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763호의 피쳐기사인, <영화평론가, 영화평론가를 만나다 ① - 김영진, 이동진, 김혜리 영화가 맺어준 친구들, 언어의 힘을 생각하다>. 무척 흥미롭다. 세 명외에 정성일, 허문영 씨까지 해서 다섯 영화문필가들이 나누는 대화는, 흥미진진한 탁구경기를 보는 것 같다.

뭐 어쨌든, 말하고자 하는 건, 그 내용이 아니고, 좀 엉뚱한 거다. 피쳐기사의 첫 장면에 김영진, 김혜리, 이동진 씨가 함께 찍은 사진이 나온다. 사진을 보자마자 팡~ 터졌다. 김혜리 여사님의 자연스러운 포즈와 표정에 비해, 사람남자 둘의 포즈와 표정은 뭐랄까. 뭔가, 불편함과 어색함을 견딜 수가 없다는 표정이다. :)

사진은 여러모로 재미난 대비를 이룬다. 시소를 놓으면 사람남자 둘 쪽으로 기울어야 할 듯 싶지만, 구도 등 여러가지를 봐도 왠지 균형을 이루는 모양새다. 희한하기도 하지. 뒤에 있는 나무들을 봐도 그렇고. 참 재미난 사진이다.

김영진 씨는 몇 년 전, 그가 <필름2.0>에 적을 두고 있을 무렵,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물론 그는 기억 못하겠지만) 목소리 좋고, 글 좋고, 무게감 짱이다. 이동진 씨는 광화문의 커피스트에서 수다를 떨었던 적이 있고, 몇 번 그가 초대된 행사에 간 적이 있는데, 의외로 유머가 좔좔좔. 그의 글과 다른 재미를 볼 수 있다. 


어쨌든, 나는 이 사진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 본인들은 어찌 느끼는지 모르겠으나. ^^;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환상의 빛>을 봤다. 전설처럼 제목만 설핏 들었던 그 영화. 당최 뭐라 표현할 수 있는 재능이 내겐 없다. 이동진 씨가 그 자리에 함께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빠돌이'였구나. 괜히 반가웠다. 나는 빠돌이까지는 아니지만, 고레에다 감독 작품을 참 좋아한다. 특히, <원더풀 라이프>. 이동진 씨도 참 좋아한다고 했다. 괜히 또 반가웠다.

<환상의 빛>은, 동명의 원작에 나온 구절로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 좋겠다.
“비 그친 선로 위를 구부정한 등으로 걸어가는 당시의 뒷모습이 뿌리쳐도, 뿌리쳐도 마음 한구석에서 떠오릅니다.”(p.12) 그날의 기록이다. <환상의 빛>이 내 마음에 틈입했던 기록. 



‘왜 나는 당신을 잊지 못하는가’

<환상의 빛> 출간기념 영화평론가 이동진과의 대화


“다만 삶의 하중荷重이, 그 무게가 불현듯 어깨를 짓누르고, 일상의 생의 부담이 가시처럼 마음에 박혀들면 홀연히, 스스로 꿈결처럼 사라지고 싶은 것이다. 그뿐이다. 단순하다면 단순하고 질박하다면 그런대로 또 질박하다.”(『도깨비 본색, 뿔난 한국인』, p.251)


물론, 아무도 모른다. 본인만 알 것이다. 스스로 꿈결처럼 사라지고 싶은 욕망. 아니, 자신도 모를 수 있다. 그저, 그 순간이 다가왔을 뿐. 걸어도 걸어도, 알 수 없는 것일 수 있다. ‘주무주주(住無住住)’라고 했던가. 머무름이 없는 곳에 머무는 것, 그것이 곧 머무름이라고 했던. 바람이 분다.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떠남은, 분명 그런 것이다. 이 자리에 있고도 없어지고 싶은 욕망 같은 것.


안타깝다. 어디서 본 표현이었을까. 출처를 미처 적어놓질 못했다. “사슬을 풀고 구름이 되고 싶다. 연줄을 자르고 안개가 되고 싶다. 연관의 고리를 부수고는 물 흐름이 되고 싶다. 우리는 그러기를 바라는 존재다.”


<환상의 빛>.

<원더풀 라이프> <아무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 <공기인형> 등을 연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이 영화를 보고, 원작인 「환상의 빛」을 읽고, 퍼뜩 메모해놨던 이 표현이 틈입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지 3개월 밖에 되지 않았으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혹은 끊을 수밖에 없었던 그 남자의 마음이 아녔을까. 혼자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실상은, 아무도 모른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유미코. 남겨진 사람. 남편이 훌쩍 그렇게 떠난 이유를 알고 싶지만, 당최 알 수 없다.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만, 불쑥불쑥 침입하는, ‘왜’를 지울 순 없다. 생은 그렇잖나. 바삐 길을 가면서 모퉁이를 돌다, 전혀 예기치도 않게 첫 번째 첫 사랑을 만날 수 있듯,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가도, 아니 10년을 떠올리지 않다가도 느닷없이 한 순간을, 생각을 만난다. 하물며, 어떤 이유도 남기지 않고 떠난 사람에게서야. 하지만, 남겨진 사람은 그것 때문에 통증이 온다. 허무함을 온 몸으로 맞닥뜨리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을 감내해야 하며, 느닷없는 슬픔을 만나야 한다. 마침내, 삶에 덕지덕지 묻은 부조리를 참고 견뎌야 하는 것도 온전히 남겨진 자의 몫이다.


그래서일까. 그저, 먹먹했다. 내겐 달리 표현할 방도도, 필력도 없다. 적어도 내게, 그 빛은 환상적이진 않았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식상하고 진부하다. 내겐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무엇이었을 뿐. 어둠과 빛을 등가로 놓는 감독의 시선에 마음이 때론 덜거덕거렸다. 특별하고 유별난 삶을 다룬 것도 아니었다. 어떤 사회를 직접 비춘 것도 아니었다. 인물을 묵묵히 따라갔을 뿐인데, 그 카메라엔 삶이 묻어났다. <원더풀 라이프> <죽어도 죽어도>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형이라. 명백한 인장이자 징표가 있었다. 나, 이런 사람이야, 라고 대놓고 말하진 않지만, 영화는 이미 그렇게 말하고 있는.


지난 7월13일, 서울 낙원동에 위치한 서울아트시네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환상의 빛> 상영회였다. 원작인 『환상의 빛』(미야모토 테루 지음/송태욱 옮김|서커스 펴냄) 출간 기념. “미야모토 테루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 위에 걸쳐 있는 박명의 빛줄기를 바라보며, 시간의 소금기가 묻어 있는 아름답고 쓸쓸한 문장들을 또박또박 적어나간다”고 추천사를 썼으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열혈 팬인 이동진 영화평론가와 함께 한 시간이었다. 


영화가 끝난 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영화가 아름답고 쓸쓸한데, 장면 몇 개를 잘라서 벽에 걸어두고 싶은 느낌이다. 그런 느낌 한편으로 (그렇게 하면) 한 달 뒤,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다. (웃음)” 지금부터 이것은, 그와 관객이 함께 나눈 기록의 일부다. 그 옛날, <원더풀 라이프>에 흠뻑 빠졌던 나는, 그 역시 이 영화의 신봉자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무척 반가웠다. After Life…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맺은 인연


“저는 동시대 외국 감독 중에선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정말 좋아합니다. 물론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최고의 감독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얘기하면 <원더풀 라이프>를 선댄스 영화제에서 처음 봤을 때의 경험 자체가 아주 강렬하게 남아 있어요. 그땐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누구인지도 몰랐지만 매우 깊은 정서적 충격 같은 게 있었거든요. 그런 경험을 선사한 사람에 대한 원초적 끌림 같은 것일 수도 있겠죠.” (씨네21 763호, <영화가 맺어준 친구들, 언어의 힘을 생각하다> 중에서)


이동진 평론가는 말하자면, ‘고빠(고레에다 히로카즈 빠돌이)’다. 현존하는 감독 중에 특히 좋아한다다. 고레에다 감독은 데뷔작인 <환상의 빛>을 포함, 근작인 <공기인형>까지 7편의 장편을 만들었다. <환상의 빛>을 찍기 전까지 TV다큐멘터리 등을 찍다가 뒤늦게 영화를 시작한 늦둥이인 셈인데, 이 영화로 좋은 반응을 얻으며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고레에다 감독 작품 중에 처음 본 것은 <환상의 빛> 아니고 <원더풀 라이프>(1998)다. 과할 정도로 좋아한다. 고레에다 감독 필모 중 가장 잘 만든 것은 <걸어도 걸어도>지만, 제일 좋아하는 건 역시나 <원더풀 라이프>다.”

 

1999년 선댄스 영화제에 간 이동진 평론가. 이런저런 시놉시스를 훑어보다가 재밌겠다 싶었던 것이 <원더풀 라이프>. 고레에다 히로카즈?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신인인가? 그런데, 이건 뭔가. 영화를 다 본 뒤, 다리가 꿈쩍을 않는다. 감동 먹어서, 영화에 취해서. 별 수 없이 관객과의 대화까지 지켜보게 됐다.


여든 살 가량으로 추정되는, 캐나다에서 오셨다는 할머니가 손을 들고 영화에 대한 소감을 말하는데, 뭐랄까, 묘했다. <원더풀 라이프>에 나오는 할머니를 언급하면서, ‘나는 오늘 내 평생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봤다’며 예찬을 했다. 그리고선 고레에다 감독이 말을 시작하는데, “아, 저런 사람이니까 이런 영화를 찍는구나 싶더라. 친절하고 겸손한 태도에 대해서도 감동을 받았다.” 감동 두 배. 이동진이 고레에다에 빠진 날.


그 해 가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원더풀 라이프> 상영됐다. 극강이었다. 이동진 가라사대. “여태껏 내가 간 부산국제영화제의 모든 GV가운데 가장 뜨거웠던 GV였다.” <공기인형>이 개봉했을 때, 주연배우였던 배두나와 인터뷰를 했다. 배두나가 던진 진담 혹은 농담? “고레에다 감독이 무척 멋있어서 미혼이었다면 프러포즈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저 흘려들어도 좋을 만큼의 농담이지만, 유부남만 인기 좋은 더~러운 세상.


물론, 아무리 좋다손 고레에다 감독에 대한 아쉬움, 왜 없겠나. 완벽한(?) 감독에게 딱 한 가지 없는 것. 그러니까, 네(사)가지까지는 아니고. “꽤 많이 만나본 감독 중 하나고, 고레에다 감독도 날 알게 됐다. 그의 영화는 모두 DVD로 소장하고 있는데, 세 번째 영화인 <디스턴스>만 없다. 만났을 때, 그 얘길 하니까, 반색을 하며 보내주겠다는 거다. 주소를 적어줬는데, 1년이 지나도 안 오더라. <걸어도 걸어도> 국내 상영 당시에도 인터뷰를 했는데, 끝나면서 이 얘길 하니까, 너무 미안해하면서 다시 주소를 받아갔다. 지금, 1년 반이 지났는데...(웃음) 그거 하나만 빼고는 완벽하다.” 고레에다 감독님, 들리세요? 줄 건 주셔야죠. ^.~


환상의 빛, 책과 영화 사이



<환상의 빛> 원작이 번역 출간되면서, 추천사 얘기가 들어왔다. 사실 고레에다 감독 때문에 책을 들었다. 그의 데뷔작을 잉태한 원작은 어떨까. 한 장 두 장 넘기면서 깜짝 놀랐다. “어떤 면에선 소설이 (영화보다) 더 훌륭한 면도 있다. 플롯으로 읽는 소설이 있는데, 이 책은 문체로 읽는 소설이었다. 표제작인 「환상의 빛」은 중편인데, 문장을 보니 활자에서 소금기 같은 냄새가 났다. 짠 내. 문장이 워낙 좋아서 추천사에 그렇게 썼다. "…시간의 소금기가 묻어 있는 아름답고 쓸쓸한 문장들을 또박또박 적어나간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남성 소설가가 여성을 화자로 서간체로 풀어나간다는 점이었다. 시쳇말로 ‘삑살이’도 없을뿐더러, 여성 작가도 써도 이렇게는 못 쓸것 같을 정도. 번역도 상당히 좋았던 데다, 예상 외로 소설이 무척 좋아서 기분 좋게 추천사를 썼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소설은 영화보다 내용이 풍부하다. 고레에다 감독은 내용을 최대한 줄이자고 작심한 듯 영화를 풀어나간다. “소설에서 유미코가 다미오에게 시집가는 날, 기차 안에서 재일교포 여자를 만난다. 상당히 좋다. 그런데, 영화에선 생략됐다. 또 영화의 첫 장면. 유미코의 어린 시절에 할머니가 집을 떠난 뒤 ‘아들이 죽여서 구들장에 묻었다’는 소문이 도는데, 경찰이 이를 확인하기 위해 구들장을 파본다. 물론 없다. 소설에 있는데, 영화에선 묘사가 안 돼 있다.”


고레에다 영화의 원형이 고스란히


영화는 고레에다 감독의 원형 같은 부분이 역시 있다. 이야기가 될 만한 부분을 거세하고 길을 거닐거나 노동을 하는 장면을 길게 보여준다. 특히, 남겨진 사람에 대한 이야기. 고레에다 감독은 대개 자신이 직접 쓴 시나리오를 영화화하는데, <환상의 빛>은 원작이 있었다. 그럼에도 남겨진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고레에다 감독의 머릿속 꼬마전구가 ‘반짝’했을 가능성도 제시됐다.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는 비유적으로 ‘박명’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엷을 薄, 빛 明. 일기로 말하자면 해가 뜨는 순간과 지는 순간, 두 번이다. 두 번의 시간이 중요하다. 가장 인상적인 이 시간을, 영화는 프레임을 세로처럼 쓰면서 보여준다. 가로 프레임에 변화를 주기 위해 문이나 벽을 이용하는데, 열린 문 사이로 좌우 벽을 보여주고 내부를 어둡게 보이게 하면 흡사 세로 프레임처럼 보인다. 봉준호 감독이 세로 프레임에 애착이 많다. 이 영화 그런 게 많다. 고레에다 감독이 좋아하는 앵글 중 하나가 실내는 어둡고 바깥은 밝은 거다. 어둠에서 빛을 향해 찍는. 근경의 어둠은 실내, 원경의 빛은 실외인 장면을 애호한다. 나는 그것이 폼 잡기로서의 애호가 아니고,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를 드러내는 징표라고 본다.”

