타지가 있는 것 같다. 혹은 이상향인가. 그리고 영화에 장현성 씨가 항상 나오는데, 페르소나인가.
성향인 것 같다. 동유럽에서 공부했지만, 남미에 대한 동경도 있다. 서울이 갖고 있는 빡빡함에서 벗어나고 싶고, 그런 쪽을 좋아한다. 탱고나 남미 음악도 좋아한다. 장현성 씨를 통해서 뭔가 특별한 메시지를 나타내는 것 일 수도 있는데, 그건 무의식이다. 어떻게 보면 영화계에서 그런 관계도 부러웠다. 우리 둘의 성향이나 세계관이 비슷하다. 장현성 씨의 성향과 내가 세상을 보는 성향이 공통적인 게 많고, 내가 이 친구에게 기대는 것도 많다.
다른 영화들은 장면전환이 있어서 상념을 정리할 수 있는데, 사실 오늘 굉장히 피곤했다. 이런 작업을 계속할 건지, 앞으로 무얼 준비하는지 알고 싶다.
피곤하게 했다면 죄송하다. 이런 식의 작업을 하기 쉽지 않고, 아까도 말했지만 특정 목적이 있었다. 영화의 어떤 측면을 강조한 거고. 지금, 아주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내년 박스오피스를 강타할 영화를 준비 중이다. (웃음)
쉐엡~~ 쉐엡~~~ ^.^ 아, 그 말 들으면 우리 매력적인 버럭 쉐엡~이 두둥실~ 귀연 우리 요리사, 효진이의 함박 웃음도 더덩실~
그렇게 <파스타>에 빠져 있다보면, 내게도 쉐엡~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지요...^___^
그래서, 짜잔. 박찬일 쉐엡~하고 불러봅니다.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에서 이미 검증된 맛깔진
글과 풍성한 요리 이야기가, 저를 훅~ 매혹시켰습니다.
요리 하나로, 나와 당신의 영혼이 빛날 수 있음을 이젠 확실히 믿습니다. 박찬일 쉐엡~ 덕분이죠.
무엇보다 요리사의 철학. 쉐엡~의 철학. 그것이 가장 빛나고 완전 공감!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의 등장인물인 이탈리아의 슬로우푸드 시칠리아 지부 창립자이자, “요리사란 요리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한 그릇의 요리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통제하고 감시하는 관찰자여야 한다”고 여기는 ‘파또리아 델레 또리’의 주방장인 쥬제뻬
바로네의 믿음. “온갖 인공 첨가물이 들어간 그런 음식을 먹으면 영혼이 파괴된다고 믿었다.”(『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p.130)
무엇보다 요리를 하고 싶도록 만든 대목. “무엇보다 그가 내게 유전자처럼 심어준 건 요리하는
영혼이었다. 그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는 나의 재료로, 가장 전통적인 조리법으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먹는 요리를 만들라’는 요리의
삼박자를 깨우쳐주었다. 모양이나 장식으로 멋을 내는 줄만 알았던 서양요리, 이딸리아 요리의 진정한 승리는 이 삼박자에 있었다는 걸 그는
알려주었다.”(『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p.284)
그리하니, 박찬일 쉐엡~을 직접 알현하고, 그의 요리(혼)까지 섭렵하고픈 욕망이
생기지 않겠사옵니까. 뵙고 싶습니다. 알현하고 싶사옵니다. 쉐엡~ 하고 불러보고 싶사옵니다. ^.^ 내 보통날의 파스타를 만나 내 몸안으로
밀어넣고 싶사옵니닷!
냉정과 열정 사이. 친구들 중에 나를 간혹 '준쉐이(혹은 준셍이)'라고 부르는 넘들이 있다.
당연히 영화(<냉정과 열정사이>)의 준세이처럼 간지나고 잘생겼기 때문이지.
라고.................................하면 새빨간 거짓말이고.^^;
첫사랑을 오매불망 잊지 못해 그녀를 품고 세월을 버티는 순정남이라서.
라고..................................해도 끔찍한 뻥이야. OTL
이유? 단순하다.
그저 내 이름 중에 '준'이 쏙 얼굴을 내밀기 때문이지.
간혹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생각난다. 내게도 있었던 아오이(들).
풋풋한 스무살 시절, 준세이와 10년 약속으로 손가락을 걸었던 여인.
5월25일 피렌체 두오모에서 해후하면서 옛사랑을 복원했던 준세이와 아오이.
어제 밤, TV에서 <냉정과 열정사이>를 방영했다.
영상보다 음악이 더 도드라졌던,
원작(책)보다 밀도와 질감이 미치지 못했던 영화를 다시 응시하면서,
이번에는, 준세이와 아오이보다 다른 인물들에 눈을 맞췄다.
운명(으로 포장된) 사랑을 위해 들러리를 서야 했던,
바퀴벌레 한쌍의 작당에 희생당할 수밖에 없었던 두 사람. 메미와 마빈.
메미는 (아오이 없는) 준세이의 연인이었고,
마빈은 (준세이 없는) 아오이의 연인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정작 마음은 저 멀리 가 있는 연인 때문에 가슴은 가슴대로 앓고,
눈물은 눈물대로 흘려야 했던 그네들.
단지, 주인공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두 주인공이 덧칠하는 옛사랑의 복원 때문에 동원됐지만,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따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들이라고 왜 마음이 없겠는가. 사랑을 왜 지키고 싶지 않았겠나.
그럼에도 주목받지 못한 채 스크린 뒤로 물러서야 했던 그네들의 마음.
냉정과 열정사이라는 제목은,
주인공들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어쩌면, 아오이와 준세이가 복원하려는 사랑이 열정이라면,
그 틈바구니에서 외면당해야 했던 마빈과 메미는 그야말로, 냉정.
누구나 그렇게 자신의 삶에서는 주인공이다.
메미와 마빈에게도 마음이 있고, 사랑이 있다.
조연이라고, 들러리라고 무시하지 마시라.
히스 레저.
어제, <브로크백 마운틴>을 돌려보고 싶었다.
동료에게 그 말을 했다. 카페에서 그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고.
어제 1월22일이 그의 2주기라서. 좋은 생각이라고 했다.
집의 DVD 플레이어는 고장났다. 브로크백 마운틴을 삽입해도 소용이 없다.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도 보고 싶었지만, 결국 보지 못했다.
히스 레저를 생각하면,
그냥 딸 마틸다가 눈에 밟힌다.
