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16일 일본 소설가, 요시다 슈이치를 처음 접견하고 쓴 기고문.

처음 읽었던 그의 소설, 『사요나라 사요나라』.

아주 깊숙하게 박히는 소설은 아녔지만, 흥미롭게 술술 거침 없이 읽히는 소설이었음.


롯데시네마에서 요시다 슈이치 작가에게 감사패를 수여했다.


“꼭 한국인이나 한국을 배경으로 소설을 쓰고 싶다”

[아름다운 人터뷰] 『사요나라 사요나라』의 작가 요시다 슈이치


요시다 슈이치 작가가 왔다. 『퍼레이드』『파크 라이프』『악인』등으로 우리의 가시권에 들어왔던 그 꽃미남 작가 말이다. 현재 일본에서 주목받는 작가 중의 하나인 그는 대중성과 작품성을 갖춘 작가로 꼽힌다. 말하자면, 대중문학과 순수문학 양쪽에서 인정받는 양다리 작가.


그의 문체는 섬세하다. 특히나 도시의 일상과 심리를 다룰 때 더욱 그러하다. 꼼꼼하게 모든 것을 설명한다는 말이 아니다. 딱딱 필요한 묘사만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충분히 그 광경을 상상하고 그려낼 수 있다. 무엇보다 그의 소설은 빨판을 가진 듯, 우리를 흡수한다. 쉽게 눈을 떼기 힘들게 만든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그냥 궁금해진다.


『사요나라 사요나라』(요시다 슈이치 지음|이영미 옮김/노블마인 펴냄)도 마찬가지다. 한 아이의 죽음에서 비롯되는 어떤 사랑의 흔적과 행로. 아이의 죽음은 그저 맥거핀이다. 어쩌면 이해하기 힘든 사랑이다. 과연 이런 게 가능해?, 라고 되물어도 할 말은 없다. 일은 벌어졌고, 사랑은 진행 중이다. 그것도 운명의 상대란다. 누군가에겐 당최 이해할 수 없는 방법일 것이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그저 읽는 사람의 몫이다. 그의 여느 책이 그러하듯, 결말은 열려 있다. 소설이, 요시다 슈이치가 말하지 않은 것은 온전히 당신의 세계에서 말해져야 한다. 지난 16일 오후 서울 신림동 롯데시네마 신림관에서 YES24와 롯데시네마가 마련한 ‘아름다운 책 人터뷰’에 요시다 슈이치가 초대됐다. 그는 소설과 달리, 수줍음이 많은 사람 같았다.


“안녕하세요. 요시다 슈이치입니다. 감사합니다”라는 한국말로 독자들과 첫 인사를 나눈 그는 차분하고 침착하게 질문에 답했다. 때론 난감해하면서. 『사요나라 사요나라』를 번역한 이영미 번역가와의 대담에 이어 인터넷과 현장 질문이 이어졌다. 그는 조곤조곤하게 말했고, 짧지만 핵심적인 답변을 했다. 요란하지 않은 소설 풍과 어쩐지 닮았다고 생각했다. 



- 소설가로 들어선 계기가 있나. 좋아하는 작가나 영향을 미친 주변인물 등을 말해도 좋다.


“소설가가 되기 전까지 많은 작가를 만났다. 특히 가와바타 와스바리를 좋아한다. 또 시를 무척 좋아한다. 그렇게 읽은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 소설 속에서 심리묘사를 보면 시적이거나 시처럼 표현되는 부분이 많다. 시의 영향이 있나.


“소설과 시는 다르다. 나는 시는 못 쓰는 사람이다. 그러나 시를 좋아해서 그런 것이 작품 속에 녹아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만남을 잘 포착해서 묘사한다. 『파크 라이프』나 『동경만경』  등에서 잘 드러나는데, 어떻게 이런 것들을 포착하나.


“일부러 소재를 찾기 위해 전철을 타거나 여행을 하지는 않는다. 오늘도 잠실에서 지하철을 타고 왔는데, 그런 일상에서 옆 사람을 보고 관찰하면서 포착할 수 있는 것들을 찾곤 한다.”


- 호메로스의 경우, 뮤즈가 영감을 줬고, 자기는 그것을 전달할 뿐이라고 말한다. 지하철의 사람 행동이나 모습을 보면서 포착하는데 스스로 재능이 있다고 보나.


“일본에서도 (뮤즈가 호메로스에게 한 것처럼) 신이 들려서 (소설을) 쓴 경험은 없다. 그런 감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저 써 나갈 뿐이다.”


- 『악인』 『사요나라 사요나라』 등에서 보면 가해자와 피해자, 선과 악을 뒤집는 설정이 있다. 납득하기 힘든 상황이나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 경우도 나오는데, 이를 설득하기 위해 어떻게 하나.


“나는 인간이 범죄를 저지른 사실을 쓰려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그리려고 할 뿐이다. 범죄나 연애 다 마찬가지다.”


- 『사요나라 사요나라』의 출간 인터뷰를 보면, 특정 장소를 떠올리면서 집필했다고 하던데, 작품에서 공간이 지니는 의미가 있다면.


“책을 읽는 사람을 따라 장소가 됐든, 성격이 됐든, 성장하는 것이 있지 않나. 장소나 공간도 소설에서 등장인물을 그리는 것처럼 그려내고자 한다.”


- 반전이나 열린 결말에 대한 의도가 있나. 열린 결말은 희망적 메시지를 암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작가의 가치관이나 세계관과도 연관이 있는지.


“사실 나는 일본에서 밝은 결말을 쓰는 작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열린 결말에 대해서는, 나도 이후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나도 모르는데 아는 척하면서 쓰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그렇게 열린 결말을 쓰곤 한다.”


- 번역하다 보면 창작이라는 것이 대단하고, 한편으로 열등감도 느낀다. 창작할 때 고도의 집중력과 몰입이 요구될 텐데 시간이나 자기관리의 노하우가 있다면. 혹은 긴장해소나 재충전의 방법이 있다면 알려달라.


“성격상 내겐 소설가가 맞다. 집중력이나 몰입도가 좋다기보다는 종일 방에 있어도 고통스럽거나 힘들지 않다. 그러면서도 스트레스는 쌓인다. (웃음) 나는 물을 좋아한다. 그래서 수영이나 사우나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긴장을 푼다.”


-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가 일반적인 사람들의 관계나 진실된 모습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묘사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픈 메시지가 있다면.


“일상의 에피소드를 겹쳐서 적어내는 것이 소설이다. 디테일하게 묘사하는 것이 소설의 테마이고. 세상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고, 일상이 있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다.”



이영미 번역가와의 대담이 끝나고 인터넷을 통한 독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 특별히 아끼는 영화나 드라마가 있다면 추천해달라.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고 많이 본다. 일본에서 한국영화나 드라마의 인기가 좋아서 일본 독자들에게 한국영화를 많이 소개한다. 추천하자면, 일본의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작품을 봐줬으면 한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에 가까운 감독인데, 멜로장르를 고상하고 품위 있게 만든다. 볼 기회가 있다면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작품을 꼭 보라고 말하고 싶다.”(주. 나루세 미키오 감독은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 구로사와 아키라와 함께 일본 4대 거장으로 꼽힌다. 일본 누벨바그의 선구자로 불렸으며, <아내> <부부>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 <밥>과 같은 작품이 있다.)


-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해주고픈 말이 있다면.


“여기에 오기 전에 인터뷰를 했던 기자한테도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 (웃음) 내 경우를 보면, ‘노력하면 된다’가 아니라, 정말 운이 좋았다. 그래서 노력보다는 운이 좋아지도록 만들라고 얘기하고 싶다. (웃음)”


- 한국을 배경으로 하거나 한국인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쓸 생각이 있나.


“꼭 한국인이나 한국을 배경으로 소설을 쓰고 싶다. 그래서 며칠 더 한국에 체류할 것이다. 꼭 한번 쓰고 싶다.”


- 작가가 생각하는 진정한 사람다움이란 뭔가.


“(한동안 뜸을 들이며 상당히 어려운 질문이라는 듯) 내 경험상, 남들이 나를 소중하다고 여겨줄 때, 그러니까 ‘아,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구나’하고 느낄 때, 그것이 사람다움이 아닐까 싶다.”


- 본인의 소설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는 누구인가.


“각 작품에 나오는 좋은 인물과 나쁜 인물 모두 나름대로 애착이 가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캐릭터는 『악인』의 이시바시 요시모다. 내가 (소설을 통해) 죽여서 그런지, 아직 마음속에 남아 있다. (웃음)”


- 현재 구상하고 있는 다음 작품이 있다면. 


“솔직하게 말하면, 아까 한국인이나 한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쓰려고 한다고 했는데, 그건 단편이다. 장편이 아니고. 그래서 바로 다음 작품은 단편을 구상하고 있다.”


- 좋아하는 여성상을 말해 달라.   


“(굉장히 곤란해 하는 표정을 짓고는) 음,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다. (웃음) (쑥스러워하면서) 함께 있을 때 강해지게 하는, 백배천배 용기를 갖고 하는, 그러니까 내게 자신감을 갖도록 하는 여성과 함께 있고 싶다.”


-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


“소설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적은 없다. 중학교 때 한번 소설가가 돼보면 어떨까, 하고 막연하게 생각한 적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계속 글을 쓴 것은 아니다. 24~25살 때 『워터』라는 작품을 쓴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 그림이나 사진을 혹시 배운 적이 있나.


“사진이나 그림을 배운 적도 없고, 그림을 잘 그리거나 사진을 잘 찍지 못한다. 대신 그림이나 사진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서울에서 작은 갤러리가 모인 곳이 있다고 해서, 이번에 온 김에 그곳에 가고 싶다.”


- 자신의 소설이었던 <워터>를 영화로 직접 만들었는데, 그 외에 직접 영화로 만들고 싶은 작품이 또 있나.


“내가 직접? (웃음) 영화를 찍었을 때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영화는 내가 아닌 다름 사람에게 맡기고 싶다. (아직 영화화되지 않은 작품 중에 영화화됐으면 하는 것이 있나? 아니면 굉장히 영화적이라고 생각하는 작품은?) 지금 영화화하자고 온 제의가 몇 개 있다. 『퍼레이드』에 한국 배우가 나와서 찍거나 한국을 배경으로 해서 찍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 가장 애착이 가고, 독자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픈 작품이 있나.


“이번 가을에 ‘요꼬미찌 요노스케’라는 작품이 나올 예정인데, 쑥스럽지만 독자들이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웃음)”


- 여성 심리를 잘 묘사한다. 남성인데 어떻게 그리 잘 묘사하나.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모르는 것은 쓰지 않겠다는 주의다. ‘남성 입장에서 여성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라고 상상해서 그것을 쓰진 않는다. 아는 것만 쓴다.”


- 작품 제목을 잘 짓는 것 같은데, 어떻게 정하나.


“작품에 따라 다르다. 『퍼레이드』는 탈고를 끝내고 나서도 제목이 나오지 않아 고생했다. 반면 『동경만경』은 타이틀부터 정하고 쓰기 시작한 경우다.”


- 일본작가 중 알려지지 않았으나 소설이 좋고, 독자들이 알려주고픈 작가가 있다면.


“12년 전에는 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뽑히는 입장이었으나 지금은 뽑는 입장이 됐다. (웃음) 얼마 전 심사한 작품 중에 이란 여성이 일본어를 배워서 일본어로 쓴 소설이 있다. 이름이 ‘시린 네자마피’인데, 그의 소설을 권한다.”(주. 시린 네자마피는 일본 전자업체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지난 4월 『하얀 종이』로 일본 월간 문예춘추의 제108회 문학계 신인상을 받았다. 이 소설은 이란-이라크 전쟁 아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학생들의 사랑을 그렸다.)



이어서 현장 관객들이 질문을 했고, 요시다 작가가 답변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 마산에서 왔다. 작가는 자신이 겪은 상처나 상실감이 글 쓰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상처나 상실에 대한 기억이 있는지, 어떻게 극복했는지 듣고 싶다.


“(난감해 하는 표정을 지으며)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다. (웃음) 고민이나 상처를 구체적으로 써서 이겨내고 극복하는 작가들도 있지만, 나는 아니다. 힘든 상황이 있긴 했지만, 내가 이래라저래라 코치할 입장은 아니다. 그래도 상처나 상실을 겪은 독자들이 소설 등을 보면서 이를 이겨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 고3학생이다. 작가의 책을 많이 읽었는데 외양묘사가 자세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잘 생겼다’와 같은 식으로 표현한다. 독자들이 상상하라고 그런 건가, 아니면 잘 잡히질 않아서 그런 건가.


“(‘진짜 그런가요?’라고 되묻고는 관객들도 ‘그렇다’고 얘기하자) 보통 때 다른 사람들의 외모를 자세히 보지 않는다. 분위기를 많이 봐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기술적으로 자세히 쓰면 되레 인물이 이상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상상에 맡긴다. (모르는 건 안 쓴다고 했는데, 작품에 나온 여성들은 주변에서 고르나?) 특별하게 모델이 있는 것은 아니고 주변 여성들을 보면서 관찰한 것들을 골라서 쓴다.”


- 『사랑을 말해줘』는 일본에서 원제가 『조용한 폭탄』인데, 저자의 의도인가.


“제목이 바뀐 경위를 말하자면, 내가 바꾼 것은 아니고 출판사에서 의논 끝에 바꿔서 출간해도 되냐고 물어왔다. 내가 한국 사정을 잘 모르니까, 믿고 수락했다. 제목이 바뀌는 것은 문제지만, 한 사람이라도 더 읽히는 것이 중요하다.”


- 『7월24일 거리』나 『퍼레이드』에서 등장인물의 묘사에 애정이 묻어난다. 소설 묘사와 같이 모든 인간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나.


“등장인물이 나쁘건 좋건, 전부 애정을 가지고자 한다. 그들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소설을 쓰지 못할 것이다.”


- 작품이 손을 놓지 못할 만큼 탄력적이다. 그런데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도 좋지만, 허무하다. 속편이나 이후의 이야기를 낼 생각은 없나.


“한 작품이 끝났고 결말이 났다. 속편이나 이후의 이야기를 따로 쓸 생각은 전혀 없다.” 



[YES24 기고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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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D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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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어떻게 지내니. 오늘 갑자기 니 생각이 났어. 골다방 옆집에, 새로운 이사를 오시게 될 분 때문에. 누군지 알아? 김선주 전 한겨레 논설주간. 지금도 한겨레에 칼럼을 쓰고 계시지. 