 

그러니까, 지금 삶은 어둠이자 실내에서, 빛은 저 멀리 바깥에, 작은 부분으로 존재한다. 그런 면에서 고레에다 감독에겐 어둠 속에서 빛을 갈망하는 눈빛 같은 게 있는 것이 아닐까, 그는 진단한다. 빛을 향해 달려가는 장면이, 이 영화에도 첫 장면부터 있으니까. <원더풀 라이프>에서도 그렇듯.


“이건 감독의 인장 같은 거다. 오우삼의 흰 비둘기 같은 거. (웃음) 스타일면에서 이런 특성이 있는 한편, 이야기 측면에서도 그런 게 있다. 이 영화의 이야기를 보면, 저밀도잖나. 드라마틱한 얘기가 있을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얘기라면 아내가 한 대 후려친다거나 남자를 찔렀을 것이다. 이렇게 관습적으로 할 수 있는데, 이 영화는 그런 게 없다. 재혼도 자연스럽고. 그게 원숙한 시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은 지 세 달이 되었을 때 저는 이유도 알 수 없는 자살이라는 형태로 당신을 잃었습니다. 저는 그 후 허물처럼 살아왔습니다. 당신은 왜 자살을 했을까, 그 이유는 대체 뭐였을까, 저는 멍해진 머리로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러다가 생각하는 데 지쳐서 아무래도 좋다는 마음이 되어 집주인 부부가 꺼낸 재혼 혼담에 어느새 휘말리고 말았습니다.”(p.47)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 그리고 남은 여자. 이동진은 여자의 마음을 따라 간다. 첫 아이를 낳고 3개월, 그러니 생활력도 왕성할 즈음, 아침에 시시덕거리며 출근했던 그 남자. 그런데 왜 죽음을 택했을까. 왜, 왜, 왜! “얼마나 괴롭고 답답하겠나. 영화엔 안 나오지만, 둘이 어려서부터 친구다. 그런데, 이 남자가 죽은 거다. 별별 생각을 다 하는데, 그러다 세월이 지나고 깡촌으로 시집을 가고. 끝까지 해답을 주진 않는데, 영화는 소설보다 조금 더 나간다.”


그것이 클라이맥스였다. 여자가 지금의 남편과 바닷가에서 대화하는 장면. “좋긴 한데, 과하다고 생각한다. 환상의 빛, 바다의 유혹, 죽음의 유혹 같은 건데, 프로이트식으로 말하면 타나토스에 대한 근원적인 유혹이랄까. 살아야겠다는 유혹도 있지만, 스스로를 소멸하고픈 욕망도 있잖나.” 삶과 죽음 사이의 외줄타기. 연인 사이에만 ‘밀당(밀고 당기기)’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도 밀당이 있다. 생사, 그 다르지 않은, 분리되지 않은 그 무엇.


“이제 아무래도 좋아, 행복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아, 죽는다고 해도 좋아. 뿜어져 올랐다가 흩어져 날아가는 커다란 파도와 함께 그런 생각이 자꾸만 가슴속에서 일어났습니다. 저는 어린아이처럼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당신이 죽었다는 것을, 저는 그때 확실히 실감했던 것입니다. 아아, 당신은 얼마나 쓸쓸하고 불쌍한 사람이었을까요.”(p.60)


남겨진 사람, 이유를 알고 싶은 사람



그는 그리하여,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속성을 들먹인다. 이유를 찾고 싶은, 해답이 없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생각해보라. 셀러브리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신문은 방송은, 어떻게든 ‘왜’를 규정짓고 싶어 안달이다. 스스로 죽음을 택했을 때, 이유가 단순하게 하나일까. 그럼에도 신문의 사회면은, 인간이 해답이 없는 것을 견디지 못함을 증명하듯, 불쑥 내뱉는다. “폭음을 한다?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잖나. 사실은 90%가 알코올 중독이라서 마신다. 그런데도 이유를 댄다. 마약도 마찬가지다. 트라우마니 뭐니 하면서, 사람은 이유를 갖다 댄다.”


“아아, 당신은 그냥 죽고 싶었을 뿐이구나, 이유 같은 것은 전혀 없어, 당신은 그저 죽고 싶었을 뿐이야.”(p.59)


다시 돌아가, 이 영화는 고레에다 영화가 그렇듯, 남겨진 사람의 이야기다.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초지일관 남겨진 사람 혹은 던져진 사람의 이야기. 그러니까, 이 영화, “남편이 왜 죽었을까, 는 삶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으로 환원할 수 있다. 삶이란 무엇일까, 질문했을 때, 답이 주어질리 만무하잖나. 그 질문을 곱씹으며 살아야 하잖나. 그것이 <환상의 빛>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의미를 추구하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며, 뒤집어 말하면 의미가 애당초 없었을 때 그것을 견뎌내야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동전의 양면인데, 텍스트가 과장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가 든 예는, 여자가 지하실 계단을 닦는 장면. 오랫동안 여자는 계단을 닦는다. 한참 그것을 보여주던 카메라는, 여자가 멍하니 서 있는 것도 따라간다. 그때, 남편을 생각했다고 가정한다면, 근원적인 질문은 그렇게 느닷없이 삶에 틈입한다는 것.


“아무리 중요한 문제라도 끊임없이 그 문제만 고민하는 인간은 없다. 어느 순간 갑자기, 그 남자는 왜 죽었을까, 하고 질문을 던지고 부재와 쓸쓸함이 느껴지지만, 이 여자의 재혼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팬티 하나만 입고 교태부릴 때의 행복도 있다. 그저 현재 생활로도 해결되지 않는 근원적인 질문이 있다는 거다. 그것이 끊임없이 삐죽삐죽 삐져나와 틈입한다. 그런 면에서 훌륭한 영화고 소설이다.”


“당신을 잃어버린 슬픔은 저 자신조차 몸이 떨릴 정도로 이상한 것으로, 그것은 언제까지고 언제까지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습니다. 타인의 억측이 미치지 못하는, 아무런 이유도 발견되지 않는 자살이라는 형태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발을 동동 구를 만한 분함과 슬픔이 가슴속에 서리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분함과 슬픔 덕분에 오늘까지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p.80)


이어 이동진 평론가와 가진 질의응답 시간. 


영화 첫 부분에 미스터리처럼 죽음을 몰고선 풀려나갈 것처럼 가다가, 결국 아무 것도 없다. 죽음을 이해할 순 없지만, 죽음이후 남겨진 시간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고레에다 감독은 왜 끝까지 남겨진 사람에 대해서만 얘기하는가. 동기나 이유가 궁금하다.


전제할 것은, 내가 고레에다 감독은 아니다. (웃음)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의견을 말하자면, 만약 이 텍스트에 반전이 있어서, ‘그 남자는 죽지 않았다’거나 ‘재혼남이 그 남자의 환상이었다’고 하면 이 텍스트는 완전히 깨지겠지. (웃음) 고레에다 감독은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진 않는다. 나는 고레에다 감독이 아직은 완성된 감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직 도상에 있는 사람이다. 내가 볼 땐, 방법론적 회의론자 같은 측면이 있다. 장편 7편이 스타일 등이 다 달라서 같은 사람 영화라고 보기도 어렵다.


<환상의 빛>에서 롱쇼트와 롱테이크로 찍은 감독이, <원더풀 라이프>에선 전반은 다큐처럼, 후반은 극영화처럼 찍었다. <디스턴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핸드헬드로 찍었다. <아무도 모른다>는 정해진 각본이 없었다. <걸어도 걸어도>는 배우의 미세한 애드리브도 허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찍었다. 연기부터 카메라, 편집까지 철저하게 가장 지독한 일본감독이 찍은 것처럼 만들었다. <하나>는 장르영화로 사무라이 코미디이며, <공기인형>은 한국배우를 데려다 만들었는데, 그동안 한 번도 안 찍었던 베드신을 찍었다.


고레에다 감독은 아직도 뭔가를 시도해보는 단계인거 같다. 흥미롭고 당분간 이렇게 할 것 같다. <하나>처럼 삑살이를 낼 것도 같지만, 현재 생각으론 끝까지 좋아할 것 같다. 좋은 영화는 해답을 주는 게 아니고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그래서 고레에다 감독이 훌륭한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감독이 완성된다는 게 무슨 말인지 모르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완성된 감독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고레에다가 여전히 길 위에 있다는 점이 좋습니다. 그의 온화해 보이는 영화들은 의외로 세상이나 삶 자체와의 철두철미한 마찰에서 나오는 산물이라는 느낌이 있거든요. 고레에다의 영화들이 연기를 끌어내는 방식에서 촬영 스타일까지, 전부 다르다는 점이 무척 흥미로워요.… 아마도 고레에다의 영화들은 끝까지 좋아하고 지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씨네21 763호, <영화가 맺어준 친구들, 언어의 힘을 생각하다> 중에서)



남편이 술 먹고 들어왔는데, 유미코가 울음을 터트리는 장면을 어떻게 봤나.


소설의 클라이맥스는 거기다. 유미코가 앙탈을 부리듯이 ‘왜 전부인을 사랑했는데, 나랑 결혼했냐’ 하면서 수습이 안 되는 거다. 그러면서 불쑥 ‘그 사람이 왜 죽었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데, 그 장면을 영화는 떼서 맨 뒤에 붙였다. 시각적으로 뛰어난, 그래서 과하다싶은 장면을 만들었다. 


남자(다미오)도 그 못지않은 사연을 가진 사람이라는 거다. 그럼에도 삶의 길이 남은 거고, 두 사람은 그 길에서 만난 동반자인 거지. 그 장면은 리얼한 앙탈이면서 장면으로서도 좋다. 그런 부분을 덜어낸 것도 좋고. 


고레에다 감독이 평생의 스승으로 삼은 사람이 허우샤오시엔 감독이다. 이 영화를 찍고 가장 먼저 생각한 사람이 허우샤오시엔이고, 대만까지 가서 이 영화를 보여줬다더라. 딱 보고 스승님 왈, 영화 참 좋다. 근데 너는 모든 걸 미리 결정하고 찍었구나. 고레에다 감독이 머리에 한방을 맞은 것 같았다더라. 소설엔 강박이 없는데, 영화는 좋고 아름답지만 내 느낌엔 강박 같은 게 보인다는 그런 말이지. 형식이 먼저 결정된 것 같은. ‘멀리 관조적으로 찍을 거야’와 같은 강박이 있었다는 거지.


[예스24 기고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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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해야 하는 거야."



아, 이 말 참 좋다.
오랜만에 꺼내본 말인데, 속으로 읊조릴 때도, 입 밖으로 꺼낼 때도 참 좋다.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해야 하는 거야.
 

내가 좋아하는 영화 <좋아해>의 좋아하는 대사다.^^

내 좋아하는 당신도, 한 번 입 밖에 내봤으면 좋겠다.
참, 이 음악, 꼭 틀어놓고 해봐야 한다.


나는 당신이...
나는 당신을...
참 좋다. 참 좋아해. 참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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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외한인 나는 건축의 미학은 모르지만,

내 미적 혹은 생활의 감수성을 망가뜨리는 건축(물)에는 치가 떨린다.


그리하여 누군가 말마따나,

건축을 문화의 한 영역으로, 예술의 한 형식으로 제대로 감상하고 안목을 높일만한 기회를 만들어다오.


그건 건축가만의 몫도 아니요,

건축을 향유하고 일상에서 건축과 마주하는 우리의 태도이자 자세.

건축이 단순히 건물을 올리는 것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문화이자 상식이 되길... 나는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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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여신

2010/08/22 17:05
나와 친구는 그녀를,
열하여신이라고 부르고 있다. :)

여신을 알현한다는 것, 복이다.
다만, 일전에 언급했듯 아무나 여신이 될 수 있는 것, 아니다!

누군가 물어본다면, 이리 대답할지도. 
다른 여신이 '그냥' 여신이라면, 이 열하여신은 내 'TOP' 여신이야.
다른 여신이 '인스턴트' 커피라면, 이 열하여신은 내 '원두' 커피야.

(헐, 손발 오그라들어도 우짜겠노!)

그저 흘려들어도 좋을만큼의 농담이지만, 나도, 아저씨가 되고 싶다.
(원)빈이 때문에 이젠 그냥 아저씨 되기도 글러버린 더러운~ 세상. 흙! ㅠ.ㅠ
((신)민아는 돈성의 아파트 브랜드인 '내먄 (잘 살면 돼)' 광고출연 땜시 여신 자리에서 미끄러졌다! 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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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를 사랑하긴 쉽지만,
(물론, 쉽다는 건 상대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한 인간을 사랑하는 것은 왜 이다지도 어렵단 말인가!


누구에게 들은 건지 기억나진 않지만,
늘 실감, 빠득빠득 나고 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곧,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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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루하고 꼴통 같은 꼰대들을 향한 반역적 에너지가 충만했던 1960년대.
하고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도 살짝 꼽으라면,

68혁명이 있었다. 이건 다음에 또 얘기하자.
그리고 이듬해 우드스탁 페스티벌. 1969년 8월15일.
지금으로부터 41년 전의 그날이 있었다.

뭐, 우드스탁?
네가 한때 친구들과 음악에 맞춰 몸 흔들고 알코올 섭취하던,
신촌의 그 올드뮤직바를 말하는 것이냐. 그것도 맞다.
미국 뉴욕주 베델에 위치한 지명이기도 한 그곳은,
이젠 지역명이라기보다 20세기 하나의 문화적 사건으로 각인돼 있다.