내 딸도 아니고, 아무 연관도 없는 아이임에도.
올해 여섯 살이 되었을 마틸다.
아빠의 존재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느닷없이 곁을 떠나야 했던 아빠의 부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마틸다 레저가,
세상의 악행과 슬픔을 잘 견뎌나가길.
거칠고 더러운 공공연한 비밀을 품은 세계를 헤쳐 나가길.
어느날, 훌쩍 커버린 마틸다를 보곤 '잘 컸구나'하는 탄성을 뱉을 수 있길.
오늘, 봉춘이가 결혼했다.
녀석. 이렇게 훅~ 가게 될지는 우리 친구들 아무도 몰랐다.
다들 놀랍다는 말 한 마디씩 덧붙인다.
원투쓰리(1월23일). 꾹꾹 눌러담은 그 말로 결혼식에 와 달라던 녀석.
몰래 사랑도 아니고, 알기론 너무 미적지근한 사이였음에도,
그렇게도 결혼은 한다. 나로선 의아한 일이긴 해도, 녀석은 녀석의 방식대로!
내가 녀석에 대해, 녀석의 결혼에 대해 재단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행복하길. 아니 녀석에게 행복이 작은 한뼘이라도 늘어나길.
몇 남지 않은 미혹 혹은 비혼에게, 어떡할거냐는 진부한 타박(?)도,
나는 열외인종. "쟤는 그냥 재껴놔." 친구들마저 이젠 인정한다.
뭐 내 의도와는 무관.
나는 독신주의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결혼주의자도 아닌, 회색인간, 열외인종.
그래도, 커피가 나를 달래준다.
메미와 마빈, 히스 레저와 마틸다까지.
아름다운 여자만큼 커피가 좋은 이유. ^.^
사람의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 속밖에 없다지만,
마음의 있을 곳이란, 커피 한 잔에도 있단다.
어쨌든 5월25일 피렌체 두오모에는 갈 테닷!
피렌체 두오모에서 커피 한 잔 마실테고.
그 순간, 당신이 함께였으면 좋겠다. :)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날, 내 일터이자 서식지로 향하는 버스 안, 김연수의 새 책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읽고 있었다. 그 무렵, 내 서식지에선 용산참사 현장에서 주워온 냉장고, 간판, 문고리, 숟가락, 도마, 컵, 선반 등 자질구레한 물건들과 예술가들의 현장작업이 결합된 전시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영정도 있었고, 고인과 유족들의 일상이 깃든 사진도 있었다. <용산포차, 아빠의 청춘>이라는 이름의 전시. 200일이 넘었지만, 다섯 분의 철거민과 한 분의 경찰관이 죽었지만, 진상규명은커녕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는 시대의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함이자, 그들을 위무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날 마침, 이 전시의 특별한 행사가 있었다. 막걸리와 빈대떡 등을 파는 일일 포장마차를 운영, 수익금 전액을 용산 참사의 유가족들에게 전하기 위한 행사. 그 행사를 향해 가던 버스 안, 나는 해당 소설집의 단편,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를 읽고 있었다. 우연찮게 그 단편은 용산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편의점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온 동료들이 다시 사무실로 들어오는 걸 보고 내가 화면을 끌 때까지, 거기에는 타오르는 불꽃과 시커먼 연기와 아래에서 솟구치는 물줄기가 침묵의 공간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날 새벽, 거기서 여섯 명의 사람들이 불에 타 죽었다는 건 며칠이 지나서야 알았다.”(p.107)
읽고 있던 와중에 나는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 동안 보아오던 영정과 가족사진, 이 아이와 아버지가 함께 찍은 사진도 있었다는 생각이 미쳤다. 윤현구군이 아버지에게 썼다는 편지가 나오는 구절에서, 내 눈물샘은 무방비였다.
“그리고 그렇게 바람을 맞으며 내가 떠올린, 그날 새벽의 타오르던 붉은 불꽃과 시커멓게 피어나던 검은 연기와 아래에서 솟구치는 하얀 물줄기들에 대해서,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히 읽게 된 편지의 구절들에 대해서. "아버지와 아빠에게"라는 구절로 시작해서 "아빠, 나는 아빠가 보고 싶어. 지금은 이 마음 하나뿐이야.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 꿈속에서라도 한번 나와 줘, 나는 아빠를 힘껏 끌어안고 놔주지 않을 거야. 떠나지 못하게 절대 놔주지 않을 거야. 그리고 아빠한테 말할 거야, ‘아버지 사랑합니다’라고"(2009년 1월 용산참사로 숨진 윤용헌씨의 장남 윤현구군이 쓴 편지 중에서)로 끝나는. 아까 내가 울었던 건 그 편지의 구절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나는 얘기했다.”(p.114)
어쩔 수 없이 짊어져야 할 빚. 2009년 1월20일 이후로, 내게 용산은 더 이상 ‘전자상가’로 대변되는 장소가 아니었다. 용산은 이 시대의 몰염치와 패악이 집중된 참사현장이자 아픔이 됐다. 김연수의 글은, 그 전시와 함께 어느 새 용산과 시대의 야만을 희미하게 희석시키고 있는 내 기억과 신경의 나태함을 건드리고 있었다. ‘케이케이’를 사랑했던 미국인 작가(「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마냥, 정말이지, 나도 그랬다. “‘무엇도 영원한 것이 없는, 스쳐 지나가는 것들로 가득한, 좌충우돌의 도시’에서 떠나고 싶다. 지금 당장.” (p.20)
아니 그런데, 너는 용산참사와 아무 관계없는 놈 아니었냐고? 참사의 희생자들 가운데 알거나 관련 있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 그렇다고 막장식 살인진압을 지휘하거나 감행한 국가권력과도 연관을 지은 것도 아니면서, 무슨 얘기냐고?
글쎄,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렇다면 한번 들어보자. 용산참사의 현장을 접했던, 망설였으나 글을 통해 이를 말할 수밖에 없었던 김연수의 이야기. 지난 21일 가을비 내리던 저녁, 대학로의 연우무대에서 독자들과 함께 공기를 나눈 김연수의 이야기. 때로는 모노드라마처럼 관객석에 앉은 독자들을 향해 연기를 하는 것 같았던 김연수의 이야기. 한편으로 함께 호흡하면서 저녁시간을 공유한 우리의 이야기. 그런 우리가 정말, 용산참사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걸까. 이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이글을 쓰고 있는 나는, 그저 안드로메다와 지구 사이의 거리만큼 떨어진 광년에서 숨 쉬는 것일까. 일단 들어보자.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작가의 말에는, 책 뒤표지에는 이런 말이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무슨 교과서 혹은 꼰대 같은 말이냐고? 그러게 말이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모범생 같고 성실하다고 그랬는데, 요즘은 그러지 않는다. 사실, 난 모범생이 아니다. (웃음) 처음 이 문장을 소설에 쓰고픈 생각은 없었다. 무슨 교장선생님 말씀 같지 않나? 다들 노력하는 거, 별로잖나. 누구든 노력 안하고 뭐든 성취했으면 싶고...”