곧 이사를 오시기로 했어. 며칠 전에도 오셔서 이곳 문래예술공단에 작업실을 찾고 계시던 터였어. 마침 옆집에 방이 비게 됐는데, 비었다고 말씀 드렸더니 오늘 찾아오셔서 계약을 하셨어. 이제 곧 이웃이 되는 거지. ^.^ 

음, 니가 떠오른 건, 한때 언론계에 있었던 니가 참 좋아할 분이기 때문이었을까. 아마 니가 그 분을 뵀다면, 그 특유의 하이톤과 하얀 웃음으로 얼마나 좋아했을까가 떠올라서야. 넌 재잘재잘 그분과 얘길 나눴겠지. 혼자서 그런 상상을 했어.

나도 물론 좋아. 한겨레 칼럼 중에 가급적 꼭  읽어보고자 하는 칼럼니스트 중의 한 분이시거든. 한때 언론계에 몸담았던 나로서도 좋아하는 언론계 선배 중의 한 분이고. 물론 그 분이 찌질한 나를 후배로 여겨주실 지는 알 수 없지만. 하하. ^^;;

김 선생님 칼럼 중에 나왔던 것으로 기억해. "나이 오십이 되면, 지갑은 열고 입은 닫아라." 오십즈음 혹은 넘은 선배들이나 어른들을 뵐 때마다, 나는 이 말을 끄집어내면서 밥과 술을 조달(!)받곤 하지. 하하. 이 빌어먹을 그지 근성! 빈대 근성!

그리고 지금-여기의 시대를, 장삼이사의 인식을 상징하는 이 말.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의 조건으로서 돈의 힘을 절감하고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아파도, 적확하고 명징한 현실을 가리키는.

아마도 좋은, 훌륭한, 노장 한 분을 이웃으로 모시게 된 일. 나로선 참 영광이네. 이런 일, 너도 알았다면, 너도 그 분을 뵀다면 참 좋았을텐데, 그치? 그렇게 니가 생각이 났다. 어때? 잘 지내지? 아주 가끔, 이런 엉뚱한 계기로 니가 보고 싶다.

음, 부족하지만, 내가 좋은 이웃이 될 수 있다면 좋겠어. 노장의 너른 품과 세계를 접할 수 있는 즐거움을! 그럼, "노장에 대한 존경이 없는 사회의 노장은 불행하다.그러나 존경의 대상을 갖지 못한 젊은이들은 더 불행하다"는 말이 비껴가겠지?^^

선생님 칼럼에 내 커피가 아주 작은 힘이라도 됐으면 좋겠다.
그 칼럼이 또 누군가를 움직인다면, 아 정말 행복하겠다아~
그래, 내 작은 바람을 니한테 건넨다. 여전히 안녕... 

[김선주칼럼] 숙제가 너무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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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다방은 이렇게 영화관(극장)으로도 바뀐다.
'골목길 영화관'이랄까.

불온한 사람들 몇몇이 영화를 함께 했다.

혁명과 전복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를 보면서,

나는 제대로 된 '혁명'이 일어나지 못한(않은) 이 땅을 다시 생각했다.

한홍구 교수가 그랬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났을 당시에,
상위 5%가 전국 토지의 25~30%를 소유하고 있었고,
프랑스혁명사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으면 이상한 것"이라고 기술했다고.

그러나 혁명사를 소유하지 못한 이곳은,
1988년 기준으로 상위 5%가 전국 사유지의 65%를 소유하고 있다.
지금은, 모르긴몰라도 상위 5%가 아마 더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을 것임에도,
'혁명'의 기운(의지?)은 글쎄...

프랑스의 작가이자 정신과 의사인 프란츠 파농은,
"혁명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더 이상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여기는 충분히 견딜 수 있기 때문일까.
궁금해졌다. 얼마나 더 흉포해져야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는 것일까.

지금-여기는,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면서 갈 곳을 묻는 당신에게
국가가 폭력으로 대답하는 세상"(참여연대)이다.

모든 사람들이 '부자 돼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건네고,
투기가 투자라고, 노후를 위한다는 그럴싸한 변명을 해대는 사회다.
불로소득과 일확천금, 로또나 대박을 노래로 흥얼거리며 꿈꾸게 만드는 시대다.
더 높은 아파트와 마천루가 세워지는 것을 우리가 잘 사는 것으로 착각하면서,
개발국가의 가장 타락한 형태인 토건국가의 정체성이,
시민의 세금을 탕진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것임을 모르는 사회구조다.
이런 구조에서 우리는 얼마나 지속가능할까.

체 게바라를 왜 좋아하냐고 묻는 우문에,
쿠바의 한 아저씨는 대수롭지 않게 이렇게 말했다.
"혁명 때문이죠. 모두에게 이로운 혁명..."

기득권을 가졌던 체는 물론 영화 속의 그가,
혁명 혹은 체제전복을 주도·동참한 것은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기존 질서가 유지된다면 피 흘리는 이가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질서에 순응한다는 것은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아도 현 체제가 행하는 살인에 동참하는 것임을 알고 있어서다.

프랑스 혁명의 한 켠, 당신도 알다시피 커피가 있었다.
혁명가, 사상가, 철학자들은 커피를 마시며 혁명을 꾀했다.
프랑스 혁명 당시의 커피하우스 '르 프로코프(Le procope)'는,
혁명의 서식지이자 거처였다.

꿈꾼다.
내 커피 한 잔이,
혁명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이 공간 한 켠이,
불온한 공간으로서 작동할 수 있다면...

혁명, 그것만이 신이 떠나고 없는 세상을 제대로 지탱시킬 수 있다.
정의따위 이미 죽어서 유골함에 방치된 지 오래된,
불의와 권력이 야합해 약자를 짓밟는 이 좆같은 세상을, 
통째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혁명, 그것은 매직아워!
해가 넘어가 없어져지만 빛이 아스라이 남아 있는 순간.
하루 중 가장 아름답고 신비하게 우리를 비추는 순간.
밤이 된 것 같지만 아직 낮이 남은 순간.
어둠보다 빛이 눈에 띄는 순간. 

그리하여,
나는 당신의, 우리의 혁명을 지지한다.


첨언하자면,
수입해 놓고선,
아직 극장에 안(못) 걸리고 있는 스티븐 소더버그의 <체>!
나는 1년이 넘도록, 지치지도 않고 뼈와 살이 타도록 기다리고 있다.
  80회 생일의 '체 게바라'가 촛불에게, "승리할 때까지"

부디, 올 가을에는 개봉해 주시라.
10월9일 체의 42주기에 맞춘다면 더욱 좋겠다.
언젠가 골극장에서 <체>를 보면서 함께 피를 끓었으면 좋겠다.
저들처럼 굵고 긴 혁명적 시가를 빨고서 말이다. ㄴ ㅑ ㅎ ㅏ ㅎ ㅏ~


"…<체>는 미학적, 정치적으로 꼼꼼하게 설계된 차가운 전기영화다.
그런데도 <체>의 마지막 장면에서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는 건 도대체가 불가능하다.
볼리비아군과 CIA는 즉결 처형한 체 게바라의 시체를 헬리콥터에 묶어서 나른다.
혁명가의 핏기없는 얼굴에 매달린 턱수염이 프로펠라 바람에 휘날리는 순간,
티셔츠 위의 수염 달린 아이콘은 처음으로 뜨거운 피를 얻는다.
스티븐 소더버그는 차가운 두뇌로 뜨거운 심장을 창조하는 데 성공했다.

☞ 어찌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으랴, 스티븐 소더버그의 <체>



* 그리고 오늘, 김대중 선생님의 영결식이 있었다.
잘 가시라.
비록 그것이 분절되기 어려운 것이라 할 지라도,
나는 대통령 하기 전까지의 그를 존경한다.
그는 영원히 김대중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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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하는 사람, 조규찬 형아, 좋아. ^.^ 

그가 잔뜩 묻어나는 음악이나 감성도 글쿠,

또 소라누나의 음악적 동반자이자 조력자로서도 조아효~ ^.^

규찬옹을 좋아라 하는 살암이 함께 간 자리.

그 양반도 좋아해서 기픔 두 배!

이런 건, 낚여도 조아효 조아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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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낚시꾼, 조규찬에게 낚인 어느 여름밤의 추억

[독자만남] 『달에서 온 편지』의 저자 조규찬


팔월의 비 오는 여름날, 조규찬이다. 음악이겠거니 짐작한다면, 틀렸다. 책이다. 첫 번째 책. 그의 신간 소식이 반갑다는 블로거 ‘Happy_Prinr’님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조규찬 씨를 실력있는 뮤지션이라 생각한다. 가창력이 뛰어나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마치 음유시인처럼 느껴진다.” 그렇다. 어쩌면 음유시인으로부터 우리에게 늦게 찾아온 책이다. 그것도 달에서 보낸. 제목 하여, 『달에서 온 편지』(글․그림 조규찬/이른아침 펴냄). 




지난 11일 ‘YES24와 함께하는 『달에서 온 편지』 출간기념 독자이벤트’가 홍대 부근의 한 카페에서 열렸다. 조규찬의 등장을 앞두고 이날 사회를 맡은 편집자는 이런 소갯말로 우리들의 긴장을 푼다. “원고가 무척 깨끗했다. 그 말은 출판사에서 거의 만지지 않은 원고라는 뜻이다. 편집자로서 행복했다. 조규찬 씨는 강남삘이 있는데, 원고를 보면서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웃음)” ‘우유 빛깔’ 조규찬의 귀티 나는 이미지에 깜빡 속았지만, 속살을 들여다보니 아니란 말이렷다.


곧 ‘박수에 민감한 사람’, 조규찬이 등장했다. 이어지는 그의 말. “‘독자’를 만나는 자리는 오늘이 처음이다. 책을 처음 냈으니까. 음악을 들려드리는 자리에서 만나는 것보다 격의가 느껴지고 어려운 자리다. 문장이 조리가 있지 않으면 대필 의구심이 들 만한 자리인지라 긴장하고 있다. (웃음)”


그의 음성을, 노래를 처음 접한 건, ‘무지개’였다. 1989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를 통해 그는 우리에게 다가왔다. “한 여름날 소나기를 흠뻑 맞은 아이들의 모습에/ 살며시 미소를 띄워 보내고~♩/ 뒷산 위에 무지개가 가득히 떠오를 때면/ 가도가도 잡히지 않는 무지개를 따라갔었죠~♪” 맑았다. 청아했다. 소나기가 지나간 자리, 눈앞에 펼쳐진 무지개에 성큼 올라선 내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이후 ‘소중한 너’로 1990년대의 감수성에 불을 붙인 그는 ‘따뜻했던 커피조차도’ ‘아담과 이브는 사과를 깨물었다’ ‘충고 한마디할까’ ‘믿어지지 않는 얘기’ ‘다 줄거야’ 등으로 우리의 감성을 다독였다. 그는 스타가 아닌 명징하게 뮤지션이었다. 자신의 솔로앨범은 물론, 조트리오로 밴드활동을 했고, 해이, 이소라, 토이, 김현철, 박학기, 장윤주 등의 숱한 다른 뮤지션들의 앨범작업과 OST음반에 이름을 올렸다.


섬세함과 따뜻함, 때론 건조함이 묻어났던 그의 음악적 감성. 그렇게 늘 우리 곁에 있던 그 감성. 뮤지션 아닌 책의 저자로서 처음 만나는 자리에선 어떤 감성이 묻어날까. 어느 별도 아닌 달에서 온 그이기에, 아마도 그는 달에서 절구를 찧기보다는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을 테다. 그는 음악과 낚시 얘기를 할 때, 살짝 들뜨고 눈이 더 빛났다. 아마도 그는 ‘음악하는 사람’이고 ‘낚시하는 사람’이려니. 몇 가지 정체성을 지닌 조규찬에 대해 알고 싶은 몇 가지(인터넷을 통한 질문과 현장 질문을 섞어 각 정체성별로 묶었다).


뮤지션 조규찬에게



- 가사를 어떻게 쓰나요?

“가사를 경험으로만 썼다고 말한다면 나쁜 사람이 되는 상황도 벌어질 거예요. 가사는 제 얘기일 수도, 간접 경험에 의해 화자의 프리즘을 통과해 나타난 결과를 담은 것이에요. ‘아담과 이브는 사과를 깨물었다’가 내 얘긴 줄 알고 ‘넌 인간도 아냐’라는 오해도 받기도 했어요. (웃음) 모든 게 극명하게 드러나고, ‘결론은 이것’이라고 규정되는 것보다는 ‘저건 뭐지?’라고 의문을 가지는 것이 좋아요. 낚시를 할 때도 물고기가 잘 잡히는 물은 탁도가 있는 곳이다. 서로가 잘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이죠.”


- 슬럼프는 어떻게 벗어나나요, 멘토가 있다면?

“슬럼프라는 말이 성립되려면 전성기가 있어야 하는데, 시쳇말로 뜬 적이 없는 가수잖아요. (아니요~) 슬럼프로부터는 치외법권이었어요. 괴로워한 적도 없었고. 오히려 일상이나 작품활동 등을 통해 템포가 일정해서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 하면서 채찍질 같은 것을 해요. 이미 제가 형성해 놓은 것으로만 앞으로 남은 삶을 사는 것이 위험하고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슬럼프라고 생각해요. 그럴 때마다 아이 얼굴을 바라봤고, 아내하고도 일상적인 것이 아닌 주제로 얘기를 많이 하고. 음악이나 글에도 ‘대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재 공간이나 대기, 바람, 빛의 흐름을 즐겨요. 글을 위해 가장 좋은 환경은 마천루보다 정제되지 않은 곡선이 있는 저수지나 바닷가가 좋고요. 특히, 날씨가 글루미할 때, 엔니오 모리코네의 앨범 <Once upon a time in america>의 앨범을 읊조리면서 밖으로 나서죠.


멘토라... 좌우명이나 멘토와 같은 질문을 받으면 좀 곤란해요. 그러려면 서태지이어야 하잖아요, 음악에선. 제겐 그런 존재가 없어요. 만약 영향을 받은 것으로 얘기하면, 마돈나의 ‘Crazy For You’가 7.5%와 같이 해야 하는데, 모두 얘기하는 것이 어려워서 멘토 부분은 생략할게요.”