최근,
이 우드스탁을 가능케 하는데 일조하고 우드스탁으로 전혀 다른 생을 살게 됐다고 고백하는,
엘리엇 타이버의 회고록
《테이킹 우드스탁(Taking Woodstock)》이 번역출간되고,
안 감독은 이를 같은 이름으로 영화화한 <테이킹 우드스탁>을 내놨다.
얼릉 보러 가야하는데... ^^;



알다시피, 한국에서 이를 되살리고자 했던 다소 의심스러웠던 시도는 일단 불발.

The Peace at DMZ with Artie Kornfeld, the Father of Woodstock

아무래도, (세뇌를 당한 탓(!)이겠지만,)
우리 시대의 우드스탁을 위해선 물론 누군가의 발현과 기획이 있어야겠지만,
당신과 나의 불온한 상상력이 꼭 필참해야 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들이 꼬옥 함께.
탁현민, 강산에, YB밴드, 뜨거운 감자, 그리고 김제동, 고재열... 이 삐딱이들.

왜 그들이냐고?
지난 5월, 그들과 함께 공연장에서 방방 뛴 까닭이다.

그것이 끝난 뒤 세상의 엄혹함과 비루함은 여전할지라도,
아무 것도 바뀐 것이 없다고 여길지 몰라도,
혹은 누군가의 말처럼 군중심리에 의한 빛 좋은 넌센스였을지라도,
당신과 나는, 엘리엇 타이버처럼은 아닐지라도,
생의 사소하지만 중요한 균열을 맞볼 수 있진 않을까.
우리 각자의 세계는 그렇게 초큼이라도 달라지지 않을까.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그렇게 우드스탁을 희망한다. 

그날을 희망하면서 써 내려간 이 글의 마지막 구절.
"깃발 들고 우리 놀아보자. 자, 당신의 상상력을 보탤 차례다."
내 작고 사소한 진심이다. 그렇게 나는, 레디다. 함께 방방 뛰자.

참, 혹시나 이런 판이 벌어진다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이냐! 그렇다, 커피.
상상력 발광 커피!를 당신에게~ 마시고 방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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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이들이 펼친 상상력의 향연

[현장취재] 『상상력에 권력을』 탁현민


시계를 돌려보자. 1976년 6월4일 영국 맨체스터. 전설적인 저항 펑크록밴드 ‘섹스 피스톨즈’의 공식적인 데뷔공연이 있었다. 전년도 11월6일, 런던에 위치한 전세계 디자이너들의 성지인 세인트 마틴 아트스쿨에서 한 첫 공연에 이은 것으로, 이 데뷔공연을 지켜본 이는 단 42명. 섹스 피스톨즈의 전설과 명성을 감안하면 의외일 수도 있겠다.


제 아무리 훌륭하고 좋은 뮤지션이라도 첫 시작은 미미했음을 얘기하자는 것이냐? No! 펑크록 신의 시작을 알린 이 공연은, 다른 점에서 유의미했다. 시쳇말로, 새끼를 확실하게 쳤다. 섹스 피스톨즈를 숭배했던 버나드 섬너가 같은 자리에 있던 피터 후크와 밴드를 만들었다. 역시나 그 공연에 있었던 이언 커티스가 밴드에 참여했다. 단 두 장의 앨범으로 전세계의 음악을 뒤흔든 ‘조이 디비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렇게 공연에 있던 몇몇은 ‘버즈콕스’, ‘뉴 오더’(조이 디비전의 후신), ‘진저 넛’ 등의 밴드를 결성했다. 세계적인 밴드 몇몇이 바로 그날, 섹스 피스톨즈의 공연에서 비롯됐다, 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을 더 거슬러, 하나 더. 우드스탁. 1969년의 바로 그 우드스탁 페스티벌. 위키백과의 설명 중 일부다.


“우드스탁 페스티벌(Woodstock Music and Art Fair)은 1969년 8월15일부터 3일간 뉴욕 주 북부 베델 근처 화이트 레이크의 한 농장에서 열렸다. 30만, 그 이상의 사람들이 그 농장으로 몰려갔다.(입구를 부수고 들어간 사람의 수가 너무 많아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다고 함)... 우드스탁은 음향 시설이 형편없었고 음식과 물과 화장실도 턱없이 부족했으며 게다가 폭우가 쏟아져 농장은 거대한 진흙 뻘 같았다. 하지만 이런 열악한 상황도 우드스탁에 이르러 절정에 달한 히피 반문화 공동체의 열기를 누그러뜨리진 못했다. 부족한 샤워 시설과 폭우는 천진난만하게 물장구를 칠 물 웅덩이로 대체되었으며, 진흙 뻘은 히피들의 낭만적인 놀이터가 되었다.”


전설 같은 이야기. 우드스탁은 그렇다. 오죽하면, 책을 쓰다가 우드스탁이 열렸던 뉴욕 주 베델로 향한 사람도 있었다. 그도 이를테면, 많고 많은 우드스탁 신(봉)자의 하나인 셈인데, 그는 우드스탁을 이렇게 그리고 있었다.


“상상력을 믿는 사람들, 그것도 예술적 상상력을 믿는 사람들은 무모하다. 비현실적이며, 위험해 보인다. 적어도 상상력이 없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러하다. 우드스탁은 그러했다. 당대의 정신, 실패로 끝난 68혁명에 대한 모진 안타까움과 시대에 대한 열망이 예술적 상상력과 결합하여 만들어 낸, 말 그대로 상상력이 힘을 갖게 되는 자리였다. 그리고 그 공연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탁현민’이기에 가능한...


그 사람, 공연기획자 탁현민. ‘음악이 사회적 발화의 수단이 되기를 바라’는 대중문화평론가. ‘61만 명’이 모이는, 우드스탁보다 조금 더 큰 장을 펼치길 원하는 공연기획자. 현실에서 저항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고, 부정하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은, 그것이 동력인 불온아. ‘상상력에 권력을’이라는 68혁명과 우드스탁의 구호를 감히(!) 책 제목으로 내건 저자. 『상상력에 권력을』(탁현민 지음|더난출판 펴냄)은 그런 탁현민이 고스란히 담겼다.


사실 이리 말해봐야, 손만 아프다. 좀 더 쉽게.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를 앞두고, 지난 8일부터 주말마다 서울·광주·대전·대구·창원·부산을 찍은 추모콘서트 <파워 투 더 피플 2010> 연출자. 역시 지난해 노무현 추모 콘서트 <다시 바람이 분다>와 노무현재단 출범 콘서트 <파워 투 더 피플>를 연출한 바 있다.


그런 탁현민이, 지난 10일 서울 홍대부근의 V홀에서 『상상력에 권력을』(탁현민 지음|더난출판 펴냄) 출간기념 북콘서트를 ‘게릴라처럼’ 열었다. 게릴라처럼, 이라고 했지만, 쟁쟁하다, 그 이름들. 강산에, 김C, YB. 아울러, 이들 뮤지션들이 소속된 기획사(다음기획)의 김영준 대표, 고재열 기자(시사IN, 독설닷컴)까지. ‘탁현민’이라는 이름을 믿고 뭉친, 역전(?)의 용사들. 아니, 정확하게는 ‘긴급 구호팀’이다. 탁현민의 표현을 빌자면, “자신의 생각에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도 한 번쯤은 나를 믿고 무대에 올라줄 수 있는”. 물론, ‘한 번쯤’이 아니다. 탁현민이라는 이름이 길어낸, 탁현민이기에 가능한 이름들. 



이 자리, ‘제대로’ 놀아보자는 거다. 출연하기로 한 연예인들이 모조리 펑크를 내서 ‘개쪽’ 파는 짓거리가 아니라, ‘MR에 고음처리 부분을 입혀 실망스러운’ 개나리 가수를 출연시키는 그런 콘서트 말고. 우리의 숨통을 틔우기 위한 진짜 콘서트.


알다시피, 폭압의 시대다. 전쟁의 시기다. 독재의 시대다. 금기의 시절이다. 동의 안 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지금을 그리 생각한다. “전쟁의 시기에 반전을 이야기하고 폭압의 시대에 인권을 노래하는 것, 독재의 시대에 해방을 소망하며 금기의 시대에 자유를 노래하는 것은 대중예술인으로서 너무도 당연한 행동이다. 이들이 앞서서 새로운 세계를 노래하고 그 노래를 따라 부르는 대중이 늘어나면서 세상은 조금씩 바뀌게 된다. 전쟁을 멈추게 하고 인권을 기억하게 하며 해방을 이루어내고 자유를 얻게 하는 것이다.”(p.100)


그러니까, 이날 나온 유명인들은 이런 존재들. “대중에게 현실에서의 재미와 현실 이상의 상상력 두 가지를 모두 제공해 주”(p.119)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뿐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살아야 할 새로운 시대에 대한 상상을 가능하게 해주”(p.119)는. 아마, 그들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도, “유명기획사 혹은 기획된 스타들로부터 벗어나 있는 대중예술인들을 주목”(p.77)하는 이들이었을 것이다.


42명이 모인 섹스 피스톨즈의 공연처럼, 61만 명이 모일 공연의 예행연습처럼 콘서트가 막을 올렸다. 저자의 오프닝 멘트. “책을 내고 콘서트까지는 사실 생각을 안 했다. 책 내고 또 공연까지 해야 돼, 라고 생각했는데, 가수들이 굳이 해 주겠다고, 하고 싶다고 해서 자리를 만들었다.(웃음) 감개무량하다. 양해를 구할 것이 다른 중요한 공연들이 있어서 오늘, 준비를 많이 못했다. 순서는 지금부터 만들어지고 있다.(웃음) 사실 부끄럽다. 책으로 나온 것이 부담도 있고, 한편으로는 뭔가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던 것 같다. 지금까지 단독으로 네 권을 썼고, 세 권이 공저였다. 딱 한 권을 빼고는, 목적이 없었는데, 그 한 권은 돈이 목적이었다. 『남자 마음 설명서』라고. 다른 책을 합한 것보다 이 책이 가장 많이 팔렸다. 그래서 김C의 마음을 이해한다. 음악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정받고 싶지만... (웃음) 오늘은 강의나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기보다 즐기는 자리다. 나도 즐기고 싶다.”


탁현민-고재열 만담 콤비


공연도 때론 예열이 필요한 법. 세상이 거의 아는 퀴즈영웅, 고재열 기자(시사인 문화팀장, 독설닷컴: http://dogsul.com, 트위터: @dogsul)가 첫 무대를 장식했다. 보석 같은 뮤지션들 틈에 ‘주변에 맴도는 인공위성 같은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책에서 탁현민과 대담(<한국의 대중문화 그리고 문화적 상상력의 힘에 관하여>)을 진행한 바 있다.


그들의 첫 인연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탁현민은 참여연대 간사였고, 고기자는 출입 기자였다. 그들은 어느 순간, 친구가 됐다. 친구답게 짓궂다. 탁현민은 그가 나이를 속여, ‘고비열’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했고, 고기자는 나이를 밝히지 않았을 뿐이라고 했다. 여느 만담이 그렇듯, 진실은 저 너머에.  

  

그 대담에 대한 폭로(?)부터 시작된 그들의 만담을 살짝 엿보자.



“양주 1병을 받고 ‘탁비어천가’ 썼는데, 다시 보니 손발이 오그라든다. (웃음) 문제의식 있는 사람 중에 가장 끼 있는 활동가였는데, 이제는 끼 있는 공연기획자 중에 가장 문제의식 있는 사람으로 변했다고 썼는데, 문어체적인 표현이었다. 실제 느낀 건, 진정성 있는 사람 중에 사기를 잘 치고, 사기 잘 치는 사람 중에 진정성이 있다고 고치겠다. (웃음)”


탁현민이 묻는다. “왜 탁현민이 훌륭한가.”


고재열이 답한다. “여러분들 오늘 사실, 탁현민 보러 온 것 아니지 않나. (박수) 여기 온 뮤지션들이 지난 주말에 힘든 공연을 하고 쉬어야 하는데, 돈도 안 받고 여기에 왔다. 그래도 여러분이 보고 싶어 하는 분들이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오늘 공연 충분한 가치가 있을 거다. 아, 질문이? 10년 전이랑 변화가 없다. 헤어스타일이. (웃음)”


탁현민이 푸념한다. “널 부르는 게 아니었어. (웃음)”

  

탁현민은 앞서 언급했듯, 노무현 추모 공연을 기획했다. 어땠는지 물었다.

“지금 한국 상황을 보면, 바다는 어민이 지킨다. 해군이 아니고. 거리는 시민들이 지키고 있다. 경찰이 아니고. 공연장 정도는 내가 지켜야 하는 것 아닌가. (박수) 대중음악은 끊임없이 현실을 부정해야 한다. 지금 처한 상황만을 노래하는 것 뿐 아니라, 엔터테인먼트만 제공하는 게 아니라, 앞선 상상력을 보여줘야 한다. 존 레논의 <이매진>을 들어봐라. 당대엔 절대 이뤄낼 수 없겠지만, 국가와 종교와 군대만 없어도 세상은 평화로울 거라고 생각하잖나. 그런 상상력이 대중문화와 대중음악에서 나와야 한다”


“일찍이 존 레넌은 <이매진 imagine>을 통해 이렇게 노래했다. "imagine there's no countries it isn't hard to do. nothing to kill or die for and no religion too. 국가가 없다고 생각해 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야. (국가를 위해) 누구를 죽이거나 죽을 필요도 없잖아, 종교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아티스트에게 있어 음악은 자신의 삶과 철학을 표현하는 수단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존 레넌은 노래를 통해 그의 조국인 영국과 그가 말년에 살았던 미국까지도 부정한 셈이다.”(p97)


이번에는 고재열이 묻는다. “날 왜 불렀나.”


탁현민이 답한다. “고재열이 한국 언론사에 길이 남을 좋은 기자라 생각한다. 이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아는 분도 있겠지만, ‘퀴즈영웅’에 등극하면서 받은 상금을 당시 파업 중인 회사에 쾌척하지 않았나. 적어도 이 친구가 돈이나 다른 것에 매여서 쓰고 싶은 기사를 못 쓰거나 안 쓰는 기자 아니구나, 생각했다. 지금까지 늘 일관된 모습을 보여 온 기자고.”