김연수는 명절을 손꼽아 기다리던 아이였다. 판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날 수도 있는 날. 그랬기에 명절이 끝날 무렵이면 상실감이 몰려오곤 했다. 친척들과 막상 헤어지게 되면 속상하고 맘이 아파서, 정작 방에 박혀서 혼자 슬픔을 감내하던 소년. 어릴 때는 참으로 궁금했다. ‘좋았던 시간들은 왜 끝나고 마는가.’ 살다보니 그런 고민들은 이어지게 마련이고, ‘차리리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지 않나?’라는 생각까지 했다.
김연수는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 “소설을 쓰면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생각하면서, 내 삶을 보면 괜찮은 것 같다. (웃음) 다른 사람들을 (소설 속에) 쓰긴 쓰는데, 왜 이렇게 사나 싶다. 최근에 그런 주인공들이 많아졌다. 이상(주. 『꾿빠이, 이상』)도 마찬가지였다. 천재였을 것 같지만, 이상은 나랑 비슷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이런 삶을 살았을까, 싶고. 『밤은 노래한다』에서도 그렇고, 지금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소년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여기서도 그렇다. (주인공들이) ‘어떻게 불합리한 자신의 삶을 납득하게 됐는가’를 따져보고 있다.”
그리하여, 작가의 그 말,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는, 최근 5년 동안의 그런 생각들이 농축된 것이다. 자기를 견디는 일에 대한. 자기를 사랑하게 된다면, 자기 인생의 빛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고통 속에서 자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게 사랑이다.” 사랑은, 그렇게 살기 위한 필요충분조건. 살아가기 위해 사랑한다는 것. 사랑하기 위해 살아간다는 것. 그리하여, 우리는 사랑하고 노력하고 살아간다. 비루한 일상을 버티고 견딘다. 사랑한다면, 그렇게 노력한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는 어떻게 나왔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 모르는 얘기는 할 수 없고, 아는 얘기만 하겠다는 김연수. 이 소설집의 크게 두 개의 부류로 나뉜단다. 2005년 5월 출간된 『나는 유령작가입니다』가 그 경계다. 그 책을 다 쓰고 여력이 남아 쓴 3편의 단편(「기억할 만한 지나침」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웃는 듯 우는 듯, 알렉스, 알렉스」)이 있고,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이후에 썼던 소설은, 지금의 상태와 유사한 소설이라는 것이 김연수의 설명이다.
어쨌든 김연수에게는, 소설을 쓰면서 변화가 생겼다. “정확히 무슨 변화인지는 모르겠는데, 문학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난 게 아닌가 싶다. 2007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쓰고, 소설을 쓴다는 것에 정리를 다 했다. ‘그래 이거야. 더 이상 고통은 없어.’라면서. (웃음) 더 이상 쓸게 없더라. 추리소설을 쓸까, 판타지나 SF를 쓸까,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케이케이의…」는 당초 원제가 ‘거무스름한 불’이었다. 편집부에서 제목을 바꿔달라고 해서 바꾼 것이 지금의 제목이었는데, 다시 원제로 바꿔달라고 했다가, 편집부에서 지금의 제목이 좋다고 주장해서, 최종 낙찰됐다. “(이 글을 쓰게 된) 최초의 동기는, 꽤나 의욕적이었는데, LA폭동에 대해 쓰겠다는 것이었다. 르포도 찾아보고 자료 수집을 하면서 반년이 지났다. 그러다 어느 날, 김중혁과 차를 타고 일산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자유로에서 검은 연기가 보였다. 가봤더니, 트럭에 불이 붙어서 타고 있더라. ‘트럭에 불이 났구나’하면서 얘기를 하는데, 어느 순간, 열기가 확 들어오더라. 유리창을 뚫고. 그 열기가 되게 인상적이었다. 물론 김중혁은 그것을 (소설로) 쓰지 않았고, 나는 썼다. 감수성의 차이지. (웃음)”
소설은 대개, 마지막 부분부터 쓴다는 김연수. 특히 단편소설은 더욱 그렇단다. 그래서 그 열기를 느끼면서 마지막 장면이 떠올라, ‘이 소설을 쓸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LA폭동과 교포들의 정체성 등을 쓰려고 했는데, 그렇게 나오진 않았고, 뜻하지 않게 상실의 이야기로 써졌다. 그러다보니, ‘영향’이라는 문제가 생기더라. 정말 살다보면, 전혀 관계없을 법한 것이 내게 영향을 미친다. 그 소설을 다 써갈 즈음, 숭례문이 불탔다. 마감하면서 봤는데, ‘영향을 받는다’라는 명제를 확신했다. 숭례문에 난 불로 인해 내 인생이 바뀔지 모르고, 삶은 그렇게 불합리한 상황에서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 다 쓰고 나서도 잘 몰랐는데, 이렇게 책이 나오고 보니 확실해진다.”
“나는 숭례문의 그 불꽃에 영향을 주고 또 영향을 받았다. 미신과도 같은 이야기지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p.317 ‘작가의 말’ 중에서) “이 우주의 90퍼센트는 그렇게 우리가 볼 수 없는, 하지만 우리에게 오랫동안 영향을 미치는, 그런 불들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물론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그 불들을 보지 못하겠지만.”(p.32)
「기억할 만한 지나침」은 『나는 유령작가…』의 여력이 남아, 소설적 도전을 많이 할 시기에 쓰인 단편이다. “여성화자에 도전할 때였다. 당시는 중요한 문제였다. 결국은 화자에 가닿을 수 없다고 보는데, 실패할 수밖에 없는 거지만, 그 실패가 날 유혹했다. 여성화자로 쓰고 싶다는 생각에 한창 많이 썼는데, 그 중의 하나다. 그런데 정작 여성분들은 이럴 수 있을까, 이러더라. (웃음) 어쨌든 도전해보고 싶어서였고, 열여덟 여자를 주인공으로 했다. 한창 소녀들에 빠져 있을 때였다. (웃음) 문학작품의 소녀들이 어떤 행동방식을 보이나 조사도 했고. (마르그리트) 뒤라스 소설이나 롤리타와 같은. 그때 알게 된 소녀들의 비밀을 이 소설에 쓴 거다.(웃음) 말이 되나?”