창작자로서 가지는 이런 애로. “생활인으로 살다 보면 가끔 바닥이 드러나 갈라진 감성의 욕조를 발견한다. 매일 퍼내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딱히 누구의 잘못 때문이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창작인’의 입장에서 보면 저항할 수 없는 총체적 위기에 직면한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p.66)


- 한 잡지 인터뷰에서 “음악 때문에 잃어버린 게 많다”고 했는데, 어떤 뜻이고, 음악은 조규찬에게 어떤 의미죠?

“음악 때문에 잃어버린 건 음악이에요. 음악 때문에 행복했고, 음악을 삶의 목적으로 즐겨했는데, 프로페셔널이 되면서 그 즐거움을 상당부분 상실했어요. 생산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쪽 갯바위에서 저쪽 갯바위로 건넌 거죠. 이쪽에서 보기엔 아름다워 보였는데, 막상 저쪽으로 가보니까 척박하기 그지없는. 다시 돌아와서, 만드는 이 입장에서 배려하고 책임져야할 것이 너무 많아졌어요. 내 감성의 욕조에서 물을 퍼내는 거냐, 이성에 입각해 조합을 통해 드리는 거냐로 갈등하고 스스로 질문해요. 고통스러워요. 가감이 전혀 없는 원초적인 저의 소리를 낸다면 영미팝의 배음이나 기타주법 등 보편적 음악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독특한 시도를 했을 거예요.


그래도 여전히 조규찬에게 음악은 그래요. 뱃머리에서 이번 항해에선 새로운 대륙을 발견할 거라고 소리치는 선원 같은. 그런 선원의 마음으로 창작을 하고자 해요.”


책에서도 그는 ‘직업적으로’ 음악을 한다는 것에 대한 애환을 거듭 곱씹었다. 좋아서 했고 ‘즐김’ 그 자체로 존재했던 음악이 직업이 되면서 맞닥뜨린 아이러니. “음악을 통해 받은 혜택만큼 음악 자체의 행복은 세상에 반납해왔는지도 모르겠다”(p.70)는 그의 고백. “이렇게 ‘하고 싶은 대로’ 음악을 한다는 건, 그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에게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자기 예술에 관한 고집이 세고 음악적 색깔이 강한 사람일수록, 언젠가 결혼을 하거나 자식을 얻게 되면 안팎으로 ‘상업주의와의 결탁’이라는 유혹과 피해의식에 시달리게 된다.”(p.68)


스스로 행했던 이 답변.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기 시작한다면 슬퍼질 수도 있습니다. 음악이 좋으시다면 그냥 좋아하기만 하세요. 어떤 면에서는 그게 더 행복한 것일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음악에 있어서 제 스스로를 선택된 사람쯤으로 여길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저는 당신이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pp.69~70)


- 공연을 할 때마다 주제를 만들고 선곡을 하는데, 특별히 고려하는 점이 있나요?

“(공연에서) 무슨 얘기를 하고 형성될 분위기는 관객과의 소통이죠. 그 분위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 중요하죠. 제 공연은 제 노래를 좋아하는 분들이 온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요. 비록 전성기는 없었지만, (웃음) 음악을 장치로 그 분위기를 꾸미는 거죠.”


- 이적 씨는 ‘프란츠 카프카’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던데, 음악을 만들 때, 어떤 작가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나요?

“이적 씨처럼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까 음악에 대한 얘기처럼 누구누구가 7.5%, 8.9% 이렇게 나올 수는 없고요, 굳이 말하자면, 마르셀 에메(『착한 고양이 알퐁소』), 파트리크 쥐스킨트(『향수』), 이외수님, 김영훈 실장님(『달에서 온 편지』편집자)도 좋아하고...(웃음)”


- 정규 9집 앨범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책을 내서 놀랐어요. 어떤 계기로 썼나요? 평소 모아놓은 글인가요? 9집은 언제쯤?

“내년 1월쯤 9집을 내게 될 것 같아요. 지난 3년 간 작업실에서 썩어 문드러진 시간을 보냈어요. (웃음) 건강한 썩어 문드러짐이죠. 창작자들은 그렇게 틀어박혀서 작업해야 하고, 발표되지 못한 곡도 있어요.


책 냈다는 것을 보면서 가수가 뜬금없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겠지만 이번 글은 CBS라디오의 ‘꿈과 음악 사이에’를 진행하면서 동명의 일요일 코너에서 낭독한 것이에요. 2년 가까이 진행하면서 글이 쌓였고 지난 2월 공연에서 짧은 글을 써서 곡 중간에 낭독했는데, 마침 출판계에 계신 분이 공연을 보고 글 써놓은 것이 있냐고 묻더라고요. 그것이 인연이 돼서 출판 관련된 분을 만났고 삽화를 그려서 CD 나레이션 등을 해서 엮었어요.”  


- 노래나 글이 꾹꾹 의미를 눌러 담은 것 같아요. 요즘 가장 듣기 좋은 소리는 뭔가요?

“제가 귀 기울여 듣는 것은 스스스스... 하는 나뭇잎 소리에요. 가장 행복할 때는 산책할 때에요. 그것도 사람이 별로 없는. 집 앞에 나가 천천히 거닐다보면 나뭇잎 사이로 바람이 들어와 스스스스... 소리가 나는데 그렇게 아름답게 들릴 수가 없어요. 이런 소리가 글 쓰거나 기타 칠 때 영감을 줘요. 똑같은 소리 같지만 시시각각 다르기도 하고요.”


- 결혼 전후로 음악을 하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우리나라처럼 결혼이 창작자에게 다른 굴레를 씌어주는 나라가 없는 것 같아요. 아니 창작자보다는 연예인. 결혼할 때 기획사에서 계약을 파기했어요. 전 담담하게 받아들였어요. 일단 결혼하고 나중에 (앨범을) 내야지, 했어요. 창작자들은 늘 ‘왜 창작해야 하느냐’의 질문을 해야 해요. 상업성을 배제한다는 건 위선이고, ‘음반을 많이 팔아서 떵떵거리며 살아야지’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될 것 같아요.”


- 결혼 전후, 여성, 특히 미모의 여성을 볼 때 느낌이 어때요?

“결혼 전이나 후나 예쁜 팬을 보면 ‘정말 예쁘다’라고 생각해요. 결혼하고 나서 ‘아유 못났어’라고 하진 않잖아요. (웃음)”


낚시꾼 조규찬에게


- 최고의 낚시터는 어디였고, 잡은 물고기 중에서 가장 큰 것은 몇 cm였어요?

“2번 굉장히 큰 물고기를 잡았어요. 하나는 잉어로 67cm였는데, 가슴 높이까지 물에 들어가서 오랫동안 싸웠어요. 물론 길어야 3~4분인데, 한창 씨름하는데, 주변의 어르신들이 뜰채를 갖고 오셔서 건졌어요. (웃음) 다른 하나는 신갈저수지에서 베스 낚시대회가 있었는데, 아는 분을 따라갔다가 낚시를 했어요. 베스가 물렸는데 <죠스>라는 영화에서 상어가 배를 끌고 가듯, 저를 막 끌고 들어가는 거예요. 결국 잡았죠. 체중이 1.3kg이나 나가는 베스였어요. 물고기가 1.3kg이면 엄청난 거예요. 땅바닥서 무릎까지. 사진이 있는데, 그 표정의 득의양양함이란. (웃음)


제일 좋아하는 낚시터는, 전북의 고마제라는 저수지예요. 그곳에 가면 낮은 산이 있고, 한국화에 나오는 아담하고 수려한 아름다움이 있어요. 멋진 풍광을 가진 곳인데, 사람 손을 타지 않아서 물도 유리 같고 베스들에게 저의 낚시채비를 어필하기 좋아요. 지금까지 2번을 갔어요. 처음에는 우연히 갔고, 두 번째는 그때 기억을 못잊어서 다시 찾은 거죠.”



작가 조규찬에게


- 책에 나온 화자이름이 독특했어요. 작명 노하우가 있나요?

“약간 장난끼가 발휘된 이름이 있어요. 스토크 페러노이 교수는 ‘스토킹’과 ‘패러노이드’에서 따온 거죠. 그런 힌트들이 있는 이름이에요. 이름에서부터 캐릭터를 얘기하는 거죠. 그런 재미를 느끼면서 장난끼를 발휘한 거예요.”


- 가장 마음에 드는 에피소드나 챕터가 있다면? 이 문장은 내가 썼지만 정말 잘 썼다고 생각하는 것과 잘 어울리는 음악이 있다면요?

“책 내용과 결부된 음악은, 기타 하나로 할 수 있는 음악은 없어요. 마음에 든 문장은,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기 시작하면...’(‘원구’ 중에서)이에요. 그 문장에 가장 애착이 가요. 오랫동안 가슴속 켜켜이 쌓아온 말을 꺼내놓은 것이에요. 20년 음악생활동안. 가장 사랑하는 글은 ‘노을’이에요. 아버지를 사랑해서. 그 글을 통해 아버지를 만나게 되니까. 그 골목, 겨울냄새도 느껴지니까.


- 작가가 된 기분은 어때요?

“조규찬을 좀더 친절히 보여주는 청사진 같아요. 조규찬이라서가 아니라 한 사람을 펼쳐 보여주는, 홀로 고립된 외로운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충분하진 않지만 거기에 갈 수 있는 하나의 길이 아닐까 싶어요. 제가 작가가 됐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아요. 단지 꾸며서 멋있으려고 쓴 글은 아니라는 거예요. 책을 내겠다는 생각 이전에 얘기하듯이 한땀한땀 써 내려간 글이고, 앞으로도 책을 엮어낼 지는 장담을 못하겠어요. 어디까지나 전 음악하는 사람이고, 낚시꾼이니까. (웃음)”


인간 조규찬에게


- 조규찬에게 아버지는 어떤 존재였으며, 추억이란 어떤 의미?

“‘아버지는 아버지였다’는 것으로 충분해요. 나는 그분의 아들이고, 그분은 나의 아버지였다는 것.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편인데, 그로 인해 결코 지울 수 없는 경험도 많았어요. 사춘기를 관통하고 20대 초반까지 세상에 대한 신뢰도 안 가졌고, 시니컬했어요. 그렇다고 그런 시기들이 그 하나로만 얘기되는 단순한 문제는 아니고요. 그때 제 가슴 속에 간직한 아름다움도 있는 거죠.


책을 보면 앞부분에는 제 얘기고, 뒷부분은 픽션이잖아요. 앞부분을 보면 어려운 때가 있었구나 싶겠지만, 좀더 깊이 들어가 보면 미묘한 행복감이 있어요. 잊고 싶지 않은 슬픔 같은 것도 있고요.


어릴 때 추억을 생각하면, 언젠가는 쓰고 싶은데, 큰 형과 우박이 쏟아지던 구이동에서의 추억이 잊히지 않아요. 다섯 살 때, 형을 따라 만화가게를 갔는데, 글을 읽지 못할 때니까 형이 만화를 읽어주면 놓치지 않으려던 기억이나 해가 뉘엿뉘엿 지고 우박이 쏟아지는데, 형의 등에 업혀 형의 숨소리와 형의 등에서 나는 열기와 수증기가 아직도 기억나요.”


- 결혼 후에도 음악적 예리함이 사라지지 않아서 좋았어요. 조규찬이 생각하는 인생의 월척은 어떤 건가요?

“잉어와 베스가 있었지만, 아내와 아들이 제 인생의 두 월척이에요. 팬의 경우에는, 저는 팬들을, 그들도 저를 소유할 수 없으니까 월척이라고 할 수 없죠. (웃음)”


- 음악이 아니라면 어떤 일을 했을 것 같아요?

“그림을 그리거나(주. 그는 미술을 전공했다), 양어장 주인? 프로 낚시꾼? 그런데 낚시를 하건, 양어장의 고기를 키우건, 그림을 그리건, 그게 ‘일’이 됐을 때는 다를 바 없을 것 같아요. 내가 서서 하고 있는 일, 벌어먹고 사는 수단이 되는 순간, 나의 유희로부터 멀어지는 거죠. 그건 어쩔 수 없는, 짊어지고 가야할 애환 같은 거예요.”


마칠 무렵, 조규찬이 넌지시 끝인사를 건넸다. “오늘 이 자리는, 다섯 살 시절을 추억하듯, 사소한 모든 것들을 추억할 수 있는 소중한 자리였어요. 또 가수로서 팬을 만나는 자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여러분을 같이 나이테를 늘려가는 존재들이라고 생각했고요. 공연을 하면서 마이클 잭슨 얘길 하거든요. 지금의 추모와 사랑이 살아 있을 때 그랬으면, 죽을 때 덜 외롭지 않았을까 하고요. 저에게도 그래 주시고요, 저도 그런 존재가 되고 싶어요.”



이날 조규찬은 두 곡의 노래를 선사했다. 비틀즈의 ‘Yesterday’와 Carole King의 ‘You've got a friend’(주. 이곡은 조규찬이 Best Album <# Best 무지개>서 리메이크한 바 있다.) 눈을 감고 듣자니, 낚시터에서 낚시대를 드리운 내 모습이 연상되기도 했고, 왠지 이 세상에서 난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조규찬은 어쩌면 자신의 감성을 낚시에 끼워 세상이라는 저수지를 유영하고 있는 우리에게 던져준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다. 우리는 낚인 거다. 조규찬이라는 미끼에. 그런데 낚였다고 마냥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도, 그것이 조규찬이기 때문이다. 그는 마음의 갈증을 해소하는 음료다. 그는 포도당이 담긴 링거다. 음악이 그랬고, 이젠 책으로 우리를 채워준다. “갈증은 마음에도 찾아온다. 사람의 내면에는 감성의 욕조가 놓여져 있다. 그것은 링거에 의해 환자의 몸에 공급되는 포도당처럼, 아주 천천히 한 방울씩 떨어지는 사색에 의해 채워진다.” (p.64)


“별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었던 나이”, 아홉 살을 훌쩍 지난 지금의 나이. 어쩌면 밤하늘을 봐도, 이젠 별을 찾지 않을 나이. 어쩌다 간혹 ‘별은 내 가슴에’라고 우겨보지만, 나는 이미 감성노화가 시작된 꼰대가 되고 있다. 그러니까, “"엄마처럼 살지 않겠어."라고 다짐하는 세상의 딸들은 결국 어느 순간 어머니를 닮아가는 자신을 발견한다.”(p.60) 말인즉슨, ‘꼰대처럼 살지 않겠어’라고 다짐했건만, 나는 꼰대가 돼 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조규찬으로부터 날아온 ‘달에서 온 편지’를 넘기며, 나도 추억을 떠올렸고,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의 간극을 다시 생각했다. 항상 시간보다 느린 사람의 운명. 그리고 이 말을 되씹었다. “제이미를 보며, 나도 그처럼 ‘행복한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을 느끼는가.”(p.87)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은 누구나 그렇다. 사랑하게 되면 단순해진다. 보고 싶어서 보고, 보지 못해서 보고 싶고, 보면 안 된다고 하면 더욱 보고 싶다.”(p.188) 이 모든 게, 다 조규찬 때문이다. 낚인 거다.