만담하는 척 하면서, 서로 띄워주는 이 풍경. 주최 쪽의 농간(?)이겠지만, 밉살스럽거나 거북하지 않다. 왜냐! 그건 ‘사실’이니까. 물론 만담이 길면, 농담이 된다. 만담은 그 정도로. 첫 번째 게스트의 등장, 뜨거운 감자다.


감자가 달군 뜨거움


뜨거운 감자가 악기를 세팅하는 동안, 탁현민의 소개말. “사과할 일이 있다. 3~4년 전, 김C와 이야길 하면서 음악을 들려줬을 때, ‘형 노래는 당대에는 성공 못할 것 같애’라고 했다. 그런데 요전 앨범 발표하고 나서 취소했다. 오늘 낮에도 15일 공연 때문에 스태프와 연습 참관을 했는데, 뜨거운 감자 음악은 당대에 성공할 것은 물론이고 길이길이 남을 거다. 20세기가 잉태하고 21세기가 온몸으로 받아들인 뮤지션, 김C를 소개한다.”


뜨거운 감자의 김C가 화답했다. “탁이(주. 김C는 탁현민을 ‘탁이’라고 불렀다)는 고향후배이기도 하고, 회사의 직원이기도 했고, 지금은 한 회사의 대표가 됐는데, 전체적으로 사기꾼이다. (웃음) 애들도 가르친다 해서 위험한 짓을 하는구나 생각했다. 책 냈다고 해서 진짜 웃기는구나, 했다. 책을 읽었다. 굉장히 건강한 사기꾼이 됐더라. 그래서 생각했다. 약간씩만 사기 치면 행복해질 것 같다고. 탁이가 여러분과 우리의 중간자를 잘 하고 있는 것 같다.”


여느 주례사 인사말 같진 않다. 그들은 삐딱한 존재들이니까. 어쨌든 뜨거운 감자의 음악이 울려 퍼졌고, 몸은 들썩이기 시작했다.



첫 곡, <수학이 좋다>. “...네 말이 맞는다고 내 말이 틀렸다고/ 어떻게 알 수가 있겠어/ 너와 난 다르다고 넌 나를 틀렸다고/ 정답을 알고 싶을 뿐이야/...내 뜻대로 살아갈게/ 네 갈 길을 찾아라 나를 찾지 말아/ 내 뜻대로 살아갈게/ 네 갈 길을 찾아라...” 신난다. <봄 바람 따라간 여인>이 잇는다. “봄바람 따라 간 여인 어디쯤에 가고 있나”를 따라 흥얼거린다. 


세 번째 곡은, 최근 낸 영화 없는 영화음악 앨범의 <시소>. 신난다. 발은 동동 뛰고 어깨는 흥에 겹고 가슴이 뜨겁다. 이 맛이 감자다.


“어느 날 생각해봤다.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는 지금의 내 나이였을 때, 이 정도의 시대적 아픔을 안고 살아갔는지 궁금해지더라. 누구나 그런 건가. 어쨌든, 조금 현 시점이, 어휘력이 부족해서 그렇겠지만, 조금 좆같다. 영향력 있고 힘 있는 분들이 주변 모든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좋겠다. 책이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점점 뜨거워지는 현장. 네 번째 노래, <고백>이 불을 붙인다. 아마도, 어쩌면, 우릴 향한 뜨거운 감자의 뜨거운 고백. “달이 차고 내 마음도 차고/ 이대로 담아두기엔 너무 안타까워 너를 향해 가는데/ 달은 내게 오라 손짓하고/ 귓속에 얘길 하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그 순간이야...” 곡이 끝날 때마다, 짧고 강렬하게 외치는 김C의 한마디. 땡큐. 인상적이다.


김C에 대한 탁현민의 기억 한 소절. “처음 들었을 때, 김C가 노래를 못하는 줄 알았다. 2년 전쯤인가, 김C가 책을 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림을 넣어야하는 책이었는데, 어떤 분의 그림이 좋을까 고민하다가, 이외수 선생님을 떠올랐다. 댁에 찾아가서 선생님께 부탁을 했다. 선생님 왈, ‘나는 그림을 그릴 테니, 너는 밤새 내 옆에서 노래해라’. 진짜 밤을 새워 통기타 하나로 노래했다. 그때, 괜찮은 노래구나, 괜찮은 목소리구나 생각했다. (웃음)”


방만한(?) 기획사의 소신 있는 방만함


그렇다면, 잠깐. 이날 초대된 뮤지션들, ‘탁현민’이라는 이름 때문에 모인 한편으로, 사회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고 사회적 이슈를 외면 않는 이들이다. 모두 같은 기획사 소속인데, 기획사에서 이런 이들을 품고 있는 것,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 아닐까. 우리가 아는 대개의 기획사는, 소속 연예인들에게 그런 것을 원천봉쇄하고 입조심, 행동조심을 늘 상기시키건만. 이 소속사, 또라이 아냐? 궁금하다. 다음기획. 


그리하여, 또 한 명의 이야기 손님, 김영준 다음기획 대표가 등장했다. 역시나 뜨거워진 열기를 잠시 식히고자 마련된 만담의 시간.



참고로, 다음기획을 보여주는 이야기 한 대목. 한 예능프로에 나온 김C. 한 아이돌이 우리는 밥값으로 5000원 이상 못 먹는다고 하자, 김C는 우리는 마음껏 먹어도 되는데, 라며 소속사를 방만함(?)의 표본으로 널리 알렸다. 김 대표 왈. “우리는 가둬놓고 안 키운다. 풀어놓고 키운다.”


탁현민과 김 대표의 인연은 2002년부터 시작됐다. “시민단체 간사로 있을 때, 김 대표가 ‘우리 회사로 들어와라. 너의 미래를 보장 하마’라며 되지도 않는 이야길 꺼냈다. (웃음) 태어나서 처음 돈 내고 본 공연이 정태춘 공연이었다. 아주 큰 울림이 있었고, 정태춘 공연을 꼭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다음기획에 가니 소속돼 있더라. 공연 연출하러 들어간 건 아니었는데, 연출가로서 관객을 만날 수 있게끔 자리를 만들어줬다. 실수를 많이 했는데 끊임없이 기회를 많이 준 고마운 분이다.”


김 대표가 처음에 봤을 땐 조폭 같았다며, 자신의 첫 인상을 되묻는 탁현민에 대한 화답. “그냥 싸가지 없는 애였다. (웃음) 어제 공연이 노무현 추모 콘서트로 ‘시민에게 권력을’. 오늘은 ‘상상력에 권력을’. 권력을 상당히 좋아하시네. (웃음) 농담이고, 이 친구는 대한민국 대중문화 권력의 지형을 바꾸고 싶은 친구다. 덕담이 아니고, 굉장한 열정을 가진 친구다. 인간의 능력이 무한정하다는 것을 실증하는 인물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보통 출판기념회에 가면 지인들이 뭔가를 해주는데 이 친구는 혼자 마이크잡고 설친다. 이 친구가 회사에 들어온 지 1~2년 됐을 때인가. 자기 생일에 아무도 안 챙겨준다고 제과점에 가서 케이크를 사와서는 노래를 불러달라고 했던 그 모습이 오늘 떠오르더라.”


저자도 다음기획에 들어갔던 것, 김 대표를 만난 것을 생의 중요한 지점 중의 하나로 꼽는다. “나는 성공회대를 나왔고 참여연대, 오마이뉴스, 다음기획 등에 있었다. 정말 골수까지 진보다. 진보의 진골이다. 성골이나 육두품도 아니고. (웃음) 그런 것 때문에 비난도 듣는데, 그걸 의식하지 않는다. 나에겐 중요한 기억이고 인생의 중요한 지점들이다.” 


김 대표가 읽은 『상상력에 권력을』은 이랬단다. ‘탁현민을 가장 잘 설명해주며, 어떤 피가 흐르고, 머리가 뭐가 들어있는지, 싸가지는 어디서 기원했는가’를 보여주는 책. 둘의 만담도 그랬다. 열렬한 애정의 소산. 과거지만, 대표와 직원 사이라기보다, 동반자 같은 그들의 관계가 느껴진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동반자로서, 연대하며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손을 맞잡고 있다. 아마, 삐딱함이 맞아떨어진 결과이리라.


고로, 다음기획을 탁현민의 언어로 정의하자면 이렇다. “이윤의 극대화보다는 문화적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신 있는 기획사”(p.77). 고로, 방만함(!)은 소신의 결과다. 5000원짜리 밥이 설운 아이돌은, 다음기획을 두드려라. 길이 열릴 지.........................도 모른다.


“단지 상품성 있는 엔터테이너로 그리고 언제든 버려질 수 있는 아이돌로 살고 싶지 않다면 획일성과 상업성만을 요구하는 연예산업의 구조를 해체하기 위해서는, 연예인 지망자 스스로 자본의 요구에 의해 기획되고 생산되기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예술적 완성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p.77)


달리는 YB밴드, 터질 듯한 공연장


그런 기획사에서 노래하는 YB는 행복하겠다. YB와 탁현민의 인연도 2002년으로 올라간다. YB가 악기를 세팅하는 동안, 탁현민이 폭로(?)하는 윤도현이다. “2002년 월드컵 직후에 한 전화통화다. 이러는 거다. ‘야, 편의점에 갔는데, 사람들이 알아봐’. (웃음) 자기가 나온 CF를 신기하게 보던 그런 사람이었다.” 그땐 그랬지만,

 

이윽고, 시동을 건 YB의 일갈, 렛츠 락앤롤(Let's Rock&Roll). 멋지구리. <담배가게 아가씨>로, 테이프를 끊고 달린다. 후끈후끈. 이어지는 <나비>는 또 어떻고.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꺼야/ 노래하며 춤추는 나는 아름다운 나비...” 아름다운 나비, 그 노란색의 나비. 우리는 그 나비를 안다. 그 나비는 또한 우리다.


윤도현의 축사. “출판기념회에 와서 노래한 건 처음이다. 탁이가 2살 어린데, 지금 교수님이고, 사회적 지위와 위치에 있더라. (웃음) 책 쓰면서 뉴욕 가서 고독을 삼키기도 하고, 타협하지 않고 글 쓰려고 노력해서 나온 책으로 알고 있다. 성향을 보면 불의에 맞서 싸우려는 돈키호테 같은, 시대착오적인 그런 사람인데, 그런 사람 필요하잖나. 그런 얘기 나한테도 많이 한다. 나서라고. ‘형 같은 사람이 머리를 두르고 이걸 해야 해’. 내 앞길 생각도 않고. (웃음)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고, 특히 높이 사는 건, 초지일관된 우직함이다. 이런저런 소리 많이 들어도, 자신의 길을 가려는 모습은 본 받을만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깃발>이다. 탁현민이 압력을 가했다는, 그러므로 굉장히 선동적인 노래. “힘 없는 자들의 아우성 속에서 들끓는 나의 뜨거운 피를 느꼈다/ 고맙다 형제들이여 깃발을 들어라 승리를 위하여/.. 맞서 싸워 두 주먹 쥐고 깃발 들어 do it again/ 쓰러지거나 넘어져도 깃발 들어 어 moving again...” 그래, 함께 깃발을 들자. 절로 떠오르는 이 한 마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도 대사로 나왔지, 아마. 대한민국, 좆 까라 그래.


방점은, 준비 중인 새 앨범에 수록될 곡 <스테이 얼라이브>. 정규앨범이 아닌 YB밴드의 첫 싱글이란다. “일렉트릭과 락이 혼합된, 자극적이고 망하기 좋은 곡이다. 그것도 영어다. (웃음) 그래도 열심히 만들고 있다. (망하기 좋은데) 왜 내냐고. 탁처럼 굽히고 싶지 않은 뭔가가 있거든. 공연장에서 선물은 하나 해야 할 것 같고, 그래서 준비했다.”


달렸다. 뛰었다. 즐겼다. 살아서 버텨라. 이 쥐의 시대. 어떻게든 살아남으라. 살아남는 것이 곧 우리의 과제임을 상기시킨다. 삐딱하게 또 삐딱하게.


탁현민을 만든 스승들


탁현민의 회고다. 말하자면, 나는 왜 삐딱이가 됐나, 지금의 나는 어떻게 형성됐나. “돌이켜볼 나이는 아니지만, 난 문제 많은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담배를 피우다 하루에 3번 걸린 적도 있다. 학교 가다가, 화장실에서, 야간자율학습 때 걸려서. 지금도 그날이 생생하다. 맞는 건 기본이었고, 모눈종이에 반성문을 써야 했다. 그때, 반성문 쓰다가 눈이 너무 아파서, 앞에 국어선생님 책상을 봤는데,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있었다. 우연히 그렇게 읽었는데, 그 책에는 다른 생각이 있더라.”


당시 탁현민에겐 세상에 대한 저주에 가까운 비난, 스스로 열등한 존재라는 인식을 끊임없이 심어주던 학교라는 감옥에 대한 저항심이 있었다. 그런데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놀라웠다. 감옥에서 어떻게, 그렇게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을까. 그 이후 신영복 선생님은,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탁현민에게 스승이 됐고, 세월이 흘러 신 선생님이 계신 성공회대에 가게 됐다. 마침 그해 안식년이었지만, 그렇다고 끝이 아니었다. 우연히 신 선생님의 조교가 됐다.


직접 뵌 신영복 선생님의 가르침은 그러했다. 대학 4학년 때였다. 세상에 나가면 어차피 돈을 벌어야 할 터이니, 대학시절엔 돈이 안 되는 것을 공부해야 한다. 대학 4학년, 마지막 시간. 선생님은 <논어>를 던져주셨다. 남들이 토익, 토플을 공부할 때 논어 봤다. 탁현민이 ‘남다른’ 공연기획자가 될 수 있었던 한 가지 요인이다.