「세계의 끝 여자친구」의 시작은 전적으로 노래 때문이었다. 무척 좋아하는 노래 세 개 가운데, 밝고 맑으며, 달리기를 하고픈 욕망을 불러일으킨 노래. 그리하여, 일산의 호수공원을 달리기하다가, 기념식수를 여러 번 보면서 뭐가 되겠다 싶은 직업의식도 발동하고. 부근의 자주 찾아가는 마두도서관의 설립 초기, 책이 부족할 무렵에 기증됐던, 기증자 이름이 박힌 책도 그를 자극했다. 일산 라페스타 근처, 그의 작업실이 있는 곳엔 신호등이 많은데, 그 신호등을 피해 메타세쿼이아 길이 있단다. 그 기분 좋은 메타세쿼이아 역시, 소설에 한몫했다.
“이렇게 노래부터 기념식수, 기증자의 책처럼 뭔가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 때가 있다. 메타세쿼이아에도 뭔가 있을 것 같아서 조사를 했더니 소설에 들어있는 그 사실이 있었다. 그러니 자신에 대해 얼마나 확신을 가지겠나. 소설가라면 지어서라도 써야하는데, 이렇게 역사적 사실까지 있다니. (웃음) 쓰고 나서 되게 기분이 좋았다. 원고를 보내고, 일산주민들을 위한 낭독회가 있어서 읽어주기도 했는데, 배경이 주변에 있는 일이니 기분이 무척 좋았다. 음악이 감춰진 기억을 끄집어내서 쓴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는, 용산참사를 접한 뒤 나온 단편이다. “지금도 고민이다. 예를 들어 동시대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소설로 형상화할 때, 어디까지, 어떻게 할 수 있나,를 고민한다. 올 1월 용산을 보고 충격이 엄청났다. 그 이후도 다 충격이지만. 용산 지날 때마다 거대한 물음표가 생긴다. 쓸 수 있다, 없다,를 넘어 벽이자 난관이었다. 그걸 쓴다고 했을 때, 쓸 수 있을까. 처음에는 없다고, 결코 쓸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쓸 수 없다고 결론을 냈지만, 그럼에도 써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고민하다가 이렇게 나왔다.”
그가 용산을, 담는 것과 별개로,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 아녔을까. 그는 촛불을 이야기했다. 촛불시위 때 많이 나갔다는 그는, 그곳에서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감정을 새삼 실감했다. ‘같이 겪고 있구나.’ 국가권력이 물대포를 쏘아대고 있을 때도, ‘이게 우리한테 일어나는 일이고, 경험하고 있구나’하는. 같이 물을 맞고 같은 감정을 겪는 느낌, 그래서 되게 따뜻했던 느낌.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을 쓸 때, 고민이 많았고, 아직 해결이 되지 않았고, 아직까지 고민 중이다. 좋았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몰랐던 것을 알게 됐다. 우리는 지난 2년 동안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그 기간 생각해보면, 촛불, 용산, 대통령의 서거 등 우리는 많은 사건과 감정을 공유했다. 그런 공유지점이 많아서 지난 2년을 생각하면 내 얘기를 해주고 싶고,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고 싶었다.”
이는 그에겐 큰 변화의 징후를 거친 시기였다. 대화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김연수였다. 그러나 이 시기를 관통하면서 소설을 통해 말을 걸고 말을 듣는 것에 익숙해지고, 그게 가능하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물론 통하기 위해서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존재해야 하는데, 그 2년은 신뢰를 쌓게 한 시간이었다. “아직은 자신 없지만, 그런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각각의 삶은 하나씩의 이야기이고 그 이야기들은 서로 연결돼 있으니, 우리는 어디에서 무엇으로 살더라도 결코 혼자가 아니다. 한쪽 끝을 건드리면 다른 한쪽 끝이 떨린다. 그 공명과 공감 속에서 예수 시절 이래의 ‘정의와 아름다움’이 이어져올 수 있었다.”(pp.294~295)
김연수, 묻고 답하기
처음 제목을 봤을 때, 하루키의 소설(『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이 생각났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가 가장 좋았는데, 하루키의 『댄스 댄스 댄스』가 생각나기도 했다. 일말의 연관성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나.
음악에서 이름을 빌려온 거라서 하루키 생각은 안 했다. 딱 떠오른 느낌은 여자의 세계의 끝까지 간다는 것. 한 여자와 갈 수 있는 먼 세계의 끝이 어딜까 생각해봤다. 그건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감정적 장소일 것 같다. 그래서 제목을 빌려왔는데, 사람들은 하루키의 소설을 이야기하더라. 하루키 소설 읽는 것은 좋아하지만,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지금 읽고 있는 『1Q84』를 보면 좀 이상해졌다. 할아버지가 됐는지, 굉장히 멋진 얘기를 한다. 방향에서 보자면, 여전히 사람에 대해 쓰고 있고. 참, 우리나라 평론가나 언론이 말하는 하루키는 대중소설가적인, 한국소설을 망치게 한 주범이다. 그런 의미라면, 누가 하루키를 좋아하겠나. 내가 보기엔 그는 괜찮은 사람 같다. 만나본 적은 없지만.
2년 동안 좋은 일, 안 좋은 일 겪으면서 공감되는 사람도 찾았지만,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화해할 수 없는 사람도 보이더라. 그러니까, 「내겐 휴가가 필요해」의 ‘최’ 같은 사람. 그런 사람과는 어떻게 대화해야 하나.