( ※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합니다.)



[YES24 기고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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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 다음은 ‘연애소설의 여왕’이로소이다

[향긋한 북살롱] 『다이어트의 여왕』 작가 백영옥



지난 3일 후텁지근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홍대 부근의 상상마당. ‘YES24와 상상마당이 함께 하는 향긋한 북살롱’에 백영옥 작가가 초대돼 독자들과 만났다. YES24 블로그를 통해 7개월여 동안 연재된 『다이어트의 여왕』이 출간된 뒤, 첫 번째 가지는 행사. 실연을 통보받은 뒤 방송사의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참여한 요리사 ‘정연두’의 이야기에 함께 울고 웃은 독자들이 백 작가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작가 후기에 따르면, 북경 올림픽이 열리던 지난해 여름, 백 작가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당시 백 작가는 막연하게 연두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단다. 그러나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 앞에 때론 무릎이 꺾이는 느낌을 가지고 연재하면서 바람에 흔들리는 연둣빛 나무만 봐도 가슴 아팠다고 했다. 5kg이나 체중이 줄어들 정도로 힘겹게 써내려간 연재. 그렇다면 연두는 행복했을까. 모르긴 몰라도, 백 작가는 행복했다고 토로한다. ‘백작’이라는 사랑스런 별명을 지어준 독자들의 사랑이 있었기에.


그렇게 행복한 백작이 등장했다. YES24에서 꽃을 증정하고, “안녕하세요. 백영옥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라는 말로 ‘다이어트의 여왕’과 함께 한 여름날의 이야기가 본격 시작됐다.


정말 특별한 경험, YES24연재



- 인터넷 연재는 YES24가 처음이었다. 다른 글을 쓸 때와는 다른 기분이었을 것 같다. 연재가 끝난 지금 기분은 어떤가.

“직장을 그만두니 굉장히 가난해지더라. 그래서 칼럼 연재를 많이 했는데, 소설 연재는 YES24가 최초였다. 인터넷 연재는 실시간 댓글이 달리잖나. 어떻게 반응할 지에 대한 고민이 없을 수 없었다. 『스타일』을 쓰고 나서 글을 못 썼기 때문에, 빨리 쓰고 싶었다. 소설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 힘들었다. 신춘문예에 13년 떨어져서 쓰고 싶은 글도 많았다. (웃음) 이 소설도 어떻게 보면 연재 형태였고, 인터넷이어서 쓸 수 있었다. 정말 작가로서는 아마도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YES24의 블로그 안에서 연재하다보니, 선한 마음을 가진 마을의 이장 같은 느낌도 들었다. 연재가 진행되면서 댓글 방식도 달라지더라. 처음 소설 얘기가 많았는데, 나중엔 정연두에서 ‘우리 연두’로까지 가더라. 등장인물에 감정이입을 하고 소설 외적인 얘기를 쓴 분도 많더라. 거기에 코멘트를 달면서 소통한다는 의미에 대해 즉각적이고 직접적으로 느꼈다. 신문이나 종이지면으로는 그렇게 소통할 수 없잖나.


(YES24에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연재한) 박민규 선배에게도 감사한다. 박 선배는 답글을 하나씩 다 달더라. 기자 할 때, 소설가 박민규를 인터뷰하기 위해 시도했는데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소통이 적극적이지 않은 분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오해였다. (박 선배가) 댓글 다는 것을 보고 용기를 얻어서, 한 분 한 분 달았다.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잘 했고, 한 분 한 분에게 감사하고 싶다.”


- 어제 방송에서 <스타일>이 방송됐다. 봤나. 어땠나.

“봤는데, 드라마 대한 얘기는 노코멘트로 하겠다. 왜냐하면 캐릭터가 같은 게 하나도 없더라. 이름만 같고, 내 소설보다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더 비슷한 것 같더라.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겠지만, 찍으면서 정말 고생 많이 했겠구나 싶더라. 2회는 단편 마감을 하느라 못 봤다.” (2회가 정말 재미있었다. 웃음)


- 『스타일』로 받은 세계문학상 수상 상금 1억원은 어디에 썼나.

“1억 받았는데, 없어졌더라. 쓴 적이 없는데, 참 신기하더라. (저축을?) 저축을 한 게 아니고 그냥 없어졌다. (웃음) 상당부분이 술값으로 들어갔다. 세계문학상 받을 당시에 나온 사진을 보시고 『고래』의 천명관 선배가 전화를 했다. ‘어머. 영옥 정말 고생해서 소설 썼구나. 얼굴이 상했구나’라고. 사실, 전날 모임에서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얼굴 부은 상태에서 사진을 찍어서 그랬다. 결코 사진을 찍지 않고 싶다고 말했으나, 아픔이다. (웃음)”


“실패는 큰 자산”


- 작가 꿈꾸는 대학생이다. 스토리를 다 생각하고 쓰는지, 쓰면서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장편소설은 막연히 쓰고 싶다고 되지 않는다. 다른 작가들도 그리 할 텐데, 간단한 시놉시스를 쓰고, 주인공의 캐릭터를 정하고 각 주인공의 히스토리를 쓴다. 『다이어트 여왕』에서도 14명 각각의 히스토리가 존재한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어떤 것인지 명시하지 않으면 다른 방향으로 셀 수가 있잖나. 그래서 그런 것들을 미리 정해놓고 나서 쓴다.”



- 드라마 <스타일>의 오디션을 볼 기회가 생겨서, 책을 사서 봤는데 너무 울었다. 가슴 아픈 얘기긴 한데, 오디션은 떨어졌다. 그래도 글에 대해 무척 공감해서 꼭 만나고 싶었다. 어느 별에서 왔길래, 사람을 이렇게 흥분시키나.

“20대에 실패하는 거, 큰 자산이다. 후배한테 많이 하는 얘긴데. 일단 행동해서 부딪히지 않으면 성공이란 아예 있을 수 없다. 실패도 없지만 성공도 없다. 나도 신춘문예 워낙 많이 떨어졌는데, 사실 떨어지면 큰 상처다. 그렇게 떨어지면, (해당) 신문을 사절했는데 나중엔 볼 신문이 없더라. (웃음)


먼저 등단하고 시작하는 친구들도 있다. 나는 재능도, 운도 없었고, 공모전이나 다양한 시도에서 미끄러졌다. 근데 돌이켜보면, 인생에 공짜가 없다는 말이 맞다. 글 쓰고 싶은 분에게 하는 말 중의 하나가, 계속 쓰라고 한다. 썩어서 퇴비가 되거든. 이분도 오디션을 봤다고 했는데, 원래 오디션은 떨어지기 위해서 존재하는 거다. 공모도 마찬가지다. 『닉혼비 런던스타일 책읽기』를 보면, 스포츠의 절정은 게임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패배에 초점을 맞추더라. 어떻게 자기 패배를 받아들일 것인가의 자세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실패를 많이 했으니 성공의 기회가 더 많이 열린 거다. 그런데, 슬픈 소설이 아닌데, 왜 그렇게 우셨는지 궁금하다. (웃음)”


- 작가라는 직업이 매일 출퇴근하는 직장생활이 아닌데, 하루가 어떻게 구성되나.

“되게 재미없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지도 않는다. 오전 10시 정도 작업실에 나가면 전날 읽은 책에 대해 짧은 리뷰를 쓴다. 남의 책이라고 안보면 안 된다. 문장이라든가, 캐릭터에 대한 저축이 없으면 글을 쓸 수 없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하면, 점심을 안 먹는다. 배부르면 글을 못 쓴다. 사실 대부분은 자판만 보고 있다. (웃음) (화면 상) 커서가 반짝반짝이는 걸 보고, 작가들은 되게 슬퍼하기도 한다. 그렇게 멍 때릴 때도 있고, 운 좋으면 쓰기도 하고.


운동하면 근육이 생기잖나. 규칙적으로 글을 쓰면, 글 쓰는 근육이 생기는 것 같다. 어떤 상황에서도 글을 쓰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작가 생활 이전에 밥벌이로서 기자, 에디터로서 생긴 습관인데, 어디서든 글을 쓸 수 있는 게 장점이랄까. 지하철, 벤치, 비행기, 호텔방 하다못해 사람 굉장히 많은 영화관에서 기사 써야 할 때도 있었다. 버스는 흔들려서 잘 안 되고. 지면과 날짜가 정해지면 반드시 글을 쓴다. 퀄리티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게 문제지만. (웃음)”


- 작가 외에 도전하고픈 분야나 직업이 있다면.
“요리를 하고 싶었다. 실제 요리를 공부하려고 학교도 알아보던 중에, 잡지사 들어가면서 요리공부를 하지 못했다.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일이 다른 것 같다. 사실 내가 갈비집 딸이다. (웃음) 요리 하겠다고 하니까, 아빠가 너처럼 칼질 못하는 얘가 고기나 제대로 뜨겠니, 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잡지사 다닐 때도 레스토랑 담당을 가장 오래 했다. 어느 곳에 서도 레스토랑 담당이었다. 음식 만드는 거, 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결정적으로 내가 만든 음식을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재능이 따르진 않지만 운동선수에 대한 로망도 있다. 운동을 잘했다면 테니스나 수영처럼 몸을 써서 하는 일을 하고 싶다. 뭔가 몸을 움직여서 하나둘 쌓여 만들어지는 것 보고 싶다. 그런데 내가 참 (운동을) 못한다.”

 

- 무척 쫀득쫀득 재밌게 읽었다. 퇴고할 때, ‘내가 이걸 썼다니 장하다’라고 생각한 부분이 있나. 또 손톱 얘기가 많이 나오던데, 의도적으로 넣은 다른 소품도 있었나.

“『다이어트 여왕』에 나온 비유는 음식과 추리소설에 나오는 것들이다. 추리소설과 관련한 비유가 많았던 것은 마지막 11부를 위해서였다. 소설에도 맥박이 있는데, 그 맥박에 맞춰 비유와 직유를 조절했다. 11부에서 폭발할 수 있게.


소설 한권을 쓰고 나면, 다른 작가들은 모르겠으나, 정말 다시 읽고 싶지 않다. 퇴고하는 거 읽고 또 읽고 고치고, 되게 고통스럽다. 문장 하나를 갖고 수 십 수 백 번 고치는 경우도 있어서, 내 문장을 보면 구역질이 날 때도 있다. ‘난 천재인가봐’ 생각하면서 쓰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내 주변에 그런 분 있다. 시인 K가 ‘물이 올랐어, 올랐어’ 그런 게 얘기한다. (웃음) 다양한 글 쓰는데, 본인 글에 자부심 강하다. 난 그런 경우가 정말 없다.


글을 쓴다는 것은, 연재를 하는 것은, 굉장히 많은 부분 포기해야하는 것이기도 하다. 7개월을 했는데, 칼럼도 일절 쓰지 않았고, 글 쓸 때, 옷도 잘 안 바꿔 입는다. (웃음) 생활을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소설 속 캐릭터가 꿈에 나타나기도 한다. 노희경 작가는 캐릭터 이름을 다 붙여놓고, 아침에 ‘누구야 안녕~’하면서 인사를 하기도 한다더라. 작가들은 다 미친 사람들이다. (웃음) 정연두가 꿈에 나타나 ‘난 그렇게 안 뚱뚱해’라고 하기도 하고, 한 달 정도 꿈도 자주 꾸고, 소설과 분리가 안 돼서 힘들었다. 작가 생활을 오래하려면 글 쓸 때 확실히 쓰고, 생활할 때도 확실히 하고 그래야할 것 같다.”


“다음은 연애소설, 언젠가 낙태에 대한 소설 쓰고 싶어”


- 최근 고민과 오랜 시간 걸려도 집필하고픈 주제가 있나.

“당장 고민은 단편 마감이 지났는데, 아직 안 보냈다. (웃음) 출판사에서 나를 미워하겠구나, 이런 거. 소설가들한테 고민 물어보면, 어떻게 좋은 소설을 쓸까 고민한다는데, 작가로서 이야기 드린다고 하면 그런 거고. 인간 백영옥으로서는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한다. 우리나라 대부분이 그렇지만, 너무 열심히 일하는 것 같다. 그래서 설날이나 추석 때, 상가들 다 닫혀 있고, 어찌 보면 스산한 느낌도 있지만, 텅 빈 거리를 보는 게 좋다. 사람들이 쉬고 있구나 싶어서. 너무 고생 안 했으면 좋겠다. 난 ‘고생 끝에 병 온다’는 주장을 많이 하는데, 너무 고생하면 낙을 즐길 새가 없다. ‘적당히’ 라는 말이 나쁜 말이 아니다.


아마 많은 시간이 걸려야 쓸 수 있을 것 같은 주제가 있다. 기자들한테는 영업비밀이라고 얘기하는데, 예전부터 낙태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한번 하고 싶었다. 친한 친구가 산부인과에서 일하는데, 들은 얘기 중에 오래 남아있는 게, 미혼 외에도 기혼자들도 피임의 한 방법으로 낙태를 많이 택한다고 하더라. 특히 우리나라에는 기형아 낙태가 많다더라. 고칠 수도 있는데. 포비아 증세가 심해서, 무지하고 공포심도 있어서, 그런 선택을 하는 분들이 많다고 들었다. 조사나 공부, 기타 내공이 많이 필요한 것 같아서, 아직은 쓸 수 있는 소설이 아니라서 기다리고 있다.


기본적으로 몸에 관심이 많다. 내면을 바라보는 여러 방식이 있는데, 표면을 바라보는 내면에 더 관심이 있고, 표면을 통하지 않은 내면 바라보기에 대한 많은 생각이 있다. 다이어트와 관련된 이야기는 한번쯤 쓰고 싶은 거였고, 성형 뿐 아니고 몸을 변형하는 사람들 이야기, 자기 몸과 관련한 욕망과 관련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다음에는 연애소설을 쓰고 싶다. 연애소설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듣고 싶다. (웃음) 연애소설인데, ‘다른’ 연애소설을 쓰고 싶다. 다르다는 게 어떻다고 말하긴 애매한데, 다음 소설은 연애소설을 꼭 쓰고 싶다.”