물론, 다른 은사들도 만났다. ‘선생님복’이 많았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 앞에 이외수 선생님 댁이 있었고, 국어선생님이 이외수 선생님과 절친한 사이였다. 글 쓰는 재주가 있었던 탁현민은 국어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이외수 선생님 밑에서 습작을 할 수 있었다. 박원순 변호사도 빼놓을 수 없다. 쉬지 않고, 세상을 향한, 사회를 위한 기획서를 쓰고 실현되도록 노력하는 소셜 디자이너.


그리고 최근에 알게 된 한 선생님에 대한 소개. “워낙 유명하신 분이지만, 유명한 분들이 대부분 실망시킨 적이 많아서 큰 기대가 없었는데, 공연과 관련해 알게 되고 몇 마디 나누면서 이 분의 진가를 알게 됐다. 역시 건강한 기운을 내게 주시고 앞으로 좀 더 아름다워질 수 있도록 만들어준 분이다. 이 자리에 와 계신다. 소개할까말까 망설였는데, 끝까지 자리에 계셔주셔서 소개한다. 정연주 KBS 전 사장님. (인사) 꼭 어떤 분을 직접 만나지 않아도 상관없다. 인생의 향방이나 방향을 결정할 때, 중요한 역할 해 주는 분이 누구에게나 있다. 나도 지금 누군가의 선생이 돼 있는데, 사실 학생들과 얘기하다보면 절망감을 느낄 때가 많다. 이른바, 꼰대적 발상이지. (웃음) 신영복 선생님한테 얘기하니, 그러시더라.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건, 다만 희망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게 선생의 제대로 된 태도라고 생각한다.” 


어떤가. 당신은 그런 스승이 있는가.


강산에, 어떤 것보다 강하고 어떤 위로보다 절절한


강산에. 세상의 다른 속도로 생과 음악을 꾸리는 뮤지션. 나는 그의 속도와 부합하는 음악을 좋아한다. 탁현민에게, 강산에는? “앞의 두 뮤지션과는 다른 위로를 주는 분이다. 나와 맞지 않는 부분도 많다. 나는 강성이고 욕도 바로 하고, 차분하게 생각하기보다 들이받던지, 한 대 맞던지 하면서 몸으로 체험해야 똑같은 실수를 안 하는 스타일이다. 강산에는 부드럽고 묵직하다. 강산에는 공연이 좀 더 부드러워야 하고, 딱딱한 것이 강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 분 노래가 그렇다. 어떤 것보다 강하고, 어떤 위로보다 절절한 위로를 준다.”


탁현민의 복이다. 선생님 복도 그렇지만, 다른 복도 넘친다. 좋은 뮤지션과 함께 일할 수 있으며, 좋은 친구들을 갖고 있고, 많은 관객들과 만난다. 공연기획을 하는 그의 복이다.



그의 복 중의 하나. 음유시인, 강산에의 등장이다. “어쨌든 여러분, 오래오래 사셔야 한다. 나도 오래 살 계획이다. 무대는 77살까지. (웃음) 그래야 내 공연에도 오실 수 있잖나.” 그러니, 우리는 아름다워야 한다. 시간을 버티는 것은 때론 예술이 된다. 아름답고 부드러운 맛있는 우리를 위한. 그렇다, <명태>다.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노래 되고 시가 되고/ 약이 되고 안주 되고/ 내가 되고 니가 되고/ 그대 너무 아름다워요/ 그대 너무 부드러워요/ 그대 너무 맛있어요/ 감사합니데이~...”


“친구 딸 이름이 그림이다. 공부를 안 하고 딴 짓을 많이 해서, 아빠가 걱정돼서 물었다. 공부 잘 하고 있니, 구구단 외울 줄 알아? 2단 외워보자. 2*1=2, 2*2=4, 2*3=6… 2*8=16, 2*9=아나.” 꺄아~ <이구아나>다. 예전에 이 노래, 처음 들었을 때, 정말 좋았다. 이구가 십팔이 아닐 수도 있음을 알려준, 세상엔 또 다른 공식도 있을 수 있다고 들려준 이 노래.


이어진 <와 그라노>까지. 내 자란 고향의 익숙하고 친근하며 푸근한 노랫말. MB한테 해 주고 싶은 말. “또 와 그라노? 니 또 와 그래샀노?” 삽질 좀 그만해 싸라.


탁현민 “강산에는 말의 속도, 생각의 속도가 느리다.”

강산에 “느리다, 빠르다 보다는 다른 거다. 아닌가?” 

탁현민 “세 가지 소원이 있었다. 정태춘 공연을 하고 싶었는데, 정태춘의 마지막 공연을 했고.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저항성 있는 팀과 하고 싶었는데, YB밴드와 했다. 세 번째는 강산에 무대에서 같이 서고 싶다. 아침부터 좀 전까지도 얘기할까말까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얘기해서 같이 하고 싶다 했더니 흔쾌히 허락해줬다.”

강산에 “허락했다기보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웃음) 의외였다. 뜻밖이었다.”

탁현민 “나는 항상 레디다.”



그렇게 마지막 노래, 강탁(강산에․탁현민)의 노래 <삐딱하게>가 무대를, 홀을 가득 채운다. “너무 착하게만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네)/ 너무 훌륭하게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네)/ TV를 봐도 RADIO를 켜도 삐따기의 모습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네)/ 있는 그대로 얘기할수 있는 삐따기/... 삐딱하게 삐딱하게/ 삐딱 삐딱 하게 삐딱 삐딱 하게/ 그가 서 있는 땅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네...”


무릇, 체제에 순응하는, 혹은 이를 넘어 체제에 복무하는 문화예술은 재미없다. 문화예술이 정치적이어선 안 된다는 말은 거짓이다. 아니, 그 말이 더 정치적이다. 연예인이, 무슨 정치적인 발언이냐고? 무식해서 내뱉는 무뇌아의 치기로 받아주겠다.


“예술은 정치사회적인 것들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맹신을 가지고 있는 한국사회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예술의 사회라 할 수 있다. 해방이후 지금까지 이 땅에서의 예술은 철저하게 지배층의 이데올로기를 선전하거나 혹은 저항하는 전부였다.”(p.82) 


대중문화, 대중예술의 꽃은 삐딱함에서 핀다. “우리 시대의 대중예술인 가운데 상당수는 자신의 음악과 발언을 통해 사회질서와 체제, 심지어 무의식 속의 관념까지도 부정한다... 이들이 국가와 사회를 비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체제를 공격하고 제도와 관습을 부정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세상을 바라보는 그 삐딱한 시선이야말로 대중예술인이라면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어야 하는 덕목이기 때문이다. 문화적 풍요는 결국 다양한 생각을 수용할 수 있는 사회에서만 가능하며, 대중예술인들은 그 풍요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p.98)


그렇다면 무엇으로부터 삐딱하게, 무엇에 대해 저항해야 하는가. “오늘날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란 단지 ‘돈’의 문제를 떠나, 가장 철저하게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이른바 자본의 ‘논리’에 대한 저항이라 할 수 있다. 사회적 금기와 체제에 대한 저항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고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질서를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하는데, 오늘날 가장 공고한 질서는 다름 아닌 자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을 부정하는 것은 현 시대의 전부를 부정하는 것과 같은데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문화사회적 실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p.157)


빙고. 돈을 멀리하라는 말, 아니다. 자본의 논리에 저항하라는 것이다.


68혁명의, 우드스탁의 구호는 아직 유효하다(고 나는 믿는다). 당신과 나를 상상하게 하는 힘. 그것이 곧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그 상상을 하게 해주는 문화예술의 힘. “예술은 저 하늘에 반짝이는 별빛 같은 무엇이 아니다. 문화가 우리 삶의 총화이듯이 문화의 범주 안에 당연히 위치하는 예술 역시 우리들의 현실과 미래를 담고 있는 실체적인 무엇이 되어야 한다. 예술이란 결국 우리들이 당대의 현실을 인식하고 꿈꾸어야 할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힘, 그것이기 때문이다.”(p.84)


그러니, 그 힘을 지키는 것은 우리여야 한다. “그들의 역할이 아무리 위로를 주는 존재라 해도 우리가 이 위로가 되어주는 존재들과 함께하겠다면 저들의 후안무치를 탓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윤도현이 앨범을 내면 그의 앨범을 사고, 신해철이 공연을 하면 그의 공연에 가고, 김제동이 책을 쓰면 그의 책을 읽는 것과 같은 분명한 지지와 사랑을 보내주어야만, 그래야만 우리는 그를 지켜줄 수 있을 것이다.”(p.218)



뜨거운 감자, YB, 강산에의 앨범을 사서 듣고 공연장을 향하며, 『상상력에 권력을』을 사서 읽고, <시사인>을 사서 펼친다. 그러면 우리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존재들과 함께 하고, 상상을 할 수 있다. 기대하고 기다리겠다. 섹스 피스톨즈의 데뷔공연이 새끼를 친 것처럼, 이날 함께 자리했던 누군가에 의해 빛나게 될 대중문화와 61만 명이 모여 자체 발광할 상상력의 향연을. 깃발 들고 우리 놀아보자. 자, 당신의 상상력을 보탤 차례다.

 

[예스24 채널예스 기고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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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것인지 모르겠으나, 여기 이 말. “음식은 1분 만에, 음악은 3분 만에, 영화는 2시간 만에 새로운 세계를 맛볼 수 있다.” 결론부터. 요네하라 마리 여사는, 『미식견문록』은 이 말의 작은 증명이자, 확인이다.(물론 1분, 3분, 2시간이라는 숫자는 무시해도 좋다. 음식이나 음악, 영화가 주는 새로운 경험과 사유를 말하는 것이니까.)

그녀의 음식기행은 여느 미식가의 것과 다르다. 각 음식에 대한 품평이나 음식점 혹은 요리사에 대한 인상비평이 아니다. 촌철살인의 음식비평을 기대할 것은 아니란 말씀.


내가 본 『미식견문록』은 이랬다. 아버지의 튼튼한 위를 물려받았고 맛있는 음식 앞에선 이성 따윈 잃는 ‘쓰바키 히메(냠냠공주)’가 음식을 먹어가며 세계를 사유한 기록. 마리 여사는 자신을 이렇게 묘사한다. “맛있는 것이라면 정신 못 차리지만 미식가를 자처할 정도로 전문가도 아니요, 미각에도 자신이 없다. 먹는 양과 속도만큼은 평균 이상이지만 요즘 뜨는 푸드파이터(상금을 목적으로 도전하는 프로 대식가들) 발끝에도 못 미친다.”(p.245)  

그러다보니, 그녀의 음식 이야기, 군침을 돌게 하기보다는 새로운 세계를 유랑하는 기분을 맞보게 한다. 러시아의 속담이라고 했던가. ‘(보드카를) 마셔도 죽고, 안 마셔도 죽어. 어차피 죽을 운명, 안 마시면 아깝지.’

러시아에서 살아서일까. 그녀의 음식기행도 마찬가지다. 어린 날, 병아리의 죽음에 눈물 펑펑 흘리며 다시는 닭고기나 달걀이 들어간 어떤 것도 입에 대지 않던 그녀는, 어느 날 카스텔라(달걀이 들어간)를 맛있게 먹으며 깨닫는다. 그리고 어른이 된다. “먹는다는 것과 산다는 것, 이는 어찌 이리도 잔혹하고 죄 많은 일인가. 살생의 죄책감과 맛있는 것을 먹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 이 모순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어른이 된다는 것일까.”(p.23)

아하, 맞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선, 정면으로 응시해야 한다. 링 밖에서 맴돌지 말고 링 위로 올라가야 한다. 일종의, 첫사랑 극복법.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던가. 내게도 물론 그랬지만, 첫사랑은 대부분 자연스럽게 속물이 되기 직전, 순수함이 철철 묻어날 때, 재테크가 어떠니, 연봉이 얼마니, 자동차가 뭐니, 따지기 이전의 단계다. 그래서 평생 지워지지 않을지도 모를 첫사랑. 하지만 대부분 안타까이 막을 내리는 첫사랑. 무너져 버린 첫사랑, 그렇게 가슴 속에서 죽은 첫사랑을 제대로 애도해야만 우리는 다시 사랑을 할 수 있듯이.

다시 달걀을 입에 넣음으로써, 마리 여사는 인간의 모순도 깨닫고 어른이 된다. 그러니 꼭 어느 하나만 옳다고 단정 짓지 말 것. 나는 비교적 채식에 우호적이지만, 채식주의자가 곧 착한 사람이고, 육식이 성질을 포악하게 만든다는 단정적인 말에는 완전 비호감! 마리 여사도 말하지 않았던가. “히틀러도 채식주의자였다.”



그런 한편으로, 그녀는 음식을 먹는 것에서 사람을 보고 세계를 읽는다. 그것 참 재밌다. 혈액형으로 사람을 보는 놀이는 너무 나갔다. 그저 놀이일 뿐이었는데, 많은 이들은 그것을 지고지순한 진리로 보는 것이 문제다. 여기서 마리 여사의 새롭진 않지만, 나름의 옹골찬 방식이 있다.

그녀에게, 인간은 딱 두 타입이다. 타고난 성향의 문제. ‘살기 위해 먹는’ 타입과 ‘먹기 위해 사는’ 타입. 자신은 ‘먹기 위해 사는’ 부류라고 커밍아웃한 그녀는, 각 타입별 성격 분석까지 해 댄다. 전자가 공상벽이 있는 염세주의적 경향의 철학자에 많다면, 후자는 낙천적이고 인생을 즐기려는 현실주의자가 많단다. 아, 나는 어딜까, 생각해보니, 나 역시도 후자다. ‘잘’ 먹는 것이 곧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미래의 불안을 담보로 현재를 유보할 생각이 없으니까.


음식을 통한 사람읽기는 또 가지를 친다. 그것이 그런데, 그럴듯하다. 러시아 주요 인사들의 통역으로 동행하면서 그녀는 세계사의 변혁에 중요한 위치를 지닌 인사들의 먹는 방식과 정치스타일을 비교한다. 오호, 어쩌면 이것은 비약하자면 음식이 만들어낸 세계사의 변혁이 아닐까. 리가초프, 고르바초프, 옐친의 음식 취향이 그것인데, 그들 각자의 낯선 음식에 대한 반응과 정치에 대한 혁신성이 정비례한다는 사실.