나는 편애하는 게 좋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해주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그냥 예의만 지키고 살고, 예의를 지키지 않으면 지적하고. 안 맞는 사람도 많은데, 싫어할 이유는 없고 그냥 내버려 두면 되지 않을까. 글쎄, 답을 잘 못하겠다. 잘 알지도 못해서. (웃음)
그 질문 사이에서, 나는 어떤 ‘이해’에 대한 우리의 오해를 생각했다. ‘이해한다’는 흔한 말, 그럼에도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이 진짜 가능할까라는 의문. “우리는 모두 헛똑똑이들이다.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사실들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 대부분은 ‘우리 쪽에서’ 아는 것들이다.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것들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런 처지인데도 우리가 오래도록 살아 노인이 되어 죽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어리석다는 이유만으로도 당장 죽을 수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 삶에 감사해야만 한다. 그건 전적으로 우리가 사랑했던 나날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이해되기만을 기다리며 어리석은 우리들을 견디고 오랜 세월 버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맞다. 좋고 좋고 좋기만 한 시절들도 결국에는 다 지나가게 돼 있다.”(p.81)
「기억할 만한 지나침」과 같은 여성화자는 무리가 아닐까 생각했다. 우선 여자인 나도 이렇게 여우 같이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웃음) 혹시 아저씨가 바라본 시선 아닌가. 그리고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에 공감이 참 많이 됐다. 삼십대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기억할 만한…」의 열여덟 소녀는, 내가 만나보고 싶은 소녀 얘기를 한 거다. (웃음) 사실 그런 십대 여성이 있을 것 같지는 않고, 내가 만든 소설 같은 느낌이 든다. 「당신들 모두 …」는 쓰고 나서 좋아한 소설 중의 하나다. 찌질한 삶의 양태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허세를 부리고… 나는 서른이 되기 전에, 비장하게 돈이나 벌자, 소설 같은 거 말고, 이렇게 생각하고 출근을 하게 됐다. 일산에서 3호선을 타고 동국대까지 출근을 하는데, 너무 놀랐다. 아침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출근을 하는지, 진짜 감동적이었다. (웃음) 술을 새벽까지 늦게 마시고, 다음날 제 시간에 출근도 하는 거다. 정말 대단했다. 술을 그렇게 마셨는데도, 뭔가 만들잖나. 이런 삶을 반복적으로 하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다른 마인드도 있구나 싶었다. 삼십대 초반에, 인생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알았다. 부탁이 있다면, 삼십대에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거다. 심각해도 바뀌는 게 없다. (웃음)
그렇다. 비장하지 말기. 나는 너무도 비장하게 살아가라고 다그치는, 나잇대에 따라 사람이 이러저러해야 한다고 설파하는 그런 것들이 싫다. 미래를 위해 현재는 희생하고, 한 우물만 파서 그러면서, 종국엔 ‘대박’나라고 외쳐대는 꼬라지가 싫다. 그런 책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가 죽을 것처럼 말한다. 아니 죽어 마땅하다고 옆구리를 쿡쿡 찔러댄다. 왜 우리는 좀더 재밌게 살면 안 되나. 꼭 심각해야 제 맛인가. 우리에겐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가 책에서 발견한 것과 같은, ‘내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든가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등의. 그게 역사서든, 과학서든, 철학서든, 일 년 동안 닥치는 대로 책을 읽은 뒤 그가 알게 된 진리는 그처럼 단순했다.… 도서관에 있는 그 어떤 책을 들춰봐도 거기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또 노인이 다시 젊어져 새로운 인생을 살아갔다는 이야기도 나오지 않았다. 어이없게도 삶은 단 한 번만 이뤄질 뿐이며, 지나간 순간은 두 번 다시 되풀이되지 않는다고, 그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들은 말하고 있었다.”(pp.169~170)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음흉하고 음침한 역할이었다. 그 영화를 보고 김연수 작가에게 실망해서 오늘 이 자리에 오자고 하니까, 싫다는 변절자(?)도 있었다. 역할이 마음에 들었나? 다시 또 제의가 오면 영화 찍을 건가?
좋아할 리가 없지. (웃음)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아주 좋아한다. 1999년에 직접 만난 적은 있는데, 이번에 조감독이 전화가 왔더라. 시나리오를 살 리는 없는데, 출연을 요청하더라. 처음에는 일 없다고 끊었다. 그런데 도와주고 싶고, 기념도 될 것 같아서 다시 내가 전화를 걸었다. 그래서 건대로 갔다. 연기를 해 보래. 설정을 주고, 열심히 노력했다. 처음에는 소설가로 나가는 줄 알았다. 스탭들이 비열한 배역이라고는 하던데, 알다시피 홍 감독 영화는 시나리오가 늦게 나오잖나. 그저 실수만 안 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사실 영화에 나오지 않은 장면이 있다. 애로배우와 풀장에 뛰어들어서 ‘저 잡아보세요’하면 ‘좋아 좋아’ 박수를 치면서 손잡는 장면이었다. 나왔으면 얼마나 추했을까. (웃음) 다음날 김태우 씨가 그 배우에게 그러더라. 지난주엔 원빈과 키스하고, 이번 주엔 김 작가랑 손잡고...
(웃음)
그 영화, 다시는 안 보고 싶다. 드릴 말씀이 있다면, 김태우, 엄지원, 고현정 씨 등 실제로 보면 되게 예쁘다. 그런데 홍 감독 영화에선 찌질하게 나오잖나. 일반인들이 나온다면 오죽 하겠나. (웃음) 홍 감독의 영화는 카메라가 진실을 보여주는 게 아니고 왜곡시켜 보여준다. 어쨌든 순전히 기념으로, 홍 감독 영화여서, 궁금해서 출연을 한 거다. 다시는 출연 않을 거다.
문장이 즉흥적이라기보다 평소에 아이디어를 저장했다가 내놓는 것처럼 치밀하다. 문장을 쓸 때, 차곡차곡 쌓아서 하나 아니면 즉흥적으로?
문장을 쓸 때, 반복해서 쓴다. 한 번에 쓰는 경우는 흔치 않다. 잘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는 다른 것들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특히 음악. 소설에서 잘 쓴다는 건 다르다. 소설가가 지어낸다기보다는 등장인물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등장인물의 경험 등이 조합돼서 나온다. 작가는 등장인물의 감정이입을 위해 음악을 이용하거나 자료조사도 한다.
괜찮다는 지점에 이르는 것은, 막힘없이 간다는 느낌이 들 때다. 그 때는 잘 썼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은 내가 쓰는 것이 아니라, 소설화자가 쓰는 것이다. 소설가는 소설에 들어가려고 갖은 노력을 하는 거고. 그 다음에 문장이 나오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1인칭을 선호한다. 문장 쓰기가 용이해서. 그런데 3인칭을 가면 문장 쓰는 것이 달라진다.
「달로 간 코미디언」을 여러 번 봤다. 그렇게 보면서 사람이 바뀌어 가는 것을 느낀다. 쓰는 사람도 그런가.