- 소설도 좋았지만 칼럼이 맘에 들었다. 향후 칼럼 쓸 계획 없나.

“쓸 계획 있다. 글이 다양하잖나. 모든 글에 다 관심 있다. 첫 직장이 광고회사여서 처음에 쓴 글은 한 줄짜리 카피였다. 칼럼을 쓰는 것이 소설을 쓰는데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된다. 한편의 칼럼을 쓰기 위해서는 다양한 것을 많이 봐야 한다. 짧은 글이지만, 많은 것 압축시켜야 하고 다양한 칼럼 쓰고 싶다.


『스타일』을 쓴 것도, 사연이 있다. 모 일간지에 트렌드 칼럼을 썼다. 되게 슬픈 일인데, 신문에 ‘소설가’ 타이틀로 나오는데, 소설을 찾을 수가 없다는 메일이 오는 거다. 단편소설 몇 개만 쓴 상태였다. 소설을 찾아 읽고 싶은데, 방법을 알려달라는 거다. 그래서 칼럼 읽는 분들을 위해 소설을 썼으면 좋겠다고 해서 쓴 게 『스타일』이다. 칼럼이 나에겐 소설가의 사이드잡이 아니다. 어떤 글의 상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 줄짜리 카피는 현대시일 수도 있고 잘 만든 칼럼이나 저널은 한권의 묵직한 소설보다 더 큰 파급력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을 통해 많은 분들과 소통 했으면 좋겠다.”


- 신춘문예 낙방 후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다. 처음에 떨어졌을 때, 소통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좌절했다. 13년 동안 떨어지면서 많이 흔들렸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작가지망생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나 용기를 얻은 부분이 있다면.

“13년 떨어지면 재능 없다고 덮을 수도 있잖나. 그러나 난 떨어지면서도 그만 둬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남편이 그런다. 양로원 가서도 신춘문예에 응모해서 ‘80대 백영옥 할머니 신춘문예 당선’ 이렇게 나왔을 거라고. 무모한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고단한 직장생활을 견딜 수 있게 한 힘이었다. 내가 다른 직업을 싫어한 것은 아니다. 각자의 직업마다 소명이 있고, 좋아서 하는 일에 가치가 있는 거니까. 아쉬운 것은 내 글을 쓸 수 없다는 거였다. 잡지사 기자면 그 잡지가 원하는 글과 원하는 인터뷰를 해야 하고, 카피라이터는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카피를 써야 하니까.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잖나. 2% 아니 3%쯤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게 사람을 얼마나 풍성하게 해주는지. 꿈꿀 수 없는 사람은 참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되고 안 되고의 문제가 아니고. 연재할 때도 댓글로 이런 질문 물어보신 분은 있는데, 가장 길게 답글을 달았다. 핵심은, 포기하지 마시라. 가지고 밀고 나가시라. 누가 먼저 앞서가고 늦게 가고 아무것도 아니다. 출판사도 자기 꿈을 위해 한 걸음 나아간 거다. 용기 잃지 마시고, 열심히 다니면 어떤 길이 있을 거다.”


[YES24 기고, 사진제공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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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 이야기 한 자락을 버무렸던 풍경, 보실래요?


커피는, 죽음보다 지독한 서정이다


“…커피가 위 속으로 미끄러지듯 흘러 들어가면, 모든 것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생각이 전쟁터의 대부대처럼 몰려오고 전투가 시작된다. 추억은 행군의 기수처럼 돌격해 들어온다. 기병대 군인들이 멋지게 달려 나간다. 논리의 보병부대가 보급품과 탄약을 들고 그 뒤를 바짝 따라간다. 재기발랄한 착상들이 명사수가 되어 싸움에 끼어든다. 등장인물들이 옷을 입고 살아 움직인다. 종이가 잉크로 뒤덮인다. 전투가 시작되고, 검은 물결로 뒤덮이면서 끝난다. 진짜 전투가 시커먼 포연 속에서 가라앉듯이…”   - 발자크, 커피송가 中에서 -


독일에는 ‘BALZAC COFFEE’라는 커피 체인(1998년 시작)이 곳곳에 있다. 짐작하겠지만, 프랑스의 대문호 ‘오노레 드 발자크(Honore de Balzac)’의 이름을 땄다. 왜 발자크냐고? 그가 커피와 떼래야 뗄 수 없는 작가이기 때문이리라. 지난 18일 159주기(1850년 8월18일 사망)를 맞은 발자크는 그야말로 커피에 살고 죽었다. 하루에 30잔(50~60잔에 달한다는 얘기도 있다), 평생 3만 잔을 마셨다는 이 문호는 커피 때문에 죽었다고 한다. 커피로 인해 얻은 심장병. 말하자면, 커피가 ‘발작’을 일으켜 발자크는 펜을 놓고야 말았다. 행복했을까. 커피를 그렇게도 좋아하던 이가 커피 때문에 죽게 됐으니. 그야말로, 커생커사(커피에 살고 커피에 죽는다). 누군가는 커피 애호가(예찬론자)다운 죽음이라고 했다.


발자크는 또한 다산(多産)의 작가였다. 74편의 장편소설을 비롯, 숱한 단편을 내놨다. 따지자면, 그는 생계형 소설노동자였다. 여러 사업에 손을 댔으나 전부 망했다. 빚을 갚아야 했다. 그의 사업가적 기질은 꽝이었단다. 그런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글쓰기, 즉 ‘이야기하기’. 미친 듯이 써댔다. 속도도 속도였지만, 그는 하루를 온통 글쓰기로 할애했다. 잠자고 생리현상을 처리하고, 식사준비와 밥 먹는 시간과 그만의 커피를 위한 커피제조 시간을 제하고 하루 15시간씩, 그것도 매일!  


그런 창작의 동력? 바로 ‘커피’. 뇌주름을 깨우고, 상상력을 발동하기 위해 그가 택한 것이 커피였다.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을 보자. “한밤중에 일어나 여섯 자루의 촛불을 켜고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시작이 반. 눈이 침침해지고 손이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4시간에서 6시간 정도가 훌쩍 지나간다. 체력에 한계가 온다. 그러면 의자에서 일어나 커피를 탄다. 하지만 실은 이 한잔도 계속 글쓰기에 박차를 가하기 위함이다. 아침 8시에 간단한 식사. 곧 다시 써내려 간다. 점심시간 때까지. 식사. 커피. 1시부터 6시까지 또 쓴다. 도중에 커피.”


커피커피커피. 시쳇말로 그는, ‘커피덕후(커피 오타쿠․매니아)’였다. 덕후질도 이정도면, 쩐다. 덕후왕이 따로 없다. 어쩌면 그는 글쓰기를 위해 커피를 마신 것이 아니라, 커피를 마시기 위한 핑계로 글쓰기를 택한 것이 아녔을까. 뻬쩨르부르그 사람들이 ‘특별히’ 주장한다지 않는가. “사상보다도 예술보다도 돈보다도 사랑보다도 더 지독한 액체, 그것이 바로 커피라고.”(p.14)


아울러 커피는 독약이라는 이 주장! “사강의 자기 파괴보다 한술 더 떠서 아예 죽는 방법이 있다. 들입다 커피를 마시는 것이다. 단, 위장이 좀 넉넉해야 한다. 한꺼번에 80잔 이상을 마셔야 하니까. 커피 속 카페인의 분자식이 ‘C8H1ON402’란다. 그거 10그램을 한방에 털어넣으면 황천으로 간다. 일반 커피잔으로 80잔 정도가 10그램이다. 와우! 그러니까 커피는 독약이다. 조금씩 천천히, 한평생에 걸쳐 죽여주는 독약이다. 몸이 아픈 시인 최승자는 죽음 대신 ‘네게로’ 간다고 썼다. "물에 풀리는 알콜처럼 / 알콜에 엉기는 니코틴처럼 / 니코틴에 달라붙는 카페인처럼 / 네게로 가리."… 250밀리그램 이상의 카페인을 먹었을 때 10퍼센트 정도의 사람에게서 불안, 초조감, 안절부절못함, 홍조, 다한증, 손발의 따가운 느낌, 구역, 구토증 등이 나타난다. 1그램 이상의 카페인을 먹었을 때는 극도의 불안, 초조감, 정신착락증, 환청과 부정맥이 있을 수 있다. 10그램 이상에서는 전신발작, 호흡부전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다. 영혼의 상처 없이 문학은 가능하지 않다. 말하자면 커피는 한 잔의 문학이다.”(『지구 위의 작업실』 중에서)


커피는, 발자크의 목숨을 앗아간 악마적 유혹이다


그 발자크를 롤모델로 삼은 작가, 김탁환. 그 이름은 『불멸의 이순신』『나, 황진이』『방각본 살인사건』『열하광인』 등의 주목할 만한 역사 팩션을 선보여 왔다. 이번에는 ‘커피’를 소재로 또 하나의 작품을 내놨다. 『노서아 가비』(김탁환 지음/살림 펴냄). ‘러시아 커피’의 조선식 발음이다. 어찌 커피를 소재로 한 작품을 내지 않을 수 있었으랴. 발자크처럼 소설노동자를 꿈꾸며, 그를 롤모델로 삼고 있는 마당에. “발자크는 커피의 카페인에 기대어 소설을 쓰는 에너지를 얻었기에 김탁환이 보기에 발자크에게 커피란 소설 쓰는 기계를 가동시키는 ‘검은 석유’였다.”(p.241, ‘해설’ 중에서)


책에 대한 소개를 보자. “그가 고종독살 음모사건에 이야기꾼다운 상상력을 덧보태 경쾌한 사기꾼 이야기로 재탄생시켰다. 고종독살 음모사건의 전모는 이렇다. 1898년, 아관파천 시절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세도를 부리던 역관 김홍륙金鴻陸이 권력을 잃고 흑산도로 유배를 가게 되자 이에 앙심을 품고 보현당 창고지기인 김종화 등과 모의해 고종과 세자가 즐겨마시던 커피에 독약을 타 넣었던 것. 고종독살 음모사건의 주모자인 김홍륙의 일화를 보고 영감을 얻은 작가는 그 인물 옆에 러시아의 광활한 숲을 얼빠진 귀족들에게 팔아치우는 희대의 여자사기꾼이자, 고종황제의 모닝커피를 직접 내리는 조선최초의 바리스타가 된 ‘따냐’라는 매력적인 여주인공을 창조해내어 그 상대역으로 세웠다. 이야기꾼 김탁환은 한국소설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여주인공 ‘따냐’를 창조해냄으로써 박진감 넘치고 읽는 재미가 살아 있는 ‘개화기 유쾌 사기극’을 만들어 낸 것이다.”


문헌에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커피를 마신 것으로 알려진 고종. 그 고종에게 커피를 따른 사람으로 손탁 여사가 알려져 있으나, 김탁환 작가는 역사적 상상력을 덧붙였다. 고종에게 매일 최고의 커피를 올리는 바리스타 ‘따냐’를 창조, 조선 최초의 바리스타 이야기를 길어 올렸다.


지난 12일 홍대부근 한 카페에서 책 출간기념으로 ‘Book & Coffee 이벤트’가 열렸다. 출판사 관계자의 설명을 따르자면, “국가대표 ‘저자’와 국가대표 ‘바리스타’, 그리고 국가대표 온라인서점 ‘YES24’의 독자”가 모인 자리. 모두가 ‘커피’로 만나는 순간. 2007년 대한민국 바리스타 챔피언십 대상을 수상한 안재혁 바리스타가 ‘노서아 가비’풍의 3종 커피를 선보이고, 커피향이 공간을 가득 메울 무렵, 김 작가가 ‘나의 아름다운 작업실’이라는 주제로 독자들에게 풀 이야기 거리를 내놓았다. 참고로 ‘나의 아름다운 작업실’이라는 주제는, 김 작가가 10여년 후쯤에 낼 에세이집 제목이란다.


“작가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작업실인 것 같았다. 이런저런 작업실 등 그동안 거쳐 간 작업실을 여러분에게 보여주고 싶다. 난 처음부터 장편소설가가 되고 싶었고, 내 롤모델은 발자크다. 발자크의 책상을 봤는데, 아주 조그맣다. 발자크는 그 책상 앞에서 살았고, 그 책상 앞에 앉아서 죽도록 일했다. 발자크의 책상 건너엔 커피가 있었고. 커피를 되게 좋아한 발자크는 평생 3만 잔을 마시고, 나중에 커피 때문에 심장이 터져서 죽었다.”


인생이란 모름지기 그런 것. 여행가는 여행지로, 바리스타는 커피로, 자신의 인생을 정리한다. 그렇다면, 작가는? 작업실(들)로 생을 추억하고, 그 공간에서 죽도록 쓴 책만 남는 법. 김 작가에겐 그렇단다. “중요한 것은 작업실도 흐른다는 것이다. 전국을 옮겨 다니며 작업을 했다. 역순으로 작업실을 소개하고 싶다.”




커피는, 생의 궤적을 따라가는 작업실이다



카이스트 (2006.3~2009.8) : 매일 발자크 소설의 인물관계도를 쳐다보며 마음을 잡았다. 『파리의 조선 궁녀, 리심』과 『노서아 가비』가 양 날개다. 전자가 슬픈 날개라면, 후자는 유쾌한 날개다. 『노서아 가비』는 애초 탄생하지 못할 뻔했다. 『파리의 조선 궁녀, 리심』을 쓰고 우울했다. 주인공이 자살했기 때문이다. 가슴이 너무 아팠고, 비슷한 시기의 여자 주인공이 나오는 유쾌한 이야기를 풀고 싶었다. 그래서 『노서아 가비』는 세상에 빛을 보게 됐다. 하나의 비극과 비교적 짧은 희극의 앙상블. 두 작품이 바로 내 마음의 상태였다. 