물론, 아까도 언급했지만, 히틀러가 채식주의자이듯, 보수적인 식생활을 즐기는 혁명가도 있을 터이며, 희한한 음식을 즐기는 보수정치가도 있다는 것을 마리 여사는 간과하지 않는다. 어쨌든 한 번 따져보고 싶더라. 내 음식취향과 정치적 입장은 어떻게 매칭이 되는지 살펴보고선, 문득 궁금해졌다. 이 나라의 가장 큰 쥐구멍에 서식하는 대왕쥐(?)는 어떤 음식취향을 갖고 있는지, 한식 세계화를 부르짖는 여사쥐(?)는 진짜 제대로 먹을 줄 아는지.
 
‘맞아, 맞아’, 손뼉 치며 고갤 끄덕인 부분이었다. 음식에 대한 선택이 한 사람을 드러내거나 보여주는 창이 되겠구나. “음식은 자기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니, 처음 보는 음식을 먹을 때는 무의식적으로 본성이 나온다. 그 사람의 호기심과 경계심 사이의 균형감각이 드러나고 마는 것이다. 미지의 것에 얼마나 마음을 열고 있는지를 볼 수 있는 리트머스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겠다.”(p.191) 혈액형 놀이가 식상하다면, 이젠 음식으로 놀이할 수 있는 방법도 있겠다. 빙고.

다만, 나고 자란 환경과 문화의 영향 또한 무시할 순 없다.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극한 상황에서, 인육까지는 아니더라도 먹어본 적이 없는 동물을 입에 댈 수 있는지 여부는 개인의 성향보다는 태어나 자란 문화에 좌우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본다.”(p.119)

그녀는 음식을 통해 사람을 아는 것에서 나아가 세계의 평화를 찾는 사유까지 나간다. 그것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 흥미로웠다.(사실, 전혀 논리적이진 않다.) 말하자면, 그녀는 ‘푸드평화주의자’인 셈인데, 어떻게든 세계평화를 바라는 그녀의 마음이 음식을 통해 투영된 듯하다. 그녀는 다른 자연 조건, 역사와 문화를 배경으로 형성된 식생활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 음식을 ‘맛없다’고 잘라 말하는 것은 오만불손임을 잘 알면서도, 영국과 미국 음식을 혹평한다. “이런 변변찮은 음식을 먹고 자란 사람들은 세계 각지 어디로 파견되든 먹는 것에 불만을 품는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해봤다.”(p.210)

이에 엄청난 비약일지라도, “맛없는 요리, 이것이 영국이나 미국으로 하여금 세계를 제패하게 만든 원동력이 아닐까? 영국이나 미국 요리가 맛있어진다면 세계가 좀더 평화로워질지 모르겠다.”(p.210) 찬성. 동감. 한 표.

『미식견문록』이 신났던 것은, 음식문화에 대한 세계의 확대 덕분이었다. 전채부터 수프, 메인요리, 치즈, 디저트 순으로 음식이 한 접시씩 나오는 것이 프랑스가 아닌 러시아식 ‘서비스’였단다. 오호, 그런 일이! 토마토가 처음엔 그저 관상용이었고, 감자는 악마의 음식이라며 외면당했다는 ‘굴욕의 역사’라니. 지금의 서양 요리를 봐라. 토마토나 감자가 없는 게 말이 되나. 그만큼 미각은 보수적이라는 말도 되렷다. 다만, 어떤 식으로든 미각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고 새로운 맛을 만나게 되면, 미각은 시간을 두고 극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 아, 우리의 전통음식은 과연 어떨까.

터키꿀엿보다 맛있었던, 천상의 맛이었던, 할바를 통해 그녀는 이리 말했다. “고대에서 중세에 걸쳐 유라시아 대륙이 여러 유목민이나 상인들로 맺어져 있던 정경이 눈앞에 어린다.”(p.93) 음식을 통해 연결되는 세계라니, 근사하다. 내게, 공정무역이 그렇고, 친환경․유기농이 그랬듯이, 세계는 그렇게 잇닿아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 마리 여사가 그렇게 방점을 찍어주시는구나.

무엇보다,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권력자의 서슬 퍼런 으름장보다 더 강력했던, 러시아 최초의 무장봉기를 일으켰던 데카브리스트, 이상주의 로맨티스트 귀족 청년들의 음식 혁명이었다. 표트르 대제도 못한 감자 보급을 그들은 해냈다. 농민들의 식생활, 전 세계의 음식에 그들이 미친 영향이라니. 체 게바라보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에 준하는 관심을 주어줘야 하지 않을까.

“거창한 봉기보다. 이상주의 로맨티스트 귀족 청년들이 험난한 현실에 직면해 꺾이지 않고 오히려 현실을 깨달음으로써 자신들의 이상을 관철한 이야기에 나는 매료된다. 마치 땅속에서 열리는 감자처럼, 드러나지 않지만 깊은 맛이 우러난다.”(pp.75~76)


마리 여사의 『미식견문록』은 혀의 미뢰나 코가 판별하는 음식의 향미만을 서술하지 않는다. 나로 말하자면, 세계를 넓히는 경험과도 같았다. 음식이 사람과, 세계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서술이었다고나 할까. 그 음식 틈새로 드러나는 세계에 대한 사유가 음식 그 이상의 음식, 미식 그 이상의 미식을 보여줬다. 아마 음식에 대한 촉수가 조금 더 예민해질 것이고, 그것이 먹기 위한 내 삶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들 것 같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머리에 맴도는 이것. 고도의 정보기술사회임을 내세우는 지금, 나는 그 ‘고도’에 의문을 품는다. 인간 삶도 과연 고도에 도달하고 있는지. 첨단 기술이 판을 치지만, 그것이 누구나 배 곪지 않을 수 있는 사회를 구축하고 있는지. 의심과 의혹이 토핑처럼 뿌려진 음식을 먹고 불안해하는 지금에, 누구나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어디에 있을까.

마리 여사는 농업을 천시함으로써, ‘누구나 배불리 빵을 먹을 수 있는 사회’라는 이상에 모순적인 형태를 보인 소비에트 연방, 즉 소련은 붕괴했고, 지옥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농민들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준 일본도 지옥에 떨어질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단다. 한국도 마찬가지인데, 그렇다면 우리는 지옥행 열차를 타고 있는 셈인데, 열차를 되돌리기 위해, 아니 최소한 늦추기 위해서라도, 나는, 우리는 어떻게 음식을 만나야할까.
 
에잇, 모르겠다. 어렵게 생각말자. 단순명료하게 내린 나의 결론. ‘좋은’ 음식 만나면 ‘나눠’ 먹자. “아무튼 엄청난 먹보가 많은 우리 친지들은 맛있는 음식을 발견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먹이고 싶어 하는 습성이 있다. 또 그것이 사람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p.174)

나는 그렇게 행복 하고 싶다. 미식이 별건가. 미식가가 별건가. 나는 侎食(어루만질 미, 밥 식)할 것이다. 내 주변을, 작지만 내가 품은 세계를 어루만질 수 있는, 그런 섭생을 하고 싶다. 아, 역시 세계는 넓고 먹을 것은 많구나. 마리 여사가 생전에 한 번 음식이라도 나눌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그래도 이렇게라도 먹는 것과 산다는 것에 대한 통찰을 알려줘서 참 고맙다.    

참, 글의 ‘서곡’으로 제시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에 대한 답을 냈다고, 최근 영국 과학자들이 발표했다. 그들은 ‘닭이 먼저’라며, 달걀 껍질이 형성되는 과정을 밝혀내면서 달걀이 닭의 난소에서만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근거로 제시했단다. 글쎄, 마리 여사가 이 기사를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아마, 달걀이 잔뜩 들어간 카스텔라를 먹으면서 ‘집 잃은 닭도 한 번 키워볼까?’라고 말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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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때가, 2006년의 11월이었죠.

사실, 11월은 그래요. 여느 달과 달리, (주말을 제외한) 휴일도 없고 특별한 축제나 기념할만한 날도 없어요. 맞아요. 무미건조한 달! 만추의 기분요? 에이, 설마~ 그 달은 겨울과 가을 사이에 끼여서 딱히 제 나름의 계절적 정체성도 가지기 힘든 달이에요. 친구는 그러더군요. 겨울로 가는 길목에 '사산아'처럼 던져진 달이라고. 떨어지는 낙엽들 때문에 스산하기까지 해요(그나마 '빼빼로데이'가 있는 것이 위안이랄까요~ ^^;).


그런 낙엽을 보자면, 마음도 싱숭생숭한데, 그해 11월, 우리는 당신을 보내고야 말았죠. 사산아 같은 달에 누군가를 그렇게 보내는 건, 더 큰 감정노동을 동반해야 해요. 누군들 누울 자리, 누울 달을 따져서 눕겠느냐마는, 그렇게 ‘천국’으로 당신을 보내는 일, 쉽지 않았어요. 


그래요. 알프레도 아저씨. 당신은 그때 그렇게, 떠났습니다.
뭐랄까. 아저씨를 대면하거나 얘기를 나눈 적 없지만,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어서 원한다면 기댈 어깨를 언제든 빌려주는 사람이 갑자기 없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할까요. 아저씬 그런 사람이었어요. 집 나간 고양이처럼 떠돌아다니면서 세상에 치이고 치이다가 다시 돌아가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날 반가이 맞아줄 것 같던 사람.


하긴, 아저씨는 영화 속에서도 그랬어요. 토토에게 말이에요. 아저씨를 토양으로 삼고 자란 토토가 성공한 영화감독이 된 뒤에도 아저씨를 찾아오지 않았죠. 하지만 아저씬 토토를 믿었고, 언젠가 돌아올 그를 위해 눈물겨운 선물을 준비해 둔 사람이었죠. 그 선물. 토토가 아니라도, 그 선물을 보고선 눈물 한번 흘리지 않은 사람 없을 걸요. 아, 제게도 아저씨 같은 존재가 있었으면 하고 얼마나 바랐는지. 


모르긴 몰라도, 아저씨는 <시네마 천국>을 심장에 깊이 새긴 사람에게 영원히 자리매김하고 있을 거예요. 어린 토토가 그렇게도 따르고 좋아하던, 토토에 대해 절대 애정을 가지고 있던 당신. 토토의 (유사) 아버지였고, 선생님이었으며, 두목인 한편, 무엇보다 친구였던 당신.



2. 친구, 맞아요.

그래서 아저씬, 욕심이 크게 없었나 봐요. 사람에 대해서도, 영화에 대해서도. 그랬기에, 영화나 인생을 즐겼으며, 친구를 묶어두지도 않았던 거겠죠? 그리고 친구에게 멘토가, 카운슬러가 되어주었겠죠. 특히, 종종 보여주신 약자를 향한 애정, 그것 또한 인상 깊었어요. 스스로 부유하진 않았지만, 넉넉하고 풍족한 마음씨로 없는 사람을 대했던 친구.

그런 친구를 구름의 저편으로 보냈을 때, 슬픔도 슬픔이지만, 참 아쉬웠어요. <클로저>에서 주드 로가 분했던 부고전문기자, 댄이 말했듯, 제대로 된 부고기사를 접하지 못해서, 내가 그것을 제대로 못해서.ㅠㅠ 부고는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1인분의 생이 마감됐음을, 그 죽음을 제대로 알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사람들은 때론 간과하는 것 같아요. 온전한 하나의 세계가 사라지는 그 순간에 말이죠. 그 세계가 다른 세계에 미친 영향은 또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 그래서 알프레도 아저씨를 제대로 알렸어야 했는데 말이죠.


어쩌면, 이 포스팅은 아저씨에 대한 미안함을 담은,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친구처럼 당신을 생각했던, 한 젊은이가 보내는 연서이기도 하지요. 더불어, 지금까지의 제 생애를 지탱하게 만들어준,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 아저씨와 같은 친구들에게 건네는 이야기. 아저씨 없는 토토가 없듯, 아마 그 친구들 없이는 제가 없었을 거예요. 그렇기에 ‘시네마 천국’은 어쩌면, 제 얘기가 아니었을까요. ^.^  




3. 저는 한때, ‘ToTo’라는 아이디를 가진 적이 있었어요.


당연히 <시네마 천국>의 ‘토토’에서 빌린 아이디였죠. 내 인생의 영화, 많지만 0순위를 꼽으라면 저는, 주저함 없이 <시네마 천국>을 말합니다. 아마도 고등학교 때였죠. 그보다 어릴 적부터 영화를 좋아하고 극장을 드나들던 저였지만, 그건 일대 사건이었죠.  단순히 영화 제목이 마음에 들어 만났던 <시네마 천국>. 대수롭지 않게 앉았다가 끝내 엉덩이가 무거워져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던 시간이었어요. 눈물까지 범벅이 돼서, 몰입하고 말았던 그 첫 번째 대면의 시간.


그 전까지 <시네마 천국>만큼 가슴을 후벼 판 그런 영화,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토토와 알프레도 아저씨의 우정. 아버지 잃은 어린 토토가 유사 아버지이자 친구인 아저씨와 나눈 감정의 교류. 이전에 절 울렸던 한권의 책,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에서 만났던 제제와 뽀르뚜가 아저씨의 느낌이 영상으로 되살아난 기분이었어요.



그들은 서로 만집니다. 몸의 접촉을 넘어선, 서로의 마음을 만져주는. 그건 소통이고 정서적 공유였죠. 누구 하나의 의한 가르침이나 주입이 아닌, 서로가 삼투압하고 번집니다. 모든 포유류는 본능적으로 피부접촉을 통해 정서적 안정을 추구한다죠.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오갈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접촉을 통해 함께 자랍니다. 만지고 만져지는 자연스러운 스킨십이죠. 그들의 상호관계성이 형성되는 과정이 저는 눈물겨웠나 봐요. 처음 볼 땐 무작정 몰입됐던 그들의 이야기가 자라면서 더욱 가슴 한 켠에 숨 쉬게 된 건, 아마 그런 ‘관계’ 때문입니다.