쓸 때마다 달라진다. 소설을 쓰면서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 소설을 쓰기 전에 나는 되게 이상하고, 남 탓만 하고, 참을성이 없으며, 사람을 믿지 않았다. 책 한권을 쓰는 건, 큰 변화는 없다. 그런데 약간 변한다. 1년 정도 되면 창피할 때가 있다. 그걸 느끼면서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최근에는 변화되는 폭이 커지고 있다. 예전에는 ‘초지일관’ 이런 것을 좋아하는 (모)범생이었는데, 소설가가 되고 나서, ‘조삼모사’ 이런 것을 좋아하게 됐다. 다른 사람이 약속 안 지키고 그러면 예전에는 화를 내고 그랬는데, 이제는 뭔가 일이 생겼나보다 싶고. 뭐 내가 바뀌니까, 앞으로는 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웃음)
끝나지 않은 용산, 김연수와 우리의 고민
누군가는 오늘 이 자리, 가을비가 드문드문 내리던 어느 저녁에 김연수를 만난 것을 기화로 그동안 켜켜이 쌓아온 시간의 체적이 폭발하게 될지도 모른다. ‘영향’은 그런 것이다. 한 연인이 1982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시합을 하다가 링에서 쓰러져 죽은 권투선수(고 김득구) 때문에 서로 사랑했고, 2001년 9․11 테러로 무너진 쌍둥이빌딩 때문에 헤어졌듯(「달로 간 코미디언」), 용산참사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어쩌면 이렇게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김연수와 나는,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는 그렇게 빚을 지고 있다. 동시대를 살면서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어쩔 수 없는 빚이다. 삶의 터전을 빼앗겨 살 곳을 묻는 이들에게 국가가 폭력으로 대답하는 시대를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들의 빚. 창을 뚫고 우리에게도 확 들어온 국가권력의 화염과 열기. 우리는 최소한 이것을 뚫고 나가야 한다.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그 처절한 싸움에 우리가 함께하고 있고, 그 흉포한 만행을 잊지 않고 기억할 것임을 우리는 전해야 한다. 김연수는 여전히 그것을 고민하고 있고, 그가 할 수 있는 방법(글쓰기)으로 그 고민을 공유하고자 하고 있다.
김연수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우리도 각자의 방식대로 그에 화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렇게 연결돼 있고, 영향을 미치며, 우리는 별들이니까. “우리는 각자가 하나의 이야기들이고서로 연결되기를 기다리는 별들이다. 그러니 우리가 각자 고독하게 달로 가지 않고 모두 함께 복된 새해를 맞이할 수 있으려면 우리는 주저하지 말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 메리 올리버가 가르쳐준 대로 말이다. "절망을 말해보렴, 너의. 그럼 나의 절망을 말할 테니./ 그러는 동안 세계는 굴러가는 거야."(「기러기」)”(p.313 해설 “모든 슬픔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 중에서)
모든 삶을 어떻게든, 불합리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납득해야한다. 굳이, ‘착해지지 않아도 돼/무릎으로 기어 다니지 않아도 돼.’(메리 올리버의 시 「기러기」의 첫 문장) 어쩌면 훗날, 바로 지금 이후 발생하는 일의 어떤 근원에 용산이 버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생은 서로 물고 물리는 톱니바퀴 장치와 같으니까. 모든 일에는 흔적이 남게 마련이고, 그러므로 우리는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야 최초의 톱니바퀴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pp.63~64)
일일 포장마차는 다행히 용산을 생각하는 이들과 함께 성황리에 마무리됐고, 나는 윤현구군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나는 아빠를 힘껏 끌어안고 놔주지 않을 거야. 떠나지 못하게 절대 놔주지 않을 거야.” 아빠를 뺏기지 않으려는 아이의 안간힘이 자꾸 눈에 밟혔다. 아빠를 안을 수 있는, 아이의 그 사소한 행복조차 지켜주지 못한 이 사회는, 우리가 만들어놓은 이 사회는 대체 무엇일까.
“불편한 자세로, 우리는 물속에서 서로 껴안고 있었다. 우리는 입을 열지 않았다. 물에 젖었건 땀에 젖었건, 내가 사랑한 케이케이의 몸은 언제나 젖은 몸이었다. 나는 케이케이의 젖은 몸이 내 몸에 닿는 게 좋았다. 그 젖은 몸은 보통의 육체와 달랐다. 그 젖은 몸은 보통의 육체와 달랐다. 한없이 부드럽고 또 연약했다. 소년의 몸. 가만히 두면 물에 풀리는 물감처럼,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는, 젖은 몸. 나는 그걸 막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한사코 케이케이에게 매달렸다. 내가 아는 행복이란 그런 것이었다.”(p.21)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단 하나일지라도, 잊지 말아야겠다고. 이 흉포하게 구획된 질서에서 피 흘리는 자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 질서에 순응한다는 것은,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아도 살인에 동참하는 것임을. 잊지 않고, 그 흉포한 질서에 사소한 것이라도 불복종을 해보는 것.
비오는 가을 밤, 우리는 그날 그렇게 만났기에, 김연수와 같은 동시대의 고민을 나누었기에, 나는 그 만남을 엄중하게 담았다. “헤어진다고 하면 그저 멀리 떨어져 지낸다는 걸 뜻할 뿐, 그래도 같은 하늘 아래에 사는 게 아니겠느냐던 안이한 생각이 일순간 사라지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일의 엄중함이랄까, 그런 삶의 무게를 새삼 느꼈다고나 할까.”(pp.100~101)
그리하여, 세상 수많은 아픔 앞에서 고개 돌려 외면하지 않기. 나하곤 상관없어, 내가 그런 게 아니야, 라며 지나치면 이 졸렬한 세상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아니, 그 전에 아무런 악의도 없는 누군가에게, 시스템에 의해 상처를 입게 될지도 모를 일.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 우리 서로의 얘기를 하고 듣자. 그렇게 우리 노력했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샤넬'.
한때는 사치의 대명사로 치부했었다.
그것은 오산. '샤넬'이라는 이름 안에 얼마나 풍성한 이야기가 있는지 알기 전의 오해.
명품이라고 일컫기 이전의 샤넬은 그야말로 어떤 혁명. 특히나 여성들에겐 해방의 이름.
샤넬은, 곧 코코 샤넬.
진부하고 식상한 이야기 한 토막.
세기의 섹스심벌, 마릴린 먼로에게 한 기자가 물었다.
"밤에 뭘 입고 주무삼?" (그따위가 궁금하더냐, 이 기자놈아!)