“『파리의 조선 궁녀, 리심』은 제가 만든 이야기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가장 슬픈 방식으로 생을 마감하는 소설이 되고 말았습니다. 책을 내고 한동안 정말 우울했고, 제 소설의 주인공에게 따져 묻고 싶었습니다. 리심! 꼭 이렇게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합니까? 나는 어떡하라고…… 마음의 균형감각 탓일까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시대의 벽은 단단하고 높지만, 그 한계를 가볍게 뛰어넘는 ‘개화기 유쾌 사기극’ 하나 만들고 싶어졌습니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멋지게 사기 치는 여인, 한양의 새벽을 깨우며 노서아 가비를 맛있게 끓이는 여인, 그리고 다시 조선을 떠나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여인을 그려보려 했습니다. 헌데 지금 『노서아 가비』를 마치고 나니, 기쁘고 신난 만큼 더욱 슬픈 이야기가 된 듯도 합니다. 독자 여러분이 느끼기엔 어떠신가요?”(p.237, ‘작가의 말’ 중에서)


한남대 (2003.3~2006.2) : 장편 5편을 썼다. 칸막이에는 이런 말이 붙어 있었다. “목숨을 걸고 쓴다.” 조치훈 기사가 했던, “목숨을 걸고 둔다”는 말을 변용한 것이다. 그리고 “밀도가 전부다.” 꽉 찬 문장, 꽉 찬 하루를 위한 것이다. 이 시기에 『불멸의 이순신』 개작과 슬럼프가 있었다. 최초의 슬럼프였다. 당시 매일 20~30매씩 글을 썼는데, 어느 날부터 1매도 안 되고, 한 문장을 쓰고 (글쓰기를) 그만두는 날도 있었다. 사람이 미친다. 엄청난 슬럼프였다. 고민하고 있는데 한 기자가 스타일을 바꾸라고 하더라. 그래서 수염을 길렀다. 머리와 눈썹을 밀까도 고민했다. 수염을 기르니까, 다 바뀌고 삶도 바뀌더라. 소설도 되기 시작했다. 8개를 썼다. 그 이후 수염을 깎지 못하고 있다. (웃음)


건양대 (1999.3~2003.2) : 수염이 없는 젊은 시절이다. 이때, 『허균, 최후의 19일』을 무척 열심히 썼고, 잘 쓴 것 같다. 담배를 되게 많이 폈는데, 목에 탈이 났다. 이후 담배를 못피게 됐다. 도스토예프스키처럼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시기다. 도끼로 이마를 내리치는 글쓰기. 사랑이야기도 썼다. 『누가 내 애인을 사랑했을까』인데, 안 팔려서 절판됐다. (웃음) 『독도평전』이라는 소설도 썼다. 일본이 망언하면 확 팔리고 초등학생들에게 팬레터도 온다. (웃음) 소설인데, 서점에 가면 역사코너에 있다. 내가 쓴 유일한 역사책이랄까. 『나, 황진이』도 썼고, 내가 지은 소설제목 중에서 가장 감미로운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도 있다. 여성독자들이 제목만 보고 샀다가 당한 책이다. (웃음)


해군사관학교 (1995.9~1998.6) : 교관이었다. 해군중위였다. 소설을 처음 쓰기 시작했다. 군대에 가지 않고 서울에 있었다면 소설가가 안 되고 학자가 됐을 거다. 그때 계속 습작을 했다. 아침 7시30분에 출근해서 바다가 바라보이는 연구실에서 뭘할까 고민하다 소설읽기의 즐거움을 알게 됐다. 석사 때 샀다가 읽기에 실패했던 180권 짜리 소설인 『완월회맹연』을 읽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권씩 3시간씩 6개월여를 읽었다. 읽다가 173권에서 문제가 생겨서 처음부터 다시 읽어서 6개월이 더 걸렸다. 1년여가 걸린 거다. 우리나라 학자 중 이 소설을 읽은 사람이 5명이다. (웃음) 느리고 긴 소설에 대한 매력을 느꼈다. 이 소설은 기억의 속도보다 망각의 속도가 더 빠른 소설이다. 저자는 원래 1800권 짜리 소설이라고 하던데, 발견되질 않길 바라고 있다. (웃음) 이 책을 읽고 나니 1000매 정도는 단편소설로 생각되고, 2000매 정도 돼야 좀 썼구나 싶더라. 180권도 쓰는데. 첫 번째 장편소설인 『열두 마리 고래의 사랑이야기』를 썼다. 연구실 앞에 나가면 거북선이 있었다. 안에서 몰래 들어가 담배를 폈는데, 진짜 많이 폈다. 담배 피면서 생각이나 몽상을 많이 했다. 해군사관학교에 간 덕분에 『불멸의 이순신』을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박하사탕> 식으로 역순으로 구성해봤다. 지난 8일에 파주 작업실로 이사를 했다. 처음 소설을 쓸 때는 나만의 작업실을 갖는 게 소원이었다. 해사에서 첫 작업실을 가졌을 때 정말 기뻤고 서재를 처음 샀다. 책장이 비어있는 것을 볼 때마다 초발심(첫마음)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오늘도 책을 꽂다가 서재를 마련했다. 책이 7~8천권 된다. 지난 토요일에 이사해서, 계속 책을 꽂다가 오늘에야 다 끝냈다. 어젯밤 오늘 행사를 고민하다가 ‘내가 어떻게 작업해 왔는가’를 작업실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이런 인사를 하고 싶다.


미래의 

나의 아름다운 작업실들아!

미리미리 안녕!

기다리렴.

내가 곧 갈게.


커피는, 나만의 독특한 이야기다


작업실 예찬이 끝났다. 독자들과 이어지는 문답.



- 어떤 소설을 쓸 계획인가? 계속 역사소설을 쓸 건가? ‘이걸 읽으면 날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하고 추천하는 소설이 있다면.

“지금 한 일간지에 2049년을 배경으로 한 SF소설을 연재 중이다. 9월에 끝나면 12월에 3권짜리로 나올 것 같다. SF소설도 3년에 하나씩 선보이고 싶다. 현대, 과거 가리지 않고 쓸 거다. 내 소설 가운데 가장 친숙하게 쉬운 것은 『노서아 가비』이고, 어렵지만 하나의 정점은 『나, 황진이』다. 자부심이 있고 진짜 열심히 썼고 실험도 많이 했다. 드라마(<황진이>)도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밀한 고백이고 접속사가 하나도 없는 소설이다. 접속사를 넣으면 미칠 것 같은 거다. 그래서 쓰면서 죽는 줄 알았다. 역접의 느낌을 주면서 접속사 없는 것이 너무 어렵더라. 뒷문장을 다 바꾸게 되고. 황진이가 읽은 7~8천수의 시를 다 읽기도 했다. 그때는 약간 미쳤고, 지금은 그렇게 못쓴다. (웃음)”


- 『노서아 가비』는 급하게 끝나는 느낌이다. 긴장감 있게 가다가 허무했다. 다른 결말을 채택하고픈 생각은 없었나.

“같은 시대를 다룬 『파리의 조선 궁녀, 리심』을 통해 서구적 충격 앞에서 개화기 여성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충분히 보여줬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 분량으로 갈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연극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희극으로 썼다. 2개 이야기가 더 있다. 개회기 희극 삼부작. 끝은 고민을 많이 했다. 전체 이야기는 따냐가 뉴욕에 커피하우스를 하면서 고객들에게 조금씩 들려주는 이야기라 분량이 적다. 감칠맛나게 해야 (고객이) 다음날에 오지 않겠냐. 말하자면 따냐의 아라비안나이트다. 재미있으면 올 거고, 재미없으면 안 올 거고. 영화화가 예정돼 있는데, 영화가 잘 되면 이반을 죽이지 않고 살려서 따냐와 함께 스타벅스를 하게 하자고 영화 관계자와 얘기하기도 했다. (웃음)”


- 『혜초』때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다.

“장편소설은 노동이다. 체력이 돼야 한다. 아프면 못 쓴다. 몸상태를 좋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금 쓰고 있는 SF소설 때문에 매일 하루에 10매씩, 일주일에 60매씩 쓰고 있는데, 엄청 스트레스를 받는다. SF소설이다보니, 소화해야 할 정보량이 되게 많다. 지금은 소설 쓰는 시간이 반, 공부하는 시간이 반이다. 작년 10월부터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일주일에 세 번씩 헬스를 한다. 소설 쓰는 사람 같지 않게. 그랬더니 살이 빠지더라.”


- 책에 보면 ‘갈범무리’를 따로 묶어서 책을 내겠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진짜인가.

“갈범무리를 쓰기 위해 19세기 러시아 사기단을 따로 조사했다. 엄청 재미난 얘기들이 많더라. 당시의 ‘숲 사기’ 등 책 한 권을 충분히 쓸 수 있을 정도다. 지금은 일단 자료만 모아놓은 상태다. 옛날부터 추리소설을 좋아해서 사기와 관련된 얘기도 모으고 있다. 에펠탑과 자유의 여신상을 팔아먹은 사기꾼이 같은 놈이다. 이 놈이 개선문까지 팔려다가 잡혔다. 그러니까 사기 이야기를 모으는 게 취미다. (웃음) 소설가도 사기꾼 같다. 소설가는 거짓말 하는 사람인데, 거짓말을 멋지게 하면 감동하고 사기를 잘 칠수록 책이 잘 팔리지 않나. (웃음)”


- 올해 스물 다섯이다. 스물 다섯으로 돌아가면 어떤 것을 하고 싶고, 무엇을 하라고 말해주고 싶나.

“스물 다섯이면 여행을 많이 다닐 것 같다. 사실 나는 20대 때 여행을 싫어하는 방콕족이었다. 소설이 나를 바꿨다. 『불멸의 이순신』을 쓰면서 답사를 많이 다녔다. 여행도 그냥 가는 것말고 여행 루트를 공부하고 가는 것이 좋겠더라. 가장 좋았던 여행은 인도였다. 『혜초』 때문에 갔는데, 혜초가 간 길이 석가모니가 간 길이다. 그러니까 성지순례였지. 석가모니가 간 길을 8세기 신라의 승려인 혜초가 가고, 법정스님도 가셨다. 거기에 나도 가니까 텍스트가 4개가 겹쳐 있으니 의미가 있지 않겠나. 가령 개선문을 가기 전에 관련된 소설이나 시를 읽으면 개선문에 가서 손을 대면 울림이 있다. 그런 문학적인 여행이 좋을 것 같다. 책과 현실이 여행 속에서 만나고, 그런 게 삶에 엄청난 충격을 준다.”


커피는, 끝나지 않은 우리의 이야기다



행사는 이런 질의응답을 끝으로 마쳤지만, ‘커피 디자이너’가 되지 못한 ‘스토리 디자이너’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바리스타가 나만의 독특한 커피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듯, 소설가는 나만의 독특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애를 쓴다. 그것이 생의 증거다. 어쩌면 그도, 발자크가 그랬듯, 커피를 마시기 위해 이야기를 계속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노서아 가비』도, ‘커피는 끝나지 않은 당신의 이야기다’라고 맺음하지 않았던가.

  

커피와 이야기에 솔깃해서 이 자릴 찾았다가 반가운 것이 또 있었다. 김 작가도 ‘작업실 예찬론자’라는 것! 작업실에 대한 그의 무한 애정을 접하자니, 얼마 전 몸을 맡겼던 시인․문화평론가 김갑수 씨의 작업실 ‘줄라이홀’이 떠올랐다.(<음악과 커피가 익는 줄라이홀에서 보낸 한철> 참조) ‘작업실, 그래야만 하는가?…그래야만 한다!’는 명제를 품은 그 작업실. 한없이 투명에 가깝지는 않아도, 간절하게, 두려움 없이, 생에서 꼭 필요하다고 기어코 나를 설득했던 작업실 예찬.


줄라이홀은 멀쩡한 사람들에게 작업실을 권유했다. ‘멀쩡함’의 범주에 포함되고 싶은 욕망 때문에 홀딱 넘어갔던 것일까. “나는 멀쩡한 사람들에게 작업실을 권유하고 싶다. 미쳐달라고. 텅 빈 우물 속에서 제발 조금씩은 미쳐버려달라고. 다만 간절하게, 두려움 없이.”(『지구 위의 작업실』 중에서) ‘작업실’이라는 단어를 다시 듣자니, 작업실 예찬론자를 며칠 상간으로 만난 우연이 재미있다. 게다가 커피라는 공통점까지.


집으로 가는 길, 버스에서 차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촌의  OO나이트 앞에는 이런 플랭카드가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부킹에 목숨을 걸겠습니다.” (글을) 쓰거나 (바둑을) 두는 것 외에 목숨 걸 것이 또 있었다니, 부킹.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 ‘목숨’은 각기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같을까. 노서아 부킹. 미쿡 부킹처럼 부킹을 소재로 이야기를 다뤄볼까. 아서라, 깨몽. 아마도 2할대에 머물렀을 부킹의 기억으로 무얼할 수 있다고. 커피라도 제대로. “커피 맛도 모르는 입이 어디 입인가.”(p.29) 그리고 커피에 대한 이 한 줄의 깨달음. “내가 아닌 것들이 들어와서 나를 바꾸려 한다.”(p.91) 오늘, 가장 듣기 좋았던 이말. “커피, 참 맛있어요.” 그 말을 건넨 오늘 다섯 분의 여성에게 축복을. 감탄하지 않는 여성들은 전혀 예쁘지도 않아.


외롭지 않게 살아가는 한 가지 방법.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 따냐~ 커피 한 잔 주오. 우리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 커피에 관한 이야기를 그 두 번째 공책에 써내려갈 테니... 참, 나의 주문 메뉴는, 부엔까미노 혹은 루프리텔캄! (모르면 내게, 물어보시라!)


[YES24 기고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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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다방이 둥지를 틀고 있는 곳, 그곳 옥상에서 펼쳐지는 여름밤의 향연~

이번 2차오프닝에서는 Studio24와 손민아 화백의 프로젝트가 선보인다지!

그리고,
옥상에서 펼쳐지는 콘서트 봤수? 못 봤으면 말을 하지 말아야지...

미니콘서트가 열리는데, 
'폴 어쿠스틱'의 랩이 장난이 아니라는,

노랫말도 예사롭지 않다는 풍문이 솔솔~

맥주파티까지 룰루랄라~
(착한 가격의 향긋한 커피도 마셔 주시라..ㅎㅎ)


참고로, 나는 '대체에너지팀'의 일원.
자전거 발전기를 만들었다네~

아마도 가을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에 해당 프로젝트를 선보일 것 같다네~
그때도 알려드리리다~


 찾아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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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8월16일. 엘비스 프레슬리 32주기. 1977년 8월16일 세상을 떠났던 그다.

어느 별로 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도 몰러~
지금쯤, 어딘가에서 최근 합류한 마이클 잭슨과 신나게 열창 중일지도 모를 일.