알프레도 아저씨는, 토토에게 이런 말도 건네죠. 
“토토, 네가 영사실 일을 사랑했던 것처럼 무슨 일을 하든 네 일을 사랑하렴...”

어린 날부터 뻔질나게 영사실에 드나들던 토토에게, 영화(일)를 하라고 얘기하진 않아요. 그저 자신의 일을 사랑하라고. 그건 곧 자신을 사랑하라는 의미까지 담은 표현. 아저씬, 만지고 만져질수록 자신과 상대방의 존재가 커짐을 머리가 아닌,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맞죠? 아저씨. 만질수록 커진다!



4. 제게도 그런 친구가 있어요.


말하자면, 그들은 제게 알프레도 아저씨이자, 뽀르뚜가 아저씨. 중학시절 만났던 내 친구 상현이. 녀석은, 정말 다른 친구와 달랐어요. 고만고만하게 비슷한 환경의 세계에 묶여 있던 제게, 녀석은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알려줬죠. 경제적으로 가난한 집안의 그는, 풍부한 감(수)성과 마음씨를 지닌 문학 소년이었어요. 녀석은 조숙했어요. 좋지 않은 환경에서도 그는 너른 웃음을 지니고 있었고, 다른 사람도 먼저 생각할 수 있음을 알려준 친구. 교내 백일장을 휩쓴 그의 글을 보자면, ‘아 어떻게 이런 글이 나오지’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했었고요.


저는 무작정 녀석이 좋았고, 많이 따라다녔죠. 10대의 좁은 내 세계에 변곡점이 됐던 그 친구. 똥고집부터 부리고 혼자만 알았던 제게, 처음으로 세상에 가난이 있음을, 다른 친구를 우선 생각할 수도 있음을 알려주었죠. 우리는 늘 밥을 함께 먹고, 녀석과 내 집을 오가며, 자전거를 함께 타고 공부는 물론 노는 것도 함께 했었죠. 내게 그렇게 번졌던 그 친구. 나는 얼마나 그 친구에게 번질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참 고마운 친구.


그리고 20대. 나는 또 다른 알프레도 아저씨를 만났죠. 군대를 갓 제대하고, 폭력적이고 가혹한 율법에 날이 서 있던 제게, 타국에서 만났던 그녀는 내 안의 독을 빼주었어요. 한 지역방송사의 기자였던 그는, 모든 사회적 지위를 버리고, 다시 공부하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었죠. 그 먼 타국에서 우린 참 많이 걷고 이야길 나눴죠.
 

내가 놀란 건, 그의 선택이었어요. 당시 자본이 부추기는 욕망에 더 가까이 있던 내게, 그는 우리 인간 사회가 안고 있는 그늘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줬죠. 그는 그 그늘은 결국엔 우리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고, 우리 중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기본 명제를 품고 한 장애인 커뮤니티에 자원봉사자로 자신의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특수교육(Special Education)으로 진로를 잡은 선택이었죠. 


물론, 그의 선택이었지만, 그도 인간이었기에, 그는 내게 간혹 토로했었죠. 혼란스럽고 당황스럽기도 한 상황에 회의를 내비치면서. 그러나 그는 억지로 버티고 견디지 아니했어요. 자신의 몸이 고장이 나기 전까지는. 그는 많은 시간 즐거웠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여줬어요. 달뜬 목소리로 자신의 행복을 말해주기도 했었죠.

그 사람, 또 다른 알프레도 아저씨였던 그 사람. 그 덕분에 나도 꿈이 생겼고요. 그는 알프레도 아저씨가 토토에게 했던 마냥, 내게 이런 말을 건넸죠. “건강하게 사회 속에 썩어 들어가기 바라네. 해서, 사회기둥의 한 뿌리가 되어 있는 자넬 보고 싶네,. 든든한 한 뿌리가..” 이건 내겐 절대반지가 됐어요. 그때 이후 내 생을 지탱하는 하나의 축대가. 영원히 지키리라 장담할 수 없지만, 든든한 뿌리까지 될 자신도 솔직히 없지만, 늘 내 가슴 속에서, 숨이 멎는 그 날까지 간직한 그 말. “건.강.하.게. 썩.어.들.어.가”라는 그 말.


맞아요. 그들을 널 만나기 전과 만난 후, 저는 사람이 완전 바뀐 건 아니지만, 약간 달라졌어요. 그때그때 내 생은 그들을 만나기 전과 그 후로 나뉜 거죠. ‘before’와 ‘after’. 삶에서 경험하는 어떤 균열이라고 해도 좋을. 그리고 지금 새로 시작한 일. 그들이 추동한 것이나 마찬가지죠. 앞서 했던 일도 물론 그랬지만, 지금도 그래요.


내겐 그 친구들이 바로, 알프레도 아저씨랍니다. 사실 지금 그들은 나는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어떤 이유들로 인해. 내가 좋아하는 노래 중에 여행스케치의 ‘옛 친구에게’가 있어요. 그 노래 들을 때마다, 나는 내 알프레도 아저씨를 떠올리죠. “지난 내 어리석음 이젠 후회해 하지만 넌 지금 어디에… 아직도 나를 기억 한다면 날 용서해주오♪” 그들, 잘 있겠죠?



5. 작은 바람이 생겼어요.


알프레도 아저씨가 토토에게 그랬고, 그들이 나에게 그랬죠. 그것이 단 한 사람에게 일지라도, 당신이 내게 그러했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번졌으면 좋겠습니다. 맞아요. 당신은 내게 그런 번짐이었습니다. 우린 느닷없이 만나고 느닷없이 헤어진 상태지만, 그건 생에 있어 하나의 단계이자, 수순이라는 생각도 해요. 알프레도 아저씨를 훌쩍 떠나보낸 채, 뒤늦게 그를 찾아간 토토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해요.



그래도 느닷없이 잊히진 않아서 참 다행입니다. 당신의 번짐이 아직 제 가슴에 번진 채 있어서 역시 다행이에요. 토토가 알프레도 아저씨를 만난 것이 우연이듯, 우리의 만남도 우연이었어요. 그 우연이 우연을 불러 인연이 넓어지고, 인연은 또 다른 세계를 만나게 해 줬네요. 당신과 맞닥뜨린 이 우연이, 인연이, 저의 세계를 더 넓혀줬습니다.

당신은 내게 그런 번짐이었습니다.
“사람의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 속밖에 없다”(『냉정과 열정 사이』)는 말이 맞다면, 당신들은 내 속에서 여전히 번지면서 있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제는 저도 그런 번짐이고 싶어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영사기를 통해 비치는 영상이 토토에게 경이로움과 감탄이었고, 또 다른 세계를 알게 된 창이었을 겁니다. 알프레도 아저씨가 그것을 전해줬고. 그것만큼은 아니지만, 제가 건네는 커피 한 잔이 단 한 사람에게라도 작은 번짐이자 아주 작은 위안이 됐으면 좋겠어요. 저는 늘 커피와 함께 제 마음 한 잔도 담아주고 싶어요. 그것이 제 작은 바람이에요.
커피 한 잔, 번짐 한 모금...


마지막으로, 장석남의 ‘수묵정원9-번짐’이라는 시를 건넵니다.
고마워요, 알프레도 아저씨(들)...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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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아마도, 봄의 끝-여름의 시작 무렵이었을 거야. 콘서트를 봤어. 노래가 흘렀고, 사람들이 환호했으며, 이야기가 넘쳤다지. 그리고 그 가운데, 한 약속이 있었어. 무대로 한 쌍의 커플이 불려 올라갔고, 여느 무대에서나 볼 법한, 흔해빠진 프로포즈 타임이 펼쳐졌어. 남자가 사연을 보내서 채택이 됐나 봐. 사실 그런 프로포즈, 사랑 그 자체의 사랑보다 남들에게 인정받으려고 용 쓰는 투쟁 같은 측면도 있지만, 때론 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뭉클할 때가 있지. 이 날 이때가 그랬어.

정확한 사연은 기억나질 않아. 다만, 손발 오그라들었다는 정도. 블라블라, 이야기를 풀던 구애남이 마침내 던진 결정구는 이것이었어. "Will you mary me?" 그러니까, 나랑 결혼해줄래? 익히 예상했던 말. 더 나가보자면, 뻔하고 식상하며 상투적인 그 말.

그럼에도 아! 그 순간은 마법 같은 순간이었어.

주술이었을까. 그 구애남, 혹시 연애술사? 호잇~


여자는 이 프로포즈를 기꺼이 받아들였어. 아마도 두 사람, 여길 오기 전, 사전 교감이 있었겠지. 두 사람에게 장래 계획을 물었더니, 이 구애남, 준비라도 해 둔 양, 좔좔좔 보따리를 푼다. 연인과 꿈꾸는, 행해야 할 혹은 행하게 될 행위를 나열한다.

그건 약속이었어, 약속. 자신의 연인을 향한, 수많은 관객 앞에서 자신의 의지를 증명 받기 위한. 그 약속, 어쩌면 시간의 풍화작용 앞에 탈색돼 버리거나 날아갈지도 모르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런 염려를 퉁~쳐버렸다. 그 남자의 진심일 확률 99.587%. 여기는 곧, 그 연인의 약속의 장소.


모르긴 몰라도, 그 약속, 실행 여부와 상관없이, 구애남의 삶 일부를 규정하는 무엇으로 자리매김했을 거야. 물론, 두 사람의 이후 행보는 몰라. 결혼을 했거나, 헤어졌거나, 아니면 여전히 결혼하지 않은 연인으로서 관계를 맺고 있거나. 약속, 지키고 있거나 혹은 산산이 흩어졌거나.



약속은 때론 분명, 그럴 수도 있어.

한 사람의 모든 것을 규정하는 무엇이 될 수 있지. 깨지라고 있는 것이 약속이라는 말도 있지만, 깨려고 하지 않아도 깨질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지만, 빛으로 물든 세상의 중심에 있는 누군가를 향한 약속이라면, 그건 거부할 수 없는 계시!!!

히로키에게도,
사유리는 그런 존재였지.


“사유리가 빛으로 물든 세상의 중심에 있는 듯이 보였다.”


반짝반짝 눈이 부셔, 예예예예~♪

맞아. 내 또 다른 블로그가 품고 있는 그들이야. 사유리와 히로키. 그래서, 블로그 타이틀도,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을 그대로 딴. 얼마나 이 작품을 알싸하게 봤으면 타이틀을 그대로 붙였겠어, 그치? ^^ 넌 이미 눈치 채고 있었지?

모든 것은, 약속에서부터 비롯된 거야. 빛으로 물든 세상의 중심, 사유리에게 던진 히로키의 약속. 언젠가 방과 후에 했던 히로키의 다짐. 아, 그러고 보니, 그때도 여름이었구나. 딱히 시대를 알 수 없는 일본의 한 작은 도시. 중학생 히로키가 절친인 타쿠야와 함께 매혹된 것은, 동경하는 것은, 츠가루 해협 사이에 국경너머로 솟아있는 거대한 탑이었어. 더불어 히로키에게 절대 동경의 대상이었던 사유리. 아, 아름다운 소녀.

내게도 그때, 여름이었다.

모든 약속은 여름에 하는 것일까. 그건 모르겠다. 어쩌다가 여름이라는 계절이 맞물렸을 뿐이겠지. 노을, 가지를 내린 가로수, 가로등 불빛, 우리 마음을 비춰주던 그해 여름의 풍경. 아직도 난 기억해. 넌 그날 우리가 걷던 그 길이 그려지니. 

구름, 햇살, 노을, 손등을 기어가는 작은 무당벌레. 히로키에게도 그런 날이었어. “난 저 탑까지 갈 거야.” 다짐이었고, “너와 함께”는, 약속이었지. 이루어질 수 없는 약속이 될지라도, 그때만큼은 진심이었어. 히로키는 늘 그 탑을 쳐다보고 있었고, 그만큼 절박했으니까. 매우 중요한 뭔가가 거기에 있을 것만 같았으니까. 그는 거기에 가야했던 거야.


하루키에게 그 특별했던 여름. 이곳에서 사유리와 함께 저 탑을 바라보며 했던 조그만 약속. 우리도 아주 조그만 약속이었어. 이루지 못할 무언가도 아니었지. 우리가 다시 돌아갈 그곳에서 만나기만 하면, 대수롭지 않게 지킬 수 있는 약속이었다. 물론 그 약속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그때의 우리 관계를 규정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됐겠지. 약속을 지키지 못함은, 두 사람의 관계가 끊어졌음을 의미하듯 말이야.  

하긴 아무도 모른다. 그때는, 약속이야 어쨌든, 그곳 그 시간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만 같았으니까. 히로키에게도, 나에게도 그랬어. 약속을 하던 그 시절, 사유리와 세상은 얼마나 빛났던가. 사유리 하나로 세상이 빛날 수 있음을 확인한 이 중학생은 또 얼마나 조숙한 건가. 놀랍지 않나. 물론 그런 나이 따윈 중요하지 않지만, 그의 독백을 듣노라면, 그의 동경이, 그의 애정이 얼마나 심각한지도 쉬이 짐작이 갈 거야.

“3천만 명 이상이 사는 이 도시에서 만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었.다. 하나 아닌 둘이 있을 때, 그리고 군중 속의 외로움. 그것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그는 깨달았나 봐. 이별할 때, 혹은 사랑하는 누군가가 없을 때, 위로랍시고 던지는 이 말들. 세상의 반이 여자라고, 세상의 반이 남자라고. 사실, 그건 위로가 되질 않음을 알지? 그 위로, 사실이긴 하지만, 진실은 아니잖아. 그 여자도, 그 남자도, 세상엔 단 하나뿐인 존재거든. 그 여자를 대신할 수 있는 어떤 여자도 없으며, 그 남자를 대신할 남자도 없으니까.

그러나 갑자기 사라진 사유리.
어떻게 된 일이지? 사유리가 사라졌어.