마릴린 먼로의 우문현답. "샤넬 No.5다, 이놈아." (먼로에 대해서라면 다음 기회에~)
그렇다. 샤넬은 본능이었다.
전세계 여성이 가장 간절하게 원하는 핸드백이,
샤넬 '2.55 퀄팅백'이라지?
1955년, 코코의 60번째 생일을 맞아 선보인,
퀼팅(누빔)처리한 가죽백에 금색 체인을 달아,
어깨에 멜 수 있도록 만든 이 제품.
하나의 2.55를 위해 180여개 공정을 거쳐 장인 6명이,
일주일 이상 정성을 들인다는 이 제품.
(여성의) 손을 해방시킨 것은 물론, 샤넬을 갖는 것을 로망으로 삼게끔 했다.
당시, 오죽하면 이런 말도 있었단다.
"샤넬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여자는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여자가 아니다." 허허.
스타일, 샤넬의 모든 것.
카디건 슈트, 샤넬 슈트, 샤넬 No.5...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터.
하나로 정리하자. 샤넬 스타일(Chanel style). 독창적인 시그니쳐 룩.
가식 따윈 아듀~ 쓸모없는 복장에 대한 저항.
장 콕토는 말했다.
"매력적이면서 호감을 주고, 인간적인가 하면 잔인하며, 때론 너무 지나쳐 보이기도 하는 여자. 분노, 변덕스러움, 친절함, 유머, 반짝이는 생각, 검소함, 그리고 관대함이 샤넬이라는 다시 없을 독특한 여자의 모든 것이다."
장 콕토도 샤넬, 무척 좋아했었나보다. 행간마다 꼼꼼한 애정이 넘친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여자를 어떻게 표현할까.
물론 과장도 있었겠다.
코코는 스스로 "마음이 고약하고 화를 잘 내며 도둑에다 거짓말쟁이, 엿듣기의 명수"라 말했다.
의상 제작에 있어 여성 해방을 적극적으로 내비친 적도 없단다.
그저 샤넬 스타일이, 여성 해방과 연관 지을 수 있는 지점이 나타난 게고,
사후 누군가가 과장했을지도.
코코는 또 사랑에 빠져, 독일 나치의 스파이 노릇도 했다. 왜 샤넬 이야길 꺼냈냐고?
1971년 1월10일, 39년 전, 코코 샤넬이 파란만장한 영욕의 세월을 꺾었다.
미터기도 아닌데, 왜 꺾냐고. 내릴 때가 됐으니, 꺾는 게지.
어쨌든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 샤넬은 (여성) 몸의 혁명을 만든 장본인이다.
샤넬, 알고 입으면 당신은 더욱 멋진 사람.
내게 샤넬은 더 이상 사치의 대명사, 아니다.
샤넬의 옷이건 액세서리건 향수건, 당신의 스타일을 위해서라면 향유해야지.
그러면서 샤넬의 것이 어떤 의미를 품고 있는지, 코코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면,
나는 당신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겠소이다. 하하.
샤넬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21세기의 샤넬이 된다면, 더더욱 얼쑤~~~
P.S. 샤넬은 여전히 개인기업 형태로 운영된단다.
말인즉슨, 주주나 투자자에게 공개한 주식회사가 아니며 경영실적을 공개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적인 사업의 확대나 이윤의 추구만이 샤넬이라는 기업의 모토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란다. 믿거나 말거나, 당신의 몫.
영화 <코코 샤넬>은 보고 싶었는데, 아직 못 봤다. 어떻든가?
오드리 토투의 샤넬. 정말 구미 당기는 조합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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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혁명을 기대한다, 당신도 샤넬처럼
20세기 여성을 해방시킨 패션혁명가에서 엿보는 우리 시대
“20세기 여성 해방에 가장 기여한 사람이 샤넬이다. 코르셋을 벗을 수 있게 만든 사람이 아니냐. 물론 코르셋 없는 속옷을 만든 이는 따로 있지만, 상품으로 팔릴 수 있도록 예쁘게 만든 사람이 샤넬이다. 핸드백에 끈을 달아, 한 손을 풀어준 사람도 샤넬이고. 샤넬은 화도 잘 내고 말도 막 한 사람인데, 살면서 가장 분노했던 사람 중의 하나가 크리스티앙 디오르다. 디오르는 H라인, A라인 등을 만들었는데, 남성의 눈으로 남성이 보기에 괜찮은 옷을 만든 사람이다. 샤넬은 디오르를 향해 반동이라는 말을 썼다. 20대들은 샤넬을 소비하고 싶은 사람이 아닌, 샤넬이 되면 된다. 샤넬은 돈도 잘 벌고 재밌게 살았다. (웃음)”
- 우석훈 (≪88만원 세대≫,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의 저자)의 강연 중-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는, 늘 달라야 한다”
지난 1971년, 39년 전 1월10일. 한 시대가 저물었다. 코코 샤넬. 본명은,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Chanel), 별칭이 코코(Coco). 패션 브랜드이자 아이콘으로서 주로 회자되던 그 이름. 산책을 한 뒤 자신의 침대로 향했던 그녀가 갑자기 소리쳤고 가정부가 달려왔다. “이것 봐, 이렇게 죽는 거야.”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자의 죽음 치고는 황망했나. 아니, 그렇지만도 않다. 어쩐지 죽음을 예감한 뉘앙스 아닌가. 향년 87세. 1월의 찬바람을 살짝 만끽한 뒤, 육신을 접은 것은 영원한 스타일리스트이자 혁명가의 센스일지도.
샤넬의 이름 앞에 혁명가라는 레떼르가 낯설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떠올려보자. 여성을 코르셋으로부터 해방시킨 것, 그것은 몸의 혁명이 아녔을까. 샤넬 이전, 복잡하고 불편한 옷을 감내하고 살아야했던 여성들이었다. 샤넬은 ‘왜 여성만’이라고 반문했다. 손을 움직였다. 우아하면서도 격식을 차리지 않는 의상디자인이 그녀의 손끝에서 나왔다. 답답한 속옷이나 장식성이 많은 옷에서 간단하고 입기 편하며 여성미가 넘치는 스타일이 나왔다.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저지드레스, 슈트, 나팔바지, 단발머리, 트렌치코트, 터틀넥스웨터, 리틀블랙드레스 등. 이른바 샤넬 스타일의 시작이었다. 유행은 흐르고 바뀌어도, 변함없이 애용되는 바로 그것, 샤넬 스타일.