그리고, 이날, 골다방에서는,
<싱글즈> <뜨거운 것이 좋아>의 권칠인 감독의 신작, <러브홀릭>이 촬영 중.
(
☞ 김흥수 ‘러브홀릭’ 주연발탁‥유혹남 파격변신 )
몇 년 전에서 방송에서 엘비스 프레슬리를 흉내냈던 김흥수가 주연 배우고,

직접 보니 크긴 크다. 잘 생겼다~ 흥수!

물론 남자배우 따위, 그건 관심사도 아니고,
중요한 것은 여자배우.
한소연? 신인배우란다.
너무 갸날퍼. 시큰둥.
  공동 주연인 추자현이 보고 싶었는데,
못 봤다. ㅠ.ㅠ
남자 공동주연인 정찬도 보지 못했다규.

이 분이 권칠인 감독님!
배우들과 끊임없이 커뮤니케이션하면서,
디렉션하는 과정이 인상 깊었다.

쨌든, 정오 경부터 촬영 중.

오늘 밤까지 계속될 듯.
많은 사람들, 많은 기구와 소품.
무엇보다 고된 노동의 현장.
영화촬영, 참 힘든 작업임을 새삼 느낀다.
그들의 행한 노동, 송알송알 맺힌 땀방울의 가치는,
'숭고하다'는 말로 집약이 가능하리라.
영화라는 결과물 이전에 나는 그들의 노동에 경의를 표한다.

그럼에도, 나는 이말을 떠올린다. 씨네21 정한석 기자의 말.
"노동의 가치와 결과물로 나온 영화의 가치는 별개의 것이다."
섣불리 어떤 영화인지 평가하거나 재단하겠다는 것이 아니니 오해마시라.
필리핀 영화감독 라브 디아즈가 했다는 이말.
'우리는 어떤 영화를 위해 노동해야 하는가.'

그리하여,
다시, 나의 커피를 생각한다.
내 노동의 가치와 결과물로 나온 커피의 가치 역시 별개일 수 있다는 것.
커피노동자(농부)들이 행한 노동의 가치도 마찬가지고.
농부부터 바리스타에 이르기까지의 노동을 개무시하고 착취하는,
어떤 커피(자본들)의 가치가 최고처럼 숭배되는 시대는 어떻게 견뎌야 하는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커피 만드는 나는 과연 어떤 세계를 위해 노동해야 하는가.
우리는 어떤 세계를 위해, 어떤 세상을 위해 노동해야 하는가.
아는 사람! 혹은 말해줄 사람!
 
어쨌든,
덩달아 나도 힘들었던 영화촬영 현장.

지금 내 솔직한 마음 같아선,
소박한 독립영화라면 모를까,
상업영화의 장소 대여는 하고 싶지 않다.
내가 아끼는 골다방 내 소중한 친구들이 이래저래 상처입고,
그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손이 너무 많이 탔다. 가슴 아프다.
이들을 아껴주는 사람들에게만 순순히 자리를 내주고 싶다.
다른 곳 알아보시라고 정중히 말하고 싶다.ㅠ.ㅠ



건 그렇고.
안녕, 엘비스 형아!
잘 지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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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이곳은 인디커피하우스, '골목길 다락방(골다방)'.
(정식명칭은 초큼 길다. Project Space LAB39의 공정무역 커피하우스 프로젝트,
'Coffee, 세 번째 첫사랑' 시즌1, 골목길 다락방. 헥헥... 아놔~ 나도 힘들다규!)

근디, 커피하우스면 커피하우스지, 왜 '인디'가 붙냐고?

우선, 커피하우스(카페)라고 하면, 떠오르는 그런 이미지, 여긴 없다규~
아기자기 예쁘고, 세련되고 깔끔한, 혹은 빈티지든 아니든 간에.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잘하면 몇 개 정도나 있을까.

무엇보다,
이 곳은 자본으로부터, 통념 혹은 관념으로부터, 뚝 떨어진 돌연변이~

그러니까,
몇몇 사람들의 소소한 관심과 흥미, 보탬과 참여로 만들어진 인디 커피하우스.

아, 물론 그렇다고,
고객으로부터의 독립은 절대 아닌.
커피는 모름지기,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면서 정신을 깨워야 하는 유혹.
결국 고객이 그 커피를 마시게 하기 위한 거다.

<해바라기 씨> <햇살의 맛> <너와 나>의 감독, 웨이아팅의 이말.
"영화는 결국 찍어서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한 거다.
독립영화의 독립이라는 단어는 제작이나 투자의 독립, 감독의 생각, 사상의 독립을 말하는 거지, 관객으로부터의 독립을 말하는 게 아니다."

왜! 그렇게 해야 했느냐고, 묻지 말아주삼.
생을 살다보면, 그래야만 하는 일이 있는 법이라규.(김갑수 쌤이 하신 말이지ㅋ)
베토벤도 자신의 현악사중주 가운데 한 악보에 그렇게 적었단다.
‘꼭 그래야만 하는가? … 그래야만 한다!’

마약 같은 월급에, 생을 저당잡힐 것 같던, 어느 날,
 
‘커피’가 심장에 박혔고,
커피 한 잔으로 연결되는 세상을 그리게 됐지.
당신과 나, 혹은 저 아프리카 어딘가의 커피 생산자와 우리.
무작정 발걸음을 뗀 거야.
발걸음 내딛는 곳이 길이겠거니 하공.

그래, 이곳은 문래예술공단의 인디커피하우스,
골목길 다락방이라규.

지금의 나는, 수많은 커피지망생 중의 하나일 뿐이야.
그래도 언젠간, 커피와 스토리텔링을 엮은 커피하우스를 엮으면서,
평생 커피 향 맡으며, 커피 향처럼 살고 싶어.
어느날, 내 가슴엔 심장 대신 커피나무가 자라고 있을 지도 모르지.
그 나무가 무럭무럭 자란다면 당신에게도 분양해 줄게~

그런 지금의 내 마음이야.
그런 마음을 담아 당신에게도 후지지 않은 커피 한 잔을 건네고 싶어.
‘모든 것은 모든 것에 잇닿아있다’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말마따나,
커피 한 잔 그것은,
누군가가 커피나무를 심어 정성으로 가꾸고 수확했고,
우리는 그 사람과 우연찮게 잇닿게 되는 것이지.
당신과 나의 우주가, 지구와 안드로메다 사이가 아니듯 말이야.
물론, 당신이 필요로 할 때,
제가 따르는 커피 한 잔이 당신의 마음을 적셔주었으면 좋겠어.



감성노화를 막는 한 가지 방법,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좋은 커피.
당신에게 권해.

커피 한 잔... 할래? ^.^
 
이 골목길 다락방은 다음 사람들과 함께~
지속가능한 사회를 꿈꾸는 그런 사람들.

권범철,
김강, 김윤환, 박병률, 박선제, 손민아, 송수연,
서양하,
안태호, 정성기, 최강문, 최호찬, 한종윤,
그리고 나, 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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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들어 놓은 이 세상이 좆같은, 경제경영이 학문의 제왕 노릇을 하는 이상한 현실에 토할것 같은, 아니 그게 아니라도 좋다. 경쟁? 승리? 흥, 그 따위 개쉐이한테나 줘버리라고 말할수 있는 당신과 함께 나는 줄라이홀로 들어가고 싶다.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과 슈베리트의 음악을 듣고 싶다. 같이 동굴로 들어갈 사람, 손! (단, '명박류' 혹은 '명박종'은 절대 안 됨!)


음악과 커피가 익는 줄라이홀에서 보낸 한철

[독자만남] 『지구 위의 작업실』의 저자 김갑수


#1. 미래를 준비하란다. 준비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단다. 노후를 위해 지금을 희생하란다. 지금보다 시간이 덜 곰삭았던 한때, 이 말들을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살았었다. 미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현재의 ‘자기 창조적 불안’을 품고, 그 방법의 하나로, 적금을 붓고 펀드도 했다. 그래야만 나는 이 엄혹한 시대의 ‘당당한 지상의 대열’에서 낙오하지 않을 거라는 ‘환상’을 가졌다. 유인촌 장관께서 말씀하신 그 ‘세뇌’를 당한 것이었다. 불안에 쫓긴 나는 오지도 않은 공포에 무릎을 꿇었다. 저렴한 무릎으로 스스로를 하향 조정한 것이었다. 


그렇게 나도 ‘지구촌 불안 동지’였다. 쉽게 말해, 삽질을 했다는 얘기다. 불안은 마음의 ‘부란(腐爛)’이었다. 썩고 문드러진다는 그런 의미. 그러다가 가까스로 조금씩 더디지만, 미래의 불안을 조금씩 지워가고 있다. 삽도 내던졌다. 삽질은 나 아니더라도, 저 높디높으신 양반들이 해주고 계시니, 굳이 나까지 뭐. 킁.


#2. 올 여름 가장 주목받는 공포영화 중의 한 편, <마터스: 천국을 보는 눈>(‘지난 10여년간 만들어진 호러영화 중 가장 괴로운, 두려운,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그러나 끝까지 볼 수밖에 없는 영화!’라는 평도 있다.)의 감독, 파스칼 로지에의 말. “공포영화는 세상을 살아갈 때 필요한 조건들이 얼마나 흉측하고 괴로운 것들로 가득 차 있는지를 거짓 없이 드러낸다.… 나는 세상이 너무나 좆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분 좋은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내 자신을 배반하는 행위로 본다. 그건 정말 역겨운 일이다.” 오우~ 세상에 대한 명징하고 분명한 인식.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여기에 대한 이말이 떠올랐다. “나는 우리가 만들어놓은 오늘의 이 세상을 참을 수가 없다. 경제경영이 학문의 제왕 노릇을 하고 시장이 권력의 자리를 점령하고 베스트셀러 대다수는 자기계발 지침서이고 재테크 요령이 일상적 관심사가 되고 연예인 사생활이 국민적 화제로 들먹여지고 서울대학교 축제에는 원더걸스가 초청되어 난장판 사고가 벌어지고 교회에서는 현금액이 적은 사람을 조롱하는 ‘천 원 송’이 불리고 이라크, 이란, 북한 등의 나라를 ‘악’으로 규정한 미국 대통령의 주장을 별 이의 없이 받아들이고……”(p.164)


뒷얘기는 시인이자 문화평론가 김갑수 선생의 말이다. 그의 저작 『지구 위의 작업실』에 나온. 핸드드립을 하고 있는 책 표지, ‘지구 위의 작업실’이라는 뭔가 있어 보이는(!) 제목, 평소 그의 글에 대한 호감, 끌렸다. 끌리면 가라! 마침 궁금이 증폭됐던 찰나였다. 앞서 만난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의 저자 김정운 교수(인터뷰 <감탄하지 않는 자, 그대는 유죄!>)는 ‘지구 위의 작업실’이 참 좋다며, 내 호기심에 바람을 불어넣었던 참이었다. 더구나 그 곳에서 로스팅도 하고, 커피가 있다니. 이 어찌 좋지 아니할쏜가. 아싸라비야~


줄라이홀, 발 디디다


지난달 30일 몇몇 독자들과 김갑수 선생의 작업실을 찾았다. 이름 하여, 줄라이홀. 김갑수 선생은 마포의 한 건물 지하에 동굴을 파고 산다. 이곳은 정말 동굴이다. 햇빛과 소리와 날씨로부터 완벽하게 차단된. 실제 면적은 37평이라는데, 공간은 더 돼 보인다. 들어가는 순간, 우와~ 하는 탄성이 절로. 격하게 좋다.



‘줄라이홀’의 이름? 얼터너티브 록음악의 원조격인 거물밴드 R.E.M.의 이름 짓기와 비슷했단다(R.E.M.멤버들이 밴드이름을 지으려고 사전을 휘리릭 펼쳐 가장 먼저 짚인 글자가 ‘급속안구운동’(Rapid Eye Movement)였고, 그것을 밴드이름으로 정했다). 친구가 한 무리를 이끌고 작업실을 찾아왔는데, 손님 가운데 줄라이라고 불리는 미모의 외국회사 임원이 있었고, 이름은 그렇게 정해졌다. “황당한 건가, 멋진 건가, 혹은 둘 다인가.”(p.44)


아울러 줄라이홀이 지하에 있는 이유. “작업실은 반드시 캄캄한 지하에 있어야 한다. 무슨 작업을 하든 마찬가지다. 국어사전적으로 작업이란 뭘 새로 만드는 일일 텐데, 그러자면 기존의 것들과 결별할 수 있어야 한다. 여자에게 작업 걸 때 상투적 언행으로는 씨알머리가 먹히지 않는 것처럼, 작업실이 작업스러우려면 뭔가 달라야 한다.”(p.32) 그렇게 작업실이 지하로 피신해 들어가야 할 이유에 대해, 김 선생은 날씨, 소리, 햇살 등 대략 마흔아홉 가지쯤 된단다. 마흔아홉.


김 선생은 말하자면, 커피 긱(Geek)이고, 오디오파일(애호가)이며, 호모 히스테리쿠스. 줄라이홀은 “커피를 마시는 곳”이자, “오디오 놀음을 하는 곳”이며, “음악을 듣는 곳”이다. 김 선생과 줄라이홀은 이 삼각편대로 존재한다. 김 선생은 그러니까 줄라이홀(앞으로 김 선생은 줄라이홀으로 칭한다).


마침 에스프레소 기계가 약간 애를 먹였지만, 막 고치고 커피 한 잔과 약간의 다과가 우리를 반긴다. 줄라이홀이 볶아서 추출한 커피. 직접 커피콩을 볶아서 내린 커피의 향미가 나를 안성기로 만든다. ‘음, 그래 이 맛이야.’ “7월 초에 아는 사람들을 모아 출판기념회를 열었는데, 초상집이더라. 초상집이 그렇지 않나. 모여서 죽은 한 사람만 얘기하는. 그러니 편하게 놀다가라. 음악도 준비돼 있고, 커피도 있다.”




이육사는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라 했지만, 줄라이홀은 아마 ‘내 작업실 줄라이홀 칠월은 커피와 음악이 익어가는 시절’이라 하지 않을까.