생각해 봤어. 히로키에게 사유리 없는 세상을 버티고 견디게 한 것은, 그 약속이 아녔을까. 히로키에겐 가끔 꿈에서나마 찾아야 하는 사유리였어. 어딘가 차가운 장소에 홀로 남겨진 사유리를 필사적으로 찾는 꿈. 그럼에도 결국 사유리를 찾지 못한 채 깨고 마는 꿈. 그런 꿈에서 깨어나면, 세상에 홀로 남겨져 있는 기분에 시달렸지. 그런 히로키를 버티게 견디게 해 준 것은, 지켜야 할 약속이었을 거야. 내가 그랬기에 말이지.


그래, 그때 내가 먼저 돌아왔잖아. 당신을 여전히 그곳에 두고. 당신 없는 이곳을 버티고 견디게 한 것은, 당신과 내가 나눈 그 약속 때문이었던 것 알아? 아마, 모를 거야. 내가 늘 꿈꾸던 건, 당신과 나눈 약속이 지켜지는 순간이었지.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아마 내 심장은 터져버릴 거라고 확신에 가까운 착각을 하고 있었지, 나는.  

“이제는 이미 아득한 그날, 저 구름 너머에 그녀와 약속한 장소가 있었다.”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약속은 현실을 지탱하는 힘인지도 모르겠어. 시간의 풍화작용에 깎이고, 얼룩도 지고 말겠지만, 어떤 순간에 내뱉은 약속은 그런 것들이 별반 무쓸모 아니겠어. 그건 어쩌면 격렬한 아픔이기도 해. 약속을 지키는 것이 가능할까, 라는 의구심과 끊임없이 싸워야 하니까 말이야. “어느 틈에 난 이런 아픔을 안게 됐을까”라고 되물어도 당최 답이 없는 현실도 있으니까.

사실 히로키가 부러웠던 건, 약속을 지켜서가 아니었어. “널 계속해서 지켜줄게, 약속할게”라는 약속 이후의 약속을 할 수 있어서도 아니었고. 아, 물론 그런 것들이 아예 없다고 하면 새빨간 뻥일 테지만, 그것보다 약속을 향해 기다릴 수 있었다는 것. 어쩌면 그 기다림, 뼈가 피부를 찢는 듯 격한 아픔이었을 수도 있겠지. 그래도 ‘언젠가는’이라는,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어서 부러웠다.


내 가난했던 영혼을 채워주었던 당신. 그런 당신과 했던 약속. 그 약속이 영원히 지켜질 수 없는 ‘미제’로 남은 순간을 나는 기억해. 그저 박제되고 봉인되고 만 그 약속. 그래, 기약 없는 기다림 때문에 바람 빠진 자전거처럼 흐느적거리진 않아도 되지만, 대신 자전거 핸들을 놓아버릴 수밖에 없는 순간. 줄곧 당신을 향하던 자전거가 갈 곳을 몰라 휘청거려야 했던.

어디에서였더라. 이런 말이 있었어. “나는 한 줄 책에 실린 글귀에 위안을 받고, 퇴근하는 저녁 길에 머리 위로 떠오른 초승달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에 불과했다.” 알다시피, 나 역시 그런 사람이잖아. 한 줄의 약속에 위안을 받고, 매일같이 퇴근길, 약속의 장소를 떠올리며 하루를 지탱했던 나는, 구름의 저편을 원망하며 살아야 했어. 

그래도, 사유리와 히로키는 내게 또 하나의 ‘약속’을 알려줬어. “약속의 장소를 잃은 세상이라도, 그래도 앞으로 우린 살아갈 것이다.” 잃어도, 그것이 내가 아닌 세상에 의한 것일지라도,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것. 어쩌면 히로키가 사유리 없는 세상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약속’이 아니라, 그것이 삶이기에 가능한 게 아녔을까. 두 소년과 한 소녀의 염원이 담긴 비행체 ‘벨라실러’는 그런 생의 욕구를 에너지원으로 삼았던 것은 아녔을까.

함께 탑까지 날아가자던 우리의 약속은 지킬 수 없게 됐지만,
우리가 했던 변치 않을 약속은 구름, 햇살, 노을, 손등을 기어가는 작은 무당벌레에도 고마워하면서 아무 것도 포기하지 않는 것. 우리 사회의 취약한 곳과 소외된 세계에 닿았던 당신의 몸과 마음에 가닿을 수 있는 벨라실러를 타고 가는 것. 그것이 어쩌면 우리의 또 다른 약속. 나도 히로키를 따라. 당신을 계속해서 지켜줄게, 약속할게. 함께 탑까지 날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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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빠바바바 바 바바, 빠바바바 바 바바... 하고 사운드가 기어나올 때,
나는 이미 넉다운이었다. 이런 감격이 있나, 허. 눈물까지, 시큼.

<대부>를 필름으로 첫 대면하는 그 순간.
이제야 필름 스크린으로 알현하게 된 송구스러움도 꾸물거리고,
지금에라도 필름으로 대면할 수 있게 됐다는 뿌듯함도 꿈틀대고,
아, 그 때 그 순간의 느낌을 글로 표현하기엔 내 필력이 딸릴 뿐. 띠바.

<대부>가 고전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렇게 보고 또 봐도, 여전히 새롭고 흥미진진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 빌어먹을 가족 서사는 지금에서도 충분히 현실을 향한 사유를 가능케한다.
하긴 어느 시대에든, 이 서사가 사유와 흥분을 멈추게 할 리는 없지.


아울러, 말론 브란도가 아닌 돈 콜레오네는 상상 불가능.
나의 상상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탓해도 어쩔 수가 없다. 된장.

그가 떠난지 6년.
그의 마지막이 어땠는지 모르지만,
돈 콜레오네가 쓰러질 때의 모습과 오버랩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러니까, <대부>에선, 시쳇말로, 브란도의 미친 존재감!이 캐작렬.

말론 브란도를 그렸다.
지난 1일이 6주기였다. 아래 기고문은 그래서 나왔다.

p.s. 지난 5월에 개봉한 <대부>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은,
아직 극장(씨네코드 선재)에 걸려있다. 놓치지 않길 권한다.
특히, 필름으로 아직 <대부>를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아니면, 오는 30일 팡파레를 울리는,
서울아트시네마의 2010 시네바캉스 서울!

그 바캉스 시즌에 <대부>가 역시 껴 있다는 즐거운 소식.
8월8일(일) 김영진 평론가의 씨네토크와 함께 펼쳐지는 <대부> 박항스~
13:00다. 엔간하면 가야지, 생각하고 있다. 혹시 만나면 가벼운 눈인사라도. ^^



말론 브란도, 아버지였지만 아버지를 부정한 이름
예술이 지녀야 할 자세에 대하여


지난 5월 <대부>가 재개봉했다. 국내 개봉이 1977년(미국은 1972년)이니, 33년 만이다. ‘디지털 리마스터링’한 이번 버전은, 향수와 함께 바뀐 세대의 스크린 경험을 위한 것이겠다. 그러니,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있나. <대부>는 그렇게 다시 왔다.


스크린을 통해 처음 만난 <대부>는 위엄 있고, 웅장했다. 경건함과 비장미까지 갖춘 고전적 서사의 재등장이었다. <대부>에 대한 개인적인 애정을 감안한다면, 이는 후광효과에 기댄 감상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다. <대부>는 표피만 놓고 보자면, 마피아 협잡극에 불과하니 말이다. 물론, 이것은 <대부>의 진짜 가치를 모르는 오해가 되겠다. 마피아로 포장됐을 뿐, <대부>는 당시 1970년대 시대상황과 연관된 문화적 산물이자 서사였다.


마리아 푸조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대부>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영화로 우선 각인돼 있다. 재능 있는 신예 감독에서 이 영화로 거장 대열로 성큼 올라선 코폴라의 연출력이 <대부>를 만신전에 올려놓은 일등 공신이다. 마피아 세계를 그들만의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인류학적으로, 뭣보다 누구도 자유롭기 힘든 가족서사로 <대부>는 여전히 우리의 폐부를 찌른다.


돈 콜레오네였던 사나이


그 핵심에, ‘돈(비토) 콜레오네’가 있다. 가족과 패밀리의 질서를 확립한( 것처럼 오해받는) 가부장, 돈은 <대부>의 핵심이다. 그것은, 또한 말론 브란도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한때 제임스 딘도 선망했던 메소드 연기의 달인이었던 그는, 당시 전성기가 지난 처지로, 제작사는 그의 캐스팅을 극구 반대했다. 코폴라의 고집이 위대한 <대부>를 만들어냈지만, 돈을 스크린에 현현시킨 것은 전적으로 브란도의 공이었다.



여기, <대부> 카메라 테스트에서의 일화. 브란도는 구두약을 머리에 발라, 비토의 헤어스타일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소설 속 인물이 불도그 같이 생겼으니, 화장지를 입안 양쪽 볼에 집어넣었다. 늙은 얼굴과 염색, 어눌한 말투까지 곁들여 우리가 아는 비토, 대부는 창조됐다. 그가 어떻게 연기를 하는지, 메소드 연기의 달인이라는 별칭이 왜 붙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다.


한편으로 브란도가 비토를 맡은 것은 아이러니다. 현실이나 스크린에서 그는 아버지를 거부하고, 아버지의 질서에 저항한 인물이었다. 젊은 시절 그의 연기는 노동자 계급의 것에 가까웠다. 앞선 남자 배우들이 도덕군자와 정의의 사나이에 붙박인 캐릭터를 연기했다면, 그는 달랐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주목받은 그는 <비바 자파타> <워터 프론트> <아가씨와 건달들> 등을 통해 소외계층을 대변하는 반영웅으로 각인됐다. 그는 당대 미국의 변화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1950~60년대 젊은 미국에게 어울리는 배우였다.


침체기였다고는 하나, 그런 반영웅이 선택한 <대부>는 의외였다. 말하자면, 돈 콜레오네는 가부장의 화신이다. “내 말이 곧 법”인 마피아의 절대군주로, 모든 질서를 관장하는 절대자 아버지. 세월에 굴복한 것일까, 그도 늙은 것일까. 아버지가 만든 기성의 규율에 반항하고, 투쟁했던 그가 전성기 이후에 택한 배역이 아버지라니.


버르장머리 없는 거친 짐승 같은 그가 한 순간에 바뀔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대부>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자가 됐지만, ‘할리우드의 인디언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이유로, 그 항의의 표시로 수상을 거부했다. 그의 반항 기질과 퇴폐적인 매력은 불혹의 나이에도 어딜 가지 않았다. 그 안에 내재된 짐승을 어찌하겠는가.


파리에서의 한 가지 표정, 브란도


<대부>의 선택이 아버지의 규율에 편입하기 위한 수순은 아니었다. 브란도의 다음 선택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였다. 그의 표정은 180도 달라졌다. 도시의 무감과 삶의 비루함을 담은 얼굴. 부성의 체화가 불러온 반발이었을까. 신랄하고 퇴폐적인 폴로 변신한 브란도의 무기력한 정사가 이어졌다.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잔느(마리아 슈나이더)와 정사를 나누면서 그는 외친다. “네 이름을 알고 싶지 않아! 너도 이름이 없고 나도 이름이 없어. 우리는 모든 것을 잊는 거야.” 세상에 지치고 모든 것을 잊고 싶은 아노미 상태에 빠진 폴에게 이름과 과거는 거부하고 싶은 무엇이었나 보다.

한편으로 그것은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었다. 허무가 감싼 폴의 얼굴. 그것은 또한 브란도의 것이었다. 메소드 연기의 진수를 보여준 그의 증명이었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개봉 즉시 논란이 됐다. 파격적인 내용과 정사신 등으로 사람들의 입에 회자됐다. 그것은 많은 것을 담고 있었던 폴의 표정 때문이기도 했다. 한 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그 표정. 그 표정은, 1970년대의 어떤 풍경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것도 프랑스 파리.


혁명의 시대가 지났거나, 실패로 끝난 혁명 때문이었을까. 그의 얼굴에 남은 흔적은, 곧 당대 사람들이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던 표정이었는지도 모른다. 홀연히 끝난 혁명의 공허함과 목표를 잃은 도시의 욕망이 교차했던 그 표정. 이름도 성도 모르는 여성과의 섹스도 탈출구가 되지 못함을 사람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랬다. 녹슨 해방구만 남았고, 파멸을 친구 삼아야했던 처연한 고독과 적나라한 쓸쓸함만이 나부꼈다고.


내가 가장 강렬하게 파리에 가고 싶다고 느꼈던 때는, 이 영화를 보고 난 직후였다. 파리지앵의 우아한 라이프 스타일이나 자취 때문이 아니었다. 68혁명의 도시를 가고 싶다는 욕구도 아니었다. 숱한 사상과 혁명을 잉태했던 커피하우스에서 향미를 맡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나는 폴의 표정을 잉태한 파리가 궁금했다. 말하자면, 말론 브란도가 나를 유혹했다. 어떻게 그런 표정이 나올 수 있지. 파리에 가면 저런 표정이 나올 수 있을까. 물론 안다. 그건 브란도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더 이상 배역과 한 몸이 되고 표정으로 말하는 ‘말론 브란도’를 볼 순 없다. 6년 전, 2004년 7월1일, 향년 80세, 그는 영욕의 세월을 접었다. 무명 시절, 돈을 벌려고 로데오경기에 참여했다가 코가 부러지면서 매부리코를 얻었던 그는, 깔끔하고 정갈한 꽃미남이라기보다 반항을 일삼는 터프가이였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아버지의 시대를 열어젖혔을 때도, 그는 쉽게 투항하진 않았다.


그것은 예술의 자세였다. 연기에 대해 늘 회의했고, 영화배우라는 직업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며 불평했지만, 그는 연기했고, 천생 배우였다. 오직 하나였던 배우. 그 ‘하나’가 지닌 모든 것은, 세상의 모든 아버지처럼 죽었다. 아버지라는 권위에 도전하고 투쟁하는 일. 그럼으로써 자신만의 이름을 가지는 일. 그것이 버르장머리 없는 반항아의 파괴적인 일탈일지라도 시도해보자. 예술 안에서 당신안의 짐승을 깨워보자.

[문화예술 크리틱 저널 - 뷰즈 7·8월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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