또 들어볼까. 핸드백으로부터 손을 자유롭게 한 것, 무릎 근처로 올라간 치마로 땅에 닿는 긴 치마로부터 벗어나게 해 준 것도 샤넬의 공이었다. 여성용바지 또한. 무엇보다 철 지난 것이 아닌 불멸의 것으로 스타일을 창조한 사람. 기존의 것과 달라야하는 것. 그것은 혁명의 다른 이름. “패션은 복장에만 있는 그 무엇이 아니다. 패션은 하늘에도 거리에도 있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이자 늘 새롭게 일어나는 그 무엇이다.” 잊거나 모르고 있지만, 여성을 옷뿐만 아니라, 시대의 속박으로부터 자물쇠를 연 사람, 샤넬이다. 당신에게 지금 샤넬 제품이 없을지 몰라도, 둘러보라, 샤넬 스타일은 있다.
“일할 시간과 사랑할 시간 외에 또 다른 시간이 필요한가”
샤넬은 사랑하며 살았고, 후회 없이 일했던 사람이었다. 한편으로 세간의 입방아로 비유하자면, 스캔들 메이커였다. 어린 시절의 불행을 보상받으려는 듯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했다. 1895년, 그녀 나이 12살. 어머니가 세상을 뜨자 아버지는 샤넬을 포함한 세 자매를 고아원으로 보냈다. 아버지가 버젓이 있는데도 고아가 돼야 했던 소녀의 마음은 어땠을까. 18세, 낮에는 보조양재사로, 밤에는 카바레에서 노래를 불렀다. 코코란 별칭도 이때 얻었다. 본인은 이를 내켜하지 않았지만.
커리어의 시작은, 젊은 장교 발잔과 연인이 되고 나서부터였다. 그녀는 남성용 승마복과 스웨터 등을 여성용으로 개량하는 솜씨를 발휘했다. 1910년, 발잔의 친구이자 영국 폴로 선수인 아서 카펠과 사랑에 빠진 그녀는 카펠의 도움으로 파리에 여성용 모자 가게를 열고 곧 스웨터, 스커트, 액세서리 등도 취급했다.
하지만 카펠의 죽음은 샤넬에게 지울 수없는 상처를 남겼다. 영국 귀족의 딸과 결혼한 그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뜨자, 샤넬은 “모든 것을 잃었다”며 통곡을 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녀가 남긴 이 말은 카펠의 죽음이 남긴 상흔이 아녔을까. “나는 사랑을 원했다. 그러나 사랑하는 남성과 사랑하는 의상 가운데 선택해야 했다. 나는 의상을 택했다. 내 인생에서 남성들이 없었다면 나의 ‘샤넬’이 가능했을지 가끔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 와중에도 그녀는 도빌룩, 리블블랙드레스 등을 통해 패션의 전설을 기워나갔다. 남성의 눈이 아닌, 여성의 편리에 초점을 맞춘 샤넬 정장도 만들었다. 샤넬은 옷으로부터 만들어지는 혁명을 진두지휘한 혁명가였다. 1921년 5월5일 선보인 ‘샤넬 넘버5’는 당시 연인이자 샤넬이 결혼을 꿈꿨던 러시아의 귀족 드미트리 파블로비치의 소개로 만난 향수전문가 에르네스트 보에게 제작을 의뢰해 선보인 제품이다.
샤넬은 일과 함께 사랑도 멈추지 않았다.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공작, 폴 이리브 등과 사랑에 빠졌던 그녀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첩보원으로 활동한 사건도 있었다. 물론, 이는 그 죽일 놈의 사랑 때문이었다. 13살 연하의 독일군 장교 한스 귄터 폰 딩클라게(슈파츠)에게 빠져 ‘모자 견본’이라는 작전(암호)명으로 활동했다. 그녀는 독일에 협력한 배신자로 구금됐다가 처칠의 영향력으로 풀려났으나, 슈파츠와 함께 스위스의 호텔을 전전하면서 모르핀을 주사했던 시기를 거쳤다.
“패션은 건축, 그것은 균형과 비율의 문제”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여정이었다. 1939년 사업상 부티크를 닫아야했던 샤넬이 패션계에 복귀한 것은 1954년, 71세 때였다. 크리스티앙 디오르가 ‘뉴룩’으로 패션계를 장악하고 있던 시기. 앞서 말했듯, 샤넬에게 그는 가장 분노한 대상이었다. 기껏 여성들이 주체가 되는 옷을 만들어놨더니, 남자의 시각에서 여성을 재단한 옷으로 흐름을 바꿔놓았기 때문이었다. 이 시기에도 그녀는 트위드 슈트, 앞부분이 까만 구두, 금색 체인의 누빈 가방 등 오늘날에도 사랑받는 샤넬 스타일을 창조했다.
샤넬은 그렇게 자기 주체적으로 모든 것을 만들고 자존감을 세운 혁명가였다. “나는 자신이 사용하는 향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여성들이 불쌍하다. 향은 그 자체가 말해야 한다. 향은 은밀하게 속삭인다”라는 말도 남겼다. 그녀는 늘 달라야한다는 혁명적 주체였기에, 문화예술계에 대한 후원도 아끼지 않았다. 물론 염문설도 끊이질 않았고. 그녀는 피카소 등 예술가와의 우정을 위해 최초의 남자 향수 ‘뿌르무슈(Pour Monsieur)’를 만들기도 했으며, 달리, 장 콕토, 스트라빈스키, 헤밍웨이, 콜레트, 그레타 가르보, 마를리네 디트리히 등 수많은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창작활동을 도왔다.
대문호 앙드레 말로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세기(20세기) 프랑스에는 세 이름만 남을 것이다. 샤넬, 드골, 피카소.” 폴 모랑도 그녀를 향해, “19세기의 막을 내린 천사”라고 일컬었다. 그 말은 과장이 아니다. 패션을 건축과 비유하면서 균형과 비율을 강조했던 샤넬은, 종합예술가였다. 스타일 그 자체로 온전한 하나의 세계이길 바랐던.
그는 늘 시대를 읽고자 애를 썼으며, 시대에 함몰되지 않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했다. ‘남들만큼, 남들 보기에’라며,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를 대세처럼 늘어놓고, 획일화될 것을 강요하는 이 몰개성의 시대. 샤넬을 사는 것보다 샤넬이 되는 것은, 우리가 기대하는 가장 현실적인 혁명을 향한 디딤돌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당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