줄라이홀에 흠뻑 젖은 우리들의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는 ‘자기소개’를 통해 우리는 그렇게 줄라이홀과 한 몸이 된다. 보험사에 근무한다는, 아는 선배를 따라 줄라이홀에 발을 디딘 이는 다른 세계 같다는 말로 줄라이홀 방문 소회를 밝힌다. 마음 속 열망이지만, 쉽지 않음을 끄집어내면서. 이에 줄라이홀 왈. “이런 것 저질러도 사람은 죽지 않는다. 이른바 일반적이 아닌 다른 길을 가도 괜찮다. 일단 저질러라. 죽는 사람 없다. 나도 예전에 돈이 하나도 없어서 처참한 날이 많았다. 일단 (물건을) 들여다 놓고 시간을 보내니 해결이 되더라. (웃음) 그렇다고 도둑질한 적도 없고 빚을 얻은 적도 없다. 대신 수입을 연출하기 위해 기를 쓰게 되더라. 할 수 있는 게 원고 쓰는 것이었고, 방송일도 했다. 김치의 역사를 쓴 적도 있다. (웃음)”


그는 이어 『침묵의 봄』을 쓴 레이첼 카슨의 평전(주. 아마도 『레이첼 카슨 평전 : 시인의 마음으로 자연의 경이를 증언한 과학자』로 추정)을 읽은 얘기를 꺼냈다. “레이첼 카슨은 엄마, 사촌 등 줄줄이 먹여 살리면서 죽을 때까지 생활고에 시달렸다. 그 대단한 책이 생계 때문에 씌여진 것이다. 덕분에 나도 위로를 받았다.”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깊이가 있는 것 같아서 『지구 위의 작업실』을 입양했다는 누군가는 “정말 재밌게 읽었다. 하룻밤 새 낄낄대며 봤다. 많이 꿀꿀하게 지내던 때였는데, 책을 읽으며 유쾌해졌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최근 강남으로 이사했는데, 정말 주변에서 돈 얘기 밖에 안 해서 혼란스럽고 꿀꿀했다는 얘기.


줄라이홀이 대화를 받아준다. 삶의 통속성과 순수 사이의 줄타기에 대한 생각. “통속함을 받아들이는 태도의 변화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통속화 과정에 적응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 더 통속적으로 나가는 것도 있다.”


이와 함께 세 가지 세상의 비속성에 대한 혐오. 하나, 부자되세요, 라는 말. 돈에 대한 지나친 열광이 우웩. 둘, 건강과 장수. 건강한 것은 좋지만, 좀비처럼 오래 살고 그것 자체가 목표가 되는 것은 뜨악. 셋, 성공에 대한 과도한 펌프질이 컥. 그는 15년 방송일을 하면서, 대부분이 잘난 사람들을 인터뷰를 했는데, “성공이 개인의 행복과 그다지 상관없음”을 알았단다. 되레, “더 나은 성공이 보여 괴로울 뿐이다. 성공 자체가 삶의 목표가 되면 비참해지더라.” 그리고선, 친구인 한비야의 사례를 든다. “두뇌 구조에 ‘성공해야지’하는 게 없다. 그는 자기 열광 속에 빠져 있을 뿐이다. 그런데 늙으면 죽어야 된다. 대화하자고 해 놓고선 연설하고 있잖나. (웃음)”


줄라이홀의 『삶이 괴로워서 음악을 듣는다』를 읽었고, 라디오방송이 무척 좋아서, 사인을 받고 사적공간을 훔쳐보고 싶어서 찾아왔다는 독자의 한 마디에 팡 터졌다. “TV보다 카메라를 잘 안 받으시네요.”


“5~6년 전만해도 가시처럼 말랐는데, 최근 1년여 동안 임신 5개월처럼 살이 붙었다. (웃음) 어릴 적에 굉장히 험한 곳에서 자랐지만, 그게 나의 전부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누군가에게 멸시를 당할 때도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니가 알아?’라며 자존감과 이 현실에 뿌리박지 않은 자기연민으로 세월을 견뎠다. 그런데 요즘은 좀 슬프다. 왜 이렇게 늙었나, 싶어서.”



우리의 자부심, 자존감을 위하여


역시나 보험업에 종사하는 다른 이의 궁금함. “부인에게 안 쫓겨나고 사는지.” 줄라이홀의 대답. “처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다. 사실, (줄라이홀 때문에) 비아냥을 좀 사기도 한다. (사는 형편이) 어렵지 않아서. 처가 의사다. 무지막지 어려운 시절도 있었는데, 젊을 때 연애를 한번 잘못해서 13~14년 망가진 적이 있다. 그때 47~48kg이 나갔는데, 병원에 갔다가 주치의와 결혼했다. (웃음) 공부 열심히 한 사람은 꼬시기 쉽다. 그런데 함께 살다보니 걸리적거리는 게 있어서 (집을) 나왔다. 부부라고 해서 온 일상을 같이 흘러가야하는 건 아니다. 포기할 건 포기하는 게 좋다는 게 처와 나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처는 살림을 전혀 안 하는 사람이고, 나는 처한테 아무 것도 보살핌을 받은 것도 없다. 이해 받는 게 아니고 필사적으로 어쩔 수 없이 나왔다. 처와는 사이가 좋다. 매일 전화하고 1주일에 2~3번 만난다.”


그러니까,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해 우리는 다시 되물어야 한다. 삶의 방식은 하나가 아니므로. “"왜 부부는 언제나 붙어 지내야만 하나요?" 이런 반문이 별 문제 없는 부부의 간헐적 동거, 선택적 별거에 대한 변이 될까? 되거나 말거나, 그러거나 말거나, 아내는 직장에서 돌아온 시간의 전부를 책 읽는 데만 쓴다. 구경시켜주고 싶을 만큼 전투적이다.… 결혼하고 3년쯤 별도 공간 없이 ‘가정’에서 음악을 들어봤다. 그건, 피차간에, 그러니까, 고문이었다. 내 방식은 스위트홈에 어울리는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하고 싶은 것을 꼭 해야만 하는 성정을 똑같이 보유한 부부. 타협책은 집 밖에 결혼 전과 비슷한 공간을 따로 장만하는 거였다. 서로 그리워하는 부부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설의법적 명제. "왜 부부는 언제나 붙어 지내야만 하나요?"”(pp.194~195)



세계를 넓혀가길 원하는 취업 1년의 프로그래머와 이곳에 와서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는 여성들에게 줄라이홀은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준다. “젊은 때 일생을 관철할 관심사를 찾는 것이 좋다. 내일 김어준과 대담을 하는데, 『건투를 빈다』를 정말 재밌게 읽었다. 책을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자존감’이더라. 자기가 자기를 존중하라는. 하고 싶은 것에 용기를 가지는 게 중요하다. 내 경우는 허허실실이었다. 경쟁을 해서 이겨본 적이 없다. 대학 들어간 것도 기적이다. 반에서 오십 몇 등을 했으니까. 남들과 겨루는 게 안 된다. (웃음) 그래서 비경쟁적인 것에 관심을 두게 된 건가. 좋아하는 건 경쟁하는 게 아니지 않나.”


그렇다면 줄라이홀이 중학교 때부터 관심을 가진 세 가지. 문학, 음악, 여자. 물론 세 번째는 마음대로 안 된단다. 암, 그렇고 말고. “뭐라 설명하긴 어려운데, 하다보면, 살다보면 살아진다. ‘니가 세상에 맞출 수 없으면, 세상이 너를 맞추도록 해라’는 말도 있잖나. 자기에 빠져서 살다보면 살 길이 열린다. 거기서 중요한 것이 자존감이다. 자기 열망이 가 닿는 곳에 길이 있다. 길은 자기가 갔는데, 딱 뒤에 있는 거다. 자기 식대로 갔는데, 뒤 돌아보니 자기자취가 있는 곳이 길이다.”


무한경쟁이 미덕처럼 오도되는 시대에 비경쟁형 인간으로 살아가기. 야망 없음을 자랑으로 여기기. 그럼에도 아무 것도 없음이 아닌 자신만의 것을 채우기.


“무언가가 될 수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어떤 위치로 올라가거나 무엇을 획득할 수 있었다면 그 역시 그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음악을 들어야 했다. 음악에 포개어진 삶은 무엇이 되거나 무엇을 획득하거나 무엇에 올라서는 것을 언제나 가로막았다. 팔자려니 해야 했다. 그러나 깨달았다. 하루하루 음악을 듣는 일이 삶이 되면 되는 거잖아! 먹고사는 일이며 모든 관계를 도구나 방편으로 삼으면 되잖아! 그 무엇의 잣대를 ‘이쪽’이 아니라 ‘저쪽’ 세계의 것으로 바꾸면 되는 것을. 나는 아무 것도 못 된 것이 아니었다. 못 획득한 것도 아니었고 못 올라선 것도 아니었다. 나는 음악을 듣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조건들을 많이 가졌다. 뒤늦은 깨달음이다.”(p.196)


그렇다. 나도 아무 것도 못 된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 말하자면, 커피를 만드는 사람, 커피를 음미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 말에 격하게 동의. “에스프레소는 멋으로 맛을 만드는 일이다.”(p.81)


아울러 길의 묘사. “가보지 못한 길이란 없다. 길이란 걸어가야 길인 것이니 길을 걷지 않은, 걸어보지 못한 사람이 많은 따름이다. 이것저것 기웃거린 삶은 걸어간 것이 아니고 뱅뱅 제자리 맴돌이를 한 것뿐이다. 다만 도정의 변주는 있을 수 있다. 음악이 들리지 않을 때, 건하고 곤하고 피폐할 때 변주가 있을 수 있다. 그것이 음악에서는 오디오질이다.”(p.226)


진짜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생산성과 효용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불러온 지금의 엄혹한 세계. “자기 추구에 있어 자아와 끝없이 대면하는 상황이 필요하다. 세상에 휩쓸려 가면 편한 것도 있지만, 뒤돌아보면 뭐하는 건가 싶은 때가 있다. 사람들의 관계를 ‘인맥’으로 표현하는 것에 나는 분노한다. 필요에 의한 그런 것이잖나.”


역시나 향유형 인간다운 멘트. “인간의 종류를 생산형과 향유형으로 나눈다면, 컴퓨터 쪽과 바텐더 쪽으로 나눈다면 아, 나는 단연 향유형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 옷치장이며 얼굴 화장에 필요 이상으로 열중하는 여성들이 항변 삼아 하는 말이 있다. "남한테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고 자기만족 때문에 이러는 거라구요!" 그 말에 공감을 표한다. 남 보기에 좋으라고 개인 작업실 안에 카페를 차리지는 못한다. 고적한 실내에서 바텐더가 된 기분을 맛보려고 일을 벌였다고나 할까. 어쨌거나 요즘은 컴퓨터 의자나 음악 감상용 쇼파보다는 바텐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훨씬 많다.”(p.132)




줄라이홀에게 건넨다, “You're So Obama!”



그렇게 분위기는 익어간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가 있고 교감이 있는 풍경. 나는 줄라이홀에서 세상, 대한민국 따위는 잊었다. 아니, 커피향과 음악만으로 충분한 시간. 그 한때 ‘시인’이었으나 이젠 염치가 없어서 ‘시인’이라는 타이틀을 달지 못한다는 줄라이홀. 그럼에도 누구에게나 순정이 하나씩 있다면, 시가 자신의 순정이라고 말하는 줄라이홀. 검색을 하면 4명이 나오는 ‘김갑수’ 때문에 명함에 시인이자 문화평론가 타이틀을 단다는 줄라이홀. 언젠가 제주도 서귀포에 가서 살겠다고 말하는 줄라이홀. 그곳에선 어떤 작업실이 들어설까.



“지하 작업실 줄라이홀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대한민국은 사라진다. 그러기로 나는 결심한다. 그 안에는 차라리 떠돌이, 건달, 외돌토리, 허풍선이, 날라리…… 소속 없고 사사롭고 아직 콱 붙들리지 않은 영혼의 해방구가 열린다. 돌 틈에서 태어난 천고자의 서정이 연무를 피워낸다. 그래, 그런 착각이라도 하련다.”(p.129)


브람스의 현악 6중주가 흐르고 하이든의 음악도 흘러간다. 최근 줄라이홀의 노래라는 미선이의 'Sam'과 이른바 ‘이명박송’으로 일컬어지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아무 것도 없잖어' 등등도 함께다. 나는 그 노래(들)에 몸을 맡겼다. “잘 비워낸 한 생애가 천천히 식어가는 동안”(나희덕 ‘국밥 한 그릇’) 나도 줄라이홀을 꿈꾼다. 그것이 자기파괴적 욕망이라 할지라도. “모르핀, 코카인, 필로폰까지는 몰라도 알코올, 니코틴, 카페인의 자유쯤은 누리고 싶다. 건강과 장수라는 욕심 사나운 현대병에 맞서 우아하게 자기를 파괴하는 권리 추구이다.… 영혼의 상처 없이 문학은 가능하지 않다. 말하자면 커피는 한 잔의 문학이다.”(p.78)



당신도 작업실을 갖고 싶다고? 지하에서 생을 감식하고 싶다고? 그럼 이 동굴인 테스트에 응해보라. 당신의 적성을 묻는다. “바슐라르의 쾌락과 바르트의 고뇌가 만나는 장소가 동굴 속이다. 동굴 속 동굴인의 기질을 타고나는 사람이 있다. 동굴인에게 쾌락과 고뇌는 같은 종류의 호르몬으로 생성된다.… 동굴인이 나는 아프다, 라고 말할 때의 숨은 표정을 잘 관찰해보라. 거기 서린 어떤 쾌감을 발견하고 이해할 수 있다면 당신도 동굴인의하나일 수 있다.”(pp.31~32)


어쨌든, 나는 줄라이홀 혹은 김갑수 선생 덕분에 사고 싶어 리스트에 넣어놨던 『커피견문록』을 바로 질렀다. “세계 각지를 주유하며 ‘페송 페송’류의 문화 체험을 다채롭게 펼쳐나가고 있을 따름. 하지만 그 같은 커피 체험 속에 문명과 역사와 인간학이 담긴다. 마시는 한 잔 속에 그렇게 깊은 뜻이, 하는 가운데 맛 자체의 깊이와 넓이가 확장되는 것을 느낀다. ”(p.65)라고 설명했던 그 책. 드디어 내 품에 안겼다. 좋다. 흐흐.


나는 무엇보다 얼마 전 만난, 죽이 잘 맞을 것 같은 한 친구를 데리고 줄라이홀을 다시 찾고 싶다. 우리나라에선 그닥 알려지지 않은 멕시코 치아파스 커피원두를 들고, 줄라이홀의 ‘파에마 S1’이나 이소막의 헥사곤이 추출한 커피를 마시고 싶다.


그리하여, 줄라이홀에게 전하는 나의 이 메시지.

“You're so Obama!”(뭔 말인지 모르겠다고? 검색해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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